한국현대형상회화 2012
2012_0509 ▶ 2012_0529
초대일시 / 2012_0509_수요일_06:00pm
참여작가 공성훈_김성남_김정욱_김지원 김진열_류준화_신학철_안창홍_이문주 이샛별_이세현_이흥덕_정복수_최경선
관람시간 / 10:30am~06:30pm
관훈갤러리 KWANHOON gallery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Tel. +82.2.733.6469 www.kwanhoongallery.com
『한국현대형상회화』 2012 展에 부쳐 ● 회화는 작가의 의식과 감성이 체화되어 드러내는 표현이자 기록이다. 기침과 같은 생리적 발산이기도, 침을 뱉는 것과 같은 의지의 표출이기도 하다. '형상회화'는 이런 회화적 생태를 보다 더 구체화 시킨다. 대상에 대한 단순한 재현·표현·서술의 형식을 넘어 세계와 직면하고 있는 작가적 의식과 태도를 간단없이 표명하고 발언한다. 그래서 각종 레토릭으로 드러낸 다양한 형상과, 그 형상을 구성하는 질료나 프로세스의 긴장감이 발현하는 '형상성'은 지극히 개인적이되 문화적이고, 문화적이되 정치적이고, 정치적이되 다시 개별적인 순환의 역장을 형성한다. 바로 여기에 '형상회화'가 갖는 자기진술성과 정치사회적 전언으로서의 열린 해석학적 메시지가 있다.
- 공성훈_촛불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70×150cm_2012
- 김성남_there01102_캔버스에 유채_116.7×91cm_2011
- 김정욱_한지에 먹, 채색_169×116cm_2010
- 김지원_이륙하다_리넨에 유채_228×182cm_2008
- 김진열_만삭_혼합재료_2011
- 류준화_선인장꽃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콘테, 석회_145×145cm_2012
- 신학철_한국현대사-망령_캔버스에 유채_220×120cm_2011
'한국현대형상회화'는 이미 주지하듯이 80년대 이래 우리미술이 자생적으로 온축해온 '형상성'을 뿌리로 성장하여 왔다. 그러나 [한국현대형상회화] 2012 展 참여 작가들이 보여주는 '형상성'은 그 다양성만큼 서로 다르다. 작가들은 각자의 경험과 인식을 바탕으로 각자 특유의 어법으로 새롭게 '형상성'을 해석하고 도모한다. 특정한 이념이나 집단적인 입장에서 '형상성'을 단서로 삼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 작업들은 자유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개별적인 정서와 인식들을 따라나서면,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와의 안팎 관계가 감지되고, 우리시대 삶의 징후들과 전형들이 그 배후에서 진득하니 조망되고 반영된다.
- 안창홍_걸터앉은 남자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4×97cm_2010
- 이문주_채석장 아래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4×265cm_2012
- 이샛별_소거_캔버스에 유채_210×160cm_2010
- 이세현_Between Red - 108_리넨에 유채_200×200cm_2010
- 이흥덕_맥도날드_캔버스에 유채_132×132cm_2012
- 정복수_인간의번식_130.3×162cm
- 최경선_겨울-물놀이_162×227.3cm
회화가 여전히 새로운 가능성으로 존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시대현실과 인간존재의 길항관계에 대한 성찰의 바탕에서, 회화적 개념과 형식을 적극적으로 갱신하려는 형상회화의 현재진행형은 앞으로도 한국현대미술의 너비와 깊이를 더욱 풍성하게 할 것이다. ■
한국현대형상회화 운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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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환展 / CHOISOOWHAN / 崔秀煥 / installation 2012_0510 ▶ 2012_0523
- 최수환_Emptiness_bw_LED 플렉시글라스_124×124×3cm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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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0510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_11:00am~05:00pm
유아트스페이스 YOO ART SPACE 서울 강남구 청담동 101-6번지 1,2 전시실 Tel. +82.2.544.8585 www.yooartspace.com
유아트스페이스는 검은 화면 위에 세밀한 구멍을 통해 빛이 만들어 내는 형상들을 표현하고 있는 작가 최수환의 개인전을 개최합니다.
- 최수환_Emptiness_259_LED 플렉시글라스_121×99×3cm_2012
- 최수환_Emptiness_water drop_LED 플렉시글라스_103×143×3cm_2012
작가의 노동력을 근거로 한 반복과 집적으로 만들어내는 형상. 구멍을 뚫는 것으로 시작되지만 그의 화면은 명암과 빛,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공간과 공간 사이의 빔(Emptiness)의 의미를 통해 실제와 비실제의 입체적인 착각에서 오는 감각적 환영을 경험하게 한다. ● 또한 이번에 전시되는「백자 용문호」, 전통기와의 문양 등 전통적인 사물과 형태 등은 LED와 Plexiglass 두 개의 화면의 레이어를 통해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는 시간의 공존, 그리고 동양적인 여백과 선의 의미를 미디어를 통해 재해석함으로써 명상적이고 동양적인 사유구조에 근거한 이중적 시각을 제시한다. ● 수천 수만개의 구멍의 빛으로 새어 나오는 빛들의 이미지는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공존하며 관객의 시선을 따라 미묘한 오차를 보이며 동적인 관람시각을 보여줄 것이다. ■
유아트스페이스
- 최수환_Emptiness_water_LED 플렉시글라스_55×187×3cm_2010
- 최수환_Emptiness_water 02_LED 플렉시글라스_27.5×102.5×3cm_2012
나의 작품 (light drawing)은 손으로 직접 검정색 아크릴 판(plexi-glass)이나 종이(museum board)에 수천 개의 구멍들을 뚫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러한 구멍들은 공간(space)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빔(emptiness)을 의미한다. 빛(형광등 혹은 LED), 아크릴 판(plexi-glass), 종이(museum board)등으로 이루어져있는 나의 작품에서 빛(light)과 수천 개의 구멍들은 빔(emptiness)을 의미하는 동시에 형상(image)을 나타낸다. 관객들의 움직임과 빛의 어른거림 그리고 구멍의 다양한 크기들로 인해 평평한 작품표면이 입체적으로 보이는 신비한 시각적 현상을 관객들은 경험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관객들은 내 작품에서 사과(apple)의 형상을 보았다고 믿을 수 있으나 사실은 사과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수천 개의 구멍들을 통해 비추어지는 빛들만이 존재한다. 관객들의 사고는 실제하지도 않는 본질에 대해 너무나도 강요당하거나 혹은 고정되어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빛(light)은 이러한 모순성에 있어 가장 실제적인(substantial) 동시에 가장 비실제적인(non-substantial) 공간(space)이다. 나의 작품은 관객들을 차분하게 혹은 평온하게 만드는 명상적 미(meditative aesthetic)를 그리고 관객들 자신의 의식작용, 시각적 환영을 형성하는 능력 그리고 우리가 실재(real)라고 여기고 있는 실제공간의 빔(emptiness)에 대한 인식의 견고성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수반한다.
- 최수환_Emptiness_Mt. Bukhan_LED 플렉시글라스_55×187×3cm_2011
- 최수환_Emptiness_FMOR_LED 플렉시글라스_124×124×3cm_2011
최근 작품들을 통해 미의 물질성 보다는 본질의 실체성을 다루는 것에 더욱 주목하는 나는 인공의 빛(artificial light)을 통해 보여지는 사진같은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 이 빛은 우리들에게 형상(image)을 파악하게 함과 동시에 빔(emptiness)을 볼 수 있게 한다. ■ 최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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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ing : 존재의 표정
김형기展 / UNZI KIM / 金亨基 / video.installation 2012_0510 ▶ 2012_0527 / 월요일 휴관
- 김형기_vibration_단채널 비디오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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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 / 한빛미디어갤러리 후원 / 서울시_GL Associates_streetworks
관람시간 / 10:00am~09:00pm / 월요일 휴관
한빛미디어갤러리 HANBIT MEDIA GALLERY 서울 중구 장교동 1-5번지 Tel. +82.2.720.1440 www.hanbitstreet.net
존재를 탐색하는 얼굴 ● 오늘은 존재의 의미를 망각한 시대이다. 모든 인간 존재자들이 자신의 고유한 존재를 상실하고 사회적인 체계 안에서 끊임없이 핍박받는 노예로 혹은 도구로 전락해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이 시대의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사회적인 체계인 것이다. 이러한 시대의 한계 속에서 존재감의 의미를 회복하기 위해 작가는 인간 존재에 대한 잔잔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 인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그 출발은 결국 인간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양심의 소리를 듣게 될 때이다. 양심의 소리는 곧 존재의 소리이다. 전시는 존재에 관한 물음의 실마리를 인간 내면 분석, 더 구체적인 출발점은 얼굴의 표정에서 풀어낸다. 작가는 얼굴의 시각적 껍데기를 뚫고, 얼굴로 내면의 살아있는 감정과 진실된 자아를 제시한다. 얼굴은 인간의 신체 가운데서 가장 생명력 있는 표현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플라톤은 "육체는 영혼의 감옥이다"라고 했듯이 인간의 육체는 영혼의 의복에 불과하며 단지 얼굴을 통한 영혼의 표정이 발현되는 것이라 하겠다. 작가는 자신의 심상을 표현함으로써 자신의 감정을 확인하고, 표정이란 형상을 통해 하나의 명확한 이미지를 만들어내 감정을 압축하여 표현한다. 작가의 얼굴은 '내 안에 있는 타자'라는 이미지를 형성하는 성질들의 전체성을 파괴하고 이를 뛰어넘는 존재 그 자체에 집중한 것이다.
- 김형기_Be-ing-space_4채널 비디오, 4 PDP(Plasma Display Panel), 컴퓨터_2012
작가는 눈물과 기쁨, 열정과 좌절, 쾌락과 고통, 기대와 실망, 믿음과 배신, 그런 삶의 드라마 속에서 과도한 의미들을 배제하고 존재감 자체에 주목한다. 인간을 파악하고, 그 이미지를 형상화한 작품은 미디어의 시선으로 왜곡될 수 있는 부분과 강조된 과잉 현실의 외면을 최대한 제거함으로써 인간 삶의 모습이 이미지를 통해 거울처럼 드러나도록 한다. 그러한 존재 본질에 대한 그의 고민과 성찰은 인간의 얼굴이나 모습으로 비추어져 존재 대상을 구체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존재론적 감성을 드러내고자 함이다.
- 김형기_Be-ing_emotion_단채널 비디오_2012
얼굴을 통한 존재는 형식에 갇혀 있지 않고 어떤 중성적인 존재로 머물며 스스로 여러 타인들 앞에 나타난다. 얼굴은 열려있고, 깊이를 얻으며, 스스로를 열어 둔 상태 그대로 내버려둠으로써 많은 세계와 만나 스스로를 그 안에 머물게 하여 백지와 같은 상태로 수신자와 대화하고 기록하며 그들의 그림을 그리게 한다. 경건한 사유의 태도로 현실에 깊이 관여하면서도 동시에 현실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서 본질에 대해 묻고 또 묻는 태도를 지향한다. 사실적인 작업들 안에 있는 거리감과 냉정함은 인간이 스스로를 비추려고 하는 성찰적 태도가 담겨 있다. 이는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기 위해 자신에 대한 사유에서 출발하여, 그로부터 자신이 존재하는 당위성, 정당성을 찾게 된다는 연유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점은 존재에 대한 사유를 각자 스스로에 대입해 현실의 삶 가까이 끌어당겨 비춰볼 수 있는 길고 깊은 사유의 시간을 제공한다.
- 김형기_Be-ing_come_단채널 비디오_2012
작가의 사유 속 여러 인물들의 얼굴은 실체가 아닌 가상적 존재로서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는 실천적 요구가 동반된다. 물질로서의 몸, 얼굴은 관객에게 조용하면서도 날카롭게 무엇인가를 암시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게 된다. 얼굴 표정에는 특유의 고요와 초연함이 스며 있다. 존재에 대한 간절함으로 표현되어 영혼이 간직하고 있는 마음 그대로이다. 표정을 통해 내적인 느낌과 감정을 전달하며, 작가-작품 속 인물-관객은 침묵으로 마음을 나눈다. 서로의 교감으로 만들어지는 작품은 마음의 에너지를 담고 있다. 잔잔하지만 명료하게 발휘되는 존재가치의 힘은 채찍이 되기도 하고 위안이 되기도 하고, 고뇌 속으로 다시 자신을 밀어 넣는 두려움이 되기도 한다. 작품 속 인물이 내부에 있는 가치를 강화하여 본질적인 인간이 될 것을 스스로 주문한다. 자기 반성과 성찰의 사이 어느 순간을 붙잡고 잇는 것처럼… 이렇게 엄숙한 표정과 공허한 시선에는 존재진리가 참답게 밝혀지고 보유된 것이다.
- 김형기_Be-ing_look_단채널 비디오_2012
- 김형기_Be-ing_come_단채널 비디오_2012
이렇게 작가의 중심사상은 '진리'와 '사유' 개념에 근거를 두고 '존재' 문제와 직결해있다고 볼 수 있다. 변형 가공된 외부의 상이 아닌 내면세계로 들어온 얼굴의 표현은 인간이 내재적으로 스스로 자기변화를 질적으로 진행하게 하고, 또 타자를 포섭하면서 제 모습을 끊임없이 드러내게도 하고, 자신과 더불어 타자와 관계를 맺으면서 그렇게 존재에 대해 탐색하게 한다. 작가가 발송하는 전언은 그것을 받는 수신자의 머리 속 개념과 함께 작용하여 반응하는 것이다. 진리가 생기는 장소에서 다발의 진리를 얻기도 하고 또는 수양과 성찰의 과정을 거쳐 자신의 마음 크기만한 해답을 찾을 수도 있다. 그 과정과 결과는 어디까지나 각자에게 달려 있다. ■
조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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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스 Sense
2012 유중아트센터 신진큐레이터 전시기획 공모 수상작展 2012_0510 ▶ 2012_0531 / 일,공휴일 휴관
초대일시 / 2012_0510_목요일_06:00pm
참여작가 구현모_김가을_노영훈_장명근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유중아트센터, 유중갤러리 서울 서초구 방배동 851-4 유중빌딩 3층 Tel. +82.2.599.7709 www.ujungfoundation.org www.ujungartcenter.com
『센스 sense』展은 구현모, 김가을, 노영훈, 장명근 이상 4인의 작가가 시각예술 전반에 걸친 영상, 회화, 설치, 사진 작업을 통하여 각각 '부동의 시간 속에서 노래하는 나무', '생사가 공존하는 비현실을 닮은 현실', '뒤틀린 오브제의 방' 그리고 '낯선 풍경에서 발견하는 익숙한 정서' 등을 선보인다. 본 전시는 이러한 네 작가의 작품들이 주어진 공간에서 주어진 시간 동안 '관계하는 모든 것'과 '상생(相生)'하고 '공생(共生)'하는 현장에 놓일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 상생과 공생의 현장은 전시작품 간의 '시각적 조화로움'으로부터 출발하여 작품과 관람객 사이에서, 작품과 전시 공간 사이에서 그리고 전시 공간과 관람객 사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정서적 공명의 순간을 통해 실현된다. ● 본 전시에서 의도하는 정서적 공명은 예를 들어 시각적, 청각적 접촉으로 촉발되는 관람객의 미묘한 감정이나 그로 인한 감정의 파문이다. 이는 전시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고유한 요소가 '독립적으로' 혹은 우연한 공존을 통하여 '집합적으로' 관람객의 심리를 자극함으로써 관람객-수용자의 개별적 반응을 끌어낼 때 비로소 성사될 수 있다. '센스 sense'展은 관계에 의해 공명이 이뤄지는 순간에 일렁이는 관람객들의 '심리적 울림'으로 전시장을 '울렁이는 침묵의 공간'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상상 위에 위치한다. ● 전시 장소는 크게 두 곳으로 나뉘어 네 작가의 감각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우선 전시장에 들어서면서 동시에 마주치게 되는 정경이 잡아끄는 시선의 끝자락에는 김가을의 회화와 장명근의 사진이 장소의 기둥을 사이에 두고 공간을 사이좋게 분리한다. 두 작가의 작업은 동일한 정서 위에서 서로 다르게 피어나 닮은 듯 다르고, 다른 듯 닮아있다. 혹은 그 시선이 온전히 둘에게 닿기 전, 전시장 입구로 흘러나오는 구현모의 영상이 연주하는 바흐의 Largo(Piano Concerto in F minor BMV 1056)가 먼저 관람객의 가슴을 조심스레 끌어안을 수도 있다. 김가을을 등지고 서서 바라보니 구현모와 장명근은 조용히 어울리며 다시 짝을 짓는다. ● 소리에 사로잡히거나 시선에 매혹되어 전시장에 들어선 관람객은 그 안에서 자유롭게 이동하다가 숨어있는 다른 한 곳을 자연스럽게 발견하게 된다. 1차적 눈길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 있는 이곳에는 몸을 뒤트는 오브제들이 관람객의 시각을 흔들기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노영훈은 거짓 같은 실제로 방을 채웠고, 그 방은 스스로 고립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 구현모_Baum_HD 비디오_00:08:36 loop_2010
구현모는 일상의 관찰 대상으로서 발견한 나무(Baum)를 그의 앵글 안으로 끌어다 놓았다. 읊조리는 듯한 가녀린 음악에 맞춰 마치 춤을 추듯 흐느적거리는 나무 영상은 작가의 감성과 감각에 따라 시각에 반응한 또 하나의 결과이다. 작가의 집 창가에서 바람의 선율에 하늘거리는 나무는 외부의 물리적 자극에 반응하며 미세한 움직임을 지속하여 소리를 그려내고 빛을 품어낸다. 관람객은 시각이든, 청각이든 자신의 예민한 감각에 먼저 와 닿는 감정을 작품과의 상응점에 실을 수 있을 것이다.
- 김가을_지하_섬_캔버스에 유채_116×91cm_2012
김가을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데생과 유화를 선보인다. 누구나 태어나면 죽는다는 보편적인 사실 앞에서 산 자의 언어로만 쓰인 두려움의 역사는 죽은 자의 기록을 담고 있지 않다. 여기서 김가을은 산 자로서 죽은 자의 역사를 써내려가면서 극복하고 위안을 얻는다. 작가는 예민한 사유로 생사를 분리해 놓을 수 없음을 증명하고, 관람객은 작가의 조형언어가 그려낸 현실적이지만 비현실적 정경 속에서 각자의 풍경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 노영훈_Fiction-objet V_레진, 철, 멀티미디어_가변크기_2009
노영훈은 조형예술가이기에 시각과 형태에 집착 아닌 집착을 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한계를 들여다보기 위해 그리고 시각을 통한 인식체계가 가변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실험하기 위해 일그러진 오브제가 가득한 방을 낳았다. 일상적 오브제들이 뒤틀려 꿈틀거리는 듯한 방은 옳다고 믿었던 혹은 의심한 적 없었던 우리의 확정적 시각이 어쩌면 실제로 그러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문을 제기한다. 작가의 뒤틀어진 오브제들의 방은 바라보는 사람의 인식 변화를 자극하기 위한 계산된 지점으로서 일종의 계시자이자 폭로자가 되는 셈이다.
- 장명근_Tronjan Horse_C-type pigwment print_98×134cm_2008
장명근은 2003년부터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는 드림 인사이드(Dream Inside) 시리즈에서 선정한 작품을 전시한다. 작가는 사진의 표면적 형태가 이끌어 내는 서정적 분위기 너머 더 깊은 곳에 위치하며 작가의 몸을 감정적으로 지배하는 개인사에 근접해 있는 본질을 끄집어내고자 한다. 작가는 일상에서 우연히 발견한 대상으로부터 느낀 감정에 직접적으로 반응하며 자기 자신의 역사를 활성화하고 형태화하여 사진에 담았다. 관람객은 과연 타인의 모호한 시간으로 채워진 기억의 공간 앞에 서서 그 표면을 뚫고 안쪽 깊숙이 침투하여 시처럼 은유적이고 함축된 작가의 서정성을 본질적으로 느끼고 도달할 수 있을까? ● '센스 sense'展은 4인의 작가가 지닌 각자의 수용성(受容性)을 관람객이 수용하여 자발적 심리적 움직임을 통해 타인에게는 '보여줄 수 없는' 유일한 공간을 그려 보는 시간을 제공하고자 한다. 이로써 관람객은 감성적 상황의 현장에서 자신만의 '내면 여행'에 스스로를 초대하고, 초대에 응한 관람객의 초월적 차원이동이 일어나는 그 순간이 바로 본 전시의 본격적인 시작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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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두개의 사과
박영근展 / PARKYOUNGGEUN / 朴永根 / painting 2012_0509 ▶ 2012_0527
- 박영근_분노하다 Get angry_종이에 목탄_100×70cm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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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0509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평일_10:00am~09:00pm / 토_10:00am~06:00pm / 일_11:00am~06:00pm
금산갤러리 KEUMSAN GALLERY 서울 중구 회현동 2가 87번지 쌍용남산플래티넘 B-103호 Tel. +82.2.3789.6317 www.keumsan.org
숨은 이미지의 탐험가, 사과의 역사를 발견하다. ●
평면에 숨은 여러 층위 최근 그리기와 보기는 평면성이란 회화의 본질을 상실하지 않은 채, 다시 이야기와 주제를 회복한 특이한 형태를 잉태했고, 작가의 노동력은 새로운 미덕으로 보상 받는 듯 보인다. 자율성의 완전한 복귀는 아니지만, 담론이 생성될 수 있는 예술 매체로서의 위상 획득과 문학, 정치, 그리고 사회와의 연결이란 이질적 결합은 평면작업의 새로운 과제를 제시한다. 형식의 새로움을 위한 진화론적 노력대신 다양하고 복합적인 내용으로 통합적인 밀도를 높이는 회화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 박영근_놀라다 Be astounded_종이에 목탄_100×70cm_2012
박영근 작가는 한국 회화의 다양성속에 자신의 위치를 갖는다. 그는 화면에 그리기와 벗겨내기의 상반된 행위를 적용시키고, 여러 겹의 레이어 속에서 이미지를 구사하면서, 전기 공구(샌더)나 페퍼를 이용, 색을 벗겨냄으로써 직접적인 노동의 장으로서의 화면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그의 작품은 마치 조각처럼 캔버스 위의 두께, 물적 양괴를 파고드는 특이한 방식으로 이미지들은 안료의 층위위로 섬세하게 부상하면서, 종교, 역사, 테크놀로지, 그리고 개인의 주변 등 다양한 주제를 보여준다. ● 캔버스 위 물감은 조각가의 대리석처럼, 깎이고 사라지는 '부재'로써 이미지를 드러낸다. 박영근 회화는 더함으로써 이미지가 형성되고 주제를 전달했던 전통적인 도그마를 해체하고, 더함과 빼기라는 상반된 방식이 공존함으로써 이미지가 스스로 발견되는 듯한 방식을 부각시킨다.
- 박영근_액자에 갇힌 사과 An apple is locked in frame_캔버스에 유채_80×73cm_2012
이야기와 이미지의 결합과 변형 ● 이번 개인전에서 작가는 사과에 집중해서 전시를 구성한다. 사과는 특이하게 역사의 가장 중요한 순간마다 존재해왔다. 인류의 상징적 시작을 보여주는 창세기의 선악을 알게 하는 과일은 많은 경우 사과로 묘사되었다. 금단의 열매를 따먹는 아담과 하와의 원죄에서 인류는 저주와 함께 구원이라는 절대적 명제를 부여받게 된다. 따라서 사과는 인류의 죄의 시작이자 동시에 구원에 대한 희망의 상징이 된다. ● 뉴턴은 사과의 낙하를 통해 만유인력의 법칙을 깨닫게 되고, 17세기 철학자 스피노자는 인간과 인생의 허무를 넘어서서, 지구의 멸망이 도래해도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다. 세잔은 사과를 그리면서 눈에 보이는 형태로부터 회화적 비구상의 가능성, 즉 보이는 것을 넘어서는 원형의 구를 발견해냈다. 결국 세잔의 사과는 미술에서 추상의 도래를 가능하게 했다.
- 박영근_아내와 나 My wife and myself_캔버스에 유채_116.8×195cm_2012
작가는 자신의 가족이 사는 평창동 일대가 과거 사과냄새가 진동했던 곳이라는 역사적 고증에 근거해서, 사과를 한국에 처음으로 수입했다는 안평대군, 못생기고 팔기 어려운 상처 난 사과를 주로 샀던 박수근 등 한국적 맥락에서의 사과에 얽힌 인물들을 그렸다. ● 사과로 대표되는 21세기 아이콘, 스티브 잡스, 에덴으로부터 추방당하여 생존 공간으로 내쫓긴 아담과 이브, 그리고 뱀과 달콤한 열매의 유혹으로 둘러 쌓인 오늘날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대표하는 작가의 자화상은 실은 특별한 공통점이 없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처럼 누드로 표현된 작가 부부의 초상화는 사과를 통해 결핍을 거부하는 심리적 열정,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과 함께 유혹 앞에 무기력한 순수한 모습을 동시에 보여준다. 유명한 역사적 인물부터 실존적으로 나약한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까지 작가에게 사과는 사람과 사회를,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매개로서 특별하게 작동 하고 있다.
- 박영근_매달리다 Hang on_캔버스에 유채_116.8×240cm_2012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구체적인 하루의 일과와 연결되기도 하고, 때로는 좀더 거대한 상징성을 담보하기도 한다. 그것이 일상적이든, 상징적이든 작가에게 사과는 하나의 기호로서 작동하고 있다. 작가는 문자를 그림 아래 배치하는데, 글은 이미지와 크게 상관이 없는 내용들이다. 텍스트는 그림처럼 강력한 기호로 작용하지만, 오히려 '그려진' 글자들이 하나의 이미지로서 그림 안에 통합된다. 기호의 집합체로서 그의 작품 속 사과와 인물들은 또 다른 의미를 가진 이미지의 연속으로 풀어지면서 해석되어진다. 이런 이미지 연관성의 시각적 함축을 내포한 그의 작품은 관객들에게도 마치 자신만의 사과를 발견하고, 무언가를 깨닫기를 촉구하는 듯 하다.
- 박영근_열 두개의 사과 Twelve apples_캔버스에 유채_130×130cm_2012
기호 속 이미지들의 연속성, 회화의 리듬으로 재현되다 ● 파편처럼 보였던 그림의 일부는 작가의 일상과 사고 과정의 증거로, 시간적 흔적들의 층위를 다룬다는 점에서 매우 기록적이지만, 작품은 완전히 물적이지도 않다. 이것은 사과를 선택한 작가의 의도와도 관련 있어 보인다. ● 사과는 가장 보편적인 식재료로서 특정한 계층이나 취향과 크게 상관 없는 과일이다. 동시에 역사, 종교, 철학, 문화 속에서의 주요 키워드의 탄생과도 관련 있다. 심오한 철학이자 가장 가벼운 일상의 양면을 보여주는 복합적 의미체로서, 미술과 문화 안에서도 같은 역할을 계속 하고 있다고 하겠다. ● 작가는 매일 자신을 돌아보며, 그의 종교, 예술적 감성이나 믿음, 기억 등을 사과라는 대상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 개인적인 서사는 곧 작가를 구성하는 이야기의 전부이다. 그의 화면 안 형상의 윤곽선은 그런 작가의 심리적 파장처럼 지극히 율동적이다. 작가의 사적 영역 안에서 생명력을 얻은, 그만의 계보학을 드러내는 작품은 작가의 관찰과 표현의 은유적인 결과인 것이다.
- 박영근_열네개의 사과 Fourteen apples_캔버스에 유채_130×130cm_2012
층위를 벗겨내던 것에서 입히고 더하는 것으로 ● 과거에 그의 작품이 물리적 층위의 이탈 - dislocation- 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다양한 내용과 이질적인 시각적 이미지와 서사적 문구의 결합으로 층위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옮겨왔다. 그의 이야기는 마그리트의 언어작품들처럼, 언어기호와 시각기호 간의 충돌과 합의, 분절과 보완의 긴장을 제공하면서 기호로서의 이미지의 실체를 강조하고 있다. 동시에 주제가 갖는 무게도 덜어내지 않는다. ● 박영근 작가는 발견의 순간, 영감의 획득을 얻게 되는 매개체로서 사과에 접근한다. 그의 시도는 캔버스 위의 '부재를 통한 표현'과 문학적 이야기의 결합으로 특징지을 수 있지만, 온전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작가의 내면과 주변의 이미지들이 관객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것은 그 기호적 특성의 분명함 때문으로 보인다. ● 작가의 서사(敍事)가 홍수처럼 밀려드는 이 시대의 많은 이미지들 속에서, 그들과 섞임으로써 의미를 생산하는 동시에 그것을 잃을 수 있는 지점임을 간과할 수 없다. 이중적 단면의 교차점에서, 작가의 선택은 이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작가의 기술과 그의 신념으로 확대 또는 변형 될 것으로 보인다. ■
진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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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rn Myths
베로니카 베일리展 / Veronica Bailey / photography 2012_0510 ▶ 2012_0608 / 일,월요일 휴관
- Veronica Bailey_Olympus_durst lambda print on fuji archival paper_2010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월요일 휴관
가인갤러리 GAAIN GALLERY 서울 종로구 평창동 512-2번지 Tel. +82.2.394.3631 www.gaainart.com
편재하는 현대적 신화에 대한 사진적 비판 ● "나는 언젠가 이발소에 갔었다. 거기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파리-마치(Paris-Match)』라는 잡지 한 권을 내밀었다. 그 잡지의 표지에는, 프랑스 군복을 입은 흑인 청년이 눈을 약간 치켜 뜬 채 주름진 프랑스 삼색 국기를 주시하면서 군대식으로 경례를 올리고 있었다... 내가 순진하건 순진하지 않건 간에, 나는 이 표지의 이미지가 나에게 의미하는 바를 잘 알고 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바로 프랑스는 위대한 제국이며, 프랑스의 모든 자손들은 인종 차별 없이 프랑스 국기 아래에서 평등하게 군에 복무한다는 것이다". 롤랑 바르트는 유명한 그의 저서 『신화론(Mythologies)』(1957)에서 오늘날 무수히 많은 사회 현상 가운데 작동하는 '현대적 신화'를 발견하고 '탈신화'의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앞서 진심을 다해 경례를 올리는 흑인 청년의 이미지는 사실상 프랑스 제국주의의 역사를 미화하고 정당화하는 데 기여하는 일종의 신화로서, 우리는 그러한 '외연'과 그 안에 감춰진 '함의'를 구분하여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 영국 사진작가 베로니카 베일리(Veronica Bailey)의 신작 「현대 신화(Modern Myths)」(2011)는 이러한 바르트의 신화론과 밀접히 닿아 있다. 베일리는 현존하는 인류의 모든 기원으로서 고대 그리스의 신들을 대표적인 현대 신화인 미디어, 그 중에서도 전통적 미디어인 신문으로 재해석한다. 작가가 포착한 사진의 피사체는 신문을 말아 쥐었을 때의 단면들로, 신문의 종이색, 매수, 말아 쥔 강도나 모양 등에 따라 그 이미지 또한 달라진다. 그 결과 각기 다른 열 두 신문의 이미지는 상징하는 바가 각기 다른 올림포스의 열 두 신으로 인격화된다. 따라서 검은색 배경 가운데 놓인 신문들은 그 자체로 '정물화'임에도 이미지와 짝을 이루는 각 신의 이름을 가리키는 제목과 함께 일종의 '초상화'로 보여지게 된다. 아프로디테, 아폴로, 아레스, 아르테미스, 아테나, 데메테르, 헤파이스토스, 헤라, 헤르메스, 헤스티아, 포세이돈, 제우스가 그 주인공이다. 모든 기호에서 기표와 기의를 연결하려는 우리의 해독적 습관은 자연스럽게 신문의 이미지와 각 신의 상징적 의미를 연결시키고, 그러한 노력은 때로는 어느 정도 성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여러 겹의 종이들이 풍성하게 겹쳐져 부드러운 이중의 곡선이 강조된 이미지는 여성, 결혼, 모성의 여신인 헤라이며 종이의 홑겹이 아닌 스테이플러로 묶은 부분이 드러나 두텁고 강한 선들이 강조되고 안쪽에 붉은 색이 보이는 이미지는 다름 아닌 불과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사실상 이미지와 텍스트의 대응은 작가의 주관적인 인상과 직관에 의한 것으로, 그것은 마치 언어의 기표와 기의의 자의적 관계처럼 전적으로 임의적인 관계이다. 따라서 이미지와 텍스트 사이를 왕래하며 둘 사이의 관계를 추론하는 것은 『현대 신화』를 감상하는 하나의 유희적 방식일 수 있으나 작가의 본질적인 의도는 아닌 셈이다. 오히려 작가는 그러한 기표와 기의, 이미지와 텍스트의 일대일 대응관계를 하나의 '신화'로 보고 암묵적으로 비판하려는 쪽에 더 가깝다.
- Veronica Bailey_Hera[Goddess of Women, Marriage and Motherhood]_ durst lambda print on fuji archival paper_2010
- Veronica Bailey_Hephaestus[God of Fire and the Forge]_durst lambda print on fuji archival paper_2010
- Veronica Bailey_Hestia[Goddess of the Hearth and Home]_durst lambda print on fuji archival paper_2010
본격적으로 베일리가 고대 신화를 끌어들여 전달하려는 신문에 대한 탈신화의 시도는 두 가지 층위에서 일어난다. 첫째, 신문을 '읽을 수 없는 텍스트'로 제시함으로써 무력화하는 것이다. 작가는 신문의 매체적 본질이라 할 수 있는 텍스트를 읽을 수 없는 새로운 이미지로 제시함으로써, 미디어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리라는 보편적인 믿음을 비판한다. 우리는 오늘날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접할 수 있다고 믿지만, 사실상 미디어의 발달은 자본이나 권력과의 결탁으로 인한 왜곡과 더 많은 조작을 수반한다. 이러한 점에서 작가는 미디어가 전달하는 수많은 현상들 이면에 우리의 믿음과는 전혀 다른 진실이 존재할 수 있음을 강변한다. 한편, 베일리의 『현대 신화』가 구사하는 탈신화의 두 번째 층위는 신문을 '물질적 본성으로 직면'하게 함으로써 미디어의 절대적 권력을 축소시키는 것이다. 작가는 종이의 질감과 신문 특유의 가장자리 마감 부분까지 디테일이 살아있는 고화질의 클로즈업 이미지를 통해 신문이란 하루(또는 한 주)의 소식을 전달하는 용도가 다 하면 폐기되는 값싼 종이일 뿐이라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을 제시함으로써 미디어의 신화에 흠집을 내는 것이다. ● 『현대 신화』에서 또 하나의 흥미로운 지점은 열두 신 외에 또 다른 이미지, 즉 그들의 신전이 있던 산의 이름을 딴 「올림포스」라는 제목의 사진에 있다. 올림포스가 대신한 그리스 신화의 열세 번째 신의 자리는 원래 지하세계 왕좌에 머물러 있던 '죽음의 왕' 하이데스의 것이다. 베일리는 이 '죽음의 자리'를 9.11 테러 사진이 1면에 실린 『파이낸셜 타임즈』로 대신하고 있다. 유일하게 내용(텍스트가 아닌 이미지지만)을 볼 수 있는 「올림포스」는 나머지 열 두 이미지를 대신해 작가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자본주의의 종주국인 미국, 그 중에서도 뉴욕 맨해튼, 그 중에서도 증권가 한 가운데 자리한 상징적인 건물에 대한 공격으로서 세계무역센터에 대한 테러는 결국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공격이자 완전무결해 보이는 자본주의 신화의 파열을 함의하는 것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작가가 선택한 이미지가 폭발로 건물이 불타고 있는 여타 신문의 이미지와 달리, 건물이 붕괴되어 사라지고 없는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을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이는 폭발 사진을 접할 때의 비현실성과는 또 다른, 폭발이 일어난 뒤 사후적 지표(index)로서 사건을 받아들이게 하는 독특한 경험을 유발한다. 베일리는 그 이미지가 "죽음을 '하나의 공간(a space)'으로 받아들이게 하였다"고 말한다. 그러한 이유로 그녀는 그 열세 번째 사진을 신이 아닌 신이 머물렀던 장소로 대치하였을지 모른다. 사실상 이러한 '부재의 현전'이야말로 다름 아닌 신화의 본성이다. 작가가 인상 깊게 기억하는 색이 바라고 신체 일부분이 훼손된 고대 그리스 조각의 모습은 이러한 신화의 본성을 잘 말해준다. 현재의 상태나 존재 여부와 무관하게 신화의 신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현전하는 것처럼, 역사적인 발생의 기원과 무관하게 지금의 그것을 자연스럽게 믿게 하는 것이 바로 신화의 작동원리이기 때문이다.
- Veronica Bailey_Apollo[God of Sun, Light, Truth, Music and Poetry]_ durst lambda print on fuji archival paper_2010
- Veronica Bailey_Zeus[God of sky, thunder and justice]_durst lambda print on fuji archival paper_2010
『현대 신화』와 유사한 시기 제작된 베일리의 또 다른 사진연작 「헤르메스 베이비(Hermes Baby)」(작품제목인 '헤르메스 베이비'는 히긴스가 당시 전장에서 사용한 타자기 모델명이자, 베일리가 해당 작품에 사용한 서체인 '베이비 헤르메스'와도 관련된다.)(2011)는 대표적인 현대 신화 중 하나인 전쟁을 주제로 한 작업이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은 자국의 안보와 세계 평화라는 명분으로 대대적인 전쟁을 감행했고, 다수의 국민은 나라가 내세운 전쟁의 공익성과 정당성을 진실로 받아들였다. 이러한 전쟁의 신화는 실질적인 테러와 무관한 수많은 민간인의 목숨을 앗아가고, 그 가운데서도 여전히 상대를 가해자로 만들 수 있었다. 미국의 경우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모든 전쟁은 신화로서 유지되어 왔으며, 오늘날 단순한 무력충돌뿐 아니라 힘의 논리에 의해 전 세계를 지배하는 문화제국주의나 신자유주의가 여전히 일정한 신화로서 작동하고 있음에 우리 모두는 전쟁의 신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헤르베스 베이비」는 최초의 여성 퓰리처 상 수상자인 미국인 종군기자 마그리트 히긴스(Marguerite Higgins)가 한국전쟁의 경험을 적은 책(마그리트 히긴스, 『한국 전쟁: 한 여성 종군기자의 보고서(War in Korea: The Report of a Woman Combat Correspondent)』(Doubleday & Co, Inc, New York, 1951))을 소재로 한 작업이다. 작가는 이 책에서 인상 깊은 두 세 단어의 구절을 발췌하여 '베이비 헤르메스' 라는 특정 서체로 적고, 글자가 적힌 디지털 이미지를 35mm 아날로그 필름으로 전환해 암실에서 수작업으로 현상하고 명함크기의 1950년대 빈티지 인화지에 인화하였다. 그리고 넉 장의 사진을 하나의 그룹으로 묶어 장방형으로 하나의 액자에 배치하였다.(「헤르메스 베이비」는 다음과 같이 넉 장의 사진이 하나로 묶인 네 개의 그룹으로 이루어진다. [그룹 1]: 「얼어 죽은(Frozen Dead)」, 바닐라 아이스크림(Vanilla-Ice-Cream), 녹색 병사(Green Soldiers), 웅장한 지옥(Gallant Hell), [그룹 2]: 「뒤돌아 도망치라(Turn and Bolt)」, 「묘지 같은 참호(Graveyard Foxholes)」, 「완벽한 표적(Perfect Target)」, 「가망 없는 승산(Hopeless Odds)」, [그룹 3]: 「쇄도하는 공포(Rush of Fear)」, 「붉은 껍데기(Red Shells)」, 「악몽 같은 샛길(Nightmare Alley)」, 「가혹한 진실(Bruising Truth)」, [그룹 4]: 「위험 가능성(Possible Danger)」, 「보랏빛 심장(A Purple Heart)」, 「냉혹하게(In Cold Blood)」, 「반으로 찢어진(Blew in Half)」.) ● 이 사진들은 크게 두 가지 지점에서 작가 자신의 이전 작업은 물론 여타의 사진들과 차별화된다. 첫째, 카메라 촬영이 아닌 빛의 노출을 통해 상을 얻는 고유의 제작 방식이다. 카메라 촬영에 작가의 제작 행위가 집중되는 대부분의 대형 디지털 사진과 달리, 이 소형 아날로그 사진은 - 레이요그램이나 솔라리제이션 등 빛에 노출하여 상을 얻는 일부 전통적인 사진기법들처럼 – 필름에 상을 안착시키고 인화지에 이미지를 얻어내는 후반 작업에 무게가 실린다. 특히 이 작업에서 작가는 1950년대 기록된 전쟁에 관한 텍스트를 당시 생산된 인화지에 재현함으로써 내용과 물질의 양 측면에서 과거에 대한 현재의 시대적 개입을 시도한다. 사실상 이 작품에서 작가의 제작행위는 내용상 창작이 아닌 발췌이며, 형식상 촬영이 아닌 필름전환, 현상, 인화라는 점에서 소극적인 방식에 국한된다. 그러나 작가의 현재적 개입으로 인해 과거 전쟁의 내용이 다른 맥락에서 전달되고 과거 생산된 종이가 오늘날 새롭게 빛을 발하는 것이다. 그 텍스트와 종이는 분명 과거에 발생한 역사적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여전히 현전한다는 점에서 신화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상 그 맥락과 의미는 전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탈신화를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 Veronica Bailey_「뒤돌아 도망치라Turn and Bolt」, 「묘지 같은 참호Graveyard Foxholes」, 「완벽한 표적Perfect Target」, 「가망 없는 승산Hopeless Odds」_ ilford Bromide paper grade 4 - c.1950 vintage, printed by artist from 35m slide transparancy_ 29.9×33cm_2011 (Ed. of 5)
사실상 제작방식보다 중요한 「헤르메스 베이비」의 차별점은 사진의 피사체(subject)가 텍스트라는 사실이다. 이미지가 아닌 텍스트, 즉 도상기호가 아닌 문자기호가 그림이나 사진에 재현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것은 관습적인 이유이기도 하지만, 닮음을 전제로 한 도상기호와 달리 기표와 기의의 관계가 자의적인 문자기호는 지시체가 지닌 의미를 직접적으로 전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반면, 문자기호는 그 의미가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달라지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심상과 상상력의 측면에서 훨씬 더 풍요로워질 수 있는 강점이 있다. 특히 「헤르메스 베이비」의 경우 베일리가 선택한 '녹색 병사', '보랏빛 심장', '붉은 껍데기' 등의 색과 관련된 표현이나, '뒤돌아 도망치라' '악몽 같은 샛길' '묘지 같은 참호' 등의 상황 묘사는 보는 사람에게 저마다 다른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그러한 심상은 직접적으로 묘사된 이미지보다 훨씬 폭넓은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게 한다. 베일리는 이러한 텍스트의 효과를 인화지의 형태와 결합하여 배가시킨다. 인화 과정에서 끝이 제멋대로 말려들어간 종이의 모양은 그것이 단순히 종이가 아닌 깃발이나 손수건처럼 보이게 한다. 그것은 종전을 알리는 흰 깃발이나 전장으로 향하는 병사를 보내면서 가족이 흔들었을 손수건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그 자체 특정한 정서를 자아내는 일종의 오브제로서 이 사진들은 전쟁과 관련된 텍스트와 겹쳐져 더욱 다양한 층위의 심상과 상상력을 자아낸다. 흥미로운 것은 베일리가 선택한 텍스트의 내용과 서체의 형태, 그리고 그것이 흰 배경 안에 고립되어 제시되는 방식이 잔혹한 전쟁의 현실을 가벼운 수사적 표현으로 희석시킨다는 점이다. 이는 베일리가 전쟁의 탈신화를 꾀하는 방식이다. 작가는 당시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국 군인들이 공유한 영예와 자만감의 집단의식이 전쟁을 정당화하는 정부의 입장을 개인적으로 내면화한 허위의식에 불과함을 말하고자 한다. 사실상 그 젊은이들은 그러한 대의명분이 아니라 전쟁이 일어나기 전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전쟁에 충실히 임할 뿐이라는, 이른바 '바닐라 아이스크림'의 신화를 폭로하고자 하는 것이다. '얼어 죽은'이라는 구절 바로 옆에서 발견하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주는 상충적 느낌은 그야말로 이러한 전쟁의 신화를 대변한다. 바르트는 "신화는 곧 발화(speech)"라고 말한다. 신화란 특정 대상이나 소재에 국한 된 것이 아닌 모든 "의사소통의 체계"와 "의미작용의 양식"에서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단, 바르트는 신화가 "역사에 의해 선택된 발화"인 점을 강조한다. 베일리가 지금까지 사진의 소재로 삼아 온 것들, 즉 역사적 인물의 서가에 꽂힌 책이나 그들이 주고받은 편지, 그리고 최근의 특정 순간을 기록한 신문이나 과거 전쟁의 경험을 적은 텍스트는 모두 '역사에 의해 선택된 발화'와 관련된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그것들 대부분이 발화의 내용에 해당하는 정보를 드러내지 않고 작가의 최소한의 개입에 의해 새로운 시각적 기호로 제시되거나, 발화의 내용을 드러낼 때조차 전혀 다른 맥락의 의미로 전환되어 드러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일관된 방식은 텍스트와 이미지, 문자기호와 도상기호의 관계에 관한 사진적 탐구는 물론, 현대적 신화의 편재와 그러한 신화의 허상을 암묵적으로 제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것이야말로 바르트의 가장 중요한 학문적 성과이며, 베일리는 바르트가 이론을 통해 행한 그 일을 예술이라는 다른 언어로 성취해가고 있는 셈이다. 그 세계는 명료하고도 풍요롭다. ■
신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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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형근 개인전 《중간인(中間人)》
아트선재센터(02-733-8945)
2012-05-03 ~ 2012-07-17
아트선재센터는 2012년 5월 3일부터 6월 17일까지 오형근 개인전 《중간인(中間人)》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중간인>은 군인의 초상사진 연작으로, 개인으로서 일반 사병의 모습을 주목한 작품이다. 6?25 발발 이후 62년 동안 멈춘 전쟁의 한가운데에 있는 대한민국 군(軍)의 특수성을 반영한 집단 안에서 개인이 강조된 군인의 초상사진이 예술작품으로 제작된 전례가 없다. 하지만 오형근은 국방부의 도움으로 지난 3년여 간 육?해?공군에서 촬영 작업을 하였고, 군이라는 집단 속 개인을 드러내는 <중간인>을 완성하였다.
현대미술에서 주목을 받으며 사회적으로도 화제가 되었던 《아줌마》(아트선재센터, 1999)전 이후, 오형근은 <아줌마>, <소녀연기>, <화장소녀>, 즉 소위 여성 3부작이라 불리는 작업을 통해 다양한 세대의 여성의 초상을 다루며 사회적 관념과 선입견이 만든 집단에서 이들이 느끼는 불안을 포착해왔다. 반면에 이번 <중간인>에서는 군인의 초상을 통해 남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중간인>의 군인들은 실체적인 집단인 군에서 ‘나’와 ‘우리’, ‘개인’과 ‘집단’ 사이의 ‘중간인’으로서 갈등하며 느끼는 불안을 드러낸다.
전시 기간동안 1일 4회 도슨트 안내가 이뤄지고, 2012년 6월 4일 오후 4시에 오형근 작가의 아티스트 토크가 예정되어 있다. 본 전시 개최와 함께 <중간인> 연작을 담은 동명의 모노그래프가 출간된다. 전시 작품은 2012년 9월 12일부터 11월 20일까지 부산에 위치한 고은사진미술관으로 순회될 예정이다.
오형근의 눈으로 바라본 군인
오형근이 <아줌마>, <소녀연기>, <화장소녀> 등 이전의 작업에서 다양한 세대의 여성을 다루었다면, 이번 <중간인> 연작에서는 남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대상의 성별 전환과 더불어, 이전까지 다룬 통상적인 관념으로 모인 인물 집단에서 벗어나 한국 사회가 강요하는 ‘우리’의 개념을 탐구하기 위해 전형적이고 강제적인 집단인 군을 주목하였다. 하지만 오형근은 대한민국 사회의 남성성을 대표하는 의무적 집단인 군에서 사진작업을 진행하면서, 개개인으로서의 군인의 모습을 마주하며 사회가 강요하는 `우리`라는 개념이 사라지는 것을 발견한다. 때문에 오형근이 포착한 군인의 초상은 한국 사회의 ‘우리’가 아닌, ‘나`와 `우리`사이의 ‘중간인’으로서 느끼는 불안감을 담고 있다.
오형근은 철저한 외부자적 시점에서 극단적인 조명이나 캐스팅, 혹은 상황을 배제하여 군을 부정적으로 비판하지도 않고, 긍정적으로 표상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작가의 중립적인 자세는 중간 밝기의 조명과 중간 계조의 사진적 장치로 이어진다. 중간 계조의 사진적 장치는 오형근의 중립적인 자세뿐만 아니라 모호한 ‘중간성’을 지닌 ‘중간인’에 대한 사진적 재현이기도 하다. 한편 이전 연작의 초상사진이 인물을 집중적으로 재현했던 반면, <중간인> 연작에서는 사진의 배경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중간인>에서 배경은 모티브이자 ‘중간인’로서의 군인의 고립감과 격리감을 표현하기 위해 작가가 의도적으로 병치(Juxtaposition)한 중요한 미쟝센(Mise-en-Scène) 이다.
오형근에 의하면 군을 ‘중간인’으로 바라보는 그의 작가적 관점은 단지 그의 반응일뿐 군이라는 대상의 본질을 표상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문제는 대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이지 대상이 무엇인지가 아니다. 따라서 그의 군인 사진은 관객의 성별, 계층, 연령, 군필 여부 등 보는 이의 개인적, 사회적 배경에 따라 각기 다른 반향을 일으킨다.
<중간인>에서 드러나는 개인의 초상
<중간인> 연작은 군이라는 집단에서 촬영되었다. 하지만 작품은 군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집단에 내재한 ‘우리`의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관념 안에서 갈등하는 개인을 조명한다. 따라서 오형근의 사진 속 군인들은 군인으로서 용맹한 전형성이 아닌, 개인으로서 느끼는 `중간자’적 불안을 드러낸다.
《중간인》전은 크게 세가지 섹션로 나뉘어 개인으로 나타나는 군인의 초상을 선보인다.
아트선재센터 2층에서는 밝은 분위기의 군인들의 초상을 선보인다. 이들은 환하고 밝게 표현되나, 오히려 밝기때문에 모호한 고립감을 드러내고 있고, 작가가 병치한 배경은 이러한 미묘한 느낌을 더욱 두드러지게 재현한다.
아트선재센터 3층에서는 2층의 밝은 느낌의 군인들과 대조되는 어두운 분위기의 군인들의 초상이 한 섹션을 이룬다. 이들은 갈등과 고민을 드러내며, ‘나’와 ‘우리’ 사이에서 느끼는 불안과 격리감을 전달한다. 또한 음울한 색조의 배경은 중요한 미쟝센으로 역할한다.
마지막으로 오형근이 전시의 하이라이트로 꼽는 초상사진 섹션이 있다. 아트선재센터 2층 초상사진 방에서는 인물에 집중한 전통적인 초상사진을 선보인다. 앞의 두 섹션의 사진 속 배경이 중요한 역할을 했던 반면에, 초상사진 섹션에서는 보다 인물을 주목한 사진들이 전시된다. 인물의 솜털까지 보일 정도로 디테일한 초상사진은 대상 인물에 초점을 맞춰 작가가 나타내고자 하는 인물의 내러티브를 드러낸다.
오형근의 사진 속 군인들은 눈에 띄게 특이하지 않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평범하고 ‘중간’적인 인물들이다. 하지만 오형근은 이들에게서 미세하고 미묘한 인간 본연으로서의 갈등과 불안을 발견하고, 이들이 집단 속에서 개인으로서 느끼는 정서를 포착하여 <중간인> 연작으로 완성하였다.
글 : 사무소(Space for Contemporary Art)
2012.05.08 22:45:36 / Good : 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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