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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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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시각: 2014.03.10 02: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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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제목: [기사] 삼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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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라는 숫자가 가지는 함의를 생각할때 마다 우습기도 하고 쓸쓸해지기도 한다.  삼세번이라는 말도 그렇고.  삶은 생은.  차피 다각적이긴 하지만.  꿈꾸는 이성의 스산함을 감내할 이유는 무엇일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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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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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구글 검색





윤익영의 신화이야기
: 파리스의 심판과 삼미신

3. 삼미신(三美神, 카리테스Charites)



3-1. 삼미신

앞에서 언뜻 비쳤듯이, 르네상스 시대의 한 전형(典型)처럼 굳혀진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가 취한 자세는 ‘삼미신’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어서 ‘삼미신’과 ‘파리스의 심판’을 구별하기가 어려워 보이지만, 의외로 이 둘을 구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삼미신은 세 자매이므로 그들은 항상 한 몸처럼 붙어 있지만 ‘파리스의 심판’에 등장한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는 서로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삼미신의 세 자매는 어깨동무하거나 팔을 맞잡고 서로 결속해 있는 것이 특징으로 그리스 고전기 때부터 묘사되었다.









작가미상, <삼미신>, 부조, 기원전 5세기, 아크로폴리스 미술관, 아테네.



기원후 1세기경에 이르러 그레코-로만 양식의 삼미신은 각기 누드의 ‘앞-뒤-앞’ 면으로 구성된 독특한 양식을 보이기 시작하는데 폼페이의 벽화 <삼미신>(아래 그림)은 그 좋은 예다.1) 이렇게 시작된 자세는 점차 ‘옆-앞-뒤’ ‘옆-옆-앞’ ‘옆-뒤-옆’ 등으로 다양하게 변조되며 발전한다.










작가미상, <삼미신>, 기원전 1세기경, 벽화, 폼페이.



 그레코-로만 양식은 그리스의 고전적 양식이 동양적으로 왜곡된 것으로서 이 같은 탈-고전 경향은 폼페이의 붕괴(A. D. 74년) 이전부터 이미 나타나고 있었는데2) 특히 그레코-로만 양식의 <삼미신> 군상들은 르네상스 시대에 영향을 주었다. 라파엘로의 <삼미신>(아래 그림)은 폼페이 벽화의 <삼미신>과 매우 흡사하지만, 라파엘로는 이 벽화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땐 폼페이가 잿더미 속에 묻혀 있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회화에 영향을 끼친 것은 대부분 고대 조각품들이었다. 라파엘로 시절엔 바티칸 궁에도 많은 고대 조각과 복제품이 쌓이기 시작했으며 마르칸토니오는 이를 판화로 제작해 보급하기도 했다.3)










라파엘로, <삼미신>, 목판에 유채, 17 x 17cm, 1504-1505, 콩데 미술관, 샹티이(Chantilly).



고 대 신화에서 삼미신은 삶의 기쁨과 윤택을 의인화한 것으로, ‘우아미의 세 여신’으로도 불리며 모든 향연과 연극, 사교적 즐거움에 관여한다. 제우스와 바다의 요정 오케아니스(Okeanis)의 딸로 태어나 아폴론에게 선사되었으며 세 자매 중 하나인 탈리아는 아홉 명으로 구성된 뮤즈(무사이)4)의 일원이기도 하다.
삼미신은 향락주의자들에게서 파생되어 고대의 세네카에 의해 전파되었다.5) 그러나 중세 시대를 지나면서 거의 잊혔다가 르네상스 시대에 부활하여 알베르티의『회화론』(1436)에 소개될 만큼 대중적인 존재가 되었다. 헤시오도스는 이 세 여신을 ‘아글라이아Aglaïa(광휘光輝)’, ‘유프로시네Euphrosyne(환희歡喜)’, ‘탈리아Thalia(개화開花)’라고 불렀다 한다. 그들은 투명하고 넉넉히 풀어헤친 옷차림으로 서로 손을 맞잡고 있는데 한 자매가 선행(선물)을 베풀면 그것을 받은 자매는 다른 자매에게 베풀고, 세 번째 자매는 이를 다시 처음에게 되돌려 줌으로써6) 완벽한 미덕의 결실을 본다는 것이다. 보티첼리의 <봄>에 묘사된 삼미신이 이 장면을 대변해 주고 있다.










보티첼리, <봄>(부분), 1482년경, 목판에 템페라, 203 x 314㎝, 우피지 미술관, 피렌체.



삼 미신은 처음에는 아폴론의 시녀였지만 15세기부터는 아프로디테의 시녀이거나 반려자로 나타났다. 르네상스 시대의 한 판화 <아프로디테의 마차>를 보면 두 마리의 콜롬보가 선두에 서고 두 마리의 백조가 이끄는 수레에 아프로디테와 삼미신이 함께 탔는데 아프로디테는 작은 사과(혹은 능금) 세 개와 큰 구슬 하나를 들고 있다.7)

실연당한 아폴론을 주제로 그린 <아폴론과 삼미신>(15세기 말)에서는 삼미신이 서로 손을 맞잡고 월계수 나무를 둘러싸며 각각 앞, 옆, 뒷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좀 별난 것은 개, 사자, 늑대가 한 머리에 붙은 삼두(三頭) 괴물이 아폴론의 마차를 끄는 모습이다.(아래 그림) 개, 사자, 늑대의 삼두 괴물을 동반한 아폴론을 ‘아폴론-세라피스’라 하는데, 이 삼두 괴물은 ‘신중함의 알레고리’와도 연관되어 있다.









작가미상, <아폴론과 삼미신>, 15세기 말엽.



삼미신은 <음악의 우의>(1496)라는 어느 책자 그림에서도 아폴론을 떠받친 별난 괴물과 함께 등장한다.(아래 그림) 이 그림은 음악의 원리와 천체 우주론의 조화를 비유한 것인데 여기에는 세 갈래 머리(개, 사자, 늑대)를 가진 뱀이 수직으로 늘어져 있고, 이 뱀을 축으로 칠성신과 뮤즈들이 좌우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중앙 상단의 뱀 꼬리 위에는 아폴론의 옥좌가 놓였고, 그 오른편에는 꽃과 악기(류트)가 있으며 왼편에는 삼미신과 그녀들의 이름인 아글라이아, 유프로시네, 탈리아가 기록되어 있다.










작가미상, <음악의 우위>, 1496년, 삽화.



이 처럼 삼미신은 아폴론의 시녀로 그려지기도 했지만, 아프로디테와 더욱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서양미술의 주요 주제가 되었다. 그리스도교 인문주의자였던 피코 델라 미란돌라(Pico della Mirandola, 1463~1494)는 아프로디테가 거느린 삼미신의 이름이 각기 이상미(理想美)의 세 가지 속성인 ‘젊음’ ‘환희’ ‘광휘’를 의미한다고 했으며8) 삼미신과 아프로디테의 관계를 ‘삼위일체’ 사상과 결합하여 해석하기도 했는데, 후자일 경우 삼미신은 아프로디테의 세 가지 속성이 된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삼중의 위격을 하나로 보듯이, 삼미신의 젊음, 환희, 광휘의 세 가지 요소를 아프로디테의 본체로 본 것이다. 아프로디테의 속성이 세 명의 삼미신으로 나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이름인 ‘아글라이아’, ‘유프로시네’, ‘탈리아’는 아프로디테의 본질을 나타내는 ‘아름다움’(Pulchritudo), ‘사랑’(Amor), ‘쾌락’(Voluptas), 혹은 쾌락 대신에 ‘순결’(Castitas) 등으로 불렸다.9) 하지만 아프로디테에 대한 이러한 ‘신성화’ ‘정결화’ 의식이 있었음에도 그의 반려자들인 삼미신은 빈번히 매음굴의 간판으로 사용되었다.10)

 3-2. 큐비즘(입체주의)의 삼미신
로잘린드 크라우스는 고전주의 조각의 서술성과 삼미신에 관한 분석에서 로댕(1840~1917)의 <지옥문>(1880~1917)에 나오는 <세 망령들>과 카노바(Antonio Canova,1757~1882)의 <삼미신>(1813), 그리고 파리의 개선문에 조각된 리드(François Rude)의 <라 마르세예즈>(1833~36) 등을 비교하였다.11)
그 에 따르면 고전주의에서는 인물을 둘이나 셋으로 짝지어 묘사함으로써 단일시점을 극복하려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한 인물의 정면과 그 짝의 뒷모습을 나란히 배치해 각 형태를 손상하지 않으면서도 앞뒤의 본체를 알아보게 하였다. 이는 하나의 신체를 회전하는 형태로 배열하여 그 전체의 의미를 드러내는 표현 방식으로, 이를 통해 관람자는 회전하는 하나의 신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세 가지 다른 각도에서 비친 세 여인의 누드를 보게 되는데 이러한 전통은 19세기 신고전주의 조각가들에게로 이어졌으며, 카노바 혹은 토르발덴(Bertel Thorwaldsen)의 <삼미신>(아래 그림) 조각에서 찾아볼 수 있다.











베르텔 토르발덴(Bertel Thorwaldsen, 1768/70~1844), <큐피드와 함께 있는 삼미신>, 1817-1818, 대리석, 높이 172cm, 토르발덴 미술관, 코펜하겐.



19 세기 조각가들은 조각상의 뒷면도 관람자들이 동시에 볼 수 있게 하는 데 관심을 기울였으며 이를 가능케 하는 방법을 ‘삼미신’에서 찾았다. 이러한 선례는 이미 ‘그레코-로만’ 양식의 삼미신 작품들에서 보았지만, 19세기 신고전주의 조각도 단일 시점을 극복하기 위해 누드의 ‘앞-뒤-옆’ 면을 동시에 배열한 ‘삼미신’의 복수시점을 계승하였다. 나중에 피카소는 이 전통을 ‘입체주의 기법’으로 발전시켰다.

피카소는 1905년 여름, 그러니까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완성하기 2년 전에 <네덜란드의 세 자매>(아래 그림 왼쪽)를 그렸는데 이 작품의 구성과 인물의 자세를 보면 어김없는 ‘삼미신’ 양식이다. ‘삼미신’은 입체파 양식을 탐색하는 데 적절했기 때문이다. <머리 손질>에서도 비슷한 예를 볼 수 있는데 거울을 보는 한 여인의 누드는 앞면(가슴), 뒷면(엉덩이), 옆면(얼굴)을 동시에 보여주기 위해 사정없이 비틀어져 있다.(아래 그림 오른쪽)















피카소, <네덜란드의 세 자매>, 1905,
하드보드 종이에 수채물감, 77 x 67cm,
퐁피두센터, 파리.

피카소, <머리손질>, 1954, 화포에 유채, 130.5 x 97cm, 루체른(Lucerne),
피카소 컬렉션.



고 대의 삼미신이 관념적인 이상미의 결속이며 ‘결합’의 미학이라면 피카소에서는 시각적 분석이며 ‘분해’와 ‘분절’의 미학으로 탈바꿈한다. 즉, 피카소는 오로지 구조분석의 결과로서 세 가지 국면을 제시하였다. 고대에는 삼미신에서 관능적 시각의 즐거움을 택했다면 피카소는 지적 시각의 즐거움을 원했다. 피카소는 삼미신의 신화적 요소는 제거해 버리고(신화의 몰락), 입체파의 시각으로 바라본 분석적 양식(새로운 신화)만 극대화했던 것이다.


3-3. ‘파리스의 심판’과 ‘삼미신’의 현대적 해석
마르칸토니오가 판화로 옮긴 라파엘로의 <파리스의 심판>은 수많은 ‘파리스 심판’의 모델이 되었다. 현대에 이르러선 마네가 라파엘로의 <파리스의 심판> 일부를 참고해 <풀밭 위의 점심식사>를 그렸고(아래 그림), 그 뒤를 따라 모네와 세잔도 <풀밭 위의 점심 식사>를 그렸다. 피카소는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를 여러 번 개작했으며, 루벤스가 자기 아내 헬레나 푸르망을 아프로디테의 모델로 삼아 그린 <파리스의 심판>(1638)은 르누아르가 1908년과 1914년에 그린 <파리스 심판>의 인물 배치와 자세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12)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파리스의 심판>(부분), 1514~1518, 인그레이빙(Engraving),
44.2 x 29.8cm, 라파엘로의 작품을 모작,
영국 박물관, 런던.

 마네, <풀밭 위의 점심식사>(오른쪽), 1863,
 화포에 유채, 208 x 265cm, 오르세 미술관, 파리.




세잔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1870~1871)(아래 그림)에 는 세 명의 여인과 네 명의 남자, 네 개의 사과, 강아지 한 마리가 나오는데 여기서는 여성이 남성을 선택한다. 한 여인은 벌써 한 남자를 선택해 숲 속 깊숙한 곳으로 가고, 가운데 여인은 대머리 신사에게 사과를 들어 보이며 숲으로 가자고 몸짓하며, 마지막 여인은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고 앉아서 누굴 택해야 할지 고심한다.










세잔, <풀밭 위의 점심식사>, 1869~1870, 화포에 유채, 60 x 80cm, 개인소장.



세잔은 제프로이(Geffroy)라는 비평가에게 사과 하나로 파리(Paris)를 깜짝 놀라게 하고 싶다고 말하면서13) 사과를 평생의 주제로 선언하였다. 이 말엔 화가로서 성공하려는 야망이 담겨 있기도 하지만, 미의 심판으로 절세미인 헬레나를 얻은 파리스(Pâris)의 신화도 겹쳐 있다. 세잔은 실제 모델을 보고 누드를 그리기 원했지만, 여자 모델 앞에서는 당혹해하는 성품으로 말미암아 누드를 제대로 그리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누드들은 대부분 얼굴이 제대로 그려지지 않았다. 여자들이 자기를 기겁하게 해서 정물을 그린다고 르누아르에게 말했을 정도로 그에게 정물, 특히 사과는 인체와 등가물(等價物)이었고, 사과의 둥근 형태와 싱싱하고 볼그스레한 색채는 하얀 식탁보에서 육체적 관능미를 유추하는 대상이 될 수 있었다.14)

사과 하나로 파리를 깜짝 놀라게 하겠다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과는 그에게 성취를 위한 최상의 도구이자 예술가로서 자기단련을 위한 수단이었고, 부친에 대한 도전의 무기 -  세잔은 부친에게 거의 굴욕적인 모욕감을 느끼며 미술을 전공했다 - 이기도 했다. 그는 이러한 요소들을 ‘파리스 심판’의 신화와 중첩함으로써 화가로서의 수련활동에 숭고한 감정을 부여하였고, 사과를 창조적 예술을 위한 ‘성적 승화’의 도구로 삼아 개인적인 신화를 만들어 갔다.
위베르 다미쉬도 그의『파리스의 심판』(1992)에서 지적하듯이, 19세기와 20세기 미술에서 지속해서 발전된 모티브는 ‘삼미신’과 ‘파리스의 심판’에서 유래된 ‘세여인 그룹’일 것이다. 쇠라의 <태깔부리는 여인들>(1886~1888)(아래 그림)도 그 대표적인 예 가운데 하나다. 이 그림의 직접적인 모델은 루브르 미술관에 소장(1878)된 고대 헬레니즘 시대의 부조 <삼미신>과 퓌비스 샤반느가 살롱전(1879)에 출품했던 <해변의 소녀들>이었다고 한다.15) 한편, 쇠라를 존경한다고 말했던 로베르 들로네(1885~1941)는 폼페이의 벽화 <삼미신>과 에펠탑을 소재로 <파리 시>라는 대작(267×406㎝)을 만들어 앙데팡당 전(1912)에 출품하였다.










쇠라, <태깔부리는 여인들>, 1887-88, 화포에 유채, 78 x 98cm, The Barnes Foundation, Merion, PA



‘파리스의 심판’을 현대판 매춘가로 풍자한 것으로는 그로츠(G.Grosz)의 <요부들(사이렌)>(1926)과 피카소의 <갈보집: 선택>이 있다.16) <요부들(사이렌)>(아래 그림)은 가로등 불빛 아래 늘어선 세 명의 나부가 한 중년 신사를 유혹하는 장면을 그린 것인데, 나부로 표현된 여성들은 알몸에 스타킹만 신고 당시 유행하는 모자와 리본 따위로 몸을 치장하고 있다. 한 여인은 몸을 옆으로 비틀면서 수치를 가리고, 가운데 여인은 정면을, 오른편 여인은 뒷면을 보이면서 제각기 가슴과 배, 엉덩이를 자랑한다. 그러면 단장(短杖)을 든 신사가 그녀들을 바라보며 밤의 파트너를 찾는다. 제목에서 ‘요부들’을 사이렌이라고 했는데 ‘사이렌’은 바다에서 저항할 수 없는 매혹적인 소리로 선원들을 유혹해 잡아먹는 공포의 요정이다.










그로츠(G.Grosz), <요부들(사이렌)>, 1926, 담채화



피 카소의 데생 <갈보집: 선택>에서는 포주가 데려온 세 여인이 알몸으로 손님에게 소개된다. ‘파리스의 심판’에서 세 여신을 파리스에게 소개한 신은 다름 아닌 ‘연애의 중개자’로 알려진 헤르메스였는데 여기서는 포주 역할을 하며 파리스는 손님이 되어 그날의 쾌락을 보증할 미녀를 선택한다.
우리나라에서 전시되기도 했던 피카소의 판화 <157시리즈-31>은 그의 말년인 1970년대부터 제작된 판화 시리즈 가운데 하나인데 지금까지 언급한 핵심요소들이 잘 집약되어 있으므로 이 그림을 끝으로 이 장을 마무리하고자 한다.(아래 그림)










피카소, <157시리즈-31>, 1970, 에칭, 22 x 28cm, 루이즈 · 레이리스 화랑.



어 느 한가한 거리에서 중년 신사가 단장을 들고 한 여인을 바라보는데 그는 사창가를 좋아했다던 영락없는 로트레크 같기도 하고, 미녀를 선택하려는 현대판 파리스 같기도 하다. 그가 바라보는 여인은 ‘삼미신’에서처럼 ‘앞, 뒤, 옆’의 누드 형식에 맞춰 머리는 측면이고 어깨부터 가슴은 정면, 엉덩이는 뒷면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이 세 측면은 꽈배기처럼 한 바퀴 꼬여 있어 한 여인의 전모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누드의 이러한 해체와 분석, 다각적 시각의 동시적 구성에는 입체파 공식이 요약된 것이다.

윤익영 한국미술평론가협회장(창원대 교수)
2014. 3. 10 ⓒArt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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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Kenneth Clark, Le Nu, Coll. Pluriel, Hchette, 1987, p.p.151, 158, 160, 및 케네트 클라크, 「누드의 미술사」, 이재호 역, 열화당, 1993. p. 36. 122, 123, 127, 128. 475.
2) Kenneth Clark, Le Nu, Coll. Pluriel, Hchette, 1987, p.p.151, 158, 160, 및 케네트 클라크, 「누드의 미술사」, 이재호 역, 열화당, 1993. p. 36. 122, 123, 127, 128. 475.
3) Kenneth Clark, Le Nu, Coll. Pluriel, Hchette, 1987, p.p.151, 158, 160, 및 케네트 클라크, 「누드의 미술사」, 이재호 역, 열화당, 1993. p. 36. 122, 123, 127, 128. 475.
4) 제우스와 므네모시네(記憶) 사이에서 태어난 딸들로서 노래를 주관하고 기억을 증진한다. 칼리오페Calliope(敍事詩), 클레이오Clio(歷史), 에라토Erato(戀愛詩), 에우테르페Euterpe(敍情詩), 멜포메네Melpomène(悲劇), 폴리힘니아Polymine(讚歌), 테릅시코라Terpsichore(합창대의 서정시와 舞踊), 탈리아Thalie(戱劇), 우라니아Uranie(天文)가 그들이다.
5) Hurbert Damisch, Le Jugement de Pâris, Flammarion, 1992. p.124.
6) Alberti, De la Peinture(1435), Macula Dédale, 1993, p. 215.
7) Hurbert Damisch, Le Jugement de Pâris, Flammarion, 1992. pp.196-198.
8) Kenneth Clark, Le Nu, Coll. Pluriel, Hchette, 1987, p.p.151, 158, 160, 및 케네트 클라크, 「누드의 미술사」, 이재호 역, 열화당, 1993. p. 36. 122, 123, 127, 128. 475.
9) Erwin Panofsky, Essais d'iconologie ; les thèmes humanistes dans l'art de la Renaissance, Gallimard, 1967. pp.241-242.
10) Kenneth Clark, Le Nu, Coll. Pluriel, Hchette, 1987, p.p.151, 158, 160, 및 케네트 클라크, 「누드의 미술사」, 이재호 역, 열화당, 1993. p. 36. 122, 123, 127, 128. 475.
11) 로잘린드 크라우스, 《현대조각의 흐름 Passages in Modern Sculpture》, 윤난지 역, 예경, 1997, p. 24, pp. 29-35.
12) Hurbert Damisch, Le Jugement de Pâris, Flammarion, 1992. ibid., p. 215., 질 레네, 『페테르 파울 루벤스』, 문경자 옮김, 마로니에 북스, 2006, p.94
13) Christiane Duparc, "Le ≪bon Dieu de la peinture≫", L'express ; l'été Cézanne, Du 29 juin au 5 juillet, 1995, p.83, Ulrike Becks-Malorny, Paul Cézanne ; pioneer of modernism, benedikt Taschen, 1995, pp.55-64.
14) 마이어 샤피로, 『현대미술사론』, 김윤수, 방대원 옮김, 까치, 1989, 위의 책, p.50.
15) Hurbert Damisch, ibid., p. 216.
16) Hurbert Damisch, ibid., p.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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