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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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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시각: 2014.01.22 16: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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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제목: [인터뷰] 원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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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자체 보다는, 솔직함이라는 화두를 다루는 방식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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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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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구글 검색












예술가의 작가노트

(57) 뒤 돌아보기

 








원성원 작가



  1. 주위 산만한 애정결핍의 여자아이.

  나는 어릴 때부터 주위가 산만하고 애정결핍이 있는 아이였다. 학교 알림장에도 그렇게  씌어 있었다. 그때 내가 제일 즐겨하는 일은 “낙서하기”와 “목격한 상황 말로 전달하기”였다.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했던 나는 숙제하는 도중에 공책 빈틈에 쓸데없는 낙서를 자주 그렸고, 그러다 등 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면 가만히 보고 있다 엄마에게 엄청나게 과장된 상황으로 그 이야기를 전달하곤 했다. 주위를 끌기 위해 극적으로 과장된 나의 이야기를 어른들은 꽤 관심 있게 들어주셨다.









<Water Wall>, 1998, 비닐, 뜨거운 수증기, 10 x 7m



2. 착각에서 벗어나다.
  한국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나는 바로 독일로 유학을 갔다.
어렵게, 잘나가는 선생님의 제자가 되었으나 많은 유학생이 그렇듯 나는 과묵했다. 아무도 내게 뭘 하는지도 묻지 않았기에 나는 본능적으로 나를 과장하기 시작했다. 가로 10미터, 세로 7미터의 설치작업을 구상하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감전도 당하고 사다리에서 떨어질 뻔도 했다.(나의 교수님은 수십 킬로미터의 사막 끝으로 레이저를 쏘거나 몇 백 톤의 흙을 뮤지움으로 옮겨오는 작업을 하는 설치작가였다)
  그렇게 작업을 뜻대로 완성하였으나 몸에 병이 났다. 심지어 멋지고 커다란 작업에 대해 교수님은 이렇게 말했다. “작업에 네가 보이지 않는구나.” 왜 내 작업에 내가 보여야하지?  나는 누구나 멋지게 쳐다보는 작업을 하고 싶은데.
몇 달 뒤 교수님과의 불화로 다시 새로운 교수님을 찾아 클래스를 이동하면서 나는 비로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됐다.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심오하게 궁금해 하던 내가 ‘나는 누구인가’란 현실적인 질문을 시작하는 시기였다.









<The Bridge of Ego>, 2013, c-print, 136 x 195cm



3. 발은 바닥에, 머리는 둥글게
  1999년 당시 내가 살던 8평방미터 크기의 방에는 모두 628개의 물건이 있었다. 이 방안의 물건을 모두 사진으로 찍고 그 물건의 프로필을 기억해 내어 일일이 엽서에 적었다. <My Life>에서 보여 지는 628개의 물건들을 통해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목격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최대한 솔직하게 보여주려 노력했고, ‘과장’이라는 허세는 ‘상상’이라는 꿈으로 바뀌었다.









<MY LIFE>, 1999, 628 postcard with photo



  두 발을 바닥에 딱 붙이고 서서 머리는 최대한 둥글고 크고 부드럽게 열어 놓았다.
좋아하는 책을 읽기 시작하고 장르 없이 영화도 열심히 봤다.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유치하다고 생각되어도 그대로 발표하곤 했다. 그게 나라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는 도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낙서’와 ‘과장하여 말하기’에 적합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매체를 접하게 되었다. 바로 드로잉과 사진 콜라주.
그림도, 사진 찍기도, 포토샵도 제대로 배우고 시작 한 게 아니라 임기응변식이었으나 콜라주는 생각보다 자유로웠다.










<The Ark of Obsession>, 2013, c-print, 125 x 195cm



4. 한없이 다양한 오브제-사람
  <My Life>를 통해 내 현실을 인지한 후 나의 관심은 주변인들을 향해 갔다. 2000년부터 2004년까지 만들었던 12개의 <Dream room>은 친한 친구들이 소원하는 꿈의 방에 대한 작업이다. 누구에게나(큰 방에 살던 작은방에 살던) 있을법한 방에 대한 판타지, 즉 사각의 벽으로 막힌 현실의 주거공간을 이상적인 동경의 세상으로 연결해 주는 작업이었다.









<Dream room-Joerg>, 2002, c-print, 70 x 100cm



  방이라는 주제에서 벗어나 나는 주변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난처한 일들, 그렇지만 아주 평범한 사건들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버려진 유기견에게, 툭하면 싸우는 어린 자매들에게, 오래 동안 헤어졌다 다시 만난 가족에게 <Tomorrow> 라는 작업을 통해 특별한 대안을 제시하였다.










<Tomorrow- Village of dogs>, 2008, c-print, 120 x 200cm



  <일곱 살> 에서는 어린 아이들이 엄마라는 보호 존재에 대해 경험하는 트라우마를 다루었다. 작업을 시작할 땐 나의 7살 시절, 즉 어린 시절 내가 경험한 ‘매일 사라지는 엄마’ 에 대한 불안감이 문제였지만 작업을 완성할 때는 모든 7살 어린이들이 경험할 수 있는 민감한 상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작업이 되었다. 이때부터 나는 심리학이라는 분야에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지금까지 많은 정보를 심리학책을 통해 얻고 있다.










<My Age of Seven-Seagulls and a Blossoming Pear Tree>, 2010, c-print, 125 x 195cm



  모든 작업의 중심에는 실존인물들이 있었다. 그들로 인해 탄생한 나의 호기심은 오지랖이 되어 그들의 문제해결에 참여한다는 명분으로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할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나의 판타지는 사람이라는 대상을 만나면 증폭되어지는 성질을 갖는다. 그만큼 사람이라는 대상은 나에겐 끝없는 미스터리이며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오브제인 것이다. 인간관계만큼이나 복잡하고 어려운 게 있을까.
  어려워진 인간관계가 내 작업에도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2013년에 발표한 <Character Episode I> 에서 나는 실제 인물들을 촬영하는 걸 포기하고 대신 동물들로 인물 표현을 대체하기로 했다. 주인공들이 나의 작업을 불편하게 여길만한 주제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자존심만 내세우는 사람, 집착하는 사람, 자랑 질 하는 사람 등 절대 네거티브한 이 성격들은 동물들의 캐릭터로 모호하게 포장되어 실제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을 재미있게, 그렇지만 더 정확하게 묘사해 나갔다.









사진촬영 중인 원성원 작가



5. 사회적 숲 속에 사는 인간적인 나무
  개인적으로 나는 큰 그림을 그리는 스타일은 아니다.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정치적인 상황에 대해, 미술사적 흐름에 대해 관심은 적지 않았지만 작업으로 연결하진 않았다. 아주 잘 안다고 자부하지 못해서 일거다. 대신 나는 가장 작은 단위, 즉 숲이 사회를 상징한다면 나무에 해당하는 개개인의 문제, 성질에 대해서만큼은 미세하게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나무가 모여야 숲이 되는 거니까. 언젠가 각각의 나무들에 대해 충분히 탐구했다 생각될 때엔 숲에 대해 진지한 멘트를 날리고 싶다.

사진작가 원성원
2013. 12. 23 ⓒArt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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