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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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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시각: 2013.08.05 20: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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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제목: [interview] 주재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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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화와 더불어 전지구적 입장에서 한국에 천착한 작가.  진의가 뾰족해질때 아름다움이 목도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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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구글 검색















 


동시대를 이해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특히 시시각각으로 자신의 일상, 심리 상태가 갱신되는 디지털 네트워크 시대를 사는 현재, 이제 개인은 어떤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공개하는 만큼 얼마나 그들과 분리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하는 시기이다.
전 지구적 시대의 대부분 사회가 갖는 공통점은 경쟁과 성과가 아닐까. 미술계도 예외는 아니다. 낭만과 사색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감히 얘기할 수는 없겠지만 불과 십여 년 전과 비교해보면 그 차이는 엄청나다.
물론 과거에도 경쟁과 성과는 중요했다. 차이가 있다면 당시는 요즘처럼 시장 논리가 지배적이지 않았고 제도의 틀이 비교적 느슨한 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미술계 내부에서 실험이 부족한 건 아니었다. 1980년대는 "예술을 위한 예술"과 "현실에 반응하는 예술" 사이의 격렬한 대립이 가시화되면서 한국 미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절실한 노력이 있었다.
고희를 넘긴 현역 작가 주재환은 1980년대 미술의 증인이자 2000년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작가로서의 행보를 걷기 시작한 드문 사례의 인물이기도 하다. 작가에게 나이가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묻는 경우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고령의 작가란 실제 현장에 존재하기보다 상징적 의미로써 혹은 기념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작가의 문제라기보다 미술계 내부에서 고령 작가를 바라보는 시각이 고정된 탓도 적지 않겠다. 이른바 엘리트 코스가 아닌 여러 이유로 우회를 하면서 미술계의 가장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온 주재환을 통해 한국 미술, 창작, 그리고 오늘에 대해 그가 현재 체류 중인 경기창작센터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선생님의 이력은 남다른 점이 많습니다. 예순 살에 첫 개인전을 하셨지요?


네. 저는 대학을 한학기만 다니고 중퇴했죠.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고 객기도 있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스팩이 없으면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없는 것처럼 당시도 마찬가지였지요. 처음 취직한 곳은 고등학교 선배가 운영하던 민속학 연구소였습니다. 그곳에서 민속극 자료 등을 수집해 민학 문고를 창간했고 이후 독서 생활 교양지를 창간해 편집 관련된 일을 배웠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교양지는 경영이 힘들었어요. 결국 오래 버티지 못하고 폐간되었습니다. 우리 잡지에 박경리씨가 토지 연재를 했었어요. 원고를 받으러 간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가 1978년 "미술과 생활"이란 미술잡지의 취재기자로 들어가게 되었어요. 성완경, 윤범모 등과 함께 일을 했습니다. 이후 미진사에 입사해서 "미진신서"를 기획했죠. 미술관련 번역서의 수준을 높이고 한국의 미술사학자들의 저서를 출간했습니다. 대표적인 번역서로는 빅터 파파넥의 "인간을 위한 디자인", 존 버거의 "피카소의 성공과 실패"가 있고 이명구 선생, 강태희 선생, 이명주 선생 등의 저서도 기억납니다.

그 당시 작가 활동보다는 출판인의 활동을 주로 하셨는데 어떻게 <현실과 발언> 발족 멤버로 참여하게 되셨나요?


마흔 살이 되던 1980년이었죠. <현실과 발언> 창립전에 참여하면서 비로소 작가의 삶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당시 "몬드리안 호텔",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 등의 작품을 발표했어요. 동산방 화랑에서 열린 전시 첫 날 불온하다는 이유로 전기를 끊는 바람에 관객들이 모두 촛불을 든 채 관람을 했답니다. 2010년에 현실과 발언 삼십 주년 전시를 열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현실과 발언>은 굉장히 생산적인 모임이었어요. 우리는 열심히 토론하고 이 과정이 전시로 맺어졌으니까요.

작업에서 풍자적 요소가 많이 나타나는 편인데, 작업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는지요?


세상에 관심이 많아요. 나는 매일 메모를 합니다. 내가 만난 사람들, 그날 일어난 사건, 독서 중에 발견한 구절들을 적어 놓습니다. "똥값"이란 작업의 경우, 중앙일보에서 데미안 허스트 작품 가격이 피카소를 능가했다는 기사를 읽은 후 만들었습니다. "하느님의 똥은 무슨 색깔인가?"는 신앙 논쟁을 다룬 작업이지요. 제 작업은 다소 산만한 편입니다. 한 주제를 지속적으로 다루는 작가들도 있고 저 같이 '널뛰기'를 하는 작가도 있지요.

요즈음에는 어떤 작업을 하고 계시는지요?


최근에는 스팸 메일에 관심을 갖고 있어요. 나와는 상관 없는 메일들이 백 통 이상 쌓이는 걸 보고 경기창작센터 직원에게 분류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 친구들이 괜한 고생을 하고 있지요. 이렇게 분류된 스펨 메일을 포토샾으로 재배치하는 작업인데 내가 기술이 없어서 내 아들이 도와주고 있답니다. 스팸 메일을 통해서 일종의 '관계중독'에 관심을 갖고 이 주제가 작업이 될 수 있는지를 고민 중이지요.

동시대 사회현상을 비롯한 인문학적 연구와 본인 작업과 긴밀하게 연결된 듯 보입니다. 특별한 관계가 있나요?


대개 나의 작업은 독서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아요. 정독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책을 읽다가 흥미로운 구절에 밑줄을 긋고 이 내용이 작업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에 슬라보에 지젝의 책에서 풍자적인 우화 하나를 읽게 되었습니다<sup>주1)</sup>. 15세기 몽골이 러시아를 지배하던 시절, 한 몽골 전사가 지나가는 농부 부부의 아내를 겁탈하면서 남편에게 전사의 고환에 흙이 묻지 않도록 잘 붙잡고 있으라고 명했지요. 일을 치르고 전사가 떠나자 남편을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고 합니다. 자신이 그 고환에 흙먼지를 묻혔다고 자랑하듯 말이죠. 이 말은 지배 규범 안에서의 항거란 보잘 것 없는 것에 불과하다고 얘기하는 겁니다. 내가 현실에 반응하는 작업도 아마 이 우화와 비슷한 것 같아요. 요즘엔 내 과거를 부정하게 됩니다. 헛발질만 한 것 같아요. 그래도 계속 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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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환은 관계중독에 관한 논문 하나를 내게 선물하였다. 내용을 살펴보니 대부분 스팸 메일이 도박, 섹스, 인터넷, 게임, 채팅, 쇼핑, 종교, 일, 주식 등과 관련된 것과 마찬가지로 현대인의 관계중독 증상도 이러한 일상과 닮아 있었다. 그에게 창작이란 일상이란 집단 무의식을 지배하는 기저 즉 권력, 제도, 관습, 자본 등이 어떻게 인식의 틀을 만들어 인간을 길들이는가를 탐구하는 듯하다.
최근 젊은 작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거창한 '관계의 미학'이 아닌 주변의 이웃과의 교감을 작업으로 연장하고 있다. 특히 네 개의 창작 스튜디오에서 선정된 작가들을 소개한 <레지던시 나우>(2013)에서 그는 "주재환과 착한 작가들"이란 이름으로 자신을 비롯해 박준식, 손민아, 이대일, 정기현, 허태원, 홍원석과 함께 참여한 바 있다. 협업과 연대는 미술계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의 현상이지만 주재환의 협업은 단지 시대적 경향에 머물지 않고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듯하다.
왜냐하면 그가 제안한 협업의 개념은 이른바 대표작가만을 소개하는 방식에 대한 저항의 표현이자 '작가주의'에 관한 비판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많은 예술가, 지식인, 학자 들이 평등의 삶과 포월의 가치를 주장하지만 이론이나 관념에 머물기 십상이다. 동시대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바로 실천이고, 실천이야말로 예술의 동시대성을 대표한다면, 작가에게 나이란 중요한 게 아닐 것이다.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하는 가야말로 가장 '젊은 예술가'가 되는 조건일 테니 말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주재환 작가 작업실






작업실 벽면 78대22에 관한 메모

작업실 벽면 78대22에 관한 메모



작업실 벽면 인간보다 더 복잡한 라면재료

작업실 벽면 인간보다 더 복잡한 라면재료






주재환 작가의 책꽂이

주재환 작가의 책꽂이




주재환, 쇼핑맨 쇼핑백, 실물 꼴라쥬, 1998

주재환, 쇼핑맨 쇼핑백, 실물 꼴라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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