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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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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제목: [기사] 마크 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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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했던 작가를 좋아하게 되는 경우는 전무...한 것같은데 다시 눈여겨보게 되는 경우는 있다.  그중 하나.  굉장히 선묘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고, 시간을 다루는 모든 작업에 대해서 다시 복기를 하고 있다.  죽어가는 증거인가.
.'
)
 + + +
출처 : 구글 검색





마크 퀸(MARC QUINN)











마크 퀸



명료한 미학의 실체

  단지 화두를 던지고, 해석은 각자의 몫으로 맡기는 미술이 있다. 비약하자면, 현대미술은 거의 대부분이 그렇다. 거칠게 마모된 대형 철 구슬, 그 구슬의 역사와 흠집의 인과관계를 덧붙이면 어떠한 맥락을 제시하는 작품이 되고, 그저 보이는 그대로만 감상하면 묵직한 철 조형에 그치듯 말이다. 작품에 내러티브를 넣고 복선을 깔거나 기막힌 은유를 하는 것은, 현대미술의 태동과 함께 시작됐으나 미술의 다채로움은 그 끝을 모른 채 파생되고 있다.
  여기, 늘 파격을 선사하는 아티스트가 있다. 1991년 작품 <자아(Self)>로 미술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마크 퀸은 지천명의 나이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슈를 생산하고 있다. 인간의 삶은 물론 부와 권력, 쾌락 등의 상징을 바탕으로 죽음과 소멸, 고통을 이야기하되 바니타스 회화의 절대적 대립을 벗어나 현대적 재해석을 시도하는 그는, 보는 이와 작품 사이의 필연적 오해를 자아내는 인물이다.











<Solid, Liquid, Gas(Slow Dissolve)>, 2013, Oil on canvas, 169 x 281cm. Photo: Todd-White Art Photography courtesy of Marc Quinn studio



  피로 만들어진 <자아>(1991)에서 어떤 이는 삶의 강인함을, 또 다른 이는 쉬이 소멸되는 생명의 나약함을 본다. ‘살아있는 비너스’라 불리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 <임신한 앨리슨 래퍼(Alison Lapper Pregnant)>(2005)를 보는 관점도 마찬가지다. 남과 다르게 태어났음에도 훌륭하게 영위하는 인생을 읽는 이가 있는가 하면 아름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전치 못한 삶의 장애를 깨닫는 이도 있다. 작품과 보는 이 사이의 오해는 필연이다. 좋은 관객의 오해는 작품 의미를 확장시키기도 하지만 보이는 대로 보고 모두 안다고 느끼는 무지한 착각도 분명 존재한다.










<Self>, 2011, Blood(artist's), stainless steel, perspex and refrigeration, 
208 x 63 x 63cm. Photo courtesy of Marc Quinn studio



  마크 퀸은 자신의 작품을 보는 이가 어떤 해석을 하든 또 어떠한 색다른 인용을 하든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그는 자의적 해석을 적극적으로 끌어내며 그것으로 작품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그제야 비로소 작품이 완성된다고 여기는 듯하다.
인간의 혈액, 태반, 복제 DNA, 동물의 피와 살, 살아있는 식물 등을 재료로, 전통적인 조각의 형식을 완성시키는 그는 미학의 패러다임을 확장시키는 장본인이다. 그는 작품을 통해 생성과 소멸이라는 양가적(兩價的) 속성을 탐구하며 이 개념이 결코 절대적으로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하며 서로 상생하는 것임을 역설한다. 다시 말해 죽음과 삶, 추한 것과 아름다운 것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존재하는 거라 그는 믿는다.











<Breath>, 2012, Double layer polyester and high capacity air pumps 1,100cm.
Photo courtesy of Marc Quinn studio



  퀸의 이름을 현대미술사에 각인시킨, 자신의 피를 얼려 만든 작품 <자아>부터 살펴보자. 인간의 몸에 흐르는 혈액의 총량은 대략 자신의 두상 크기와 같은데, 이만큼의 피를 모으기 위해 작가는 5개월에 걸쳐 정기적으로 피를 뽑았다. 약 4,500g에 달하는 피가 모이자 그는 자신의 머리를 떠서 만든 주조에 이를 넣고 냉동시킨 후 특수하게 제작된 냉동고에 넣어 전시했다. 1991년 첫 번째 <자아>를 선보인 이후 퀸은 5년에 한 번씩 작품을 제작하고 있는데, 자화상에 천착했던 마스터 피스들이 살아생전 수백 점의 작품을 남겼듯 그 역시 죽을 때까지 자신이 변화하는 모습을 이 작업을 통해 기록할 셈이다.











<The Architecture of Life>, 2013, Bronze, 136 x 235 x 159cm.
Photo courtesy of Marc Quinn studio



  발상이 워낙 특이하지만 기술적 이론으로 예술을 과학에 접목시킨 작업 덕분에 퀸은 보다 독보적 영역을 수립했는데, 이는 물리학자였던 아버지로부터 받은 영향도 한 몫 한다. 단지 보이는 나를 분명한 조각으로 재현하는 것에 만족했다면 지금의 그는 존재할 수 없었다. 자신의 생생한 피와 DNA로 복제된 자아를 창조했기 때문에 지금의 브랜드를 획득한 것인데,
  퀸의 자화상은 진짜 살아있는 사람의 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작가의 생존, 살아있음을 전제로 하지만 동시에 죽음에 대해서도 논한다. 작품은 세심한 온도조절과 관리 속에서만 유지될 수 있으며 주변 환경이 변하게 되면 녹아서 형태를 잃어버림으로써 신체의 본질적인 불완전성을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유기물로 제작되었지만 어느 때나 무형의 액체로 전환될 수 있는 작품을 통해 퀸은 우리의 삶과 생명 역시 이처럼 나약하고 의존적이라 역설한다. 냉동고의 전원이 빠지는 순간 피바다로 변하는 작품처럼, 그 무엇도 영원할 수 없음을 즉 죽음을 상기하게 하는 것이다.









<Evolution IX>, 2007. Photo: Todd-White Art Photography Artwork ⓒMarc Quinn studio



  한편 2005년부터 2007년까지 트라팔가 광장에 3.55m 높이로 세워졌던 대형 조각 <임신한 앨리슨 래퍼>는 모성과 장애에 초점을 맞춘 것인데, 절박한 아름다움의 상징이 됐다. 래퍼는 자신의 모습이 작품으로 완성된 것에 대해 “사람들은 불편한 것을 피하려 하지만 내가 저 위에 세워져 있는 한 더는 나를 피할 수 없다. 장애가 있는 사람이 천박하지도, 못생기지도, 우스꽝스럽지도 않다는 점을 사람들이 깨닫기를 바란다.”고 말했는데, 작품은 대중적 공감까지 결합돼 하나의 미학을 형성했다.










<The Way of All Flesh>, 2013, Oil on canvas, 249.5 x 539cm.
Photo courtesy of Marc Quinn studio



  마크 퀸은 이 작품을 2012년 런던장애인 올림픽에 높이 11m의 크기로 선보인 것에 이어, 지난해 베니스비엔날레 기간에 맞춰 5월부터 9월까지 지오르지오 치니 재단(Fondazione Giorgio Cini)에 마련된 개인전에서는 풍선 조각으로 다시 선보였다. 런던 올림픽 때와 같은 크기의 이 풍선 조각은 오전에 팽팽하게 불어져 베니스의 하늘과 바다 중간에 놓였다가, 저녁에는 바람이 제거된 채 보존됐다. 이렇듯 퀸은 자신의 주요 작품들에 개념을 덧대거나 파생시키며 대중들의 뇌리에 분명한 메시지를 각인시킨다.











<Matter into Light: On the Transformation of Energy>, 2011, Sculpture Heat treated cobalt-plated bronze, concrete, stainless steel, cement board, ceramic and bioethanol liquid, 181.5 x 151 x 151cm. Photo courtesy of Marc Quinn studio

 

  이외에도 그는 수많은 토르소 조각을 완성했는데, 작품들은 인간의 이중성 혹은 다양성을 폭로하며 화학적 약품과 고분자 왁스를 섞어 제작한 인체상은 삶과 죽음을 동시에 긍정하는 태도를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이렇듯 퀸은 스펙트럼이 넓은 상상계를 통해 발상을 확장하며 다양한 시도를 통해 각양의 존재를 포용, 예술로 승화시킨다. 그는 세계와 전 존재에 대한 진리의 탐구를 작품을 통해 완성해 나가는 것이다.










<Life Breathes the Breath>(Inspiration), 2012, Bronze, 75 x 70 x 55cm.
Photo courtesy of Marc Quinn studio



  그런가하면 퀸은 아기 혹은 태아에 대해서도 집중한다. 자신의 갓난 아들 루카스의 두상을 아기의 태반으로 만들어 얼린 작품 <루카스(Lucas)>(2001)를 선보인 이후, 다채로운 조각들을 완성하고 있는데, 지난해 9.2m에 달하는 퀸의 대형 갓난아기 조각이 싱가포르의 마리나베이 샌즈(Marina Bay Sands) 공원에 설치돼 이목을 끌었다. 벌거벗은 갓난아기를 공중에 약간 떠있도록 놓은 작품 역시 아들 루카스를 모델로 제작된 것. <혹성(Planet)>이란 제목의 작품은 3.83 x 3.53 x 9.26m 크기로 브론즈와 스테인리스 스틸 위에 흰색 칠로 마감됐다. 지난 2008년 제작된 이 조각은 소더비가 영국 런던의 채트워스 하우스(Chatsworth House)에서 야외특별전 형식으로 개최했던 <현대 조각전>을 통해 세상에 처음 알려졌는데, 아기의 팔 한쪽만 지면에 살짝 닿을 뿐 육중한 몸 전체가 공중에 붕 떠있도록 고안된 작품은 거대한 스케일은 물론 역학적으로도 진일보했다는 평을 받으며 발표 당시 엄청난 화제를 낳았다. 약 200만 파운드(한화 약 33억 7,000만원)를 호가하는 이 작품은 한 컬렉터의 기부로 영구 설치됐다.










<Buck & Allanah>(lifesize), 2009, Orbital sanded and flat wheeled lacquered bronze,
167 x 105 x 45cm. Photo courtesy of Marc Quinn studio



  현대미술은 혁신을 거듭한다. 때로 도를 넘었다고 힐난받기도 하는 그룹의 중심에 마크 퀸이 있다. 그러나 그의 자극적인 환기만이 무심하게 쳇바퀴 돌 듯 살아가는 우리에게 ‘왜 살고 죽는 것인가’, ‘삶과 죽음은 어떻게 다른 것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을 진정으로 깨닫게 하는 것은 아닐까.

 글=정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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