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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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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시각: 2014.03.19 12:4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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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제목: [interview] 공성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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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자에 집중해서 보는 작가이기도 하지만 현대미술에 있어 미디어아트의 위치나 다룸을 가늠해볼 수 있는 척도가 되는 아티클이라 생각되어 올림.  설치하다 페인팅한단 이유로 배신자라 불리었단 대목에선 아연할 수 밖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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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네오룩




풍경 안 풍경 In the Scene


공성훈展 / KONGSUNGHUN / 孔成勳 / painting   2014_0319 ▶ 2014_0602 / 백화점 휴점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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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대화 / 2014_0327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30am~08:00pm / 백화점 휴점일 휴관
2014_0319 ▶ 2014_0427
신세계갤러리 인천 SHINSEGAE GALLERY INCHEON 인천시 남구 연남로 35 신세계백화점 5층 Tel. +82.32.430.1158 shinsegae.com
2014_0430 ▶ 2014_0602
신세계갤러리 센텀시티 SHINSEGAE GALLERY CENTUMCITY 부산시 해운대구 우동 1495번지 신세계 센텀시티 6층 Tel. +82.51.745.1508 shinsegae.com

대담 : 공성훈(공) / 윤준, 김신애_신세계갤러리 큐레이터(신)
_예전 이야기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그 동안 여러 차례 받았던 질문일텐요. 서울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한 후, 당시 서울산업대학교 현재는 과기대로 명칭이 바뀌었죠. 거기에서 전자공학을 공부하셨는데, 아주 예외적인 경우가 아닌가 싶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까? _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제가 하고 싶은 작업의 기술적인 부분을 해결하려는 이유가 있었고, 보다 중요한 이유로는 체질개선을 하고 싶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니 허망했습니다. 화가가 되려고 하는데 어디에 발을 디디고 서야 할지 막막했거든요. 그래서 뭔가 분명하고 구체적인 것으로부터 미술을 다시 시작해 보고 싶었습니다. 유일하게 물질을 다루는 예술인 미술을 제대로 하려면 뜬구름만으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 _1998년 자신과 나눈 가상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미술관계자'라 칭하셨는데요. 어떤 의미였습니까? _작가 생활을 시작했던 젊었던 시절을 되돌아보면, 작업을 하긴 하는데 돈 벌러 다니느라 작업에 전념하지도 못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긴 하는데 그렇다고 교육자라고 하기도 뭐하고... 그저 미술계 언저리를 맴돈다는 생각이 들어서 약간은 자조적으로 '미술관계자'라고 하고 다녔습니다.
_지금은 회화에 천착해서 작업을 하고 계시지만 과거에는 영상이나 설치 작품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작가 생활을 시작하셨잖아요? 매체에 따른 작업의 내용이나 태도 같은 것에 변화가 있었습니까? _그 동안 작업을 하면서 어떤 특정한 매체만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은 없어요. 이를테면 스타일이라는 것 자체를 기피해왔죠. 제 스스로 스타일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한 것은 스타일이라는 것이 작가를 브랜드화시킨다는 생각을 강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스타일을 만든다는 것 혹은 브랜드화 한다는 것이, 일종의 예술을 위한 예술을 하게끔 하는 함정이라고 생각해요. 따라서 웰 메이드(well-made) 작업,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까지 우리 경제의 호황기에 미술계에도 더할 나위 없는 호황이 찾아왔죠. 그 당시 제가 느꼈던 회화에 대한 무력감, 이것이 회화인가? 이것이 겨우 미술이 세상에 파장을 일으키는 방법인가? 세상과 만나는 방법인가? 이런 생각들로 갈등을 했었죠.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니라 '예술에 대한 예술'을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작업에 임했습니다. 사실 그 당시엔 아이디어를 작업화하는 것에 더 주력하면서 미디어아트, 설치미술, 전시장에 나올 때까지 그 결과를 알 수 없는 작업들에 집중했었죠. 그런데 1998년 회화작업을 다시 시작했을 때 오히려 배신자라는 말을 들었는데... ● _배신자... 참 재미있는 상황이었군요. 당신은 설치작가냐 회화작가냐 단순하게 이분법적으로 재단해버리려는 경향이 강하긴 하지요. _그게 어쩌면 그 당시의 분위기였고. 지금도 그렇죠, 무엇인가에 반항을 하고 비판한다는 것이 요즘엔 더 어렵죠.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해요. 어떤 문제를 거시론적으로 접근하면서 당연히 옳은 말만을 하는 것에 악마적 속성이 존재하는 것 아닌가. '그래야 한다'가 아니라 '어떻게'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봐요. ● _설치는 작가의 아이디어나 개념에서 거의 성패가 좌우된다면, 회화는 캔버스와 붓, 물감이 만나는 그 순간들의 미묘한 느낌이 작업의 묘미를 더해주는 매체이지 않은가요? 선생님의 경우 어떠십니까? _지금 작업하는 회화는 오히려 어려운 매체입니다. 또 그만큼 매력적이죠. 매순간 스스로 제자신이 결정을 해야 하는 매체입니다. 작업 중에도 끊임없이 나와 이야기하고 결정하죠. 한번 더 칠할까. 여기서 그만둘까. 이렇게 섞을까. 이대로 갈까. 이런식이죠. 그래서 작업하는 것에 용감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회화는 더 대담해져야 합니다. 설치 작품은 작업과정 중에는 완성된 모습을 볼 수 없지만 전시장에 막상 설치하고 잘 되었을 때 성취감이 있는데, 회화는 완성한 후 걸어두고서도 더 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완결감은 오히려 덜해요. 그래서 어쩌면 다시 다시 이렇게 되뇌면서 더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_벽제와 일산 등의 인공적인 자연을 그렸던 예전 작업과 현재의 자연 풍경 작업과는 어떤 차별성이 있습니까? _결국 제 작품은 우리를 둘러싼 공간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벽제 집의 마당, 개, 집 근처 교외의 풍경을 그렸던 작품들과 일산 근처의 호수공원, 모텔 등을 그렸던 근린자연 시리즈는 이런 공간들의 소재 자체에 초점을 두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보면 너무 조목조목 꼬집는 느낌이었죠. 제가 사회에 대해 갖고 있는 구조적이고 비판적인 태도가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편이죠. 그런데 동시에 무력감과 불안함도 잘 드러나구요. 반면 요즘 작업하고 있는 숭고한 자연은 그 태도를 조금 유연하게 해주는 소재인 듯 합니다. 최근에는 이처럼 좀 덜 직접적인 방식에 더 마음이 끌립니다. 이제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인가봅니다. ● _최근 작품에서는 바다나 숲과 같은 자연 풍경이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데요. 미리 작품을 위한 풍경을 염두에 두고 의도적으로 풍경에 접근하시는 편인가요? _작업을 할 때 배경으로 등장하는 풍경에 대한 선택기준은 따로 없어요. 현실 속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지만 작품 명제를 통해서 지명을 명시하는 작품은 없는게 대부분이구요. 지금 여기 작업실에서 볼 수 있는 신작들은 한강, 월미도, 섭지코지, 제주도 해안가, 한탄강 등 다양한 장소들 입니다. 마음 내키는데로 여기저기 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작업실에서 다시 들춰보면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진들을 골라내서 가공하는 방식을 취합니다. 그리고 색채와 광선, 콘트라스트를 실제보다 과장되게 표현하는데 이것이 현실과 거리두기의 기법인거죠.
_선생님 작품은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린 듯 하지만 편집하고 조합하여 재구성된 현실의 풍경이고, 회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현실 속의 인물인 듯 낯익지만 동시에 낯선 인물이지요. 이를 바라보는 관람자들은 이 풍경과 인물 앞에서 쉽게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 혼란을 겪는 것 같습니다. _우리는 작품을 보면서 시각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적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이미지 리터러시(Image Literacy)'에 대한 경험이 더 많아졌으면 해요. 작품을 보면서 단지 인물이 있다, 돌이 있다, 바닷가와 산이 있다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눈 앞에 그려진 그 그림을 시각적으로 더 깊이 파고들어보면 재미있을텐데요. ● _그림 그리는 방식이 주는 메시지가 중요한데 그걸 잘 읽지 못한다. 테두리, 외곽선만 보고 판단한다는 의미에서 선생님이 '테두리주의'라고 말씀하셨죠. _제가 연출된 상황, 그리고 알 수 없는 시간대를 작품 속에 의도적으로 담아내는 이유는「물기둥」,「촛불」과 같은 작품처럼 어떤 사건을 연관성 없는 풍경에 끌어들이는 작업방식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작품 속에서 우리 사회의 어떤 사건을 풍경에 접목시켜 놓은 것들은 사실 다른 사람들은 해석하기 힘든 부분들이기도 한데, 그것을 숨겨놓는 것이 제겐 회화의 큰 재미 요소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해석해내는 대단한 분들이 있기도 합니다.
_최근 작품들에 대해 사건이 벌어지기 직전이나 직후의 긴장감을 담은 '사건으로서의 풍경'이라고 정의하셨는데요. 풍경 속에 작가가 의미하는 어떤 사건이 있는데, 이것을 단순히 풍경으로만 보지말아 달라. 풍경이면서 풍경이 아닌 풍경이라는 의미인가요? _말씀하신대로 최근에는 인물의 모습이 사라지고, '재구성된 풍경', '사건으로서의 풍경'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에서 디스플레이를 할 때 작품을 아주 빽빽하게 걸었는데, 의도적이었습니다. 드문드문 걸면 작품 하나하나에 주목하게 되고 작품에서 풍겨나오는 아우라가 더 있을텐데 그걸 피하고 싶었던거죠. 아주 의도된 부분이었고, 그 부분이 전시 효과의 극대화를 가져왔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필름처럼 풍경에 사건이 내포된 인상을 주고 싶었어요. 사건이 벌어지기 직전이나 직후의 긴장감 같은 거 말이죠. 그런 것을 그림에 담을 수 없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찾기의 과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 _작품 속에 선생님이 의도하는 네러티브를 명확히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좀 전에 얘기했다시피 현실을 그대로 그린 듯 하지만 실상 연출된 것이기도 하구요. 관람객 입장에서 그걸 한번에 다 알아차리기란 힘든 일일겁니다. 그래서 보면 볼수록 더 자세히 보게되는 경향이 있어요. _작품 중에 '심연의 바다'가 종종 등장하는데, 숭고한 자연 그 자체보다는 자연의 힘을 빌어 우리 시대의 정서, 심리를 말하고자 하는 거죠. 자연풍경이지만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평온한 바다, 아름다운 휴양의 바다가 아니라 사납고 거친 바다를 많이 그리는 것에 주목한다면 말이죠.
_선생님 작품을 보면서 가끔 데이빗 린치 작품들이 떠오르는 건 그런 기저의 불안감 때문이겠죠? _작품을 보고 있으면 더 불안해지는 극한의 불안감. 현대인의 불안감은 불안정한 외부요인에 상당부분 근거하죠. 어떤 힘 아래에서 무기력해질 수 밖에 없는 상황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이랄까요. 데이빗 린치 영화 중에 성냥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주는 장면이 있었는데요. 불 붙은 성냥이 마치 용접기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강렬했어요. 제 그림의 어떤 면도 그런 식으로 과장된 거죠. 제 작품을 보면 불편하다, 어렵다는 사람들이 종종 있죠. 이번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에서도 일반 관람객들은 '이게 뭐지?' 이런 반응을 하더라구요. 이전에 알던, 또는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던 풍경화의 속성과는 다른 기묘한, 불편한 인상을 받는겁니다. ● _개인적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작품 중에서 작가의 자화상이 가장 기억에 선명합니다. 이 자화상은 선생님의 다른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비교해보자면 어느 정도 관람객과 시선이 교차합니다. 다른 작품 속 인물의 대부분이 뒷모습인 것과 비교하면 말이죠. _그 작품은 제가 점점 제도권 인사가 되어가는 듯 느껴질 즈음 그렸던 작품이에요. 하지만 관람객과 시선을 마주치는 느낌은 아닙니다. 여전히 아주 어두운 배경 속에 그려져 있고 제 모습은 선명하지 않습니다. 2001년에 그렸던 작품으로 다소 논란이 되기도 했었는데, 관람객들이 이 작품에서 어두움에 가려진 제 얼굴 외에 다른 것들도 볼 수 있기를 혹은 읽을 수 있기를 바랬거든요. 그런데 대부분은 붓을 들고 있는 제 앞에 있는 것이 캔버스가 아니라 벽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더군요. 전문가들조차 말이죠. 어쩌면 우리는 그림을 보는 훈련이 덜 되어 있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작품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것만을 본다고 할까요. ● _그 가려진 태도, 기법이 사람들이 그림이 어렵다고 하는 이유 중 하나겠죠. 심지어 작가들마저 그런 말을 하더라구요. _왜들 어렵다고 할까요. 난 굉장히 쉬운데. 아마도 미술에 대한, 그림에 대한 선입견이 강해서 그런 것이겠죠. 저와 가까운 제 처남도 개 그림이 어렵다고 하고, 어떤 선배는 되지도 않는 그림을 그린다고도 했었습니다. 그런거 뭐하러 그리냐고 하는데요. 우리는 가까운 현실을 제대로 보는 훈련이 부족합니다. 우리 나라 그림 중에서 6.25 전쟁을 다룬 그림 쉽게 본 적 없지 않습니까.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이라는 작품은 책자, 매스컴을 통해서 자주 보는데 말이죠. 정말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 _스스로 예상하지 못했고 '이 상을 받는다고 내 인생이 바뀔 것 같지 않다'라고 말씀하셨던 '올해의 작가상' 수상 후, 정말 아무런 변화가 없으신가요? 실제로 선생님을 좋아하는 작가들은 주인공 없는 축하파티를 했다는 소문을 들리던데요. 작가들이 더 좋아하는 작가, 이번에 더 실감한 말이었습니다. _사실 포트폴리오 제출을 요청 받았을 때부터 전혀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내 작업할 시간도 빠듯한데 어차피 안될 거 그 많은 페이지 수의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수상 소식을 듣고는 얼떨떨했죠. 저는 소위 페어형 작가도 비엔날레형 작가도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렇지만 이번 소식으로 저처럼 작업하는 후배들이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축하 메시지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변화는 거절해야 할 일이 많이 생긴다는 것이겠죠. 우리 미술계의 보는 눈이 다양해졌고, 외부로 많이 열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말도 후배들에게 꼭 해주고 싶네요. ● _이번 전시는 바다가 있는 두 지역인 인천과 부산에서 순회 전시를 하게 되는데요. 특히 선생님의 고향이기도 한 인천은 선생님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도시인가요? _인천이라는 도시는 굉장히 묘한 곳입니다. 아직도 부모님은 인천에 계시죠. 한때는 제 작업실도 인천에 있었구요. 제 작업의 대부분은 의식하는 부분, 의식치 못하는 부분까지 인천에 많이 얽혀있죠. 인천은 해안도시인데, 해변이 없죠. 광역시이지만 위성도시이고 종속적인 도시이죠. 큰 도시이지만 변두리, 비주류의 묘한 느낌이 있죠. 제가 다녔던 광성중학교는 민둥산 꼭대기에 있는 건물 두 채 중의 하나인 학교였어요. 학교 밑에는 판자촌 동네였고요. 건너편 허허벌판에는 건물 두채가 있었구요. 말하자면 보고 자란게 없는 학창시절이었죠. 이젤과 화구 챙겨서 주변을 사생하고 미술실에서 매일 혼자 그림을 완성했던 기억도 있죠.
_끝으로 인천은 작가님의 고향이기도 한만큼 이 전시를 기대하는 인천의 젊은 미술학도들이 많은데요.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_현실적으로 모든 학생들이 작가가 될 수는 없지만 하고 싶은 것을 좀 더 자신있게 해보라고 말하고 싶네요. 화가를 꿈꾸는 저희 신입생들에게 물어보면 햇빛과 바람을 맞으면서 밖에서 풍경화를 그려본 경험이 거의 없다고 말해요. 제자들을 가르치면 아쉬운 건 짜여진 바에 따라 자라온 기능인 같다는 안타까움을 느끼게 되요. 입시교육에서 미술이 암기과목이 되어 버렸으니 기형적이죠. 그 문화로 인해 자질 있는 학생들도 그림 그리는 즐거움을 잊은 듯 합니다. 자유가 주어질 때 충분히 경험하고 자율성, 주도성을 가지길 바랍니다. 작업하는 게 어려운 일이지만 어렵다고 산을 올라가지 않으면 산 너머의 풍경을 알 수가 없잖아요. '버티기, 우기기, 쑤시기' 제가 학생들에게 작가가 되기 위한 방법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버티기'는 작가로서 먹고 살면서 생존하라는 것, '우기기'는 남들이 자신을 이해할 때까지 계속 보여주고 혹시 이해하지 못하면 암기할 정도로 보여주라는 것, '쑤시기'는 올바른 사람을 만나고 올바른 방향을 잡으라는 것입니다. 버티면 작가로 남고 우기면 작가로서 알려지고 쑤시면 좋은 작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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