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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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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제목: [人物] 사무엘 베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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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가장 뛰어난 얼굴을 가진 인물로 여성은 수잔 손탁, 남성은 베케트라고 생각했다.  아직도 그 신념은 변함은 없는데 오늘 급작 생각해보니, 웬지 두분이 서로를 싫어할 것같다는 망상이 잠깐.  근데 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사실이 아닐까란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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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구글검색











조약돌 빨기 오직 하나뿐인 그대 사뮈엘 베케트, 몰로이, 아니 김뉘연의 조약돌.

문화예술일반 | 2014/03/11 | 글. 김뉘연(워크룸 프레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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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머니에서 조약돌 하나를 꺼내 빨았다. 그것은 내가 하도 빨아서, 그리고 폭풍우에 뒹굴려져서 매끄러웠다. 동그랗고 매끄러운 작은 조약돌 하나를 입에 넣으면, 평온해지고 기분전환이 되며, 배고픔도 달래고 갈증도 잊을 수 있다. (<몰로이> 사뮈엘 베케트, 김경의 옮김, 문학과지성사, 38쪽)”

 
실패의 문학. 베케트의 문학을 두고 하는 말이다. 실패를 지향하고자 했던 그의 글들은, 실패를 지향했으므로, 실패한 문학이 아닌 성공한 문학이다. 그러나 성공의 문학은 아니다. 다시, 실패의 문학.
나는 베케트를 소설가로 접했다. 그는 여러 편의 희곡과 더불어 여러 편의 소설을 썼다. 초기 소설들인 <머피>, <와트> 등, 3부작 <몰로이>, <말론 죽다>, <이름 붙일 수 없는>, 후기 3부작 <동행자>, <잘못 보이고 잘못 말해진>, <최악을 향하여>, 그의 소설 중 번역하기에 가장 난해할 <어떻게 되는지>, 손바닥만 한 판형으로 미뉘에서 출간된 장편 소설 수십 편. 한편 마르셀 프루스트와 제임스 조이스를 경외했던 그는 젊은 시절 이들에 관한 평론을 썼다. 네덜란드 화가 브람 판 펠더와 깊게 교류했고, 그에 관한 글들을 썼다. 시도 썼다. 데카르트에 관한 시였다. 영화도 만들었다. 버스터 키튼이 주연한, <영화>라는 영화였다. 또한 텔레비전 극과 라디오 극을 썼다. 들뢰즈가 그에 관한 글을 썼고 모턴 펠드먼이 그의 글들을 연주했다. <몰로이>에 이어 <아무것도 아닌 소설과 텍스트들>로 알게 된 소설가 베케트는, 소설가만도, 희곡 작가만도 아니었다. 그는 다만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베케트는 장르를 무색케 하는 작가는 아니다. 그는 각 장르의 속성에 충실한 글을 썼다. 그리고 나는 그 글들에 순차적으로 매료되어 가는 중이다.





베케트는 아일랜드인이다. 응당 영어로 글을 쓰는 것이 당연했겠으나, 어느 순간 그는 굳이 프랑스어를 택해 글을 썼다. 이어 자신이 쓴 글의 대부분을 다른 언어로 옮겼다. 즉 영어로 쓴 글은 프랑스어로, 프랑스어로 쓴 글은 영어로 옮겼다. 베케트는 베케트의 번역가였다. 물론 기본적으로는 두 언어에 능숙했기에 가능한 시도였을 터다. 그러나 모국어가 조금 더 익숙했음은 사실이었다. 왜 영어 대신 프랑스어로 글을 쓰느냐는 질문에 그는 생경한 언어로 시도하는 글쓰기에 대해 언급했다. 익숙한 말을 버리고 상대적으로 불편한 언어를 택해 쓰는 글. 그는 자신의 모든 글들을 ‘유산’된 것으로 표현한 바 있다. 내가 접한 베케트는 획득된 것을 의식적으로 거부하는 작가다. 다시, 실패의 문학.

 
“빨아 먹는 돌들, 그것은 어딜 가야 구할 수 있는지 알기만 한다면, (…) (<몰로이>, 66쪽)”
 
세 편의 단편(‘아무것도 아닌 소설’)에 뒤이은 <아무것도 아닌 텍스트들> 13편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질문을 던진다. “내가 갈 수 있다면 어디로 갈 것인가?” “내가 존재할 수 있다면 나는 무엇일까?” “내가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면 뭘 말할 것인가?” 그는, 그의 주인공들은 누구였고, 무엇을 말했으며, 어디로 갔던가?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다만 이미 죽어 나온 그의 글들을, 시체의 잔해들을 더듬어볼 따름이다. 몰로이가 조약돌을 빨 듯이. “그러고 나서 나는 나의 소용돌이를 계속했다. 그런데 그다음 몇 년 후, 아니면 몇 달 후, 내가 어떻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디로 갔는지 말할 의도는 없다. 난 그렇게 지어내는 것에 진절머리가 나기 시작했고, 다른 일들이 나를 부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페이지를 더 까맣게 채우기 위해 내가 바닷가에서, 아무런 사건 없이, 얼마 동안을 보냈다는 것을 말하겠다. (…) 나는 그 소풍 기간을 이용해서 빨아 먹는 돌들을 장만했다. 그것들은 자갈이었는데, 나는 말이지, 나는 그것을 돌이라고 부른다. 그렇다, 그때 나는 많은 여분의 돌을 주웠다. 나는 그것들을 네 개의 주머니에 똑같이 나눠서 차례로 빨았다. (<몰로이>, 100~102쪽)”





원래 가지고 있던 하나의 돌을 잃어버린 몰로이는 이후 다시 구한 열여섯 개의 돌을 네 개씩 네 개의 주머니, 즉 바지에 있는 두 개의 주머니와 외투에 있는 두 개의 주머니에 넣고, 외투 오른쪽 주머니에서 돌을 하나 꺼내 입에 넣고, 이어 다른 주머니의 돌들을 하나씩 체계적으로 옮기기 시작한다. 이 과정은 약 8쪽에 걸쳐 묘사되고, 읽는 입장에서는 점점 이 방식에 집착하게 되는데, 묘사 말미에 몰로이는 열여섯 개의 돌을 비축해둔 것은 사실 단순히 돌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으며, 또한 돌이 다 떨어진다고 해도 떨어지면 떨어지는 것이었지, 그것 때문에 더 곤란해질 일은 없었으리라 말한다.
 
“그래서 내가 끝내 선택한 해결책, 그것은 하나만 빼고, 모든 돌을 공중에 던져버리는 것이었고, 그 하나를 나는 이 주머니, 저 주머니에 넣었다가, 얼마 가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잃어버렸거나, 내던졌거나, 혹은 남에게 주었거나, 삼켜버렸다. (『몰로이』, 109쪽)”
 
몰로이에게 돌의 맛은 모두가 정확히 똑같았다. 베케트의 글들이 그러한 것처럼. 몰로이는 왜 돌을 빨았던 것일까? 나는 왜 베케트를 읽고 있는 것일까? 나는 이렇게 쓸 수 없기 때문이다.



 


 







modified at 2014.03.14 16:25:17 by za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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