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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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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시각: 2013.08.05 19:4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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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제목: [論] 사랑이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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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와 사랑에 대해 근자에 생각이 많아지고 있는.  자애로운 사람이 되기로 결정은 내렸으나, 진정 내가 살아가며 해온 일중 가장 버거운 일인 것같다.  차라리 달리기를 매일 네시간씩 하는 것이 훨씬 편할 듯.  영구한 결락이 무한의 욕망으로 발현되는 것은 진리인 듯 싶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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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구글검색













반쪽자리 사랑의 그림자


그대를 지키는 기사가 되리

무사가 있다. 누가 보아도 수려한, 영웅적인 무사가 있다고 가정하자. 그는 한 여인을 주군으로 섬기고 있으며 그 여인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 임무다. 그 무사는 그녀를 사랑하지만, 그녀는 귀족 집안의 여식이거나, 권력자의 아내라서 넘볼 수 없다. 무사가 워낙에 수려한 인간이다 보니, 여인 또한 무사를 연모한다. 그러나 신분의 벽에 가로막혀, 두 사람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다. 이제 건강한 무사의 뜨거운 사랑은 어떻게 될까. 그 사랑의 힘으로 오래도록 그녀에게 헌신하거나, 운이 나쁘면 그녀를 지키려고 적과 싸우다 죽고 만다.

이러한 설정은 중세 궁정풍 기사도 문학의 고전적인 구성이다. 유명한 기사도 문학 작품인 <아서왕 이야기>에 등장하는 렌슬롯과 귀네비어 왕비의 관계가 대표적인 예이며, <트리스탄과 이졸데>와 같은 작품들 역시 유사한 맥락으로 여겨진다.

진정한 기사에게 필요한 것 - 귀부인

이러한 연애담은 중세 유럽의 문단을 가득 채웠을 뿐 아니라, 이 시대의 영화, 드라마에서도 끝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폭력집단에 납치된 미녀 고용주를 구해내는 보디가드는 오직 '사랑' 하나 때문에 팔다리가 부러져도 견뎌내고, 온갖 수모도 겪어낸다. 그러면서도 그는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영광스럽게 남성으로서의 소임을 다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그것은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사의 덕목으로 보았던 중세의 관념과 전혀 다르지 않다.

'돈키호테'는 인위적으로 이러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그는 적당히 농가의 처녀 한 명을 선정, 자기 마음대로 섬기기 시작한다. 심지어 그 처녀는 돈키호테가 자신을 섬기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돈키호테는 기사의 기본 덕목을 충실히 갖추기 위해, 있지도 않았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억지로 시작했던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기사나 귀부인이 된다


중세의 기사나 보디가드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유사한 사랑을 한 번쯤은 하게 된다. 바로 짝사랑이다. 어린 시절에 누군가를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는 사랑의 경험. 애가 닳아 없어질 정도로 상대를 연모하지만,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거나 다가서려 하지 않는, 그러한 방식의 짝사랑 말이다.

이런 일방적인 짝사랑 역시 대중가요나 문학작품의 단골 주제가 되어 왔다. '그녀를 가질 수 없다'거나, '보내야만 한다'는 내용의 노래는 아마 인류가 멸망할 때까지 계속 재생산될 것이다. 이런 노래는 '아무도 모르게 지켜주겠다'는 굳건한 다짐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그녀를 가지지 못하거나, 보내야만 하는 이유는 대부분 '그녀를 위해서, 지켜줘야 하기 때문'이다. 역시나 기사도 문학을 떠올리게 하는 내용이다.

사랑의 유효기간

많은 사람들이 영원한 사랑을 꿈꾼다. 그러나 사랑이 오랜 기간 열렬히 유지되는 일은 드물다. 혹자는 사랑을 유발하는 호르몬은 3개월 정도만 유지된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결론의 신빙성을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열렬한 사랑은 그다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통념일 것이다. 그런데 기사도 문학의 연애담은 다르다. 기사가 주군을 3개월만 섬기고 마음이 식어서 떠나는 일은 없다. 이들의 사랑은 이루어지지는 않되, 매우 오래 유지되는 특성을 가진다. 그것은 짝사랑도 마찬가지다. 수년간 연애를 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수년간 누군가를 짝사랑하는 경우는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왜 기사의 사랑과 짝사랑은 오래 지속될 수 있는가. 그것도 열렬한 마음으로 지속될 수 있는가. 그 사랑이 그토록 소중하고 아름다워서일까?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사랑의 대상은 있되 사랑을 이룰 방법이 없는 상태는, 강한 리비도가 발생할 환경은 되지만 해소할 길은 차단된 상황이라는 것이다. 즉 여인과 사랑에 빠져 강한 정신적 에너지가 형성되었지만, 사랑을 실천하여 리비도의 목적을 달성할 수는 없다.
기사는 이 정신 에너지의 힘을 어떻게 할 것인가? 주어진 것은 하나뿐이다. 그 에너지만큼 더 열심히 그녀를 보필하는 것. (이를 '승화'라고 한다) 그러나 그 결과 둘의 관계는 더욱 헌신적이게 되고, 그러다 보니 사랑의 에너지도 더욱 커지게 되는 순환 고리에 갇히고 만다. 이론적으로, 기사의 사랑은 이런 이유로 긴 시간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일반적인 짝사랑도 마찬가지다. 한편, 돈키호테는 이 안타까운 사랑의 순환 고리에 들어가기 위해, 없는 사랑을 스스로 기획해낸 셈이다.

방부 처리

기사도 문학의 작가들은, 더없이 숭고한 사랑을 형상화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사랑의 실현 가능성을 봉쇄했다. 짓궂다고 해도 좋을 이러한 작업을 통해, 보석처럼 보존되는 사랑을 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은 상대방을 위한 사랑이 아니라, 사랑 자체에 의한 사랑이라는 혐의를 갖게 된다. 사랑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충족되지 못하기에 사랑을 끝낼 수 없는 상태. 그러나 그럼에도 '영원한 사랑'이라는 이데아에 근접한, 아름다운 이야기로 여겨진다.
이것이 세계의 문학사를 아우르는 방부 처리된 반 쪽짜리 사랑이야기들의 뒷모습이다.

누군가가 사랑을 실현시키는 것에는 관심이 없으면서도, 깊은 짝사랑에 취해 있다면. 그 사람은 기사도 문학의 한 페이지를 완성시키려고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넌지시 그 사람에게 알려줘야 할 것이다. 그대의 사랑에 장점이 있다면 아주 오랫동안 그렇게 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이라고. 그러나 그것은 어쩌면 돈키호테의 시도와 유사한 것일 수도 있다고.

written by Joe (braincase@artnstud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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