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당하거나 인구에 회자되는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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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bel

  • 작성시각: 2012.06.22 11:2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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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제목: re_start : 정묘한 죽음으로 생육하라.

네가지 틈새


2012_0622 ▶ 2012_0705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2_0622_금요일_07:00pm 참여작가 / 김슬기_김영미_윤창보_정주홍 관람시간 / 12:00pm~08:00pm / 월요일 휴관 플레이스막 placeMAK 서울 마포구 연남동 227-9번지 1층 Tel. +82.17.219.8185 www.placemak.com

똑똑한 사람은 많지만 똑똑하게 행동하는 사람은 드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의 생각과 행동에는 묘한 균열이 갔다. 머리가 좋아도 행동은 개만 못할 수 있고 행동이 아둔하여도 머리는 무척 영민할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눈이 번쩍 뜨였다. 틈이라는 것은 특성상 같은 재질의 이음새로 공간을 메워도 "안녕하세요. 이곳은 예전에 틈이었습니다."라고 말하듯 티가 난다. 얼굴의 점도 레이저로 비운 뒤 세포로 채워지면 티가 나듯이. 하물며 사람간의 틈은 어떻고 그 사람들이 각자 만든 물건들 간의 틈새는 어떻게 메울 수 있겠는가?
김영미_O_휴지에 기름, 조명_가변크기_2012
김영미_케니G 색소폰 멜로디_악보에 기름_30.3×22.5cm_2012
김영미 작가가 이번에 전시하는 두 개의 작품에 공통적으로 사용한 재료는 바로 기름이다. 하나는 겹겹이 쌓은 휴지에 다른 하나는 층층이 쌓은 악보에 기름을 혼합하였다. 혼합이라는 단어는 대체로 두 개의 다른 성질을 가진 재료가 화학적으로 섞여 또 다른 성질의 물질이 될 때 사용한다. 하지만 기름은 애초에 무엇과 섞이기보다 무엇을 잠식시킨다. 기름만이 갖고 있는 성향으로 다른 대상을 기름져지게 하는 것이다. 작가는 자신이 선택한 대상 위에 기름을 올려놓고 그 대상이 충분히 기름져질 때 까지 기다렸다. 작가의 작위적인 행위가 배재된 작업 과정, 이것이 작품에 대한 해석의 경로를 더 다양하게 해 줄 것이다.
윤창보_Gee_캔버스에 피_194×112cm_2012
언뜻 보면 소녀시대의 유행가 Gee가 하얀 바탕 위에 빨간색으로 쓰여 있다. 한없이 달콤한 Gee의 노래가사를 어둡고 기괴하게 표현함으로써 대중가요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는 것인가?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는 이와 정반대이다. 매일같이 먹는 밥처럼 우리 곁에 온종일 흐르는 음악이 바로 유행가다. 밥이 우리의 세포를 생성하듯 유행가는 우리의 뼈마디에 각인되어 예상치 못한 경로로 후세대에 이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오랜 시간 추앙받아온 경전 및 고전과 당대의 유행가가 다를 것이 무언가? 사람들은 고전에 더 많은 무게를 싣지만 사실 고전이나 유행가나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비슷하지 않을까? 라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자 물음이다. 세상이 떠안겨준 질문을 또 다른 질문으로 답하는 것은 위험하다. 하지만 가끔은 반문의 형태가 가장 적합한 답일 때가 있다.
정주홍_장삼황녹은 하나에서 겹쌓였네_한지, 삼베, 금박, 옻채색_182×47cm×4_2012
정주홍 작가는 직업적 특성상 절 주변을 자주 출입한다. 자연스럽게 절 안에서 무언가를 바라고 기도하고 염원하는 사람들을 마주치다보니 세상은 저토록 간절하게 염원하는 사람들의 바람을 기반으로 생성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세상이 무언가를 바라는 동식물의 마음으로 구성된 것이라면 그 마음을 다시 받아 살아가는 존재 또한 동식물 즉, 우리일 것이다. 주고받는 나눔의 미학 속에 작가는 비로소 자신의 작품을 다른 사람들에게 환원하는 지점에 와 있다. 예로부터 길조의 상징이던 용을 작업에 매개시켜 천과 종이를 겹겹이 쌓는 방식으로 작품을 제작하였다. 긴 작업의 과정은 작가가 바라는 염원의 과정이며 동시에 세상에 환원하는 돌려줌의 과정이다. 또 다른 누군가가 작가가 생성한 염원 덩어리 위에서 에너지를 받고 잘 살아갈 수 있길 바란다.
김슬기_코바늘에 아가미가 뚫린 물고기가 말했다._점토_가변크기_2012
염원은 바라는 것의 부재에서 생겨난다. 물질적인 욕망 없이 순수하게 바라는 행위도 존재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현실적인 조건이 불안할 때 무언가를 바라고 나아가 욕망하고 세상을 겁탈한다. 김슬기 작가의 작업은 이런 현실적인 부재에서 출발하였다. 작가는 현실세계에서 어떤 대상을 욕망한다. 다르게 표현하면 아름다운 꿈을 꾸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이 욕망은 현실화되지 않고 작가는 비로소 잠을 자다 꾸는 꿈속에서 이루지 못한 꿈의 형상을 본다. 꺾인 날개는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허약해 보인다. 애초에 날 수 없었으며 어떤 식으로도 복구가 불가능한 날개는 이제 현실의 꿈 또는 무의식의 꿈 어디로도 가지 못한 채 이곳에 나약하게 떠 있다. ● 네 명의 작가는『네가지 틈새』라는 전시 제목과 같이 서로 간에 메우기 힘든 틈이 있음을 인정하고 그 틈을 인위적이지 않은 형태로 보여주자는데 동의하였다. 전시된 작품들 사이에는 육안으로 구분 가능한 간격이 존재하며 그 틈새로 관객들은 자신의 몸을 끼었다 뺐다 해볼 수 있을 것이다. ■ 박세희 관람문의 : 017-219-8185 플레이스막 홈페이지 : www.placemak.com 블 로 그 : placemak.blog.me 페이스북 : www.facebook.com/placeMAK 트 위 터 : @placeMAK ---------------

원더러스트: 또 다른 언덕 너머로 가는 끊임없는 여정


WANDERLUST: A Never Ending Journey to the Other Side of the Hill展 2012_0623 ▶ 2012_0812 / 월요일 휴관


마르셀 브로타에스 Marcel Broodthaers_Jardin d'Hiver II (Winter garden)_Mixed media_1974 Palais des Beaux-Arts, Bruxelles Copyright: Estate Marcel Broodthaers
초대일시 / 2012_0622_금요일_06:00pm 참여작가 프란시스 알리스(Francis Alÿs)_마르셀 브로타에스(Marcel Broodthaers) 호노레도(Honoré d'O)_죠엘 투엘링스(Joëlle Tuerlinckx)_파나마렌코(Panamarenko) 기획 / 한스 마리아 드 울프_사무소 후원 / 브뤼셀 자유대학교_벨기에 연방정부_수도권 브뤼셀 관람료 / 성인_3,000원 / 학생_1,500원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아트선재센터 ARTSONJE CENTER 서울 종로구 율곡로3길 87 (소격동 144-2번지) Tel. +82.2.733.8945 www.artsonje.org

『원더러스트』는 벨기에 연방정부가 지원하는 전시 프로젝트로서, 사무소와의 협업 하에 진행된다. 이번 전시에는 20세기 서양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거장 마르셀 브로타에스(1924-1976)와 파나마렌코(1940년생) 등의 작품이 포함되어 있고, 이들을 포함한 다섯 명의 주요 벨기에 작가들의 작업을 선보인다. 『원더러스트』전의 구상과 기획은 브뤼셀 자유대학 한스 드 울프 교수가 맡았다. ● '원더러스트(Wanderlust)'는 독일어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 중 하나일 것이다. '원더러스트'는 익숙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다른 문화, 다르게 살아 가는 사람들을 접해보고자 하는 인간 내면의 뿌리 깊은 열망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러한 차원에서 '원더러스트'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같다고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단어가 독일어권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된 것은 19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독일 낭만주의 예술가들은 합리주의, 계몽주의 시대 유산에 맞서 투쟁하는데 '원더러스트'를 자신들의 주요 개념적 무기로 삼았다.
호노레도 Honore d'O_Collier de Perles_Site-specific installation_2012 Copyright: Honore d'O
예를 들어 프란시스 알리스를 멕시코 시티로 가게 한 것은 바로 원더러스트였다. 최근 들어 그는 올해 카셀 도큐멘타에 출품한 작품과 같이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열악한 곳에서 작업을 하고 있지만, 멕시코는 그에게 피난처와 같은 곳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무한한 영감을 주는 곳이다. 그의 여러 유명한 드로잉 중 하나를 통해서도 알려졌지만, 멕시코에서는 모든 것이 무탈하며, 심지어 – 최소한 그가 '산보'를 하는 동안에는 - 안녕하기까지 하다. 산보는 알리스에게 주로 생각의 지평을 여는 조건으로 작용한다. 프란시스 알리스는 산보하면서 주변에 널려있는, 그러나 이전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시적 감흥에 접근할 수 있다. 산보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호노레도 도 역시 공유하는 것으로서, 호노레도의 작가적 태도의 바탕을 이룬다.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가 개최된 해, 호노레도와 프란시스 알리스는 각기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 같은 날 베니스에 도착한 후, 이들은 각각 대형 튜바의 위, 아래 반쪽씩을 가지고 서로를 만나기 위해 3일 동안을 걸었다.
호노레도 Honore d'O_Beyond Poetry_2012 Copyright: Honore d'O
이번에 서울에서 열리는 『원더러스트』전을 위해, 호노레도는 전시 포스터 이미지로도 사용된, 장대한 설치작품을 선보인다. 플라스틱 판자로 만들어져 물위에 설치된 보행자 도로는 흐르는 강 저편에 도달하고 싶다는 욕망을 제시하며, 심리적으로 원더러스트를 연상시킨다. 한편 이 작품은 "물위를 걷는다"는 차원에서 개인의 신념을 의미하는 유럽 기독교 전통에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호노레도 Honore d'O_Opera Aperta_2006 Copyright: Honore d'O
이번 서울 전시에서 파나마렌코의 천재적 발명도 간과할 수 없다. 파나마렌코는 지난 40여 년 동안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과학과 기술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인류역사에서 실현되지 않았으나 제대로 작동을 했더라면 비범한 발명품이 되었을뻔 한 참으로 흥미로운 기계장치들을 고안해 냈다. 이번 전시는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파나마렌코의 로봇공학과 그의 설계도 및 도안을 선보인다. ● 『원더러스트』전은 예술가의 간단한 상상력을 통해 현재에 겪는 사회적 억압과 부조리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여행의 필요성을 경험하는 전시가 될 것이다. 마르셀 브로타에스의 「겨울정원 (Jardin d'Hiver)」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겨울정원」은 토종 야자나무, 소박한 야외 정원용 의자, 백과사전에 삽화로 실린 이국풍의 조류 그림 등을 설치하고, 영화와 멜랑꼴리한 음악이 작품에 동반된다. 결국 이 작품은 중개자로서 예술가가 처한 어려운 위치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브로타에스의 설치 작업은 당시 유럽 작가들에게, 이후 지금까지도, 몇 세대에 걸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죠엘 투엘링스 Joelle Tuerlinckx_La Collection Fondamental_Paper, plexiglass plate, 9 wooden tables, 7 wooden planks, stones, paint_2012 Copyright: Joelle Tuerlinckx 2012
조엘 투엘링스 작품 역시 브로타에스와 유사한 작가적 경향을 나타낸다. 투엘링스가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생각과 환경을 연결하는 기본 원칙을 구성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중요한 작업 시스템 (강박관념) 두 개, 즉 돌과 새가 동시에 전시되는데, 이는 처음으로 시도된다.돌과 새는 세상을 탐사하기 위한 두 개의 각기 다른 도구를 대표한다. ● 이번 전시에서는 이상에서 살펴본 다섯 작가들의 작품 외에도 각종 문서, 오브제, 한국 작가를 포함한 다른 작가들의 작품이 함께 전시된다. 이는 전시의 기획의도를 맥락화하고 관객의 이해를 좀더 깊게 하기 위함이다. 해당 예술가들의 작품 외에도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 – 1968)과 보에티(Alighiero Fabrizio Boetti, 1940-1994)의 작품이 전시되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 – 1832), 스턴(Laurence Sterne, 1713 – 1768), 클레브니코프(Velimir Khlebnikov, 1885 - 1922)에 관한 문서가 함께 전시된다. ■ 한스 마리아 드 울프
죠엘 투엘링스 Joelle Tuerlinckx_La Collection Fondamental, Paper, plexiglass plate, 9 wooden tables, 7 wooden planks, stones, paint_2012 Copyright: Joelle Tuerlinckx 2012
1. 강연/퍼포먼스 『Never Forget the Playing Child in You』 참여 작가: 호노레도, 한스 드 울프 일시: 2012년 6월 7일(목) 오후 5시 장소: 아트선재센터 B1 아트홀 2. 블랙쉽 렉처 The BLACK SHEEP lecture @ Artsonje Center #43 강의자: 한스 마리아 드 울프 (Hans Maria de Wolf) 일시: 2012년 6월 20일 (수) 저녁 7시 장소: 아트선재센터 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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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티시즘과 에로티시즘 사이


얀 샤우덱展 / Jan Saudek / photography 2012_0526 ▶ 2012_0715


얀 샤우덱_Marie No.142_1974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얀 샤우덱展 홈페이지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 / (사)코아스페이스 주관 / (사)코아스페이스_갤러리 아트사간 관람료 / 일반 8,000원 / 할인 6,000원 단체_10명 이상, 경로, 장애_동반1인까지 할인 가능 관람시간 / 10:00am~07:00pm (전시종료 1시간전 입장마감)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5, 6층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체코를 대표하는 예술사진가 얀 샤우덱의 초기 작업부터 최근 작업까지 160여점의 대표작이 드디어 한국을 찾았다. 맹렬히 비난받는 동시에 사랑받고 경멸시 되면서도 기념비적인 저주받으면서도 숭배받는 위대한 예술사진가 얀 샤우덱. ● 1935년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서 출생한 얀 샤우덱은 나치 치하에서 어두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끊임없는 불안감과 무수한 감시가 늘 함께한 인생은 그를 현재 체코에서 가장 위대한 예술사진가로 만들어 놓았다. ● 1963년 모국인 체코 프라하 Divadlo na Zabradli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으며 에드워드 스타이켄(Edward Steichen)이 기획한『인간가족(The Family of Man)』展에 감동을 받아 인간의 외적 모습과 인간성의 근본에 관한 주제의 작업을 하기로 결심한다. 이후 얀 샤우덱의 사진 인생에 있어서 인간의 휴머니즘을 빼놓을 수 없게 되었다. 그의 강렬한 사진들은 항상 '로맨티시즘과 에로티시즘 사이' 어딘가에 위치하여 차별화되고 뚜렷한 개성을 보여주고 있다.
얀 샤우덱_New York, New York I_1985
얀 샤우덱_Blue Angels_1993
얀 샤우덱_Tribute to Great Vincent_1989
얀 샤우덱_The Burden_1987
얀 샤우덱_Innocence_1997
얀 샤우덱_There is a land of men and a land of women live in, and between those two worlds a war rages – and there is no end to it..._1989
그의 표현도구로서 가장 터부시 되는 부분들은 포르노그라피(Pornography)라는 오해로 오랜 기간 모국에서 비난을 받았으나 포르노와 예술의 차이를 명확히 하려는 그의 계속된 예술적 행로 때문에 1990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예술 공로훈장 기사장 (Chevalier des Arts et des Lettres)'을 받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 그는 체코 사진사 뿐만 아니라 세계사진사 발전에서도 독특한 위치에 서있으며 그의 작품은 어떠한 장르에도 속하지 않는다. 얀 샤우덱의 논란적인 작품들은 훌륭한 예술가로서 진실성을 가졌으며, 예술적 행로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이러한 그를, 예술가로서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으며, 어디에도 분류시킬 수 없다. (사)코아스페이스 --------------

Another View


황은화展 / HWANGEUNHWA / 黃恩和 / painting 2012_0613 ▶ 2012_0629 / 일요일 휴관


황은화_Another View-의자_캔버스에 나무, 아크릴채색_162×130.3×5.50cm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01104j | 황은화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송아당 GALLERY SONGADANG 서울 종로구 안국동 52-6번지 Tel. +82.2.725.6713 www.gallerysongadang.com

황은화의 아나모픽 페인팅 : 또 다른 눈으로 드러내는 현실-'회화하기'에 대한 질문과 탐색 ● 그녀는 화가이다. 캔버스, 특수 제작한 입체 구조물, 실내의 벽면, 천장, 바닥은 물론 볼록과 오목이 교차하는 실외의 건축적 구조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그녀의 회화의 바탕이 된다. 그녀의 회화가 흥미로운 까닭은 회화가 실행됨으로써 비로소 그 회화의 바탕이 도드라지게 우리의 인식 속에 자리를 잡기 때문이다. 그것은 삼차원의 공간에 이차원의 회화가 펼쳐지게 만드는 그녀의 독특한 회화 전략에 기인한다.
황은화_Another View-의자_캔버스에 나무, 아크릴채색_91×72.7×4.50cm_2012
그녀의 회화는 가히 '공간회화'라 지칭할 만하다. 그녀는 2차원 평면 위에 그림을 그리듯이 3차원 공간 위에 그림을 그린다. 마치 비디오 프로젝터가 3차원 건축물 위에 투사시켜 2차원 영상을 맺히게 하듯이, 그녀의 페인팅은 복잡한 3차원 구조물 위에 2차원 이미지를 올려놓는다. 그녀의 작품을 보기 위해서 우리는 2차원 이미지가 올려진 3차원 구조물을 자연스럽게 함께 검토하게 된다. 그럼으로써, 기본적으로 2차원 평면 위에 올려지는 회화의 정체성과 관련하여 작가가 제기하는 '또 다른 시각(Another View)에 관한 진지하고도 이지적인 문제의식을 대면하게 된다. 선, 도형, 색면, 선묘의 특징들이 두드러진 그녀의 회화에는 3차원과 2차원이 교차하면서 만들어내는 '보는 것과 보이는 것', 그리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나아가 '주체와 대상'에 관한 현상학적 질문과 탐색이 짙게 배어있다. ● '회화하기에 대한 질문과 탐색'이 어우러진 그녀의 회화는 최근 구상성을 띤 2차원 캔버스 작업으로 심층화되면서 이전의 단순하고도 심도있는 회화 주제를 다각도로 변주해내고 있는 중이다.
황은화_Another View-의자_캔버스에 나무, 아크릴채색_91×72.7×4.50cm_2012
주객 통합의 시각성 ● 황은화의 회화는 흥미롭게도 르네상스의 데카르트적 원근법 시각(vision)과 더불어 현대의 메를로퐁티 류의 주객관통합의 시각성(visuality)을 함께 견지하고 있다. 데카르트적 원근법에서 시각 주체란 인간주의적 존재라기보다는 시공간 좌표상의 한 점으로부터 기인한 탈육체적 주체이다. 그것은 화가의 입장에서 '하나의 눈'을 통해 소실점을 만들어내는데 골몰하는 추상화된 눈이다. 감상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눈이 아니라 화가가 바라보는 눈을 빌려서 대상을 인식할 수 있는 탈육체의 눈이기도 하다.
황은화_Another View-컵_캔버스에 나무, 아크릴채색_72.7×90.9×3.50cm_2012
황은화의 회화는 3차원 현실을 2차원 회화로 재현하는 데카르트적 시각이 지닌 일루저니즘의 정체성을 거꾸로 작동시킨다. 즉 2차원 회화를 3차원 현실 위에 구축한다. 그런 차원에서, 그녀의 회화의 출발점은 분명코 객관적, 탈육체적 시각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반면 회화의 도착점은, 자신이 구축한 환영의 질서 안에 관객이 눈을 맞춤으로써 완성된다는 점에서, 객관적, 탈육체적 시각을 고스란히 지닌다. 그러니까 데카르트적 재현의 '이념'으로부터는 떠나있으면서도 아이러니컬하게 그 '원리'를 지독하게 계승함으로써 근본적으로 데카르트적 시각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테면 전시장 내의 3차원 벽면과 모서리, 바닥을 잇는 거대한 2차원 도형은 관객의 눈에 처음부터 온전히 드러나지 않는다. 무심한 상태로 전시장을 방문했던 관객들은 작가가 만들어놓은 하나의 시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분절되어 있는 색면 들로 부터 온전한 2차원 도형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황은화_Another View-샘_캔버스에 나무, 아크릴채색_32×32×3.50cm_2012
그런데 바로 이 지점이 동시에 그녀의 회화를 메를로퐁티 류의 주관객 통합의 시각성으로 걸터앉게 하는 독특한 위치가 된다. 생각해보자. 데카르트적 원근법에 충실한 2차원 회화를 탈육체적인 시각으로 규정하는 까닭은 우리가 이리저리 시선을 옮기며 화가의 시점에 맞춤으로써 그 대상을 비로소 볼 수 있다는 의미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것은 감상자의 눈으로 대상을 직접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화가의 눈을 빌려서 대상을 간접 경험한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어떠한 자연을 화가가 그린 풍경화를 통해서 간접 경험하는 것과 같은 차원이다.
황은화_Another View-샘_캔버스에 나무, 아크릴채색_38×37.3×3.50cm_2012
황은화의 회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화가의 눈을 빌려 어떠한 대상을 간접경험하는 차원이기 보다는 이리저리 몸을 옮겨 작가의 시점에 눈을 맞춤으로써 비로소 경험되는 탈육체적 차원을 분명히 시작부터 의도한다. 그녀가 데카르트적 원근법의 이념 보다는 그 원리를 지독하게 계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 흥미로운 것은 관객이 자신의 눈을 버리는 탈육체의 차원이 진행되는 동안 스멀스멀 관객 자신의 육체적 노동이 배가되면서 육체의 차원으로 이동한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그녀의 작업은 수평적 시각으로 진행하는 전통적인 회화 감상의 태도를 전복시킨다. 관객들에게 조각이나 설치작품을 관람하는 방식의 전방위적인 주항(circumnavigation)의 태도를 요구할 뿐만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화가의 시점 주위를 부단히 어슬렁거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 이 지점이 화가의 시각과 동일시하려는 관람자의 객관적, 탈육체적 시각을 형성하면서도 동시에 관람자들의 실제의 눈으로 대상을 인식하게 만든 주관적, 육체적 시각을 동시에 형성하는 지점이 된다. 이러한 상호작용의 시각성이란 그녀의 작품이 종국에 도모하는 목표지점이다. (중략) ■ 김성호
황은화_Another View-샘_캔버스에 나무, 아크릴채색_60.6×50×3.50cm_2012
황은화-시각적이고 심리적인 왜상을 주는 화면 ● (중략) 그 사물의 일부는 부분적으로 입체물/부조가 되어 돌출되어 있다. 그것은 회화와 입체/저 부조 사이에서 흔들린다. 그림의 내부나 피부에 속해있지 않고 그로부터 분리되어 입체가 되었다. 동시에 그 입체는 다시 화면 내부로 수렴된다. 따라서 회화와 조각 사이에서 진동한다. 캔버스 평면에 속한 그림의 일부인 동시에 그로부터 일정한 높이를 갖고 튀어 올라온 조각/부조이다. 나로서는 화면에 그려진 사물의 가장 튀어나와 보이는(우리 눈의 한계로 인해 그렇게 돌출되어 보이는, 착시로 인해 평면/선들이 순간적으로 입체로 다가온다), 꼭 지점처럼 튀어 나와 보이는 바로 그 부분을 입체화시킨 전략이 흥미롭다. 그것은 환영과 실제사이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라인으로 암시된 사물을 보는 순간 관자들은 정신적 활력을 통해 머릿속에서 실제 사물을 떠올릴 수 있다. 이때 부분적으로 튀어나온 부위는 그러한 연상을 더욱 강하게 자극한다. 동시에 환영을 실제의 사물로 되돌려주는 셈이다. 아울러 그 한 부위가 돌출되어 다가옴으로서 즐거운 환영의 체험과 함께 기묘한 심리적 자극, 일종의 '포비아' 같은 것도 던져준다. 평면의 한 부위가 부풀어 올라 순간 보는 이를 찌른다. 알 수 없는 당혹감이 생긴다. 나로서는 이 같은 타자의 유희와 체험을 적극 끌어들이는 전략이 흥미롭다. ■ 박영택 ----------

보이지 않는 것에 묻다


노정하展 / NOHJUNGHA / 盧貞夏 / photography 2012_0615 ▶ 2012_0729 / 월요일 휴관


노정하_The couple of Rialto in Venice_핀홀, 디지털 프린트_85×205cm_2010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00621b | 노정하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2_0614_목요일_05:00pm 2011 성곡미술관 내일의 작가 수상展 관람료 / 5,000원 / 학생 4,000원 7세 미만 어린이 및 65세 이상 무료관람 (까페이용 별도) * 20인 이상 단체_1,000원 할인 / 사전 전화문의_Tel.02.737.7650 * 장애인, 국가유공자는 단체관람료 적용 * 1관 전시 관람료 포함 관람시간 / 10:00am~06:00pm / 매주 목요일_10:00am~08:00pm 연장개관 / 월요일 휴관 * 종료시간 30분 전까지 입장 성곡미술관 SUNGKOK ART MUSEUM 서울 종로구 신문로 2가 1-101번지 Tel. +82.2.737.7650 www.sungkokmuseum.com blog.naver.com/sungkok33

멜랑콜리아(melancholia) ● 세상의 모든 창조는 우수의 감정으로부터 비롯했다. 철학, 예술, 문학은 물론 의학, 과학도 그러했다. 각 시대마다 멜랑콜리아, 혹은 멜랑콜리(melancholy)와 같은 이슈가 여럿인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개인사를 넘어 사회, 시대로 이어진 우수의 감정은 예술가에게 있어 상상력과 천재성을 강화시켜주는 주요 요소였다. ● 노정하의 사진은 우수(憂愁)로 가득하다. 이런저런 우수의 감정이 촉촉이 녹아 있다. 시대의 우수라기보다는 개인적 우수로 이된다. 노정하의 사진영상작업에는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고 또 볼 수도 없고 담을 수도 없는 것에 대한그리움이 가득하다. 잊어버린, 잃어버린 지난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절대적상실감 으로부터 그의 예술은 시작되었다.
노정하_Summer vacation #5_Motion photo_2012
노정하_Giardini in Venice_핀홀, 디지털 프린트_50×110cm_2009
노정하의 우수와 그리움은 초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의 초상작업은 타인은 물론 자신의 모습을 상당수 포함하고 있다. 아니 대부분이 자신이다. 아이던 어른의 모습이던 타인을 통해 이미지화된 자신에 다름 아니다.누구보다 자의식(自意識), 자기애(自己愛)가 그만큼 강하다는 반증이다. 사진 중심의 개인초상은 최근 영상설치작업으로 이어지면서 집단초상의 양상을 보인다. ● 노정하 초상작업의 힘은 독특한 연출이다. 사진 속 이런저런 소품, 배경들과 함께 등장하는 노정하는 중세시대의 여인, 중세시대의 공주를 연상시킨다. 전생이 공주였냐는 질문에 그저 웃음으로 답한다. 자신을 가둔 액자도 중세풍이다. 중세풍의 드레스와 고전적인 프레임, 검자주색으로 주조된 화면은 멜랑콜리한 분위기를 배가시킨다. 이를테면 노정하식 바니타스(vanitas) 모티프인 셈이다. 타고난 문학적 능력과 관심, 소양, 가능성이 유감 없이 드러나고 있다.
노정하_Femme fatale_Motion photo_2012
사진을 찍은 사람은 사진 속에 드러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다. 사진 밖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정하의 사진에는 노정하가 있다. 그가 실재하는 노정하든 아니든 간에 노정하가 있다. 그의 작업이 리얼리티를 매개로 하고 있음이다. 노정하는 사진 속에서 자신을 찍고 있다. 명백한 자기초상으로서의 사진이다. 카메라의 렌즈와 자신의 눈, 관객의 눈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 또한 그들의 시선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 흔히 사진은 자연의 거울이라 말한다. 노정하의 사진은 자신의 숨겨진 열정, 자신도 알지 못하는 자신을 비추고 있다. 그것도 아주 은밀하게, 때론 계획적인 노골적 시선으로 정조준하고 있다. 자신을 겨냥하고, 자신에게로 초점을 맞추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자 관심, 규명하려는 노력이다.
노정하_Love feast self with the instrument_디지털 프린트_48×47cm_2006
노정하의 작업은 질문이다. 예술, 혹은 사진에 대한 질문이라기보다는 사진을 통한 자기 스스로에 대한 질문이다. 그는 인간의 삶과 운명에 관하여 묻고 있다. 배워왔고 알고 있던 것과는 달리 견딜 수 없는 고독과 슬픔으로 가득한 세상에 대한 질문이다. 과연 행복은 실존하지 않는 개념에 불과한 것인가. 삶은 인간의 고통을 측정하는 과정, 의문의 답을 찾기 위한 과정일 뿐인가. 예술과 삶이 서로 닮은 이유가 그 때문인가. 노정하의 사진 속에 담긴 우수의 감정은 노정하의 철학, 인생관이 내재되어 있는 삶의 그림자에 다름 아니다. 그의 작업은 이를테면 긍정적인 멜랑콜리인 셈이다. ● 이번 수상전에서 만나는 노정하의 작업들은 1999년 초창기 작업으로부터 2012년 신작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어제, 오늘과 인간의 미래적 운명을 드라마틱하게 풀어내고 있다. 노정하의 작업은 우수가 예술과 직결된다는 멜랑콜리아 담론을 돌아보게 한다. 근자에 집중하고 있는 영상과 디지털 사진 작업이 지금까지의 그것들을 효과적으로 이어나갈 수 있는지 지켜볼 일이다. ■
노정하_Self over the window_실버 프린트_42×32cm_1999
성곡미술관은 2012년 여름 전시로 『노정하: 보이지 않는 것에 묻다』展을 개최합니다. 이번 전시는 '2011 성곡미술관 내일의 작가' 수상기념전으로, 사진 고유의 속성인 기록성과 진실성 그리고 우연성 등을 바탕으로 인간의 삶과 운명을 살펴보려는 노정하 작가의 사진영상작업 40여점을 소개합니다. 초기부터 꾸준하게 이어온 'self'(1999-2006) 시리즈로부터 노정하의 오늘을 있게 한 'pin hole' 작업(2003-2008), 'my little princess'(2004), 'motion photo'(2004-2012) 등 다양한 사진영상설치작업을 모처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또한 이미지 과잉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삶과 사진의 진실과 허구에 대해 생각해보는 매력적인 계기가 될 것입니다. ■     -------  

대동여지도 중간보고서


박홍순展 / PARKHONGSOON / 朴弘淳 / photography 2012_0623 ▶ 2012_0819


ⓒ 박홍순_백두대간-금산 #10_젤라틴 실버 프린트_59×115cm_1999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81213a | 박홍순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2_0623_토요일_05:00pm 후원 / 서울문화재단_한미 사이언스 관람료 / 성인 6,000원 / 학생 5,000원 송파구민, 사진관련학과, 단체 10인이상 1000원 할인 미취학 아동, 65세 이상, 장애우, 국가유공자 무료관람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주말_11:00am~06:30pm 한미사진미술관 The Museum of Photography, Seoul 서울 송파구 방이동 45번지 한미타워 19, 20층 Tel. +82.2.418.1315 www.photomuseum.or.kr

자연은 움직일 줄 몰랐다. 그 위에서 밝고 뛰고 흔들며 놀던 유년시절의 추억은 그래서 말간 푸른빛이다, 멀리서만 보던 자연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던 것이 나이 스물, 대학을 입학하면서부터였다. 산을 오르기 시작하면서 그 말없는 고요 안에 숨어 있는 나무들의 속삭임을 듣고, 발밑에서 사각대는 잎새의 감촉을 느끼며, 질척한 흙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산이 뱉어 내는 숨소리를 듣게 되면서, 내가 보고 느낀 살아 잇는 풍경을 잡아두고 싶었다. 나로 하여금 사진을 업(業)으로 삼게 한 가장 큰 충동을 경험했던 시절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름다운 풍경과 그 안에 머무르는 인간의 조화는 마치 보이지 않는 유대로 이어져 있는 자연과 인간의 고리를 연상시켰다. 막연한 감성을 카메라 렌즈로 쫓아가는 작업에 매료되었다.
ⓒ 박홍순_백두대간-남덕유산 할미봉 #08_젤라틴 실버 프린트_40×80cm_1999
ⓒ 박홍순_백두대간-함백산 #01_젤라틴 실버 프린트_75×148cm_1998
ⓒ 박홍순_한강-강원도 양구군 평화의 댐 #02_젤라틴 실버 프린트_96×120cm_2004
ⓒ 박홍순_한강-서울시 광장동 #01_젤라틴 실버 프린트_96×120cm_1999
ⓒ 박홍순_서해안-경기도 안산시 선감도_젤라틴 실버 프린트_50.8×61cm_2010
ⓒ 박홍순_서해안-태안군 학암포 04_젤라틴 실버 프린트_50.8×61cm_2008
이렇게 시작된 작업이 1997년부터 2012년 현재까지 14년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우리 민족의 정신을 잇고자『대동여지도-계획』이란 제목으로 1999년「백두대간」으로 시작「한강」,「서해안」그리고 지금은「남해안」작업을 진행 중이며 뒤이어「DMZ」과「낙동강」,「섬진강」,「영산강」,「금강」으로 이어질 것이고「동해안」과「우리 바다의 섬들」까지 작업을 해야 완성이 되는 오랜 세월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그러다가 통일이 되면 북한 지역과 발해나 고조선의 옛 땅들도 둘러 보아야하는 긴 호흡이 필요한 작업이기도 하다. 우리 땅을 소재로 내 발로 그리고 내 눈으로 보고 느낀 것들을 풀어내고 싶어 시작하였으며 인간과 자연의 관계 그리고 환경과 역사에 대한 물음도 담고자 했다. ■ 박홍순 ■ 한미사진미술관 홈페이지 : www.photomuseum.or.kr 블 로 그 : blog.naver.com/photo_museum 페이스북 : facebook.com/hanmiphotomuseum 트 위 터 : @h_photo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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空+刻


김은진展 / KIMEUNJIN / 金銀鎭 / sculpture 2012_0627 ▶ 2012_0702


김은진_空+刻.1_알마시카_120×74×92cm_2011_부분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11019c | 김은진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2_0627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3층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우리는 자신이 바라는 내가 아닌, 모두가 원하는 내가 되어야 한다. 제 본연의 모습조차 타인의 욕망 어린 시선에 맞춰가야 하는 현실. 그렇게 무언의 폭력 앞에서 희미해져가는 내 실체를 발견한다. 아니, 익숙해져 버린 상처 뒤에 자신을 숨겨 둔 채, 거짓된 웃음으로 세상과 대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채워지지 않는 내면의 빈 공간과 비틀려 버린 육체, 심연을 울리는 망치질 소리와 찢겨진 나무의 흔적이 내 감정과 맞닿아 있다. 벗어날 수 없는 굴레 속에서 영원히 다른 것을 욕망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상처투성이인 것인지, 아니면 그대로 상처 그 자체가 되어버린 것인지 모를 안타까운 모습들, 자신의 이름은 잃어버린 채, 타인에 의해 호명된 무수한 이름들 속에서 아스라이 부서져 가는 자화상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 안에 숨어 사는 이방인들이다. ■ 김은진
김은진_空+刻.1_알마시카_120×74×92cm_2011 김은진_갇히다_홍송_124×115×115cm_2011
김은진_空+刻.2_알마시카_90×110×90cm_2010
김은진_空+刻.3_은행나무_80×160×12cm_2012
김은진_空+刻.3_은행나무_80×160×12cm_2012_부분
We should --------------

the air-풍경 속에 있는 것


고은정展 / KOEUNJEONG / 高銀廷 / painting 2012_0627 ▶ 2012_0703


고은정_What makes the sea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7×130cm_2012
초대일시 / 2012_0627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30am~06:30pm 관훈갤러리 KWANHOON gallery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Tel. +82.2.733.6469 www.kwanhoongallery.com

고은정의 작품세계 "멜랑콜리와 애도, 감춤과 드러냄""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더 중요성을 부여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으며, 그 역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사실상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의해 환기되는 비의적 세계입니다..." 작가를 만나고 온 날 나는 푸코에게 보낸 마그리트의 편지를 떠올렸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온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작가에게 보낼 나름대로의 회답이 떠올랐던 것이다. 사실, 대기의 흔적과 역동을 그리겠다는 작가의 생각은 미술사에서 그다지 낯설거나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인상주의 회화가 빛을 화면에 고착시키려했던 의지와 작가가 대기의 움직임을 화면에 구축해보겠다는 의지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사실, 미술사는 이러한 무모한 도전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의 세계를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고은정_What makes the forest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94cm_2012
최초의 바다, 시선과 응시 ● 바다는 작가의 고향이었다. 고향이라고 반드시 돌아가야 할 곳, 노스텔지어의 대상은 아니다. 유년시절, 바다는 거부할 수 없는 운명같은 것이었을까? 마치 전쟁과도 같았던 유년의 시기에 자신의 몸을 숨길 수 있는 장소는 바다였던 것일까? 바다를 떠난 다음에야 비로소 바다를 그릴 수 있었던 것은 또 무슨 이유인가? 유년시절 바다는 꼼짝없이 눈에 들어오던 주변 풍경 중 하나였다. 바라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바라보아야만 했던 어떤 끈질긴 인연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런 바다풍경을 무시로 바라보고, 바다와 대기와 빛과 구름을 넋놓고 헤아려보면서 존재에 대한 질문의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그것은 무시간 속으로의 여행이었다. 이 때 바다와 대기는 작가 속으로 들어와 물활론적 교섭을 일으켰을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바다와 대기와 자신이 서로 타자가 아닌 하나의 조화로운 합일의 순간들을 맛보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 시간들은 아주 오랜 시간을 거쳐 무의지적인 그림자로, 무의식의 지층에 쌓여만 갔을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본대로 만들어진다. 그 사람이 본 것이 그 사람을 만든다는 것이다. 유년시절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에 노출되는 시기로,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봐야만 하는 것을 보게 되는 시기다. 그런 까닭에 유년시절은 그 자체로 엄청난 무의식의 보고가 된다. 작가에게 있어 바다와 대기는 이미 경험 이전의 세계, 즉 선험이며 체화된 환경이 되었다. 작가에게 익숙한 풍경은 사유를 재촉하지 않으며, 언제나처럼 그저 관조하게 만든다. 여기서의 관조는 바라보는 자신이 바다와 대기로부터 타자화된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상호관계가 맺어지는 바라봄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시선과 응시가 서로 교차하는 역동적 관조쯤 되겠다. 이처럼 고은정은 생각을 통해 표현을 추구하는 화가는 아니다. 만약 그가 생각을 통해 표현을 추구하는 화가였다면 아마도 풍경이 대기 속에서 드러날 때의 수수께끼, 즉 매순간 볼 때마다 새로워지는 비의적 세계를 놓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고은정의 바다는 수수께끼 같은 이미지로 다가온다. 그런 비의적 이미지는 우리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우리가 어디로부터 왔는지 근원적인 질문을 하게 만드는 기묘한 힘이 있다. 그렇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도 작가가 오랜 시간 공들여 화면 속에 대기의 움직임, 즉 바람, 대기, 빛, 수증기, 증발 등의 지속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려는 신념에 가까운 의지때문일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그 움직임은 느슨하지 않고 긴장되어 있으며, 때로는 두려움과 공포스러움의 경지를 드러내기도 한다. 이렇게 작가가 그려내는 대기의 움직임은 프로이트가 말한 삶충동과 죽음충동의 경계를 환기한다. 그 상태는 살고자하는 의지를 죽음까지 밀어붙이려는 주이상스(jouissance: 고통 속의 쾌락)를 생각나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바다와 숲은 작가가 아무리 배제하려고 해봤자 드러나게 마련인 감정의 유출, 즉 심상의 풍경으로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고은정_What makes the sea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94cm_2010
풍경을 존재이게 하는 것, 수수께끼같은 ● 고은정의 작품은 태초의 바다에 던지는 최초의 시선 같았다. 작가가 그린 그림은 아직 풍경도 대기도 아닌, 얼마간 그 경계 어디쯤 서있는 작품 같다. 대기의 흐름과 움직임을 그리기 위해서는 풍경을 버려야하고, 풍경을 얻기 위해선 대기를 버려야하는 것일까? 사실, 바다와 숲과 같은 풍경은 공기와 대기와의 어쩔 수 없는 동거와 공생이 이루어낸 하모니가 아닐까? 어쩌면 이때 마그리트가 푸코에게 말한 것처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경계에서 환기되는 것이 진정 무엇인가에 대해서 숙고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작가는 대기를 그렸으나 대기보다 풍경이 더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상황이 벌어지자, 다음에는 대기만을 더 집중적으로 구사해내고자 풍경을 거세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하여 선과 형태라는 회화의 기본적 요소로 돌아간다. 대기를 대기답게 그려 보겠다는 작가의 의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어떤 대상을 가장 그 존재답게 만들어주는 '아우라'를 부여해주고 싶다는 의지의 표명이 아닐까? 예컨대, 바다를 가장 바다답게 만들어주는 것도 대기요, 숲을 정령이 가득한 생명의 숲으로 만들어주는 것도 대기이다. 그러니까 작가에게 대기는 존재를 가장 존재답게 만들어주는 생명 같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기를 그리겠다는 그녀의 야심은 어떤 세속적 욕망이 아니라, 어떤 존재(보이지 않는 세계의 상징으로서의 신 혹은 절대적 존재)와의 만남을 드러내는 존재론적 사건으로 기록되어야하지 않을까? 있으면서도 없는 것, 없으면서도 실로 강력하게 존재하는 것으로서의 대기는 어쩌면 자신의 실존적 삶의 방식과도 통하는 것이었으리라. 이처럼 존재란 우리가 존재의 경험을 갖도록 우리에게 창조를 요구하는 것이다. 고은정이 사용하는 푸른 색채는 깊고, 어둡고, 진지하다. 아마 작업을 지속하는 동안 화가는 대기와 빛 사이의 광도를 낮추고, 너무 지나치게 눈에 띄는 색조를 누르고, 동시에 전체적 콘트라스트를 낮춘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색채는 절제와 금욕 그리고 애조와 우울 등 푸른색이 암시하는 상반된 심리적 정서에서 별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러니 고은정의 작품에서 멜랑콜리의 인상을 받는 것은 자연스럽다. 색채는 형태보다 훨씬 더 감성적이며 근원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낭만적 감상주의 즉 센티멘탈리즘이나 멜랑콜리만을 드러내는 것은 아닌지 짐짓 두려워하고 있기도 하다. 어쨌거나 색채는 작가의 작품의 또 다른 딜레마다. 색채의 문제가 어떤 식으로든 해결되지 않는 한 고은정의 작품은 그 자신이 그렇게 우려해마지 않았던 감정의 토로에 지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아무리 담담하고 견고해지려고 해도 색채는 더 역동적으로 감성에 호소하기 때문이다. 물론 색과 형태는 따로 놀지 않고, 늘 서로 들러붙어있다고 할 수 있다. 색채가 견고해질 때 형태도 견고해진다는 말이다.
고은정_The road runs through the sky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91cm_2012
멜랑콜리와 애도 ● 라캉에 따르면, 우리들은 모두 무엇인가의 결여이다. 나는 라캉이 말한 그 결여를 애도하는 가장 창의적인 방식이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애도란 슬픔을 충분히 슬퍼하는 것이다. 슬픔을 소진하는 길은 슬픔을 기꺼이 슬퍼해주는 일이다. 수많은 슬픔의 이유가 있겠지만, 슬픔의 가장 큰 본질은 "근원적인 것의 상실"일 것이다. 충분히 슬퍼하면 슬픔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이야말로 애도가 가진 가장 큰 긍정이요, 아름다움이다. 모든 예술가의 작품에는 얼마간 우울과 멜랑콜리의 감수성이 내재되어있고(특히 서양미술사의 근원적 정서는 멜랑콜리이다), 거기에는 충분치 못한 애도가 원인으로 자리한다. 고은정의 작품은 스스로 작품과 개인의 연관성을 부정하고, 아무리 에둘러 표현한다해도 자신의 결여와 상실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작가의 고백은 더 이상 현실적이거나 세속적이지 않으며, 좀더 비의적인 존재론적 사건의 얼개로 짜여져 승화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더군다나 작가가 고집스럽게 천착하고 있는 주제는 보이지 않는 세계이고, 이것은 라캉식으로 표현하면 상상계에 머무르고 싶은 욕망을 드러내는 동시에 상징계의 거부에 다름 아니다. 상징계란 법과 질서와 이성의 세계, 부성으로 상징되는 체계를 가진 세계이다. 대기의 바다와 숲은 그녀가 상징계를 거부하고, 원초적 합일의 세계, 그 무엇도 될 수 있었던 가능성의 세계로 회귀하고자 하는 열망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곳은 아직 상징화되지 않은, 우발적 규칙에 의해 지배되는, 선도 악도 아닌, 신도 인간도 아닌, 차라리 상징과 은유를 뛰어넘는 초월적이며 선험적인 공간이자 세계인 것처럼 보인다. 뿐만 아니라, 작가가 그리는 대기 속 자연은 J. 크리스테바의 코라(chora)를 연상시킨다. 라캉의 제자이기도 한 크리스테바에 오면, 라캉의 상상계는 코라로 진화한다. 크리스테바는 코라를 전-형상적(pre-intelligible)이며, 전-이데아적(pre-formal)이며, 무의식의 최초의 자궁으로 파악한다. 그녀는 코라를 '낯선 공간'으로, 특정한 '본능이 지배하는 곳'이라고 묘사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아는 보통 코라를 비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혼란스러운 것으로 억누르고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유일하게 예술가들은 그런 억압해야만 하는 장소를 그리워하고 맞서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작가에게 대기의 바다, 대기의 숲을 그려보겠다는 열망은 '어디에도 없는 장소' 즉 코라에 대한 메타포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코라는 자신을 영원히 보듬어 주거나 안도하게 해주는 공간일지도 모른다. 그곳은 앞서 말한 것처럼 일종의 생성과 변화가 일어나는, 자아의 가능성의 대한 열린 지표인 것이다. 이 때 코라는 신성이 거주하고, 치유가 일어나는 열린 영역이 된다. 작가가 바다와 숲과 대기를 만들어 마치 정령처럼 숨고, 숨쉬고 싶은 역동적 공간을 만든 것이야말로 그런 공간에 대한 향수를 담은 것이다. 이제는 아주 간단히 그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도약하는 일만 남았다.
고은정_A place filled with something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65cm_2009
이제 예술이 생애를 요청할 때다! ● 예술은 한 인간의 삶과 분명한 연관을 갖는다. 그러나 한 인간의 삶이 그의 작품을 모두 설명해 줄 수도 없으며, 예술이 반드시 삶과 경험 속에서만 탄생하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예술이란 이를 초월한 경지, 즉 "어떠한 특정한 예술작품이 어떤 특별한 생애를 요청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 예술작품은 마치 영원한 획득물처럼, 예술가의 정신 속에 분화되지 않은 채로 존재하기도 하며, 각기 분리된 삶들을 통합하게도 하는 것이다. 좋은 그림이란 처음에는 우리에게 말을 잊게 하고, 그 다음에는 보는 방식을 잊게 한다. 설명이 필요 없는 경지다. 아마 모든 작가들은 그 경지에 대해 고민할 것이다. 고은정 역시 자신의 작품이 그 앞에 선 관객에 의해 완성되며, 스스로 자라나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회화는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앞에 선 관객에 따라 그 스스로 의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사소한, 그러나 거대한(?) 소망이 이번 전시에서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래본다. 더불어 작가의 늦은, 더딘 행보가 더욱더 예술이 요청하는 삶으로 한발짝 다가서는 그런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나는 무엇인가의 결여이다. 나는 그것을 애도하고 있는 중이다"_자크 라캉유경희 ---------------

꼬닥 꼬닥...


음현정展 / EUMHYUNJUNG / 陰賢貞 / painting 2012_0627 ▶ 2012_0703


음현정_Untitled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30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50629d | 음현정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09:30am~06:30pm 갤러리 라이트 gallery LIGHT 서울 종로구 인사동 147번지 미림미술재료백화점 3층 Tel. +82.2.725.0040 www.artmuse.gwangju.go.kr

꼬닥 꼬닥... ● 치열해 보이지 않아도 치열한 것들. 중심이 아닌 풀과 이끼... 자연에서는 꽃과 나무, 열매가 주인공인 듯 여겨지며, 그 주변에 흔하게 산재해 있는 풀이나 이끼는 눈여겨 보게 되지를 않는다. 언제부턴가 예쁘게 핀 꽃송이보다는 보도블록의 좁은 틈새를 뚫고 자라나는 한 포기의 풀과 있는 듯 없는 듯해도 초록의 여러 변주인 양 보이는 작은 이끼가 시선을 잡아끈다. 그들의 존재가 마냥 기특하기만 하다. 중심보다는 주변부와 큰 것보다는 작은 것의 소외된 존재에 더 호감이 가고 아끼는 마음이 써지는 것인지? 이끼는 모든 중심의 가장자리에 있는 이들이며, 소리없는 존재들이며 스스로 화려하지 않음이다. 조용조용 존재하는 것들이며 요란떨지 않는 주인이다. 하지만 보여지는 것보다 이들의 생명력과 번식력은 맹렬하고 세다.
음현정_Untitled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연필_130×97cm_2012
음현정_풀처럼 난처럼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연필_73×100cm_2011
음현정_풀처럼 난처럼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연필_130×130cm_2011
나의 상상적 은유는 이 지점에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조용한 익명의 존재들의 부지런하고 치열한 움직임. 그런 이끼 자체의 존재성을 드러내고자 초록의 이끼만을 커다란 원형의 형태로 놓아 본다. 또, 단단한 돌의 틈새에 연약한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는 풀의 가닥을 그려 본다. 이들의 연약하면서도 강렬한 생명력의 표현은 상처를 수습하려는 은유적 방법이기도 하다. 풀, 돌, 이끼들이 만나 버무려내는 여러 이야기들. 그러면서 '풀처럼 난처럼' 진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시(詩)를 짓느라 얼굴이 많이 상하기 보다는, 시(詩) 자체가 되기를 바라는 작업의 과정. 몇 년 작업을 쉬는 사이 안으로 안으로 쌓여지는 게 있었나보다.
음현정_풀처럼 난처럼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33.4×24cm_2011
음현정_Remembrance of her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8×26cm_2012
음현정_주문 呪文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30×30×4.5cm×2_2012
그런 꺼리가 있으면 작품으로 편하게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억지로 끄집어내려 용쓰지 않아도, 또 너무 다듬고 정리하려 하지 않아도 작품이 되어 주는 자연스럽고 순한 경우가 생긴다. 아마 그러기까지는 '발효와 숙성'의 시간이 어느 정도 필요할 테지만. 이번 전시는 좀 그런 편이다. 살아가면서 느낀 한·둘의 이야기가 그림이 되는. 7년만의 개인전 title이『꼬닥 꼬닥』인 것은 그렇게 그림과 일상이 천천히 함께 익어가길 바라는 때문에서일 것이다. (2012. 6.) ■ 음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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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제목: 7월이 너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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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dowy figures






장양희展 / CHANGYANGHEE / 張樣熙 / printmaking.installation 2012_0627 ▶ 2012_0710




장양희_Female #1_혼합재료_90×70×9cm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11210a | 장양희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2_0627_수요일_05:00pm

후원 / 서울문화재단_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월~토요일_10:30am~06:30pm / 일요일_12:00pm~06:30pm

갤러리 그림손 GALLERY GRIMSON 서울 종로구 경운동 64-17번지 Tel. +82.2.733.1045~6 www.grimson.co.kr




지표도 좌표도 없이 떠도는 인간들 ● 인간의 얼굴을 이루는 수많은 해부학적 심리적 판들을, 잠재적 평면이 중첩된 예술인 판화와 교차시키는 장양희의 작품에는 이 시대의 보편적인 얼굴이 드러난다. 장양희가 가시화한 이 시대의 얼굴은 익명적이다. 여기에서 인간은 드러난다기보다 사라진다고 해야 옳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개인과 개성이 중시되는 시대에 예술에 의해 포착된 얼굴의 실상은 역설적이다. 이러한 익명성의 세계는 '세계가 더 이상 세계가 되기를, 또한 인간이 인간되기를 그만두고 있다'(장 뤽 낭시)는 데서 온다. 그러나 익명적 구조에 의해 인간이 사라졌다고들 하지만, 구조를 만들고 동시에 구조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바로 인간이라면, 인간은 여전히 현실의 바로미터가 되는 것이고, 그래서 여전히 이야깃거리가 많은 소재이자 주제가 된다. 작품소재가 된 인물들은 작가의 지인들도 있지만, 대부분 전시장이나 쇼핑몰 등을 지나가는 대중들이다. ● 전시장 한 모서리를 차지하는 설치작품 [crowd]는 투명 필름 위에 디지털 프린트된 대중들의 모습이 블라인드처럼 만들어져 3차원 공간 속에 드리워진다. 그들은 지표도 좌표도 없이 공중에 붕 떠 있다. 'shadowy figures'(전시부제)전을 관람할 관객들 역시 투명한 구조 속에 스며든 대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대중들은 어떤 시공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그 존재감은 희미하다. 그들은 잘게 잘린 투명 필름처럼 유령같이 떠돌면서 무엇과도 쉽게 결합하고, 쉽게 분리된다. 예술작품이라는 형식 속에서 단순한 조합은 융합으로 고양되기를 기다린다. 실존주의자들은 조합과 융합이라는 두 가지 형태로 사회성을 정의한다. '조합은 단순히 다수의 개인들의 모임이며, 융합은 동요 가운데 있는 전체 속에서 스스로를 잃어버리거나 스스로 고양되는 자유 의식'(사르트르)이다. 그러나 뜨거운 역사적 사건들이 점차 사라지는 차가운 일상의 시대에, 이전 시대의 실존주의자들의 희망은 더욱 거리가 느껴진다.
장양희_Male #1, Female #3_콜라그래피_각 90×68cm_2012

그 옆 벽에 걸린 작품은 대중들을 그림자처럼 보여준다. 네가티브 필름처럼 흑백이 반전된 군중들이 검은 판 위에 떠돈다. 6개로 나뉘어진 검은 포맥스 판들은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연속될 공간을 예시한다. 그림자처럼 보이는 군중들은 감시 카메라나 열 감지 기능이 있는 첨단 무기의 시야에 들어온 피사체처럼 단지 몇 개의 기호로만 구별될 수 있는 희미한 윤곽을 가질 뿐이다. 빛과 그림자 속에 잠겨있는 대중들 속에서 장양희는 고립된 존재들을 본다. '대중 개인주의'라는 말도 있지만, 이 고립된 존재는 주체는 커녕 개인조차도 될 수 없을 만큼 희미하다. 자율적 주체나 내면적 개인이란 여전한 희망사항으로 남아있다. 그 희망이 과연 정당한지도 알 수 없다. 실은 주체나 개인 자체가 재검토되어야 한다. 모리스 블랑쇼는 [밝힐 수 없는 공동체]에서 고립된 존재로서의 개인이란 하나의 추상에 불과한 자유주의의 허약한 개념으로, 표상된 대로의 실존일 뿐이라고 본다. ● 그에 의하면 가장 개인적인 것은 한 사람이 간직한 자신만의 비밀로 남아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가장 개인적인 것은 개인이라는 테두리를 부수고 나눔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인간 실존이 근본적으로 부단히 의문에 부쳐진 실존이라면, 인간 실존은 그 자신으로부터 자신을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만을 이끌어낼 수 있을 뿐이다. 어떤 가시적인 것의 공유를 최고의 가치로 삼을 수 있는 공동체는 없다. 결국 유한한 자들의 만남이 문제가 된다. [밝힐 수 없는 공동체]와 대화적 관계를 이루는 [마주한 공동체](장 뤽 낭시)에서는 유한성을 '완전한 내재성의 불가능성'으로 규정한다. 낭시에 의하면 완벽히 스스로에게 정초하며, 자신에게 갇혀있고 자신의 존재를 결정할 수 있는 완전한 자율적 개인이란 없다. 인간은 항상 자기 아닌 자에게 열려 있을 수밖에 없다. 인간은 자유의 존재가 아니라, 타자에 의해 제약된 존재이다. 이렇게 제약된 유한한 존재가 발견하는 의미가 있을 뿐이다.
장양희_Faces_혼합재료_각 45×45×6.5cm_2012

장양희의 작품에서 명암의 대조는 얼굴에 포커스가 맞추어진 작품에서도 연속적이다. 아크릴 판을 레이저로 파서 얼굴을 드러나게 한 작품인 [faces] 시리즈는 뒤가 터진 아크릴 박스 안에 하나하나 얼굴 초상이 안치되어 있다. 최초의 사진은 여러 단계를 거친 재현의 결과 얼굴의 실루엣과 등고선만 남은 채 흐릿하게 변모되어 있다. 특히 레이저 인그레이빙(laser engraving) 과정을 거치면서 생겨난 노이즈는 마치 바코드처럼 얼굴 위에 가로줄, 또는 세로줄을 죽죽 그어 놓는다. 복사의 복사 과정을 거치면서 원본은 흐릿해진다. 그러나 인간의 얼굴을 상대편 인간에게 가장 민감한 표면으로 다가오기에, 그 와중에도 대략 성별, 나이, 차림새, 기분 등이 감지된다. 인물 위를 가로 지르는 선들은 작가가 완전히 제어할 수 없는 우연의 산물이자, 입력된 정보가 정확히 출력되지 않은 기계적 결함의 산물인데, 역설적으로 그것이 각각의 개별성을 담보해 준다. ● 장양희의 작품은 개인의 의지를 벗어난 이러한 예기치 못한 균열과 틈 속에서 또 다른 의미와 가치를 발견한다. 검은 아크릴 판에 새긴 168개의 초상들로 거대한 기둥을 만든 작품은 레이저로 많이 파인 허연 부분이 어느 각도에서 보면 더 정확한 생김새를 알려준다. 부조처럼 얇게 파인 판들은 네거티브/포지티브 이미지가 교차되듯이 시각성과 촉각성을 상호보완적인 것으로 만든다. 이러한 디테일에도 불구하고 개별성을 무시하는 기계적 배열방식은 공중에 붕 뜬 사람들처럼 지표와 좌표를 삭제해 버린다. 인간의 물적 실체를 최대한 비운 작품은 종이 위에 찍은 콜라그래프(collagraph)이다. 초상 위로 쓱쓱 지나간 붓 자국은 얼굴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지우는 듯하다. 바니쉬를 두껍게 바른 부분은 레이저가 팔 수 없기에 얼굴을 가로지른 거친 붓 자국이 그대로 남은 것이다. 얇은 종이에 찍어 하늘하늘하게 늘어뜨린 전신상은 익명성과 비실체성이 더 강조되어 있다. 가방을 맨 여학생인 듯한 뒷모습인데, 여러 장의 종이로 연결되어 있고 두 이미지도 약간 엇겨 배치되어 있다.
장양희_Face_종이에 레이저조각_240×180cm_2012

인물을 돌려세우고, 지우고, 조각조각 잇고, 엇기는 과정들의 총체적 효과는 실체가 비워진 인간상들이다. 더 나아가 작가는 레이저로 인간상을 태워버리기도 한다. 종이 위에 레이저 인그레빙을 한 초상은 8개의 같은 크기의 패널로 나뉘어 합체되어 있는데, 확대 복사한 이미지에 또 한번의 기계적 과정을 거치면서 노이즈는 극대화되고 미세한 재들로 표면이 덮인 형상이 된다. 그것은 인간의 죽음을 예시한 철학자 미셀 푸코가 말했듯이, 모래 위에 새겨진 인간상처럼 밀려오는 바닷물에 쓸려가 버릴 듯하다. 작품들의 면면은 이미 쓸려가는 와중에 놓여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라짐들이 꼭 부정적인 것만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의 사라짐을 열렬히 환영하는 이들도 있다. 근대의 인간중심주의는 현대철학에 의해서 거세게 비판받은 바 있다. 그러나 장양희의 작품은 부정도 긍정도 아닌 무덤덤한 중성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 뤽 페리와 알랭 르노는 [68사상과 현대 프랑스 철학]에서, 인간 존엄성의 옹호자 혹은 해방의 기수로서 자처해온 근대 철학의 인간중심주의(humanism)적 발상이 오히려 억압의 원인으로서, 혹은 그 공범자의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1968년 이후의 철학은 반(反)인간중심주의의 물결을 이루었다고 진단한다. 저자들은 1960년대 철학의 집합 신호를 주체성에 대한 해체로 본다. 이러한 철학이 아니더라도, 현대의 일상생활은 주체의 자율성이란 하나의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매 순간 확인시켜 준다. 뤽 페리는 [미학적 인간]에서도 근대사회의 논리는 인간들 사이의 근본적인 평등 공리에 의해 기초가 이루어진 통합의 논리일 것이지만, 근대의 보편적 주체는 사이비 개인화를 통해 결국 예속과정으로 전락했다고 말한다. 현대 철학은 인간중심주의와 주체성에 대한 문제 제기들로 가득하다.
장양희_Females_콜라그래피_각 240×68cm_2012

미술에서도 인간을 완전성의 척도로 삼은 고전주의는 미술 학원의 무익한 석고상에서나 발견될 뿐이다. 장양희의 작품에서 인간은 개별적이든 다수로 존재하든 익명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익명성의 바탕에는 작품 제목에 포함되어 있듯이, 군중이 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귀스타브 르봉은 [군중의 심리학](1895년)에서 군중 시대의 도래를 근대 과학과 산업의 발명에 의해서 존재와 사고의 완전히 새로운 조건들이 창조되었다는데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과학과 산업은 인간을 개별적 입자로 만들고, 이 입자들의 이합집산을 추동하는 원리는 결국은 경제적 합리주의지만, 합리주의의 이면에는 비합리주의가 깔려 있다. 극우파인 르봉은 군중의 무의식을 강조했고 도래하는 파시즘을 준비했지만, 오늘날의 파시즘은 편집증에 빠진 광적인 지도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보화 사회의 익명적 구조에 의해 작동된다. ● 사회학자들은 구조를 '주체 없는 과정'으로 정의하며, '사회적 질서란 결국 소유권의 배분에 근거하는 표상에 따라서 각각의 행위자들이 계급화 시키고 계급화 되어가는, 분류화 시키고 분류화 된 판단들의 총합에 불과한 것'(피에르 부르디외)이 되었다. 인간 주체라는 근대의 강한 개념은 개인으로 와해되며, 이러한 와해의 바탕에 대량생산 및 소비사회, 그리고 대중매체가 있다. 고독한 군중, 대중 개인주의 등은 집단적이지도 않고 개별적이지도 않은 모호한 대중의 상황을 표현하는 말이다. 장양희에게 익명적 대중은 최초의 참조대상으로부터 점차 멀어진다. 인간은 그 원초적 기의가 배제되고 흔적들로 남는데, 흔적을 만드는 것은 사진, 포토샵, 디지털 프린트, 디지털 인그레이빙 같은 미디어이다. 오늘날 인간은 인간과 맞대면하기보다 다양한 미디어에 의해 간접적으로 매개된다. 그러나 인간 사이를 이어 주고 채워주는 미디어는 투명하지 않다.
장양희_Crowd_혼합재료_180×455cm_2012

장양희의 작품에서 이 불투명성은 최대한 강조되고, 그것이 오히려 인간적 흔적을 강조한다. 인간은 축소되고 축소되어 언어와 언어, 구조와 구조, 제도와 제도 사이의 틈과 파편들 속에서 자신의 입지를 마련한다. 상징적 구조의 산물인 주체가 가질 수밖에 없는 분열성, 이에 함축된 근본적인 타율성은 작가가 가시화하는 인간상에 편재해 있다. 그러나 이전에 강하게 확신되었던 인간 본질과의 불일치나 차이는 허무주의를 의미하지 않는다. 자기 동일성을 이루는 것은 동일성이 아니라, 차이이기 때문이다. 차이는 동일성 바깥에 존재하지 않는다. 데리다에 의하면 '사유해야 할 것은 동일성의 밖에 놓여있는 은밀한 차원이 아니라, 동일성의 한가운데 놓여있는 차이의 작용 또는 유희'이다. 장양희의 작품에서 서로 다른 것을 만들어내는 것으로서의, 그들을 서로 구별해주는 것으로서의 차이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은 우연이나 실수의 흔적들이다. ● 흔적은 '토대도 근본적인 원리도 기원도 아니며'(데리다), 차이의 결과이다. 차이는 '무한한 또는 무한대로의 시간화 작용'(데리다)이다. 장양희의 작품에서 시간화는 입력된 속도를 정확히 재현하지 못하는 디지털 인그레이빙 과정에서, 그리고 설치를 통해 만들어진 연극적 무대에서 관철된다. 인간에 내재된 동일성이 차이로 해소, 또는 해체되는 과정에 깊이 개입되는 것은 시간성이다. 절정의 순간, 한 공간에 고정된 기념비적 인간상은 덧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 잠기게 된다. 장양희의 작품의 독특한 점은, 이러한 시간성이 영상이나 서사가 아니라, 아크릴 판이나 종이 같은 공간적 매체들 위에서 구현되었다는 점에 있다. 내용적으로는 동일성이 아닌 차이를 통해 개인과 공동체에 접근한다는 점이 독특하다. 장 뤽 낭시는 [마주한 공동체]에서 다수라는 말은 명백하게 세계인민의 다수성 뿐만 아니라, 상위의 단일체제를 벗어나 차이들을 확산시키며, 소규모의 그룹들, 개인들, 무리들, 주민들 내로 흩어져 퍼져 나가는 다양성을 환기한다고 지적한다.
장양희_Crowd_아크릴판에 레이저 조각_336×60×60cm_2012_부분

그 점에서 다수는 대중 혹은 군중이라 여겨졌던 것을 교정하고 변형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다수의 다양성이 형태화(구조화) 되기를 기다리는 대중이 아니라, 산종(종자가 갖는 증식성), 또는 분산화(불모의 파편화)같은 흩어짐 가운데 가치를 갖는다. 이러한 흩어짐 속의 군중의 익명성은 더 이상 부정적이지 않다. 익명적 얼굴 또는 인간이라는 소재나 주제의 차원을 넘어서 작가가 만들어 내는 작품 자체가 익명적이다. 블랑쇼는 [밝힐 수 없는 공동체]에서, 진정 중요한 것은 모르는 자와의 관계를 전제하고 있으며, 어느 누구도 겨냥하고 있지 않는 작품의 익명성이라고 본다. '부정의 공동체, 어떤 공동체도 이루지 못한 자들의 공동체'(바타이유)들을 다시 세우는 것은 작품의 익명성이다. 개인, 주체로서가 아니라, 익명적, 비인칭적 관심으로 참여한 관객들이 거기에 있다. 그(녀)를 알지 못하지만 도처에서 그(녀)를 만날 수 있다. ● 장양희의 작품에 나타난 인간들의 비개인적성, 비인칭성, 중성성은 작품 스스로에게도 해당된다. 변화된 주체나 개인의 상황은 작가에게도 해당되기 때문이다. 작품이란 다만 '모두를 위한 말이자 각각을 위한 말이기에 어느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말, 즉 언제나 도래해야 할 무위의 말이 울려 퍼지는 공간'(블랑쇼)을 가리킬 뿐이다. 의미 전달에 내재된 환상, 즉 의미가 발신자로부터 출발하여 수신자에 이른다는 투명성이나 합일성의 가상은 무너진다. 현대 예술이 그리는 인간상은 특정한 주체가 아닌, 유한한 무명씨이다. 이 무명씨는 폐쇄되어 있지 않고, 따라서 내재성도 없다. 개인의 모든 특수한 속성으로부터 벗어난 인간의 현전을 다루는 장양희의 작품에는 이상적, 본질적 인간(성)의 모델이라 불리 우는 것들이 사라진다. 더불어 세계와 합일 할 수 있다는 낭만주의적 가상, 그리고 절대의 상태로 고양될 수 있다는 오류와 환상만을 낳기 쉬운 낭만적 예술가상 또한 사라진다. ■ 이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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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현대작가






2012_0627 ▶ 2012_0723







참여작가 권기동_권여현_김동연_김태진_박영근 서용선_오경환_윤종구_이강우_이계원 이상봉_정상곤_조병왕_조소희_허정수

주최 / 동덕여자대학교 박물관_동덕아트갤러리 기획 / 동덕여자대학교 박물관

초대일시 / 2012_0627_수요일_11:00am 관람시간 / 10:00am~06:00pm

동덕여자대학교 박물관 DONGDUK WOMEN'S UNIVERSITY MUSEUM 서울 성북구 하월곡 2동 23-1번지 여성학센터 4층 기획전시실 Tel. +82.2.940.4231~2 museum.dongduk.ac.kr

초대일시 / 2012_0627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30pm

동덕아트갤러리 THE DONGDUK ART GALLERY 서울 종로구 관훈동 151-8번지 동덕빌딩 B1 Tel. +82.2.732.6458 www.gallerydongduk.com




『2012 현대작가전』이란 제목은 그것이 주는 복고풍의 인상 때문에 우선 정겹다. 요즈음엔 이런 식의 표제어를 단 전시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현대'라는 구분 개념이 안고 있는 모호함 때문이기도 할 테고, 그것이 야기시키는 복잡한 심경 때문이기도 할 터이다.
권기동_From Nowhere_캔버스에 유채_130.3×130.3cm_2012 권여현_Bat-rhizome forest_캔버스에 유채_227×181cm_2011
김동연_flat building GB_알루미늄에 다크그레이 우레탄_53×73.5×0.3cm_2011
김태진_웅크리고 가려라-version 1 (Duck and Cover-version)_단채널 비디오_00:02:30_2012
박영근_에밀졸라와 그의 사과_캔버스에 유채_217×116.8cm_2012
서용선_목장집 아저씨_캔버스에 유채_200×140cm_2004
오경환_Street3_캔버스에 유채_145.5×112.1cm_2011
윤종구_Blueflower 11-02_캔버스에 볼펜_91×116cm_2011

전시의 표제어에서 짐작이 가듯, 이 전시를 구성하는 열다섯 개의 텍스트들을 긴밀하게 묶는 어떤 내적 연결고리를 확인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근자에 스스로 대학을 떠난 서용선을 제외한 참여작가들은 현재 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치는 교수들이다. 몇 명을 제외하면, 모두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에서 동문수학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는 아니지만 참여작가 다수가 '캔버스 회화(Painting on canvas)라는 전통적인 매체 방법론의 수용이나 확장이라는 조형적 입장을 공유한다는 점도 이 전시를 관류하는 하나의 문맥임이 분명하다.
이강우_Labrador Retriever_디지털 C 프린트_120×158cm_2009
이계원_Allotropism(同質異形)_캔버스, 나무에 아크릴채색_56×212.8cm_2012
이상봉_무제-1213 Untitled-1213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163cm_2012
정상곤_Skin deep-풍경읽기, 숲으로 5433_캔버스에 유채_100×240cm_2012
조병왕_기하학적 칼 드로잉 10-01-09_ 폴리에스터베이스 초 광택 컬러사진에 나이핑, UV 바니쉬_185×118cm_2009
조소희_손_재봉실, 실패, 가변설치_2012
허정수_red hair_캔버스에 유채_224×109cm_2012

이러한 지평이 『2012 현대작가전』의 소통적 의미를 구성한다. 『2012 현대작가전』은 어떤 농밀한 미적 신조나 문제의식에 기반하는, 그럼으로써 관객과의 첨예한 소통이나 역동적인 반응이 기대되는 성격의 전시는 아니라는 맥락에서다. 관객들은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의 컨텍스트를 포착해내야 하는 통시(通時)적 접근의 부담을 던 채, 하나의 텍스트에서 다른 텍스트로 각자의 호흡에 따라 이동할 수 있다. 이웃하는 것들과의 상관성을 각각의 텍스트에 투사하는 해석적 복잡성으로부터 면제되는 것, 그것이 이같은 소박한 취지의 전시가 의도하는 미덕일 것이다. 각각의 텍스트들이 외딴섬처럼 분절되는 것을 완화하거나 보완하는 어떤 '상호텍스트(intertextuality)'적 장치가 배제되는 통상적인 누락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전시를 준비하고 만드는 과정은 그것의 규모나 성격과 무관하게 고단한 노력을 요하는 일이다. 그러한 과정을 겪은 끝에 만들어졌을 『2012 현대작가전』의 개최를 축하하는 바이며, 참여 작가 모두에게 이 전시를 위해 들인 수고를 넘어서는 큰 성과가 함께 하길 바란다. ■ 심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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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퍼런스와 드로잉 REFERENCE + DRAWING




나지석_박무현_신지원_정은경展 2012_0625 ▶ 2012_0630 / 일요일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09:00am~07:00pm / 일요일 휴관

스페이스 제로 SPACE ZERO 서울 종로구 홍지동 7번지 상명대 미술관 Tel. +82.2.2287.5302 web.smu.ac.kr/kpainting



무엇을 그릴 것인가? 무엇을 만들 것인가? 작업이란 무엇인가? 아마도 수많은 작가들이 성숙해 가는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내던지는 질문일 것이다. 하지만 무인도가 아닌 이 사회 속에서 무언가를 그린다는 행위에는 오로지 작가의 개인적 감정만이 작용하는 것이 아닌 그것을 감상하는 대상들을 위하는 서비스 정신도 포함되어야 하는 것이다. 즉, 볼만한 것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볼만한 것'이란 대체 무엇일까.
나지석_FOUR COLUMN_종이에 목탄_73×55cm_2012
박무현_영등포_한지에 목탄_50×110cm_2012

'볼만한 것'이란 '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써 가치판단의 문제를 내포한 말이다.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서있는 이곳에서 그것을 보아야 하는 가치가 발생해야 한다는 말로써, 그것의 가치를 따져보아야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역사주의적 의미를 지닌다. 우리가 전혀 알 수 없는 대상에 대해서는 그 가치를 따져볼 수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며, 전혀 알지 못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그려내야 할지도, 만들어 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뜻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즉, 필연적으로 작가의 작업이란 소재나 관념의 문화적 기억에서부터 나오게 되는 것이며, 이 기억들은 모두 텍스트나 다른 형태의 예술, 또는 물건의 형태로 저장되어 있다.
신지원_수집된 선인장_종이 컷팅_18×28cm_2012
정은경_단양_종이에 목탄_35×25cm_2012

'작업한다'는 말의 의미는 이러한 '저장물'로부터의 수많은 대화와 인용, 재해석을 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세상의 수많은 '저장물'들 중에 작가의 관심사와 모호한 호기심의 시야에 들어온 것들은 모두 레퍼런스로써 가치가 생겨나게 된다. 움베르토 에코가 말하기를, '책이란 그 전의 책들의 인용'이라고 한다. 이를 빌려 말하자면, 시각매체를 다루는 작가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작업이란 그 전 작업들의 인용'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러므로 작가들이 선택한 자신들의 레퍼런스와 드로잉을 함께 본다는 것은 작업의 매커니즘을 들여다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것은 작가들의 모호한 호기심만큼 이나 모호한 작업물을 이해하는 데에 약간의 힌트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 나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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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 0˚ 공간 0˚




이명아展 / LEEMYOUNGA / 李明娥 / painting 2012_0627 ▶ 2012_0703



이명아_Space 0˚ #1_캔버스에 유채_90.9×72.7cm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01129i | 이명아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09:30am~06:30pm

갤러리 라이트 gallery LIGHT 서울 종로구 인사동 147번지(인사동길 11-1) 미림미술재료백화점 2층 Tel. +82.2.725.0040 www.artmuse.gwangju.go.kr



공간 영도 ● 이명아의 작업은 시지푸스의 신화처럼 구조의 한계에서 오는 무력감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구조의 절대적 견고함이 결국 창이 없는 닫힌 공간으로 나타나고 어디에서도 출구를 찾을 수 없는 숨 막히는 고요를 만들어냈다. 작가를 따라 여기에서부터 시작해보자. 그 공간은 우리가 늘상 보아오던 그 곳이나 막힘과 차단을 통해 작가의 심리적 경계를 보여주는 폐쇄적 공간으로 드러난다. ● 최근 작업에서 눈에 띄는 변화는 그 닫힌 공간 안에 또 다른 차원의 공간을 연결시킨다는 점이다. 출구가 생긴 것일까? 깊은 절망의 나락에서 출구를 향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일까? 하지만 그 출구는 알 수 없는 엉뚱한 공간으로 이어지면서 우리의 공간감을 흔들어 놓는다. 그것은 새로운 공간이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하며 동시에 우리 인식 안에 있던 공간이 사라지는 순간을 보여주기도 한다. 또한 인위적으로 재배치한 공간작업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장치 -'공터, 계단, 구조물, 분리선, 횡단선, 문, 커튼...'-를 통해서도 나타난다.
이명아_Space 0˚ #2_캔버스에 유채_145.5×112.1cm_2012
이명아_Space 0˚ #3_캔버스에 유채_72.7×90.9cm_2012

내부에서 창을 통해 외부를 보고 있을 때, 창이라는 경계를 통해 본 외부는 그 창 밖의 세계와 창 안의 세계를 나누며 현실이 연속되지 않는 또 다른 현실의 느낌을 우리에게 부여한다. 창문 뒤에 안전하게 있을 때 외부의 대상은 또 다른 양상으로 전치된다. 그것은 비현실적인 어떤 풍경으로 생경하게 다가온다. 나는 객관적 거리두기를 유지하며 관찰자로서 외부를 보게 되고 그 때의 외부는 그대로 보여 지는 외부가 아닌 허구적인 것으로, 공간의 틈새로, 비장소로 다가오게 된다. 우리는 벽이나 담을 쌓고 내부를 만들자마자 외부에서 관찰할 때 볼 수 있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보게 된다. 내부에서 우리의 환상을 통해 대상에 거리를 두고 보게 되는 것이다. 그 공간은 오직 우리의 욕망이 접합될 때라야만 가능한 것이 아닐까? 환상의 대상은 환상 장면 그 자체이며 그 내용이 아니라 그것을 목격하는 불가능한 응시이다. 몇 마디의 말로, 혹은 몇 가지의 금지로 불가사의하게도 그 공간은 환상의 공간으로 변형되며 공간 자체를 다른 장면으로 보여주게 되는 것이다.
이명아_Space 0˚ #4_캔버스에 유채_72.7×90.9cm_2012
이명아_Space 0˚ #5_캔버스에 유채_72.7×90.9cm_2012

익숙한 공간이 갑자기 낯선 공간으로 인지되는 섬뜩함, 내가 숱하게 지나다녔던 그 길이 순간 전혀 알 수 없는 길처럼 느껴질 때의 공포, 그 비현실감은 상징적 세계에서 문득 자신의 장소를 상실했음을 나타내며 우리 앞에 완벽하게 존재하는 언어 현실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틈이다. 의미가 사라진 세계 속에서의 표상이 의미의 간극을 드러나게 할 수 있다. 이 간극이야말로 객관적으로 빈 것을 감추려는 가상으로 존재하던 공간을, 위협적으로 내게 다가오는 주관적 공간으로, 사건이 개입되는 오점으로서의 공간으로 드러남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명아_Space 0˚ #6_캔버스에 유채_90.9×65.1cm_2012
이명아_Space 0˚ #7_캔버스에 유채_91×118cm_2012

하나의 공간이 허물어지고 또 다른 공간이 발생하는 체험, 이것은 현실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 있는 틈새와 공백이며 이때 공간 속의 구조물과 사물들은 주체의 응시를 위해서만 '거기에 있었음'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이리라. 단일한 폐쇄적 공간에서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는 상상력이 잠재하는 공간으로의 변환은 반드시 이전 공간을 무력화하는 중지와 폐허 속에서만 가능하다. 이것이 이명아가 이야기하는 영도의 공간이다. 기존의 공간(질서)을 규정하던 것들을 비판하고 성찰하며 그 공간에 저항하고, 우리가 알던 기준들을 파괴하고 맨땅의 상태로 만드는 것, 이때라야만 인간은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대상과 자신을 구분할 수 있게 될 것이며 닫힌 공간을 재규정하는 주체로 설 수 있게 될 것이다. ● 구조화되어 있던 공간을 반성하고 해체하여 재규정하는 것, 그 맨땅에서 재구조화를 통해 새로운 공간으로 실체변환 하는 것, 폭력적인 상상력으로부터 새 질서를 틀 지우는 공간규정, 이것이야말로 인식의 틀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가능성을 열어젖히는 작업일 것이라고 믿으며 이명아의 작업이 공간영도에서 출발하는 상상력의 공간을 창조해내길 바란다. ■ 에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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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영 ˝꼴라쥬 놀이˝



트렁크갤러리(02-3210-1233)
2012-05-31 ~ 2012-06-27
2012-05-31 오후 17시

트렁크갤러리의 6월 전시는 김시영의 “꼴라쥬 놀이”전 이다. 그녀가 본 21세기 세계정치현상에 말 걸기 작업이 아닌가 싶다. 여성적 감성으로 바라본 온 지구 곳곳이 글로벌이라는 명목으로 통합하며 현대적 제국주의로 시스템화 되어 가는 이 지구현상들이 억압받으며, 이상한 몰골로 변화되어가는 양상에, 그녀가 절대로 이해 할 수 없고 용납 안 되는 그 비 정상적인 실체들에 대한 이야기를 시각화 시켜, 거리 두기와 새롭게 소통하기라는 방법의 하나를 유머로 풀어보려 한다.
그녀의 독일 유학생활은 그녀에게 다양한 동시대의 미디어뉴스를 접하는 계기였고, 그것들이 쏟아내는 그 많은 일상적 이미지들은 그녀에겐 큰 충격이었다고 한다. 독일인들이 선호하는 휴가지중 한 곳은 변방 국가 밀항인들의 밀입국 지역이었다고 한다. 불법 밀입국자들을 향한 총성과 그 곁에서 무심히 자신의 휴가를 즐기는 사람들, 누군가는 처절한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극한의 사투를 벌이는 사이 지척의 거리에서의 또 다른 누군가는 한가로이 휴가를 즐기고 있는 그 무섭고도 아이러니한 풍경이 그녀에게는 크나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세상 바라보기의 주체화가 시작된 곳이며, 관점형성이 시작된 계기였고 따라서 정체성도 구축되어 그녀 나름의 판단과 비판이 가능해진 계기이기도 하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모든 정보들을 채집하기 시작 했다. 그리고 그 재료들 재조합 하는 과정에 자신의 시각과 관점을 제시하는 작업형식 “꼴라쥬 놀이” 작업방향을 찾아냈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이 한국이라는 나라에 갇혔었다면 느낄 수 없었던 오늘의 지구 현상을, 유학생이라는 마이너리티(minority)로의 입장경험을, 그리고 많은 다수 인종과의 교류를 통해 그들 각각의 양태를, 그 다양한 정치, 경제, 종교, 문화의 차이가 차별을 받는 현장경험들이 그녀 자신을 동시에 그리고 다각적인 주체적 사유체계를 구축하게 해 주었다고 말 한다.
그녀가 본 온 세계 곳곳은 그 다양함을 유지하지 못하고, 거대한 하나의 시스템system화된 그 비정상적이고, 불합리한 세계의 정치, 경제, 구조들에 의해 통합되거나 통제 받는 주체들이 주체임을 포기 하거나 포기하는 양태들에 말 걸기와 태클(tackle)걸기를 하고 싶어서라 한다.
오늘의 글로벌시스템 현상화에 묶여 조종당하는 소수민족들, 거대함 앞에 초라한 존재들, 그리고 무력하기 그지없는 자기결핍적 전 지구동시대인들을 대변 하기 위해서라 한다. 그 아이러니(irony)함을 공격하고 노출시키고 전복하기 위해서 그녀만의 유머적 어법으로 시각화 작업을 하고 있다.
생존과 죽음, 전쟁과 폭력 그리고 파괴와 건설을 일삼는 ‘이 세기의 공간’이 지배자와 피지배자들로, 그 양면성적 양상들은 공포의 실체로 드러나 많은 존재들에게 고통의 요인이 되었다. 이 거대화된 시스템의 조정을 받는 존재들은 자신이라는 주체가 주체인지를 모르고 그저 방관자적 삶을 살아가고 있어 그 현상은 그녀를 분통터지게 했던 것 같다. 하여 그녀는 프레임 안에 그 다양한 현장 속 사람들의 이야기들 그 이미지들을 적절히 배치해 돋보이게 했다. 그리고 또 다른 프레임을 그 밖으로 배치해 그 같은 지구현상들을 무심히 바라보기만 하는 소극적이나마 비판적 관객들의 뒷모습들을 배치 시켜 의미화 시켜냈다.
그 많은 양면성들의 충격으로부터 생긴 화두를 의도 있게 표현해 내기 위해서 그녀는 “입체 꼴라쥬” 라는 입체적 서술방식을 선택했다. 이미지와 이미지들이 겹겹의 거리를 유지하게 해 약 16센치로 설치된 이 ‘입체 꼴라쥬’ 작업 형식은 “for Wall Décor”라는 또는 “Traumatic stresss” 라는 제명으로 갤러리 벽에 걸린다. 그녀만의 시각화 형식구축이 된 작업이다.
그래서 그녀만의 이 형식은 다시 관객들에게로도 질문을 던진다.
당신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고…

트렁크갤러리 대표 박 영 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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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범 개인전 : 이웃이라는 사물



송은아트큐브(02-3448-0100)
2012-05-31 ~ 2012-07-03
2012-05-31 오후 18시

김재범 개인전 <이웃이라는 사물>
잃어버린 기억, 잊혀진 사건들
우리는 무분별한 폭력 속에 노출되어, 이제는 어느 정도의 폭력에는 이미 감각을 잃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시대에 살고 있다. 비단 폭력뿐만이 아니라, 무차별적이고 불가항력적인 수많은 사건들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건들은 과거의 형태가 되어 우리 의식 속에서 잊혀져 간다.
작가 김재범은 국내외에서 일어났던 사건?사고를 한 장의 이미지로 재구성하여 보는 이들에게 잊혀져 있던 기억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작업을 한다. 특히 작가가 주목하는 부분은 사건의 본질이다. 우리가 매체에서 접하게 되는 수많은 사진이나 영상은 폭력이 행해지는 당시의 상황만을 보여줄 뿐이다. 이들은 시각적 임팩트가 너무나 강해 보는 이로 하여금 충격적인 이미지에 사로잡혀 사건의 본질 자체에 대하여 생각을 할 수 없게 한다. 김재범은 결과적인 이미지 정보들로 인해 우리가 간과하게 되는 점들을 주목하여 사건을 재구성하거나 발생하기 이전의 상황을 그려냄으로써 ‘폭력’의 본질에 의미를 두면서 사건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각 작품의 상황은 범죄자의 주변환경이나 사건의 요소들이 묘사되어 있어 우리에게 다양한 생각의 장을 열어줌과 동시에 사건 이면에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폭력에 대해 생각하게끔 한다.
본 전시에서는 그 동안 작가가 수집한 자료들을 설치한 아카이브 작품, Cube를 만날 수 있는데, 이는 작가의 작업 전반을 이해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작품 제목과 이미지로만은 쉽사리 떠올리거나 연결시키지 못하는 내용들이 아카이브 작품을 통해 제공됨으로써 우리가 스스로 사건을 재구성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작가는 사건에 대해 어떠한 정의를 내리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에게 생각해 볼 시간과 여유를 선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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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희 Still Life 展



갤러리온
2012-07-20 ~ 2012-08-02

일상의 경관 속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평범한 사물들에서 자신의 감각과 감성에 반응된 대상을 플레이밍한 작업으로,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평범하고 소소한 사물과 장소를 마주하며 느껴지는 미묘한 감정은 기억과 생각의 편린들을 끄집어 올린다.
이 작업은 사물들이 의미가 전환되는 방식과 인간이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들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진을 찍는다는 물리적인 행위를 통해 평범한 일상적 사물이 시각적인 의미와 상상력을 자극하는 대상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이 에서는 대상에 대한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고 의식적으로 감성적인 접근을 배제하려 했던 이전의 작업(Uniform 2004, Lifescape 2006) 보다는 조금 더 가까이 대상에 다가선 주관적인 서정과 감정의 단서가 드러나고 있다.
갤러리 온 큐레이터 이희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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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TRUM 7 최중원 ≪아파트≫



한미사진미술관 20층(02-419-1315)
2012-07-14 ~ 2012-09-02
2012-07-14 오후 17시
한미사진미술관의 연속기획전 SPECTRUM의 일곱 번째 전시에서는 사진작가 최중원의 <아파-트>연작을 선보인다. 이전작업인 <스치던 풍경>연작을 통해 이미 그 사진적 역량을 보여준 작가는 <아파-트>를 통해 다시 한번 그의 독특한 심미안과 사진에 대한, 그리고 그 사진에 담긴 대상물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주로 일상 속에서 스치고 지나가는 평범한 우리네 주변의 풍경들에 주목해온 작가가 이번 연작에서 다룬 주제는 현대 한국사회를 대표하는 주거환경이자 다양한 형태와 크기, 입지조건에 의해 부의 척도를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자리잡고 있는 실제 아파트들이다. 전후 복구사업과 주거환경 개선이라는 거국적 명분으로 시작된 아파트 개발에 작가는 문득 ‘그 초기의 모델들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까’에 대한 호기심으로부터 이 작업을 시작하였다. 리서치에 의존해 작업을 진행한 작가가 이 시리즈에서 주목한 것은 아파트 초기모델 중에서도 단지를 이루고 있는 형태의 아파트가 아닌 독립형, 소규모 형태의 아파트들이다.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일종의 ‘도태된 아파트들’이라 명명된 이러한 아파트들이 작가에게는 단순히 촌스럽고 진기양 외양을 가진 낡은 건물들을 너머 지금은 비록 역사의 뒤안길에 있지만 결코 그 시선은 또렷한, 역사의 주름들을 몸에 오롯이 새기고 있는 실체이다.
1930년 일본인의 손에 의해 지어져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에 의해 양민 학살 장소로 사용되다 연합군의 손에 넘어가 군 전용 호텔로 개조되어 사용된 충정아파트. 국내최초의 아파트라 불리는 충정아파트는 이처럼 해방과 전쟁을 거치며 파라 만장했던 근대시기를 당 시대 사람들과 함께 견뎌왔다. 이와 더불어 지금은 어느새 누추해졌지만 당시에는 황학동 사거리에 스카이라인을 바꾼 입체적 이정표였던 동대문아파트, 명동과 남대문 시장 주변이라는 지리적 특성과 함께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중앙난방시스템을 최초로 도입하여 대규모 단지형 아파트의 정점을 찍은 회현시범아파트 등. 그 언젠가는 높은 위용을 자랑하며 서있던 아파트들이 현재는 가까스로 그 존재만을 연명하고 있는 모습을 촬영한 최중원의 사진들은 근대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한국주거역사에 대한 기록이자 그 안에서 삶을 공유했던 이들의 이야기들, 표면에 드러나있지 않은 정보들에 대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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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정민사진전 The Path of Error



트렁크갤러리
2012-06-28 ~ 2012-07-24
“The Path of Error”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 단순히 “길을 잃다” 는 뜻과
두 번째 “삶의 방향을 잃다”라는 의미이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반복된 패턴의 미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안에서 살아가면서 매 순간순간마다 선택의 갈림길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매번 올바르고 이상적인 판단을 하며 길의 방향을 찾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길의 끝은 또 다른 갈림길의 시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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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삶의 장면에서 시간과 공간을 통제함으로써 일상을 낯설게 한다. 사진 속 일상은 실제와 허구,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멈춘 채 복제된 삶의 한 단면과 같다.
새로운 풍경을 생산하기 위해 Photoshop을 이용하여 이미지들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그렇기 때문에 생산된 풍경은 이질적이다. 그것은 파편화된 시점과 응집된 여러 이미지의 반복을 통해 가능하게 된 것이다.
“The Path of Error”는 적게는 수 십장에서 많게는 수 천장의 사진을 합성했으며 다양한 시점으로 촬영하여 일상의 단면을 반복적으로 조합함으로써 선택의 갈림길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순간에 느끼는 불안감이나 낯섦, 현기증 같은 감정들을 이야기하고 공간의 섬세한 변화와 확장 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인간 우리들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되는 작업이다.

작가노트 _ 류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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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M Project 017


이창원展 / LEECHANGWON / 李昌原 / installation 2012_0616 ▶ 2012_1028


이창원_Parallel World_거울, 디지털 프린트, 좌대, LED 램프_가변설치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창원 홈페이지로 갑니다.

프리뷰 / 2012_0615_금요일_05:00pm

후원 / 한국문화원 주최 / Mori Art Museum 큐레이팅 / Natsumi Araki(모리미술관 큐레이터)

관람료 / 성인_1,500엔 / 학생_1,000엔 / 아동(4세~고등학생)_500엔 * "Arab Express: The Latest Art from the Arab World"전과 Tokyo City View Observation Deck(Sky Deck제외) 관람포함

관람시간 / 10:00am~10:00pm / 화요일_10:00am~05:00pm

모리미술관 Mori Art Museum Gallery 1, 53F Roppongi Hills Tower, 6-10-1 Roppongi, Minato-ku, Tokyo Tel. +81.3.5777.8600 www.mori.art.museum


이창원 작가(1972년 생)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한 후 독일 뮌스터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수학했으며 이후 10여 년 이상 독일에서 활동했다. 시각적인 속임수를 결합시킨 그의 작품은 '보는 행위'의 본질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그의 널리 알려진 사람형태의 실루엣을 묘사한 작품은 멀리서 보면 회화작품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 이 이미지들은 벽면 위에 고정된 흰색 블라인드처럼 보이는 선반 위에 배열한 찻잎이나 홍화 잎과 같은 물체의 그림자가 투영된 것이다.
이창원_Parallel World_거울, 디지털 프린트, 좌대, LED 램프_가변설치_2012
이창원_Parallel World_거울, 디지털 프린트, 좌대, LED 램프_가변설치_2012 Photo: Kioku Keizo, Photo Courtesy: Mori Art Museum, Tokyo

전시작품인 "평행세계"는 특정부위를 도려낸 보도사진을 이용한다. 도려낸 형태 부위에 빛이 비치고 그 아래 거울에 반사되어 역동적인 그림자를 빚어낸다. 이 그림자들은 다시 주변 벽면 위에 선명하게 반사된다. 그러나 사용된 사진은 비극적인 현장을 포착한 신문이나 잡지사진으로 어떤 사진들은 분쟁지역에서 살해당한 사람들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이 작품 시리즈는 이전에 전시된 적이 있으며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은 일본동부 대지진과 같은 최근의 뉴스로부터 얻은 이미지를 다루고 있다.
이창원_Parallel World_거울, 디지털 프린트, 좌대, LED 램프_가변설치_2012 Photo: Kioku Keizo, Photo Courtesy: Mori Art Museum, Tokyo
이창원_Parallel World_거울, 디지털 프린트, 좌대, LED 램프_가변설치_2012 Photo: Kioku Keizo, Photo Courtesy: Mori Art Museum, Tokyo

매우 두드러져 보이는 이미지들이 만지는 순간 부서져버릴 것 같은 섬세한 재료로 만들어졌으며 흔들리는 그림자 뒤에는 비극이 잠재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우리는 눈으로 직접 바라본 현실을 의심하며 우리 자신들의 의식을 신뢰할 수 없게 된다. 우리는 진정으로 무엇을 바라보며 어떻게 세계를 인식하고 있는가? 이창원은 시각적인 속임수를 능숙하게 활용해, 보는 행위의 구조와 위험을 드러낸다. ■ 모리 미술관
이창원_Parallel World_거울, 디지털 프린트, 좌대, LED 램프_가변설치_2012
아티스트 토크

South Korean artist Lee Changwon (born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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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oung Ho Lee Show


이명호展 / LEEMYOUNGHO / 李明豪 / photography 2012_0607 ▶ 2012_0708 / 월요일 휴관


이명호_Sea #3_Tundra_종이에 잉크_1190×1940cm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00508f | 이명호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2_0607_목요일_06:00pm

후원/협찬/주최/기획 / 한국문화예술위원회_운생동건축사사무소(주)_월간 객석_EPSON_Leica

관람시간 / 11:00am~07:30pm / 월요일 휴관

아트스페이스 갤러리 정미소 ART SPACE GALLERY JUNGMISO 서울 종로구 동숭동 199-17번지 객석빌딩 2층 Tel. +82.2.743.5378


이명호의 「Tree Series」와 「See Series」● 이명호는 예술의 영역에서 오랜 역사를 바탕으로 예술가들이 사용해 왔던 캔버스라는 소재를 통해 현실세계의 대상들을 재현한다. 그의 예술세계는 이미 사진의 오랜 전통으로 이어져 온 기록성의 문제를 뛰어넘는다. 사진에 등장하는 나무는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익숙한 사물이다. 즉 그의 화면에서 드러나는 사물과 공간에 대한 인식은 우리가 일상에서 관계 맺는 모든 사소한 사물들과의 관계에서 출발한다는 상황을 명시한다. 또한 그것이 놓이는 공간은 구체적이고 사적이면서도 익숙함을 느낀 이후 금세 낯선 공간과 맞닥뜨리게 하는 상황 그 자체를 연출한다.
이명호_View of Work : Sea #1_2_Gobi_종이에 잉크_360×2100cm_2009

이명호는 전통적인 예술에서 중시되는 재현의 역사를 바탕으로 하면서, 사진 한 장 자체의 결과론적 존재보다는 이를 위해 수행되는 과정의 행위에 집중하고, 카메라와 대상의 문제 밖에 존재하는 새로운 형식의 예술에 매료되었다. 따라서 전통적 개념의 사진 작업을 한다기보다는, 자신의 사진을 제작해 나가는 '사진예술행위'를 통해 예술의 근본을 되물으면서, 사진의 새로운 동시대적 도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작가이다.
이명호_Gobi Desert_2009
이명호_Gobi Desert_2009
이명호_Gobi Desert_2009

그렇기에 사진의 근본적 특성이라고 간주했던 현실세계의 일부를 재현하는 기록성을 일부 증발시켜버리고 개인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게임을 즐기고 있는 것 같은 또 다른 현실 저편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마치 회화작품 같은 효과를 발휘하는 그의 사진은 사물의 표면에서 접촉하고 있는 현실보다는 매체를 통해 세계를 인식하며 그 접촉의 증거를 작품화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는 "캔버스에 그리는 행위"를 위한 표현양식과 사진의 역사, 그리고 한 장의 사진을 완성하기 위한 과정의 시간을 동등한 구성요소로 여기며 과거와 현재의 예술형태를 함께 작업에 투입한다.

「Tree Series」 작업에서는 예술의 영역 안에서 규정되는 캔버스의 개념을 매개로 하여 어떠한 존재감조차 부여 받지 못한 나무 자체의 대상성을 고스란히 캔버스 위에 드러내어 사진을 제작하였다면, 그가 최근에 진행하고 있는 「Sea Series」는 또 다른 맥락 위에 서있다. 「Sea Series」에서도 「Tree Series」와 동일하게 사진을 제작해 나가기 위한 과정의 행위를 중시하는 지점이 지각되지만 사진을 완성해 나가는 관념의 차이가 존재한다. 즉,「Tree Series」는 현실에 존재하는 나무를 드러내고 돋보이게 했다면 「Sea Series」에서는 현실에 존재하는 대상 자체를 덮어버리고 숨기기 시작한다. 그의 두 번째 사진행위 프로젝트「Sea Series」는 바다 그 자체가 주는 거대한 서사적인 의미로 부각되는 그 대상 자체에 천을 씌우는 작은 행위를 개입시킴으로써 존재의 드러냄과 숨김을 지속적으로 반복한다. ■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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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NANJI ART SHOW Ⅴ


난지島(도), 예술가의 섬展 2012_0629 ▶ 2012_0711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2_0629_금요일_05:00pm

참여작가 김덕영_김미란_김민주_문성식_박경근_이은선

공동기획 / 김미란_김덕영_김민주_문성식_박경근(6기)

기획 / 서울시립미술관

작가와의 만남 2012_0630_토요일_김덕영 2012_0701_일요일_김민주 2012_0703_화요일_박경근 2012_0704_수요일_김미란 2012_0705_목요일_이은선 2012_0706_금요일_문성식 *작가와의 만남은 관람시간 중 전시장 내에서 이루어집니다.

관람시간 / 01:00pm~06:00pm / 월요일 휴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난지갤러리 NANJI GALLERY 서울 마포구 하늘공원로 108-1 Tel. +82.2.308.1071 nanjistudio.seoul.go.kr


본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운영하는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6기 입주작가의 기획전시 『2012 NANJI ART SHOW』로서 다섯번째 전시입니다. 전시는 현재 입주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들에 의해 기획되었으며, 입주기간이 끝나는 10월말까지 10회에 걸쳐 지속적으로 진행됩니다. ■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난지 작업실은 공원 안 조용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복잡한 도로에서 벗어나 공원 안으로 접어들면 마치 다른 세계로 들어오는 것 같다. 또 이곳에서 한강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치 실제 섬 안으로 들어 와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난지島다. 작업실에 들어가 문을 닫으니 나의 세상이다. 밖에선 간간히 문을 여닫는 소리와 슬리퍼 끄는 소리가 들린다. 작업 중이다. 문 밖은 바다가 되고 각각의 작업실은 또 하나의 섬, 섬 안의 섬이 된다. ● 우리는 살아가는 일상의 공간인 사회, 가정, 또 모든 관계 속에서도 누구도 접근하기 어려운 공간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의 섬에 산다. 섬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서 외부로 부터의 접근이나, 뭍으로의 방문이 쉽지 않은 곳이다. 장소로서의 섬은 고립인 동시에 섬사람에겐 안전한 피난처가 된다. 또한, 사방으로 트인 무한의 방향을 제시하는 바다가 있기에, 이곳은 은밀한 은신처인 동시에 모든 것으로의 가능성을 가진 곳이다. ● 이 전시에서 관객들은 작가가 완성된 작업을 세상에 내놓기 전에 자신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선택의 과정들, 생각의 여정, 생성되고 사라지는 요소들을 엿보게 될 것이다. 혼자만의 섬 안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의 여정을 작가와 함께 산책 할 수 있는 시간, 이 산책은 한가로이 갔던 길을 되돌아오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작가와 함께 묻혀있던 것을 발견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 작가는 어쩌면 자신의 섬 안에서 은둔하며 작업의 고민의 시간 속에 처절히 혼자가 되고, 세상을 향해 작업이라는 창을 내어 소통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른다. 그러나 작가로 살아가는 것은 자신의 방식대로 누군가를 초대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작가와 함께 이해와 소통을 위한 예술가의 섬으로 산책을 떠나보자. ■ 김미란

김덕영_어쩌면 변명일지 모르는_종이에 아크릴채색_15×20cm_2012

김덕영 ● 혼자 바다를 자주 찾아가곤 했다. 비가 오는 어느 날, 바다 주위를 돌아다니다 산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걷다 보니 어느새 어둠이 찾아왔고 나는 길을 잃었다. 움직일 수 없었다. 작은 동굴을 보았다. 비를 피해 동굴로 들어갔다. 흙냄새... 만약을 대비해 나뭇가지를 주워 입구를 가렸다. 왠지 모를 편안함과 당연한 불안감이 공존했다.
김미란_엉키고 엉켜서-drawing_장지에 먹_75×145cm_2012

김미란 ● 엉키고 엉키고 또 엉켜서 도무지 풀 엄두도 안 나던 덩어리가 흐르는 물에, 지나는 바람에, 구르는 돌에 얽힌다.
김민주_어초문답_순지에 먹, 채색, 족자_가변설치_2012

김민주 ● 나는 혼자 묻고 답하고 생각하고 상상한다. 내가 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물음에 어떤 답을 해야 할지는 모르지만 그 과정 속의 생각을 즐기고 마음껏 상상한다. 답이 구해질 때도 있고, 후에 돌아보면 답인 줄 알았던 것이 답이 아닐 수도 있고, 답을 찾지 못한 줄 알았는데 그것이 답이었던 것도 있고, 끝까지 답을 찾지 못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어떠한 답을 꼭 구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사유과정을 거치면서 남겨지는 것들이 나의 그림이다. 당신은 어떤 것을 혼자 묻고 답하고 어떻게 생각하고 상상하십니까.
문성식_봄날은 간다 간다 간다 one fine spring day_종이, 연필_27×18cm_2002

문성식 ● 군에 있을 때 휴가를 나와 병이 든 할아버지의 죽음을 준비해야 하던 때가 생각난다. 내가 준비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는 내가 할 일들도 있었다. 엄마는 할아버지가 더 마르기 전에 사진을 찍어 놓으라고 하셨고 대학에서 사진 찍기를 배우고 사진을 찍는 일을 좋아했던 내가 사진을 찍어야 했다. 할머니의 전달에 할아버지는 누워 앓다가 그 와중에 장롱에서 와이셔츠와 마이 그리고 평소 즐겨 매던 넥타이를 꺼내 그의 방 문 항상 왼편에 있던 거울 앞에서 느릿느릿 옷을 입었다. 날씨는 화창했고 나는 이 화창함이 씁쓸했다. 할아버지의 표정이 평온하려면 그늘에서 찍어야 했고 우리는 집 모퉁이로 갔다. 배경에 별채의 벽이 너무 지저분했다. 형은 방에 들어가 흰 천을 가지고 나와서 할아버지 뒤에서 커튼을 쳤다. 뭘 하고 있는 건지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 일들을 수행함에 있어서 무감정하게 그 일을 수행하는 것이 가장 최선이다. 나는 파인더로 그의 눈을 보았고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우는 건지 슬픈 건지 아픈 건지.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자세에 대해 핀잔과 잔소리를 해댔다. 그 상황의 핵심을 희석이라도 시키기 위해. 유일하게 할머니가 큰소리 쳤던 사람. 그렇게 이게 별일 아니라는 듯이 그 일들을 수행 했던 봄날이 생각난다. 그날 그는 선 너머에서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그 건너편에서 그를 바라보았다.
박경근_철의꿈_부분

박경근 ● 「철의 꿈」은 현재 촬영 중인 프로젝트로서 장편영화, 비디오 설치, 사진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제철소와 조선소를 촬영할 때 거대한 스케일에 압도되어 두려움과 숭고함을 느낀다.
이은선_esvsck_페인트, 아크릴채색_200×400cm_2011

이은선 ● 땅따먹기라는 게임은 점을 찍고 그 점들을 이어나가면서 생기는 면을 자신의 땅으로 표시하는 놀이인데, 본인은 이것이 사람과 사람의 관계 맺기를 상징적으로 잘 표현해 주고 있다고 느낀다. 독립적이면서도 또한 절대 혼자가 될 수 없는 아이러닉한 관계의 이면. 그 소통의 한계점을 상호작용적인 행위를 통해 만들어지는 기하학적 형태를 통해 시각화하고 그 속에서 또 다른 조화를 찾고자 한다. ■ 김미란

2012 난지아트쇼 전시 안내 Ⅰ. 0412 목 - 0422 일 Ⅱ. 0427 금 - 0506 일 Ⅲ. 0525 금 - 0606 수 Ⅳ. 0615 금 - 0624 일 Ⅴ. 0629 금 - 0711 수 Ⅵ. 0717 화 - 0729 일 Ⅶ. 0830 목 - 0909 일 Ⅷ. 0918 화 - 0930 일 Ⅸ. 1004 목 - 1014 일 Ⅹ. 1019 금 - 1021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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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ed White


서민정展 / SEOMINJEONG / 徐旼廷 / installation.ceramic.video 2012_0629 ▶ 2012_0713 / 월요일 휴관


서민정_The Eternal End_영상_00:02:00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서민정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2_0629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인사미술공간 Insa Art Space of the Arts Council Korea 서울 종로구 원서동 90번지 Tel. +82.2.760.4722 www.arkoartcenter.or.kr cafe.naver.com/insaartspace


창조적 파괴의 의미 ● Ⅰ.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우리는 누구나 한번쯤 헤르만 헤세의 이 유명한 말에 대해서 들어보았다. 창조와 창신(創新), 그것은 기존의 이스터블리쉬를 파괴해야만 비로소 생성된다. 내가 축적해왔던 가치체계를 좀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해 나아가는 끊임없는 삶의 역동적 과정(dynamic process of life), 그것이 헤세가 말하는 창조적 파괴이다. 이 창조적 파괴는 고정된 실체(substance)를 불허한다. 그것은 매 순간 인식을 전환시키고 마음을 다잡아 고쳐나가는 메타노이아(metanoia), 즉 개심(改心)의 지난한 여정에서만 꽃피우기 때문이다. ● 존재론(ontology)은 존재(being)가 무엇인지 정의하려는 인간의 시도다. 따라서 존재론은 어떤 존재 X의 주어(subject)에 술부(predicate)를 대입시켜 입언(立言)하려는 고매한 노력이다. 이것은 존재를 정의하여 세계에 대한 인식을 확장시키려는 위대한 시도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또한 위대한 거짓이다. 존재를 개념에 가두어 재단하고 마는 지적 오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첫째, 이 개념에는 시간이 철저하게 누락되어있다. 'S는 P이다.'의 예는 전형적인 서구 철학의 목표다. '바나나는 노랗다.' '흙의 성분은 무엇 무엇으로 구성되어있다.' 마치 이런 것들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바나나는 영원히 노랄 수 없으며, 흙의 성분은 지구 구석구석마다 각기 다르다. 철학이 이토록 무용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것이 존재(being)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존재의 실체(substance)가 있다고 무비판적으로 학습된 수천 년 과오의 집적체일지도 모른다. 존재보다는 관계를 사랑하는 것, 세계 내 모든 사물들의 관계와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역동적 사태와 느낌을 사랑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예술이 해왔던 미완의 영구적 책무였다. ● 내가 서민정 작가를 만나고 놀란 부분은 적잖이 많다. 첫째, 작가는 예술이 메타노이아의 끊임없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지각하고 있었다. 둘째, 파괴를 통한 창신(創新)이 문명사의 구조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셋째, 실체(substance)라는 미명을 찾아 헤매는 사상사에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는 통쾌함이 분명히 있었다. ● 이제는 서민정 작가의 대체적 시리즈가 어느 정도 우리에게 각인되었고 국내 미술계 내부에서도 유명해졌다. 더욱이 개념과 방법이 안정화되었다. 죽은 새에 유약물이 구석구석 완전히 입혀지고 고온의 가마에 입실되어 새로운 질료로 재탄생되는 이질적 형식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한다. 더욱이 익숙하지 않아서 두려움을 야기시키는 이 이질적 긴장의 과정이 영상으로 고스란히 남는다. 그런데 이 영상은 다큐멘터리가 전혀 아니다. 극화된 형식미가 물씬 풍기는 아름다운 영상이다. 사실 이 '대상의 연소를 통한 재탄생'의 시리즈는 생명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2006년 작가는 독일 군복 자켓을 구했다. 군복을 사진으로 남겨놓은 후, 군복 위에 유약을 입힌 후 가스가마에 연소시켰다. 동서고금을 통해서 불은 순화(purification)의 의미를 지닌다. 의미의 순화(purification of meaning)는 감정의 정화(purgation of feelings)로 까지 도약할 때 절정을 이룬다. 군복의 이미지는 우리로 하여금 서열과 위계, 가치의 보존과 여타 다른 공동체에 대한 물리적 폭력, 강제, 힘 등을 연상시킨다. 힘과 강제의 이미지는 백색 도자기로 전혀 다른 의미체로 변용된다. 나는 작가의 모험이 극을 이룬 시점을 바로 군복을 도자기로 바꾼 이 'Fired White'라는 작품이 완성한 연도로 파악한다. 바로 한해 전 작가는 '삶을 지속하기 위하여(Überleben)'라는 설치작품을 제시했다. 수액키트에 장미꽃송이만을 밀봉하고 잎과 줄기는 공기에 노출시킨 작품이다. 작가는 꽃봉오리에 생생한 삶을 지속시켜준 반면 나머지 요소는 시들어 사라지게 하는 기묘한 장관을 연출했다. 작가는 삶의 영원성, 안티에이징이라는 초보적 사유에서 일 년 만에 대상의 형질변경(形質變更)을 통한 일반의미의 변용(transfiguration)이라는 고차원적 사유로 도약한 것이다. 이 생명의 지속문제와 일반의미의 변용이라는 두 가지 주제가 내밀하게 착종(錯綜)되어 보다 진화한 것이 죽은 새를 도자화시킨 2009년 작품 '유물(The Remains)'이다.
서민정_Fired White_영상_00:02:33_2012
서민정_The Remains_도자기_30×15cm_2012
서민정_The Remains_도자기_20×6cm_2012

Ⅱ. 에딩턴경(卿)은 아인슈타인의 라이벌 물리학자인데 그 유명한 '나의 두 테이블(My Two Tables)'이라는 에세이를 남겼다. 여기에서 인상적인 것은 대상의 실체(substance)를 파악하는 것이 가능한가 아닌가 역설한 대목이다. 육중한 테이블은 너무나 탄탄한 구조를 지니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에딩턴경에 의하면 테이블 표면의 수많은 전자들은 공기 밖으로 튀어나가려고 하며 거꾸로 공기입자는 테이블 안으로 침입하여 전자들을 끊임없이 부추긴다고 한다. 그 단단한 테이블마저 수시로 변화하고 있는 셈이다. '주역(周易)'은 변하지 않는 것은 시간이 흐른다는 사실밖에 없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서구는 플라톤 이래로 변하지 않는 실체(substance)가 있다고 강요했다. 부정적 지상에 대한 천상의 숭배, 현상에 대한 실체의 중시, 육체에 대한 정신의 우위 등등 다이커토미(dichotomy)가 서구 인식론의 기본적인 틀이었다. 그런데 작가는 죽은 새를 태움으로써 오히려 죽은 새의 이미지를 영원히 포착한다. 여기서 불가능해 보였던 실체라는 관념의 아련한 존립가능성이 생성한다. 이러한 기적은 예술이라는 세계 안에서만 가능하다. 또 한가지 에딩턴경의 설명 아래서 부식과 변화의 속도와 정도가 가장 더딘 물질을 꼽으라면 그것은 도자기다. 그러니까 작가는 시간을 정지시키려는 의도를 분명히 지니고 있다. ● 또 한가지 서민정 작가의 작업을 통해서 문명이라는 괴물에 대해서 총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주어진다. 문명은 질서이고 질서는 문명이다. 이를 코스모스(cosmos)라고 한다. 그런데 이 코스모스나 문명, 질서는 스스로를 지속시키려고 애쓰면서 경직화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형식화되고 무미건조해진다. 이 경직화를 막아주는 것은 혼돈, 즉 카오스의 세계다. 혼돈이나 카오스는 코스모스를 침탈하고 파괴시키면서 또 다른 질서, 문명, 코스모스를 배태한다. 화이트헤드(A. Whitehead)의 유명한 말이 있다. '증기와 민주주의(steam and democracy)'라는 말이 있고, '야만인과 기독교인'이라는 말이 있다. 후기 로마제국의 타락과 부패는 위대한 한 문명의 경직화이다. 게르만의 침략은 로마를 파괴시켰다. 이를 화이트헤드는 "무분별한 작인(作因)들(senseless agencies)"이라고 말한다. 이 무분별한 작인에 의한 파괴행위는 자각된 열망(conscious aspiration)을 부르게끔 되어있다. 이 열망에 의해 설득이라는 기제(mechanism)의 창조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기존과 전혀 다른 제3의 조건으로 수렴한다. 야만인의 침략은 타락한 로마제국을 기독교의 세기로 전환시킨 위대한 작인이다. 증기의 발명은 기존의 질서를 파괴시킨 폭력이다. 증기를 통한 부의 축적은 자본주의와 시민계급, 제국주의를 낳았다. 이 파괴에 대한 자각적 열망은 민주주의의 발전이다. 파괴와 창조라는 이질적 요소가 사실은 적대적 관계가 아니며 새로운 도약을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한다. 죽은 새, 웨딩드레스는 둘 다 경직된 가치다. 죽은 새는 엔트로피가 끝을 간 것이며, 웨딩드레스는 20세기의 진부한 티슈 소설의 주제에 불과하다. 위계와 강령을 생명으로 삼는 군대의 군복 역시 경직된 가치다. 작가의 'Fired White'는 불타 사라졌기에 오히려 새로운 순백으로 태어나는 정화의 진수를 보여준다.
서민정_Return_영상_00:02:54_2012
서민정_새_드로잉_21×29.7cm_2012

Ⅲ. 서민정 작가는 한국에서 일본, 일본에서 독일로 거취를 이동하면서 작업을 지속시켰다. 작가는 분명히 성과 인종, 국가를 초월해서 통용될 수 있는 형식을 보유했다. 독일 개인전에서 웨딩드레스를 도자화하는 역량을 보여준 것이 2008년이었다. 성(divinity)과 속(secular)이 구분됨 없이 뭉뚱그려진 동시대의 우울을 토드리(tawdry)한 웨딩드레스만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상도 없다. 그 치렁치렁한 드레스가 도자기로 변화하여 그 모습을 드러냈을 때 이 새로운 존재양태를 사람들은 천양지간의 다양한 해석을 내렸다고 한다. 고도의 아름다움은 이 도자기를 다시금 바게트빵으로 파괴하는 이벤트를 영상화한 작품 'Polterabend'이다. 폴터아벤트란 결혼 전날 밤 그릇을 바닥에 깨며 액운을 쫓는 독일의 축귀풍습이다. 바게트빵과 작품이 모두 파괴될 때까지 진행된다. 일상생활의 단란한 행복은 작가에게 의미가 아니었다. 작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의미가 무엇이며 생과 사, 성과 속이 어째서 세상에 존재하는지 물을 따름이다. 작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미분화된 심미적 시공태(undifferentiated aesthetic continuum)로 파악한 것이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 비슷한 분위기를 추구하는 글로벌 정신 속에서 자본의 공동체가 경직되지 않고 생명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개성을 창신하는 것만이 유일한 길임을 작가는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따라서 은나라 탕임금은 세수그릇에 '구일신 일일신 우일신(苟日新 日日新 又日新)'이라고 쓰고 썼다고 한다. 이것은 '진실로 새로워지려 하면 하루하루를 새롭게 하고 또 새롭게 하라'는 뜻인데, 나는 작가의 두 가지 방법적 거류인 폭발(explosion)과 연소(burning)가 말하는 숨은 메타포가 바로 이것이 아닌가 한다. ■ 이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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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 오브 프레임


OUT OF FRAME展 2012_0629 ▶ 2012_0719 / 일,공휴일 휴관



초대일시 / 2012_0629_금요일_05:30pm

참여작가 민성식_송은영_신수혁_윤정선 이경_이경미_이만나_이문호 이지은_임상빈_정규리_홍성철

관람시간 / 09:3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인터알리아 아트컴퍼니 INTERALIA ART COMPANY 서울 강남구 삼성동 147-17번지 레베쌍트빌딩 B1 Tel. +82.2.3479.0114 www.interalia.co.kr


아웃 오브 프레임시를 번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른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Nostalgia, 1983, Andrei Tarkovsky) ● 물론, 대상에 대한 해석과 번역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겠으나, 이미 정리가 되어 있는 문장을 정답이 있는 문법에 대입하여 다른 나라의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조차도 수많은 오류들이 발견되는 것은 허다한 일이다. 하물며 이것을 번역에서 그치지 않고 작가의 숨은 의도를 파헤치거나, 나아가 거기에 자신의 주관을 덧입혀 재해석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굳이 영화 노스탤지어를 통해 타르코프스키가 '불가능하다'고 단정 지은 위의 대목을 언급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쉽게 동의할 수 있는 사실이다. 시를 포함한 다른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그것을 번역하거나 해석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관객은 그것들을 해석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기울인다. 대부분의 예술 장르가 관객의 해석의 여지를 차단하려고 하는 것과는 달리 유독 미술이라는 장르는 상당히 관대한 편이다. 예를 들어, 문학과 음악, 무용 등의 경우 작가가 이미 지정해 놓은 정답이 명확히 존재하고, 관객이 이것을 곡해하여 오답을 내 보였을 때 창조자는 그것을 지적하며 교정해 주고자 하는 의욕을 보인다. 그에 반해 미술은 작가가 관객의 오답과 오독, 그리고 왜곡을 포용할 줄 알고 나아가 그것을 즐기는 여유까지 보인다는 부분에서 – 때로는 관객의 오답을 다음 작품에 반영 하기도 하는 – 다른 예술 장르에 비해 확연한 차이가 있다.
민성식_카누타기_캔버스에 유채_80.3×116.8cm_2012
송은영_장면13-석류_리넨에 유채_112×194cm_2009

관객의 해석에 관대하다는 측면에서는 영화 또한 미술과 그 궤를 같이 하고 있다. 대부분의 감독들이 인터뷰에서 '엔딩 이후에 벌어질 상황에 대해서는 관객의 상상에 맡긴다.'라고 멘트를 날리는 것이 이제는 관객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인 양 인식 될 정도이니 말이다. 물론 영화와 미술이 비슷한 선상에 놓여져 있다는 근거는 또 다른 이유에서도 찾을 수 있다. 두 가지 장르 모두 인간의 다른 지각 보다는 시각활동의 범주에 근접하게 속한다는 부분과 다른 예술장르에 비해 생활 속 침투도가 높아 일반 대중이 접근하기 쉽고 그들의 비평에 상시 노출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어찌 보면 비슷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치원 아이에서부터 70세의 어르신까지도 미술이나 영화에 대해서는 자신의 의견을 과감하게 내비칠 수 있는 것이다. 설사 그 의견이라는 것이 '저 정도는 나도 그리겠다', 내지는 '무슨 말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다.'라는 식의 다소 감정의 극단적 표출이라 할 지라도 말이다. 조금은 늦은 감이 있으나 무대미술이 적극 도입된 현대무용이라든지, 팝음악의 템포로 편곡된 클래식, 문학의 영화화 등은 궁극적으로는 관객에게 좀 더 친절하게 다가가 그들의 해석을 적극 수용하겠다는 창조자의 입장 표명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신수혁_Untitled1201_캔버스에 유채_162×131cm_2012
윤정선_0426 10:4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5.2×91cm_2012

물론, 영화와 미술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점도 있다. 미술의 결과물이 비현실적으로 비추어지지만 사실 작가의 철저한 자기반영이라는 것에 비해 영화는 처절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으나 실은, 감독의 계산에 의해 연출된 비현실적 장면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미술과 영화가 모두 현실에서 기인한다는 것은 공통적이다. 그러나 미술의 경우 그러한 현실을 표현해 내는 과정에 있어서 굳이 현실적으로 보이기 위한 노력을 첨가 한다거나, 혹은 일부러 현실을 비현실적 장면으로 치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에 비해 영화는 처한 현실을 더욱 현실적으로 보이도록 극대화 시키거나, 혹은 반대로 비현실적으로 보이도록 거짓을 삽입시킨다. 관객들은 스크린에 보여지는 결과물을 목격하며 그 상황을 현실이며 실재라고 오인하지만 사실 그것은 감독의 철저한 계획과 의도에 근거하여 덧붙여지고, 잘려나가 편집된 허상에 불과하다. 오히려 스크린에 등장하지 않는, 뷰파인더의 바깥쪽에서 진행되고 있었을, 감독의 비현실적 결과물에 부합하지 못한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장면들이 바로 현실인 것이었을 테다.
이경_Picture_BdG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1×162.2cm_2012
이경미_San Francisco on the table_oil on constructed birch panel_120×120cm_2012

이번 전시의 제목인 '아웃 오브 프레임'이란, 말 그대로 화면의 바깥 부분을 의미한다. 이것은 주로 영화용어로 사용되곤 하는데, 영사기에 필름을 잘못 끼워서 두 가지의 영상물이 한꺼번에 한 화면에 보이거나 스크린의 바깥쪽에 보여지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촬영감독의 카메라 액정의 시야, 다시 말해 뷰파인더에 보여지는 부분 이외의 바깥 부분을 말하기도 한다. '아웃 프레임'과 '인 프레임'의 명확한 구분이 없는 미술가들은 영화에서 말하는 '아웃 오브 프레임'을 프레임 바깥쪽에 방치 시키는 것이 아니라 안쪽으로 가져오려는 시도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자면, 영화가 현실을 기반으로 하였으며 결과물을 관객이 현실로 받아들이기를 희망하면서도 그것의 과정에 있어서는 무수한 속임수를 집어 넣는 것과는 달리, 미술은 그저 있는 그대로 고스란히 프레임 안으로 가져온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경우에는 감독이 제시한 스토리의 연장선에서 나름의 결말을 기대하는 수준이라면, 미술의 경우에는 더 나아가, 그것의 결과물을 처음 작가가 의도했던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관객 각자의 삶에 조망하여 지극히 주관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부분이 바로 앞서 언급한 영화와 미술의 극명한 차이이며 표면적으로는 영화가 좀 더 효과적으로 관객과 소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미술이 관객의 경험과 감정을 확대 재생산 한다는 측면에서는 영화보다 더 열려있다고 할 수 있는 지점이다. 본 전시는 바로 이러한 미술의 태도를 영화의 상황과 비교하여 검증해 보기 위해 마련되었다.
이만나_The Court_캔버스에 유채_97×130cm_2012
이문호_G_잉크젯 프린트_100×150cm_2012

근본적으로는 물론 참여 작가의 작품들이 지극히 영화적 연출방식을 차용하고 있다는 스스로의 확신에서 비롯되었다. 본인은 이번 전시를 만들어 가면서 참여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감상했다. 화면을 과감하게 분할한다거나, 극단적으로 줌인, 줌아웃을 하거나 부감시를 이용해 마치 와이어를 달고 공중에서 촬영한 듯한 액션이 있는가 하면, 필터링 렌즈를 사용한 카메라로 장면을 바라보거나 스모그를 분사한 듯한 그로테스크한 스릴러를 발견하기도 했다. 성장영화처럼 담담하게 기억을 조망하며 회고하는 드라마도 있었고, 대상을 마치 트라이포트 없이 카메라를 손으로만 들고 촬영한 핸드헬드 샷의 생동감이 느껴지는 SF도 있었다. 익숙한 이미지들의 조합을 통해 작가만의 판타지를 창조하여 제시해 놓고, 그것을 주관적인 관점이나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단정적으로 바라보는 관객의 관념을 흐트러트려 놓는 작가들도 있고, 혹은, 반대로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으로 바라본 대상이나 풍경을 역시 주관적인 형태로 풀어내어 놓고, 관객 또한 그것을 바라보며 작가의 입장과는 또 다른 주관적 감정을 얻어가도록 설정하는 작가들도 있다.
이지은_excavation_EVA_95×90cm_2012
임상빈_People-Bali 1_람다 프린트, 디아섹_38.1×139.7, 99.06×139.7cm_2011

이렇듯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이 자신의 감성을 영화적 효과를 빌어 제시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하지만, 공통적으로는 대부분의 이미지들은 현실을 근거로 하였으나 그것의 결과물은 껍데기 보다는 이면에 간직하고 있는 감춰진 의미들이 더 중요한 맥락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이 만들어 낸 세상을 관객들에게 제시는 하되, 카메라의 뒤에 서서 개입 하지 않고 묵묵히 지켜본다. 그렇다고 이들이 냉담하게 팔짱을 낀 채 관객의 반응을 냉소적으로 관찰한다는 것은 아니다. 작가가 제시한 삶에 대한 주관적 실체와 통념적 허구를 관객은 어떠한 방식으로 받아 들이는가, 그것들과 관객 각자의 삶의 편린들은 얼마나 일치하는가, 혹은 어떤 방식으로 어긋나는가를 목격하며 때로는 가슴 벅찬 감동으로, 때로는 흐믓한 미소로 우리들에게 화답할 것이다.
정규리_A boy in another plac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0×180cm_2012
홍성철_String hands 0051_print on elastic strings, steel frame_52×80×8cm_2012

소위, 역량 있는 감독을 지칭하는 통념적인 수식어가 탄탄한 내러티브와 정교한 플롯을 적절하게 조합하는 능력이라고 할 때, 그 감독의 진정성을 나타내는 수식어는 대상에 대한 진심 어린 관찰에서부터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일상에서 채집한 풍경이야 말로 절대적 사실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은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영화와 미술을 막론하고 역량과 진정성 두 가지 능력을 모두 갖추기란 쉽지 않은 난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여기, 뛰어난 작가적 역량과 삶에 대한 진정성을 모두 갖춘 세 명의 영화 감독, 세 편의 영화, 그리고 열 두명의 예술가를 소개해 보겠다. ■ 윤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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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ding Landscapes


강유진展 / KANGYUJIN / 姜洧眞 / painting 2012_0629 ▶ 2012_0729 / 월요일 휴관


강유진_Brugge_캔버스에 에나멜, 아크릴채색_100×150cm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90428b | 강유진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2_0629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화~토_10:00am~06:30pm / 일_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선컨템포러리 GALLERY SUN CONTEMPORARY 서울 종로구 소격동 66번지 Tel. +82.2.720.5789, 5728~9 www.suncontemporary.com

보통 때와 다름없는 어느 하루 ● 강유진은 현재 자신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삶의 터전인 도시에서 그 소재를 찾아 에나멜을 사용해 작업을 하여왔다. 예를 들면 요즘 쉽게 볼 수 있는 기하학적인 건축물, 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유리로 표면이 감싸져 있는 건물, 수영장이나 갤러리라는 특정한 공간을 익명적인 풍경으로 다루었다. 그리고 이러한 건축물들과 나무나 식물 혹은 고기 덩어리와 같은 이질적인 물건들의 결합을 통해 서로 상반되는 것들이 충돌하면서 긴장감을 만들어내고 에나멜의 흩뿌리는 기법으로 강렬하고 스펙터클한 장면들을 연출하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전의 작업들과 어떠한 점이 변화하고 있는 지를 살펴보는 것이 강유진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 길잡이가 될 것이다.
강유진_Chamonix_캔버스에 에나멜, 아크릴채색_110×160cm_2012
강유진_Berlin_캔버스에 에나멜, 아크릴채색_100×150cm_2012
처음으로 살펴볼 것은 어떠한 것들을 그려내고 있는가 이다. 이전 작업들이 그려내고 있는 소재들과 큰 변화 없이 작가 자신이 생활하면서 만나게 되는 익숙한 공간 이외에 새롭게 여행을 하면서 처음 경험하게 되는 공간과 장소를 그려내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강유진의 보여주는 작품들의 제목은 모두 작가 자신이 직접 여행한 장소의 지명이나 미술관의 명칭이다. 그 만큼 장소성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그렇다면 그녀가 그려내는 장소는 어디인가? 그곳은 다름 아닌 융프라우나 룩셈부르크, 브뤼헤 등의 관광명소나 비트라 미술관, 포르쉐 뮤지엄, 퐁피두 센터 등의 전시공간들이다. 그녀는 어떤 외국의 도시를 심층적으로 살피기보다는 관광책자에 중요 관광지로 등장하는 널리 알려진 곳을 그린다. 이들의 연관성을 찾는다면 미술관이나 관광지 이 장소들 모두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보여주기 위해 준비된 공간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미술관은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대표적인 공간으로 이 소재는 작가가 이전 작업에서도「갤러리」시리즈를 통해서 선보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관광지는 어떨까? 알프스와 같은 대자연이나 역사가 오래된 도시, 화려한 꽃과 나무로 이루어진 여행 책자나 엽서에서 볼 수 있는 한적하고 아름다운 유럽의 관광 도시들은 모두 사람의 손에 의해 다듬어지고 정비되고 꾸며진 무엇인가를 보기 위해 오는 사람들을 위한 장소이다. 이렇게 강유진이 지속적으로 매력을 느끼며 그림의 소재로 다루는 것은 사람들에서 보여주기 위해 준비된 공간, 그리고 사람의 손에 의해 계획되고 디자인된 장소를 보며 작가 자신의 눈을 통해 발견한 즐거움이다. 이는 다시 말하면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을 통해서 만들어진 자연물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서 계속해서 변화해가는 풍경들 다시 말해 인간이 만들어 내는 시간이며, 자연이 보여주지 못하는 새로운 시각적인 자극을 주는 풍경들을 말한다.
강유진_Jungfrau 1_캔버스에 에나멜, 아크릴채색_112×162cm_2011
강유진_Jungfrau 3_캔버스에 에나멜, 아크릴채색_130×97cm_2012
다음으로는 이러한 소재들을 어떻게 풀어나가고 있는지 살펴보자. 이전의 강유진의 작업들은 에나멜을 흩뿌려서 우연적인 효과를 보이거나 다각적인 복잡한 구성을 통해 건물의 구조물을 분해하여 재조립하는 방식으로 강렬한 풍경을 그려왔다. 그리고 이는 원근법과 회화에서의 표면성이라는 회화의 본질적인 부분에 대한 재해석과 이 방법론 자체를 해체하고 다시 뒤섞어 재구성하는 방법을 통해 작업을 진행하여 왔다. 이번 작업에서는 이전에 중점을 두고 해왔던 에나멜을 흩뿌리거나, 평면과 원근이 뒤섞이는 경향들이 눈에 띄게 두드러지기 보다는 모든 파편적인 시선들이 조화롭게 구성되어 이전의 작업들 보다는 하나의 공간이라는 것을 쉽게 인지할 수 있어 안정감 있는 풍경을 선보이고 있다. 우리는 작가가 이러한 관광지나 전시장과 같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을 대상으로 삼았다고 한다면 사회적으로나 역사적, 정치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거나 기존의 것들을 의심하고 들추어내는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강유진의 작업은 누군가에게는 계몽적이면서 자기 반성적인 작업으로 다가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우리에게 우리들이 만들어 낸 동시대적인 재료로 만들어진 공간이나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꾸며진 장소가 얼마나 매력적으로 다가오는지 우리에게 들려준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인공의 건축물이나 속도감 있는 운송수단 등이 더 이상 특별한 것이 아닌 일상적인 우리의 풍경이라고 이야기 한다. 따라서 작가는 인공이라는 단어의 부정적인 뉘앙스를 제거하고 우리의 일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는 또 다른 풍경을 보는 방법을 우리에게 선보이고 있다. 여기까지는 살펴보면 이전의 작업과 차이점은 기존의 스펙터클한 작업보다는 작가의 시선을 통해 바라보는 대상의 표피적인 것과 내면적인 것을 더욱 조화롭게 끌어내고자 하는 점이다.
강유진_Luxembourg_캔버스에 에나멜, 아크릴채색_100×150cm_2012
강유진_Keukenhof_캔버스에 에나멜, 아크릴채색_97×130cm_2011
미술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대상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한 시선과 시각이다. 강유진의 작업에서는 작가가 작가의 주관을 통해 시각정보를 파악하고 그것을 선별하고 작품을 통해 대상의 내면과 표피를 동시에 그려내는 프로세스가 작업에 밑바탕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이다. 강유진은 자신이 보고 경험하는 여러 가지의 풍경들을 계속해서 그려내고 있다. 그것이 매일매일 지나면서 보게 되는 풍경이던, 가끔씩 접하는 낯선 이국적인 풍경이든, 인공적이든 자연적이든 작가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작가의 마음을 끄는 것들을 찾고 그 안에서 느끼는 감성을 표현하되 그 표면적인 의미와 내면적인 의미를 균형 있게 보여주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강유진은 이러한 풍경들을 낯설고 어색하게 그려내기 보다는 편안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와 친숙하고 익숙한 것들 속에서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간과하고 지나가는 것들뿐만 아니라 우리가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일상적인 것으로 되어가는 것을 동시에 한 화면에 그려내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이러한 풍경은 대상의 표면과 그 표면 속에 감추어진 내면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으며, 이들은 결코 일상적이지만 평범하지 않고, 특별하지만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온전히 작가에 의해 발견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발견된 풍경들이야 말로 이전의 스펙터클한 풍경과는 또 다른 강유진이 바라보는 동시대의 풍경일 것이다. ■ 신승오



2012.06.28 18:30:14 / Good : 640 + Good

za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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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th of Error








류정민展 / RYUJUNGMIN / 柳姃旼 / photography 2012_0628 ▶ 2012_0724 / 일요일 휴관





류정민_The Path of Error#6_photo collage, pigment print with facemount_180×255cm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91216c | 류정민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2_0628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일요일 휴관

트렁크갤러리 TRUNK GALLERY 서울 종로구 소격동 128-3번지 Tel. +82.2.3210.1233 www.trunkgallery.com





류정민(Ryu Jung-Min)의 제 3의 공간 ● 공간에 뿌리를 내리려는 욕망은 인간의 본능이다. 그래서 그 공간에서 떨어져 나오거나 격리되는 상황이 오면 언제든 그것을 방어하기 위한 기제를 작동시킨다. 동시에 이에 맞서 공간을 창조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새로운 공간을 향해 이동한다. 이 두 가지 본능은 간섭과 반작용의 원리를 반복하며 기존 공간을 허물고 수 많은 새로운 공간을 창조한다. 이 같은 반복된 간섭 과정 속에서 공간은 다양한 기억의 파편들로 채워지게 된다. 이는 공간의 속성이 시간이 흐르면서, 개인화, 맥락화, 정치화 되는 이유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단어는 공간(space)이 아닌 장소(place)이다. 공간을 추상적인 미학의 대상이 아닌 언제든 그 정의가 바뀔 수 있다는 상호작용의 대상으로 바라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억과 공간 사이의 상호보완적 관계 속에 장소(place)라는 개념을 삽입해서 이해 해야 한다. 그것은 기억과 공간 그리고 시간이 만들어 내는 일종의 유기적인 이종교합이다. 그래서 장소는 절대적이지 않고 상대적이며, 논리적이지 않고 예측불가능한 특징을 부여받고 공간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올 수 있게 된다. ● 류정민의 사진 작업은 이 장소 개념에서 출발한다. 그의 장소성에 대한 집착은 독일유학생활에서 비롯되었다. 새로운 작업 방향을 찾기 위해 찾아간 독일은 그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높은 방어막과도 같았다. 언어장벽과 문화적 괴리감은 행동범위를 축소시켰고, 이질성과의 대면은 어느새 그의 벗어날 수 없는 일상이 되었다. 그 곳의 문화 속에 거주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섞이지 못했던 류정민은 자신의 일상 속 공간을 극복의 대상이 아닌 관찰의 대상으로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이는 독일과 한국을 오가면서 신체적으로는 독일에 머물며, 정서적으로는 한국에 뿌리를 둘 수 밖에 없었던 다이어스포라의 한계이자 특권이었다. 철저하게 관찰자의 위치에서 하나의 문화 속에 함몰되지 않을 수 있었던 류정민의 객관적인 거리두기는 층층이 쌓아 올린 건축적 구조를 논리적으로 완성시킬 수 있었던 바탕이 되었다. 화석층의 단면을 연상시키는 류정민의 화면구성은 현대인들의 삶을 무겁게 짖누르고 있는 억압된 현실을 명쾌하게 보여준다.
류정민_The Path of Error#7_photo collage, pigment print with facemount_138×100cm_2012

결국 이는 기억을 어떻게 재구성할까의 문제로 이어진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의 공간에 대한 이해는 소외감과 괴리감의 기억이 내재된 장소에 대한 관찰에서 시작된다. 이 같은 관찰을 통해 작가는 그 동안 보이지 않았던 정체성, 문화의 이종교합, 개인과 전체 사이의 갈등 등의 구조적인 딜레마를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류정민은 어떻게 개인의 기억과 경험을 보편적인 메세지로 바꿀 것이가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스토리를 위해 사진이 가지고 있는 객관적인 현실반영의 기능을 과감하게 거세하고 시간과 공간 개념을 왜곡시키며, 관객들로 하여금 현실공간을 익숙하지 않은 낯선 풍경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에게 있어 사진이라는 표현매체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리얼리즘의 도구가 아니다. 디지털 콜라주를 통해 현실 속에 없는 공간을 기억과 스토리를 바탕으로 해체하고 재구성했다. 그래서 비록 현실의 파편들, 기억의 파편들을 활용하고 있지만 그 결과물은 이미 현실과의 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것은 현실이면서 판타지이고, 한국이면서 독일이며, 과거이면서 미래의 모습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 이 같은 이항대립의 배타성에 반기를 들고 있는 류정민의 공간개념은 에드워드 소자 (Edward Soja)의 「제 3의 공간 The Thirdspace 1996」을 연상시킨다. 화면구성에 있어 전경과 후경의 구별이 없어졌고, 반복을 통해 특별한 기억을 일상화의 영역으로 끌어 들였다. 그리하여 주관성과 객관성, 추상적인 것과 객과적인 것, 실제와 가상, 반복과 차이, 정신과 신체, 의식과 무의식, 동양과 서양 그리고 일상과 역사 등 이원론적 개념의 경계가 해체되었다. 이렇게 구축된 도시풍경은 공간의 꼴라쥬라기보다는 파편화된 기억의 집적으로 보는 것이 옳다. 바벨탑처럼 구름 위까지 솟아 오른 「The Path of Error #4」 역시 길을 잃은 산업화, 도시화의 욕망과 동일시된다. 도시풍경의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는 도시의 대한 느낌들을 화면에 투사하기 위한 조합이다.
류정민_The Path of Error#10_photo collage, pigment print with facemount_130×260cm_2012

기억과 공간, 즉 비물리적인 영역과 물리적인 영역 모두를 꼴라쥬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류정민의 첨단 디지털 꼴라쥬 사진은 아이러니하게도 동양화의 문법을 계승하고 있다. 문맥과 문맥의 충돌을 의도적으로 유도하고 있지만 그 충돌과 겹칩의 지점을 바라보는 시점을 하나로 고정시키지 않았다. 다중시점을 통해 바라봐야만 전체를 볼 수 있는 구조를 지향하고 있다. 이는 관객의 시점이 어느 한 지점에 뿌리를 못 내리게 하는 구조적인 장치이다. 류정민 자신이 그랬듯이 관객들 역시 화면의 구석구석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며 자유로운 시점의 이동을 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의 꼴라쥬는 오브제가 아닌 프로세스에 대한 관찰에서 힘을 얻는다. 그래서 류정민의 꼴라쥬는 하나의 미술기법이 아닌 개인의 기억과 시대상, 역사와 일상을 결합시키는 하나의 철학으로 바라봐야 한다. ■ 이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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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








김상돈展 / KIMSANGDON / 金相暾 / photography.video 2012_0630 ▶ 2012_0819 / 월요일 휴관





김상돈_약수_C 프린트_100×150cm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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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0629_금요일_06:00pm

제10회 다음작가展

주최 / 박건희문화재단_아트선재센터 기획 / 박건희문화재단

관람료 / 성인 3,000원 / 학생 1,500원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아트선재센터 ARTSONJE CENTER 서울 종로구 소격동 144-2번지(감고당길 43) 3층 Tel. +82.2.733.8945 www.artsonje.org





이 전시는 다음작가상 제10회 수상자인 김상돈의『약수』展으로 박건희문화재단과 아트선재센터가 공동주최한다. 다음작가상은 박건희문화재단에서 2002년 제정한 젊은 작가 창작 지원프로그램으로 매년 5월 공모를 통해 사진을 매체로 작업하는 한국의 젊은 예술가를 선정한다. 수상자는 1년 동안 5500만원 상당의 작업지원비를 지원받고 이듬해에 그 결과를 전시와 작품집으로 발표하게 된다. 지난 10년의 시간동안 다음작가상은 한국 젊은 예술가들의 등용문으로 자리를 잡았고, 이제는 매 해 지원자들의 포트폴리오를 통해 한국 사진의 경향과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성장하였다. 특히 이번 10회 전시부터는 아트선재센터에서 개최됨으로써 실질적인 후원의 폭을 넓히고 상의 지위를 향상시키게 되었다.
김상돈_약수_C 프린트_100×150cm_2012
김상돈_약수_C 프린트_80×120cm_2012

김상돈은 현대 예술의 맥락 속에서 사진, 조각, 설치, 퍼포먼스, 비디오 등 다양한 매체를 자유롭게 활용해왔다. 단지 뛰어난 관찰력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부족할 만큼 기발함과 상상력이 혼재되어 있는 그의 시선은 「장미의 섬」(2009), 「불광동 토템」(2010), 「잠복」(2010), 「솔베이지의 노래」(2011) 등의 시리즈를 통해 현대 사회의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해왔다. 그가 채집한 이미지들 속에는 늘 소소하거나 소외된 풍경과 오브제들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긴장감이 존재했고, 그 안에서 우리는 우리 사회의 근원적 에너지와 잠재된 마찰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신작 「약수」(2012)는 작가가 탐험하는 생활환경 속에 기묘하게 위치해 있는 풍경과 기운에 대한 작업으로 사진, 영상, 오브제 등의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다. 그의 작업 안에서 물은 현대적인 개발과 정화를 통해 현대인이 누리는 사치임과 동시에 뿌리 깊은 토착성에 기반을 둔 염원과 생명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현실과 역사의 충돌이 일상의 시공간에서 빚어내는 다소 기괴한 그의 정경은 사회에 대한 통렬한 풍자를 머금고 우리의 가슴 한 가운데를 두드린다. 그리고 이 삐뚤어진 비아냥거림이 전작들의 흐름을 이어가고 있음에도 그에 비해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는 것은 물이 가지는 생명의 무게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 박영미
김상돈_약수_C 프린트_150×100cm_2012
김상돈_약수_uv 차단_C 프린트_100×150cm_2012




저는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생활 풍경의 곳곳에서 발견되는 원초적 야성과 토착성에 관심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들 개인의 튀는 개성이나 오리엔탈 노스탤지어가 투영된 민족적 토속성, 민속주의 등과는 다른 것입니다. 저의 원시적 야성과 토착성은 도시 현대성이라는 거대 시공간 구조와 시스템을 외면하기보다 이를 인정하고 돌파해 들어가는 현실 직면과 탐험의 자세에서 출발합니다. 획일적인 일상 현실 속을 해집고 살아가다 보면 그 안에 다양한 무/생물 개체들이 표출하는 상이한 삶의 형태들이 복잡한 중층으로 병존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저는 그 개별체들이 생각하는 방식과 가치체계를 드러내는 생활 속의 낯선 생존기술의 형태들, 그 속의 잠복되어 있는 다층적 기운들, 그 밀도에 따라 다양하게 취하는 움직임의 양태들, 이들이 연쇄, 전염되는 우연적 확산과 변주의 양상들에서 토착적 야생성을 느낍니다. 이것은 미시적 생활 구조 속에서 기운을 축적해 감으로써 질서와 풍경을 운용해 내는 자기 통치 주체로서의 의지와 수행과 비슷한 것입니다. 자칫 비장하게 들릴지 모르는 이 의지와 수행성은 제게는 생에 얽힌 사연과 관능적인 애욕, 영악한 술수, 우연적 실수, 날카로운 비판, 천연덕스러운 풍자가 혼합된 것입니다.

김상돈_약수-video still cut-1_싱글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_00:03:33_2012
김상돈_약수-video still cut-2_싱글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_00:03:33_2012




「장미의 섬」(2009), 「불광동 토템」(2010), 「잠복」(2010), 「솔베이지의 노래」(2011)등의 시리즈에 이은 「약수」(2012)는 제가 탐험하는 생활환경 속에 기묘하게 위치해 있는 풍경과 기운에 대한 작업입니다. 나는 약수터에서 졸졸 나오는 약수물이 마치 세탁기 플라스틱 호스에서 나오는 빨래 땟국물이나 등산객들이 산 정상에서 마시다가 땅에 스며들어 흐르는 막걸리와 같은 것이라 상상할 때가 있습니다. 집단에 편승한 소비와 패권심리가 큰 만큼 생활 현실에는 환타지를 꿈꾸는 욕망이 팽배해 있습니다. 환타지가 패권을 쫓는 것인지 패권이 환타지를 생산하는 것인지는 모르나, 그 질량과 부피는 동일하게 보여 집니다. 이러한 생활 현실에서 무/생물 개체들이 분간할 수 없는 도시/자연에 기대하고 행하는 모습은 무엇인가. 자연을 추악하게 소비하고 개발하는 작금의 현상들 가운데, 그 안에서 가능한 유토피아나 멋진 신세계를 지향하는 사회 주체들이 만들어낸 기이하고 키치적이지만 동시에 기복적인 염원의 상황들을 살펴보는 것이 본 작업의 목표입니다. ■ 김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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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리 꼿입피 떠러진다고 향기조차 업서지나요.








전나은展 / JEONNAEUN / 全那恩 / mixed media 2012_0701 ▶ 2012_0715





전나은_세월리 (36개의 장면) If years (Thirty-six Scenes)_설치_2012




초대일시 / 2012_0706_금요일_07:00pm

관람시간 / 12:00pm~06:00pm

갤러리 175 GALLERY 175 서울 종로구 안국동 175-87번지 안국빌딩 B1 Tel. +82.2.720.9282 blog.naver.com/175gallery club.cyworld.com/gallery175





전나은 작가는 오래되고 낡은 것에서 소재를 취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지나치는 버려진 것들이 그녀의 손을 거치면 모두 얼굴을 갖게 된다. 관람객이 그 앞에 멈춰서, 눈을 맞추고, 귀를 기울여 들어줘야 할 이야기 거리를 가진 생명체가 된다.
전나은_인생은 연극이 아니더냐 Life is theather_트레팔지에 프린트, LED_72×72cm_2012

과거의 어떤 순간이 현재에도 울림으로 다가올 수 있기를 바라며 ● 팔순을 훌쩍 넘긴 할머니가 남기고 떠난 공책이 있다. 누렇게 바랜 종이 위에 오래된 노래들이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럽게 새겨져 있다. 세월리 꼿입피 떠러진다고 향기조차 업서지나요. / 나는냐 굼을구는 꼿 바는 아가씨 / 흐르는 강물에 슬픔을랑 던져버리고 도아서서 우서버려요. 맞춤법, 띄어쓰기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문장이다. 오늘날 우리가 바쁜 틈을 타서 지인에게 보내는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의 메시지와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꼭꼭 눌러쓴 할머니의 글씨는 똑같은 비문이라고 일갈해 버릴 수 없는 정성어린 시간의 흔적이 남아있다. 할머니의 글에서는 시간도 무게를 갖는다. 한 자 한 자 꼭꼭 눌러서 채워낸 시간, 비록 맞춤법은 틀렸지만 몇 번이고 테이프를 돌려가며 뜻을 새겨 넣은 시간, 예쁘게 공책에 다시 옮겨 쓰는데 보냈을 시간, 빈칸으로 남았을 단어에 비슷하게 들리는 말을 대입해 몇 번이고 가사를 음미해 봤을 시간 들이 저마다의 무게로 남아있다. 촌스러운 손 글씨도 모든 게 빨라진 지금 이 시대에는 낯선 풍경이다. 하지만 이 낯설음을 뚫고 그 때의 감성이 지금도 묻어 나온다. 시간을 들여 노래를 완성한 결과일까? 그때의 시간이 현재의 시간 속에서 고스란히 자신을 드러낸다. 늙음과 함께 사라져 버렸을 어떤 것이 여전히 자신이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해 낸다. 한때 한 여인이 느꼈을 설렘, 수줍음, 그리움, 사랑. 이 오래된 것들이 기나긴 세월을 견뎌내어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미세한 떨림으로 다가온다. 시간 속에 깊이 아로새겨진 흔적은 모든 것이 빨라진 이 시대의 것들이 흉내 낼 수 없는 정성을 품고 있다.
전나은_세 마녀 The Three Witche_세라믹, 목공, 장식품 등_9×10×10cm_2012

순간순간 달라지는 조명 빛의 섬세함과, 귓가를 스치는 멜로디의 서정적인 정서도 오래된 텍스트가 지닌 시간과 조우하며 자신을 덧없이 흘려보내지 않아도 된다. 상처받기 쉬운 도자기의 연약함도 부드러운 할머니의 마음이라는 제짝을 만나 본연의 모습을 간직하게 되었다. 이들 모두 살아남아 자신의 생명을 드러낼 것이다. 연약함과 강인함 사이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새로이 자리 매김하며 보는 이의 마음을 건드릴 울림을 선사할 것이다. ■ 전강희
전나은_악마가 오늘을 가져갔다. The devil took this time._세라믹, 목공, 장식품 등_14×12.5×9.5cm_2012




온 세상은 무대이고 모든 여자와 남자는 배우일 뿐이다. 그들은 등장했다가 퇴장한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뜻대로 하세요』) ● 이번 전시는 칠흑 같은 어둠에서 관객의 움직임을 감지하면 오르골 소리와 함께 조명의 불이 켜지면서 시작된다. 조명은 밝기, 색, 포커스의 변화로 빠르거나 느린 시간의 흐름, 감정의 변화를 연출하여 극적인 심리변화 또는 화제전환의 도구로 사용된다. 특히 도자(ceramic)라는 전통매체부터 오브제, 텍스트, 빛, 움직임, 센서, 멜로디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경계 해체의 방식을 통해 연극적 무대를 연출한다. 무대 위의 배우는 낮 익은 장난감 오브제를 도자로 캐스팅해서 재조합시켜 만든다. 낮 익은 오브제를 복제하는 행위는 Made in CHINA라는 문화적 코드와 연결점을 찾기 위한 노력이다. Made in CHINA 오브제는 저렴해서 어디서나 손쉽게 얻고 버릴 수 있는 것이다. '빠르고 대체 가능한 것', 이는 동시대 문화를 단적으로 설명하는 말이다. Made in China는 이 속성을 가장 정확하게 드러내는 아이콘이다. 캐스팅의 사전적 정의는 첫째는 배역선정이고, 둘째는 주물(본을 뜨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는 두 가지 의미 모두 유효하다.

전나은_별들이 속삭이는 Whispering stars_세라믹, 목공, 장식품, LED 등_30×32×8cm_2012




장면, scence나는냐 굼을구는 꼿 바는 아가씨흐르는 강물에 슬픔을랑 던져버리고 도아서서 우서버려요. 장면을 연출하는 텍스트는 팔순을 훌쩍 넘긴 할머니의 노트에서 내용과 필체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구전동요처럼 입에서 입으로 변형된 노래가사, 사소한 기록, 약간의 드로잉 등이 맞춤법에는 서투르지만 정성스럽게 쓴 필체로 기록되어있었다. 텍스트의 기의는 할머니의 필체(기표)를 통해 강한 이미지로 다가오게 된다.

전나은_무명초 Nameless plant_세라믹, 목공, 장식품, LED 등_31×31×18cm_2012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감수성. 가슴이 말할 때 이성이 반박의 목청을 높이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 것이다. 키치의 왕국에서는 가슴이 독재를 행사한다./ 물론 키치에 의해 유발된 느낌은 가장 많은 사람들에 의해 공감될 수 있어야 한다./ 키치는 백발백중 두 방울의 감동적 눈물을 흘리게 한다. 첫 번째 눈물은 이렇게 말한다. : 잔디밭을 뛰어가는 어린아이, 저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두 번째 눈물은 이렇게 말한다. : 잔디밭을 뛰어가는 어린아이를 보고 모든 인류와 더불어 감동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키치가 키치다워 지는 것은 오로지 이 두 번째 눈물에 의해서이다." ● 할머니의 필체는 밀란쿤데라가 언급한 감정적 눈물을 흘리게 하는 첫 번째 눈물에 해당한다. 물론 쿤데라는 키치적 이미지를 개성적인 것과 고유한 모든 것을 배제하는 전체주의적 형태로 바라본다. 그리고 키치는 오래전부터 수많은 담론에서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어조로 논쟁의 중심에 서 왔다. 키치가 부정적이기만 할까? 할머니의 필체는 보는이에게 눈물을 자극하고 고통스런 현실은 잊게 해주는 긍정적 키치의 에너지이다. 그리고 나의 작업은 긍정적 키치의 이미지로부터 출발한다. ■ 전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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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비르 칼레카展 / Ranbir Kaleka / mixed media 2012_0703 ▶ 2012_0819 / 월요일 휴관




랑비르 칼레카_SWEET UNEASE_single channel HD video projection on painted canvasmounted on fractured wall_00:11:11 loop_53.5×294cm_2011



초대일시 / 2012_0703_화요일_06:00pm

관람료 / 성인_3,000원 / 청소년(7~18세)_2,000원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아라리오 갤러리 천안 ARARIO GALLERY CHEONAN 충남 천안시 동남구 신부동 354-1번지 Tel. +82.41.551.5100 www.arariogallery.co.kr




아라리오 갤러리 천안은 오는 7월 3일부터 8월 19일까지 인도계 영국 작가 랑비르 칼레카(b. 1953)의 대규모 개인전을 기획한다. 랑비르 칼레카는 30년에 걸친 미디어 작업으로 인도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회화와 영상을 결합한 그의 작품은 지난 10년간 베니스, 베를린, 비엔나, 뉴욕, 시드니 등 대도시 박물관과 미술관에 수차례 전시되었다. 이번 전시는 한국에서 열리는 첫 번째 개인전으로 랑비르의 독특한 예술 세계를 집중 조명하여 선보이는 시간을 제공한다.
랑비르 칼레카_CONFERENCE OF BIRDS AND BEATS_duratrans on lightbox_61×153cm_2011

랑비르의 미디어 작품은 대형 캔버스의 회화 위에 영상을 투사하는 작업이다. 회화는 무게와 촉감 등의 물리적 특성을 가진 이미지로서 안료의 특성으로 인해 색채가 중첩될수록 깊고 어두운 색조를 띄는 특성이 있다. 반면 영상은 빛으로 이루어진 이미지의 연속체로서 공간성을 가지지만, 만지거나 보유할 수 없으며 섞일수록 더욱 밝아지는 정반대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작가는 대비되는 두 매체들을 혼재하면서 하나의 매체가 가지는 고유한 속성을 증폭하거나, 때로는 겹치고 결합하여, 전혀 새로운 이미지로 재창조한다. 또한 회화가 가진 정지된 시간과, 영상이 상영되는 연속성의 시간, 이 두 시간이 한 작품 안에 공존하게 되면서 현실 초월적이고 환상적인 시공간을 창조한다. 독특한 영상 방식뿐만 아니라 랑비르의 영상 작업에서 중점으로 볼 것은 영상 자체의 내러티브이다. 내용은 인도인의 삶이나 이주 노동자, 그들 자녀의 실종과 같은 그가 자라온 인도 전역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이 주를 이룬다. 인도라는 지역성과 글로벌리즘, 인공과 자연, 또는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한 현실과 기호화된 환상 등 대조적인 세계를 넘나드는 마술적 리얼리즘을 주조로 하여 제작된다. ● 랑비르 칼레카 작업의 특색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Not From Here, 2009」는 페인팅 위에 6분짜리 영상이 상영되는 작품으로 현재 인도에 거주하는 1억 명 이상의 이주 노동자 문제를 다루고 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도시를 떠도는 노동자들로, 눈에 거의 띄지 않으며 존재의 기록조차 없다. 이들은 화폭에 그려진 자신의 모습으로부터 걸어 나와 캔버스 위에 몸의 흔적만을 남기고 지나간다. 이들의 몸은 실루엣으로 표현되지만 땅에 놓여 있는 짐은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사람들의 희미한 인상에 비해 이 물건들은 초현실적인 실재감을 드러내며 낯선 느낌을 자아낸다. 영상이 거의 끝나갈 즈음, 휘파람 소리가 새로운 이들의 등장을 예고한다. 노랫소리에 맞추어, 새로운 승객들을 실은 과거와 미래의 기차들이 환영처럼 줄지어 들어온다.
랑비르 칼레카_CHIMERIC ENRAPTURE_video projection on canvas_81×145cm_2011

신작 「FOREST, 2009-2012」는 혼돈과 갈등의 시기 속에 피어나는 '재생'에 대한 작가의 해석이 담겨있다. 들판을 덮은 꽃 무리 아래로 검게 탄 땅이 드러나고, 그 위에 한 남자가 스스로의 몸에 속죄의 채찍을 휘두르고 있다. 남자가 일어나 발걸음을 떼자, 그의 모습이 만화 영화 속 캐릭터로 바뀐다. 들판의 나무들은 세밀하게 그려져 분주하게 숲을 지나는 그와 다른 사람들의 모습과 대비되어 보이지만, 이내 그들은 나무 위로 겹쳐져 하나의 이미지로 표현된다. 들판에는 책장이 생겨나게 되는데 책장은 지식을, 책장 앞의 앉아 있는 사자는 지식의 수호신을 상징한다. 하지만 혼돈과 갈등이 시작되면서 도서관이 불타고 사자는 파괴의 힘에 밀려 떠나게 된다. 그는 불에 휩싸인 도서관에서 책을 구해내고 책으로 공부를 한다. 지식의 힘을 쌓이면서 그 자리에는 새로운 도시가 생겨나게 되며, 관객들은 새로이 솟아오르는 도시로 돌아오는 아기 사자를 보게 된다.
랑비르 칼레카_FOREST_video projection on a painting_00:16:00 loop with sound_340×600cm_2012

랑비르의 작품은 그가 창조한 제 3의 시공간으로 관객을 초대하며, 관객들은 수용의 과정을 통해 확장된 시청각적 경험과 극대화된 감정을 공유하게 된다. 또한 영상에 담긴 인도 사회의 문제에 대한 작가의 시각을 함께 고찰하고 나아가 우리가 사는 주변에 대한 폭넓은 인식 확대의 기회를 제공한다. ■ 아라리오 갤러리
랑비르 칼레카_18 ALLEGORIES OF SELF_video projection on canvas_81×145cm_2011
랑비르 칼레카_AUROBOROS_sculpture_250×385×65cm_2009



나는 이 작품을 혼성체(하이브리드) 또는 합성물로 보지 않는다. 가슴의 박동과 리듬에 맞춰 숨쉬는, 풍성한 이미지-구조물로 간주한다. 비디오 영상의 움직임과 그려진/조각된 표면 사이에는 내부적인 연결성, 논리가 존재한다. 비디오 영상은 실체성, 그리고 물질성 (글자 그대로)과 직결되어 있다. 나는 이 작품에 그 어떤 전체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주변의 진실에 대한 발견의 한 측면을 고찰하는 것이다. 그림의 속살 속에서는 "시간"이 숨쉬고 있다. 찰나가 그 유동적인 변동성 속에서 재생산된다. 시간의 리듬 속에서, 이미지는 영원으로 화해 자체적인 한계를 초월한다. ■ 랑비르 칼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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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율연회도(眺律宴會圖)(Cho-Yul Banquet)




조해리展 / CHOHAEREE / 趙海利 / painting 2012_0704 ▶ 2012_0709



조해리_조율런던연회도병(眺律London宴會圖屛): 시율(示律)24-26년_10폭 각 180×65cm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조해리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2_0704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가나아트 스페이스 GANAART SPACE 서울 종로구 관훈동 119번지 1층 Tel. +82.2.734.9258 gana.insaartcenter.com



조율연회도(眺律宴會圖)는 내가 바라보는(眺;observe) 세상의 운율(律;rhythm)을 노래한 그림이다. 기억이 경험들의 단순한 나열이라면, 추억은 경험들이 만들어낸 감동이다. 같은 기억이라도 내가 어떻게 추억하느냐에 따라 한바탕의 연회(宴會;banquet)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조해리_조율석식연회도(眺律夕食宴會圖): 시율(示律)24년_한지에 수묵채색_180×65cm_2012
조해리_조율조식연회도(眺律朝食 宴會圖): 시율(示律)25년_한지에 수묵채색_180×65cm_2012
조해리_조율신년연회도(眺律新年宴會圖): 시율(示律)25년_한지에 수묵채색_180×65cm_2012

조율연회도는 두 작품이 한 쌍으로, 참고작품인 '무신진찬도병(戊申進饌圖屛, 조선 헌종 14년, 184년, 견본채색, 8폭 각 136.1×47.6 cm, 전주국립박물관 소장)' 중 3,4첩의 내진찬(內進饌)과 5,6첩의 야진찬(夜進饌)을 각각 '낮파티'와 '밤파티'로 재해석한 그림이다.
조해리_조율런던쥬연회도(眺律LondonZoo宴會圖): 시율(示律)25년_한지에 수묵채색_180×65cm_2012
조해리_조율듀엣연회도(眺律duet宴會圖): 시율(示律)25년_한지에 수묵채색_180×65cm_2012

시율(示律)은 나의 호(號)이자, 조율연회도 시리즈에서는 연호(年號)로 사용되어 작품내용의 시기를 말해주고 있다. 즉, 내가 만 27세인 2012년 기억의 조율연회도는 '시율 27년'으로 표기된다. ■ 조해리
조해리_조율피크닉연회도(眺律picnic宴會圖): 시율(示律)25년_한지에 수묵채색_180×65cm_2012


'Cho-Yul Banquet' illustrates the rhythm of the world that I have observed and experienced. Memories are simple chronicles of life, whereas reminiscences are emotional experiences enshrined in my heart. Even for the same emotional experiences, the way in which I reminisce about them determines whether each piece is a banquet. ● 'Cho-Yul Banquet' series is a reinterpretation of the following paintings into a pair of work: "day party & night party". Painting referenced - 'Musin jinchan dobyeung (Royal Banquet in the Year of Musin, 1848, Colors on silk, Eight-panel screen, each panel 136.1 by 47.6 cm, Chonju National Museum)'. ● 'Si-Yul' is my pseudonym, which also indicates the chronology of the reminiscences depicted in the painting. For instance, 'Cho-Yul Banquet' signatured as 'Si-Yul 27' refers to the experiences of my 27-year old life. ■ CHO Hae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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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조展 / CHOITAEJO / 崔太朝 / painting 2012_0704 ▶ 2012_0710



최태조_그들의 타자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115cm_2010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최태조 블로그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2_0704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토포하우스 TOPOHAUS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4번지 제1전시관 Tel. +82.2.734.7555/+82.2.722.9883 www.topohaus.com



이 작가를 주목하라! 부산에서 활동해오던 최태조(1979,부산출생)작가의 첫 서울 개인전이 관훈동 '토포하우스'에서 7월 4일(수)부터, 7월 10일(수)까지 개최된다. ● 최태조 작가의 작업은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물이나 대상에서 출발한다. 특히 사람들이 사용하는 물건이나 사물, 우리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과 식물 등, 일상의 대상들을 주로 다룬다, 그의 작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는 사물들을 단순히 재현하고자 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작가가 화면 속에 채워가는 이미지들은 작가의 상상력과 그를 통해 표현되는 형상들을 현실과 교묘하게 혹은 자유롭게 뒤섞어 표현하며, 사물과 상상의 형태를 동시에 병치시켜 보여준다.
최태조_꽃들의 도시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115cm_2012
최태조_최후의 만찬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195cm_2011
최태조_진화하는 꽃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0.5×116.5cm_2011

최태조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을 그려낸 작업이라고 공언한다. 작가는 일상에 감추진 현실의 상황들을 사물과 식물 등에 비유하여 나타내고자하며,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식물과 꽃들의 생장과정에 이입하여, 그 속에 "인간 냄새나는 삶"의 단면들과 그런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인간성'을 표현하고자 한다고 한다. 그리고 작가는 인간들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도구'를 가지고 그 사물들이 가지는 상징성을 넘어, 그 속에 인간들이 무리지어 만들어내는 집단, 단체, 혹은 국가들이 가진 부조리한 구조들과 사회적인 시스템의 모순들을 사물들과 함께 담아내고 있다. 결국 작가가 나타내고자하는 형상들은 지극히 현실적인 것들이며, 동시에 현대인들이 체감할 수 없는 눈으로 보이지 않는 감추어진 '불편한 현실'을 작가만의 테크닉으로 표현해 내고 있는 것이다. ■
최태조_진화하는 정물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5×90cm_2012
최태조_늙은 꽃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45.5cm_2012
최태조_능소화 꽃을 피우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89cm_2010


"나는 단순히 아름다운 꽃그림이나 정물화 따위를 그리려고 했었다!" 캔버스 위를 현실의 도피처 삼아 그림을 그리는 바보 같은 화가들처럼…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절망적 이였고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래서 난 아름다운 꽃을 그리면서도 결국은 그 속에서 절망적인 현실과 현대사회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담아내려고 했다. ■ 최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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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우展 / CHOIJUNGWOO / 崔廷宇 / sculpture 2012_0704 ▶ 2012_0710



최정우展_갤러리 도스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81115g | 최정우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2_0704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갤러리 도스 GALLERY DOS 서울 종로구 팔판동 115-52번지 Tel. +82.2.737.4678 gallerydos.com



욕(欲/慾)의 탈바꿈 ● 인간은 욕(欲/慾)을 채우고 비우는 그릇이다.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은 점점 더 큰 욕(欲/慾)을 불러일으킨다. 현실에서의 불만과 결핍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에 지속적인 원동력이 되며 예술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다. 작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간의 욕(欲/慾)의 관계에 집중한다. 그에 대한 성찰은 작가 개인의 작은 경험에서부터 시작되며 인간사에 적용될 수 있는 넓은 의미로 확장된다. 작가에 의해 선택된 상징성을 띈 사물들은 상상과 감성이 더해져 예술로 재창조되어 새로운 존재로 탈바꿈한다.
최정우展_갤러리 도스_2012
최정우_metamorphosis_철, 혼합재료_163×60×128cm_2012

욕(欲/慾)은 '바라다. 탐하다.'는 뜻의 접미사로 독립되지 못하고 기존의 단어와 결합하여 욕망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언어에서 명예욕, 승부욕, 성취욕 등 다양한 형태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현실에서도 인간이 대상을 탐하는 마음은 주변의 수많은 관계들로 녹아든다. 현실에서 소유의 관계로 만들어가는 과정은 나의 사회적 지위와 위치를 확인시켜준다. 반대로 생각하면 내가 존재하는 것은 내가 소유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처럼 자본주의 성향이 강한 현대 사회가 만들어낸 소유에 집착하는 삶의 방식은 결국 인간과 자연으로부터의 소외를 낳는다. 작가에게 욕(欲/慾)은 문명 위기의 징후와 마찬가지로 위험한 것이다. 작품을 통해 당연하게 여겨지는 일상의 풍경에 비판적인 해석을 투입하여 인간이 부여하는 가치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 최정우는 관찰자의 정적인 시각으로 주변의 경험과 사물에서 숨은 의미를 찾고 그 이미지를 다시 형상화한다. 선택된 대상은 현대의 소비사회가 야기한 욕(欲/慾)의 정서를 환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파헤쳐져 드러난 나무뿌리는 생존을 위해 양분을 끌어올리는 식물의 욕(欲/慾)이 반영된 것이지만 인간의 욕(欲/慾)에 의해 무참히 희생된다. 원래 나무뿌리가 있어야 할 그 곳은 커다란 구덩이가 된 채 새로운 욕(欲/慾)으로 채워지며 이는 마치 인간 내면의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구덩이를 보는 듯하다. 얽히고 설킨 인간의 욕망은 뿌리로 가시화되고 우리에게 그 이면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저울은 물질의 가치를 정하기 위해 만든 무게를 측정하는 도구이다. 금속의 묵직함을 가진 저울은 대상을 물질적 가치로 환산하려는 욕(欲/慾)의 반영이다. 작가는 인간이 정한 잣대로 대상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에 대한 진정성에 대해 의심한다. 그 옆에 허공에 떠있는 배는 중심을 벗어난 채 기울어져 있다. 배의 골조가 드러난 형상은 인간의 일방적인 욕(欲/慾)에 의해 자연계의 평형이 어긋난 것처럼 위태롭게 보인다. 각 작품 전반에는 정지된 고요함이 묻어나며 이는 인간의 생에 대한 사유의 침묵이다.
최정우_metamorphosis

일상 속에서 당연히 받아들여졌던 인간의 욕(欲/慾)은 작가만의 시각으로 재해석되어 표현된다. 자신이 살아가는 동안 느끼고 생각한 것을 예술로 표현하고 주변의 긍정을 받고 싶어 것도 하나의 욕(欲/慾)이다. 작가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주변 환경으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그 속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에 대해 찾고자 한다. 평범하고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는 일상의 것들을 조형적으로 재해석함으로써 다른 각도에서 사유하게 만든다. 물질 위주의 현 세태에 대해서 비판하면서도 그 밑바탕에는 인간의 인간다움을 갈망하는 휴머니즘이 깔려있다. 이번 전시는 조형물이 만들어내는 존재감과 공간감을 통해 욕(欲/慾)이라는 의미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 김미향
최정우_metamorphosis_혼합재료_가변설치_2012

생각에 빠져들기 위해 나는 길 위를 택한다. 그러다 나무들의 흔적처럼 남겨진 움푹 패인 구덩이는 나의 마음 언저리를 움직이게 한다. 나에게 구덩이는 지속된 자극으로 살점이 떨어져 나간 자리만 같다. 그 비어진 상처의 허전함을 채우려는 듯 하늘은 빗물로 채우고 새하얀 눈으로 덮는다. 그러다 언젠가 다시 비워지리라. 하지만 예전의 비움과 다른 단단하고 생명력 있는 비움일 것이다. ● 나의 머릿속에도 움푹 패어진 구덩이가 하나 있다. 그리고 그 안에 채워진 여러 개 중 욕(欲/慾)이 있다. 너에게도, 나와 너 사이에도, 우리와 나무사이에도 욕이 있다. 끝없는 철길을 걷듯 그 종류의 수도 양도 헤아릴 수 없다. ● 나는 오늘도 편안한 눈으로 나무를 바라보지 못한다. 땅속에서 꿈틀거리는 생명의 에너지를 알기에, 나는 그들에게 눈을 똑바로 마주칠 수 없다. ■ 최정우
최정우_metamorphosis_철_가변설치_2012


I take a path to indulge in ideas. A pit appearing like a tree-trace moves my mind. For me, the pit is like a place where a piece of flesh is cut-out with a constant stimulation. As if to fill the emptiness of the wound, the heavens fill with rainwater and snow. Someday it will be empty again. This is a solid emptiness with a life force different from previous emptiness. ● There is also a pit in my head. One that fills the head is desire. The desire is between you and I, trees and us. There are many kinds, like walking along a railway. I cannot see the trees with comfort today. As I know life energy wriggles under the ground, I cannot keep eye contact with the trees. ■ CHOIJUNG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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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선展 / HANJUNGSUN / 韓定宣 / photography 2012_0704 ▶ 2012_0724




한정선_Apartment blocks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00×150cm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한정선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2_0704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나우 GALLERY NOW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2-13번지 성지빌딩 3층 Tel. +82.2.725.2930 www.gallery-now.com




유토피아의 시작과 끝 ● 한정선의 작품에서 디지털 세계와 아날로그 세계는 별 반 다를 바가 없다. 작가는 아파트에서 양자가 중첩된 세계를 발견한다. 출력된 작품들은 아파트의 부분을 복제하여 계속 붙여나가는 방식이다. 아파트의 구성요소 중 베란다는 전체 장면을 구성하는 세포, 즉 픽셀에 해당된다. 복사해서 붙여넣기 방식은 아파트의 형태 뿐 아니라, 아파트가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개발 과정에도 관철된다. (재)개발을 추동하는 것은 돈이다. 한정선의 작품에서 아파트는 주거지라기보다는 호환성이 큰 매개물, 요컨대 돈으로 간주된다. 돈의 순환과정이 그렇듯이 아파트 중심의 주거 문화는 빈과 부의 구별을 확실히 하고 그 간격을 점차 넓혀 나간다. 근대건축의 선지자들이 가졌던 유토피아적 이상과 달리, 다수가 비슷한 구조에 몰려 사는 아파트는 경쟁과 독점이라는 시장 원리가 가장 잘 작동되는 곳이다. 한국이 '아파트 공화국'이 된지도 꽤 오래된 지금, 81년생의 한정선은 3살 이후부터 계속 아파트에서만 살아왔지만, 생활인이 아닌 작가로서 자신이 속한 생태계에 대해 반성한다. ● 아파트 중심의 주거문화는 편리의 한편에 불편한 진실이 있는 것이다. 루이비통 무늬로 도배된 아파트를 표현한 이전 작품 「사는(buying) 집」(2007)은 동음이의어 말장난을 통해 주거 이상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 아파트의 상징성을 드러낸바 있다. 기존의 자연과 주거지를 밀어내고 다시 건축된 곳에 장식적으로 삽입된 자연 또한 인공적 속성이 강하다. 여기에서도 자연과 인공은 아나로그와 디지털처럼 크게 구별되지 않는다. 베란다가 픽셀이 되어 구조를 이루듯이, 똑같은 크기와 형태의 나무들은 모여서 산을 이룬다. 아파트나 나무는 프랙털 구조처럼 전체 속에 부분이 있다. 세모 네모 동그라미 같은 기본 도형 안에 배열된 나무는 도식화된 자연을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요즘은 아파트의 모양들이 약간의 차이를 가지고 있지만, 작가는 거기에서도 규칙적인 차이, 요컨대 수치화된 차이를 발견할 뿐이다. 같은 브랜드의 아파트는 어디나 똑같다. 작품에는 인공적으로 조성된 구조들로 가득하지만 사람은 안 보인다. 작가는 그 이유에 대해, 아직까지 사람은 복제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정선_Apartment blocks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00×150cm_2012
한정선_Apartment blocks 2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70×100cm_2012

그러나 사람이 환경을 만들었다면 환경은 또한 사람을 만든다. 이미 도시인들의 생활 패턴은 많이 유사하며 생김새도 비슷해져 간다. 한강변 아파트 숲과 그 사이사이에 선만으로 표현되어 있는 유람선과 비행기는 사실주의적 환영 대신에 도상적 기호로 나타나며, 게임의 요소처럼 비현실적이다. 모듈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파괴와 생성을 거듭하는 테트리스 게임 같은 방식은 보편화된 특정 주거문화를 움직이는 원리이다. 복제에 복제를 거듭하는 픽셀 구조는 무채색을 기본으로 하고, 화사한 팝 적인 색채가 방점을 찍는다. 색 역시 하나의 코드로서 형태나 기능과 관계없이 순환된다. 「a part of apart」 시리즈는 정사각형 틀 안에 한강 가에 늘어선 빽빽한 아파트촌을 표현한다. 베란다를 모듈로 한 골조들로 이루어진 밀집된 구조들이 멀찍이서 조망된다. 아파트 위에 떠 있는 구름만이 인적 없는 풍경들을 구별하는 요소이다. 구름이나 강물처럼 명확한 형태가 고정될 수 없는 실재 또한 데이터 뱅크 속에 쟁여져 있다가 필요시에 호출되는 코드가 된다. 이러한 강물은 실제의 강물과 달리,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담글 수 있을 것이다. ● 삼각형, 사각형, 원, 직사각형 등의 판 위에 배열된 나무들은 가느다란 줄기에 같은 크기와 형태로 어느 날 함께 이식된 것이 분명하다. 정원 술은 똑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아파트에 부가가치, 즉 차이를 주는 요소였지만, 곧 그 차이는 추월된다. 베란다가 아파트를 이루듯이, 같은 단위구조로 된 나무들은 산을 이룬다. 강에 비친 나무(산)의 반영상은 시뮬라크르의 속성을 강조한다. 무채색 아파트 풍경에 생기를 주는 요소는 색색의 사각형 구조이다. 사각형은 중력과 원근을 무시하고 화면에 점점이 떠 있다. 모듈화 된 사각형, 나무들은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조합되어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인상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모듈의 증식방식은 근본적으로 한정되어 있기에, 아파트, 한강, 비행기, 유람선, 나무(산), 도로 같은 요소들이 총체적으로 어우러진 풍경들은 그곳이 그곳 같다. 요소들은 거듭된 복제에 지친 듯 간혹 축 늘어져 있기도 하다.
한정선_Babel blocks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00×70cm_2012
한정선_apartment blocks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30×30cm_2012

많은 작품이 정사각형 구조라서 그림 자체가 모듈로 보이기도 한다. 같은 형태와 사이즈가 병렬된 작품 「apartment series1,2,3」이나 「block series1,2」가 그렇다. 작품 「babel blocks」는 아파트라는 블록을 곧 무너질 바벨탑과 비유한 묵시론 적 작품으로,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모듈은 사선의 불안한 구성 속에 배치되어 있고, 건물이 서있어야 할 대지는 이미 사라져 있다. 멀리서 조망하거나 자동차, 배, 비행기 같은 빠른 이동 수단을 타고 지나치듯 포착된 풍경에서 현대의 도시의 구성 방식이 드러나 있다. 그곳을 가상현실처럼 빠르게 접근하고 탐색한 후 이동하는 시점이 지배한다. 즉 초고층의 대단지 아파트는 인간들끼리 사회적으로 교류하거나 머무는 장소와는 거리가 있다. 칸칸 속에 자리한 개인주의는 서로의 존재가 인식되지 않는 것을 최대의 에티켓으로 삼는다. 아파트를 비롯한 초고층 빌딩들은 균등한 동질의 환경을 조성하며, 인간적 활기를 대신에 생산과 소비, 또는 건설과 파괴의 리듬을 전면화한다. ● '살기 위한 기계'로서, 근대 건축의 대명사인 아파트는 발전이나 성장을 촉구하는데, 그것은 무엇인가의 축출과 배제, 삭제를 전제한 것이다. 네모난 픽셀로 이루어진 세상은 복제와 삭제, 그리고 속도가 지배한다. 한정선의 작품에서 모듈화 된 구조는 어느 부품과도 교체될 수 있는 잘게 쪼개진 생산-소비의 단위로 빠른 복제와 삭제라는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아파트 도시를 지배하는 것은 경제적 합리성 타인과의 익명적 관계인데, 이 관계를 움직이는 것은 자본이다. 자본은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공통 언어이다. 한정선은 이전 작품 「돈이 되는 예술」(2007)에서 상품권 형식으로 만들어진 만원짜리 지폐 작품을 전시한 바 있다. 만원짜리 지폐에 모나리자 얼굴과 작가의 도장도 찍혀 있고, '현대 미술권'과 '현대미술'이라는 글자도 교묘하게 삽입되어 있다. 물질화를 거부하는 개념미술조차도 상품화된 지 오래된 지금, 이 개념적 작품은 자기 반영적인 현대미술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 2007년 전시에서 판화를 전공한 작가는 판화의 복수성을 활용하여 뒷면에 사인이 들어간 여러 장의 에디션을 유통시켰다. 그것은 미술 시장이 붐을 이루었을 때, 자신의 작품도 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과 미술시장에 대한 냉소적 풍자가 결합된 작품이지만, 이번 전시와 관련되어 보다 중요한 점은 화폐가 모듈의 원형처럼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사각형이라는 형태적 유사에 기인하지 않는다. 근대 자본주의 이후 돈은 보편적 질서의 상징이 되었다. 모든 것들이 교환되기 위해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환원이다. 돈은 비교할 수 없는 것도 비교하게 하고, 가질 수 없는 것도 가질 수 있게 한다. 질은 양화되어 같은 평면상에 배치됨으로서 호환성을 갖춘다. 그것은 균질화를 통해 통합하고, 동시에 화해할 수 없는 차이 또한 벌려 나간다. 화폐는 모듈의 원형이다. 정보화 사회 속에서 모듈화는 더욱 강력하게 작동한다. 코드는 전자적으로 매개된 소통을 이끌며 기술 유토피아를 구축한다. 그것은 가상을 넘어 현실을 생성한다.
한정선_apartment blocks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40×100cm_2012

가상공간은 점차 현실 공간을 식민화 한다. 식민화란 '세계를 바라보는 특정한 방식들이 지배적으로 되는 것'(미셀 푸코)을 말한다. 유럽의 어느 성, 어느 정원을 모방한 한국의 아파트와 그러한 아파트들이 대단지를 이루어 만들어진 신도시는 이제 중동 같은 나라에 통째로 이식되기도 한다. 재개발 모델은 서로 다른 인종과 땅, 역사를 가진 국가 간에도 공유되고 순차적으로 반복된다. 거기에는 재현의 질서가 작동한다. 동일한 질서로의 환원은 선적 질서 또는 진보를 의미한다. 실재와 모델이 구별 불가능한 세계에서 복제와 삭제는 더욱 원활하다. 실재는 시뮬레이션에 의해 만들어진 모델로 일치된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출발한 사각형 모듈은 가상공간에서 태어나 조합되어 파생실재를 만들어낸다. 기호 체계 속에서 인위적으로 부활된 생태계는 바람 한 점 불 것 같지 않으며, 강물은 영원히 제자리에서 출렁거릴 듯하다. ● 기호는 모든 등가의 체계를 이룬다. 기호와 실재는 구별되지 않기에 모든 것들이 무중력 상태에서 손쉽게 조합된다. 물질과 정보를 혼동해서는 안 되지만, 비트로 나뉜 정보가 현실을 대체하는 대세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누구나 새로운 자연이 된 데이터 뱅크에 접근하고 조작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 것은 아니며, 게임 원리의 창출이나 변경 또한 권력의 문제이다. 그것이 말끔하게 조합된 모듈과 코드의 세계에서 느끼는 불안감의 원인이다. 코드화 된 세계의 지루함 이면에 자리하는 것은 어떠한 흔적도 없이 단번에 삭제될 수도 있는 불안한 삶의 조건이다. 배제, 또는 삭제되어 있는 것들은 디지털 방식으로 재현될 수 없는 것들이다. 디지털 복제는 이미 재현도 초과한 상태이지만, 재현될 수 없는 것은 실재로 간주하지 않는 사실주의 이데올로기를 답습한다. 약호화 할 수 없는 것들은 가상공간에 드러나지 않으며 현실공간에서도 사라진다. ● 베란다의 반복구조로 되어 있는 실체감 없는 건물들 사이사이로 비슷한 무늬의 산과 물, 그리고 외곽선으로만 처리된 비행기와 유람선은 자본의 원활한 회전에 방해가 될 수 있는 물질성을 점차 떼어내는 정보 언어의 경향을 나타낸다. 정보언어는 이제 스스로를 반복해서 재현할 뿐이다. 모듈과 코드는 자기지시(self-reference)적인 언어로 기표의 흐름자체를 객체로 만든다. 인과관계 없이 '그리고'로만 연결된 모듈과 코드는 돈처럼 세계를 평면적인 것으로 만든다. 실체는 비워지고 관계만 남지만, 서로 비교될 수 없는 수많은 관계들이 돈관계로 함열 되는 현실은, 이러한 비워짐을 단순한 공허나 허무를 넘어서 위협으로 다가오게 한다. 작품 「babel blocks」는 동질적 질서로 온 우주를 가득 채우려는 욕망의 말로를 보여준다. 서로 다른 언어에 의해 무너졌다는 고대의 신화와 다른 점은, 묵시록적 붕괴가 똑같은 언어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소멸된 차이가 재앙을 낳는 역전된 신화이다. ■ 이선영
한정선_a part of apartment blocks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40×100cm_2012



인간은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유익을 철저히 배반한다. 공존과 공생의 대상에서 착취와 지배의 논리로 되갚아 주고 있다. 이미 인간에게 자연은 더 이상 자연이 아닌 인공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인공은 문명, 진보란 이름으로 포장된 인간의 욕망의 산물이다. 시간성을 본질로 하는 자연에게 붙혀진 자연보호라는 구호는 자연의 시간성의 흐름을 고정하고 이용하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의 표명인 것 이다. 자연은 인간이 만들고 없앨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신의 권한으로 원래 그대로 있음에 기반한다. 자연의 질서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파괴되고 변화물상하다. 그 질서를 거스를 때 자연은 더 이상 자연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자연을 만들어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만들어진 자연. 달리 말하면 자연을 파괴하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인공자연을 만들기 위하여 존재하는 자연을 파괴하는 모순된 시대 속에서 무엇이 우리를 그토록 자연을 거스르는 행위를 하게 만드는 것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 산업화 이후 자본주의 시대에 등장한 아파트는 대단지를 형성하여 매매의 거래수단으로서 인간의 의식주의 기본권리 중의 하나인 주의 개념을 소유의 개념으로 바꾸어 놓았고 그 단지 안에 들어선 인공자연은 자연이 도심 속의 실내가 되어버리는 기이한 현상을 가져왔다. 아파트 단지 내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조경은 그 아파트의 소위 집값을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처럼 인간의 욕망은 인간의 의식주의 기본권리 중의 하나인 주의 개념뿐만 아니라 자연마저도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시켜 버렸다. 편리성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시대 속에서 순식간에 사리지고 새로 생겨나는 우리 삶의 터전은 어그러져 유토피아적 도피성 현실이 되어 마치 디지털 가상 세계처럼 우리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 ● 진짜와 가짜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는 복수, 복제, 편집이 용이한 디지털매체의 특성을 가지고 이미지의 편집을 넘어 의미의 편집으로 새로운 이미지와 의미를 창출해 내고자 한다. 편리성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현대사회는 디지털의 특성을 잘 반영해준다. 최소단위인 하나의 이미지가 모여서 한 화면을 형성해 나간다. 또한 이 한 화면에 복수성을 부여하여 거대한 그룹을 이룬다.(multiple image) 하나의 이미지로 시리즈(Series)화 하는 작업이다. 실제 작업과정 또한 이러한 점을 이용하여 컴퓨터상에서 Ctrl+C, Ctrl+V 로 하나의 이미지를 계속 복사해 나가고 있으며 이는 방법적 측면뿐 아니라 개념적으로도 디지털을 매체로 활용하는 당위성을 찾기 위함이다. ● 이러한 이미지들은 컴퓨터 안에서 레이어(layer)를 형성하여 이미지의 중첩효과로 끊임없이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해 간다. 대 단지를 형성하는 아파트, 거대한 산맥을 이루는 나무 등 디지털이 지닌 속성 중 개체와 무리의 관계에 대한 작업으로 복제와 삭제가 용이한 디지털 특성을 현대 사회로 비유하였다. 마치 디지털 가상세계에서처럼 똑같은 것들의 반복이며 쉽게 생겨나며 쉽게 사라져 버리는 세상에 대한 유쾌한 통찰이다. ■ 한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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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ction of the mind






최현희展 / CHOIHYUNHEE / 崔賢姬 / painting 2012_0704 ▶ 2012_0727 / 일요일 휴관




최현희_collection of the mind 01_캔버스에 유채_97×194cm_2012



초대일시 / 2012_0704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토_10:00am~06: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에뽀끄 GALLERY EPOQUE 서울 종로구 재동 38-1번지 B1 Tel. +82.2.747.2075 www.galleryepoque.com




사물에 비친 나(我)를 ● 최현희가 수집한 사물은 모여 탑 모양을 이룬다. 화면 중앙에 자리잡고 앉아 물체들이 바닥을 붙이고 곧추 서 있는 모습은 초상화에서 사람이 위치한 자리와 비슷하다. 쌓는다는 행위는 작가에게 물체만 쌓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쌓여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아래에서 위로 올라온 물체들은 시간 더미를 이룬다. 궤적이라는 말이 있다. 시간을 쌓는다. 시간을 쌓아 눈으로 보여준다. 이것들은 관념적 시간을 시각화한 것으로 기억에 대한 퇴적물이다. 그 기억 덩어리로 정물을 그렸지만 자신의 감정을 물체들에 담아 자화상을 만들었다.
최현희_collection of the mind 03_캔버스에 유채_90×145.5cm_2012
최현희_collection of the mind 06_캔버스에 유채_91×60.6cm_2012
최현희_collection of the mind 07_캔버스에 유채_60.6×91cm_2012

작가가 수집한 물건들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들이다. 그 물건들은 정갈하게 쌓여 있다. 마구잡이로 쌓여 있는 것 같지만 들여다 보면 물체들은 조용하다. 반항하거나 소리 지르지 않는다. 마치 시간 순서를 기다리듯 다소곳이 서 있다. 그림에 나타난 물체들은 개인적인 의미를 담은 기호들이다. 주로 자유에 대한 동경을 나타낸다.
최현희_collection of the mind 08_캔버스에 유채_33.3×91cm_2012
최현희_collection of the mind 05_캔버스에 유채_100×65.2cm_2011

이번 전시에 나타난 『Collection of the Mind』(2012)에서는 물체들과 그림자 사이 변화를 느낄 수 있다. 물체들은 중력을 잃은 듯 혹은 차원이 다른 듯 쌓여 있다. 기존 작업들과 달리 쌓여 있는 형태도 다르고 벽에 마치 파고 들어갈 듯 붙어 있다. 그러나 더 이상 불완전한 그림자들이 보이지 않는다. 이제 작가는 화면에 자신을 밀착시키고 더욱더 굳세게 나아간다. 이 그림의 결론은 현재 탈출이다. 현재 상황에 힘들어 하고 자유로이 작업하고픈 작가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지만 누구도 그의 외침을 듣는 것이 쉽지 않다. 왜냐하면 스스로 그러한 불평이나 비명을 지르는 것에 익숙지 않기 때문이다. 힘들 때면 마음 속에서 외치던 최현희는 자기중심적언어(ego-centric speech)라는 말에 대해 언급했다.
최현희_쌓기-일상_캔버스에 유채_33.3×91cm_2010

피아제(Jean Piaget)는 유아가 자기중심 언어에서 성장하여 사회인지적 언어로 변화한다고 말한다. 정확한 맥락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최현희는 자기중심적 언어에서 벗어나 사회와 소통을 적극적으로 시작한 셈이다. 이번 전시를 계기로 그가 더욱 나아가고자 한다. 현실과 이상을 일치시켜가며 한층 신나는 행보를 준비한다. 재미있고 좋은 작품을 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오롯이 드러내는 솔직한 작업을 하는 것은 더 어렵다. 그가 기존에 속내를 드러내는 것에 주춤했던 시기라면 이제는 더 성숙한 모습과 자신감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용기도 생겼다. 소리도 지르고 큰소리로 이야기도 하고 누군가와 과감하게 어깨동무하며 걸어갈 수도 있다. 그가 쌓아 올리는 시간처럼 캔버스에 물감이 쌓여가며 드러날 그를 반긴다. ■ 이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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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RMAN NOW, from Leipzig




독일 현대 미술展 2012_0706 ▶ 2012_0902 / 월요일 휴관



틸로 바움개르텔_Long Island Sound_캔버스에 유채_150×180cm_2011


초대일시 / 2012_0706_금요일_05:00pm

참여작가 틸로 바움개르텔 Tilo Baumgärtel_페터 부쉬 Peter Busch 하트비히 에벌스바흐 Hartwig Ebersbach_팀 아이텔 Tim Eitel 톰 파브리치우스 Tom Fabritius_마틴 갈레 Martin Galle 세바스찬 괴글 Sebastian Gögel_외르크 헤롤드 Jörg Herold 율리어스 호프만 Julius Hofmann_카타리나 임메쿠스 Katharina Immekus 마틴 코베 Martin Kobe_우베 코브스키 Uwe Kowski 토비아스 레너 Tobias Lehner_로자 로이 Rosa Loy 마익스 마이어 Maix Mayer_데이비드 오케인 David O'Kane 울프 푸더 Ulf Puder_크리스토프 루크해베를레 Christoph Ruckhäberle 아네트 쉬뢰터 Annette Schröeter_에라스무스 쉬뢰터 Erasmus Schröeter 아네트 스투스 Anett Stuth

후원 / 문화체육관광부_라이프치히 시_주한독일대사관_유엔씨 갤러리 협찬 / 코오롱모터스_하나은행 주최 / 성남문화재단 기획 / 성남문화재단_(주)UNC

관람료 성인,대학생 7,000원 / 초,중,고등학생 5,000원 / 36개월 이상, 유치원생 3000원 단체 20인 이상 1000원 할인

관람시간 / 10:30am~07:30pm / 월요일 휴관

성남아트센터 미술관 SEONGNAM ARTS CENTER 경기도 성남 분당구 야탑동 757번지(성남대로 808) Tel. +82.31.783.8142~6 www.snart.or.kr



GERMAN NOW ● 현재 독일의 현대 미술과 사진 작품들은 1990년대 이후 국제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다. 세계적으로 알려지고 있는 'Young German Artist'라는 표현은 독일 미술의 이러한 성장을 잘 반영한다. 독일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로는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 게오르그 바젤리츠(Georg Baselitz), 외르크 임멘도르프(Jörg Immendorf), 안젤름 키퍼(Amselm Kiefer), 네오 라우흐(Neo Rauch)등이 있는데 이러한 독일 작가들의 작품 가격은 매년 20~25% 증가하고 있다. 또한 독일은 전 세계에서 열리는 예술전시회 중 25%가량을 개최하고 있으며, 국제 예술 박람회에 주로 참가하는 50개의 갤러리 중 1/3은 독일에 본점을 소유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현재 독일에는 많은 예술가들의 발걸음이 집중되고 있으며 세계 각국의 미술 교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추세이다. ● 독일현대미술의 가장 큰 특징은 전통적인 형상회화를 토대로 전개된다는 것인데, 통일이 된 90년대 이후에는 분단으로 인해 베일에 가려져있었던 구동독 미술이 봉인 해제되면서 네오라우흐가 이끄는 라이프치히 시각예술대학(Academy of Visual Arts Leipzig) 출신들로 이루어진 라이프치히 화파(Leipzig School)를 주축으로 그 흐름이 전개되고 있다. 따라서 현재 독일 미술의 동향을 바탕으로 구성된『GERMAN NOW』展에서는 21세기 독일 컨템포러리 아트의 흐름을 이끄는 중심축인 라이프치히 화파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로자 로이_Morgen_캔버스에 카제인_266×139cm_2007
마익스 마이어_rb_054_수제 종이에 지클리 프린트_47×60cm, 39×52cm_2011

독일현대미술의 진수 -라이프치히 화파- ● 1989년 현실사회주의가 종언을 선언하게 되고 동구의 문화잔재들이 서구로 소개되면서 그들의 문화는 새로운 동력으로 기대를 받기 시작했다. 서구에 있어서 1989년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사조와 새로운 매체주의가 생성됨에 따라 영상, 설치, 뉴미디어 등 다양한 예술의 매체 실험의 가속화로 예술이 대중과 결별되는 권태의 시기였다. 따라서 1990년대 미국과 유럽은 방향 전환할 의무가 있었고, 새로운 대안이 필요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독일의 '라이프치히 화파(Leipzig School)'가 전면적으로 등장했는데 이들은 곧바로 권태로운 뉴욕과 유럽의 미술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으며 1989년을 전후로 역사적 위치를 점유하게 되었다. 라이프치히 화파는 구동독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철저하게 학습한 작가들이 현대미술로 전향한 예로써 여러 면에서 주목 받았던 것이었다.
토비아스 레너_O.T.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80×260cm_2008
우베 코브스키_KREISEL_캔버스에 유채_190×160cm_2012

사실상 라이프치히 작가들은 1960년대부터 서구에서 서서히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구동독시대의 예술가들로 국가에서 제시하는 명확한 당 정책 및 문화 정책 관련 요구를 수용해야 했다. 하지만 그들에겐 자신만의 언어와 전통을 작품에 드러내고자 하는 뚜렷한 욕구가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요구된 진부한 선전적 사실주의를 그리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추구하며 두려움과 욕망을 드러내는 동시에 무력함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만들어냈는데, 사회적인 특수성을 담고 있는 그들의 작품은 새로운 대안으로써 1977년 6번째로 개최된 카셀 도큐멘타(KASSEL DOCUMENTA)에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전시에 초대받은 베른하르트 하이지히(Bernhard Heisig), 볼프강 마토이어(Wolfgang Mattheuer), 베르너 튑케(Werner Tubke) 등은 라이프치히 화파의 초기 세대가 되었고, 이 사건은 라이프치히 화파를 국제적 화단에 이름을 알린 스캔들이 되었다. 이러한 작가들에 이어 라이프치히 화파는 이후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며 새로운 물결을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새로운 매체와 사조들이 물밀 듯이 들어오는 상황에서도 라이프치히 대학은 여전히 예전 방식을 고수하는 회화를 가르치는 극소수의 대학 중 하나였다. 이러한 전통적 모습을 기반으로 통독 후 "새로운 라이프치히 학교"란 표제아래, 라이프치히 화파의 미술발전의 기반을 형성한 네오 라우흐를 필두로 팀 아이텔(Tim Eitel)과 틸로 바움개르텔(Tilo Baumgärtel), 크리스토프 루크헤베를레(Christoph Ruckhäberle), 토비아스 레너(Tobias Lehner)와 같은 학우들은 하나의 학파로 모여졌다. '신 라이프치히 화파'로 분류되는 이들의 작품은 내용이나 스타일, 작품의 질 면에서는 다양하지만 기술적인 스킬과 구상미술에 대한 전념, 그리고 무미건조함에 대한 특별한 편애, 우울한 주제들을 공유한다.
울프 푸더_Schwestern_리넨에 유채_150×180cm_2010
크리스토프 루크해베를레_Bäuerin_캔버스에 유채_210×120cm_2008
외르크 헤롤드_Schneemann_ BW copy laminated on canvas adapted with stain and acrylic_60×43cm_2009

현재까지도 독일에서조차 라이프치히와 다른 학교와의 차이점은 분명하다. 그들은 '무엇을' 그리고 '왜' 그리는가에 대한 문제보다는 어떻게 회화를 체계화 시킬 것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다. "어떤 것을 그릴 것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명확한 주제나 큰 비전보다도 단지 그리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바이셔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자신들을 예술가(Artist)가 아닌 화가(Painter)로 표현하며 회화를 표현의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삼는다.
마틴 코베_Untitled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40×170cm_2007
하트비히 에벌스바흐_Kaspar Damenschuh IV_캔버스에 유채_140×87cm_2010
톰 파브리치우스_Garte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0×260cm_2010

『GERMAN NOW』展은 라이프치히 화파의 태동에서부터 전개까지 구동독 현대 미술의 전체적인 면모를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는 독일 컨템포러리 아트 개론서와 같은 컬렉션으로 회화뿐만 아니라 사진과 설치작품까지 라이프치히 미술을 폭 넓게 제시한다. 이는 서방 미술의 베일에 가려져 있던 구동독 미술의 진수를 느낄 수 있게 하며 다양한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또 다른 새로움과 현대 미술의 방향성을 제공한다. 나아가 그들의 작품 안에 녹아 들어가 있는 다양한 정치적, 사회적 면모들은 독일 통일 이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한국 사회에 있어 더욱 의미심장한 메시지로 작용될 수 있을 것이다. ■ 성남문화재단 전시기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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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전 異人展




노상준_이준형 2인展 2012_0706 ▶ 2012_0728 / 일요일 휴관



이준형_Untitled_리넨에 유채_73×61cm_2012 노상준_Untitled_혼합재료_110×110cm_2012_부분


초대일시 / 2012_0629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요일 휴관

유진갤러리 EUGEAN GALLERY 서울 강남구 청담동 116-7번지 Tel. +82.2.542.4964 www.eugeangallery.com



삼십 대 후반의 동갑내기 작가 노상준과 이준형의 전시가 2012년 7월 6일(금)부터 7월 28일(토)까지 청담동 유진갤러리에서 열린다. 영국 유학 중 교류하게 된 두 작가는 2008년 귀국 후 갤러리 팩토리에서 첫 이인전을 선보인 뒤 지금까지 총 네 차례의 전시를 같이 진행한 바 있다. 하지만 이들의 이인전이 매번 공통의 관심사에서 출발한 특정 주제와 긴밀한 협의를 바탕으로 하는 공동작업의 형태일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해이다. 작년 한남동 재개발 구역에서의 작은 설치전을 제외하고, 그들은 각자 자신만의 주제나 관심사에 집중하되 전시 디스플레이를 통해 그 결과물들의 유사성과 차이를 드러내는 방식을 택해왔다. 이 둘에게 있어 이인전이란 주도면밀하게 의도된 공동의 영역을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장이기보다는 설치과정에서 새롭게 맞닥뜨리는서로의 작품을 한 공간 속에 섞어봄으로써 각자 작업의 의미를 더욱 명확하게 하는 흥미로운 실험인 것이다.
이준형_저푸른초원위에 그림같은집을짓고_리넨에 유채_131×386cm_2002

유진갤러리에서의 이번 전시는 횟수로 다섯 번 째 이인전에 해당한다. 이준형은 유화의 물성을 이용해 흘리기 기법으로 완성된 추상 페인팅과 인물 페인팅을, 노상준은 박스 골판지를 해체하여 자유로운 상상 속 이미지를 구현하는 입체 작업들을 선보인다. 이번에도 역시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 두 작업 사이의 공통점 또는 명확한 상관관계를 찾기는 힘들어 보인다. 이 둘의 이인전을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할 지는 의외로, 그리고 단순하게도, 두 작가의 사사로운 관계에서 답을 찾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영국이란 낯선 땅에서 만나 새로운 것들을 함께 경험했던 기억과 대한민국의 삼십 대 후반 남자 작가들이 겪는 비슷한 입장과 경험들을 공유하는 그들에게는 일종의 동지의식 같은 것이 있다. 작업의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거나 작업방식에 대해 조언을 구하는 일이 오랜 시간 자연스럽게 몸에 밴 그들이기에 이인전은 서로가 서로에게 잣대가 되어 현재 자신의 작업을 확인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가늠해 보기도 하는 일종의 의례 같은 것일 수 있다.
이준형_Untitled_리넨에 유채_73×61cm_2011
이준형_Untitled_리넨에 유채_73×61cm_2011 이준형_Untitled_리넨에 유채_73×61cm_2012

이준형은 최근작에서 스포츠 선수의 찰나적 모습을 포착한 'Chapter 11' 시리즈나 여성의 격정적 표정 속에서 의미의 이중성을 찾는 'Made in heaven' 시리즈를 통해 대립되는 개념들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과 그것을 기록하는 그만의 회화적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유화 물감이 흘러내린 우연한 물리적 흔적에서 출발해 점점 화면의 형식을 갖추어 나간 초기의 추상화를 일부 다시금 선보인다. 우연과 의도, 형식과 비형식의 충돌 사이에서 그는 내용이 형식에 역전 당하는 순간을 생생하게 경험하며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이 멍한 기분을 느꼈다고 한다. 아마도 이 때부터 '이중성', '경계'라는 것들이 그에게 가장 중요한 예술적 화두가 되었던 듯 보인다. 이 후 화면에는 구체적인 사람의 형상이 등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는 움직임과 정지, 쾌락과 고통 같은 대립적 개념들을 흐릿하게 만들며 그에 걸맞는 회화적 표현방법을 찾아 나갔다. 드로잉을 연상시키는 빠른 붓놀림과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번짐과 흘러내림 등의 결과들은 형상의 구체성을 의도적으로 뭉개어버리며 관객들로 하여금 이것은 회화라는 자각만을 또렷하게 할 뿐이다. 이번 전시를 위한 그의 신작들은 뭉개어진 인물의 형상과 물감 자국, 붓의 흔적만이 남아 있는 두 캔버스를 나란히 병치시키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는 구상과 추상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으로 돌아가 결국 '회화란 무엇인가', '그린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작가의 사유적 태도를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노상준_Untitled_혼합재료_150×150×10cm_2012_부분
노상준_Untitled_혼합재료_150×150×18cm_2012_부분
노상준_Everyday Christmas_혼합재료_130×130cm_2012
노상준_Untitled_혼합재료_110×110cm_2012

한편 노상준은 그의 트래이드마크인 골판지로 만든 작은 종이 입체물들을 캔버스라는 형식과 결합시킨 신작들로 이번 전시를 구성하였다. 영국 유학시절, 한국으로부터 도착한 소포박스가 세상과의 유일한 통로였던 그는 박스종이를 자르고 찢고 조립하고 채색하여 조물조물 작은 입체물들을 만들기 시작했다고한다.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야겠다는 계획이나 의지보다는 단순하게 작가가 좋아하거나, 만들고 싶거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시각화하는 과정에서 수백 개의 작은 형상들이 탄생하였다. 이 작은 조각들은 그 자체로 개별적인 의미는 갖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작가가 상상하는 풍경이나 상황의 일부분이다. 갤러리 팩토리에서 이준형과 함께 선보인 'In my shoes'란 제목의 이인전에서나 최근 같은 장소에서 열린 '이동유원지'라는 제목의 개인전에서 작가가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한 것은 대도시에 사는 개인의 고립된 상황에 대한 은유였다. 작가는 빠른 속도감으로 언제나 변화하고 있는 세상을 바라보며 그렇지 못한 개인들이 느끼는 소외감을 조감도적인 시점의 풍경을 통해 표현하였는데, '고립', '소외'와 같은 다소 어둡고 무거운 주제는 작품 자체가 가지고 있는 시각적 다채로움이나 재기 발랄함과 대비되어 아이러니한 느낌을 자아내기도 하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전작의 분위기에서 벗어나 조금 더 가벼우면서 작가 특유의 소년적 감성이 빚어내는 자유로운 상상 속 이미지가 펼쳐진다. 주목할만한 새로운 시도이자 변신은 작은 입체물들을 사각형의 캔버스 형식과 결합시킨 것인데, 조각의 입체적인 특성상 보통 전시장 바닥이나 계단, 좌대 위에 놓여지곤 했던 그의 작업들이 이번엔 벽에 설치 된다. 페인팅한 캔버스 위에 조각을 얹거나 사각틀 위에 찢어진 골판지를 붙이고 채색하여 배경을 만든 뒤 조각물들을 배치하는 형식이다. 부조 느낌의 이 작품들은 멀리서 보았을 때에는 평범함 회화인 듯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조각의 입체적인 디테일들이 눈에 들어오면서 서 있는 자리와 보는 각도에 따라 마치 렌티큘러처럼 화면의 구성이 다르게 보이는 시각적 재미를 선사한다. ● 노상준과 이준형은 이변이 없는 한 매년 이러한 이인전 형태의 전시를 이어나갈 것이라 말한다. 그들의 작업은 계속 평행선을 달릴 수도, 어느 순간 한 지점에서 잠시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이와 작가라는 직업적 공통점 외에는 언뜻 너무도 달라 보이는 두 사람의 이인전이 어떤 모습으로, 언제까지 이어져 갈지 자못 궁금하다. ■ 곽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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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가 무심코 지나간다




웁쓰양展 / WOOPSYANG / painting 2012_0522 ▶ 2012_0602 / 월요일 휴관



웁쓰양_신인류_캔버스에 유채_50×40cm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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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0525_목요일_06:30pm

대안공간 정다방프로젝트 Gallery Jungdabang Project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4가 7-1번지 B1 Tel. +82.10.5296.5382 jungdabang.com



"@glitch, bug, error : ● 보통 랙이라고 불리는 컴퓨터상의 오류들은 온라인게임 중에도 심심치않게 나타난다. 글리치(glitch)나 버그(bug) 또는 에러(error)라고 하는 이런 현상은 그래픽용량을 pc가 감당을 못해 벌어지는 것이다. 비율이 일그러지거나, 앞뒤가 뒤틀리거나, 도트가 늘어지거나, 이전 상황이 그대로 붙어다니거나 하는 다양한 형태로 글리치가 일어나는데 그 모습이 우습게 보이기도하고 한편 애처롭게 보이기도한다. 글리치가 보여주는 그런 조형성이 기이하고 흥미롭게 보였다. 게임관계자의 말을 빌면, 이러한 그래픽오류는 게임이미지의 퀄리티가 좋아질수록 생길 확률이 높다고한다. 정교한 이미지를 실행하기위해 그만큼 성능이 좋은(그래픽용량이 큰)pc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웁쓰양_한 시대가 무심코 지나간다_캔버스에 유채_117×91cm_2011
웁쓰양_문명의 방_캔버스에 유채_72.5×91cm_2011
웁쓰양_중고생 5명, 환각상태서 여중생 1명 '집단 성폭행'_캔버스에 유채_175×200cm_2012

회화는 한때 현실을 정교하게 재현하고자 하는 극한의 임무를 부여받기도 했다. 사진이 등장하고 컴퓨터 그래픽의 등장까지 현실 재현에 대한 집요한 집착은 형태와 방법이라는 인간이 구축한 시스템안 규칙의 정교함, 그 진화에 대하여 구조에 대하여 말해왔는데 어떤 고도의 집적회로든 열과 빛으로 움직이기 위해서 꼭 결정구조가 필요하고 결정구조의 정교함은 에너지의 전송 속도를 결정한다. 오류는 구조(stricture)안에서 벌어지는 결함이고 이 결함은 에너지의 속도를 방해하거나 극단적으로는 중지시키기도 한다. 인간이 사회 구조안에서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구조안에서 대립, 모순, 상호보완을 모두 포함하면서 인간이 에너지를 전달하는 존재임음 분명해보인다. 또한 구조안에서 에너지를 교환하면서 구조의 확장만큼 구조의 모순을 드러내기도 한다. 시스템을 통해 구조를 안정시키려는 의지는 무수한 폭력을 국가적으로 혹은 조직으로 개인으로 재현하고 비판을 통해 시스템을 탈구축, 재구조화 시키기도 한다.
웁쓰양_[고3아들의 비극]아버지 "사실대로 말하랬더니 벌벌 떨더라"_캔버스에 유채_145×165cm_2012
웁쓰양_한국산업기술평가원 내부고발자 복귀 그후 "몸은 아프지만, 마음은 어느때보다 자유롭다."_ 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12
웁쓰양_신생아 쓰레기통에 유기한 20대 부모 검거_캔버스에 유채_175×150cm_2011

웁쓰양의 작업 「문명의 방_캔버스에 유채_91×72.5cm_2011」에서 컴퓨터상의 그래픽 오류 랙(glitch, bug, error)을 회화로 재현함은 방이라는 프레임 구조 안에 인간 감정이 화학적 특성으로 태워지고 있는 느낌까지 전달받는다. 벌거벗겨진 나체 앞에 남성은 정장이라는 전근대적 규칙에 안경까지 걸치고 있다. 과도하게 처리된 나체를 통해 역설적으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단순입방구조(primitive cubic) 같은 분할된 공간과 그 공간 안에 갇혀 진공 포장된 듯 남성의 절규이다. 그가 쓴 안경은 주체와 타자 사이, 경계의 착시를 은유하는 듯도 하는데 그가 보기 위한 것은 기호일까? 혹은 형상일까? 그것은 자아 혹은 타자인가? 여기 시선의 권리는 나의 것이며 주변의 것, 내부와 외부의 것이며 투쟁의 산물이기도 하다. 작가를 통해 컨텍스트는 절단된 듯 이어져 있는데 「중고생 5명, 환각상태서 여중생 1명 '집단 성폭행'」과 같은 인터넷 뉴스 기사를 가져온 근작의 타이틀들은 커뮤니케이션 안에 발신된 정보의 일부, 또는 전부가 전달되지 않거나, 받은 혹은 전송하는 정보가 사건을 일으킨 행위자의 의도와 기재자의 의미가 전혀 다른 해독의 사고 가능성을 고의적으로 노출하고 있다. 昊_런던에서 박장호 1975년생, 2012년 살아있음. ■ 박장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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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多重) 1.여러겹 2.다 중요하다


김주희展 / KIMJUHEE / 金珠熙 / painting   2012_0709 ▶ 2012_0723


김주희_불상_캔버스에 유채_193.9×130.3cm_2008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아트센터 에비뉴 초대展

관람시간 / 10:00am~06:00pm

아트센터 에비뉴 ARTCENTER AVENUE 서울 강남구 역삼동 614-1번지 더에비뉴 빌딩 Tel. +82.2.1611.2720 www.acavenue.co.kr


변하지 않는 것들은 아름답지 않다.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은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 변화하고, 움직이고, 사라지는 것들이다. 어둠속에서 그들의 움직임은 그것이 살아있는 유기적 생명체가 아니더라도 더욱 강렬하게 내게 다가온다. 움직이며, 흔들리고, 변하며, 반복한다. 그것들이 내 그림의 주제가 된다. 나의 작업은 사물의 다중적인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이는 다중적인 세상의 모습을 복합적인 시각언어로 구사함으로써 색이나 형상의 혼란스러움을 극대화 한다. ● 밤거리를 다니다 보면 형용색색의 간판들이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이야기가 더 중요한지 알 수가 없다. 수많은 사람들의 개성이 지나쳐 이제는 어느 누구의 개성도 눈여겨 볼 수 없다. 가지각색의 걸그룹이 나오는 시대 하지만 어느 게 주인공인지 모르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김주희_kiss_캔버스에 유채_53×45.5cm_2008

평면 위에 해체되듯 묘사된 대상은 정면과 측면 그 어느 모습도 가늠할 수 없는 동시에 모든 면을 재현하기도 한다. 겹쳐진 형상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면 시선은 자연스레 각각의 이미지를 찾아가지만 길을 잃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다시 눈을 크게 뜨고 보아도 마찬가지이다. 뚜렷한 대상, 응시를 찾으려 한다면 더욱 혼란에 빠지고 만다. ● 모든 것들은 한 가지 모습만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난 다양한 사물의 모습들을 레이어의 중첩을 통해 한 장의 그림으로 겹쳐보이게 표현하여 추상도 구상도 아닌 그 중간의 모습을 만들어 낸다. 우리는 수많은 선과 형의 반복으로 인해 그림이 겹쳐 있다는 것을 눈치 채게 된다.
김주희_Time sqare_캔버스에 유채_98.4×158.4cm_2011
김주희_sunset_캔버스에 유채_96×153cm_2008

그림은 가시적 모습보다는 그 대상의 형상을 벗어난 강력한 충동에 의해 그려지고 있다. 색과 선이 이미 대상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 반대로 대상이 색과 선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붓 터치는 사물보다 더 적극적으로 물감의 표면을 이겨가며 그려내어 더욱 회화적인 감각을 보여주기 때문에, 검정색 바탕에서 효과를 높여주고 있다. 검은색은 외적으로는 가장 음향이 없는 색이다. 그렇기 때문에 검은 색과 비교하면 어떠한 다른 색깔도 말하자면 가장 약한 음향을 가진 색깔이라도 더 강하고 더 명확한 음향으로 울리는 것이다. 그러한 배경공간과 다른 공간이 엉켜져 윤곽선들이 겹치거나 갇혀있고 흐르기도 한다. 이러한 구성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의 감정을 폭발시킬 수 있는 역동적인 힘을 준다.
김주희_숭례문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07
김주희_노트르담 성당_캔버스에 유채_157×168cm_2012
김주희_석고상_캔버스에 유채_40.9×31.8cm_2011

오늘날 사람들은 예술에 있어서 장르에 대한 구분이 와해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와해는 다른 이름으로 새로운 경계를 만들어 낸다. 그러한 시대상을 나는 내 그림 속에 담았다. 일시적인 것과 영원한 것이 함께하는 새로운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그림을 그린다. 그림은 내가 살아가는 모든 기록이며, 동시에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 김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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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ked layer


김아라展 / KIMARA / 金아라 / painting   2012_0710 ▶ 2012_0716


김아라_naked layer_캔버스에 유채_60×72.5cm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김아라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2_0710_화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일_02:00pm~07:00pm

사이아트 갤러리 CYART GALLERY 서울 종로구 안국동 63-1번지 B1 Tel. +82.2.3141.8842 cyartgallery.com


피부의 촉각적 감각 위에 얹혀진 시각의 경계 바라보기 ● 작가 김아라는 'Thin Layer'라는 주제의 지난 개인전에서 자신의 망막에 투영된 풍경의 느낌을 오브제적 단위체 형식의 캔버스들 위에 펼쳐놓았는데, 이때 캔버스의 배열 순서를 섞어 놓음으로써 인간의 순차적이고 선형적인 시각적 경험 방식에 의해 구성되기 쉬운 허구적 환영과 환상을 깨뜨리는 작업을 수행한바 있다. 그는 시각의 한계점이라 할 소실점의 영역에 드러나는 수평선 혹은 지평선의 모습들을 일관되게 드러내면서도 불연속적이고 돌출적 장면들이 혼재하게 함으로써 여행하는 과정에서 시간적 진행과정에 수반되는 네러티브적 요소를 제거하고 각 경험의 순간, 즉 시간의 최소 단위인 찰나적 상황에서의 순수한 시각적 느낌과 공간에 대한 시각정보들을 정사각형의 작은 캔버스에 담아냈다. 시각의 얇은 막으로 뒤덮인 5cm두께의 캔버스는 작가가 경험했던 순간순간마다의 시각장을 담아내는 하나의 기제였지만 동시에 작가가 자신의 시각적 인식과 경험을 수용하고 이를 저장하는 방식에 대해 보여주는 오브제로서의 캔버스를 제시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얇은 막이 담긴 물질화된 오브제는 다시 시각적 인식이라는 지각작용을 어떻게 물질화하여 시각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가에 대한 프로세스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였다.
김아라_naked layer_캔버스에 유채_60×72.5cm_2011
김아라_naked layer_캔버스에 유채_60×72.5cm_2011

이번 전시에서의 'Naked Layer'라는 주제는 역시 이전 전시에서 연장된 개념의 전시로 보인다. 그런데 이번에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Layer'는 이전의 작업에서 보여주었던 시각적 경험을 매개하는 얇은 막에 투영된 이미지와 그 궤적이 아니라 얇은 막 그 자체이다. 이전 전시에서 박스형 캔버스를 감쌌었던 레이어는 이제 얇은 비닐 랩(wrap)처럼 드러나 있고 어느 부분에서인가 떨어져 나가거나 벗겨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얇은 막은 인체의 피부나 피복이 벗겨진 것인 것을 암시하는 것인지 대상을 보는 프레임에 감춰져 있던 막이 벗겨져 내린 것을 암시하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비닐 랩이 찢겨지거나 어떤 막이 벗겨져 내리고 그 실체가 드러난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주고 있다. 일종의 인터페이스들 간의 극적인 대비, 즉 촉각적 인식의 경계인 인체 피부 위에 드리워진 시각적 인식의 경계인 망막과 같은 얇은 막이 시각프레임에서 벗어나 레이어가 한 꺼풀 벗겨져 내린 듯한 화면은 육안(naked eye)의 실상과 위치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일는지 모른다.
김아라_naked layer_캔버스에 유채_60×72.5cm_2011

작가는 인간에게 있어 인식의 촉각적 경계인 아무것도 덮여있지 않은 벗겨진 몸을 보여주고 있는 듯 하지만 오히려 작가는 시각프레임 위에 팽팽하게 당겨져 있는 하나의 막처럼 존재하여 인식하지 못하던 시각적 경계를 물질화하여 벗겨내 버리고, 이것을 피부 위에 내려놓음으로써 그 자체가 시각 수용기관이라는 한계 때문에 피부처럼 물질적 대상으로 고찰할 수 없었던 시각적 인식의 얇은 막을 회화적 공간 위에 생생하게 드러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작가는 세계를 시각적으로 경험하는 과정에서 시각적 인식의 매개체라 할 수 있는 인체의 망막처럼 어떠한 레이어와 같은 구조가 세계와 자신 사이에서 개입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다른 한편 캔버스와 같은 물질화된 레이어 구조를 통해 작가 자신이 타자와 소통하고 있음을 자각하면서 바로 이 레이어 구조 자체에 대한 탐험을 시작한 것 같다.
김아라_naked layer_캔버스에 유채_91×116.8cm_2012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 김아라 작가가 표현해낸 화면을 자세히 보면 이 이미지의 막 위에 물방울을 떨어뜨려놓은 듯한 에폭시 덩어리가 보이기도 하고 붉은 물감이 흘러내리거나 묻어있는 듯한 느낌의 흔적 남아있기도 한데 이것은 그리고자 하는 대상을 묘사하기 위해 덧칠한 것이 아니라 그려진 화면과는 상관없이 그 화면이 하나의 평면적 레이어임을 확인시키고자 하는 특별한 장치라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벗겨져 내린 시각적 레이어 자체를 하나의 물질처럼 그려내고자 하는 순간 다시 보는 이에게는 또 다른 레이어가 개입할 수 밖에 없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인간의 인식 범위나 인식 영역이라는 것은 늘 제한적일 수 밖에 없고 특별히 시각적 인식이라는 것은 인간이 3차원적 구조 안에 살고 있음에도 언제나 망막이라는 2차원의 평면적 구조 안으로 수렴되기 마련이기 때문에, 시각적 인식의 경계를 다시 시각의 장안으로 불러들인다는 것 자체는 모순적인 것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김아라_naked layer_캔버스에 유채_91×116.8cm_2010

그런데 작가가 그려낸 몸은 자신의 신체 일부분들을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광각이나 접사방식의 카메라의 시각으로 찍어낸 것이고 이것을 카메라와 같은 위치의 타자적 시선의 지평 위에서 그려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러한 사진적 작업 과정에서 자기 자신 혹은 자기 경험의 영역을 타자화하여 역설적이고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출하는 바로 그 방식으로 자신의 시각적 인식의 경계(boundary)에 있어서 그 껍질을 벗겨내고 비닐 랩(wrap)과 같은 형상을 통해 물질화 하며 이를 벗겨진 몸에 빗대어 보여줌으로써 화면의 시각 레이어가 물질화된 레이어를 바라보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작가는 평소 인식하지 못하고 간과해왔던 육안(naked eye)의 실체를 드러내 보여 주어 상호가 중층화된 이중 상징의 구조적 시각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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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默影院 The Cinema of Silence


청란展 / Cheng Ran / photography.video   2012_0710 ▶ 2012_0812 / 월요일 휴관


청란_Untitled_사진_112.5×200cm_2012

초대일시 / 2012_0710_화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 삼청 ARARIO GALLERY SEOUL samcheong 서울 종로구 소격동 149-2번지 Tel. +82.2.723.6190 www.arariogallery.co.kr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 삼청에서 7월 10일부터 8월 12일까지 청란(b. 1981) 개인전이 열린다. 이번 전시는 몽골에서 태어나 중국 항저우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작업하고 있는 젊은 중국 작가 청란의 신작 영상과 사진 작품 6점이 전시된다.
청란_Untitled_사진_120×225.7cm_2012
청란_Untitled_사진_120×225.7cm_2012

현재 중국 예술계에서는 미디어아트가 각광을 받고 있다. 개혁개방 이후, 급변하는
2012.07.02 21:08:11 / Good : 956 + Good

za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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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sation






사윤택_황지윤展   2012_0711 ▶ 2012_0724 / 월요일 휴관




사윤택_순간, 틈, 굿 샷!_혼합재료에 유채_90.9×72.7cm_2012



초대일시 / 2012_0711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_11:00am~05:00pm / 월요일 휴관

아트스페이스 에이치 ARTSPACE H 서울 종로구 원서동 157-1번지 Tel. +82.2.766.5000 www.artspaceh.com




사윤택-충돌하는 시공간의 틈 사이로 유출되는 욕망 ● 사윤택의 작품에는 여러 시간과 공간대가 공존한다. 작품이라 함은 여러 근원이 있어도 작가라는 전능한 존재자에 의해 다층적 모순들이 어떤 의미를 향해 수렴, 또는 종합되기를 요구하는데, 그의 작품은 그렇지 않다. 기법 또한 다양해서 모노타입으로 찍은 것, 오브제 및 그림을 그려서 다시 (재구성해서) 붙인 것, 긁은 것 등이 한 화면에 혼재하곤 한다. 직접 나타나지는 않지만 영상도 잠재해 있다. 그렇다고 그가 무의미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대략 이것저것 끄적거려 놓은 것에「무제」 따위의 제목을 붙여 놓고, 그 뒤에 굉장한 초월적인 의미가 있는 듯 비의적 제스추어를 취하는 유의 작가는 아니다. 그의 작품은 분명 어떤 서사들이 잠복해 있지만, 조율과 조화보다는 충돌과 간극에서 빚어지는 의미가 더 크다. 동서고금이 총출동하는 화면에서 구별되는 시공간의 틈은 봉합되지 않고 입을 벌린 채 있으며, 함정처럼 늘어 뜨려놓은 단편적 도상들은 작가나 관객의 욕망에 부응하는 순간적 조합을 통해 의미의 단서를 던져줄 뿐이다. ● 그의 작품에 예전부터 종종 등장하는 테니스 코트의 공처럼, 작가는 의미의 방향타만 제시할 뿐, 그 공이 어디로 튈지는 알 수 없다. 게임처럼 펼쳐진 장에는 꿈같은 자유로움과 잡아야 할 것을 놓친 것 같은 불안감이 치고 되받아쳐지는 공처럼 오고간다. 작품「순간, 틈-몽유도」는 고전 명화의 틀 거리 속에 꿈에서 보면 좋다는 다수의 상징적 도상들―불로초, 학, 바위, 두꺼비, 소나무, 똥, 감, 무지개 등―이 등장한다. 후경 속 어딘가에 비행기가 어디론가 날아간다. 사윤택의 작품에서 비행기는 '시간의 주기를 표현하는 코드'로 자주 등장하는데, 해와 달이 동시에 떠 있는 풍경에서 시간 감각 또한 혼란에 빠진다. ● 그리고 사윤택의 작품 제목에 속한 '순간, 틈'은 회화를 가장 회화답게 하는 순수한 순간에 주목하는 모더니즘에 대한 언급이 있다. 한눈에 전모를 파악할 수 있는 투명한 시점을 추구하는 모더니즘은 그의 작품에서 수많은 틈들로 분절화, 또는 해체된다. 이를 통해 순간은 오염되고 불순해진다. 사윤택의 작품에는 고정된 한 순간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을 타는 불투명한 지각의 추이나 흔적들이 강조된다.
사윤택_순간, 틈, 낯과 밤 그리고 베르그송_한지에 유채_60.6×72.7cm_2012

그는 자신의 작품이 '순간의 틈에서 건져 올린 상황'이며, '순간이라는 시간성 속에서 문득문득 떠오르는', '스치면서 망각되는 순간을 담백하게 드러낸다'고 말한다. 순간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잡다함과 문득문득 튀어 오르는 단서들이 있는 그의 화면에는 작고 빠른 움직임들이 내재해 있다. 모더니즘은 순수한 순간에 집착함으로서 시간성을 억압했는데, 사윤택의 작품에서 움직임은 의식적인 차원이든 무의식적인 차원이든, 심리적인 차원이든 물리적인 차원이든 활성화되어 있다. 이러한 시간성 때문에 그의 작품은 그림으로서 완결감과 자족성이 부족해 보인다. 거기에는 그리다만 듯 말하다만 듯한 어정쩡함이 있다. 모더니즘에 대한 작가의 생각은 베르그송이나 칸딘스키 같은 근대 철학자와 화가들의 등장을 통해 보다 직접적으로 표현된다. (중략) 그의 작품은 순종이 아닌 잡종, 순수가 아닌 불순함, 침묵이 아닌 수다, 완결이 아닌 과정, 욕망의 억압이 아닌 분출이라는 속성이 강하다. ● 작품「순간, 틈-굿 샷!」은 여자를 두고 한 남자가 어쩔 줄 몰라 담배를 물고 있는 '풍성한 욕망이 차오르는 풍경'이 엿보인다. 피워 오르는 담배 연기뿐 아니라, 나무나 바위 등, 위로 솟구치는 모든 도상들은 물리적, 생물학적, 심리적으로 상호 조응한다. 쿠르베나 세잔 등, 모더니즘의 시작을 알린 화가들의 작품들을 형식주의가 아닌 성심리적 알레고리로 해석하는 새로운 미술사의 흐름이 있는 것처럼, 사윤택의 정물 또한 순수한 조형적 실험을 위한 장르가 아니라, 억압된 것으로의 회귀가 일어나는 장이다. ● 동서양의 고전과 인물들, 그리고 기법의 패로디는 그자체가 차이를 가진 반복이다. 린다 허천은『패로디 이론』에서 보수적 반복과 급격한 차이 사이에 설정된 패로디의 양면 가치를 언급한다. 패로디 되고 배경이 된 텍스트와 새로이 병합된 텍스트 간에는 비평적 거리가 암시되어 있다. 분열적이며 불안정한 패로디는 통일과 조화를 강조하는 텍스트의 이중화이고, 텍스트와 텍스트 사이 그리고 텍스트와 현실 세계 사이의 부조화를 앞세우는 차이이다. 패로디는 동일성과 정체를 강조하는 반복이 아니며, 차이만을 강조하는 반복도 아니다. 패로디는 비판적인 거리와 변화를 허용하면서, 계속성을 부각시킨다. 사윤택의 패로디는 다른 작품과의 관계를 다루는 '미술에 대한 미술'임과 동시에, 자체의 동일성도 문제시한다. 그의 많은 작품에는 자기지시성의 문제가 있다. 자기지시성은 형식의 내전을 통해 선대 미술을 비판적으로 극복해온 미술사 뿐 아니라 뿐 아니라, 주체의 정체성과도 관련된다.
사윤택_순간, 틈, 새빨간 시간_캔버스에 유채, 혼합재료_72.7×60.6cm_2012

실재/허상, 실체/그림자의 관계는 분신 또는 짝패 같은 분열적 인물상을 통해 불확실해진다. 작품 속에서 그는 그리고 있는 스스로를 그리곤 한다. 패로디에 내재된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은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과 연결되는 것이다. 그는 작품을 통해 타자와 또는 자기 안의 타자와 대화한다. 거기에는 독백이 아니라, 두 목소리(diphonic), 또는 다음(polyphony)이 들려온다. 대화는 종합이나 화해, 조화와 화음을 향하기보다는 경쟁적이며, 대화의 장은 종종 선술집처럼 소란스럽다. 이 잡음들 속에서 무슨 소리를 골라 듣는가는 관객의 몫이다. 린다 허천에 의하면, 상호텍스트적 대화란 독자와 문제의 텍스트에 의해 환기되는 다른 텍스트에 관한 독자의 기억 사이의 대화이며, 하나의 가상적 해석학적 구조물이다. 작가와 독자들에 있어서 과거는 예술가의 개인적인 담론 밖에 암시된 공통의 지식들과 그것에 내재된 의미의 층들을 포개 놓는데 있다. ● 사윤택의 작품은 패로디와 구분되는 패스티쉬 형식도 있다.『패로디 이론』의 분류에 의하면 그는 모델과의 관계에 있어서 차이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패로디지만, 동시에 단일 텍스트만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텍스트를 함께 모방한다는 점에서 패스티쉬이다. 수사법 보다 상투어구(cliche)의 관계가 두드러질 때 패로디보다는 패스티쉬에 기운다. 사윤택의 작품에서 보다 많은 도상이 등장할 때 패스티쉬에 가까워진다. 요즘 작업에서 인용되는 도상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패로디는 모방과 전용을 통해 특정 코드들을 인용하지만, 비판적 거리감을 통해 재현주의나 그것의 유사물인 모더니즘적 추상을 파기한다. 패로디는 기존의 권위의 인정으로부터 자유로운 장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사윤택의 패로디는 모더니즘이나 현실에 대한 풍자를 통해서 반미학적이고 블랙코미디 같은 모습을 보인다. 지인들은 그의 그림이 그와 매우 닮았다고 평한다. ● 그가 작품과 현실을 문제시할 때 활용하는 패로디에는 또한 중요한 자아반영(self-reflexivity)의 형식이 있다. 모더니즘 자체가 이 자기지시, 자기참조, 자기반사 속에서 이루어졌다. 작품 속에서 붓을 들고 있는 이는 대개 작가 자신이며, 몸통은 생략된 채 치열한 의식과 부지런한 붓놀림을 상징하는 머리와 손만 나타난다. 머리와 손 사이에는 생략된 몸처럼 양자 간에는 간극이 있다. 이 간극에서 또 다른 간극들이 무수히 파생된다. 이 간극 속에서 의미의 원천으로서의 통일된 작가라는 근대적 낭만주의의 신화는 무너진다. 린다 허천은 어떤 힘을 비신격화 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 힘의 임의성을 최대한 드러내는 것에 있다고 본다. 이를 통해 사윤택의 패로디는 모더니즘적 형식주의에 내포된 유사 객관성과 폐쇄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것은 그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정전적 텍스트의 뜬금없는 끼워 넣기가 단지 유희를 넘어서 비판을 향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종종 등장하는 동양화 코드는 화면에 이질성과 복합성을 증가시키며, 역사, 지속, 대중성, 혼성 같이 모더니즘에서 억압되어 왔던 것들을 복귀시키고, 그것들을 다양하게 엮어 삶과 예술에 대해 또 다른 방식으로 말을 건다. ■ 이선영
황지윤_Landscape(2)-1,2_캔버스에 유채_116.8×72.7cm×2_2011~2
황지윤_Landscape-1_캔버스에 유채_65×193.9cm_2011~2



황지윤-'자연 속의 자연' ● 이발소 그림이나 정형화된 산수화(동양화)는 매너리즘화된 그림이다. 이 그림들은 감상자에게 잠재된 일반적인 욕구들을 소환하기 때문에 사람들과 쉽게 소통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그림들은 굳이 전시장이 아니더라도 일반 가정, 관공서, 이발소 등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풍경화의 공통된 기억을 환기시킨다. 물레방아가 자리 잡은 시냇가의 배치와 '이발소 그림'들의 정형화된 표현 방식을 사용함으로써 감상자로 하여금 그림에 더 쉽게 접근 할 수 있도록 하였다. ● 전체적으로 마치 이발소 그림이나 정형화된 산수화 그림으로 보이지만 세부 내용 속에 감추어진 이질적인 요소들의 배치를 통해 감상자가 스스로의 심리적 풍경을 유추하면서 그림과의 대화를 이어 나아가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황지윤_Tidal Flat_캔버스에 유채_112.1×193.9cm_2012
황지윤_두줄기의 강_캔버스에 유채_65×193.9cm_2012



그림의 전체적인 풍경으로는 환상 속에 자리 잡은 이상적 공간을 연상하였다. 그러한 풍경의 안정된 구도를 뒷받침하기 위해 물감의 색을 두 가지에서 다섯 가지로 정하여 전체적인 색채상 균일되고 통일된 느낌을 끌어내었고, 단순한 풍경과 수많은 이질적인 요소들이 하나의 틀에 자리를 잡을 수 있게끔 전반적인 형태의 안정감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였다. 대상을 숨기거나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로 색을 이용하였고, 어떠한 부분에서는 세밀하게 대상을 묘사하여 전체적으로는 두드러지게 드러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림 속에서의 그 형태가 살아있도록 표현하였다. ● 자연 속의 자연 이라는 주제로 작업을 풀어가면서 자연 속에서 되살아나는 형태들로 하여금 공포, 유희 등의 감상자를 향한 심리적 자극을 불러일으켜, 이 작업의 풍경이 단순한 자연 배경이 아닌 감상자 개인의 심리적 풍경(자연 속의 자연)으로 역추적되는 효과를 낳고자 하였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자연과 사람과의 관계를 주관적 기억이라는 매개로 해석하고자 하였고, 기존에 있던 풍경화나 산수화를 보다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표현하여 기억에 대한 해석에 위트가 가미되도록 하였다. ■ 황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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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race of being_존재의 흔적






2012_0711 ▶ 2012_0723







초대일시 / 2012_0711_수요일_06:00pm

참여작가 국대호_김유정_김인영_성유진_심미경_민재영_임현희_호야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일요일_12:00pm~06:30pm

갤러리 그림손 GALLERY GRIMSON 서울 종로구 경운동 64-17번지 Tel. +82.2.733.1045 www.grimson.co.kr




국대호의 작품 속에서의 어둠은 그 내부로부터 발산된 빛으로 인해, 또는 어둠의 표피에 살포시 머금어진 빛으로 인해 신비로운 어느 지점의 공간으로 변모된다. 부드러운 애잔함이 녹여진 곳, 몽환의 일렁거림이 충만한 곳 등이 그것이다. 국대호의 도시는 빛이 머무는 지점이다. 그 빛으로 인해 형태와 배경, 나아가 선과 선이 만나는 지점은 명료함을 잃고 회화적으로 출렁거린다. 그곳에 무한한 색의 변조와 빛의 무궁함이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빛의 시선으로 일관되게 절제되어 있다. 그의 그림은 가까이 바라볼 때는 빛의 눈부심으로 알 수 없는 미로에 빠진 듯하다가, 약간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놀랍게도 그 빛의 눈부심이 보는 이의 내부로 들어오면서 초점이 정확하게 맞추어지는 역설이 있다. 그것이 '충만한 빛의 역설'이다. ■ 김지영
국대호_압구정동-03_캔버스에 유채_80×80cm_2012
김유정_Shadow Garden_프레스코_80×80cm_2010

김유정은 프레스코기법으로 자신의 일상에 자리한 식물/화분을 재현했다. 단색의 색감은 부드러운 음영의 조화를 통해 은은하게 일상의 한 장면을 부감시킨다. 꽃이 아니라 초록의 잎사귀들만이 무성하거나 파리하게 달라붙은 모습들이다. 베란다 창가에 옹기종기 모여 있거나 허공에 매달려있는가 하면 위에서 내려다 본 조감의 시선에 의해 비슷비슷하고 유사한 화분들이 복수로 배열되어 있다. ● 그 화분은 작가의 내면을 반영하는 매개들이고 그것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이입과 등가적 관계 속에서 자리한다. 화분은 작가의 분신이자 현실계의 은유인 셈이다. 그것은 "불안정하고 때론 위태롭기도 한 삶의 알레고리, 자신의 존재가 타인으로부터 위협을 받는 것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며 동시에 타인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에 대한 불안한 심리에 관한 은유적 표현"(작가노트)이라고 한다. ■ 박영택
김인영_화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에나멜_50×65cm_2012

그림에서 어떤 토대와 연결됨 없이 부유하는 모호한 형태와 축축 늘어진 물감의 흐름은 물이나 폭포 같은 풍경의 요소를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자기장 같이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영향 받는 몸과 감정의 흐름과도 닿아 있다. 에나멜 페인트의 질료적 특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그림은 매 끄럽고 빠닥빠닥한 표면과, 흘러내리고나 미끄러지고 뒤엉키는 운동감을 보여준다. 하나의 형태나 외곽선으로 완결되려 하지만, 그 내부에서 요동치는 또 다른 색선들의 흐름은 나의 그림에 비결정성과 교란을 발생시킨다. 산수화의 장르적 특성은 작업에서 세심하게 전복된다. '먹과 한지'라는 산수화의 차분하고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 재료가 만들어내는 부유하는 공간구성, 그리고 이를 통한 형이상항적 덕목들의 은유는, '페인트와 캔버스'라는 무거운 중량감의 재료를 사용함으로써 강력한 중력의 힘을 느끼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이미지의 의미보다는 회화 그 자체의 '물성'에 집중하게 만든다. ■ 김인영
민재영_연주자 A Pianist_한지에 수묵채색_62.4×84cm_2012

우리는 우리의 등이나 얼굴, 정수리를 직접 볼 수 없으며 거울 같은 도구나 타자의 눈에 비친 나로 나의 모습을 반추할 수밖에 없다. 일종의 매체의 개입을 통하지 않고 자신을 직면할 수 없다는 사실은 아쉬우면서도 흥미로운 일이다. 그림을 포함한 각종 매체들은 간접체험의 도구이자 거울의 역할(왜곡을 감안하더라도)을 해왔다. 누적된 체험들에 대한 반추, 일종의 기록으로서의 이미지를, 전자매체를 통해서 삶을 응시하는 일이 다반사인 현재의 생활에 비추어, 미디어의 주사선을 은유하는 수묵의 가로선 위에 얹은 것은 이런 과정을 드러내보려는 의도에서였다. 마치 자신들의 모습, 그 반영을 잠시 정지시킨 채로 그 움직임의 잔상을 돌이켜보려는 것처럼 말이다. ■ 민재영
성유진_untitled_conte on daimaru_53×45.5_2012

성유진의 회화에서 고양이는 개인이 처한 정신적 상황을 표상하는 자아 반영물로 형상화된 것이다. 작가는 불안, 우울, 트라우마 등 사회 속에서 개인이 홀로 직면하는 내면의 공황 상태를 익숙한 대상인 고양이에 전이하여 이성의 통제 없이 표현해 낸다. 온몸이 일그러지고, 커다란 동공이 어지럽게 돌아가고 있는 검은 고양이는 인간의 소외된 혹은 억압된 욕망으로부터 탄생된 것으로 또 다른 자아와의 직면이다. 전작에서 보여졌던 고양이의 과도한 신체적 변용은 이상적 자아로부터 괴리되고 분열된 주체의 실체를 엿보게 한다. 근작에서는 이러한 신체성보다는 화폭에 두상을 가득 채운 채 눈을 내리 깔거나 감는 형상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작가가 줄곧 고집해온 콘테의 그리기로부터 더욱 안정감 있게 표현된다. 자유로운 필치만큼이나 한 번 그으면 수정이 불가능한 콘테의 반복되는 그리기를 통해 고양이는 더욱 겸허해진 인상이다. 욕망으로부터 시작되어 욕망을 비워내는 성유진의 그리기는 이제 분열과 불안의 증상을 보여주기보다 자신의 징후를 고뇌하고 사유하고자 하는 주체로서의 면모로 다가온다. ■ 심소미
심미경_현상학적 행복_캔버스에 유채_72.7×53cm_2011

나에게 작품이란 인생을 지탱해주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와 같습니다. 그것은 바로 일상에서 출발합니다.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꽃에서 특별한 조형성을 찾아내고, 다시 나만의 감성이 묻어나는 색으로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 행복을 만들어 냅니다. 제작과정에서 자연을 차용하는 이미지는 서양적 관점이기 보다는, 절제된 동양적 감성의 표현에 가깝습니다.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여백은 정(靜)과 동(動)의 조화로움은 물론 인간이 자연에 순응하며 삶을 영위한다는 뜻을 내포하게 됩니다. ■ 심미경
임현희_Timeless tree_아크릴채색_60×72cm_2011

부드럽고 편안한, 그러나 강렬하고 다양한 색을 담은 임현희 작가의 작품은 관객들에게 환상적인 자연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들은 생생한 색들로 가득 차있고, melancholy 한 빛으로 다가온다. 그녀의 작품을 언뜻 보게되면 그것은 조화로운 풍경으로만 기억되지만, 큰 화폭에 둘러쌓여 작품을 바라보게 되면 관객들은 그 안의 복잡하고 다양한 풍경들과 마주하게 된다. ● 작가는 화폭에 생동하는 생명력을 표현함과 동시에 죽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녀는 캔버스에 표현한 식물과 새를 통해 고대인들의 믿음인, 이 세상을 창조한 자연과 신에 대해 표현한다. 식물은 삶의 촉매제로서의 역할을 하며 새들은 삶을 관장하는 권위자로서의 역할을 한다. ■ Gift 10 Vyner ST
호야(배철호)_The Siam-꿈의정원 3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220cm_2011

작가 호야의 작품은 샴에서 출발했다. 샴은 선천적으로 신체의 일부 혹은 장기의 일부가 또 다른 개인과 맞붙거나 공유 하도록 태어났으나 이러한 불합리하고 불리한 신체조건을 오히려 공생의 지혜로 극복하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작가 호야는 지난해 작품 샴 시리즈를 통해 인간과 인간 혹은 인간과 사회의 관계를 샴을 통한 공생의 지혜로 그려 보고자 했다. 이번 전시도 샴 시리즈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럼에도 한층 더 심화된 인체의 변형과 왜곡은 틀과 배경에 스며들거나 배경의 일부와 함께 녹아 들고 있다. 작가는 배경을 이루는 자연물, 풍경, 문의 틀, 혹은 다른 회화적 소재인 십장생도나 명화 등 친숙한 이미지를 차용하여, 그 안에 변형된 인체의 무리들을 차용한 이미지의 운율에 맞추어 삽입하였다. 군상을 이룬 인간은 개인적 인격을 주장하기를 멈추었고,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은 채 순수한 물질로의 회귀를 이룬다. ■ 조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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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그림을 품다




이재열展 / LEEJAEYUAL / 李宰列 / painting   2012_0710 ▶ 2012_0723



이재열_용꿈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5×54cm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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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스칼라티움 아트 스페이스 SCALATIUM ART SPACE 서울 강남구 역삼동 828-10번지 Tel. +82.2.501.6016 www.scalatium.com




산이 분홍빛으로 물들고, 파란 하늘은 까만색으로 바뀐다. 물고기가 하늘을 날고, 새가 물속을 헤엄친다. 이렇듯 나의 그림은 현실보다는 비현실에 가깝다. 땅이 붉은 색을 띠고 나무가 파란색을 발산하는 것은 그림이라는 장르에 상상을 가미시켜 극대화 시킨 결과일 것이다. 현실의 모습과 신선의 모습, 그리고 진경, 안비낙도의 선인들의 마음을 고스란히 전하면서 그림만이 가질 수 있는 특유의 상상력을 가미시킨 것이다. ● 공간에서 부유하는 작은 씨앗들은 나무가 되고, 사람이 되고, 또한 자연이 만들어지는, 모든 만물의 근원이 되는 존재이다. 이 씨앗들은 화면 안에서는 모든 것들의 처음이 되고 그리고 그 처음으로 하여금 모든 것들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씨앗은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캐릭터이자 소재가 된다. 그것들은 작품이 만들어 지는데 처음이 될 뿐 아니라 또 가장 마지막에 그려지는 모델이 되어 처음과 끝을 연결시켜 화면 안에 물체들이 유기적으로 연결시켜 주는 매개체 역할까지 담당한다. ● 나의 작품에서 조선의 회화를 취한 것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관통해서 보는 느낌을 찾고 싶었고, 역사상 가장 뛰어난 회화의 성취를 이룬 시대의 작품인 동시에 현대에서도 흠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조형성을 띠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품은 동적인 것과 정적인 것이 있다. 초상화의 경우 정적인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인물의 생각이나 사상에 초점을 맞추어 완성된 것이고 산수와 영모화의 경우 동적인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는 자연이 살아 숨 쉬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심지어 물과 돌과 구름 까지도 나의 그림에서는 살아 숨 쉬는 하나의 생명체다. 그것들은 인간들과는 상관없이 자기들만의 독특한 삶의 방식으로 화면에서 살아가고 있다. (2012. 5) ■ 이재열

이재열_거북과 천도 복숭아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5×54cm_2012
이재열_문자도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5×45cm_2012

우주의 보이지 않는 기운의 작은 싹은 생명을 잉태하는 기초가 된다. 이 움직이는 힘을 기(氣)라 하였고, 기는 바람을 움직이고 구름을 만들고 생명을 자라나게 한다. 이를 두고 일본학자 이노우에 다다시(井上正)는 운기화생(雲氣化生)이라 이름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기운이 만물을 생장시킨다는 것이다. 이재열의 작품세계에도 운기화생의 흐름이 포착된다. 작가는 하나의 씨앗과도 같은, 눈이 있는 생명의 돌기들을 유기적인 하나의 생명체로 확장시키고 있다. 변화된 생명의 움직임은 영상과도 같이 순간적이며 역동적이다. 힘차게 자신의 생명을 확인하며 만물의 근원의 본질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듯, 힘의 기원과 움직임을 보여준다. 돌기는 싹을 티우고 뿌리를 내리고 날아다닌다. 이들은 식물처럼 자라나고 생각하며, 숨을 쉬고 생명이 도는 듯 살아있다. 그래서 작가의 작품 속에는 돌도 나무도 바람도 커다란 눈을 달고 순간적인 꿈틀거림이 있다. 이는 작가가 우주의 본질, 생명, 맥박 그 자체를 정신의 영역으로 끌어올리고 확장시킨 결과이다.
이재열_남극 신선도_장지에 아크릴채색_91×58cm_2012
이재열_민화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58cm_2012
이재열_이부탐춘_장지에 아크릴채색_80×52cm_2012

이러한 이재열의 화작(畵作)들은 조선의 그림에서 출발한다. 생명의 돌기들과 확장된 유기적인 살아있는 생명들, 그리고 곳곳에 숨겨진 동물의 캐릭터들은 조선시대 회화의 명작에서 재조합 되고 있다. 단원 김홍도의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 어진(御眞)과 같은 초상화는 구조적 형상을 기초로 하되, 닮지 않은 현재적 어법의 화면으로 변모된다. 생명과 캐릭터 그리고 고전의 만남에서 새로운 컨템포러리로 탄생되고 있는 것이다. ● 이렇듯 작가의 창작전략은 조선그림의 패러디(parody)에 있는 것이다. 고전의 명작들에서 구조를 빌려와 캐릭터와 화면자체의 내용을 새로운 창조의 세계로 이끌고 있다. 환상적이며 극적인 연극성까지 동반하고 있는 작품들은 포스트모더니즘에서 현저하게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어법을 빌려오고 있다. 이것을 패러디 또는 전용이라 할 수 있는데, 1970년대 이후의 네오지오(neo-gio)나 차용미술, 시뮬레이션 회화들이 이를 근간으로 형성되어 왔다. 할 포스터 (Hal Foster) 와 같은 비평가는 이러한 차용미술을 두고 "스타일의 개혁이 불가능한 세계에서 남아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지난 스타일을 모방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이제 더 이상 원작의 고유성이 존재하지 않으며 원작의 고유한 아우라는 해체되어야 한다고 말한다.(문영대, 포스트모던 패러디 현상 연구, 재인용) 이 해체의 과정 속에서 새로운 본질적인 의미와 내용의 세계가 열린다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의 핵심이다. ● 이러한 현상은 현대미술이 원본을 재창조함으로써, 새로운 미술창작으로의 회의와 비판에서 시도된 결과인 것이다. 이를 통해 포스트모더니즘은 과거의 형식을 빌려와 새로운 내용, 본질적인 작가가 의도한 세계를 드러내는 것에 중심을 두는 것이다. 이렇듯 이재열의 패러디에는 조선그림이 갖는 원본의 신화성을 해체시킨다. 그리고 작가가 오랫동안 천착해온 만평과도 같은 풍자와 유희의 세계를 드러낸다. 들판을 뛰노는 아이의 천진함과 순수함, 즐거움이 폭발하듯 터지고 있다.
이재열_이부탐춘_장지에 아크릴채색_52×80cm_2012

엣지 있는 깨끗한 형태와 화려한 색의 연출, 사물의 재구조화는 분명코 팝 아트의 연관성을 부정할 수 없다. 또한 무라카미 다카시가 자신의 역사와 고전을 현대문화를 꼬집어 설명하는 장치의 극대화로서 사용하듯이, 작가 또한 현대의 징후와 인간의 표정들을 드러내는데 있어 고전을 차용하고 있는 듯하다. 얼굴이 둥근 "동글 맨"이 생명의 돌기들을 마치 손에 드는 홀(笏)처럼 들고 있다. 이러한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에는 모종의 패러디 안에 감춰진 자아의 유희와 그 형식 속에 녹여 낸 현대인간의 진실이 고전의 무게에 교묘하게 대립한다. 허구이면서 가벼운 것, 진실이지만 진실이 아닐 수 있는 모순관계에 있는 현대인의 초상을 말해 주는 듯하다. 고전을 가장한 텅 빈 인간의 실체, 깊이로의 끊임없이 강요받는 철학과 역사들이 작가에겐 단순한 놀이의 과정처럼 도구화되고 표피화 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현대인이 직면하고 있는 지식과 본질, 존재와 인식에 관한 불편한 진실일지도 모른다. ● 사실 작가의 캐릭터 가득한 요동치는 화면에는 하나하나 감상의 과정이 숨겨져 있다. 그의 화면에는 전통산수화가 구현하였던 삼원법(三遠法)의 고원(高遠) · 심원(深遠) · 평원(平遠)을 오르내리는 자재(自在)로운 시선의 흐름이 간취된다. 산재(散在)된 눈빛의 표정들을 따라 곳곳에 숨겨진 생명체들을 찾아내는 재미는 유년기의 놀이와 같이 화면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작가의 유희가 펼쳐진 세계로 말이다. ● 어쩌면 인간의 역사를 뒤틀고 희극화 시키며 자신이 처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현대의 역사성과 표면화된 인간 정신의 본질을 경쾌하게 전환하는 것이, 작가가 지향하는 그리기의 본질이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유희와 생명의 흐름들을 찾아나서는 과정에서 우리의 파편화되고 부유하는 자아의 흔적들을 만나게 된다. 사실 이는 유희 속에서 차가운 냉소의 시선을 던지는 작가의 내면의 소리와 표정이기도 하다. 이 슬픈 인류의 단상들은 이재열의 패러디 속에서 유쾌함과 시원한 정서의 팽팽한 긴장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는 역설, 고전의 본질을 해체하고 새로운 작가의 세계와 사유로 대체하는 것이 패러디의 본질인 것이다. ● 비평가 아서 단토(Arthur Danto)는 컨템포러리 미술을 정의하는 부분적인 특징을 예술가들이 과거의 미술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고 말한다. 이렇듯 이재열의 작품세계는 컨템포러리의 '정의'를 관통하는 내용과 조형성을 드러내고 있다 하겠다. 그리고 컨템포러리를 잉태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모방과 해체라는 창작전략을 흡수하고 해석함에 따라 다시 자신의 세계로 재탄생시키고 있다. 즉, 작가의 「조선의 그림을 훔치다」 시리즈는 시선을 사로잡는 현대미술의 매력적인 요소를 함의하고 있다. 팝아트와 같은 어법과 현대인의 정서를 포착하고 음미하는 반어와 역설 그리고 동양 사유의 생명론에 이르기까지, 모방이 창조에 이르는 긍정적 모색의 과정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 속에는 놀랍고 즐거운 상상력과 짜릿한 감정의 유쾌한 즐거움을 동반하고 있다 하겠다. ■ 長江 박옥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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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리드 쾨페展 / Astrid Köppe / drawing   2012_0712 ▶ 2012_0721



아스트리드 쾨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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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2_0712_토요일_06:00pm

관람시간 / 월~토요일_12:00pm~06:00pm / 일요일_12:00pm~05:00pm

갤러리 담 GALLERY DAM 서울 종로구 안국동 7-1번지 Tel. +82.2.738.2745 www.gallerydam.com



Astrid Köppe: 눈과 마음 사이"눈은 스스로 움직이는 도구이고. 그 자신의 목적을 창조하는 수단이다; 그것은 세상의 어떤 충격에 의해 움직여졌고, 그리고는 재빠른 손을 통해 가시적인 것으로 복원되는 것이다." (Maurice Merleau-Ponty (1908-61) 'Eye and Mind') ● 작가 Astrid Köppe는 그녀의 그림에 관하여 창조적인 접근을 해왔으며 "내가 사물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인식하는 순간, 보통 나는 즉각적으로 하나의 그림이 내 앞에 놓여진 것을 함께 본다. 이것은 내가 본 것이 어떻게 하나의 완성된 작품으로 보일 것인지를 정확하게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따라서 작가는 그녀의 그림과 에나멜을 씌운 대규모 작품을 직접 인식되고 감각적인 세계로부터 적출한 것의 정제된 형태라고 본다. 그림과 그것의 선험적인 전통적인 지위는, 항상 아이디어에 대한 예상된 형상과 그 후에 아이디어를 실현화한 것 사이의 공간에 놓여 있다. 역사적으로 말하자면, 소위 작가 프리젠테이션 그림이라는 하나의 예외를 제외하고, 그림의 지위는 예술 안에서 어떠한 추정되는 보다 큰 목적 안에 항상 포함되어 왔다. 이러한 점에서 작가 Astrid Köppe는 이러한 이전의 현실에 도전하고 의도적으로 뒤집어왔다. Köppe의 작품은, 그녀가 말한 바와 같이, 확고하고 자주적인 아이디어들이고, 애초부터 일련의 인지되고 이해된 실현이며, 그 후 자기 자신의 세계로 능숙하게 변형된 것들이다. 그림은 또한 보다 최근의 에나멜 작품이라는 그녀의 발전에 대한 전반적인 기초가 된다. ● 그러나, 이것은 인지된 형태가 세상에서 발견된 경우 작동하는 의식의 자발성(spontaneity)을 깍아내리는 것이 아니다. 낯설고 보다 덜 즉각적인 방식으로 그것은 의식의 자발성을 강화한다. Köppe의 그림이 축소된 형태를 취하는 것은 그 그림들이 의도적으로 미니멀리스트 내용과 같은 전략을 추구한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은 외적인 인식으로부터 도출된 것이며, 그녀의 상상을 정제된 '마음에 눈'이라는 고려 방식에 의하여 형성된 것이다. 정의된 것처럼, 상상하는 것은 마음의 상(像)을 만들어내는 것이고, 사고(思考)하거나 추측하는 것이며, 인지된 것을 확대하거나 명확하게 하는 아이디어를 갖는 것이다. 이렇게 추구된 인지(認知)는 작가에 의하여 그녀의 그림에 나타나는 정제(distillation)에 대한 내적으로 표현되고 창의적인 형태로 깊이 연결된다. Köppe가 표현한 것처럼 "그것은 내가 본 것에 대한 단순화된 스냅샷(snapshot), 추출물, 주관적인 본질 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무작위이거나 단순히 작가의 입장에서의 순수한 주관성에 대한 포기가 아니다. 남아있는 개념적인 내용은 A4 표면을 표준화한 것과 관련하여 존재하며, 인지되고 감각에 기초한 재료들을 세상으로부터 가져온 후 단호한 선택으로 뒤따라오는 것이다. 그리하여 Köppe의 그림은 주관적이고 미묘한 해석의 순간을 중심으로 하며, 그런 다음에야 시각적으로 형태를 갖추고 의도적으로 조직된 수칙 안에서 객관화된다.
아스트리드 쾨페

이것은 양방향 대칭과 종이 표면 위의 일정한 중심으로 종종 이어지는, Köppe에 의해 행해지는 특정한 형태와 관례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즉각적인 정신적인 내용은 매우 감정적이거나 전통적인 표현의 의미에서의 디오니소스적인 표현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통제된 아폴로적인 조화에 대한 놀라운 통달 또는 감정이 있다. 그 결과 작가의 모든 그림에 섬세한 균형과 기지가 나타난다. 그림들은 의도적으로 Köppe에 의해 제목이 붙여지지 않은 채로 있으며, 그림을 보는 사람에게 그가 보는 것을 상상하고 개인적으로 그림을 그려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명백한 것은 지배적인 경향은 장기(organic) 및/또는 자연적인 형태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그 형태들은 신비하고 장난스러운, 새롭게 가시적으로 된 외견상 친숙한 일상 세계에 대한 숨겨진 상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전시를 보는 사람의 마음은 이후 창작된 현재의 시리즈에서 심장, 폐, 아메바 및 많은 다른 장기 형태들이 나타날 것 같은, 아주 많은 연상 가능성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 선, 색과 내용은 모두 각자의 역할을 하지만, 그 역할은 열려 있고 상호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Köppe의 선과 색 사용은 그녀 그림 안의 시각적인 내용에 대한 유일한 기초가 아니다. 내용에 대한 느낌은 재료나 바탕, 평평한 A4 용지 위에 놓여지는 것에 의해서 형성된다. 그러나 그와 같이 함에 있어서 그녀는 유동적인 형태로 쉽게 가끔 보여질 수 있는 잠재적인 시각적인 탄력성을 허용한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형식적이거나 고정된 서열을 갖지 않는 그림들이며, 선은 결코 색보다 우선하지 않으며, 색 역시 선보다 우선하지 않는다. 표지(mark)라는 단어는 타원형, 미묘한 원형 반점 또는 페이드 효과(sfumare effect)와 가끔 낯선 해양 생물체처럼 보이는 것을 만들고, 교차된 평행성 무늬를 넣거나 음영을 넣는 과정과 리듬을 통해 나타난다. 동시에 알파벳을 통한 언어는 단어를 구성하고, 함께 설치된 때에는 종종 Astrid Köppe의 그림이 환상적인 단어 및/또는 그림으로 표현한 알파벳과 같은 것을 반복하고 있는 경우이다. 그러나 가상적인 단어라면 그것은 모든 존재들이 상상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누구도 진정으로 완벽하게 알려질 수 없는 그런 곳 같은, 일종의 Borges적인 마술적인 기발한 생각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아스트리드 쾨페
아스트리드 쾨페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의 Astrid Köppe의 구체적인 마음의 상태는 매우 중요한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림을 작업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desiderata(글자 그대로 '갈망하는 것들')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desiderata는 직접적이거나 화살 같은 고의성에서 유래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의 미리 정해진 방향에 있는 모든 그림은 오히려 그것들이 그녀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단지 마지막에 서로 달라붙고 융화된 것이다. 만약 작가가 인지된 세상으로부터 얻은 경험에 대한 '망막 잔상'(retinal after image)을 실현할 것을 표방하는 경우, 그것은 마치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보아서는 안된다 -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일반적으로 인정된 바와 같이 그림을 추구하는 것은 아마도, 다른 어떤 매체보다, 한때 서양 미술의 메타언어(metalanguage)를 파생케 한 역사적인 시론(ars poetica)에 창조적으로 가장 가깝다. "시론(ars poetica)"이란 단어는 (예술로서) 시의 본질을 포착하는 것을 의미하며, 보여지고 인지되는 것을 알기 위한 방법을 이해하고 마스터하기 위해 한 발 물러설 것을 요구한다. 두 단어(본다 와 인지한다)는 구별되나, 표현되는 것의 고유한 가치를 이해하기 위한 유일한 조건을 함께 형성한다. 그러므로 그림으로서의 선과 문자에 선을 사용하는 것은 가끔 가깝게 연결되어 있고, 우리는 우리가 시(詩)라고 알고 있는 회화적인 관습과 문학적인 관습 안에서 이 두 가지가 결합하는 것을 마주치게 된다. ● 대규모의 에나멜 작업을 한 작품으로 돌아가자면,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것들 또한 그림의 첫 번째 원칙에 의존한다. 그러나 제작에 관계된 공정의 본질을 통하여 그 작품들의 모티브는 불가피하게 사전에 정의되어야 한다. Köppe가 말한 바와 같이 그녀의 일반적인 형태들은, 비록 그림의 경우 미묘한 이동이 과정 중에 일어날 수 있지만, 이미 그녀가 시작하기 전에 그녀의 마음의 눈에 이미 자리하고 있다. 에나멜 작품에서는 상당한 정도의 계획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선택된 형태들이, 엄격하게 통제되어야만 하는 다른 단계들을 통하여 반복되는 스텐실 작업과 열 작업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나멜은 - 여러분이 bath unit에서 글자 그대로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 작업할 미술 재료 혹은 표면으로서 흔치 않은 선택이다. Köppe가 이러한 매체에 끌린 것은 그것이 그녀 그림의 단색 바탕이라는 아이디어를 회화적인 대상의 영역으로 확대하였기 때문이다. 그녀의 초기 그림은 '물체같은 상태에 대하여 이와 유사한 지시체를 추구하였으나, 그녀는 언제나 그들에 만족하지 못하였으며, "...나는 더 이상 붓으로 하는 작업과 캔버스 구조에 만족할 수 없었다."라고 하였다. 나무와 금속 표면에 실험을 한 후, 열 작업을 한 에나멜에 끌린 것은 그것이 단색 바탕을 유지하는 것을 허용하고, 작품에 대상과 동일한(object like) 상태를 주었으며, 실제로 무게에 있어서 상당히 무겁긴 하지만 Köppe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형태의 회화적인 가벼움 또는 단순함을 창조하였다는 데에 있다. 동시에 그것은 보조물(support)로서의 캔버스의 늘어지고 탄력적인 씨실과 날실을 없앨 수 있게 하였고, 모든 제스처적인 붓 자국을 제거하였으며, 그려진 이미지와 표면의 융화된 통일성을 창조하였다. ● 에나멜을 만드는데 있어서 요구되는 첨가 공정은 작가 안에 다른 형태의 정신-생리학적인 상태(psycho-physiological state)를 만들어 낸다. "빈 공간이 순수하게 남아있는 하얀 종이 위"라는 시적 표현과는 달리, 사용된 재료에 대한 물리적인 관계는 상당히 다르다. 비록 그 모티브는 의심의 여지 없이 작가의 그림 그리는 습관에서 나온 것이라 하더라도, 명백하게 이미지에 대한 가변적인 규모는 작은 A4 형태의 그림과는 구분된다. 하지만 에나멜을 위한 그림은 몇 단계를 통해 통상 만들어지고 전개되는 스케치와는 상당히 다르다. 반대로, 에나멜은 공업적인 공정이 관계되므로 훨씬 더 협력적이어야 한다. 우연한 결과가 잠재적으로 관여하게 되므로, 레이어링(layering)과 열 작업이라는 서로 다른 단계는 Köppe로 하여금 그녀가 - 기술적으로나 미적으로 -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공정에 의존하도록 만든다. 소스들(sources)은 그녀가 인정한 바와 같이 도식적인 경향이 있고, 다시 말해, 시리즈를 통해 작업하고 발전하며, 시간이 흐르면서 계속해서 변화하는 초기의 아이디어에서 시작한다. Köppe의 표지(mark)라는 단어는, 큰 규모와 에나멜 그림 재료 실현 뒤에 놓인 복잡한 수단에 의하여 요구되는 대로 축소되는 경향이 있다. 선택은 여전히 작가의 몫으로 남겨져 있지만, Köppe는 에나멜 그림을 보다 장기간에 걸쳐 발전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따라서, 그리고 필연적으로, 작품으로 돌아감에 있어서, 그것은 위에서 언급한 시리즈로 된 반복 작품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해서 에나멜 그림은 오랜 절차의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선택된 이미지에 대한 구조화된 단어와 관련하여서도 훨씬 더 대상과 시간에 기초하게 된다. ● Astrid Köppe의 작품은 명쾌하고 이중적인 열망을 표현한다. 첫째는 일상에 대한 그녀의 인식을 개인적인 신비한 감각으로 포착하고 정제(distill)하는 것이며, 둘째는 아마도 일상을 바라보는 과정에 의하여 갖게 된 상상의 시학(詩學)을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는 것이다. 무언가를 바라본다는 것(look at)은 너무 자주 '찾는다는 것'(lookng for)과 혼동된다. 보여지는 사물에 대한 미리 가공된 모든 추론들을 내다보면서 대개의 사람들은 그들의 눈이 전방을 향하도록 하고 있는 반면, 미술에서 보는 것(seeing)의 진정한 창조적인 과정은 항상 현재에 있다. 그것이 바로 하이데거가 dasein(現存在), 세계 속에 '거기 있는 자'(the 'being there' in the world)라고 부른 것이지만, 양심이나 자아와 관련하여 단지 주관적인 것을 넘어서 정의될 수 있는 어떤 것으로서 이다. 그녀의 그림과 에나멜 작품에서 대안적인 개인적 상상의 세계를 열어준, 새로운 통찰력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Köppe가 세상 속의 사물을 응시하고 보는 것의 본성에서이다. 그녀 작품의 단순함은 거울 같은 자기 성찰의 과정, 그녀가 언급하고자 한 대로, 일련의 여과된 인상(印象)에서 발전한 것이다. 그러나 자기 성찰은 자기 이해(self-knowledge)가 될 수도 있으며, 그녀의 작품에서 Köppe는 자신의 일상 생활의 상상력 충만을 실행하는 창조적이고 설득력 있는 수단을 찾아낸 것으로 보인다. (2009년 7월 27일, 월요일) ■ Mark Gisbourne
아스트리드 쾨페


나의 작업은 많은 양의 드로잉으로 되어 있다. 십 년 훨씬 전부터 지금까지 나의 작업은 A4크기의 종이에 엄격하게 그려왔다. 나의 드로잉들이 대부분은 내가 실제로 봤던 것들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다른 나라에 있는 생명체 혹은 존재에 강한 영향을 받았다. 내가 찍었던 것들이 주체적인 사물의 본질이 되기도 하고 선택적인 인식을 통해 걸러진다. ● 나는 형태를 창조해내지는 않는다. 하지만 때로는 유사한 모양을 대비 혹은 비교해서 삭제하거나 과장하면서 형태를 만들어 낸다. 이렇게 함으로써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기회도 생기고 나는 이를 가능한 한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 결과물에서 모티브는 결코 완전히 설명되지는 않는다 비록 그 드로잉들이 어떤 유사한 것을 회상시키거나 할지라도 거의 단어로 규정지을 수는 없다. ● 내가 만족하다고 발견한 드로잉들을 바로 티핑포인트에 있다. 말하자면 보여지는 오브제들은 같은 시점에 놓여져 있거나 놓여져 있지 않다. 이러한 명확함과 모호함 혹은 확실함과 불확실함 사이의 균형이 나에게 흥미를 준다. 그러한 양면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 나의 작업은 무제라는 원칙이 있다. ■ 아스트리드 쾨페

아스트리드 쾨페

갤러리 담에서 베를린에서 활동중인 독일작가 아스트리드 쾨페의 드로잉전을 기획하였다. 아스트리드 쾨페의 모티브의 세계는 구체적인 경험과 관찰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그녀는 사물을 시각을 통해 인식된 것을 결합 혹은 변형시켜서 자신의 환상적이고 기묘한 우주로 변화시킨다. 그녀가 그려낸 식물 또는 동물처럼 보이는 오브제는 대단히 조형적이고 촉각적인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고 그리고 표면에 놀라운 매력을 보여준다. 우리는 그 안에 관목이나 아메바나 히드라와 같은 촉수동물들, 머리스타일, 에어리언 등과 같이 일상의 모든 사물들 감각적인 것과 무용적인 것들 사이의 기이한 사물로 볼 수 있다. 모티브들은 형태변형이 갑자기 포착된 것처럼, 혹은 디지털변형이 갑자기 된 것처럼 어딘가 현실과 초현실 사이에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관람자는 언제나 자신의 지각으로 관심을 돌리게 되고 그곳에서 최대가능한 모호함과 만나게 된다. 하지만 털, 직물, 머리카락 또는 가시와 같이 오브제의 정확한 묘사력에 놀라게 된다. 그녀의 드로잉은 우리들은 현실 혹은 환상적인 것인지 혹은 자연적인지 초자연적인 생각을 상상하게 한다. ● 작가는 2년 전 영은미술관 레지던시 작가로 활동하면서 국내에 소개된 적이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아스트리드의 최근의 드로잉 작업과 에나멜 페인팅을 20여 점 선보일 예정이다. ■ 갤러리 담
아스트리드 쾨페


My work consi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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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ions 投射




가오 레이展 / Gao Lei / installation.photography   2012_0712 ▶ 2012_0819 / 월요일 휴관



가오 레이_Building No.35-A333#_사진_150×180×3.5cm_2006


초대일시 / 2012_0712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 청담 ARARIO GALLERY SEOUL CHEONGDAM 서울 강남구 청담동 99-5번지 Tel. +82.2.541.5701 www.arariogallery.com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 청담에서 07월 12일 중국현대미술을 선도하는 젊은 작가 가오 레이(b. 1980)의 개인전이 열린다. 작가는 본질과 외형, 허구와 실재, 개인과 권력 등 이원화의 세계를 끊임없이 탐구하여 병치와 비의인화 등의 방법으로 기발한 공간을 창조한다. 이번 개인전은 3미터가 넘는 거대 설치 작품에서 회화, 사진까지 총 22점의 작품이 대거 전시되며, 한국에서 열리는 가오 레이의 첫 번째 개인전이다.
가오 레이_Scene No.7_사진_30×30×45cm_2008

가오 레이는 1980년대 이후 출생한 세대를 일컫는 '바링허우(八零後)'이다. 이들은 1부모 1자녀 정책을 실시한 1980년대 이후의 세대로 부모 세대와는 달리 시장경제 체제 아래에서 태어나 경제성장의 혜택과 물질적인 풍요로움 속에 성장하였다. 따라서 이들은 개인주의적, 소비지향적 성향과 개방적,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중국현대미술은 작품 자체의 스케일이 굉장히 크며, 표현에 있어서도 과감한 색과 형태를 띠거나 정치적인 모티브를 다루는 경향 등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바링허우 세대의 예술은 그 이전 세대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이들은 기존에 비해 보다 확장된 재료들을 사용하여 설치, 미디어, 페인팅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또한 보다 다채롭고 추상적이며 몽환적이거나 개인적인 사유에 의한 작업들을 거침없이 표현하며, 서구의 문화나 장치와 결합하기도 한다. ● '바링허우' 아티스트들 중에서도 가오 레이는 굉장히 철학적이며 고도로 응축된 사유를 담는 기발한 작업들을 선보여 왔으며, 형식에 있어서도 소재와 장르에 국한 받지 않는 폭 넓은 작업들로 주목 받고 있다. 현실 공간의 조각, 설치 작업에 동일한 장면을 그린 드로잉이나 페인팅을 대비시켜 보여줌으로써 가상세계와 현실세계의 경계를 능숙하게 넘나든다. ● 2005년부터 작업한 「Scene」과 「Building」은 사진 연작으로 실재에 존재하는 것들과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들 사이를 넘나드는 작업을 보여준다. 네모난 박스에는 하나의 구멍이 나 있고, 그것을 통해 관객들은 박스 안에 설치된 사진을 들여다 보게 된다. 사진들은 페허가 된 하나의 방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기묘한 상황들을 담고 있다. 방 안에 우주인으로 보이는 몸체가 쓰러져 있기도 하고, 커다란 기린 두 마리가 방을 거니는 장면이 담겨 있기도 하다. 작가가 선보이는 가상의 세계는 기묘한 분위기를 불러일으키며 보는 이들을 그곳으로 초대한다. 하지만 배경이 되는 방은 중국에 실존하는 한 건물로, 작가가 직접 찍은 실재의 공간이다. 작가의 연출에 의해 가상현실의 배경으로 재창조되면서 보는 이에게 실존 세계가 아닌 가상 세계인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가오 레이_A102_플로레슨트 라이트박스에 시바크롬 트랜스페어런시_30×30×45cm_2009
가오 레이_A102_캔버스에 혼합재료, 유채_180×24cm_2009

이번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 청담에서 선보이는 2012년 신작들은 기존 작들에 비해 보다 정교하고 완성도 높은 형태와 스케일을 가진 것이 특징이다. 신작들은 인간의 삶과 죽음, 생명의 윤회사상 등을 주된 주제로 작업 하였고, 보다 직접적인 형태로 개인과 사회의 외부적 환경 사이의 관계를 탐구한다. ● 「T-3217」은 알루미늄 봉에 매달린 4개의 그네 설치 작품이다. 그네 각각은 여성의 골반 형태이다. 그네 작품 뒤에는 신생아의 머리를 찍은 사진이 걸려져 있는데, 아기의 머리에는 그네와 동일한 형태의 골반이 끼워져 있다. 그네는 중국에서 예로부터 혈통을 연장하려는 열망의 상징이며, 여성의 골반은 생명을 내보내는 통로를 상징한다. 인류는 유전, 진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약한 물리적 특성을 다음 세대에 전달하지 않도록 제거하거나 퇴화시켜왔다. 하지만 좁은 골반은 제왕절개에 의해서 계속 유지되고 있고, 이는 점점 더 자연 출산을 힘들게 하고 있다. 따라서 출산 과정의 위험이 더욱 커졌고 심하면 산모가 사망할 수 있는 위험을 초래했다. 작가는 인간의 편의에 의해 자연적인 방식이 아닌 인공적인 방식을 선택함으로써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위험을 초래하는,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하여 순환적인 모순에 직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가오 레이_T-3217_Iron rack, 8 chains, 2 copper model, 2 aluminum model_340×230×120cm_2012
가오 레이_T-3217_종이에 C 프린트_40×60cm_2012

「F-09151」은 방독면이 연결된 고무 소재의 침대에, 먹이를 쪼아 먹기 직전의 모습을 취하고 있는 독수리 조각이 올려져 있다. 이 작품은 티베트, 몽골 등의 불교권에서 일반적으로 시행했던 '조수장'을 소재로 했다. 조수장은 사람이 죽으면 그 시신을 자르거나 천으로 덮은 후 일정한 장소에 두어 새가 먹게 하는 풍습으로, 길조인 독수리가 시신을 먹음으로써 죽은 자가 환생한다고 믿는 그들의 믿음에서 유래하였다. 「F-09151」작품에서 공기가 가득 찬 침대는 생명, 삶을 상징하며, 그것을 독수리가 날카로운 부리로 쪼면서 구멍이 나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태로움이 연출된다. 반면 작가는 독수리와 침대 주위에 철창을 두름으로 보는 이들에게 삶과 죽음이 한 순간에 뒤바뀔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한걸음 떨어져서, 지켜보는 자로서의 안전함을 제공한다. 가오 레이의 작업은 동시대의 사회·문화적 상황들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가상현실을 창조하여 보는 이들에게 확장된 인식의 틀을 제공한다. 이 전시는 중국현대미술의 선봉에 있는 젊은 작가의 작업을 소개함으로써 중국현대미술의 새로운 방향과 참신한 형식을 소개한다.
가오 레이_F-09151_A rubber cushion and a gas mask, a hawk model_55×130×190cm_2012

1980년생인 가오 레이는 중국의 후난성 창사에서 태어났다. 작가는 2006년 중국중앙미술학교 디지털 미디어아트학과에서 수학하였다. 가오 레이는 팅글리 미술관(Museum Jean Tinguely Basel), 루드비히 미술관(Ludwig Museum) 등 다수의 유명 미술관과 갤러리의 그룹전에 참여하였다. 개인전은 2008년 베이징에 있는 아야 갤러리(Aya gallery), 2011년 베이징 화이트 스페이스(White space)의 개인전 이후, 3번째 개인전을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 청담에서 가진다. ■ 아라리오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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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으로 나온 별들의 캠프








2012_0712 ▶ 2012_0829 / 일,공휴일 휴관





신하정_두꺼운 벽_캔버스에 유채_91×116.8cm_2012




초대일시 / 2012_0712_목요일_05:00pm

참여작가 / 신하정_임진세_정철규_최은경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신한갤러리 역삼 SHINHAN GALLERY YEOKSAM 서울 강남구 역삼동 731번지 신한은행 강남별관 B1 신한아트홀 내 Tel. +82.2.2151.7684





신하정, 임진세, 정철규, 최은경 네 명의 작가는 별이 가득히 빛나는 들판에서 세상을 바라본다는 의미로『들판으로 나온 별들의 캠프』展을 기획했다. 이들은 회화라는 동일 장르를 통해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변화에 대한 각기 다른 해석과 표현을 보여주고자 한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아닌 모호한 낯선 풍경을 통해 우리의 앞날에 대한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무심한 풍경은 평범한 현실을 담은 기록이다. 네 작가는 순수한 회화 작품을 통해 각자 고유한 방식으로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이들이 제시하는 풍경은 언캐니(uncanny)한데 이러한 이질적인 풍경은 세상과의 단절을 암시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이들의 그림 전체에 슬픔과 공허함이 배어있음을 짐작 할 수 있다. '회화'와 '멜랑콜리'는 쓸쓸하고 우울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들 작품을 관통하는 두 가지 키워드가 된다. ● 프랑스 철학자 줄리아 크리스테바는(Julia Kristeva)『검은 태양-우울증과 멜랑콜리(Soleil noir-Dépression et mélancolie)』에서 우울한 정서에 대해 논의한 바 있다. 멜랑콜리(melancholy)는 우울(depression)의 학술적 용어로 우울의 근본적인 심리 구조는 대상과의 분리를 의미한다. 정신분석학과 기호학의 관점에서 멜랑콜리는 단순히 슬프고 우울한 기분상의 문제가 아니라 언어와 관련되는 주체와 상징 사이의 문제를 말한다. 이들은 구도, 형태, 색채 등 여러 조형요소들을 활용하여 멜랑콜리한 풍경을 제시했다. 멜랑콜리의 심적 구조는 상실과 직결되지만 이들 작품에서 보여지는 슬픔은 반드시 특정 대상과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경험한 상실이라기 보다 주체로서 갖는 근본적인 상실에 더 가깝다.
신하정_머물다_캔버스에 유채_91×116.8cm_2012
신하정_불을 지피던 곳_캔버스에 유채_91×116.8cm_2012

신하정은 목탄을 사용했던 과거 드로잉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독특한 붓 터치를 보여주었다. 갈필로 여러 번 그으며 칠하는 방식으로 그려진 풍경은 어딘가 모르게 동양적 느낌을 준다. 실제로 작가는 캔버스 위에 먹을 사용하여 작업을 하기도 했다. 이는 어둡고 깊이 있는 검은 풍경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려지는 대상들은 구상적이지만 불분명한 상황을 묘사하고 있었다. 거대하고 육중한 교각과 거칠고 앙상한 나무가 무성한 덤불 속에서 헤매고 있는 사람들은 불안해 보인다. 익숙한 듯 낯선 풍경 속에 방치된 외로운 영혼들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전체적으로 탁하고 가라앉은 색채를 사용했던 기존 작업과 달리 밝은 색채로 맑은 느낌을 최대한 살린 최근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낯설고 쓸쓸한 느낌을 준다.
임진세_한강 물결_캔버스에 유채_73×91cm_2012
임진세_구 도하부대의 얼은 연못_캔버스에 유채_91×117cm_2012
임진세_도둑고양이_캔버스에 유채_117×91cm_2012

임진세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대상을 바라본다. 소외된 풍경에 주목하여 있는 그대로의 일상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빠르게 흘러가는 붓의 터치는 거친 느낌을 줄 수 있지만 회색 빛으로 지워진 풍경은 고요하기만 하다. 그녀의 작품은 시적이고 서정적이다. 분수를 바라보는 사람들, 휘경동 밤 산책, 벚꽃 피는 계절, 목련가로등, 북악스카이웨이 등 누구에게나 아름다울 수 있는 풍경들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하지만 밝고 화사한 봄 꽃은 온데간데 없고, 으슥하고 어두운 골목만이 등장하며, 심지어 분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다. 그들은 분명 함께 있지만 고독하고 외롭다. 작가는 이러한 풍경은 인과와 우연이 얽혀 만들어지는 것이라 말한다. 금세 변해버릴 풍경이라 헐겁게 표현한 것이라 하지만 그녀의 작품은 짙은 여운을 남기며 무덤덤하게 지나간 시간을 추억하게 한다.
정철규_돌아오지 않아도 보이니까_캔버스에 유채_163×130cm_2012
정철규_그날_캔버스에 유채_163×130cm_2012
정철규_이제 시작이 되어버린_캔버스에 유채_80×80cm_2012

정철규의 작업은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해왔다. 그의 작업에는 많은 것들이 뒤섞여 뒹굴고 있다. 특히 밝은 색채와 대조적으로 여러 번 덧칠해 탁해진 화폭에서 우러나오는 독특한 느낌은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정철규의 작업은 2011년 겪은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달라졌다. 여전히 몽환적인 느낌을 주고 있지만 색감이나 붓 터치의 방식에서 이전보다 무거워졌고 부재와 결핍이 직접적으로 드러나 더욱 공허함을 느끼게 한다. 작가는 죽음을 맞이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하얀 고래로, 고래를 덮은 흰 천은 거대한 산으로, 그리고 사라지려는 연기는 천을 실로 묶어 표현했다. 그는 종종 흰 천으로 사물을 덮어 그리곤 했다. 작가의 표현대로 여전히 그는 사라진 것을, 지나가 버린 것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것을, 만질 수 없는 것을 찾아 헤맨다.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외롭고 격한 슬픔을 표현하고자 했다.
최은경_처마 끝_캔버스에 유채_146×112cm_2010
최은경_관청리 벌판_캔버스에 유채_112×146cm_2010

최은경은 아버지의 고향을 그린다. 사적이고 은밀한 일상과 장소를 통해 인생의 여정을 보여준다. 작가에 의하면 그 장소는 폐허의 공간으로 망쳐지고, 어그러진, 내몰린 그 끝자락이다. 회색 빛이 감도는 어둡고 탁한 푸른색 배경은 아무런 희망이 없는 장소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청색은 비관적이고 공포스러운 우울함을 상징한다. 또한 눈, 코, 입이 지워진 무표정한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무관심을 넘어 무감각한, 극도로 억제된 표현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작가는 관계의 무관심을 부각시킨다기 보다는 보편적인, 혹은 익명성에 대한 접근으로 표현한 것이라 주장한다. 작가는 지형도가 바뀌면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유형과 삶의 태도가 바뀌게 되기 때문에 그 삶의 유형과 태도가 바뀌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 없음이 아니라 그러한 실패의 단초를 다시 들여다보면서 지금의 현재를 들여다보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바를 전망해 보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윗세대인 아버지의 삶의 과정을 통해 지금 현재 우리들의 삶의 모습을 성찰하기 위한 작업이라 말한다.
최은경_불_캔버스에 유채_130×194cm_2010

현대 회화의 쇠퇴와 복귀에 관해서는 2005년 영국 런던의 사치갤러리(Saatchi Gallery)에서 열린『회화의 승리전(Triumph of Painting)』을 중심으로 여러 차례 논의된바 있다. 별들의 캠프를 열고자 했던 네 명의 작가는 가장 오래된 예술매체인 회화를 통해 시대적 맥락에 뒤쳐지지 않도록 나름의 독창성을 유지하며 일상의 리얼리티를 풀어냈다. 이들에게 리얼리즘은 사조적인 의미에서의 리얼리즘과는 분명 다르다. 전형적인 양식이나 방법, 또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방식에 있어 문자 그대로 무엇이 리얼리티인가 또는 리얼리티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보여준다. 이 시대의 리얼리즘은 결코 삶에서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 주체의 경험과 기억에 연관되며 특정한 객관성 보다는 모호성을 추구한다고 볼 수 있다.『들판으로 나온 별들의 캠프』展은 기억의 풍경을 그리고 있지만 네 작가의 멜랑콜리한 현재를 들여다보게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가 진정한 삶의 사색을 느낄 수 있는, 회화 본질의 유연함이 돋보이는 전시가 될 것이라 기대한다. ■ 안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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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uvel Avatar: 새로운 변형








백기은_이정윤展 2012_0712 ▶ 2012_0902 / 월요일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료 / 성인 1,000원 / 학생(초,중,고) 무료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관람 종료시간 30분 전까지 입장 가능

성북구립미술관 SEONGBUK MUSEUM OF ART 서울 성북구 성북동 246번지(성북로 134) Tel. +82.2.6925.5011 sma.gongdan.go.kr





증식(增殖)된 여성적 판타지(fantasy)의 세계 ● 해양 생물 같기도 하고 고산 지대의 식물 같기도 한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들이 미지의 공간을 부유한다. 사랑스러운 작은 동물처럼 보여 보듬어주기 위해 다가가자 그것은 위협적인 괴물로 돌변한다. 날카로운 촉수에 찔릴 것 같아 뒷걸음질 치니 괴물은 이내 부드럽고 따뜻한 실몽당이로 바뀐다. 매 순간 달리 보이는 모호한 형상들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에 등장하는 체셔 고양이(cheshire cat)를 연상시킨다. 시선을 반대편으로 돌리니 이번에는 구두를 신은 코끼리가 패러글라이딩(paragliding)을 하며 하늘을 날고, 여름 휴가를 떠난 코끼리가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또 다른 코끼리는 벽을 뚫고 탈출을 시도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물, 의인화된 코끼리, 이 모두는 환상 혹은 동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로 보인다. 그러나 낯선 판타지(fantasy)의 세계는 두 명의 작가, 백기은과 이정윤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바탕으로 창조해낸 것이며 이 세계의 주인공들은 그들의 아바타(avatar)이다. ● 예술 작품은 그것을 창조한 예술가의 개인적 현실과 시대적 현실, 성(性)적, 인종적, 계층적 정체성이 드러나는 화신(花神)이자 예술가의 심리 상태, 철학적 태도, 미적 취향 등이 투영되는 분신(分身)이다. 많은 예술가들이 창조성과 개성에 대해 자문하고 그것을 허물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작가적 창조성을 파괴하고 작품을 통한 내적 세계의 발현을 거부하는 그 행위조차 특정 작가의 개성과 고유성이 되어 의미를 부여받을 만큼 작품과 작가의 결속은 절대적이다. 이런 이유로 예술적 창조 행위는 여성의 출산에, 작품은 그녀가 이 세상에 내어놓은 아이에 비유되곤 하는데 이는 여성이 태생적으로 가진 자신의 분신을 잉태하고 창조하며 양육하는 능력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정윤_On the edge_섬유, 공기주입모터_200×341×200cm_2011

실제로 여성 작가에게 작품은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오래 전부터 루시 리파드(Lucy R. Lippard), 조안 스나이더(Joan Snyder) 등을 비롯한 많은 이론가들은 여성 작가가 유독 자전적인 표현에 집중하여 자신의 모든 삶을 작품에 담아낸다고 이야기해왔다. 여성 작가의 작품에서 자전성(autobiography)이 두드러지는 이유가 단순히 여성들이 나르시시즘(narcissism)에 빠져 있거나 폐쇄성을 갖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여성이 자신의 모든 것을 담아내는 분신으로서 작품을 창조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스스로를 위안하는 유일한 통로가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향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남성적 가치가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사회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여성들은 현실에서 증식될 수 없었던 자신의 생각, 감정, 자아(self)를 자신의 아바타인 작품을 통해 표출한다. 그녀들은 자신의 내면세계를 담아내는 작품 속 상징물을 통해 잊고 싶었던 고통과 억눌러야 했던 욕망을 표현하고, 상징물을 증식하는 과정에서 현실을 극복한다. ● 현실에서 불가능한 이상과 꿈은 여성 스스로 현실을 초월하는 판타지의 세계를 창조함으로써 승화된다. 여성 작가들은 긍정적인 자신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 실제로서의 자아가 아닌 자기 환상을 통한 자아, 상상을 통해 만들어진 유토피아(utopia)를 제시하고 싶어 한다. 판타지의 세계에서는 모든 형식과 논리로부터 자유로운 예술적 표현이나 솔직한 자아의 표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이 만들어내는 환상과 상상이 현실로부터의 도피만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로즈메리 잭슨(Rosemery Jackson)이 말했듯 환상은 현실을 투사하는 하나의 반영이자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경외감을 동반한 저항의 의미를 갖는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환상을 통해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고 꿈을 끝까지 추구할 수 있다. 또한 환상은 낯익은 것을 낯선 것으로, 안전한 것을 불안한 것으로,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만든다. 그리고 그 반대 역시 가능하기에 현실은 오히려 환상에 의해 가시화될 수 있다.
이정윤_Sad Elephant drawing1,2,3_캔버스에 혼합재료_30×30cm×3_2009

이번 전시에서 여성적 판타지의 세계를 보여주는 백기은과 이정윤은 여러 층(layer)에서 아바타의 증식을 보여준다. 이들의 작품은 이차원적 드로잉(drawing)이 삼차원적 입체물로 증식된 것이다. 백기은과 이정윤은 반복적인 드로잉 과정을 통해 생각과 이미지를 진화시키고 그것을 우리가 존재하는 현실 공간에 꺼내놓는다. 이들의 작품은 언제나 드로잉과 함께 전시되는데 이것은 작가의 영감이 떠오르는 첫 순간의 인상과 느낌을 관람자에게 생생히 전달하기 위한 것이자 입체물의 근원을 잊지 않기 위함이다. 드로잉이 지닌 직접성은 작가의 살아있는 감정과 내면세계를 여과 없이 드러내는 데에 유용하기 때문이다. 또한 두 작가는 모두 삶과 내면을 담아내는 -존재를 알 수 없는 생명체나 코끼리와 같은-상징물을 자신의 분신으로서 제시한다. 이를 통해 백기은은 자신의 내면 세계에 깊이 침잠(沈潛)된 자아를 늘려나가고 이정윤은 현실 세계에서 외부적으로 노출되는 자아를 늘려나간다. ● 자아 탐색을 위해 백기은은 유기체적인 형상들을 통해 자신의 기억을 증식시킨다. 백기은에게 기억은 자신의 정체성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기억에는 작가 자신이 살아온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 범위를 명확히 경계 지을 수 없는 기억, 떠올릴 때마다 조금씩 바뀌는 기억은 역사 속에서 정의내리기 모호한 대상으로 존재해온 여성을 은유하기에 적절하다. 한편 이정윤은 코끼리를 의인화시켜 현재를 살아가는 아내이자 어머니로서의 자신을 투영한다. 작가의 분신인 코끼리는 처음에는 무리 속에 섞여 앞만 보고 나아간다. 이후 코끼리는 무리를 이탈하여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위험한 모험을 감행한다. 두 작가의 작품은 모두 자신의 신체 크기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제작되는데, 이는 작품이 작가에게서 나온 아바타임을 상기시키기 위함이다. 그리고 이들의 아바타는 자아 찾기의 종착지인 여성적 공간-판타지의 세계-을 이끌어낸다.
이정윤_Flying Elephant_섬유, 공기주입모터_100×80×120cm_2011

"누구 한 사람 똑같은 사람은 없지. 뭐라고 할까, 이른바 아이덴티티의 문제야. 아이덴티티란 무엇인가? 한 인간의 과거 체험에 대한 기억의 축적에 의해 빚어지는 사고 시스템의 독자성인 것이지. 좀 더 간단하게 마음이라고 불러도 좋아. 인간 각자에겐 똑같은 마음이란 하나도 없지. 그러나 인간은 자기 자신의 사고 시스템의 대부분을 파악하고 있지 않네. 나도 그렇고, 자네 역시 그렇지. 우리가 그런 것들에 관해서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또는 파악하고 있다고 추측하는 부분은 전체의 15분의 1에서 20분의 1 정도에 지나지 않아. 이것으로는 빙산의 일각이라고도 할 수 없어." (무라카미 하루키. 2012.『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2』. 김진욱(역). 서울: 문학사상사, pp. 80-81.) 백기은은 눈으로 감상하는 기억의 환상곡(幻想曲)을 창조한다. 그의 작품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즉흥적으로 그려진 드로잉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 몽상적이고 환상적인 성격을 지닌다는 점에서 환상곡과 그 특성을 같이 한다. 유기적이면서도 추상적인 형상들이 공간을 향해 끝없이 뻗어나가는 백기은의 환상곡은 우리 몸의 세포 혹은 공상과학 소설에 등장할 것 같은 야릇한 정체불명의 괴생물체를 연상시키는 동시에 하늘의 별과 은하수, 그 밖의 무수한 것을 상상하게 만든다. ● 백기은이 드로잉 작업을 시작한 것은 운명적 우연이었다. 작가는 어느 날 갑자기 손이 가는대로 드로잉을 시작했고 그것이 공간으로 확장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철사로 입체적인 드로잉을 만들었다. 그리고 작업 과정에서 어린 시절, 학창 시절, 그동안 만나온 사람들, 자신과 오랜 시간 함께 했던 반려 동물 등을 떠올리며 기억을 드로잉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작가는 기억이 우리 안에 언제나 살아있는 만큼 강한 생명력을 가진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고, 곧 무수한 생명을 품고 있는 바다를 생각해냈다. 그리고 스스로 바다-창조의 어머니-가 되어 무수한 생명체들을 탄생시키게 되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연체동물을 닮았던 기억들은 점차 복잡한 형상을 갖는 것으로 진화되었고 거미줄을 치듯이 공간을 향해 확산되었다. ● 드로잉이 진행되면서 나타나는 형상의 진화는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기억의 증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주체의 머리 속에 남은 특정한 기억은 무한 반복된다. 그리고 그 반복의 과정에서 왜곡되고 변형되고 확대 혹은 축소된다. 우리는 한 가지 기억을 매번 동일하게 되새김질하지 않는다. 기억하지 못했던 것을 새롭게 기억하기도 하고 기억했던 것을 잊어버리기도 한다. 때로는 주체가 원하는 대로 재구성되고 만들어지기도 하는 것이 기억이다. 이러한 기억을 표현하기 위해 작가는 명확하고 단일한 형태를 보여주지 않으며 기억과 공상의 접점에서 기묘한 조화를 이끌어낸다.
이정윤_On the edge drawing_종이에 혼합재료_20×25cm_2011

접점에서 이루어지는 기묘한 조화는 백기은이 선택한 재료와 작업 방식에서도 두드러진다. 작가는 상상을 초월하는 물리적 노동과 집중력을 바탕으로 코바늘뜨기를 하듯이 철사를 하나하나 엮어가면서 작업을 진행한다. 그의 주재료인 알루미늄 철사는 날카로워 공격적으로 느껴지지만 쉽게 구부러져 부드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그가 만든 입체물은 큰 덩어리 안에 작은 덩어리가 들어가 있기도 하고 안의 구조물이 밖으로 돌출되기도 한다. 철사들이 모여 덩어리를 만들지만 그 내부가 훤히 보이기에 완벽한 양감을 갖지도, 명확한 경계를 갖지도 못한다. 조명 효과에 의해 나타나는 섬세한 그림자의 중첩은 그 경계를 더욱 약화시키는 데에 일조한다. 기억은 마치 그림자가 그렇듯 잡고 싶어도 잡을 수 없는 유령 같은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Murakami Haruki)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 랜드 Hard-Boiled Wonderland and the End of the World』에서 주인공의 그림자 상실이 기억의 상실로 이어지는 것처럼, 백기은의 작업에서 그림자는 기억의 또 다른 모습이다. 한편 백기은에게 그림자는 여성의 상징이기도 하다. 역사 속에서 여성은 언제나 그림자로 존재해왔다. 빛을 마주한 존재의 뒷면에 드리워지는 그늘인 그림자는 그림자의 주인으로부터 절대 독립할 수 없으며 주인공이 될 수도 없다. 그것의 형태는 불분명하며 빛의 조건에 따라 계속 변화한다. 그것은 실존하는 존재가 아닌 허상이다. 그리고 열거된 이 모든 속성은 역사 속에서 여성에게 부여되어온 그것과 동일하다. ● 백기은은 타인에게 자신을 온전히 설명하고 드러내는 것, 이해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작가는 자신에 대해 설명하기를 거부하는 자발적 침묵 상태를 유지한다. 여기에는 여성이 그동안 타의에 의해 침묵할 것을 강요받아왔다는 것에 착안하여 침묵의 역사를 역이용하려는 의도도 담겨 있다. 작가가 작품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전달해줄 것이라 생각하는 우리에게 작가의 침묵은 당혹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강요받은 것이 아닌 자발적인 침묵은 권리의 행사이며 자기의 세계를 확고히 지키기 위한 작가적 선택이다. 백기은은 작품이 작가의 분신이라는 사실이 관람자가 작품을 통해 작가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오히려 작가의 분신이기에 작품은 비밀스러운 구석을 가져야 한다는 위악(僞惡)적인 태도를 고수한다. 모든 것은 -그것이 시각적이든, 청각적이든, 언어적이든 간에-표현되는 순간 의미가 한정되고 축소되어 버린다. 발화(發話)되지 못하는 침묵의 언어는 그 실체를 증명할 수 없으므로 무가치한 것이라 여겨지기 쉽지만 오히려 침묵은 존재를 구성하는 풍요로움과 가능성으로 가득하다. 침묵은 인간의 기억, 기억의 축적과 증식을 통해 만들어지는 인간 내면의 무한한 깊이를 담아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것은 세계의 부정이나 세계로부터의 도피가 아닌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고 확인하는 것이며 세상과의 새로운 관계맺음을 위한 작가의 조심스러운 시도로 의미 지어져야 할 것이다.
이정윤_Trunk in trunk No.1_아크릴 박스, 봉제인형_22×17×17cm_2012

"나는 웃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흥겨움이라 일컫지 않는다. 흥겨움은 어떤 매력, 기분 좋은 분위기인데 모든 종류의 주제, 심지어 아주 진지한 주제에도 부여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La Fontaine(Jean de). OEuvres complètes I, Fables, contes et Nouvelles. coll.『Bibliothèque de la Pléiade』, Gallimard, 1991, p. 7.) 백기은이 몽환적인 환상의 세계를 창조한다면 이정윤은 유쾌하고 통쾌한 상상의 세계를 창조한다. 이정윤은 구두를 신은 코끼리를 주인공으로 풍자(satire)적인 그림 우화(fable)를 만든다. 그의 작품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코끼리들은 아내이자 어머니로서, 딸이자 며느리로서 자신의 역할에 순응하며 살고 있는 작가 개인의 아바타이자 이 시대 여성들의 초상이다. 코끼리가 신고 있는 구두는 이정윤이 따라야 하는 사회적 관례와 규범을 상징한다. 구두는 무한 증식 되어 거대한 도시를 형성하고 코끼리는 구두에 파묻혀 있다. 구두 형태의 빌딩에 앉아 먼 허공을 바라보는 코끼리는 사회의 지배적인 규범에 동조하고 그것을 따르는 데에 지쳐버린 현대인의 모습 그 자체이다. ● 일반적으로 구두란 중류의식(中流意識)을 가진 회사원, 즉 화이트-칼라(white-collar)의 상징이며 지식을 사용하는 직업의 상징이자 그들이 갖는 권위 의식의 표상이다. 또한 구두는 그것을 신은 사람의 자존심을 대변하기도 하는데, 코끼리가 신고 있는 하이힐(high-heeled shoes)은 여성이자 작가로서 이정윤이 갖는 자존감(自尊感)을 은유하는 동시에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지키기 위해 희생을 감수하고 고군분투하는 작가의 숨겨진 노력을 암시한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구두를 신은 코끼리는 움직임에 제약을 받는 불편하고 불안한 모습이다. 이는 작가를 포함한 이 시대의 여성들이 사회가 요구하는 길을 가고 사회가 좋은 것이라 말하는 것들을 추구하며 자신의 외면에서부터 내면까지 사회적 틀에 끼워 맞추는 현실을 풍자한다. 작가는 자신의 분신을 이용해 스스로를 풍자함으로써 현대인들이 가진 지적 우둔성과 사회적 허영을 노출시키고 작가 자신을 포함한 여성들의 삶이 얼마나 고단하고 위태로운지 보여준다.
백기은_드로잉-이상한 나라의 동물들-스냐크 사냥_종이에 펜_14.5×21cm×12_2004~8

이처럼 구체적인 상징물인 코끼리에 자신의 정체성을 이입하는 이정윤의 작품은 간결하고 명쾌하며 친근하다. 이정윤은 친절하게 길을 안내하고 자신에 대해 모든 것을 보여주는 작가이다. 이는 그가 우화의 형식을 고수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우화는 의인화된 동물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인간의 어리석음과 약점을 풍자하고 인간사의 모순들을 부각시킴으로써 삶의 지혜를 전달하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이다. 우화의 최종 목적이 교훈 전달이기에 그것의 향유 대상이 누구이든 간에 주제가 분명하고 내용이 공감되어야 하며 쉽게 의미가 포착되어야 한다. 또한 풍자가 비판하고 웃음거리로 만드는 대상은 풍자가 나온 당대 사회의 현실, 인물, 권력, 제도, 이데올로기(ideology), 편견, 관행이기 때문에 이정윤이 만드는 우화의 세계는 현실의 아바타일 수밖에 없다. 현실을 살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해 자문하고, 자신을 둘러싼 사회를 풍자하여 돌파구를 제시하고자 하는 작가에게 코끼리를 이용한 알레고리(allegory)는 객관적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이 된다. ● 앞서 언급했듯이 이정윤의 모든 작업 역시 드로잉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이정윤의 작업에서는 우연성이나 즉흥성을 찾을 수 없다. 작가는 계획적으로 명확한 줄거리와 인과 관계를 갖는 우화-자신의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그리고 이야기의 결말에서 코끼리들은 하늘을 날아오르거나 해안으로 휴가를 떠나 자아 찾기를 시도하고 사회적 규율을 따르는 삶을 해체한다. 실제 현실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할지라도 작품을 통해 무리를 이탈하는 코끼리를 상상함으로써 이정윤은 욕구 불만과 억압을 분출해내고 내적 갈등을 해소한다. 그리고 그 치유의 과정을 바라보는 관람자는 작가 개인의 삶을 현대인의 삶으로 확장시키고, 관람자 자신을 투영하는 무수한 코끼리들을 상상하며 증식시킨다. 우리는 누구나 상상, 공상을 통해 현실의 불행을 완화시키고 치유하기 때문이다.
백기은_작은촉수가생긴달동물_알루미늄 철사_45×50×42cm_2010

작업 방법에 있어서도 이정윤은 계획적이다. 그는 드로잉을 바탕으로 공기조형물을 제작하는데, 이 때 정확한 수치를 계산하는 도면 작업은 필수적이다. 작가는 공기조형물을 제작하기 이전에 이미 드로잉의 분신인 코끼리가 어떻게 입체적으로 형상화되는지 완벽히 예측한다. 계획된 증식인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처럼 완벽한 계획을 통해 만들어지는 코끼리 조형물의 형태는 유동적이다. 만지면 움푹 들어가거나 찌그러지며, 바람이 빠져 작아지기도 하고 다시 팽팽해지기도 한다. 그것은 공기조형물을 만드는 PVC(Poly Vinyl Chloride)가 가진 재료적 특성인 부드러움 때문이다. 고정된 형태를 갖지 않는 부드러운 입체물은 우리의 촉각을 예민하게 자극한다. 루스 이리가라이(Luce Irigaray)에 의하면 여성은 시각적인 것을 중시하는 남성적-모더니즘적- 태도와 달리 촉각적인 태도를 갖는다. 촉각은 시각 중심주의에서는 보이지 않는 여성적인 것 속에 숨어있는 기원이다. 또한 촉각은 독립적으로 분리되어 존재하는 시각, 청각, 후각, 미각과는 다르게 피부와 장기 등 온 몸에 퍼져 있기에 다른 감각들과 상호작용하여 지각되는 종합적이고 초감각적인 특성을 갖는다. 이 매개적 기능으로 인해 촉각은 모든 이분법적인 경계를 허물어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감각이다. 따라서 PVC는 여성적 세계를 증식시키기 위한 훌륭한 매체가 된다. ● 이처럼 이정윤은 주제에서나 재료에서나 관계 지향적인 작업을 진행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존하는 사회 속 자신의 모습을 탐구하는 작가가 자신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공동체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백기은_Lignt Breathing_알루미늄 철사_100×120×80cm_2010

인간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코끼리의 의인화가 더욱 강조되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제 코끼리는 마치 사람처럼 꼿꼿하게 서 있으며 하이힐을 두 발에만 신고 있다. 몸의 형상도 더욱 인간을 닮아 있다. 그런데 코끼리가 인간 세상에 더 가까워질수록 이정윤의 작업은 냉소적으로 변하며 탈출에 실패하거나 낙오되어 울고 있는 코끼리의 수도 늘어난다. 이는 인간이 현실의 규범과 사회적 틀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달은 작가의 허망함과 슬픔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제 코끼리는 구김이 잘 가지 않는 옥스퍼드(oxford) 원단으로 제작된다. 크기도 더 작아져 봉제 인형을 연상시키는 코끼리들은 누구가의 소유물처럼 보인다. 하늘을 날던 코끼리의 얼굴에 보이던 미소도 보이지 않는다. 코끼리는 이정윤의 아바타이기에 이번에도 작가의 심경 변화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그러나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이정윤은 우화가 가진 인간애(人間愛)와 재기발랄한 반전의 힘을 잊지 않는다. 이번에는 슬픔의 상징처럼 보이는 눈물이 돌파구로 작용한다. 눈물은 감정을 분출하는 생물학적인 작용이자 심리적인 작용의 결과물이다. 눈물을 흘리는 분출의 과정에서 고통과 슬픔으로 가득 찼던 가슴은 깨끗하게 비워진다. 모든 것을 다 비워낸 코끼리는 다시 한 번 마음을 가다듬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 이정윤의 마지막 드로잉에는 여행용 가방에 몸을 숨기고 다시 한 번 도시 탈출의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코끼리가 등장한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우화의 다음 장면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백기은_알락무늬다리를 가진 동물-스스로의 호흡을 모아 크게 숨쉬기._ 알루미늄 철사_106×78×40cm_2010

백기은과 이정윤은 인간이자 여성으로서의 생래적(生來的) 한계와 사회적 금기들이 지배하는 관습적 현실을 벗어나 판타지의 세계를 구축한다. 그들이 창조한 판타지의 세계가 정말인지 아닌지,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 판단하느라 머뭇거리고 망설일 필요는 없다. 그저 한 발 내딛기만 하면 된다. 조금만 용기를 낸다면 우리는 다양한 목소리와 시각이 어우러지는 화성(harmony)적인 세계-우리 자신만의 판타지의 세계-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 이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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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으로부터 From a Seed






윤정희展 / YOONJUNGHEE / 尹貞姬 / sculpture 2012_0706 ▶ 2012_0822 / 주말,공휴일 휴관




윤정희_From a Seed: Small Green 3_구리 와이어_18×23×13cm_2012



초대일시 / 2012_0711_수요일_06:00pm

송은 아트큐브는 젊고 유능한 작가들의 전시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재)송은문화재단에서 설립한 비영리 전시공간입니다.

관람시간 / 09:00am~06:30pm / 주말,공휴일 휴관

송은 아트큐브 SongEun ArtCube 서울 강남구 대치동 947-7번지 삼탄빌딩 1층 Tel. +82.2.3448.0100 www.songeunartspace.org




씨앗으로부터 - 견고하면서도 유연한 생명의 그물망 ● 윤정희의 작품은 차가운 금속 선 으로 짜여 진 구조물이지만 부글거리는 듯한 뜨뜻한 생명의 기운이 있다. 그것들은 건강한 생명이나 이상적인 예술처럼 견고하면서도 유연하다. 그것들은 현미경 아래의 미생물체 또는 눈도 색도 없는 심해의 생물체처럼 보이기도 하며, 효모에 의해 잘 부풀려진 빵이나 잘 말려있는 솜사탕처럼 탐스럽기도 하고, 꼬마의 상상 속 유령이나 할머니가 처마 밑에 걸어둔 저장 야채 같기도 하다. 미세한 주름들로 가득한 그것들은 생명이 펼쳐지는 생성의 이미지와 다시 접혀지는 소멸의 이미지가 동시에 있다. 생성이든 소멸이든 변화 중인 중간 단계 같은 모습이다. 생성이나 소멸은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주기가 아니라, 변형이나 변태의 과정 중에 있다. 그 점에서 윤정희의 작품은 유기체적이다. '씨앗으로부터'라는 전시부제는 생명을 출발시키는 원초적 기질과 에너지를 응집시키려는 의도를 예시한다. 안이 훤히 들어다 보이는, 안팎이 구별되지 않은 단일 표면들의 변주는 유기체 특유의 주름들로 가득하다. ● 유기체의 주름이 새겨진 씨앗은 들뢰즈가「주름」에서 말하듯이, 러시아 인형처럼 무한히 하나가 다른 하나에 감싸여 있다. 최초의 개체는 때가 되면 자신의 차례에 자신의 고유한 부분들을 펼치도록 호출된다. 그리고 하나의 유기체가 죽었을 때 이 유기체는 없어진 것이 아니라, 말아 넣어지고 되 접히게 된다. 씨앗으로서의 작품은 유전자에 의해 입력된 정보에 따라 순차적으로 펼쳐질 여러 층위들을 공시적으로 보여준다. 공중에 매달려 있고 선반 위에 놓여 있고, 벽에 핀으로 고정되기도 하는 등, 작품마다 배열 방식은 다르지만 코바늘 뜨기처럼 짜여지는 구조라서 대칭형을 기본으로 변주 되는 식물 형태가 감지된다. 층층이 겹쳐지는 구조가 형태와 부피를 만든다. 학창 시절 청계천을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발견한 얇은 동선은 전기를 통하게 하는 부품으로, 빳빳해서 형태가 잡히면서도 부드럽게 엮일 수 있다. 이 재료를 작가는 2009년 첫 개인전 때부터 계속 사용해왔다.
윤정희_From a Seed: Green 3_구리 와이어_80×55×55cm_2012

섬유가 얽히는 방식이 비슷하여 코바늘뜨기 같은 느낌이지만, 바늘 없이 손으로만 한다는 차이가 있다. 결합체들이 만들어내는 형태들은 기하학과 생물학을 교차시킨다. 첫 개인전에는 수편기를 사용하여 평면으로 판을 짜고 이를 다시 입체로 설치하였는데, 이후부터는 안쪽으로 동글동글하게 말리는 식으로 짜나갔다. 수직 수평의 좌표계를 벗어난 그것은 만물이 비롯될 내재성의 판이 된다. 인체의 형상이 있는 이전 작품에 비해 이번 전시작품은 보다 추상적이다. 씨앗이라는 은유를 통해 보다 원초적인 단계로 거슬러 올라간다. 뭉글뭉글 덩어리진 형태는 어떤 감정 상태와 관련은 되지만 특정한 감정을 재현하지는 않는다. 형태 또한 어느 정도는 생각하고 시작하지만, 어디쯤에서 끝난다는 것은 확정되지 않는다. 원래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가기도 한다. 예정된 궤도를 빗나가는 여정은 생물의 발생으로 친다면 돌연변이나 괴물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변이 역시 유전자가 재조합 되어 생겨난 새로운 유전적 구조처럼 형성될 뿐이다. ●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병리이든, 생명의 과정이라는 기본 메커니즘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손으로 금속선을 짜는 과정은 씨앗이 발아하여 성체가 되는 것처럼 점점 커지는 단계를 공유한다. 동질의 표면이 중첩되며 형태를 만들어가는 방식은 배의 발생과 유사하다. '한 올 한 올 고리를 엮어가며 형태를 생성해 나간다'는 방식을 통해, 존재보다는 되기에 방점을 찍는 방식은 여전하다. 인체가 등장하는 2009년 개인전 작품에는 머리를 몸 깊숙이 박고 움츠려 있거나 누더기처럼 기워진 인체 껍데기 형태를 통해 보다 직설적인 감정 상태를 전달했다면, 이번 전시작품들은 이전보다 모호한 형태지만 거기에 내재된 감성은 더 포괄적이다. 그러나 다섯 개의 주머니가 안쪽으로 겹쳐져 있는 이전 작품「되어가다」(2009)나 인체 형상 안에 또 다른 주머니들이 마치 내장처럼 보이는 작품「내 안으로 들어가기」(2007)에는 지금의 방식이 예견되어 있다. 윤정희에게 존재가 아닌 되기는, 함입, 겹침, 접힘, 되접힘 같은 과정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윤정희_From a Seed: Green 1_구리 와이어_14×82×18cm_2012

홀씨주머니 같은 것들이 선으로 이어져 군집을 이루고 매달린 작품「becoming」(2010)에는 요즘 몰두하는 작품과 동질이상의 관계를 가질 뿐이다. 이번 전시에서 여러 겹으로 거품처럼 부풀어 오르는듯한 형상들은 원형질적인 생명력을 가진다. 부피가 큰 것은 매달리고 작은 것들은 선반에 죽 배열된다. 그것들은 미술품이 놓여 질 고정된 자리를 벗어나 벽과 천정, 바닥 전체를 총체적인 생태계로 삼아 자리 잡는다. 놓여 진 작품들은 기저 면에서 발생하거나 사라지는 느낌을 주며, 매달린 작품은 거미나 누에가 만들어놓은 섬유질 덩어리처럼 보인다. 도처에 편재하는 기관 없는 신체들은 또 다른 무엇과 접합하여 변신하기를 욕망한다. 성글성글해 보이지만 묵직하게 중력을 반영하는 형태들은 농축된 작업의 밀도를 가늠하게 한다. 발생 중인 동식물 뿐 아니라, 해체 중인 기관, 구름 같은 모습은 중심에 레이어가 집중되고 바깥으로 갈수록 밀도가 흐려지며 융통성 있는 외곽선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온다. ● 연속되는 하나의 선으로 짜여지는 윤정희의 작품은 선이 얽히는 방식을 파악할 수 있는 통일된 구조를 이룬다. 느슨하게 뭉쳐있는 섬유 같지만 하나의 선으로 짜여진, 일련의 순서와 방법이 관철되어 있다. 작품 형태의 원형으로 삼는 유기체는 전형적인 구조이다. 이 구조는 자율적으로 통제되는 체계적 전체를 이루지만, 변형의 가능성 또한 내포한다. 이 유기체는 작품이라는 유기체와 중첩된다. 반투명할 만큼 성글게 짜여 지기 시작하지만, 연장되는 운동을 통해 서로 다른 밀도로 성장해 간다. 그리하여 금속성 질료는 생명에 버금가는 질을 획득한다. 시간의 흐름을 타고 반복되는 노동으로 이루어지는 윤정희의 작품은 항상성의 유지와 변이라는 생명의 기본 과정과 중첩된다. 또한 작품들은 생명처럼 자유를 향해 도약하려 한다. 화이트헤드는『과정과 실재』에서 생명이란 단순한 물리적 존속과는 달리, 자유를 얻으려는 노력이라고 정의 한다.
윤정희_From a Seed: Green Blossom_구리 와이어_2.5×70×70cm, 2012
윤정희_From a Seed: Small Pink_구리 와이어_15×20×20cm×9_2012

그에 의하면 생명이란 자극에 대한 반응의 독창성을 말한다. 복잡한 구조의 결절점 내지 교차점이 가득한 유기체(작품)은 결코 완결되지 않고 자신을 넘어서 창조적으로 전진한다. 그것은 자연처럼 시간과 공간을 연장하는 도식을 전제로 한다. 공간의 연장성은 연장의 공간화이며, 시간의 연장성은 연장의 시간화이다. 시공간의 얽힘 속에 유기체의 표면과 이면은 통합된다. 화이트헤드는 자신의 '유기체 철학'을 통해 실재를 역동적인 과정의 기술로 대체한다. 이러한 관점에 의하면, 현실적 존재는 하나의 과정으로 나타난다. 거기에는 위상으로부터 위상으로의 성장이 있으며, 통합과 재통합의 과정이 있다. 최종적으로 완결된 느낌이 만족이다. 세계를 실재가 아닌 과정으로 보는 관점은 시간과 공간의 연장성(extensiveness)을 내포한다. 동시적 세계는 연장적 관계의 연속체로 파악된다. 연장적 연속체란 전체와 부분의 관계, 공통부분을 갖는 중복 관계, 접촉 관계, 그리고 이러한 원초적 관계에서 파생된 존재들의 복합체를 말한다. ● 이 연장적 연속체는 현실 세계로부터 도출된 사실을 표현하기 때문에 실재적(real)이다. 유기체 철학에서 연장성은 세계 내의 유기체들의 형태적 구조가 순응하는 보편적 형식이다. 연속된 체계가 집적되어서 생기는 형태이면서 동시에 유동적인 구조를 가지는 윤정희의 작품은, 본질과 현상, 실재와 과정이 분리되지 않는 하나로 만든다. 이러한 작품들은 철학사의 대표적인 대조 범주인 발생과 구조를 모순 없이 연결시킨다. 장 삐아제는 구조와 발생이 필연적으로 상호의존적이라고 본다. 발생이란 하나의 구조에서 다른 구조로의 단순한 전이이지만, 이러한 전이는 항상 약한 구조를 강한 구조로 유도하는데 이것이 바로 형성적 전이이다. 구조는 선험적으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변형들의 체계이다. 윤정희의 작품에서 반투명한 구조들은 내부의 공동(空洞)을 보여주며, 공간들 사이의 밀도 차이가 잠재적인 운동감을 변이 가능성을 예시한다.
윤정희_From a Seed: Bloomy Pink_구리 와이어_33×50×50cm_2011

규모와 밀도의 차이는 있지만 절대적 시작을 찾기는 힘들다. 변형의 사슬은 시간과 공간을 가득 채우며 뻗어 나갈 뿐이다. 변화 또한 알고리즘 같은 규칙에 따르며, 불연속적인 도약은 일어나지 않는다. 올이 풀려남으로써 생기는 연쇄 고리의 단절은 와해라는 재앙을 가져온다. 창조적 무질서를 향해 엔트로피를 늘려나가기는 하지만, 불모의 해체를 지향하지는 않는다. 둥글둥글 응집력 있는 형태들은 닫혀있으면서도 열려있다. 그것들은 빈틈없는 존재의 그물망을 이루면서도 포용력과 가변성이 있다. 변형은 차이를 통한 반복 속에서 이루어진다. 중요한 것은 무의식이나 몸 같이 완전히 코드화 할 수 없는 것들을 소통시키기 위한 새로운 변형 규칙의 고안이다. 이 새로운 변형규칙의 고안에서 주름과 구름은 주요한 모델이 된다. 주름과 구름의 모델을 통해 문명세계를 강압적으로 규정하는 격자는 자유로운 그물망으로 변모한다. ■ 이선영
윤정희_From a Seed: Small Pink_구리 와이어_15×20×20cm_2012



Yoon, Jung Hee: From a Seed - Solid and flexible mesh of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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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최중원展 / CHOIJOONGWON / 崔中元 / photography 2012_0714 ▶ 2012_0902



최중원_동대문아파트_잉크젯 프린트_200×450cm_2010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81204c | 최중원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2_0714_토요일_05:00pm_한미사진미술관 20층

SPECTRUM7展

후원 / 가현문화재단_한미 사이언스

관람료 / 성인 6,000원 / 학생 5,000원 송파구민, 사진관련학과, 단체 10인이상 1000원 할인 미취학 아동, 65세 이상, 장애우, 국가유공자 무료관람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주말_11:00am~06:30pm

한미사진미술관 The Museum of Photography, Seoul 서울 송파구 방이동 45번지 한미타워 19, 20층 Tel. +82.2.418.1315 www.photomuseum.or.kr



아파트는 현대 한국사회를 대표하는 주거환경이자 다양한 형태와 크기, 입지조건에 의해 부의 척도를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전 후 복구사업과 주거환경개선이라는 거국적 명분으로 시작된 아파트 개발, 문득 ‘'그 초기의 모델들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까'에 대한 호기심으로부터 작업은 시작되었다. 종암, 마포 등, 초기에 지어진 많은 아파트들은 이미 재개발이라는 시대적 숙명을 이기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나머지들 또한 그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최중원_한강시범아파트6동_잉크젯 프린트_100×214cm_2012
최중원_중산시범아파트_잉크젯 프린트_100×200cm_2012
최중원_스카이아파트_잉크젯 프린트_80×240cm_2008

현재 집중하고 있는 것은 초기모델 중에서도 단지를 이루고 있는 형태의 아파트가 아닌 독립형, 소규모형태의 아파트들이다. 이 아파트들은 초기의 구조와 달리 현실에 적응하는 형태로 진화 하여 인근의 시장이나 소규모 상가 등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형태를 지니고 있고, 주거자의 사정이나 노후보수에 의해 구조가 변경되고 창문이 바뀌고 문짝이 바뀌고 문 옆 복도공간에는 수많은 살림살이와 운동기구, 마늘과 같은 그들의 먹거리들이 전시되어있다.
최중원_충정아파트_잉크젯 프린트_240×202cm_2012
최중원_삼풍맨션아파트_잉크젯 프린트_240×352cm_2012
최중원_삼각맨션아파트_잉크젯 프린트_80×166cm_2012

어떤 놈은 한쪽이 뭉텅 뜯겨나가 도로가 되었고, 어떤 놈은 세모난 땅 위에, 또 어떤 놈은 마름모꼴의 땅 위에 지어졌다. 하물며 물 위에 지어진 놈도 있으니 그 다양함은 이루 나열하기 힘들 정도이다. 아파트 작업은 근대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한국주거역사에 대한 기록이자 그 안에서 삶을 공유했던 이들의 이야기들, 표면에 드러나 있지 않은 정보들에 대한 기록이 될 것이다. ■ 최중원

■ 한미사진미술관 홈페이지 : www.photomuseum.or.kr 블 로 그 : blog.naver.com/photo_museum 페이스북 : facebook.com/hanmiphotomuseum 트 위 터 : @h_photo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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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상자






2012_0714 ▶ 2012_0803  







초대일시 / 2012_0714_토요일_06:00pm

참여작가 김영재_김은영_노미경_레이박_오상준 오영_임정은_정채희_정환선_조혜경

주최 / (재)중구문화재단 충무아트홀 주관 / 프로젝트비컴 협력 / 쁘띠조형연구소_㈜넷포인트 협찬 / MPK그룹_㈜무라사키스포츠_㈜위드아티스트커피 아름다운성형외과_㈜ICbanQ_비비드강

관람시간 / 10:00am~06:00pm

충무갤러리 CHUNGMU GALLERY 서울 중구 퇴계로 387(흥인동 131번지) 충무아트홀 1층 Tel. +82.2.2230.6600 www.cmah.or.kr




김영재이 작품을 통해 관람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이 프로젝트는 공간의 (geometry)과 관객의 시각 (sight) 사이에 이루어지는 단순한 기학학적 유희이다. 나아가 외부물성과 인간의 두뇌가 관계지면서 발생하는 사고(thinking) 이전의 단계만을 관객이 경험하기를 원한다. Don't think - don't belive your eye sight.- just see
김영재_Geo-softhard ice-cream_나무에 채색, 거울, 바닥에 테이프, 피아노 와이어, 합성 끈, 천_ 가변설치_2010

김은영현재 공간과 관련된 평면, 입체 작업 및 애니메이션 방법을 이용한 설치작업을 하는데, 작업에 대한 영감은 무엇으로부터 얻는가? 평소 애니메이션 보는 것을 좋아하여 관심이 많은데 영상에 접근할 때 애니메이션 기법을 쓰는 것이 실사 촬영보다 한번 돌아가는 느낌이라 거부감이 없었습니다.
김은영_안과 밖 인식의 상자_원기둥 지름 140cm(상자 13개), 20×20×20cm_2012

노미경현재 의상디자인 작업에서의 영감을 무엇으로부터 얻는가? 나만의 작은 범위에서 벗어나 창의적인 아름다움과 새로움을 목표로 하는 모든 활동들과 이를 실행하는 작가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미술 전시, 오페라, 뮤지컬 등의 공연, 영화, 책, 인터넷 등) 작업의 영감은 시작됩니다.
노미경_감싸주세요(abbracciarmi)_플라스틱, 폴리에스테르, 자석, 와이어_100×50cm_ 가변설치_2012

레이박이 작품을 통해 관람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제 홀로그램 작품은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과 공존 되어 있습니다. 보이는 홀로그램을 만져보면서 보이지 않는 것과 공존이 우리 삶에 깔려있음을 느껴 주시길 바랍니다.
레이박_영감_180˚홀로그램_220×180cm_2012

오상준현재 골프코스디자인과 사진작업을 하시는데 무엇으로부터 영감을 받으시나요? 자연입니다. 자연에는 골프코스설계뿐 아니라 사진작업을 가능케 하는 영감을 주는 다양한 코드가 되어 있습니다. 평생 탐구해야 할 대상이라 생각합니다.
오상준_움직이는 상자_스타킹, 나무, LED조명_100×100×100cm_2012

오영이 작품을 통해 관람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사회화된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고, 가져야만 하는 심리적 자기보호기제를 집으로 표현하였다. 그림에 보이는 집들은 각자가 지은 심리적인 집이다. 그 심리적인 집의 역할이 실제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집과 다를 바 없기에 집의 형태를 빌려왔다. 실재의 집은 자연과 외부 충격에서 물리적으로 우리를 보호하고 정신적 휴식과 안정을 주는 역할을 한다. 심리적인 집은 실재로 살고 있는 집을 나서서도 언제나 나를 잡아주는 기제로써 내가 이동하는 대로 당연히 같이 움직인다. 그림 속의 집들은 각자의 심리적 완충의 역할을 하는 움직이는 상자들이라고 볼 수 있다.
오영_안락한 풍경_캔버스에 유채_116.8×91cm_2008

임정은작품의 세계관은? 그림자는 '검정'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형형색색의 그림자를 통해 환영적인 공간과 입방체를 발견하는 일종의 그림자놀이로, 참여를 유도하는 작업이다. 관람객의 자발적인 행동은 시각적 놀이를 넘어서 그림을 보고, 느끼며, 연상 과정에서 다른 공간으로 들어가는 시도가 될 것이다.
임정은_separation of cube_유리에 혼합매체_21×21×0.5cm_가변설치_2011

정채희이 작품을 통해 관람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이번 발표 작품은 상자 속에 담긴 기억 속 풍경이다. 그 기억의 순간들은 옻칠로 각인되어 작은 상자에 담아 언제든 나와 함께 이동할 준비가 되어있다. 물론 그 안에 담긴 풍경은 세상 밖 형상에 빗대어 그려진 내 내면의 이야기들이다. 당신의 작은 상자 속에는 어떤 풍경을 담고 싶은가?
정채희_념(念)_혼합재료_58×58cm_2002

정환선작품의 세계관은? 동양화와 서양화가 혼재하는 작품을 통해 오늘날 우리 사회의 서구화된 모습을 은유적으로 나타낸다. 그 혼재는 때로 사회현실을 비판하기도 하고, 두 세계의 조화로운 모습을 꿈꾸기도 한다. 동양인으로써 서구적인 삶을 살고 있는 이 모순된 삶을 내 자신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한 작가 본인의 작은 이야기들이다.
정환선_나를 찾아서_석판화_102×75cm_2002

조혜경작업에 대한 영감은 무엇으로부터 얻는가? 자연으로부터의 영감이다. 보이지 않는 숨겨진 자연의 리듬을 찾아내어 평면, 설치, 미디어를 이용한 작품을 만들고 있다. ■ * 작가 인터뷰 내용 발췌
조혜경_Responsive Rhythm_스틸, 반사유리, 양초_125×27.8×23.7cm, 125×13.4×15.7cm_2010



교육프로그램 / 쁘띠조형연구소와 함께 하는 『움직이는 상자 놀이』 - 일시 : 2012년 7월 14일(토) - 8월 3일(금) - 장소 : 충무갤러리 내 교육공간             전시 기간 중 매일 90분씩 총 4회(10:50, 12:40, 14:30, 16:20) - 대상 : 42개월~초등학생 - 인원 : 회당 선착순 20명 - 참여신청 : 온라인 티켓예매 및 현장구매 - 예매문의 : 충무아트홀 02-2230-6601 www.cmah.or.kr                   넷포인트 1566-1410 www.netpoint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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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ital Cistern_디지털수조






손여울展 / SONYEOUL / 孫여울 / installation.video   2012_0713 ▶ 2012_0725




손여울_Organism in Cistern_영상, 프로젝터_210×470cm, 가변설치_2012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스페이스 함 space HaaM 서울 서초구 서초동 1537-2번지 렉서스빌딩 3층 Tel. +82.2.3475.9126 www.lexusprime.com




미디어 유기체들의 『디지털 수조』로 초대 ● "진화의 핵심은 살아있음의 욕망일 것이다. 우리가 사는 공간과 시간, 사물은 수치화, 기계화 되어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도 진화하고 있다. 우리와 상호작용하면서 살아있음을 욕망한다. 그리고 진화하는 그것의 결과는 무생물, 물질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살아있음, 살아있음을 욕망하는 것이다. 또한 살아 있음이라는 에너지는 보는 이, 체험하는 이로부터 느끼게 한다. '나는 살아있다. 너도 살아있는 것이다.'라고" (손여울) ● 한때 미술계 안에서 지나칠 정도로 자주 접할 수 있었던 용어 '미디어아트'는 이제 다소 사용이 줄어 미술 관련 잡지나 웹사이트를 뒤져보아도 잘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사용이 줄었다 해서 미디어아트에 위기가 찾아왔다든가 혹은 사라졌다든가 하는 것은 아니다. 분위기는 오히려 미디어아트라는 용어가 어느 정도 제 위치를 찾아 더 이상 이슈가 되지 않기에 그 사용이 적어진 분위기다. 하지만 이렇듯 어느 정도 예술계에서 미디어아트란 용어의 사용이 안정을 찾았다 할지언정, 정작 미디어아트가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얇게는 첨단테크놀로지를 활용하는 예술을 지칭하는 미디어아트는 신체의 확장이란 개념의 틀 안에서 말해지기도 하고, 또 매체를 기존의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거나 활용하는 등 미디어 자체에 조금 더 집중하여 사람의 인식의 지평을 변화시키는 예술적 활동들을 지칭하기도 한다. 이번에 개인전을 여는 손여울 자신도 밝히고 있듯이 미디어아티스트이다. 그런 그녀에게 미디어아트는 또 미디어는 무엇을 뜻할까? 우선 작가에게 있어 미디어는 단순히 도구로써만 사용되고 있지 않다는 점을 말해두고 싶다. 또한 작가에게 있어 미디어아트를 단순히 과학기술을 활용하는 예술이 아닐 것이라는 점도 미리 언급해두겠다. 그럼 이제 전시를 살펴보며 손여울이 말하는 미디어아트란 무엇인지, 그리고 미디어는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하겠다. ● 다소 어두운 전시장에 들어서면 전시장 벽이 아닌 공중에 떠있는 매우 인상적인 3D영상 다섯 점, 「Organism in Cistern」을 만날 수 있다. 이 영상에는 무언지 알 수 없는 생물들이 자라고 죽고를 반복하는데, 각 생물들은 공중에 설치된 관(hose)에서 배출되어 나오기 시작해서 각자 다른 속도로 성장하고 소멸되고 또 성장하고 소멸되는 과정을 반복한다. 각 영상 안에 있는 생물들의 성장속도가 각기 다르다는 점에 주목해보자. 이렇게 서로 그 속도가 다른 이유는 작가가 만든 「Plankton in Cistern」이란 로봇 때문이다. 전자파를 수집하여 수치화시키고 그 정보를 컴퓨터로 보내는 기능이 있는 이 로봇은 장애물을 발견하면 방향을 바꾸는 기능 또한 가지고 있어 전시장 안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하고 전송한다. 주변 상황에 맞춰 자유롭게 돌아다니기 때문에 수집한 자료는 매 순간 다르고 이 때문에 각 영상에 보이는 생물들은 각기 다른 성장속도를 갖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필자는 편하게 생물이라고 표현했지만 작가는 그것을 '유기체(organism)'라고 말하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 보자. 생물학적으로 유기체는 통상 생물을 뜻하긴 하지만 더 나아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물체'를 일컫는다. 즉 살아있는 물체지만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아가는 물체라는 것이다.
손여울_Organism in Cistern_스페이스 함_2012
손여울_Organism in Cistern_부분

이렇듯 그녀는 작품을 통해 미디어 자체에 '생명'을 그것도 유기적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생명'을 부여한다고 하겠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한다면 '원래 미디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생명'을 작가는 작업을 통해서 구현해낸다고 말하는 것이 옳겠다. 따라서 그녀에게 미디어는 도구라기보다는 살아가는 유기체 그것인 것이다. ● 이를 더욱 잘 보여주는 다른 작품들을 살펴보자. 먼저 고개를 조금 돌려본다면 다른 작품 「원(Circle)」을 만날 수 있다. 이 작품은 빨간 원 안에 앞서 유기체라 살펴보았던 각 생물들이 멜로디란 매체를 통해서 각기 춤추는 모습을 작가가 영상으로 구현한 것이다. 조금 더 설명적인 작품으로 전시장 안에 구분된 섹션에 가면 만날 수 있는 작품 「살아있음; 로드코의 힘을 빌려」를 보자. 앞선 작품들이 우리에게 미디어의 '생명' 그 자체를 보여주고 있다면, 이 작품 「살아있음; 로드코의 힘을 빌려」는 미디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생명에 관해 또 그것들의 유기적인 관계에 관해 조금 더 친절하게 설명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20세기 미국의 색면화가 마크로드코(Mark Rothko)의 회화를 차용하여 만든 영상이다. 그녀는 영상에서 로드코의 색면회화 표면에 수많은 촉수를 심어놓고 그 뒤에는 전자회로를 설치하여, 촉수의 반응에 따라 전자회로가 작동하고 그것에 따라 회화가 변하고 또 이를 반복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즉 로드코의 회화를 차용하여 영상 속에서 그것이 디지털로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 생각해본다면 로드코를 선택한 것 또한 흥미로운 지점이다. 로드코의 회화는 종교적으로 해석되는 경우도 있다. 생명을 얘기할 때 과학도 물론이지만 종교적인 것 또한 땔래야 땔 수 없기 때문이다.
손여울_원_아크릴, 패널, 애니메이션_50×50cm, 00:00:22(loop)_2009~12
손여울_House_영상, 디지털 액자_00:00:58, 40×30cm_2009

손여울이 이 모든 작품들과 관계하여 미디어에 관하여 들려주는 이야기가 흥미롭다. "미디어아트를 꼭 과거에는 없었던 전혀 새로운 것이라 생각할 필요가 없다. 세상 모든 것은 인류가 시작했을 때부터 비록 우리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다고 할지언정 계속 변화하고 움직이고 살아있었으며, 우리가 고정된 것이라고 생각해온 회화작품 또한 물리적으로 변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어 "관객의 참여나 인터렉티브한 면 또한 마찬가지다. 회화나 조각이 미디어아트보다 이 부분이 다소 덜 강조되기는 해도 그것들이 인터렉티브한 면이 없다고 할 수 없지 않는가?"고 묻기도 한다.
손여울_Disital Cistern을위한 드로잉

마지막으로 이번 전시 제목이 『디지털 수조』임을 기억하자. 작가는 오랫동안 수조, 호수 등 물을 작품 안에 구현하여 다뤄왔다. 이렇듯 오랫동안 작가가 다뤄온 물은 무슨 의미일까? 그녀는 여성의 자궁이 양수로 채워진 것을 예로 들며 물은 생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생각한다면 이번 전시는 제목 그대로 디지털 유기체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살아 숨쉬는 하나의 거대한 수조, 즉 생명의 에너지가 가득 구현된 수조를 만들고 유기체로써 우리를 초대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 이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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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중심






The Empty展   2012_0716 ▶ 2012_0720







초대일시 / 2012_0716_월요일_06:00pm

참여작가 김유선_노슬기_성지은_송금희 오희주_유재희_이슬_정현정

관람시간 / 10:00am~06:00pm

갤러리 동국 GALLERY DONGGUK 서울 중구 필동 3가 26번지 동국대학교 문화관 B1 Tel.+82.2.2260.8752 www.dongguk.edu




빈 중심 - 중심은 늘 비어있다. 그리고 비어있음은 늘 두려움을 수반한다. 시작은 이십대 젊은 작가 산재한 두려움이었다. 무엇이 두려운 것일까? 이들의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고 과거는 권태로웠다. 랄까? 현재의 중심을 비워둔체 두려움으로 뭉쳐진 과거와 미래의 권태로움 띠 위에 서성이는듯했다. 하여 이 전시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부터 가장 먼 낯선 타인에게로까지 빈 중심 밖으로 의미들은 반복되고 있다.
김유선_Mobile house_C 프린트_48.8×70cm_2012
노슬기_Nobody knows_디지털 프린트_38.4×46.9cm_2012
성지은_마음안정제_캔버스에 유채_100×155cm_2012
송금희_거짓기억 확인_디지털 프린트_25.04×20.99×0.5cm_2012
오희주_추적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8×91cm_2012
유재희_melting animal_실리콘, 파라핀, 혼합재료_00:03:04_2012
이슬_악몽채집 惡夢採集_설치_2012
정현정_기레빠시_디지털 프린트_90×85cm_2012

자의든 타의든 의미와 형식이 축척되고 있는 현재에서 스스로 전시를 연다. 두렵고 비어있는, 열림. 누군가는 문 넘어 그들의 노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가장 작은 상자인 나로 부터 연결된 관계의 더 큰 상자를 넘어 과거 흔적의 상자를 열어가는 전시를 이다. 이들 작가는 현재의 나, 가족, 타인으로 시작되었고 이후 그들 스스로 중심을 찾아가는 전시를 마련했다. "빈 중심" 비어 있음으로 두렵지만 그러함으로 매력적인 열망의 7월을 기록 한다. ■ F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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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NANJI ART SHOW Ⅵ






HERO展   2012_0717 ▶ 2012_0729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2_0717_화요일_05:00pm

참여작가 / 김선태_손종준_조현익_최정규

공동기획 / 김선태_손종준_조현익_최정규(6기)

주최 / 서울시립미술관 기획협력 / 류동현(전시기획자, 미술칼럼니스트)

관람시간 / 01:00pm~06:00pm / 월요일 휴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난지갤러리 NANJI GALLERY 서울 마포구 하늘공원로 108-1 Tel. +82.2.308.1071 nanjistudio.seoul.go.kr






본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운영하는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6기 입주작가의 기획 전시『2012 NANJI ART SHOW』로서 여섯 번째 전시입니다. 전시는 현재 입주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들에 의해 기획되었으며, 입주기간이 끝나는 10월말까지 10회에 걸쳐 지속적으로 진행됩니다. ■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우리 모두가 '히어로'다!'히어로'가 되는 과정, 그 진솔한 보고서 #1. "기억해라. 강한 힘에는 커다란 책임이 따른다(Remember,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 영화 『스파이더맨』에서 벤 삼촌은 피터 파커에게 이렇게 이야기 했다. 세상을 구하는 히어로에게 이 말은 하나의 잠언처럼 다가올 터. 이미지의 힘으로 세상을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려는 미술 작가들에게도 적용되지 않을까. 가히 '히어로'의 전성 시대다. 슈퍼맨과 배트맨, 스파이더맨 등 '~맨'으로 대표되는 히어로들이 지난 10여 년간 세계 문화 시장을 휩쓸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경우 올해만 하더라도 스파이더맨의 또 다른 프리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시리즈의 마지막 3편, 모든 마블 코믹스의 히어로(스파이더맨은 소니가 판권을 갖고 있어서 부득이 빠졌지만)들이 총집합한 『어벤져스』까지, 히어로가 세계 영화 시장을 꽉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는 전통적인 '~맨'을 벗어나 킥애스, 그린 호넷 등 '안티 히어로'까지 등장하고 있으니, 갈수록 히어로의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세계 경제가 어려움에 빠져드는 요즘, 일부에서는 세계가 어려워지면 어려워질수록 히어로 문화가 부상할 수 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이는 인간의 힘으로 이 어려움을 헤쳐나가는데 한계를 느끼기 때문이라고 하니, 일견 맞는 것도 같다. 이렇듯 상상 속의 히어로가 세계를 휩쓸고 있지만, 과연 현실 속의 히어로는 어떨까? 진짜 히어로는 없는 것일까? ● #2. 이번 전시는 6기 입주 작가들을 위한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프로그램 중 하나인 『2012 난지 아트 쇼(2012 Nanji Art Show)』의 여섯 번째 전시다. 입주 기간 동안 총 10회를 여는 『난지 아트 쇼』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입주 작가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전시를 만들어 내는 것. 기획부터 설치까지 모든 것을 기획과 주제에 맞추어 헤쳐 모인 몇 명의 작가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해낸다. 이번 전시 『히어로』전은 입주 작가 중 한 명인 손종준으로부터 나왔다. 바로 현실 속 히어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김선태_Moribito No.1_은박, 장지_138×68cm_2012

#3. 난세에 영웅이 나타난다는 이야기가 있다. 난세(亂世)는 전쟁, 기아, 질병이 만연해 혼란스러운 시대다. 자본주의의 역기능이 부상하고 세계 경제가 구렁텅이로 떨어지고 있는 지금 이 시대를 '난세'라고 표현하면 부족할까. 이 시대의 히어로는 과연 누구일까? 손종준은 과거에는 시대의 어지러움을 극복시키는 긍정적인 존재로 히어로가 존재했다면, 이 시대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본의 축적을 통해 세상의 순기능과 안정을 저해하는 '가짜' 히어로를 우리가 히어로로 존경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었다('가짜' 히어로와 '안티' 히어로는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 '안티' 히어로는 어딘가 부족하지만 좋은 일을 하는, 결과적으로 히어로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이 시대의 히어로가 누구인지, '가짜'히어로의 허울을 벗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손종준_Defensive Measure_알루미늄_90×60×75cm_2012

#4. 이 생각에 동감한 김선태, 조현익, 최정규 세 명의 작가가 힘을 뭉쳤다. 마치 '미술작가' 부문 히어로들이 모인 『어벤져스』처럼. 그러나 작업에만 몰두하던 이들이 전시를 만들어 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초기 『난지 아트 쇼』에 참여를 했었지만 전시를 직조하는 것은 역시나 어려운 일. 그들은 여러 번의 회의와 토론 끝에 '히어로'라는 컨셉트로 자신의 작업을 매치업시켜 보았다. 정의, 자신 만의 아픔, 악당, 구출, 무기, 변신… '히어로'를 관통하는 수많은 키워드는 오롯이 그들의 작업과 매치되는 키워드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전화부스에서 클라크가 슈퍼맨이 되듯이, 피터 파커가 스파이더맨으로 옷을 갈아 입듯이 말이다(전시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자신을 자각해가는 히어로 영화 같은 느낌이다).
조현익_Embrace All: Light, cut myself(Flash-S-091067)_패널, 철판에 혼합재료_183×183cm_2009

#5. 그리고 그들은 기존 작품 외에도 이러한 키워드에 맞추어 작품의 제작에 나섰다(이 또한 촉박한 시간 속에서의 작품제작이라는, 불가능에 도전하는 히어로의 개념이!). 어렵사리 탄생한 그들 자신만의 히어로 키워드는 다음과 같다. "Moribito-수호자"(김선태), "모두들 그 존재를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으나, 사실은 명확히 존재하는"(손종준), "나는 무한하고 조건 지워지지 않는, 전지(全知)하고 신성(神性)한 '하나'라는 자각(自覺)이다"(조현익), "누구나 영웅이 되고 싶어한다!"(최정규).
최정규_불리한 포트폴리오_리넨에 유채_260.6×193.9cm_2012

#6. 김선태의 「Moribito-수호자」은 기동전사 건담이 주인공이다. 6여 년간의 일본 유학과 작업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김선태에게 지난 해 일본 동일본 지진은 충격이었다. 당시 그는 일본 도쿄에 있었다. 지진 후 동북부 지방과 후쿠시마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지진 후 도망치듯 귀국한 자신의 처지에서 자연스레 히어로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일본의 히어로라고 한다면 다름아닌 건담이 아니겠는가. 건담은 수 십 년간 일본인에게 히어로로서 자리를 잡았다. 은박과 유황, 석채와 안료를 쓴 전통 일본화와 건담이 기묘하게 어울린다. 작가는 쓰나미를 막고 있는 건담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자위적 조치(Defensive Measure)」 작업을 통해 기계가 지배하는 현대 사회 속에서 물질화되고 있는 인간성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왔던 손종준은 기존 컨셉트에 히어로의 키워드를 결합시켰다. "모두들 그 존재를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으나, 사실은 명확히 존재하는"이라는 키워드는 히어로의 존재를 부정하고 오히려 그들을 악의 축으로 만들어버리는 히어로 이야기의 내용과 연결된다. '스파이더맨' 등 사회적 약자가 초인적 능력을 얻어 사회에 기여하면 기득권 세력은 오히려 그를 범법자로 규정해 사회로부터 격리를 시키려고 한다. 「자위적 조치」는 이러한 히어로가 느끼는 사회와 자신들의 괴리, 존재하지만 부정되는 현실에 대한 메타포로 제시된다. 「자위적 조치」는 현실 속 우리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다양한 히어로식 방어기재(아이언맨의 철갑옷처럼)의 또다른 모습인 것이다. 조현익의 작업은 히어로의 사랑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까. 히어로들은 자신의 내면에 대한 사랑, 사회적 관계 맺기에서 서툰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는 무한하고 조건 지워지지 않는, 전지(全知)하고 신성(神性)한 '하나'라는 자각(自覺)이다"는 자각을 통해 자신의 참의미를 알게 된다면 그 스스로가 히어로임을 작가는 작업을 통해 말한다. MJ를 속으로 사랑하고, 벤 삼촌의 죽음에 책임을 느끼고, 자기 자신을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혼란스러워 했던 피터 파커처럼, 조현익은 철판에 '그린' 여인들의 모습을 통해 삶과 죽음, 사랑, 존재의 유한성을 건드린다. 최정규는 전형적인 '안티 히어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고졸이며 31살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독학으로 그림을 배운 작가에게 현실의 미술판은 히어로가 살아가기에 힘든 고담시나 뉴욕시에 다름아니다. 히어로 영화를 보면서 세탁비를 걱정하는 소시민처럼, 인정받고 있는 자신의 작품보다는 고졸 비전공 미술 작가라는 타이틀에 신경이 쓰이는 자신의 현실을 비튼다. 세밀한 필치로 세상을 응시하는 작가의 자화상은 그래서 더욱 '안티 히어로'스럽다. "영웅이 되고 싶으나, 사실은 능력이 없는"이라는 키워드는 히어로 이야기나 현실 속 이야기에서 모두 우리 주변의 삶을 대변하는 것은 아닐까. ● #7. 역시 (미술의) 힘에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자그마한 희망이라는) 책임감이 따른다. 그래서 김선태, 조현익, 손종준, 최정규 이 네 명의 작가는 현실 속의 '미술 히어로'가 되었다. 팍팍한 현실 속에서 항상 '깨지는' 이른바 '안티' 히어로지만, 그들은 미술의 힘을 믿고 자신 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들이 세상에 내놓은 작품들은 강하게, 역설적으로 이야기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가짜' 히어로가 지금 판치고 있지만, 자신의 아픔을 숨기고 묵묵히 세상을 지키고 삶을 살아가는 모든 세상 사람들이 '진정한' 히어로라고 말이다. ■ 류동현


2012 난지아트쇼 전시 안내 Ⅰ. 0412 목 - 0422 일 Ⅱ. 0427 금 - 0506 일 Ⅲ. 0525 금 - 0606 수 Ⅳ. 0615 금 - 0624 일 Ⅴ. 0629 금 - 0711 수 Ⅵ. 0717 화 - 0729 일 Ⅶ. 0830 목 - 0909 일 Ⅷ. 0918 화 - 0930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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木石으로 그린 옛그림






조선시대 목판화, 근대 석판화 (일제강점기) 컬렉션展   2012_0717 ▶ 2012_0805




금강산_탁본_90×336cm_1918년경



초대일시 / 2012_0717_화요일_05:00pm

관람료 대인 3,000원 / 소인(초,중생) 2,000원 / 7세 미만, 70세 이상 무료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가나아트센터 Gan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평창동 97번지 Tel. +82.2.720.1020 www.ganaart.com




세계적 문화유산 한국의 고판화 특별전 ● 우리나라의 목판화는 일반적으로 인식되어 있는 것보다 훨씬 오랜 역사와 다양한 특색을 가지고 각 시대의 인쇄술을 집대성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 만큼 시대마다 광범위한 계층의 애호를 받으며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성행하게 된 민족미술의 중요한 유산 중 하나로서 각 시대적 사회상을 종합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황기로_초서_목판_77×39cm_조선시대

특히 우리 민족이 자랑하고 있는 현존하는 세계 최초의 목판본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세계 최초로 12세기경 고려시대에 놋쇠로 만들어 쓴 금속활자는 활자 문화의 모체로서 학문적인 가치와 더불어 예술적 조형성으로도 문화적 품격을 높이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어도_화조, 목판화_104×56cm_조선중기
극락보탑_목판_110.5×51cm

이러한 세계적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판화에 대한 미술사적인 연구나 평가가 폭넓게 진행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판화에 대한 전시 역시 박물관이나 일부 고미술 전문 화랑에 국한되어, 조선시대 의괘도나 지도 등에 특정한 용도의 판화에만 집중되었다. 장식, 교화, 기복, 기록 등의 다양한 용도를 포괄하며 어느 정도의 규모로 전시된 경우는 한국판화회에서 주최한 전람회(1971년, 경복궁현대미술관)나 서울판화미술제의 특별전 형식으로 진행된 『古近代 版畵展』 (1995년, 예술의 전당) 정도이지 않을까 한다.
민영환_혈죽도_음각, 석판화_139×37cm

이번 가나아트 주최 21세기 국내 최대 규모의 컬렉션전인 『木石으로 찍은 우리의 옛그림』전을 통해 척박한 고판화에 대한 관심 고취와 재조명의 시발점이 되는 동시에, 판화에 대한 미술사적인 연구가 활성화 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화조화_석판화_78×36cm
수선전도_석판화, 장권지_122×78.5cm

21세기 국내 최대 고판화 컬렉션전-조선시대 목판화, 근대 (일제강점기) 석판화 ● 가나아트는 조선시대 목판화와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근대 석판화를 중심으로 한 대형 고판화 컬렉션전을 개최한다. 가나아트 전시를 통해 공개되는 이번 컬렉션은 한국근대판화 1세대인 故 이항성 작가(1919-1997), 홍대 판화과 교수와 박물관장을 역임한 이승일 작가(1946-)까지 2세대에 걸쳐 50여 년간 한국판화를 지켜내고 후대에 문화유산으로 남기고자 한 예술가들의 집념과 열정의 결과라 할 수 있다. 21세기 국내 최대 고판화 컬렉션전인 이번 전시에서는 50여 년간 수집한 판화, 목판, 전종류, 인장 등 2000여 점의 유물 중에서 작품성이 뛰어나거나 희소성이 있어 미술사적으로 높이 평가할 수 있는 200여 점을 선보일 예정이다. ■ 가나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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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궤도




órbita展 2012_0718 ▶ 2012_0724





초대일시 / 2012_0718_수요일_06:00pm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그룹展

참여작가 강희영_김다솜_김윤경_김선_김예지 김희정_남지은_박아람_박혜원_오세라 유지희_이세준_이혜선_임하영_송용한 전다정_정은진_최문선_현지선_황평강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팔레 드 서울 gallery palais de seoul 서울 종로구 통의동 6번지 Tel. +82.2.730.7707 www.palaisdeseoul.net



órbita는 스페인어로 천문학에서 궤도를 뜻하는 단어로써, 활동이나 영향 등의 범위, 삶의 행로, 생활 과정, 세력 범위 등의 이중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를 타이틀로 삼은 이번 전시는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서 작업하고 생활해가고 있는 동시대의 신진작가들이 모여 그들의 삶과 예술적 궤도를 되짚어보고자 기획되었다. 예술은 동시대상을 반영하는 의미에서 공통적 요소를 갖고 있음에도 서로의 삶의 관점과 신념에 의해 그 행로와 범위는 여러 영역으로 나뉘어 다양한 형태로써 보여 진다. 참여 작가들의 작업은 저마다의 독특한 관점에 따라 삶의 특이성을 이용하여 작업을 해석해 나가며, 이들이 빚어내는 조화와 충돌을 통해 관객들은 그들의 시간과 인식에 새로운 공감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다양한 의미로 내비치고 전달된 작품을 통하여 관객과 작가 모두 스스로의 궤도를 구축하고 확인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강희영_어느 한적한 오후_거울에 유채_120×164cm_2012 김다솜_Girl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12
김선_Transitional space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12 김예지_Fusion_Cake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9×72.7cm_2012
김윤경_Girlzero-focus_종이에 드로잉_54.5×78.8cm_2012 김희정_발칙한 선언_캔버스에 유채_97×130.3cm_2012
남지은_Uselessness_캔버스에 유채_145.5×112.1cm_2012 박아람_Rollercoaster_나무 패널에 종이_90×360cm_2012
박혜원_Play with starbuck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0×80cm, 10×10cm×32_2011 오세라_rebirth of the child_캔버스에 유채_91×116.8cm_2012

본 전시는 총 20인의 작가들이 참여하여 그들의 예술적 궤도를 담은 다채로운 작품으로 꾸며진다. 그들은 각기 다양한 방식으로 관객들에게 삶과 접촉된 예술의 행로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한다. 모든 예술은 언제나 작가 자신으로부터 하나의 여정을 결과로 드러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작가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하는 물음의 근원으로부터, 작품으로 자신의 삶과 세계이해를 도모하는 것이다. 예술은 하나의 이념이나 전문적 지식체계 안에서 드러나거나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결코 대단히 어렵거나 거창한 것도 아니다. 다만, 예술은 그 창작행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작가들의 이해가 어떻게 자신과 자신의 주위를 바라보고 있는가에 의해 의미를 가질 뿐이다. 결과적으로 예술은 시공간 속 작가 자신과 그 삶의 행로이다.
송용한_시장이야기...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12 유지희_상황 state of affair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0.3×116.8cm_2012
이세준_선택받지 못한 작업들_캔버스에 유채_65.1×90.9cm_2012 전다정_Game World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0.3×116.8cm_2012
이혜선_The Glorious town_캔버스에 유채_112.2×162.2cm_2010 임하영_A - men_캔버스에 유채_112.1×162.2cm_2012
정은진_여왕의 방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162.2×130.3cm_2012 최문선_More than a Feeling_캔버스에 유채_49×53cm_2012
현지선_scene of moment_종이에 혼합재료_58×78cm_2012 황평강_The missing jewel-5_캔버스에 유채_97×130.3cm_2012

이 같은 예술의 시작이 가능한 때와 곳을 현재라고 말해본다면, 예술의 현재는 항상적으로 무엇을 표현하고 동시에 표현을 통해 의미를 구축해나가는 일이 되기도 한다. 표현과 의미구축은 결국 예술가의 행위를 지속화시키고 변모를 향하게 한다. 아울러 작가에게 자신의 시각과 자신만의 시야에 잡혀 들어 올려지는 삶과 예술의 궤도를 세상 사람들과 조우할 수 있게 한다. 그러므로 작가와 관객들은 그 위에 놓인 작품들로부터 새롭고 또 익숙한 삶과 예술의 궤도를 만나게 된다. 해석의 방향은 그 중심 자체로써의 예술경향을 점차 명료하게 드러낼 수 있는 가능성을 찾는데 모아진다. 오늘, 작품을 바라보는 당신과 작업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들에게 지금, 그리고 여기는 어떠한 궤도로 이해되고 있습니까? ■ 김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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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방




고경호_문주_김종구展 2012_0718 ▶ 2012_0731



고경호_흰 코뿔소의 여정_154×168×100cm_1993(2012)


초대일시 / 2012_0718_수요일_06:00pm

관훈갤러리 기획초대展

관람시간 / 10:30am~06:30pm

관훈갤러리 KWANHOON gallery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Tel. +82.2.733.6469 www.kwanhoongallery.com




안녕하세요. 저희 관훈 갤러리에서는 여름 기획 전시로『3개의 방』– 고경호, 문주, 김종구 전시를 개인전 형식을 갖추어 초대하였습니다. 각각의 작가는 3개의 공간으로 나누어진 전시실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작업을 표현하게 됩니다. ● '문주'의 방에서는 선분이 아닌 끝없이 이어진 수직선 위에 놓여진 시간의 연장성 속에서 결론의 도달을 지연시키는 작업의 전략을 보여주고 있으며, '고경호'의 방은 존재가 의식으로 투영되는 탐구를 모호한 영역화와 애매한 시선을 통해 우리의 지각 경험을 발견하도록 공간을 창출하고 있습니다. '김종구'의 방은, 통쇠를 깎아 서예형식을 빌어 쇳가루를 흘러내리는 산수화 작업을 통해 기존의 동양적 산수의 정신이 현대사회의 물질적 속성에 의해 침하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2012년 7월 18일 수요일 오후 6시에 관훈 갤러리에서 오프닝 리셉션이 진행됩니다. 끊임없이 작업에 열정을 보여주는 작가들의 열린 방으로 초대하오니,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 권도형
고경호 Ko, Kyung Ho_1F ● 메를로 퐁티가 말하는 '현상적 장'은 육체에서 이탈된 마음 앞에 펼쳐진 하나의 광경이 아니라, 바로 시각을 지니는 육화된 주체가 처해있는 모호한 영역이다. 바로 그러한 영역에서 우리의 지각 경험은 재발견될 수 있다. 고경호의 작품 역시 존재의 의식에로의 나타남을 탐구한다. 작가의 원초적 경험을 일깨우기 위한 장치들은 내부이기도 하고 외부이기도 한 애매한 작품공간을 창출한다. 그에게'세계를 보는 창'은 너무나도 모호하다. ■ 이선영

문주_끝없는 수평 Endless Horizontal_혼합재료_가변설치_2012

문주 Moon Joo_2F ● ...오직 내가 가장 철저하게 할 수 있는 일 이란 시간과 싸우는 일이다. 결론을 유보하는 과정, 그 속에 떠도는 언어를 갖지 않는 결론, 그렇게 남겨진 결론들은 언제나 진행의 마지막에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진행의 과정들에 묻어있을 뿐이고, 나는 시간 속에 남겨져 있는 그 흔적을 추적한다. 나는 분명히 이런 순간을 즐긴다. 그러나 이런 결정되지 않는 요소들은 항상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 그렇다면, 왜 그 유보의 무거운 짐을 가지고 가는가? 그것은 "지연의 미학"이다. 문명의 안테나가 도달할 수 없는 곳을 향하기 위한, 그리고 문명의 사선 속에서도 여전히 남아있는 그 무엇들과 대면하기 위한, 몇 개의 논리와 감성이 동시에 증폭되며 심화되는 논리의 비약조차 수용하기 위한 지연의 전략이다. 내게 있어 작업은 시간과 싸우는 일, 최후의 최후까지 발설하지 않고 결론을 지연시키는 일이다... ■ 문주
김종구_쇳가루 산수화_ 쇳가루, 광목, 나무틀, PV 접착제_235×2020cm_2012

김종구 Kim Jong Ku_3F ● 김종구의 작업은 거대한 쇳덩어리를 깎아내는 노동집약적인 행위로부터 시작된다. 작가는 쇳덩어리를 쇳가루로 변형시킴으로써 쇠가 갖고 있던 그 육중함과 공격성을 제거한다. 쇠는 이제 미세한 공기의 흐름에도 반응할 수 있을 만큼 물리적으로 섬세하고 자유로운 형태가 된다.「쇳가루 산수화」라 불리는 쇳가루 작품은 수성접착제를 흠뻑 적신 광목 위에 작가가 평소에 느껴오는 인간사의 슬픈 내용들을 감성적 시어로 여백의 조화와 쇳가루의 흘러내림, 시간을 통해 쇳가루가 산화 되어지는 과정 등, 詩, 書, 畵의 동양적, 정신성을 의미하는 예술작품이 되고 탈 물질화의 단계로까지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쇠의 변화는 현대 물질문명에 대한 작가의 반성적 사고와 맞닿아 있다. ■ 김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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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시반 문방구 3:30PM TOYSHOP




김명훈_김영균展 2012_0718 ▶ 2012_0816 / 일요일 휴관



김명훈_Hero's Tower_ABS, 혼합재료에 우레탄 페인트_57×23×16cm_2010


초대일시 / 2012_0718_수요일_06:00pm

기획 / 김명훈_김영균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반디트라소 GALLERY BANDITRAZOS 서울 종로구 평창동 458-7번지 Tel. +82.2.734.2312 blog.naver.com/bandi_art www.banditrazos.com



세시 반, 우리는 문방구로 달려간다 ● 1980년대 초, 소년은 늘 어머니 손을 흔들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엄마, 백원만..." 백원. 싸구려 조립식 로봇을 사기 위해 문방구 주인아저씨에게 주어야 하는 최소한의 접선물자. 못이기는 척 하며 줘어주시는 어머니의 모습도 이제는 어느덧 30여년 전의 추억. ● 시간은 흐르고 흘러 이제 소년은 또 다른 조립식을 만들고 있다, 어른이 된 자기 자신을 분해하고 조립하는 소년, 여전히 정지된 추억을 새삼 꺼내어 재조립하는 소년. 다른 공간에서 자란 30대 중반의 두 소년이 보여주는 조립식 조각들은 적당히 고전적이면서 적당히 세련된, 우리들의 청년기를 담은 기념사진처럼 존재할지도 모른다.
김명훈_iBugs_ABS, 혼합재료에 아크릴채색_38×40×16cm_2011
김명훈_꿈을 위한 지침서 no1_우레탄수지에 아크릴채색_130.3×89.4cm_2012
김명훈_꿈을 위한 지침서 no2_우레탄수지에 아크릴채색_90.9×65.1cm_2012
김영균_Whatch of Sorrow_시바툴, 나무, 시계_160×40×40cm_2012
김영균_Whatch of Sorrow_시바툴, 나무, 시계_160×40×40cm_2012
김영균_Jump!_시바툴, 매직스컬프_45×28×23cm_2012

근래 국내의 젊은 작가들은 보다 자극적이고 유행에 민감한 매체를 전시공간 속에 끼워넣는 경향을 보인다. 소위 젊은 미술이 점점 기계적으로 획일화되면서 관객과의 정서적 교감보다는 일방적 발언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우리는 2인전『세시 반 문방구』를 통해 이러한 일방적인 감정의 흐름을 벗어나고자 한다.회화나 조각이 그 아우라를 잃고 노트북 안의 영화보다 못한 고루한 이미지로만 남아가는 이 즈음, 우리는 하드웨어 안의 수많은 파일들보다 춸씬 짜릿했던 옛날 조립식의 추억을 다시 이야기하며 다가서는 것이다. ● 100원에서 3000원 사이의 조립식으로 점철된 유소년기의 추억은 이제 그 소재와 재료를 달리하여 다시 재생되고 있다. 장난감은 그것을 즐기는 사람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매개체다. 예술? 그것도 마찬가지다. 작가와 관람자간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심미적 경험을 체험하게 하여 모두가 행복하게 되는 도구가 아니겠는가. 조립식이 곧 최고의 조각이었던 그 시대 소년의 마음을 여러분들도 느껴보시길. ■ 김명훈_김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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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Opening DOOSAN Gallery Seoul






두산갤러리 서울 재개관展 2012_0718 ▶ 2012_0819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2_0718_수요일_06:00pm

두산 레지던시 뉴욕 2009-2011 입주작가展

참여작가 권오상_김기라_김인배_김인숙_민성식 박윤영_백승우_성낙희_이동욱_이주요 이형구_정수진_최우람_홍경택

관람시간 / 11:00am~08:00pm / 주말_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두산갤러리 서울 DOOSAN Gallery Seoul 서울 종로구 연지동 270번지 두산아트센터 1층 Tel. +82.2.708.5050 www.doosangallery.com




2012년 7월 18일, 개관 5주년을 맞이한 두산갤러리가 새롭게 시작합니다. 재개관 기념 전시『RE-OPENING DOOSAN GALLERY SEOUL』展에서는 2009년부터 2011년까지 두산 레지던시 뉴욕 입주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입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14명의 작가는 권오상, 김기라, 김인배, 김인숙, 민성식, 박윤영, 백승우, 성낙희, 이동욱, 이주요, 이형구, 정수진, 최우람, 홍경택으로 국내와 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우리나라 대표 작가들입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지난 3년 동안 운영해온 두산 레지던시 뉴욕의 성과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 두산갤러리는 2007년 개관 이후 우리나라 젊은 작가들의 새로운 시도를 꾸준히 지원해 오고 있습니다. 2009년부터는 세계 현대미술의 중심인 미국 뉴욕 첼시에 갤러리와 레지던시를 열고, 젊은 작가들의 작품과 활동을 소개해 왔습니다. 두산 레지던시 뉴욕은 1년에 6명의 작가들을 지원하는데, 두산갤러리에서의 전시 기회와 함께 6개월 동안 거주할 수 있는 아파트와 작업할 수 있는 스튜디오를 제공합니다. 또한 스튜디오 방문 프로그램, 오픈 스튜디오, 아티스트 토크에 참여할 기회도 주어집니다. ● 스튜디오 방문 프로그램은 국제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미술관 큐레이터, 평론가를 초청해 입주작가들을 소개하고 그들의 작품 세계를 깊이 있게 논의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오픈 스튜디오는 미술관계자, 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작가와 직접 교류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아티스트 토크는 작가 지망생이나 신진 작가들이 우리의 입주작가들을 만나 작가로서의 경험이나 고민들을 공유할 수 있는 프로그램 입니다. ● 개관 5주년을 맞이한 두산갤러리는 서울과 뉴욕에서 전시지원 및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젊은 작가들의 새로운 창작활동을 지속적으로 지원할 예정입니다.
이형구_Homo Species Anatomy Figure I _혼합재료_가변크기_2009

이형구(2009년 하반기 입주)는 신체 일부분을 확대하고 왜곡하거나,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들의 골격구조를 역추적하는 작업들을 선보여왔다. 작가는 인간과 동물의 신체기관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며 이를 변형하고 실험하는 과정을 통해 과학적 연구를 예술가의 창의력으로 재구성한다.
정수진_Pyramid Dialetic_캔버스에 유채_183×173cm_2005~11

정수진(2009년 하반기 입주)은 다양한 기법과 구성, 형태와 색채로 캔버스를 빈틈없이 채우며 회화 고유의 시각언어를 연구한다. '모든 조형예술을 가로지르는 절대적인 법칙'을 확신하는 정수진은 회화언어의 새로운 질서를 발견하고자 한다.
최우람_Urbanus Female Larva_Etched stainless steel, LED, circuits, motors, CPU board, custom software, and cable_50×60×50cm_2007

최우람(2009년 하반기 입주)은 기계부품을 조립해 꽃을 피우거나 움직이는 곤충의 형상을 만드는 등 차가운 금속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업을 선보여왔다. 과학과 예술이 만나 탄생한 '기계 생명체'는 자연을 거스르는 문명발달의 관점에서 벗어나 인간과 기계가 공존하는 새로운 미래의 모습을 제시한다.
권오상_Control_C 프린트, 혼합재료_177×74×43cm_2007

권오상(2010년 상반기 입주)은 수많은 사진을 오려 붙여 실제 크기와 동일하게 만든 독특한 사진-조각(photo-sculpture)을 선보여왔다. 작가는 2차원의 평면 매체와 3차원 입체 작업을 넘나들며 실물과 이미지,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장르를 구축하고 있다.
백승우_A-#001 (Jeff, London, 1972)_디지털 프린트_29.7×42cm_2011

백승우(2010년 상반기 입주)는 현실과 가상을 대비시키며 사진의 본질과 역할에 대한 질문을 통해 장르적 확장을 시도해왔다. 그는 변형되고 조작된 현실과 이들이 가지는 이중성의 혼재, 보는 방식의 일방성과 학습된 경직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의심하며 문제를 제기한다.
김인숙_Downers_C 프린트, 디아섹_140×300cm_2012

김인숙(2010년 하반기 입주)은 '인간'이라는 일관된 주제로 마치 영화를 만드는 것처럼 대규모의 작업과 긴 준비과정을 거쳐 사진작품을 만든다.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과 정체성에 대한 탐구, 더 나아가 현대사회에서 개인이 느끼는 고독과 결핍을 작품의 주요 모티브로 삼고 있다.
성낙희_Hover_캔버스에 유채_45×53cm_2012

성낙희(2010년 하반기 입주)는 종이와 캔버스, 벽 등 다양한 장소에 색, 선, 면과 같은 가장 기본적인 조형요소를 토대로 화면을 유기적으로 구성한다. 표현 과정 속에서 즉흥적인 이성과 감성의 조화를 통해 기하학적이면서 역동적인 입체적 공간을 이차원의 평면에서 보여준다.
홍경택_Library_리넨에 아크릴채색, 유채_162×130cm_2009

홍경택(2010년 하반기 입주)의 그림은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다양한 색상의 사물과 패턴으로 빽빽하게 차 있다. 여백 없이 꽉 찬 공간은 '현실에서 파생된 강박증의 극단적 표현'이며, 질서정연한 구조는 화면 속에 등장하는 도상이나 단어의 의미를 더욱 부각시킨다.
김기라_Wall Painting with Still Life_벽에 페인트_가변크기_2008~12

김기라(2011년 상반기 입주)는 사진, 회화, 영상과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마이너리티'의 관점에서 제도화된 현대소비사회 속 개인들의 욕망을 비판적으로 다룬다. 최근 그는 사회, 문화, 종교로 사고의 폭을 넓혀 신화나 종교에서 파생된 이미지를 변형하고 재구축하여 인간의 욕망을 반추해보는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민성식_A Harbor_캔버스에 유채_145.5×227.3cm_2011

민성식(2011년 상반기 입주)은 선명한 색채로 익숙한 자연과 도시공간을 화면 속에서 대담하게 분할하고 미묘한 시점변화를 통해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작가는 거대한 도시풍경과 일상의 소소한 장면을 한 화면에 병치시켜 현실과 초현실을 넘나드는 시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박윤영_Voyage of the Black Bird_설치_2011

박윤영(2011년 상반기 입주)은 실제 일어났던 '특이한 사건'들이나 '특정한 무엇'에 대해 치밀하게 조사된 자료들을 바탕으로 가상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 이야기는 작가가 직접 체험한 것은 아니지만 회화(한국화)나 시, 음악, 소음, 영상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되면서 우리가 믿고 있는 사실의 진실성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김인배_요동치는 정각에 만나요_알루미늄 와이어, 절연 테이프_가변크기_2009

김인배(2011년 하반기 입주)는 서로 다른 차원이나 범주에 있는 대상을 하나로 통합시켜 규정된 경계를 허물고자 한다. 형체가 불분명한 조각 위에 연필 드로잉으로 형상을 그려 넣거나, 얇은 알루미늄 선을 이용해 연속적인 신체의 움직임을 단순한 드로잉처럼 표현하여 색다른 리듬감과 운동감을 만든다.
이동욱_Wolf Attack_혼합재료_10×15×12cm_2011

이동욱(2011년 하반기 입주)은 아주 작은 크기로 섬세하고 사실적인 인체 조형물을 만든다. 작가는 기묘한 실재감을 불러일으키는 이 조형물들을 일상생활에서 발견할 수 있는 여러 오브제들과 함께 극한 상황 속에 배치하여, 현대 소비 사회에서 소비되고 상품화되는 인간의 몸과 욕망을 수집과 관찰의 대상으로 전환시킨다.
이주요_Wall To Talk To_설치_가변크기_2012

이주요(2011년 하반기 입주)는 자신의 주변에 있는 볼품없거나 버려진 사물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이들을 이용해 책이나 사진, 드로잉, 설치 작품을 만든다. 작가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의해 재해석된 평범한 물체와 공간은 작가만의 연약하고 어눌한 화법으로 특별하고 새롭게 변화된다. ■ 두산갤러리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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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한 덩어리




천성명展 / CHUNSUNGMYUNG / 千成明 / sculpture 2012_0720 ▶ 2012_0922 / 일,공휴일 휴관



천성명_부조리한 덩어리 7_합성수지, 아크릴채색_30×22.5×13.5cm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10826h | 천성명展 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2_0720_금요일_05:00pm~08:00pm

주최 / 재단법인 송은문화재단 기획 / ㈜로렌스 제프리스

Artist Talk / 2012_0907_금요일_02:00pm 예약문의 : info@songeunartspace.org (성함, 연락처, 동반인원 수 기재, 예약자 우선 착석 안내) 에필로그 / 2012_0910 ▶ 2012_0922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일요일, 법정 공휴일 휴관

송은 아트스페이스 SONGEUN ARTSPACE 서울 강남구 청담동 118-2번지 Tel. +82.2.3448.0100 www.songeunartspace.org



송은 아트스페이스는 한국 작가들의 역량을 키우고 이들의 도전을 지원하기 위해 국내작가 개인전을 정기적으로 기획하고 있다. 2012년에는 조각의 전통적인 작업 방식을 취하면서도 자서전적인 내러티브를 담아 설치작업을 전개해 온 천성명 작가의 개인전을 선보인다. ● 천성명은 작품에서 사실적인 인물 및 형상을 구현하는 한편, 자아를 비롯한 동시대인을 투영하고 우리가 직면하는 현실을 은유적으로 제시해왔다. 그는 2007년 이래 현재 진행 중인 대표작 '그림자를 삼키다' 연작의 장기 프로젝트를 포함한 총 8차례의 개인전을 통해 연극적인 구성으로 내면 탐구를 제시함으로써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왔다. 최근의 작업에서 그는 지난 10여 년간 과거 시점의 내적 성찰에 집중했던 것에서 나아가 현 시점에서 개인이 당면하는 사회와의 관계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2011년 개인전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갤러리 스케이프)는 현존하는 자아상 탐구의 출발점이 되며 이번 전시 "부조리한 덩어리"는 자신이 고찰한 바들을 심화시키고 새로운 조형적 실험들을 선보이는 장이 된다.
천성명_부조리한 덩어리_합성수지, 우레탄채색_270×200×95cm_2012_부분

본 전시는 한 개인이 사회에서 겪게 되는 분절의 경험 즉, 전체 맥락을 상실하고 상호 유기적 관계를 맺지 못하는 상황을 파편화된 조각들과 설치 작업을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작품의 이야기는 작가가 상정하는 작품의 주인공이 2층 전시장에서 팔다리가 절단된 몸통으로 등장하면서 시작되는데, 이는 자기 본연의 모습이 상실되고 기능이 온전하게 발휘될 수 없게 된 내면 상황을 비유한다. 분열된 내적 상태의 주인공 의식은 복도를 따라 계단을 오르며 건물의 꼭대기에 다다를수록 외부와의 관계 안에서 점차 작아지는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3층에는 영화나 드라마 대사에서 전후 맥락과 상관없이 발췌된 서로 다른 문장이 각각의 스피커에서 순차적으로 나온다. 상호 의사소통이 부재하는 문장들은 무의미하게 반복되어 각 전시장에 울려 퍼짐으로써 분절의 상황을 극대화시킨다. 주인공이 향하는 행로를 따라가면 건너편 전시장으로 향하는 연결 통로를 지나게 되는데, 가로막힌 시야와 공간을 체험하게 됨으로써 관객은 공감각적으로 단절을 느끼며 이를 통해 분절된 주체인 주인공과 교감하게 된다.
천성명_부조리한 덩어리_합성수지, 아크릴채색_가변설치_2012

건너편 3층 전시장에 도달하면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주인공에 대해 추측할 수 있는 상징적인 단서들과 마주하게 된다. 자연광이 쏟아지는 공간에는 매우 사적인 영역임을 나타내는 커튼이 걸려 있으며 5개의 심장, 옷걸이에 걸린 전형적인 독재자의 코트 그리고 좌대에 올려진 기념비적인 조각상이 설치되어 있다. 또한 전시장 바닥 위로 어지럽게 찍힌 녹색의 발자국이 있으며 장난감 병사들, 공룡 머리 그리고 찻상이 함께 놓여져 있다. 이는 상호 상응되지 않을 법한 오브제와 조각 작품이 자연의 초록을 모방한 방수 페인트 발자국 위에 놓여짐으로써 생경함과 부조리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동시에, 주인공의 내면과 외면 모두를 관념적으로 유추할 수 있게 한다.
천성명_부조리한 덩어리 2_합성수지, 스틸, 아크릴채색, 우레탄채색_가변설치_2012_부분

최종 도착지인 건물 옥상에 도달한 주인공은 내리쬐는 태양을 견디며 주변의 상황을 관조한다. 전시장 2-4층을 관통하는 메자닌의 수직 공간에는 천성명 특유의 인물상 즉, 등불을 든 소녀는 작열하는 태양으로 상징되며 여러 육체가 반복적으로 쌓아 올려져 있는 형상은 주인공의 심리적인 압박감을 가중시킨다. 4층 전시장은 전시 내 주인공이 이동하는 물리적 공간과 분리된 '관념'의 공간으로, 옥상 위에 처한 주인공의 내적 상황을 일률적으로 헤엄치고 있는 인물들을 통해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어디에서도 주인공의 온전한 형상은 존재하지 않으며 헤엄치는 군상조차도 기계적인 익명성을 띄고 있을 뿐이다. 자기 성찰적인 내면 탐구로부터 외부 즉, 사회와의 '관계'에 주목한 천성명은 필연적으로 괴리되고 축소될 수 밖에 없는 개인의 일상을 '부조리'라는 맥락에서 조명한다.
천성명_부조리한 덩어리 4_합성수지, 아크릴채색_가변설치_2012_부분

특히, 본 전시 기간 중에는 아티스트 토크(9.7 오후 2시, S. Atrium)가 개최되며 에필로그(9.10-9.22)도 함께 이어지는데 각 전시장에 놓인 작품들이 본래의 의미와 맥락으로부터 분리되어 재구성됨으로써 관람객은 이를 통해 부조리한 상황에 대한 작가의 완결된 내러티브를 조망하게 될 것이다. 이번 개인전은 천성명 특유의 독창적인 사유의 흐름을 비롯하여 작가가 새롭게 선보이는 구상 조각의 조형적 실험을 함께 감상하는 특별한 기회가 될 것이다.

천성명은 1971년생으로 조각을 전공했으며 2000년 첫 개인전 이후 '그림자를 삼키다'(갤러리 선 컨템포러리, 2007; 갤러리 터치아트, 2008)연작을 비롯하여 총 8차례의 개인전을 꾸준히 개최하면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독창적으로 구축해 왔다. 주요 그룹전으로 '젊은 모색전'(국립현대미술관, 2004), 부산 비엔날레(2006), '나의 아름다운 하루'(로뎅갤러리, 2007), '숨비소리'(제주도립미술관, 2009)등 다수의 국내외 전시에 참여했으며 2007년 김세중 청년조각상을 수상하였고, 2011년 퍼포먼스 공연 'Nameless Forest'를 미국인 안무가 Dean Moss와 공동 연출하여 뉴욕의 극장 THE KITCHEN에서 공연하였다. ■ 송은 아트스페이스

전시 부대 프로그램 『천성명 : 부조리한 덩어리』 작가 강연회 Artist Talk 일시 : 2012년 9월 7일 금요일 오후 2시~4시, 무료입장 장소 : 송은 아트스페이스 지하 2층 S. Atrium 예약문의 : info@songeunartspace.org (성함, 연락처, 동반인원 수 기재, 예약자 우선으로 안내)

에필로그 Epilogue 일시 : 2012년 9월 10일 – 9월 22 일 본전시는 작가가 동일한 작품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구성하는 에필로그가 전시 종료 2주전에 선보여짐으로써 완결되는 구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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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 오르다 Spear to Heaven




피필로티 리스트展 / Pipilotti Rist / installation 2012_0719 ▶ 2012_0916 / 월요일 휴관



피필로티 리스트 Pipilotti Rist_하늘로 오르다 Spear to Heaven_4채널 비디오 설치_2012


초대일시 / 2012_0718_수요일_05:00pm

관람요금 하늘로 오르다(Spear to Heaven)展_일반 6,000원/초중고생 4,000원 상설전_일반 10,000원/초중고생 6,000원 Day Pass(상설+기획전 패키지)_일반13,000원/초중고생 8,000원 * 예약제 없이 편리하게 Leeum을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 20인 이상 단체 예약 필수(관람료 할인)

관람시간 / 10:30am~06:00pm / 월요일 휴관

삼성미술관 리움 기획전시실 Samsung Museum Of Art Leeum 서울 용산구 한남동 747-18번지 Tel. +82.2.2014.6900 www.leeum.org



블랙박스 프로젝트 ● 삼성미술관 Leeum의 블랙박스는 17m 높이의 공간 내에 떠 있는 암실과 같은 형태로, 렘 쿨하스가 미래의 예술장르라고 판단한 영상 매체에 맞게 디자인한 공간이다. 리움은 이러한 블랙박스의 특징을 살리고 국내외 미술계에서의 적지 않은 존재감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으로 조명 받지 않았던 미디어 작가를 적극 소개하여 현대미술의 저변을 넓히고자 2010년부터 "블랙박스 프로젝트"를 선보이고 있다. ● "블랙박스 프로젝트"는 입구를 제외하고 사방이 막혀 있는 공간적 특성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고해상도와 다채널을 구현하는 장비를 통해 완벽한 영상과 사운드로 관람객들의 최적의 환경에서 작품을 구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피필로티 리스트 Pipilotti Rist_하늘로 오르다 Spear to Heaven_4채널 비디오 설치_2012

삼성미술관 Leeum은 2012년 7월 19일(목)부터 9월 16일(일)까지 "블랙박스 프로젝트" 두 번째 미디어 전시로 스위스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영상작가 피필로티 리스트의 국내 첫 개인전『피필로티 리스트 : 하늘로 오르다(Pipilotti Rist : Spear to Heaven)』를 개최한다. ● 본명이 엘리자베스 샬로 리스트로, 소설『삐삐 롱스타킹』의 주인공 이름에서 영감을 받아 피필로티 리스트는 예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작가는 1980년대 후반부터 비디오 작업을 해 왔으며 뮤직비디오와 광고, 영화 예고편을 떠올리게 하는 작업들로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1994년 상파울로 비엔날레 스위스관 작가로 참가하고 199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Premio 2000상을 수상하면서 국제적인 작가로 부상하였으며 2005년 베니스 비엔날레 스위스관 작가로 선정되는 등 괄목할 만한 활동을 이어 오고 있다. 파리 퐁피두센터, 도쿄 하라미술관, 런던 헤이워드갤러리 등에서의 개인전을 개최하였으며, 특히 2008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의 개인전 『Pipilotti Rist : Pour Your Body Out(7354 cubic meters)』은 영상뿐만 아니라 전시장 의자와 같은 조각적 요소들을 설치에 포함시켜 관람객이 작품 안에서의 작품 감상을 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여 큰 성공을 거뒀다. 피필로티 리스트는 페미니스트적 시각에서 여성의 신체에 대한 관심을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도발적인 상상력으로 보여 준다. 작가는 눈부신 색채와 관능적인 이미지에 음악을 결합하여 환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가볍고 장난 스러운 동시에 멜랑콜리하고 불안한 감정적 모순을 느끼게 한다. 음악과 화려한 영상을 결합하는 등 대중문화의 형식을 빌어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관습적 이미지를 우스꽝스럽게 비튼「I'm Not the Girl Who Misses Much」(1986) 같은 초기 작품부터 최근의「Lobe of the Lung」(2009) 같은 스펙타클한 영상 설치작업에 이르기까지 리스트는 강렬한 시각적 효과와 인체에 대한 탐구를 일관되게 추구한다. ● 이번 전시에 출품되는『하늘로 오르다(Spear To Heaven)』(2012)는 1개의 작품만으로도 블랙박스를 압도하는 영상과 사운드가 눈에 띄는 작품이다. 몸 안을 여행하는 눈이 바라보는 바깥의 풍경을 표현한 작품으로, 작가 특유의 색채감과 몽환적인 분위기가 특징적이다. 4대의 프로젝터가 움직이면서 만들어 내는 영상은 블랙박스 전체에 설치된 반투명 천 위에 투사되어 환상적인 공간을 만들어 내며,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을 느끼게 한다. 또한 천 사이를 걸어 다니는 관람객의 신체 역시 작품의 일부로 편입되어 관람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몸을 새로이 자각하게 한다. 이번 피필로티 리스트의 영상 설치작품은 시각 예술을 눈뿐만 아니라 귀로, 또한 몸으로 온전히 경험하는 독특하고 신선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 우혜수

전시 프로그램 1. 전시 연계 강연회 - 여성성과 몸의 담론 (김현주, 추계예술대학교 교수) - 큐레이터와의 토크 (우혜수, 삼성미술관 Leeum 학예실장) 일시 / 7월20일 (금) 02:00pm~04:00pm 장소 / 리움 강당 신청 기간 / 7월3일~7월20일 신청 대상 / 일반인 200명(선착순 마감) 신청 접수 / www.leeum.or.kr 신청 문의 / 02)2014-6900 *강연회 참석자는 『피필로티 리스트 : 하늘로 오르다展』무료 관람

2. 아트스펙트럼 참여 작가 인터뷰 상영 아트스펙트럼 참여 작가의 작품 세계를 심층있게 이해할 있도록 8명의 작가 인터뷰 동영상 상영 기간 / 8월21일(화)~9월16일(일) 장소 / 리움 키즈 & 패밀리 워크샵 룸





아트스펙트럼 2012




ARTSPECTRUM 2012展 2012_0719 ▶ 2012_0916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2_0718_수요일_05:00pm

참여작가 김아영(영상)_김지은(평면/설치)_배찬효(사진)_옥정호(사진/영상) 장보윤(사진/설치)_전소정(영상)_최기창(설치/영상)_한경우(설치/영상)

관람요금 아트스펙트럼 2012展_일반 6,000원/초중고생 4,000원 상설전_일반 10,000원/초중고생 6,000원 Day Pass(상설+기획전 패키지)_일반13,000원/초중고생 8,000원 * 예약제 없이 편리하게 Leeum을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 20인 이상 단체 예약 필수(관람료 할인)

관람시간 / 10:30am~06:00pm / 월요일 휴관

삼성미술관 리움 기획전시실 Samsung Museum Of Art Leeum 서울 용산구 한남동 747-18번지 Tel. +82.2.2014.6900 www.leeum.org



삼성미술관 Leeum은 2012년 7월 19일(목)부터 9월 16일(일)까지 한국미술 기획전 『아트스펙트럼 2012(ARTSPECTRUM 2012)』을 개최한다. 삼성미술관 Leeum의 격년제 신진작가 기획전『아트스펙트럼』은 한국 현대미술의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조망하고자 기획된 전시로 2001년 호암갤러리에서 시작한 이후 올해로 4번째를 맞이한다. ●『아트스펙트럼』전의 참여작가는 삼성미술관 Leeum 큐레이터들이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시각과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작가를 추천하여 선정하였다. 연령, 장르, 주제 등 특정한 기준과 제한을 두지 않고 그 간의 전시 활동과 향후의 성장 가능성에 중점을 두었으며 특정 주제를 설정하지 않음으로써 더욱 열린 시각으로 현대 미술의 다양성과 각 작가의 개별적인 개성이 부각될 수 있도록 하였다. ● 금년에 선정된 작가는 총 8명으로 김아영(1979년생, 영상), 김지은(1977년생, 평면/설치), 배찬효(1975년생, 사진), 옥정호(1974년생, 사진/영상), 장보윤(1981년생, 사진/설치), 전소정(1982년생, 영상), 최기창(1973년생, 설치/영상) 한경우(1979년생, 설치/영상)가 참가한다. 8인의 작가들이 개인의 정체성에서부터 역사적인 사건까지의 서로 다른 주제를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여 공간을 활용한 이번 전시는 사진, 설치, 영상 등을 하나의 전시로 보여 주어 동시대 한국 미술의 현황을 보여 주고 향후 미래의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 이번 『아트스펙트럼 2012』은 리움 큐레이터와 참여 작가들간의 주제 선정 및 전시 구성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이루어졌으며 이를 통해 작가들이 경험의 폭을 넓혀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한 토의와 앞으로의 방향을 타진함으로서 세계적인 작가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또한 변화진행형인 한국 현대미술을 한 눈에 살펴보고, 우리 현대미술을 이끌어 갈 생기발랄하고 역동적인 힘을 읽어 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김아영_PH 익스프레스(PH EXPRESS)_2채널 비디오, 스테레오 사운드_00:31:00_2011
김아영_PH 익스프레스(PH EXPRESS)_2채널 비디오, 스테레오 사운드_00:31:00_2011

김아영(1979년생, 영상) ● 김아영은 신작에서 개항기에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외교문서와 대중매체 기사들을 활용해서 영상작업으로 재구성하였다. 작가가 영미권 배우들을 섭외하여 연출한 거문도 사건은 서구의 입장에서 기록한 자료를 소재로 한 탓에 우리나라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외국인들이 주인공이 되는 묘한 상황을 이끌어 낸다. 작가는 130년 전 영국해군이 거문도를 점령한 역사적인 사건을 영상과 자료는 물론이고 당시의 군함을 연상케 하는 대규모 건축공간으로 구성함으로써 관객이 과거를 새롭게 느끼도록 하였다.
김지은_어떤 망루(Some Watchtower)_무늬목 시트지_1190×527cm_2012
김지은_비계 덩어리(Mass of Scaffolding)_대나무 꼬치, 빵끈, 메탈 시트지_400×600×600cm_2012

김지은(1977년생, 평면/설치) ● 인간의 삶은 천체와 우주같은 거대한 개념이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건물과 구조들 속에서 이루어지며, 특히 도시라는 환경은 인간의 편의를 위한 시설이자 우리의 삶을 결정짓는 삶의 요인이 되어간다.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쉴새 없이 변화하는 한국의 도시는 김지은에게 인간이 만든 환경과 그 이면의 제도, 욕망 등에 대한 안목을 열어 주었다. 공사장의 미완성과 무질서는 일시적인 현상일 수 있지만 끊임없는 도심개발과 재건축으로 인해 반복되는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이런 구조물들은 또한 보이지 않는 규제를 통해서 은밀한 통제와 감시, 그리고 이에 대한 저항과 항거가 반복되는 사회적인 구조를 반영하고 있다.
배찬효_의상 속 존재 - 앤 불린(Existing in Costume Anne Boleyn)_C 프린트_230×180cm_2012
배찬효_의상 속 존재 – 신데렐라(Existing in Costume Cinderella)_C 프린트_180×230cm_2008

배찬효(1975년생, 사진) ● 배찬효는 영국에서 유학하면서 동양인으로서 느낀 문화적인 차이들을 작가 자신이 연출하여 촬영하는 사진작업 속에 녹여 냈다. 서양동화나 미술사 속 초상화의 여주인공으로 분하여 스스로를 중심인물로 만든 남성 작가의 모습은 그 어색한 부조화 때문에 우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온 서구 시각문화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2012년 신작인「형벌」시리즈는 과거 영국 절대왕정을 배경으로, 궁정여인들의 삶과 죽음을 가부장적 계급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고난과 처벌이라는 맥락에서 풀어낸다. 그러나 중심에 여전히 서구사회에서 타자이자 남성인 작가가 서 있어서 이 이야기들에 반전을 이끌어 낸다.
옥정호_서서 활 자세-단다야마나 다누라사나(Standing Bow Pulling Pose-Dandayamana Dhanurasana)_피그먼트 프린트_127×152cm_2011

옥정호(1974년생, 사진/영상) ● 코믹한 풍자와 조롱으로 한국사회의 솔직한 단면을 드러냈던 옥정호는 최근 '요가 퍼포먼스'라는 색다른 자기 수행적인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작가가 소재로 삼은 요가의 이국적인 자세들은 정신적인 영역에 도달하려는 수행이지만 동시에 코믹한 이질감을 자아낸다. 양복을 입은 작가가 힘들게 취하는 요가 동작들은 뻘밭이라는 뜬금없는 배경과 충돌하여 희극적인 효과를 불러오지만, 이는 자신의 내면을 가다듬고 세계를 포용하고자 하는 예술의 목적과 맞닿아 있는 것이기도 하다. 신작에서 낚시터나 홍대 앞같이 일상적 배경들 앞에서 작가가 취하는 태양예배 자세는 고대 자연숭배의 흔적이자 요가의 가장 기본자세 중 하나이지만, 그 내용을 이해하기 전에 허망한 웃음을 먼저 불러오는 것이다.
장보윤_천년 고도(A Capital City of a Thousand Years)_디지털 프린트_2012
장보윤_천년 고도1(A Capital City of a Thousand Years)_디지털 프린트_2012

장보윤(1981년생, 사진/설치) ● 장보윤은 다른 사람들이 버린 사진을 통해서 우리의 공통된 기억을 탐구한다. 작가가 모은 사진들은 무명의 사람들이 간직해 온 과거의 추억들이 담긴 시대의 자료이다. 경주는 한국 고대역사의 중심지이지만 해외여행 자율화 이전시대의 사람들에게는 수학여행과 신혼여행이라는 이중의 통과의례 공간으로서 더 큰 의미를 가진다. 풋풋한 학생들과 젊은 신혼부부들은 서로의 모습과 경주의 유명관광지를 기억으로 남기기 위해 포착하였지만 결국 소중한 순간을 담은 사진은 버려지고 만다. 작가는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남긴 개인적인 흔적을 통해서 실체를 잡기 힘든 허망하고 아련한 공동의 추억들을 보여 준다.
전소정_어느 미싱사의 일일(A Day of a Tailor)_단채널 비디오, 스테레오 사운드, 컬러_00:08:55_2012
전소정_어느 미싱사의 일일1(A Day of a Tailor)_단채널 비디오, 스테레오 사운드, 컬러_00:08:55_2012

전소정(1982년생, 영상) ●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오가는 특별한 개인의 이야기들은 우리의 관심을 잡아끌게 된다. 우리가 존재하는지도 모르던 특이한 기술과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서 전소정은 그 인물을 둘러싼 아우라가 예술의 경지에 이른 장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작가는 일상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영상작업으로 만들어 왔다. 작가가 촬영하고 편집한 줄타기 명인, 손자수 장인, 영화 간판장이의 이야기들은 이제는 잊혀져 가는 기술을 꾸준히 연마하는 이들을 다루면서 이 속에서 다다를 수 없는 이상을 좇는 예술가의 태도와 연결점을 찾고 있다.
최기창_아이 콘택트(Eye Contact)_2채널 비디오 설치, 랜덤 반복 재생_2012

최기창(1973년생, 설치/영상) ● 최기창은 눈에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로 엮여 있는 사건들을 작품으로 재현한다. 무작위적으로 선택된 상대방과 눈싸움을 하는 사람들의 시선들에서부터 신문 운세란의 단어들이 만들어 내는 조합은 이유없는 우연으로 이루어진 세상을 비추어 준다. 작가는 불가해한 세상을 조명하여 우연의 연속인 우리의 존재 자체를 더 분명히 보여 준다. 천체 속에서 움직이는 별의 모습과 행로, 지구가 태양을 도는 날짜 수와 연결되는 텍스트의 행렬들은 나름의 우주적인 질서를 따르지만 우리는 결코 그 의미를 전부 파악할 수 없다. 생의 마지막까지 존재의 의미를 결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인간에 대한 반추의 결과들이다.
한경우_46인치 모니터 10배 크기의 축구장(Ten 46 Inch Monitor Size Soccer Field)_비디오 반복 재생, 모니터_200×290×20cm_2012

한경우(1979년생, 설치/영상) ● 한경우의 작품은 관객을 작품내부로 끌어들여 그들의 인식을 바꾸어 놓는다. 벽에 걸린 회화와 전시장에 놓인 테이블은 관객이 다가가서 보았을 때 이들을 포착하는 카메라의 눈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추상회화를 닮은 흑백 캔버스 앞에 선 자신의 모습이 텔레비전 노이즈 화면 안의 인물로 등장하고, 자석으로 왜곡되는 TV화면 속에서 휘어진 테이블이 바로 교정되어 보일 때 관객들은 매일매일의 시각경험 속에서 일어나는 불일치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고정관념을 뒤흔드는 경험을 통해 우리는 바로 눈앞에 보이는 현실이 얼마나 불확실한 토대 위에 있는지를 다시 깨닫게 된다. ■ 구경화

전시 프로그램 1. 전시 연계 강연회 - 한국 현대미술의 세대 변환: 2000-2012년 (임근준, 미술 평론가) - 2012 아트 스펙트럼 (구경화, 삼성미술관 Leeum 책임연구원) 일시 / 7월19일 (목) 02:00pm~04:00pm 장소 / 리움 강당 신청 기간 / 7월3일~7월20일 신청 대상 / 일반인 200명(선착순 마감) 신청 접수 / www.leeum.or.kr 신청 문의 / 02)2014-6900 * 강연회 참석자는 『아트스펙트럼 2012』무료 관람

2. 아트스펙트럼 참여 작가 인터뷰 상영 아트스펙트럼 참여 작가의 작품 세계를 심층있게 이해할 있도록 8명의 작가 인터뷰 동영상 상영 기간 / 8월21일(화)~9월16일(일) 장소 / 리움 키즈 & 패밀리 워크샵 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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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확장




Photo Transgression展 2012_0712 ▶ 2012_0824 / 월요일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1부 / 2012_0712 ▶ 2012_0731 참여작가 / 박승훈_이형욱_원성원_주도양 2부 / 2012_0804 ▶ 2012_0824 참여작가 / 김시연_김아영_유현미

후원,협찬,주최,기획 / 한국문화예술 위원회_운생동건축사사무소㈜_월간 객석_갤러리정미소

관람시간 / 11:00am~07:30pm / 월요일 휴관

아트스페이스 갤러리 정미소 ART SPACE GALLERY JUNGMISO 서울 종로구 동숭동 199-17번지 객석빌딩 2층 Tel. +82.2.743.5378



예술의 영역에서 새로운 지형도를 만드는 사진 ● 최근 사진은 사진자체의 기능뿐 아니라 다양한 예술영역에서 사용되고 이용되고 있다. 이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사진매체에 대한 자연스러운 현상이 경제, 사회현상뿐 아니라 예술에서도 폭 넓은 개념으로 인식되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사진의 역사에서는 '스트레이트 사진'과 '메이킹 사진'을 가지고 논의되었다고 한다면 최근에는 더욱 다양한 개념과 작품으로 사진의 경향을 설명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따라서 회화, 조각, 설치, 영상등을 다루는 예술가들은 사진기술을 사용하여 최종결과물을 산출하고 있으며, 이러한 양상은 사진의 개념을 과거보다 더욱 확장시키고 있다.
박승훈_TEXTUS 034-1_디지털 C 프린트_175×218cm_2010
이형욱_Kolapact_포맥스에 디지털 프린트_70×140×70cm_2009
원성원_일곱 살-갈매기와 배꽃 나무 일곱 살-가벼운 가출_C 프린트_123×170cm_2010
주도양_Omniscape18_Watercolor on Somerset Textured_108×108cm_2011

이번 전시는 위와 같은 현상과 맞물려 사진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예술현상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지도화 되는지에 관한 양상을 기록하고 압축시키려는 목적이 있다. 최근 변형된 사진의 현상이 어떠한 작가군으로 설명될 수 있는지에 관한 메핑 작업을 서두로 사진에서 보는 최신 경향들뿐 아니라 미술계에서 보는 사진의 시각을 다룰 예정이다. 순수사진작가들이 사진을 이용하는 것만큼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 특히나 설치, 조각, 회화작가들도 사진의 개념을 적극 활용하여 자신의 작품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김시연
김아영_Still cut from Every North Star Part II_단채널 비디오_2010
유현미_그림이 된 남자_C 프린트_180×249cm, Edition 1 of 3_2009

사진의 본래적 의미와 회화의 속성에 천착한 유현미, 사진이라는 평면성에 반하여 입체물로서의 사진을 만들어 사진과 조각을 혼합한 이형욱, 구체적인 공간을 시간의 순으로 촬영하고, 손수 엮어서 제작하여 포토몽타주로 재구성한 박승훈, 자신만의 심리적 공간을 독특한 방식으로 연출하여 사진으로 담아내는 김시연, 실제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과 뉴스들을 사진과 영상을 통해 기록해 내는 김아영,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아날로그적인 감성으로 제작하는 사진작가 원성원, 카메라 매체의 속성에 주목하여 360도 시각이미지를 전달하는 주도양까지 최근 이들 작가들의 작품은 각각의 장르에 구애 받지 않고 제작되고 있다. 이렇듯 장르의 구분이 모호해진 예술영역 속에서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 속에서 보여지는 사진의 역할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으며, 사진매체를 어떠한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들여다 보도록 하자. ■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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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지




The Private Land展 2012_0720 ▶ 2012_0819 / 월요일 휴관



에테르_오류로의 기대감.TYPE0-10_캔버스에 혼합매체_58×100cm_2011


초대일시 / 2012_0720_금요일_06:00pm

참여작가 에테르_이지은_정혜정_마사하루 사토

관람시간 / 10:00am∼07:00pm / 토~일요일_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스케이프 GALLERY skape 서울 용산구 한남동 32-23번지 Tel. +82.2.747.4675 www.skape.co.kr



일상을 사유(思惟)하는 사유지(私有地) ● 어릴 적 누구나 한번쯤은 박스나 이불 따위로 나만의 집을 지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장롱에 들어가기도 하고 비닐을 머리에 쓴 채 잠들기도 한다. 이는 유아기에서 그치는 행동이 아니라, 자신의 고유영역을 지키고자 하는 본능에 가깝다. 그 어떤 방어기제 없이 완벽한 안락감을 갖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사실상 태어난 순간부터 외부와 타인에게 노출되며 좌절된다. 작가 에테르, 이지은, 정혜정, 마사하루 사토(Masaharu Sato)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일상 영역을 '자기만의 방'과 '그 외 세계'로 집요하게 분리시켜 그러한 욕망을 지속시켜나간다. 사적 영역을 지키고자 하는 이들의 욕구가 인간의 본능이지만 영역이 구축되는 형식이나 명분, 그 본질 및 내막의 성격은 창작자로서 모두 다르다.
에테르_오류로의 기대감.TYPE0-16_캔버스에 혼합매체_47×60cm_2012

에테르의「오류로의 기대감(Anticipation of an Error)」연작은 13세기의 서양 문학을 대표하는 단테가 사후 세계를 상징적으로 다룬 『신곡(La Divina Comedia)』을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이다. 서른다섯 살 단테가 길잡이 베르길리우스의 인도로 지옥, 연옥, 천국을 여행한다면, 단테와 같은 나이인 작가는 작은 방 안에 누워 베르길리우스와 함께 망상의 사유를 시작한다. 시야에 보이는 칫솔, 면도기, 운동화 같은 사물들이 의인화되고 바닥, 옷장, 창문은 중세 시대 양식으로 변한다. 벽은 리투아니아어와 라틴어로 쓰인 해독 불가한 시각적 텍스트와 자신의 상으로 겹겹이 메워진다. 그림이 주는 시각 표현들은 앙리 르페브르가 그의 저서『현대 세계의 일상성(Everyday Life in the Modern World)』에서 '일상성을 사물의 정돈, 분류, 결합에 따라 인격화되기도 하고, 현실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정의하는 지점'과 맞물린다. 반면 그 이면은 단테가 지옥과 연옥에서 겪은 일련의 감정들과 같은 삶과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고독으로 가득 차 있다. 이는 화려한 색감과 캐릭터가 풍기는 귀여움, 어른이 미처 되지 못한 소년의 미묘한 눈빛에서 오히려 역설적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이러한 작가의 이중적인 태도를 표출해내는 시작점이자 유일한 공간이 그의 작업실이자 집이 된다.
이지은_팝콘 토끼_혼합매체_가변크기_2010
이지은_복숭아 남자_혼합매체_가변크기_2012 이지은_복숭아 남자_종이에 먹지_18×14.8cm_2012

이지은은 주변에서 쉽게 소유할 수 있는 장난감을 혼성, 변종, 결합, 해체시켜 하이브리드 장난감 군대를 만든다. 이 군대의 최종 목표는 지구에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를 제거하는 것이다. 그런데 작가의 지휘와 통제 하에 움직이는 이 부하들이 정말 세계를 정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물속에서 활동하는 히틀러를 닮은 다이버틀러, 빗으로 정전기를 일으켜 만들어진 에너지로 머리를 가격할 수 있는 주걱, 엉덩이에서 팝콘을 쏟아내는 토끼 등이 다소 엉뚱하고 귀엽게만 보인다. 작가는 장난감의 이러한 특성을 작전으로 삼아 강박적으로 반복 드로잉하여 이들의 기능을 전략적으로 노출시킨다. 벽 틈, 의자 밑, 테이블 모서리와 같은 일상 곳곳에 숨어있는 이들을 손가락으로 집어 무심코 주머니에 넣는 순간 인간을 향한 공격은 시작된다. 세계가 사라질 때 자신 역시 사라지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작가의 허무주의적 시선은 잔뜩 날이 서있다. 동시에 작고 만만해 보이는 존재들에게만 힘을 실어주는 천진난만하고 여린 동심이 느껴진다. 그렇게 그는 오늘도 어떤 정복을 꿈꾼다.
정혜정_눈알해파리와 함께 하는 촉촉한 여행_디지털 애니메이션_00:03:00_2012

보석갈귀어, 턱장어, 눈깔주머니, 이두꿀꿀 멍게라는 이름을 가진 괴이한 생명체들이 사는 바다가 있다. 그리고 그 바닷속을 유유히 헤엄치는 소녀. 소녀는 한 명이지만 여러 명이 되어 구석구석 궁금한 곳 어디든 볼 수 있는 분신술을 겸비하고 있다. 작가 정혜정은 그 소녀이자 바다 세계를 창조한 장본인이다. 스쿠버 다이빙을 8년간 지속한 실제 경험은 물의 깊고 어두우며 고요한 성질을 응축해내고, 그 속에 사는 다양한 바다 생물들은 초현실적인 심리와 만나 인체와 결합하여 모호한 성별을 띤 존재들로 재 가공된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눈알해파리와 함께하는 촉촉한 여행」과「섬」외에 인도, 모로코에서 모은 수집물로 만든「WWW(World Wide Wander)」프로젝트, 그리고 제네바를 다녀온 후 현재 진행 중인「Rainbow 7 brothers」작업에서도 보이듯, 작가는 낯선 장소의 공간을 자신만의 장소성(Placeness)으로 실재화시킨다. 대부분의 작업들은 마치 자신이 이 세계를 발견한 매개자인 척 카메라의 시선을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구사된다. 혹은 가상의 인물이 그 세계를 관찰, 기록하거나 실재 인물들과 혼재돼 있다. 이는 환상을 실재로 만들기 위한 방법이며 이렇게 만들어진 실재가 경험 없는 '단순한' 상상에 잠식당하지 않게 만드는 작가의 객관적인 의지로 볼 수 있다.
마사하루 사토_Reading_람다 프린트_100×150cm_2010

마지막으로 일본 작가 마사하루 사토의 애니메이션「Calling」은 세밀하게 묘사 된12개의 장소, 그리고 그 장소에 놓인 12개의 전화기가 끊임없이 전화벨을 울리며 전후 구분 없이 루핑되는 작업이다. 얼핏 우리의 일상생활과 별 다를 바 없는 장소로 보이지만 전화를 받는 이가 아무도 없는 텅 빈 사무실, 의자, 침대, 도로, 공원임을 곧 알게 된다. 작가는 자신이 만들어낸 그 풍경들을 "빈 세계"라고 표현하는 데, 여기서 전화기는 이러한 빈 세계를 상징하는 매질이 된다. 스쳐가는 풍경을 치밀하게 묘사함으로써 실재 너머의 극실재(Hyper-Reality)를 구현하는 그의 작업은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가 개념화한 시뮬라크르적 환상을 연상시킨다. 비현실적 이미지가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라 원래의 현실이 소멸되어버리고 실재라고 믿었던 일상과 일상적 오브제들은 텅 빈 상태로 남겨지게 되는 것이다.「Calling」에서 전화기가 그 세계를 상징하는 오브제라면 디지털 페인팅「Daylight」에서는 풀숲을 비추는 스포트라이트,「Reading」에서는 불이 붙어 타오르고 있는 노트가 그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사하루 사토_Daylight_람다 프린트_80×120cm_2009

전시에 모인 네 작가는 공통적으로 동시대적이며 공적인 영역으로부터 한 발짝 물러서 거리두기를 시도한다. 그로 인해 나타나는 이들의 관조적 태도는 히키코모리나 아웃사이더, 염세주의자를 연상케 하지만, 사실상 거리두기를 위해 쌓은 벽은 자신의 내적 욕구를 투영할 수 있는 바깥이 비춰지는 영화 스크린과 같다. 반투명의 거대한 스크린 위에 자신들이 구조화한 일상을 오버랩 하여 타인들에게 보이게 하고픈 욕망은 유아기적 쾌락과 유희를 동반한 소년, 소녀의 에고에 가깝다. 이러한 은밀한 놀이 행위는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어린 아이 같은 고집으로 시대를 사유하고자 하는 작가적 생존을 위한 전략으로도 작용된다. 다시 말해 주류 사회, 주류 미술에서 요구하는 시스템에 발맞추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존립 근거를 마련하고 '사회적 죽음'에 쉽게 희생되지 않고자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결국 이들의 미스터리하고 수수께끼 같은 사유지에 초대받은 순간부터 우리는 끊임없이 이들을 보호하고 응원하게 된다. 자칫 잘못 손대면 박스로 만든 집이 부숴질까 걱정하며, 이불 속 공간이 헝클어질까 두려워하며 살금살금 발을 들여놓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전시는 그들이 치밀하게 조적(朝敵)해 만든 또 하나의 세계, 그 안쪽을 들여다보고자 벽돌 하나를 조심스럽게 빼내는 작업 과정이라 할 수 있겠다. ■ 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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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꽃 Les fleurs s’épanouissent en pleurs...


박은영展 / PARKEUNYOUNG / 朴恩英 / mixed media theater 2012_0723 ▶ 2012_0728


박은영_눈물꽃 시리즈_스톱모션 애니메이션_00:03:00_2012 (무브먼트_마마정 김)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91007i | 박은영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2_0723_월요일_05:00pm

미디어 극『눈물꽃』 Conception/Direction / 박은영 Cast / 서승아(부토)_마마정 김(현대무용)_주재환(화가) Lighting Designer / 김철희 Costume / 양재영 Camera / 유신성_서윤아 Sound / Taca Shimizu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주말,공휴일_10:00am~05:00pm

한전아트센터 갤러리 KEPCO ARTCENTER GALLERY 서울 서초구 쑥고개길 34 Tel. +82.2.2105.8190~2 www.kepco.co.kr/gallery


Les fleurs s'épanouissent en pleurs...-회읍(?泣) 속에 꽃이 피다... ● 분명 박은영의 작품, 정원에는 생화도 없고 만져볼 수 있는 진짜 꽃다발도 없다... 그러나 진짜 꽃이나 꽃다발이 없다는 것-작품「액체적 재(灰)」에서 보게 되는 꼿꼿이 정렬되어 있는 인조 해바라기를 콕 집어 말하는 것은 아니다-은 말라르메 작품 속에 나오는 장미의 부재처럼 그들의 부재-어떤 꽃다발도 없음-가 주의 깊고 치밀하고 몽상적인 이 젊은 예술가 자신의 작품 속에서, 소르본에서 훌륭히 학업을 마치고 2007년 조형예술 박사학위를 받을 때 지도교수 및 논문심사까지 맡는 영광을 내게 주었던 작가의 섬세하고도 날카로운 작품 속에서 계속 살아 숨쉬고 눈물겹도록 아름답게 피어난다. 독창적인 창작과 이론화 과정을 멋지게 조우시킨「비디오 혼성, 액체적 재(灰)」라는 제목의 논문은 이미 전반적인 그의 예술 세계를 한 눈에 보여준 것으로 서울에서 4년간 "서양화" 교육을 받은 후 1999년부터 파리에서 곧바로 시작했던 대학과정을 결산하는 것이었다. 박은영은 철저하고 뛰어나며 영감이 풍부하고 자신의 창작행위에 극도로 명철한 견해를 부여하는 조형예술가이다. 이 작가는 자신이 완벽하게 알고 있고 현대미술의 영역에 속하는 대담하고 독창적인 작품을 만드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며 이 영역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그 안에서 성장할 줄 안다.
박은영_눈물꽃 시리즈_스톱모션 애니메이션_00:03:00_2012 (무브먼트_마마정 김)

그렇기에 실제적인 꽃과 꽃다발의 부재, 실존하지 않는 꽃과 꽃다발의 역설적이면서도 감탄할만한 존재 속에 피어나는 부재를 표현한 박은영의 작품은 진정한 예술작품이기에 "표현의 대상이 된 사물은 전혀 예찬하지 않으면서 그 사물과 유사하다는 이유로 회화는 찬사를 받다니." 라고 했던 파스칼의 명언에 제대로 들어맞는 경우라 할 수 있다. 비록 예술이 우리에게 단지 모사, 유사물 혹은 이상화된 허구에 지나지 않는 상상의 꽃을 찬미하게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안에 야기되는 찬미가 다른 곳에서 생화를 마주했을 때 느껴지는 찬미와 양립될 수 없는 것이 아니기에, 예술의 그 거만함을 전혀 탓할 수 없음을 명확히 지적하여 파스칼 사상의 뉘앙스를 표현해야겠지만 말이다. ● 그러나 박은영은 자신의 꿈, 상상, 환상의 비현실성을 구현하고자 열정적으로 몰두하는 진정한 창조자이며 자신이 만든 예술적 정원에서 전혀 뽐내지 않으면서 자기 꽃의 비현실성, 즉 아주 현실적인 작품의 비현실성을 보여주고 그 아름다움이 우리 내부에서 흐느끼게 만드는, 시(詩)의 눈물이 흐를 정도로 감동을 주는 진정한 창조자이다.
박은영_눈물꽃 시리즈_비디오-부토_00:20:00_2012 (부토_서승아)
박은영_눈물꽃 시리즈_비디오-부토_00:20:00_2012
2012.07.17 15:40:22 / Good : 291 + Good

zabel

  • 작성시각: 2012.07.24 18:3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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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ière-noir: FACADE








신선주展 / SHINSUNJOO / 辛善珠 / painting 2012_0712 ▶ 2012_0724





신선주_FACADE-Santo Agostinho_캔버스에 오일파스텔, 새김_150×150cm_2012_부분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11016a | 신선주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24시간 관람가능

갤러리 현대_윈도우 갤러리 GALLERY HYUNDAI WINDOW GALLERY 서울 종로구 사간동 80번지 Tel. +82.2.2287.3500 www.galleryhyundai.com





신선주 작가의 작품은 놓여있는 사물 혹은 풍경으로써의 대상을 캔버스 위에 흑백재현 한다. 작가가 관심 있게 공부해온 사진과 회화, 사실과 재현, 객관과 주관 같은 것들의 관계성을 탐구하며, 마치 흑백사진과도 같은 작품 속의 사실적 표현과 함께 관객으로 하여금 실재하는 것의 실체와 재구성된 화면의 실체를 동시에 보여준다.
신선주_FACADE-Santo Agostinho_캔버스에 오일파스텔, 새김_150×150cm_2012
신선주_Manière-noir: FACADE展_갤러리현대_윈도우 갤러리_2012

『Manière-noir: FACADE』이라는 타이틀로 뉴욕, 베이징 등 자신이 머물렀던 문화와 지역성을 지닌 주변의 건축물을 캔버스에 새겨 온 작가는, 최근작인「FACADE-Santo Agostinho」를 선보인다. 현대건축, 동양전통건축에 이어 바로크건축물 외관이 가지고 있는 유려한 디테일과 질감, 구조성 등이 강조된 서양의 전통양식을 띤 건축물의 재현을 새로이 시도한다. '얼굴'이라는 의미를 지닌 'FACADE'라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정면성과 대칭성이 강한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을 화면중앙에 배치하여 건물이 놓여진 위치적인 특성은 사라지게 되고, 그것이 개성이 담긴 외모(혹은 실체)는 더욱 강조된다. 이와 더불어 긁어내기 기법과 흑백 모노톤의 스펙트럼의 섬세하고 집중력 있는 묘사는 대상을 더욱 깊이 있게 바라보려는 작가의 통찰력을 볼 수 있게 해준다. ■ 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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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갤러리룩스 신진작가지원전








2012_0725 ▶ 2012_0904









김태동展 / 2012_0725 ▶ 2012_0807 초대일시 / 2012_0725_수요일_06:00pm

박정표展 / 2012_0808 ▶ 2012_0821 초대일시 / 2012_0808_수요일_06:00pm

박정근展 / 2012_0822 ▶ 2012_0904 초대일시 / 2012_0822_수요일_06:00pm

주최 / 갤러리 룩스 후원 / 고은사진미술관 협찬 / 토요타포토스페이스_그린아트_종이에그린_신지스튜디오클럽_포토플러스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일,공휴일_11:00am~07:00pm / 마지막 화요일_10:00am~12:00pm

갤러리 룩스 GALLERY LUX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5번지 인덕빌딩 3층 Tel. +82.2.720.8488





2012 갤러리룩스 신진작가 공모전 심사평 ● 이번 갤러리룩스의 신진작가공모전에는 모두 102명의 포트폴리오가 접수되었다. 이중에서 어렵게 3명을 선정했다. 아쉽게도 막판까지 경합하다 선정에서 제외된 몇몇 이들은 작품성은 뛰어난 편이지만 이미 여러 군데서 선정되거나 몇 번의 개인전을 치뤄 낸 이들, 그리고 올해 이미 전시가 잡혀있는 경우라서 제외되었다. 이 공모전의 의미가 가능한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고자 하는 것이기에 가능한 신선하고 낯선 얼굴, 작품을 대상으로 심사를 했다. 그리고 이 공모전이 사진 작업에 국한하고 있기에 그와 무관한 작품들은 배제했다. 작가들이 공모전의 요강을 잘 숙지해서 출품해주었으면 한다. 심사를 통해 3명이 작가를 선정했다. 김태동과 박정근, 박정표가 그들이다. 모두 상당한 기량을 갖추었고 꽤나 까다롭고 힘든 작업을 지속하고 있는 정성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김태동_Day Break-018_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_100×125cm_2011
김태동_Day Break-033_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_100×125cm 2011
김태동_Day Break-034_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_100×125cm 2011

김태동과 박정근은 인물사진작업인데 둘 다 모두 특정 공간에 놓인 사람을 대상으로 했다. 전자가 불 특정한 도시인을 도시의 후미진 공간이나 사각지대에 고립시켜 놓고 어두운 밤을 배경으로 해서 촬영했다면 후자는 배경과 인물(나신의 자화상)을 모두 멀리 위치시켜 놓아 그로 인해 벌어진 거리 속에서 인물의 고독함과 결별의 내음이 강하게 환기되는 작업이었다. 탄탄한 기량으로 공간과 그 공간에 놓인 인간의 관계를 질문하는 동시에 명암의 대비로 심리적 정서를 자극하고 주어진 삶의 환경으로부터 부단히 겉돌거나 소외된 존재에 대한 성찰을 암시하는 작업들이다. 아쉬울 수 있는 상투형을 단단한 조형감각으로 비껴서고 있다.
박정표_See, Sea #01_아카이벌 잉크젯 프린트_196×140cm_2010
박정표_See, Sea #12_아카이벌 잉크젯 프린트_196×140cm_2011
박정표_See, Sea #13_아카이벌 잉크젯 프린트_196×140cm_2011
박정근_이다..혹은..였다#1_아카이벌 잉크젯 프린트_66×100cm_2009
박정근_이다..혹은..였다#11_아카이벌 잉크젯 프린트_66×100cm_2011
박정근_이다..혹은..였다#13_아카이벌 잉크젯 프린트_66×100cm_2011

박정표의 바다사진은 기하학적 분할과 단순성 속에 바닷물의 신비한 색채를 눈부시게 안긴다. 아름다운 사진이다. 익숙한 화면이지만 완성도 높은 솜씨가 엿보인다. 선정된 세 명의 작가들에게 축하를 보내며 앞으로의 정진을 기대한다. 아울러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이 공모전을 통해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고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어 한국 사진계에 커다란 의미를 만들어 내고 있는 갤러리룩스에도 감사를 드린다. ■ 박진영_박영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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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유영운展 / YOOYOUNGWUN / 劉永雲 / sculpture   2012_0725 ▶ 2012_0813




유영운_이소룡_잡지, 전단지, 텍스트, 인쇄물, 스티로폼_187×85×85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91111g | 유영운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2_0725_수요일_05:00pm

기획_인사아트센터

가나아트 스페이스 GANA ART SPACE 서울 종로구 관훈동 119번지 Tel. +82.2.734.1333 www.insaartcenter.co.kr




인사아트센터는 미디어가 만들어낸 우상들이나 캐릭터들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한 조각가 유영운(1972~ )의 개인전을 가나아트스페이스 제1전시장과 제2전시장에서 개최한다. 캐릭터들은 미디어라는 매체를 통해 대중에게 소개되고, 대중들은 다시 매스미디어에 세뇌당하며 생활하고 있는 현대인들의 일상을 돌이켜 생각해 보게 한다. 매스미디어를 통해 만들어진 실재나 캐릭터들 속에서 생활하는 현대인들은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미래까지 꿈꾸었다. 오늘날 대중매체는 우리 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대중매체가 가지는 강력한 암시효과는 우리들의 삶에 직접적, 간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이에 작가는 당대 유명한 인물이나 실존하는 인물, 고전작품의 캐릭터들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하였다.
유영운_마릴린 먼로_잡지, 전단지, 텍스트, 인쇄물, 스티로폼_186×85×85cm_2011

당대 최고의 액션배우이자 무술가였던 이소룡을 배불뚝이 동네 아저씨로, 지하철 환풍기로 유명한 육감적인 몸매의 섹시 아이콘인 마릴린 먼로를 머리큰 땅달보로,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를 고전작품의 캐릭터인 손오공으로 표현하였다. 그 시대의 아이콘인 이들을 작가는 대중들의 웃음을 자아냄으로써 매스미디어를 비판하고 있다. 작품들은 잡지, 전단지, 텍스트의 종이의 재료로 제작되었는데 이는 매스미디어인 인쇄물로 알려지고 만들어진 캐릭터와 영웅들을 다시 인쇄물의 재료로 이들을 소개함으로써 작가는 대중매체를 통해 거꾸로 매스미디어가 만들어낸 캐릭터를 우스꽝스럽게 재현함으로써 현재 우리 모습을 되짚어 보고자 한다. 전시는 가나아트스페이스 7월 25일부터 ~ 8월 13일까지 제1전시장과 제2전시장에서 3주일간 진행된다. ■ 최윤이
유영운_손오공_잡지, 전단지, 텍스트, 인쇄물, 스티로폼_260×193×157cm_2011

매스 미디어라는 사회적 존재에 관한 성찰 유영운은 종이에 인쇄된 이미지와 텍스트들을 이용한 캐릭터 조각을 가지고 사회적 존재로서의 매스 미디어를 물질적 실체로 포착한다. 유영운의캐릭터조각은 인쇄물이라는 물질로 부터 출발했다. 그는 잡지와 전단지 같은 인쇄물을 매스 미디어의 면면을 대변하는 물질로 파악하고 그것을 캐릭터 조각의 스킨으로 사용했다. 매스 미디어가 우리에게 안겨주는 일방적인 이미지를 뒤집어보는 것이 유영운의첫출발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종이 인쇄물의 존재가 여전히 중량감 있는 미디어라는 점을 새삼스럽게 각성시킨다. 다시 말해서 디지털과 영상, 인터넷 등의 비물질적인 메커니즘들과 달리 인쇄 매체라는 올드 미디어가 여전히 우리의 일상적 소통을 지배하고 있다는 점을 일깨운다. 인쇄 매체는 근대사회를 만들어낸 결정적인 미디어이다. 인쇄 매체를 통해 대량 복제된 텍스트와 이미지들은 근대적 의미의 공공영역을 만들어낸 주역이다. 매체를 접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한 양과 질의 정보를 정기적으로, 지속적으로 주입한 인쇄 매체의 존재야말로 근대사회가 만들어낸 최상의 커뮤니케이션 메커니즘이다. 인쇄 매체의 존재는 근대를 직조해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디지털과 인터넷 혁명에 의해 제2 미디어 시대가 도래 했음에도 불구하고 인쇄매체와 같은 제1 미디어의 영향력은 우리를 깊이 감싸고 있다.
유영운_엘리자베스_잡지, 전단지, 텍스트, 인쇄물, 스티로폼_192×103×85cm_2011

유영운의 작업이 우리에게 매우 안정적인 호소력을 가지는 것도 대중적인 아이콘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과 더불어 인쇄매체의 익숙함때문일 것이다. 요컨대 유영운은 제1 미디어 시대의 물질적 기제를 가지고 제2 미디어 시대의 매스 커뮤니케이션을 성찰하고 있다. 유영운의 작품은 사회적 실재로서의 매스 미디어를 시각화함으로써 그것은 매우 구체적이며 실질적인 물질적 존재라는 점을 일깨운다. 유영운의 작업들은 주로 방송매체들을 통해 유포된 콘텐츠들을 물질화한 것이다. 미술은 물질적 소통과정을 관통함으로써 보다 더 선명하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물질로서의 미술, 우리는 그 한계를 넘어서려고 하면서도 결코 간단히 넘을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오히려 미술이 여하한 관념 세계를 명쾌하게 물질세계로 드러내는 것에 대해, 즉 불확실한 것을 확실히 존재하는 것으로 현현한다는 점에 대해 안심하고 동의를 표하는지도 모른다. 기호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일은 매스 미디어 뿐만 아니라 전시 미디어 또한 마찬가지의 일이다. 전시라는 미디어가 목표하는 바, 즉 미술작품이라는 물질과 개인의 감상행위라는 채널을 통해서 무언가 커뮤니케이션 하고자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유영운의 캐릭터인형들이 가지고 있는 메타포를 해석의 지평속에서 깊이 헤아려 볼 일이다.(2009년 전시 평론 글 중 발췌) ■ 김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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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The 12th th Seoul International NewMedia Festival 네마프 2012 NeMaf 2012   2012_0725 ▶ 2012_08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페이스북『제12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로 갑니다.

개막식 / 2012_0728_수요일_07:00pm_마포구청대강당

시상식 / 2012_0803_금요일_07:00pm_한국영상자료원 2관 폐막파티 / 2012_0811_토요일_08:00pm_공중캠프

주최 / (사)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 주관 / 서울뉴미디어페스티벌 집행위원회 후원 / 서울특별시_마포구_서울문화재단_한국영상자료원_코레일공항철도_서교예술실험센터 협찬 / Daum_BenQ_루이까또즈_DHL_Antenna shop_아담스페이스_네오룩_앨리스온

미디어극장 아이공 I-GONG Alternative Visual Culture Factory 서울 마포구 서교동 330-8번지 2층 Tel. +82.2.337.2856 www.igong.org

한국영상자료원 KOREAN FILM ARCHIVE 서울 마포구 상암동 1602번지 Tel. +82.2.3153.2001 http://www.koreafilm.or.kr/cinema




1. 뉴미디어 아트 영화제 글로컬 구애전 ● 공모를 통해 접수된 600여 편의 작품 중 50여 편의 신진 작가들의 신작을 상영, 단편 8섹션, 장편 6섹션 총 50작품 소개
김지현_요세미티와 나_00:43:48_2011 / 차지량_일시적 기업_00:60:00_2011
하준수_열두풍경_00:00:85_2010 / 젬 코헨_월가를 점령하라_00:66:17_2011

글로컬 초청전 ● 글로컬 초청전에서는 디지털 스코프, XY 글로컬 뉴미디어, 아시아 특별전-필리핀 대안영상전이 소개된다. 디지털 스코프 섹션에서는 디지털로 제작된 전세계 최근작을 중심으로 새로운 상상, 새로운 쓰임으로 제안될 수 있는 우수작품들을 선별하여 소개한다. XY 글로컬 뉴미디어 섹션에서는 슬로건에 따라 예술가와 서민들의 관점에서 보여지는 동시대의 지역성을 탐방하려 한다. 카메라라는 제3의 눈에 담긴 동시대의 지역성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던 국내외 서민들의 삶과 역사를 훑어줄 수 있을 것이다. 'Queer Can't Wait' 에서는 캐나다의 퀴어 비디오를 소개한다.
임흥순_숭시_00:24:00_2011 / 잉거 리스 핸슨_풍경여행_00:09:00_2010
존 스미스_국기의 산_00:08:00_2010 모건 M. 페이지_죽음이 어머니를 삼키다_00:07:39_ 2012

아시아 특별전 ● 올해 아시아 특별전은 필리핀의 대안영상전에 초점을 맞추었다. 필리핀 대안영상전을 통해 필리핀의 사회정치성과 더불어 미학적으로 우수한 작품을 소개함으로써 타자가 아닌 동시대의 이웃, 공동체의 시선으로 필리핀의 대안영상에 대한 이해를 돕고 아시아의 역사와 정치적 사건들에 환기를 시키고자 기획전을 준비하였다. 상영관 :
파올로 린다야_할라드_00:07:45_2011 / 얌 팔마_열망_00:00:02_2012

얼터너티브 장르전 ●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은 대안영상이라는 이름으로 영상예술의 새로운 장르를 지속적으로 제안하고 있다. 영상, 영화에는 극영화,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이 고착화되기 전부터 아방가르드 예술가에 의해 끊임없이 새로운 영상 장르들이 소개되고 발명되었었다. 기존 영화적 문법을 넘는 대안 장르를 소개하는 것은 n개의 주체 모두가 영상창작자가 될 수 있다는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바바라 헤머_마야 데렌의 싱크_00:29:00_2011 엘리샤 림, 코코 리엇_저항하는 파라다이스_00:09:00_2003
미첼로즈_수면장애 관련 사례연구_00:07:00_2002 클라라 반 굴_아킬레스_00:15:00_1995

작가특별전 (존토레스, 믹스라이스) ● 작가 특별전은 네마프가 제시하고 있는 새로운 상상, 새로운 쓰임에 부합하며 작가만의 독창성으로 기존 영상예술의 문법에 정면 도전하고 있는 작가를 소개하는 프로그램. 올해는 필리핀의 떠오르는 감독이자 자신만의 독특한 영상언어를 갖고 있는 존 토레스 특별전과 약 10여년 동안 이주노동이라는 아젠다를 행동주의 영상예술과 설치로 보여주고 있는 한국의 믹스 라이스 특별전을 소개하고자 한다.
존 토레스_토도 토도 테로스_01:42:00_2006 존 토레스_후렴은 노래속의 혁명처럼 일어난다_01:42:00_2009
믹스라이스_썸데이_00:04:42_2007 / 믹스아리스_손들_00:05;50_2005

* 작가특별전을 통해 소개되는 필리핀에서 가장 각광받는 영화작가 중 한 명인 존토레스와 아시아 필리핀 비디오아트 섹션을 큐레이팅한 작가이자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는 필리핀의 마니 몬테리바노가 진행하는 '마스터 클래스'가 7월 27일(8pm, 한국영상자료원), 7월28일(6:30pm, 미디어극장 아이공)에 준비되어 있다.
2. 뉴미디어아트 전시제 제 12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의 전시제는 『글로컬 구애전』과 『XY Glocal NewMedia 기획전』으로 구성된다. 『글로컬 구애전』은 공모를 통해 선발된 10명의 신진작가들의 11작품으로 구성되는 전시로, 영상, 미디어아트, 설치, 사운드 퍼포먼스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와 다양한 국적을 가진 작가들의 동시대 미술이 소개된다. XY 글로컬 뉴미디어 기획전 『당신의 머리 위에, 그들의 발아래』는 젊은 기획자 집단인 워크 온 워크(장혜진, 박재용)의 기획으로 기존의 미술 전시장을 벗어나 서울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 중 한 곳인 홍대입구역 지하에서 진행되며, 올해 페스티벌의 슬로건인 『XY Glocal NewMedia』와 오늘날 '도시'와 '공간', '기억'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전시이다.
글로컬 구애전 ● 네마프 그동안 구애전을 통해 다양한 형식과 내용의 미디어아트 작품을 소개해왔다. 올해 글로컬 구애전은 작품의 장르와 내용, 참여 작가의 국적과 연령 등 모든 영역에서 다양성과 다원적 경향이 두드러며, 이는 네마프의 실험적, 다원적, 참여적 정체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글로컬 구애전은 전시의 영역으로 제안될 수 있는 거의 모든 형식과 내용들이 폭넓게 제시되어, 매체의 속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탐구의 과정이 반영된 전시가 될 것이다.
참여작가 : 유동휘, 임도원, 조민지, 조인한, 차세환, 최선영, Fiona Lee, Ishihara Noriko, Tivon Rice, Zerobyte+ 작가퍼포먼스 : 2012. 7. 28(토) 6:00pm Fiona Lee 사운드 퍼포먼스                                                     최선영 DJ.papa와 DJ.daseot의 즉흥연주 퍼포먼스
유동휘_강남부자를 이겨라_Interactive Vidoe_2011 임도원_원더뷰어체험존_설치, 비디오, 퍼포먼스_2012
Fiona Lee_Delight_소리 퍼포먼스_2010 Zerobyte+_서우울의 봄-On the High//Way_단채널 영상_00:17:00_2012

XY 뉴미디어 글로컬 기획전 ● 『당신의 머리 위에, 그들의 발아래』 제12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전시 『당신의 머리 위에, 그들의 발아래』는 글로벌-로컬한 상황이 기본적인 삶의 조건이 되어버린 지금-여기에서 살아간다는 것, 도시에서의 기억과 망각, 깊이 생각하기와 때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서울이라는 도시 안에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올해 기획전은 기존의 미술 전시장을 벗어나 홍대입구역 내부의 빈 공간을 전시를 위한 일시적인 공간으로 전유한다. 전시가 열리는 곳은 2011년 예술과 사회적 이슈가 자율적으로 협력하는 방식을 보여준 두리반 칼국수 건물과 가까운 땅 아래이기도 하다. 전시 『당신의 머리 위에, 그들의 발아래』의 기획은 『흩어지는 전술 HIT and RUN』(2011) 프로젝트로 서울의 공공 공간에서 13명의 작가들과 함께 예측불가능한 작업을 펼쳤던 젊은 기획자 집단인 워크 온 워크(장혜진, 박재용)가 맡았다. 초대작가 : 권용주, 김실비, 안성석, 이정민, 정용택, 최원준, Mahardika Yuda, Harun Farocki and Andrei Ujica
하룬파로키와 안드레이 우지카_어떤 혁명의 비디오그램_01:46:00_단채널 영상_1992 최원준_1895년 3월 28일_단채널 영상_00:03:25_2012
권용주_아마추어 건축회의-머리로 힘을 쓰고_드로잉, 설치_2010 Mahardika Yudha_Sunrise Jive_단채널 영상_00:07:05_2005

* 7월 29일 일요일 3:20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하룬파로키와 안드레이 우지카의 「어떤 혁명의비디오그램」이 국내 최초로 16mm 필름으로 특별상영됩니다.
3. 대안공간 매핑 프로젝트 홍대 앞에서 활동하는 대안적인 영상문화예술단체, 대안적 인문예술 분야의 교육기관들과 함께 홍대 앞의 대안영상문화 다양화와 함께 시민과 함께 참여적 대안적인 영상문화를 만들고자 하는 프로그램이다. 홍대를 기반으로 활동했던 미디어극장 아이공, 언더그라운드아트채널과 오프도시, 요기가표현갤러리(이상 대안영상예술공간), 수유너머N, 다중지성의 정원(이상 대안적 인문예술 담론연구소), 앨리스온, 닷라인TV(대안적 미디어매체) 등 6개 단체가 참여하여 다양한 홍대 앞 문화를 소개하고, 상호간의 활동과 역사, 전망을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한다. 함께 프로그램을 공유하고, 기존의 아카이브와 활동을 일반 시민들에게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이 외에도 뉴미디어 워크샵, 야외공연과 상영, 그래피티 프로젝트 등 풍성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제12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개요 행사명 / 제12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The 12th Seoul International NewMedia Festival) 약칭 / 네마프 2012 (NeMaf 2012) 슬로건 / XY Glocal NewMedia 성격 / 국제뉴미디어 다원예술축제(부분 경쟁) 일시 / 2012년 7월 25일(수) ~ 8월 11일(토) (18일간) 장소 영화제 / 한국영상자료원, 미디어극장 아이공 전시제 / 코레일공항철도 홍대입구역, 서교예술실험센터 폐막파티 / 공중캠프_8월11일 오프도시, 요기가표현갤러리외 다수의 홍대 인근 대안공간 * 서교예술실험센터, 한국영상자료원은 매주 월요일 휴관입니다. 주최 / (사)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 행사규모 / 총 작품수 240여편/ 초정작가 200여명 / 참여국가 20여개국(예정) 공식프로그램 영화제_ 글로컬 구애전(경쟁), 글로컬 초청전, 작가특별전 전시제_ 글로컬 구애전(경쟁), XY Glocal NewMedia 기획전 대안영상문화네트워크 맵핑 프로젝트, 학술세미나, 워크숍, 공연 등

문의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Seoul International NewMedia Festival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330-1번지 2층 Tel. +82.2.337.2870 홈페이지 / www.nemaf.net 페이스북 / www.facebook.com/nemaf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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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여다 보기 LOOK INTO




성병희展 / SUNGBYUNGHEE / 成秉憙 / painting 삼청선건너_2012_0727 ▶ 2012_0810 / 월요일 휴관



성병희_눈-비-물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1×168cm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00820c | 성병희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2_0727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6:3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빔 GALLERY BIIM 서울 종로구 화동 39번지 Tel. +82.2.723.8574 www.biim.net



고통과 상처로 드러난 소녀의 초상 ● 성병희의 근작은 예전의 구체화된 인물에서 점차 상징적인 표현의 형식을 띄고 있다. 전의 작품들에서 보여지던 세부적이고 서술적인 표현 어법들은 더욱더 간단명료해지고 보다 관념적이고 상징적인 형태로 변모해 있다. 다소 역설적으로 들릴수도 있지만, 오히려 이 상징적인 표현들이, 어떤 상황이나 설명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더 명쾌하고 직접적으로 다가서고 있다. 그녀가 그리는 인간들은 늘 불안과 상처로 쫒기는 불안의 눈빛을 하고, 외부의 강압으로 침묵을 강요 당하거나 ,자신 스스로 만들어 낸 허무에 다시 잠식 당하는 불완전한 인간들을 표현해 왔다. 그들은 타인이자, 자기 자신이며,내부적 허무와 외부에서 오는 또다른 허무에 의해 무너져내리고 상처 받는 이중의 고통을 받는다.
성병희_호기심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73cm_2011
성병희_들여다보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1×168cm_2012
성병희_붉은 방석_종이에 아크릴채색, 환조_73×55×36cm_2012

이번 작품들에서는 한 소녀이자, 여인이자 인간으로서의 상처와 그 상처에서 기인한 혈흔과 고통의 흔적들이 호소하는 듯한 눈과 손을 통해서 표현된다. 마치 수화 같기도 한 손의 동작들은 몸이나 얼굴과 하나라도 된 듯이 합쳐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이를 가늠 하기 어려운-아이 같기도 하고 어른 같기도 한- 묘한 느낌의 인물들은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어둠을 은근하면서도 뚜렷하게 낱낱이 보여준다. 그러한 것을 더욱 돗보이게 하는 표현 방법으로 알비니즘(백색증)에 가까운 창백한 얼굴색과 그와는 대조적인 손과 눈의 붉은 색은 그 그림에서 무엇을 강조하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듯이 보이지만,그것은 나 이기도 하고 우리 이기도 하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것,그것이 그녀가 갖고 있는 힘일 것이다. 매우 절제되고 제한된 표현으로 오히려 더욱더 풍부한 이야기를 표현하는 역설의 방법. 그것이 지금의 그녀가 추구하는 표현 방법인 것이다.
성병희_비행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8×131cm_2012
성병희_뿔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8×131cm_2012
성병희_비행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1×168cm_2012

어떠한 시대적 상황이나 이데올로기 속에서도 그녀가 일관되게 관심을 갖고 표현하고자 한 것은 인간 이었다. 그 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구체적인 한 인물에 대한 치열한 탐구로 했었던 90년대나 자기자신의 이야기를 마치 내밀하고 구체적인 일기장을 공개한 듯 한 2010년의 작품이나 보다 관념적이고 몽환적으로 변모한 2012년의 작품이나 모두 ,이 지상의 삶을 살아가야하는 인간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끌어안고 가려는 애정어린 시선이 있다. 여러 시대적, 개인적 상황을 지나 현실적인 무게를 지니고 그 시선이 닿는 곳이 어딘지 계속 따라가 보고 싶다. ■ 류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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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mp of memory - "things"


안유종展 / AHNYOOJONG / 安唯鍾 / photography 2012_0801 ▶ 2012_0807


안유종_lump of memory-"mask"_잉크젯 프린트_130×158_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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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JH공모 작가선정 초대展

관람시간 / 10:00am~06:30pm / 일,공휴일_10:30am~06:00pm

제이에이치갤러리 JH GALLERY 서울 종로구 관훈동 29-23번지 인사갤러리빌딩 3층 Tel. +82.2.730.4854 www.jhgallery.net


사진이 근본적으로 사실에 대한 객관적 기술이라면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가공(加工)된 사진은 사실에 대한 신화적 기술이라고 생각 한다. 사진을 이용한 나의 작업들은 우리의 인식 속에서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종교와 모든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개인적 의문에서 출발한다. 나는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된 하나의 피사체를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이미지를 겹치는 작업으로 사진의 사실성을 해체하고 복잡한 패턴들로 변화 시켜 그 과정 안에서 나타나는 낯선 하지만 낯익은 무의식적 이미지에 각자의 주관적 의미를 부여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안유종_lump of memory-"mask"_잉크젯 프린트_176×120_2012

레이어에 얹혀진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된 사진들은 하나의 사건에 대한 다각적이고 다양한 관점들을 나타낸다. 이러한 사진들은 파편화된 주관적 사실들이며, 이러한 하나의 사건에 대한 관점들이 합쳐졌을 때 역사는 신화가 되고 종교가 되며 우리의 무의식을 지배하는 구속의 장이 되기도 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조작되어진 데칼코마니 된 사이 공간에 나타나는 이미지들은 보는 사람의 주관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보여 지기도 하는데 이러한 시각적 모순 상황은 우리가 역사를 인식하는 과정과 같다고 생각한다.
안유종_lump of memory-"things"_잉크젯 프린트_142×114_2012

사진은 사실성을 담보로 현실을 넘어 초현실의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다. 가상의 현실은 실재가 되고 실재는 다시 가상이 되는 현실에서 더 이상 무엇이 거짓이며 무엇이 진실인지에 대한 논의는 의미 없어 보인다. 진실은 계속 자신의 모습을 바꾸며 우리 앞에 나타나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느끼고 있는 모호함이 곧 진실에 대한 본질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보이지 않는 실체(진실)를 가시화하려는 인간의 의지는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만을 보려하는 시각의 편협성, 기억의 단편성이 만들어낸 주관적 판타지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 안유종
안유종_lump of memory-"things"_잉크젯 프린트_114×142_2012

모호함 – 궁지(窮地) ● 막다른 길목과 망망대해를 마주하는 느낌은 비슷하다고 한다. 그러나 상황은 너무나 정 반대이다. 하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이고 다른 하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이다. 작가가 사회 참여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나는 그의 그림에서 시대의 내면을 바라본다. 안유종의 작품은 '망망대해가 그려진 벽'이다. 아니 탁 막힌 벽에 드넓은 바다의 영상이 비춰지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일 것 같다. 세상은 사람들을 벽으로 내몰고 있다. 준비 안 된 자들에겐 세상은 두꺼운 벽처럼 차갑고 막막하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정체하기엔 불안이 그들을 가만 놔두지 않기에 '혹시'라는 모호한 열정으로 그 벽에 부딪친다. 아프겠지만 '긍정'이라는 마취약으로 스스로를 달래며 그 벽을 더듬는다. 세상은 그런 그들을 위로하기 보다는 오히려 벽을 보지 말고 그 너머를 보라며 그들의 얼마 안 되는 쌈지 돈에 빨대를 꽂는다. 꿈을 이용한 마케팅은 자기소모적 생태계를 만들며 그렇게 굴러간다. 밤의 별이 더 빛나던가? 실패가 클수록 희망은 더 찬란하고 또다시 부딪칠 준비를 한다.
안유종_lump of memory-"cyclops"_잉크젯 프린트_132×99_2012

손을 뻗어 만져보면 벽인데 눈앞에는 대양이 펼쳐진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현상을 한 몸에서 느끼게 되면서 손과 눈은 협응이 되질 않고 토글 되는 의미를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들은 당황하며 침몰한다. 벽만 바라보며 얻은 근시안은 저 먼 수평선은 그저 신기루일 뿐이다. "경험을 토대로 한 기억의 기록을 역사라 한다면 역사란 다분히 주관적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우리는 역사를 객관적인 사실로 받아들이긴 어렵지 않을까. 그것은 사실을 극단적으로 과장하기도하고 왜곡되어 때로는 선전 선동의 목적으로 또는 신앙의 대상으로써 우리 앞에 진실의 가면을 쓰고 나타났다. 나는 이러한 현상을 기억의 모호성으로 부터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라고 작가는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을 기억의 모호함에 근거한다고 하고 그것을 운용하는 권력을 가지 소수가 다수를 지배해오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젠 소수에 의해 쓰여지는 그런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진실을 왜곡하는 조작의 권력은 아마도 힘없는 개인을 숙주로 삼아 정신 분열적 모험을 하는 듯하다.
안유종_lump of memory-"things"_잉크젯 프린트_114×142_2012

이제는 힘 있는 그 누군가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를 조작한다. 이율배반의 정보는 선택을 위한 결정을 한없이 유보시키고 따라서 무기력해진 개인은 사회적 위치를 상실하고 항상 궁지에 몰린다. 휴학을 연장하고, 부모의 집이 나의 평생 보금자리고, 월급을 줄여도 끈질기게 불평하며 붙어 있다. 이런 상황이 자연스러워 지고 학습되면 명쾌한 윤곽선으로 다가오는 의미는 더 이상 믿지 않게 된다. 한사람만의 조언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는다. 오히려 대상의 모습보다는 그것이 무엇을 하려는 지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 피카소는 사물의 본질을 보기위해 사물의 여러 면을 하나의 대상에 조합하여 보기에는 불편하지만 진실의 문을 열려고 했었다. 작가는 사람이 무언가를 하기 위해선 어지럽지만 정보를 중첩시켜 그 궤적이 만드는 흐름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표현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떤 사람의 모습 보다 그 사람의 행보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무슨 기업이 아니라 그 기업의 가치 변화에 더 주위를 기울인다. 주식 시세표를 보며 울고 웃는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에 의해 조작된다. 뒤샹의 미래파 중첩 이미지는 움직임의 본질을 파악하고 있지만 작가는 가치의 방향을 쫓는 사람들이 보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모호함이 몰아가는 궁지에 대한 답으로 오히려 작가는 모호한 이미지의 작품을 제시한다. 다만 보는 시각을 '관람'이 아닌 '주시'를 요구한다. 현란한 변위 속에서 중심을 잡아가고 있는 지점은 무엇인가 왜 그곳이 그 상황에서 중심이 되는가? 이번 전시도 안유종은 관객을 힘들게 한다. ■ 류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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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콤플렉스


이미정展 / LEEMIJUNG / 李美貞 / painting 2012_0801 ▶ 2012_0814


이미정_안녕을 위한 바리케이트_나무에 아크릴채색_160×200×2cm_2012 이미정_탁자의좌표_70×100×60cm_2012

초대일시 / 2012_0801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30am~07:00pm

갤러리 아트사간 GALLERY ART SAGAN 서울 종로구 삼청로 22 영정빌딩 3층 Tel. +82.2.720.4414 www.artsagan.com


『레드콤플렉스』 1988년,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가 있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 누구로부터인지는 기억할 수 는 없지만, 내 몸에 선명하게 새겨진 관습적인 기준과 생각들이 있다. 그리고 이 중에서도 내가 관심이 있는 것은 우리에게 여전히 강요되는 유교적 관습이다. 응당 사람이라면, 응당 여자라면 ~해야 한다는 문법이다. 이러한 것들은 막연하고 추상적인 몸뚱이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부딪치는 삶의 매 순간 구체적으로 적용되어 진다. 관습적인 기준에 어긋나는 것들을 맞닥뜨렸을 때, 우리는 그것에 대해 마치 어떤 증후군이나 알레르기처럼 반사적으로 가치판단을 하게 된다. 그것들은 나쁜 것이라고, 그른 것이라고, 더럽거나 위험한 것이라고 말이다.
이미정_장하다,대한의 딸_백자에 도금_20×16×5cm_2011
이미정_본코리아_백자에 전사지_36×16×16cm_2010_부분
이미정_본코리아_백자에 전사지_36×16×16cm_2010
이미정_본코리아_백자에 전사지_22×6×6cm_2010
이미정_합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각 지름 80cm_2012
이미정_잘그린그림,못그린그림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각 50×50cm_2012

그 막연함은 추상적 권위를 지니고 우리의 몸을 지배하며 그에 어긋나는 것들에 대해 강박적으로 밀어내는 반응을 일으킨다. 그리고 이러한 반응은 우리의 마음에 불필요한 죄책감과 위반에 대한 두려움을 빚어낸다. 나는 이것을 또 하나의 레드 콤플렉스라고 부르겠다. '빨간 것'으로 묶어 말할 수 있는 온갖 금기시 되는 것들에 대해 그의 실체보다 확대된 공포심과 거부감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 나는 그러한 사람들이 레드콤플렉스에 대해 보다 면역력을 기를 수 있는, 나아가서 극복할 수 있도록 하는, 안전한 멸균의 장을 마련코자 한다. ■ 이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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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ating floating


정문경展 / CHUNGMUNKYUNG / 鄭文景 / installation 2012_0801 ▶ 2012_0818 / 월요일 휴관


정문경_Yekcim-part1_혼합재료_480×530×360cm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11111e | 정문경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2_0801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요일_11:00am~05:00pm / 월요일 휴관

아트스페이스 에이치 ARTSPACE H 서울 종로구 원서동 157-1번지 Tel. +82.2.766.5000 www.artspaceh.com


표면의 이면 ● 캐릭터 인형이 가지는 친숙함은 크기와 안팎의 관계가 변조됨으로서 이중으로 낯설어진다. 인형은 그 자체로도 인간의 무의식을 투사하는 기괴한(uncanny) 존재인데, 뒤집기 작업은 이 유사(類似) 인간의 표면 안쪽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여기에서 안은 정확히 바깥의 안쪽이지, 저 깊은 곳의 내면이나 핵심, 본질, 실체 같은 것이 아니다. 뒤집어진 상태의 인형 안을 채우는 것 역시 재단된 천 쪼가리나 여타의 부산물이다.
정문경_Evolg-part2_혼합재료_230×230×90cm_2012

존재는 그 자체가 표면들의 중층이다. 존재의 표면들은 여기저기에서 연원한 주름들로 인해 더 활성화되어 있다. 이 주름들이 야기하는 감정의 기폭 또한 크다. 우리는 핵심과 표면이라는, 너무나 오래되어 친숙한 이원적 모델을 따라 주어진 것을 파악하려 하지만, 진실은 핵심이 아니라 표면 및 표면들 간에 맺어지는 관계성에 의해 구축 또는 해체 된다. 실로 심오한 것은 표면에 산포되어 있다. 해체주의로 대표되는 현대 철학은 깊이의 강요에 내재된 이데올로기와 형이상학을 폭로 한다. 정문경의 작업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인 면에서, 깊이의 모델을 표면의 모델로 전환시킨다. 모델이 된 원래 인형을 뒤집어서 수십 배로 확대시키는 작업은 조각난 육체들이 짜깁기 하는 장이다. 일일이 수공으로 진행되는 확대 작업은 복사에 복사를 거듭하여 흐릿해진 원본처럼 알게 모르게 변형된다. 관객의 면전에 놓인 것은 다름 아닌 거대한 시뮬라크르이다. 거대한 이불 같은 인조털 원단에서, 몸을 이루는 부분과 전체 간의 유기적 관계는 종종 모호해진다. 한눈에 들어오지 않고 한 손에 잡히지 않는 거대한 표면들은 길(방법)을 잃게 한다. 낯설게 하기는 낯익음을 전제로 한다. 충격은 그것이 낯익은 것에서 출발한 것일 때 더욱 증폭 된다.
정문경_flag1_혼합재료_300×400×20cm_2012

물신주의를 조장하는 현대사회에서 인간과 인형, 동물은 도구적으로 다루어진다는 면에서 차이가 없다. 정문경의 뒤집어진 인형이나 가면들은 차이들이 사라진 세계에서 차이를 어떻게 감식할 것인가의 문제를 다룬다. 그것은 동일성과 타자, 실재와 해체, 몸과 무의식 등의 문제를 전면화한다. 정문경의 인형이나 가면들은 원래의 형태를 참조하여 그에 못지않은 꼼꼼한 재단과 봉합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실재를 실재처럼 응집시키는 자연스러움은 소격된다. 실재는 그 견고함을 잃고 너덜거리는 조각 잇기의 산물임이 밝혀진다. 작품들은 실재가 동질성 대신에 차이적 관계들의 집합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차이는 해체주의의 중심적 범주로, 해체의 주된 대상은 형이상학이다. 마이클 라이언은 [해체론과 변증법]에서 해체론은 형이상학에 대한 비판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형이상학은 최초의 근거 및 궁극적 요인으로, 초월적 관념이나 물질적 실체, 혹은 주관적 동일성, 직관적 의식, 선 역사적 본질, 현존으로서의 존재 등을 상정하는데, 이것들로부터 다양한 존재들이 연역되고 설명되며 의미를 부여 받을 수 있다.
정문경_flag2_혼합재료_300×400×20cm_2012
정문경_flag3_혼합재료_300×400×20cm_2012

정문경이 시도하는 안팎 뒤집기는 형이상학의 기본 전략인 대립과 우선권을 무화 시키려 한다. 가령, 풀려나가는 가장자리, 마무리 지어 지지 않은 실밥, 내부로부터 자연스럽게 발생한 것이 아닌 밖에서부터 강제로 쑤셔 넣은 눈깔은 본질적 요소를 침식하는 이차적이고 파생적인 요소를 대변한다. 이 배제되고 가려진 것들의 전면화는 순수한 동일성의 밑바탕을 이루는 잡다함을 강조한다. 정문경의 작품에서 평면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지는 끝없는 계열은 궁극적 요인이나 목적을 와해시킨다. 뒤집혀진 인형들은 동일자의 몸통을 이루고 있으면서 동시에 억압되고 은폐된 요소를 드러낸다. 그 결과 작품들은 구조보다는 과정을, 의식보다는 무의식을, 정신 보다는 육신을, 유기체보다는 기관 없는 몸체를 전면화한다. 봉합되기 위해 일련번호가 매겨진 채 여기저기 널 부러진 조각난 신체들은 죽음이나 기형 보다는 과정으로서의 몸의 유연성, 또는 가변성을 강조한다. 정상적 형태를 특징 지웠던 단단한 조직화는 기존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과정이 된다.
정문경_flag4_혼합재료_300×400×20cm_2012
정문경_flag5_혼합재료_300×400×20cm_2012

유기적 조직화가 아니라, 표면들의 절단과 연결로 만들어지는 몸이 바로 '기관 없는 몸'이다. 들뢰즈와 가타리의 개념을 페미니즘에 적용시키는 엘리자베츠 그로츠는 [뫼비우스 띠로서의 육체]에서 '기관 없는 몸'은 환상, 이미지, 투사, 재현의 투자가 철회된 몸 개념을 환기시킨다고 말한다. 그것은 또한 정신적 내부나 비밀스러운 내부가 없는 몸, 내적인 일관성과 잠재적인 의미화 작용이 없는 몸 개념을 환기시킨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계층화되고 통일되고 조직화되고 위계 질서화에 앞서는 것으로서의 몸을 속도와 강도의 표면으로 거론한다. 어느 것과도 접 붙을 수 있는 표면들은 안팎이 연결된 뫼비우스 띠처럼 이원적 구조를 해체한다. 그로츠에 의하면 이원론이란 육체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 몸과 마음처럼 두 가지 상호 배타적인 어떤 것이 있으며, 이런 것들이 우주라는 보편성과 주체라는 특수성을 구성한다는 믿음이다. 이러한 안팎 뒤집기의 목표는 몸의 재형상화를 통해 주체성의 개념에서 마음, 정신, 내부, 의식이 차지했던 중심적 위치를 바꾸어 놓는다. 정문경의 뒤집힌 인형이나 가면은 진부한 키치적 사물을 떠오르게 하지만, 주체성을 잠재성이나 깊이의 모델로서가 아니라 표면의 모델로 간주하는 현대 언어학, 철학, 정신분석학, 페미니즘 등의 담론과 맥락을 같이 한다. ■ 이선영


 
modified at 2012.07.29 03:07:43 by za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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