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당하거나 인구에 회자되는 이미지
글쓴이
내용

zabel

  • 작성시각: 2012.04.04 16:15:12
  • 총 작성한 글타래: 56 개
  • 총 작성한 댓글수: 141 개
  • 가입일: 1970/01/01
  • 포인트:
  • 레벨:
  • 오프라인 상태입니다
글 제목: 4월 전시

With ...


김은영_박경진_유지원展 2012_0404 ▶ 2012_0409


김은영_Virtual Gate_80×85cm_2011
초대일시 / 2012_0404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Tel. +82.2.720.1020 www.insaartcenter.com

With ... ● 김은영, 박경진, 유지원 세 사람은 모두 2011년에 새롭게 사진계에 데뷔한 신진 사진가들이다. 신인들의 미덕은 역시 새로움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해 마다 만나는 신인들의 작품에는 새로움이 묻어나지 않는다. 어디서 본 듯한, 그것은 대체로 유행 중인 사진이거나 그들을 가르치는 스승의 그것과 지근거리에 있다. 초대장 사진에는 그런 진부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그 초대장을 보고 전시장에 가고 싶은 마음을 접는다. ● 세 사람은 어떨까? 그들은 적어도 사진 언어를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오늘 날의 변화하는 예술 환경 속에서, 사진이라는 매체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이 점이 중요하다. 그래야 앞으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작업을 할 가능성이 엿보인다. 또 하나, 신인이기에 완성도가 미비해도 눈감아 줄 수 있는 이해를 스스로 구한다면 출발부터 잘 못된 것이다. 작가 정신이 없다고 한마디 들어도, 딱히 변명할 말이 없다. 그런 점에서 우선 안심이 된다. 완숙미가 보이지는 않지만, 그 가능성은 열려 있다. ● 세 사람은 확실한 작가 정신, 매체에 대한 확장성, 완성도 측면에서 당당하다. 됐다. 그 정도 기백이면 험난한 이 마을의 주민으로 전입해도 좋을 것 같다.
김은영_Virtual Gate_65×90cm_2012
김은영은 현대 사회에 대한 나름의 진단이다. 그녀는 현대의 단면을 코드로 보고, 메스를 가한다. 익숙한 바코드부터, 스마트 폰이 나오면서 새롭게 다가오는 QR 코드까지. 그렇다. 누가 뭐라도 코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코드사회가 지금의 모습이다. 이제 까지 예술가들이 주로 바코드에 주목했다면 김은영은 새롭게 떠오르는 QR코드에 더 집중한다.
박경진_one minute_59_66×100cm_2011
박경진_one minute_67_66×100cm_2011
박경진은 어떤가? 언뜻 보기에 다중 노출을 활용한 잘 찍은 풍경 사진 같다. 그런가? 그는 그런 가벼운 풍경 사진가가 아니다. 그의 관심은 '시간'이다. 지금까지 시간은 공간과 대상을 재현하기 위한 종속변수였다. 그는 시간 그 자체를 작품의 개념으로 끌어 드린다. 영화의 순차적 시간과 사진의 순간적 시간이 만난다는 것은 시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아니랴!
유지원_mini_nature_08_디지털 프린트_40×50cm_2011
유지원_mini_nature_15_디지털 프린트_64×80cm_2011
유지원의 작품은 언뜻 보기에 아름다운 바다가나 혹은 들판에 있는 무슨 세트장을 찍은 것 같다. 그러나 어느 곳에 세워진 집도 그 집이 모두 같은 그 집이라는 것을 발견하면 호기심이 발동한다. 그 집은 누구 집인가? 데이빗 솔로우의 집, 월든 호숫가 오막살이다. 가장 단순한 집, 영성적 치유로서의 집. 아마 그 집은 힐링(Healing)의 대상이겠지. ●『With』는 새로운 타입의 사진을 아우른다. 그래서『With』다. 나는 이 전시회가 모든 것을 받아드리고 태울 수 있는 용광로 같은 전시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아마 그럴 것이다. ■ 최건수 -----------

거기 있는 그대로


정원일展 / CHUNGWONIL / 鄭元一 / photography 2012_0404 ▶ 2012_0410


정원일_t-04-006-03_젤라틴 실버 프린트_95×190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정원일 블로그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21_0404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8:00pm 남서울대학교 아트센터 갤러리 이앙 NAMSEOUL UNIVERSITY ART CENTER GALLERY IANG 서울 종로구 혜화동 90-18번지 뉴씨티빌딩 B2 Tel. +82.2.3672.0201 www.galleryiang.com

거기있는 그대로 ● 숲 언저리에 서서 숲을 마주하고 나무를 본다. 카메라의 눈이 깜박일 때 어떤 마음일까? 싱그러움 그리고 생명을 상징하는 녹색의 나뭇잎도 없는 시기에 마른 나무를, 게다가 위풍당당한 나무들도 아니고 여러 잡목이 어지럽게 모여 사는 숲을 찍는 것은 어떤 마음일까? ● 어떤 복합적 자극에 대하여, 어떤 복합적 문제 상황에서 우리의 선택이 어떻게 이루어지며, 어떻게 방향이 결정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아직 학문적으로 확정된 바는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문제 상황에서 의미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분리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다만 의미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결정하는 기제에 관한 것이라면 중력의 법칙처럼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원리는 아직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정원일_t-04-007-01_젤라틴 실버 프린트_95×190cm_2011
정원일_t-06-040-02_젤라틴 실버 프린트_95×190cm_2011
정원일은 왜 잡목으로 우거진 숲을 선택했고, 색상을 제거했을까? 이것이 첫번째 질문이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우리는 제시된 작품에서 소재를 먼저 파악하고, 그 속의 여러 소재를 논리적으로 연결하여 의미를 추출하려는 경향을 갖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재를 통한 논리적 의미 추출이 쉽지 않다. ● 그의 작품은 의미를 도출하기 쉽지 않은 소재와 화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숭고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위대한 자연의 모습도 아니고, 치열한 삶의 순간을 은유하는 사람의 얼굴도 아니고 그저 잡목이다. 그렇다고 극적인 명암대비도 없다. 구름에 해가 가리워진 아침이거나, 해가 저물어가는 저녁무렵이다. 극적인 역광효과를 낼 수 있는 시점을 선택하지도 않았다. 설득력 있는 소재도, 특별한 구성도 없다.
정원일_t-06-040-04_젤라틴 실버 프린트_95×190cm_2011
정원일_t-06-041-02_젤라틴 실버 프린트_95×190cm_2011
작가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작품들 역시 그림이다. 카메라의 동공을 통해 선택 투사되는 순간, 작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순화되고 조작된 구성이 있고, 유사한 모습을 담은 현상된 이미지들이 존재한다. 그 이미지들에 다시 구성이 개입되고, 인화된 결과물에서 무엇을 전시장에 내놓을 것인가 고민하면서 다시 한 번 선택과 구성이 개입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작가의 노력에서 여전히 의도적 구성이 제거된 모습을 볼 수 있다. ● 나는 정원일의 작업을 유의미한 역사적 순간에로 또는 인문학적 반성을 촉구하는 순간에로 또는 긴급한 사회적 논제로 또는 순수한 시지각적 구성에로, 또는 디자인적 문제로 환원시킬 수 없다. 작가의 작업이 문제시하는 것은 소재, 주제, 의미, 구성등 그 어떤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의 눈과 의식에 대한 관심인 것 같다.
정원일_t-06-066-04_젤라틴 실버 프린트_95×190cm_2011
정원일_t-06-081-03_젤라틴 실버 프린트_95×190cm_2011
'거기 있는 그대로'에 대한 관심의 은유로 생각된다. 구성되거나 조작되기 이전의 거기 있는 그대로에 관심을 촉구하고 지금껏 제기된 지각이론에 대한 예술학적 사고를 요구하는 것이 이번 전시에서 하고 싶은 작가의 질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 박종석 ------------

동물의 숲


마리캣展 / MARIECAT / painting 2012_0404 ▶ 2012_0410


마리캣_Lady Camellia_종이에 아크릴채색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공평아트센터 공평갤러리 GONGPYEONG ARTCENTER GONGPYEONG GALLERY 서울 종로구 공평동 5-1번지 공평빌딩 1층 Tel. +82.2.3210.0071 www.seoulartcenter.or.kr

2010년 12월의 2회 개인전「나는 숲으로 간다」를 마치고 나는 진짜 숲으로 왔습니다. 오랜 서울 생활을 끝내고 이사온 대관령의 깊은 산골에서 그림도 생활도 고향에 온 듯 새로운 활기를 띄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으로 가까이서 본 야생동물들의 생생한 모습과 계절에 따라 변하는 숲의 신비함은,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와 피 한방울에까지 녹아들 듯 강렬하게 내 안에 새겨졌습니다.
마리캣_보리의 모험-전설의 딸기를 찾아서_종이에 아크릴채색
긴 겨울 추위가 지나고 봄이 오면, 황량하고 척박한 이 곳의 풍경은 놀라우리만치 다채로운 색깔로 바뀝니다. 그리고 커다란 나리꽃들이 화려한 봉우리를 터뜨리는 여름 무렵이면, 나는 산딸기를 따러 새벽숲으로 갑니다. 탱글탱글한 루비 같은 예쁜 열매들을 바구니 가득 담아 집으로 돌아올 때면, 안개에 젖고 온통 딸기 가시에 긁혀 몰골은 말이 아니지만 나뭇가지에 폴짝대며 노니는 다람쥐처럼 즐겁습니다.
마리캣_모험소년과 호랑이_종이에 아크릴채색
마리캣_엉겅퀴 소년_종이에 아크릴채색
그렇게 나무 열매와 산나물을 찾아, 혹은 신기한 비밀의 골짜기를 찾아 홀로 숲을 쏘다니는 매일의 모험은 그대로 내 그림이 되었습니다. 그림 속 모험소년이 되어 딸기 숲을 헤메고 동물들을 만나고, 넘어지고 다치는 위험을 겪고, 가끔은 어딘가 진짜로 있을 것 같은 산신령의 모습을 그려보며, 나는 내 마음 속 동물의 숲으로 계속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마리캣_얼음의 어린 공주_종이에 아크릴채색
겨울이 오면 숲은 기나긴 시련을 견딥니다. 나무들에게도 동물들에게도 겨울은 잔인한 계절입니다. 그리고 내 마음 속 동물의 숲에도 무서운 겨울이 찾아옵니다. 눈폭풍이 몰아치는 춥고 무서운 밤엔, 세상의 끝에 홀로 서 있는 기분으로 불빛 하나 없는 까만 창 밖을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꺾어버릴 듯한 냉기 속에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견디어 살아남는 숲 속 동물들의 삶을 생각합니다. 그렇게 폭풍이 지나가고 고요해진 어슴푸레한 새벽, 하아얀 눈길 위에는 크고 작은 동물들의 발자국이 앙증맞게 찍혀있습니다. 어느 발자국은 줄을 이어 개울가로 향합니다. 무서운 폭풍의 밤을 견디고 물을 마시러 개울로 내려갔을 숲의 아이. 튼튼한 집도 쌓아둔 먹이도 없이 오로지 더운 피 흐르는 제 한 몸으로 살아가는, 아니 살아내는 그 작은 녀석을 생각하면, 눈 위의 발자국은 애틋하다 못해 숙연한 마음마저 들게 합니다. 우리는 같은 마음으로 봄을 기다립니다.
마리캣_호랑이 곶감 3_종이에 아크릴채색
마리캣_안 자는 숲속의 공주_종이에 아크릴채색
꿈처럼 아름다운 생명의 시간과 무서운 죽음의 추위가 공존하는 숲, 그리고 그 곳에서 삶을 지켜내는 많은 생명들. 지난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나의 마음은 이 곳의 숲이 보여주는 드라마에 완전히 녹아들고 말았습니다. 집 주위로 펼쳐진 넓고 깊은 숲, 그리고 내 마음 속 동물의 숲 – 나는 언제나 그 곳, 숲에 있습니다. 동물의 영혼이 되어, 수많은 이야기들이 숨겨진 영원한 숲에서 살아갈 것입니다. ■ 마리캣 -------------

경계 A boarder between dream and reality


진민욱展 / JINMINWOOK / 晉民旭 / painting 2012_0404 ▶ 2012_0413


진민욱_꿈과 현실의 경계_비단에 석채, 분채, 먹_141×118cm×4_2010~11
초대일시 / 2012_0404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월~토요일_12:00pm~06:00pm / 일요일_12:00pm~05:00pm 갤러리 담 GALLERY DAM 서울 종로구 안국동 7-1번지 Tel. +82.2.738.2745 www.gallerydam.com

진민욱-경계에 위치한 뱀과 개의 풍경 ● 개와 뱀이 여러 생명체와 얽혀있는 '그로테스크'한 풍경이다. 비단에 배채기법으로 정교하게 묘사한 채색화다. 사실적인 그림이면서도 어딘지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이기도 하다. 환상성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관자의 불안감 혹은 머뭇거림에 있다. 즉 작품에 재현된 사건, 상황이 자연적인 것인지 초자연적인 것인지 판단 내리길 주저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 그림은 구체적인 대상을 무척이나 낯설고 당혹스러운 상황을 안긴다. 한 몸에서 여러 개의 다른 머리가 붙어있고 서로가 서로에 맞물려있으면서 엉켜있다. 기형적이고 왜곡된 상이다. 그 사이로 풀과 꽃들이 드물게 피어난다. 이 풍경은 구체적인 자연계, 생태계의 한 장면을 연상시켜주지만 동시에 무척 이질적이며 이상한 풍경이다. 친숙하고 아는 대상이지만 불현듯 낯설고 기이하게 다가오는 것, 이른바 '언캐니'한 그림이다. 여기에는 또한 기괴함, 그로테스크, 애브젝션(Abjection)의 요소도 묻어 있다. 그것들은 무엇보다도 경계, 위상, 규칙을 존중하지 않고 대신 중간적인 것, 애매한 것, 혼합적인 것을 내세운 다는 점에서 전복적인 힘을 내재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미술은 있을 수 있는 상황, 가능성을 다룬다는 점에서 애초에 환상이다. 환상이란 미메시스로부터의 일탈이요, 나아가 리얼리즘으로부터의 일탈이다. 사실 미술은 두 가지 충동의 산물일텐데 우선 모방하고 싶고, 사건들, 사람들, 상황, 그리고 대상을 묘사하고 싶은 욕망인 미메시스, 그리고 주어진 것을 바꾸고, 현실을 변형시키고 싶은 욕망인 환상이 있다. 환상의 기원은 실제 대상이 부재할 때 발생한다. 그러니까 환상의 세계는 실재와는 전혀 다른 정신적 세계가 아니라, 실재적이면서도 비 실재적이고, 현실적이면서도 상상적인 영역이라는 것이다. 있음과 없음이라는 이분법적 구도 속에서는 잡히지 않은 그런 세계다. 어쩌면 환상미술의 상상적 세계는 '실재적인 것'과 '비 실재적인 것'사이에서 비결정적으로 자리 매김 된 '틈새 공간'이자 '주체/반 주체', '내적/외적','과거/현재/미래' 사이의 경계적 영토 혹은 사이공간이라고 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실재적인 것'도 '비 실재적인 것'도 아니며 그 둘 사이 어딘가에 자리한다. 죽은 것도 살아있는 것도 아닌 유령처럼 환상미술은 실제적인 것을 취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깨뜨린다.
진민욱_경계_비단에 석채, 분채, 먹_90×129cm_2011
진민욱의 그림 또한 비현실적인 상상/환상의 장면을 마치 현실적인 것 인냥 뒤섞어 놓은 것이다. 작가에게 있어 환상적인 화면을 구성하는 개나 뱀, 도마뱀, 곤충, 잎이 진 해당화 같은 것들은 일종의 상징들인 셈이다. 자연물을 빌어 자신의 내면을 대리하고 투사한다는 것은 동양미술에서 오랜 전통이었다. 사실 예술이란 인간을 둘러싼 저 자연계를 자신의 의식과 육체 안으로 부단히 불러들여 그와 하나가 되는 경지를 꿈꾸거나 그로부터 연원하는 소회 속에서 새삼 자기 존재의 근원을 성찰하는 것이다. 진민욱은 동물과 자연의 기이한 결합과 배치를 통해 "자신의 고립, 열등감, 자아분열 등의 체험을 극복하는 내적 성찰"을 치유하려고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특별히 개와 뱀은 자신과 동일시되는 존재로 다가온다. 아울러 그것들은 타자들과 연루된 일상의 관계를 암시한다. 인생은 사건의 연속이다. 나는 나 아닌 것들과의 부단한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나, 즉 자아는 결국 타자들과의 접촉과 만남으로 인해 생성되는 개념이다. 자아는 부재하고 그 자리에 자아/타자간의 지속적인 관계, 갈등이 있다. 전민욱에게 머리가 여러 개인 뱀과 개는 그런 복수적이고 혼재된 자아상을 암시한다.
진민욱_꿈과 현실의 경계를 위한 초고_비단에 석채, 분채, 먹_24×25.5cm_2011
생각해보면 개는 네 다리로 서있으면서 늘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혀를 내밀고 불안과 경계의 눈빛을 감추지 않는다. 나아가 작가에 의해 탄생한 다두견은 여러 개의 머리를 한 몸에 지닌 체 그 불안과 경계를 더욱 고조시키는 형국을 연출한다. 작가에 의하면 이 다두견은 '방향상실, 삶의 목적을 상실한 무기력증'도 표현한단다. 동시에 이 두 동물은 신화 속에서도 빈번하게 등장하는 의미 있는 상징체들이다. 작가는 특별히 이 두 존재를 선과 악, 죽음과 삶, 시간과 공간, 현실과 환상을 가로지르는 경계에 선 상징물로 이해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이 생명체는 그런 상징적 언어의 관계망 속에서 무수하게 재현되어 왔다. 전통적인 도상을 빌어 오늘날 자신의 일상에서 연유하는 감정을 발화하는 선에서 새롭게 재현, 배치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색채 구사 또한 고대 동양화에서 색채란 것이 그 상징적 도상과 마찬가지고 눈에 비친 색의 단순한 재현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상징성을 갖춘 것이기에 작가 역시도 일상에서 받은 영감을 최대한 시각화하려는 맥락에서 색채를 구사하고 있다. 희미하고 부드럽고 은은한 색채는 비현실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어쩌면 작가 자신의 삶과 의식은 이 세계가 규정하고 있는 완강한 현실적 틀과 그로부터 유유히 일탈하고자 하는 비현실적 세계(유토피아/디스토피아) 사이에서 부유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따라서 작가가 설정한 이 풍경, 상황은 그 두 세계의 경계에 위치한 자신의 내면 풍경이기도 한 셈이다. ■ 박영택
진민욱_꿈과 현실의 경계를 위한 초고_비단에 석채, 분채, 먹_30.5×35cm_2011
"그렇지만 이제 일상은 그 표면적 무의미함 밑에 풍요로운 의미의 장이 숨겨져있는 차원으로 그리고 한 사회의 윤리적이고 도덕적이며 미학적인 기준들을 결정짓는 '부식토'와 같은 '새로운' 차원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것은 여태껏 나머지(rest)-잔여, 찌꺼기, 쓰레기, 그렇지만 지속되는 것. - 라고 여겨졌던 '죽음', '여가', '주변인' 등 의 주제들이 겪은 운명이기도 할것이다. (G.durand, 1985).그렇다면 일상은 나쁜 것. 혹은 좋은 것 식의 이분법적 문제가 아니라 배제되었던 이타성(異他性)의 한 차원으로서의 '일상'과 그것을 포함한 사유의 의미가 무엇인지가 중요하게 다가온다."_마페졸리, 『자연회귀의사회학』, 제2장 일상, 본문p.65. "당신을 난처하게 만들었던 상황이 또는 당신에게 난해하게 여겨졌던 문제가 결국엔 해결되지 못하고 당신이 살(아지)기 위해 묻어둔 것들이 되었다면 그것들은 언젠가 반드시 '귀환'하기 마련이다."_송종원, 2009년 경향신춘문예대상평론부문「시인 김행숙의 작품세계에 대하여- 재현체계의 폭력을 넘어 우리의 현시로」중에서.
진민욱_꿈과 현실의 경계_비단에 분채_87×51cm_2010
그간의「Nostomania」,「I want to ask you」연작 등 의 수묵작업을 통해 제 삼자의 입장에서 관찰한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 나와 타자와의 관계 설정에 대한 부담감을 주목하고 이를 작업을 통해풀어내려는 작업을 해왔다. 고립, 열등감, 자아분열 등의 체험을 극복하는 내적 성찰에 주력하고 심리적인 문제를 치유하는 데 작업의 주목적을 두었다. ● 이번 전시에서는 주위를 환기하여 일상의 이면을 관찰, 문제화하고 동물에 투영시켜 작업을 통해 논하고자 하는 문제의 영역을 확장시킨다. 개, 뱀, 딱따구리, 사마귀, 잎이진 해당화, 도마뱀, 곤충, 닭 등의 '생태'로 연출된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제시하여 고통에 대한 응시와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 진민욱 ------------

안아주세요 Give a hug


정세원展 / JUNGSEWON / 鄭世媛 / painting 2012_0404 ▶ 2012_0417


정세원_안아주세요_장지에 먹, 담채, 색연필_77×49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90915f | 정세원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2012 미술공간現 기획작가 공모 당선자展 관람시간 / 평일_10:00am~06:00pm / 주말_11:00am~06:00pm 미술공간현 ARTSPACE HYUN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6번지 창조빌딩 B1 Tel. +82.2.732.5556  

이번 전시는 '2012 미술공간現 기획작가 공모'의 최종당선자인 '정세원'의 개인전으로, 미술공간現 기획작가 공모는 우수한 청년작가들을 지원하는 큐레이팅의 일환으로 올해로 제5회를 맞이하였으며, 김상철(동덕여대 교수), 박영택(미술평론가), 석철주(추계예대 교수), 하계훈(미술평론가), 홍경한(아티클 편집장)의 전문심사위원에 의한 엄격하고 공정한 심사를 거쳐 선발되었다. ■ 미술공간현
정세원_안아주세요_한지에 먹, 담채, 콘테_68.5×37.5cm_2011
보듬어주어야 할 유년기의 아픈 상흔들 ● 우리는 모두 한때 어린아이였고, 지울 수 없는 유년기의 상흔 하나쯤은 지니고 살아간다. 지나가버린 어린 시절에 대하여, 완벽하게 행복한 기억만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무수히 넘어져서 생긴 무릎의 작은 생채기들은 그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지만, 그보다 더 크게 입었던 마음의 상처들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쉽사리 아물지가 않는다. 오히려 더욱 덧나고 곪아만 가는 상처들도 있다. 누구나 한번쯤은 외로움이나 소외감을 느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난, 학대, 질병 등으로 남들보다 특히 불우한 유년기를 보낸 누군가에게는 유난히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이 마음 속 깊은 상흔으로 남아 있게 된다. 움직일수록 조여 오는 올무에 걸린 듯, 벗어나지 못한 채 아직도 힘든 나날을 지내고 있을 누군가도 분명 있을 것이다. 정세원의 작품에는 그러한 상처 받은 유년기의 모습들이 담겨있다. 정서적으로 혹은 신체적으로 아픔이 있는 아이들, 작품 속 흐릿한 얼굴들에서 누군가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은 그녀가 우리들의 유년기를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정세원_안아주세요_한지에 먹, 담채_68.5×49cm_2011
작품은 평상시 작가가 기아, 학대 등 방치된 아이들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던 것에 기인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작품 감상에 있어, 그림 속 인물들마다 실제로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지를 찾아내려는 시도는 그리 중요치 않다. 작가는 사건의 배경을 과감히 생략해버린 채 인물의 형상만을 드러내고 있으며, 이미지는 사건 현장의 설명을 위함이 아니라 감정 전달을 위해 차용된 것이다. 작가는 포착된 순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들, 즉 캡쳐된 장면 속 인물의 자세와 표정에서 읽혀지는 감정을 전달하기 위한 묘사를 하고 있다. 표정에 중점을 두고 있으면서도 얼굴의 이목구비를 흐릿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과 생략된 배경을 여백으로 두고 있는 표현방법은 보는이 저마다의 상상을 이끌어낸다. 한지와 먹을 주재료로 사용하고 채색에 있어서는 담채(淡彩)로 표현하여, 전체적으로 담백하고 맑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대상을 자신만의 담담한 화법으로 표현해내고 있는 점은, 필자로 하여금 작가의 시각이라는 필터를 통해 걸러져 비춰진 이미지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끔 하였다. 막 뽑아낸 사진의 한 컷과 같이 선명했던 그날의 충격적인 기억은 서랍 속 오래된 사진처럼 조금씩 바래져서, 색이 빠져버린 흑백사진처럼 아련하게 누군가의 초상만을 남기고 있다. 정세원의 작품에서 쉽사리 시선을 놓을 수 없는 것은 바라보는 동안 보는이 자신의 유년기의 돌아보게 하거나, 어려움을 겪고 있을 타인의 삶을 떠올리게 하는 공감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정세원_유년기_장지에 먹, 색연필_68×37.5cm_2011
전시작 중에서 작품의 배경에 주목해보아야 할 작품이 두 점있다. 어릴 적 네덜란드로 입양되었던 말기 암 환자의 사연을 담은 방송을 토대로 그린 작품들이다. '안아주세요'라는 한 작품은 마흔둘의 그녀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지만 어린아이를 그린 것만 같이 보인다. 암투병으로 까까머리가 된 그녀의 실제 모습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어릴 적 입양된 그녀가 아직도 버림받아 혼자 남은 아기처럼 절실히 부모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점을 표현하고자한 작가의 의도가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오랜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그녀는 팔에는 붕대를 담고 머리카락은 빠져버린채 쇠약해져버린 몰골로 그녀의 외삼촌이라며 방송에 나온 낯선 남자 품에 힘껏 안겨 울부짖는다. 어머니와 연관되어 있다는 단한가지 연결고리만으로도 그녀는 그렇게 그리워하던 어머니를 찾은 듯, 남자의 품을 아기처럼 파고들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유년기'라는 작품으로, 그녀가 방송에 들고 나와 어머니를 찾고자 했던 어린 시절 독사진을 소재로 하고 있다. 작품을 마주할 때 그저 물방울무늬 치마를 입고 서있는 여자아이를 그린 작품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작품의 모티브가 된 방송내용과 그것을 통해 말하고자하는 작가의 의도를 파악한 후 그림을 감상하게 된다면 이와 같이 전혀 다른 측면에서의 해석이 가능해진다. 두 작품처럼 구체적인 실화를 담고 있는 그림이든, 그 외 대부분의 전시작처럼 감정의 전달을 위해 차용된 이미지들을 담고 있는 작품이건 간에 유년기의 상실감을 담아내고 있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정세원_안아주세요_한지에 먹, 담채, 콘테_100.5×68.5cm_2011
작가는 첫 번째 개인전에서도 유년기의 상실감을 소재로 지금과 유사한 화풍의 작품들을 선보였다. 단, 지난 전시에서 상실감 그 자체에 주목하였다면 이번 두 번째 개인전에서는 그들의 아픈 상처를 보듬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아이들에 대한 우리의 무관심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어떻게 방치되고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상기시킨다. 그림 속에서 아이들은 외롭다고, 두렵다고, 그립다고 슬픈 표정이나 몸짓으로 말하고 있다. 표정이 흐릿하게 그려져 있지만 그 눈빛은 슬프고, 애처롭기만 하다.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기억은 생생하고 더 큰 아픔으로 남아있다고, 그러니 우리가 그들을 안아주어야 한다는 작품 의도는 필자로 하여금 도널드 위니콧(Donald Winnicott)의 대상관계이론을 상기시켰다. 그는 어머니의 돌봄이 아동발달에 미치는 영향에 언급하면서, 안아주는 환경(Holding Environment)의 제공이 필수적이라 말하였다. 어머니의 역할은 아이의 발달을 촉진시키기도 하지만, 잘못된 돌봄은 아이의 발달과정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덧붙인다. 충실하지 않은 돌봄으로부터 얻게 되는 상처는 성인이 되어도 사라지지 않는다고 보고, 그러한 상처의 치유를 위해서는 부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을 안아줌으로써 정서적으로 안정을 주고 교감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작품이 호소하는 안아주기에 대하여 심리학적으로도 설득력을 뒷받침해주는 이론이다. 필자가 위니콧의 이론을 거론한 것은 애정 결핍이 아이의 심리적 장애가 될 수 있음을 한번쯤 생각해본다면, 작품이 던져주는 이야기들은 그리 가볍지만은 않다.
정세원_안아주세요_장지에 먹, 담채, 색연필_141×72cm_2012
정세원_안아주세요_장지에 먹, 담채, 색연필_148×206cm_2012
우리가 누군가를 안아준다는 것은 그 대상과의 관계를 견고하게 만들어 주는 행위이다. 작품은 단순히 부모가 어린 자녀를 안아주고 스킨쉽을 해줌으로써 돌봄에 충실하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범위를 넓혀 우리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관심을 갖아달라고 호소한다. 특히 어린 아이의 경우 가장 누군가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약자이기 때문에 더욱 관심의 손길이 필요하다. 작가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성인이 되어서도 치유될 수 없음을 강조하며, 그 역시 우리의 무관심에 의한 것이기에 우리 모두의 책임으로 여겨야 한다고 작품을 통해 말하고 있다. 전쟁과 재난, 학대, 소외 등으로 고통 받는 아이들을 무관심하게 방치하고 있는 것 또한 우리의 잘못이며, 그 해결책은 우리는 그들을 따뜻한 포옹으로 보듬어야 한다는 것으로 함축된다. 모든 전시작들은 무의식속에 잠재되어 있는 결핍과 좌절을 담고 있다. 우리가 짊어지게한 상처받은 유년기이기에, 우리는 반성할 필요성과 관심을 두어야할 책임이 있다. 내 이웃의 경우일 수도 있고, 우리 아이들의 모습일 수도 있고, 나의 유년기의 모습을 담고 있을 수도 있다. 힘든 상황에서 누군가 말없이 안아주는 것만으로 큰 위로를 받아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작품에서 '안아주세요'는 우리가 보낼 수 있는 그리고 최소한의 관심, 작은 위로를 상징한다. 길거리에서 'Free Hug'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가 포옹을 청하는 사람들을 안아주는 프리허그 캠페인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또한 작품의 의도처럼 서로를 안음으로써 삭막한 세상 속에서 힘겨운 현실을 치유하고, 함께 극복해내자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사람인 동시에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람이다. 함께 하는 사회 속에서 나는 어떠한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작가는 전시를 통하여 보는 이들이 누군가를 안아줘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으면 좋겠다고 기대한다. 작품의 표면에서 느낄 수 있는 조형성이나, 외로움이나 쓸쓸함 등의 감정을 느끼는 것에서 감상을 마칠 수도 있겠지만, 주변에 힘들어 하는 사람을 안아줘야겠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면 더욱 의미 있는 감상이 될 것이다. 돌아보라, 그리고 주저하지 말고 안으라, 삶이 보다 따뜻해질 것이다. ■ 구나영 ---------

Polly-Politic


2012_0330 ▶ 2012_0412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2_0330_금요일_06:00pm 참여작가 / 나현_박병래_이동주_이재환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쿤스트독 갤러리 KunstDoc Gallery 서울 종로구 창성동 122-9번지 Tel. +82.2.722.8897 www.kunstdoc.com

2012' 쿤스트독 프로젝트 "Polly-Politic" ● 한 사회의 현실을 논함에 있어 우리는 일반적으로 정치와 자본을 움직이는 특정인물과 사건에 집중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정치인, 경영인 그리고 그들이 산출해낸 제도들로부터 현대인 어느 누구도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전시"Polly-Politic"은 나현, 박병래, 이동주, 이재환의 작업을 통해 지금의 사회현실과 예술의 위치에 관한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 예술을 통한 인간활동에 윤리란 존재하는가? 인간의 내적 현실과 사회적 현실에 관한 질문에서 정치란 무엇인가? 예술가의 발언행위가 개인의 자아존재성을 넘어 집단의식의 한 부분과 닿아있다면 그것이 지닌 의미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 다양한 담론을 산출할 수 있는 위와 같은 논의점에서 전시의 참여작가들은 '역사'를 바라보는 방식과 관점에 관하여 이야기 한다. 직설화법의 비판과 사건의 폭로가 연상되는 전시제목"Polly-Politic"과는 배치적(背馳)的)으로 그들의 작업은 관념적 예술론과 사회학적 비평의 대립적 성격을 '느슨한' 관계로 엮어 놓는다. 여기서 전시의 타이틀은 그들이 찾아들어가고자 하는 '사회현상-현실-역사'의 카테고리를 들여다보는 역설적 장치에 불과하다. 작가들은 개인과 사회의 관계항에서 부조리와 종속으로 상징되는 현실의 문제들을 재해석하거나 탈문맥화 하는 실험방법을 통해 그 지각 가능범주를 확장하고, 예술이 지녀야 할 태도를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나현_02-201011신안_잉크젯 프린트_41×29cm_2010
201011신안나현의 작업은 역사적 사건에서 비롯된다. '사건'은 지각 가능한 시공간으로 구성되며 작가의 정체성을 규명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는 '사건'을 역사와 사회상황 안에 재 문맥화함으로써 사건 자체를 해체하거나 재해석한다. 유사 다쿠멘터리 형식의 프로젝트-작업을 수행하는 그는 사건 속에 내재된 구조의 불안성과 감춰진 혹은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는 잉여세계를 찾아간다.
박병래_zeoboriske point_HD 비디오, 사운드_00:30:00_2011
Zeboriskie Point ● 특정 지역이나 공간에 내재된 개인의 기억들을 수집-추적하는 과정에서 출발한 박병래의 작업은 자신을 하나의 대상으로 설정, 어떤 분명한 환경 안에 위치시킨다. 작가는 그 안에서 개인의 인식과정 내부에 존재하는 긴장감과 개인과 사회 간에 발생하는 긴장감을 '한국사회의 역사를 지각하는 것/ 행위'로 규정한다. 영화 "Zabriskie Point (1970/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제목과 장면들이 오버랩 되는 프로젝트 "째보리스키 포인트"는 전북 군산시에 있는 작은 선착장 "째보선창"에서 미지의 인물 "째보"가 일제 강점기에 이루어진 한국 근대화과정의 모순과 실체를 추적하는 여정을 보여준다.
이동주_zoetrope_턴테이블, 아크릴, 비디오카메라, 프로젝터, 회전모터, 투명 필름에 컬러프린트, 돋보기, 작업대_240×60×90cm_2010
Zoetrope이동주의 작업에서 카메라는 작가의 눈과 사물의 눈을 대신하는 하나의 확장된 기관(organ)이며, 비디오카메라는 인간이 한 시점에서 물리적으로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시선을 대신한다. 그는 카메라의 가장 원시적 형태 중 하나인 조트로프(Zoetrope)의 메커니즘을 통해 개인의 기억과 경험의 단상들이 연동되는 현상에 주목한다. 시공간의 일정 시점이 다른 것들과 맞물려 이동하는 상태에서 이동주는 현대인이 열망하는 현실의 확장과 그 근원이 어디인가를 묻는다.
이재환_냉혹한 낭만주의자의 포근한 현실_혼합재료_가변설치_2012
냉혹한 낭만주의자의 포근한 현실 ● 가창에서의 일주일간 에피소드를 예술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짓의 고고학", 삶과 죽음으로 투쟁하는 많은 이들에 관한 이야기"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재환은 사회적 삶의 억압과 부자유, 허위적 현실과 부조리가 구조화된 지금의 사회현상에 자신의 표현행위를 개입시킨다. 그는 작업의 문제의식을 정치와 자본에 의해 변질된 인간의 삶과 진실을 가늠하기 위한 대화의지에 두어 게임의 속성을 활용한 프로젝트, 시적 정서로 표출되는 설치 및 텍스트작업으로 시각화 한다. ■ 김숙경 -------------------

Yes You Can


이기호展 / LEEKIHO / 李沂浩 / sculpture 2012_0404 ▶ 2012_0410


이기호_facebook_책_26×18×25cm_2012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화봉 갤러리 HWABONG GALLERY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7-28번지 백상빌딩 B1 Tel. +82.2.737.0057 gallery.hwabong.com

틀림과 다름 ● 인간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이 속한 사회 고유의 상황과 주위 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이는 우리가 무엇인가를 인식함에 있어서도 적용되는데, 사회와 타자가 만들어 놓은 고정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에 회의를 느끼게 되었으며 그것이 작업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러한 현상을 관찰하고 시각적으로 나타내고자 하였다.
이기호_facebook2_책_34×20×26cm_2012
이번 작업은 이러한 사회현상에서 나타나는 부작용, 즉 다양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쳐진 생각, 인물이나 사물 등에 대해 미리 접한 정보 그리고 처음 대상을 접했을 때 갖는 선지식이 강하게 작용해 그 대상에 대해 형성된 고정적이고 변화하기 어려운 견해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지나쳐 버리기 쉬운 것들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기회와 계기를 만드는데 있다.
이기호_the jesus machine_책_16×24×3cm_2012
이기호_answer_책_2×21×13.5cm_2012
이기호_unprotected_책_21.5×14.5×2cm_2012
이기호_posh_책_2×21.5×14.5cm_2012
작품은 나의 경험을 통해 느껴진 지점을 중심으로 표현하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사람들의 겉모습으로 넘겨짚어 판단하고, 또한 물질만능주의에서 기인한 편협한 고정관념은 모든 것을 일방적으로 정의해 버리고 그 이면을 내다보지 못하게 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즉 겉으로 보여 지는 것만으로 속단하고, 결정지어 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들을 기호와 상징을 이용해서 조형화 하였다. 이를 위해 사회의 일반적 시각과 확연한 차이를 가지는 본인의 생각들을 분류하여 그것의 타당성을 드러내어 사회가 바라보는 이상형 이외의 시각이 '그른 것'이 아니라 단지 '다른 것'이라는 것을 밝힌다.
이기호_the girl_스케이트보드 데크_200×60×25cm_2012
작품의 재료는 책과 스케이트보드 이다. 이 사물들이 이러한 생각을 시작하게 만든 이유에서 이다. 책은 제목을 통해 그 내용과 상관없이 책 제목을 통해 선입견이 발생하기 쉽다. 그리고 나는 유년시절부터 스케이트보드를 취미로 삼고 있다. 다년간 스케이트보드를 타면서 스케이트보더를 사회부적응자로 바라보는 시선이 팽배해 있음을 느꼈다. 스케이트보드 타는 사람의 성품과 상관없이 편견을 가지는 시각이 다분하다. 그러나 이것은 그 시대(시간)나 국가(공간)가 가진 획일적 기호학의 산물이지 진리가 아니다. 그래서 책의 제목과 겉으로 보여 지는(외형적인 면) 것을 통해서 느껴지는 선입견을 다른 시각으로 재해석하여 이미지를 조각 또는 조형적으로 표현 함 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 또 다른 의미의 장을 마련했다. ● 이러한 작업을 통해 사회가 만들어버린 틀에서 사회 한 구성원으로써 강요받는 선입견과 편견에서 벗어나 여러 가지 방향으로 생각할 수 있는 단서를 제시하여, 다양한 생각과 다양한 시각이 존재 할 수 있기를 바란다. ■ 이기호



modified at 2012.04.04 16:17:12 by zabel
추천 스크랩 신고

태그 없음

첨부파일

zabel

  • 작성시각: 2012.04.04 16:17:51
  • 총 작성한 글타래: 56 개
  • 총 작성한 댓글수: 141 개
  • 가입일: 1970/01/01
  • 포인트:
  • 레벨:
  • 오프라인 상태입니다
글 제목: 추가
수정 삭제







I LOOKED 나는 이렇게 보았다






2012_0405 ▶ 2012_0414




정성태_삼덕맨션-06_캔버스에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39×39inch_2009



초대일시 / 2012_0405_목요일_06:30pm

참여작가 정성태_박종하_장인환 우재오_김규형_박순경

기획 / 공간루 정동갤러리

관람시간 / 10:00am~07:00pm

공간루 정동갤러리 SPACELOU JEONGDONG GALLERY 서울시 중구 정동 1-23번지 Tel. +82.2.765.1883 www.spacelou.com




'시간'에 머무는 시선과 마음 ● 해방 전후부터 사진의 수도라 불리운 대구는, 일찌기 체계적인 사진 교육이 예술학원과 대학을 통해 이루 어진 도시로서 국내 어느 지역보다 많은 사진학과가 있고 사진의 저변이 탄탄한 경북지역의 중심이자 대 한민국 최초로 사진비엔날레를 개최하고 있는 '사진 의 도시'다. 이곳 대구에서 사진가 집단 루Luz가 출범 하여 빛 그림의 봉우리를 향해 의지와 열정으로 성채 를 쌓아가며 표현과 소통에 매진할 것을 선언하였다. 구성원은 여섯 작가인데 그들을 묶어주는 느슨한 연 대는 무엇인가?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유미주의적 작업도 아니고 기 록적인 작업도 아닌데, 남다른 진정성을 가지고 주제 가 시각적으로 명료하게 드러나게 하는데 천착한다 는 느낌을 받는다. 대상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그것을 몸과 마음으로 체득하여 이해하고 각자의 주제의식 을 작업에 투영하는 사진 예술의 정석을 지키는 것으 로 보인다. 그들은 시간의 흔적, 그 흔적이 남은 공간 에 시선과 마음을 머물게 하여 시간에 대하여 성찰하 는 작업에 몰두한다. 루Luz를 구성하는 작가들 사이 에, 그 작업 사이에 어떤 공통점을 찾아 '시간'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만보해 본다. '골목길 담벼락을 바람이 쓰다듬고 지나가듯 자연의 흐 름과 세월의 흔적들이 쌓여서 만들어진 풍경' 속에서 김 규형은 '오랜 세월 먼지를 뒤집어 쓴 다음에 자연스럽게 생활에서 떨어져 나온 비늘(鱗)'을 발견한다. 그의 풍경은 바로 그 떨어져 나온 조각 비늘, 세월의 편린(片鱗), 기억 의 편린(片鱗)의 스케치이다. 정면에 가로 놓인 벽. 대개 색 도장의 수명이 다하여 여 기저기 일어나고 떨어져 나간 뒷골목의 퇴락한 담벼락은 답답하고 쓸쓸하다. 벽 앞에는 나무나 꽃, 잡풀이 있어 퇴락한 인공의 색과 싱싱한 자연의 색이 병치되어 있다. 사진 속에서 자연 색의 싱그러움은 인공색의 '싼티' 속에 묻혀버린다. 그것은 자연의 본령에서 떨어져 나와 도시의 뒷골목에 던져진 자연의 편린에 불과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 빠진 수영장의 짝퉁 물빛은 푸줏간의 붉은 형광등 불빛처럼 억지스럽다. 그래서 그의 이미지는 흘러간 시간, 과거에 대한 쓸쓸한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페이소스, 애이불상(哀而不傷), 슬퍼 마음이 상하는 애상감(哀傷感)이 아니라 비애감(悲哀感)이다. 슬픔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시선으로 흘러가버린 시간을, 전치(轉置)되어 쓸쓸한 자연의 편린을, 퇴락한 뒤안길, 활기차던 시절의 기억의 편린들을 보듬어 안는다. 도시의 뒷골목에서 우리의 기억 속에서 과거라는 시간은 철저히 용도 폐기되지만 김규형의 풍경 속에서 흘러간 시간들이 용케 살아 남는다. 인간이 자신의 감정, 희망, 욕망 같은 것을 자신과 완전 히 분리시켜 객관화시킬 수 있다면 그는 깨달음의 길로 한 걸음 들어선 것이다. 박순경의 모노톤의 화면에서 선 명한 빨간색의 여행 가방은 10대로부터 50대에 이르는 등장 여성들 각자의 욕망을 표상한다. 문제는 나와 나의 욕망을 분리시켜 보는 객관화를 통해서도 우리가 그 욕 망을 결코 이겨낼 수 없다는 점이다. 주인의 연령대는 변하여도 가방의 모양은 변하지 않는다. 결코 채워지지 않아 늘 변치 않는 욕망, 그것은 짐스러운 짐가방이다.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오욕칠정(五慾七情)은 직시하고 다스려 버려야 할 대상이지만, 우리네 범인(凡人)들은 변치않는 그것을 무덤까지 끌어안고 가게 되는 것이다.(네거티브로 처리된 화면은 등장인물 없이 죽음 후를 암시하는 듯한데 거기에도 형형하게 빛나는 빨간 가방은 남아 있다.) 흑백의 「쉰들러 리스트」에 등장하는 소녀의 새빨간 드레스처럼, 동양회화에서 작지만 화면을 압도하는 탈목점(奪目點)처럼, 빨간 가방은 섬뜩하게도 욕망의 강렬함과 불변성이라는 주제를 소리없이 웅변한다. 중심 모티프가 극도로 치우쳐져 있거나 시선이 사각(斜角)인 그의 화면은 버릴 수 없는 욕망의 짐을 지닌 삶의 심리적 불안정성을 드러내고 답답한 느낌을 준다. 세월이 약이라고 시간은 모든 것을 이길 법한데 박순경에게 있어 시간은 욕망을 결코 이기지 못한다. 그래서 답답한 것이다. 박종하의 화면에는 여백이 없다. 목조 불단(佛壇)의 투 각(透刻) 이미지와 연꽃의 이미지와 변형된 연꽃잎의 이미지 그리고 뒤엉켜 알 수 없는 선들이 층층이 합성 되어 있다. 그렇게 여백없이 섞여, 불단과 연꽃과 꽃잎 이라는 불교적 이미지가 원래 갖는 초월적이고 유현(幽 玄)하고 정일(靜逸)하고 고즈넉한 느낌은 불현듯 사라 지고 없어진다. 그가 말하는 것은 인연(因緣), 연기(緣起)인데, 박종하가 보는 세상의 인연이란 불교적인 연기에 우리들의 의식, 욕망을 더하여 그것들이 함께 얽히고 섥혀 한없이 복잡 한 것이 되었다. 그는 합성과 재구성의 과정에서 가느 다란 선들의 궤적을 더하였는데 그 선들은 불꽃놀이에 서 터지고 떨어지는 불꽃 선의 궤적을 변형시킨 것이다. 밤하늘을 잠깐 수놓는 현란한 불꽃놀이의 이미지, 그것 은 실체없고 허망한 인간의 욕망의 상징일 것이다. 그의 레이어 작업은, 버리지 못하는 욕망으로 인하여 우리의 인연이 엉킨 실타래와 같이 풀 수 없을 정도로 얽혀 버렸고 그 얽힘은 긴 시간을 뛰어넘어 지속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수천 년 내려온 신화 속 동물의 고졸한 이미지와 오늘 여기 피어 있는 연꽃의 생생한 이미지가 병치되었다. 대대로 우리 의식을 지배해온 집단무의식 의 강고함 아래 흘러간 시간은 그저 흘러 가버린 것이 아니고 오늘 여기 나의 삶을 질긴 인연의 끈으로 옭아 매어 지배하고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 우재오의 사진은 연작으로 읽어야 한다. 봄날 때죽나무 아래서 눈을 들어 흐드러지게 핀 꽃들을 우러러 본다. '살아있음'의 한판 큰 잔치이다. 봄날이 아름다운 것은 천지에 넘치는 그 생명의 기운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득 꽃은 진다. 옛 사람은 "낙화(落花)인들 꽃 이 아니랴 쓸어 무엇 하겠느냐"며 잔상(殘像)의 사라짐을 안타까워 했지만, 흑백의 화면으로 포착된(그에게 컬러는 생명을 의미한다) 숲 속 오솔길에 흩날려 떨어진 꽃잎들은 아직도 지니고 있는 원래 모습의 그 흔적 때문에 더욱 비감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자연의 모든 존재물은 순환의 이치에 따라 본래 자리로 돌아간다. 재의 의식 때 가지를 태운 재를 이마에 바르며 집전자는 말한다. "사람아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라." 그의 삶과 죽음의 순환에 대한 종교적인 성찰은 사진 작업과 설치 작업으로 갈래지어져 함께 이루어진다. 떨어진 꽃잎, 떨어져 나온 포도나무 가지는 다른 차원에서 존재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인가? 우재오의 직설적인 어법의 종교적 성찰로의 유도는 삶과 죽음의 차원에 뒤이어 이루어진다. 시간의 흐름에 순응하되 삶과 죽음을 초극하는 성찰은 각성한 피조물에게 시간의 굴레를 벗어던지게 해 줄 것이라고 말해준다. 장인환의 꽃은 검은 여백 한가운데서 심해(深海) 속의 발광생물체처럼 빛난다. 그의 꽃은 꽃이되 꽃이 아니 며 그것이 전해주는 것은 자연 상태의 아름다움은 아 니다. 맥락에서 분리된 꽃의 이미지는 다중노출 방식 으로 중첩되어 변형되고 왜곡되며 서로 간섭을 일으 켜 회화적인 차원으로 옮겨져서 신비스럽거나 초현실 적인 정조(情調)를 드러낸다. '자연스러움'을 그대로 두지 못하는 세태의 반영이기도 한데, 작가는 만물을 기하학적 형태와 본원적 색의 상태로 치환하는 작업에 관심이 있는 듯, 꽃잎의 형태 미와 색채미에 대한 해체와 분석과 재조합의 작업에 천착한다. 지극히 기본적인 요소로 환원된 형태와 색채의 이름다움에 대한 추구는 미니멀리즘을 향해 가 는 도정이다. 그가 이렇듯 '자연스러움'을 넘어서려 하는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장인환이 사진으로 포집하려는 것은 시간을 거스르지 못하는 자연의 시한성(時限性)을 초극한 본질적 생명의 아우라인 듯하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흐르는 시간 따라 시드는 꽃에 대한 아쉬움 을 견디지 못한 그는 꽃의 아우라의 초현실적 발현으로 그렇게 시간을 뛰어 넘으려 하는 것 같다. 사라지고 버려지는 도시의 한 구석, 인적 없는 오후의 햇살 아래서 정성태는 흘러간 시간의 기억들을 육화 된 렌즈로 스치는 바람결 같이 쓰다듬는다. 그의 삼덕맨션 시리즈는 특유의 구도를 가지고 있다. 대체로 막힌 근경이 한 구석을 차지하여 답답한 느낌 을 주되 그 너머 흘끗 보이는 중경이나 원경으로 숨통 을 틔워주어 바람 길을 따라 가듯 시선이 유도된다. 감 춤과 드러냄의 조화다. 그의 사진에서 다른 중요한 요소는 그림자이다. 그림자는 무의식적으로 그의 자아가 투영된 '덧없음의 자국'이다. 평상시에 별 볼 일 없고 드러나지 않아 눈에 띄지 않는 대상, 그것들이 이룬 막히고 트인 구도, 그리고 한 덩이 그림자에 접하여, 막막함 속에 감정은 정화되고 잡념은 사라지고 근원적 그리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러한 구조적 틀을 통하여 그것이 아무리 퇴락하여 허접한 것의 이미지라도 보는 이의 감정이 이입되게 되고 작가의 그것과 만나게 된다. 일상에서는 아무도 시선을 주지 않는 흔하디 흔한 풍경을 정성태는 특유의 시선으로 포착하여 소외되어 버려지고 사라지는 대상에 우리의 시선을 다시 불러 들인다. 그것들이 지금 그렇게 여기듯이 원래 그렇게 가치 없는 것이었는지 되묻게 해주며,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로 달리며 폭력적으로 소비해 버린 지난 시간 의 소중함에 대하여 다시 마음을 주게 만들어 주어 우리를 회두(回頭)시킨다. 한 평자는 "순간을 포착하는 사진으로 시간을 이야기 하는 것은 역설이다"라고 하였지만 루Luz를 구성하는 작가들의 공통적 관심사는 결국 '시간'인 듯하다. 현대 의 우리는 대체로 과거를 끊임없이 타기하고 미래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지 못한다.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에 낙오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그러나 루Luz의 작가들은 의미있는 과거에 시선을 고정시키 기도 하고 먼 미래의 의미에 대해 이 순간 진정성 넘 치게 고뇌한다. 공통적으로 '시간'에 대해 무애(无涯)한 시각을 가지고서 말이다. 작가로서의 각별한 의식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며 대 상을 내면화하여 그 의식을 투영한 작업을 완성하고 그것을 매개로 다중과 효과적으로 소통할 수 있다면 그는 예술적으로 가치 있는 사진 작업에 성공하는 것 이다. 그 구성작가들이 자신의 세계관을 드러낸 결과 물로 세상과 소통하는데 더욱 매진하여 루Luz가 독창 성, 참신성, 현대성이 넘치는 예술사진가 집단으로 굳 건히 자리매김하기를 기원한다. ■ 최효준
김규형_푸른정물-1_아카이벌 잉크젯 프린트_33×46inch



김규형 ● 경북 포항에서 태어나 영남대학교 조형대학원에서 사진예술을 전공했다. 수 차례의 사진전에 참여하였으며, 대구에서 살면서 도시 공간의 변화과정과 눈여겨보지 않았던 자투리 공간에 대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도 위에 지나온 행적을 그려 넣고 한 번도 걸어보지 않았던 도시 공간 이곳 저곳을 직접 걸어 다니며 작업에 임하고 있다.

박순경_빨간가방 - 열어 볼 수 없었던 1_OHP 필름에 프린트_25.2×35.4inch_2010



박순경 ● 나는 늘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다. 가구 디자인을 하다가, 서른 살 생일에 선 물 받은 니콘FM2로 인해 아주 빠른 속도로 사진에 빠져 들어 이젠 마치 생활인 듯 느껴진다. 2011년은 대구문화예술 회관에서 회원전_"욕망", 동제미술전시관에서 기획전_"여름안에서", 제이드갤러리에서 개인전_"낯선 곳으로의 여행", 가온갤러리에서 회원전_"2011년 돌이켜보기"로 전시를 가졌다. 2012년엔 이번 전시를 비롯해 또 다른 전시를 준비중 이다. 나는 내가 사진을 한다는 것이 그냥 너무 즐겁다. 행복해 지기에.

박종하_KARMA3 - 상상속의 동물_캔버스에 프린트_20×30inch_2012
박종하_KARMA7 - 작은 새_캔버스에 프린트_20×30inch_2012



박종하 ● 풋풋한 시절, 여름 어느 날 풍경스케치를 목적으로 구입 한 낡은 수동사진기를 만난 것이 사단이었다. 그 묘한 셔터음으로 나를 눈멀게 하더니 수십 년이 지난 오늘까지 국제탈 춤페스티벌 사진공모전 대상을 비롯해 다수의 공모전에서 입상을 안겨주었다. 또한, 동아미술관, 덕영아트홀, 대구문화 예술회관, 대백프라자갤러리 등의 그룹전에 참여하였고 영남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우재오_Circulation_D02_종이에 피그먼트, 사진_19.6×29.5inch_2011
우재오_Circulation_L04_종이에 피그먼트, 사진_31.5×47.2inch_2011



우재오 ● 다음엔 또 뭘 하지? 지난 연말 개인전이 한창 진행 중일 때 내 머릿속을 스쳐간 질문이다. 공간과 주제를 떠올리며 메모하고 그리기를 하는 동안 행복하고 즐겁다. 경북대학교에서 공법학을 전공한 후 포스코건설 인사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지금은 사진과 설치미술 작업을 하고 있다. 이런 나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엔 호기심이 묻어난다. 2011년 11월 동제미술전시관 기획으로 "Circulation"이란 주제로 또 한번의 개인전을 마쳤다. 2012년에는 4월 정동갤러리를 시작으로 6월에는 독일에서 진행되는 NordArt 2012 International Exhibition에 초대받아 전시할 계획이다. 고민과 숙성의 시간을 거쳐 창작이 완성될 때, 즐거움과 흥분으로 많은 이들과 행복한 순간을 나누고 싶다.

장인환_꽃2_아트지에 프린트_15.7×23.6inch_2011
장인환_꽃5_아트지에 프린트_15.7×23.6inch_2011



장인환 ● 행복하게 바라보기... 이것이 사진을 하는 나의 목적이다. 다음을 준비할 탄창은 이미 총알들로 채워져 있다. 멈추지 않고 달릴 수 있는 길과 시간을 가지는 것이 나의 숙제이다. 학창시절 미대를 포기하 고 사회복지를 전공한 후 대구MBC에서 17년을 TV와 라디오 진행자로 생활을 하며 대중과의 소통을 배웠다. 2010년엔 대구 사진비엔날레 화랑/갤러리 기획으로 두 번째 개인전을 가졌고 수 차례 단체전에 참여했다. 목적을 향해 달리는 동안 머리 속을 채워가는 상상들로 나는 행복하다.

정성태_삼덕맨션-01_캔버스에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31×31inch_2009



정성태 ● 오늘처럼, 햇살가득한 날이면 카메라를 둘러메고 후미진 언덕배기 스물거리는 빛그림자를 향해 걸음을 재촉한다.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성균관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경관의 선호특성을 연구하였고 뉴캐슬 대학에서 사진미학에 대해 체험했다. 네 번의 개인전을 가졌고 다수의 사진전에 초대되었으며, 2008년엔 2030청년작가상을 수상했다. 두 권의 사진집과 몇 차례의 전시 기획 경험이 있다.

정성태_삼덕맨션-04_캔버스에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31×31inch_2009



'시간'에 머무는 시선과 마음

 

 

--------------

 

 




The Stranger






박민준展 / PARKMINJOON / 朴民俊 / painting 2012_0405 ▶ 2012_0422 / 월요일 휴관




박민준_The Butterfly dream_린넨에 유채_63.5×63.5cm_2010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90525g | 박민준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현대 강남 GALLERY HYUNDAI GANGNAM SPACE 서울 강남구 신사동 640-6번지 아트타워 Tel. +82.2.519.0800 www.galleryhyundai.com




흩뿌려진 세계, 증식하는 서사 ● 박민준은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그는 이야기소를 배치하고 조율하는 화면 안에, 사건의 단서를 감추고 드러냄으로써 색다른 이야기를 구축해나가는 작가다. 보통 이야기를 다루는 재능은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많이 가지고 있고, 또 그것을 능란하게 풀어낼 줄 아는 자질로 여겨진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것들의 본질을 은연중에 깊이 파고드는 것이다. 왜 이야기인가? 문학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이야기가 게임에서부터 음악, 심리치료에서 인문서적에 이르기까지 다른 장르로 확대되고 있는 지금이다. 스토리텔링의 정교함에 대한 요구는 점점 더 거세지고, 이야기를 둘러싼 문화적 지형도는 더욱 복잡해져가고 있다. 박민준은 미술에서 그러한 조건을 충족하는, 굳이 통념을 거스르며 파격을 추구하지 않고도 색다른 이야기의 행로를 완성하는 유니크한 작가다. 그림을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머릿속에 늘 '서사'가 있었을 것만 같은 그는, 조형적인 서사를 통해 삶이라는 미스터리에 어떻게 가닿을 것인가란 질문을 함께 던진다.
박민준_Heptalink_린넨에 유채_50.8×86.3cm_2010

데뷔 이후 꾸준히 독창적인 영역을 구축해 온 박민준의 이번 작품들은, 자기 자신의 삶에서 뻗어나간 실뿌리 같은 상상의 편린들과 그 원천들을 함께 감상하도록 완성한 것들이다. 비교적 긴 시간동안 견고한 의지와 충분한 기획의도를 가지고 수행된 작품들은 작가 자신에게는 작업을 돌아보고 다잡는 계기로 여겨지는 듯하다. 그가 완성한 각각의 작품은 하나의 덩어리로부터 여러 각도로 뻗어나간 상상의 촉수들로 인해 지극히 색다른 형태와 장면을 보여주는데, 이는 보는 이의 관념을 포맷시키는 동시에 작가의 상상 패턴에 자연스럽게 동화되도록 만든다. 박민준은 시간과 영원 속에 오직 한 순간을 잡아 놓는 듯한, 그것을 고전회화의 방식처럼 정교하고 세밀하게 그리는 방식을 유지한 채, 서사를 보다 증식시켰다. 「The Stranger」라는 제목이 말하듯 낯선 상황에 대한 자극과 반응을 중요한 동력으로 삼은 작품들은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그러나 '완전히 낯설지만은 않은' 장면을 선보인다. 그는 익히 알려진 신화의 부분을 차용해 이야기를 만들거나 과거에 그려진 작품이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상상을 이끌어갈 수 있음을 선보이기도 한다. 이 일련의 행위는 과거의 요소들이 여전히 인화물질처럼 작용하고 있음을 실증하는 것이며, 작가조차 자기 그림에 대해 엄연한 한 명의 관객임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자기 상상의 결정체인 그림이 완전히 독립적임을 역설하기까지 한다. 작품을 시작하기 전, 그는 전체를 고려하면서 시각적 이미지를 하나하나 건축적으로 쌓아가는 방식을 취한다. 이때 이 조형적인 건축은 촘촘히 짜인 설계도를 바탕에 둔다. 작가는 관객의 사유를 이끄는 주체를 정하고 그것에 힘을 부여하며, 어떤 감각 이후에 또 다른 감각이 올지 계획하며 화면을 완성한다. 다시 말해 그는 화면을 채우고 있는 그 모든 감각의 대상들이 뿜어내는 일정한 힘을 의식한 채 밸런스를 맞추고, 구체적인 통합을 완성하는 것이다.
박민준_False conquers all_린넨에 유채_111.7×76.2cm_2011
박민준_Following the Heart_린넨에 유채_101.6×71.1cm_2011

삶, 죽음, 그리고 메멘토 모리라는 커다란 맥락 아래, 사랑과 경험 그리고 가치관을 이야기의 주제로 삼는 작가는 이번엔 '타로 카드'에서 모티프를 빌려 시리즈를 완성했다. 그는 7개의 타로 카드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자신이 임의로 바꾼 상징들을 조합해 일곱 점의 소품을 그렸는데, 이로 인해 이야기꾼으로서 작가의 자질은 제대로 빛을 발한다. 그림들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짚어줌으로써 낡은 관념을 무력화시키고 인식을 환기시킨다.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듣고 무릎을 탁치며 감탄하게 되는 것은 기발한 설정이나 미사여구 때문이 아닌, 삶의 어떤 부분과 깊숙이 연결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깨닫지 못했던 부분을 아무렇지 않게 꺼내 보일 때가 아닌가. 우리가 간과했던 작은 대상으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예사롭지 않은 재주라 하겠다. 그는 각 카드가 내세우는 덕목을 이리저리 재배치함으로써 '최고의 균형은 어떠한 것에도 치우쳐 지지 않는, 모든 것에 같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임을 주장한다. 새롭게 구성된 일곱 개의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고, 작가는 각 주인공들이 하나의 화면에 모두 모여 등장하는 작품 「The room named olympos」 또한 선보인다. 7명의 타로 카드의 주인공과 상징하는 오브제, 가령 「page of cups」의 아치형 창문, 「The fool」의 촛불, 「knight of swords」의 칼, 「justice」의 부엉이 등이 하나씩 등장하고 한 마리의 고양이가 있는 그림은 견고한 클래식 회화와 같은 메커니즘을 바탕으로,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그의 그림은 얼핏 보면 튼튼한 지반 위에 지어진 단순한 건축물처럼 보이지만 일단 내부로 들어가 보면 수많은 방과 복도, 문과 계단으로 가득 찬 초현실적인 미로임이 드러난다. 작가는 엄밀한 통제력을 발휘해서 구축한 그 세계를, 보는 이들이 통과하는 동안, 현실적 인과나 자연의 법칙에 종속되지 않는 시간과 공간을 체험케 한다. 이는 「The butterfly dream」이나 「Meet my devil」에서 잘 드러난다. 「The butterfly dream」에 등장하는 부엉이는 장자의 「호접지몽」 글귀인 "Now I do not know whether I was then a man dreaming I was a butterfly, or whether I am now a butterfly, dreaming I am a man."이라 쓰인 천을 든 채, 여자를 응시한다. 바다를 바라보며, 너른 갯바위에 선 여자의 모습은 오로지 뒷모습만 보이므로 그녀의 내면은 가늠할 수 없다. 그저 관객이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부엉이의 눈빛과 텍스트, 장렬한 하늘빛 등으로 정황과 스토리를 추리를 해야 할 뿐. 인간 내면 속의 자아를 다룬 「Meet my devil」도 마찬가지이다. 쓰러져 있는 3구의 주검과 기사로 분한 자신(自身)이 천사와 마주보고 있다. 제목이 주는 뉘앙스로 비교적 내용이 드러난 듯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벽에 비춰진 3개의 그림자 형상은 뻔한 관념을 흩트려 놓는다. 그림자 속의 천사와 기사는 방금 싸움을 마쳤다. 전시 타이틀인 「The stranger」는 어떤가? 그는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에 나오는 마지막 구절 " 이 세상이 그처럼 나와 동일하며 형제 같다는 생각에 나는 행복했으며, 또 지금도 행복하다고 느꼈다. 모든 것이 완성되기 위해서, 그리고 내가 외롭지 않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서, 내가 바라는 마지막 소원은 내가 사형을 당하는 날 보다 많은 구경꾼들이 나를 증오의 함성으로 맞아주었으면 하는 것뿐이다."란 문장을 바탕으로 장면을 연출했다. 허나 이 또한 소설의 플롯에 갇히지 않은, 각색된 이야기이다. 「Altiora petamus(다이달로스의 초상)」로 명명된 그림 또한 다르지 않다. 신화에 나오는 다이달로스(이카루스의 아버지이며 발명가)와 미노타우루스 등의 일화에서 모티프를 따온 작가는 테세우스와 미노타우루스의 이야기가 그려져 있는 책상을 배치하고 그 위에는 날개를 제작하는 설계도와 재료들을 놓았다. 여인이 날려 보내는 새에는 빨간색 끈이 묶여져 있고, 새의 몸에는 나사가 박혀있다. 그리고 그들의 뒤쪽 벽에 'Altiora petamus'란 단어가 음각되어 있다. 화면은 분명 작가가 바라보는 세계에 관한 인식을 펼쳐 보이는 기승전결을 바탕으로 하지만, 이야기에 대한 해석은 그야말로 보는 이의 몫이다. 이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작가는 자신이 보여주는 하나의 사건이나 상황으로부터 의미를 이끌어내기 위해 필요했던 묘사의 공정을 극대화하거나 혹은 과감하게 생략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들 각 요소는 하나의 즉각적인 반응이며 동시에 통일된 집합을 이룬다. 박민준은 자신이 중점적으로 표상해온 '서사가 증식하는 세계'를 선사하기 위해 심리와 실재가 뒤얽힌 한 덩어리의 사건이나 상황의 충실한 제시에 열중한다.
박민준_A Equilibrist_린넨에 유채_116.8×73.6cm_2011
박민준_the stranger_린넨에 유채_101.6×81.3cm_2011

오감이 발달하지 않고 어찌 작가가 될 수 있을까만, 박민준의 인식과 시각은 스펙트럼의 그 끝에 닿아 있다. 그런 까닭에 작가가 지닌 독특한 통찰력이나 스토리 구성력에 긴 글을 소비했지만 박민준이 지닌 저력은 또 있다. 바로 그가 쏟아내는 공력과 명확한 레퍼런스이다. 그의 작업과정에서 예술적 시대정신과 장인정신은 명확한 평형을 이룬다. 이는 개념이나 아름다움에 그치는 것이 아닌, 미적인 가치와 육체적 노동이 어우러져야 비로소 명작이 된다는 작가의 신념 덕분이다. 하나의 화면을 완성하기 위해 그는 전혀 색다르며, 더 학문적인 스토리를 모을 뿐 아니라 이미 사회적 알레고리가 정립된, 다시 말해 통속적으로 공공연한 합의를 이룬 상징과 기호들을 파고든다.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 전시된 중세 갑옷의 세세한 공정을 재현해 깊이를 유지하되 동시에 현재적인 의미를 살리고, 커다란 목선(木船)의 위엄을 세밀하게 구사함으로써 밀도를 더하는 식이다. 또 실루엣이 아름다운 인물들과 아방가르드한 의상들을 배치해 시각적 유희를 극대화 시킨다. 바탕에 아교칠부터 모든 공정을 직접 하는 작가는 스케치를 멈추지 않고, 대상을 표현하기 위해 레퍼런스를 조합하며, 정교하게 세필로 채색한다. 그리고 그 모든 일련의 과정을 거쳐 완성된 작품은 보는 이에게 그림 그 이상의 차원을 선사한다. 자신이 의도하는 전혀 새로운 스토리에 신화적 이미지 혹은 역사적 일화를 얹음으로써 그것이 마치 존재하는 사실인양 여기게 만드는 작가 박민준. 다양한 상징의 형식들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그는 자신이 드러내고자 하는 스토리를 보다 유연하고 매끈하게 장식하며 동시에 새롭게 연출하는 능력을 지녔다. 허구의 픽션을 재구성해 논픽션처럼 드러내는 이 다이내믹하며 흥미로운 작품들은 과연 어떻게 진화될까. 분명한 사실은 박민준의 이야기와 시간 그리고 삶은 앞으로도 오래오래 얽히고설키며 흐를 것이라는 점이다. ■ 정일주


-------------







Full of Love






홍경택展 / HONGKYOUNGTACK / 洪京澤 / painting 2012_0405 ▶ 2012_0429 / 월요일 휴관




홍경택_Pens3_린넨에 유채_259×776cm_2010_부분



초대일시 / 2012_0405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8:00pm / 주말_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두산갤러리 서울 DOOSAN Gallery Seoul 서울 종로구 연지동 270번지 두산아트센터 1층 Tel. +82.2.708.5050 www.doosangallery.com




두산갤러리 서울에서는 볼펜, 연필, 책 등 일상적인 사물들로 화면 전체를 채우고, 강렬한 색채로 표현하는 홍경택의 개인전 Full of Love 를 개최한다. 홍경택은 2010년 두산 레지던시 뉴욕 입주작가이며, 2010년 10월 두산갤러리 뉴욕 개인전에서 「펜」 연작을 선보였다. 이번 전시에서 신작 한 점과 함께 전시되는 「펜3」는 2000년부터 10년에 걸쳐 완성한 8m 크기의 대작이다. ● 홍경택의 회화는 치밀하고 조직적인 균형을 이루는 평범한 물체들을 본래 재질이 가지고 있는 가벼움을 넘어 폭발적인 생명력을 가진 유기체로 변형시킨다. 화려한 색채와 매끈한 질감의 필기구들이 마치 무한 증식하듯 화면을 여백 없이 꽉 채운다. 과장된 크기와 색채, 여백이 부재한 그의 그림은 현실에서 파생되는 강박의 극단적 표현이며 현대 사회의 편집증적 성향을 반영하고 있다. ● 홍경택(b. 1968)은 경원대학교에서 회화과를 전공하고, 두산갤러리 뉴욕(2010, 뉴욕, 미국), 카이스 갤러리(2008, 서울, 한국), 갤러리 현대(2006, 서울, 한국)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으며, 대안공간 루프(2011, 서울, 한국), 플라토(2011, 서울, 한국), Vyom 아트센터(2011, 자이푸르, 인도), 국립현대미술관(2010/2009 과천, 한국), 보훔 미술관(2010, 보훔, 독일), 산트럴 이스탄불 미술관(2009, 이스탄불, 터키), 경기도 미술관(2008, 안산, 한국), 아르헨티나 국립현대미술관(2008, 부에노스아이레스, 아르헨티나), 싱가포르 미술관(2008, 싱가포르), 중국미술관(2007, 북경, 중국), 칠레 산티아고 현대미술관(2007, 산티아고, 칠레) 등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 두산갤러리
홍경택_Pens3_린넨에 유채_259×776cm_2010



DOOSAN Gallery

-------------





Beautiful Landscape and Beautiful Portrait : Hermes




한지민展 / HANJIMIN / 韓志旼 / mixed media.installation 2012_0330 ▶ 2012_0415 / 월요일 휴관



한지민_#1번_디지털 프린트_100×67cm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한지민 홈페이지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협찬,주최 / 스페이스 15번지 기획 / 정용도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스페이스 15번지 SPACE 15th 서울 종로구 통의동 15번지 Tel. 070.7723.0584 space15th.org



운동의 원인과 타자성의 변이Transition as a Form of Self-Identity 사회적 합의에 의해 정해진 규칙은 사람들이 생활하는 질서의 일반원리를 구성하는 행위의 요인들이 된다. 그리고 그런 규칙 안에서 삶의 다양한 양태들을 맞추어 가는 것이 습관과 전통으로 지속되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철학자와 이론가들이 언급했듯이 습관과 전통은 새로운 의미를 내포한 패러다임의 전개에 항상 저항적으로 대응하고, 그런 대응의 과정이 지속되면서 새로운 질서의 축들이 만들어진다.
한지민_#1숨_영상설치_00:05:00_2012
한지민_#2숨_영상설치_00:05:00_2012

한지민의 이번 전시 『Beautiful Portrait, Beautiful Landscape』는 이미지의 분열이 어떤 의미를 만들어 내고, 어떤 의미를 우리 삶의 영역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는지, 혹은 삶의 기호들이 어떤 운동 속에서 파편성을 극복하는지를 보여주는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마네킨 같은 오브제들이 인간의 얼굴을 대신하고, 남성의 몸이 의상들을 통해 여성성의 기호들을 드러내는 변이의 과정, 문화적 의미가 부재하는 페허의 동산 혹은 황무지에서 스스로를 바라보는 행위들을 통해 불안하게 우리를 응시하고, 그 불안을 응시하게 만드는 원인들을 의식이라는 운동의 차원에 개입시킨다. ● 예술은 삶의 의미들을 하나의 가치 상황으로 제시하려는 노력을 해왔다. 말하자면 삶이 왜 미학적으로 정의되어야만 하는가, 왜 삶이 철학적으로 사유되는지를 매개체인 예술적인 행위와 질료들을 통해 제시하려고 노력해 왔고, 그 안에서 스스로의 창조성을 확인하게 되는 예술적 가치들은 삶의 가치들을 반추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예술가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저항(스스로의 삶에 진실한 예술가들이 언제나 아방가르드의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에서)을 통해 파편적인 세계를 '자유'의 상태로 되돌려놓고자 하는 것이다. ● 여성적인 관점에서 '구속'을 바라보는 것은 남성적인 의미에서의 구속을 바라보는 의미와는 분명히 다른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관객들이 자신의 개인적인 상황들을 해석하는 차원과 닮아있기도 하고, 또 다른 차원들의 개인사들이 수많은 의미의 가지들을 통해 분출되는 이 세계에 대한 해석만큼이나 구속은 개인의 입장에 따라 수많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한지민에게 구속은 '타자성'(the Otherness)으로부터 나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춘기 이후의 오랜 외국생활을 경험한 작가에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는 삶의 의미론적인 연결들이 이곳저곳에서 파열되어 있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강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어떤 면에서 일반화시켜 말한다면, 스스로 세계를 바라보는 의식의 활동상태가 아직 의미의 연결고리들을 완성하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볼 수 도 있을 것이다. (젊은 작가들에게서 볼 수 있는 예술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볼 수 있다).
한지민_Dominates you_디지털 프린트_78×93cm_2012
한지민_#2번_디지털 프린트_100×67cm_2012

한지민에게 구속은 여성이 가지고 있는 개인적 의식의 범주이기도 하고, 삶의 고리들이 완성될 수 없는 고향을 떠난 영혼이 가지고 있는 불안일 수도 있다. 작가는 이런 상황들을 오브제의 타자성을 빌려 이중적인 메타포로 제시하고 있다. 그녀의 작품에서 이미지는 존재의 생소함을 표현하는 오브제이자 의식의 불안을 반영하는 해석의 도구이기도 하다. 그리고 타자성은 그런 메타포 속에서 개인의 정체성 내부로 굴절된다. 여기서 타자성은 예술가로서의 개인의 시각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성을 지시하는 새로운 가치들을 생산한다. 실존적인 차원에서 우리는 이미 이 세상에 내던져진 '경험적인 타자'들이기 때문이다. ● 경험을 통해 구축된 의식의 존재상태들이 이미지를 통해 삶의 운동으로 변이되기 때문에, 한지민의 작품에서 존재의 방향은 오히려 의미를 구속하는 타자성을 통해 예술의 의미론적인 상황으로 확장되고, 그런 변이의 과정 속에서 작가는 오브제와 자신의 영혼에 생명을 부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 내재되어 있는 것은 예술이 가지고 있는 변함없는 가치인 '자유'의 문제와 관련된다. 헤겔적인 관점을 빌려 말하자면 자기정체성을 찾아가는 철학적인 여정은 수많은 가치들이 서로 대립과 종합을 통해 순화되는 변증법적인 차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변증법에서 자유로운 예술은 언제나 존재의 본질을 자극하는 최고의 원인이 된다. 구속의 상태에서 자유로운 영혼만이 자유로운 예술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때때로 보편적인 인간들에게 자유는 항상 불안을 수반하는 의미의 역행 과정인 듯이 보이기도 하지만 작가에게 그런 불안은 자유를 지향하는 미학적 가치 생산의 원인이 된다.
한지민_Reveals Your Critical Choice_레터커딩_20×90cm_2012
한지민_Parts_디지털 프린트, 알류미늄 테이프_100×67cm_2012

항상 유동적인 상태를 앞에서 말한 '불안'의 본질이라고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불안을 통해 유동성이 작품의 속성을 예술적인 '가능태'로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한지민의 작품에서 그런 특성들이 강하게 보여지는데, 이는 작가가 표현의 도구와 표현, 오브제와 이미지, 개인과 예술이 서로 혼재되는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은 작품을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자신이 존재하는 삶의 지평을 모든 것이 변화의 차원에 긴밀하게 반응하는 '도구연관적' 상황으로 던져놓을 뿐이기 때문에, 말하자면 한 가지 요인이 새로 개입하게 되면 모든 것이 그에 맞추어 변화되는 구조적인 변화를 수반한다는 의미에서 작가는 스스로를 가장 잘 드러내는 예술적 차원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미학적 의미로서의 변화라는 것이 한지민의 이미지들에서 현실과 의미의 강한 연결성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 한지민의 미술에서(사진과 영상매체를 사용하지만 헤겔적인 의미에서 예술의 순수성을 지향한다는 의미에서 순수예술의 특성을 지닌) 스스로를 결정하는 예술적 개성은 단순히 삶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집합이 아니라 현실을 거리를 두고 관찰함으로써 예술을 삶의 상태로 지속시키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이 미학적 의미를 구성하고, 예술의 상황을 작가 스스로의 삶의 상황과 등식화시키는 계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지민에게 예술은 삶의 부분이 아니라 삶 자체가 될 수 있고, 그런 의미에서 예술적인 아우라(Aura)가 가능해지는 원인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 정용도


---------





자연을 탐(探)하다 1991-2012




이재효展 / LEEJAEHYO / 李在孝 / sculpture.installation 2012_0330 ▶ 2012_0527 / 월요일 휴관



이재효_0121-1110=112031_나무(오크나무)_가변 설치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재효 홈페이지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도슨트 설명_매일 2회 (02:00pm, 04:00pm)

관람료 / 5,000원 / 학생 4,000원 7세 미만 어린이 및 65세 이상 무료관람 (까페이용 별도) * 20인 이상 단체_1,000원 할인 / 사전 전화문의_Tel.02.737.7650 * 장애인, 국가유공자는 단체관람료 적용

관람시간 / 10:00am~06:00pm / 매주 목요일_10:00am~08:00pm 연장개관 / 월요일 휴관 * 종료시간 30분 전까지 입장

성곡미술관 SUNGKOK ART MUSEUM 서울 종로구 신문로 2가 1-101번지 Tel. +82.2.737.7650 www.sungkokmuseum.com



성곡미술관은 2012년 봄 전시로 『자연을 탐(探)하다: 이재효 1991-2012』展을 개최합니다. 이번 전시는 성곡미술관이 2010년부터 선보이기 시작한 중견?중진작가집중조명시리즈 10번째로 중견 조각가 이재효의 지난 20여년을 돌아보고자 중간회고전 성격으로 마련했습니다. ● 그동안 이런저런 기회를 통해 부분적으로 소개된 바 있는 초창기 드로잉, 조각소품, 설치작업 200여점을 미술관 최초로 공개하는 등 2012년 신작을 포함한 총 300여점의 크고 작은 다양한 작업을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이번 이재효의 반(半)회고전은 나무나 못을 사용한 제한된 몇몇 작업으로만 대중에 널리 알려진 작가의 작업세계를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을 바랍니다.
이재효_Untitled_스틸_31×20×8cm_1998 이재효_Untitled_혼합재료_45×21×15cm_1995 이재효_Untitled_혼합재료_37×15×8cm_1993

1. 모름지기 예술가는 특정 형식을 오랫동안 고집하거나 주목하는 것을 예의 경계해야하지만 자연의 형식은 이재효에게 지속적이고 생산적인 작업 모티프로 작용했다. 자연이 지닌 다양한 형식과 체계적 통일성 그리고 자연으로부터 받아들인 경험적 법칙들은 조각가 이재효에게 있어 건강한 작업충동이 되었다. ● 이재효는 이른바 시골에서 나고 자랐다. 학창시절을 제외하곤 줄곧 시골에서 살았다. 지금도 시골에서 살고 있다. 돌아보니 어린 시절 시골에서 살며 경험한 한국의 사계와 그에 따른 세세한 자연의 변화는 그토록 찾고 바랐던 훌륭한 스승이었다. 보잘 것 없는 하나하나가 모여 아름답고 커다란, 가치 있고 의미 있는 하나를 이루어나가는 과정을 여실히 보여준 살아 있는 교육 현장 그 자체였다. ● 조각가로 성장 후 자신을 돌아보았다. 오만이었다. 나름 뛰어난 손재주와 남다른 눈썰미 하나 믿고 조각가의 길로 들어선 그였지만 정작 답은 겸손한 자연에 있었다. 다시 자연으로 돌아갔다. 내비게이션에도 잡히지 않는 깊숙한 곳에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다. 자연과 함께하며 작고 사소한, 힘없는 것들의 진정한 가치를 깨달았다. 자연의 끈질긴 생명력을 통해 그들의 아름다움과 강한 힘을 보았다. 마음 속 깊이 자연의 보편적 개념을 받아들였다. 자연을 압도하려는 흔한 인간적 교만을 자연스레 덜어나갔다. 자연의 형식과 하나 되어 어울리며 자연을 받아들이고 더해갔다. 시나브로 몸과 마음, 눈높이를 자연에 맞추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의 작업 전반에 배어 있는 따스한 자연충동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재효_Artist's drawings

2. 이재효는 땅에 떨어진 빛바래고 말라비틀어진 자연물, 용도 폐기된 고물, 소임을 다하고 버려진 사물들에 무한 애 정을 보낸다. 사소하지만, 그에게는 사뭇 소중하다. 그들의 다하지 못한 생명력과 존재의 떨림이 가슴 속 울림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울림과 떨림. 이재효가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이유다. 누구보다 먼저 다가간다. 사랑으로 어루만진다. 아이디어를 시각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특별히 재료를 찾아 나서기보다는 자연과 생활 가운데 만나고 접한 오브제들을 통해 콘셉트를 떠올린다. 뛰어난 감각이자 발상이다. 그의 순발력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 이재효의 작업실 내 사무공간과 작은 전시공간에는 아기자기한 오브제 드로잉, 소품들이 가득하다. 나뭇가지, 담배꽁초, 연필, 못, 핀, 세숫수건, 주운 철판, 낡은 성경책, 용접봉, 철사, 용수철 등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들을 구부리고 쌓고 파내고 묶어내며 조합했다. 이재효로부터 새로운 생명을 부여 받은 그들은 생기가 완연했다. 손에 닿는 모든 것을 만지작거려 무언가로 재탄생시키는 연금술사 이재효. 볼품없고 보잘 것 없는 것들을 모아 다양하고 아름다운 무엇으로 이야기하듯 뚝딱 엮어낸다. 이재효의 커다란, 제법 규모 있는 대부분의 조각들은 이러한 따스한 미물에의 관심과 수많은 소품 제작과정을 거치면서 비롯되고 완성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이를 테면, 이재효 특유의 오브제 드로잉이라 부를 수 있겠다. ● 작업 모티프가 그러하듯 대부분의 작업은 자연에서 구한 재료를 사용한다. 나무와 나뭇가지, 떨어진 이파리, 크고 작은 돌, 풀 등이 그것이다. 못이나 볼트, 철제 와이어와 철근, 용접술 등도 일부 개입한다. 재료들을 안전하게 효과적으로 결합하고 집적하기 위해서다. 이재효의 작업에서 이들의 만남과 역할은 운명적이다. 어찌 보면 상처를 입고 입히는 관계의 나무와 못이 상조(相助)하며 그의 대표적인 작업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때론 나무가 중심이 되기도 하고 때론 못이 강조되기도 한다. 철근이나 철제 와이어는 주로 나무 이파리나 돌 등을 반복적으로 엮거나 천정에 높이 매다는 등 제작과 현장설치를 위해 제한적으로 사용된다. 자연을 효과적으로 전하고 드러내기 위해 최소한의 인공을 용인한다. 작업현장은 규모도 규모지만, 그야말로 치열한 공사현장을 방불하게 한다. 작품의 규모와 제작과정이 점점 커지고 치밀해지고 있음이다.
이재효_0121-1110=112035_돌_18×365×365cm_2012

3. 도처의 생활문화공간에서 접하는, 그래서 더욱 익숙해진 이재효의 나무, 못작업들과는 달리, 실험적인 설치작업은 그동안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초대형규모의 설치작업에서부터 공간을 반영한 현실적인 크기와 다양한 재료의 설치작업들이 상당하다. 이재효가 지난 20여 년 동안 꾸준히 천착해온 자연과 작업에 대한 이해와 의식을 가장 직접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작업이다. 지난 작업은 물론 앞으로의 작업 방향까지 총망라하는 결정체로 이해된다. 작가에게는 일종의 미완(未完)의 프로젝트인 셈이다. ● 이재효의 설치작업은 자연의 내적/외적구조를 원과 직선을 중심으로 포괄하고 있다. 자연의 순환구조와 반복양상을 단순하면서도 함축적으로 반영한다. 자연의 원만함과 무한함, 생성과 소멸, 고정되어 있지 않고 움직이는 속성을 현재적 파노라마 시점으로 담았다. 강가에서 주운 돌과 버려진 나뭇가지 등 자연의 풍상을 고스란히 간직한 재료들 그리고 바람, 빛, 공기, 소리 등과 같은 비물질적인 기운들을 머금고 있는 여러 오브제들을 동시에 만날 수 있다. 작품이 실제로 움직이지 않으나, 마치 움직이는 것 같은 효과(moiré)를 경험하게 하는 옵티컬한 설치작업도 흥미롭다. 일부 작품의 경우, 줄을 당기면 오브제들이 부딪히면서 소리를 내며 화답하는 일종의 키네틱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이재효_0121-1110=1080815_돌_95×95×600cm_2008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그러나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꾸준히 계속될 실험적인 설치작업에 비해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작업은 역시 나무와 못을 사용한 작업이다. 1998년 무렵부터 선보이기 시작한 나무작업은 이재효를 일약 세계적인 스타작가 반열에 올려놓은 일종의 신호탄이었다. 그동안의 작업이 그러했듯 재료의 속내와 성결을 있는 그대로 강조했다. 밤나무, 잣나무, 동백나무 등 다양한 수종을 선택적으로 사용했다. 그중에서도 나이테가 맑고 선명하게 드러나는 낙엽송을 주로 채택했다. 벌목과정에서 남은 자투리가 대부분이다. 대형 작업의 경우, 목재시장에서 직접 구입하기도 한다. 작업이 시작되기 전에 만난 나무들은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투박하고 보잘 것 없다. 또한 살아 있는 나무가 아니기에 단면에는 건조하게 갈라진 틈들이 많이 드러난다. 그러나 이재효는 이 모두를 묵묵히 받아들이고 자연스런 미감으로 승화시켜 나간다. 작가의 무던함이 묻어나는 부분이다. ● 자연의 속성을 하나로 응축하려는 듯 이재효의 나무작업은 몇 개의 단순한 형태로 환원된다. 사물과 자연의 고갱이를 단단하게 보여주려는 그의 노력이 자리하고 있음이다. 나무의 속살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작업은 주로 구(球)나 링, 기타 다양한 유기적인 형태로, 환원적 속성을 띤다. 작업 모티프를 하나의 구체적인 형태로 환원, 응축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뼈대를 만든 후 나무를 더해 들어간다. 우선 용접술을 통해 나무를 지지하고 고정할 뼈대를 만든다. 마치 까치가 나무위에 나뭇가지로 집을 짓듯 얼키설키 나무들을 엮는다. 보조적인 지지대라든가 서로를 견고하게 지탱하고 잡아주는 심봉들이 추가된다. 나무와 나무를 연결하고 하나로서 맺어주는 역할을 못과 볼트가 묵묵히 수행한다. 계획했던 구체적인 외형을 대입시킨다. 의도하는 형태를 얻을 때까지 대형 전기톱으로 나무를 잘라낸다. 서로를 견고하게 지지하기 시작한다. 여러 종류 와 크기의 나무와 수백 개의 못과 볼트, 그리고 철판이 사용되지만, 결과적으로 나무가 드러나고 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이재효_0121-1110=112032_나무(낙엽송, 동백나무)_38×299×38cm, 74×100×62cm_2012

이재효는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못을 활용한 작업을 시작했다. 수 백, 수 천 개의 못을 쉼 없이 두드려 박았다. 나무작업이 그러했듯 못의 내부에 감춰져 있는 재료의 본성과 물성을 존중하되 보다 직접적으로, 공격적으로 드러내고자 노력했다. 이재효의 못작업은 평소 나무속 깊이 박혀 있어 제한적으로만 알고 있던 못의 억압된 존재론적 본능을 매력적으로 들춰내는 작업이다. 감추어져 있었던 못의 자유로운 표정과 반짝이는 속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못과 볼트 안에 잠복되어 있던 표정과 기운을 이처럼 극대화한 된 적은 없다. 검게 그을린 침묵의 들판 위에 수 천 개의 못들이 집단적으로 춤을 춘다. 메시지를 전한다. 상상할 수 없는 표정과 동작으로 속내를 드러낸다. 나무작업과는 달리 못이 중심이 되고 나무가 보조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 일정한 형태의 매스를 지닌 나무 위에 수 천 개의 못들을 치고 박은 후 이리저리 구부린다. 그라인더로 반지름 정도의 두께를 갈아낸다. 하얀 반짝이는 속살이 드러난다. 불로 나무를 적당히 그을리거나 태운다. 나무의 표정은 검게 타들어가고 부피가 줄어들면서 상대적으로 못의 존재가 선명하고 강하게 부각된다. 태울수록 그 존재는 더욱 빛이 난다. 평소 나무에 박힌 채 그 존재를 드러내지 못했던 못이 여기저기 반짝반짝 거리면서 섬광처럼 번뜩인다. 못과 볼트를 구부리고 갈아내는 등 인공을 다스린 결과이자 흔적이다. 이러한 못작업은 나무작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확산적인 양상을 보인다. 활짝 열린 바깥세상을 향해 해방의 기운을 널리 퍼뜨리고 있는 못이라는 오브제들의 시각적 산종(散種)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이재효_0121-1110=1101012_스테인리스 스틸 볼트, 못, 나무_180×233×7cm_2010

4. 이재효의 작품은 대부분 물리적으로 엄청난 무게를 갖고 있지만, 금방이라도 두둥실 하늘로 떠오를 듯 가볍게 다가온다. 시각적으로 경쾌하고 가벼운 느낌을 준다. 크게 부담이 없다. 사실 주재료인 나무의 무게도 무게지만, 그것들을 잡아주고 지탱하는 철제구조와 철판 등의 무게가 상당하다. 재료가 주는 친근함과 자연처럼 무리 없는 원만한 형태를 지향하는 작가의 성결을 닮았기 때문일까. 작품들은 대부분 동글동글 유기적인 표정이다. 재료도 그러하지만, 시각적/촉각적으로도 거부감이 없다. 원만한 양상이다. 세상이 그러했으면 하는 작가의 바람일 수도 있다. ● 뭉치면 힘이 된다고 했다. 작고 미약한, 보잘 것 없는 것들로부터 익숙하고 친근한 것들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집적해나간 그의 작업은 풍부하고 단단한 시각적/물리적 양감을 보인다. 때론 특정 방향, 혹은 정해지지 않은 방향성을 보이며 특정 형태로 응집되어 있다. 단단하게 뭉친, 물리적/시각적 견고함이 압권이다. 한편 부드럽고 가벼워 보이는 시각적 경량감은 그의 작업을 어디에 놓아도, 심지어 천정에 매달아 놓아도 크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 주변과 주위 환경과 다투지 않는 무리 없는 이재효 특유의 조형감각이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 이재효의 작업이 선사하는 매력은 자연과 인공의 상호작용이 자아내는 다양한 조합과 생생한 연출이다. 이들은 다투지 않으며 서로를 존중하듯 자신을 숨기고 낮추며 상대를 위해 배려한다. 밖으로 드러나 있건 안에 숨겨져 있건 중요하지 않다. 주목할 것은 그가 작업을 통해 환기시키려는, 관객에게 건네는 자연에 대한 이야기다. 대조 역시 조화라 했던가. 자연과 인공, 나무와 철, 작가의 행위와 그것을 묵묵히 받아주는 오브제의 성결이 모두 같은 듯 다른, 대비되고 대립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이재효의 품성이 그러하듯 이들은 결코 다투지 않는다. 다만 유기적인 조화와 질서를 선사할 따름이다. ● 이렇듯 이재효의 작업의 특징이자 미덕은 다투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연과 인공이 그러하고 작품과 설치되는 공간, 작가와 재료가 그러하다. 재료 또한 서로 다투지 않는다.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 집적되어 있다. 뭉치면 힘이 된다는 것. 보잘 것 없는 자연의 티끌, 터럭 하나도 가벼이 여기지 않는 작가의 애정을 만날 수 있다. 새삼 먼지의 두께를 돌아보게 한다. 이번 전시는 끊임없이 반복, 순환하는 자연의 다양한 형식과 체계적 통일성에 대한 애정과 깨달음 그리고 꾸준한 성실함으로 이어온 작가의 지난 작업세계를 한자리에서 비교,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 박천남




modified at 2012.04.04 23:59:54 by zabel
2012.04.04 16:17:51 / Good : 551 + Good

zabel

  • 작성시각: 2012.04.05 00:00:22
  • 총 작성한 글타래: 56 개
  • 총 작성한 댓글수: 141 개
  • 가입일: 1970/01/01
  • 포인트:
  • 레벨:
  • 오프라인 상태입니다
글 제목: 갑작
수정 삭제



NeoForum 2012 – Line in Line


수정(Suejean)_이승현_전윤정展 2012_0405 ▶ 2012_0422 / 월요일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 수정(Suejean)_이승현_전윤정

주최/기획 / 성북구립미술관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관람 종료시간 30분 전까지 입장 가능

성북구립미술관 SEONGBUK MUSEUM OF ART 서울 성북구 성북동 246번지(성북로 134) Tel. +82.2.6925.5011 sma.gongdan.go.kr


성북구립미술관 NeoForum 2012 - Line in Line ● 성북구립미술관에서는 2012년 4월 5일(목)부터 4월 22(일)까지 『NeoForum 2012』-Line in Line 展을 개최한다. 올해 첫 회를 맞이하는 『NeoForum』은 성북구립미술관에서 매년 지속적으로 진행될 프로젝트로서 재량 있는 젊은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기획 전시와 함께 대중이 참여할 수 있는 아카데믹한 강연 및 토론의 장을 형성한다. 또한 이를 통해 미술관의 교육적인 역할을 지향하고, 작가와 대중이 소통할 수 있는 직접적인 기회를 제공하여 관람객 및 참여자의 이해도를 높이고자 한다.
수정(Suejean)_流音 Flowing Sound 2_한지에 먹_73×73cm_2012
수정(Suejean)_流音 Flowing Sound 4_한지에 먹_73×73cm_2012

이번 『NeoForum』전시는 'Line in Line'이라는 주제 아래 '선(Line)'이라는 본질적인 조형요소를 통해 가시화된 내면 또는 가상의 세계를 표현하는 수정(Suejean), 이승현, 전윤정 작가로 구성된다. 이 3명의 작가는 뿌리기, 붓질 드로잉, 라인 테이핑(taping)과 같은 특정한 예술 행위를 통해 감각적인 형상 혹은 이미지들을 생성하고, 캔버스 화면과 전시장 벽면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관객들에게 친숙하고도 낯선 풍경을 연출해낸다.
이승현_Masterpiece virus 002_장지에 주묵_117×212cm_2008
이승현_Masterpiece Virus 004_한지에 잉크_138.5×212cm_2008

수정(Suejean)은 자아의 본질 속에 내재되어 있는 '아름다움'을 소리로 파생시키고, 이를 화면 위에 자유롭게 흩뿌려진 먹물의 형상을 통해 가시화된 이미지로 재탄생시킨다. 이승현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탄생된 생명체 혹은 전통 명화의 이미지들을 무수히 많은 붓질로 해체하고 조합하여 기이하고도 오묘한 화면을 연출한다. 전윤정은 캔버스 화면 혹은 실제 벽면에 0.2mm 라인테이프를 겹겹이 쌓아 올려 만들어낸 형상을 통해 자신의 내면 속에 숨겨진 감정들을 외부로 풀어내고자 한다. 그는 라인테이프가 만들어내는 드로잉 선의 형상뿐만 아니라 작업 과정에서 보여지는 행위 자체를 통해 본인의 감정을 전달하고 있다.
전윤정_Black rainbow_캔버스에 블랙 라인 테이프_120×120cm_2009
전윤정_escape series_crying_캔버스에 블랙 라인 테이프_116×73cm_2008

성북구립미술관 『NeoForum 2012』-Line in Line 展은 '선'이라는 조형 요소와 드로잉을 바탕으로 독특한 회화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가들을 중심으로 기획되었으며, 이를 통해 폭넓어진 현대 미술의 일면을 대중들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아울러 전시 기간 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전시 연계 강연과 어린이들을 위한 실기 강좌를 마련하여 관객들의 전시 이해도를 높이고, 작품 세계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함께 제공한다. ■ 김경민


---------



채수원-採穗園 Scion Garden


박유진展 / PARKUZINE / 朴宥賑 / painting 2012_0406 ▶ 2012_0426 / 일,공휴일 휴관


박유진_붉은 꽃의 야상곡 Nocturne of red flower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7×91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01117j | 박유진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협찬,주최,기획 / 갤러리거락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일,공휴일 휴관

갤러리 거락 Gallery CoLA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530-4번지 Tel. 070.4235.6483 www.gallerycola.com


야생의 숲과 경작지 사이의 자연 ● 박유진이 일궈놓은 그림 정원의 이름 모를 식물들 사이로 바람이 분다. 그 바람은 식물로부터 발산되는 에너지와 식물이 흡수하는 에너지가 뒤엉켜 공간을 식물 향기로 가득 채운다. 브람스를 들으며 그렸다는 식물들은 뻣뻣하게 서있는 것이 아니라, 흔들거린다. 몸과 함께 마음도 흔들린다. 엉겅퀴 꽃들이 가로수를 이루고 있는 작품 「바람 속 정원」(2012)에서는 사각형 풀밭을 향해 덩굴들이 구름처럼 내려오는 가운데, 식물과 공간을 휘휘 감아 도는 연한 녹색 띠가 상쾌하게 펄럭인다. 연한 녹색 띠가 엉겅퀴 꽃을 에워싸는 작품 「풍력 충전」(2012)에서, 바람은 식물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충전 에너지로 작용한다. 날카로운 줄기와 크고 화려한 꽃망울을 가진 엉겅퀴는 바람에 맞서는 것이 아니라, 바람에 몸을 맡기고 춤을 추는 듯하다. 박유진의 작품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여러 식물은 함께 리좀(Rhizome)을 이룬다. ● 이 작품을 비롯하여, 한정된 공간임을 암시하는 불연속적인 사각 면들이 많이 등장한다. 작품 「붉은 꽃의 야상곡」(2011)에서 사각형 형태 안에 또 다른 사각형이 창처럼 걸쳐 있다. 앞과 달리 뒤의 식물은 동양화처럼 표현되어 있다. 여러 개의 사각형이 등장하는 작품 「깊은 산 숲속에」(2012)는 다른 시대, 다른 계절의 식물들이 공존한다. 화면 또는 장소의 한정은 조합을 통해 다양한 시공간을 병존시킨다. 테두리 안에 식물이 가득하기는 하지만, 숲이나 정글 같은 원초적인 자연은 아니다. 작가는 제주에 가서 천년의 나무가 자라는 숲에서 공포를 느낀 반면, 그곳 호텔의 정원에서는 아름다움을 본다. 어둡고 빽빽한 숲이 아닌, 사람의 손길로 다듬어진 반쯤은 인공적인 연출에 대한 취향이 있다. 광대한 자연 속에서 길을 잃기보다는, 자신의 계획이 투사된 자연에서 길을 만들려 한다. 미학적으로 본다면 숭고 보다는 아름다움에 기울어있다. ● 미술사는 숲에 대한 원초적인 공포감이 사라지기 시작했을 때, 곧이어 인간이 마구 자연을 파괴하기 시작했을 비로소 풍경화라는 것이 등장하고 각광받았음을 알려준다. 한정지을 수 없는 야생과 달리, 정원은 일련의 계획과 조정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은 본격적인 의미의 농경과도 다르다. 정원은 야생의 숲과 경작지의 노동 사이에 존재한다. 하인리히 롬바흐는 「정원의 철학」에서 경작지에서 정원의 반대 그림을 본다. 경작지는 노동을 의미하고 대지에 대한 폭력, 땀, 괴로움, 법규, 인공적 질서, 많은 조건들에게 복종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것은 풍부한 수확물과 법과 공공성과 공동체를 가져다준다. 즉 문화를, 보다 높은 단계의 안정성과 자의식을 갖는 삶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지속적인 일방성이 수반된다. 자크 브로스는 역사적으로 양자를 대조한다. 그는 「식물의 역사와 신화」에서 농업에 앞서 도처에서 원예, 즉 마당을 가꾸는 경작이 시작되었다고 본다.
박유진_시금치의 자손 A scion of spinach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91.9cm_2012
박유진_깊은산 숲속에 Deep in the forest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91.9cm_2012

브로스에 의하면 과수원과 채소밭, 관상 정원들이 밭보다 먼저 등장했다. 정원은 둘러싸인 것, 고립된 것을 의미한다. 가장 오래된 정원은 다듬어지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식물이 자라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제한되어 있고 폐쇄되어 있는 공간을 말한다. 자연과정에 개입함으로서 수확량은 증가하였다. 곡식 재배는 결국 어머니인 대지의 여신을 아들이 범함으로서 출현한 것이다. 농업은 초기에 매우 거칠고 폭력적인 행위로 인식되었다. 인간이 어머니인 자연을 가혹하게 다루어서 길들이는 행위는 원예와는 완전히 다르다. 원예는 양식을 주는 대지와의 내밀하고 평화스러운 협력관계이며 하나가 되는 교감 관계이기 때문이다. 원예에는 부계적 생산과 폭력보다는 모계적 살림과 평화가 발견된다. 초기 농경사회에서는 가족 부양은 남자의 몫으로, 남자들은 밭을 갈고 농사를 지음으로서 가족들을 부양한다. 밭을 가는 행위는 남성의 힘을 필요로 할 뿐 아니라, 상당한 수준의 공격성을 요구하는 행위이다. 사냥꾼의 경우 다른 육식 동물들이나 다를 바 없는 행동을 했을 뿐이므로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것이 아니었던 반면, 농경 생활자들은 자연은 질서를 거슬러서 자연을 강간하고 금기를 어기는 행위를 하기 때문이다. ● 야생의 숲과 경작지의 차이처럼, 예술에도 극단적인 두 가지 태도가 있을 수 있다. 박유진의 작품에서 원예나 정원의 공간은 원초적 자연인 숲이 농경의 기술과 노동력에 의해 완전히 경작지로 정복되기 전의 중간단계를 보여준다. 정원은 자연과 인공적 질서의 중간에 속한다. 길들여지지 않은 원초의 자연은 공포스럽고 생산력의 수탈 아래 놓인 자연은 지루하다. 그 자연에는 인공의 손길이 닿아있지만, 정원이나 공원, 과수원 같은 곳도 아니다. 전시부제는 다소 낯선 명칭인 '채수원'이다. 채수원이란 접붙이기의 위쪽 부분만 모아서 기르는 정원이다. 작품 「겨울나기」(2012)처럼 이질적인 두 개가 접 붙은 나무들이 자라는 곳이 채수원이다. 작품 「접목」 (2011)에서 아래둥치의 접면이 노출 된 나무는 다양한 그린으로 칠해진 여러 형태의 잎이 덥수룩하다. 작품 속 나무는 대지에 깊이 뿌리를 내린 대표적인 기념비적인 형상이 아니라, 풀처럼 유연하다. 대부분 우리들이 먹는 과채 나무는 씨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접붙이기의 산물이다.
박유진_바람 속 정원 Garden in the wind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91.9cm_2012

가령, 자연 그대로의 씨에서 자란 나무에서 딴 사과는 너무 시어서 먹을 수가 없다. 그 열매도 과일가게에 놓인 것들처럼 탐스럽게 크지도 않을 것이다. 실제로 접붙이기가 가능한 경우는 종류는 많지 않지만, 박유진의 채수원에는 정원처럼 자연과 인공의 합작품인 예술의 상상력으로 기이한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정원은 또한 사랑과 관심어린 보살핌의 대상이자 과정이라는 점에서 인생과 비교될 수 있다. 정원을 가꾸는 자는 그곳에 자신을 투사하곤 한다. 정원은 정원사의 몸과 마음의 연장이다. 식물을 가꾸는 작가의 취미와 별개로, 부모의 따뜻한 보살핌에 이어 국제결혼을 한 그녀가 채수원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박유진의 채수원은 실제의 육종기술에는 불가능한 실험의 장이다. 시금치 잎부터 엉겅퀴까지 다양한 식물들이 등장하지만, 아래가 부실하고 위가 강조된 형태는 공통적이다. 채수원의 식물들은 보살핌의 대상이기에 관심을 끌기 위한 윗부분은 크고 화려하며, 접목과 이식을 위해 잘려지는 아랫부분은 있는 둥 마는 둥하다. ● 기이하고도 유혹적인 형태들은 자연발생이나 깊은 뿌리내림보다는 이식과 접목이라는 방식에서 기인한다. 식물들은 팝업처럼 얇은 바탕에서 일어나 있곤 하며, 대지는 두루마리 휴지처럼 한정된 폭과 길이와 얇기로 출렁인다. 작가는 깊이가 아닌 표면에서 가장 비옥한 토지를 발견한다. 화면도 색이나 형태로 꽉 채우지 않는다. 때가 되면 분갈이하는 것처럼 그림이라는 유기체에 숨통을 틔워주려 한다. 작품 「잡초 방지장치」(2011)는 붉은 색 화초를 잡초로부터 보호하는 띠가 두루마리 종이처럼 리드미컬하게 공간을 점유한다. 두루마리는 팝 업 이미지와 함께 그림, 또는 자연의 시뮬라크르적 속성을 강조한다. 박유진의 채수원은 하나의 씨앗으로부터 출발하는 실체적이고 본질적인 사고를 벗어난다. 실체적이고 본질적인 사고를 추동하는 대표적 이미지는 하나의 씨앗이나 뿌리로부터 시작되는 거대한 계통수이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천개의 고원」에서 서구 형이상학의 계보를 나무에서 발견한다. ● 그들은 나무가 왜 그토록 서양의 현실과 사유를 지배해 왔는가를 묻는다. 그것은 나무가 뿌리, 기초, 바닥, 토대를 암시했기 때문이다. 저자들에 의하면 서양은 숲과 벌채와 특권적 관계를 맺고 있다. 숲을 정복해서 생겨난 밭에는 종자식물을 심었다. 동양은 숲과 밭보다는 스텝과 정원과 관계된다. 농업이 서양이라면, 원예는 동양이다. 종자식물들로 하는 서양의 농사와 덩이줄기로 하는 동양의 원예의 대립, 그리고 씨뿌리기와 꽂아놓기의 대립이 있다. 뿌리의식은 초월적 사고를 낳는 서구적 질병이다. 저자들은 서구가 리좀이나 풀을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서구적 관료주의의 특징은 농지와 토지대장으로부터의 기원, 뿌리와 밭, 나무와 나무의 경계 역할, 사유지에 기반 한 국가 세우기 등에 있다. 여기에서 하나의 점이나 뿌리로부터 시작하는 나무의 이미지가 강력하다. 반면 박유진의 작품 속 접붙여진 나무들은 풀 같은 속성이 강하다. ● 특히 화면 곳곳에 드리워진 덩굴손들은 마치 구름과도 같은 형태와 밀도의 가변성을 가지는 리좀의 이미지들이다. 심지어 한 나무를 이루는 잎사귀들도 형태와 색상이 제각각이다. 박유진의 작품 속 식물은 나무에도 리좀이 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진화의 도식에서 나무나 혈통 같은 오래된 모델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신에 그들은 리좀을 내세운다. 진화의 도식은 덜 분화된 것에서 더 분화된 것으로 나아가는 나무 모양의 혈통 모델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이질적인 것 안에서 즉각 작동하며, 이미 분화되어 있는 한에서 다른 선 위로 도약하는 리좀을 따라갈 것이다. 리좀은 하나의 반(反)계보이다. 생물학은 물론 신학, 인식론, 존재론 등을 지배한 형이상학적 계보학은 사회를 지배하는 통일적이고 계급적인 구조를 낳았다. 그와 비교해서 리좀은 총체나 전체를 이루는 유기적 구조가 아닌, 이질적 단편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모델을 가진다.
박유진_새벽녘 D의 정원 Around dawn, D's garde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1×105.5cm_2011
박유진_잡초방지 장치 Weed control equipment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181.8cm_2011

가령 박유진의 작품 「시금치의 자손」(2011)에서 화면 오른쪽에 거대한 빨래처럼 널린 시금치는 다른 공간과 접 붙어져 있다. 옆의 공간에는 스케일이 다른 자잘한 덩굴들이 얽혀 있다. 불어오는 바람이 딱 잘려지는 불연속적인 면도 발견된다. 화면 속 박스나 큐브 같은 형태의 구성은 정원과 마주하고 있을 실내의 느낌도 준다. 자연은 한정된 영역에 있지만 조합의 방식은 다양하다. 가장 대표적인 방식은 자신이 좋아하는 식물들을 한 공간에 모아 놓는 것이다. 한 쌍을 이루는 작품 「가지접목」(2012)은 한 화분 안에 여러 식물이 자라고 있다. 시간 또한 일관적이지 않다. 낮과 밤, 그리고 지각과 기억이 공존하는 일은 흔하다. 구성과 형태의 유희에 스케일과 색채의 변주가 가미되면서 작품 속 그다지 많지 않는 식물 종들은 다양하게 변모한다. 그림이 그려지는 방식처럼 처음의 계획을 벗어나 붙였다 뺐다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엉겅퀴, 맨드라미, 시금치 같이 박유진의 작품에 많이 등장하는 식물들은 고요하고 약하고 정지된 식물성 뿐 아니라, 요란하고 강하고 역동적인 동물성의 느낌도 있다. 구별되는 두 가지 성향의 병존은 작가 자신에게도 찾아진다. ● 이번 전시에서 관객은 정원이나 리좀이라는 소재나 주제를 읽게 되지만, 무엇보다도 먼저 강렬한 색채 효과를 보게 된다. 박유진의 작품에서 다소간 동시대와 공명하는 소재나 주제는 색채를 운용하는 기술에 의해 독특한 지점을 확보한다. 여러 작품에서 뜬금없이 나타나는 거대한 시금치는 이번 전시에서 작가가 가장 잘 활용하는 녹색 계열의 색상이 다채롭게 펼쳐지는 장이다. 다양하게 굽이치는 잎의 굴곡 면에서 풍겨 나오는 색채 에너지는 뽀빠이의 원천처럼 활력 가득하다. 작품 「채수원의 에너지」(2012)는 거대한 시금치와 그 옆에 붉은색 꽃들이 대조를 이루면서 화면에 활기를 준다. 녹색 풀숲이라는 배경과 바닥에 물마루 같이 넘실대는 하늘색이 축축한 식물 군락의 느낌을 강조하는 작품 「새벽녘 D의 정원」(2011)에서, 위에서 내려오는 붉은 색 뭉글거리는 덩굴은 날카로운 녹색 잎과 대조를 이룬다. 형태와 색채의 대조는 그 낙차를 통해 에너지를 발생시킨다. ● 작가는 전시를 할 때마다 한 작가를 연구한다고 하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색채의 마술사 보나르이다. 보나르의 색채는 인상주의의 묘사와 야수주의의 표현 사이에 미묘하게 걸쳐있다. 마술의 숲 같은 이미지에서 루소를, 데페이즈망 형식에서 마그리트를 떠올리게 한다면, 이번 전시에서 연구한 보나르의 작품은 색채의 터치로 이루어진 공간이 여러 겹 있는 동시에 평면적인 회화의 효과를 참조했다. 정원이라는 소재와 더불어 녹색 계열로만 20여개의 컬러 차트가 동원되었다. 화면을 가득 메우는 시금치 한 잎부터, 작품 「가지치기」(2011)처럼 숱 많은 나무 잎 하나하나를 각각 다르게 칠한 경우까지, 다양한 녹색 계열이 펼쳐진다. 복합적인 소재와 형식이니 만큼, 색의 온도를 맞추는 일에 치중했다. 화가가 강약의 변화를 주며 화면에 자유롭게 바른 색의 얼룩들은 정원이라는 한정된 자연을 수많은 뉘앙스로 물들인다. ■ 이선영


---------



Kitchen


안서윤展 / AHNSEOYUN / 安敍? / photography 2012_0406 ▶ 2012_0428 / 일요일 휴관


안서윤_Kitchen_잉크젯 프린트_41×51cm_2010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10703d | 안서윤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아트토크 / 2012_0417_화요일_04:30pm 미술체험 / 2012_0428_토요일_03:00pm

2012 Shinhan Young Artist Festa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 휴관

신한갤러리 SHINHAN MUSEUM 서울 중구 태평로 1가 62-12번지 Tel. +82.2.722.8493 www.shinhanmuseum.co.kr


일상을 향한 강박적 미학 ● 부엌의 공간을 생각해보면 여러 가지 장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떠오른다. 그것은 부모님과 함께 밥을 먹는 장면, 어머니가 쌀을 씻을 때 들리는 일정하고 반복적인 소리, 어느 날 술에 취해 귀가해서 물을 마시려고 부엌에 갔다가 의자에 앉아 있는 나의 모습, 한가롭게 커피를 마시며 대화하는 장면 등이다. 이런 모습들은 일상에서 가족들의 특징적인 모습을 부엌이란 장소가 간접적으로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부엌은 평소에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부엌은 인간의 식욕에 대한 욕망과 생존본능을 해결해주면서 동시에 대화할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지만 그 고마움을 평소에는 알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안서윤의 부엌은 일상에서 무관심한 장소에 대한 재인식,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여자의 일상에 대한 의미, 음식이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고 얼어붙은 마음을 열어주는 작용, 한 여자이기에 작가의 심리상태를 간접적으로 드러낸 사진이라는 점에서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안서윤_Kitchen_잉크젯 프린트_41×51cm_2012
안서윤_Kitchen_잉크젯 프린트_41×51cm_2010

일상과 부엌의 함수관계 ● 일상의 모티브가 중요한 주제로 등장하는 짐 자무쉬 감독의「천국보다 낯선」은 일상의 반복된 대화를 통해서 황폐한 미국생활을 암시한다. 영화는 주인공들이 자신이 사는 뉴욕에서 클리블랜드와 플로리다로 이동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의 장소이동은 더는 상징적인 의미가 없다. 클리블랜드로 가는 차 안에서 주인공들은 어딜 가나 다 똑같다고 얘기한다. 어디를 가든지 자신의 일상은 변하지 않으며, 자신이 사는 곳이 아닌 다른 공간을 가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환경과 위치가 바뀌더라도 사람이 사는 것은 다 똑같으며 그 일상의 테두리 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처럼 우리는 일상을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는 한계를 금방 체험하게 된다. 일상을 얘기하려면 전제조건으로 반드시 사회성을 끄집어내야 한다. 그 이유는 일정한 테두리 안에 동시에 존재하는 안과 밖의 개념으로서 그것을 구별하는 경계에서 관계가 형성되며 일상과 사회성의 관계는 서로 맞물려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일상은 어떤 의미에서는 한없이 보잘것없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 이유는 일상에서 매일같이 지루한 일을 반복적으로 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편한 인간관계, 해결되지 않는 금전적 문제와 욕구에 관한 관계 등은 궁핍의 연속, 채워지지 않는 욕망과 함께 비루한 인생의 반복처럼 인식되기에 그렇다. 이러한 표현은 앙리 르페브르가 『현대세계의 일상성』에서 언급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상의 비참함에서 탈출해야 하는가? 일상은 단순하게 비참한 것들만 있고 즐거움이란 없는가? 일상을 미세하게 들여다보면, 작고 사소한 우리 주변의 이야기들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이러한 지적은 제한적인 삶을 살면서 필요 이상의 욕망을 추구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가치 있는 삶을 고민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앙리르페브르는 일상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인간의 삶은 땅 위에 뿌리를 박고 영원히 지속'하는 특징을 '일상의 위대성'이라고 한다. 일상의 지루함을 벗어나기 위해 여가를 즐기고 여행을 다녀와도 그 행위가 끝나면 일상은 다시 반복적으로 시작된다. 안서윤은 인간이 살아가는 현실에서 반복적인 생활 일부분인 '부엌' '일상'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인다. 일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부엌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부엌의 의미를 떠올릴 때 우리는 이곳에서 발생하는 과정들이 별로 특별하게 인식되지 않는다. 하지만 사회학, 역사학, 문학적 측면에서 일상과 연관해보면 특별한 공간이 부엌이다. 안서윤은 일상에서 매일 접하면서 눈여겨보지 않았던 부엌에 관심을 두면서, 부엌에서 밥상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장소성에 주목한다. 안서윤은 부엌에서 홀로 일하는 '일상적 노동'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밥상 위의 반찬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서 그 뒤에 숨어 있는 '정성과 노동'에 주목한다. 작가의 반복적인 행동은 거주공간에 대한 일기의 형식으로 구성된다. 예를 들면, 반찬 중에서 생선이 도마에서 잘린 모습, 갈치의 비늘이 식칼에 묻어 있는 모습, 고무장갑을 사용한 후에 싱크대에 올려진 모습, 음식을 다 차린 후 버려진 과일의 껍질이 있는 모습 등 여성의 가사노동 흔적을 기록한다. 그녀의 작업은 익숙한 집안의 곳곳을 헤집으며 일상의 사소한 미시사의 부엌을 들여다보게 유도하며, 일상과 부엌의 함수관계는 처음엔 싫었다가 시간이 흐른 후엔 익숙해지고 그 다음에는 녹아 들어 가는 심리적 과정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한다.
안서윤_Kitchen_잉크젯 프린트_41×51cm_2010
안서윤_Kitchen_잉크젯 프린트_41×51cm_2010

생성, 소멸, 흔적의 강박적 요소 ● 세상의 모든 질서에는 양면적인 성질이 존재하는데, 동전의 양면과 같은 야누스적인 성격은 정반대처럼 느껴지면서 한편으론 동질성을 확보한다. 그것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으며, 생성과 소멸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연관 되어 있어 순환적 세계관에서는 시작은 끝을 나타내고 그 끝은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 결국, 생명의 끝은 소멸이 아니며, 또 다른 생성의 시작으로 연속된 순환과정의 한 순간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흔적은 어떠한가? 그것은 대상이 지나간 자리에 남긴 자취와 그것을 통해 남겨진 모든 자국이다. 흔적은 어떤 대상이 과거에 지나가고 현재는 없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의미한다. 지나간 사실을 가리키는 지시적 의미는 존재하지만, 지나간 대상 자체를 보여주지 못한다. 이러한 문제는 현재 남겨진 과거와 지나가고 없어진 과거, 남아 있는 과거와 이 과거에 대한 사유의 동일성과 차이에 대해 묻게 된다. 엠마누엘 레비나스는 흔적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말하는데, '비 현상'이고 '나타나게 하지 않음'을 뜻하며, 타자와 타자성이 보존되면서 타자로서 드러나는 방법으로 규정할 때 타자의 초월성을 가진다고 한다. 흔적은 과거의 의미로 볼 때 역사가들의 근거로 작용하는 하나의 기호이다. 만약 흔적이 항상 과거의 흔적, 지나가고 없는 것의 흔적이라면 그것은 과거가 현재 속에 남겨놓은 기호로서 사료의 성격을 가진다. 그런 점에서 과거를 통해 현재에 남겨진 모든 자취는 곧 흔적인 셈이다. 안서윤은 생성과 소멸에 관해서 두 가지 개념적인 접근을 한다. 첫 번째, 여성이 부엌에서 온갖 재료를 사용해서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생성과 소멸'에 관한 문제에 있다. 두 번째, 본인이 부엌에서 노동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생각과는 관계없이, 오로지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면서 일순간 없어져 버리는 시간적 순간을 소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생성과 소멸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계속 반복된다. 부엌에서 음식을 만든 과정에서 발생하는 흔적의 이미지는 사진을 통해서 본인이 볼 수 있는 것과 볼 수 없는 것으로 구분한다. 볼 수 있는 것들은 완성된 음식, 주방기구를 포함한 것들이며, 볼 수 없는 것들은 요리를 하다가 남겨진 음식 찌꺼기로서 폐기된 것들이다. 정확하게 언급하면 볼 수 없다기보다는 보기 싫은 것이기도 하다. 또 한가지 그녀가 주목한 것은 사진으로 기록된 생성과 소멸, 흔적의 모든 과정은 순환되는 시간적인 개념으로 인식한다. 안서윤이 부엌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일상의 순간적 행위는 개인적으로 가치가 있는 일이다. 그 가치란 시간이 지난 후에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는 점, 자신이 존재했었다는 현재의 증명이란 점 때문이다. 안서윤의 작품에서 흔적은 과거가 현재 속에 남겨놓은 기호로 작용한다. 흔적은 지울 수 없는 '존재의 말소불능' 인 셈이다. 그것은 현실의 그림자로서 대상의 존재감이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다. 사각형 프레임의 표현 방법은 강박적인 요소로 작용하는데,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자신의 강박적이며 숙명적 일상의 시간성을 나타낸다. 이러한 이미지는 생성과 소멸의 순환적 반복에서 발생하는 여성의 권태와 허무가 무의식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안서윤은 작품제목에서 암시하듯이 작가의 일상적인 삶과 사고의 층위는 생성과 소멸을 통한 '강박적인 미학'을 솔직하게 전달하고 있다. ■ 김석원
안서윤_Kitchen_잉크젯 프린트_51×61cm_2012
안서윤_Kitchen_잉크젯 프린트_41×51cm_2010

Obsessive aesthetics toward daily life

 

 

--------------

 

 


David Gerstein : Infinite Joy


데이비드 걸스타인展 / David Gerstein / installation 2012_0406 ▶ 2012_0429


데이비드 걸스타인_Symbiosis-Ed. of 150_Hand painted cutout steel, 3 Layers_105×170cm_2010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기획 / 가나아트

관람료 / 대인_3,000원 / 소인(초, 중생)_2,000원 / 7세 미만, 70세 이상_무료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가나아트센터 GAN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평창동 97번지 Tel. +82.2.720.1020 www.ganaart.com


가나아트는 친숙하고 간결하면서도 생기 넘치는 역동적인 작업들로 주목을 받아온 이스라엘 출신의 조각가 데이비드 걸스타인(David Gerstein, 1944-)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걸스타인은 예루살렘의 브살엘 미술학교(Bezalel Academy, Jerusalem)에서 그래픽 아트와 공예를 배우는 것을 시작으로 파리 에꼴 데 보자르(Ecole Superieure des Beaux Arts, Paris), 뉴욕 아트 스튜던트 리그(Art Students League, New York), 런던 세인트 마틴 스쿨(St. Martin’s School of Art, London)에서 차례로 수학했다.
데이비드 걸스타인_5th Avenue D-Ed. of 150_Hand painted cutout steel, 3 Layers_69×80cm_2010
데이비드 걸스타인_Perpetum Mobile-Ed. of 150_Hand painted cutout steel, 3 Layers_86×160cm_2010

철이나 나무를 소재로 하여 컷-아웃(Cut-Out)작품으로 유명한 걸스타인은 밝고 대담한 색상과 독특한 이미지 커팅을 사용한다. 철저한 드로잉을 통해 탄생한 그의 작품은 종이에 그린 드로잉을 컴퓨터 작업화한 후 다시 강철을 레이저 컷팅하는 방식을 통해 탄생한다. 그 위에 작가가 직접 만든 붓이나 실크스크린 기법 등을 통해 채색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재질감이 살아있는 듯한 회화성을 부여한다. 이러한 그의 삼차원적인 평면부조 작업은 회화의 평면성과 부조의 입체성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부여하며 회화와 조각의 경계에 서있게 된다.
데이비드 걸스타인_Infinity Tour-Ed. of 150_Hand painted cutout steel, 3 Layers_95×160cm_2010
데이비드 걸스타인_Burning Lips-Ed. of 150_Hand painted cutout steel, 3 Layers_98×120cm_2010

걸스타인은 현대사회의 다양한 풍경들을 소재로, 삶의 여러 조건들과 일상에 내재된 미래에 대한 낙관적 믿음 등을 다룬다. 다채로운 층을 이루는 정물 구성, 도시 풍경, 그리고 사람들의 활동이 담긴 이미지는 리드미컬한 팝아트를 연상시킨다. 도시의 압박감과 이로 인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인물들은 개별적인 순수한 특징을 간직하면서도 높낮이와 그림자의 조화로 인해 자유롭게 살아 움직이는 듯한 동적인 유연성을 보여준다. 현대적 삶과 연관된 일상의 모습과 도시의 다양한 풍경을 담은 그의 이러한 작업은 꽃병, 선인장, 걷는 사람, 당나귀, 새와 같은 오브제를 통해 변형과 인식을 거치며 이미지의 확장을 이룬다. 또한 음악이나 리듬과 같은 추상적인 관념을 구상으로 끌어들이면서 풍부한 상상력의 세계를 이미지화시켰다. 이러한 그의 작업이 현대사회를 풀어나가고 있음에도 밝고 쾌활한 느낌을 주는 것은 화려한 색상의 붓터치가 선적으로 가미되면서 리듬감이 가미되어 새로운 회화의 형태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걸스타인_Couple of Stroke-Ed. of 150_Hand painted cutout steel, 3 Layers_65×180cm_2009
데이비드 걸스타인_Disco (Large Version)-Ed. of 150_Hand painted cutout steel, 3 Layers_90×180cm_2009

국내에서는 2006년 가나아트센터에서 첫 선을 보인 이후 2008년 가나아트 부산과 인사아트센터에서의 전시에 이어 세 번째로 열리게 된 이번 개인전은 그동안 국내외로 많은 관심을 받아온 걸스타인의 작업을 한자리에서 보여주는 자리가 될 것이다. 공공미술을 통해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고 있는 걸스타인의 작업은 이스라엘을 비롯하여 싱가폴(Momentum, Central Business District, Singapore), 프랑스(Noel des Alps, Annecy, France), 독일(No Favorite Color, Kassel, Germany), 런던(Roman, Rumford, London) 등 세계 각국 거리의 주요 광고판, 공원, 백화점, 학교 등 다양한 장소에서 만날 수 있다. 특히 국내에서는 2009년 서울스퀘어 광장의 공공조형물 작업과 2011년 현대백화점 무역점 리노베이션을 위한 세계 최대 규모의 가림막 디자인, 롯데백화점 스타시티점의 공공조형물 등 다양한 아트워크를 통해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친숙하게 다가서 있다. 이러한 그의 이번 개인전은 시각적 차원의 경험을 넘어서서 예술이 지닌 창조적 리듬과 율동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 김현경


---------------



일주&선화 신진작가 지원전시 1회 선정작가


박영호_천유진_하지인展 2012_0406 ▶ 2012_0511


박용호_Chaos 2_캔버스에 유채_97×193.9cm_2011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 박영호_천유진_하지인

주최 / 일주학술문화재단_선화예술문화재단 후원 / 태광그룹_흥국금융가족_티브로드_티캐스트

관람시간 / 06:30am~11:00pm

일주&선화 갤러리 ILJU&SEONHWA GALLERY 서울 종로구 신문로 1가 226번지 흥국생명빌딩 1층 로비 Tel. +82.2.2002.7747 www.iljufoundation.org www.seonhwafoundation.org


일주학술문화재단과 선화예술문화재단에서는 젊고 유망한 작가들이 더 많은 대중과 소통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작가로서 첫 발을 내딛는 출발점이 될 『일주&선화 신진작가 지원전시』를 지속적으로 선보이고자 합니다. 첫 시작인 이번 전시에서는 '사람과 소통'이란 주제로 박용호, 천유진, 하지인 등 3인의 작가가 각기 다른 개성으로 표현한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 박용호 작가는 여러 차례 이사를 겪었던 유년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같은 시대를 살고 있지만 장소, 공간에 따라 과거와 현재가 제각각 다르게 섞여 있는 '우리의 삶'을 '한데 모아진 건물들'로 표현합니다. ● 천유진 작가는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욕망을 다양한 알레고리로 담아냅니다. 변태(變態)를 거쳐 화려한 날개로 모습을 바꾸는 나비, 누가 앉는가로 계급이 드러나는 의자 등으로 감춰져 있는 내면의 욕망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 하지인 작가는 사람 사이의 소통을 때로는 춤을 추는 듯한 '행위'로, 때로는 부유하는 '섬'으로 표현합니다. 독립된 존재이기에 타인과의 소통을 끊임없이 모색하는 인간의 모습을 작품 속에 투영시킴으로써 작가 스스로도 관람객과의 소통을 시도합니다. ● 『일주&선화 신진작가 지원전시』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신진작가의 행보를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 ILJU&SEONHWA Gallery

박용호_Chaos 1_캔버스에 유채_112.1×162.1cm_2011
박용호_Chaos 3_캔버스에 유채_80×65cm_2012

인간은 단 한 사람도 동일하지 않다. 태어날 때부터 지닌 기질이 서로 다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인간이 성장하며 경험하는 환경이 사람의 생각을 다르게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 사이의 깊이 있는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상대가 경험한 환경을 이해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평소 사람들을 대할 때 외형적인 특징보다는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유년의 기억, 특별한 사건의 경험을 직접 듣고 이해하려는 나의 노력은 이 때문이다. ● 나는 16번의 이사라는 잦은 환경 변화를 경험하며, 특정한 인물이나 상황, 또는 공간 등에 대한 여러 가지의 강한 기억의 잔상을 갖고 있다. 이렇게 나의 무의식에서 무질서하게 부유하던 잔상들로 인해 흔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건물들이 무질서한 양식으로 섞여 있다는 것에 주목하게 되었다. 시대와 출처가 제 각각 다른 요소들이 혼합되어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연결되지 못한 듯 서 있는 건물의 기형적인 외관에서 나에게 내재되어 있는 혼돈을 겹쳐 보았다. ● 이런 이야기를 작품으로 드러내어 '한국의 건축 양식에 투영된 현대인'과 '근원적인 혼돈의 상태(카오스)'를 다른 이들과 함께 보고자 한다. ■ 박용호
천유진_소유,aspiration_캔버스에 유채_112.1×162.2cm_2012
천유진_소유, 기억_캔버스에 유채_162.2×112.1cm_2009
천유진_소유의 여가_캔버스에 유채_80.3×116.8cm_2011

끊임없이 무언가를 가지길 원하는 인간. 나는 '소유의 상황'으로 드러나는 '반복되는 인간의 욕망 해소'와 그 일시성에 주목하며 소유의 다양한 단면을 이미지로 제시한다. 이를 통해 '삶의 순간에서 마주하는 무수히 많은 소유의 경험과 욕망의 반복적 순환 속에 서 있는 우리의 선택'에 대하여 보여주고자 한다. ● 작품에는 인간의 소유욕을 드러내는 여러 상황들이 등장한다. 작품 속 인물 또는 사물을 욕망의 실현 주체로서 등장시켜, 다른 오브제들과 함께 현 사회를 우회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대표적인 오브제인 나비는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날갯짓으로 순간의 덧없음과 허무함을 상징하는 알레고리로 등장한다. 나비의 예측 불가능한 몸짓과 한시도 쉬지 않는 날갯짓은 끝나지 않을 인간의 소유욕과 덧없는 우리의 삶을 의미한다. ● 소유가 또 다른 소유를 낳듯, 나의 작업 또한 감상자 개개인들에게 또 다른 새로운 메시지를 불러 일으키길 기대한다. ■ 천유진
하지인_섬 Islet_캔버스에 과슈_196.9×130.3cm_2011
하지인_섬 Islet_캔버스에 과슈_162.1×97cm_2011
하지인_섬 Islet_캔버스에 과슈_162.1×97cm_2011

인간은 다양한 이슈에 목말라 한다. 작가의 작업도 본인이 생산한 이슈 또는 타자에 의해 생산된 이슈를 '판단력의 시각'으로 바라보며 구성한 정체성을 이미지나 개념으로 시각화한 것이다. 작가는 자신 또는 타자의 목소리를 다양한 관점으로 압축하여 정의한다. ● 하지인은 한국예술종합학교를 갓 졸업한 신선한 새내기 신진 작가이다. 그 역시 학생 시절부터 작품 「섬」 시리즈를 통해 '인간 욕망의 이기로 야기된 사회적 이슈', '인간의 신체와 영혼 또는 신체와 정신'을 보여준다. 이 작품들로 '자신이 만들어 놓은 덫에 걸린 우리의 모습'을 담담하고, 절제된 감성으로 그려내고 있다. 작가는 '우리가 만들어 놓은 덫'을 비판하지 않는다. 그냥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우리가 충분히 소통 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을 것이다. 하지인의 '섬'은 작가 자신의 섬이면서 타인의 섬이기도 하다. 이러한 논리의 판단이 맞는다면 그는 타자와 소통의 창구를 자신의 섬을 통해서 찾고 있다. ■ 하지인

2012.04.05 00:00:22 / Good : 482 + Good

zabel

  • 작성시각: 2012.04.10 15:58:23
  • 총 작성한 글타래: 56 개
  • 총 작성한 댓글수: 141 개
  • 가입일: 1970/01/01
  • 포인트:
  • 레벨:
  • 오프라인 상태입니다
글 제목: 추가전시
수정 삭제



 


-----------------



가장 사적인 도시


2012_0411 ▶ 2012_0506



초대일시 / 2012_0411_수요일_06:00pm

참여작가 남수현_문영미_안준 이재명_이효연_임우재_최재혁

주최 / 금산 갤러리

기획 / 김은영_박이령

관람시간 / 10:00am~09:00pm / 토,일요일_10:00am~06:00pm

금산갤러리 KEUMSAN GALLERY 서울 중구 회현동 2가 87번지 쌍용남산플래티넘 B-103호 Tel. +82.2.3789.6317 www.keumsan.org

관람료 / 1,000원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요일_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금산갤러리 헤이리 KEUMSAN GALLERY HEYRI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1652-140번지 헤이리아트밸리 G-28 Tel. +82.31.957.6320 www.keumsan.org


봄볕을 따라 도시의 거리로 나오게 되는 계절 금산갤러리 서울과 헤이리 공간에서는 「가장 사적인 도시」라는 타이틀로 7명 신진작가들- 남수현, 문영미, 안준, 이재명, 이효연, 임우재, 최재혁 -의 작품을 전시한다. 도시 속에 촘촘히 자리잡은 개개인의 집들은 매우 사적인 것인 반면 하나의 개체로서의 도시는 공적인 것으로 인식되기 마련이다. 누구나 파스텔톤 의상을 입고 봄이 온 도시의 거리를 활보하듯 우리는 도시 안에 살아가며 정해진 규칙이나 법을 따르며 도시의 같은 환경 속에서 비슷한 동선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재명_나는 잘 보고 있었어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97×145.5cm_2011
임우재_The Story of S_C 프린트_112×150cm_2011

이렇듯 현대의 도시는 철저히 사회화된 개인들이 모여 집단을 이루고 살아가는 곳이다. 에밀 뒤르캠이 "개인은 이미 수립된 구조와 기존의 신념, 가치, 규범의 체계 속에서 태어난다."라고 말했듯 개개인들은 사회적 틀 안에서 살아가고 도시의 건축적 환경과 구조 또한 거대한 틀 안에서 구성되며 또 그 스스로 유기적으로 성장해나간다. 개성 또한 매크로화되는 도시의 사회 속에서 개개인이 정해진 매커니즘으로부터 완전히 헤어나오기는 쉽지 않다.
안준_Self-Portrait_HDR 울트라 크롬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76.2×101.6cm_2008

그러나 이러한 매커니즘 속에서도, 인간 개개인은 생각과 사고를 지닌 '나 자신'이다. 하이데거가 주장했던 '현존재'로서의 '나'는 분명 이곳('거기')에 '존재'하며 '실존'한다. 아무리 '사회'라는 조직이 나를 다른 이들과 묶어 개체화시키더라도 우리는 이 사회화된 도시를 매우 주관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행동 방식은 비슷할지 모르나 개인 내면의 사고 방식은 늘 '가장 주관적이며 사적'이다.
이효연_Urbanscape 8_리넨에 유채_130.3×193.9cm_2012

그렇기에 규범과 질서의 틀에 기반한 도시라는 공적 공간에 몸 담고 살아가지만 도시를 바라보고 느끼는 개인들의 관점은 지극히 사적이다. '가장 사적인 도시'전은 이러한 측면에 주목하 여 모두가 공유 하고 있는 도시의 거리, 풍경, 사물, 사람들을 개인적인 시선과 감수성으로 내면화한 7명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문영미_2층집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11

누구나 아는 특정 도시의 랜드마크 빌딩에 사적인 기억을 덧입히는 임우재의 사진과, 빌딩 지붕, 환풍기, 주차장 입구같은 도시 건축물들의 기능적 공간들이 공명상태의 적막한 때로, 마치 초현실주의적인 내면의 풍경과도 같이 재구성되는 이재명의 회화에서는 도시의 풍경이 소재화되었다. 안준의 「self-portrait」 사진이 우리에게 곧 뛰어내릴 듯이 마천루 빌딩의 한 꼭지점에서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는 한 여성의 존재가 긴장과 일탈을 오가는 현대인의 내적 심리를 추측하게 한다면, 도시공간에서 스쳐 지나가는 타인들을 무심히 관찰한 흔적이 남아있는 이효연의 회화 속에서 사람들의 뒷모습은 그들과 같은 공간을 공유했던 작가자신의 감정과 사유를 반영한다. 또한, 기능과 효율의 원리에 따라 모든 것이 빠르게 움직이고 변하는 도시의 일상 속에서 모든 것을 관조하듯 정지된 시간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우두커니 서있는 남수현의 영상작업 속에 나무나, 문영미의 오래된 주택이나 단층건물들의 얼굴 표정, 그리고 최재혁의 그림 속에서 부유하고 있는 어떠한 개인의 추억이 담긴 그리고 그의 기억을 천천히 불러일으키는 거리의 골동품들은 수많은 공간과 시간으로 나눠지고 중첩되는 도시의 사적인 단면들을 보여주고 있다.
최재혁_골동품 #5_캔버스에 유채_130.3×130.3cm_2012
남수현_Metamorphosis_720p HD 단채널 영상_00:19:40_2009

사유하는 자아는 주관적이고 사적인 본질을 지닌다. '가장 사적인 도시'전은 많은 이들이 다루는 가장 가깝고 친숙한 도시의 풍경과 사람들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이를 각기 다른 색과 톤으로 바라보고 느끼는 7명 작가들의 내밀한 사유를 보여주는 개인적인 내면의 풍경을 다루고 있다. 이를 통하여, 이번 전시는 관객들에게 도시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불러 일으킬 것이며, 기계적이고 반복되는 도시 일상을 사적인 시각으로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 김은영


--------



시간의 침묵 Time Speaks Gently


조성준展 / JOHSUNGJOON / 趙成俊 / painting 2012_0411 ▶ 2012_0506


조성준_해와 달 Symmetry of Time and Space_리넨에 유채_118.2×116.1cm_1997~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조성준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2_0411_수요일_05:00pm

후원/협찬/주최/기획 / 인사갤러리

관람시간 / 월~토_10:00am~06:30pm / 일,공휴일_10:30am~06:00pm

인사갤러리 INSA GALLERY 서울 종로구 관훈동 29-23번지 Tel. +82.2.735.2655~6 www.insagallery.net


인사갤러리에서는 특유의 시각으로 공간과 사물을 바라보고, 독특한 색감과 분위기로 화면을 재창조하는 조성준 작가의 개인전『시간의 침묵 Time Speaks Gently』을 개최한다. 오랜 생활을 미국 뉴욕에서 보낸 작가는 동,서양을 넘나들며 동시에 전통과 현재를 아우르는,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을 정도의 집중력과 밀도감으로 화면을 구성하고 있다. 작가의 시간-Time과 공간-Space에 대한 집념과 창조적 구상은 한 작품을 완성하는데 있어3년, 길게는 10년이라는 시간을 쏟아 부을 만큼 붓질의 축척으로 재현의 경지를 넘어 대상이 아닌 '아우라'를 재현한다. 특히,「해와 달 Symmetry of time and space」는 1997년부터 2012년까지 15년에 걸쳐 완성된 작품으로 엄격한 대칭의 화면구성 속에 사물과 풍경을 은유적으로 배치하여 과거와 현재가 중첩되는 독특한 작품이다. 또 하나의 작품 중 전통과 현대의 감성을 짙게 그려낸 「시간과 공간 Places Lost and Found」은 세 개의 캔퍼스에 각기 다른 공간과 시간을 담아낸 Triptych대작으로 마치 한편의 영화 필름을 보는 것 같은 작가의 자서전적인 느낌을 준다. 작가의 생각과 집념의 세계는 한겹 한겹 쌓인 붓질과 '아우라'를 통해 고스란히 전해지리라 기대한다. ■ 인사갤러리
조성준_길 Passage_리넨에 유채_85×160.2cm_2001~12

..작업실을 휘둘러보던 나의 눈은 화가의 작품에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simple"하고 "economic"한 실내의 은은한 어두움이 소도구들과 함께 그림에 그대로 담겨 있음을 보고, 왠지 자꾸 정이 가, 급기야 그림을 하나 나에게 팔 수 없냐고 오치균을 통해 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스스로 정한 평론가의 철칙(?)("진정한 객관성의 비평을 위해 평론가는 작품을 수집하지 말아야 한다"는 나의 정신과 모토였으나, 지금은 깨졌음.) 을 깨는 순간이었다. 각설하고, 내가 산 조성준의 작품은 그때 그 작업실을 방문했던 총체적인 "아우라"로 내게 매우 독특한 매력을 지금도 발산한다. 그렇다면 조성준의 작품이 지닌 "매우 독특한 매력"은 무엇일까? 우선, 화가 조성준은 그리고자 하는 '대상(object)'의 사실적인 재현의 경지를 넘어, 그 대상들을 작가 특유의 시공간의 세계로 끌어 들여, 매우 독특한 매력의 분위기를 자아내게끔 재창조한다. 한마디로 짧게 말하면, 그는 "대상"이 아닌 "아우라"를 재현한다. 그만의 독자적인 스타일로 재현한 "아우라"는 총체적이자 심리적이며, 때로는 매우 초현실적이기도 하다.
조성준_시간과 공간 Places Lost and Found_리넨에 유채_118.9×231.3cm_1999~12

"총체적"이라 함은 "아우라"의 본질이 "질(quality)"과 "느낌(feeling)"에 관한 것이므로 그 정서는 "복합적"일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작가가 재현해낸 책, 사진기, 악기, 액자, 창문, 건물, 인물 등등에 서린 "아우라"에는 동서양의 모든 전통과 양식, 아울러 문명에 내재된 현재의 기억과 장소, 꿈과 이상 등의 "컨텍스트(context)"들이 섞여있다. 재현의 형식(style)도 그렇다. 작가가 선호하는 책과 액자 등은 조선시대 "문방사우(文房四友)"의 전통이 깃들어있는 것으로 사료되며, 건축의 외관과 창문, 선반 등의 인테리어, 소품들의 장치,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체와 초상 등의 세밀한 재현은 유럽의 "북부 르네상스(Northern Renaissance)"의 전통을 계승했다. 캔버스의 표면 전체에 균질적으로 깔려있는 무언가 사라지는 듯한, 아스라한 분위기의 "아우라"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이후의 "슈푸마토(Sfumato)"나 베르메르(Vermeer)의 기법을 지극히 개인적으로 발전시킨 독특함이 있으며, 프로이드(Fraud)와 초현실주의(Surrealism)의 "데페이즈망(depaysement)"의 냄새를 물씬 풍기기도 한다. (미국 보스턴의 정평있는 니엘슨 갤러리(Nielsen Gallery)의 큐레이터 존 베이커(John Baker)는 1997년, 조성준 개인전의 서문에 작가의 이러한 경향을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Sungjoon Joh seems to transform his objects into vaporous shadow and light.....(he) allows everything to disobey all our limitations of certainty.....such atmospheric chambers evaporating into dust?" 베이커 역시 조성준의 독특한 작가적 매력을 그의 작품들에서 정확히 읽어냈다고 판단되며, 이런 측면에서도 그의 작가적 역량과 평가는 특히 한국에서 그동안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조성준_발레리아의 풍금 Valerian Organ_리넨에 유채_101.5×101.5cm_1997~12
조성준_시와빵 Apotheosis of JGW_리넨에 유채_79.5×79.5cm_2004~12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성준의 그림은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을 정도의 집중력과 밀도감이 그림에 배어 있다. 또한, 그 "아우라"에 내재된 은밀한(esoteric) 매력은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을 정도의 기운(氣韻)을 발산한다. 니체(Nietzsche)와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가 동시에 연상되는, 매우 허무주의적이면서도 탐미적인 "아우라"--거기에, 동서양을 넘나들며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지성적, 문화적 감수성이 출중한 작가 조성준을 나는 주저하지 않고 "master"라 부를 것이다. ■ 정영목


------



1st NAS 2012


NaMu Jeune Artist SHOW展 2012_0410 ▶ 2012_0515


김선태_안락한 장소 2010No.1_은박, 금분, 석채, 안료_90×120cm_2010

초대일시 / 2012_0410_화요일_06:00pm

참여작가 김선태_김성수_박찬길_사타_윤현선_이자연_임진세_조현익

기획 / NaMu Modern & Contemporary Art

관람시간 / 11:00am~07:00pm

나무 모던앤컨템포러리 아트 NaMu Modern & Contemporary Art 서울 종로구 북촌로 21-15 Tel. +82.2.745.2207 www.gallerynamu.co.kr


김선태차가운 어둠과 은박의 산화과정으로 표현된 인간사회 순결한 은박은 너무나 깨끗하여 오염되기 쉬운 재료다. 그 위에 황의 기운이 조금이라도 느껴지면 은박의 변색이 시작된다. 김선태 작가는 이러한 은박의 산화과정을 인간사회와 같다고 표현한다. 본래 자신을 잃어버린 채 자신도 모르는 곳으로 흘러가는 현대인. 자기자신은 항상 깨끗하고 순수한 한 사람의 모습이고 싶지만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변해가고 있다. 변해가는 모습이 어떤 모습일지 본인 조차도 알 수 없다. 그의 작품은 광택 없는 무거운 어둠 위에 은박이 산화되며 나오는 미묘한 색들로 가득 차있다. 어둠과 금속의 광택이 정면으로 배치되며 김선태 특유의 적막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김성수_사슴_잉크젯 프린트_68×100cm_2001

김성수박제의 박제, 복제의 복제 … 가학적 폭력으로 만들어낸 환상적 아름다움 순록과 하이에나 그리고 사슴과 가젤이 뛰노는 야생공간이 펼쳐진다. 사각의 프레임 안에 가득 찬 풍경은 마치 살아 숨쉬는 듯 하다. 그러나 이곳은 푸른 초원도 원시 서식지도 아닌 뉴욕, 맨허튼의 대도시 중심부의 모습이다. 뉴욕의 자연사 박물관 전시장의 거대한 창틀 너머를 촬영 한 것이다. 사슴도 가젤도 하이에나도 역시 박제된 동물들이다.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동물들과 그들의 위치, 풍경까지도 인위적이다. 여기에 재현매체인 사진으로 다시 한번 인위적인 시각을 거쳐 촬영된 필름을 훼손시켜 여러 번의 가학적인 폭력의 과정을 통해 아름다움의 정점에 이르게 된다. 박제의 박제이며 복제의 복제로 이어지는 과정을 통해 훼손된 화면은 낯선 흔적과 아름다운 색채를 토해내며 더욱더 아름다운 결과물을 낳게 된다.
박찬길_관계를 바라다_스테인레스 스틸_70×125×25cm_2010

박찬길곧 분열될 듯 위태롭게 존재를 지탱해가는 현대인의 자화상 작가의 작품세계의 바탕에는 어린 시절 잦은 환경의 변화 때문에 생긴 변화에 대한불안과 집착이 존재한다. 그로 인해 외부에서 버려지는 물건들과 나열된 텍스트를 모으는 것으로 자신을 달래었다. 그의 작품은 이러한 방식에 기초하여 목적성을 잃어버린 기계의 부품(볼트)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다. 그것은 무너질 듯 위태롭게 인간이라는 존재를 지탱해 가고 있다. 작가내면의 불안과 절망, 외로움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하나의 형상이다. 그러나 그 형상은 누가 손가락을 대기라도 하면 후두둑 바닥으로 떨어져 사라져 버릴 것만 같다. 마치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과 같이 자신을 유지하려는 의지를 잃으면 곧 분열되어 버릴 것처럼 말이다.
사타_SaTARK 22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80×80cm_2011_Printed by Lee dong-gun

사타 ● 닭이 되지 못한 너에게 드리는 불완전한 나의 천도재 누구나 살면서 느끼게 되는 각자의 두려움은 개인적 경험에서 기인한 것이다. 작가 SATA가 그의 작업을 통해 얘기하고 있는 것은 그러한 두려움의 극복이다. 공포를 극복한 작가의 개인적인 사연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의 작품을 접하는 개개인이 각자 만들어 놓았던 마음의 벽 너머의 것을 느끼기를 의도한다. 우리는 모두 미완의 존재이지만 용기, 두려움, 진실 등을 마주하며 치유되고 성장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작가가 소재로 하는 닭이라는 물상은 지극히 내밀한 그만의 history 이지만 그의 작업을 바라보는 우리가 느끼게 될 감정의 증폭은 무한하다. 자신의 작업을 통해 치유와 성장을 반복하는 작가는 비로소 '두려움의 벽은 공기보다 가벼웠다' 고 고백한다.
윤현선_Memento-Untitle#01_디지털 C 프린트_75×110cm_2009

윤현선곧 잊혀져 버리고 말 기억들이 겹겹이 쌓인 페이크다큐멘터리 사진 '여러 사람들의 기억이 차곡차곡 쌓여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기억의 순간들, 스쳐간 사건들, 말초적이고 자극적이지만 그것들은 쉽게 잊혀진다. 익숙해 저버린 현실에 지쳐 지워 버리는 기억들. 이는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같다.' 윤현선의 작품은 페이크 다큐멘터리 사진이다. 그는 잊혀져 버리고 마는 사람들의 기억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사회는 무의식과 익숙함에 자극적 이길 원하고 더 자극적인 것들의 등장으로 현재나 과거를 망각해 간다. 기억의 순간들, 스쳐간 사건들, 말초적이고 자극적이지만 쉽게 잊혀진다. 쌓이고 쌓여버린 그때의 기억 그곳의 기록. 수 많은 익명의 사람들은 같은 공간에 존재하지만 다른 시간에 존재하는 또 다른 이들과 시공간이 해체된 또 다른 사회를 만들어 간다.
이자연_Borderline_스티로폼, 합성수지, 에나멜 도료_170×120×220cm_2010

이자연의식과 무의식의 욕망에 닿으려는 심리적 자기복제로 탄생한 새로운 종(種) '사람의 신체와 동물의 형상의 반인반수. 보여지는 이미지 안에 내재되어있는 인간의 불완전한 자아와 욕망과 욕구에 대한 충돌과 그 사이에 있는 간극의 틈 한가운데 나는 불안하게 서 있다. Borderline 그 경계에서 서성이는 불온전한 나의 기형적인 모습을 불편한 감정적 진실로 바라본다. ' 이자연작가의 작품 속에 늘 중심이 되는 것은 변화된 여성의 몸이다. 그녀의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다소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그 속에는 일종의 Genesis, 제3의 생명이나 사물의 탄생과 같은 기원을 유추하게 하는 우울한 에너지를 내포하고 있다. 작가는 의식과 무의식의 욕망에 닿으려는 심리적 자기 복제의 과정을 통해 마치 실존하는 것 같으면서 실존하지 않는 이상적 생명체를 만들어낸다. 이 생명체는 새로운 종으로 탄생 되며 번데기, 애벌레의 증식과정을 통해 또 다른 종을 생산해 낼 것이고 이것은 미래의 자연도감이 될 수도 있다.
임진세_분수를 바라보는 사람들_캔버스에 유채_100×80cm_2007

임진세검은 비닐 봉지처럼 흔하고 가볍지만 무거운 존재감 '내가 본 것은 그다지 눈에 띌 만한 것이 없고 금새 변해버릴 풍경이라, 장면 안 모든 대상들은 공평하게 조금은 헐겁고 조금은 빠른 붓 터치로 그려지기도 한다.' 임진세작가는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이다. 세상만사 어찌해보려 하기론 차라리 무슨 노파인양 물끄러미 바라본다. 시간을 메우는 하나의 방법으로 그림을 그리는 그는 자주 거니는 특별할 것 없는 풍경들을 그린다. 그곳에는 기울어진 가로등의 주황색 불빛이 빛나는 모습, 자동차의 어두운 그림자, 불 켜진 누군가의 창, 길을 재빠르게 가로지르는 고양이, 자동차와 쓰레기에 쌓여 있는 눈, 도로변에 나뒹구는 낙엽들이 있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풍경들은 작가로 인해 검은 비닐봉투와 같은 흔하고 가볍지만 무거운 존재감을 지니게 된다.
조현익_Ophelia(Flash-S-1202112)_철판에 혼합재료, 패널_91.5×110.3cm_2012

조현익삶의 충동(에로스)과 죽음의 충동(타나토스)의 이중주 작가는 사진을 찍는 행위자체와 연신 터뜨리는 플래시(빛)로 여성에 대한 소유욕을 드러낸다. 그 시선은 욕망과 폭력을 내포하고 있다. 여성은 그 관음증적 폭력에 노출 된 한 갓 객체, 사물, 대상으로 전락되어버린다. 그러나 이렇듯 여성이 눈을 감는 순간에도 정작 여성의 몸은 눈을 감지 않는데, 바로 몸의 눈이며, 응시다. 우리의 시선과 몸의 응시의 투쟁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응시 앞에 주춤거리고 당혹스러워 하며 뒤로 물러선다. 이 투쟁가운데 결정적인 사건이 바로 여성이 눈을 떠 우리를 직시하는 것인데 여기서 작가는 메두사의 신화를 차용한다. 진실을 직면하면 죽음에 이르게 된다. 살아있는 인간은 결코 진실을 알 수 없는 것이다. 지금은 비록 눈을 감고 있지만 언제 불현듯 진실(여성)이 눈을 뜰지 모른다. 여성은 물속에 잠긴 채 사진에 찍혀 박제화 되고, 그대로 철판 속에 전사되어 가두어진다. 마지막으로 투명우레탄을 도포해 이중삼중으로 봉인하는데, 그 이면에는 치명적인 거세불안이 도사리고 있다.

2011년 10월 개관한 NaMu Modern and Contemporary Art는 이름 그대로 Modern & Contemporary Art의 다양한 모습을 담아내는 공간이다. 전통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북촌 한옥마을 속의 현대적 미학이 담긴 서양식 건축물이며 전통과 현대의 만남(서양과 동양의 만남), 예술과 관람객과의 만남 그리고 건축과 미술의 만남을 통해 새로움을 창조하는 곳이다. NaMu Modern & Contemporary Art에서는 2012년 4월 10일부터 5월 15일까지 35일 동안 『NAS 2012(NaMu Jeune Artist SHOW 2012)』라는 제목으로 그룹전이 진행된다. NaMu Modern & Contemporary Art는 시대와 유행을 초월하는 미적 감식안을 바탕으로 매년 지속적으로 젊고 참신한 재능 있는 작가들을 발굴, 지원하는 그룹전을 진행 할 것이며, 이번 전시 『NAS 2012(NaMu Jeune Artist SHOW 2012)』가 그 시작이다. 올해 선정된 작가는 김성수, 김선태, 박찬길, 사타, 윤현선, 이자연, 임진세, 조현익 총 8명의 작가이다. 작가들은 모자이크의 한 조각 조각처럼 서로 어우러져 하나의 조화로운 큰 그림을 그려낸다. 떠오르는 샛별 같은 작가들, 이미 각광받고 있는 작가들의 변화, 이번 전시를 계기로 새로운 도약을 할 작가들과 NaMu Modern & Contemporary Art의 공통된 출발점이다. 또한 어떠한 방향으로 작가의 작품세계가 변화 할지 어떤 반응을 얻게 될 지 모두가 가늠할 수 없는 미지수이다. 그 끝을 알 수 없지만 무한한 가능성과 변화가 공존하는 전시로 초대한다. ■ 나무 모던앤컨템포러리 아트

 

 

-------------

 

 


puzzlism


김진철展 / KIMJINCHEOL / 金鎭鐵 / painting.photography 2012_0411 ▶ 2012_0417


김진철_Well-diving_패널에 유채_78×190×91cm_2011

초대일시 / 2012_0411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화봉 갤러리 HWABONG GALLERY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7-28번지 백상빌딩 B1 Tel. +82.2.737.0057 gallery.hwabong.com


작가 김진철이 표현하는 회화에서의 인간외형에 대한 실상은 변하지 않고 일정하게 지속하는 사물의 근간을 이루는 실체(substance)와 유관하다. 페인팅된 인체는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패널 위에서 부자연스럽게 어긋나 있고 때론 엉뚱하게 일그러진 모습이기도 하며 심지어는 잘못된 배치와 이물(異物)의 개입에 따라 기형적인 모습으로도 연출된다. 마치 애초부터 그림이 맞지 않는 퍼즐처럼 불합리하고 아이러니 하다. 하지만 그 의도는 본질적으로 불완전한 인간개체의 속성(substance)을 구체화하는데 있고 그 실체를 구현하기 위해 왜곡된 인체를 비현실적으로 실재하게 하는 데 있다.
김진철_Well-diving-1_패널에 사진_40×56cm_2011
김진철_I'm not hungry but angry#2_패널에 유채_60×61cm_2011
김진철_I'm not hungry but angry#2-1_패널에 사진_70×70cm_2011

그런 다음, 작가는 그 실재하는 비현실적 인체를 현실의 공간에서 촬영하고 두 장의 사진으로 프린트한 후 한 장은 세로로, 나머지는 가로로 재단해서 격자방식으로 결합한다. 이때, 사진 속 회화작품의 이미지를 훼손하지 않고 결합하려면 필연적으로 배경의 이미지들이 어긋날 수밖에 없다. 그가 응시하고 있는 인간의 실체를 사진 속에서 재탄생키기 위해선 결국 현실의 모든 이미지가 엇물리게 되는데 그것은 불완전한 인간개체가 온전했던 전체와의 단순한 결합이 아닌, 상호 동등성을 획득하는 효과가 있다. 이러한 과정은 각기 다른 물질이 연동하여 에너지의 균형을 이루는 삼투현상처럼 사진 속의 개체는 전체의 하향적 해체를 통해 동일한 지휘와 의미를 얻는다. 동등성 획득을 위한 사진의 인위적 엇물림은 비록 가변적이고 우연적인 결과물을 제시하지만 부조화 속에서 조화를 이뤄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불완전한 실체들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완전해지는 것이 아니라-본질적으로 상호 완전해질 수 없으므로-조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비로소 작가의 사진작업은 부정과 이중부정을 거쳐 궁극의 목표인 긍정의 세계를 함의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붓을 꺾어왔던 그가 다시 작업을 시작한 데에는 비로소 세상을 바라보는 그만의 프리즘이 생긴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변형적 조율을 통해 표면에서 해석되어지는 공간의 해체와 확산은 그가 지향하는 이데아적 세계관에 닿아있다. 애초에 그림이 맞지 않는 퍼즐을 즐기기 위해선 우리가 단순히 바라보고 있는 물리적 공간에서 그가 추구하는 관계성을 직시해야만 한다. 작가의 개인전, 퍼즐리즘에서 시도하는 형태변환은 허구와 사실의 모호한 경계에 있지만-사진 속, 현실의 허구적 이미지가 파괴된 듯한 실재적 인체(회화)의 이미지와 혼재되어 있기 때문에- 은유된 물성간의 관계변화를 창발하며 삶을 성찰하게 한다. ■ 이미사
김진철_Floating stones_패널에 유채_135×161cm_2011
김진철_Floating stones-1_패널에 사진_65×90cm_2011

내 머리맡의 공간은 매일 5분씩 느리거나 3분씩 빠르다. 고장 난 시계처럼 어긋난 톱니바퀴들이 제각각 시간을 알리면 아무리 짜맞춰도 애초부터 그림의 아귀가 맞지 않는 퍼즐처럼 허무하다. 한차례 스치는 바람이 덧난 상처를 훑는다. 하지만 그 공간을 포기할 생각은 없다. 다만, 나의 생존이 누군가와의 비타협적 불완전 공존에서 '과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할 뿐이다. ■ 김진철

김진철_Falling blossom #1-1_패널에 사진_86×117cm_2011

화봉갤러리에서는 2011 신진작가 공모전에 당선된 김진철 작가의 개인전 『PUZZLISM』을 4월 11일부터 17일까지 개최합니다. 홍익대학교에서 조소를 전공한 김진철 작가는 단편집「경계」로 문예사조 신인작가상을 수상하고 그림 창작동화집 「진짜 나무가 된다면」으로 비룡소 황금도깨비상을 수상하는 등 문단에서는 이미 유명한 작가입니다. 문학적 토대에서 구축되진 이번 전시를 통해 영민한 감수성과 내적 몰입의 놀라운 기량을 가진 김진철 작가의 조각난 퍼즐 『PUZZLISM』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 화봉 갤러리

 

 

-----------------

 

 


Small is beautiful


2012_0411 ▶ 2012_0424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2_0411_수요일_05:00pm

참여작가 김숙현_김양희_반달_변내리_산타_손수민 아트놈_안진의_엄정호_윤세열_이지영 임성수_찰스장_최지훈_최현석_홍삼_후디니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_10:00am~05:00pm / 월요일 휴관

아트스페이스 에이치 ARTSPACE H 서울 종로구 원서동 157-1번지 Tel. +82.2.766.5000 www.artspaceh.com


아트스페이스 에이치 기획 소품전 'Small is beautiful' - 작은 것이 아름답다' 는 5월 가정의 달에 앞서, 그림에 관심은 있지만 그림의 크기나 가격 때문에 부담스러워 하는 일반 대중에게 쉽고 편하게 다가가는 기회를 만들어 한국 현대미술의 오늘을 보여드리고, 집집마다 작은 그림 하나는 걸려있는 소장문화를 대중에게 자리잡고자 합니다. ■ 아트스페이스 에이치
김숙현_카페에서_캔버스에 유채_19×33.4cm_2011 김양희_obsession1_캔버스에 유채_33×24cm_2012
반달_EYE FLOWERS_혼합재료_37×80cm_2012 변내리_낮달_한지에 수묵채색_30×30cm_2011
SANTA_Why can't we be Friends?_아크릴채색_35×27cm_2012 손수민_I Love you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37.5×53cm_2011
아트놈_널 생각해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45.5cm_2012 안진의_마음결_실크스크린_2012
엄정호_Joy story - Three of the songs_종이에 혼합재료_20×30cm_2012 윤세열_山水_마포_비단에 먹_29×49cm_2012
이지영_인물원-영과 영_장지에 혼합재료_36×36cm_2012 임성수_fishing_혼합재료_74.3×61.2cm_2011
찰스장_배트맨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5.5×37.9cm_2010 최지훈_Desire-ferrari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hand-painted_122×122cm_2012
최현석_신묘년 독도수호도_마(麻)에 수간채색_61×73cm_2011 홍삼_Runaway_캔버스에 스프레이_40×30cm_2012 후디니_Emoti-Fac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5.8×17.9cm_2012

 

 

-------

 

 


a Sapce-2


이원균展 / LEEWEONGYUN / 李源均 / photography 2012_0411 ▶ 2012_0430


이원균_a Space-2 #22216_디지털 C 프린트, 플렉시글라스에 페이스 마운트_128.32×180cm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10330e | 이원균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2_0411_수요일_06:00pm

기획 / 갤러리 아트사간

관람시간 / 10:30am~07:00pm

갤러리 아트사간 GALLERY ART SAGAN 서울 종로구 삼청로 22 영정빌딩 3층 Tel. +82.2.720.4414 www.artsagan.com


갤러리아트사간에서는 오는 4월 11일부터 30일까지 작가 이원균의 a Space-2展을 개최한다. 오늘날 컴퓨터가 보편화 되면서 우리는 기록을 간편하고 엄청난 용량을 자랑하는 하드디스크드라이브나 USB를 비롯한 기계적인 매체에 담는다. 추억을 간직한 사진, 중요한 기록물들, 기억해야 할 영상 등을 담고 있다. 최근 스마트폰의 사용으로 인해 기록과 저장은 예전보다 훨씬 더 쉽고 용이해졌다. 그럼, 담겨진 기록들은 잘 보존되고 있을까? 기계적인 매체는 손쉽게 저장하기도 하지만 파손의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즉, 영구성을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다.
이원균_a Space-2 #22220_디지털 C 프린트, 플렉시글라스에 페이스 마운트_180×158.9cm_2012
이원균_a Space-2 #22200_디지털 C 프린트, 플렉시글라스에 페이스 마운트_180×136.09cm_2012
이원균_a Space-2 #22117_디지털 C 프린트, 플렉시글라스에 페이스 마운트_100×70.65cm_2012

작가 이원균은 우연히 책상위에 올려져 있는 오래된 하드디스크드라이브를 발견하게 되고 저장의 매체, 기록의 공간에 대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지난 a Space 시리즈에서 보여준 것처럼 a Space-2 시리즈에서도 어떠한 기록과 기억의 저장 공간에 물리적인 힘을 가했다. 다시 말하면, 이러한 기록매체들에 에폭시 수지를 부어 단단하게 굳히고 봉인 시킨것이다. 그것은 결코 어떠한 외부충격이나 물리적 훼손에도 영구히 보존되게 하려는 것이다. 지난 시리즈에서의 오브제는 평면적인 형태로 만들어내어 평면적인이미지(사진)로 보여주었다면 연장선상인 a Space-2展에서는 오브제를 에폭시 수지에 굳히는 과정을 통해 입체적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인공조명을 사용하여 촬영한 결과 마치 우주에서 날아온 둣 한 기이한 보석처럼 보이는 사진으로 재창조해 낸 것이다.
이원균_a Space-2 #22232_디지털 C 프린트, 플렉시글라스에 페이스 마운트_100×63.07cm_2012
이원균_a Space-2 #22113_디지털 C 프린트, 플렉시글라스에 페이스 마운트_40.64×40.64cm_2012
이원균_a Space-2 #22100_디지털 C 프린트, 플렉시글라스에 페이스 마운트_40.64×40.64cm_2012

완성된 사진은 불안한 매체의 기록과 저장을 영구히 보존하려는 작가의 노력인 동시에 욕망의 역설인 것이다. 이미 기록과 저장의 오브제들이 에폭시 수지에 들어가는 순간부터는 기록과 저장의 기능은 영원히 사라지기 때문이다. 작가 이원균은 영원이라는 단어 안에 기록과 저장이라는 불안한 현실도 함께 봉인해 버렸다. ■ 김혜림

 

 

------------

 

 


손장섭展 / SONJANGSUP / 孫壯燮 / painting 2012_0411 ▶ 2012_0501


손장섭_DMZ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00×400cm_2010

초대일시 / 2012_0411_수요일_06:00pm

기획 / 관훈갤러리

관람시간 / 10:30am~06:30pm

관훈갤러리 KWANHOON gallery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Tel. +82.2.733.6469 www.kwanhoongallery.com


스스로 말하는 그림, 기억을 세우는 그림: 손장섭 개인전에 부쳐1. 방문 손장섭이 작품을 보이려 전시회를 연다. 일흔을 넘긴 그의 질기디 질긴 화가의 업으로 작품을 보이려 한다. 아니 이 나이라면 그림을 보여주려 해서가 아니라 살리기 위해 작품을 들고 나오는 것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그에게 그림은 그리는 게 아니라 세우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의 세월에 있어 그림이란, 세상의 모든 기억을 잠재우고 위로하는 일종의 미학적 연민의 행위가 아닐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그런 생각이 퍼뜩 든다. 손장섭 만큼 세월과 기운이 깊어진 시기에 그려진 그림에서 어떤 변화를 볼 수 있을까? ● 그의 작품을 보러 파주의 작업실을 찾았다. 내게 네비게이션이 없어 동탄면 창만리 사거리까지 가서 전화를 하였고, 그의 지시를 따라 길을 가자 마중 나온 그와 마주쳤다. 시골의 한적한 풍경을 지나 작은 다리를 건너려는 지점에 그가 나무처럼 서있었다. 아직 물이 오르지 않은 앙상한 가지로 하늘 보고 손을 흔드는 듯한 나무처럼, 바람에 몸을 맡긴 채 휘고 기울어진 나무의 세월과 그의 모습이 겹쳐졌다. 그리고 흐드러지는 듯한 표정을 담고 있는 미소, 그가 사람을 반기는 미소에는 늘 그런 표정이 있다. 아무 조건 없이 상대방에 깊은 신뢰를 품을 때 나오는 그런 미소로, 그는 나를 그렇게 맞았다. ● 작업실에 들어서자 A4 용지에 인쇄된 먼저 촬영한 작품 자료를 건네받았다. 그리고는 미처 촬영하지 못한 최근의 작품을 그는 내게 보여주었다. 그것이 「우리가 보고 의식한 것들」과 「해남 땅 끝」, 「DMZ」였다. 그 그림을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그림이 젊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뭔가 날랜 몸짓과 붓질의 경쾌함과 같은 것? 혹은 속 깊은 가벼움으로 화면의 무게를 덜어낸 듯한 분위기? 혹은 시간과 공간이 투명해진 듯한 느낌? 혹은 얼핏 간파되는 서늘한 객관주의의 거리감? 어쩌면 조금은 현대적 분위기의 색조? 그래서 이 글은 그런 그림의 느낌으로부터 촉발되어 시작된 것이다.
손장섭_동도에서 서도를 보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7×290cm_2009

2. 변화 ● 손장섭에게서 발견된 일련의 변화는 이미 잠재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변화는 내용과 형식에서 모두 발견되는 것이다. 그런데 특별히 매체에 따른 변화가 더욱 크게 작용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것은 유화 물감이 아니라 아크릴 물감을 사용한 점에 기인할 텐데, 손장섭은 파주로 터를 잡은 1995년 이후 2-3년간 유화 물감으로 그렸으나 1997년 이후로는 아크릴 물감을 주로 사용해 왔다고 한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 가운데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그림이 압도적으로 많은 건, 그만큼 그가 이루어낸 변화를 발견하게 될 기쁨을 예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먼저 「우리가 보고 의식한 것들」을 보자. 전체적인 화면 구성은 위로는 금강산 풍경이, 아래로는 철책 사이로 보이는 바다 풍경이 배치되어 있고, 중앙에는 한국 근현대사의 역사적 풍경과 사건을 말하는 이미지와 함께 '현실과 발언' 동인을 비롯한 민중미술계와 사회?문화계의 낯익은 얼굴들이 일러스트레이션 기법으로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은 어찌 보면 이전의 작품과 매우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다고 하겠다. 무엇보다도 손장섭의 이전 작품들을 모아낸 것도 그렇고, 게다가 그의 친구들을 이렇게 한꺼번에 불러낸 것도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여러 시간대의 자신의 모습을 배치한 점도 그렇다. 중앙 오른편에 「사월의 함성」 앞에 선 서라벌예술고등학교 시절의 자신과 그 아래 왼편에는 술자리에서의 자신, 그리고 맨 아래에 철책 사이로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등 돌린 모습의 자신을 그린 것이다.
손장섭_동해 철책과 해오름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7×162cm_2009

이야기 구조를 갖는 화면은 논밭을 가르듯 크고 작은 사각의 형태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기서 나는 그 모든 이야기를 비평적으로 가늠하고 설명하지 않으려 한다. 어쩌면 이번 작품만큼은 그림 해독의 기회를, 그 즐거움을 그림 앞에 서게 될 사람들의 몫으로 남겨놓아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물론 자신의 그림을 모아내고 친구들과 자신을 등장시킨 부분은 일말의 회고적 분위기를 제공해 주고 있어, 일흔의 나이를 넘긴 화가가 자신의 생애를 정리하고픈 것은 아닐지 하는 추측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추측마저 유보하고 여기서는 이야기 그림처럼 펼쳐진 그 내용이 도식적으로 읽히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는 제안을 하고 싶다. ● 전반적인 형상은 청회색의 색조를 유지하면서 볼륨을 주기 보다는 리니얼(linear)하고, 두터운 질감이 앞서는 대신 다소 평면적이고 투명한 공간감을 주는 방식으로 그려져 있다. 그런 형식이 이 많은 이미지와 이야기들을 뜨겁게 달구지 않고 서서히 식혀 각자의 존재감을 과하지 않게 드러내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화가의 세월이, 그리고 그 시간이 그림 안에 고요하고 평평한 정적을 흐르게 하면서 모든 기억을 관조하듯 바라보게 만든다는 것이다. 언뜻 무표정의 표정 같은 감정의 절제, 혹은 담백함이 비치는데, 그것은 화가의 주관을 버리고 기억 자체를 세우는 방식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 기억들을 투명한 상태로 놔두려는 마음 같은 것 말이다. 그리고 이 부분이 곧 아크릴 물감을 사용하게 만든 동인이었다고 나는 보고 싶다.
손장섭_땅끝에서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00×300cm_2010

3. 표정 ● 손장섭은 오래 전에 화가에게는 자기의 색과 기법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그 자신은 투명과 불투명이 공존하는 것 같은, 수채화색도 아니고 유화색도 아닌, 불투명 수채화 같은 유화를 그린다고 했다. 그리고 청색을 언제나 강하게 써서 캔버스의 군데군데에 백색이 드러나게 했으며, 그 백색과 강한 청색은 유화의 육감적인 느낌을 줄이고 흡사 수채화를 보는 듯한 투명한 감을 준다고 보았다. 그 '투명' 속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지 못하겠으되 그는 유화의 (불투명한 속성에 내재한) 그 투명성 속에서 자신의 색을 느낀다고 말했다. (손장섭, 『공간』 1987. 6) ● 지금 와서 생각해 봐도 손장섭은 언제나 '매끈하게 뽑아내는 작품보다 자기 식의 표정에 대한 집착이 꽤 강했던 것 같다'(성완경, 1991). 그가 그린 수채화나 과슈 그림이 왜 남다르게 와 닿았는지, 유화물감으로 그렸을지라도 스스로 물감 고유의 효과를 죽이며 표현하려 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일테면 「6월 춤」(1988)을 위한 스케치와 그 결과인 수채 물감으로 만든 종이 부조를 봐도 그렇다. 그에게 6월은 소재에 대한 회화적 표현이 아니라 자신이 놀리는 붓질과 속도, 움직임의 순간에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처음 해 봤다. 또 유화물감으로 그린 「모정과 최루가스」(1991)조차도 인물을 그려낼 때의 속도감 넘치는 움직임에서 그 현실을 온 몸으로 받아낸 것이었으리라 추측해 본다. 손장섭의 투명과 불투명의 변증법은 대상에 대한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 화가가 느끼는 주제에 대한 일체감의 문제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 회화적 표현을 주도하는 화가의 손놀림, 그리고 그 동작마다 화가가 시간과 색조를 일치시킬 때, 그 순간은 온전히 화가의 표정으로 남는다. 아크릴 물감은 건조가 빠르며, 진색 연색의 순서를 비교적 자유롭게 쓸 수 있다. 또 수채화처럼 투명하게 그릴 수 있고 유화처럼 표현할 수도 있어 다양한 기법을 얼마든지 구사할 수 있는 재료다. 어쩌면 손장섭에게 아크릴 물감이 갖는 속성이 사물의 존재감과 실존적 의미를 드러내는 데 효과적으로 작용했을지도 모르겠다. 유화는 두터운 자기 감정을 쌓아가고 박탈감을 상징하는 색조를 기름지게 만들어 버려 그가 원하는 표정을 만들어내는 데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늘 그는 모든 그림을 완결된 작품으로 마무리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의 그림에는 미완의 혁명처럼 아직 해소되지 않은 염원 같은 것을 언제나 강하게 남겨놓았던 것이다.
손장섭_우리가 보고 의식한 것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00×300cm_2011

4. 풍경 ● 손장섭은 이번 전시를 위해 작품을 네 개의 주제로, 즉 역사와 나무, 삶, 자연으로 구분하였다고 내게 설명했다. 물론 각각의 주제가 소재주의적 접근이 아닌 다음에야 상호 연관성과 순환적 의미체계를 갖는 것임은 분명하다. 오히려 모든 것은 '풍경'으로 일치되는 것처럼 여겨진다. 역사적 풍경, 삶과 노동의 풍경, 농촌과 어촌, 그리고 도시의 얼굴을 이어내는 화면에는 어떤 톤 다운 같은 맛이 느껴지는데, 그것은 마치 화가의 의지와 정서를 최소화하고 대상 자체를 드러내려는 것처럼 보인다. 일테면 「봄을 기다리는 산」(2008)이나 「북한산 비봉」(2009)에서처럼 색조의 단순화와 백색의 터치로 인해 자연을 표현했다기보다 그 형태의 뼈대를 드러내려 한 것으로 읽힌다는 것이다. ● 백색의 터치는 풍경 전반에 묘한 공간감과 시간대를 형성해주는 효과로 이어진다. 때로는 방금 세수한 맨 얼굴과 같은 순간의 체험과 느낌도 있다. 얼굴에서 막 물기를 제거했을 때와 같은 신선함과 긴장감, 그리고 편안함이 대위법적으로 공존한다. 그렇게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면 곧 흙탕물이 가라앉는 듯한 효과와 더불어 둘레의 사물이 환히 비친다. 「남해바다」(2008)에서, 「하늘 길」(2008)에서, 「바다 길」(2009)에서, 「백운대」(2009)에서 백색의 공간은 불필요한 사물을 모두 지우고, 문제를 집중하여 사물의 본래 모습을 환하게 드러내주고 있음을 보게 된다.
손장섭_탑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00×400cm_2007~08

「DMZ」(2012)와 「해남 땅 끝」(2012)은 다른 작품과 달리 공간을 겹쳐내는 방식이 두드러지는 경우다. 손장섭은 최근 들어 단일한 공간으로 풍경을 그려내지 않고 여러 공간을 모아내는 방식을 자주 접하는 것 같다. 물론 분단 풍경을 그렸던 이전의 그림에서도 그러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철책'이라는 소재는 시공간의 구분을 해체하면서 다양한 역사적 순간의 시간을 서로 연결해주는 기능(「역사의 창(한반도), 2007-8)을 해왔음을 기억한다. 그런 점에서 여러 공간을 겹쳐내는 방식이란 단절된 시공간의 틀을 이어내려는 변함없는 그의 의지임을 알 수 있다. 단지 지금에 와서는 이전보다 훨씬 시각적인 규모를 줄이면서 각각의 공간에 위계질서를 부여하지 않고 있음을 보게 된다. ● 그러면서 두드러지는 것은 손장섭의 나무다. 손장섭은 오래 전부터 신목(당산나무)을 그려왔다. 그런데 아크릴 물감으로 나무가 그려지면서 전체적인 분위기는 몇 백년된 나무의 형태적 깊이보다는 어떤 영성의 신비로움을 감지하도록 만들고 있다. 단색조의 톤과 백색의 터치가 주는 효과는 영혼이 서린 나무의 형상을 분명하게 만들어준다는 데 있다. 어쩌면 유화적 기법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맛을 살려 비교적 표현주의적 기법을 자유롭게 구사하면서 얻어낸 효과라 하겠다. 신령이 나무를 통로로 하여 강림하거나 그곳에 머물러 있다고 믿는 그 곳에 손장섭은 우리의 역사적 질곡과 시대적 상황을 투사하는 것 같다. 그리고 나무는 그 자신과 동일시되어 역사를 '바라보는' 또 다른 증인으로 그려지는 것 같다.
손장섭_통일 전망대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7×290cm_2009

5. 화가 ● 본디 회화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염두에 둔 결과라고 늘 생각해 왔다. 그래서 화가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간극에 끼어 고통 받는 존재다. 화가는 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만 그 너머의 연관관계를 읽어내면서 드러나지 않는 상처를 보고 쓰다듬고 어루만질 수밖에 없는 존재일 것이다. 손장섭은 그래서 그 모두를 기억하고, 또 기억하기 위해 그리며, 기억을 세우기 위해 그림을 살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림은 가시적인 세계로 우리를 끌어당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림은 가시적인 것을 심문하기 때문이다(존 버거). ● 물론 그런 그의 모습은 애초부터 있어 왔다. 성완경의 표현대로, 손장섭은 지금 발견되는 화가가 아니다. 그는 이미 우뚝 선 화가이고,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그는 오래 전부터 그렇게 거기에 우뚝 서 있는 큰나무, 동네 어귀의 큰 느티나무를 생각케 하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전시회를 통해 새삼 확인한 부분은 그가 늘 자신과 가장 일치된 기법을 찾아왔던 화가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가시적인 것을 심문하기 위해 형태의 외양을 둘러싸고 있는 회화적 아우라를 탈각시키고, 모든 공간을 꽉 채우지 않고 비어있게 함으로써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염원의 의미를 강하게 남겨놓는다고 보았다. ● 아직 오지 않은 희망은, 그래서 그의 그림을 더 메말라 보이게 하고 입체적 형상보다는 뼈대를 드러내기 위해 무게를 들어내고 평면화 하는 것 같다. 무게를 들어낸다는 것은 곧 자신의 관점과 의지를 가볍게 한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싶다. 그래서 사물을 스스로 보이게 하고, 그림을 미완의 상태로 두어 비어있음 스스로가 말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씁쓸한 미소, 모든 것을 비워버린 듯한 표정과 눈빛, 이미 다 가졌고 이미 다 버린 사람이 가질 법한 표정, 따뜻한 표정의 깊은 우물 같은 눈빛, 모두를 바라보고 모두를 품으려는 것 같은 시선이 화면을 청회색조의 무덤덤함으로 채워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 박신의

 



 

2012.04.10 15:58:23 / Good : 529 + Good

zabel

  • 작성시각: 2012.04.10 20:11:34
  • 총 작성한 글타래: 56 개
  • 총 작성한 댓글수: 141 개
  • 가입일: 1970/01/01
  • 포인트:
  • 레벨:
  • 오프라인 상태입니다
글 제목: same day
수정 삭제





방황하는 자가 속지 않는다

Group Exhibition :: Painting







▲ 김진, N-either11c03, Oil on Linen, 180x230cm, 2011






전시작가 김진, 이근민, 이혜민, 장파
전시일정 2012. 04. 20 ~ 2012. 05. 12
초대일시 2012. 40. 20 PM 6:00
관람시간 Open 11:00 ~ Close 19:00(월요일 휴무)
∽ ∥ ∽

텔레비전12 갤러리(Television 12 Gallery)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81-11, B1
T. 02-3143-1210
www.television12.co.kr







방황하는 자가 속지 않는다

텔레비전12 갤러리




티 브이12 갤러리 청담에서는 4월 20일부터 5월 12일까지 네 명의 젊은 회화작가 김진, 이근민, 이혜인, 장파의 기획전 <방황하는 자가 속지 않는다> 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의 제목은 라캉 Lacan의 <<속지 않는 자가 방황한다 Les Non-dupes errant, Seminar XXI>> 에서 차용하였다. 회화적 진정성에 대한 온전한 해답이 존재한다면, 이를 추구하는 과정속에서 작가들이 감수하는 능동적인 방황이야말로 이를 엿보는 감상자의 마음을 기대감으로 두근거리게 만들어주는 여정이 아닐까 한다. 따라서 이 전시는 “속지 않는”것에 대한 경계심 보다는 “방황”이라는 과정에 그 방점이 찍혀있다......... 내용 더보기

 



▲ 이혜인, 들여다보는 눈, Acrylic on Canvas, 117x91cm, 2011






▲ 장파, Hole, Oil on Canvas, 65x100cm, 2012

 



▲ 이근민, 환각의 초상, Oil on Canvas, 53x41cm, 2011



  

 

----------

 

 



하와이에는 맥주가 없다. There is No Beer in Hawaii.




김나영+그레고리 마스展 / Nayoungim+Gregory Maass / installation 2012_0316 ▶ 2012_0504 / 일요일 휴관



김나영+그레고리 마스_Golf Bat Sculpture_금속, 라이트, 나무_2012 김나영+그레고리 마스_Key Ring_금속_2012 Courtesy the Artist (Photo: Park Myung Rae)


초대일시 / 2012_0315_목요일_06:00pm

책임기획 / 오선영 (독립큐레이터)

후원 / 숨SUUM_하몬코리아_하셀블라드(Hasselblad)_Greenfish House

관람시간 / 화~토요일_11:00am~06:00pm / 일요일 휴관 * 월요일 사전 예약

artclub1563 서울 서초구 서초동 1563-6번지 하몬프라자 B1 Tel. +82.2.585.5022 www.artclub1563.org



이번 전시 하와이에는 맥주가 없다. There is No Beer in Hawaii는 일루전Illusion*에 대한 이야기이다. 1963년 폴 쿤Paul Kuhn이 부른 독일 가요 『Es Gibt Kein Bier auf Hawaii하와이에는 맥주가 없다』에서 제목을 차용하였다. 그 이유는 노래가 "일루전"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래 가사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맥주가 없는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가고 싶어 하기 때문에 결혼할 수 없다 생각하고 애통해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김나영+그레고리 마스_3D Glasses_나무, 유리_2012 김나영+그레고리 마스_House_나무_2012 Courtesy the Artist (Photo: Park Myung Rae)
김나영+그레고리 마스_하와이에는 맥주가 없다展_artclub1563_2012 Courtesy the Artist (Photo: Park Myung Rae)

일루전은 예술 어디에나 존재한다. 많은 예술가들은 그들이 갖는 일루전을 작품을 통해 표현하며 우리는 그들의 작품을 통해 작가 개인의 일상(현실)과 그들이 갈망하는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이것을 예술에서의 일루전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반면 진리를 탐구하는 철학에서 일루전은 아직도 정의 내릴 수 없는 의문점 중 하나로 남아 있다. ● 데카르트Descartes에 따르면, 모든 지각 특유의 착각은 단순한 부정이 아니다. 즉 이성과 진리의 결여가 아니라, 오히려 주관적인 유용성의 착각, 정념의 착각 등과 같은 적극성을 분명하게 나타낸다. 간단히 말하면, 착각의 적극성은 욕망의 적극성이다.
김나영+그레고리 마스_Bottles_유리, 페인트_2012 Courtesy the Artist (Photo: Park Myung Rae)
김나영+그레고리 마스_Honk Painting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012 Courtesy the Artist (Photo: Park Myung Rae)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의 작업은 자유분방함 속에서 만들어진다. 이들의 작업은 팝아트, 네오다다, 플럭서스는 물론 개념미술에서 미니멀리즘까지, 여러 미술 사조의 기반 위에서 세워진다. 하지만 지극히 자기 반성적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갈색Brown'에서부터 '하와이 섬'까지 여러 주제와 다양한 빛깔의 아이러니를 담은 설치 작품이 소개된다. 또한, 전시 타이틀 자체는 다른 작품들과는 별개로 독립적인 하나의 작품이 된다. ● 2004년부터 듀오 작가로 공동작업을 하고 있는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는 완벽한 협업의 시너지 효과를 작품에서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작품에는 그들의 주관적인 유용성의 착각들이 재미있는 요소로 작용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미술이 갖는 본성 '미술이 어떻게 기능하는가?', '미술이 어떻게 표현 되는가?' 그리고 '어떻게 작가와 작업이 독립적으로 살아남는가?'에 대해 고민하고, 이 질문들은 작업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작용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미술이 갖는 본성을 '일루전'에 빗대어 표현하고, 일루전이 갖는 모든 의미를 포용하지만 이중적 유토피아Utopia를 강조한다. 그리고 구체적인 작가의 의도나 작품이 갖는 의미로 관객들을 설득하려 하지 않고 작품이 관객들의 다양한 해석과 반응에 주목하게 한다.
김나영+그레고리 마스_하와이에는 맥주가 없다展_artclub1563_2012 Courtesy the Artist (Photo: Park Myung Rae)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는 만화 속 주인공, 캐릭터 인형, 오래된 가구 등 주변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일상의 소품들을 작업에 등장시키거나 영화나 소설 속 장면을 인용하여 각색한다. 그리고 이들은 여러 미술사조들이 갖는 성격을 작업에 적용시킨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들은 고대에서부터 현대까지 미술에 등장하는 여러 이미지들 중 우리에게 친숙할 법한 것들을 선택하고, 그것들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한다. 이 이야기를 구성하는 개별 작품은 언뜻 장난기로 가득한 조각 작업으로 보이지만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이 함축하고 있는 내용은 보이는 만큼 단순하거나 유쾌하지만은 않다. '음악'에 비유하여 표현하자면 3화음 중심의 고전적인 화성법의 구조가 파괴되면서 드러나는 불협화음의 강약들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는 한 악장과도 같다. 또 이것은 다시 새로운 3화음으로 바뀌면서 새로운 악장을 이어간다. 이는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연주곡인 것이다. ● 이 전시는 소박하면서도 세련된, 익숙하면서도 낯선 이야기이다. 이야기 속에서 불협화음들이 만들어내는 음률音律이 흘러나올 법도 하지만 침묵한다. 또한 우리가 낯설게만 느꼈던 현대미술을 시간이 흘러 이제 조금은 가까워지고, 익숙해졌다 싶은 찰나에 다시 낯설어지고 거리감을 느끼게 되는 순간 교차하는 만감으로 작용하는 전시가 될 것이다. ■ 오선영
* '장난하다', '속이다', '농락하다', '허구를 실재로 생각하다'를 의미하는 라틴어 'illudere'에서 파생된 '일루전Illusion'은 '속다', '가장하다(속이다)'는 의미를 가지며, 이 전시에서는 '무지', '지식의 결여', '진리의 부재'와 같은 소극적인 측면과 내가 믿고 있는 것이 틀렸다 하더라도 믿고 있는 것에 대해 긍정한다는 의미를 모두 포함한다.
김나영+그레고리 마스_하와이에는 맥주가 없다展_artclub1563_2012 Courtesy the Artist (Photo: Park Myung Rae)


The exhibition 'There is No Beer in Hawaii'

  

---------------------





2nd PHOTOSPECTRUM INT 2012크로스오버, 3+1




CROSSOVER, 3+1展 2012_0412 ▶ 2012_0422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2_0412_목요일_06:00pm

헝가리, 오스트리아, 러시아, 한국 현대사진기획展

참여작가 가보르 카스자_폴 슈네겐뷔르거 카테리나 벨키나_홍승희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공휴일_12:00pm~07: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진선 GALLERY JINSUN 서울 종로구 삼청로 61 Tel. +82.2.723.3340 www.jinsunart.com blog.naver.com/g_jinsun



그 동안 한국의 젊은 사진 작가들과 함께 성장해 온 갤러리 진선은 2011년부터 좀 더 폭을 넓혀 "PHOTOSPECTRUM INT(포토스펙트럼 인터내셔널)" 이라는 이름으로 해외 젊은 사진 작가들과 함께 하는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PHOTOSPECTRUM INT"는 현대 사진의 흐름을 다양한 해외 사진 예술의 스펙트럼을 통해 살피며 글로벌 문화 소통의 초석을 다지는 국제 기획전이다. 그 두 번째 프로젝트는 『크로스오버, 3+1』 헝가리, 오스트리아, 러시아, 한국 현대사진기획전 로 동시대의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21세기 현대 사진의 또 다른 지류에 대해 조망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국제적 전시의 하나인 이번 "2nd PHOTOSPECTRUM INT 2012"는 현대사진의 다양성과 사진예술의 컨텐츠를 더욱 더 풍성하게 만드는 동시에 활발한 해외문화 교류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아울러 행사에 도움을 주신 모든 관계자와 작가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 허선
가보르 카스자_4b from Y series_C 프린트_90×110cm_2010


Gallery Jinsun has grown along with young and aspiring Korean photographers since its establishment. From 2011, Gallery Jinsun has hold exhibitions together with overseas growing photographers called PHOTOSPECTRUM INT. As part of international exhibitions, "PHOTOSPECTRUM INT" in Korea is designed to play a key role of cultural communication amongst the global photo art markets and to give an insight to the flow of the modern photos via versatile foreign photo arts. The Second project is organized with International arts exhibit named 『Crossover, 3+1』. Through this 『Crossover, 3+1』, spectators have an opportunity for appreciation of a new aspect of modern photography in the 21st century. I cordially expect that "2nd PHOTOSPECTRUM INT 2012" will not only enrich the cultural contents of contemporary photography, but also be a great opportunity to widen cultural exchanges globally. Additionally, I would like to extend my sincere gratitude to all who assisted with this event, the involved and participating photographers. ■ Sun HUH

가보르 카스자_1a from Y series_C 프린트_90×130cm_2009

크로스오버, 3+1 ● 전시는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작업으로 꾸준히 성장이 기대되는 총 네 명의 현대 사진작가 작품을 선보이고 조망하는 기획전시이다. 헝가리, 오스트리아, 러시아, 한국으로 구성된 작가들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로 그들이 경험하고 느끼는 그들만의 고유한 세계를 사진으로 독특하게 풀어내고 있다. 크로스오버(Crossover)는 사전적 의미로 여러 장르가 교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전시 제목에서 시사하듯이 『크로스오버, 3+1』전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네 작가들의 다양한 스타일이 뒤섞여 만나 동시대 현대사진의 새로운 관계성과 잠재력을 모색하고자 한다. ● 사진을 통해 시간을 정지시킨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말한 '시각적 무의식'을 드러내 준다. 즉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해 준다는 것이다. 이렇듯 현대에 와서 사진은 시각적 무의식이라는 개념 속에서 다양하게 그 빛을 발하고 있다. 또한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가 말한 사진의 특성을 "지금, 여기"라고 하는 한때 있었던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듯이, 사진가는 실재의 장면을 그대로 기록하여 보여주는가 하면, 눈에 보이는 범위를 초월하여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독창적 세계를 끄집어 낸다. 후자의 경우, 사진은 현실의 상황을 재해석하고 그것을 재현하는데, 이들 사진가의 입장에서 보여지는 시각적 재해석은 보이지 않는 세계, 즉 동시대에서 느끼는 새로운 세계의 이미지이며 오늘날 우리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는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가보르 카스자_1b from Y series_C 프린트_55×67.2cm_2010

가보르 카스자(Gabor KASZA, 헝가리) ● 가보르 카스자의 연작 「Y」는 구성에 주안점을 두고 상황을 설정하여 이미지화한다. 그의 사진은 우리시대의 인간과 환경이라는 가장 근본적이고도 논쟁적인 문제를 다루면서 우리의 경각심을 일깨우고 인류 역사의 전환점을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있다. 가보르 카스자의 작품은 지속적으로 환경을 변형시키는 인간의 모습뿐만 아니라 인간의 꿈과 두려움을 동시에 담아낸다. 또한 그는 의식적으로 선택 가능한 우리의 삶의 방식과 그에 수반되는 책임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을 넘어, 정체성을 탐구하고 사회 비판적인 자세로 우리네 삶을 재조명하게 한다.
폴 슈네겐뷔르거_the sleep of the beloved 1_C 프린트_100×125cm_2010
폴 슈네겐뷔르거_the sleep of the beloved 2_C 프린트_100×125cm_2010
폴 슈네겐뷔르거_the sleep of the beloved 3_C 프린트_100×125cm_2010

폴 슈네겐뷔르거(Paul SCHNEGGENBURGER, 오스트리아) ● 폴 슈네겐뷔르거의 「The Sleep of the Beloved 연인들의 잠」시리즈에서 보여주는 이미지들은 그가 제작한 공간에서 연인들의 잠자리를 6시간 동안 장시간 노출을 통해 보여준다. 사람들의 잠자리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한 「연인들의 잠」 시리즈는 연인들의 감정 그리고 연인들과 장소에 대한 연결고리를 찾고자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잠을 잘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무의식 중에 일어나는 다정함이 표출되는 건 아닌지, 각자 서로 등을 돌리고 반대편을 향해 누워있는지 아니면 서로가 무언가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지 등 이러한 많은 의구심으로 시작하여 나타난 다양한 이미지들은 무의식에 대한 탐구의 결과이다.
카테리나 벨키나_Enter_C 프린트_110×95cm_2011
카테리나 벨키나_Bluebeard. Jealousy_C 프린트_110×76cm_2007
카테리나 벨키나_Rose-Red. Envy_C 프린트_110×76cm_2009
카테리나 벨키나_Fly_C 프린트_110×100cm_2010
카테리나 벨키나_The flight. Poezd_C 프린트_92×130cm_2010

카테리나 벨키나(Katerina BELKINA, 러시아) ● 카테리나 벨키나의 「Empty spaces」시리즈는 인간을 우주와의 연결고리를 찾아 헤매는 창조물로 본다. 현대 도시는 그녀에게 있어서 인공적이고 물질적이며 외로움과 공허함이 공존하는 장소이다. 그녀는 이러한 장소에 살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을 그녀만의 독특한 분위기로 다시 재현하고 가공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든다. 이렇게 도시화된 세계는 인공적이고 물질적이며, 인공적으로 건설된 세상의 작은 점일 뿐인 인간은 더욱 외롭고 버림받은 감정을 느낀다. 벨키나는 그녀 스스로가 도시에서 인간으로 어떻게 느끼고 살고 있는지, 그녀 주변의 도시 공간에서 어떻게 스스로를 여성으로 느끼고 살고 있는지 등 그녀의 내적인 질문과 대화를 작품으로 끌어내고자 한다. 그녀의 시선에서, 대도시는 새로운 유형의 인간을 창조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진정한 우주와의 연결고리에 대한 희미한 의식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홍승희_Der Zwang zur Tiefe #2 (깊이에의 강요)_혼합재료 설치, 사진 피그먼트 프린트_133×130cm_2007
홍승희_Der Zwang zur Tiefe #3 (깊이에의 강요)_혼합재료 설치, 사진 피그먼트 프린트_108×150cm_2007

홍승희(Seung Hee HONG, 한국) ● 홍승희의 「깊이에의 강요」 시리즈는 공간 속에서 강제적이고 강요된 깊이의 의미를 나타낸다. 즉 의도되지 않는 순간의 상황을 보편적인 일상의 모습을 반영하여 연출된 상황을 상상하여 표현한다. 그녀가 만든 공간들은 아주 낯설게 보여지고, 주름으로 연출된 장면들은 기이함과 신비감 마저 준다. 평범한 일상 속 오브제에서 느꼈던 주름의 흔적들이 작가가 만든 가상의 공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삶의 깊이로 나타나고 있다. 즉 작가는 일상 속 오브제에서 느끼는 순간들을 기억하고 그 장면들을 독특한 방법으로 현실 속에서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 『크로스오버 3+1』전시는 오늘날 동시대의 사진의 다양함을 깨닫고 자기세계에 몰두하는 작가들의 작품들로 판도라의 상자를 열 듯 우리의 감각과 상상력을 하나씩 열게 할 것이다. 이것은 또한 보이지 않는 세계, 즉 동시대에서 느끼는 새로운 세계의 이미지이며 오늘날 다채로운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을 제시할 것이다. ■ 조안 양정아
홍승희_Der Zwang zur Tiefe #8 (깊이에의 강요)_혼합재료 설치, 사진 피그먼트 프린트_160×186cm_2008


At 『Crossover, 3+1』

 

 

-----------




 

 



견인지애 犬人之愛




2012_0412 ▶ 2012_0504 / 월,공휴일 휴관



원석연_개_연필화_24×53cm_1964


초대일시 / 2012_0412_목요일_05:00pm

참여작가 원석연_한만영_고영훈_안창홍 이원희_쩌춘야_이동기_송진화 윤종석_히로시 고바야시 주후식_이승구_곽수연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공휴일 휴관

갤러리 아트사이드 GALLERY ARTSIDE 서울 종로구 통의동 33번지 Tel. +82.2.725.1020 www.artside.org



애완견은 예로부터 인간과 가장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온 동물로서 갖가지 인간의 일상에서 발생하는 우환과 재앙들을 물리쳐 주는 벽사로 대접받아 왔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의 전통 민화 뿐 아니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예술 작품의 많은 소재로서 그 역할을 해왔다. 또한, 개는 기술의 발달로 점점 더 개인화 되어가고 있는 현 시대 인간성 상실에서 오는 다양한 사회 문제를 대변할 수 있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되어 왔다. ● 따라서 본 전시는 우리의 전통 민화를 시작으로 최근의 아시아 현대미술의 흐름과 변화 그리고 그 특징들을 '개'라는 소재를 통해 재해석해 보고자 기획되었다. '개'라고 한 친근하면서도 일률적인 소재를 통해 각각의 동시대를 표현해 왔던 작품들이 지닌 표현기법과 사고의 흐름들을 가늠해 볼 수 있고, 또한 미술사의 전체적인 흐름을 보다 쉽게 접하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 그렇다고 본 전시가 소재중심주의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관객들에게 어렵게 보일 수 있는 회화의 철학적 근거와 배경들을 보다 쉽게 정리해서 보여주고자 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 복잡한 정신활동의 결과로 얽혀 있는 작품의 사상적 근거들을 보다 친근하면서도 일상적인 소재로 정리하여 표현되었을 때, 비로서 관객들은 보다 확실한 자기만의 감상 포인트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 원석연 (元錫淵, 1922~2003) 그는 1922년 황해도 신천에서 8남매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서예에 일가견이 있으셨던 아버지의 후원과 격려로 일본 가와바타에(川端) 미술학교에서 수학하였다. 그는 1945년 미국 공보원에서의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60여 년 동안 연필화만 고집했다. 동시대에 자신의 작품을 평가한다는 것 자체를 거부하여 단 한번도 공모전등에 출품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미술계에서는 '시대의 이단아'라 불렸다. 세계적으로도 유사한 예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그는 평생 연필화만 그린 작가로 유명하다. 그는 연필을 통해 자신만의 조형언어와 작품세계를 완성 시켰을 뿐 아니라 '연필화'를 데생과는 차별되는 하나의 독립적 미술장르로 승격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가 그려낸 견인지애는 6.25 전쟁 후 혼란스럽지만 그래도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았던 당시 시대의 생생한 모습을 전하고 있다.
한만영_Reproduction of time Dog_박스, 오브젝트(스틸)에 아크릴채색_43×82.2×8cm_2012

한만영 ● 한만영은 1972년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현재 성신여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한국 미술계의 집단적 흐름에 속하지 않은 채 레디메이드 이미지를 차용함으로써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하였다. 70년대 말에는 정밀묘사 기법의 「공간의 기원」연작이 대표적이며 80년대 초반에 들면서 포스터나 인쇄물을 이용한 작품을 제작하였다. 1984년 무렵부터는 옛 거장들의 고전작품을 차용하여 이를 일상의 오브제와 복합적으로 재구성하는 「시간의 복제」라는 제목의 일련의 작품들에 집중해왔다. '시간의 복제' 라는 제목은 고전이 된 과거의 작품을 복제, 차용함으로써 '과거' 라는 시간을 복제한다는 의미를 가지며 동시에 이를 현재의 시간과 결합함으로써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운 상상을 가능케 하며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표현하고 있다. 민화의 이미지에서 개의 소재를 찾은 작가의 견인지애는 그가 지금껏 추구해 왔던 명화를 현재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왔던 ""시간의 재생산"" 작업의 연장선 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 현대미술에 있어 오브제 작업의 깔끔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안창홍_낮잠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3×116cm_2012

안창홍 ● 안창홍은 1953년 밀양에서 태어나 동아고를 졸업한 후 15회의 개인전과 광주 비엔날레 등 다수의 단체전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작가이다. 1989년 프랑스 카뉴국제회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바 있다. 안창홍은 비참함과 화려함이 함께 떠도는, 아니 묻어나는 듯 한 그의 화면에서 우리는 황폐와 고독, 소외와 불안, 인간성이란 것의 잔혹함과 왜소함, 공포와 비극성 같은 짙게 조여오는 강박을 발견한다. ● 그가 현실을 그리는 방식은 서사적이라기보다는 현실의 우화적 변용 쪽에 가깝다. 그리고 이 우화적 변용 속에서 그는 더욱 본질적인 인간성의 비극을, 인간성 속에 깃들어 있는 영원한 불구(不具)를 화려하게 드러내고 있다. 또한, 그의 모든 작품과 사고들이 현실에 두터운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점에서 보다 강렬하면서도 치밀하게 인간 내면을 건드린다.
이원희_방 단발령 망 금강_캔버스에 유채_80×145.5cm_2012

이원희 ● 진경 산수를 현대적 재료와 감수성으로 재현해 내고 있는 이원희는 인물의 정신까지도 표현해 낼 수 있는 초상화에도 끊임없는 관심을 가져온 작가다. 그의 유화 기법은 한국 유화 기법의 전통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재료에 대한 탁월한 감각을 지니고 있다. 자연과 인간의 만남이 숭고하다면, 인간과 반려견과의 만남은 지속적이며 일상적이다. 작가는 이 두 만남을 하나의 화폭에 담았다. 그리고 그 속엔 전통과 현대라고 하는 시간의 겹침도 함께 존재한다. 그의 본 전시 출품작이다. 겸재의 박연폭포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현하고 그 속에 인간과 반려견의 만남을 그려 넣은 작품이다.
고영훈_개-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90cm_2012

고영훈 ●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1980년대는 극 사실적인 표현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대표적인 작가로서 고영훈은 우리의 눈이 볼 수 있는 한계를 넘어 사진과 그림의 경계를 계속해서 넘나드는 작품으로 현실 너머의 정신적 세계를 표현해 왔다. 대상의 극단적인 묘사는 우리의 시각을 극도의 피로감으로 무력화 시킨다. 육안의 한계를 넘어 대상이 지닌 규칙과 본질적 형상에 의해 묘사되는 극 사실적 표현기법은 이렇듯 가장 사실적인 표현으로 초현실적 화면을 형성한다. 작가는 그러한 초현실적 공간에 두 가지 상충되거나 연관성이 전혀 없는 사물들을 배치한다. 다양한 상징들의 부딪힘이 이뤄지면서 전혀 다른 상상과 상징의 세계가 펼쳐진다.
쩌춘야_dog_실크스크린_130×104cm_2011

쩌춘야 ● 중국 아방가르드를 대표하는 쩌춘야는 중국의 사회적 환경에 대한 비판보다는 개인적인 관심과 심리적 상황을 표현해 왔다. 자신이 키우던 개의 다양한 표정과 몸짓을 과감한 붓 놀림과 단색이지만 풍부한 색채로 표현했다. 이는 급변하는 중국의 정치 경제적 환경 속에서 그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이면서 동시에 대상을 통해 작가 내면의 갈등을 표출하는 방법이다.
이동기_Doggy Dog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00×100cm_2011

이동기 ● 한국의 팝아트를 대표하는 이동기는 미국과 일본의 대표적인 애니메이션 캐릭터인 미키마우스와 아톰을 믹스한 아토마우스를 탄생시킨다. 동서양의 대중적 이미지의 만남이다. 이 미키마우스는 우리의 일상으로 들어와 대중적 필요를 대변한다. 그가 표현한 애완견의 이미지 역시 대중적 이미지 즉, 대중매체에 의해 창작되어 대중적 감성을 대표하고 있는 이미지를 차용하여 재창작한 이미지다. 가장 친근하고 대중적인 이미지를 통해 가볍게 우리의 일상에 접근하여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미지들이 어떻게 형성되고 있으며 또한, 그것들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한다. 대중적 이미지들은 대상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인식으로부터 파생된 결과로서 수용과 창작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이로 인해 이미지는 우리의 인식적 근거들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며 또한, 판단을 강요하는 권력을 지니게 된다. 작가는 이러한 대중적 이미지의 다양한 얼굴들을 아토마우스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송진화_따끈따끈_나무에 조각_90×45×30cm_2011

송진화 ● 나무로 여성의 다양한 희로애락을 캐릭터 강하게 조각하고 있는 송진화는 나무가 지니고 있는 재료적 특성과 작가만의 독특한 이미지들을 잘 조화 시킨다.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고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나무는 스스로 가지를 내고 몸통을 뒤틀면서 자란다. 이러한 이유로 같은 종류의 나무들 속에서도 똑 같은 모양의 나무를 찾을 수 없다. 작가는 이러한 나무의 특성에 대한 이해가 상당히 깊다. 우선, 나무가 지니고 있는 형태와 자신의 삶에서 기억되고 있는 다양한 경험들을 결합시키면서 최종적으로 작품의 형상들을 결정한다. 그렇게 결정된 형상들은 자연과 함께 생성된 나무결과 매치되면서 삶의 힘들고 즐거운 표정들을 드러낸다. 작가가 기르고 있는 반려견 역시 그와 같은 방법으로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한다.
윤종석_꽃속에 숨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97cm_2009

윤종석 ● 동물이나 기타 사물들로 변형된 옷을 수 많은 점으로 찍어 표현하고 있는 윤종석은 예술은 노동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결정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정확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을 전달하고 있는 반면 보는 이로 하여금 일반적으로 그리는 회화에서 느껴지는 붓이라든가 색면을 발견할 수 없다. 그 반면 수 없이 찍혀진 점이 이루고 있는 질감은 마치 보송보송한 옷감의 느낌을 그대로 느낄 수 있게 한다. 주로 옷을 접거나 변형하여 우리에게 친근한 동물의 형상을 만들어 표현하고 있는 윤종석의 작품의 중심엔 항상 옷이 있다. 옷은 그 옷을 입은 사람의 사회적 위치와 욕망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 옷의 주인이 빠진 옷 그 자체는 모든 생명력을 잃게 된다. 그 부분에서 작가는 옷 스스로 지니고 있는 형상으로의 변화 가능성을 발견한다. 그렇게 작가의 옷은 새로운 생명력을 얻게 된다.
히로시 고바야시_Flower chaser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91cm_2012

히로시 고바야시 ● 공간에 부유하고 있는 인형들로 우리가 서 있는 공간 자체를 초현실적 공간으로 확장하고 있는 히로시 고바야시는 수 많은 색의 레이어로 대상을 표현하고 있다. 그의 색 레이어는 울퉁불퉁한 인형의 털이 지닌 다양한 색 변화를 단계별로 쌓아 올려지면서 만들어진 색면들이다. 이러한 색면들은 대상을 정확하게 표현해 내기 보다는 몽환적인 분위기로 표현된다. 따라서 작가에 의해 임의대로 분할된 공간에 떠 있는 인형들의 진행 방향을 보다 더 모호하게 만든다. 이렇게 모호해진 경계로 인해 작품의 공간은 작품 밖의 공간으로 확장되어 작품이 놓여있는 전체 공간을 작가의 임의로 만들어진 초현실적 공간으로 만드는 힘을 지니게 된다. 주로 동물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인형들을 주로 그리는 작가는 우리의 육체에 갇혀있는 영혼의 순수함을 표현한다. 공간을 부유하고 있는 인형들은 시공간을 넘나들며 다양한 에너지의 흐름을 경험하고자 하는 인간 영혼의 욕구들을 대신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주후식_mu-tant terra-cotta_조형토_75×50×46cm_2011

주후식 ● 다양한 개를 흙으로 빚어 테라코타로 만들고 있는 주후식은 흙을 빚는 타고난 감각을 지녔다. 최종적으로 불에 구워야 완성이 되는 테라코타는 가소성이 뛰어난 흙의 성질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원하는 형태로 만들어 낼 수 있다. 따라서 작가는 흙덩어리가 아닌 일정한 두께를 유지하여 작품의 안이 비어있도록 흙을 빚는다. 거의 회화 작가들의 붓 놀림과 맞먹는 수준의 흙에 대한 작가만의 감각이다. 흙으로 표현된 개는 견고함과 따뜻함을 동시에 지닌다. 불에 구워진 흙의 견고함과 흙 자체 생명력이 지닌 따뜻함이다. 따라서 주후식이 흙으로 빚어낸 애완견은 테라코타를 넘어 그 자체의 생명력을 지닌다.
이승구_Love is in the air_55×35×32cm_2011

이승구 ● 아기와 개라는 소재를 활용하여 오늘날의 교육과 대중매체에 대해 진지한 고민들을 풀어내고 있는 작가 이승구는 전달하고자 하는 진지함과는 사뭇 대조적인 익살스러운 모습의 아기와 개의 이미지를 차용한다. 이는 어쩌면 이미 우리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시스템, 즉 교육 및 대중적 매체에 의해 주입된 보편화된 이미지에 의해 우리 스스로의 판단기준 자체가 모호해 진 이면에 대한 작가의 위트 있는 접근이 아닌가 싶다.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대중매체에 노출된 우리의 사고는 일상적으로 주어지는 상황에 대해 쉽게 판단하게 된다. 즉, 모든 상황을 보편적인 기준에 의해 판단하게 된다는 것이다. 흔히 이야기 하는 고정관념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현실에 대한 판단을 수동적으로 만들게 되며 이러한 수동적 판단은 우리의 상상력을 제한하게 된다. 따라서 작가는 개의 익살스러운 표정과 몸짓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이러한 수동적 판단으로부터 벗어나 각자의 상상력의 세계로 인도하고자 한다.
곽수연_소통_순지에 채색_122×74cm_2009

곽수연 ● 전통적인 민화의 화면에 개를 담고 있는 곽수연의 작품 속 개 이미지 속에는 인간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투영된다. 전통적인 민화라고는 하지만 자세히 보면 거기에는 가장 현대적이며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욕망을 대표하는 명품가방이나 향수 등이 등장한다. 즉, 작가는 주관적으로 원근법을 해석하고 있는 민화에 현대인들의 욕망의 대상들을 주입함으로써 편리함 속에 숨어 있는 소비사회의 이중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한 주변을 배경으로 너무나 천진난만하게 그 배경과 결합해 있는 개는 어쩌면 가치기준 없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대변해 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소비에 의해 결정되는 모든 가치기준들이 만들어낸 비인간적 상황에 대해 오히려 개는 더욱 더 인간적인 면모를 과시한다. 어처구니없게도 우리는 개의 이러한 인간적인 면모를 통해 우리의 인간성을 회복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아이러니를 겪게 되는 순간이다. ■ 갤러리 아트사이드


------------





메타상상우화 META 想像寓話




이창민展 / LEECHANGMIN / 李昶旼 / painting 2012_0412 ▶ 2012_0508



이창민_Mein baum_캔버스에 유채_270×220cm_2008


초대일시 / 2012_0412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주말_10:00am~06:00pm

유엔씨 갤러리 UNC gallery 서울 강남구 청담동 58-13번지 Tel. +82.2.733.2798 www.uncgallery.com



메타상상우화 meta - 想像寓話 ● 동물을 소재로 그만의 세계를 그려나가는 작가 이창민. 이창민은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건너간 독일에서 현재까지 생활하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로 해외에서 한국으로 역진출한 경우이다. 이창민은 2003년 뉘른베르크 국립미술대학에서 수학하게 되면서 독일에서 활동하는 세계적인 화가이자 교수인 랄프 플렉(Ralph Fleck)의 눈에 띄게 되었다. 그 후 졸업 후에도 랄프의 수제자로, 때로는 그림을 그리는 동료로써 현재 독일 미술계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 하고 있다. 온전한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한지 이제 2년. 하지만 학교를 졸업하기 전부터 독일의 콜렉터들에게 각광받게 된 이유에는 동물이라는 일상적 소재와 조화된 그만의 독특한 색감과 표현법, 완성도에 있었다. ● 작가가 주로 그리는 동물은 원숭이, 개 등 인간과 가장 친숙한 동물들이다. 이창민의 작품 속 동물들의 모습은 우리가 인식하고 있던 기존 동물의 외형이 사실적이지만 거칠게 표현되어 있다. 거기에 형광색에 가까운 원색이 가미되어 있는데 기존의 외형에 가미된 인공적인 색감은 동물들을 비현실적으로 보이게 하며 새로운 판타지를 묘사한 듯 신비한 아우라(Aura)를 풍기게 한다. 또한 전신의 힘이 느껴질 정도의 강한 속도감을 보이는 붓 터치, 물감을 두껍게 칠하는 임페스토(impasto) 기법의 사용은 다른 세계에 종속되어 있어 보이는 동물들에게 생동감을 부여하며 우리와의 거리를 가깝게 한다. 이러한 표현들로 인해 친숙하면서도 생경해 보이는 그 경계를 자연스럽게 넘나들고 있는 것이다. ● 그렇다고 이 모든 것들이 즉흥적인 붓질들에 의한 당연한 결과는 아니다. 이창민이 작업하는 모습을 보면 사전에 철저히 계획된 구도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기본적인 계획을 토대로 작업을 해나가면서 여러 우연의 효과를 보게 되는 것이 여느 작가들의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이창민은 구도뿐만 아니라 붓 터치 하나하나가 모두 계획되어 있는 것처럼 한 번의 붓 터치들로 빈 공간을 채워나간다. 이러한 작가의 기술력은 그만큼 사전에 이미 많이 연습되어 있다는 것, 계획을 넘어선 감각적인 터치감이 이미 몸에 베어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넘어 이창민의 그림은 열린 구조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이창민은 작품 속 동물들에게 '인격을 부여하는(anthropomorphism)'태도를 보이는데, 이러한 태도는 작품을 우화(fable)와 같은 역할을 하도록 만든다. 하지만 교훈을 주는 것을 목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 보다는 이야기의 주체를 관객이 이끌어나가게 한다. 우화 같은 장면으로 쉽고 친근하게 다가와 각자의 모습을 투영시킬 수 있는 공간을 남기면서도 동시에 상상력을 발휘하게 하며 또 다른 세계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 이창민의 작품은 인간의 권리를 행사하며 동물을 종속시키지도, 그렇다고 신화화 시키면서 이상적으로만 표현하지도 않으며 그 경계의 접점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나아가 그것을 작가만의 사적 체험을 넘어 모두의 공적 체험이 되게 하는 그의 작품은 그것을 접한 모든 이들에게 짧은 전개 속 긴 여운을 이끌어내며 깨달음의 순간을 전해줄 것이다. 마치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처럼 위트와 아이러니를 담은 채. ■ 유엔씨 갤러리
이창민_Seilakrobat_캔버스에 유채_250×200cm_2009
이창민_Affenbaum_캔버스에 유채_270×200cm_2008

나의 마이스터 쉴러(수제자) 이창민에 대해서 몇 줄 적어본다. 2004년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찾아 온 이창민과의 만남은 아직까지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있다. 사실적인 표현의 수채화나 드로잉으로 채워진 이창민의 포트폴리오는 주로 여행객들의 모습을 배경이나 주변상황을 생략하고 윤곽만을 따서 그린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렇게 채워진 이창민의 포트폴리오는 내가 본 최고의 포트폴리오 중 하나였다. ● 학교에 들어온 후 이창민은 즉시 유화를 그리기 시작하였다. 가끔은 조각 작업도 하였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동물을 소재로 한 드로잉을 하며 보냈다. 호기심이 많은 이창민은 항상 실험적인 것을 즐겼다. 이창민의 작업의 주요 테마는 비현실 속에 놓여진 동물들 혹은 합성된 존재로 표현된 동물들이다. 이창민의 작업 대부분은 화려한 색감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즉흥적인 붓질의 흔적이 아닌 오히려 생각하고 계획된 구도를 가지고 있다. 이런 작업은 사전에 많은 연습 끝에 나오게 된다. 제스처가 느껴지는 회화임에도 불구하고 부문적으로 두껍게 색칠되어 있고, 굉장히 집중적이며 강한 붓질을 통해 유행을 타지 않고 신선하고 재미있는, 무엇보다 깜작 놀랄만한 회화가 완성된다. 이창민의 회화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 하다. "자 내가 여기 있다. 더 질문할 것이 있는가?" ● 나는 그의 작업을 굉장히 강한 그림이라 평가한다. 그리고 지금은 수제자와 선생의 관계를 떠나, 그림을 그리는 동료로서 그리고 맛있는 음식 같이 즐길 수 있는 동료로서 창민과 친구가 된 것이 나는 기쁘다. ■ 랄프 플렉
이창민_Schwein_캔버스에 유채_200×150cm_2011
이창민_Landschaft_캔버스에 유채_60×170cm_2011


META Imaginary Fable

 

 

----------

 

 



畵歌: 고전은 숨 쉰다




2012 한원미술관 그리기 즐거움展 2012_0412 ▶ 2012_0511 / 월요일 휴관



김예찬_숨겨진 이야기 Behind story_도자기에 영상_51×28cm, 50×32cm, 65×31cm, 00:01:25_2011


초대일시 / 2012_0412_목요일_04:00pm

참여작가 김예찬_변혜숙_이소연(이소발) 정빛나_정헌칠_최미연_최현석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한원미술관 HANWON MUSEUM OF ART 서울 서초구 서초동 1449-12번지 Tel. +82.2.588.5642 www.미술관.org



고전은 살아 숨 쉰다.-세번째의 "畵歌 展"에 부쳐-고전의 의미: 뿌리가 되어 꽃으로 피어나는.. ● 미디어와 첨단 과학기술의 시대에 고전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종이와 먹을 사용하여 세계의 우주론적 철학의 구조를 견고히 한 동양 회화에 있어 고전을 들추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다. 따라서 작금에 한국화로 명명되고 있는 우리 그림들의 가치 기준을 마련하고 의미를 정의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한국화는 조형에 접근하는 방식에 있어 종이에 먹을 다루는 연습부터 이루어진다. 동양화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데 있어 중요시되었던 것은 전(前) 시대의 모본(母本)을 학습하고 체화(體化)시키는 것이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 淸)이었는데, 이는 산, 나무, 꽃, 돌, 인물에 이르는 자연의 모습을 그리는데 있어, 형상의 본질을 드러내는 법칙을 중국역사상에서 오래도록 형성시킨 화본(畵本)이었다. 이러한 류(類)의 화보를 통해 학습된 형상의 구성들은 화가의 개성과 시대의 양식적 변모들을 받아들임으로써 독창적인 회화로 완성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조형의 기초는 자연의 형상을 뽑아내는데 있어 정신성을 강조하게 되고, 그 정신성은 부감법, 3원법, 역투시도와 같은 구도법으로 드러난다. 또한 발임이나 준(峻)과 같은 필(筆)의 운용을 보여주게 된다. 때로는 궁중장식화나 민화, 풍속화와 같은 회화의 특징적인 장르로 잉태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고전"이라 불리는 이 시대의 남겨진 전통은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되고 있다는 것이다. 깊이 이해되고 체화된 전통은 시대와 화가의 개성이 만나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된다는 것이다. 역사성, 철학성, 문학성이 버무려진 고전은 튼튼한 뿌리가 되어 땅 속으로 스며든다. 그 스며든 뿌리 위로 찬란하게 피어나는 것이 현대이고 그것이 고전의 살아 숨 쉬는 생명력인 것이다. 따라서 고전은 생명을 자라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며 정신성이다. 또한 우주의 본질을 바라보는, 시각을 창출해 내는 독특한 시각의 움직임인 것이다. 동양의 정신은 자연과 하나임을 강조하는 자연합일(自然合一), 물아일체(物我一體)가 그 대표인데, 이는 사물의 형상을 뛰어넘는 세계를 구성하는 본질의 현현(顯現)이다. 따라서 이러한 정신성은 시대의 물질적 발전과 정신적 영역의 확장과 다양성이 만나 새로운 고전으로, 현대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변혜숙_월동준비_장지에 혼합재료_162×130cm_2009

한국화의 길(道)에서 만난 7인의 화가 ● 3번째의 화가(畵歌) 전에서 만난 김예찬, 변혜숙, 이소발, 정빛나, 정헌칠, 최미연, 최현석 7인의 작가들은 한층 두드러진 고전의 의미들을 되새김질 한다. 김예찬은 작가가 직접 구운 조선시대 도자기들에 영상을 투사한다. 투사된 영상들은 조선백자의 항아리에서 튀어나온 잉어들처럼 살아 움직인다. 꽃이 되고 물고기가 되고, 한 줄기 드리운 인연의 끈이 된다. 사실 이들의 움직이는 영상들은 조선 백자에 어느 이름 모를 화가가 그린 명작들에 기초한다. 견고하게 구워진 태토(胎土)위에 고착된 이미지가 김예찬의 작품에서 다시 생명을 갖고 살아나고 있다. 조선의 아름다운 문양들에게 생명을 부여하고 현재의 미디어를 통해 관객과 호흡하는 작가의 화면에서 이 시대의 고전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관하여 음미하게 된다. ● 변혜숙은 한지에 섬세하게 찍어낸 점들로 옷장 속의 표정을 포착한다. 드레스, 바지, 치마와 같은 아이의 유년기를 추억케 하는 옷들은 점과 점이 만남으로써, 종이 속에 부드럽게 스며들거나 화면 밖을 부유한다. 옷장속의 풍경들은 부드럽고 온화하고, 아득하고 그립다. 한지위에 올려 진 안료의 흔적들은 우리의 어릴 적 추억처럼 깊숙이 침투되고 있다. 이는 한지의 물성이 가진 깊이와 고요, 무게감이 피부의 체온과 닮음에서 오는 결과인 듯하다. 그의 밀도 높은 묘사는 화론(畵論)에서 말하는, 구체적인 묘사를 통해 얻어내는 정신성 즉, 전신(傳神)과 닮아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소연(이소발)_신윤복의 초상화 portrait of Shin Yunbok_종이에 혼합재료_50×72cm_2011

이소발은 안경을 통해 드러나는 기억과 삶의 단상들을 표현한다. 안경속의 풍경들은 작가의 지나 온 삶의 편린들과 작가가 감동받은 이중섭의 회화, 보테로와 같은 특정한 의미를 지닌 이미지들이다. 이들의 장면들은 작가 특유의 우의화(寓意化)를 통해 재탄생되고 있다. 신윤복의 고전은 명쾌한 선묘로써, 명작을 바라보는 관자의 시선처럼 확장된 호기심으로 드러난다. 이는 작가가 느끼고 바라보는 삶의 감도(感度)가 밝고 건강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작가에게 있어 그리기의 세계는 설레는 기대와 유쾌를 동반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안경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자신의 삶과 이미 체화된 고전들은 거울과 같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의 규준과도 같다. 이는 곧 세계를 인식하는 정밀한 가치평가의 하나로써 작용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정빛나_전철의 창가에서 조용히 중얼거렸다_한지에 채색_60.5×72.5cm_2012

정빛나는 두 개의 화면을 겹침으로써 하늘같은 풍경화를 보여준다. 이는 고려불화에서 볼 수 있는 배채(背彩)의 효과를 두 장의 바탕으로 변모시킨 것이다. 배채는 즉물적인 색의 표면감을 눌러주고 깊은 정신 영역에서 느끼는 맛을 보여주게 된다. 밑색이 칠해진 화면과 구체적인 사물을 선묘로 묘사한 바탕의, 이중으로 겹쳐진 종이에서 바람이 불거나 구름이 아득한 우물 같은 세계의 풍경이 열린다. 그 풍경에는 익숙한 동네 어귀의 담장과 지붕, 그 위로 흘러가는 구름과 피어나는 꽃이 담담하고 조용히 펼쳐진다. 작가의 화면에서 완성되는 무한히 확장하는 풍경은 시인이 노래하는 정겨운 시(詩)의 심상(心像)과도 닮아 있다. 즉, 그의 화면은 청신하고 맑은 바람이 이는 시적 상상력의 세계로 가득한 것이다.
정헌칠_청음 淸音_한지에 수묵담채_145×85cm_2012

정헌칠은 우리 땅에서 자라 온 삽살개를 그린다. 정교한 세필로 터럭 한올 한올을 묘사한 강아지에서 사실성을 뛰어넘는 삽살개의 정수가 감지된다. 그가 묘사한 터럭 한올 한올의 탄력 있는 붓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숙성된 정신의 정화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사실 이러한 강아지의 표현은 조선후기 김두량의 강아지 그림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겠다. 김두량은 「흑구도(黑狗圖)」와 같은 그림을 통해 정밀한 세필묘사와 사실적인 강아지의 동체 움직임을 포착해내고 있다. 이러한 기법은 18세기에 일었던 실경산수의 유행과 사실적인 형상의 묘사를 통해 내재한 정신성을 가시화시키는 전통화법과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정헌칠의 작품에는 뿌리 깊은 전통성이 내재하는 것이다. 그 전통성은 주제와 묘사기법에 이르기까지 견고한데, 이를 통해 정신성과 관계하는 전통의 긍정적인 감동을 느끼게 된다.
최미연_In my city_한지에 채색_194×130.5cm_2011

최미연은 산과 나무로 구성된 도시 풍경을 그린다. 금강산도에서 볼 수 있는 뾰족하게 솟은 산과 바위는 현대 도시가 되고, 이 거대한 도시는 작은 자동차가 끌고 움직이기도 한다. 작가의 작품은 겸재(謙齋) 정선의 진경산수에서 기원하고 있다. 부감법으로 바라보는 산수도시의 풍경은 진경산수의 수직준(垂直埈)과 같은 뾰족한 산수의 밀도 높은 필법의 구현으로 인하여 드넓고 무한히 확장되고 있다. 이 늘이고 줄인 관념의 도시를 자동차가 싣고 떠난다! 사실 이는 장자(莊子)에서 말하는 피라미(鯤)가 대붕(大鵬)이 되는, 사고의 놀라운 전복을 보여주는 상상력이 내재되어 있다.
최현석_신묘년 구제역순환도_마(麻)에 수간채색_194×112cm_2011

최현석은 궁중기록화의 기법을 통하여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보여준다. 궁중기록
2012.04.10 20:11:34 / Good : 346 + Good

zabel

  • 작성시각: 2012.04.12 01:24:00
  • 총 작성한 글타래: 56 개
  • 총 작성한 댓글수: 141 개
  • 가입일: 1970/01/01
  • 포인트:
  • 레벨:
  • 오프라인 상태입니다
글 제목: +++
수정 삭제




Historia












이진영展 / LEEJINYOUNG / 李珍暎 / photography 2012_0413 ▶ 2012_0426 / 월요일 휴관







이진영_Walk_C 프린트, Collodion Wet-Plate negative (Ambrotype)_91.95×74cm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01005c | 이진영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2_0413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 06:00pm / 월요일 휴관

쿤스트독 갤러리 KunstDoc Gallery 서울 종로구 창성동 122-9번지 Tel. +82.2.722.8897 www.kunstdoc.com







습판 사진술로 드러나는 시간 속 단상들 최근 작업인 "습식(濕蝕)"은 옛 습판사진술(Wet Collodion Process)의 하나인 암브로타입(Ambrotype)을 매체로 하였으며, 매체 자신의 프로세스에 인하는 액체성은 현재의 건식(dry)사진술에 의해 사라진 것들이다.콜로디온 유제를 유리판에 도포해 노출 직전에 질산은 용액으로 감광성을 주어 음화를 얻는 기법으로 장노출을 하고 감광제가 마르기 전에 암실로 가져가 현상까지 해 주어야 하는 번거로움과 수작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암브로타입으로 작업하게 된 계기는 암브로 타입이 지닌 액체와 유리의 물질성이 모든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물질인 물의 질료성과 잘 결합되리란 생각이 들어서였다.젖은 점액질이 마르면서 비로소 투명해지는 콜로디온(Collodion)이라는 화학물의 성격이 이 작업의 사진술로서만이 아닌 작업의 모티브가 되어지는데 지구의 모든 생명이 실제로 젖은 생명(Wet Life)이 듯 촬영과 현상 내내 젖은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암브로타입은 마치 생명이 체온을 지키듯 습기를 내내 보존해야만 한다. 장노출과 현상 등을 거치는 아날로그의 기술적 한계와 번거러움에도 불구하고 우연과 필연으로 만들어진 미세한 긁힘이나 자국, 먼지까지 주요 요소이자 창작의 근원이 되었다.
이진영_Zoo_C 프린트, Collodion Wet-Plate negative (Ambrotype)_129×163cm_2012
이진영_Retrace_C 프린트, Collodion Wet-Plate negative (Ambrotype)_91.95×74cm_2012

사진 매체작업 "히스토리아"에서는 암브로타입(Ambrotype)의 유리 네가티브 원판 (Glass-Plate negative)을 Laterna Magica ('마술램프': 볼록렌즈와 램프을 이용한 슬라이드 프로젝트의 전신)로 재탄생시킬 것이다. 이 전시를 통해서 대중매체로서의 사진과 그 자신이 매체가 된 사진을 위한 실험들이 단지 아날로그와 디지탈사진의 담론에 그치지않고 그 자체가 지닌 아우라와 감성을 내 작업과 결합시켜 그 안에서 파생된 또 다른 미(美)를 관람객들에게 경험케 함으로써 사진의 본질에 대해 되 짚어보고 또 다른 미적 영역을 환기시키고 확장시켜 보여주고자 한다. 유리네가티브원판 (Glass-Plate negative)에 맺혀 건조된 상태의 잠재적 이미지들은 Laterna Magica (마술램프)의 아날로그 불빛을 통해 투영되어 나의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일상의 단상들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그것이 단지 낭만주의적 감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시대의 풍경들과 대질되어 투영되고 어울어짐으로써 아름다움과 흉물스러움, 의미와 무의미, 성스러움과 섬뜩함 등이 공존하는 양존병립의 (ambivalence) 의 감정을 관객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 이진영
이진영_unfamiliar_C 프린트, Collodion Wet-Plate negative (Ambrotype)_91.95×74cm_2012
이진영_Two_C 프린트, Collodion Wet-Plate negative (Ambrotype)_150×120cm_2012






낯설음 / zwei / 날것 / 여자 절름발이 / 습식 / 청주 / 공포증 / Francesca Woodman / 구의동작업실 / 카메라 옵스큐라 / 차가운 입김 / 밝은방 / 어린이 대공원 / 옥상 / 선인장 / 마술램프 / 춥지도 덥지도않은 아주 딱 알맞은 온도 / 욕지도 / Retrace / 뚝섬유원지 / 랭보 / 시 / 땀 / 잠실대교 / 식목일 / 을지로 / 자유 / 징후 / 산책 / 동물원 / 유행가 가사 / Einsamkeit / 냄새 / 에스프레소 ● 나에게 있어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주변의 환경에 적응해 내려는 내식의 궁리이다. 또한 그것은 매일 맞닥뜨리는 '낯 설음'이라는 불편함을 풀어내기 위한 나만의 방식이기도하다. 촬영을 할 때에 난 먼저 대상들과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같이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상호교감의 폭을 넓히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은 대화를 나눈다. 이 과정 속에서 카메라를 가운데에 두고 나와 대상들 간의 독특한 사건들 즉 이야기(STORY)들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 이야기들이 하나씩 모여서 작업이 되고.. 그 모여진 작업들은 하나의 역사(HISTORY)가 된다. 이런 작업의 PROCESS는 작업의 모티브가 되기도 하고 때론 다른 표현의 방식을 취하면서 창작의 근원이 된다. ■ 이진영

이진영_Yokjido_C 프린트, Collodion Wet-Plate negative (Ambrotype)_150×120cm_2012






unfamiliar


-------------

 











열두 개의 방을 위한 열두 개의 이벤트










SeMA 청년 2012展 2012_0410 ▶ 2012_0517 / 월요일 휴관






문형민_by numbers series : 서울시립미술관 2000-2011_월페인팅_가변크기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12 Events for 12 Rooms-SeMA BLUE 2012展

참여작가 문형민_진기종_파트타임스위트_김기라_하태범_김상돈 한경우_김용관_김영섭_노진아_변웅필_이진준

관람시간 / 화~금_10:00am~08:00pm / 토,일,공휴일_10:00am~07:00pm / 월요일 휴관 * 뮤지엄데이 운영_매월 2회(첫째,셋째주 화요일) 밤 10시까지 연장

서울시립미술관 SEOUL MUSEUM OF ART 서울 중구 덕수궁길 61(서소문동 37번지) 본관 1층 Tel. +82.2.2124.8800 www.seoulmoa.org






「by numbers series : 서울시립미술관 2000-2011」은 기존에 진행하던 숫자, 즉 통계를 이용하는 by numbers series를 이번 전시의 장소와 공간에 맞게 재구성한 작업이다. 2000년부터 2011년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된 48회의 전시도록, 전체 페이지 7811, 총 문단수 80,458, 총 단어수 1,018,164를 컴퓨터로 스캐닝하였다. 입력된 데이터를 분석하여 가장 많이 사용된 열개의 단어의 횟수와 순위를 찾아내고, 가장 많이 사용된 열개의 색을 선택하였다. 완성된 단어와 색의 조합을 주어진 전시공간 총 면적 174.71㎡위에 각 단어의 빈도수에 따라 채색하였다. ■ 문형민
진기종_항해_키네틱 설치, 1:24스케일 디오라마 모형, 기계장치_가변크기_2011

누군가의 정처없어 보이고 험난해 보이는 항해는 땅을 밟기 위한 여정일까... 지구 북쪽에서 녹인 새하얀 결정체들이 결국 세상을 푸른 바다로 변화 시킨 것일까. 땅을 찾아 헤메이는 걸까, 아니면 더이상 땅에서 살 수 없기에 무작정 다른 땅을 찾아 떠나는 것일까. 저 허름한 배 한척은 육지를 갈망하는 인류의 마지막 항해가 아닐까... ■ 진기종
파트타임스위트_드롭 바이 덴_단채널 HD 비디오, 사운드_00:42:04_2010

시립비디오극장 ● '시립비디오극장'은 전시 제목이면서 입구와 출구, 극장 객석 디자인과 비디오 상영 프로그래밍을 포함하는 작업의 제목이기도 하다. 상영작인 '드롭 바이 덴: 비디오'(42분 04초, 2010)는 전시 기간 동안 한 시간 간격으로 상영된다. 한 차례 상영이 끝난 후에도 프로젝터는 꺼지지 않으며 약 18분 동안 극장 내부를 밝히면서 퇴장하는 관객을 배웅하고 입장하는 관객을 마중한다. 극장 입구에 설치된 커튼과 출구에 진열된 오브제들은 스크린 밖에 있는 인트로intro와 아우트로outro 기능을 한다. 상영작 「드롭 바이 덴: 비디오 (2010)」 2010년 9월 파트타임스위트는 열흘 동안 민간인 출입통제선 부근을 횡단하는 프로젝트 '드롭 바이 덴'을 진행했다. 여행의 루트는 대략적으로 계획되었고, 방문지역 및 명소 역시 여행 도중 상황에 따라 선택되었다. '드롭 바이 덴: 비디오'는 마치 속도전과 같이 치러진 열흘 간의 여행 기록이면서 그 와중에 촬영되고 채집된 풍경과 말들의 나열이기도 하다. 세 명의 멤버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촬영한 다량의 영상 대부분은 영락없는 지방도시의 풍경,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만, 느닷없이 마주치게 되는 검문과 제재, 보안과 전쟁의 이미지들은 과거의 공포가 속속 내려앉은 현재의 모습과 지속되는 긴장을 상기시킨다. 여행 도중 즉흥적으로 진행한 세 개의 단편적 퍼포먼스는 하나의 특정한 장소 혹은 구역에서 단발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지역적 풍경과 함께 여행 전반의 과정을 함축한다. 「러캐스트: 서울 (2012)」 / 오프닝 퍼포먼스 파트타임스위트는 '시립비디오극장'의 개막 무대에서 '드롭 바이 덴: 비디오' 중반에 등장하는 낭독 퍼포먼스 '러캐스트(2010)'의 2012년 버전 '러캐스트: 서울'을 실행하였다. 2010년 '러캐스트'의 파편적 이야기가 지역의 기억 속에 지속적으로 남아있는 공포감, 또 그것을 둘러싼 검열과 통제를 다루었다면, 2012년 '러캐스트:서울'은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로부터 수집된 말과 기록들을 통해 이러한 공포감과 검열이 또 다른 형태로 현재의 시간을 속박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 파트타임스위트
김기라_공동선-모든 산에 오르라!_2012

이번 전시에는 「공동선_모든 산에 오르라! Common Good_Climb Every Mountain!」가 소개된다. 근 10년 동안 사진, 회화, 영상과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여 사회와 개인의 모습이 반영된 작품을 선보여 왔다. 이번 전시에는 작가의 작업 전반에 흐르는 희극적 요소와 서사적 구조가 통합된 보다 집약적인 작품세계인 '스펙터', '언 모뉴멘탈을 위한 드로잉들', '번영을 위한 새로운 이념들' 등 프로젝트 연작을 선보인다. '스펙터'와 드로잉들, 설치 연작은 신화와 종교, 사회, 경제구조에 의해 파생된 이미지나 성상들이 인간의 존재와 삶을 확장시키고 '공동선'을 향하게 하기 보다는 망령이 되어 보이지 않게 인간을 제약하고 규제하며 욕망을 부추긴다는 지점에서 출발한다. 형식적 방식을 역사적, 사회적으로 의미가 축적되어 온 신화와 성상 이미지들을 해체, 변형하고 재 구축하면서 그 개념을 유추하기 위한 단서와 개념들을 드로잉 한다. 이는 인간의 의식이 반영된 또 다른 망령(스펙터 Specter)으로 결코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이번 프로젝트의 목적이다. 이번 전시는 지난 8년간 세계 10여 개국을 다니며 모은 500권 이상의 문화, 역사, 인류사 등의 서적에서 발췌한 신화와 성상의 이미지들로 만든 사진 꼴라주, 드로잉, 그리고 설치작품들로 구성되었다. ■ 김기라
하태범_수원 영화동 목재상 화재_di-bond aluminium core_100×200cm_2012

나는 작업을 통해서, 우리가 현실을 얼마나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지,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는지에 대해 묻고 싶다. 고통을 바라보는 시각 이면에 흐르는 감정... ■ 하태범
김상돈_불광동 토템–면접_2012

불광동 토템 ● 일상의 비루한 오브제로 토템을 만들어 서민생활의 비루함을 타자화하고 시적으로 미화하거나 종교적으로 신성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너무 싱겁고 단순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복잡한 현실과 동떨어진 작품에 대한 야망이 만드는 환상일 뿐이다. ● 토템시리즈는 예전에 거리에서 마주친 얼음덩어리나 삼각돌, 자갈 벽 등을 찍은 사진 시리즈 '장미의 섬'과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들은 미와 추의 위계질서에 대항해 추를 미로 승화시키려는 미학적 전복을 의도한 것도 아니었고, "서민"에 대한 계급적 이해에서 감히 서민생활을 현실주의적으로 접근하려는 시도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미천한 미물에서 도道를 깨치는 선불교적 시도는 더욱 아니었다. ● 나는 재개발의 폐허더미를 목격하여 폭로하거나, 개발의 뒤켠에 살아남은 잔해들에 인도주의적인 동정과 연민을 불러일으켜 현실문제를 선동하는 사진에는 관심이 없다. - 현실을 정해진 사진구도 안에 집어넣어 관람객으로 하여금 오히려 순정주의 혹은 타자화를 불러일으키는 오류를 만들어 낼 수 있다. ● 나는 오히려 대상 뒤에 숨어있으나 보이지 않는 거대한 기억, 구조, 역사 - 나는 이것을 "비밀스런 폭력 혹은 음모"라 부른다 - 가 감지될 때, 모종의 공포스러운 숭고미와 장엄미, 그리고 관능미를 느낀다. 사실 나는 이 대상들에서 어느 포르노그래피 보다 색끈한 애욕과 에로틱스, 그리고 환희를 느낀다. 일종의 타나토스(죽음)에 가깝다. 예컨대 나는 서낭당에서 민초들의 집단적 애환과 카타르시스를 읽고, 공동체의 구심체로서의 사회적 기능을 분석하기보다, 개개인의 맹렬한 욕망과 기운들이 얽히고설킨 카니발과 굿판을 연상하는 식이다. 그렇다면 나는 주로 어떤 대상의 사연에 매료되는가. 그것은 국가와 사회, 제도가 규정하는 집단적 가치관(실용주의, 기능주의, 환금만능주의, 공공의 도덕, 윤리, 평가 등)의 기준에서 나는 부적절하고 무능하다. 제외되는 존재들, 경계와 경계 사이의 중간지대에 낀 이방존재들, 불온한 존재들, 비공식적 존재들, 사회적 소수자들, 하위주체들의 사연이 드러내는 기운생동과 정서, 생활력 그리고 치열한 분노에 매료된다. 그것은 생물일 수 도 있고 무생물일 수 도 있다. ■ 김상돈
한경우_Green House_나무, 페인트, 와이어_가변설치_2009

한경우의 작업은 사람의 시점과 관점에 대한 연구에서 비롯되어 모든 사실은 상대적이라는 개념에서 출발한다. 사람은 평생에 걸쳐 학습되어진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같은 사실을 두명 이상이 바라본다면 두개 이상의 관점이 생겨나고 그것은 절대로 서로 같을 수 없다. 모두가 서로 보고 싶은 사실을 볼 뿐이다. 인간은 세상을 지각하는 많은 방법중에 많은 부분을 시각에 의존하고 있고 인간의 관점이 구축되는 과정 또한 시각적인 부분의 영향이 가장 크다. 이렇듯 본인의 작업에서 인간의 '본다' 라는 행위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간의 보고 읽는 행위가 얼마나 객관성을 유지하기가 힘든가를 보여주고 현상의 실체를 보지 못하고 그것을 주관적으로 해석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작업을 통해 말한다. ■ 한경우
김용관_샘플스페이스_종이박스_가변설치_2012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에는 언제나 원근이 적용된다. 세상의 수많은 결과물은 결코 필연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앞과 뒤의 구분이 명확하며 그것은 마치 당위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인다. 나는 이러한 수직적 구조에 의문을 가지며 가치를 수평으로 재배열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대개의 것이 마주하고 있는 것과 대칭을 이루지만 서로 대립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가운데 그것들이 함께 서있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그것들은 서로를 마주하는 방식이 아닌 하나의 공간에서 하나의 물건이 되어 나선의 형태를 띠고 있다. 나는 이 물건을 벽돌로 삼아 당위가 아닌 임의의 결합으로 세워지는 구조를 만들고 싶었다. 이번 전시의 키워드인 Sample Space(표본공간)는 실험 또는 임의의 시도가 산출 가능한 모든 경우들의 집합을 의미한다. 나는 이 공간에서 임의로 만든 작은 단위의 블록들을 무작위로 쌓으며 패턴을 찾고 그 패턴을 다시금 새로운 조합의 룰로 사용하거나, 하나의 완결된 구조를 분해하여 다른 모습으로 재구축하거나, 투시를 없애 전후(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관계를 불분명하게 하여 공간을 납작하게 만들거나, 역으로 원근을 강조함으로써 과도한 전후의 구분이 만들어내는 문제들을 왜곡된 환영으로 나타내고자 한다. 여러 가지 실험, 시도들은 동시에 병행된다. 어떠한 것은 최초의 생각과 동일하게 완결이 되고, 다른 것은 연결되어 있는 다른 가지들과 부딪히며 의도와는 다른 산물이 된다. 부산물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한데 묶여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여러 군의 작품들은 직선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으며(원인과 결과로서, 과거와 현재로서) 하나의 지도처럼 펼쳐져 있다. 이 전시는 이러한 수평적 관점, 태도가 만들어내는 몇 가지의 결과물에 대한 것이다. ■ 김용관
김영섭_정원에 대한 새로운 기억_스피커, 스피커케이블, 합판, 앰프, DVD-Player, 5~10채널 작곡_ 가변설치, 00:03:30_2008~12

우리가 머무는 일상에는 수많은 물질들로 가득하다. 이 물질들은 물질로서 존재하면서 그것들의 흔적(소리)은 일상의 모든 공간 속에 부유한다. 끊임없이 울리는 일상공간에서의 소리는 상호간의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또 하나의 비물질 형태로 확장한다. 확장되고 증식하는 일상의 다양한 소리들은 비가시적인 형태로 존재하지만 그것들은 일상을 지배한다. 사운드 설치 '정원에 대한 새로운 기억'은 형체 없이 존재하는 일상의 소리를 물질화시키고 시각화 하였다. 일상에서 채취한 미묘한 기계소음은 풀벌레, 귀뚜라미 또는 어떤 곤충의 소리로 치환된다. 이 소리들과 설치된 다량의 스피커 선이나 검은색 스피커의 새로운 조합은 식물의 뿌리나 줄기 등 여러 가지 시각적 이미지로 유도한다. 5-10채널 작곡으로 구성한 사운드는 미묘한 기계소음과 전기소리이다. 무음으로 시작하는 앞부분의 사운드와 전기소리가 시작되는 부분까지의 사운드는 일상공간에서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접하는 소리이다. 풀벌레나 귀뚜라미 또는 어떤 곤충의 울음소리를 연상케 하는 이 사운드는 CD나 DVD-Player가 작동할 때 일어나는 기계소음으로 재구성한 곡이다. 단채널로 시작한 사운드는 시간이 흐르면서 다채널로 확장하며 울리고 공간을 장악한다. 벌레나 곤충의 쉼 없는 울림은 점차 우리의 청각을 자극하고 결국에는 정체불명의 괴음으로 증폭한다. 200여개의 스피커에서 거의 동시에 울리게 연출한 이 정체불명의 괴음은 역설적이게도 평상시 우리의 청각으로는 들을 수 없는 전기소리이다. 일상의 거의 모든 공간에 존재하지만 들을 수 없는 이 전기소리는 독일의 Christina Kubisch(사운드설치작가)가 제작한 특별한 기계장비를 이용해 들을 수 있다. '정원에 대한 새로운 기억'의 후반부를 구성한 전기소리는 이 기계장비를 이용해 실제로 정원에서 녹음한 전기소리를 재구성한 사운드다. 15초간의 무음으로 시작한 사운드의 마지막 부분은 다시 15초의 무음으로 정적을 이룬다. ■ 김영섭
노진아_미(未)생물_현미경, 컴퓨터 등의 복합재료_인터렉티브 가변설치_2009

인간의 형상을 닮은 유기체적인 존재가 꿈틀거리고 있다. 마치 먼 우주 바깥에서 미지의 생물이 규칙적으로 돌고 있는 지구 등의 별들을 확대해서 봤을 때, 인간들이 하루하루 부대끼며 살고 있는 것을 발견하듯 말이다. 철가루는 변화한다. 물을 주면 빨개진다. 우리는 '산화' 한다고 배웠다. 물을 주면 빨갛게 꽃을 피우는 이끼들과 다르다고 한다. 철가루들이 스스로 움직이면 어떨까? 번식하거나 생식하면 달라질까? 시간도, 공간도, 생물/무생물의 구분도 어느순간 모호하다. 아메바는 단세포로 떠다니다 벌레처럼 움직여 모여들어 버섯처럼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기 시작하다 포자로 퍼진다. 그리고 다시 벌레처럼 꿈틀댄다. 동물인지 식물인지 단세포인지 다세포인지 아무런 구분이 없다. 단세포 생물중에는 식물처럼 광합성을 하다가 환경이 적당하지 않으면 다른 생물을 먹으며 영양을 공급하는 경우도 있다. 나에게는 동,식물의 구분도, 생물과 무생물의 구분도 모두 모호하다. 이제는 우리가 예전에 잘라놓은 경계가 허물어 질 때다. 미(微)생물인가, 미(未)생물인가. ■ 노진아
변웅필_한 사람으로서의 자화상_캔버스에 유채_180×150cm_2008

이번 전시를 통해 발표되는 변웅필의 작품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는 작가 자신의 얼굴을 모델로 그린 '한 사람으로서의 자화상'시리즈, 둘 째는 불특정한 한 사람을 개인 혹은 다수로 그린 '한 사람'시리즈. 그리고 마지막으로 불특정한 이야기가 담긴 '한 사람 혹은 두 사람'을 그린 드로잉 시리즈다. 변웅필은 그의 독일 유학시절인 2002년부터 불특정한 '한 사람'을 주제로 작업을 이어왔다. 자신의 특징을 모두 덜어내거나 감추고 인상마저 일그러트려 개인의 개성과 특징을 최대한 감춘 독특한 자화상시리즈가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작가는 이번 전시의 작품제목을 명시하지 않는다. 대작에 속하는 '한 사람으로서의 자화상'시리즈는 제목이 이미 공개된 셈이고, '한 사람 혹은 두 사람'을 그린 드로잉 시리지는 불특정한 이야기인 만큼 제목이 정해지지 않았으나 그의 최근작인 '한 사람'시리즈는 작품명을 각각 겨울아이, 해바라기, 친일파, 증언, 빵, 접대, 빈 생각, 아담 혹은 이브, 인사, 시골아이, 만남, 친구, 여행자, 미련, 계급장등으로 작품의 뒷면에 기재했다. 하지만 이 제목들은 작가 자신이 작품을 완성한 후 작품을 보고 떠오르는 단어들을 작품들 간의 구분을 위하여 편의상 제목으로 지정해 놓았을 뿐이다. 작가는 자신이 미리 정해진 제목으로부터 작품을 제작하지 않았던 것처럼 관객들에게 제목으로부터 작품을 접하는 한계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스럽게 작품을 대하기를 바란다. ■ 변웅필
이진준_인공정원_Artificial Garden_LED, Sound, Polycarbonates Site generating installation_2012 이진준은 LED빛과 이를 구현하는 장치에서 생성되는 기계음으로 연출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 - '인공정원'를 서울시립미술관의 장소에 맞게 재구성하였다.

인공정원의 사계(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날 그들은 예고도 없이찾아왔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모두 떠나버렸다. 그것은 마치 또 다시 봄이찾아 올 것이라는 희망만을 남겨둔 채 두 명의 남자 성악가는 서성거리는 사람들 틈에서 아무런 의미도 없는웅얼거림을, 봄날의 화려함이 아닌 오히려 시작이 아닌그래서 반복되는 끝이라는 느낌의 무대 여름 ● 하지만 결코 그들이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돌아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태양이 하늘 가득 퍼져가는 어느 여름 오후 마침내 기다렸다는 듯이 폭풍이 밀려오고 있다. 가느다란 하프의 선율과 함께 몰아치는 비바람 속을 헤쳐 가는 그들의 고단한 항해를 표현하고자 하였다. 가을 ● 가을을 짧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지나간 과거를 이야기한다. 마침내 역사가 되어버린 그들에 대한 기억들은 또 다시 편집되고 단순하게 새겨질 것이다. 수명의 배우들에게 각자가 기억하고 있는 다른 연극의 대사들을 순서대로 읊조리게 했고 관객은 그들이 만든 섬과 섬 사이의 무대에 놓여지길 바랬다. 하지만 연결할 수도 그리고 되돌릴 수도없다. 한번 지나간 것들은 결코돌아오지 않았다. 겨울 ● 읽는다 그리고 다시 읽는다. 춤추고 뛰어다니는 무용수가 혼자 말로 계속해서 떠들고 있다. 찬바람이 불고 눈이 쏟아지는 어느 날 새벽 마침내 그들은 나에게 말을 걸었다. 함께 가자고 ... 하지만 나는 남았고 언젠가 그들을 따라 갈 것이다. 그들의 흔적을 따라 숲 속 깊이 그리고 더 깊이 황폐해진 눈 내린 길의이미지. ■ 이진준


+++











영혼의 낚시 Geisterangeln








박경래展 / PARKSOYOUNG / 朴素永 / sound.video.installation 2012_0412 ▶ 2012_0429 / 월요일 휴관





박경래_라커호수_단채널 비디오_00:07:00_2010~11




초대일시 / 2012_0412_목요일_06:00pm

담당기획 / 김숙경(전시기획자) 협업 / 이원경(한국 전통음악가)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브레인 팩토리 BRAIN FACTORY 서울 종로구 통의동 1-6번지 Tel. +82.2.725.9520 www.brainfactory.org





올 해 개관 10년째 해를 맞이하는 비영리 전시공간 브레인 팩토리는 2012년 기획 공모전의 두 번째 전시로 독일 퀠른의 매체예술학교에서 수학하고 활동 중인 박경래의 작업 『영혼의 낚시』를 전시한다. 자연의 변화현상을 '영혼의 감각'으로 치환하는 그의 작업은 독일 남서부의 라커호수(Laacher See)를 소재로 제작되었다. 작가는 과거 화산활동으로 생성된 거대한 호수주변의 기후와 이슬점, 물의 온도와 움직임을 장시간 치밀하게 기록한 자료들을 매개로 'Sound-Video-Drawing'이 결합한 매체작품을 보여준다. 영혼에 관하여 그는 인간의 유한한 인식으로는 알 수 없는 것으로 규정하며, 이를 혼합매체가 전달하는 공감각적 현상으로 재창조한다.
박경래_영혼의 낚시 Geisterangeln展_브레인 팩토리_2012
박경래_영혼의 낚시 Geisterangeln展_브레인 팩토리_2012

박경래는 라커호수에서 1)기후의 온도, 2)온도의 변화에서 발생되는 이슬점, 3)그 이슬점이 가라앉을 때 생성되는 물의 움직임을 밤 8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12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측정하고, 수집된 많은 정보들을 토대로 7장의 드로잉악보와 시나리오를 구성한다. 악보들은 기록된 수치와 관계하는 음가에 의해 한 장에 3분씩 제작되어 총 21분의 음악으로 편집된다. 이와 같이 기술적으로 주도면밀한 제작방식은 그가 자신이 지닌 현실과 표현하고자하는 세계와의 관계를 하나의 전체현상 혹은 강하게 밀착된 분명한 것으로 규정하였음을 보여준다: 인간의 인식으로는 알 수 없는 영혼의 세계는 자연의 순환이치를 체감함으로써 알 수 있게 된다.
박경래_영혼의 낚시 Geisterangeln展_독일

그의 작업에서 기록과 측정에 의해 드러난 자연의 변화현상/ 21분의 드로잉악보는 한국 전통음악가 이원경의 서사적 구음(口音)으로 재창조된다. 박경래의 작업구조에서 구음은 센서에 의해 한시적으로 작동되나 중저음의 기본가를 유지하며 일정시간 전체공간을 에워싼다. 인간의 몸이 라커호수에서 채집한 미세한 움직임의 자연현상들을 초자아적 소리로 구현하고 있다. 구음의 초월적 세계와 더불어 "영혼의 낚시 (Geisterangeln)"에서 우리가 만나는 것은 잔잔한 라커호수의 영상과 그 앞에 놓인 길고 가느다란 궁형의 낚싯대이다. 작가는 '낚시'의 개념을 통해 기다림이라는 동양철학의 윤리적 지표를 말함과 동시에 끊임없는 반복과 시도를 거듭하는 자신의 작업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박경래_악보드로잉_총 7장_2010

자연의 변화현상을 '영혼의 감각'으로 해석하는 박경래의 작업은 그 요소들이 본래의 장소(라커호수)와 관계하나 자연과 조우하는 인간의 시선과 기다림이 공존하는 융합의 풍경으로, 그는 세대와 비교하여 다소 고답적으로 여겨질 수 있는 자신의 세계관에 관하여 발언한다. "안경유리알의 광학적 시각의 올바름이 아닌, 전 미래적 우주를 위한 내적 세계의 올바름의 방향설정(Orientierung)을 돕기 위하여"라고... ■ 김숙경
박경래_악보드로잉_총 7장_2010
박경래_악보드로잉_총 7장_2010




The Spiritual Fishing (Geisterangeln), the Resonance of Gaze and MindscapeFishing the Soul from the 'Unknown'


-----------


 








Left - Right






이동주展 / LEEDONGJU / 李東株 / painting 2012_0416 ▶ 2012_0512 / 일,공휴일 휴관




이동주_올나잇_혼합매체, 렌티큘러_51.48×100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동주 블로그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사)서울영상위원회_서울시 주최 / 충무로영상센터 오!재미동

관람시간 / 11:00am~08:00pm / 일,공휴일 휴관

충무로영상센터 오!재미동 갤러리 미술동네 OHZEMIDONG GALLERY 서울 중구 충무로4가 125번지 충무로역사내 Tel. +82.2.777.0421 www.ohzemidong.co.kr




이동주는 작년 아시아프에서 팝프라이즈를 수상하며 주목 받은 바 있다. 그림 보러 나들이하기 좋은계절 봄에 찾아온 그의 첫 전시 타이틀은 Left-Right 이다. 이름처럼 왼쪽과 오른쪽이 또 다시 위와 아래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웃음을 선사한다. 작가는 주변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익숙한 이미지인 명화를 차용하며 현재적으로 재구현한 작품을 선보인다.
이동주_작전_혼합매체, 렌티큘러_71.2×90.9cm_2011
이동주_마릴린먼로2_혼합매체, 렌티큘러_63.49×100cm_2011
이동주_콘서트_혼합매체, 렌티큘러_157.21×110cm_2011

이동주는 그림에 렌티큘러(Lenticular) 기법을 도입하여 색다른 시각예술을 선사한다. 렌티큘러란 입체사진을 만드는 기법의 하나로, 렌즈 표면의 굴절된 빛에 의한 양안시차를 이용한 것으로 평면의 이미지가 각도에 따라 움직이는 듯하게 보인다.
이동주_축배2_혼합매체, 렌티큘러_69.83×90.9cm_2011
이동주_앤조이_혼합매체, 렌티큘러_36.61×90.9cm_2012

렌티큘러 기법의 도입 외에도 작가의 작품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명화의 재구성이라는 것이다. 애써 찾아보지 않아도 이미 너무나 익숙한 이미지와 포즈들, 그 성스러운 느낌의 명화들이 그의 화폭에 재구성된다. 명화는 이미지로써 친숙하지만, 깊이 알고자 하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명화속 포즈는 하나하나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런 의미들을 대면할 때 명화는 한없이 성스럽고 무겁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이런 구도나 포즈가 명화 속에서만 존재하는가? 작가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과거의 명화 속 한 부분에 렌티큘러 기법을 이용, 기존 작품을 색다른 느낌의 화면으로 재구성함으로써 유쾌한 기분을 선사한다.
이동주_올나잇2_혼합매체, 렌티큘러_60.69×90.9cm_2012

이렇게 제작된 그의 작업은 보는 위치에 따라 옷을 입은 인물이 되기도 하고, 누드를 한 모습이 되기도 하며, 엄숙한 분위기를 한 명화의 이미지는 그 포즈 그대로 현대로 와서 어색하지 않은 일상과 문화를 표현한다. 작가가 직접 그린 이미지들을 사진화한 이 작업들은, 기존의 원화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현대의 이미지들이 새롭게 나타나 원래의 그림과 합성 배치하는 것이다. 익숙한 이미지의 차용으로 이의 변주를 통해 유쾌함을 선사하는 작품을 만나러 어느 좋은 봄날 충무로로 발걸음 하는 것도 좋겠다. ■ 충무로영상센터 오!재미동 갤러리 미술동네


------------------


 






Instant Island




이예지展 / LEEYEZEE / 李藝智 / painting.collage 2012_0409 ▶ 2012_0423



이예지_Instant Island展_the CUT 윈도우 갤러리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예지 홈페이지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24시간 관람가능

the CUT 윈도우 갤러리 서울 마포구 서교동 411-19번지 Tel. +82.2.337.1250



미디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은 정보의 조합에 뿌리내린다. 경험으로 이끌어낸 것보다 끊임없이 제공되는 정보에 익숙해진 지금, 우리는 자의적으로 정보를 선택하여 조합해낸다. 즉, 무의식의 개입으로 의식적으로 걸러진 내용들의 조합인 것이다.
이예지_Instant Island_혼합재료_65×53cm_2012

하지만 무의식의 개입은 진실과 허구의 분별을 모호하게 만들며 타의/고의적으로 제공된 정보 속에서는 개인의 의식 또한 하찮아진다. 또한 제공된 정보의 진실성조차 따질 수 없을 때, 내가 혹은 한 개인이 선택적으로 가려낸 정보의 조합은 실제라고 말할 수 없다. 이 같은 생각은 '한 개인의 삶은 어디까지가 실제이며 과연 실재 하는가?' 라는 의문을 낳았고 이 질문에서 도출해낸 아이디어 즉, '우리의 삶은 현실에 실재할 수 없다'는 개념이 본 작업의 출발점이다.
이예지_Instant Island_혼합재료_53×65cm_2012

실재하지 않는 즉, '허구와 진실이 뒤엉킨 정보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삶'은 현실에 비추어볼 때 오히려 온전한 허구에 가깝고 우리의 삶은 진실과 허구, 존재와 무 존재 사이에 끼어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같은 사실은 삶에서 느끼는 이상과 현실의 갈등과 불안정을 동반한다.
이예지_Instant Island_혼합재료_65×53cm_2012

「Instant Island」는 모호한 위치에 끼어 실재할 수 없는 현실의 삶을 섬으로 상징하여 존재하게 만드는 작업이다. 섬으로 상징한 이 곳이 유토피아인지, 현실과 흡사한 곳인지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이 공간을 존재하게 하여 모호함과 불확실성에 대한 불편과 불안정을 덜어내는 것이다. 또 작업에 등장한 임의의 인물은 누구나 대입될 수 있는 한 개인을 나타내며 웹에서 제공된 인물을 콜라쥬하는 것은 그들을 더 이상 존재의 모호함이 없는 진짜 삶 즉, 실재하는 삶으로 도피, 탈출 시키는 과정을 상징한다. ■ 이예지


-----------





서촌사인 西村舍人




2012_0418 ▶ 2012_0424



석철주_자연의 기억_캔버스에 먹, 아크릴채색_180×180cm_2010


초대일시 / 2012_0418_수요일_06:00pm

참여작가 석철주_이승하_임진수_문인상_김경희 김태균_김형주_이선정_조상지_조요숙_한철희

관람시간 / 10:00am~06:30pm

공아트스페이스 Gong ART Space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8-31번지 Tel. +82.2.730.1144 www.gongartspace.com



서촌사인(西村舍人)展 ● 그림공부를 했던 사람이면 세대를 막론하고 한 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밤잠도 설쳐 보기도하고 라면, 소주, 담배 등을 친구삼아 공동 작업실에서의 밤샘작업 으로 회자되는 치열한 학업기를 거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지난 추억은 다 아름답다고 했던가... ● 어찌어찌하다보니 70년대 말에서 80년 초에 이십평 남짓 한 작업실에서 삐걱대는 이젤을 맞대고 선후배로 만나 그림공부를 하던 화우들이 삼십년 세월을 뒤로 한 채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이승하_山高水長_혼합재료_136×138cm_2011

오랬만에 만나 그 시절 얘길 나누던 중 "전시나 한번 하던지..."라는 말이 씨가 되어 당시 인왕산자락 밑 정겹던 통인시장 한 모퉁이 건물에서 열심히 화판에 종이를 갈아 붙여가면서 한솥밥을 먹던 식구들이 각자의 바쁜 걸음을 잠시 멈추고 그림들을 내어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 삼십년의 세월이 어디로 다 흘러갔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겉보기에는 엉근 회색 머리와 주름 충만한 얼굴로 만났지만 말투도 표정도 그때 그대로인 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가끔씩 사다리타기로 사먹던 새끼손가락만한 통인시장 볶음떡볶기 처럼 말이죠.
임진수_장수대_수묵담채_15.5×39.5cm_2011

각자의 길 이래봐야 모두 현재 모교나 타 대학에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각자의 그림세상만은 지나온 세월만큼이나 속절없이 변해있습니다. ● 그때 그 시절엔 선후배를 불문하고 같은 타이틀, 같은 체급 이었던 거 같았었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그랬던 건지, 우린 우연치 않게도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자리에서 똑같은 차림표의 인사동 부산식당에 모여서 생태찌개에 막걸리 잔을 기울이면서 이번전시를 하기로 정했습니다. ● 이번전시의 또 하나의 의미를 찾는다면 대학원 미술학부 동양화 새내기후배들과 같은 공간에서 마주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화단에 첫발을 딛는 새싹들과 그들의 행보를 흐믓하게 바라보며 아주 오래전 그 길을 걸어왔던 선배들이 한자리에서 그림으로 만나는 장, 그 들과의 사이엔 한 세대라고 일컫는 30년 가까운 벅차기까지 한 학번차이가 나지만 동병상련이랄까,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공감대 자체로도 여간 맘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문인상_생성-律_캔버스에 채묵_290×450cm_2012

이 들 또한 지난해 대학원 미술화과 동양화 석사과정을 모두마치고 논문만 남겨놓고 있는 7명의 촉망받는 신진 작가군 으로 모두 하나같이 독특한 개성 있는 작업으로 무장 하고 있으며 사제의 관계에서 미술계 후배로서의 자리매김이 충분하고, 그야말로 청출어람의 표본을 보여 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당당한 후배들과의 아름다운 만남이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이 전시를 효시로 장차 어떤 방법으로도 이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조상지_조요숙

그렇다고 여기의 소수가 졸업생모두를 대변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어서 약간은 형식적이고 상징적 의미로서 폄하될지언정 나름 소중한 인연으로 여기고 싶은 마음입니다. ● 얼핏 보기엔 당연하고 쉬울 수 있는 전시 같아도 의미에 훼손 없이 제대로 판을 짜기에는 막상 모이기 힘든 조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뜻이 있어도 행하지 않는다면 그 결과가 어떻든 어떤 작은 인연조차 기대할 수 는 없는 법이니까요.
김경희_김태균_한철희

가혹했던 동장군도 저만치 물러가고 새 학기에 분주한 따뜻한 봄날, 뜻있는 전시를 기획해준 석철주 선배님과 그 취지에 동참해 준 모든 동문여러분들께 감사드리며, 우리의 소박한 뜻에 흔쾌히 공간을 내어주신 "공아트스페이스"공상구대표님께 감사드립니다. ■ 임진수
김형주_이선정


西村이란 ● 경복궁서쪽이며 인왕산의 동쪽에 분포한 유서 깊은 마을로 ,北村이 양반 사대부들의 동네였다면 이곳은 중인이하의 서민들이 살던 인간냄새 물씬 배어나는 소박한 동네입니다. 청전 이상범 ,남정 박노수, 이중섭 등의 걸출한 화가들의 작업실이있었고 현재에도 통인시장 주변으로 많은 예술가들이 창작의 산실을 꾸려가고 있는 유난히 한옥이 많은 동네를 말합니다.

 

 

---------

 

 



숨ː표 the breathing marks




2012_0418 ▶ 2012_0424






초대일시 / 2012_0418_수요일_06:00pm

참여작가 강선구_박은선_안경하 오수연_이지향_조수연_차경화

후원/협찬/주최/기획 / 조각그룹 飛

관람시간 / 10:00am~09:00pm / 일요일_10:00am~07:00pm / 4월 24일_10:00am~01:00pm

광화랑 GWANG GALLERY_sejong center 서울 종로구 세종로 81-3번지 5호선 광화문역 지하도 안 Tel. +82.2.399.1111 www.sejongpac.or.kr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의 화두 중 하나는 '느림'이 됐다. 외향적이고 상향적인 가치, 속도와 성장의 가치에 반하는 느림의 가치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제는 일상용어가 돼버린 '웰빙'도 이 느림의 미학에 토대를 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여전히 이 세상은 그 어느 때 보다도 빠르게 달려간다. 세상이 달려간다면 나또한 열심히 달려야 하는가. ● 이 전시는 속도를 기준으로 양분된 어느 가치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달리는 와중에 잠깐씩이지만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린 깊은 숨을 쉬어가는 '숨표'의 가치를 말하는 것이다. 악기를 연주하다가 만나는 숨표는, 쉼표-온전히 쉴 수 있는, 박자로 인정되는 쉼-과 달리 쉼표가 없는 부분에서 잠깐씩 쉬는 숨을 의미한다. 짧은 숨이지만 적절한 곳에서 곡의 흐름이 끊이지 않도록 빠르게 쉬어야하는, 완곡을 연주하는데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요소인 것이다. 어느 시의 한 구절처럼 달려가는 눈은 놓치는 게 많다. 행동과 행동 사이의 짧은 틈, 멈춤. 이는 보고 들은 것이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의지해 섣부른 결정을 내리기보다 또 다른 선택의 기회를 주는 안전장치일 수도 있다. 이러한 짧은 멈춤에서 미래를 향한 희망 보다 오늘의 나를 향한 질문들이 보일지 모른다. ● 일곱명의 작가들은, 평생 연주하는 인생이 Andante든 Allegro든 끈임없이 반복해야만 하는 짧은 '숨'의 순간들에 주목하고 있다. 그 순간들에서 마주치는 삶의 파편들을 진중한 시선으로 담아내며, 하루온종일 많은 사람들과 수많은 차량들이 빠르고 혼잡하게 교차하는 광화문 한복판에서 잠깐의 멈춤을 제안한다. ● 쓸모를 잃고 버려진 나무를 소재로 하여 지속적으로 작업해온 차경화는 컴퓨터수치제어로 재단되고 남은 나무조각들을 조합하여 새로운 나무숲을 만든다. 본래 재단의 목적(이었던 형태)가 아닌 그 외의 세계와 가치에 주목하는 것이다. 또 다른 방식으로 틀 안의 숲, 틀을 통해 바라보는 숲을 재현하는 박은선의 작품 Walking in the woods는 빠르게 움직이는 도시 속에 치유의 공간으로 자연을 제시한다.
차경화_나무바람뿌리_56×62×5cm_2012

"'빨리빨리'를 외치는, 삶의 전투 안에 서있는 나를 멈춰 세워본다. 느린 것을 게으른 것이라 생각하며, '빨리빨리'를 부추기며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주변의 느림이 선사하는 삶의 아름다움에 공감했던 것은 언제였던가? ● 기계를 통해 쓸모 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이 기계의 빠른 리듬에 맞춰 구분되고, 순식간에 기계 밑으로 쌓여 버려진 나무― 어떤 시선도 받지 못한 채 순식간에 쓰레기로 몰아세워지는 버려진 나무― 조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이에 취해진 조각을 덜어내고 남아 버려진 앙상한 나무 조각 들을 다시 모으고 보듬으며 새로운 나무숲은 만들어진다. 나무사이(間)로 보여지는 풍경은 더 없이 풍성한 숲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나무와 나와의 사이(交)를 통해 나의 존재에 대한 반추의 시간으로 재탄생된다." (작가노트)
박은선_The woods_아크릴에 디지털 프린트_각 28×40cm_2011

"사람들은 도시에 살지만 항상 자연에서 살기를 갈망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행을 통해 도시에서 얻어진 피로를 자연에서 치유한다. 하지만 여행이란 시간적으로 항상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여행을 하며 담아온 산의 모습을 보여주므로 관객들로 하여금 현재 도시에 있지만 여행 중에 있다는 느낌을 가지고 작품들을 보며 각자 가지고 있는 문제를 치유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희망한다." (작가노트) ● 상처와 치유를 화두로 하는 이지향은 본인이 살고 있는 집에서 발견되는 흠집들과 본인의 몸에 새겨진, 몇 차례의 수술과 자잘한 상처의 흉터들을 서로 바라보듯이 제시한다. 그의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겉으로 보여지는 '성취한 가치'보다는 그 이면의 '상처와 흉터'에 대한 기록인 것이다. 이지향의 작업이 결국 시간의 기록이며 상처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치유의 방법인 것이라면, '기록'의 행위자체가 작가 본인에게 '숨표'가 되는 경우도 있다. 안경하의 작업방식이 그러한데, 그의 드로잉에서 보여지는 사람들의 이미지는 순간의 기록이며 상상의 산물이다. 대상을 바라보고 고유의 방식으로 기록하는 일련의 작업들은 속도와 망각에 탐닉하는 시대에 '가만히 응시하기'를 권유하는 것 같다.
이지향_증거 - 나 그리고 우리집_디지털 프린트_각 24×30cm_2010

"잘 허둥대는 나에게는 크고 작은 상처들이 늘 붙어 다닌다. 그리고 몇 번의 수술. 내가 살아가는 날이 거듭될수록 내 몸의 흉터들도 하나 둘 늘어갈 것이다. 시간은 그렇게 기록되어 증거처럼 남는다. ● 살고 있는 집에서 여러 흠집들을 발견하며 나와 내가 머물고 있는 공간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다. 기억과 시간은 때론 이기적으로 흔적을 남기지만 나와 나의 공간은 작다고 무시하지도, 크다고 동정하지도 않으며 서로의 상처를 바라본다. 그것은 한 가지 기억에 머무르지 않을 수 있는 작은 용기가 된다." (작가노트)
안경하_myth-drawing 209~212_한지에 먹_각 135×35cm_2011_부분

"이번 작업은 '나라는 틀 안에서 맴도는 자신에게 더 안전한 숨을 곳을 찾는 것인지, 그 틀을 벗어나 자유를 찾으려는 것인지 알 수 없음에 대한 질문이며, 꿈을 꾸며 자유로운 세계로 나아가려하면 할수록 더욱 현실에 묶이게 되는 이유 대한 질문이다.'" (작가노트)
조수연_bling-bling ; 욕망의 변주곡_혼합재료_각 33×24cm_2012

'bling-bling'한 것들을 무차별적으로 혹은 낯설게 나열하고 변질시키는 조수연의 작업 역시 소비와 소유의 끊임없는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결국 무엇을 위함인가라는 근본적인 삶의 질문들과 마주하게 한다. ● "현대 사회에서 남을 의식하면서 욕망은 더욱 부풀려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는 욕망과 일치한다. 그러나 과연 남들보다 값비싼 명품들을 성취하는 순간 우리의 욕망은 채워지는 것일까? 그것은 또 다른 욕망을 부르게 되고, 도대체 그 끝은 어딘지 모르겠다. 욕망의 완전한 충족은 없는 듯 하다. 그래도 여전히 이 시대에는 블링블링한 패션을 좋아하고, 블링블링한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 나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명품 이미지들…그것들은 무차별하거나 혹은 낯설게 나열되고, 또는 본연의 색이 변화되거나 그 위에 새로운 표면이 덮여짐으로써 원래의 의미는 변질되어버린다. 그럼으로써 현대인의 사치와 끝없는 욕망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작가노트)
강선구_portrait-isolatoⅤ_캔버스에 디지털프린트, 실_125×110cm_2012

"자발적 고립자 이거나 열정적 관찰자(fláneur) 군중의 중심부에, 밀물과 썰물 사이에, 일시와 무한의 한가운데 집을 짓는, 불확정의 가치로 채워진 세계로 침잠하는 희미한 사람들." (작가노트) ● 한편 강선구가 만들어내는 초상은 불분명하고 모호하게 제시된다. 확정적 가치를 기대하는 세상과 형식적 관계맺기를 강요하는 많은 이들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킨 이 '자발적 고립자'는 세상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숨'의 공간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간 인물일지 모른다.
오수연_바라보다-작고 작은 사람들_브론즈_가변설치_2012

"난 작은 사람들을 나열한다. 작은 사람들은 나의 모습이며 내 주변인이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작고 힘없는 존재들이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한걸음 떨어져 바라보면 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그 느낌을 만들려고 한다. 작고 작고 작은 사람들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작가노트) ● 오수연의 '작고 작은 사람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나의 모습이며 내 주변인들이다. 바라보기의 관점을 달리할 때 세상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성공과 좌절, 진보와 뒤처짐, 기쁨과 슬픔도 군상 안에 묻혀 그저 삶으로 보일뿐이다. 그렇다면 잠시 멈추어 다른 시점에서 내 삶의 모양새를 바라보고, 지금 나에게 던져야 하는 질문들에 답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이 작업들이 그런 '숨표'같은 역할을 하길 기대해본다. ■ 조각그룹 飛



modified at 2012.04.17 22:15:48 by zabel
2012.04.12 01:24:00 / Good : 411 + Good

zabel

  • 작성시각: 2012.04.17 20:51:18
  • 총 작성한 글타래: 56 개
  • 총 작성한 댓글수: 141 개
  • 가입일: 1970/01/01
  • 포인트:
  • 레벨:
  • 오프라인 상태입니다
글 제목: 다음
수정 삭제

















幼年: 미아 일기
















서재현展 / SEOJAEHYUN / 徐宰衒 / painting 2012_0418 ▶ 2012_0502 / 일,공휴일 휴관









서재현_미아 일기_한지에 먹, 채색_117×91cm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서재현 블로그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2_0425_수요일

gallery SAPA 기획초대展

관람시간 / 10:00am~09:00pm / 토요일_10:00am~03:00pm / 일,공휴일 휴관

갤러리 사파 GALLERY SAPA 서울 서초구 서초동 1660-1 강우빌딩1층 Tel. +82.2.2278.8334 blog.naver.com/gallerysapa









幼年: 미아 일기-2012년 2월 24일 어느 겨울 ● 아이들을 바라본다. 누구에게나 유년 시절은 존재하고, 현재에도 유년을 보내는 아이들이 있다. 그들은 사회라는 울타리에서 성장하고, 순차적인 교육과정을 거쳐 어른이 되거나 귀속되어 간다. 아이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은 기억하기로 '경쟁하는 법'을 배워 나가고, 오로지 그 '틀' 안에서 이기는 싸움을 계속할 뿐이다. 어린 나이의 아이들이 받아들이기에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은 너무나 무겁게 느껴진다. 또 그렇게 하면 어른이 되고 행복해지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그 가운데 아이다운 모습의 아이들은 없고 방황하는 길 잃은 아이들이 서성인다.
서재현_미아 일기_한지에 먹, 채색_117×91cm_2012
서재현_미아 일기_한지에 먹, 채색_117×91cm_2012

2012년 3월 4일 ● 아이들은 어른이 되기 위해 순종(順從)의 삶을 살아야 한다. '순종'이란 부모도, 종교도 아닌 '울타리'를 위한 삶이다. 그 안에서 벗어나서도 안 되며, 낙오되어서도 안 된다.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존재에 의해 사육되는 느낌이다. 그것은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진 종교 그 이상의 치명적인 장벽이다. 그 안에서 꿈과 행복에 관한 이상은 현실 앞에 가로막히고 점점 익숙해져 간다. 그리고 만족하게 된다.
서재현_미아 일기_한지에 먹, 채색_100×80cm_2012
서재현_미아 일기_한지에 먹, 채색_91×73cm_2012

2012년 3월 14일 어느 봄날 ● 아이들은 어느덧 이 느낌에 익숙해져 간다. 이기기 위한 욕심도 생겨나고 이러한 생활에도 익숙해져 간다. 약육강식의 야생에서는 살아남기 위해서 맹수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광기(狂氣)가 내 안에 원래 존재하였는지, 아니면 이미 물들어 생겨난 건지는 모른다. 하지만 마음 한켠에 왠지 모를 답답함이 남아있다. 그것이 왜 이리 혼란스러운지는 알 길이 없고, 아이로서 감당하기에 어른이 되는 과정은 생각할 여유조차 주지 않는다. 다만 조금씩, 조금씩 목적 없는 분노와 원망만이 생겨난다. 이 모습이 좁은 틈을 서성이는 들고양이와 같아 보인다.
서재현_미아 일기_한지에 먹, 채색_90×90cm_2012
서재현_미아 일기_한지에 먹, 채색_90×90cm_2012

2012년 3월 24일 날씨흐림 ● 아이들은 바란다. 어른이 되었을 때 마치 현재의 억압을 보상 받기 위하는 듯 참아내며 살아간다. 그러한 인내의 과정 뒤에 정말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이는 보편적으로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성장통과 같이 자라면서 겪는 내적 통증과 같다. 하지만 이를 치유해줄 곳은 없다. 치열하게 부딪히고 살아남으며 겪어야 하는 우리의 현실이다. 아이들에게는 선택권이 없으며 도태되지 않기 위해 빠른 대열에 합류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희망고문 속에 꿈은 변질된 욕망으로 나타나고 점차 성인에 가까워진다. 길들고 때 묻어 사회적 맹수가 되는 것이 어린 시절 바라던 꿈은 아니다. 바로 낭랑한 청춘에 잃어버린 자유와 정체성을 찾길 바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길 잃은 미아와 같은 모습은 현대 우리 사회의 모습이며, 지켜나가야 할 우리 아이들의 자화상이다. ■ 서재현


--------













시골길












문영미展 / MOONYOUNGMI / 文英美 / painting 2012_0418 ▶ 2012_0429







문영미_노란문_캔버스에 유채_45.5×53cm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문영미 블로그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갤러리 도올 기획공모展

관람시간 / 월~토요일_10:30am~06:30pm / 일,공휴일_11:30am~06:30pm

갤러리 도올 GALLERY DOLL 서울 종로구 삼청로 87 Tel. +83.2.739.1405 www.gallerydoll.com







건축물을 바라보는 시선 ● 도시이건 도외지이든 사람이 사는 곳에는 건축물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 건축물은 그것의 목적과 용도에 의해 치밀한 계획과 대단한 자본이 들어가는 뛰어난 형식미를 지니고 시대를 대표하거나 지역을 대표하는 상징이 될 때도 있고 그 반대로 개인의 필요에 의해 소박하고 최소한의 기능만을 만족하는 건축물 또한 있기 마련이다. 한국사회에서는 전쟁 후의 빠른 경제성장과 이에 응답이라도 하듯 빠른 속도로 계획된 도시와 자본집약적이고 일방적인 구성과 형태의 건축물들이 도시 전반의 경관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현재의 도시를 대표하는 위치적, 시간적 대표성을 지니고 있고 시간이 지난 후에는 이러한 모습으로 기록되어 있을 것이다. 작가의 시선은 교과서에서 보았을 법한 경제 성장을 대표하는 랜드마크에서 벗어난, 철저한 계획과 자본집약적인 건축물의 정반대 입장에 있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에 의해 변형된 건축물의 상태에 주목한다.
문영미_대용식당_캔버스에 유채_30×30cm_2012
문영미_두개의 지붕_캔버스에 유채_30×30cm_2012

어쩔 수 없음에 대해 이야기하다 ● 우리가 대부분의 일상을 집, 직장 혹은 상업공간에서 보내고 있다면, 어떠한 경우에는 모든 욕구와 필요가 만족되는 경우도 드물게 있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그것은 사용자가 욕심이 없는 소박한 사람이거나 만족하지 못하다가 금새 적응을 했거나 경제적 요건에 의해 현재의 상태를 인정하고 공간을 사용하는 경우와 같다. 물론 모든 것을 만족스럽게 즐기며 사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작가는 이러한 건축물 혹은 인간이 만들어 내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간의 관계에서 주목하는 것은 '적당히 포기함'과 '현재의 상황을 개선' 하려는 개인 혹은 인간의 노력이 만들어 놓은 흔적의 쌓여짐이다.
문영미_낚시터_캔버스에 유채_30×30cm_2012
문영미_버스정류장_캔버스에 유채_53×65.1cm_2011
문영미_그리운바다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10
문영미_4월_캔버스에 유채_45.2×45.2cm_2011

사회에 속한 인간의 흔적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 ● 작품「대용식당, 2012」에서 사용자의 필요에 의해 샌드위치판넬이 사용된 2층과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원래의 옥상의 난간에 자간이 매우 어색하게 그려진 간판의 글씨라든가. 작품 「버스정류장, 2011」에서 정부 혹은 공공기간이 표준으로 정해놓은 버스정류장의 현실적인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누군가 큰 마음을 먹고 가져다 놓은 나무의자 등을 살펴보면 그러한 과거의 사건이 일어난 개인 혹은 집단적 고민의 상황이 잘 드러난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이 처한 상황과 동시에 그 인간(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의 현실적 환경의 영향과 인간의 욕망 간의 다툼과 화해의 결과이며 작가는 이렇듯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이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건축물에 흔적을 남기고 그것이 쌓인 상태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과장되지 않은 표현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우리가 한 가지 더 주목해도 좋을 것은 묘사된 현상이 작가의 따뜻한 시선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그것은 한 사람의 주관적인 시선임과 동시에 현재 한국사회가 어떠한 과정을 통해 여기까지 왔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사실의 객관적인 묘사이기도 하다. ■ 갤러리 도올


-----------














SOMEWHERE IN BETWEEN










강지만展 / KANGJIMAN / 姜智晩 / painting.sculpture 2012_0420 ▶ 2012_0505






강지만_Encounter_pigmented and acrylic on crushed rock on Korean paper_160×160cm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91006h | 강지만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2_0420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09:00am~07:00pm / 주말,공휴일_10:00am~06:00pm

박여숙화랑 PARKRYUSOOK GALLERY 서울 강남구 청담동 118-17번지 네이처포엠 306호 Tel. +82.2.549.7575 www.parkryusookgallery.com






박여숙화랑은 오는 4월 20일부터 강지만 개인전 'Somewhere in between' 전을 개최한다. 현실적 불만이 없는 이상세계, '유토피아'에 대한 갈망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갈구하는 그런 곳을 말한다. 이번 전시의 주제인 Somewhere in between은 작가 강지만이 자신의 작품이 그만의 이상세계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던 것에 대한 회의로부터 시작한다. 어쩌면 우리가 원하는 이상세계는 그곳은 도달할 수 없기에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는 우리에게 그의 현실적 제한요소 즉, 우리가 모두 처한 삶의 부정적인 요소들과 그가 꿈꾸는 이상향 사이에서 그가 바라던 곳으로의 지표 찾기를 제시하는 것이다. 꿈속에서 꿈을 꾸며 사는 우리의 인생사가 작가의 현실과 이상향의 중간쯤이라 일컫는 그곳이 바로 Somewhere in between이며 이에 대한 작가의 경험, 고뇌, 욕망, 회의, 희망을 그의 이번 전시 그의 작품 속에 고스란히 담아내게 되었다.
강지만_Coming home_pigmented and acrylic on crushed rock on Korean paper_150×150cm_2011

빨간 머리 휘날리는 그의 작품 속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얼큰이 이다. 어른스러운 표정의 얼굴 생김새에 어린아이의 몸을 가진, 그의 작품마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특징이다. 얼큰이의 탄생 배경은, 경쟁으로 지쳐가는 허무감과 소외감, 이 때문인 스트레스로 머리만 커져 버린 현대인의 표상인 얼큰이를 통해 작가가 표현하고 싶은 현실적 삶에 대한 고백적 메시지에서 온다. 이러한 우리 세대의 자화상이 강지만 작가 그만의 긍정 에너지로 전환해 그 어떤 딱딱한 주제의 작품이라도 대면하는 순간 웃음을 자아내게 되도록 캐릭터적 필터링 과정을 거쳐 극단적 낙천주의의 표상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의 얼큰이 캐릭터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어쩌면 그의 캐릭터를 통한 현대인에게 바치는 심심한 위로와 자아 찾기가 아닌가 싶다. 세상은 너무도 바쁘고 빠르게 돌아가며 우리는 누구나 각자의 시나리오 속에서 주인공으로서 살고 있다. 모두가 주인공인 관계로 인간의 이기심과 도덕적 해이 그리고 소통의 문제로 우리가 사는 인생사가 치열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그의 캐릭터들의 재치 넘치는 표정의 디테일과 생기 넘치는 색감은 힘든 현대인들에게 뭐니뭐니해도 아직 이 세상은 살아볼 만한 재미나고 따뜻함이 공존하는 곳이라는 격려로 어깨를 두드려주는 위안을 주는 듯하다. 강지만은 본인의 평소 생활 속의 경험 그리고 사사로이 느낀 점들 하나까지 작가 특유의 섬세함과 세련된 표현력을 통해 관람객들과 의사소통을 시도하였으며 현대인이면 누구든 느낄 수 있는 불안감, 현대사회의 불합리와 무력감을 함축적으로 표현하였으며 그 안에 그만의 특유의 해학적 유머감각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강지만의 작품에는 일종의 전통계승을 도입한 도구적 표현이 돋보인다. 돌가루를 이용한 석채화 기법은 그만의 고유한 동양화 기법의 차용을 보여준다.
강지만_Runawary_pigmented and acrylic on crushed rock on Korean paper_110×110cm_2011
강지만_Where are you_pigmented and acrylic on crushed rock on Korean paper_132×90cm_2011

우리의 현실은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부터 감는 순간까지 '왕따' 혹은 '묻지마 범죄'와 같은 사건 사고가 뉴스마다 흘러나온다. 사회는 생각보다 삭막하며 소통의 부재 속에서 어울림 속의 고립은 우리 사회의 큰 부작용으로 대두한다. 작가 강지만은 바쁘고 빠르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어떤 이들에게는 개인용 화장실 한 칸이 마음의 안정과 휴식이 될 수 있으며 또 어떤 이들에게는 스마트폰이 외로움을 달래주는 친구가 되어주는 것처럼 현실의 돌파구와 미래의 이상향으로의 나아감에서 작은 위안이 되어주는 매개체의 역할을 그의 '얼큰이'로 표현하는 것이다.
강지만_Yellow bed_pigmented and acrylic on crushed rock on Korean paper_110×110cm_2011

얼큰이이면 어떻고 뚱한 표정이면 또 어떠한가? 함께 있어도 고독한 현대인들에게 먼저 친근하게 다가와 끊임없는 애증의 관계인 현실과 인간의 이상향에 대한 삶의 길을 힘내서 나아가라고 응원해주는 그의 작품은 현대인들에게 신선한 일탈과 희망을 우리에게 거울에 비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발판임은 분명하다. 얼큰이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캐릭터들로 현대인들을 대변해 극대화된 낙천주의로 풀어낸 그만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앞으로 나아갈 이상세계를 제시하며 자기만의 행복추구뿐 아니라 함께 더불어 살아가며 현재에 충실한 것이야말로 우리 모두에게 희망적인 무릉도원임을 제시하여 준다. ■ 박여숙화랑




페이스북 : www.facebook.com/parkryusookgallery 이메일 : info@parkryusookgallery.com


------------









이호영展 / LEEHOYOUNG / 李昊英 / photography 2012_0421 ▶ 2012_0501





이호영_시공간#022_C 프린트_70×70cm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10527d | 이호영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2_0423_월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공간루 정동갤러리 SPACELOU JEONGDONG GALLERY 서울시 중구 정동 1-23번지 1층 Tel. +82.2.765.1883 www.spacelou.com





이호영- 진정한 자연의 시공간 ● 이호영은 이미 존재하는 것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스스로 물질의 표면을 연출하고 이를 사진으로 담는다. 그의 사진은 흡사 물감의 질료와 붓질의 흔적만으로 이루어진, 비대상적인 추상회화를 보는 듯 하다. 외형만 봐서는 그대로 그림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진이다. 그는 추상회화의 표면을 촬영했나? 아니다. 그는 추상회화를 떠올려주는 물질의 표면을 찍었다. 사진은 이미 존재하는 대상을 찍는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찍을 수는 없다. 사진은 레디메이드이미지다. 그런데 이 작가는 이미 존재하는 것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스스로 그런 물질의 표면을 연출하고 이를 사진으로 담았다. 물질과 함께 퍼포먼스를 한 과정, 그 결과의 어느 한 순간을 기록했다. 그렇게 해서 출현한 이미지는 물질들이 서로 섞이면서 자아내는 격렬한 혼돈의 상태이자 자연법칙에 의해, 물질의 속성에 의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자취의 기록이다. 그는 일정한 틀에 특정한 색채를 지닌 페인트를 쏟아 부었다. 그 페인트가 흘러내리고 뒤섞이면서 페인트 자체가 지닌 성질과 자연의 보이지 않는 여러 힘(시간과 중력 등)이 작용하고 충돌하는 과정이 멈춰진 어느 한 순간이 고정되었다. 페인트를 자연현상처럼 충돌시켜서 이른바 서로 대립적인 모습, 즉 혼돈 속에 생성되며 소멸되는 자연현상의 움직임을 보기 위해 이런 연출이 필요했던 것 같다.
이호영_시공간#019_C 프린트_53×110cm_2012
이호영_시공간#001_C 프린트_60×83cm_2011
이호영_시공간#002_C 프린트_60×83cm_2011
이호영_시공간#007_C 프린트_60×83cm_2012
이호영_시공간#003_C 프린트_53×110cm_2011
이호영_시공간#016_C 프린트_53×110cm_2011

사진 속에 담긴 장면은 어떤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장면이다. 그것은 구체적인 대상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여러 상황을 상상하게 해주는 한편 팽창과 분열, 터짐과 확산, 생장과 소멸 등등을 어렵지 않게 유추시키는 이미지다. 흡사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생명체 같기도 하고 우리 몸의 내부를 떠올리는 그런 이미지다. 또한 작가는 사진을 통해 우리가 보고 느낄 수 있는 진정한 자연의 시공간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 자연은 고정되고 눈으로 보면 알 수 있는 그런 자연이 아니라 긴 시간 동안 변화와 작용으로 수시로 변해가는 모습을 지닌 존재다. 자연은 사실 혼돈 덩어리다. 자연과 그 속에 갇힌 인간 역시 지속적인 변화와 작용이라는 근원적인 자연현상과 법칙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고 유동하는 것이 자연이고 생명이다. 결국 작가는 대상에 대한 본질을 담고자 하며 따라서 정적인 대상보다 동적인 대상에서 세상의 존재로서 사실적 의미를 찾고 있다. 따라서 이호영이 연출해 찍은 사진은 자신이 생각하는 자연(자연관)을 물질의 힘을 빌어 시뮬레이션 한 것이다. 특히 찰나적인 시간에 유한한 공간에서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우리의 모습, 그 우연적이며 알 수 없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다. ■ 박영택


------------






나, 내게 적힌 것




Myself: Writing-inscribed Scene展 2012_0421 ▶ 2012_0722 / 월요일 휴관





1부 초대일시 / 2012_0421_토요일_05:00pm 2012_0421 ▶ 2012_0506 참여작가 / 남정애_안세은_조혜정

2부 초대일시 / 2012_0511_금요일_05:00pm 2012_0508 ▶ 2012_0523 참여작가 / 김혜란_김홍식_허정원

3부 초대일시 / 2012_0525_금요일_05:00pm 2012_0525 ▶ 2012_0609 참여작가 / 권오신_정은아_정희경

4부 초대일시 / 2012_0706_금요일_05:00pm 2012_0706 ▶ 2012_0722 참여작가 / 김미경_김지수_이주은

주최/주관 / 스페이스 15번지 후원 / 서울문화재단_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스페이스 15번지 SPACE 15th 서울 종로구 통의동 15번지 Tel. 070.7723.0584 space15th.org



나, 내게 적힌 것, Myself : Writing-inscribed Scene ● 예술창작의 주체가 배타적으로 남성들이었다는 (은폐된)사실을 가시화하는데 있어서 게릴라 걸즈Guerrilla Girls의 저 유명한 포스터는 아무리 봐도 탁월했다. 개인 (남성)예술가로 구성된 예술계를 익명의 집단적 행동주의를 통해 침식해온 페미니스트 작가들인 게릴라 걸즈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예술가 중 여성 예술가는 3% 미만이고 83%의 누드는 여성이다 - 미국의 미술관에 들어가기 위해서라면 여성은 옷을 벗어야만 하는가?"라고 묻는 포스터를 만들어 작가는 대체로 남성이고 누드모델은 대체로 여성인 미술계의 불평등한 구조를 폭로했다. 남성과 여성의 비대칭적 관계가 미술계 안에서 예술가-주체와 대상-오브제의 구조를 통해 반복되고 있다는 인식은, 예술이 여타의 자본주의 문화 형식들처럼 남성적 환상을 위한 형식임을 입증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여성은 예술가들의 영감의 원천, 구원의 매개자, 환상의 대상으로서, 남성적 시선의 오브제로서 '거기에' 있었다. ● 여성 작가란 표현은 일단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시각적 주체의 자리에 이제 여성들이 여성으로서 들어간다는 의미로 읽힐 수 있다. 그 경우 겉보기의 당당함이나 쾌감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기존 남성적 구조인 바, '주체/대상'의 구조를 이제 여성의 자리에서 반복한다는 위험/한계를 드러내게 된다. 즉 지금껏 남성이 자행한 환상/폭력을 이제 우리도 하겠다, 로 읽히게 된다. 여성이 주체-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여성도 자신의 환상의 오브제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일 수 있고, 이는 타자의 대상화가 전제로 요구된다는 점을 외면한 채, (남성)작가가 되겠다는, 아니 남성이 되겠다는 결론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 때 여성 작가는 작가일 뿐 '여성' 작가는 아니다. 젠더 특수성은 사라져야 한다. ● 만약 여성은 비단 예술계만이 아니라 상징 질서 안에서 이미 항상 이성애자 남성에게 부여된 주체의 지위를 차지할 수 없다면, 여성은 여성에게 강요/반복되는 대상의 지위를 '구조적으로' 넘어설 수 없는 타자라면, 아니 그렇기에 주체의 권력과 폭력을 넘어선 다른 삶을 이야기할 기회를 가진 '기이한' 주체라면? ... 그렇다면 아니 그러므로 여성 작가는 오브제의 지위에 대해 다르게 사유해야 한다. 주어와 목적어, 주체와 대상,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를 오브제의 지위에서 넘어서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 이번 전시는 여성 작가들로만 구성되었다. 그러면서 그녀들에게 주어의 자리보다는 목적어의 자리, 독립적 존재의 지위보다는 관계적 삶의 지위, 초역사적 인격의 지위 보다는 역사적 한계 안에서 구체적으로 살아내는 삶의 지위를 부여하고자 했다. 그것이 『나, 내게 적힌 것 Myself : Writing-inscribed Scene』이란 전시제목이 만들어진 이유이다. 자율적이고 독립된 삶을 살지 못하는 여성의 수동성을 거꾸로 관계의 절실함, 불가피함, 어려움, 고통을 육화한 여성들의 작업의 힘으로 재배치, 긍정하고자 했다. ● 여성들에게 일상적 오브제는 대상화시킬 수 없는 자신의 일부이자 확장이고 그렇기에 그녀들의 오브제는 물화된 채 '그'의 시선에 갇혔듯이 갇히지 못하고, 그녀의 감정과 함께 흘러간다. 그것은 자신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존재하지 않는, 이미 항상 남성적인 상징 질서 안 자신들의 낮고 어둡고 쓸쓸하고 연약한 삶이 '선택한' - 수동적 적극성! - 자리이다. 여성의 오브제들은 남성의 오브제들처럼 거리를 통해 관조되는 안전한 (주체의)투사물들이 아니다. 그것은 그녀들의 존재를 지우고 욕망을 지우고 삶을 지우려는 남성적 언어 안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어떻게든 가시화하려는 여성들이 감정이입하는 '자아'의 형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거기에는 주체화를 보증하는 대상화, 객관화에의 욕망 보다는 주체화에서 밀려난 채 자리를 잃고 떠도는 여성 자아의 애가(elegy)가 들어 있다. ● 우리는 주체의 일관성, 안전함을 잃을 때, 아니 비로소 그때 슬픔과 두려움에 붙들린다. 주체는 기쁨, 행복, 확신의 자리이지 자아가 위험해져야 드러나는 관계의 절대성, 사랑의 맹목성의 자리는 아니다. 그렇기에 여성 주체는 자기를 잃으면서, 너와 겹쳐지면서, 즉 주체와 대상이 겹치는 지점에서 겨우 몸을 추스르고 말하고 쓴다. 아니 몸으로 말한다. ● 여성을 주체로, 자기를 드러내고 표현하는 주어로, 세계를 자신의 시각과 관점으로 통제하는 주인으로 설정하는 태도를 경계하면서, 본 전시는 12 명의 (여성)작가를 '여성'으로 묶었다.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라는 것이 반드시 대상으로부터의 안전한 거리를 통해 시각적 통제력을 견지하는 남성 주체가 '아닐' 수 있는 특권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여성들은 반복적 훈육을 통해서 스스로를 주체로, 그러므로 남성으로 '오인'하는 지점에서 살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 일시적으로 '여성'으로 호명된, 그것도 스스로를 '목적어'의 자리에서 재구성하려는 태도를 수용한 이들 작가들의 작업의 일관성이나 통일성은 거의 찾기 힘들다. 같은 시대를 다른 나이, 계급, 조건에 근거하여 살아가는 이 여성작가들을 '하나로' 묶은 것은 아주 우연한 '사건'이었고, 이들은 여성으로서의 자아를 동일한 문제에 근거하여 정체화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 그럼에도 여성이라는 공통성, 남성적 구조 안에서 살아간다는 유사성, 그것을 각인한 삶의 집단성에 근거하여 우리는 과감히 하나의 '제목/이름' 아래에서 일시적으로 묶일 것이다. 우리는 이번 전시를 위해 두 번에 걸쳐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고 자기 작업의 특수한 오브제들, 그것이 얼마나 일상적이고 사소한 순간의 나(me)의 반영물로서 구체화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작가가 자기 작업의 이유를 '알기'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작가의 오브제 선택에서 어떤 무의식의 작용을 인정/확인하려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실 그녀들의 오브제들에 대해 '잘' 모른다. 더구나 여성들의 욕망이 육화된 대상들은 너무 다양하고 이질적이어서 어떤 일반성을 찾아내기가 불가능하다. ● 단 그것이 일상적인, 흔한, 평범한, 사소한 오브제들이라는 점에서 그녀의 삶 속 그녀가 자주 만났던 사람들만큼이나 '친숙하고(낯설고)', '은밀하고(공개적이고)', '사적인(집단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상적 경험의 한 가운데에서 작가가 '만난' 오브제들에 주안점을 두려고 했지만, 그렇지 않은 작가들의 작업도 포함되어 있다. 강력한 규범이 지배하는 전시를 기획한 것은 아니기에, 그런 느슨한 묶음이 가능했다. 우리는 어떤 강력한 중심, 결속, 동일성을 의도하지 않았다. 단 개성 강한 작가들이 우연히 일시적으로 한 자리에서 서로를 만나고 목소리를 듣고 차이를 확인하고 공통성을 긍정하는 기회를 마련했다는 즐거움은 아주 많이 누렸다. 우리는 '앞으로'에 대해 아무런 약속도 없지만 또 만나고 이야기하고 웃고 울 것을 기대한다. 대의가 없는 만남은 불쑥 '사건'처럼, '손님'처럼 오고야 말 것이다. ● 여성들의 말은 직선적이거나 명료하지 않다. 애당초 말이 남성적 구조로 되어 있다면, 그러므로 여성의 욕망을 남성적 말에 담는다면 그것은 이미 분열과 어긋남을 포함한 것이고, 그렇기에 여성의 말은 모호하고 불투명하고, 심지어 거짓말이다. 여성의 거짓말은 참말에 비해 열등하고 나쁘지만, 욕망과 구조의 불일치를 드러내는 장치로서는 탁월한 것 아닐까.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이미지/설치/영상과 말을 병치시키는 전략을 사용하는데, 그렇다고 그녀들의 말이 곧 그녀들의 작업을 위한 유일한 설명문이나 해석이 아닌 것은 그녀들은 숨기고 정색하는데 프로들인 타자들이기 때문이다. 주저하는 말, 감추는 말, 드러내면 누가 울거나 내가 혼날지 모르는 말들, 짐짓 거짓말인척 하는 말. 너무 참말이어서 거짓말 행세를 해야 하는 말들. ... ● 우리는 결국 말을 병치시킨다. 읽으려는 자와 읽히는 자 사이의 '게임'은 관계의 열정, 관계의 수난을 끌고 간다. "사랑해!"가 아니라 "내게 사랑한다고 거짓말을 해봐!"라면서 참말을 '간구하는' 이들을 위해 우리는 전율해야 한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결국에는 '사랑'을 위한 것이기를! 목적어 나의 자리에 이미 들어와 있는 너와 나의 관계에 대한 긍정의 노래이기를! ■ 양효실
남정애_Barney_한지에 실드로잉_120×120cm_2011


예닐곱 살 때 엄마는 매일 출근하시기 전 이른 새벽 나를 억지로 깨워 앉혀 놓고 빗으로 가지런히 머리를 빗겨 팽팽하게 잡아 모아 머리카락을 땋아 주었다. 엄마가 그랬듯이 딸이 언제나 단정한 모습으로 보여 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 올 머리카락도 삐져나오기라도 하면 다시 팽팽히 내 머리카락을 잡아 모았었다. 어린 나에게 도망가고 싶을 만큼 성가시고 괴롭고 아픈 것 이지만 엄마였기 때문에 도망 갈 수도 거부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 물감 묻은 첫 실을 백지위에 내려놓을 때의 긴장감이란 언제나 그 팽팽하게 잡아 당겨지던 그 기억으로 연결 된다. 삐져나온 한 올의 머리카락이 나의 첫 실을 놓게 한다. ■ 남정애

안세은_collective memories_솔방울에 채색, 신문지에 스티커 작업_가변설치_2011


작가가 비범한, 예외적인, 이상한 사람들이라면 나는 너무 평범하고 정상적일뿐이다. 이미지도 밋밋하다. 외교관인 남편을 따라 낯선 나라에서 2-3년씩 살고 있다. 남들은 부러워들 하지만, '외국'을 제 집처럼 드나들 수 있다는 장점 하나를 뺀다면, 거의 '미친년'이 되어 살아야 한다는 어려움뿐이다. 의사, 요리사, 청소부, 가정교사, 농부, 수리공, 운전사. 나는 온갖 직업을 불사하며 살아간다. 평범한 사람들은 '취미', '사치', '우아함'으로 선망/질투하는 삶이지만 내가 느끼는 간극은 크다. 외교관 '부인'에 대한 선입견 – 파티여왕, 내조의 여왕 – 과 달리 식당 아줌마에 가까운 삶이 현실이다. 작가 안세은, 외교관 부인 Mrs. Lee의 조합은 아직도 나 스스로에게 낯설다. ● 내가 누군지, 뭐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다. 가끔은 변신 로봇처럼 척척 변신하며 (혹은 위장하며) 잘도 사는구나 싶은 게 스스로 대견하기도 하지만, 주로 멀미가 날 정도로 정신없이 이쪽과 저쪽을 오가며 흔들린다. ■ 안세은

조혜정_unfinished work_003_2011


유관순은 식민지의 수난과 저항을 대표하는 여성 영웅이지만, 침탈당한 신체의 주인으로서의 그녀의 목소리는 정작 찾을 수 없다. 주체로서 여겨지기보다는 타자로서 대상화되며 저항은 사라지고 가부장적인 권위와 식민주의적 통제가 여성의 위치를 재구성한다. 왜 우리는 '유관순 누나'를 잘 알고 있다고 믿을까? 그것은 어떤 주체 구성의 기획이 시대를 넘어 무수히 반복되면서 우리 몸에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역사를 지탱하는 분화되지 않은 기원적 공간에 관한 탈식민 여성주의적인 독해는 억압의 조제 과정을 검토함으로써 여성 의식, 여성 존재, 좋은 여성, 좋은 여성의 욕망을 구축하려는 대항 내러티브이다. 나는 가부장제와 제국주의 사이에서 미결정적인 존재로 진술되어 남근중심적 전통에 이용당하는 유관순이라는 우상의 치부를 드러내는 한편 그 주체가 가진 정확하고 윤리적인 이질성에 접근하려는 중이다. ■ 조혜정

허정원_공간1505 II_캔버스에 색연필, 아크릴채색_89×130cm_2011


일상 공간은 나를 위한 공간, 내 손이 닿으면 이렇게 저렇게 바뀌고 눈을 감고 더듬어서도 알아낼 수 있는 그런 공간이다. 실내 물건들은 그 자리에 정지한 듯 멈춰 있지만, 심리적 공간에서 물건들은 사람처럼 살아서 소리를 내고 이동한다. 나는 공간 속 물건과 교감하고 어쩔 때는 꼭 나같다. ● 위에서 아래로 굽어보면서 그들을 줄을 세운다. 그들의 자리를 정해준다. 내 맘대로 이리로 저리로 움직이면서... 그들은 그런데 거기에 아무런 반응이 없다. 단지 흔적만 남기면서 사라졌다가 다시 생겨날 뿐... 나는 그들을 내려다본다. 아~~~아니다... 나의 공간에서 그들이 나를 내려다본다. 이젠 누가 누구를 쳐다보는 건지 알 수 없다. 단지 공간에 나와 그들이 함께 한다는 사실 밖에 알 수 없다. ■ 허정원

김홍식_Herstory_scene #6_부조, 스테인리스 스틸에 잉크_가변설치_2011


가톨릭 전례에 나오는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를 중첩시켰다. 성경의 어느 구절에도 나오지 않는 외전外傳에만 등장하는 여자들의 이야기. 어머니인 그녀-성모는 고통스런 형벌의 길을 가는 중의 아들과 만난다. 그의 추종자인 그녀'들' 역시 그의 고통을 지켜 볼 수밖에 없다. 그녀는 그의 피땀으로 얼룩진 얼굴을 닦아 기록하게 된다. 종국에 어머니인 그녀는 죽은 자식의 시신을 거두고 슬퍼한다는 이야기이다. 외전 속 성모의 삶을 동경하며 살던 신앙심 깊은 나의 (시)어머니 K는 일찍이 의지하던 아들을 먼저 보냈으나, 온갖 모진 풍파에도 굳건히 집안을 일으키며 신앙 속 성모의 삶을 닮으려 노력한다. 세월이 흐르고 그녀는 자식들의 평탄치 못한 삶을 지켜봐야했고, 그럴수록 점점 고집스러워지고, 자신의 삶을 보상받고 싶어하나 그렇지 못한 현실을 집에 잘못 들어온 그녀'들' 탓으로 돌린다. 그녀는 요즈음 모바일로 자신의 파란만장한 삶을 기록하고 있다. 내 결혼에 처음 들어와 각인된 그녀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직 풀어내거나 이해하거나 다가가거나 멀어지거나 사랑하거나 그렇지 못한 채 짊어지고 다니는 나의 이야기이다. ■ 김홍식

김혜란_유랑하는 표면 Strolling Surface_영상설치_가변크기_2012


부유하는 의식 속에서 펜을 들고 별 목적 없이 팔을 움직인다. 선의 궤적들이 알 수 없는 모호한 형상들을 만들어 내는 가운데 나는 또 다시 어떤 '의미 있는' 대상들을 찾는다. 순간적인 인상과 파편적 문구들이 주는 기쁨과 충격들. 미완결성과 불완전한 어떤 특징들에 대한 이끌림. 견고하지 않은 의식은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며 지속적으로 변화를 거듭하고, 색면 조각들로 채워진 화면 속에는 마치 보호색을 이용하여 숨어있다가 어느 순간 작은 몸을 드러내듯 등장하는 생명체들이 있다. 의식과 시간, 그리고 컴퓨터 속의 데이터는 모두 변화의 와중이고 움직임의 과정에 있다. 그 안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만나보자. ■ 김혜란

권오신_Time no.12_리소그라피에 혼합재료_70×100cm_2010


잔디가 부추 같다. 왜 사람들이 부추를 사먹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렇게 흔한데. 나뭇잎이 깻잎 같았다. 나뭇잎을 따 먹으면 되는 줄 알았다. 어렸을 때 나는 그랬다. 어린 시절의 나는 모든 일들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믿었었다. 사람과 동물들...그 모든 것들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나의 움직임에 따라 등장하고 사라지는 인형과도 같은 존재, 아니 인형들이라고 생각했었다. 사람들, 강아지, 자동차, 등등...그 모든 것들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세트와 도구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내 삶은 내가 주인공인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인형극 같은 것이라 믿었다. 어느 때인가 그들대로의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난 후부터는 우울해졌다. 난 더 이상 주인공이 아니었다... ● 나의 작품에서는 원숭이가 등장한다. 어렸을 때 놀러갔던 시골집은 무언가 그 집을 지키는 것을 갖고 있었다. 그게 무엇이었는지는 그런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지붕 위를 올려다 본 기억이 별로 없기 때문에... 어린 조카가 처음으로 원숭이를 그렸다. 아! 그랬구나. 원숭이였구나. 원숭이는 어느새 나의 작품 속 지붕위에 올라가 작품 속 공간을 지켜본다. 더 이상 원숭이는 지붕위에 있지는 않는다. 풍선을 타고 나의 작품 속을 여행한다. 사각형의 작품 속에서 원숭이는 주인공으로 이미지 속을 여행한다. 원숭이는 어쩌면 현실에서 도망친 나 아닐까, 요즘 드는 엉뚱한 생각이다. ■ 권오신

정은아_Your Beautiful Face_콜라그라피_100×140cm_2007


녀석이 잠들었다. 갱지에 둘둘 말아 마루 한 켠에 세워두었던 종이를 또 펼친다. 네 귀퉁이를 두툼한 사전으로 눌러두고, 녀석의 손에 닿지 않도록 통에 담아 숨겨둔 목탄을 조심스럽게 꺼내서 야간작업을 시작한다. 새벽녘 꼭 한 두 번씩 깨서 우는 녀석 때문에 지난봄부터 집에서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집중이 썩 잘 되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대안이 없다. 내가 지금 그리고 있는 것은 녀석의 장난감 조각들이다. '토르르륵' 소리를 내며 진공청소기의 흡입구로 빨려 들어간 손톱보다 작은 조각들은 먼지봉투를 교체 할 때마다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청소하다 말고 쪼그리고 앉아 뽀얀 먼지더미에서 나온 조각들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내가 이걸 한 번도 제대로 본적이 없음을 문득 깨달았다. 작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정교한 조각들을 보며 생경함과 친숙함이 묘하게 충돌하고 있음을 느낀다. 녀석이 잠든 새벽, 방으로 들어가 땀으로 범벅이 된 녀석의 이마를 쓸어주고 나왔다. 다시 엎드려 더딘 작업을 시작한다. ■ 정은아

정희경_Empreindre_메조틴트_각 10×8cm_2011


인삼, 산삼보다도 더 쓴 고등학교 삼학년 이 세상에서 대학가는 일 만큼 어려운 것이 어디 있을까 했는데…. 그 배로 살아온 시간 앞에서 나를 뒤돌아본다. 같은 목표를 가지고 출발했던 동료들은 이제 너무나 다른 형태의 삶 속에 있다. 나의 시계만이 멈춰져 있고... 배우자를 만나고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고, 양육하며 가정으로 부터 오는 행복감과 절망감으로 울고 웃는 평범한 일상에서의 이야기들은 아직 내가 가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 분명하게 나의 시계도 움직이고 있었을 텐데…. 다른 공간속에서 바라보는 시선, 편견, 생각들은 내 맘 속에 새겨진다. 그 나이가 되면서 이루어가고 사는 것의 형태…. 사회의 관념들을…. 푸르고 드높은 하늘에 구름의 이름으로 수를 놓아... ■ 정희경

김미경_달 Moon_혼합재료(메조, 우레탄, 유화)_97×145cm_2009


그림은 집과 같습니다. 제 희망목록중 하나는 집을 가지는 것입니다. 제 집은 저의 내면입니다. 제가 숨을 수 있는 곳, 안식처, 사랑이, 엄마가 있는 곳... 그것을 달라고 달에게 빌었습니다. 가질 수 없음을 내 진작 알았지만, 달에게 빌었습니다. 달이... 집이 되어 버렸습니다. 저 달은 저에겐 내면이며 상처입니다. 아닙니다. 안식처입니다. 계절이 왔었습니다. 계절들이 지나갔습니다. 저는 조금은 깊어졌으며, 차가워졌습니다. 다시 달 곁으로... 집으로 가봐야겠습니다. 달이 절 차갑게 가두든지 말든지 달 옆에 누워야겠습니다. ■ 김미경

김지수_Daily drawing_2011


나는 억압의 반복과 해방의 가능성 사이에서 진동하는 일상의 양가성에 주목한다. 나의 일상은 일견 무력감과 긴장의 연속이고, 동시에 위대한 창조의 근원이다. 일상은 일견 권력이 부재한 친밀함의 터전이지만 동시에 일상은 보이지 않는 힘들에 의해 움직인다. 일상은 개인의 심리적 구조를 반영하면서 동시에 사회적이고 집단적인 권력이 행사되는 공적 영역이다. 이러한 일상의 이중성을 포착하고 드러내기 위해 나는 작업한다. ● 나의 작업에서 일상의 이중적 국면인 바 억압과 해방을 구체화하는 행동이 '반복'이다. 반복은 일상의 '본성'이고, 반복을 반복하는 중에 어떤 비일상적인 가능성, 일상을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등장한다. 나는 삶을 반복하는 작업에서 똑같은 것은 사실 하나도 없는 삶의 에너지, 가능성을 발견한다. 매번 같은 방식으로 긋지만 매번 다르게 차이나는 선들은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은 물론, 자연과 생명의 차원으로 확대된다. 나의 작품에서 반복적인 선들은 특정한 종의 재현이라기보다는 미지의 생명체, 또는 생명현상의 흐름으로 나타난다. ■ 김지수

이주은_Onstage-S# 숨을 품고 있는 나무_캔버스에 프린트, 레진_118×80cm_2011


나의 집에는 오래된 물건이 많다. 그냥 버려둔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버리려하면 엄마는 절대 못 버리게 하신다. 집안 곳곳에 쌓여 있는 이 쓸모없는 물건들은 용도를 잃은 채 늘 그 자리에 있다. 의자 하나가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늘 그 자리에 놓여 있었다. 식구들 중 누구도 그 의자에 앉지 않았지만, 의자는 마치 뿌리를 내린 듯 거기에 놓여있다. 점점 그 뿌리가 깊이 드리워지고 있는 듯 보인다. 그 의자는 엄마의 반짝거리던 젊은 시절부터 안타까움과 애달픔의 시간까지 엄마와 함께한 물건이다. 긴 시간 깊이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의자의 아래 땅속을 보고 싶은 호기심이 인다. 깊은 땅 속에는 어떤 울림이 있을지 의자가 서 있는 곳을 들여다보려한다. ■ 이주은



--------------

 



...


김현수展 / KIMHYUNSOO / 金炫秀 / painting 2012_0424 ▶ 2012_0503


김현수_공작부인의 초상_포토몽타주, 혼합재료_80×72cm_2011

초대일시 / 2012_0424_화요일_06:00pm

관람시간 / 월~토요일_11:00pm~06:00pm / 일요일_11:00pm~05:00pm

갤러리 담 GALLERY DAM 서울 종로구 안국동 7-1번지 Tel. +82.2.738.2745 www.gallerydam.com


꽤 오랜 시간, 자연에서 얻은 에너지를 형상화하려는 나에게 자연은 응시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나는 언어를 모르는 이방인처럼 소외된 관찰자의 눈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연에 대한 동경은 기억 속에서 관념화된, 익숙하지만 몽환적인 풍경화로 그려졌다. ● 나무를 빌어 바람이 내는 소리, 비온 뒤 올라오는 흙냄새 등 나는 자연이 뿜어내는 모든 감각적 기호에서 그들의 언어를 알아내고자 했었다. 그러나 찰나적으로만 보이는, 그 비밀스런 언어의 문을 결국엔 열지 못했다고 씁쓸해 했다. 그것은 자연을 그리워하면서도 철저히 나와는 분리된 '타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벌어진 짝사랑의 모습이다.
김현수_바람 없는 날에_포토몽타주, 혼합재료_75×55cm_2012
김현수_겨울아침에_포토몽타주, 혼합재료_75×55cm_2012

하지만 자연과 인간을 정확히 구분하는 이분법적 접근을 살며시 내려놓은 순간, 나를 둘러싼 실재는 모호해지지만 역설적으로 숨통이 트이는 것을 느낀다. ● 나 자신도 '결정지어진 주체'가 아니라 순간순간, 끊임없이 변하고 있고, 나무도 그렇고 풀도 그렇다. 그 사이사이 뭐라고 딱히 정의내릴 수 없는 수많은 것들이 존재한다. ● 말할 수 없는 것들을 굳이 말하려는 대신 모호함 그 자체로 인정해줄 때 더 이상 모호하지 않다는 것 힘들게 알았다.
김현수_미네르바의 부엉이_포토몽타주, 혼합재료_120×85cm_2012
김현수_무제_포토몽타주, 혼합재료_105×75cm_2011

이제 멀리서 자연을 바라보는 대신 내 몸을 통해 지각하고 사유할 수 있는 구체적 대상과 교류하면서 자연이 일상으로 들어오도록 했다. 이는 의미 없이 부유하기 쉬운 삶의 순간들이 나와 단단히 엮이고, 그 과정에서 이름 붙일 수 없는 수많은 존재들과 만나게 해주었다.
김현수_고도를 기다리며_포토몽타주, 혼합재료_50×95cm_2011
김현수_맴맴맴..._포토몽타주, 혼합재료_73×52cm_2012

떨어진 꽃잎, 낙엽, 잘려진 나뭇가지, 벗겨진 나무껍질 등 길을 걷다 줍게 되는 이 모든 부스러기들은 서로 서로 만나고 부딪치며 작품 안에서 움직이는 삶을 갖게 된다. "아무것도 아닌" 이 작은 식물의 부스러기들을 미시적으로 들여다본 후, 그 질감과 형태를 하나의 조형요소로 보고 나는 쉽게 명명할 수 없는 이미지를 만든다. 동물이나 식물, 사람의 모습도 아닌 낯선 존재의 초상화 같은 이번 작업들은 이 일련의 과정들에 대한 조심스런 기록이다. ■ 김현수



modified at 2012.04.22 11:41:00 by zabel
2012.04.17 20:51:18 / Good : 332 + Good

zabel

  • 작성시각: 2012.04.24 15:39:14
  • 총 작성한 글타래: 56 개
  • 총 작성한 댓글수: 141 개
  • 가입일: 1970/01/01
  • 포인트:
  • 레벨:
  • 오프라인 상태입니다
글 제목: 4월말
수정 삭제







재현을 넘어선 흔적






김정훈展 / KIMJUNGHOON / 金正訓 / painting 2012_0425 ▶ 2012_0501




김정훈_흔적_캔버스에 혼합재료_91×63cm_2012



초대일시 / 2012_0427_금요일_05:00pm

화봉 갤러리 초대 개인展

관람시간 / 10:00am~07:00pm

화봉 갤러리 HWABONG GALLERY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7-28번지 백상빌딩 B1 Tel. +82.2.737.0057, 1159 gallery.hwabong.com




재현을 넘어선 흔적으로의 그림 ● 김정훈은 물감이나 페인트를 이용하여 낙지가 움직인 흔적을 담아낸다. 이는 낙지의 모습을 화폭에 담은 낙지처럼 보이는, 낙지와 닮은, 낙지로 인식되는 대상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낙지가 캔버스위에 놓인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의 몸부림을 담아낸 것이다. 물론 김정훈의 초기 작품에는 이러한 낙지가 움직인 물감의 흔적을 담아낸 후에 낙지의 이미지를 직접 그려서 표현하기도 했지만 작가 스스로도 이 낙지 「흔적」 시리즈를 발전해 나가면서 점차 낙지의 형태를 지워내기 시작한다.
김정훈_흔적_캔버스에 혼합재료_91×63cm_2008
김정훈_흔적_캔버스에 혼합재료_91×63cm_2012

김정훈의 작품에서 보이는 '흔적'이라는 개념은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Krauss)가 전개해 나간 '인덱스론'이라는 이론을 통해 접근해 볼 수 있겠다. 이 '인덱스론'의 특징은 찰스 샌더스 퍼스(Charles Sanders Peirce) 기호학의 도상(icon), 지표(index), 상징(symbol)의 3가지의 범주를 통한 비교로 알아볼 수 있는데 이는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담론으로 작용하고 있다. 과거의 그림이 '재현'이라는 목표에서 주로 이루어졌던 어떤 대상의 닮음을 표현하는 도상의 개념이 아닌 대상과 물리적인 관계 속에 제작된 하나의 흔적인 지표로 해석하는 것이다. ● 크라우스는 지표적 특징을 말하면서 "지문, 발자국 또는 탁자 위에 차가운 물 컵을 놓았을 때 생기는 습기자국과 같은 방식으로 세계의 대상과 인과적으로 연결되어 광화학적으로 획득된 흔적(trace)이다."라고 표현하였는데 이는 일종의 현실의 각인(imprint)이며 전이(transfer)이다. 데생과 회화는 실존여부와 상관없이 닮음을 매개로 머릿속에서 재현할 대상의 형태를 추정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에 도상인 반면 사진과 같은 매체의 지표성은 증거의 흔적인 것이다. 도상이 대상의 존재가 허구인 반면 사진의 대상은 반드시 실존하기 때문에 사진의 '대상에 대한 닮음' 때문에 그것을 도상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어떠한 대상에 대한 닮음에 있어 도상에서의 닮음과는 달리 사진에서 이미지의 닮음은 물리적으로 강요된 상황에서 광학적, 화학적인 작용에 의해 강제된 닮음이다. 이러한 면에서 보았을 때 김정훈의 그림은 기존의 대상의 재현의 범위에서의 회화를 뛰어넘어 사진과 같은 매체에서 보이는 지표성이라는 그 고유성의 범위를 넘나드는 작업형태라고 볼 수 있다. ● 또한 퍼스는 닮음의 기호인 도상으로서의 이미지 해석과 구분한 '지표'라는 개념을 통해 그 동안의 미술 해석 방식과는 다른 전통적인 회화, 조각에 관한 차별화 된 접근방식을 모색했다. 지표로서 작품을 판단한다는 것은 기존에 우리가 미술 작품 해석에 있어 중시 여겼던 닮음의 미메시스를 탈피하는 중요한 기점이 되었고 이와 같은 접근은 이미지를 기호학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인 동시에 현대미술에서 새로운 작품해석의 방법을 제시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김정훈의 「흔적」시리즈는 지표적 특징에서와 같이 미메시스적 낙지 표현을 뛰어넘어 낙지가 주는 우연적인 효과를 유발시키면서 그 흔적을 담아내어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이미지를 담아낸다.
김정훈_흔적_캔버스에 혼합재료_45.5×53cm_2009
김정훈_흔적_캔버스에 혼합재료_53×45.5cm_2012

아브젝시옹을 통한 해방과 승화 ● 김정훈의 초창기의 작업에서는 동물이 자주 등장하는데 코끼리의 항문에서 사람이 나오는 등의 모습과 낙지를 사용하는 모습과 어느 정도의 상관관계가 보인다. 동물과 사람을 합체 시키려는 발상이나 낙지에 물감을 묻혀 죽어가는 과정을 흔적으로 담는 다는 것은 아브젝시옹의 배설물에 대한 배출, 금기에 대한 도전, 비천한 것에서 예술작품으로 승화되는 과정, 미와 추의 이질적 대립이라고도 볼 수 있다. 우리가 더럽다고 느끼는 것들에 대해 그리고 늘 기준과 체제에서 구분 지어진 것들에 대한 거부에 대한 예술의 도전과 그 에너지를 볼 수 있는 작품들을 체험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그것에 대해 느껴지는 혐오감, 위반에 대한 공포, 질서의 교란이라는 첫 인상에서 끝나지 않고 근본적인 해방과 승화를 통한 대립성과 양면성이 혼합 되었다는 점을 볼 수 있다. ● 줄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는 "Approaching Abjection"라는 글에서 존재(l'être)를 위협하는 것에 대한 외부의 존재에 대한 반항과 불안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러한 경계가 욕망을 부르고 유혹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이는 라깡(Jacques Lacan)의 욕망이론을 참고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욕망이 미끄러지는 과정을 통해 좌절되면서 그것이 어떤 다른 곳을 향해 이끌리며 유혹과 혐오가 욕망의 충동으로 다가오며 묘한 매력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라깡이 설명하는 이러한 충동으로서의 욕망은 나를 나의 주체(sujet)에서 벗어나게 하여 나를 분별의 인식 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한다. 그리고 나를 욕망하게 하는 대상(objet)은 나 자신이 아브젝트에 의해 공격당할 때 내 감정을 그렇게 만든 대상을 욕망의 원인이자 욕망의 대상이라고 설명하면서 크리스테바는 이러한 대상이 대상의 지위를 박탈당해서 '추락한 대상'이라고 말하고 '축출된 어떤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욕망의 쾌락을 얻지 못한 대상을 아브젝트로 설명하며 바깥에 존재하는 것이라 정의하고 이러한 상태는 극단적인 혐오를 불러 일으켜 이러한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구토를 일으켜 분비, 배출, 배제, 축출, 유기를 일삼게 된다. 이러한 행위는 무의식적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이러한 상태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어떤 것'이다.
김정훈_흔적_캔버스에 혼합재료_91×63cm_2012
김정훈_흔적_캔버스에 혼합재료_91×63cm_2012

지금까지 말한 이러한 불안의 상태에서 잃어버린 나의 주체는 대상과 애매한 상태에서 서로를 자극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아브젝트로 인해 아브젝시옹의 상태가 되는데 우리는 이러한 상태에서 내 스스로가 주체로서 존재함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아브젝트를 버리려고 한다. 아브젝트를 버리기 위한 행동에서 나타난 불안은 막연한 형태의 두려움으로 대상이 없는 막연한 주체의 무규정성이 상응하며 주체가 아닌 존재의 불안일 뿐이다. ● 불안에 의해 스스로의 발버둥침의 에너지는 아브젝트를 충동과 분리될 수 없는 대상이 승화했다고도 설명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승화'의 개념은 예술작품에 있어서의 어떤 작가의 생각과 감성이 시각적이고 물성을 가지고 있는 작품으로 승화하는 과정과 일치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크리스테바는 아브젝트는 숭고로 둘러 싸여 있다고 설명하는데 이는 자신이 감당하기에 너무 큰 대타자(l'Autre)이지만 그 만큼을 반대의 힘으로 사용하여 내 자신의 주체를 승화시키겠다는 힘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즉 이러한 현상은 숭고함을 통해 승화를 거쳐 주이상스(jouissance)의 상태로 이끄는 것이 아브젝트로 작용하여 작가와 작품 사이의 연결고리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브젝트를 만나는 아브젝시옹의 에너지는 거대하며 혐오스럽고 더럽고 불쾌한 감정이 너무나 강렬한 주이상스로 변한다는 것을 확인해 볼 수 있다. ■ 김주옥


-------------------







공간 그리고 풍경 SPACE and VIEW






2012_0317 ▶ 2012_0715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 정직성_한조영_권인경_이상원

주최 / 한화호텔앤드리조트(주) 63스카이아트 미술관 협찬 / 대한생명

관람시간 / 10:00am~10:00pm

63스카이아트 미술관 63SKY ART GALLERY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60번지 63빌딩 60층 Tel. +82.2.789.5663 www.63.co.kr




젊은 작가들이 다양하게 해석한 도시공간과 풍경을 조망할 수 있는 전시 ● 63스카이아트 미술관(관장: 홍원기)은 오는 3월 17일부터 7월 15일까지 제1회 63스카이아트 미술관 뉴 아티스트 프로젝트 展 『공간 그리고 풍경 SPACE and VIEW』를 개최합니다. ● 63스카이아트 미술관에서는 2010년부터 매년 한국 현대 미술을 이끌어나갈 역량 있는 유망 작가를 2명씩 선정하여 지원하는 63 스카이아트 미술관 뉴 아티스트 프로젝트(63 SKY ART MUSEUM NEW ARTIST PROJECT)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매년 한 가지 주제를 정하여 주제에 맞는 작가를 선발 후 일정기간 동안 기금을 지원하며, 이와 더불어 2년에 한 번씩 지원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게 되는데 올해 그 첫 번째 전시를 시작합니다. ● 2010년과 2011년에는 도시 공간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63스카이아트 미술관의 특성을 반영하여 공간과 풍경에 대해 개성있고 독창적 해석이 돋보이는 작가 정직성, 한조영, 권인경, 이상원을 선발하였습니다. 이번 전시에는 작품을 작가 별로 나누어 총 4부로 구성하였습니다.
정직성_201022_캔버스에 유채_200×200cm_2010
정직성_201110_캔버스에 유채_130.3×194cm_2010
정직성_201111_캔버스에 유채_130.3×194cm_2010

1부 「흐르는 기계Liquid Machinery」에서는 정직성의 작품이 전시됩니다. 정직성은 도시 개발과 그 문제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주로 도시의 낡은 다세대 혹은 연립주택에서 시작하여, 최근에는 도시를 만들어내고 해체하는 기계의 이미지를 정직성만의 시각으로 해석한 작품을 그리고 있습니다. 전시되는 작품은 예측 가능하여 통제가 용이하고, 지속적이며, 결속력이 강한 안정적인 고체를 대표하는 기계에 견고하지 않고 제 모습을 오래 유지할 수 없는 액체와 같은 불안정한 유동성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 두 단어의 반어적인 뜻은 파편화, 변칙, 불명확성, 파괴, 해체 등 동시대의 징후를 작가가 냉철히 관찰한 결과이며, 거친 붓의 흔적과 강렬한 색채가 특징적입니다. 매번 새로운 작품을 시도하는 정직성은 도시를 고찰하고 심도 깊은 사색을 통하여 꾸준한 쇄신과 변화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한조영_검은풍경- 존재하지 않는_캔버스에 혼합재료_112×162cm_2009
한조영_검은풍경- 존재하지 않는_캔버스에 혼합재료_112×162cm_2012
한조영_검은풍경- 존재하지 않는_캔버스에 혼합재료_150×150cm_2011

2부 「검은 풍경Darkview」에서는 도시의 야경을 작품의 주된 주제로 삼은 한조영의 작품이 전시됩니다. 한조영은 서울 생활 후, 급작스러운 생활환경의 변화로 인하여 도시의 개성함몰과 자기정체성 혼돈 속에서 경험한 체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작품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듯한 부감의 시점으로 안개가 낀 듯한 어두운 배경 위에 수많은 밝은 색 스티커 조각들을 붙여 나가는 방식으로 제작합니다. 작품 속 도시는 작가가 머물렀거나, 경험한 체험의 공간이자 실재했던 공간이지만, 작업을 거듭할수록 점점 허구적인 공간이 되고, 어딘가 있을 법한 공간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작품은 사진과도 같은 시각적 착각이 들 정도로 존재할 법한 도시적 공간으로 보이며, 도시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감을 가늘게 잘라 붙인 스티커로 빛을 대신하고 옮기며 바꾸면서 도시를 다시 건설하고 있습니다.
권인경_개인의 방_한지에 고서콜라주 수묵채색_127×158cm_2011
권인경_보이다, 보여지다_한지에 고서콜라주 수묵채색_60×91cm_2011
권인경_정감화된 공간_한지에 고서콜라주 수묵채색_130×162cm_2010
권인경_조망과 은거의 풍경_한지에 고서콜라주 수묵채색_130×168cm_2011

3부 「내부자의 풍경landscape of insider」에서는 수묵화와 고서 콜라주를 화면에 배치한 권인경의 작품들이 전시됩니다. 권인경의 그림은 단순하고 삽화적이고 해학적인 묘사, 부드러운 채색과 고서 콜라주가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 있습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 풍경을 소재로 화면 가득히 카페와 노래방, 부동산과 식당 등과 높이 솟은 빌딩, 촘촘히 밀집된 아파트 등 구체적인 도시 공간, 건물의 외관, 동네 풍경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작가의 주된 관심은 구체적인 도시를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거리에서 조망하는 시선과 이에 대한 상상력을 표현해 내는 것입니다. 권인경은 도시공간을 개인의 체험된 시간, 도시와 공존하는 자연의 변화, 인간들의 역사가 융합되어 나타나는 지속적인 변화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파악하여 어지러이 합쳐진 실제의 풍경과 고서 콜라주를 통해 이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상원_어린이대공원_종이에 수채_30×40cm_2011
이상원_어린이대공원_캔버스에 유채_200×660cm_2009
이상원_등산객-인수봉_캔버스에 유채_130×130cm_2012
이상원_수영장_종이에 수채_29.7×40.8cm_2011

4부 「여가Leisure Time」에서는 여가생활을 즐기는 현대인의 모습을 화면에 포착하고 있는 이상원의 작품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상원이 주목한 현대인의 여가생활의 공통된 패턴은 유사한 조건 아래 개인적인 여가가 대중화, 대량화, 획일화되어 나타나는 현상을 종합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작가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산, 스키장, 수영장, 놀이 공원 등을 직접 촬영한 사진 자료를 통하여 그림을 그리며, 자연, 인간, 인공물 등 각 개체에 따라 그에 맞는 방식으로 표현법을 조절하고 있습니다. 대형회화 이외에 개개인 사람들의 움직임, 행동양상 등을 표현한 수채화와 더불어 영상 작품도 함께 전시됩니다. ● 이번 『공간 그리고 풍경 SPACE and VIEW』전시를 통해 젊은 작가 4인이 선사하는 공간과 풍경을 감상함과 더불어 63스카이아트 미술관에서 내려다 보이는 도시의 풍경을 함께 감상하시길 바랍니다. 또한 63스카이아트 미술관 뉴 아티스트 프로젝트가 유망한 젊은 작가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앞으로 63스카이아트 미술관에서는 다양한 작가지원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미술계의 발전에 기여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권아름


---------







꽃이 되어 바람이 되어






인혁당사건 추모展 2012_0408 ▶ 2012_0513 / 월요일 휴관




꽃이 되어 바람이 되어-인혁당사건 추모展_서대문형무소 내 12옥사_2012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김영덕_노순택 -민족미술인협회 서울지회- 김석주_김운성_김영진_김정헌 김천일_김태순_박야일_박영균 박은태_박종해_박진화_서수경 위종만_이구영_이상구_이진석 이현철_전진경_정세학_주재환 김서경_김운성_안광준_임옥상 이구영_김현겸

큐레이터 / 김태현

주최 / 4.9통일평화재단 주관 / 인혁당사건 전시조직위원회 후원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_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협찬 / (주)에듀니티_(주)우리교육_출판사 알도_print boda

관람시간 / 09:00am~08:00pm / 월요일 휴관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내 12옥사 서울 서대문구 홍은1동 48-84번지(통일로 484) Tel. +82.2.396.3925 www.sscmc.or.kr/culture2




꽃이 되어 바람이 되어 ● 서대문형무소는 대한제국 말기인 1908년 일제에 의해 지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사법 수형시설입니다. 이곳은 일제 강점기와 독재정권 시절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과 민주화운동 관련인사들이 수감되고 때로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던 곳으로 우리 민족과 민주주의의 한이 서려 있는 역사의 현장입니다.
인혁당 사건 여덟 희생자 중 한명인 우홍선 선생과 가족 그리고 미망인의 일기_디지털 프린트_부분

지금 이곳 12옥사는 두 개의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약 3×40m의 복도입니다. 이 공간은 감시와 통제의 시선으로 이곳에 머무르는 수형자들을 지배하던 공간입니다. 두 번째 공간은 세상과 격리되어 있는 억압과 폭력의 공간으로 21개에 이르는 3×3.4m의 비좁은 감방들입니다.
인혁당사건 여덟 희생자들의 가족사진 모음_디지털 프린트_부분

5.16 군사쿠데타를 통해 총과 칼, 탱크로 권력을 움켜 쥔 독재자 박정희도 이곳 서대문 형무소를 자신의 불의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였습니다. 위기에 몰린 독재정권의 조작과 탄압에 희생된 이른바 '인혁당 재건위' 사법살인 사건의 여덟 희생자들도 이곳 서대문형무소에 약 일년간 갇혀 있다 사형당하셨습니다.
임옥상, 박정희_죄수번호 750409_가변설치_2012

인혁당사건 추모전시회 '꽃이 되어 바람이 되어'전은 바로 이 분들을 추모하고 이 땅의 민주주의와 평화를 염원하는 전시입니다. 이번 전시는 12옥사의 공간을 따라 크게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진석_강심장~ 인혁당 조작사건_캔버스에 유채_91×116.8cm_2012

기다란 복도에서는 이른바 '인혁당 재건위' 사법살인의 여덟 희생자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 맞춰 새로 제작한 초상화 여덟 점과 함께 이분들이 살아생전 가족들과 함께 행복했던 시절이 기록된 사진들을 전시합니다. 또한 그 아름다운 사진들 사이로 여덟 분을 그리워하는 가족들과 지인들의 역사적 기록 글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잔악한 독재자에 의해 어떻게 우리의 행복한 삶이 파괴될 수 있는지 이분들의 개인 기록물들을 통해 목격할 수 있습니다.
김서경_과거 오늘을 묻다_F.R.P 등 혼합재료_185×55×65cm_2012

작은 감방들 안에는 세 가지의 작은 전시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제일 먼저, 1961년 5월 16일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고 독재자의 길을 걸어 간 '박정희 사진'들을 볼 수 있는 방들입니다.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시절 군복을 입고 있는 '정치군인 박정희'와 군복을 벗고 양복으로 갈아입은 후 공포정치를 자행한 '독재자 박정희'의 삶과 죽음을 볼 수 있는 작은 사진전입니다.
노순택_남일당 디자인 올림픽 시리즈_디지털 프린트_60×60cm_2009 노순택_배후설-메가바이트산성의 비밀 시리즈_디지털 프린트_60×60cm_2009

두 번째 작은 전시는 이른바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사료전시입니다. 이곳에서는 여덟 희생자들의 구명을 위한 김수환 추기경의 탄원서 등을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전시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내 사형장 입구에 사형수의 모습을 형상화한 설치작품을 비롯한 미술작품들입니다. 이번 전시를 위해 '민족미술인협회' 서울지회 회원 작가 등 예술가들이 제작한 회화 및 설치, 사진 작품들이 펼쳐져 있습니다. ■ 김태현


■ 4.9통일평화재단은 인혁당 사건으로 희생되신 분들의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고 우리 사회의 인권수호와 민주주의 가치를 실현하며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를 위해 일하는 단체입니다.

 

 

--------------








타인의 기억들이 생성하는 이미지 - 옷






방인희展 / BANGINHEE / 方寅姬 / painting 2012_0425 ▶ 2012_0513 / 일,공휴일 휴관




방인희_그녀의 기억Ⅰ_아카이벌 잉크젯 프린트, 콜라그래프_가변크기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방인희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2_0425_수요일_05:00pm

후원/협찬/주최/기획 / 갤러리 가비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갤러리 가비 GALLERY GABI 서울 종로구 화동 127-3번지 2층 Tel. +82.2.735.1036 www.gallerygabi.com




사물에 남겨진 흔적과 기억을 통한 사유 ● 내 주변에 사물을 통해 나를 사유한다. 그것은 사물에서 출발하여 옷에서 하나의 담론을 형성하며 스토리를 갖는 것으로 발전되었다. 이러한 담론은 옷을 직접 만들어본 경험에서 출발한다. 대학에 들어오기 전까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옷을 만드는 곳에서 일을 했었다. 매일 똑같은 디자인의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체험하다 보니, 이 옷을 사서 입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며, 그들에게 이 옷은 어떤 존재로 남게 될까 항상 궁금했었다.
방인희_Dress of Venus_아카이벌 잉크젯 프린트, 콜라그래프_150×94cm_2011

의(衣).식(食).주(住)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세 가지 요소이다. 이처럼 옷은 인간의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인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옷은 여러 의미를 갖는데, 제복의 경우 계급이나 특정한 사회집단을 대표하고, 나라와 시대에 따라서는 신분을 나타내기도 한다. 또 한사람의 개성을 드러내기 위한 표현의 수단이자 부를 나타내는 강력한 도구이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주목하는 옷의 의미는 앞서 말한 것과는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오랫동안 입어서 낡고 변형된 옷에서는 새 옷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그것이 한사람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아낸 존재로서, 그 사람의 삶을 대표하는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방인희_그녀의그의 기억Ⅱ_아카이벌 잉크젯 프린트, 콜라그래프_175×112cm_2012

나에게 옷이란? 누구에게 속한 부속물이 아닌, 사물(옷)에 각인된 체취와 시간성이 더해지면서 존재성을 획득한 '특별한 사물'로 정의된다. 옷은 '물질(옷)과 기억'이 만나 새로운 이야기를 생성하는, 혹은 그것을 통해 끈임 없이 발화하는 장치가 되는 것이다.
방인희_The black dress 2010_아카이벌 잉크젯 프린트, 콜라그래프_185×112cm_2010

가져오기+타인의 기억들이 생성하는 이미지 ● 우리는 매일 인터넷과 tv, 스마트폰등 각종 매체를 통해 수많은 이미지를 보고 그것을 공유한다. 연말이 되면 화려한 시상식장에 한껏 차려입은 여배우의 드레스가 화제가 된다. 그들이 입은 값비싼 드레스는 평범한 소시민의 시점에서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며 주인공에 자신을 몰입시키는 것처럼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한다. 드레스 시리즈들은 이러한 타인의 기억과 욕망에 관한 작업이다.
방인희_존재 모음들10_아카이벌 잉크젯 프린트, 콜라그래프_185×112cm_2010

인터넷상에 떠도는 이미지라는 것은 디지털 시대에서 소유자가 없는 이미지이며, 떠돌아다니는 증식하는 이미지들이다. 주인 없는 이미지(옷)는 미디어의 진화와 디지털프린트의 정체성의 문제들에서 떠돌아다니는 것들로 사실 이미지의 생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이미지들을 가져오고 디지털이미지로 만들어서 다시 복제하는 과정을 통해 똑같은 옷을 만들어내듯 에디션을 만든다.
방인희_Sensation#09-Ⅱ_아카이벌 잉크젯 프린트, 콜라그래프_185×112cm_2009
방인희_Sensation-Jacket 09_아카이벌 잉크젯 프린트, 콜라그래프_70×50cm_2009

인터넷상에 떠도는 이미지라는 것은 디지털 시대에서 소유자가 없는 이미지이며, 떠돌아다니는 증식하는 이미지들이다. 주인 없는 이미지(옷)는 미디어의 진화와 디지털프린트의 정체성의 문제들에서 떠돌아다니는 것들로 사실 이미지의 생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이미지들을 가져오고 디지털이미지로 만들어서 다시 복제하는 과정을 통해 똑같은 옷을 만들어내듯 에디션을 만든다. ■ 방인희


----------







현대미술사용설명서






2012 포스코미술관 기획展 2012_0425 ▶ 2012_0605 / 일,공휴일 휴관







초대일시 / 2012_0502_수요일_05:00pm

참여작가 강운_김도훈_김동유_김태연_노동식_박성원 손봉채_이동재_이서미_이지영_주도양_천성길

주최,기획 / 포스코미술관

관람시간 / 09:00pm~08:00pm / 토요일_09:00pm~03:00pm / 일,공휴일 휴관

포스코미술관 POSCO ART MUSEUM 서울 강남구 대치4동 892번지 포스코센터 서관 2층 Tel. +82.2.3457.1665 www.poscoartmuseum.org




포스코미술관은 4월 25일부터 6월 5일까지 『현대미술사용설명서』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강운, 김도훈, 김동유, 김태연, 노동식, 박성원, 손봉채, 이동재, 이서미, 이지영, 주도양, 천성길 총 12인의 작가가 참여하며, 총 50 여 점의 작품으로 꾸며진다. ● 『현대미술사용설명서』는 현대미술을 어렵게 여기고, 미술관 계단은 넘을 수 없는 성벽 같아서 도통 미술과는 친해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대중들을 위한 전시로, 관객들에게 삶 속에서 어떻게 예술을 사용할 수 있는지 제시하고자 한다. 이번 전시의 작가 강운, 김도훈, 김동유, 김태연, 노동식, 박성원, 손봉채, 이동재, 이서미, 이지영, 주도양, 천성길은 각기 다른 매체와 자신만의 방식으로 예술을 표현한다. 하지만 그들의 공통된 점은 남과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새로운 것을 세상에 내놓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 본 전시는 '시작하라', '관찰하라', '생각하라', '인정하라' 총 네 부분으로 나누어 작품을 전시하여 작가들의 개성을 부각시키는 동시에 관객들이 현대미술에 조금 더 쉽게 다가가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김태연_Plastic Island_플라스틱 가방_87×85cm_2011
박성원_仁 Benevolence_블론 글라스, 스테인레스 스틸_250×400×400cm_2011
손봉채_Migrants_폴리카보네이트에 유채, LED_84×124cm_2011

사용하기 1_시작하라 ● 남들과 같아지기 위해 질주하는 우리. 이제 예술가들처럼 남들과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자. 새로운 것에 주저함이 없는 그들의 도전은 개인의 삶을 넘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기도 한다. 참여작가: 김태연, 박성원, 손봉채
김동유_Marilyn Monroe (John F. kennedy)_캔버스에 유채_227.3×181.8cm_2010
이동재_Icon-Inceptio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레진, 오브제_112×145.5cm_2011
주도양_Flower 6_C 프린트_100×200cm_2011

사용하기 2_관찰하라 ● 눈에 보이는 것만 볼 줄 아는, 아니 눈에 보이는 것 조차도 알아채지 못하는 우리. 쓰레기 더미, 담벼락 낙서에서도 세상의 진실을 읽어내는 예술가들에게, 세상에 사소한 존재란 없다. 참여작가: 김동유, 이동재, 주도양
강운_무등도원경_종이에 담채_101×68cm_2012
이지영_Nightmare_잉크젯 프린트_96×120cm_2010
천성길_냉장고에 들어간 코끼리_냉장고, 합성수지, 아크릴컬러_172×57×57cm_2010

사용하기 3_생각하라 ● "만약에…"가 가장 허망한 우리. "만약에…"가 가장 희망적인 예술가들. 난해함을 핑계로 게을러진 명석한 두뇌와 온몸의 신선한 감각을 흔들어 깨운다면 예술가들의 "만약에…" 세상도 두렵지 않다. 참여작가: 강운, 이지영, 천성길
김도훈_Sike deer_스테인리스 스틸_200×140×270cm_2011
노동식_민들레_바라보기, 혼합재료_가변크기_2011
이서미_길_드라이포인트, 팝업_120×120cm_2011

사용하기 4_인정하라 ● 나와 다른 것은 모두 틀렸다고 참 쉽게 단정짓는 우리. 예술가들에게 '다름'은 틀림이 아니라 '특별함'이다. 이해할 수 없다면 인정할 수 있는 용기만이 그들의 특별함을 즐길 수 있는 비법이다. 참여작가: 김도훈, 노동식, 이서미 포스코미술관


------------





익숙한 낯섦, The Unfamiliarity




2012_0424 ▶ 2012_0525 / 일요일 휴관



원성원_쌓여가는 어제, 소심한 오늘, 움직이는 내일_C 프린트_125×164cm, 125×200cm, 125×164cm_2012


초대일시 / 2012_0424_화요일_05:00pm

참여작가 류정민_박형근_안준_원성원 이명호_장석준_하형선

후원/협찬/주최/기획 / 카이스갤러리

관람시간 / 월~금_10:00am~06:30pm / 토_10:30am~06:00pm / 일요일 휴관

카이스 갤러리 CAIS GALLERY 서울 강남구 청담동 97-16번지 Tel. +82.2.511.0668 www.caisgallery.com



일상의 평범한 사물과 공간은 관습적 사고로 인해 새로울 것 없는 단조로운 풍경이 된다. 이렇게 익숙한 오늘의 찰나도 작가들에게는 내면의 세계를 반영하는 창조적 실천의 계기가 된다. 7명의 사진 작가로 구성 된 이번 전시 『익숙한 낯섦』은 사회에 관한 또는 정치적 이슈를 담은 거시적 시각과 주제에 대한 담론은 뒤로 한다. 비판적 거리를 넘어선 예술의 가장 미시적이고 감각적인 영역에서 섬세함을 보여주는 작가 개개인의 예술 본질에 대한 숭고한 악수의 현장으로 초대하고자 한다. 서로 다른 연결 고리로 맺어져 낯섦이란 우연한 접근의 통로를 제공하고 낯설고도 익숙한 화면 안에 숨겨지고 드러난 연결고리는 관객과의 소통의 실마리를 능동적으로 제시할 것 이다. ● 이번 전시는 이미지의 조합과 재배열이라는 디지털적인 요소를 개입시킴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해 시각적 유희를 선사하는 류정민, 원성원, 장석준, 안준과 아날로그적 섬세함으로 인해 디지털요소의 개입에 대한 의구심을 자아내는 박형근, 이명호, 하형선의 작품을 소개한다. ● 원성원은 수백 개의 이미지 조각을 하얀 도화지 위에 그림을 그리듯 조합하고 채워나간다. 작가의 개인적인 이야기로 구성된 작품 속 다양한 오브제들은 상징적 요소를 지니는 동시에 감상자에게 폭넓은 해석의 여지를 준다.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큰 이야기들의 부분을 이루며 형식에 있어 자유로운 접근법은 다양한 시점과 구도로 나타나 작품의 재미를 더한다. 파란 바다 위에 펼쳐진 환상적인 이미지의 신작 쌓여가는 어제, 소심한 오늘, 움직이는 내일(2012)은 세 개의 분리 된 구조로 나타나며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현재에서 바라 본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이란 형식 안에서 작가 자신을 반영한 자화상 같은 작품이다. 일상에서 만난 사물과 공간은 소통과 화해의 도구로서 그녀의 작품 안에서 현실의 견고함을 무너뜨리며 무한한 상상력의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류정민_한 그루 나무 안의 풍경#1_피그먼트 프린트_65×206cm_2006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류정민의 작품은 붓이 지나간 수묵화의 찰나를 보는 듯 하다. 풍경 안에서 또 다른 풍경을 발견하기도 하고 주변 풍경들을 통해 전혀 새로운 구조의 풍경을 만드는 작가는 세상 속에서 느낀 본능과 직관을 따라 사진이란 미디어를 회화적인 조형법안에서 다양한 색과 감각으로 창조한다. 작가는 히치콕의 새장(2007)시리즈에서 어둠이 지나간 공포와 두려움의 순간을 담고, 한 그루 나무 안의 풍경(2006)시리즈에서 자작나무 안에 펼쳐진 또 다른 거대한 풍경을 포착한다. 근작The Path of Error(2008)시리즈에서는 적게는 수십 장에서 많게는 수천 장의 사진을 합성하여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조합함으로써 선택의 갈림길에서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순간에 다양한 감정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장석준_비단장수 왕서방_디지털 라이트젯 프린트, 싸이텍_200×96.5cm_2011

장석준은 도시의 거리를 걷다 만난 간판, 벽, 문, 셔터 등의 이미지를 통해 도시에 대한 기억의 잔상을 투영한다. 같은 종류의 비슷한 이미지들을 끊임없이 수집하고 반복적으로 조합시켜 전혀 새로운 구성 안에서 작가가 소통한 이야기 또는 추억이 담긴 역사의 한 순간을 내 보인다. 카메라에 포착 된 수많은 이미지들은 스쳐 지나간 도시의 풍경 속에서 획일화 된 그리고 현존하지만 우리의 시야에서 조금씩 뒤쳐진 사라져가는 어제와 오늘의 단편이다. 모텔 입구, 포장마차가 있는 밤거리 그리고 강렬한 칼라로 칠해진 공장의 이미지들과 같이 과거로부터 축적된 도시풍경은 작가의 프레임 안에서 보편적 감성의 파편으로 재생산 된다. 이러한 도시의 부분을 이루고 있는 개별적 구조들은 미학적 재구성 안에서 일상의 비현실적인 판타지가 드리운 컬러풀한 패턴으로 재탄생 되어 도시가 만들어낸 빛의 잔상을 담은 공간 설치로 구성된다.
안준_Invisible Seascape#1_HDR 울트라 크롬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228.6×76.2cm_2010

실제로는 존재하지만 실재 같지 않은 풍경에 흥미를 느낀 안준은 현실과 허구를 뒤섞어 실재하지 않는 바다풍경을 깊이 있고 생경하게 만든다. Invisible seascape(2010)시리즈는 바다를 가로지르며 촬영한 파도의 수십, 수백 개의 이미지들이 재 조합되어 만들어진 새로운 파도의 이미지이다. 자연의 모습 또는 인위적인 형태로 보이는 파도는 조합이란 과정을 거쳐 가상의 바다를 이루며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드는 매력적인 매체가 된다. 작가는 제어할 수 없는 대자연의 힘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물거품의 형상들은 깊이를 알 수 없는 푸른 바다 표면 위로 끊임없이 그 형태를 변화시켜 현실과 환상이라는 경계에서 사는 우리들의 생을 다시 한번 말하고자 한다.
박형근_Untitled#4-Hidden_C 프린트_100×125cm_2003

익숙한 풍경 안에서 시각적 변주를 만드는 박형근은 금단의 숲 Forbidden Forest(2011) 에서 빛 한줄기 없을 것 같은 음침하고도 축축한 숲의 향기와 공기의 촉감을 그대로 전한다. 출구 없는 빽빽한 청록의 숲은 짙은 녹음과 그 밀도 높은 무게 감을 전하며 감상자를 압도한다. 작가는 연출 된 오브제와 공간 그리고 그 공간의 공기까지 섬세하게 조율하며 의식과 감각의 세계를 응축시킨 관계의 모호함과 이면의 잠재된 부분까지 보여준다. 무제Untitled(2004)와 텐슬리스 Tenseless(2004) 시리즈에서 꽃, 새, 천이나 옷 등 익숙한 오브제들은 자연의 부분이 되어 색의 대비와 빛의 조화를 이루며 몽환적 느낌을 발산한다. 이러한 모호함은 실재와 비실재라는 간극을 만들어 현실 이면의 모습들을 드러나게 한다.
이명호_Tree Abroad#2_종이에 잉크_78×114cm_2012

이명호는 사진 속에 캔버스라는 회화의 재료를 사용하여 대상을 철저하게 묘사하고 재현한다. 대표작Tree 시리즈에서 작가는 광활한 대지의 수많은 나무 중 가장 평범하고 흔한 나무 한 그루를 선택한다. 선택한 나무를 일년 정도 지켜본 후, 나무가 가장 그 나무의 캐릭터를 잘 나타내는 순간을 카메라 렌즈에 담기 위해 계절 그리고 햇빛과 바람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 거대한 나무 뒤로 큰 캔버스 천을 대고, 그저 대자연 속의 일부였던 나무는 하얀 캔버스 위에서 주인공이 되어 그 여린 이파리와 가지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드러낸다. 이렇듯 그의 작품은 흰 천 하나로 나무와 그것을 둘러싼 환경의 관계를 뒤틀고 재설정해서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동시에 무의미하던 보통의 존재가 교감과 관찰의 대상이 된다.
하형선_Mercer Street, New York, NY I_C 프린트_40×30inch_2003

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며 창 밖의 풍경을 담아온 하형선은 세월의 흔적이 희뿌옇게 묻어난 얼룩, 빗물 자국, 햇살의 따스함이 묻어난 유리 창 너머로 펼쳐진 또렷하지 않은 서정적인 풍경들을 아련하게 그려낸다. 작가는 분리와 접촉의 의미로서의 매개체 "창"을 통해, 창의 내부에 위치한 자신이 서있는 지금의 순간을 인식하고 창 너머의 세계를 통해 외부와 마주한 자신을 자각한다. 더 나아가 내부와 외부의 경계에 선 작가는 인화과정에 한 줌의 쌀을 뿌리는 행위로 하여금 자신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행운을 기원하고 그 것은 사진 안에서 외부와 경계의 층 위에 또 다른 정신적 영역에 위치하게 된다. ● 개인의 사사로운 감응은 무심한 사물과 공간을 통해 발견되어 재구성되기도 하고, 뿌연 막 뒤로 숨겨진 공간은 더 강렬하게 모습을 드러내면 이내 낯섦으로 다가온다. 이렇듯 작가는 시각적 대상으로 현존하는 하나의 불가피한 매개체를 통해 작가 내면의 긍정과 부정, 화해와 소통, 해소와 의문 그리고 희망과 상처의 부분을 덜어내어 관람자에게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볼 수 없는 것을 보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과 은밀하게 마주하게 한다. 서로 다른 시선으로 풀어 낸 작가들의 풍경 속에서 익숙하고도 낯선 세상과의 조우를 기대해 본다. ■ 손보람


-------------




뫼비우스의띠, 신화적 사유를 삼키다.


Mobius Strip: Embracing Mythical Thinking展 2012_0427 ▶ 2012_0517 / 일,공휴일 휴관



초대일시 / 2012_0427_금요일_05:30pm

참여작가 강형구_권여현_남경민_서은애_데비한 강영민_탐리_황란_강민수_박형근

주최 / 인터알리아 아트컴퍼니

관람시간 / 09:3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인터알리아 아트컴퍼니 INTERALIA ART COMPANY 서울 강남구 삼성동 147-17번지 레베쌍트빌딩 B1 Tel. +82.2.3479.0114 www.interalia.co.kr


뫼비우스의 띠, 신화적 사유를 삼키다. Mobius Strip: Embracing Mythical Thinking ● 긴 종이의 끝을 한번 꽈배기처럼 꼬아 붙이면 '뫼비우스의 띠'가 만들어진다. 띠를 길이라고 생각하고 어느 지점에서건 출발하면 어느덧 반대편을 걷고 있음을 본다. 띠의 밖을 걷다가도 안을 만나게 되고, 안을 걷다가도 밖을 만나게 된다. 2차원의 평면에서 출발해서 안과 밖이 바뀌며 안과 밖이라는 개념이 붕괴하고 있다. 고정된 세계가 붕괴한다. 우리의 일반적인 경직된 사고체계가 이 뫼비우스의 꼬인 띠에서는 들어맞지 않는다. 뫼비우스의 띠는 안이 있으면 그와 분리된 밖이 있다는 단편적인 사고를 부셔주는 간단한 형태이다. 여기서 여러 경계에서 더 자유로운, 세상의 창의적인 사람들을 생각했다. 일차원적이고 단편적인 삶에서 조금은 그리고 그 이상으로 남다르게 창의적인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들은 보이는 것 이면의 보이지 않는 것들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펼쳐낼 사유를 어떤 방식으로 드러내고 있는 다채로운 시각을 소유하고 있는 자들이다. 예술 분야가 그럴 것이라 생각하고 또한, 시각예술가들이 그러할 것이라는 것에 대한 출발에서 뫼비우스의 띠가 만든 길은 지속된다. 그리고 이와 함께 신화(神話)와 신화적 사유 대해 생각해 보며 뫼비우스의 띠, 신화, 신화적 상상력 그리고 예술가, 그들간의 연관성과 관계에 관심을 갖는다. ● 신화는 오래되고 익숙한 멋진 이야기만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들어가보면 살아있는 것(生)이 언젠가는 멸(滅)할 것이라는 원초적 '불안' 속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그것을 극복할 의미를 찾기 위해 생겨났고 이 두 축을 기본으로 하는 것이 신화적 사유이다. 인생의 두 개의 축인 살아있음과 사라져버림의 이중적 존재의 가능성에 대해 인간의 끊임없이 사유가 신화 속에 녹아있는 것이다. 삶 속에서 죽음을 보고, 죽음 앞에서 삶을 보는 한 공간 안에서의 그 모순을 풀려는 노력이 담겨져 있다. 당시대 인간의 가장 깊은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일종의 집단적 사유인 신화적 사유는 시대를 굴절시키고, 시대에 의해 굴절되어왔다. 신화적 사유는 평면적이고 직선적 선상에서 모순을 논하지 않는다. 차원을 달리하면 구조가 달라진다. 입체적이고 다차원적인 구조 속에서 삶의 다양한 모순을 풀려고 노력한다는 면에서 '뫼비우스의 띠'와 같다. 2차원이던 평면이 상상력을 통해 3차원의 공간으로 변한 이것은 끝없이 이어지는 곡선으로 안과 밖의 경계 구분이 없어지는데, 바로 이런 지점과 같이 만나는 상상력이 '신화적 상상력'이기도 하다. ● 이것은 모더니즘 사유의 한계를 극복하고 우리 뿌리인 자연과 그 본성을 이해하고자 하는 바탕이 되기도 한다. 신화적 사유, 성스러움의 세계, 영원한 역사(현재)를 재현, 복원시키려는 의지들은 다양한 예술 분야 안에 녹아있다. 결국, 신화적 사유는 우리 (생의) '의미를 생성하는 능력'이자 생명력이고, 집단의 정체성과 시대적 변화를 극복하고 역사를 이어가는 힘으로 증여贈與되어 왔다. 지금, 그것은 고리타분하고 진부한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현재에 여전히 이 시대 속에 살아 숨쉬고 있어 생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진행한다. 지금 살아있는 모든 것의 생멸의 문제에 대한 사유, 시대적 절실한 모순에 대한 모색, 자기 내면화를 통한 상상력의 세계 등... 근원적 문제의식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해석하는 일은 예술가들(-사실, 미술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이 해왔으며(조셉 캠벨, 빌 모이어스 대담 『신화의 힘』, 이끌리오, 2002, p.189 ● -B. Moyers: 오늘날 자연의 본성인 신성(神性)은 누가 해석합니까? 누가 우리의 샤먼입니까? 우리를 대신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해석해주는 이는 누구입니까? ● -J. Campbell: 그것은 예술가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예술가들이야말로 오늘날에도 신화와 교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예술가는 신화와 인간성을 이해하는 예술가이지, 대중에게 봉사하기 좋아하는 사회학자는 아닙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시각예술가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생((生)과 그 본질에 근원적으로 다가가 해석뿐만 아니라 그들이 다층적으로 접근하는 다양한 사유의 방식을 '신화적 사유'라는 맥락에서 한번쯤 작품 안으로 들여다 보고자 한다.
강형구_Monroe in the night sky_알루미늄에 유채_120×240cm_2010

강형구| Hyung-Koo Kang ● 인간의 얼굴은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시간을 짊어지고, 세월을 견뎌낸 유명하고도 익숙한 얼굴 안에서 그 존재는 떠났어도 차곡하게 쌓여 되살아나는 인간의 역사를 마주한다. 한 인간의 역사 안에서 발견되고 발전되는 사유는 시대의 역사를 관통하며 우리 앞에서 시선의 마주침으로 인해 강력한 진동으로 울린다. 인물과 시대가 만난다. 강형구의 인물 작업은 즉각적으로는 얼굴, 더 나아가 얼굴 너머에 감추어져 있는, 또는 그런 얼굴을 탄생시킨 얽히고 얽힌 사연과 삶을 응축해내어 내 앞에 마주하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물의 객관적 모습에, 작가가 상상하고 사유한 인물에 대한 해석이 밀도 있게 녹아있어 주름, 눈빛, 솜털 그리고 필들의 움직임을 담아내며 옹골차게 들어서 있다. 표현은 너무 맑아서 마치 그 존재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 안으로 빨려가는 느낌을 준다. 역설적이게도, 부재한 존재이지만 그 부재적 존재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마치 그 존재의 진실을 마주하는 느낌을 준다. ● 얼굴에 대한 접근이 이차원이고 평면적인 사유라면, 강형구의 인물작업은 여기서 더 나아가 얼굴이라는 2차원에서 시작해서 마치 뫼비우스의 띠가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 다층적으로 끊임없이 연결되듯이 넘어간다. 살아 있던 당대의 얼굴, 그리고 그 존재는 없지만 여전히 해석되며 끊임없이 해석과 사유를 지금에서 발생시키는 얼굴. 강형구의 인물은 신화가 되어 버린 얼굴, 그리고 그 얼굴은 강형구에 의해 지금 현재에 새롭게 '신화적으로' 해석되는 끊임없이 사연을 생성해내고 있는 얼굴이다. 여기서 '신화적으로'라는 말은 작가에 의한 다층적이고 존재 너머에 있던 어떤 의미를 뽑아내려는 '신화적 상상력'에 의해 재탄생된 인물이다. 고정되게 읽혀지는 존재가 아닌, 맑고 투명한 장막을 한꺼풀 걷어내고 존재의 내면을 마주하는 현장을 그의 얼굴 작업을 통해 만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맑고 투명한 부재하는 존재의 지금 여기 와있는 다른 존재방식을 보며 인간과 그 본질에 대한 사유를 놓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인간 존재가 지닌 생과 멸의 이중적 존재의 가능성을 고민하게 될 것이다. 한없이 투명하고 맑게 빛나고 울리는 호수의 파문처럼, 이 앞에 마주놓인 존재(작품)를 통해 우리 내면에서도 어떤 파문이 울려 퍼질 것이다.
황란_Whimsical Dream_페이퍼 버튼, 비즈, 핀, 나무 패널_354×450cm_2011

황란| Ran Hwang ● 일상 속의 작은 물건들이 과연 어떻게 그 존재 이상의 가치를 발하는지를 경험하게 되면 '숭고'를 느낄 수가 있다. 황란의 작업은 실, 핀, 단추 등 우리 생활과 밀접한 소재가 완전한 변신을 하고 새로운 의미를 생성한다. 단추 하나에, 그리고 셀 수 없이 무수한 단추가 모여 새로운 울림의 경지를 보여 준다. 이것은 무(無)에서 유(有)의 사유가 되는 과정이다. 단추나 핀 하나에서도 우주적 사유를 담아내고 바라볼 수 있는 밝은 눈이 있는 것이 아닐까싶다. 하나는 전체이고, 전체가 곧 하나(一卽一切多卽一)라는 화엄경의 말이 떠오르기도 한다. 단추와 핀이 사유의 씨앗이 되어 작가의 정신세계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었을 때, 그것들이 새로 연결시켜주는 세상은 작가와의 인연가합에 의해 탄생되고 개인의 사유, 더 나아가 사회와 시대에 대해 진실로 보려는 시선이 담겨있다. 황란이 다양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작업을 할 때 근본적인 것은 그 빛나는 물질의 경계를 넘어 확장되고, 펼쳐져 인간사의 많은 사유를 연결시키고 이끌어내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흘러내리는 듯하면서, 확장되어지는 재료들을 통한 설치 작업을 보면 그 자체가 작가와 작품, 그리고 관람객을 보이지 않는 투명한 끈으로 이어주어 함께 공유하고 내 머리 안에서 갇혀버린 세상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주고 있다. 또한, 작업은 그 과정 속에서 이미 작가에게 수행자적인, 구도자적인 길을 가도록 이끌어내고 있다. 가장 눈부신 형상 속에 가장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것이 얼마나 큰 목소리를 내는지, 그 변화 안에는 지금의 우리가 놓쳐버리고 간과하는 많은 것들을 '눈부시게 빛나는' 죽비가 되어 등줄기를 내리치고 있다. 신화적 상상력과 신화적 사유란 불교의 연기설과 연결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한다.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음으로 이것이 있어 끊임없이 이어지고 연결되는 세계. 작품 안에서 핀이나 단추가 무수히 연결되고 관계 맺고 그게 작가의 더 큰 사유의 울타리로 만들어지고 형상으로 갖춰지고 우리는 그 안으로부터 새로운 세상과 조우한다.
권여현_디오니소스-첫남자-오이디푸스_캔버스에 유채_50×100cm_2010

권여현| Yeo-Hyun Kwon진정한 치유는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다. (-C. G. 융 『두 편의 에세이Two Essays』) 푸르고 생생한 내음을 풍기는 다른 세상의 낯선 풍경, 가끔은 몽상으로, 발랄한 상상으로 머릿속에 그려봤을 법한 젊은 역동성, 그리고 애매하지만 충만한 감성적 연결로. 권여현의 작품 안에서는 상징과 알레고리, 은유와 모순 등 상상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이 녹아있고, 연상할 수 있는 어떤 것들과 고리를 연결시켜 내고 있다. 참으로 다이나믹하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에너지의 분출이 느껴진다. 출항나간 배가 매번 안전하게 돌아와 부둣가에 정박해있을 법한 풍경을 보고도 언제 닥쳐올지 모를 존재의 불안과 위기를 떨쳐버릴 수 없는 고독한 자아들. 그런 세상 속의 많은 자아들. 대부분의 아폴론적 자아 찾기의 소유자들은 과감히 생멸의 일회성 앞에서 디오니소스적 발란을 꿈꾸어 본다면 내 앞에, 당신 앞에 내 자신에게로 이르는 어떤 길을 만나지 않을까 한다. 작가는 말한다. 인간의 본성에 접근하려는 노력은 광기를 주목해야 하고, 우리 머리와 가슴속에 꿈틀대는 독해 불가능한 것이 있다면 폭력성이나 광기로 표현되는 신들의 '속삭임'이라고... 모든 것의 시작은 그 앞으로 한발짝 내딪을 때장막을 걷어내고 새로운 세계로 나갈 수 있다.
강민수_Isle of bird (섬-새와 아이)_혼합재료_50×55cm_2012

강민수| Min-Su Kang ● 강민수의 작업은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부활한 인물(대상)들이 작가에 의해 재구성된 마치 연극적인 공간으로 들어와 인물과 공간은 특정 기억으로부터 낯설게 재조합되며 새롭게 다층적인 사유를 생성해 내고 있다. 인물, 공간은 시간성이 담겨져 있을 수 있고, 그 안에서는 여러 맥락과 여러 겹의 층위를 생성해 재창조된 구조를 지닌다. 작가의 주요 관심 코드인 부재는 없고 없어진 지점이 새롭게 인식되는 출발점같은 것이다. 단순한 일상의 풍경이 아닌 여러 맥락에서 시간과 의미를 담고 창조된 작품세계에서는 일상 같으면서 비현실적인 낯설음의 세계를 만나게 되며, 우리는 이 비현실적 그림 안의 숨겨진 기억과 부재에 대한 씨앗이 찬찬히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세상에 없지만 가슴 속에 살아남아 있는 신화화적 공간과 시간 안에서 회화는 힘을 얻고 무한히 확장되는 해석
2012.04.24 15:39:14 / Good : 327 + Good
Powered by GR For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