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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bel

  • 작성시각: 2011.12.18 21:5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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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제목: 12월 새전시



이쾌대展 / LEEQOEDE / 李快大 / painting.drawing  2011_1206 ▶ 2012_0401


이쾌대_푸른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 Self-portrait in blue_캔버스에 유채_72×60cm_1948~9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대구미술관 개관특별전 2부
주최, 기획 / 대구미술관
관람료 일반_1,000원 / 청소년_700원 (20인 이상 단체 : 700원 / 500원)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대구미술관 4,5전시실 DAEGUARTMUSEUM 대구시 수성구 삼덕동 374번지 Tel. +82.53.790.3000 www.daeguartmuseum.org

대구미술관의 4, 5전시실은 대구지역을 기반으로 한 미술사의 흐름을 짚어보고 지역 미술가의 활동과 미술사적 의미를 조명해 보는 공간이다. 이 곳에서 2011년 마지막 전시로 『이쾌대』展을 마련하였다. 이쾌대(1913~1965)는 경북 칠곡 출신으로 1930 ? 40년대 주제에 대한 독특한 발상, 신비한 고전미와 현대적 감성, 해방 후 격동기에 대한 통찰과 비전을 작품 속에 구현한 한국 근대미술사 속에서 보기 드믄 경향의 화업을 펼친 작가이다. 작품적 측면뿐만 아니라 그의 인생 행보 또한 이쾌대를 언급하며 빠뜨릴 수 없는 부분이다. 그는 1988년 월북작가 해금을 통해 우리 앞에 나타난, 분단을 상징하는 미술가이기도 하다. 정치사의 혼란 속에서 생존에 대한 위협은 그를 북으로 향하게 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우리 곁에 남아 탁월한 예술적 감각과 풍부한 표현 기량을 지닌 작가임을 증명한다. ● 이번 전시에서는 군상과 같은 해방공간을 그린 작가, 혼란한 시대 속에서 정치사에 영향을 받았던 거대 담론 속 그의 활동과 인생의 행보 보다는, 예술적 창조 과정 속에서 예술가의 고민과 노력,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추구해가는 작가의 작업 과정에 중점을 두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유화18점 드로잉 66점이 전시된다.
이쾌대_이인초상 Portrait of two people_캔버스에 유채_72×53cm_1939
이쾌대_걸인 A beggar_캔버스에 유채_91×60cm_1948
이쾌대_자화상 Self-portrait_목판에 유채_45.7×38cm_연도미상

작품 창작 초기시절, 도교 제국미술학교 유학 당시 서양화의 다양한 양식을 모색하고 탐구하던 과도기적 작업들인 「여인상」, 어둠 속에서 드러나는 자신의 얼굴을 그린 「자화상」등이 출품된다. 서구화풍의 수용기 과정들을 거치면서 그는 전통적인 소재와 평면적 조형성, 동양화적인 線적이며 얇은 유화기법을 구사하는 이쾌대만의 화풍을 성립하게 된다. 이러한 특징의 작품으로는 「푸른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 「이여성 초상」 「말」 「족두리를 쓴 여인」 등이 있다. 또한 그의 1930년대 일본 유학 시절부터 그려왔던 인물 데생, 캐리커처, 작품 연구, 연습 등 60여점의 드로잉이 전시된다. 우선 자신을 펜으로 거침없이 그려낸 드로잉 자화상, 다수의 작품에 등장 하는 뮤즈인 아내 유갑봉을 그린 초상과 스케치들, 성북회화연구소 시절 그의 제자였던 동양화가 심죽자를 그린 초상 등 하나의 작품으로도 완성도가 높은 인물상들이 있다. 두 번째로 다양한 인물의 운동감, 표정들을 연습한 드로잉이 있다. 세 번째로 이과전에 입상한 「운명」 「저녁소풍」 「그네」와 같은 유화 작품의 작품 구상연습 드로잉이 있다.
이쾌대_이여성 초상화 Lee Yeo Sung_캔버스에 유채_90.8×72.8cm_연도미상
이쾌대_드로잉 Drawing_종이에 펜_17.5×19.5cm_연도미상

이번 전시는 기존 전시에서 보기 힘들었던 자화상, 부인초상, 여인상, 정물화 등을 선보인다. 특히 「푸른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을 포함한 유화 자화상 3점 드로잉 자화상 1점을 비교 감상하는 것도 흥미가 있을 것이다. 이쾌대의 유화 및 드로잉 등 다수의 작품이 전시되기는 95년 이후로 오랜만이다. 그의 대표적인 유화작품과, 그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던 드로잉을 통해 작가의 고민의 흔적과 연습과정의 노력들을 느낄 수 있다. ■ 강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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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자展 / KIMSOOJA / 金守子 / video.installation   2011_1206 ▶ 2012_0401 / 월요일 휴관


김수자_A Needle Woman(네팔_파탄)_비디오_00:10:30_2005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김수자 홈페이지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대구미술관 개관특별전 2부
주최, 기획 / 대구미술관
관람료 일반_1,000원 / 청소년_700원 (20인 이상 단체 : 700원 / 500원)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대구미술관 DAEGUARTMUSEUM 대구시 수성구 삼덕동 374번지 B1 프로젝트룸 Tel. +82.53.790.3000 www.daeguartmuseum.org

이번 기획은 의식적으로 포섭되어 있던 고정개념을 일방향으로 유지하기보다, 벗어나고 빗겨가는 관점에서 새로운 배치를 진입시키는 실험으로 마련되었다. 창고의 시각적 구조에서 출발한 프로젝트룸은 '빛의 차단', 날 것 그대로 노출된 콘크리트 벽면과, '길의 속성_통로와 교차로'를 잇는 형식을 띤다. 공간상에서 이전 전시가 전시장으로의 가능성을 열어 비추는 문맥으로 프로젝트룸을 보여주었다면, 이번 전시는 그것이 지닌 특성 자체를 기획의 큰 줄기로서의 발현이다.
김수자_A Needle Woman(이스라엘_예루살렘)_비디오_00:10:30_2005
김수자_A Needle Woman(차드_자메나)_비디오_00:10:30_2005

프로젝트룸은 애초 18개의 기둥만이 덩그러니 천장과 바닥을 잇고 있는 구조였다. 전시장으로서 기운을 심고자 각 기둥을 잇는 벽채를 완성하고 6개의 기둥을 인공적으로 더해 '통로_길', '교차로_중심'의 형태를 기본 골조로 한 공간조성이 진행되었다. 이 기본 구조는 전시공간으로서의 역할을 기초적으로 수행하면서도, 간접적인 빛이 전혀 들지 않기에 조명의 효과와 빛의 조도를 활용한 각종 설치 및 연출을 효과적으로 이룰 수 있게 하는 이점을 갖는다. '교차로_중심' 방향에서 보이는 각 면은 기본 너비가 6m가 넘기에 공연 및 퍼포먼스, 이벤트 등 여러 각도에서 나름의 공간연출의 규준을 특징적으로 선보이면서도, 특색있는 예술활동을 펼칠 수 있는 기획의 장소로서 그 가능성을 가진다. 따라서 프로젝트룸의 기획은 공간의 특성적인 형태와 더불어, 지역미술의 실험성 발굴, 젊은 예술, 공간해석을 통한 다양한 장르를 연구의 핵으로 삼아 '무차별적인'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펼쳐갈 예정이다.
김수자展_대구미술관 프로젝트룸_2011
김수자展_대구미술관 프로젝트룸_2011

이번 전시는 밀도 있는 공간해석 및 작품소개를 위해 초기부터 하나의 작품으로 구상된 '영상 시리즈'를 소개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구출신으로 세계 무대에서 큰 호평을 받고 있는 작가 김수자(1957)를 초대하였고, 프로젝트로서 선보여 왔던 영상작품들을 스터디하면서 그녀만의 색을 보이면서도 프로젝트룸 해석의 방향성과 유연하게 합치될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첫 시작은 프로젝트룸의 '교차로(십자형) 구조'에 대한 독해였으며, 지속되었던 논의 속에서, '통로형 구조'의 변형체로서 '대칭적인 미로' 구조를 상상하게 되었다. 하나의 프로젝트로 기획된 각 영상들은 기존 설치방식에 따라 구성되기 보다, 의도한 동선 안에 위치한, 다양한 스크린 속에 놓여진다. 작품과 공간이 마치 하나의 설치작으로 일체화되어 공간의 의미가 보다 적극적으로 확장되는 순간이다. 이번 기획에서 본 연구관점에 대한 핵심과 사유의 기준을 마련한 작품은 그의 대표작 '바늘여인(2005)'이다.
김수자展_대구미술관 프로젝트룸_2011

이 작품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종교분쟁과 가난, 국제적 고립과 내전의 상징적인 현장인 파탄(네팔), 예루살렘(이스라엘), 사나(예멘), 하바나(쿠바), 리우 데 자네이루(브라질), 자메나(차드)를 배경으로 한다. 첫 시리즈인 「바늘여인(1999-2001)」은 군중들이 집결해있는 주요 메트로폴리스에서 작가가 자신의 '몸'을 '바늘'로서 인식하고 또한 스스로 '바늘여인'으로 명명하는 일종의 '성소적 의식'이었다. 이에 「바늘여인(2005)」은 세계의 이권과 분쟁, 해결되지 않는 모순적인 대립을 상징하는 장소에 접근하여 자신과 세계,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문제제기를 보다 비교문화학적, 사회학적 인문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더해준다.

이에 연구단계에서 필진의 구성 또한 본 기획의 핵심을 형성하는 중요한 키워드로 작용한다. 우선 체계적 사유의 기획으로 김수자의 전 작업을 문맥화하고(서영희), 작가의 작업을 논할 때 자주 거론되는 '노마디즘'에 대해, 이에 적절한 적용과 해석을 꾀해본다(이진경). 그리고 '원형적' 사유에 대한 단초로서 성찰과 기억에 대한 관점을 보이고(박상환), 문화적 원형에 있어 동아시아의 샤먼사상과 유불도사상을 비교분석한 논문을 참조로 수록함으로써(양회석), 다각적으로 작가와 작품이 지닌 의의를 인문학적 시선으로 유도하기로 한다. ■ 최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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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 Cross Culture project 2011 READING THE SPACE


오피움블루 OpiumBlue展   2011_1213 ▶ 2011_1230 / 일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1_1213_화요일_05:00pm
참여작가 오피움블루 OpiumBlue (본명:David James Hall)
주최,주관 / 캔 파운데이션(CAN foundation)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 휴관
스페이스 캔 Space CAN 서울 성북구 성북동 46-26번지 Tel. +82.2.766.7660 www.can-foundation.org

공간 읽기 : Reading the Space ●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공간空間의 의미는 아무것도 없이 폐쇄된 형태 속에 비어있는 상태를 뜻하며 모든 방향으로 펼쳐져 있는 빈 곳을 의미하기도 한다. 공간의 사전적 의미는 (1) 아무것도 없이 비어 있는 칸, (2) (어떤 물질이나 물체가 존재할 수 있거나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범위, (3) 영역이나 세계를 이르는 말, (4) 물리학에서 물질이 존재하고 여러 현상이 일어나는 장소, (5) 철학에서 시간과 함께 세계를 성립시키는 기본 형식 등이다. 그러나 근대 이전의 공간개념은 일반철학과 자연과학에 있어서 중요한 논의의 대상이었다. 근대 이전 공간에 대한 논의는 건축에서의 공간에 대한 연구로서 국한된 것이 아니라 보다 본질적인 물음으로서,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시작된 서양 철학과 16•7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과학혁명 그리고 동양적 철학에 기초한 공간의 개념에 이르기까지 절대적인 의미의 실재를 이루는 형이상학적인 개념으로 간주되었다. 동양에서는 사이間의 개념을 중요시한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공간間에 관한 개념이지만 시간間과 인간間의 개념을 포괄한다. 서양의 과학이 사물을 구성하는 부분들의 요소를 분석하여 본질을 파악하려고 한 반면, 동양은 '間' 즉 공간요소들 간의 '관계성'에 초점을 두고 그것에서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였다. 동양의 공간은 허虛한 방을 두고, 열린 마당을 두어 무無 또는 여백의 미를 주고, 공간 이용자의 개입과 참여에 의한 공간의 본질이 완성되도록 하였다. 여기에서 허虛는 실實을 유도하는 공간으로, 서양의 빈(void) 공간과는 달리 기氣가 있는 공간이다.(김용옥,『노자와 21세기』, 통나무, 2000, p. 187.)
OpiumBlue_Child Parent 연작_Maya_2011

공간空間이란 하늘과 땅 사이처럼 비어있으면서 계속 퍼져가는 성질의 것으로 감촉할 수도 측정할 수도 없는 것인 동시에 꽉차있는 물질의 본질적인 형식이기도하다. 공간의 개념은 수학, 물리학, 지리학 혹은 자연철학에서 다루어져 왔으며, 공간에 대한 인식이 각 시대의 사회사상과 세계관에 따라 변천하여왔다. 공간은 그 자체로 지각될 수 있기 때문에 공간을 인간화하는 실존으로서의 형태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것이다. 공간 그 자체는 감지할 수 없는 것이지만 공간을 충만한 것으로 느껴지게 하는 것, 예를 들어 빛 또는 물체와 같은 물리적인 요소를 매개로하여 감지할 수 있게 된다. 공간은 그저 비어있는 단순한 공허空虛이거나 무제한적인 용기容器로 표현될 수 없으며 지각할 수 있는 사물의 존재를 전제로 하여 성립하고 이러한 사물들 간의 관계를 통해 공간에 대한 인식의 틀이 형성된다. 인간은 공간을 볼륨으로 파악하는 과정에서 주변 대상물들 간의 역학적 작용에 의해 크기, 방향, 밀도 등을 가진 하나의 총체적인 힘으로 인지하게 된다는 것이다.(권영걸 외 40인, 『공간디자인의 언어』, 도사출판 날마다, 2011, p. 19.)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서양철학과 과학에서의 공간 개념은 그 기본 사상이 동양의 공간 개념과 다르게 철저한 과학적 논증을 통해 발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절대적인 공간의 개념은 새로운 관점과 이론, 그리고 또 다른 과학적 논증을 통해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18세기 말 칸트Immanuel Kant는 공간과 시간을 인간의 직관적인 선험적 조건으로 간주하며 원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김한수,『현대건축에 나타난 공간의 연속성 표현에 관한 연구』, 홍익대 석사논문, 2000, p. 18.)
OpiumBlue_Child Parent 연작_Maya_2011

그러나 1900년대에 들어서 공간은 예술적인 개념으로 인식되는데, 지각의 차원에서 공간개념에 대한 인식은 독일의 철학가 힐데브란트A. Hildebrand와 쉬말소A. Schmarsow에 의해 공식화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쉬말소는 '조각은 1차원적인 수직축에 기반을 두고 있고, 회화는 2차원적인 수평축에 기반을 두고 있는 반면에, 건축은 공간과 시간에 있어서 3차원 세계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하였다. 이들의 미학적이고 예술적 본질로서의 공간 개념은 1920년대에 들어 제3세대 이론가들에게 중요한 철학적 쟁점이 되는데, 당시 큐비즘cubism과 미래파futurism에 의한 시•공간 개념은 연속성이 건축의 본질로 인식되도록 하였다. 그 후,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는 공간을 시•공간의 연속체라고 정의하면서 건축의 시•공간 개념을 물리적인 공간 속의 운동 또는 운동 속의 시각으로 해석하였다. 이렇게 힐데브란트와 쉬말소의 미학적이고 예술의 본질로서의 공간개념은 다양한 양상으로 많은 이론가와 건축가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었으며, 1928년 헝가리 태생의 멀티미디어 아티스트이며 바우하우스의 일원이었던 모홀리 나기Moholy-Nagy의 시•공간의 이론에서 최고의 절정을 보이게 된다.(한나라,『연속적 시선축에 의해 인식되는 공간 지각 현상에 관한 연구』, 건국대 건축전문 대학원 석사논문, 2008, p. 7.)
OpiumBlue_digital landscape_전시장에 설치될 작품의 개념도_2011

공간이 인간에게 작용함으로써 관계를 맺고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이러한 공간과 인간의 관계를 바탕으로 공간체험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공간체험은 공간의 상호 관계적 구조에서 일어난다고 할 수 있으며 건축가뿐만이 아니라 예술가들의 작업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근대의 공간 개념이 공간으로만 인식되어왔다면 현대에 이르러서는 공간이 인간 교감적 공간개념으로 바뀌어 가고 있기 때문에 인간은 항상 공간 속에 존재하며, 환경이나 공간에 의해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많은 부분을 공유하게 된다. 각 공간들은 그 나름대로의 본래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으나 이 공간들은 각 사람 들의 경험에 의해 해석의 차이를 보유한다. 이렇게 공간은 인간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이러한 공간에서 관찰자가 느끼는 체험이 중요시되고 있는 것이다. 공간 체험은 공간의 가장 근본적인 요소이면서 공간과 인간을 연결하는 하나의 매개체적 역할도 하게 된다. 공간은 인간의 지각체험의 장으로서, 인간은 시간의 연속적인 체험에 따라 공간의 다양한 변화를 감지하게 된다. 즉 공간에서의 갖가지 요소 속에서 관찰자는 시각과 감정의 변화 및 심리적 변화를 경험한다. 또한 공간 구성의 여러 요소들은 실제로 공간을 체험하는 관찰자에게 지각적 느낌과 시각적 초점을 제공하여 반응과 행위를 유도함으로써 새로운 감성적 접근을 이끌기도 한다.
OpiumBlue_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진화된 형체_2011
OpiumBlue_핸드폰으로 조정하는 인터렉티브 영상_2011

가장 큰 예로 이러한 현상을 그대로 예술로 끌어들인 설치미술installation을 들 수 있으며, 이는 작품과 공간과의 유기적 관계에 의해서 공간을 재창조하고 예술과 삶의 영역을 통합함으로써 현대미술사조의 새로운 표현방식으로 인식되어 왔다. 공간은 기본적으로 하나의 물체와 그것을 지각하는 인간과의 상호관계에 의해 형성되는 장소인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공간 그 자체와 시간성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공간은 조형의 형성과 정신이 일치하는 장소 이며 공간의 본질, 그것을 규정짓는 모든 요소의 상호작용에 의해 성립된다. 그러므로 공간에 설치한다는 것은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공간에 여러 가지 특성의 에너지를 부여함으로써 새로운 성격의 독창적 공간을 창출하는 것이다.(Edward Luice Smith, Art Today, London, Phoseidon press, 1977, p. 287.) 설치미술에서 근본적인 표현요소는 공간이며 예술적 현실과 공간의 교차지점이 중요한 근거가 된다. ● 이렇게 현대미술은 공간과 매우 유기적 관계를 가지면서 진행되어 왔다. 현대사회구조 속에 살고 있는 우리가 속해있는 이 공간을 어느 지점,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읽어 내려가는가 하는 문제는 작업의 주체인 작가뿐만 아니라 관객에게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간과 공간의 관계에 관해 끊임없이 연구해 온 작가들의 전시는 공간읽기의 다양한 지점을 시사해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 김성희
OpiumBlue_C4 Function(2009)의 관람객의 의한 실시간 연동을 위한, 핸드폰을 이용한 기계장치_2011

오피움블루(OpiumBlue, 본명 David James Hall)는 인간이 실제로 만지거나 보는 것이 아닌 가상의 것과 실재하는 것이 동시에 어떻게 표현되는가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그가 실험하는 여러 특징적인 작업들 중 매핑(mapping) 작업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그는 다면으로 이루어진 구조체를 자신이 읽는 공간에 적절히 배치하는데, 이것이 실재하는 공간이 된다. 여기에 세심하고 계획적인 설계와 모델링을 시뮬레이션 한 후 구조체의 위치와 면을 활용하여 프로젝터로 새로운 영상을 얹는다. 이것이 그의 가상의 공간이다. 또한 이번 전시에는 제작된 공간 안에서 내부에 배치된 구조물 아래와 위에 영상을 투사함으로써 이질적인 요소들이 혼재하며 동시에 마치 그 내부가 다른 공간인 듯 스스로 재배열하거나 이동하거나 변형하는 새로운 작업을 선보인다. 작가는 가상의 공간과 실재의 공간이 별개로 존재하지 않고 동시에 한 장소에서 겹쳐질 때, 그 공간의 맥락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관객이 체험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작가가 배치 및 설정하고 관람자가 이 공간을 체험함으로써 완성되는 본 전시를 통해 공간을 읽는 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며 자기화를 해보는 새로운 체험의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 임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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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JUNG


정동선 추모展 / JUNGDONGSUN / 鄭東先 / painting   2011_1214 ▶ 2011_1223


정동선_큐브_낚시줄, 아크릴칼라, 아크릭박스_17.5×44×10cm_2009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정동선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1214_수요일_06:00pm
기획 / 독립 큐레이터 이진영 후원 / aA 디자인_(주) 아트앤팩토리_네오룩_선화예술고등학교
관람시간 / 12:00am~06:00pm
aA CAfe & Gallery 서울 종로구 소격동 55번지 B1 Tel. +82.2.722.1211

기억 속 한 片鱗으로 推論해본 정동선의 作業 ● 외부세계는 그 객관적 사실들이 작가 나름의 지각체계에 의해서 직관되고, 五感의 유기적인 반응에 의해서 표현된다. 신체가 지각하고 반응하는 관성에 따른 자신과 세계사이의 조화와 갈등. 점?선?면의 조형적 자율성과 質料. 대상과 그것을 표현하고자하는 의도와의 관계는 어떻게 해석해야 되는지, 정동선 그는 과연 무엇을 표현하려고 했는지가 나는 궁금했었다.
정동선_기둥_아크릴칼라, 낚시줄_50×20×15cm_2007
정동선_기둥이 있는 공간_아크릴칼라, 낚시줄_170×80×60cm_2005

세계와 자신의 사이. 자신의 작업 앞에 섰을 때 그는 늘 그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의 문제에 직면한다고 했다. 그것은 작품을 향한 관찰자의 시야에 따라 상대적이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다를 수 있다. 그건 바로 그가 말한 시간과 공간의 상대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동선은 선천적으로 오감이 섬세하고 맑은 사람이다. 예민한 음감을 가졌고, 촉각이 아주 섬세하다. 구의동 오래된 맛 집 '서북면옥' 물냉면가락의 질감과 육수를 즐겼던 미감도 아주 훌륭하다. 이렇듯 타고 난 섬세한 감각은 작업에 임하게 되면 곧 사고의 메커니즘에 표현 욕구를 충동하는 에너지를 공급하고, 동시에 그의 뇌와 신체가 유기적인 협동 작업을 시작한다.
정동선_다리_낚시줄, 아크릴칼라, 아크릭 박스_17.5×48×11cm_2009
정동선_의자가 있는 공간_낚시줄, 아크릴칼라_60×60×30cm_2005

정동선 작업의 본질은 구획된 공간에 투명한 나일론 소재의 씨줄과 날줄을 매고 그 위에 물감이라는 물질을 점착시켜 좌표를 정하는 행위 그 자체일 수 있다. 그의 작품은 세상과 자신의 접점을 찾아나서는 길고도 고단한 여정이기 때문에 구태여 안료들의 현란한 수식이 필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검정색의 작은 물감 입자로 단순화한 좌표만을 반복해서 만들어내고 있다. 고도의 감수성과 긴장감을 가지고 조형공간 그 자체에 집중하는 행위와 그로인한 흔적, 허공에 투명하게 교차하는 선과 선의 접점에 표시된 물감 덩어리들은 보기에 따라 빛을 통과하고 반사하면서 그가 작업의 도구로 삼는 錯視를 유발해 기교적인 부피와 형상을 만드는데 그것은 어떻게 보는가의 시각에 따라 늘 달라진다. 그 형상은 때로는 구, 육면체, 의자, 기둥 같은 형상으로 지각되지만 그 형상이 갖는 의미이전에 그 형상을 이룬 최소단위, 즉 좌표를 결정한 작은 물감덩어리에 더 주목한다. 그 좌표는 작가 정동선이 관심 갖는 외부세계로 통하는 통로이자 자신과 세계가 맞닿아있는 접점이기 때문이다. 정동선에게는 안과 밖, 또는 자신과 세상의 양자관계는 영원히 일치되지 않는 평행선이고 갈등이며, 여기에서 자신이 신념하고 있는 예술의 가능성을 찾았던 것 같다. 대상과 표현의 관계. 선과 선. 그 사이를 메운 재단된 공간의 조각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관계. 결국 예술의 당위성은 그 자체가 형이상학일 때 비로소 성립된다고 믿는다. 예술작품은 표면에 보이는 것으로 다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이면에 다른 무엇을 감추어놓은 逆說일 수 있다. 자신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일상과 예술은 동일시될 수 있는지, 아니면 서로 별개의 것인지를 고민하며 그는 부단히 자신을 의심하고 절대적이라고 믿는 모든 관념을 의심함으로써 외부세계의 실체를 보고 그 본질을 만나려고 했다. 그것은 바로 새로움에 대한 작가로서의 갈증으로 보인다. 그는 좀 더 순수한 눈과 절실한 몸부림으로 자신을 지배하는 모든 타성과 관념을 벗어내려고 참 부단히 애를 썼던 것 같다. 그는 그저 허공에 선을 긋고 물감으로 좌표를 찍고 있었다. 그것이 그가 세계를 탐구해가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정동선의 작품에는 미술에서의 형식적인 분류나 규정은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오로지 미지의 세계를 탐구해가는 자신의 발자국만 허공에 장치한 선위에 남기고 있을 뿐이다. 물감 덩어리가 안내해주는 임의의 좌표, 그것은 그가 혹여나 낯선 곳에서 길을 잃을지도 모를 지극히 인간적인 조바심으로 표시해둔 자기만의 표식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이정표로 삼아 그가 세계와 자신의 경계선을 따라 수행의 여정을 덤덤하게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동선_정육면체_낚시줄, 아크릴칼라_50×50×50cm_2006
정동선_침대가 있는 공간_낚시줄, 아크릴칼라_270×301×60cm_2005

나만의 直感이었을까? 그의 생애 마지막 작품, 몇 날 밤을 꼬박 새워서 만들었다는 '門'의 형상으로 보이는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땐 마치 그가 궁극적으로 궁금해 하는 세계의 통로를 암시하는 것 같은 메시지를 나는 감지하였다. 돌이켜보면 가슴 한구석이 무겁게 메어온다. 많이 그립다. 어떤 식으로든 그가 관심 갖는 삶의 話頭에 대해서 스스럼없이 얘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이젠 나의 무심함만 탓하게 됐다. 그는 홀연히 자신이 손수 만든 그 '門'을 통해 미지의 세계로 먼 여행을 떠났기 때문에... ■ 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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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정원 The Garden of Her


공(로즈)경연展 / KONG(ROSE)KYUNGYUN / 孔敬淵 / painting   2011_1214 ▶ 2011_1227


공(로즈)경연_The Garden of Her_분채, 장지_117×162.1cm_2011

초대일시 / 2011_1214_수요일_05:00pm
후원/협찬/주최/기획 / 노암갤러리
관람시간 / 10:30am~06:30pm
노암갤러리 NOAM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 133번지 Tel. +82.2.720.2235~6 www.noamgallery.com

독자적인 비례에 의한 재기발랄한 현대여성상 ● 그림은 화가 개인의 지극히 사적인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화가 자신이 추구하는 회화적인 이상을 구현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주관적인 이해 및 해석 그리고 찬미가 다름 아닌 그림의 세계인 셈이다. 화가는 그림을 통해 승화된 현실로서의 이상향을 꿈꾸는 것이다. 우리가 그림을 보면서 공감하고 감동하는 것은 거기에 이상화된 현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 공경연의 그림은 일상적인 삶에다 회화적인 아름다움을 조화시킨 독특한 조형공간을 보여준다. 단지 눈에 보이는 사실을 재현하는 형식이 아니라, 주관적인 시각 및 감정을 덧붙여 재해석한다. 그러기에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적지 않다. 소재 및 대상은 현실에 존재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작품 속에서는 실제적인 공간을 초월한다. 즉, 현실과 다른 별개의 회화적인 공간을 영위한다.
공(로즈)경연_The Garden of Her_분채, 장지_162.1×117cm_2011
공(로즈)경연_The Garden of Her_분채, 장지_116.7×72.7cm_2011

여인과 꽃을 소재로 하는 그의 작품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아름다움의 상징인 꽃과 여성은 그 자체만으로도 시각적인 아름다움이 충만하다. 하지만 그는 현실적인 이미지를 그대로 수용하지 않는다. 그 자신의 미적 감각으로 형태를 재해석하는가 하면, 구성의 묘를 통해 실제와는 다른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찾아낸다. 현실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세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이렇듯이 현실과 다른 이미지 및 공간 표현에 기인한다. ● 여성의 이미지를 회화적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실제에서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형태의 미적 쾌감을 불러일으킨다. 올록볼록한 아기들의 팔과 다리를 연상케 하는 도톰한 살집의 여인상은 친근한 느낌이다. 실제의 모양과 달리 과장되거나 왜곡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생경하지 않다. 이는 전체적인 조화를 깨뜨리지 않는 아름다운 비례가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자신의 독자적인 미적 감각에 의해서 강구된 비례인 것이다. 따라서 재해석된 여성의 이미지는 시각적인 불편함을 주지 않는다. 아기들처럼 올록볼록한 형태미가 오히려 시각적인 즐거움을 유도하는 까닭이다.
공(로즈)경연_The Garden of Her_분채, 장지_116.7×72.7cm_2011

그의 작업은 채색화임에도 결코 진부하지 않다. 이는 소재 및 제재의 참신성과 무관하지 않다. 즉, 재기발랄한 젊은 여성들의 활동적인 일상의 모습을 구성적인 이미지로 표현함으로써 현대적인 여성미가 싱그럽게 피어난다. 자기표현에 능숙한 재기발랄한 현대여성의 헤어스타일과 민소매의 의상, 또는 누드라는 이미지를 통해 건강한 여성상을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작품전에서는 여성의 피부를 바탕색을 그대로 활용하는 등 새로운 조형적인 모색도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이다. 바탕색과 피부색이 일치하는데도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통일된 색채이미지로 인해 일반적인 채색 인물화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를 지어낸다. ● 그는 작품 하나하나에 고유의 의미를 부여한다. 다시 말해 내용을 담는다. 이번 개인전에서는 「그녀의 정원」이라는 명제의 연작이 출품되는데, 그 이전의 작품들의 경우 「고향의 향기」 「꿈」 「아침의 구름」 「달과 별 그리고 바다」 「별」 「태양의 춤」 「하얀 바람」 「새벽을 깨우는 향기」 등의 명제를 달고 있다. 이처럼 작품 명제에서 알 수 있듯이 현실에서 보고 느낀 감정 및 감회를 마치 수필을 쓰듯이 단편적인 이야기 형식의 그림으로 만드는 것이다. 여성으로서 겪는 일상의 삶이 회화적인 이미지로 재해석되는 셈이다. 그의 그림에서 여성의 이미지는 생기가 넘치는 모습이다. 힘찬 기운을 느끼게 하는 활동적인 이미지는 심신이 건강한 전형적인 현대여성상이다. 자기주장이 명확할뿐더러 매사에 적극적인 한국여성상을 함축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공(로즈)경연_The Garden of Her_분채, 장지_116.7×72.7cm_2011

그는 이처럼 삶에 긍정적인 젊은 여성상을 통해 그 자신의 꿈과 희망과 사랑, 그리고 낭만적인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지 모른다. 조그만 일에도 거의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예민한 감수성의 여성들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감정변화가 고스란히 그림 속에 투영되고 있는 것이다. 그의 그림에는 젊음의 향기가 가득하여 감상자는 절로 흥겨운 기분이 된다. 삶에 대한 긍정의 논리 위에서 전개되는 그의 그림은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진정한 찬미이고 찬가이기에 그렇다. ■ 신항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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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이다 & 묶다 Attach & Bind


황인선_전윤조展   2011_1201 ▶ 2011_1214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1_1201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빔 GALLERY BIIM 서울 종로구 화동 39번지 Tel. +82.2.723.8574 www.biim.net

'붙이다 & 묶다' 展에 붙여... ● 시대정신이라 함은 한 시대의 사회, 경제, 정치, 문화적 형태 등과 관련하여 보편적으로 목격되는 인간의 정신적 태도나 양식, 혹은 이념을 일컫는다. 볼테르는 시대정신을 '역사를 움직이는 힘'이라고 피력하였고, 헤겔은 '민족정신'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것은 동시대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며 동시에 과거 사람들의 의식구조를 엿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와 발전에 따라 해당 시기의 시대정신 또한 진보한다. 정신이 진보하지 못하고 멈추어 있는다면 그것은 그 시기에 종결되는 일회성의 산물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설적이게도 보편성에 대한 상대주의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 늦가을로 가는 비가 며칠째 내리는 삼청동 길은 참 고적합니다. 이번 가을은 참으로 훌륭했습니다. 이 비가 그치면 삼청동 길에는 초겨울의 정취가 또 남다를 것입니다. ● 평면과 입체, 다양한 종류의 미디어 아트 작업을 하는 참신한 작가들을 발굴하고 전시를 통해 대중과 함께 소통하는 장을 마련해 온 갤러리 빔은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계절의 초입에서 두 역량있는 젊은 작가의 『붙이다 & 묶다』展을 마련했습니다. ● '밥풀' (붙이다) 과 '실' (묶다)을 소재로 설치 작업하는 두 작가 황인선과 전윤조의 2인展 『붙이다 & 묶다』는 작업 매체인 밥풀을 '붙여서' 작업하는 황인선 작가와 실을 '묶어' 작업하는 전윤조 작가의 작업 방식을 표현하는 단어에서 착안하여, 서로 다른 주제로 작업하는 두 작가의 작업에서의 소통 및 관계 모색이라는 공통성을 끌어내어 보려고 합니다. 또 최소한의 공동체 단위인 가족, 나아가 공동체 내에서의 소통단절을 한 밥상에 모여 앉히고 밥풀을 한 톨 한 톨 붙여가듯 끊임없이 대화를 붙여가는 시도를 통해 단절을 부수려는 황인선 작가의 작품과, 어린 시절 얻은 청각장애로 인해 늘 '고독과 소통의 경계'에 서있는 자신이 반영된 수없는 많은 인형들을 만들어내는 전윤조 작가의 작품은 자신의 내면의 고통을 작업을 통해 자신을 치유하고 나아가 타인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면에서도 서로 닮아 있습니다. ● 밥과 실이라는 여성이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가장 일상적으로 대해온 소재의 붙이기와 묶기 작업을 통하여 여러분들과 고통스럽게 또 편안하게 소통하고자 하는 젊은 두 작가의 방문을 허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윤상훈
황인선_빨,노,초 신호등_밥풀 casting_실물크기_2011
황인선_pink pig_밥풀 casting_실물크기_2011
황인선_밥상 위의 연금술 : 동서의 대화_실물크기_2009
황인선_밥상 위의 연금술 : 동서의 대화_실물크기_2009_부분
황인선_소실되어가는 - 밥부처 I II_흰밥풀 casting_15×15cm_2011
황인선_밥상조합_밥풀 casting_실물크기_2010
황인선, 전윤조_밥상조합-항상 우리는..._2011

붙이다 Attach ● '붙이다'라는 단어는 밥풀 한 톨 한 톨을 붙여 몇 백 개의 밥풀(밥알)이 모여야만 비로소 자그마하나마 하나의 작업이 완성되는 본인작업의 반복적 특성을 규정할 수 있는 단어이다. ● '붙이다'는 서로 다른 사물을 연결한다는 물리적인 의미에서부터 출발하여 인간의 관계 형성을 도모한다는 심리적, 사회적 측면에서의 의미로까지 다양하게 해석 및 쓰임이 가능하다. 이를테면, '말을 붙이다'라는 문장에서는 관계 형성의 첫 단추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이름을 붙이다'에서는 사물의 개념을 규정한다라는 의미로도 사용하고, '정을 붙이다, 재미를 붙이다, 흥미를 붙이다'와 같은 감성이 들어간 문장에서는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심리적인 연결고리를 나타내기도 하며, 심지어 '싸움을 붙이다'에서는 관계의 파국까지도 연결하는 의미로도 활용된다. 이러한 다양한 의미들 중에서 '밥풀을 물리적으로 서로 붙여서 관계 (소통)를 형성해본다'는 이중적인 의미를 선택해 전시 제목으로 사용하였다. ● 영문제목인 attach의 경우, 한 단어에서 여러 쓰임과 의미 형성이 가능한 한국어의 다중적 다의적 특성때문에 적절한 영어단어의 선택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한 한계를 인정하는 상황에서 '붙이다'에 해당하는 여러 가지 영단어중에 'Attach'를 선택한 이유는 이 단어가 수동형으로 쓰일 때 '단체에 소속(참여)시킨다'는 의미와 '애착을 느낀다, 좋아한다'는 심리적인 의미를 함께 지니기 때문이었다. ● 이번 전시에서는 반복적 작업행위인 '붙이다'를 단초로 다양한 밥풀 작업을 전시한다. ● 기존 작업들은 밥풀들이 그것들을 담는 용기인 그릇으로 만들어지는 순환적인 의미를 지닌 기존의 밥(풀) 작업과 그 용기들이 밥상위에 놓여짐을 통한 소통구조 탐색 (밥상 위의 연금술 - 아슬아슬한 대화)을 추구하는 작업, 그리고 그 음식을 먹는 인간(아이) (밥풀 - I)를 형상화한 작업이었다면 이번엔 밥풀이라는 소재를 이용하여 다양한 개념을 시도해보는 쪽에 중점을 두었다. ● '밥'이라는 소재가 가진 의미에 집중하다 보면 자칫 소재주의에 빠질 수 있는 만큼 '붙이는' 방식을 그대로 쓰되 결과적으로 작품들이 '밥풀'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없을 지경으로까지 시도함으로써- '밥'이라는 소재가 가진 그 진지하고도 무거운 (물론 토속적/향토적이기도 하고 해학적이기도 하지만)의미를 넘어선 자유롭고 다양한 해석을 유도하고자 했다. 이를테면 밥에 여러 가지 색소를 첨가하여 알록달록한 신호등 색을 내는 작업과 동시에 이전의 일상적 소재에서 더 나아가 돼지저금통과 부처두상이라는-탐욕과 해탈이라는 상반된 가치를 지닌 아이콘이기도 하다-고급스러운 것과 대중적인 소재들을 떠내기 (casting) 기법으로 작업한 작품들이 그 결과이다. ● 이번 『붙이다 & 묶다』전시는 최근 두 번의 개인전에서 주로 밥풀 중심으로 보여줬던 밥상 이미지에서 다음 개인전으로의 변화의 단초를 제공하고 징검다리의 역할을 한다는 의미에서 중요하다. 다양한 공간이 서로 접목되어 마치 아기자기한 이야기 거리를 내놓는 듯 한 갤러리 빔의 공간적 특성을 충분히 활용하여 이 방에서 저 방으로 걸어가며 또 다른 새롭고도 재밌는 이야기 보따리가 짠~!하고 등장하듯 다양한 밥풀 작업을 설치해보려고 했다. ■ 황인선
전윤조_자기반영II_면사, 철사, 가변설치_2011
전윤조_마음의 소리_면사, 철사, 가변설치_55×23×15cm_2011
전윤조_항상 우리는..._면사, 철사, 가변설치_45×40×30cm_2011
전윤조_그림자에게_면사, 철사, 콩테_30×25×20cm, 그림자_가변크기_2011
전윤조_기다림_면사, 철사, 가변설치_40×20×15cm_2011
전윤조_눈물없이_유리구슬, 스티커, 실, 못, 합판_가변크기_2011
황인선, 전윤조_pink pig_빨,노초 신호등_자기반영 II_2011

묶다 Bind ● "가능한한 손으로, 노동집약적으로, 감성적으로, 시적으로, 순수한 마음으로 그리고 욕심없이." ● 작업은 청력 손실과 더불어 살아가는 일상생활에서 나오는 심리적인 경험을 드러낸다. 나는 세상이 만들어내는 소리들, 사람들의 목소리들과 발음들을 구분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 이 모든 소리들이 서로 다른 소리들임에 불구하고 보청기는 이들을 같은 음량으로, 귀가 울릴 정도로 크게 확대시키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체적 상황에서 원하는 만큼 사람들과 자유롭게 소통하기 힘들다. 주변으로부터 고립된 듯한 느낌을 자주 갖는데 그 정신적 경험은 내 작업에서 계속해서 다루는 주제 전반에 내재하는 근본이다. ● 작업의 주재료는 면사 중에서 가장 가는 0.1mm의 실이다. 이 재료의 가장 큰 매력은 가늘지만 강렬한 존재감을 은근히 드러내 보이는 물성이다. 전혀 염색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면사의 색감은 내게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듯한 이중적인 느낌을 준다. (최근에는 검정색 - 무채색으로 염색해서 흰 면사와 병행해서 작업하는 중이다.) ● 이 재료는 가늘고 약하면서도 길이에 제한이 없기 때문에 상당한 시간과 반복적인 노동이 요구된다. 이러한 작업과정은 어릴 때부터 받아온 언어훈련 -말문을 트이기 위해 수없이 반복하고 고쳤던 훈련과정과 방법적으로 유사한 점이 많다. (한 예로 '사과'의 발음을 이해하고 외우기 위해서는 최소 800번을 긴 시간에 걸쳐 반복해야 한다.) ● 나는 정상적인 몸과 비정상적인 몸을 함께 만드는 작업을 주로 해왔는데, 이러한 시도는 정상인과 장애인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동시에 느껴왔던 개인적 경험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온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청력손실은 다른 신체장애와 달리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장애이기 때문에, 말문을 열거나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상대방은 나를 평범하게(이른바 정상인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부정확한 나의 발음과 청력의 문제를 알게 될 때 그들의 눈빛과 표정은 미묘하게 변화하게 된다. 이런 종류의 경험들은 내가 장애인인가 혹은 비장애인인가에 대한, 기본적인 자기 정체성 확립에 적지 않은 혼란을 끼쳐왔고 지금도 그 정체성에 대한 불확실함을 느끼는 중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작업은 나의 내적인, 신체적인 경험의 서술일 수도 있고, 또는 정신적 불안감에서 바라본'나는 무엇인가'라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탐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 이전 작업은-'비정상'의 범주를 현실적인 범위에서 이를테면 실제 장애인에 가깝게 한쪽 팔,다리만 있는 식의 인형을 여러 개 만들려는 시도를 했다면, 최근 작업은 현실적이든 비현실적이든 간에 실 특유의 엉키는 이미지나 공간을 가로지르는 가느다란 존재감과 같은 물질성을 일종의 심리적'은유' 로 바라보려고 하면서, '비정상'의 범주를 제한하지 않고 손 하나, 발 하나, 다리 하나던 간에 자유롭게 만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 나의 작품은 신체적 결함으로 인한 심리적 고립과 소통의 제한으로 인한 심리적 한계에 대한 경험의 한 순간일지 모르겠다. 그러한 의미에서 나에게 작업은 마음에 남겨진 상처들을 다시 열어보는 동시에 조금씩 계속해서 치유하는 과정 그자체이기도 하다. 또한 작품을 전시한다는 건 스스로의 숨겨진 심리를 열어 보이는 것이고 그 순간으로 관객을 초대하면서 그들 역시 겪었을 지도 모를 동류의 느낌과 일종의 공감을 시도하는 셈이다.
전윤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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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na Contemporary4


강세경_정도영展   2011_1215 ▶ 2012_0101


정도영_School Assembly_도자기에 중화도안료_125×125×11cm_2011

초대일시 / 2011_1215_목요일_05:00pm
기획 / 가나아트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가나 컨템포러리 GANA CONTEMPORARY 서울 종로구 평창동 98번지 Tel. +82.2.720.1020 www.ganaart.com

2011년 Gana Contemporary 시리즈의 마지막 이야기, 강세경 & 정도영의 2인展 ● 가나아트는 역량 있고 참신한 젊은 작가들을 소개하는 Gana Contemporary 시리즈의 네 번째 전시로 강세경(1973- )과 정도영(1982- )의 2인전을 개최한다. 2011년 Gana Contemporary 시리즈의 마지막인 이번 전시에서 강세경과 정도영은 '현실'과 '욕망', '개인'과 '군중' 등 동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보편적 이슈를 저마다의 발랄한 기지와 유희적 상상력으로 그려낸다. 극사실적이면서도 세련된 도시적 감수성을 보여주는 강세경의 작품과 회화와 오브제의 만남을 통해 모험적이면서도 유쾌하고 풍자적 재미를 지닌 정도영의 작품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삶의 면면을 재발견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강세경_Seen201105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11
강세경_Seen201107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11
강세경_Seen201110_캔버스에 유채_162×130cm_2011
강세경_Seen201101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11
강세경_Seen201103_캔버스에 유채_112×162cm_2011

강세경, 현실을 넘어선 인간의 욕망과 그 한계를 포착하다. ● 강세경은 흑백으로 굳어진 일상의 풍경을 뚫고 캔버스 밖으로 돌진하는 자동차의 모습을 통해 '현실'과 '욕망' 그 사이의 경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견고한 액자 틀 밖으로 온전하게 나오지 못한, 화려하게 채색된 고전풍의 자동차에서 우리는 그것이 손에 닿을 듯 말 듯 한 욕망의 대상이자, 현실에서는 완전히 이룰 수 없는 박제된 꿈임을 발견하게 된다. 결국 그녀의 작품 속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흑백과 컬러, 평범한 거리의 풍경과 호사스럽게 치장된 꿈의 자동차, 프레임을 경계로 갇힘과 벗어남 등의 상충되는 개념은 현실로부터 끊임없이 일탈을 꿈꾸게 하는 욕망의 충동적 속성과 반복성, 현실을 벗어나서는 이야기될 수 없는 욕망의 한계를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시각화하여 드러낸다.
정도영_욕실침공_도자기에 중화도안료_114×114×9cm_2011
정도영_B-boy_도자기에 중화도안료_55×50×12cm_2011

정도영, 현대사회의 군중으로 흡수된 개인, 그 스펙터클한 풍경을 기록하다. ● 정도영은 매스미디어가 쏟아내는 수 많은 볼거리와 감각적 경험들, 그리고 이에 반응하는 대중의 이상심리에 주목하며 이들의 표정과 시선을 만화적 캐릭터를 통해 해학적으로 풀어낸다. 한 순간에 조각날 수 있는 세라믹 재질의 오브제 표면 위에 빼곡히 그려진 인물들의 과장된 표정과 과감한 색채는 현대 대중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제, 곧 군중(mass)으로 흡수된 개인, 대중의 판단을 감각적이고 정서적으로 치우치게 만드는 매스미디어의 자극적 특징을 절묘하게 반영하고 있다. 특히 텔레비전 화면의 경쾌한 속도감을 닮은 화면구성과, 마치 충돌의 상황처럼 연출된 작품은 한 가지 이슈에 빠르게 관심을 갖고 감정적 흥분을 드러내는 대중들의 심리적 메커니즘을 잘 드러낸다.
정도영_Concert_도자기에 중화도안료_40×25cm_2011
정도영_Disco_도자기에 중화도안료_125×125×11cm_2011

현대인의 삶에 내재된 여러 모순들의 변주를 예술로 담아내다. ● 강세경과 정도영의 작품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이미 일상이 되어버린 다양한 모순들, 즉 현실과 욕망, 개인과 군중의 모습을 세련되고 재치 있는 표현으로 담아내는데, 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시각적 즐거움과 함께 심리적 공감대를 형성하게 한다. 두 작가에게 예술이란 가시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일상의 미묘한 궤적들을 드러내는 행위이자 권태로운 일상의 모습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기재이다. 본 전시를 통해 관람객은 상대적으로 단조롭게 느껴지는 일상의 이야기가 저마다의 독특한 예술적 상상력으로 변주된 풍경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 가나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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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개국으로 떠나는 그림책 상상여행


2011_1215 ▶ 2012_0122 / 백화점 휴점일 휴관


니콜레타 바티(Nikoletta Bati, 헝가리)_『Homes』_Photoshop CS4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30am~08:00pm / 금~일_10:30am~08:30pm / 백화점 휴점일 휴관
롯데갤러리 청량리점 LOTTE GALLERY CHEONGNYANGNI STORE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591-53번지 롯데백화점 8층 Tel. +82.2.3707.2890 www.lotteshopping.com blog.naver.com/lotte2890

롯데갤러리 청량리점은 지나간 한 해를 정리하고 다가올 2012년을 준비하는 연말연시를 맞이하여,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25개국으로 떠나는 그림책 상상여행』展을 개최합니다. 이번 전시는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독일, 헝가리, 이란, 러시아, 일본, 호주, 멕시코, 콜롬비아 등 세계 25개국에서 활동하는 그림책 작가들의 일러스트레이션과 그림책, 동물조각 등 총 130여 점의 평면과 입체 작품들이 전시됩니다.
페가 카제미(Pegah kazemi, 이란)_『The Frantic Phantom』_아크릴채색
마이클 로허(Michael Roher, 오스트리아)_『...6,7,8, Gute Nacht』_혼합재료
나탈리 푸다로브(Natalie Pudalov, 이스라엘)_『Story of a Rat』_혼합재료, 아크릴채색
타카유키 쿠도(Takayuki Kubo, 일본)_『Deliver the Window』_메조틴트
『Dos pajaritos』 글_Dioacho(Diego Francisco Sanchez), 일러스트레이션_Dioacho(Diego Francisco Sanchez) 출판사_Random House Mondadori, 국적_Colombia, 크기_22×21cm
설총식_『Walker-Student』_합성수지에 우레탄 페인팅_190×85×85cm_2007

각 국가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독특한 상상력과 개성 넘치는 그림들은 유쾌한 일상과 모험, 환상과 꿈의 이야기 속으로 우리들을 인도합니다. 어린이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고,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 마음으로 소통할 수 있는 그림책의 세계! 따뜻한 인간애와 순수한 영혼을 만날 수 있는 이번 전시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롯데갤러리 청량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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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갑술 풍경


황지윤展 / HWANGJIYOON / 黃志允 / painting   2011_1214 ▶ 2011_1230 / 월요일 휴관


황지윤_둔갑술 풍경展_갤러리175_2011

초대일시 / 2011_1221_수요일_06:00pm

주최 / 갤러리 175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175 Gallery 175 서울 종로구 안국동 175-87번지 안국빌딩 B1 Tel. +82.2.720.9282 blog.naver.com/175gallery club.cyworld.com/gallery175


"어떤 때 보면 구름은 용처럼 보인다. 연무는 어떤 땐 곰 아니면 사자처럼 우뚝 솟은 성채처럼, 불쑥 솟은 바위처럼, 갈라진 산봉우리처럼, 아니면 푸른 갑처럼 보이고 그 위에 나무도 나 있어, 세상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산들바람으로 우리의 눈을 속인다." (셰익스피어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 황지윤의 풍경을 세세히 살펴보고 있노라면 어떤 당혹감이 찾아온다. 풍경의 일부로 보였던 것들이 실은 마법 같은 둔갑술을 부리고 있는 형상들임이 하나 둘씩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서로 어떤 관계도 갖지 않는 요소들 간의 돌연한 근접 혹은 둔갑술은, 함께 그려졌다는 사실만으로 마법 같은 힘을 획득한다. 돼지는 구름처럼, 갈매기는 파도 물거품처럼, 개구리는 바위처럼 슬그머니 화폭에 몸을 웅크리고 있다가, 관객이 알아보면 그제서야 제 모습으로 돌아온다. 한편, 전시된 화폭에 등장하는 광폭한 자연이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에서는 낭만주의 풍경화의 '픽처레스크'와 '숭고' 개념이, 실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풍경을 주제 삼은 데서는 동양 산수화의'의중 산수' 개념이 겹치고, 돌연히 얼굴을 내미는 형상들에서는 전통 민화부터 키치의 일종인 이발소 그림까지 줄줄이 떠오른다. 이곳저곳에서 불러 모은 듯한 풍경 조각을 호출해 한 화면에 버무려 놓은 이 불가능한 풍경에서 도리어 작가의 태연한 구축술이 드러난다. 그런데 이 풍경이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
황지윤_landscape 1_캔버스에 유채_65×193.9cm_2011

푸코는 보르헤스의 소설에 나오는 중국인들의 동물 분류법에 관한 글 한 토막을 읽고 터져 나온 웃음에 현기증을 느끼며『말과 사물』의 서두를 연다. 보르헤스가 허구적으로 꾸며낸 중국인들의 동물 분류법의 항목에는 '사육동물'과 '광폭한 동물'처럼 일견 이치에 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서로 다른 기준을 갖는 이질적인 것들이 함께 자리하고, 여기에 '인어'나 '전설상의 동물'처럼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동물들도 합세한다. '주인 없는 개'처럼 일시적인 정체성, '멀리서 볼 때 파리처럼 보이는 동물'로 이어지면서 독자는 점차 분류 자체의 불가능성에 다다른다. 푸코는 나와 타자를 구별할 수 없는 판국에 다다라 '헤테로토피아'를 구상해낸다. 헤테로토피아는 그것 자체에 얼마간 다른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장소이다. 애초에 불가능한 것은 상상 속의 존재들이라기보다 그것들 간의 근접이 이루어질 수 있는 '장소'다.
황지윤_landscape 2_캔버스에 유채_116.8×72.7cm_2011
황지윤_롯의 증언1(The Testimony from Lot)_캔버스에 유채_53×72.7cm_2010

다시 황지윤의 풍경으로 돌아오자. 태고의 모습을 간직한 자연이라는 점에서 이 풍경들은 일견 이상적인 곳, 유토피아로 보인다. 역동적 풍경은 세부에 눈 돌릴 여지를 주지 않는 커다란 주제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볼수록 눈에 드는 이질적 요소들과, 이것들이 한 장소에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풍경이 실은 헤테로토피아임을 말해준다. 이 풍경을 두고 유희를 벌이고자 하는 관객에게, 곰브리치가 당부했던 '순진한 눈'을 귀띔해 주고 싶다.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을 바로 보기를. 그러면 이 풍경은 천연덕스레 감추고 있던 형상들을 하나 둘씩 내어줄 것이다. ■ 우아름
황지윤_landscape 14_캔버스에 유채_72.7×116.8cm_2011
황지윤_달빛 그림자_캔버스에 유채_193.9×112.1cm_2007

'자연 속의 자연' ● 이발소 그림이나 정형화된 산수화(동양화)는 매너리즘화된 그림이다. 이 그림들은 감상자에게 잠재된 일반적인 욕구들을 소환하기 때문에 사람들과 쉽게 소통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그림들은 굳이 전시장이 아니더라도 일반 가정, 관공서, 이발소 등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풍경화의 공통된 기억을 환기시킨다. 물레방아가 자리 잡은 시냇가의 배치와 '이발소 그림'들의 정형화된 표현 방식을 사용함으로써 감상자로 하여금 그림에 더 쉽게 접근 할 수 있도록 하였다. ● 전체적으로 마치 이발소 그림이나 정형화된 산수화 그림으로 보이지만 세부 내용 속에 감추어진 이질적인 요소들의 배치를 통해 감상자가 스스로의 심리적 풍경을 유추하면서 그림과의 대화를 이어 나아가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그림의 전체적인 풍경으로는 환상 속에 자리 잡은 이상적 공간을 연상하였다. 그러한 풍경의 안정된 구도를 뒷받침하기 위해 물감의 색을 두 가지에서 다섯 가지로 정하여 전체적인 색채상 균일되고 통일된 느낌을 끌어내었고, 단순한 풍경과 수많은 이질적인 요소들이 하나의 틀에 자리를 잡을 수 있게끔 전반적인 형태의 안정감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였다. 대상을 숨기거나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로 색을 이용하였고, 어떠한 부분에서는 세밀하게 대상을 묘사하여 전체적으로는 두드러지게 드러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림 속에서의 그 형태가 살아있도록 표현하였다. ● 자연 속의 자연 이라는 주제로 작업을 풀어가면서 자연 속에서 되살아나는 형태들로 하여금 공포, 유희 등의 감상자를 향한 심리적 자극을 불러일으켜, 이 작업의 풍경이 단순한 자연 배경이 아닌 감상자 개인의 심리적 풍경(자연 속의 자연)으로 역추적 되는 효과를 낳고자 하였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자연과 사람과의 관계를 주관적 기억이라는 매개로 해석하고자 하였고, 기존에 있던 풍경화나 산수화를 보다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표현하여 기억에 대한 해석에 위트가 가미되도록 하였다. ■
황지윤_거꾸로 풍경_캔버스에 유채_193.9×112.1cm_2007

Shape-shifting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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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ob


이성수展 / LEESOUNGSOO / 具廷宣 / painting   2011_1215 ▶ 2011_1229


이성수_audience series1-good laugh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10502b | 이성수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1215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팔번가 8th street gallery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42-139번지 Tel. +82.2.969.0003


The mobLIFE IS FULL OF CONFLICT, WHICH MAKES IT SO BRILLIANT ● 근래에 그리고 있는 작품들은 사람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내가 발견한 사람의 참 본성은 산속에 있는 개인일 때가 아니라 오히려 집단으로 군중 속에 일부로서 존재할 때 나타난다. 개인은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고 하고 나타내려고 하지만 그 근원적인 외로움과 고독은 인간이 애초에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임을 반증할 뿐이다. 나는 우리임과 동시에 나였다. 늘 그래왔다. 관계성을 벗어난 개인을 난 온전한 인간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
이성수_audience series3-applause_캔버스에 유채_91×116.8cm_2011
이성수_audience series4-common desire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11
이성수_great depression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11

A PROPER SPOT LIGHT MAKES ANYTHING SAINT ● 마치 trinity_성삼위의 하나됨과 같이 우리모두는 united plurality의 속성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내가 네가 되고 우리가 하나의 정체성을 갖는 순간의 쾌감은 축구경기장의 관중석에서, 군가를 재창하는 서열에서, 한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교회에서, 심지어 말없이 함께 눈물 흘리는 객석에서도 경험되어진다. ● 그러나 내가 전체주의를 신봉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군중으로서의 정체성을 인정한다고 해서 군중의 모든 악을 추구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개인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관계성이 약화될 때 인간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행복이 제한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군중이면서 개인일 수 있는 성숙하고 아름다운 참 인간상이 어떤 것인지.
이성수_hopping for joy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11
이성수_How can I love you more_캔버스에 유채_91×116.8cm_2011
이성수_peep_캔버스에 유채_60.6×72.7cm_2011

EVEN THOUGH YOU CAN PROJECT YOURSELF TO SOMETHING, IT DOSEN'T MEAN YOU BECOME EXACTLY THE THING AT ALL. ● 군중, 군중은 어리석다. 군중은 과잉반응하고 군중은 잔인하다. 군중은 책임회피적이고 군중은 단순하며 군중은 보수적이고 군중은 본능적이다. 그러나 군중의 존재를 부정하고 억압할 수만은 없는 이유는 나와 네가 바로 군중이기 때문이다. 매 순간순간 나는 새로운 군중의 하나로서의 정체성을 갖는다. 어떤 때는 몇 개의 다른 집단에 소속되어 집단이 움직일 때마다 난 군중이 된다. 가족들과 모여 나초를 먹으며 남북공동팀 vs. 미국팀의 경기를 보면 난 참 많은 집단에 속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며 우리팀이 골을 넣을 때에는 축구장에 모인 군중들만큼 소리를 지르는 걸 보면 내가 어디 있나 생각을 하게 된다. ● 더 나아가 모이지 않고 골방에 있을 때에도 군중의 구성원의 정체가 사라지지 않을 때도 있다. 마치 방금 항쟁을 마치고 최루탄에 쫓겨 골방에 숨어들어온 열사처럼 그 정체성이 상당히 오래 나를 지배할 때도 있다. 개인이면서도 군중의 일부인 시간을 경험하는 것이다. ● 난 군중의 의미를 확장시켜서 사용하고 있다. 그 이유는 군중의 의미가 너무 작게 사용되어왔기 때문이다. 개인과 집단 관계를 보여주는 모든 이미지 실험을 하고 있는 근래에 난 지나치게 군중이라는 용어에 경도 되어 모든 존재와 정치와 종교마저도 군중이라는 단어로 해석하고 있다. ● 촛불집회, 중동의 소요와 정권붕괴, 북한의 독재, 예술가와 예술계, 목사와 교회, 상징과 해석, 사랑과 믿음, 물질적 욕망과 숭고함 등이 군중이라는 단어로 내가 실험하고 있는 인간본연의 문제이다. ● IF YOU MAKE ME LAUGH, I WILL LAUGH.이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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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알리아 2008-2011


2011_1216 ▶ 2012_0119 / 일,공휴일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시대정신 / 김남표_김진_김현수_배준성_송필 신동원_신영미_임태규_장승효_정해윤_최수앙 Poster! Poster! / 고명근_김문경_김민정_김상균 나점수_박상희_박선기_유현미_이민호_이상원 이여운_장석준_최태훈_한성필_황선태_황은화 경계집단 / 김용관_김윤재_백종훈_서상익_서지형_오은희 유의정_윤위동_이경하_이동조_이림_이재훈_최재천_한형록 Finding Masterpiece / 김민경_이동재_이명호_이은범 From Reality To Illusion / 송중덕_신흥우_임선미_조명식 Hot Place / 고근호_윤기원_찰스장 빛으로 하나되다 / 채은미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인터알리아 아트컴퍼니 INTERALIA ART COMPANY 서울 강남구 삼성동 147-17번지 레베쌍트빌딩 B1 Tel. +82.2.3479.0114 www.interalia.co.kr


時代精神 ● 시대정신이라 함은 한 시대의 사회, 경제, 정치, 문화적 형태 등과 관련하여 보편적으로 목격되는 인간의 정신적 태도나 양식, 혹은 이념을 일컫는다. 볼테르는 시대정신을 '역사를 움직이는 힘'이라고 피력하였고, 헤겔은 '민족정신'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것은 동시대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며 동시에 과거 사람들의 의식구조를 엿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와 발전에 따라 해당 시기의 시대정신 또한 진보한다. 정신이 진보하지 못하고 멈추어 있는다면 그것은 그 시기에 종결되는 일회성의 산물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설적이게도 보편성에 대한 상대주의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특정 시기의 예술적 시대정신을 따질 때는 당연히 해당 시대의 대표가 되는 이를 근거로 제시하기 마련이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예술의 경우 본인의 결과물이 훗날 어떠한 방식으로 역사에 기록 될 것인가와 관련된 사안은 예술가에게 있어서는 가장 큰 화두일 것이다. 역사에 기록된 예술가와 그의 작품은 해당 시기의 시대정신으로 간주되며 동시에 그의 대표작이 바로 해당 시대를 반영한 예술품으로 칭송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리를 2011년 한국 미술에 대입해 본다면 과연 누구를 시대의 예술가로 꼽을 수 있을까. ● 물론, 사관(史觀)이나 가치관에 따라 동시대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 수 있겠으나, 2000년 이후로 한국의 시대정신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로 인터알리아는 본 작가들을 선택했다. 참여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철학과 논리, 그리고 표현 방식은 이들의 출현 이후 국내외 미술계에 새 바람을 일으켰고, 그로 인한 한국 미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게 하였다. 세월이 지난 후 이들이 보편적인 사(史)적 관점에서, 그리고 진보한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어떠한 시대정신으로 간주될 것인지를 기다려 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 윤상훈
김남표_instant landscape-garden_artificial fur, 캔버스에 목탄_194×259cm2011
배준성_The Costume of Painter-Phantom of Museum L, Nike with bouguereau js_ 캔버스에 유채, 렌티큘러_162×227cm_2011
임태규_fly away home # 29_한지에 오리엔탈 컬러, 잉크_65.5×87.5cm_2011
정해윤_relation_oriental water color on thick mulberry paper_80.3×100cm_2011

Poster! Poster! ● 포스터의 사전적 정의는 광고나 선전을 위한 매개체의 하나로, 일정한 내용을 상징적인 그림과 간단한 글귀로 나타내어, 길거리나 사람의 눈에 많이 띄는 곳에 붙이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사용하는 포스터는 영미권에서 주로 사용하는 단어이며, 이 명칭은 본래 기둥이나 말뚝, 푯말을 뜻하는 post에서 유래된 말이다. 즉 사람의 왕래가 많은 곳 등의 기둥이나 벽에 고지문을 부착하여 어떤 소식이나 포고문을 알리는 기능을 시작되었다고 보면 될 듯하다. 사실 포스터의 기원은 고대 이집트에서 도망친 노예를 체포하려는 포고문이 효시라고 한다. 그 후 인쇄술의 발달과 더불어 20세기 들어서면서 바우하우스의 영향아래 레터링과 레이아웃의 근대화로 괄목한 성장을 이룩했다. 특히 근대 포스터가 선전매체로서의 구실을 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1차 세계대전 때부터라고 한다. 즉 모병, 방첩 등의 포스터는 그 위력과 중요성이 사회의 큰 관심사가 되었고, 전후 상업전선분야의 발달과 함께 널리 이용되었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고 급격히 발달한 TV와 라디오 등 전파매체로 인하여 포스터의 대중전달 기능이 상대적으로 약화되긴 했으나, 여전히 다양한 형태와 진보적인 디자인의 형태로 현재까지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 진부한 포스터에 대한 설명과 이번 전시의 상관관계는 다음과 같다. 이번 전시는 인터알리아에서 2010년 개최되었던 전시 『아케이드 프로젝트』와 『낯선 시간 낯익은 공간』의 POST전시라는 점과 함께, 두 전시 모두 20세기 이후에 급속히 진행되었던 도시화 세계화에 따른 기원과 역사 그리고 그에 따른 비판의식을 담고 있는 전시였다는 점에서 POSTER의 기원과 기능에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또한 전시 도록의 역할을 다시 한번 곱씹어 보면서, 각 전시 주제에 걸 맞게 제작되었던 2장의 포스터를 당시 참여했던 작가분들(고명근, 김문경, 김민정, 김상균, 나점수, 박상희, 박선기, 유현미, 이상원, 이민호, 이여운, 이재효, 장석준, 최태훈, 한성필, 황선태, 황은화)과 함께 선보이는 자리를 만들어 보고자 함이다. ■ 김미령
박선기_an aggregate201103_charcoal, nylon threads, etc_270×60×60cm_2011
유현미_십장생 No.10_C 프린트_50×75cm_2011
한성필_Neo City_크로모제닉 프린트_117×136cm_2006

경계집단 ● 경계집단은 본래 속해있던 어떤 문화권에서 벗어나 새로운 문화권에 들어오게 되면서 현재의 상태에 온전히 적응하지 못한 채 정체성의 혼돈을 경험하는 집단을 일컫는다. 이러한 경계집단적 체험은 주로 이민세대들이 겪게 되는 현상으로써, 본토와 출생국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하게 되는 것을 예로 많이 든다. 이를 테면 미국인 사회 속으로 이주해 온 유대인과 같이 다수자 집단과 소수자 집단의 경계에 있는 사람을 경계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 본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대부분 70년대 중반 ~ 80년대 초반 생으로서 이들은 '국기에 대한 맹세'와 '국민교육헌장'을 암기하는 억압된 군사정부 시절에 유년기를 보냈다. 또한 그것에 대한 보상심리로 대중이 민주주의를 위해 과열된 행동을 하는 것을 목격하였으며 이후 정보화를 기반으로 세계 속으로 뻗어나가며 자본을 축적시키는 상황을 모조리 경험하였다. 이들이 독립된 사고를 하게 된 이후 세상은 잉여 된 자본을 담보로 급격하게 변화하였으며, 시대는 386세대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자들을 기성세대로 만들었다. 사회 보다는 개인이 우선시되는 만연한 집단 이기주의적 현실 속에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들은, 부폐한 사회에 대해 광장에서 항거하기 보다는 인터넷 토론방을 이용하고, 사회적 담론 보다는 개인의 정체성에 대해 더 민감해 하는 세대들과 부대끼며 살아간다.
서상익_이제 때가 되었군2_캔버스에 유채_80.3×130.3cm_2011
윤위동_contrast 68_종이에 수채_27.5×22.5cm_2011
이림_confusion no.3_캔버스에 유채_189×116.5cm_2010

결과적으로 이들은 작품에 모호한 관점을 반영한다. 기성세대가 작품을 통해 시대의 요구를 설파하던 방식과는 확실한 차이가 있으면서도, 동시에 눈가리개를 한 경주마처럼 주변을 모조리 뿌리치고 앞으로만 질주하는 새로운 세대들의 작품과도 닮아있지 않다. 참여 작가들은 여전히 방황하는 한국 미술계에서 젊은 작가로서 경험하게 되는 모호한 현실, 당사자가 겪게 되는 갈등들을 작품에 적나라하게 표출시키고 있다. 대한민국의 보수적 미술계 속에서 더없이 많은 정보를 습득하며 세계화된 시각으로 작품세계를 풀어나가는 이들은, 소위 사이에 '낀 세대'이며 분명 경계집단의 성격을 띄우고 있다. 동시에 이들은 대한민국이라는 지역적 색채가 뚜렷한 새로운 경향과 독특한 사조를 만들어 내어, 한국 미술의 역사를 새로 쓸 장본인이기도 하다. ■ 윤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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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정원 Red Garden


이용석展 / LEEYONGSUK / 李容碩 / painting   2011_1216 ▶ 2011_1230


이용석_붉은정원11-11한지에 주묵_70×75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81105g | 이용석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1216_금요일_06:00pm

송년음악회 / 2011_1222_목요일_07:00pm

관람시간 / 월~토요일_12:00am~06:00pm / 일요일_12:00am~05:00pm

갤러리 담 GALLERY DAM 서울 종로구 안국동 7-1번지 Tel. +82.2.738.2745 www.gallerydam.com


붉은 정원은 온실을 구성하고 있는 철골 구조물을 사라지게 하고 그 자리에 울타리에서 벗어난 동물원의 동물들을 배치하여 현대사회의 구속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소망을 표현한 작가의 심리적 공간이다. 화면의 주된 색감인 주묵(朱墨)의 붉은색은 식물원에서 내뿜는 열기와 기운 그리고 자유로움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붉은 정원 작품은 바쁜 일상 속에서 삶의 여유로움을 갖지 못하고 살아가는 현대 도시인들에게 안식과 아울러 자유로움을 꿈꿀 수 있는 회화공간이 되고자 한다. ■ 이용석
이용석_붉은정원11-04_한지에 주묵_116×156cm_2011
이용석_붉은정원11-12_한지에 주묵_90.5×116cm_2011
이용석_붉은정원11-07_한지에 주묵_91×117cm_2011
이용석_붉은정원11-05_한지에 주묵_94.5×116cm_2011
이용석_붉은정원11-08_한지에 주묵_91×117cm_2011
이용석_붉은정원11-08_한지에 주묵_83×63.5cm_2011

The nature that Lee, Yong-S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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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다색다감


雪中之夢展   2011_1215 ▶ 2012_0120 / 월요일 휴관


구성수_Photogenic Drawing Series 활련화_C-print_224×164cm_2011

초대일시 / 2011_1215_목요일_06:00pm

2011 Multi-Colored Sentiment : A Daydream In The Snow

참여작가 강준영_구성수_김수강_김혜련 문봉선_박선기_서상익_조규성

관람시간 / 11:00am~07:00pm / 12월 31일, 2012년 1월 1일, 월요일 휴관

갤러리 잔다리 GALLERY ZANDARI 서울 마포구 서교동 370-12번지 Tel. +82.2.323.4155 www.zandari.com


눈 중에 꿈을 꾸다 ● 우리는 자연의 경이로움 앞에 설 때 일상의 번잡스러움을 잠시 내려놓게 된다. 그 경이로움이란 말 그대로 압도적인 대자연의 웅장함일 수도 있고, 이와는 반대로 집 앞 마당이나 들길 같은 아주 낮고 사소한 곳에서 만나는 잔잔한 감동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인간이 빚어낸 상황이나, 행위에서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예술'을 보는 행위가 갖는 우선적인 의미는 그 자체로 어떤 이야기나 선언에 앞서 미적 감동을 준다는 데 있다. 그것은 또한 마음을 열기만 한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가능할 수 있다. 이에 『2011 다색다감』展의 주제 '설중지몽'은 눈 내리는 중에 빠져드는 찰나의 몽상처럼 예술감상이 먼저 몸과 마음의 안식을 취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강준영_"I'll be there for you."_캔버스에 유채_117×91cm_2011
서상익_프리드리히 숲_캔버스에 유채_97×162.2cm_2011
조규성_#6_플렉시글라스에 피그먼트 프린트_120×150cm_2008

이번 전시에는 강준영, 구성수, 김수강, 김혜련, 문봉선, 박선기, 서상익, 조규성 등 여덟 명의 작가들이 참여한다. 이들은 회화, 사진, 조각, 도예 등 여러 매체와 주제를 망라한다. 작가들이 선 보이는 소재와 이야기들은 이들 각각의 작가적 취향과 신념을 반영하는 감성적 사유의 흔적들이다. 때로 그것은 달항아리와 거리미술(street art)의 요소 등이 혼합되거나 표현주의적인 회화의 문법 안에 동양적 정서를 담아냄으로써 작가의 내면적인 감성을 효과적으로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고(강준영, 김혜련), 정형적인 형식 안에서 일정의 미학적, 조형적 신념을 끈질기게 펼쳐나가는 것(김수강, 문봉선, 박선기)일 수도 있다. 또 다른 한 편으로 다양한 형식적 경계의 모색(구성수)이고, 스스로를 화면 안에 대상화(서상익, 조규성)하여 작가적 관심을 실험해 나가는 과정일 수도 있다.
김수강_White Vessel 19_중크롬산염 검 프린트_70×90cm_2006
김혜련_절대적 눈물_캔버스에 유채, 자르기와 바느질_80×80cm_2010
문봉선_霧_한지에 수묵_75.5×143cm_2010
박선기_Point of view1008-1_혼합재료에 채색_37×46×7cm_2010

전시를 구성하면서 의도한 바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다색다감"이 뜻하는 것처럼 전시에 가능한 한 다채로운 형식과 감성을 담고자 했다는 점이다. 나아가 그 동안 젊은 작가들을 주로 발굴하고 소개하는 데 힘써 온 갤러리 잔다리의 성격과 방향성을 유지하면서도, 그 형식이나 연령대의 측면에서 작가 층의 폭을 넓히고자 했다. 이런 이유로 만약 감상자들이 전시장에서 묵직한 관록과 참신함이 잘 조화되어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게 된다면 전시가 어느 정도 그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고 있는 것으로 봐도 좋을 것이며, 또 그럴 수 있기를 희망한다. ■ 윤두현

 

 

2011.12.18 22:00:01 / Good : 508 + Good

za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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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Sides

2011_1212 ▶ 2012_0211



초대일시 / 2011_1215_목요일_06:00pm 초대일시 / 2011_0112_목요일_06:00pm

Part 1 / Memory Mapping 2011_1212 ▶ 2012_0107 참여작가 / 강은구_김봄

Part 2 / Casimir Effect 2012_0112 ▶ 2012_0211 참여작가 / 김미나_김현정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비원 Gallery b'ONE 서울 종로구 화동 127-3번지 Tel. +82.2.732.1273 www.gallerybeone.kr


Bi-Sides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2011년의 마지막 달과 2012년의 첫 번째 달. 마지막과 시작이 맞닿아 있는 12월과 1월은 지나가는 시간의 뒷 모습과 다가올 시간을 사색할 수 있는 좋은 시기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은 어떤한 장소에 흔적을 남기면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사라져가는 도시의 풍경, 낡아 버린 사물들. 우리는 과거가 될 현재의 기록을 남기고 회상하며 추억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를 점쳐 본다. 그래서 지나간 시간에 대한 노스탈지와 다가올 시간에 대한 불안감은 지금 이순간을 가장 잘 설명 할 수 있는 감정들일 지도 모른다.
김봄_林_캔버스에 먹, 아크릴채색_72×90cm_2011

기억회로Memory Mapping란 전자공학 용어로 기억의 내용을 어떤 장소로 옮기는것을 뜻한다. 마치 우리가 어떤 장소에 기억과 감정들을 묻어 놓는것 처럼 말이다. 흐르는 시간은 눈으로 볼 수 없지만 공간의 변화, 그리고 우리 안에 쌓인 기억들로 자신의존재를 증명한다. 사실 우리는 감각 기관을 통해 외부세계를 인식하고 그에대한 기억들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하지만 종종 현재의 감각은 기억에 의해 왜곡되고 조종되기도 한다. 마치 어느 장소에 담긴 기억은 그와 유사한 곳에서 회상에 잠기게 하고 과거의 시점으로 되돌아가게 만들거나 달콤한 노스탈지로추억 장소를 다시 찾아가게 만들기도 하는것 처럼 말이다.
강은구_12구역의밤_steel, LED프로그래밍, 우레탄코팅_80×115×7cm

도시, 자연, 먼 이국의 어딘가를 걷는 순간에도 노스탈지와 곧 일어 날, 곧 보게 될 사건들이 공존하는 그 공간 속에서 우리의 기억은 끊임없이 시간을 조작한다. 사라진 역사를 풍경 속에 재배치 하거나, 지리적인 수치와 구획을 배제하고 기억에 의해 캔버스 위에 재배치하는 김봄의 회화와 자신의 기억 속의 장소를 끄집어 내어 빛과 함께 그가 장소에서 얻은 인상을 구조물로 만드는 강은구의 스틸 작업은 삶 속에서 시간을 분리시킨다는 것은 단지 모두를 위한 편의상의 규칙일 뿐 사실 시간은 공간과 함께 자의적으로 기억을 재생 시킬 수있다는것을 보여준다.
김미나_The Village, X_단채널 비디오_00:03:00_2009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김미나는 기호로 가득찬 모호한 공간을 탐색하는 의식의 행보와 의미들의 충돌에서 발생한 또 다른 의미들을 추적해 간다. 보이는것에 대한 의심을 통해 기억의 본질에 도달하려는 김현정의 회화는 우리가 내면에서 흐르고 있는 시간의 작용을 지각함으로 가시세계에 남아있는 잔상과 그것에 배어있는 감정들 그리고 가장 진실했던 그 '순간'과 '공간'을 재현해내려 한다. 이 두 작가의 작업은 우리에게 시간이란 뿌연 안개 속을 걸어가듯이 과거와 미래 사이에 존재하는 지금이란 것을 보여준다.
결코 사라지지 않는_Never dissapear_캔버스에 유채_90.9×65.1cm_2010

그리고 이 두 시간대에서 끊임없이 생겨나는 의미들과 감정들. 마치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두 대립체를 끊임없이 확장시키는 캐시미어 효과 Casimir Effect 처럼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불안과 막연한 기대감을 느끼며 우리는 삶의 의미를 찾아내려 한다. 그리고 모호함 너머의 명증성과 불안감 너머의 희망이 공존하는 바로 이곳이 또 다른 시작을 향해 나가는 출발점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 Kihyun Camille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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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의 선택


국립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형예술학과 우수졸업작품展   2011_1221 ▶ 2011_1227



초대일시 / 2011_1221_수요일_06:00pm

참여작가 권지혜_김희라_박가람_박란숙 백호현_변상환_천영수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이즈 GALLERY IS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0-5번지 Tel. +82.2.736.6669 www.galleryis.com


타자의 선택 ● 2011년부터 국립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형예술학과는 졸업전시 작품들 가운데 우수작품을 선정하여 기획전시를 갖는다. 이 우수작품 선정 과정은 미술현장의 전문인 세 명을 초청하고, 각 심사위원이 2명에서 3명의 작가를 선정하게 되며, 선택된 작가들은 『타자의 선택』이라는 전시제목과 함께 미술현장을 향한 첫 그룹전을 갖게 된다. 2011년 우수 졸업작품전 심사위원으로는 김민용(텔레비전 12대표), 김희영(금천예술공장 프로젝트 매니저), 홍보라(팩토리 디렉터)를 초청했고, 권지혜, 김희라, 박가람, 박란숙, 백호현, 변상환, 천영수가 선택되었다. ● '우리'라는 표현에는 편안함과 푸근함이 있다. 그 속에는 타자가 아닌 '나'와 '너'와의 관계- 그 어떤 유대를 아우르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진학과 졸업을 거듭하면서 '우리'에서 또 다른 '우리'로 관계를 형성해 온 기억을 갖고 있다.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할 때마다 우리는 익숙함을 떠나는 아쉬움, 새로움을 맞닥뜨리는 두려움을 느껴왔다. ● 여기 7명의 젊은이들이 '타자의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그룹전을 연다. 우리는 같은 대학 같은 학과에서 함께 작업실을 쓰고 얼마 전 함께 졸업 전시를 연 동문들이다. 그 전시에서 세 명의 '타자들'(김민용, 김희영, 홍보라)에게 선택되어 이번 전시의 기회를 갖는 행운을 얻었다. 졸업을 앞둔 시점에서 작가로서 첫발을 함께 내딛는 또 다른 '우리'들이 된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의 의미는 그리 단순하거나 평범하지 않다. 동문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처음으로 낯선 현실의 조건에 놓여진 것- 그 선택과 배제의 과정은 우리들이 겪어야 할 사회와 많은 부분이 닮아 있다. 그것은 작가와 관객, 작가와 작가, 개인과 사회, 항상 나와 타자를 동시에 품어야 할 우리들의 현재와 미래를 상기시켜 준다. 이번 전시는 미술 현장에 첫걸음을 내딛는 각기 다른 주체들, '우리'에서 각각의 '타인'으로 발돋움하는 7명의 작가로서의 새로운 시작을 예고한다. 그 의미를 규정하는 중심에는 항상 '나'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타자의 선택'이 주는 묘한 긴장감은 그러한 인식의 성장통을 우리 모두가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 변상환

권지혜_Mind Architecture_혼합재료_193×140cm_2011

오늘도 집에서 나와 이곳저곳으로 발길을 옮긴다. 나는 일상 속에서 무수히 많은 공간과 마주하고 있다. 어떤 공간 내부에 들어서면 건축물의 구조가 현실 속 나의 물리적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그 안에서 나를 둘러싼 기하학은 내 조형적 감각을 자극하며 상상 속에서 그 구축을 연장하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건축물로서의 공간은 사라지고 감각의 대체물로서의 추상적 구성이 자리한다. 결국 현실의 건축물은 예측 불가능한 나만의 이상적 공간으로 재탄생한다. ■ 권지혜
김희라_이 시발년아_혼합재료_116.8×80.3cm_2011

살다보면 가슴 속에 묻어두게 되는 말이 생긴다. 내 그림이 별로라고 말하는 선생님 앞에, 이제 질렸다고 나를 떠난 옛 연인에게... 나는 그렇게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텍스트를 찾아 화폭 위에 옮겨놓는다. 중첩된 물감이 내 감정을 대변해주듯 텍스트를 따라 흐르고 번져 말의 분위기와 어투를 상상하게 한다. 말하지 못해 가슴 한 켠에 묻어두었던 말이 그림을 매개로 누군가에게 보여 지게 되면서 생겨나는 해방감은 내게 작은 카타르시스를 준다. ■ 김희라
박가람_Untitled_캔버스에 유채_61×61_2011

현대인의 불치병중 하나, 여드름. 여드름이 난 얼굴을 보고 "얼굴에 왜 이렇게 열꽃이 폈어?" 라고들 말한다. 기분 나쁜 말이다. 차라리 얼굴에 여드름 대신 진짜 꽃이 폈으면 예쁘기라도 할 텐데. 이렇게 여드름은 사춘기 시절부터 줄곧 나를 괴롭히는 콤플렉스이지만 이것을 예쁘고 귀엽게 표현하여 '긍정적인 콤플렉스'로 만들고자 한다. 그림 속 여자아이는 얼굴이 여드름으로 뒤덮였지만 여전히 깜찍하고 사랑스럽다. 이제 여드름쟁이는 화나지 않는다. 얼굴이 반짝반짝 알록달록 더 예뻐졌으니까. ■ 박가람
박란숙_학생_캔버스에 유채_89.4×145.5cm_2011

길거리에서 여고생들이 함께 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면 학창시절 추억들이 문득문득 떠올라 그리움과 동시에 공허함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묘하게도 여학생들을 바라보다 보면 그러한 감정과 더불어 습관적으로 그녀들의 다리 실루엣으로 눈이 가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림 속 인물들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소녀들의 일상적인 모습이지만 그들이 나의 작업이 되는 순간 타인의 시선에 극도로 예민한 내가 오히려 타인의 신체를 좇는 모순적 찰나가 되고 그들은 내 감정이 이입된 피사체가 된다. ■ 박란숙
백호현_촙_단채널 비디오_00:07:29_2011

일상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연상되는 다양한 이미지들은 때로는 날 괴롭히고, 때로는 날 즐겁게 해준다. 무수히 나타났다 사라지는 이미지들 중에는 '이거 한번 그려보아야 되겠구나!' 하는 것들도 있어 글, 또는 드로잉을 통해 그것들을 표현한다. 영상작업 '촙'의 경우, 놀이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다. 레슬링에서 손등으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단순한 행위를 소재로 한 이 영상은 사소하고 유치하게 여겨질 수 있지만 관객은 감상 후, 별 것 아닌 행동을 반사적으로 따라하고 즐기게 된다. ■ 백호현
변상환_주말의 명화산_꿀상자, 석고붕대, 피규어_38×35×19cm_2010 변상환_무제_마호가니 밥상, 식탁다리_84×90×69cm_2010

겨울에는 특히나 더하다. 청량한 하늘을 배경으로 멀리 보이는 바위산처럼 항상 거기 있지만 어느 순간 뜬금없이 존재감으로 다가오는 생경한 풍경들이 있다. 작업실과 집을 잇는 길에서, 서민들의 주택가 골목골목에서 새삼 눈길을 잡아두는, 내 표현을 빌리자면 조각 같은 녀석들. 이를테면 난데없이 주택 대문 앞에 놓여있는 큼지막한 바위덩이. 이 녀석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급속한 도시화 속에 남아있는 자연에 대한 향수인가, 아니면 영험한 힘을 지닌 돌에 대한 정령신앙인가? 그것도 아니면 주차금지 표지판을 대신하는, 주택 시공 당시 파헤쳐진 짱돌이란 말인가? 출근길, 흐트러진 구두끈을 매기 위해 올려놓는 발판 정도로 지나쳤을 거리의 이 바위덩이를 난 오래도록 바라보고 매만져 보고, 또 그 위에 앉아서 생각도 해보는 것이다. 통속적 유행가 가사가 어느 순간 통속을 벗어나는 지점을 제시하는 것- 그곳에 내 작업이 위치한다. ■ 변상환
천영수_스타워즈_캔버스에 유채_100×200cm_2011

실패를 경험하거나 불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갈 때 현실도피를 생각하게 되며, 스트레스 해소나 시간 죽이기란 명목 하에 게임이나 영화등과 같은 매체에 빠져든다. 이상과 현실과의 괴리가 사라지며 상상속의 공간이 현실 속의 공간이 되기 시작한다. 작업 속의 상황들은 매체들과 나의 공상이 혼재된 공간이다. 그림 속 인물들과 상황은 실존의 이미지들로 대체된다. 어린이들의 상상을 어른의 현실과 충돌시킴으로써 현실도피가 아닌 꿈과 이상의 회복을 시도하고자 한다. ■ 천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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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재한 공간-소리없이 흐르는 시간


전은희展 / JUNEUNHEE / 田銀姬 / painting   2011_1221 ▶ 2011_1226


전은희_통시적 풍경_한지에 채색_130×200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00912c | 전은희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1221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주말_10:00am~06: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4층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전은희의 회화-시간과 흔적과 부재를 머금고 있는 벽 ●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벽에 난 미미한 얼룩이나 크랙에서 풍경을 보는데, 자연과 같은 전원풍경을,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를, 그리고 심지어는 전쟁과 같은 인위적인 장면을 모두 벽에서 본다. 벽 자체에 내재된 이미지라기보다는 작가의 상상력이, 심안과 혜안이 보아낸 이미지일 것이다. 가시적인 것을 통해서 비가시적인 것을 보아낸 직관적 이미지일 것이다. ● 이처럼 비가시적인 것을 암시하는 가시적인 풍경들이 있다. 벽이 그렇다. 말라붙은 담쟁이 넝쿨로 뒤덮인 벽이나 낡고 해진 벽을 보고 있으면 저만한 그림도 없지 싶다. 벽 자체는 사람이 만든 것이지만, 벽 위에 그려진 그림은 바람이 그린 것이고 비가 그린 것이고 시간이 그린 것이고 풍화가 그린 것이다. 이처럼 자연으로 하여금 그림을 그리게 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은 단순히 자연이 그린 그림 이상으로, 사람이 만든 벽이 오랜 시간 자연에 노출되면서 점차 자연에 동화돼가는 느린 과정을 보여준다. 사람이 만든 벽과 자연 사이에 그림이 있고, 그 그림은 자연에 완전히 동화될 때까지(그래서 흔적도 자취도 없이 사라질 때까지) 벽을 만든 사람의 흔적을 그림으로 그려 보여준다. 그러므로 그림 자체는 자연이 그린 것이지만, 정작 이를 통해서 암시되는 것은 자연의 속성이 아닌 사람의 흔적이다. 그리고 그 흔적을 캐내고 냄새 맡기 위해선 약간의 우울한 기질(혹은 연민?)이 필요하다. 존재보다는 존재가 암시하는 부재(그 끝이 순수한 무에 닿아있는)에 공감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부재를 그리워하는 절실한 마음(아니면 최소한 알 수 없는 끌림이라도)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전은희_부재한 공간-소리없이 흐르는 시간_한지에 채색_180×960cm_2011
전은희_부재한 공간-소리없이 흐르는 시간_한지에 채색_130×400cm_2011

전은희는 벽을 그린다. 처음에 작가는 상징적 의미 때문에 벽을 그리기 시작했다. 벽은 나와 너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경계다. 그 경계 안쪽에서 나는 세상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다고 느끼고 고립돼 있다고 느낀다. 그리고 벽에 작은 창문을 냈고, 그 창문을 통해 너와 소통하기 시작했다. 불통의 벽이 소통의 벽이 된 것이며, 나에게로 닫혀있던 경계가 너에게로 통하는 네트워크로 확장된 것이다. 그렇게 나는 너와 연결될 수가 있었다. ● 하지만 이처럼 나는 너와 소통할 수 있게 되었지만, 나는 네가 그리고 너는 내가 될 수는 없으므로 이때의 소통은 불완전한 소통일 수밖에 없다. 너를 전제로 한 대화가 아닌, 너를 소외시킨 독백의 형태로서만 겨우 소통할 수가 있을 뿐이다(독백도 소통의 한 형식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그렇게 언젠가는 너에게 가닿을 수 있다고 한다면). 그렇게 벽은 견고했고, 창문이 위안이 될 수는 없었다. 창문은 마치 세상을 향한 소통의 문을 활짝 열어주었지만 그럴수록 현대인으로 하여금 익명 뒤에 숨고 자기 속에 숨게 만드는, 그래서 오히려 더 자기소외를 심화시킬 뿐인 윈도의 메타포 같다. 소셜네트워크는 다만 인간관계를 표면적으로만 피상적으로만 확장시켜줄 뿐이다. 타자를 전제하지 않은 주체의 불가능성이나 타자를 향한 윤리적 공감에 대한 레비나스의 전언에도 불구하고 그 공감이 나와 너 사이의 비가시적인 벽을 허물어줄 수는 없는 일이다. 어쩌면 벽은 실존적 조건이며 자의식의 표상일지도 모른다.
전은희_낯선 공간_한지에 채색_133×75cm_2011 전은희_붉은 의자_한지에 채색_133×75cm_2011
전은희_흐려진 시간_한지에 채색_120×200cm_2011

이렇게 작가는 적어도 표면적으로 벽에서 꽉 막힌 고집을 보았고, 타협할 수 없는(처음부터 타협의 대상이 아닌) 자의식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소통가능성은 다른 곳(이를테면 상징적 의미가 아닌 실존적 의미)에서 찾아질 터였고, 따라서 작가는 그 다른 곳을 찾아 헤맨다. ● 도시에는 변두리가 있고, 변두리는 도심에도 있다(달동네). 그곳에는 도시로부터 소외된 사람들과 사물들이 모여 산다. 그렇게 모여 살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사람도 떠나고 사물도 떠난다. 그리고 미처 떠나지 못한 사물들은 사람들이 떠나면서 남기고 간 흔적과 함께 버려진다. 그렇게 재개발건축 현장에는 원주민들이 버리고 간 집터며 담장 그리고 사물들이 어우러져 부재의 풍경을 연출한다. 그리고 그렇게 부재하는 풍경을 자연이 접수하면서 또 다른 존재의 풍경을 만든다. 그래서 그곳은 무슨 부재와 존재 사이의 풍경 같다. 자기를 아로새기려는 흔적의 고집과 그 흔적을 몰아내려는 자연과의 분투로 치열한 풍경 같다. ● 그 풍경 속에 서면 삶의 흔적들이 무슨 혼령이나 망령들처럼 우르르 몰려온다. 그렇게 나는 타자의 삶 속으로 들어갈 수가 있고 타자의 삶을 엿볼 수가 있다. 그렇게 만나지는 타자(엄밀하게는 타자의 흔적)는 사실은 익명이지만, 왠지 익명 같지가 않고 살갑게 다가온다. 그가 가꾸던 텃밭이며, 세숫물로 씻어 내렸을 계단, 한때는 희고 알록달록한 빨래들로 치렁치렁했을 빨랫줄, 볕이 잘 드는 담장 밑에 앉아 햇볕을 쪼였을 의자며, 칼바람을 조금이나마 막아낼 요량으로 쪽 창문에 덧댄 합판조각 사이로 그가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그의 채취가 냄새 맡아질 것만 같다. ● 그렇게 작가는 상징적 의미가 아닌 실존적 의미(지금 여기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사건이며 일)를 매개로 비로소 타자와 만나질 수가 있었고, 타자와 소통할 수가 있었다. 그렇게 타자와 소통한다는 것, 타자의 삶(혹은 살?)속으로 들어간다는 것, 타자의 삶에 내 삶이 겹쳐진다는 것, 그리고 그로부터 나를 발견한다는 것, 그가 다름 아닌 나 자신일 수 있음을 인식한다는 것 모두가 작가 속으로 우르르 몰려들어와 작가의 인격의 일부가 될 수가 있었다. 작가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며, 자신의 그림을 통해서 환기시키고 싶은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 작가는 시종 벽을 그렸다. 그림 스타일로 볼 때 결코 다작이 가능하거나 용이한 경우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꽤나 많은 벽들을 그렸다. 하도 많은 벽들을 그리다보니 하나같이 벽다움이 오롯해지는 경지에 이른 것 같다. 그 벽들은 심지어 사진보다 더 사실적이다. 그렇다고 무슨 극사실 회화를 떠올릴 필요는 없다. 여기서 사실적이라는 말은 시간과 흔적과 부재가 무슨 상징적인 기호처럼 그림의 표면 위를 겉도는(그래서 끼워 맞추는) 식이 아니라, 벽 속에 스며들고 아로새겨져 마침내는 벽의 일부가 된(벽에 무슨 실존 같은 것이 있다면, 벽의 실존이 된) 차원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그 벽의 질감(그 자체 타자의 삶의 질감이며 흔적의 질감이기도 한)은 직관적으로 일순간에 가능한 것은 아니다. 몇 번이고 거듭되는 덧칠을 통해서 종이 밑바닥에서부터 배어나오는 질감인 것이며, 그 자체가 타자의 삶의 질감이 작가 자신의 삶의 질감이 될 때까지 반복 덧칠해가는 동화의 과정이기도 하다. 그렇게 작가는 벽을 통해서 타자의 삶 속으로 스며들어갈 수가 있었고, 타자가 될 수가 있었다.
전은희_자라는 공간_한지에 채색_180×160cm_2011
전은희_하얀 시간_한지에 채색_73×61cm_2011 전은희_부재한 정원_한지에 채색_73×61cm_2011

이역만리를 정처 없이 떠돌던 시절 시인 백석은 아마도 만주의 한 여인숙에 든다. 그리고 그 허름한 방의 흰 바람벽을 스크린 삼아 「흰 바람벽이 있어」란 시를 쓴다.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후략). 꼭 그렇지는 않지만 예나 지금이나 벽은 대개 쓸쓸한, 외로운, 가난한,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예비 된 캔버스며 스크린이다. 세상에서 의지가지없는(혹은 의미를 찾지 못한) 사람들이 상상력으로 지은 지상의 처소다. ● 현대는 벽이 없는 시대다(밀란 쿤데라는 비극이 없는 시대라고 했다). 세상 끝까지 열려있는, 그래서 숨길 수도 숨을 수도 없는 시대다. 모든 것은 명명백백해야 한다. 그래서 오히려 숨길 수 있고 숨을 수 있는 벽이 그리운 시대다. 작가는 그렇게 너와 나를 가로막고 있는 벽이 아니라, 서로에게 스며드는 벽을, 서로의 가림막이며 몸이 되어주는 벽을 그리고 있었다 ■ 고충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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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ack


이영희展 / LEEYOUNGHEE / 李榮姬 / installation   2011_1221 ▶ 2011_1226


이영희_무제_혼합재료_가변설치_1991

초대일시 / 2011_1221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가나아트 스페이스 GANAART SPACE 서울 종로구 관훈동 119번지 Tel. +82.2.734.1333 gana.insaartcenter.com


자연과 문명의 틈에서 솟아나는 생명 ● 이영희의 작업은 자연에서 시작된다. 이것은 작가가 사용하는 재료들의 대부분이 자연에서 비롯 된 것이기여서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그가 이러한 재료들을 사용해서 만들어 낸 오브제 들이 대지의 모습 즉 풍경Landscape을 묘사하거나 은유하기 때문이다.
이영희_무제 untiltled_혼합재료, 가변설치_1998
이영희_섬 Island_혼합재료, 가변설치_1998

'틈 Crack'은 이영희가 1990년대 부터 탐구하고 있는 주제들 중 하나이다. 특히 1997년 개인전 '발굴-틈'에서 작가는 직접 염색한 면, 마, 태모시와 같은 섬유들 사이에 솜과 풀잎, 나무잎과 같은 것들을 집어 넣어 바느질과 재봉질로 대지의 껍질 같은 조각들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이 조각들이 설치된 전시장을 유적지처럼 만들어 딱딱한 대지의 표면 아래 감춰진 역사와 이야기가 오브제들 뒤에 설치된 조명으로 인해 표면에 드러나게 만들었다. 그것은 마치 오래전 땅속으로 사라진 기억들을 다시 끄집어 내어 지나간 시간에 대해 명상을 하게 만드는 경건한 종교의식을 위한 공간 같기도 했다.
이영희_무제 untiltled_쌀겨, 혼합재료, 가변설치_2005

이번에 전시되는 설치 작업에서 작가는 쌀겨로 대지의 조각을 만들고 그 조각들을 모아 생명의 힘을 품고있는 대지의 풍경을 만들어 낸다. 봉긋하게 부풀은 대지와 그 안에서 솓아나는 녹색의 생명! 프랑스 비평가 장-루이 쁘아트뱅이 그의 작업에서 보았던, 모든것이 붕괴되고 파괴되었을 때에도 우리의 삶에 새로운 기운을 회복하게 만드는 이영희의 '세번 째 대지'가 이 거대하고도 공허한 도시의 한 가운데에서 펼쳐지게 되는것이다. ■ 박기현
이영희_무제 untiltled_쌀겨, 혼합재료, 가변설치_2011
이영희_무제 untiltled_쌀겨, 혼합재료, 가변설치_2011

Lee Younghee metaphorically represents nature and civilization, whole and part, and life and death, with materials and sites where her works are installed. With an applied art, art education, and art studies major, Lee explores themes like a researcher, using long investigation and diverse materials. Her work evolves into a series of organic installations in diverse places such as indoor spaces and natural landscapes. ■ Park Ki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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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할 純(순)


정미숙展 / JUNGMISOOK / 鄭米淑 / photography   2011_1221 ▶ 2011_1227


정미숙_순수할 순 1_피그먼트 프린트_47×70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91007f | 정미숙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1221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30am~07:00pm

갤러리 아트사간 GALLERY ART SAGAN 서울 종로구 삼청로 22 영정빌딩 3층 Tel. +82.2.720.4414 www.artsagan.com


작품의 모티브가 된 신체는 인간에게 삶과 죽음이라는 경험을 주는 중요한 매개체이자 여러 경험을 전달해주는 도구이다. 그래서 신체에 대한 순수한 이미지 그 자체를 표현하고자 했다. 여성의 몸을 섹슈얼리티의 표현으로 보지 않으면서도 신체에서 느껴지는 자연적인 곡선이 만들어내는 순수한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싶었다. 그로 인해 생성되는 다양한 형태를 포착하여 시각화했다. 인체의 진부한 표현을 벗어나기 위해 오로지 형태에만 의지하여 표현한 것이다. 인위적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순수한 곡선으로 자연스러움을 다시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번 작업에서는 신체의 형태를 다양한 측면에서 보고 추상적인 형태로 드러내 새로운 이미지로 재탄생 시키고자 했다. 특히 형태와 색감에서 전체적으로 통일감을 느낄 수 있도록 작업을 하였다. 여성의 부드러운 곡선과 어울릴 것 같은 색감을 찾아 부드러움을 한층 강화했다. 예를 들어 자연광이 아닌 형광등의 빛을 사용하여 초록색의 느낌을 표현하였다. 색의 온도 차에 의해서 다르게 보이는 색상으로 인해 사진에 신비함을 더했다. 예술은 작가의 삶에서 표출되는 욕구의 다른 형태이다. 그것을 조형화함으로써 스스로를 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 정미숙
정미숙_순수할 순 2_피그먼트 프린트_47×70cm_2011
정미숙_순수할 순 3_피그먼트 프린트_47×70cm_2011
정미숙_순수할 순 4_피그먼트 프린트_70×47cm_2011
정미숙_순수할 순 5_피그먼트 프린트_36×24cm_2011
정미숙_순수할 순 6_피그먼트 프린트_24×36cm_2011

The human b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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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ly me


김나래展 / KIMNARAE / 金羅來 / painting.sculpture   2011_1221 ▶ 2012_0103 / 일요일 휴관


김나래_Only me_조명, 혼합재료_각 240×280m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김나래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1221_수요일_05:00pm

2011 미술공간現 신진작가전시지원 프로그램

관람시간 / 평일_10:00am~06:00pm / 주말_11:00am~06:00pm / 일요일 휴관

미술공간현 ARTSPACE HYUN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6번지 창조빌딩 B1 Tel. +82.2.732.5556 www.artspace-hyun.co.kr


Only me : 내면적 자아와 표면적 자아 간의 괴리감에 대하여 ● 이번 '오로지 나(Only me)'전에서는 내면적 자아(self)와 표면적 자아(persona)간의 괴리감을 담은 김나래 작가의 신작들이 소개된다. 인간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자아를 셀프라고 한다면, 타인과 그 관계를 의식하여 내세우게 되는 일종의 가면을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먼저 겉으로 드러나는 외적성격을 통해 타인을 판단하게 된다.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이 언급한 분석심리학(Analytic Psychology) 이론처럼, 사람은 겉으로 드러나는 의식의 영역을 통해 외부 세계와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는 것이라 할 수있다. 셀프와 페르소나 모두 부인할 수 없는 '나'의 모습이라는 것이 이번 전시의 테마이며, 작품은 서로가 보여주고 보이는 모습과 그 아래 내재된 모습들을 대조시켜 보여준다. ● 작가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소재로 마스크를 이용해 지속적인 작업을 해오고 있다. 가면 쓴 인물을 내세워 일종의 역할극을 하고 있는 배우의 모습과 같은 상황을 작품 내에서 의도적으로 연출한다. 그렇지만 연극과는 다르게 한 장면 내에서 작품의 의도를 전달하여야 하기 때문에 매 작업마다 극적인 표정이 요구된다. 따라서 영화 속 한 장면을 차용하거나 표정변화가 풍부하고 개성 있는 마스크의 모델들을 선정하여 작품에 등장시킨다. 처음에는 밝게 웃고 있는 표정이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점차 슬프거나 애처로워 보이는 표정들에도 시선이 간다. 작가는 스스로의 모습이나 사적인 스토리들을 직접적으로 묘사하기 보다는 작품 속 타인을 통하여 감정 자체를 전달시키는 것에 주력한다. 보는 이 각자가 처한 상황은 다르더라도, 우리는 함께 더불어가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작품 속 인물들의 표정에서 전해지는 희노애락(喜怒哀樂)의 감정들에 대하여 공감할 수 있다. 누구나 한번쯤 해보았을만한 생각들을 상기시켜 소통을 이끌어낸다. 가면의 형상을 한 인물들은 모두 다른 얼굴이지만, 결국 작품은 작가의 개인적 감정과 사유에 대한 상징인 동시에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작가는 평상시 느껴왔던 감정을 형상으로 재현했고 관객은 작가에 의해 재구성된 세계를 접하게 된다.
김나래_Only me_조명, 혼합재료_각 600×600mm_2011
김나래_Only me_조명, 혼합재료_710×710mm_2011
김나래_Only me_혼합재료_1320×1960mm_2011
김나래_Only me_혼합재료_1320×1960mm_2011

작품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전시작에 작가에 의해 도안된 꽃들이 배치되어 있다는 공통점을 찾아 볼 수 있다. 인물 주위마다 피어나는 꽃들로 인해 작품은 보다 화려한 외형을 갖게 된다. 김나래의 작품에서 꽃은 지극히 장식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나라 전통회화에서 보여지는 꽃들처럼 개인의 구복(求福)과 같은 '바람'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이 어떤 면에서는 민화 속 화재(花材)들과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민화에서는 다른 작품이라 하더라도 같은 품종의 꽃이 있으면 공통의 상징적 의미가 부여되어지는데 반해, 김 작가 작품의 꽃의 경우 각 작품마다 품종에 상관없이 다른 패턴을 띄고 있으며 작업 전반적으로는 바람을 나타내지만 작품내용에 따라 조금씩 달리 해석된 점에서 차이가 있다. 화려했던 시절이 그리운 이에게 꽃은 반짝거렸던 한때의 상징이 될 것이고, 꿈을 꾸고 있는 자에게는 이루고 싶은 소망, 그리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즐겁고 행복하고자 하는 감정 등으로 대변될 수 있을 것이다. ● 원색적인 색감이 인쇄된 시트지나 아크릴에 빛을 접목시켜 출력된 색감보다 더 화려하고 밝아지도록 연출한다거나, 스팽글이나 비즈로 장식하여 작품을 반짝거리게 만들어 준다. 이는 우선적으로 심미성을 위함이지만, 몇몇 유명인사의 모습이 담긴 작품에서의 몽환적이고 반짝거리게 표현한 기법들은 그들이 스타라는 신비한 존재이며 그렇기 때문에 느껴지는 거리감의 표현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작품에서 보여지는 원색적인 색감과 입체감, 그리고 개성 있는 표현기법들은 대중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뿐만 아니라 이는 직접 작업을 하는 작가에게도 보다 즐겁고 밝은 마음가짐으로 제작에 임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인터뷰를 통해 작가가 색이 지닌 치유의 힘을 믿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너무 무겁지만은 않은 작품분위기와 밝은 색감이 만들어내는 기분 전환에 힘입어 작가가 전시를 준비하는 동안 즐겁고 자유롭게 작업하고 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이는 개인적으로 작업을 지속하는데 있어 긍정적인 효과라 생각된다.
김나래_Only me_조명, 혼합재료_850×2000mm_2011
김나래_Only me_조명, 혼합재료_880×600mm_2011

사회 비판적인 시선보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의 기록으로 보여지는 이번 전시작들은, 타인이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더라도 개인적 고민 때문에 혼자 상처 입거나 슬픔에 빠져들게 되는 상황에서 느끼게 되는 번뇌를 담은 작품들과 평소 작가가 매력적으로 느끼고 있어왔던 인물들에게서 느껴지는 그들의 열정을 담은 작품들로 분류해볼 수 있다. 한 집단 내에서도 주위의 무관심속에 혼자 숨어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혹은 집단속에 묻힐까 두려워하며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사람이 있고, 개인의 경우에도 상황에 따라 내안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다른 감정을 내세우게 되듯, 타인을 의식하기 시작하면서 나타나는 여러 감정들과 그것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표정들에 대하여, 작가는 그것 중 무엇이 좋고 나쁘고의 판단에 개입시키지 않고 양면성 그대로를 드러내는 것에 치중하였다. 원활한 관계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되기도 하는 이중적 모순에 대하여 작품 속 캐릭터들의 상반된 표정을 그리고 대치적인 구도를 이용하여 그 괴리감을 표현하였다. 작품 속 인물의 표정에서 드러나는 감정과 생각들 모두 작가 자신의 심정을 은연중 드러낸 것이다. 표정이라는 것은 어떤 설명이나 말 필요 없이 감정을 직접적으로 타인에게 전달시킨다. 표정,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가. 모두 다른 모델이지만 가면이라는 형식 때문에 개인에 집중되기 보다는 다양한 사람들 중 특정 유형으로 인식된다. 작가는 전시작을 통해 타인에게 위장된 모습으로 드러내는 것에 대한 괴리감과 더불어, 타인을 통해 자신의 실체적인 모습을 깨달아 가는 과정을 이번 전시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 것 같다. 전시장 중간 중간에 설치된 몇몇의 거울이 이를 입증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관객은 실제사람이 아닌 작품 속에 그려진 인물을 대면하고 스스로의 얼굴을 비추어 보며 잠시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사람간의 상호관계라는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느껴왔던 내면적 감정과, 동일한 상황에서도 나만이 느끼게 되는 감정들에 대하여 나와 같구나하고 느낄 수 있는 작은 위로, 나만 그런 게 아니였다는 동질감과 안도 그리고 그러한 생각이 파생시키는 무수한 물음표들이 이끌어질 수 있기를 이번 전시를 통하여 기대해본다. ■ 구나영



 
2011.12.19 22:08:09 / Good : 430 + Good

za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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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제목: 갓뎀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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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의 순간-Aha! Moment

2011_1222 ▶ 2012_0215 / 12월26일,1월30일,마지막 주 월요일 휴관


데보라 스퍼버_모나리자 이후 2_2005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강영민_박대조_박승모_송은영_이승오_조융희_안철현 찰리한_한호_황란_데보라 스퍼버(Devorah Sperber)

기획 및 주최 / 예술의전당 후원 / 문화체육관광부_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의 및 예매 / 예술의전당 Sacticket 02)580-1300

관람시간 / 11:00am~07:00pm(입장마감 오후 6시 20분) 12월26일, 1월30일, 마지막 주 월요일 휴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층, 제 1~2전시실, 로비 Hangaram Art Museum, Seoul Arts Center 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 2406(서초동 700번지) Tel. +82.2.580.1300 www.sac.or.kr


관점-미술가의 눈과 놀이의 순간 ● 미술가는 물질로 구성된 재료를 통하여 가상을 현실로 실현해 보여 왔다. 이 놀라운 방법은 재능을 부여받은 예술가들의 고유영역이었으며, 이들은 여기에 각자의 상상력을 덧붙여 세계를 새롭게 구성하고자 했다. 이러한 방법은 숨죽인 사물에 숨결을 불어넣고, 새 생명을 가져다주는 효과를 가져다준다. ● 이번 전시와 관련한 일루젼은 전통적인 관점에서의 재현을 말하는 게 아니라, 왜곡된 시지각 현상에 한정하여 들여다보고자 하였다. 예술가들이 바라보는 눈은 마치 마술사의 그것과 같은데, 가령 한스 홀바인(H. Holbein)의 「대사들 (Ambassadors)」에서 보여준 해골왜상이나 초현실주의 미술가들이 다룬 변형, 옵아트에서 추구한 시지각 원리를 이용한 일련의 미술작품이 그 사례라 하겠다. 그 이외에도 여러 가지 틈새에서 독특한 시지각적인 방법을 통해 새로운 세상보기를 제안하는 작가들이 등장하고 있다. 기존의 일루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의 시지각을 상대로 실험하는 여러 유형의 착시나 환영적 요소는 유희적인 느낌을 준다. 때문에 대중적인 동의가 잘 이루어지고 작품자체에서 이미 이야기 거리를 생산하여 주목성도 강하다.
강영민_George_2006
데보라 스퍼버_홀바인 이후_혼합매체_193×89cm_2004
박대조_이항대립2_2008

새로운 일루젼을 창출하려는 미술가들은 전통적인 미술재료로 자연대상이나 사물을 충실히 옮기거나 표현하는 데에 만족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감상자와의 관계를 고려하는 점이 분명하다. 즉 관람객으로 하여금 반응과 체험이라는 태도를 만들어낸다. 즉, 설명이나 해석을 덧붙일 필요가 없이 눈 그 자체에 작업의 초점을 맞춘다. 말하자면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자신이 '보고 있는' 세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따라서 이 전시는 평범한 감상자들을 위한 미술고유의 조형적 방법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박승모_환1037_2011
송은영_침범하는 방6 램프_2009
안철현_터널_2011

놀이의 순간 ● 새로운 일루젼 작가들의 작품은 감상자들과 일종의 놀이를 제안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소우주의 창조자가 곧 예술가라는 권위를 내세우기보다는 자신의 재능을 통하여 감상자와 적극적으로 교감하고자 한다. 전시장에서 마주치는 작품들은 '놀이의 순간'을 경험하게 만든다. 이 순간은 기존의 미술감상의 방식을 바꾸고 적극적으로 작품과 관객의 반응과 움직임을 유도함으로써 시간적 요인을 적극 개입시킨다. 한 점의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 특정 시점에서 바라보는 예전의 방법에서부터 벗어나 여러 각도로 접근하게 하여 일정 시간 동안 머물게 만든다. 그 순간 속에서 감상자는 미술가가 고안한 지각의 순간, 원리의 깨우침의 순간을 만난다. 이른바 아하! 모먼트 Aha! Moment의 시간이다. ● 보는 방식의 전환은 제작 기술적 요인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이러한 방법은 공간의 구성, 물질이나 매체에 대한 이해와 구사력을 통한 눈의 반응과 관련이 있다. 놀이의 미술가들은 여기에서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실천한다. 즉, 자신의 조형적 방법론을 바탕으로 한 작품의 완성도를 실천하는 한편 감상자와의 합의를 도출시켜내는 일이다. 감상자는 자신이 처한 예술적 고립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될 것이며, 그간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현대미술에 대해 정신적 위안과 긴장감의 완화를 경험하게 된다.
이승오_교차된 결_2011
조융희_ANOTHER VIEW-CAR1_2010
찰리한_스탠드1110_2010

아하! 모먼트의 작가들 ● 참여 작가들은 눈의 반응이 어떤 지각을 얻게 되는가에 대해 묻는다. 이번 전시에는 총 11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해온 작가들과 국내작가들이 함께 만든 전시인데, 공교롭게도 이들은 지역적, 환경적, 활동배경과 관계없이 공통적인 주제를 가지고 있다. 이른바 우리의 시지각을 교란시키는 작업들이다.
한호_T-40000_2011
황란_샛바람_2011

이중이미지(강영민, 박대조, 이승오)를 보여주거나, 공간의 눈속임을 이용한 경우(박승모, 송은영, 황 란), 오브제를 이용한 역상효과(데보라 스퍼버 Devorah Sperber), 시각적 트릭(안철현, 한 호), 왜상(조융희, 찰리 한) 등으로 분류될 수 있겠다. 눈여겨 볼 점은 참여 작가들이 통상적인, 혹은 순응된 눈을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신체감각이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되는지에 대해 작가들은 집요한 연구를 거치고 있다. ● 예술가가 우리와 다르다면 분명 뭔가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기 때문이다. 이들은 특정 사실을 수정하고 확장하며, 응용한다. 질서를 교란시키거나 원리 자체를 바꾸며, 규모를 조율한다. 어떤 사실을 제거하거나 덧붙이며 의미와 형태를 바꾸기도 한다. 이러한 갖가지 방법으로 세계를 재구성하며, 그 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들은 감상자로 하여금 대단히 흥미로운 세계를 만나게 해준다. 작품들은 사물에 대해 다시 들여다보게 하고, 일상을 새롭게 정의 내리고 있다. ● 여기 출품한 일련의 작품들은 미술의 작은 원리 안에서도 상당한 범위의 지각방식을 제안하고 있다. 우리는 느슨하거나 혹은 숨 가쁜 일상으로 인해 놓쳐버리기 쉬운 순간들을 습관적으로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이 점에서 이 전시는, 일루젼은 시대적인 흐름에 따라 새로운 바라보기를 유도하고 있고,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새롭게 대하게 해준다. ■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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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actical Fantasy


장현주展 / CHANGHYUNJOO / 蔣賢珠 / painting   2011_1110 ▶ 2011_1124 / 일,공휴일 휴관


장현주_Practical Paradis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 오일페인팅_180×240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00726a | 장현주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포스코

관람시간 / 09:00pm~08:00pm / 토요일_09:00pm~03:00pm / 일,공휴일 휴관

포스코미술관 POSCO ART MUSEUM 서울 강남구 대치4동 892번지 포스코센터 서관 2층 Tel. +82.2.3457.1665 www.poscoartmuseum.org


장현주의 프랙티컬 판타지 Practical Fantasy ● 영국의 신학자이며 법률가이자 정치가인 토마스 모어는 선원 히스로디에게 그들이 사는 세상과는 조금 다른 풍속과 제도를 가진 섬 이야기를 정리하는 형식으로 글을 남겼다. 그 섬은 정치와 종교가 이상적인 유토피아였다. 진나라 문인으로서 상급기관에 굽신거려야 함을 깨닫고는 관리를 그만두고 초야에 묻힌 도연명은 어느 날 무릉의 어부가 강을 거슬러 올라가 복숭아꽃 만발한 아름다운 곳에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을 본 이야기에 대해 기록하였다. 그곳은 신선이나 노닐만한 아름다운 자연 지역 무릉도원이었다. 허균은 자신을 따르는 자들을 배에 태우고 홍길동이 율도국으로 갔다고 하였고, 올드 헉슬리는 자유롭고 탐욕에 물들지 않은 팔라인들이 사는 평화로운 섬 「아일랜드」에 대해 썼다. 배를 타거나 난파되거나 샹그릴라처럼 길을 잃어야 이를 수 있는 이곳들을 우리는 이상향(理想鄕)이라 부른다. ● 만하임은 통일적 세계상의 붕괴 이후 수많은 세계상을 발견하게 되었고, 전통적으로 그렇다고 생각되던 모든 것들에 대한 회의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어떤 사물에 대한 기능이나 해석이 여러 갈래로 이루어질 수 있음은 곧 종교라는 지배적 금기의 힘이 와해된 때문이라는 것이다. 코기토(Cogito)는 바로 이러한 새로운 세계를 인지하기 위한 인식이다. 고유한 세계관에 맞는 의미해명이 가능한 시대를 사는 지금, 이상향은 바로 코기토의 실천이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체험과 가치에 의해 구조화되는 이상향은 구체성을 지니기 어렵다. 내부의 갈등을 조정하는 공간은 흔들리는 가치관과 자기발견의 욕구와 사물과 상호관계가 모호한 때문이다. ● 1956년에 러시아 우주항공국은 공기가 없는 달나라에 지하기지를 건설하는 드로잉을 공개하였는데, 그 도시의 모습은 돔이 투명창으로 변환된 것일 뿐 로마시대 이후 지속된 장소들의 특성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다. 새로운 세계에 새로운 장소를 만들 때조차 인간은 알고 있는 것을 실천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 탓일 게다. ● 조심스럽게 내면의 흔들림에 대해 그리고 의식의 흐름에 대해 집중하던 작가 장현주의 화면에서 행성을 만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작가는 화성을 선택한 이유가 전쟁도 없고 사랑만이 가득한 이상향으로 보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강이나 바다를 건너 위치해오던 이상향이 작가에게는 우주의 바다를 건너 존재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상향을 장소의 떠낢을 통해서야만 이를 수 있다는 인류학적 입장을 견지한다. 따라서 아는 것만큼, 생각하는 것만큼의 이상향을 구사하는 당위성을 얻는다.
장현주_Practical Paradis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 오일페인팅_180×240cm_2011

인간의 경험이 구조화하는 과정에서 확인되듯, 한 개인의 이상향에는 집단의 생각들이 공존한다. 단지 '별'이었던 행성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사람들은 그 머나먼 곳에서 전송된 사진들 속에서 이미지를 찾아 또 다른 공간으로의 여행을 시작했다. 1970년대 말 화성사진이 공개되자 지나친 확대로 인하여 픽셀에 깨짐 현상이 나타난 그 사진들을 보고 피라미드와 펜타곤과 스타디움을 찾아냈다. 과학자들이 지구의 미래를 건설한 장소로서 탐사한 행성에서, 지구의 과거를 보는 이들은 그룹을 형성하고 믿음을 공유하며 지식을 나눈다. 그 메마른 땅에서 이상향을 만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경험이 발동한 탓이다. ● 우주를 배경으로 한 그의 이상향은 '또 다른 지역' 혹은 장소로 명명된다. 이상향이라는 장소성보다는 그곳에 의미를 두거나 이상향을 만들어가는 주체성을 중시하는 명제라 할 것이다. 이곳을 전제로 한 그곳의 장소성은 원형을 기반으로 한 도상을 지닌 형태의 상징으로 구성된다. 원색과 흑백으로 제작한 「practical paradise」는 동일 지역의 낮과 밤으로 보이기도 하고 외연과 내부, 형식과 내용과 같은 이분법으로 보이기도 하고, 시적 언어인 대구법으로 읽혀지기도 한다. 이 두 화면은 분명 작가가 구성하는 세계의 구현방식을 드러내고 있다.
장현주_Open your mind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과슈, 유채, 오일파스텔_130×162cm_2011

먼저 원색의 「practical paradise」 곳곳에서 훑어가는 눈길이 내려지는 것은 익숙한 형태들이 끊임없이 상호지시하고 은유하며 간섭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색으로 빛나는 우주를 뒤로 하고 작은 산들이 둘러싼 행성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하단 중앙에 자리한 배를 젓는 인물이다. 대지와 물의 이미지가 그곳에 위치한 인물들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역시 하단 우측에는 그림자를 잡아먹는 새가 그리고 좌측에는 돌들이 강하게 시선을 끈다. ● 현란하고 비현실적 색채 속에서 흑백의 형태들은 화면 전체에 무게감을 주고 있다. 이들 형태 위로는 두 인물이 화면의 무게를 둘로 나누어주고 있는데, 지나치게 화사한 주황색 화관을 쓰고 가슴에 붉은 십자가를 띠고 있는 동정녀 마리아와 아기를 안고 있는 흑백의 성모상이다. 사차원으로 가는 문이 있고, 통곡하는 사람들과 망연히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 그리고 계단과 건물, 연못과 폭포, 의자와 종이배 등 해석 가능한 익숙한 형태들이 즐비하다. 하지만 이들의 관계는 모호하며 무의식에 지배된 여러 형태들이 떠오르는 단순 나열을 보여준다. 기억의 저장소에서 돌출되어 튀어나온 형상들 즉 손이 기억하는 형상들인 자동차, 안락의자 등 일상생활의 모습들이 작품 안에서 필요한 것들이 있는 이상향의 구현 요소로 작동한다. 하지만 화면 전체를 감싼 불길하면서도 무언가 불편한 감을 주는 요소들은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그래서 더욱 지구와는 이질적인 색채에 의해 현상이 아닌 내용에 집중하게 된다. 성서에 등장하는 예수 통곡의 장소인 게세마네 동산이 화성의 형태를 빌어 작가 앞에 이상향으로 펼쳐진 것이다. 죽음을 부르는 듯하고 기분 나쁜 머리가 잘린 동물 모양이나 좌절한 인간의 뒷모습은 지옥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닐까 생각될 지경이다. 그러고 보니 이상향이라는 곳,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디스토피아로 비춰진 것도 총통과는 다른 가치체계를 가진 야만인에 빙의한 우리 시선 때문이 아닌가. 악이 있어야 선이 빛난다는 중세의 관념처럼 작가의 화면은 아름다움과 추함, 선과 악, 통곡과 희열이 공존한다.
장현주_Truth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과슈_130×130cm_2011

흑백의 「practical paradise」에서 형태는 어두운 우주를 배경으로 한 야트막한 산 아래 광할한 대지에 흩뿌려져 있다. 호주국립대의 사이먼 드라이버 박사에 따르면 우주에 있는 별들의 수는 7000억의 1000억 배라고 한다. 지구에 있는 모든 모래를 합한 수보다 10배나 많다는 것이다. 육안으로는 밤하늘에서 2000개 정도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별들이 실은 셀 수 없는 엄청난 수가 있는 것처럼, 이 세상은 수많은 존재가 있고 그 존재는 또 다른 수많은 존재를 포함한다. 화성이라는 실재하면서도 이르러 보지 못한 그 가상의 공간에 떠오르는 모든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작품을 일러 "화성과 유사한 돌산과 사막의 풍경 속에서 화성이 감추고 있는 기타 생명체와 문명의 흔적들을 엑스레이로 투과하듯, 드러내놓고 노출시킨 드로잉"이라 한다. 지구인이 추측하는 화성의 모습이기도 하고, 화성인이 추측하기도 하는 지구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 실제로 보여지는 것의 이면에 얼마나 많은 존재들이 있을 수 있으며, 우리가 내뱉는 말 중에는 얼마나 표면화되지 못한 의미들이 많을까. 그리하여 그의 야심찬 위 두 작품은 작가 내면의 지형도이다. 항상 나는 누구일까를 추구하는 존재론적인 인식과, 인류학적 입장에서 인간을 추적하는 과정이 드러나 있다. 말수가 적고 무던한 사람이 세상과 만나는 지점에서 종종 당혹감을 느끼게 되는, 외형이나 드러나는 사실로만 판단하는 시선에 의해 재단되는 자신을 속수무책으로 방치할 수밖에 없을 때 느끼는 무력감이 고독의 모습으로 드러나 있는 것이다. ● 화성이라는, 현실감각이 뛰어난 인물에게는 황당하기만 한 공간을 작가는 '몽유도원도를 그리듯' 이상향으로 펼쳐놓고 있다. 강을 건너거나 배를 타고 바다를 떠돌다 만나게 되는 이상향처럼 그는 우리의 현실계인 지구가 아닌 행성으로 이상향을 옮겨놓음으로써, 시간과 공간이 확장된 과거의 이상향과 조우한다. 광속으로 날아가 도착한 행성에서 지구의 문화사적 흔적들을 설치함으로써 돌 하나를 보고도 생각만으로 건물이 되게 한다. 실재하는 유적과 자신의 상상을 결합시킴으로써 작가 스스로 공간을 창조하는 인물인 동시에 기존의 의식에 지배받는 인물임을 또한 인정하고 있다.
장현주_Practical Fantasy_장지에 연필_65×94cm_2011_부분

작가에게「practical paradise」는 먼 화성에 뿌려놓은 지구상의 기억들로 나타나기도 하고 지금의 주변이 다르게 작동하는 시간의 엇갈림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시계를 들고 뛰어가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흰토끼를 생경한 장소에 놓음으로써 하면 속 공간은 시간의 거리로 확장된다. 이번 전시의 또 다른 주제로 보이는 「breath」에서도 흰 토끼를 만날 수 있다. 손을 내민 토끼는 공간과 시간의 뒤섞임 속에서 "다 괜찮아, 이리 와."라는 위로를 보낸다. 죽죽 그어진 비현실적 색채 위에 얹힌 토끼는 'real'이라는 문자를 데리고 있다. 사실과 진실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의 토끼는 부드럽고 따뜻하며 영원히 친근한 어린시절의 털실인형처럼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존재하는 영원한 친구이자 자신의 모습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 토끼로 보여지는 존재로서의 인간 이외에 인간의 형상을 한 「breath」 시리즈는 작가가 천착하는 주제인 인간이란 무엇인가, 나는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직접적 물음을 담고 있다. 인체 해부도에서 빌어온 인간 몸통 내부에는 위장, 대장 등 장기가 담겨 있기도 하고 그릇들이 담겨 있기도 하며 색채로 가득하기도 하다. 하나라도 없으면 안 되는 인체의 조직들은 인간의 신체를 우주화한다. 우리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한 지구는 화성과 같은 우주의 모래 한 알의 존재임을 소우주, 인간의 몸을 통해 사유하는 것이다. ● 이제는 용도폐기된 인체 내부에 한때는 하나라도 없으면 안 되었던 움직이는 장난감의 부속들을 채워넣음으로써 필요를 상실한 것들에게 새로움 생명을 부여하는 작업은 이 작은 것들에 대한 연민의 감정에서 발원한다. 결코 물신주의는 아니나 작은 장난감 부속들이 얼마나 귀중하게 다루어졌는지 아이를 키워본 엄마라면 모두가 경험한 것일 터, 작은 것들조차 사랑으로 감싸는 애정의 작업인 것이다. 또한 그러한 망가지거나 쓸모가 없어진 장난감에 대한 사랑은 다름아닌 자신의 자녀에 대한 사랑이기도 하다. 여인에게 있어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내가 또 하나의 우주임을 실감하는 일이며 새로 태어난 소우주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넘침을 깨닫는 순간 나를 창조한 그 어떤 존재의 사랑의 깊이를 감지하게 되는 것이다. ● 그리하여 성모 도상이 나타나고 힌두교의 우주론이 펼쳐지지만 그 어느 곳에도 정박하지 않는 그의 화면은 그 어느 곳에도 얽매이지 않은 자신의 인생에 대한 탐구의 여정에 대한 담담한 기록이다.
장현주_Breath_장지에 연필_90×63cm_2011

그의 화면에는 결코 알아서는 안 되는 말이나 정체를 의미하는 모자이크 처리된 말풍선을 지닌 비너스와 두루마리 휴지와 서커스 천막과 관절인형들이 한 화면에 크기의 기준 없이 흩어져 있다. 이들은 상관관계 아래 이해해야 하는 나레이션의 구조에 속한 단어가 아닌 음소로서 개개의 형태로서 존재한다. 하지만 이들 각각의 존재는 개별자의 모습을 띠지만 관객에게는 통합되어 한 화면의 구조로 나타난다. 화면 내부에 원근법과는 거리가 없지만 내용의 깊이가 실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의 회화적 출발이 동양화에 있기에 가능한 시각이다. 새가 되어 세상을 내려다보는 시각처럼 그림의 표면 렌즈를 통해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그 렌즈는 진실의 위치에서 컴퓨터 합성이미지가 넘치는 가상의 세상에서 왜곡된 형태이지만 손으로 그려짐으로써 사물이 뒤섞인 진짜 세계를 보여준다. 이상향 혹은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노력의 과정으로 그의 작업이 존재하는 지점이 바로 이 '그려짐'이다. ● 그는 화면에 목탄으로 형태를 그리고 그 위에 바니쉬를 뿌려서 흘러내리게 한다. 의도적인 형상에 우연이란 효과가 작용하는데 거기에는 시간의 요소가 중요하다. 이른바 타이밍에 따라 동양화에서 볼 수 있는 선염이나 번짐과 같은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작품 전체가 드로잉으로 보이는 그의 화면은 전통 동양화와는 이질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표피성을 통해 깊이를 창출하는 방식은 전통에서 온 것이다. 쌓아올려진 이미지가 아니라 스며들고 지워짐으로써 나타나는 방식이라는 말이다. 시감을-물감을 쌓아 이룩한 화면에서 볼 수 없는 자재하고 영화로운 화면 구성은 바로 이러한 동양화적 구조를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의 반영이 아닌 진실의 창으로 존재하는 화면은 마음 속 세상을 쏟아내는 배설과도 같은 본능적 즐거움의 공간을 보여준다. ● 그리기의 즐거움은 입체에서도 재생되고 있다. 일고 있는 거의 색채와 문양이 동원된 인체는 그러한 감정을 확인시킨다. 색동, 물방울무늬, 모자이크 무늬의 인간 형상들이 화성이라 여겨지는 이상한 공간에 위치한다. 이들 인간의 형상 100여 개는 그의 화면에 일관되게 나타난 익명의 인간 모습 그대로이다. 다양한 무늬들은 일기를 쓰듯 일상의 감정이 시각화한 것이다. 곧 인물 하나하나는 하나의 인간 100인이 모여 있는 것이기도 하고, 100개의 감정을 가진 한 인간이 소우주에 위치한 것이기도 하다. 하루가 모여 인생이 되고 여러 감정이 모여 순간이 되기도 하는 인간에 대해 가시화한 것이다.
장현주_Practical Fantasy_설치, 영상, FRP 모형, 캔버스천_2011

그의 화면은 주체적 시각, 코기토를 기본으로 한다. 영상작업은 내부에 다면체의 거울을 두고 반짝이는 물질을 넣어 보는 만화경(kaleidoscope)의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다. 만화경 내부에서의 이미지 조합이 무한하듯, 인간은 모두 다양한 시각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인간은 같은 공간 안에서 대화를 하는 중에도 각기 무수한 생각의 골로 빠져든다. 그 생각의 출구는 결코 동일할 수도 없으며 이르는 곳은 더욱 그렇다. 「Gateway」에는 2차원에 존재하는 3차원의 문을 설치하여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념의 세계를 묘사해놓았다. ● 그는 이 주관적 환상을 예술이라는 문을 통해 객관화시키고 있다. 이 세상에서의 금기가 허용되는 이상향은 입장에 따라 유토피아도 디스토피아도 되는 것처럼 주관성의 공간이다. 현실의 반전은 언어 속의 이상향에도, 만화경 속의 환상 속에도 존재한다. 현실이 갑갑하면 할수록 의식은 우주를 떠돌고 조합되는 유리조각이 조잡해질수록 만화경 속 이미지는 현란해진다. 작가에게 있어 진보, 발전, 과학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이상향은 은일(隱逸)의 산속도, 무인도처럼 보이는 섬도 아니다. 우주선에 몸을 싣고 광속을 타고 이르는 곳, 우주 저 먼 곳에 위치한 지구라는 섬의 거울같은 공간 화성에서 보는 환상이다. 신이 창조한 세상에 대한 외경심을 유지한 채, 하지만 내가 보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믿음으로 그는 구체적이고도 실용적인 이상향을 만화경 속 반짝이 틈에서도 컵 안에서 쏟아져 나오는 물줄기에서도 발견한다. ■ 조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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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아닌 어딘가


송준호_붉은구슬 2인展   2011_1223 ▶ 2012_0111 / 12월25~26일, 1월1~2일,9일 휴관


송준호_날개_금속체인, 아크릴 보드_240×100×40cm_2011

작가와의 대화 / 2011_1227_화요일

주최 / 구로문화재단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_구로구

관람시간 / 10:00am~06:00pm / 12월25~26일, 1월1~2일,9일 휴관

구로아트밸리 갤러리 GUROARTSVALLEY GALLERY 서울 구로구 의사당길 12 Tel. +82.2.2029.1700, 1742 www.guroartsvalley.or.kr


절대적 실체 지우기, 상대적 실체 그리기 ● 작가 송준호는 체인이나 금속선으로 만들어진 작업을 통해 절대적인 존재나 가치가 사라진 세상에 대하여 말하려 한다고 하였다. 절대적인 존재는 무엇이고, 가치가 사라진 세상은 무엇일까? 체인이나 금속선으로 만든 희랍건축의 기둥을 보면 그가 제기하는 문제의식이 분명 서양 문명의 흐름과 관련이 있고, 그의 문제의식이 존재론에 대한 어떤 근본을 향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작가는 역시 사회적 산물이며 시대와 전통을 고민하고 해결하려는 주체란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송준호_자소상_금속체인, 스테인레스 보드_169×165×50cm_2009
송준호_왕관_금속체인, 나무, 비즈_55×45×45cm_2011
송준호_금과 슬_금속체인, 나무, 비즈_120×90×45cm_2010

선적인 재료들은 참으로 신비로운 특징을 가진다. 자체적으로 완전한 육질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어떤 형상의 흔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즉 형상은 있되, 형태는 없는 그런 이중적인 파러독스한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 이러한 선적 구조의 특성이다. 그러니까 작가는 대상을 이러한 선적 재료들을 이용하여 표현함으로써 그 육중하고 절대적인 존재감을 정면 돌파하여 훌훌 털어내어 버리고 있는 것이다. 작가의 소박하고 겸손한 육성과는 달리, 이것은 크게 보면 서양의 존재론적 전통, 작게 보면 존재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에 대한 근본적인 도발이라고 볼 수 있다. ● 많은 작가들이 얄팍한 아이디어나 코앞의 상황만을 응시하면서 빈곤한 주제의식을 우려먹는 풍토에, 송준호라는 작가의 이런 가볍지 않은 행보는 설사 그것이 지금 어떤 정확한 해답을 내놓고 있는 것은 아니라도 우리에게 적지 않은 울림을 던져준다. 그것만으로도 작가에 대한 기대를 금할 수 없게 된다. ■ 최경원
붉은구슬_그림자 뒤에서_ 플라스틱, 유리안구_60×20×13cm_2011

붉은구슬의 작업 ● 작품은 읽는 것인가 아니면 눈으로 보는 것일까. 붉은구슬의 작품을 보면서 이 문제를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되는 아이러니를 느낀다. ● 붉은구슬이 사용하는 조형 언어 가운데 특이한 것이 하나있다. 그들이 만든 인물상과 함께 등장하는 신화적 모티브, 사실 이것은 시간성 그 자체를 부정하고 살아가는 현대인과는 매우 대조적인 관계를 지닌 소재이기도 하다. 때문에 한편으로는 생소해 보이기도 하지만 아마 그것은 신화가 지니고 있는 인간의 원초적인 심상이라는 개념과 시간의 흐름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현대개념이 매우 대조적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그렇다면 붉은구슬은 신화, 이것을 왜 자신들의 작품에 도입하고 있는 것 일까. 그의 작업을 보면 융(C. G Jung)이 그의 저서 『인간과 무의식의 상징 Man and his Symbols』에서 서술한 문장이 생각난다. '인간의 육체가 진화의 오랜 역사를 지닌 여러 기관들의 박물관인 것처럼 마음 역시 비슷한 양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음에 대해서도 경험 많은 연구가는 현대인의 꿈의 상(象)과 원시심성의 산물-집단적 이미지들-신화적인 주제 사이의 유사성을 알아 낼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이어서 신화적 개념을 다시 만들어 내는 일 역시 일종의 신화적 유형으로 볼 수 있다고 한 바 있다. 그렇다면 붉은구슬은 인간의 여러 가지 심상 속에서 인간적인 그 어떤 것의 원형성을 발견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작가일까. ● 아무튼 그는 자신의 작업에 등장하는 일련의 인물상들을 신화에 나오는 인물들의 유형을 빌어 인간의 번뇌, 고통, 욕구 등의 감정을 표현해 내고 있다. 마치 이러한 다양한 감정의 유형을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에서 찾아보려는 시도를 상징이라도 하듯 작품 속에 유난히도 눈동자의 존재를 강조하고 있다.
붉은구슬_숲속의 기사_ 플라스틱, 유리안구_30×6×7cm_2011
붉은구슬_숲속의 기사_ 플라스틱, 유리안구_30×6×7cm_2011_부분

붉은구슬이 설정한 인물상에 등장하는 유리안구로 처리된 눈동자, 이들은 관객의 이동에 따라 계속 움직이며 마치 관객을 감시라도 하듯 쫓아가며 감상자를 응시하고 있다. 쌍방 간의 설정, 눈을 통해 이루어지는 대화를 시도라도 하듯이 작업을 통하여 작가는 조심스럽게 세상을 관찰하고 있으며 동시에 관객으로 하여금 작가의 시선을 의식함으로서 침묵의 호소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만약 그의 작품 속에 이러한 의도가 밑에 깊이 깔려 있다면 그는 세상을 보는 눈과 세상이 보는 눈을 한 공간에서 연출해내고 있는 셈이다. 아이러니가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바로 이점에 있어 그가 설정한 관계 속에는 패러독스가 있는 셈이다. 일반적으로 지금까지 예술의 감상 문제는 감상자에게 일방적으로 맡겨져 왔었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터렉티브한 작업 방식이 일상생활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면서 쌍방소통이 가능한 멀티미디어적인 작업들이 현대미술에 흔히 나타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작가가 탄생시킨 인물상은 전통적인 방식인 나무 조각과 채색기법을 통하여 인간의 소통의 문제를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만의 새로운 참신함을 발견하게 된다. ● 현대는 새로운 신화가 필요하다. 물질문명이 풍요로워질수록 자신에 대한 연민은 더 커지고 있다. 더욱이 물질의 풍요로움의 막바지에 신음하는 이 시대에 우리들을 위한 새로운 신화의 필요성을 조심스럽게 내보이면서 자신의 화두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적인 관심사, 즉 우리들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작업에 눈길이 간다. ■ 김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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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45_Kumho Young Artist


2011_1207 ▶ 2012_0226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1_1207_수요일_05:00pm

참여작가 금호영아티스트 선정작가 1부/ 2011_1207 ▶ 2012_0119 강석호_강유진_김수영_김현준_박혜수_박희섭_안정주 오진령_이문주_이상원_이정민_이지숙_이형욱_정윤석 정재호_조종성_차영석_최준경_최지영 2부 / 2012_0127 ▶ 2012_0226 김민정_김희정_박진아_박형근_송명진_아르장틴리_오병재 오용석_우종택_윤정선_이소정_이재명_이재훈_이지은_이영민 이우림_임자혁_임태규_정규리_정기훈_정소영_하용주_하지훈_홍남기

기획 / 금호미술관

관람료 / 성인_2,000원(대학생 포함) / 학생_1,000원

관람시간 / 화~일요일_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금호미술관 KUMHO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사간동 78번지 1, 2층 Tel. +82.2.720.5114 www.kumhomuseum.com


2005년 전후의 시기에 30대의 젊은 작가들은 그들을 대상으로 하는 미술계의 다양한 흐름과 그들이 성장해온 시대 혹은 현재 생활의 과정에서 이전 세대와는 분명히 다른 지점에 노출되었다. 젊은 작가들의 시기별 특징에 대한 해석은 절대적이거나 전체를 대변할 수는 없지만, 작가들이 작업에 담는 주제들이나 작업을 대하는 태도는 시기별로 분명히 다른 지점들이 있었다. ● 금호영아티스트 프로그램의 45명의 작가로 구성되는 『No.45 — Kumho Young Asrtist』는 이들을 통해서 동시대 젊은 작가들의 작업의 다양한 스펙트럼의 한 흐름을 감지하고, 공감할 수 있기를 바라며 기획되었다. 이번 전시는 작품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적 관점과 작품의 대상에 대한 개입의 강도에 따라 중간자적 시선(중성적), 기록, 기억의 수집, 개입의 인식, 연극적인, 바니타스/메멘토모리의 6가지의 주제로 구성된다.

_중간자적 시선(중성적) : 강석호, 김수영, 안정주, 오진령, 이상원, 이정민, 이형욱, 조종성 _기록 : 박혜수, 이문주, 정재호, 정윤석 _바니타스/ 메멘토모리 : 강유진, 김현준, 박희섭, 이지숙, 차영석, 최준경, 최지영 _기억의 수집 : 박진아, 윤정선, 이지은, 임자혁 _개입에의 인식 : 김민정, 김희정, 박형근, 이재명, 정기훈, 정소영, 하지훈   보편적 개입 : 아르장틴리, 오병재, 우종택, 이재훈, 정규리 _연극적인 : 오용석, 이소정, 이영민, 이우림, 임태규, 송명진, 하용주, 홍남기

금호미술관 1층 전시전경 : 아카이브+라운지(Archive+Lounge)

이들 6가지 주제의 키워드는 약간의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전반적으로 작가가 작품의 대상을 진행시키는 과정에서의 개입은 상당히 이전세대와는 다른 중성적 혹은 중간자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흥미로운 지점인 것 같다. 특히, 익숙한 어떤 도시의 풍경이나 한국 현대사의 단면 등을 철저하게 그리기 혹은 작품 제작의 다양한 방식을 연구하기 위한 대상으로서만 제한하는 작업들(1부. 중간자적인 시선_김수영, 강석호, 이형욱 등), 사회에 대한 기록이나 정보에 대한 수집과 아카이빙이 절대적인 작업의 중간단계로서 작용은 하지만 어떠한 주관적 입장을 극적으로는 드러내지 않는 '기록'의 방식으로서의 작업들(1부. 기록_ 박혜수, 이문주, 정재호 등)이 주로 등장한다.
금호미술관 2층 전시전경 : 중간자적 시선(Neutral Gaze)

또한 이런 중성적인 입장보다는 대상에 대해 상대적으로 주관적이고, 혹은 아주 사소하거나 약간의 깊이 있는 개입을 통해 작품을 제작하기도 하는데, 이 역시 이전 세대의 작업방식과는 달리 사회/문화의 보편적인 시선으로 대상을 재단하거나, 혹은 대상의 아주 사소한 부분의 개입 등으로 대상과 일정한 거리두기를 통한 개입으로 만들어지는 작품들(2부. 기억의 수집_ 박진아, 윤정선, 임자혁 등 / 2부. 개입에의 인식_ 김민정, 박형근, 정소영, 이재명, 오병재 등)이 상당수를 이룬다.
금호미술관 3층 전시전경 : 기록(Documentary)

혹은 좀 더 적극적인 대상에 대해서 강도 있는 개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지는 작품의 계열들 (2부. 연극적인_ 오용석, 이우림, 임태규, 송명진 등/ 1부. 바니타스, 메멘토리_ 강유진, 김현준, 박희섭, 최지영 등) 또한 현실과 초현실의 풍경을 교차시키거나, 어떠한 존재에 대한 고찰을 드러내지만 작가가 대상이나 상황과의 극적인 몰입이나 등가적인 동일시화하는 태도는 드러나지 않는다. ● 45인의 작가가 동시대 젊은 작가 전체를 절대적으로 대변할 수 없지만 그들이 그 이전세대와는 뚜렷하게 다른 차이들이 그들의 작품 내외에서 읽히며, 그 차이들의 징후는 지난 10년간 한국화단 내에서의 빠른 변화들-제도적 구조의 변화와 젊은 세대를 흡수하려는 적극적인 의지들이 다양한 곳에서 발견된다. 미술기관을 비롯하여 대안적인 혹은 상업적인 공간 곳곳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젊은 작가들의 잠재적인 가능성을 실현시키고자 노력하였고, 그러한 흐름의 하나로서 『금호영아티스트』 프로그램의 탄생과 전개를 바라볼 수 있다. ● 이 프로그램의 짧은 역사와 이를 통해 배출된 젊은 작가들을 통하여 살펴본, 한국 젊은 작가들의 작품과 작업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분명히 어떠한 공동분모와 다양한 시선들이 교차하는 지점들을 가지고 있다. 이는 분명히, 한국 현대사의 한 진행형의 과정에 노출된 그들의 삶과 우리 미술계의 지형도가 그들에게 준 기회들이 얽힌 한 흐름일 것이다. ■ 김윤옥
금호미술관 지하1층 전시전경 : 바니타스/메멘토모리(Vanitas/Memento Mori)

기타 행사명: 전시연계교육프로그램         [뮤지엄 키즈팝콘 '금호영아티스트와 함께하는 미술수업'] 일정 : 1월7일, 1월14일, 1월28일, 2월4일         총4회, 토요일 오후2-4시 대상 : 8-11세 어린이 (참가비 있음) 장소 : 금호미술관 3층 세미나실 문의 : 02-720-5114 www.kumhomuseu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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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 CHAIRS
서용인 · 최욱 2인전
2012.1.6(fri.) - 2.11(sat.)
Opening Reception: 2012.1.6 6pm

TV12 Gallery
B1, Daylight Bldg. 81-11,
Chungdam-dong, Gangnam-ku,
Seoul, Korea(135-954)
T. 82)2.3143.1210
F. 82)2.3143.1215
www.television12.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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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NEW WAVE展   2011_1214 ▶ 2012_0129



초대일시 / 2012_1228_수요일_06:00pm_가나아트 부산

참여작가 강인구_곽순곤_김경호_김철환_김택기_김학제 도영준_도태근_문병탁_박상호_박승모_박주현_소현우 손현욱_송승용_임동락_임혜니_정동명_정장영

2011_1214 ▶ 2011_1226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2011_1228 ▶ 2012_0129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요일 휴관

가나아트 부산 GANA ART BUSAN 부산시 해운대구 중동 1405-16번지 노보텔 앰배서더 부산 4층 Tel. +82.51.744.2020 www.ganaart.com


새로운 바람은 불어 오는가? 이 전시회의 타이틀은『南風- new wave』, 즉 '새로운 파장을 일으키는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일단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 전시 타이틀에서 우리는 이 그룹의 원대한 의지를 읽으며 아울러 그들의 정신적 배경에 관심을 갖게 된다. 우선 기획자의 설명을 들어보자. ● 프랑스의 남부 니스는 한국의 부산과 환경이 유사한 도시다. 프랑스 현대미술에 있어 한 시대를 니스출신들의 미술가(에꼴 니스파)들이 대변하고 이끌어 왔다. 오늘의 한국 현대조각을 살펴 보는데 있어 한국의 남부 부산지역을 대표하는 조각가들의 다양하고 개성적인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아 재조명 하므로서, 그 지역적 특성과 개성이 한국 현대미술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역할을 진단하고, 오늘날 한국 현대조각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강인구_바위에대한기억III_돌맹이,철사_130×50×50cm_2011

이렇게 기획자는 프랑스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니스 지역의 활동에 주목하고 부산의 지리적 입지의 유사성을 근거로 한국현대미술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러일으킬 부산의 새로운 세대의 작가들을 소개하는 것이다. ● 기획자는 이젠 장성하여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그 후학들에게 우리 미술계에 새로운 파장을 일으킬 것을 기대하며, 그들의 예술적 저력을 드러내 보이고 싶어 한다. 이렇게 사제지간을 초월하여 작품을 한자리에 모으다보니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하나의 에콜이 형성되는 조짐이 보인다는 것이다.
김철환_내가생산한것(머리카락)_머리카락, 나무, 아크릴, 스테인레스 스틸_143×59×34cm_2000~6

무릇 같은 환경에서 자란 지역의 작가들은 공통된 특징을 지니게 미련이긴 하다. 즉 생각과 관점에서 비슷한 주제 영역을 다루며 표현 방식과 취향에서도 닮아 있어 논리와 감성 면에서 공통의 요소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한테 보여 지는 모습은 정반대로 각기 자유로운 개성 속에 독자적인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이점을 주목하여 볼 때 한국의 남부 부산이란 특정지역이 갖는 역사와 지리적인 환경이 만들어낸 새로운 지역적 특성이 아닌 가 본다. ● 이 점에서 이번 "남풍-뉴 웨이브"가 하나의 학파로서 한국현대미술의 주요한 밑거름이 되기 위해서는, 그 취지를 잘 살려 이번 한번의 프리젠테이션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다양하게 지속되어야하며 병행하여 일관성 있는 인문사회학적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 또한 이번 『남풍-뉴 웨이브』는 decentralization의 의미를 드러낸다. 그 동안의 우리 미술의 발전을 저해한 것은 지나치게 중앙으로만 향한 시선과 그에 따른 가치판단이라는 편중적 사고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 문제였다. 미술문화계에서는 다양하고 참신한 생각들이 미쳐 열리지도 못하고, 길들여진 형식의 틀 속에서 형성되는 경직성 때문에 사장되기 일쑤였다.
박승모_환_스테인레스 스틸_200×220cm_2011

그러나 우리 IT산업의 눈부신 발달과 보급으로 인하여 우리의 일상생활은 엄청난 변화를 가져 왔으며 비로소 진정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가능해졌던 것이다. 변방으로 밀려있던 소수집단이나 개인은 경우에 따라서는 문제의 핵심으로 등장하기도 하는 일들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로써 중앙집중화에서의 해방이라는 decentralization의 문제는 우리 사회가 갖게 된 유연한 사고 속에서 해결되는 듯 싶다.
손현욱_배변의 기술_페인트 스틸_25×55×35cm_2009

decentralization의 문제를 연관하여 보면 부산은 가장 중요한 지역임에 틀림없다. 지정학적으로 보면 문물의 수입과 송출이 이루어진 육로와 뱃길이 연결되는 곳이어서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여 항상 개방적 성향을 지니고 있었으며, 1950년 6.25전쟁 때에는 전국의 피난민이 부산에 집결하게 됨으로써 팔도각지의 문화가 섞이고 충돌하는 상황이 이루어진 곳이다. 어떻게 표현하면 아수라장이라고 볼 수 있는 이 형국은 다른 한편에서 보면 '새로운 사고', '새로운 질서'가 태동되는 카오스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부산이 지니고 있는 다양함을 수용하는 포용성이 한국 근대사에서 빚어진 문화적 혼융 사실에 기인하고 있고, 또 하나의 특성으로는 해양성이라는 지리적 여건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확인한다.
송승용_Object-O_자작나무, 한지_220×180×180cm_2011

여기서 우리는 부산의 문화란 '어울림의 미학'이며 '비빔밥 문화'라고해도 좋은 것이다. 그러나 부산의 문화적 저력은 쉽게 발휘되지 못하였다. 국내 정서가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구호주의에 가려지기도 하였으며 이데올로기를 내세운 헤게모니 싸움 속에 예술혼이 잠식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여 왔으며 지역의 새로운 세대는 나름대로의 의지를 펼쳐 왔다. 이들은 진정한 삶을 노래하고 담아내고 싶었던 것이다. 이제 뉴 밀레니엄이 열린지 11년이 또 지났다. 새로운 세대는 긴 호흡으로 멀리 볼 줄 알게 되었고 지구촌을 보다 폭 넓게 이해하게 되었다. 이젠 어디 한 곳에 치우치지 않을 자신의 확신과 예술적 과업을 확실히 하고 각자 자기 길을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남풍-뉴 웨이브~! 남쪽에서 거대한 바람이 불어온다. ■ 최승훈
임동락_Point-빛에서_스테인레스 스틸_200×300×300cm_2006

프랑스 남부 니스는 한국의 부산과 환경이 유사한 도시다. 프랑스 현대미술에 있어 한 시대를 니스 출신들의 미술가(에꼴 니스파)들이 대변하고 이끌어왔다. 오늘의 한국 현대조각을 살펴 보는데 있어 한국의 남부 부산지역을 대표하는 조각가들의 다양하고 개성적인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아 재조명 함으로써 그 지역의 특성과 개성이 한국 현대미술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역할을 진단하고 오늘날 한국 현대조각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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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재구성


김재범_이은종_임선영_하태범展   2011_1222 ▶ 2012_0115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1_1222_목요일_06:00pm

오프닝 퍼포먼스 / 2011_1222_목요일_06:40pm With 하태범_Dance on The City

관람시간 / 11:00am~07:30pm / 월요일 휴관

아트스페이스 갤러리 정미소 ART SPACE GALLERY JUNGMISO 서울 종로구 동숭동 199-17번지 객석빌딩 2층 Tel. +82.2.743.5378


오늘 김정일의 사망소식이 전세계에 보도되었다. 한 사람의 사망사건 때문에 언론사, 지식인, 일반일등의 다양성과 계층을 막론하고 이를 둘러싼 각종 시사적이고, 사회적인 내용들이 제각기 다른 옷을 입고 시민들에게 보도, 전달 될 것이다. 한가지의 이슈를 두고 각종 언론사들은 모두 다른 관점을 가지고 해석하고 분석해 낸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그 보도내역들을 무 비판적으로 접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그러한 수집된 상황자체들을 놓고 분석해 나가며 전문적인 견해를 가지게 되는 사람들도 있다. 라디오와 TV를 통해 접하게 된 세상의 크고, 작은 보도내역들은 일방적으로 사람들이게 전달되었고, 그 이후에 이를 받아 들이는 계층들의 대답은 그저 오프라인의 커뮤니티를 통해서만 활발히 되었다. ● 하지만 인터넷의 등장 이후, 사건사고를 전달하고 수용하는 방식의 다양한 변화가 일어났다. 그렇기에 한가지의 보도 이슈를 가지고 수많은 사람들의 견해를 접할 수 있으며, 이를 계기로 보도 낸 내역 이외의 다른 통로를 통해 보도내역을 바탕으로 파생되는 여러 파급효과들을 흡수하기도 하고, 다시 또 다른 내용들을 재생산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예술가가 바라보는 세상의 보도내역들은 어떠한가? 어떠한 방식으로 사건들을 접하고, 어떻게 예술을 통해 드러내는가? 바로 이 부분이 사건의 재구성전의 중요한 화두 중 하나이다.
김재범_Let's wait and see_install(ID picture)_244×366cm_2011
김재범_sakakibara_C프린트_120×150cm_2009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김재범은 보도된 기사의 내용을 바탕으로 사진작업을 진행시킨다. 조두순 사건을 화두로 하여 제작한 「Let's wait and see」는 2011년 6월을 시작으로 성범죄자 알림-e 시스템에 등재된 성 범죄자들의 얼굴을 수집하여 모자이크 모양으로 배열시킨 뒤, 그 위에 조두순 사건 장면을 오버랩하여 완성된 사진이다. 이는 실제로 있었던 사건 보도이미지 자체 위에 그 사건에서 파생되고 연루된 텍스트와 이미지들을 재 조합시킨 행위다. 이를 통해 사건 자체의 현재성과 동시에 그 사건과 관련된 상황들과 전개 될 법한 장면들을 연출하여 사건의 폭력성보다는 그 사건이 가지고 있는 사건의 빌미를 입체적으로 조명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이은종_N #0615_프로젝트_2009
이은종_S #0616_프로젝트_2009

보도내역에서 비롯된 이미지는 아니지만, 실제로 어떠한 사건이 연출되었다는 전제를 테제로 사진결과물을 제작해 내는 이은종은 다양한 장소특정적인 공간을 탐색하여 그 공간이 기존에 가지고 있는 사적, 공적인 현황을 파악하고, 그 상황들을 자신이 설정해 놓은 코드로 다시금 탈 맥락화 시킨다. 그렇기에 기존에 일반적으로 통용되었던 공간의 기능은 상실된다. 2002년 여관이라는 공간을 시작으로 이 작업의 맥락은 작업실, 모텔, 미술관으로 연결되었으며, 이번에 전시되는 섹션은 미술관 프로젝트로, 이는 미술의 거대담론의 중심인 미술관이라는 공간적 특성을 무너뜨리고, 재 탐색하면서 연출된 다양한 장면을 선보인다.
임선영_집[Home]_설치_2011
임선영_나뭇가지들[Branches]_디지털 C프린트_82.44×120cm_2011

은밀하면서도 폭력적인 사적 공간을 재현하는 임선영은 그 공간에서 막 어떠한 사건이 벌어진 것 같은 징후를 남기는 연출장면을 사진에 담아낸다. 깨끗한 카펫에 죽어있는 토끼와 핏자국, TV앞에 깨져 있는 작은 화분 등의 사진들은 분명 어떠한 불길한 사건이 벌어질 것 같은 혹은 벌어진 상황을 드러낸다. 이번 전시에서는 Home 작업의 연결, 확장 작업으로 집의 안과 밖의 모습을 전시장에 마치 세트장처럼 재현했다. 박제된 뿔과 겨울에 촬영한 앙상한 나뭇가지사진으로 밖의 장면을 TV와 깨진 화분과 커튼은 집의 내부로 상정한다. 이렇게 꾸려진 집의 안과 밖의 세트장에서는 오늘도 새로운 사진을 위한 촬영이 시작된다.
하태범_italiaearth_120×180cm
하태범_pakistan_120×180cm

임선영의 사진에서 사건일 일어나기 이전의 징후를 엿볼 수 있다면 하태범은 인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끔찍한 각종의 보도사건들로 파생된 공간을 구성하는 다양한 오브제들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폐허가 된 현장공간을 화면에 담아낸다. 그의 최근 작품 「WHITE 2008~2011」시리즈에서 일관된 시간성은 모든 현상의 마지막 단계이다. 따라서 그 화면에는 폐허의 공허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으며, 쓸쓸하고 고요한 정적만이 흐른다. 그렇기에 다음에 전개될 이야기들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는 이제 더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폐허와 공허로 가득 찬 사진의 현장성을 구축한다. 이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다양한 사건과 사고의 장면을 작은 모형으로 제작하고, 그 공간을 메우는 오브제들을 하얗게 탈색시킨다. 사진을 완성하기 위한 이러한 과정을 통해 실재 공간성의 문제를 덮어버리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실제의 상황들을 자신만의 색으로 드러내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 시사적인 보도내역을 바탕으로 두고 있는 사건의 이야기와 그와는 대조적으로 각자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소소한 사건들까지, 이 모두가 우리의 인생을 메우고 있는 소재거리이다. 어쩌면 별일 아닌 것 같이 여겨지는 세세한 것들이 예술가의 시각에서는 또 다른 의미로 거대하게 확대되어 보여줄 수 도 있으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같은 상황을 모두가 접하더라도, 순간 우리가 잊거나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의 감성을 자극하기도 한다. 크든 작든 우리는 항상 어떠한 특정 사고, 사건과 마주한다. 또 그러한 사건들은 기억 속에 잊혀지기도 하고, 또 해결되어 버리고 끝을 맺기도 한다. 사람은 누구나 인생에서 비슷한 경험을 한다. 하지만 단지 그것을 대처하는 방법적인 것과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올 한 해 마무리를 앞두고 이 전시가 의미가 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 길기도 했던 한 해 동안 수많은 사건, 사고들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사건의 재구성전의 4인의 작가 분들의 작업을 통해 우리를 둘러싼 다양한 사건들이 어떻게 해석되고 바라 볼 수 있는지에 관한 새로운 시점을 얻어감과 동시에 개개인들의 올 한 해의 여러 사건들의 상황들도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 이은주

 














 
2011.12.25 01:46:51 / Good : 277 +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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