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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bel

  • 작성시각: 2011.11.28 18: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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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제목: 11월 마지막 전시


김옥선의 `No Direction Home`    
              
 한미사진미술관 20층(02-418-1315)
            2011-12-10 ~ 2012-01-07
            2011-12-10 오후 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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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사진미술관의 7인 연속기획전 SPECTRUM의 세 번째 전시는 김옥선의 가장 최근 작업인『No direction home』을 선보인다. 『No direction home』은 그 동안 작가가 일련의 작업을 통해 다뤄온 여성의 몸, 국제결혼 남녀의 일상, 동성애 커플, 제주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삶 등 동시대의 이슈이지만 주류에서 비켜선 문제들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시리즈이다. 더불어 이전작품들보다 한층 집중도 있고 적나라한 방식으로 주제에 접근했다. 작업 속 인물들은 카메라에 시선을 응시하고 있지만, 결코 사진을 위해 의상, 배경 등에 연출을 가미하지 않고 일상의 속살을 조심스레 내보인다. 정지된 사진들은 제각각 ‘빛나는 순간’들로 빛을 발하며, 일상의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스러움과 평범함을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풀어낸다

본 전시의 제목이자 작업 시리즈명이기도 한『No direction home』은 작가가 지금까지의 작업을 통해 부단히 고민해 온 작가적 물음이기도 하다. 인간 삶의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에서부터 가족구성, 직업에 이르기까지 많은 부분들이 개인의 선택 문제로 귀속되는 이 시대에 작가는 선택을 기반으로 한 어떤 이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이들의 삶이 ‘표류되지 않는 꿈’으로서 갖는 가치에 대해, 그리고 다양한 색깔과 형태를 지닌 이들의 삶이 가진 사적인 공간에 대해 담담히 이야기한다. 여기서 김옥선이 시선을 주는 ‘어떤 이’들은 각자의 표류되지 않는 꿈을 위해 자신들의 고향을 떠나 한국 남단의 섬 제주도에 일시적 삶의 터전을 마련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350여 년 전 제주도에 상륙한 네덜란드인 핸드릭 하멜(Hendrick Hamel, 1630-1692)처럼 고국의 문화를 품고 한국에서 낯설고도 이질적인 삶을 향유하고 있다. 사진은 그들이 담고 있는 아직 발현되지 않은 ‘이상과 꿈’이 무엇인지, 그 실현에 대한 믿음과 의지를 가지고 지금 현재도 부지런히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이들의 일상에 대해 풀어냈다. 작가의 시선을 쫓아 우리의 시선은 이내 이질감을 느끼게 하는 그들의 겉모습을 넘어 그들 속에 담긴 자유와 의지, 믿음, 그리고 한시적일 것만 같은 그 일상의 편린들에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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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페리아드 개인전 `Deja Vu`  
    

            트렁크갤러리(02-3210-1233)
            2011-11-25 ~ 2011-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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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페리아드Eric Perriard는 지금 한국에서 산다. 한국을 경험하고 있다. 그는 한국을 타국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대부분 입양되었던 많은 친구들이 각양각색의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 내 관심을 끈다.

에릭은 6세에 프랑스로 입양되었다고 한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한국을 찾아 온 그는 이곳에서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고 또 그것들과 대화하면서 자기 내면의 반응에 귀 기울인다. 그에게 있어 ‘작업하기’란 자기 본능의 지시에 따르는 것이어서, 그 본능을 신뢰하며 ‘침묵의 언어’로 반추하는 것이다.

그의 작업들이 그렇다. 어느 넓은 공원에 홀로 우두커니 서있는 한 남자의 뒷모습이 그렇고, 빌딩 옥상에서 한 여성이 자신의 발밑 그림자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는 그 아찔한 정적의 연속이, 그리고 첩첩의 교각 밑에 갈 길 잃은 듯 멍하니 서 있는 한 존재가 그렇다. 그런가 하면 너무 미미해서 보이지도 않을 법한 시각적 요소가 예리하게 시선을 끈다든지, 어떤 사선이 코너로 모이면서 이루어 내는 지점에 두드러져 보이는 색깔의 한 실체가 만드는 느낌들. 이것들이 작가의 기억세계를 강타하면서 번개 같은 속도로 그에게 잠재해 있는 이야기 끈을 풀어내고 있다. 나는 미미한 것들로부터 무한한 상상력과 질문들로 펼쳐지는 그 비현실감, 작가의 내부가 발현된 그것들을 ‘Deja Vu’ 현상이라 명명하고 싶다.

그는 ‘엄마의 뱃속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다. 자기 인식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심연 속에 가라앉아 있는 소리를 듣는 것과 같은 뱃속경험의 기억이 사진을 통해 떠오른 것은 아닐까. 그가 한국이라는 알지 못하던 미지에서 삶을 일궈내는 것을 통하여 정신적으로 인식하고 몸으로 호흡한 실재계의 경험들을 지금 만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 삶이 결코 낯설지 않다 한다. 언젠가 와 본 듯하고, 익숙하며, 왠지 포근하고 따뜻하여, 그를 ‘매혹시킨다.’ 그는 “내가 이곳의 풍경과 색채에 친밀감을 느낀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고 거듭 말한다. 그 친밀감이 어디로 부터 오는지 그는 모르지만, 카메라와 함께 본능의 지시에 의해 이루어지는 그의 창조활동은 구체적인 자기성찰과 명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무형적인 것들이 그에게 ‘미지로의 문을 열어주었다’는 고백은 그의 작업 배경을 엿볼 수 있게 한다.

타국인인 그가 한국을 경험하며 이국적이라고 느낌과 동시에 다정하다고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프랑스에서 경험하지 못한 것들로부터 받은 상반된 느낌들이 친밀감, 진실함, 순수함과 같이 시적이고 감성적인 것이어서 결코 식상하지 않았다는 그의 말, 어디를 보아도 말쑥하지 않아 자신을 혼란으로 떨어트리건만 오히려 편안하다고 생각된다는 이 경험들. 그가 한국생활을 해 보지 않고는 결코 만날 수 없었던 이 ‘Deja vu’적 경험들은 프랑스에서는 찾아 볼 수 없었던 풍경들이었을 것이다.


트렁크갤러리 대표 박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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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철 개인전` Paradise In My Mind 3`   
    

            Gallery On(02-733-8295)
            2011-12-03 ~ 2011-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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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의 편리함을 위해 숲을 없애고 자동차의 배기가스와 공장에서 나오는 연기, 각종 매연들과 같은 이산화탄소의 증가로 지구온난화가 급속도로 빨라지는 현재,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우리의 후손들에게 남겨져야 할 지구는 점점 황폐해져 가고 있다.
이번 전시는 여러 기상이변과 환경재앙으로 어수선한 시기에, 자연의 소중함과 고향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전시이다. 우리 주변에서 보여지는 자연풍경의 소소함의 가치에 집중하여 작가의 어린 시절 창호 문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 기억을 표현한 전시로 아름답고 순수했던 시각을 마주할 수 있다. 창호 문에 어리는 은은한 자연 빛의 느낌, 그 빛 너머로 보이는 문밖의 풍경은 유년의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창호 문을 통해 기억된 잔잔하고 아름다운 영상이 하루하루 바쁘고 정신 없는 일상에 한 자락의 여유와 넉넉함을 준다. 작가는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지는 삶의 터전을 담백하게 기록하고자 하였고,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져가는, 쉽게 간과하거나 혹 다시는 보지 못할 풍경들을 작가만의 사진과 설치를 통해 이번 전시에서 제시하고자 한다.

이 희 복(갤러리 온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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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데만트 (Thomas Demand) 개인전    
    

            피케이엠갤러리(02-515-9496)
            2011-11-23 ~ 2012-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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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M TRINITY GALLERY는 2011년 11월 24일부터 2012년 1월 10일까지 세계적 명성의 현대미술가 토마스 데만트 작품전을 개최한다. 이번 작품전은 작가의 첫번째 국내 개인전으로 이번 전시에는 2009년 이후 제작된 작가의 대형 사진작품 10여점이 선보인다.

독일 뒤셀도르프 아카데미에서 원래 조각을 전공한 토마스 데만트(1964- ) 는 실재와 허구에 대한 탐구의 언어로서 사진작품을 발표하며 커다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90년대 이후 뒤셀도르프 아카데미 출신의 사진작가들이 세계 미술시장에서 큰 각광을 받으며 토마스 데만트는 세계적 작가 대열에 합류하였다. 그 후 까르띠에 파운데이션 개인전 (2000), 뉴욕 MoMA 개인전 (2005)을 비롯,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 (2006), 프라다 파운데이션 (2007), 베를린 신 국립미술관 (2009) 등 다수의 세계 정상급 미술관에서 이미 이른 나이에 초대 개인전을 가졌으며, 뉴욕 PS1 (1998), 베니스 비에날레 (2003, 2010), 파리 퐁피두 센터 (2007), 광주 비에날레 (2008), LA 현대미술관 (2009),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2010) 등지에서 주요 그룹전에 참여하였다.

토마스 데만트는 현대 미술의 범주화된 장르의 틀을 넘어 실재와 허구에 대한 개념을 자신의 특유의 세련된 언어로 드러내는 작가로서, 사진, 영상, 설치 등의 서로 다른 장르들이 작가의 치밀하고도 정교한 작업을 통해 각 장르의 속성은 그대로 드러난 채 해체되거나 통합되는 고유성을 보인다.

토마스 데만트의 작업은 역사적인 사건이나 개인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어떤 공간적인 장면을 종이라는 내구성 없는 재료를 사용하여 실제크기의 모형으로 재현하고 사진을 찍은 후 그 모형을 파기하는 과정을 통해 완성된다. 작가에 의해 재현된 장면 속의 공간은 사람 또는 텍스트가 부재하며 동일한 질감의 사물들로 이루어진 까닭에 무엇인가 사라진듯한 서늘하고 낯선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리고 작가가 모형을 만들어 촬영하고 그 모형을 부수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현실은 조작되고 재구성된다. 즉 작가에게 있어서 가시적으로 세상에 남는 것은 사진작품이지만 그 이전의 모형 제작 행위, 촬영 이후의 모형 파괴 행위의 과정 모두가 작업 내용에 포괄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작가는 사진의 전통적 특성인 ‘현실의 충실한 재현’을 전복하고, 나아가 사진의 교묘한 조작과 허구성을 예리하게 폭로한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개념적 접근 방식은 동세대 젊은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재현의 문제를 다룸에 있어 가상과 현실, 평면과 입체, 공간과 시간, 진실과 거짓의 문제 등을 다각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토마스 데만트의 작품들은 현대미술의 개념적 다양성과 작업의 명료함이 작품 내에서 성취되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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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시각: 2011.11.29 02: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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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계 예술 대학교 대학원 미술학과 기획展




2011_1130 ▶ 2011_1206





초대일시 / 2010_1130_수요일_05:30pm

참여작가 곽요한_김경희_김미강_김지희_김태균 민지훈_박웅규_오현_이혜현_장명경 장수진_조상지_조요숙_최희진_한철희

후원/협찬/주최/기획 / 추계 예술 대학교

관람시간 / 10:00am~06:00pm

갤러리 이즈 GALLERY IS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0-5번지 2층 Tel. +82.2.736.6669 www.galleryis.com




추계예술대학교 대학원 각 전공 학생들이 2011년 전시를 갖습니다. 재학 중인 대학원생들로 구성된 이번 전시를 통해 15명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오셔서 축하해주시고 많은 관심과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

오현_#1_solar cell, led, 전선_가변크기_2011 김미강_공존_장지에 채색_80×160cm_2011

오현 ● 예술로부터 작업해 들어가 산업및 건축과의 융합을 시도해 본다. 김미강 ● 사람의 내면세계가 삶의 터전과 같은 환경을 이루는 바탕이 되고 내면에 존재하는 다양한 심리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풍경안에 반영된다고 보았다.
박웅규_습기찬구멍_종이에 잉크_30×190cm_2011

박웅규 ● 인간이 끊임없이 무언가(혐오, 공포, 우울, 불안 등)를 분비·배출·배제·유기하는 것은 삶을 위한 필연적 행위이다. 하지만 종종 그것에 겁에 질려 메스꺼움과 혐오감을 견디지 못해 구토를 하면서도 그것에 묘한 매력을 느낀다. 나의 작업은 이러한 극단적 양가성에서 시작된다.
장명경_공간-피어나다_53×45.5cm_2011 한철희_게임 속 세상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6×96cm_2011

장명경 ● 흔히 공간이라 하면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장소를 떠올린다. 그러나 그것은 비어 있지도, 닫혀 있지도, 정지해 있지도 않다. 안에서 밖으로, 밖에서 안으로 보이지 않는 어떤 것들이 끊임없이 순환하는 곳이야말로 진정 동양에서 말하는 공간이다. 한철희 ● 게임 속 세상은 전적으로 인위적인 세계이지만 우리의 지각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세계와는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과거의 즐겨했던 게임들의 이미지를 차용하여 현대적 삶을 표현하고자 한다.
조요숙_사유의 공간_장지에 채색, 연필, 아크릴, 바니쉬_116.8×116.8cm_2011

조요숙 ● 자신을 돌아 볼 여유도 없는 바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기에 자기 자신만의 사유의 공간이 필요하며, 그곳에서의 시간은 고독하지만 자신의 고귀한 꿈을 지키기 위해 언제나 함께 여야 할 것이다.
곽요한_ 기독불화(基督佛畵)_장지에 수간채색_76×52cm_2011 장수진_根.심해-Ⅳ_우드컷_120×95cm_2006

곽요한 ● 소금은 스스로 썩지 않는데서 방부제로 가치를 가지며 사회를 유지하는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부패해버린 소금은 과연 소금일 수가 있는가. 장수진 ● 빛에 의한 생명력...
김지희_Find me inside me_종이에 수채, 연필_24.5×35.5cm_2011 조상지_나를 잊지마세요_장지에 채색_100×170cm_2011

김지희 ● 분열된 자아의 조각들이 모여 다중성을 띄는 내가 존재한다. 결국 나는 누구이고, 너는 누구인가? 조상지 ● 시간이 흐르면서 변하는 오랜 인연들을 물 속에서도 더이상 자라날 수 없는 시들어버린 꽃을 통해 다시 한 번 기억될 수 있길 바란다.
김경희_Landscape NO.22_리넨에 대마사_85×83cm_2011

김경희 ● 가변적 풍경을 불변의 풍경으로 도시의 사라지고 잊혀 진, 혹은 잊혀 질 풍경들에 대하여 풍경을 영원하게 새기다. 재개발과 신도시로 잊혀 질 달동네, 무서운 속도로 세워지고 또 부셔지는 고층빌딩, 늘 보아오고, 인식하지 않고 지나치거나, 외면했던 일상적인 풍경들의 소중함은 대도시의 개발논리에 인하여 더욱 간절한 것이 될 것이다. 나는 이러한 불안정하게 소멸하고 빠르게 변하는 도시의 풍경들을 작업으로 새기고자 한다. 사라진 공간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바늘끝에 담아 엮음으로써 오늘도 나는 영원이 지속될 풍경을 새긴다.
이혜현_10-8_나무_25×15cm_2011

이혜현 ● 머릿속을 간지럽히는 관대한 빛내음 있어야할 그곳을 찾아 그대로 박제되어지는 관조
민지훈_슬림 매입형 형광등_혼합재료_130×162cm_2011 김태균_펭귄들 11-13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1×162.2cm_2011

민지훈 ● 일상적인 것, 전통적인 것의 재구성을 통한 시각적 즐거움 김태균 ●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어지고, 일에 대한 책임감에서 벗어나고 싶다. 처음 시작하는 일에 두려움이 앞서거나 혹은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나는 이런 인간의 모습을 펭귄에 의인화 시켜서 표현하고자 한다.
최희진_버려지는 이유_장지에 채색_65×65cm_2011

최희진 ● 버려졌고, 돌아갈 곳이 없었다. 오늘 누군가의 가족이자 친구인 이 작은 생명체들도 내일이면 거리를 떠돌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리고 반려견이자 동시에 유기견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같은 자리에서 기다릴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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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충동




Creative Impulse展 2011_1130 ▶ 2011_1223



창조적 충동展_아트라운지 디방_2011


초대일시 / 2011_1130_수요일_05:00pm

참여작가 강석현_김소연_문이삭_이남희_조소희_주라영

기획 / 주성학

관람시간 / 11:00am~06:00pm

아트라운지 디방 ART+LOUNGE DIBANG 서울 종로구 평창동 40길 4 Tel. +82.2.379.3085~6 www.dibang.org



우리의 삶은 수많은 사건과 유기적인 관계 속에 있다. 그 가운데 몇몇은 우리의 심리조직에 혼란을 야기하기도 하는데 시간이 흐른 뒤에도 사라지지 않고 기억 속에 잔존해 있다가 어느 순간 불현듯이 출현해 우리의 일상을 낯설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충격과 자극 상태에서 우리의 내부세계는 긴장과 불안을 완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정신분석학자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ein)에 의하면 충격과 긴장 상태에서 주체가 느끼는 불안은 내부 세계를 분열시킨다. 이는 곧 파괴된 내부세계를 회복시키려는 창조적 충동을 발생시키는데, 클라인은 예술활동의 창조적 행위 또한 동일한 선상에서 이해했다. 특히 시각예술은 이점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전시 『창조적 충동』에서 소개하는 여섯 명의 작가, 강석현, 김소연, 문이삭, 이남희, 주라영, 조소희는 일상에서 부딪히는 여러 갈등과 불안을 그들만의 방법으로 표상함으로써 분열된 내부세계를 회복해 나가는 노력을 보여준다.
강석현_Bearing Karma-Connections in Life_캔버스에 혼합매체_162×130cm_2010
김소연_심장_종이에 콜라주_33×24.5cm_2010

강석현은 어린 시절의 추억을 상징하는 인형을 반복적으로 그리거나 만든다. 실로 꿰맨 자국으로 가득한 그의 인형은 사춘기시절 이후 고착된 고독과 소외에 관한 긴장이 표출된 형태이며 동시에 그 때의 상처와 아픔을 싸매는 치유를 암시해 준다. 나아가서는 상실과 좌절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작가의 바람이기도 하다. 김소연의 화면은 꿈이나 무의식의 장면처럼 초현실적이다. 인체의 기관이나 동물의 일부 이미지를 콜라주하여 낯설고 기이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그의 작품은 불명확한 내면의 세계를 그려내며 불안과 공포를 불러온다. 이미지 파편들은 하나의 형태, 이를테면 심장과 성모 마리아의 형상으로 결합되어 나타나는데 이는 긴장과 불안을 완화시키며 분열된 내적 세계를 복구시키는 과정을 보여준다.
문이삭_A Blue-Sky Landscape #1_간판_127×170×13cm_2011
주라영_Beyond Here & Now_스틸에 우레탄 열도장_각 20×15cm_2011

문이삭의 A Blue-Sky Landscape 는 도심 속 하늘 풍경을 표상한다. 그는 버려진 간판을 수집하여 일일이 잘라낸 다음, 서로 다른 조각끼리 연결하여 새로운 형태의 오브제를 만든다. 그에게 있어 간판 작업은 무분별한 경쟁을 조장하고 소비를 부추기는 이 사회에 대한 불안과 저항을 의미하며 그 속에서 놓쳐 버리고 잃어버린 것에 대한 가치와 중요성을 환기시킨다. 주라영의 Beyond Here & Now 에서 볼 수 있는 단순화된 형태의 인간은 두 팔을 벌린 채 어디론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목적 없이 무리 속에서 그저 무의미한 달음질만 치고 있는 군상은 조직과 규율 속에서 획일화되고 자아를 상실한 현대인의 모습을 대변한다. 군상은 전시 기간 동안 관람객이 한 점 한 점씩 가져감으로써 점점 해체되는데 여기에는 자신을 비롯한 현대인의 잃어버린 자아를 되찾고자 하는 작가의 염원이 담겨있다.
조소희_두루마리 휴지 위에 타이프치기-진행형 프로젝트_나무책상, 램프, 타이프 기계, 두루마리 휴지, 불어성경, 거_2004
이남희_U.F.O-unfinished object_혼합재료_가변설치_2011

조소희의 관심대상은 실이나 휴지와 같은 가벼운 일상의 사물들이다. 두루마리 휴지 위에 타이프치기 와 크리넥스-문장부호 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휴지 위에 텍스트나 문장부호를 타이핑하는 것과 같은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시간의 무게를 싣는다. 이는 무미건조하고 답답한 일상 혹은 삶을 성찰하며 거기에 새로운 의미를 덧입히고자 하는 작가의 상징적 행위라 할 수 있다. 이남희는 무제 에서처럼 쓸모 없는 사물을 감싸고 덮는 작업을 한다. 짜다 남은 실과 망쳐버린 손뜨개를 연결하여 만든 U.F.O(UnFinished Object) 또한 이와 동일한 선상에 있는 설치 작품이다. 이처럼 사소하고 버려진 사물에 대한 그의 관심은 자신을 포함하여 정치적으로 약자인 여성과 소외 받는 자들의 상처를 감싸고 포용하는 작가만의 의식인 셈이다. ● 『창조적 충동』전에 참여하는 작가들이 선보이는 작품은 불안과 갈등으로 인해 파괴된 내부 세계를 회복하려는 창조적 충동의 시각적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기억이나 추억을 형상화 시키거나, 상징적 대상을 해체한 뒤 재조합 하여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형태로 드러난다. 또는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차이와 의미를 부여하거나, 버려지고 사소한 것들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모든 예술 작품이 파괴된 내적 세계를 복구하려는 창조적 충동으로부터 기인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창조적 충동』전의 작가들은 자신의 경험을 상징적으로 표상함으로써 파괴된 내부 세계를 복구시키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이처럼 작품으로 상징화된 창조적 충동은 작가 개인의 차원을 넘어 불안과 긴장으로 분열된 우리의 내적 세계를 회복하기 위한 에너지가 될 것이다. ■ 주성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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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e the Past




민경아展 / MINKYEONGAH / 閔庚娥 / printing 2011_1130 ▶ 2011_1205



민경아_The Creation_리놀륨 판화_60×180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민경아 블로그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1130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6층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민경아, 이질적인 것들의 재정렬 ● 민경아의 작품은 종교와 예술의 접촉지점을 찾는다는 점에서 눈길을 모은다. 그의 작품테마는 성경의 이야기로 천지창조, 노아의 홍수,최후의 만찬, 그리스도의 십자가 책형, 부활승천 등으로 요약된다. 이런 테마들은 역대화가들에 의해 자주 다루어져 온 주제들로 서양미술의 고전으로 불러왔다. 그런데 작가가 이미 '명화'로 널리 알려진 것을 사용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같다. 고전의 현대화랄까, 전통회화와 만화주인공까지 불러들여 명화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보여준다. ● 가령 「창조: the Creation」란 작품을 보면 서양의 명화와 한국의 김홍도,신윤복의 풍속화에 등장하는 인물 혹은 현대 만화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승무를 추는 무희가 있는가 하면 그네 타는 여인, 장구치는 사람, 그런가 하면 원더우먼, 피노키오,슈퍼맨 등을 등장시켜 오래전의 일을 현대감각에 맞게 재해석하려는 의도를 감지할 수 있다. 작가의 말대로 "동서양과 고대현대가 공존하는 모습을 통해 시공간을 초월한 성경이야기를 표현하고 있다." ●「노아의 방주: too much water」란 작품 역시 창세기에 나오는 내용을 담은 것으로 들판과 산하를 뒤덮는 폭우로 인해 모든 짐승들이 노아의 방주로 들어가는 이야기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그림에선 기린,사자,염소,코끼리,다람쥐,타조,토끼,도마뱀,고래,불가사리가 모두 물속에 가라앉았다. 산도 40일간 쏟아진 폭우로 인해 잠식당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림에 등장한 산이 우리 눈에 좀 익은 것같다. 그 산은 다름 아니라 겸재의 금강산도에 등장하는 바로 그 산이다. 작가는 이를 통해 성경의 이야기를 한층 실감나게 전달한다. 시내산도 아니고 아라랏산도 아닌, 금강산을 통해 노아의 이야기를 한국인들에게 한결 친근하고 이해하기 쉽게 풀이해내고 있다. ●「최후의 만찬: Ongoing Supper」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대표작 「최후의 만찬」을 새로이 번안한 작품이다. 그림뒤에는 원작의 인물들을 실루엣으로 처리한 것과 역대화가들의 초상화로 대체한 것 등 두 유형으로 나뉜다. 특히 후자의 경우 고흐와 고갱의 초상화, 베르미어의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우키요에 미인도, 프란시스코 고야의 초상화, 피카소의 잠자는 여인, 신윤복의 미인도, 부르헬,보티첼리의 미인도, 아르침볼도의 나무인간, 에곤 쉴레의 초상화 등이 등장한다. 사도들은 명화속 인물로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나눈 빵과 포도주는 와인과 케익, 주병과 같은 유사한 이미지들과 바나나 우유, 커피 등과 같이 요즘 것들로 바뀌었다. 작가의 상상력은 여기에 더하여 엿 파는 아이, 젓 먹이는 어머니, 남녀가 밀애를 즐기는 모습, 곰방대를 물고 있는 한량 등과 같이 풍속화의 한 장면을 차용하기도 한다. ●「창조: the Creation」와 「노아의 방주: too much water」, 「최후의 만찬: Ongoing Supper」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대중문화적 요소이다. 만화나 영화의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상품들이 출현한다. 이같은 대중문화적 이미지의 수용은 그가 광고나 영화, 만화,신문과 잡지 등의 일상적인 이미지들을 차용하여 대중과의 소통을 시도한 팝 아트스트들과 동일한 기반위에 서 있음을 보여준다. 대중문화적 요소를 인용하는 것은 상품과 대중문화로 넘쳐나는 현대 사회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향락과 소비의 일상 및 표류하는 삶을 상징하는데 더 중점을 두고 있는 것같다. 종래의 기독교적 이미지와 소비문화의 이미지를 겹치고 대비시킴으로써 모종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감상자에게 우리가 혹시 현실에 눈이 어두어져 가치있는 것들을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넌지시 물어보고 있는 것같다.
민경아_빈물항아리_리놀륨 판화_60×90cm_2009
민경아_Too much water_리놀륨 판화_120×90cm_2010
민경아_Mes「나들」_리놀륨 판화_120×90cm_2011

예전에는 단순히 그림에만 신경을 쓰면 되었지만 현대작가들은 범람하는 팝문화와 물질문명, 정체가 불분명한 사상 등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고 있는 게 사실이다. 작가는 이런 세태속에서 기독교 영성에 뿌리내린 예술을 구현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신앙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어떻게 하면 질풍노도처럼 거세게 밀려오는 파고를 극복하고 폭넓게 사람들과의 교감을 얻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외부의 물결이 거셀수록 내면을 돌아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신앙에 뿌리내린 작품이 눈에 띈다. ●「나들: Mes」는 절묘한 개작이 이루어진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살바도르 달리의 원작을 개작한 이 작품은 이색적으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신 장면을 위에서 포착한 구도로 되어 있어 더욱 극적인 느낌을 갖고 있다. 작가는 여기서 김홍도의 대장간에서 일하는 모습을 예수님 발에 못 박는 인물로, 서당에서 공부 못해 우는 철부지 아이를 예수님의 십자가에 돌아가심을 보며 슬퍼하는 인물로, 활 쏘는 사람을 예수의 가슴을 겨냥하는 인물로, 신윤복 단오 명절의 풍속화에서 그네 뛰는 여인을 십자가에 끈을 매달아 유희를 즐기는 인물로, 빨래하는 여인들을 예수님 손에 못을 박는 인물로 역할을 바꾸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작품의 타이틀은 「나(들)」로 되어 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십자가 사건을 무심하게 바라보는 방관자, 그런데 이런 여러 가지 모습들이 모두 내 자신의 모습들"로 여기며 제작한 작품이다. 신앙인으로서 작가의 고백이 들어 있는 특별한 작품이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로마시대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예수를 부인하며 심지어 조롱하는 요즘 세태를 풍자한 작품이기도 하다. ● 그런가 하면 그의 작품 가운데는 피노키오 연작이 있다. 앞의 작품이 기독미술과 풍속화 및 만화 캐릭터와의 만남이라면, 피노키오 연작은 피노키오를 화가들의 명화와 결부시켰다. 알다시피 피노키오는 거짓말을 할 때면 코가 길어지는 바람에 코가 신체의 특징이 되어버린 인물에 속한다. 작가는 이점에 착안해 예술가들의 초상화에다 그 사람의 특징이 될만한 것들을 덧붙였다. 가령 뒤러의 코에는 옷장식을, 베토벤의 코에는 음표를, 산책을 좋아한 슈베르트는 전원적 분위기가 나도록 나무형태로 변형시켰다. 비너스석고상에는 그녀의 꼽슬머리를 본따 웨이브 코를 만들었으며,이외에도 고흐,클림트,에콜쉴레와 같은 화가의 자화상, 다빈치의 「모나리자」, 바흐와 모차르트, 쇼팽과 같은 음악가들을 각각 코믹하게 연출하였다.
민경아_피노키오「베르메르 진주귀걸이를 한소녀」_리놀륨 판화_75×50cm_2010
민경아_피노키오「뒤러 자화상」_리놀륨 판화_75×50cm_2010
민경아_피노키오「프리다칼로 자화상」_리놀륨 판화_75×50cm_2010

근래 들어 지식의 대통합을 일컫는 '통섭'(Consilience)이 폭넓은 호응을 얻고 있지만 만일 이 용어를 민경아의 작품에 적용한다면 종교와 예술의 차이, 고급예술과 대중문화의 차이를 묶어내는 말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현대회화에서 거의 사용치 않는 성경의 이야기를 테마로 삼는 것이나 거기에다 콜라나 우유병같은 현대사회의 이미지, 그리고 풍속화를 등장시키는 것은 쉽게 생각하기 어려운 발상이다. 특히 기독교와 예술은 그의 작품에서 상보적인 관계를 유지하는데 이것은 현대미술에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성경그림은 유럽에서 오랜 기간 중추신경역할을 해왔지만 근대 이후로는 상당히 약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민경아의 작품에서 여전히 미술은 종교와의 관계속에서 얼마든지 상상력을 얻고 창조적 자원이 될 수 있음을 알려준다. ● 민경아의 작품은 수법적으로 차용에 의한 재구성이 주종을 이룬다. 옛 것과 새 것을 뒤섞고 한편으로는 기존의 이미지의 재배열로 자신의 의도를 간접적으로 투영하고 있는 셈이다. 원작자가 다른 것은 물론이고 상반되는 내용의 전개, 다른 기법, 시제의 차이 등 기존의 명화에 이질적인 것을 충돌시킴으로써 원래의 의미내용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들고 감상자가 의외의 사건과 마주함을 통해 현실을 곰곰이 뒤돌아보게 만든다. 차용과 패러디와 같은 현대적 표현수법이 사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에 흐르는 주제의식이란 인간의 타락, 죄의 속량, 고통받은 삶으로부터의 구원, 메시야의 한량없는 사랑과 같은 묵직한 주제들이다. ● 내용도 내용이지만 정치한 재현과 꼼꼼한 세부처리, 고도의 감각 등은 감상의 재미도 더해주는 요인이 되고 있다. 특히 리놀늄에 새겨진 선의 자취들과 패턴들은 작가가 얼마나 조형구사에 능숙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작가는 어느 한 부분 소홀함이 없이 시종 차분하고 절제된 감각을 유지하고 있다. 전 과정이 일체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번거롭고도 까다로운 공정을 거쳐야 하지만 그것을 거뜬히 이겨내는 작가근성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적재적소의 이미지 차용과 드라마틱한 재구성까지 보태져 한편의 서사를 만들어내고 있는데 그것이 보는 사람에게는 잔잔한 울림으로 되돌아오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같다. ■ 서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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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녹주展 / MINNOHKJUE / 閔綠珠 / painting 2011_1130 ▶ 2011_1206



민녹주_캔버스에 유채_162×112cm_2011


초대일시 / 2011_1130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30am~06:30pm

노암갤러리 NOAM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 133번지 Tel. +82.2.720.2235~6 www.noamgallery.com



와해(瓦解), 존재의 실체 그리고 행동 불확실성, 이상(理想)이라는 것 ● "이상"이라는 것은 우리가 사고하면서부터 늘 들어왔던 단어이다. 자신의 삶과 사회를 관계지워 생각하면서 그것은 고민해야하는 어떤 것임과 동시에 이루어야하는 무엇으로 여겨진다. "이데아"를 학습하거나 고려하지 않더라도 어느 시점에서 '나'/자아에 각인되어 긍정적 삶을 위한 막연한 지시어로 작용하고 있다. 인문학적 범주에서도 그 개념은 분명 추상적이다. 인간의 정신작용이 이르는 '최고와 궁극'의 지점이라는 것일 뿐 구체적 내용은 사회적 조건과 해석의 관점에 따라 다르다. 그렇다면 이상이라는 것이 우리의 사고 한 부분에 끊임없이 자리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두 가지의 현상을 들어 설명이 가능하다. 하나는 그 의미가 학문적 범위를 넘어 역사 안에서 집단의식을 조율하는 정신적 규범과 같은 것으로 인식되어졌으며, 다른 또 하나는 인간의 사회적, 인격적 욕구가 이르는 최적의 상태(?)를 상징하는 것으로 일반화되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후자의 경우는 "욕망"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욕망은 이상이라는 것의 모호함에 성취의 심리적 구체성을 부가한다.
민녹주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4×224cm_2011
민녹주_캔버스에 유채_130×194cm_2011

비정형의 형상, 존재의 실체와 행동 ● 민녹주는 삶에 있어 "이상"이라는 것의 존재여부를 묻는다. 사회와 인간의 관계를 주체와 객체 혹은 자아와 타자로 양분하지 않고 '하나의 전체'로 의식하여, 그 안에서 욕망의 이상적 실체가 어떤 상태로 존재하는가를 본다. 그녀의 회화를 통해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그것은 여전히 불투명하고 불합리하다. 사회가 산출해낸 많은 제도와 개개인의 욕구가 총합을 이루는 충돌과 마찰의 세계에서 최고와 궁극의 무엇은 성립하지 않는다. 이는 그 실체를 배척하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현상'을 통시적으로 인지하는 태도로서 민녹주는 그것들이 변별적 내용으로 모아지는 '순간의 지점'을 이야기한다.
민녹주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30×380cm_2011
민녹주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162×112cm_2011

민녹주의 회화에서 이미지를 특정대상과 동일시하여 받아들이기란 다소 어색하다. 인간의 표정이나 동식물의 형상이 구분되기는 하나 비인습적이고, 한 형태의 완결로 보기에는 그 틀의 경계가 모호하다. 이러한 이미지의 특성은 삶에 관해 작가의 사고가 머무는 지점을 상징한다. 그는 사회가 지닌 불합리성과 인간내면의 이율배반적 성격을 구체적으로 요약하는 방식을 유보하고, 분명한 거리두기를 전제로 그 세계에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삶의 사회적 관계에서 형성되는 모든 것은 단색조 화면이 지닌 긴장의 상태로, 그러한 시선에 의해 감지되는 내용의 표상들을 비정형적인 모습으로 드러낸다. 여기서 주지할 점은 작가의 관점이 세상의 모호한 실체를 받아들이는 긍정적 자세를 취하고 있으나, 이와 같은 맥락에서 그녀의 형상들은 보편적이지 않은 감성과 감각의 특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화면에서 -필자와 작가가 늑대와 오소리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던- 하나의 동물체는 무엇인가를 뚜렷이 '응시'하고 있으며, 그 옆의 다른 화면에는 비대한 토끼(?)가 '배설'하고 있는 이미지가 존재한다. 이러한 동물형상들은 화면의 주체로서 능동적이고 도전적으로 읽혀진다. 현실대면에서 오는 의식의 구차함을 걷어내 사고의 진정성을 담보로 세상에 다가가는 인간의 행동을 그는 이미지가 발산하는 원초적 에너지로 치환하고 있는 것이다.
민녹주_캔버스에 유채_162×260cm_2011
민녹주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2×209cm_2011

제도와 물질의 메커니즘에 종속된 현실의 삶은 자연본성에 의지하여 또 다른 차원으로 이동한다. 그의 작업 중 '웃는 여자아이의 표정'은 불합리한 세계에 대응하는 감각의 밀도를 더 한다. 아이의 천진한 웃음 이면에는 인간이 창조적 긴장을 향해 삶 속으로 밀어 넣어야할 어떤 것을 능동적으로 수용하는 통섭(通涉)의 의지가 숨어 있다. 인간의 삶에서 정치와 자본이 포장하는 허위적 현실과 부조리를 직설적으로 거론하기에 앞서 작가는 그것의 경험을 명확하게 집약, 비정형적 형상들을 통해 삶의 괘도에 또 다른 시작의 가능성을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행하는 회화작업은 불합리한 세계와 불확실한 삶에 대한 인간성과 인간조건이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것으로 이러한 행동은 그 차원을 달리하며 지속적 생성과정에 놓여있다. ■ 김숙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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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검은 몸, 검은 물질




김성민展 / KIMSUNGMIN / 金成珉 / painting.sculpture 2011_1130 ▶ 2011_1214



김성민_잘린 생각_캔버스에 흑연_220×245cm_2011


2011_1130 ▶ 2011_1206 초대일시 / 2011_0921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전북도립미술관 서울관 JEONBUK PROVINCE ART MUSEUM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인사아트센터 제1전시실 Tel. +82.2.720.4354 www.jbartmuse.go.kr

2011_1208 ▶ 2011_1214 초대일시 / 2011_1208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09:00am~10:00pm / 월요일 휴관

우진문화공간 WOOJIN CULTURE FOUNDATION 전북 전주시 덕진구 진북2동 1062-3번지 Tel. +82.63.272.7223 www.woojin.or.kr



김성민-너무 검은 몸, 검은 물질 ● 익산에 위치한 작가의 작업실 공간에는 검은 그림들이 세워져있었다. 조용하고 한가한 시간, 밝고 화사한 늦가을의 햇살을 안고 너무 검은 그림과 대면하고 있다. 그것은 검은 물질이자 동시에 검은 인간의 모습이었다. 대부분 남자의 누드인데 그것은 작가에 의해 연출된 몸짓이고 몸의 언어이자 내면을 지시하는 실루엣으로 가득하다. 벌거벗은 남자들은 등을 보여주거나 고개를 숙이거나 엎드려있거나 누워있다. 구체적인 정보를 지워버린 얼굴과 몸은 그저 동물성의 육체, 물질성의 몸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몸짓, 몸이 발산하는 신호음에 귀 기울이게 한다. 그것은 묵언의 몸짓이자 절박한 실존의 흔들림이거나 복잡한 내면의 파열음 같기도 하다, ● 분명 작가는 '그것'을 표현하려는 것 같다. 그러니까 껍질로서의 인간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형이상학적 탐구'이거나 심리적 불안과 성적 불안, 혹은 보편적인 인간의 실존적 고뇌 등을 폭넓게 아우르는 주제의 형상화인 듯 하다. 그동안 김성민은 이 같은 주제를 일관되게 형상화해왔고 따라서 자연스레 소재는 항상 벌거벗은 인간의 몸이었고 그와 동일한 맥락에서 도살장의 소고기나 소머리 등이 등장했었다. 표현방법 또한 표현주의적인 붓질과 색채를 구사해왔다고 여겨지며 대상 자체를 강렬하게 묘사하고 배경은 단순하게 혹은 과감하게 생략해버리는 식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인간의 몸, 얼굴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도상화 하는 한편 감각적인 구성과 붓질, 색채를 연출한다는 것이 만만한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다.
김성민_늘어진 생각_캔버스에 흑연_112×112cm_2011
김성민_텅빈 머리 캔버스에 흑연_37×45cm_2011
김성민_긴 생각_캔버스에 흑연_73×91cm_2011

그는 군대에서 제대하고 복학한 후에 우연히 에곤 실레의 화집을 접했던 그 충격에 대해 말했다. 그의 그림, 누두는 실레의 영향을 어느정도 연상시키는 편이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는 이들이라면 대부분 실레나 베이컨, 프로이트 같은 작가들의 몸 그림에 경도되거나 좋아하지 않을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탁월한 재현과 형상화에 감동하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다. 사실 실레는 여전히 가장 인기 있는 작가다. 특히 수많은 미술인들이 그의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는 우선 탁월한 데생력, 독특한 몸의 해석, 흥미로운 구성과 색채와 붓질의 유연함과 매력 등일 것이다. 간단하게 말해 정말 그림을 잘 그리는 이다. 실레의 누드, 자화상 등은 이전의 정형화되고 유미적인 몸들과는 판이하게 다르고 그만큼 강렬하고 진실하다. 그가 재현한 몸들은 불안과 고뇌, 인간이란 존재가 지닌 모든 요소를 솔직하게 드러내버린다. 피부 속에 들어차있는, 알 수 없고 시각화할 수 없는 것을 그림으로 발설해버리는 것이다. 특정한 관습적 틀과 유형에 매이거나 그림을 매끈하게 다듬는 조악함이나 타인의 눈을 의식하는 시선 등을 지워버리고 철저하게 자신의 본능, 욕망, 불안에 이끌려 대상을 파헤치는 무서운 눈이 그의 그림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아마도 김성민은 그 실레의 그림과 같은 몸을 그리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그는 실레와는 다른 현재의 시간대에 당대의 인간에 대해, 자신의 존재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그것을 그림을, 자신만의 방법론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그가 그린 몸은 특정 모델의 몸을 아름답거나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그림이 아니라 자기 내면이 보고 읽은 인간의 모습이다. 살덩어리의 인간이자 유한한 존재로서 죽음과 생, 리비도아 에고 사이에 부침하는 그런 유약한 인간말이다. 그 인간을 표현하기 위해 그는 몸/ 살을 매개로 사용한다.
김성민_매달린 생각_캔버스에 흑연_245×145cm_2011
김성민_충만한 생각_캔버스에 흑연_65×53cm_2011
김성민_움추린 생각_테라코타에 흑연_53×42×25cm_2005

너무 검고 짙은 색상과 거칠고 강한 질감으로 뒤덮인 그림은 인간의 몸을 암시한다. 색상과 질료는 그것 자체로 자활적인 상태를 보여주는 동시에 이미지를 안기는 것이다. 그림은 이미지이기 이전에 물질이다. 그러나 그 물질은 단지 질료덩어리에 불과하지 않고 물성과 그 물성이 지시하거나 환기하는 또 다른 존재로 비약하는 신비 사이에 걸쳐있다. 그 이미지는 특정 인간의 외양을 재현하거나 묘사한 그림이라기보다는 인간의 몸 자체를 지시하는 기호적인 상태로 화면에 부착되어 있다. 납작한 평면위에 흑연가루와 본드를 섞어 만든 기이한, 독특한 물질이 일정한 높이를 지닌 체 부착되어 있다. 두툼하고 거칠고 갈라져있다. 고부조로 튀어 올라와 거의 조각적이다. 그림이자 동시에 부조이며 이미지이자 물질 그 자체로 범벅져 있는 형국이다. 화면에 흑연가루 물질만이 급박하게 작가의 손에 이끌려 부착되고 쓸리고 얹혀져있다. 이 핑거페인팅은 검은 석탄으로 형상화한 인물을 촉각적으로 전해준다. 물질이 중력의 법칙에 의해 아래로 밀리고 흘러내린 자국, 몇 번에 거쳐 물질을 올려놓아 이룬 몇 겹의 층, 시간의 차이에 따라 굳고 갈라지고 다시 굳는 차이들의 동시적 전개, 부분적으로 튀어나온 부위들을 돌멩이로 갈아서 이룬 번들거리는 광택 등은 상당히 흥미롭다. 대부분 연필이란 재료는 그림을 그리는 도구인데 반해 흑연가루를 물질, 안료처럼 만들어 부착하는 이 낯선 페인팅은 흑연이란 물질이 평면위에서 만들어내는 조각적 회화다. 그는 검은 물질, 흑연가루를 화면에 덮고 밀어나가거나 부분적으로 연필터치를 주고 돌멩이로 갈아내면서 인간의 몸 안에서 발산하는 내면의 소리, 심리적 메시지를 듣기를 요구한다. 그것이 어떻게 형상화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분명 까다로운 문제이지만 좋은 작가, 작업은 눈에 보이지 않는, 비가시적 존재를 가시적 세계로 끌어내고 들을 수 없고 다만 기미나 느낌으로만 전해질 수 있는 것들에 모종의 '몸'을 부여하는 이들이고 그것이 또한 그들의 일이다. 재료에서 새로움을 주는 근작은 오일페인팅에서 벗어나 흑연가루를 갖고 만든 검은 몸이고 이 검은 몸 그림은 작가의 일관된 주제인 인간의 실존이나 내면세계와 같은 다분히 추상적이고 관념적일 수 있는 문제를 효과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매개가 되기 위한 시도에서 나왔다고 본다. 그러한 시도가 향후 어떻게 진척될 지가 무척 궁금해지는 근작이다. ■ 박영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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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mas Art Shopping: I love Dream

2011_1201 ▶ 2011_1227


이국희_성탄_캔버스에 유채_45.5×38cm_2009 이국희_성탄2_캔버스에 유채_90.9×60.6cm_2011

초대일시 / 2011_1201_목요일_06:00pm

참여작가 문정희_유갑규_이국희_이슬기_임현희_황나현

관람시간 / 11:00am~08:00pm

갤러리 예담 컨템포러리 Gallery yedam Contemporary 서울 종로구 삼청동 26-2번지 Tel. +82.2.723.6033


identity ● 현대인들은 본질적으로 대상을 필요로 합니다. '나'라는 자아는 외부의 대상을 지각하고, '너'라는 타자에 대한 개념을 의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자아가 객체로서 대상이 되어주고, 동시에 주체로서 대상을 필요로 하는 관계를 형성하게 됩니다. 거울을 통해 자기 모습을 볼 수 있듯이,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결국, 현대인들은 자신으로부터 아닌, 타인에 의한 이미지로 형성됩니다. 타인의, 타인에 의한, 타인을 위한(of the other people, by the other people, for the other people) 이미지가 형성되는 것이며, 주체의 원초적인 모습인 유년기 아이들의 모습에서 비롯됩니다. ● 2008년부터 전개한 '시선'이 대상의 익명성과 호기심을 유발하여, 경험과 기억을 환원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면, 앞으로 전개될 작품 속 아이들의 시선은 대상을 응시하되 Mask는 감춰진 이미지를 형상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관계 속에서 특정한 지위와 역할을 가지게 됩니다. 나로 인해 관계가 형성되기도 하며, 타인에 의해 나의 역할이 주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인간관계의 폭과 깊이가 확장될수록 복잡해지고 상호 모순적으로 전개되는 것입니다. 즉,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이미지는 본연의 이미지를 덮게 됨과 동시에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에 대한 정체성 혼란과 갈등을 야기합니다. 보이는 것과 보여주는 것의 관계, 흔히 우리가 문제로 삼는 정체성의 문제는 엄밀히 말해 자아 정체성이라기보다는 관계적 정체성의 문제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전개될 본인의 작업은 관계적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바탕으로 드러냄과 드러내지 않은 상호관계를 통해 관계에서의 위기의식과 갈등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 것입니다. 본인이 말하는 드러내지 않음은 역으로 드러냄을 의미하기도 하며, 드러내는 것은 또 역으로 더 자신을 드러내지 않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정체성 혼란에 의해 형성되는 이미지를 경험하고 이를 통한 반성적 사고와 함께 본 모습을 재점검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 문정희
문정희_hidden mask N.05-1_종이에 콘테, 드라이포인트, 신콜레, 채색_29.7×21cm__2011
유갑규_빙폭타다_장지에 수묵담채, 아크릴채색_72.8×60.7cm_2008

위에서 부터 아래로 흘러내리는 폭포는 늘 한결같다. 그 변함없는 모습이 정말 좋았다. 위에서 부터 아래로 흘러내리는 것이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을 나타내는 것 같고, 장마철이나 갈수기가 아닌 이상 계속해서 일정하게 수량을 유지하면서 흐르는 것이 중도(中道)를 지키는 듯 하고, 단단한 바위를 깎아내며 자신의 길을 확보하는 것이 마치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과도 같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 때문에 나는 폭포를 소재로 삼아 작업을 하였다. 그런데 작업을 하다 보니 폭포에서 느껴지는 또 다른 감정은 매우 야성적이어서 자신을 알아가는 것조차 싫어하는 듯, 남에게 일부러 투정부리는 듯 느껴지게 되었다. 그러던 중 TV를 보는데 빙폭(氷瀑)을 오르는 사람들이 나왔다. 이것을 보면서 갑자기 이때가 폭포가 자신의 마음을 열고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듯 한 느낌이라고 느껴졌다. 그리고 빙폭을 오르는 사람들의 얼굴은 위험천만한 빙폭을 오르는 두려움 보다는 스릴을 즐기는 듯, 또는 등산을 하며 자연과 같이 호흡하는 상쾌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이때부터 빙폭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작업을 생각하게 되었다. ● 빙폭이라는 소재는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객체로서 빙폭은 액체인 물에서 고체인 얼음으로의 변환이라는 계절에 따른 변화를 담고 있다. 시간의 변화의 따른 변환... 그것은 쉼 없이 변화한다. 이러한 점은 빙폭이 단순한 무생물이 아닌 인간과 같은 생명체로 여겨지게 한다. 우리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변화하기 때문이다. 빙폭이라는 것이 한번에 언 것이 아니고 녹았다가 또 얼고 녹았다 어는 반복된 과정에 의한 완성의 모습이 자기 자신이 세운 목표인 이상형을 이루기 위해 실패도 해보고 그 실패나 꾸지람, 배움을 통해 더 단단하게 완성 되가는 모습으로 치환 되게 느껴졌다. ● 은유적으로 빙폭은 우리 인생의 장애물과도 같다. 빙폭 등반은 인생이라는 여정 자체일지도 모른다. 순간의 잘못으로 위험에 처 할 수도 있고 긴장하고 꾸준히 오르면 결국 정상에 오르는 것 자체가 우리가 사는 모습이다. 계속 오르다보면 끝이 있고 진정 자신이 뭘 해냈다는 보람이 있기에 위험을 무릅쓰고 사람들은 언제 깨질지도 모르는 빙폭을 한 발씩 또 한 발씩 오른다. 우리는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우리의 삶을 살아간다. 각자의 삶의 정상을 만들어가며... 빙폭을 통해 이런 것을 얘기 하고 싶었다. ■ 유갑규
이국희_sweet home_캔버스에 유채_91×116.7cm_2010
이슬기_Another nature_캔버스에 유채_90.9×60.5cm_2009
임현희_Mother earth violet and green plant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4×68cm_2011

평일 오후 작업실로 가는 길, 나는 잉여인간이된다. 서류가방을 안고 지하철에서 꾸벅꾸벅 조는 아저씨를 보거나 바닥에 뒹굴고 있는 신문 한 귀퉁이 부동산 정보를 흘낏 눈으로 스치며 난 현실에서 60도 쯤 비껴난 공간에 있다. 나는 사회와 그리 친하지 않은 듯 하다. 뉴스의 한 꼭지 조차 치밀어 오르는 화 때문에 혹은 우울함 때문에 끝까지 보지 못하고 채널을 돌려버리니… 그나마 날씨 소식이 가장 마음이 편하다. ● 내 그림도 이런 나와 닮아있다. 현실 도피라기보단 앞에서 말했듯 한 60도 비껴난 곳을 보고 있다. 이건 변명이 아니다. 전에 같이 살던 친구가 말했다. "언니, 길거리에 새들이 저렇게 많은데 온통 살아있는 것들 뿐이야. 어떻게 저 많은 새중에 단 한 마리도 죽은 새가 안 보일 수 있는거지?" 60도 비껴난 나의 현실 속에서 새들은 코끼리들처럼 그들만이 아는 죽는 장소가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그들은 죽은게 아니라 하늘과 땅을 배회하는 영생하는 신일지도...그 비껴난 세계를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때문에 난 아직 붓을 움직이고 있는지 모르겠다. ● 지금 하고 있는 작업들 중 대부분은 런던에서 유학하며 그 곳에서 영향을 받은 그림들이다. 처음 런던을 도착했을 때 내가 그곳에서 제일 부러웠던 것은 나무들이었다. 서울 역시 런던과 같이 오래된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서울의 나무는 그들에 비해 너무나 앙상하고 초라하다. 하지만 런던의 나무들은 많은 사람들과 차들에 상관없이 높게 자라있으며 풍성했다. 그 나무들은 나에게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어머니의 자궁을 연상시켰다. 난 그 느낌을 생명력이 가득 찬 모습으로 내 캔버스에 담고 싶었다. 어머니의 자궁처럼 풍성한 모습으로 말이다. ● 앞으로의 작품은 생명의 뒷 편에 있는 죽음에 대해서도 담고 싶다. 고 정기용 건축가 님의 다큐멘터리 중에 정기용 선생님께서 '시간이 멈춘 집' 이라 이름붙인 집이 있다. 어린 딸을 먼저 잃은 어머니의 의뢰로 고 정기용 선생님께서 만드신 집이다. 그 집에는 마당 가운데 죽은 딸 아이의 무덤이 있는데 무덤 위로는 성모 마리아 상이 올려져있고, 집 주위를 감싸는 높은 담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가려 바람이 고이게 한다. 무덤을 둘러싼 풀들과 꽃들은 바람에 흔들리며 무덤을 어루만진다. 그 무덤을 보며 죽음을 바라보는 정기용 선생님의 시선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나도 그 시선을 작품에 담고싶다. 차가운 땅이 아닌 생명의 근원지인 땅 속에서 그들을 어루만지길 기원한다. ■ 임현희
황나현_귀가歸家 Way back_한지에 혼합재료_72.7×60.6cm_2011

엷은 꿈 ● 어릴 적 나는 이따금 동화책 이야기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실재할 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곤 했다. 그 중 하나가, 정말 '천국' 이라는 장소가 구름 위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구름 위 천국'을 보려고, 옥상에 올라가 껑충껑충 뛰었던 적이 있었다. ● 비단, 어린 아이가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적어도 한 번은 자신만의 낙원을 꿈꾸고 찾는다. 그것은 어떤 이에게는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는 곳일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는 모습일 수도 있다. 어떤 식으로든 낙원은 우리의 상상에서 현실의 고민과 갈등 없이 최고의 행복과 기쁨만을 느끼는 장소로 귀결됨은 분명하다. 한편, 대부분 사람들의 상상 속 낙원은 실재하지 않거나, 구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은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매혹적인 낙원을 누리기 위해서는 늘 어떤 노력이나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 이번 작품에서는 실재하고 있지만 단지 알아채지 못한 낙원, 그리고 그 안에서 놀랍도록 행복한 에너지를 누리고 있지만,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상처받으면서도 그들의 상처마저 편안히 보듬어 주는 착한 자연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 황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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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얼굴


김정헌展 / KIMJUNGHUN / 金貞憲 / painting   2011_1201 ▶ 2011_1217 / 월요일 휴관


김정헌_포근함의 미소_한지에 인두화, 혼합재료_190×120cm_2011

초대일시 / 2011_1201_목요일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_12:00pm~05:00pm / 월요일 휴관

심여화랑 Simyo Gallery 서울 종로구 사간동 37-1번지 Tel. +82.2.739.7517 www.simyogallery.com


김정헌.. 그의 작품에 대한 단상 김정헌 작가의 그림은 쉽다. ● 나는 그림을 모른다. 유명하다는 대영박물관을 갔을 때에도 그 유명하다는 피카소의 그림에도 샤갈의 정교하고 화려한 그림 앞에서도, 영혼이 울리는 충격 같은 건 받아본 적이 없다. 고흐의 그림보다 그의 삶의 뒷이야기가 더 흥미롭다. 그림에 문외한인 내가 본 김정헌 작가의 그림은 친숙하다.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그의 그림은 잔잔한 이야기로 내게 말을 건네 이야기를 시작한다.
김정헌_햇빛 속에서_한지에 인두화, 혼합재료_190×120cm_2011
김정헌_김외헌_한지에 인두화, 혼합재료_240×70cm 2010

김정헌 작가의 그림은 1인칭 관점 소설이다. ● 그가 그리는 인물들은 저마다의 특별한 인생을 품고 있다. 다양한 인물들의 다양한 삶의 이야기가 보인다, 의미를 부여하려고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그의 그림에서 나와 공통된 내 삶의 부분이 보인다. 그의 그림에는 독특한 리듬감이 있다. 결코 격해지지 않으면서 항상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담담하게 인생을 그려낸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애쓰지 않아도 친근하게 다가온다.
김정헌_피노키오가 된 남자_한지에 인두화, 혼합재료_64×122cm_2011

김정헌 작가의 그림은 진실하다. ● 그의 그림은 인두화다, 형영색색의 화려한 색채감도 없다. 화려한 붓의 기교도 없다. 세련된 느낌도 없다. 그러나 언제든 손을 뻗으면 힘들지 않게 닿을 것 같은 소박한 정서와 공감가는 그림 속 이야기는 편하고 자연스럽다. 그 화려하지 않은 진정 성이 신뢰를 준다 그림을 통해서 한편의 영화를 보거나 좋은 노래를 들었을때의 감동이 느껴진다. 인생을 테마로한 변주곡과 같이 다양하고 변화무쌍하게 감성을 채워준다.
김정헌_호랑이를 꿈꾸다_한지에 인두화, 혼합재료_122×122cm_2011
김정헌_희망_한지에 인두로 태움_240×170cm_2011

그의 그림은 토템이다. ● 그는 인두는 그림을 그리는 붓과 같다. 뜨거운 인두를 잡고 오래 작업하면 화상을 입는 것처럼 고통스럽다. 인고의 긴 시간을 거쳐낸 무쇄처럼 그의 그림은 셀 수 없는 인두질로 완성된 강철검같다, 그는 인물들의 인생을 인고의 인두에 담아 기도하듯 작업한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마치 가지고 있으면 상처받은 마음에 위안이 되고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듯한 신비한 힘이 느껴지는 토템같다.
김정헌_마음으로 낳은 딸_첼로에 인두화, 혼합재료_122×44cm_2011

소외받은 인생을 노래하다. ● 뚱한 표정으로 흡사 '왜 내 사진 찍는 거야?'라고 표정으로 말하는듯한 이 아이는 김정헌 작가의 결혼기념일에 후원을 시작한 '다나 어도움 사보'라는 아프리카 차드라는 먼 나라에 살고 있는 6살짜리 아이입니다. 다나가 사는 마을에는 학교가 없습니다. 아직 인생의 선택을 할 수 없는 작고 약한 어린 아이입니다. 그는 부인과 매년 결혼기념일 마다 다나같은 아이를 하나씩 늘리기로 약속 했습니다. 그는 첼로위의 그린 다나를 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결혼 20주년이 되면 20명의 아이를 후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직접 찾아가 만나보고 싶어요." 그는 이런 소외된 아이들을 후원하고 그들을 그림으로써 그들을 더 후원하고자 한다. (당신을 늘 응원하는 사랑하는 아내) ■ 맹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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事物의 意味:이지숙의 '꿈꾸는 책가도'


이지숙展 / LEEJISOOK / 李知淑 / mixed media   2011_1201 ▶ 2011_1218


이지숙_작업실에 머문 봄 농담_테라코타에 아크릴채색_88×83×3cm_2011

초대일시 / 2011_1201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8:00pm

갤러리 예담 컨템포러리 Gallery yedam Contemporary 서울 종로구 삼청동 26-2번지 Tel. +82.2.723.6033


事物의 意味: 일상, 존재, 매혹 - 이지숙의 '꿈꾸는 책가도'1. 테라코타 책가도: 고전에서 일상으로 민화는 한국현대미술의 전개에 중요한 주제로 부각되어 왔다. '민화'라는 용어와 개념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가 1937년 발표한 『공예적 회화』라는 글에서 "민중에 의해 그려지고 민중에 의해 유통되는 그림"을 민화라고 부르자며 그 개념을 발생시켰다. 그 이후 1960년대 후반부터 겨레그림으로서 민화를 재인식하기 시작하였으며, 80년대 민중미술의 재인식과 발전을 거치면서 현재까지 민화의 의미와 가치를 확립하고자 하는 노력들은 계속되고 있다. 그 가운데 팝아트의 결합과 발전은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민화가 가진 전통 모티프와 단순성, 표현성과 같은 조형적 특징을 차용하거나 응용하는 시도는 비단 팝아트뿐만 아니라 미술전반에 걸쳐 드러난다. 이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민화의 의미와 조형성이 인간의 기원적인 소망과 꿈을 담고, 정신을 달콤하게 매혹시키는 부정할 수 없는 매력에 빠져있음을 반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 흙으로 사물들의 가치와 의미들을 찾아내고 그것을 재구조화하는 작가 이지숙 또한 민화의 세계에 주목한다. 이지숙의 테라코타 작업은 서책이 쌓이고, 고전과 현대 문명의 사물들이 이야기를 하듯 중첩되고 구축된다. 서안, 서갑, 연적, 필통과 같은 선비와 문기(文氣)를 상징하는 문방구류들이 구성되고, 그 주위로 모란, 포도, 가지, 연꽃과 같은 부귀, 영화, 다산과 같은 인간 삶의 깊은 염원을 담은 식물들을 배치한다. 이는 전통 책가도의 책의 의미와, 부귀 · 다산의 과일과 꽃 그리고 수집과 완상(琓賞)으로서의 고동기(古銅器)가 어우러지는 고전 민화의 특징들을 농도 짖게 살려내고 있는 것이다. ● 테라코타 책가도가 만들어지기 까지 흙은 몇 가지의 삶으로 변환된다. 흙이 성형이 되면 건조되고 다시
2011.11.29 02:20:51 / Good : 392 + Good

zabel

  • 작성시각: 2011.11.30 14:3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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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ght & Shadow ver.2






박연오展 / PARKYEONOH / 朴?? / mixed media   2011_1201 ▶ 2011_1228 / 일,공휴일 휴관




박연오_movement1_혼합재료_92×92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10803f | 박연오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1201_목요일_05:00pm

기획 / 신한갤러리 역삼 특별展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신한갤러리 역삼 SHINHAN GALLERY YEOKSAM 서울 강남구 역삼동 731번지 신한은행 강남별관 B1 신한아트홀 내 Tel. +82.2.2151.7684




박연오는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사진으로 찍어 인화 한 후, 이미지에 나타난 그림자 위에 핀을 꽂는 이중작업을 한다. 빛을 통해 형성된 그림자의 방향에 따라 높낮이를 조절하며 핀을 꽂는데, 이러한 행위는 빛을 시각화함과 동시에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기 위함이다. 빛과 그림자는 매 순간 변화하지만 사진에 의해 정지되고, 화면 속에서 작가의 손에 의해 다시 움직이다 고정된다. 작가는 빛을 일상의 시작이자 작업의 시작으로 보았다. 또한 세상을 기억하게 하며 나아가 감성적 교류를 가능하게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에게 빛은 세상 그 자체이자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매개체였다. 또한 현재와 과거의 기억, 때로는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드는 통로였다. 여기서 금속성 물질의 핀은 단순한 작업의 재료가 아닌 탁월한 표현의 도구로 존재했다. 그림을 그리듯 회화적으로 완성된 작품은 섬세한 감수성과 서정적인 화면 구성으로 관람객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박연오_movement1_혼합재료_92×92cm_2011_부분
박연오_movement2_혼합재료_92×92cm_2011
박연오_movement3_혼합재료_92x92cm_2011
박연오_bobbing up & down_혼합재료_162.2×130.4cm_2011
박연오_bobbing up & down_혼합재료_162.2×130.4cm_2011_부분

이번 전시에서 처음 선보이는 「Movement」 시리즈는 작품의 제목에서 짐작 할 수 있듯 움직임을 통한 빛과 그림자의 변화에 초점을 둔 작업이다. 정적인 분위기의 기존 작업과 달리 동적인 분위기가 연출되었고, 천 대신 코르크보드가 작품의 바탕이 되었다. 코르크보드에 인화한 사진 이미지는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내며 과거의 기억을 흐릿하게 만들지만, 이미지 위에 반짝이는 핀과 모래입자가 기억의 순간을 다시금 선명하게 상기시킨다. 움직임의 순간을 고정된 화폭에 담아내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흐려진 기억 속에서 멀리뛰기 선수가 착지하는 모습을 생기 있게 표현해냈다. 특히 모래파도의 표현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가 고요한 수영장을 배경으로 그린 「A bigger splash」(1967)에서의 물 표현만큼이나 흡입력 있다. 작가는 혼합매체를 통해 현대미술의 담론에서 경험을 토대로 빛과 그림자에 관해 끊임없이 고찰하고자 한다. 경험은 기억으로 자리잡고 기억은 흔적을 남긴다고 말하는 작가는 그림자, 즉 흔적을 통해 또 다른 흔적을 만들어내며 새로운 존재를 끊임없이 생성해낸다. 관람객들은 이런 그녀의 작품에 공감하고 금방 몰입하게 된다. 이처럼 호소력 짙은 박연오의 작업이 일으킬 반향을 기대한다. ■ 안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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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ts & nets : FOREVER Kusama Yayoi






쿠사마 야요이展 / Kusama Yayoi / painting.sculpture   2011_1201 ▶ 2012_0131 / 백화점 휴점시 휴관




쿠사마 야요이_인피니티 플라워 페탈 Infinity Flower Petal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4×390cm_1992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롯데갤러리 영등포점 개관 1주년 기념展

기획 롯데갤러리 영등포점 롯데갤러리 광복점

관람시간 / 10:30am~08:00pm / 백화점 휴점시 휴관

2011_1201 ▶ 2012_0103

롯데갤러리 영등포점 LOTTE GALLERY YEONGDUENGPO STORE 서울 영등포구 경인로 846 롯데백화점 영등포점 10층 Tel. +82.2.2670.8889 www.lotteshopping.com

2012_0106 ▶ 2012_0131

롯데갤러리 광복점 LOTTE GALLERY GWANGBOK STORE 부산시 중구 중앙동 7가 20-1번지 롯데백화점 아쿠아몰 10층 Tel. +82.51.678.2610 www.lotteshopping.com




롯데갤러리 영등포점과 부산 광복점에서는 행위예술에서 설치미술, 판화까지 자유롭게 오가며 왕성한 활동을 펼쳐온 일본의 거장 쿠사마 야요이(1929- )의 대표작을 선보이는 전시를 마련하였습니다. 특히, 이번 전시는 내년 초 런던 테이트모던에서 회고전이 예정되어 있는 쿠사마 야요이의 대표적인 유화 들을 먼저 만나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뜻깊은 전시가 될 것입니다.
쿠사마 야요이_닷츠-옵세션 Dots-Obs0essio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4.2×34.3cm_2005
쿠사마 야요이_호박 Pumpki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5.8×22.7cm_1990

이번 전시에서는 쿠사마 야요이를 오늘날의 입지에 이르게 한 '인피니티 넷 (Infinity Net)' 시리즈를 비롯하여 호박 시리즈 유화, 미러 오브제 등 다양한 30여 점의 작품을 선보입니다. '인피니티 넷'은 쿠사마 야요이가 뉴욕에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시도했던 회화 시리즈입니다. 작가는 추상표현주의가 아카데믹한 예술로 자라잡기 시작할 무렵인 1959년, 대형 화폭에 시작과 끝이 없는 확산되는 망점들로 가득 찬 올 오버 페인팅 (All Over Painting)을 선보였습니다. 당시 화단의 액션 페인팅과 미니멀리즘의 만남에서 시작된 쿠사마의 이 '인피니티 넷' 시리즈는 작가에게 있어 기존의 회화적 관습에서 완전히 벗어나 그녀의 잠재의식에 자리잡고 있던 무한의 자유로운 세계를 표현 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쿠사마 야요이_후지산 Mount Fuji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38×45.5cm_1989
쿠사마 야요이_수박 Watermelo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38×46cm_1983

이번 전시에 출품되는 '인피니티 넷'은 이러한 쿠사마 야요이 작품의 정수를 느끼게 해줄 것입니다. 1992년 작인 500호의 사이즈에 가까운 「인피니티 플라워 페탈 Infinity Flower Petal」은 3점의 캔버스로 구성되었는데, 빨간 바탕이 검은 망점들로 뒤덮인 유화로서 숨 막힐 듯 복잡하고 반복적인 문양이 환상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키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시선을 고정시키게 만듭니다. 이외에도, 120호 사이즈의 「인피니티 넷츠」부터 4호 「닷츠」까지 다양한 크기의 '인피니티 넷' 시리즈 총 6점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편집적 강박증을 앓아온 쿠사마 야요이는 자신의 강박증을 그대로 작업에 연결시킨 것인데, 그녀의 환영은 10살 무렵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어린 쿠사마는 식탁보의 빨간 꽃무늬 패턴을 보고 나서 천장이나 창 밖을 보면, 그 잔상이 외부로 계속 확장되어 나타나는 것을 느꼈고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된 작가의 강박증과 불안한 정신세계는 캔버스에서 점과 선으로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캔버스 밖으로 확대되면서 자신 뿐만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모든 공간을 뒤덮게 됩니다. 작가는 정신분열증에서 비롯된 환영들을 무한히 반복함으로써 예술과 연결시켰고 그러한 작품들은 관람자로 하여금 자유로운 해방, 무한의 세계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였습니다.
쿠사마 야요이_모자 Hat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31.8×41cm_2000
쿠사마 야요이_미러 박스 Mirror Box (69/280)_볼, 거울, 플렉시글라스_16.8×14×14cm_2001

이러한 점과 선의 확장은 '인피니티 넷' 시리즈에 이어서 호박과 모자, 꽃으로까지 확장되었습니다. 특히 호박 모티프는 후기회화와 설치 작품에도 지속적으로 드러나게 되며, 쿠사마 야요이의 대표적인 오브제로 자리잡게 되었는데, 이번 전시에는 빨간색, 초록색, 노란색의 호박을 모티프로 한 다양한 '호박' 그림이 출품됩니다. 지금까지 국내의 화랑에서는 주로 호박을 주제로 한 판화를 선보였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1990년 대 초반부터 후반까지 제작된 호박을 주제로 한 다양한 원화들을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외에도 「후지산」과 「수박」을 비롯한 쿠사마 야요이의 해학을 엿볼 수 있는 경쾌한 작품들도 선보이며, 거울을 이용해서 만든 「미러 박스」와 브론즈로 만든 「신발」 등도 함께 출품됩니다. 무거운 주제를 강렬한 색채의 위트와 유머로 공간을 채우는 쿠사마 야요이의 대표작이 전시되는 이번 전시는 시각적 풍요로움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입니다. ■ 롯데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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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bris Disembodied



강석호展 / KANGSUKHO / 姜錫昊 / photography.installation   2011_1203 ▶ 2011_1230



강석호_신의 영역 #1_피그먼트 프린트_24.7×33cm_2011


초대일시 / 2011_1119_토요일_05:00pm

관람시간 / 09:00am~06:00pm

갤러리 보라 GALLERYBORA 서울 은평구 진관동 279-35번지 Tel. +82.2.357.9149 www.gallerybora.com



뜨거운 햇볕에 녹아 내린 날개처럼 덧없이 스러진 이카루스의 꿈. 태양에 닿고자 하늘 높이 오르고 올랐지만 한 순간 날개를 잃고 바다로 떨어져 포말처럼 사라진 이카루스. 그는 순리를 거역하는 무모함과 오만함의 상징인 동시에 이상을 좇아 운명과 겨루다 비극적 종말을 맞고 마는 낭만적 영웅의 전형이다. 이런 역설적 가치와 평가 들이 공존하기 때문일까. 이카루스는 '예술'하는 이들의 이상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리고 '지나친 자신감', 자만', '오만함' – 우리말은 차치하고 라틴어에서 파생된 언어들로도 옮기기 힘들기에 라틴어 문화권에서도 있는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 등을 뜻하는 라틴어 hubris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기도 하다. 그 사전적 의미 이면에 조금만 절제할 수 있었더라면, 조금 더 넓고 멀리 볼 수 있었더라면, 조금 더 신중하고 현명하게 행동했더라면 자만, 오만의 결과를 피할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 안타까움, 그리고 무엇보다 애정이 살포시 감춰져 있는 역설적 단어이고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런 hubris를 지난 5~6년 동안 시도했던 서로 다른 네 가지 작업들을 이어주는 키워드로 삼아 자신의 작가 정신을 역설적으로 드러낸 젊은 예술가 강석호의 시각적 비망록이 바로 『Hubris Disembodied』이다.
강석호_신의 영역#2_나무 받침대 위에 아라비아 사막에서 채집한 오브제_53.8×45.8×112.3cm_2010~11_부분
강석호_고장 난 브레이크 #1_피그먼트 프린트_44×33cm_2006
강석호_고장 난 브레이크 #2_나무 받침대 위에 GOP에서 채집한 오브제_ 53.8×45.8×108cm_2005~06_부분
강석호_4걸음 이어진 호흡-Andante_피그먼트 프린트_130.3×47.5cm_2006
강석호_날렵한 호흡 #3-Vivacissimo_피그먼트 프린트_65.6×130.3cm_2006
강석호_trans-society #1_피그먼트 프린트_69.7×116.7cm_2011

더 높은 목표, 더 많은 성취를 좇느라 뒤를 돌아보고 주변의 얘기에 귀 기울이려는 노력을 게을리하게 된 현대인들. 더 높은 가격, 더 높은 명성을 갈망하면서도 정작 나를 알리고 이해시키기 위한 노력과 소통에는 소홀한 오늘날의 예술가들. 강석호의 개인전 『Hubris Disembodied』는 그런 이카루스의 후예들을 은근히 짓누르는 예술적 심문이고 그들의 야무진 꿈의 그늘에 가려있던 것들을 들춰내 일깨우는 예술적 비판이자 자신의 나아갈 바를 밝힌 예술적 선언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처럼 되지 말자고, 그리 되면 아니 된다고 스스로를 벼리며 작업해 온 작가의 예술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노력의 소산이다. 하지만 비판의식으로만 똘똘 뭉친 가시 돋친 질책이나 자만과 오만의 소치를 꾸짖기만 하는 성난 힐난은 아니다. 비판할 것은 비판하되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애정을 담아 창작하고 해학적으로 갈무리한, 시적 깊이가 느껴지는 visual narrative이다. 보는 이를 사색과 자기성찰로 이끄는 이야깃거리들을 켜켜이 쌓는 작업을 photo-documenting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회화적인 동시에 조각적이지만 회화도 조각도 아닌, 설치이고 퍼포먼스이면서 사진이기도 한 다매체 예술이다. 그렇다고 경계를 허문다거나 '통섭적'으로 모든 것들을 아우른다는 미명 아래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뒤섞는 요즘의 '잡탕식 예술'로 오인해서는 안될 일이다. 비싼 값에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가는 화려하고 예쁘기만 한 작업, 얕은 꾀와 빤한 상혼으로 예술을 상품화 한 '감각적인' 작업 들과 그 궤를 달리함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오히려 그런 오만함과 뻔뻔함을 예술로부터 떨어내고 '진정성'으로 속이 꽉 찬 창작을 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작가의 솔직함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다각적 모색이고, 그 흔적들의 콜라주라고 봐야 옳을 것이다. (후략) ■ 김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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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산책




줄리안 오피_마크 퀸展   2011_1202 ▶ 2012_0131



줄리안 오피_담배를 든 루스 2 Ruth with cigarette 2(11/50)_Lambda Print matt sealed_85×64cm_2005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영국 현대미술 대표작가 2인展 Promenade London: Julian Opie & Marc Quinn

기획 롯데갤러리 영등포점 롯데갤러리 광복점

관람시간 / 10:30am~08:00pm / 백화점 휴점시 휴관

2011_1202 ▶ 2012_0103

롯데갤러리 광복점 LOTTE GALLERY GWANGBOK STORE 부산시 중구 중앙동 7가 20-1번지 롯데백화점 아쿠아몰 10층 Tel. +82.51.678.2610 www.lotteshopping.com

2012_0106 ▶ 2012_0131

롯데갤러리 영등포점 LOTTE GALLERY YEONGDUENGPO STORE 서울 영등포구 경인로 846 롯데백화점 영등포점 10층 Tel. +82.2.2670.8889 www.lotteshopping.com



롯데갤러리에서는 영국현대미술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두 작가 줄리안 오피(Julian Opie, 1958- )와 마크 퀸(Marc Quinn, 1964- )의 전시를 개최합니다. 이번 전시에는 줄리안 오피의 단순화된 인물시리즈와 LED animation을 비롯하여 마크 퀸의 생생한 꽃을 주제로 한 유화 등 20여점의 작품이 출품됩니다.
줄리안 오피_모니크 10 This is Monique 10_Vinyl on wooden stretcher_202×112.3cm_2004
줄리안 오피_담배를 든 루스 1 Ruth with Cigarette 1 (47/50)_Silkscreen_121×80cm_2005
줄리안 오피_걷기 Walk (63,64,72/200)_ LED Animation incorporating a small picture frame_13.4×25.6×4.2cm_2009

1958년 런던에서 태어난 줄리안 오피는 골드스미스 컬리지를 졸업하고 주요 갤러리에서 전시하면서 그 명성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작가는 1980년대 영국의 펑크(punk)한 감수성을 배경으로 기존의 미술방식을 거부하면서 대중매체의 인물 이미지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합니다. 그는 주변 인물의 모습에서 꼭 필요한 부분만을 남기고 단순화함으로써 익명의 현대인을 대변하는 팝 아이콘을 탄생시켰습니다. 그러나 화려한 원색으로 표현된 모자, 안경, 장신구 등과 리드미컬하게 나타나는 걸음걸이, 춤사위 등은 제각기 다른 스타일을 가진 개개인의 특수성을 보여줍니다. 특히 그는 컴퓨터 기술을 이용해 인물을 단순화시키고 하나의 이미지를 회화, 조각, LED 애니메이션, 렌티큘러 등의 다양한 매체로 재생산하면서도 작품의 원본성을 고스란히 간직하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 이번 전시에서는 줄리안 오피의 「여학생 마를린」과 「모니크 10」 등의 작품이 전시됩니다. 「여학생 마를린」은 프린트와 비닐을 컴퓨터로 재단하여 캔버스에 입히는 방식으로 제작된 것으로, 색채는 엄격하게 선택되고 통제되었으며 그 자체만으로도 줄리안 오피만의 고유한 특성을 드러내는 작품입니다. 「모니크 10」 역시 같은 방식으로 제작되었는데, 픽토그램 (pictogram)을 연상시키는 둥근 머리와 뚜렷하고 단순한 선으로 이루어진 전신상의 작품으로 간결한 선을 사용해 최소한의 언어와 정보로 주인공의 정체성을 전달합니다. ● 줄리안 오피는 컴퓨터를 이용해서 신체의 다른 활동들, 예컨대 수영, 걷기, 오르기 등의 움직임들까지도 아주 단순화된 형태로 표현합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되는 「걷기」 또한 그러한 작품인데, LED 애니메이션 설치작품으로서 걷는 동작을 묘사한 단순화된 선에 조금씩 변화를 주어 움직임을 표현합니다.
마크 퀸_실크로드 Silkroad_캔버스에 유채_170×260cm_2010
마크 퀸_템스계곡 빙하 Thames Valley Glacier_캔버스에 유채_170×269.5cm_2007
마크 퀸_풍경 02, Portraits of Landscape 02 (54/59)_피그먼트 프린트_100×75cm_2007

줄리안 오피가 경쾌한 인체 이미지로 현대인을 대변하는 새로운 팝 아이콘을 완성시켰다면 마크 퀸은 '꽃'을 주제로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루는 작가입니다. 자신의 피를 뽑아 두상을 만든 'Self' 연작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마크 퀸은 서양란, 여러 가지 꽃과 과일을 모아 사진을 찍고 그것을 정교하게 묘사합니다. 꽃과 과일은 더욱 선명한 색을 주기 위해 얼려서 작업하는 과정을 거쳐 눈부시게 화려하게 표현되고 이러한 비현실적인 색채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화려함 뒤에 도사리고 있는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게 합니다. 인공적으로 조작된 강렬한 색채와 압도적으로 확대된 꽃의 형태는 보는 이에게 불편한 감정을 유발시키고 이러한 그로테스크한 미감을 통해 향락과 퇴폐, 그리고 죽음이라는 삶의 근원적 문제를 제기합니다. ● 이번 전시에서는 마크 퀸의 「실크로드」, 「템스계곡 빙하」와 같이 한 벽면을 가득 채우는 크기의 유화와 싱싱하고 화려한 꽃으로 가득찬 「풍경 02」와 같은 피그먼트 인화 작품 등을 선보입니다. 갖가지 원색으로 얼룩진, 피고 지는 시기를 달리하는 꽃들이 한 자리에 모인 마크 퀸의 작품들은 매우 사실적으로 보여서 감탄을 자아내는 동시에 인간의 무한한 욕망과 신의 섭리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할 것입니다. ● 비비드한 색채로 단순화된 인간의 형상을 통해 현대인의 보편성과 특수성의 상반된 요소를 보여주는 줄리안 오피와 가장 화려한 꽃의 모습에서 죽음을 기억하는 마크 퀸의 작품은 미술사의 문맥을 넘나들며 다양한 해석을 불러일으킵니다. 줄리안 오피와 마크 퀸의 대표작품들이 출품되는 이번 전시는 새롭게 부상한 영국 현대미술의 정수를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 롯데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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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비망록


정복수展 / JUNGBOCSU / 丁卜洙 / painting   2011_1102 ▶ 2011_1204 / 월요일 휴관


정복수_꽃이 떨어지는 시간_캔버스에 오브제, 유채_ 259.1×193.9×6.5cm_2008~11

초대일시 / 2011_1102_수요일_05:00pm

기획 / 사비나미술관 학예연구실

관람료 / 성인 2,000원 / 학생 1,000원

관람시간 / 10:00am~06:30pm / 월요일 휴관

사비나미술관 Savina Museum of Contemporary Art 서울 종로구 안국동 159번지 Tel. +82.2.736.4371 www.savinamuseum.com


존재의 비망록: 운명과 욕망의 주체사이 ● 정복수는 79년도 개인전에서부터 얼굴과 벌거벗은 인체에 내장을 그리는 「몸」에 관한 주제로 계속 작업해 오고 있다. 그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벌거벗은 육체에 내장을 그리고, 민머리의 단순한 얼굴에 눈, 코, 입, 귀를 입체적으로 꼴라주 한 것처럼 그린다. 캔버스 화면배경은 우주와 인간을 연결하는 운명처럼 공허하게 비워두고 그 안에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와 존재자체를 인체로 표현하며 때때로 언어를 삽입한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안 보이는 부분을 드러낸 생체 해부학 도판이나 동양의학에 사용되는 경혈도를 연상하게 한다. 정복수는 탐욕과 배설의 인간사를 가장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것으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벌거벗은 육체라고 말하며 얼굴부위와 몸의 안과 밖 부분을 도구처럼 절단하고 조합하여 인간이야기들을 그려 낸다. 그의 작업에서 언어는 매우 중요하며 은유로 표현된 형상으로 부터 작품 제목을 구체적으로 제시함으로 그가 추구하는 예술적 사유와 표현의 이해를 돕는다. 그의 상징적이며 은유적 표현의 회화는 문자와 언어의 시지각과 함께 총체적 감각으로 소통된다. ● 이번 개인전에서는 2006년에서부터 2011년까지 제작된 유화, 조각, 설치작품들을 선보이는데 이전의 드로잉성향이 강한 작업과는 달리 다양한 질료와 화려한 색채가 특징이다. 인조 꽃, 인형, 마스크 등의 오브제들이 회화의 화면에 마티에르로서 사용되고, 자유로운 터치와 밝은 색채가 시대적 인간형상으로 소통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내장의 추억 2010년작」은 몸의 내장으로부터 외부소통과의 관계를 보여주며 예전 작업과 연결고리를 갖는다. 벌거벗은 중년남성은 튀어나온 배를 중심으로 얼굴을 위로 하고 구불구불한 곡선의 내장들을 내 보이며 화면 중앙에 서 있다. 외부로부터 타인의 시선(눈)이 그려진 뱀 같은 관은 남자의 가슴(심장)으로 파고 들어가 내장에 영향을 미치고, 가장 굵은 소화기내장과 연결된 혀끝으로 말의 파편들이 화려한 색점들이 되어 쏟아져 나온다. 이 색채 줄기는 화면을 마구 흔들며 무채색 연필로 문질러 그린 표면적 육체 안의 내장들에게 쾌락을 제공하고 영향을 미친다. 귀로부터는 들려오는 소리는 가늘고 깊은 소화기관을 거쳐 항문으로 연결된다. 인체의 눈은 외부의 화려한 색(욕망)의 파편들을 보고 즉각적으로 뇌에게 인지시키며 군데군데 잠정적 욕구를 만들며 중심인 등을 떠받고 있다. 이렇게 욕망은 남자를 관통하며 생산과 소비로 순환되고 있다. 「세상에 하는 말 2008년작」에서 보면 남자는 화면중앙에 수직으로 배치되는 전형적인 남근적 형태로 유아독존을 부르짖는다.
정복수_내장의 추억_종이에 오일스틱 연필, 물감_60.6×72.7cm_2010 정복수_세상에 하는 말_캔버스에 유채_90.9×65.1cm_2008

붉은 반점의 살갗을 가진 남자는 점잖은 베이지색에 꽃무늬가 그려진 팬티를 입고 발기된 작은 여러 개의 페니스들을 슬며시 내보이고 있다. 그의 주변에 드리워진 검은 그림자들로 남자는 한 번도 제대로 된 욕망을 표출하지 못한 싸구려 인생임을 알 수 있다. 정복수가 표현하는 남자들은 딱딱하게 경직된 얼굴과 큰 몸통을 갖고 있지만 하체는 부실해 자신의 이야기만을 내지르며 살아가는 거만하고 고집스러운 허풍쟁들로 그려진다. 반면 자궁 안의 아이를 가진 여성은 합판과 골판지위에 윤곽선만을 따서 그려 하나의 독립된 개체가 되어 어느 공간에서든지 자유롭게 배치되는 평화로운 존재로 표현되고 있다. 「하늘로의 여행, 2008~11년작」에서의 인물은 사선으로 속도감 있게 그려져 자유가 극대화된다. 「하늘풍경, 2009~11년작」은 우주의 별자리 같은 모성으로부터 아기가 태어나 현실세계에서 인생이 시작되는 탄생의 드라마를 그린 것이다. 회화와 3차원 입체의 작품이 함께 설치되어 우주, 자연으로부터 땅으로 내려온 인간의 여정을 보여준다.
정복수_하늘풍경_캔버스에 유채_193.9×259.1cm_2009~11

정복수는 「존재의 구조2003~10년작, 2004~2010년작」시리즈에서 인간이 파편들로 끼어 맞춰지는 즉물적 욕망의 실체임을 보여준다. 잘린 얼굴, 몸, 다리는 기관의 파편이 되어 작은 캔버스에 하나의 소우주를 이루고, 그것들은 이어지면서 한 화면이 된다. 아무것도 없는 배경에 존재하는 마네킹 같은 인체는 머리나 몸통 안에 작은 부분들이 포함되거나 빠져 나오며 서로 맞춰가 이 세계를 구성하는 전략기구의 기관으로 작동한다. 특히 얼굴은 종교, 권력, 경제 안에서의 매커니즘적 도구로서 언제나 상황에 따라 바꿔 끼게 되는 기만의 기호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존재의 초상 2007~11년작」, 「기념일, 2011년작」, 「대화의 기술I, 2011년작」에서 한 가지 표정이 아닌 정면, 옆, 위, 아래 다 다르게 그린 가면을 화면에 부조처럼 붙여 표현의 확장을 시도한다.
정복수_대화의 기술1_캔버스에 오브제, 아크릴채색, 색연필_97×130.3×6.5cm_2011 정복수_대화의 기술2_캔버스에 오브제, 아크릴채색, 색연필_130.3×162.2×6.5cm_2011

화면에서 가면을 쓴 인간은 정면을 향해 있는데 원래 얼굴을 상대에게 보이지 않으면서 타인을 관찰하는 관음증의 의미를 포함하면서 언제든지 사회 안에서의 관계와 상황에 따라 수시로 표정을 바꾸는 소통의 기술적 도구라는 것을 그대로 재현한 작업이다. 이 시리즈들은 실제 마네킹위에 인체 내부를 그려 넣은 입체 작품으로도 보여준다. 이것은 가장 도덕적이며 심지어 신의 형상으로까지 보이는 추상적인 평면 육체와 극히 대조를 이루며 화면과 충돌하여 새로운 시공간을 경험하게 한다. 인생반세기를 살아온 작가의 존재론적 탐구는 사랑, 만남, 출산, 죽음이라는 인간원론에 관한 것으로 부터 종교, 자유, 정치, 전쟁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까지를 섭렵한다. 머리와 성기에 얼굴을 얹힌 「만남2006~11」, 타인의 식도가 자신의 귀로 연결된 「인연학 2006~11」, 가슴으로 담고 입으로 출산하는 「악몽-출산, 2005」,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강한 시선으로 쳐다보는 「웃는 여인2003~06」, 세상을 향해 다양한 표정의 얼굴로 내지르는 「세상이 2005~11」, 가혹한 삶을 참고 살아온 잿빛 얼굴과 인생을 사랑하자라는 문자를 메아리처럼 그린 「인생을 2007~08」 등의 작업에는 얼굴표현만으로 그의 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얼굴 표정은 사회적 체계의 규율과 관계의 상호작용에서 나오는 기능으로 대변 된다. 인간을 사랑하기 위해 우선 인간을 더 증오 하는 사르트르의 휴머니스트에 대한 정의처럼 정복수의 얼굴은 구토의 파편들로부터 승화된 인생을 담아낸다. 「종교의 탄생 2006~2008」에서는 물질을 탐닉하는 도구인 손이 잘려 나간 해탈과 포용 그리고 사랑의 표정인 부드러운 미소만 띠고 있는 신의 얼굴을 보여준다. 반면 온몸을 사용하여 무언가를 향해 질주하는 육체들은 「집착과 죽음」의 주제가 된다. ●「자유와 혼돈 2010년작」에서의 인체의 부분들은 더욱 해체되어 화면에 자유롭게 배체되고 있다. 손은 기술의 극인 도구로, 얼굴은 언어의 극으로 서로 대조를 이루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기호체계로부터 자유경쟁체제에서 생산되는 도구와 언어의 끝없는 출현은 화면을 단지 혼란스러운 상태로 만들뿐이다. 반면 「낙원에서 온 편지(2008~11년작」에서 꽃 밭 위에 벌거벗고 누워있는 남녀는 평화로워 보인다. 태초의 아담과 이브처럼 보이나 선악과를 따 먹는 유혹에 빠지지 않고 여전히 순수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중년의 남녀다. 남성은 발기되어 있지만 탐하지 않는 여유로운 모습이며 여성 역시 편안하게 잠을 자고 있다. 이 작업은 그림의 위에서 내려다보는 관찰자의 시선과 화면에 붙인 플라스틱 꽃잎 오브제 그리고 그림 앞에 설치된 나뭇가지의 직접적인 감정이입이 되는 직선적 시선을 동시에 경험하게 한다.
정복수_낙원에서 온 편지_캔버스에 오브제, 유채_193.9×259.1×6.5cm_2008~11

현재와 원초적 시간의 나선적 공존은 「꽃이 떨어지는 시간, 2008~11년작」에서 마네킹으로 된 인간 두상의 입체작품을 함께 설치해 대 우주적 세계 안에서의 존재론을 보여준다. 정복수는 정치와 경제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근대와 초현대의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한국에서 계속 살아오며 작업하고 있다. 그의 삶에서 경험한 관계와 소통에 관한 인간사는 더욱 성숙되고 깊은 관점의 대서사시로 완성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는 실시간으로 생중계 되어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큰 충격을 주며 감정의 롤러코스트를 겪게 한다. 그리고 비이성적이며 미쳐가는 물질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여전히 자연과 우주의 시간과 함께 살아가는 평범한 부부의 생은 새로운 낙원이며 신화적 모델이라 여겨진다. 그동안 표현적 회화로 보여 주었던 정복수의 인간 비망록은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주변에서 발견한 일상의 오브제들을 재료로 하여 회화, 조각, 설치 등의 매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운명과 욕망적 존재들의 감각을 확장시킨다. ■ 김미진
정복수_뱃속 풍경_혼합재료_102×75×40cm_2011 정복수_존재의 비망록_혼합재료_140×38×38cm_2011 정복수_치맛속 풍경_혼합재료_128×51.5×50cm_2011

A Memorandum of Exist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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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정휘진展 / JEONGHWEEJIN / 鄭輝眞 / painting   2011_1205 ▶ 2011_1230 / 일,공휴일 휴관


정휘진_문 앞에서_장지에 채색_160×130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정휘진 홈페이지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오!재미동_서울영상위원회_서울시

관람시간 / 11:00am~08:00pm / 일,공휴일 휴관

충무로영상센터 오!재미동 갤러리 미술동네 OHZEMIDONG GALLERY 서울 중구 충무로4가 125번지 충무로역사내 Tel. +82.2.777.0421 www.ohzemidong.co.kr


나의 작업은 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너무나 익숙한 것이기에 쉽게 지나쳐 버리는, 특별히 눈길을 끌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대개 낡고 퇴색한 일상의 풍경들은 오랜 시간의 축적을 거쳐 만들어진 삶의 표정들을 담고 있다. 사람들은 이를 풍경으로 바라보고 이해하지만, 나는 이러한 사물들을 통해 그것이 기록하고 있는 삶의 흔적들을 관조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화면 속의 풍경들은 구체적인 상황이나 장소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내재하고 있는 인간의 삶을 표출하는 도구이자 수단인 셈이다. 낡고 쇄락한 사물들은 일상에 찌든 현대인의 삶을 은유적으로 표현할 뿐 아니라,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치열한 일생을 드러내기도 한다.
정휘진_봄_장지에 채색_96.5×130cm_2011
정휘진_회기동_장지에 채색_92×116cm_2011
정휘진_untitled_장지에 채색_61×72.5cm_2011
정휘진_untitled_장지에 채색_61×72.5cm_2011
정휘진_untitled_장지에 채색_61×72.5cm_2011
정휘진_노량진에서_장지에 채색_80×190cm_2011

나의 작업 속의 고양이는 어딘가를 찾아 끊임없이 방황하는 현대인의 또 다른 모습이다. 고양이들은 음습하고 낡은 건물들의 어두운 곳을 배회한다. 그것은 인간의 눈에는 낡고 초라한 풍경으로 보이겠지만, 고양이에게는 안식과 평안을 주는 절대적인 공간이다. 현대인들의 삶 역시 이러한 고양이들의 추구와 같이 안락한 잠자리와 풍성한 먹을거리를 찾아 배회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때에 따라서 그것은 화면 속의 풍경처럼 낡고 볼품없는 모양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삶에 절대적인 가치가 있을 수 없듯이 개개인의 삶에 있어서는 모두 소중하고 절실한 것이다. ■ 정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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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기억


조은정展 / CHOEUNJOUNG / 趙恩正 / painting   2011_1207 ▶ 2011_1220


조은정_7겹 안전문_캔버스에 유채_65.5×91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91031b | 조은정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모로갤러리 GALLERY MORO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8-16번지 남도빌딩 1층 Tel. +82.2.739.1666 www.morogallery.com


나는 이야기가 있는 상상의 풍경을 그린다. 이 작업은 어떤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모아 화면에 재구성한 후 이야기를 덧대는 방식이다. ● 현재 작업들은 일상에서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 마주하게 되는 다양한 사건들로부터 영감을 얻고 있다. 특히 개인적 경험에서 나오는 소재들을 사회적 이슈와 결부해 이야기를 확장시켜나가고 있으며 공허하고 쓸쓸하지만 때론 익살스럽게 그려내고 있다. 별을 담는 그릇으로 변한 천문관측소, 실로 만들어진 달팽이집, 커다란 사과를 숭배하는 신전 등 흔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사물을 변형해 현대사회과 인간에 대한 다양한 측면을 가볍고 악의 없는 웃음으로 풀어내고 있다.
조은정_왜곡의 진리_캔버스에 유채_46×46cm_2011
조은정_끝없는 숲_캔버스에 유채_46×46cm_2011
조은정_동물원_캔버스에 유채_46×46cm_2011
조은정_어느날_캔버스에 유채_38×45.5cm_2011
조은정_악몽_캔버스에 유채_46×46cm_2011
조은정_가려진 진실_캔버스에 유채_38×46cm_2011

상상의 풍경을 나타내기 위해 나는 작품을 전체적으로 모노톤으로 유지하고 대칭적 구도로 정적이고 고요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대부분의 꿈을 모노톤으로 꾸는 나는 상상이나 환상적인 장면을 생각하면 나의 꿈처럼 모노톤의 풍경을 떠올리게 된다. 고유색을 가진 현실세계와 다른 상상의 풍경을 나타내고 싶었다. ● 상상의 풍경을 나타내는 또 다른 방법으로 사물을 조합하고 재배치하는 방식을 사용하였다. 현실은 잘 짜여진 퍼즐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잘 짜여진 퍼즐, 다시 말해 현실을 조금씩 비틀어서 상상의 풍경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즉, 일상적 사물을 있어야할 자리에 두지 않고 자연법칙이나 사회적 통념을 벗어나게끔 엉뚱한 방식으로 결합하여 다양한 이야기를 생산해 내는 것이다. ● 여기서 사물의 배치나 선택은 무작위적이지 않고 책이나 경험, 관심사를 바탕으로 먼저 이야기를 만든 후 연상되는 사물로 재구성하여 쓸쓸하거나 어찌 보면 씁쓸한 현대 사회를 유머러스하게 표현하고 있다. 현실적 소재를 바탕으로 사회적 의미와 메시지를 다루고 있으며 이 풍경은 자연그대로의 풍경이 아닌 재구성한 현실을 나타낸다. ■ 조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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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이미지-라이프치히 신드롬, 마지막 이야기


율리어스 호프만展 / Julius Hofmann / painting   2011_1207 ▶ 2011_1229


율리어스 호프만_Paar im Mondschein_리넨에 아크릴채색_90×70cm_2011

초대일시 / 2011_1207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09:00am~06:00pm

유엔씨 갤러리 UNC gallery 서울 강남구 청담동 58-13번지 Tel. +82.2.733.2798 www.uncgallery.com


라이프치히의 신예 아티스트 율리어스 호프만(Julius Hofmann)의 개인전 『소통의 이미지-라이프치히 신드롬, 마지막 이야기』가 오는 12월 7일부터 29일까지 청담동 UNC갤러리에서 열린다. 1983년 독일 중부에 위치한 괴팅겐(Göttingen)에서 태어난 율리어스 호프만은 21세기 새로운 회화의 진원지로 평가 받고 있는 라이프치히 시각예술대학(Academy of Visual Arts Leipzig)에서 수학하였으며, 신라이프치히 화파의 기수로 불리는 네오 라우흐(Neo Lauch)에게 사사했다. 호프만은 재학 중, 이미 유럽의 저명한 콜렉터들의 수집 대상이 될 정도로 재능을 보여 왔으며, 유럽의 여러 국가 및 아트페어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율리어스 호프만_Citadel_리넨에 아크릴채색_90×70cm_2011
율리어스 호프만_JH Prabo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40cm_2009
율리어스 호프만_Eule mit einer Mau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0×80cm_2011

UNC 갤러리는 지난 10월과 11월에 걸쳐 라이프치히 시각예술대학 출신으로 구성된 라이프치히 화파와 신-라이프치히 화파의 작품을 선보였다. 『Great surprise from Leipzig』 전을 통해 소개한 원조 라이프치히 화파 작가들은 과거 회화가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되었던 구 동독의 사회주의 체제아래 작업하였다. 그들의 작품에는 예술적 자유의지와 정치적 수단으로써의 회화 사이에서 불거진 억압된 감정을 거친 붓자욱이나 색을 통해 표현하였다. 그 이후 90년대 초반부터 네오 라우흐를 위시해 두각을 보이기 시작한 신-라이프치히 화파의 작품에는 정치적 수단으로써의 회화라기 보다는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겪으면서, 서로 다른 두 체제의 충돌로 인한 불안감과 희망의 혼돈 속에서 비춰지는 사회의 미래상을 주관적인 언어로 해석하여 그려낸다. 이번 전시를 통해 소개하는 율리어스 호프만은 신-라이프치히와는 또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 신-라이프치히 2세대라 할 수 있는 호프만은 앞서 선보인 신-라이프치히 1세대 작가들과는 달리 독일 통일 이후 과도기를 지나 자본주의로 향하고 있는 사회에서 성장하였다. 과거와 현재의 융합 속에서 나타나는 현대 사회의 다양한 현상들을 호프만은 자신만의 색과 형태로 표현 하고 있다. 라이프치히 화파에서 신-라이프치히 화파 그리고 이번에 전시를 하는 호프만의 작품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회화의 기초적인 것부터 충실하게 그려내며 그 안에 자신들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개념미술의 홍수 속에서 전통적인 회화의 본질을 추구함과 동시에 현대 사회를 바라보는 라이프치히 화파의 시각적 표현이 21세기 새로운 회화의 등장으로 평가 받고 있다.
율리어스 호프만_Thro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55×110cm_2011
율리어스 호프만_Prelud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0×60cm_2011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찾아온 급속한 구 동독 지역의 사회적 변화는 그 지역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예술활동에 대해서 표현의 자유를 얻긴 했지만, 미래 사회의 기대감과 현실과의 괴리 속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 이러한 영향은 호프만 역시 예외가 아니었는데 그의 작품 곳곳에서 혼돈의 흔적이 나타나 있음을 알 수 있다. 호프만은 자신을 둘러싼 미디어의 홍수 사이에 긴장감으로부터 시작하여, 현대인을 휘감은 미디어의 범람으로 인한 폭력성과 잔혹성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형상들을 상징화 시켜 그려낸다. 예컨대 그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가면은 자신을 보호하려는 헬멧 같은 역할을 하는데, 그가 경험한 혼란스러운 사회에서 오는 두려움과 의심을 무섭게 보이는 가면을 통해서 상처받기 쉬운 내면의 감정을 숨기고 있다. 표현되는 인물은 깨지기 쉬운 불안한 형태를 띠고 있으며 이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드릴이나 오토바이 같은 소재들은 변화된 사회, 즉 자본주의 사회와의 충돌로 인한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저항으로 해석된다. 사회적 혼돈 속에 나약해진 자아를 숨기기 위하여 호프만은 잔혹하고 괴기스럽게 보이는 이미지들을 오히려 화려하고 독특한 형태로 표현하며, 작가만의 방식으로 사회와 소통하는 매개체로 그려낸다.
율리어스 호프만_Indian Trail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011_80×60cm

UNC 갤러리는 2011년 10월 『Great Surprise from Leipzig』 부터 시작하여, 11월 『yGa – 라이프치히 신드롬, 그 두 번째 이야기』까지 독일 라이프치히의 현대미술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라이프치히 3부작 중 마지막으로 선보이는 이번 『소통의 이미지 – 라이프치히 신드롬; 마지막 이야기』는 라이프치히의 현재와 미래를 조명해보는 시간으로. 라이프치히에서 가장 주목 받고 있는 신예 작가 율리어스 호프만의 작품을 2011년 12월 7일부터 29일까지 총 15점 내외를 공개한다. ■ 유엔씨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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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전: 유동하는 공포 Monster: Liquid Fear


박승예展 / PARKSEUNGYEA / 朴昇藝 / painting   2011_1207 ▶ 2011_1230 / 일요일 휴관


박승예_I am your #1_종이에 팬_110×80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박승예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1207_수요일_05:00pm

2012 Shinhan Young Artist Festa

런치토크 / 2011_1222_목요일_12:00pm 미술체험 / 2011_1229_목요일_03: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 휴관

신한갤러리 SHINHAN MUSEUM 서울 중구 태평로 1가 62-12번지 신한은행 광화문지점 4층 Tel. +82.2.722.8493 www.shinhanmuseum.co.kr


일곱 살의 나는 어떤 종류의 무서운 영화도 마주 볼 수 없었더랬다. 화면 속의 괴물들이 튀어나와서 나를 공격할 것만 같은 공포가 나를 사로잡곤 하였던 것이었다. 37살의 나는 더 이상, 그 괴물들이 실제에 존재하지 않음을 알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단지 나의 마음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환영에 불과할지도 모름을 알고 있는 것이다. 내가 알아채어버리고 만 것은 그런 영화조차도 실제의 우리 삶의 공포를 반영할 수 없다라는 사실이다. 심지어 낮과 밤의 일상적인 악몽조차도 그런 영화보다 더 공포스럽다는 것이 사실이었다. 우리 삶 속의 두려움들이 괴물을 만들어 내고 있는것일런지도 모른다. 혹은 다른 이들의 삶 속의 괴물을 보게 하기도 하고 말이다. 때론 우리가 타인들을 두려워하는 동안, 기실 우리맘속에 괴물들이 자라고 있는것일런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가 속한 이 세상으로부터의 무수한 공포로부터의 경고를 받아오고 있다. 존재하는, 그러나 존재하지 않는!" 그것이 괴물과 공포의 실체일는지도 모른다. ■ 박승예
박승예_3m_종이에 팬, 아크릴채색_150×130cm_2011
박승예_A hand cought in the time of the space_종이에 팬, 아크릴채색_150×130cm_2011
박승예_a hands bug_종이에 팬, 아크릴채색_150×130cm_2011
박승예_a space traveler to the asdromeda galaxy_종이에 팬, 아크릴채색_150×130cm_2011
박승예_overwhelming gift_종이에 팬, 아크릴채색_150×130cm_2011
박승예_standarded_종이에 팬, 아크릴채색_150×130cm_2011

At the age of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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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한 침묵 - 두 번째 '그녀(LA)' 이야기


서정배展 / SEOJEONGBAE / 徐正培 / installation.drawing   2011_1202 ▶ 2011_1215 / 일요일 휴관


서정배_진지한침묵_설치_2011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갤러리 무이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무이 GALLERY MUI 서울 서초구 서초동 1658-14번지 무이빌딩 1층 Tel. +82.2.587.6123 cafe.naver.com/gallarymui.cafe


하나의 관념적 "오브제(objet)" 이며 보이지 않는 내 상상의 모델 '키키(Kiki)'라는 인물로 시작된 '그녀(LA)'('la'는 프랑스어에서 여성을 연상시키는 관사, 혹은 직접 목적 보어로서, 내 작업에서는 '키키'라는 인물을 지시하고 있으며, 또한 어떤 여성을 연상시키는 하나의 장치로 쓰고 있다.) 에 관한 내 작업은, 내러티브(narrative)적 방법으로 이 여성의 "허구(Fiction)"이면서 "현실(Réel)"인 두 경계사이의 LA(그녀)의 이야기를 텍스트, 설치, 뎃생, 사진과 같은 다양한 각도에서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는 하나의 조형적 '실험'이다. ● '진지한 침묵(La Silence sérieuse)'이란 제목으로 소개되는 두 번째 '그녀(LA)'의 이야기는 키키라는 인물의 가장 큰 재료인 '내면성', 즉 멜랑꼴리(mélancolie)적 감성을 그녀의 입장인 1인칭적 시점에 보다 근접해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그녀를 통해 말하고 있는 '진지한 침묵'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서정배_검은담즙(La Bile noire)_책_2011
서정배_들어봐(Ecoute...)_설치_2011
서정배_들어봐(Ecoute...)_설치_2011_부분

'침묵'이란 용어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아무 말도 없이 잠잠히 있음, 또는 그런 상태'를 의미 하거나, '정적이 흐름, 또는 그런 상태'를 말한다. 우리는 흔히, 침묵이란 말하지 않음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우리가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실은 언어로서 표현만 하지 않을 뿐, 생각을 하면서 계속해서 스스로 말을 하고 있다. 때때로 타인의 시선에 상관없는 논리적이지 않는 생각들을 내 안에서 묵언으로 쏟아내기도 하고, 그 어느 때보다도 솔직한 자기만의 생각, 말로서 표현할 수 없는 부끄러운 고백 등을 읊조리기도 하며, 언어로 소통할 수 없는 존재들인 나무와 하늘, 혹은 다른 오브제에게도 말을 하고 있을 때가 있다. 결국, 우리는 드러내지 않을 뿐, 어쩌면 항상 의미를 헤아리기 어려운 많은 말들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설명되기 힘든, 하지만 지극히 솔직하다고 할 수 있는 이 의미가 있을 수도, 혹은 없을 수도 있는 내면의 말들엔 가치가 없을까?
서정배展_갤러리 무이_2011
서정배展_갤러리 무이_2011

나는 내 인물 키키가 이 '침묵'이라는 행위 속에서 타인이 아닌, 그녀 '스스로'에게 하고 있는 그녀의 말들을 통해 '자신'과 그 '본질'에 다가서려하는 한 개인의 자연스러운 성찰에 관한 상황을 그려내기를 시도하였다. ● 따라서, 키키를 통해 표현하고 있는 여기서의 '침묵'은 말하지 않는 단순한 행동이 아닌, 그녀 스스로 내고 있는 가장 담백한 내면의 목소리인 것이며, 그녀가 말하듯, "귀기울이지 않으면 놓칠 수 밖에 없는 소리들. 내가 침묵하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소리들. 그러나 이해해야 하는 소리들. 그러므로, 침묵은 어떤 것을 이해하기 위해 듣는(Ecouter) 행위"(키키 텍스트 중, 2011년 4월.) 인 것이다. ● 또한, 이처럼 내 허구적 인물 키키를 통해 구현하는 한 개인(individu)의 이야기가 현실적으로 어떠한 가치를 지닐 수 있는가에 관해 조형적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나의 두 번째, 그녀(LA)에 관한 '실험'이다. ■ 서정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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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으로의 탐색


ARTVAS 2011 겨울호   Winter 2011 Vol. 17



ARTVAS_아트바스 서울 마포구 공덕동 105-101번지 Tel. +82.2.337.9545 www.artvas.com


Art Gallery 8   ARTVAS Exhibition 자연으로의 탐색
ARTVAS Exhibition_자연으로의 탐색

자연으로의 탐색 자연을 그리는 것은 보통의 노력이 없이는 결코 쉽지 않은 힘든 소재이기도 하다. 이미 지난 세기에 남긴 역작들이 그 맥을 이어오고 있고 이에 필적할만한 수준의 작품을 하는 것은 아직도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연은 반추(反芻)시간을 요구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자연을 어떻게 바라보고 인식할 것인가의 문제,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시각화와 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과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물론 이런 과제는 모든 작가들에게 묻는 공통의 질문이고 숙명적인 문제이다. 여전히 수많은 작가들은 자연을 어떻게 응시하며 이해하고 표현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절망하며 다시 도전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20   Zoom in Artist    설치작가 전수천
Zoom in Artist_설치작가 전수천

32   Sketch Tour    중국 CHINA 38   Overseas Artist    Konrad Winter 44   Special Theme    Kitsch Art 키치아트 52   Focus Review    Yin Zhaoyang _ Maniac 展 56   Focus Preview    David LaChapelle in Seoul 展 62   Rookies    최현석 | 정가영
in Life 66   Art Tour    프랑스 France 70   Art & Fashion    뉴욕의 아트패션 74   Donation of Art    재능기부 78   Art & Flower    취향을 교감하는 공간 80   Art Cafe    비하이브 BE·HIVE
with Art 82   People    방송작가 한지원 86                  조각가 지용호 89                  그래피티 아티스트 지알원 92                  예술가 EVA & ADELE 94   Time Machine    한묵 화백 98   Space    Peckham Space 100   Mecenat    영국문화원 British Council
Mecenat_영국문화원 British Council

Art Info. 104   World Art News    해외전시소식 106   Review & Preview    전시소식 113   ARTVAS News    아트바스 소식
THE PHPTO Art in Frame 04   THE PHPTO    Staged Photography 12   THE PHPTO Documentary    사진작가 강제욱
THE PHPTO Documentary_사진작가 강제욱

18   Choi's Lens    사진작가 이완교 20   World's photography    Contemporary Russia Photographers 28   Artist in Artist    작가의 추천 _ 사진작가 장보윤 32   Rooky    박형렬
Life with Photo 34   C.E.O with THE PHOTO    도서출판 삶과 꿈 대표 김용원 37   The Photographer with history    복원사진 전문가 김해권 40   Stylist with THE PHOTO    독일 작가 발터 베르그모져 44   Focus Review    마리아노 바르가스(Mariano Vargas) 개인전 46   Review & Preview of Exhibitions 48   THE PHOTO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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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yond Drawing


성민화_이해민선_전윤정展   2011_1209 ▶ 2011_1223 / 월요일 휴관


성민화_on a hill_핸드메이드 종이에 잉크_90×240cm

초대일시 / 2011_1209_금요일_5:00pm

기획 / 고산금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스페이스 15번지 SPACE 15th 서울 종로구 통의동 15번지 Tel. 070.7723.0584


Islet:섬 1009-06/1106-09 - 섬 ● 두 번에 걸쳐 제법 긴 시간을 육지에 붙여진 섬에서 지낼 수 있었다. 바다 ● 서해안이니, 해지는 것도 매일 볼 수 있다. 해 지는 것이야 어디서건 볼 수 있기는 하지만, 바다로 해가 지는 것은 좀 특별하다. 달의 모양에 따라 물의 양이 달라지는 것도 재미있다.
성민화_house with sofa_핸드메이드 종이에 잉크_90×240cm

마을 ● 마을은 늘 조용하고,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다. 어쩌다가 만나는 분 들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신다. ● 집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덧대어지고, 이어지고, 커져간 모양새들이다. 사는 사람들의 사연과 사정에 따라 그리 되었을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 생각하고, 들여다 보고 있으면, 시간이 보인다. 그렇게 제법 긴 시간을 있다 보니. 보이지 않던 것도 보이게 되었고, 보이던 것들이 사라진 것을 깨닫게 되기도 했다. ■ 성민화
이해민선_직립식물_종이에 수채화물감_37×52cm_2011
이해민선_직립식물_종이에 수채화물감_37×52cm_2011
이해민선_직립식물_종이에 수채화물감_37×52cm_2011

덜 죽은 자들 : 묶인 사이 2011 ● '각목' 은 살아있는 나무를 죽지 말라고 지지대란 이름으로 받쳐주고 '죽은 나뭇가지'는 식물줄기를 지지대라는 물건으로 버텨주는 풍경은 나에게 한없이 생명의 지점에 대해 다시한번 인지하도록 자극한다. 이러한 풍경은 자연과 인간이 서로 만나는 지점에서 생겨나는 새로운 생명체다. (- 2010 직립식물 작업노트 중에서) ● 생명체 라던가 ,생명의 의미, 가치등을 말하려는게 아니라 , 개체와 개체가 접하는 순간을 관찰하다보면 독립적인 개체가 자신의 특성을 잃지 않으면서 상호작용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 상호작용이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회귀할 때 새로운 특질이 나타나는데 그 새로운 특질이 탄생하는 순간이 생명이 아닐까. ● 그림에 자주등장하는 '동물'의 형상도 그 동물의 형상을 그리려고 다른것들을 이용하는게 아니라 , '건축도면'을 '나무토막'을 '비닐봉지'의 특성을 그리고 그것들이 서로 만나는 지점을 바라보고 관찰하면 , 그 특성들이 새로운 형상을 자아내게 된다. ● '묶인 사이' 라고 정한 것 역시 '상호작용 ' 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묶여있다고해서 수동적이거나 갇혀있는 의미가 아니라 서로 묶인다는건 서로의 특성을 받아들여하는것이고 ' 무엇과 무엇이 만나느냐에따라 접속의 특질은 달라진다' 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림에 ' 끈' 이 많이 등장하는데 그 끈들이 각목과 각목을 이어주어서 개체의 외부적특성을 회손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 낸다. 개체를 관통하거나 화학적 변이처럼 개체의 특성을 제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너무 매력적인 대상중 하나가 끈이기도 하다. (- 2011 묶인사이 작업노트 중에서 , 부분 발췌) ■ 이해민선
전윤정_아무도 없는 방_설치_2011
전윤정_untitled_설치_2010
전윤정_Open space,_black_캔버스에 블랙 라인 테이프(2~3m)_130.3×193.9cm_2010

생각과 감정의 기술로 내 안에 감옥을 그리다. ● 나는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나는 감정을 이야기 한다"라고 끊임 없이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 감정을 드로잉을 통해 드러낸다. 그렇게 나는 한 장 한 장 드로잉을 모으고 그 시간에 따라 드로잉들은 쌓여만 간다. ● 나의 작품 속에서 시각은 기술이다. 하지만 나는 그 기술 속에 감정을 드러내길 바란다. 나는 나의 작품 속에서 자유롭길 바라며 펜을 버리고 라인테이프를 선택했다. 라인테이프를 공간으로 이동하면서 자유로운 줄 알았고 확장된 줄 알았다. 하지만 라인테이프로 그려진 방안은 내게 감옥이 된듯하다. 결국 나는 작업을 하면서 나만의 상상 세계는 자유와는 거리가 멀어져 가는 듯하다. 그것이 기술의 문제 때문인지...생각과 감정의 문제인지 나는 아직도 혼란스럽다. ● 그 감옥은 어떠한 형상도 어떠한 감정도 이야기 하지 않는 것 같다. 기술만 있는 것 같이 보인다. 하지만 나는 끊임 없이 공간 안에 라인테이프로 그린 회화적 감성을 그린다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드로잉 한다고 이야기 한다. 또 추상이 아니고 형상을 그려낸다고 생각한다. 나는 일상적 대화에서도 부정의 기운과 긍정의 기운을 분리시킨다. 끊임 없이 안과 밖을 구분하면서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한다. ■ 전윤정 Beyond Drawing

성민화_이해민선_전윤정展   2011_1209 ▶ 2011_1223 / 월요일 휴관


성민화_on a hill_핸드메이드 종이에 잉크_90×240cm

초대일시 / 2011_1209_금요일_5:00pm

기획 / 고산금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스페이스 15번지 SPACE 15th 서울 종로구 통의동 15번지 Tel. 070.7723.0584


Islet:섬 1009-06/1106-09 - 섬 ● 두 번에 걸쳐 제법 긴 시간을 육지에 붙여진 섬에서 지낼 수 있었다. 바다 ● 서해안이니, 해지는 것도 매일 볼 수 있다. 해 지는 것이야 어디서건 볼 수 있기는 하지만, 바다로 해가 지는 것은 좀 특별하다. 달의 모양에 따라 물의 양이 달라지는 것도 재미있다.
성민화_house with sofa_핸드메이드 종이에 잉크_90×240cm

마을 ● 마을은 늘 조용하고,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다. 어쩌다가 만나는 분 들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신다. ● 집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덧대어지고, 이어지고, 커져간 모양새들이다. 사는 사람들의 사연과 사정에 따라 그리 되었을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 생각하고, 들여다 보고 있으면, 시간이 보인다. 그렇게 제법 긴 시간을 있다 보니. 보이지 않던 것도 보이게 되었고, 보이던 것들이 사라진 것을 깨닫게 되기도 했다. ■ 성민화
이해민선_직립식물_종이에 수채화물감_37×52cm_2011
이해민선_직립식물_종이에 수채화물감_37×52cm_2011
이해민선_직립식물_종이에 수채화물감_37×52cm_2011

덜 죽은 자들 : 묶인 사이 2011 ● '각목' 은 살아있는 나무를 죽지 말라고 지지대란 이름으로 받쳐주고 '죽은 나뭇가지'는 식물줄기를 지지대라는 물건으로 버텨주는 풍경은 나에게 한없이 생명의 지점에 대해 다시한번 인지하도록 자극한다. 이러한 풍경은 자연과 인간이 서로 만나는 지점에서 생겨나는 새로운 생명체다. (- 2010 직립식물 작업노트 중에서) ● 생명체 라던가 ,생명의 의미, 가치등을 말하려는게 아니라 , 개체와 개체가 접하는 순간을 관찰하다보면 독립적인 개체가 자신의 특성을 잃지 않으면서 상호작용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 상호작용이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회귀할 때 새로운 특질이 나타나는데 그 새로운 특질이 탄생하는 순간이 생명이 아닐까. ● 그림에 자주등장하는 '동물'의 형상도 그 동물의 형상을 그리려고 다른것들을 이용하는게 아니라 , '건축도면'을 '나무토막'을 '비닐봉지'의 특성을 그리고 그것들이 서로 만나는 지점을 바라보고 관찰하면 , 그 특성들이 새로운 형상을 자아내게 된다. ● '묶인 사이' 라고 정한 것 역시 '상호작용 ' 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묶여있다고해서 수동적이거나 갇혀있는 의미가 아니라 서로 묶인다는건 서로의 특성을 받아들여하는것이고 ' 무엇과 무엇이 만나느냐에따라 접속의 특질은 달라진다' 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림에 ' 끈' 이 많이 등장하는데 그 끈들이 각목과 각목을 이어주어서 개체의 외부적특성을 회손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 낸다. 개체를 관통하거나 화학적 변이처럼 개체의 특성을 제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너무 매력적인 대상중 하나가 끈이기도 하다. (- 2011 묶인사이 작업노트 중에서 , 부분 발췌) ■ 이해민선
전윤정_아무도 없는 방_설치_2011
전윤정_untitled_설치_2010
전윤정_Open space,_black_캔버스에 블랙 라인 테이프(2~3m)_130.3×193.9cm_2010

생각과 감정의 기술로 내 안에 감옥을 그리다. ● 나는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나는 감정을 이야기 한다"라고 끊임 없이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 감정을 드로잉을 통해 드러낸다. 그렇게 나는 한 장 한 장 드로잉을 모으고 그 시간에 따라 드로잉들은 쌓여만 간다. ● 나의 작품 속에서 시각은 기술이다. 하지만 나는 그 기술 속에 감정을 드러내길 바란다. 나는 나의 작품 속에서 자유롭길 바라며 펜을 버리고 라인테이프를 선택했다. 라인테이프를 공간으로 이동하면서 자유로운 줄 알았고 확장된 줄 알았다. 하지만 라인테이프로 그려진 방안은 내게 감옥이 된듯하다. 결국 나는 작업을 하면서 나만의 상상 세계는 자유와는 거리가 멀어져 가는 듯하다. 그것이 기술의 문제 때문인지...생각과 감정의 문제인지 나는 아직도 혼란스럽다. ● 그 감옥은 어떠한 형상도 어떠한 감정도 이야기 하지 않는 것 같다. 기술만 있는 것 같이 보인다. 하지만 나는 끊임 없이 공간 안에 라인테이프로 그린 회화적 감성을 그린다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드로잉 한다고 이야기 한다. 또 추상이 아니고 형상을 그려낸다고 생각한다. 나는 일상적 대화에서도 부정의 기운과 긍정의 기운을 분리시킨다. 끊임 없이 안과 밖을 구분하면서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한다. ■ 전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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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de Tree


이병호展 / LEEBYUNGHO / 李炳虎 / installation   2011_1208 ▶ 2012_0115 / 월요일 휴관


이병호_Deep Breathing_silicone, air compressor_57×165×37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90110g | 이병호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1208_목요일_05:00pm

오프닝 리셉션 / 2011_1208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현대_16번지 GALLERY HYUNDAI 16 BUNGEE 서울 종로구 사간동 16번지 Tel. +82.2.722.3503 www.16bungee.com


Shade Tree ● 이병호가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주제는 '변화와 변질'이다. 그간의 작업에서는 형태의 변형이 용이한 실리콘과 공기압축 장치를 사용하여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실제로 움직이고 변형하는 물리적 변화가 두드러졌다면, 이번 전시를 통해 보여지는 작업에서는 심리적 혹은 정신적 변화로의 이행이 두드러진다. 또한 기존의 작업이 변형하는 조각이라는 형식적 공통점을 유지한 채 저마다의 개별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반면, 이번 전시는 '오래된 집'이라는 특수한 장소를 배경으로 각각의 작품이 하나의 이야기로 통합된다. 작품의 구성 또한 기존의 실리콘 조각뿐만 아니라 사진, 설치 등을 포함하여 이전에 비해 다양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병호_Shade Tree_혼합재료_69×36×31cm_2011

언뜻 이러한 일련의 변화들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유지해왔던 작업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시도인 듯 보이지만, 사실 이것은 이병호가 일관되게 주목하고 있는 '변화'라는 주제에 대하여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고자 함이며, 그가 보여주고 싶어 하는 '변화'란 무엇인가를 보다 집중적이고 적극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 작가는 이를 위해 기존의 실리콘 작업을 유지한 채, 불투명 유리를 이용하여 작품의 유리 케이스와 유리 액자를 만들어 냈으며, 작품 하나하나를 오래된 집에 사는 인물들로 등장시키는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이병호_Portrait of the Man_혼합재료_162×48×48cm_2011

불투명 유리는 이 오래된 집의 유리창이라고 작가에 의해 가정된 것으로, 물리적 변화에서 정신적 변화로의 이행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불투명 유리 케이스에 담긴 인물은 현존인 동시에 현존이 아니다. 작품을 대면하는 순간 창 안의 대상을 인지하지만, 자세히 보려하면 할수록 흐릿해지기만 할 뿐이다. 실존적이며 물리적인 존재임이 분명한 대상은 과거의 산물인 창에 의하여 흐릿해져 현실 너머로 이탈해버린다. 이제 변화는 한층 진일보하여 기계장치를 사용하여 보여주는 실제의 움직임이 아니라, 보는 이들 각자가 달리 느끼는 심리적이며 정신적인 것이 되었다.
이병호_Old Doll_silicone, air compressor_17×45×14cm_2011

대상의 변화를 가져오는 매개물인 불투명 유리는 기존 실리콘 조각에 있어서의 '공기'를 환기시킨다. 실리콘 조각은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는 형태의 즉자적 변형으로 인하여 덩어리로서의 조각 자체의 물리적 변화로 인식되는 측면이 강하지만, 사실 이 변화를 이끌어내는 실체는 조각 자체가 아니라 그 안의 공기이다. 실리콘 조각에서 역시 이병호가 주목했던 것은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물리적 변화가 아니라 그 이면에 가려져버렸던 정신적 존재였다. 불투명 유리의 사용은 물리적 실제가 아닌 정신적 차원으로 관심을 이동시켰으며, 이로 인해 기존 작업들을 통해 작가가 보여주려 했으나 적나라한 조각의 움직임으로 인해 가려져버리고만, 보이지 않는 힘의 실체를 드러낸다. 다만 작업 방식의 확장이 아니라, 기존 작업에 내포된 의미마저 이끌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불투명 유리의 사용은 매우 효과적이다.
이병호_Hi_plaster_28×13×13cm_2011

이번 전시에서 이병호는 전시가 열리는 장소 자체를 작품 속에 깊숙이 끌어들인다. 오래된 이층집이었던 전시장은 다시 오래된 이층집이 되어 그 집에 살았던 혹은 살았을법한 사람들을 동시에 불러들인다. 전시 자체는 이병호에 의해 만들어진 허구의 드라마이며, 전시를 구성하는 모든 작품은 오래된 그 집에 언젠가 한번쯤 머물렀던 사람으로 등장한다. 한 장소에서 한 시절을 같이 살아간 사람들이 아니라, 과거의 언젠가 각기 다른 저마다의 시간을 보냈을 사람들을 동시에 불러낸 것이다. 이러한 시간의 혼재는 또 다른 형식의 '변화'를 작품에 수용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전까지의 전시에서 각각의 작품은 즉자적 변화를 보여주며 독립적으로 존재해왔으나 이번 전시에서는 과거의 시간을 혼재시킴으로써 긴 시간에 거쳐 축적되었을 변화의 과정 또는 변화의 여정까지 함께 입체적으로 보여주고자 한 듯하다.
이병호_School Boy, School Girl_black and white print, patterned glass_각 107×51×5cm_2011

'과거의 사람과 현재의 사람이 시간의 현실성 없이 한꺼번에 등장하고 있다'라는 작가의 직접적인 설명이 없이는, 젊음의 생기와 죽음을 반복하고 있는 여인, 흉측한 형상으로 일그러지는 오래된 인형, 오래전 교복을 입은 학생, 모호한 형상의 남자와 같은 모든 것들이 각기 다른 시간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알아챌 만한 단서는 없다.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의 드라마를 그저 드라마로서 받아들여야 하는 일방적 소통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기도 한다.
이병호_Wedding Day_C 프린트, patterned glass_26×31.3×3cm_2011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번 전시에서 보여 지는 이병호의 작업은 작가가 만든 허구의 드라마를 통해 나 자신의 과거 혹은 기억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장기간 공들여 만들어낸 실리콘 조각이나 오래된 유리창으로 만든 유리케이스와 액자의 유리 그리고 그 안에서 뿌옇게 흐려지는 누군가를 통해, 보는 이들 나름의 또 하나의 드라마가 만들어진다. 사진 속의 인물이 누구인지 누구의 인형인지와 같은 실제적 사실은 이미 중요하지 않다. 정신적 차원의 변화로 이행된 작품은 한 개인의 기억이나 경험을 통해 축적된 의미를 이끌어내며, 보는 이 각각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간다. 나름의 이야기를 품고 있으나 아무 이야기도 해주지 않는 인물들만 등장하는 이 드라마는 결국 관람자 자신의 드라마가 되는 것이다. ■ 전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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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oment of Truth


이금희展 / LEEKUMHEE / 李金姬 / painting   2011_1208 ▶ 2011_1224 / 월,공휴일 휴관


이금희_자연의 해석-생성·소멸 Interpretation of Nature-Creation·Extinction_캔버스에 유채_130×114.5cm_2011

초대일시 / 2011_1208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공휴일 휴관

갤러리 아트사이드 GALLERY ARTSIDE 서울 종로구 통의동 33번지 Tel. +82.2.725.1020 www.artside.org


해석된 자연, 재해석된 욕망 ● 지구는 대기의 압력 차이를 극복하고자 수시로 바람을 일으켜 대기를 순화시키고 그 순환은 대기를 정화하고 기후를 조절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바람이다. 차이의 극복을 위해 그 경계를 횡단하는 바람은 움직임이며 소통의 상징이다. 때로는 거칠고 때로는 부드럽게 양극을 횡단하는 바람은 지구의 호흡이다. 소통하고 혼합할 수 있는 강력한 에너지다. 그에 비추어 인간은 욕망이라는 바람을 통해 타자를 바라보고, 섞이고 또한 차이를 넘는다. 이금희의 회화는 그러한 자연과 인간의 욕망을 해석하고 그 둘의 교차점에서 비롯된 다양한 생성과 소멸의 키워드를 그리고 있다. 쉽게 말해, 자연과 인간은 대립하는 존재가 아니라 상생하는 존재라는 것이고, 작가는 그 상생의 이유를 다양하게 표현해 왔다는 것이다. 처음. 언제나 은밀하면서도 묘한 설렘을 불러 일으키고 가장 강력하게 우리의 기억을 컨트롤할 수 있는 말이다. 이금희의 작품 전면에 흐르는 감정 역시 그 느낌과 비슷하다. 처음 느껴본 이성의 살결처럼 내밀한 호기심을 떨칠 수 없으며 온몸의 감각이 이성의 살결이 닿은 부분에 집중되는, 극도의 긴장감에서 오는 그 터치는 이성을 욕망하는 가장 강력한 기억이 된다. 이성의 살결 같은 이금희의 화면처럼.
이금희_자연의 해석-생성·소멸 Interpretation of Nature-Creation·Extinction_캔버스에 유채, 스톤 파우더_112×194.0cm_2011
이금희_자연의 해석-생성·소멸 Interpretation of Nature-Creation·Extinction_캔버스에 유채, 스톤 파우더_130.3×162cm_2011

떨림, 욕망하는 자연 ● 이금희는 자연 관찰에 필요한 카메라와 같은 다양한 장치들을 꽃에서 찾는다. 꽃은 자연의 욕망 그 자체다. 단순히 번식과 생존을 위한 욕망일 뿐 아니라 존재에 대한 욕망으로서 꽃은 환경에 따라 매우 민감하면서도 다변적인 자연의 욕망을 대변한다. 그것은 유혹과 자기절제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을 바라보는 타자에게 존재함을 알린다. 우리가 매트릭스라고 하는 시쳇말로 현실 자체를 부정한다면 모를 일이지만 그 역시도 매트릭스 너머에 또 무엇이 존재한다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지금 내가 있다는 감각만큼 확실한 진리는 없다. 따라서 내가 있다라고 하는 명제에 해당하는 모든 개체들의 존재는 진리다.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저 자연의 욕망이 현실에 실재하든 아니면 작가의 작품 속에 놓이든 간에 그 역시 진리의 연장이다. 우리의 감각과 감정의 집중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다소 불편하지만 매력적인 끌림이며 존재에 대한 다양한 감각적 인식이다. 우리의 시각은 빛으로 사물을 지각한다. 빛은 일정한 파장 즉 떨림을 지니고 있으며 그 떨림이 각각의 사물이 지니고 있는 파장과 관계하면서 우선 평면적으로 형태와 색이 구별된다. 그 후 촉각이나 후각 등 다른 감각들을 통해 입체적이고 총체적으로 지각된다. 그렇게 지각된 다양한 정보들은 경험과 기억의 필터링으로 개념화 되면서 최종적으로 사물을 인식하고 판단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이러한 떨림은 에너지의 존재 방식이면서 차이를 발견하는 가장 작은 단위의 관계 설정이기도 하다. 요컨대 작가가 자연 해석의 시작과 끝을 꽃 이미지로 표현했다면 그 꽃을 바라보는 최초의 감상이 바로 떨림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 역시 자연을 바라보고 그것이 지니고 있는 수 많은 의미들을 파악하고자 할 때 가장 먼저 자연과 작가 자신의 부딪힘 즉 떨림이 이루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 최초의 부딪힘이야말로 모든 생성의 근원이자 시작과 끝을 잇는 접점이기도 하다.
이금희_자연의 해석-생성·소멸 Interpretation of Nature-Creation·Extinction_캔버스에 유채_130×114.5cm_2011
이금희_자연의 해석-생성·소멸 Interpretation of Nature-Creation·Extinction_캔버스에 유채, 스톤 파우더_116.7×91cm_2011

이동, 은밀한 신체 ● 작가는 들뢰즈의 '기관 없는 신체'의 개념에서부터 다양한 표현의 양식과 철학적 근거들을 찾은 듯 하다. 간단하게 설명해, 신체는 전체와 부분 같이 필연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유기체처럼 존재하지 않는다. 신체는 다양한 상황에 따라 변용되는 특징이 있으며 이 변용의 특징은 유기체적 관점으로는 설명이 불가하다. 즉, 유기체로부터 자유로운 기관 없는 신체야 말로 생명의 다양성을 담보할 수 있는 시작점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유기체주의자들에 의하면 기관 없이 신체는 욕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관을 통한 감각 없이는 욕망은 자폐증으로 치닫게 된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다. 그러나 신체는 단순히 부분과 전체라는 필연의 기계장치로 치부하기에는 그 변용의 능력이 대단하다. 그러한 변용능력이 최대로 발휘 될 때 비로서 생명은 재생하고 보존될 수 있다는 것이 들뢰즈의 생각이며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인 것이다. 그것도 생성과 소멸의 키워드로서 생식기를 상상할 수 있는 은밀한 신체가 그것이다. 따라서 유기체로부터 자유로운 욕망은 그 자체 긍정이며 운동이다. 운동은 발전의 근원이며 발전은 순환의 한 카테고리를 형성한다. 또한 그 순환의 범주는 그 범주를 이루고 있는 구성원들의 역사를 축적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즉 발전의 지향점에 따라 이념이 발생하고 그 이념은 사회를 재구성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 재구성 속에는 엄청난 폭력도 포함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는 공통적으로 행복과 사랑으로 결합되려 욕망한다. 이것이 바로 인류 발전의 핵심이 되어야 하는 긍정의 욕망이며 발전의 욕망이다. 떨림으로 시작된 최초의 부딪힘은 타자와의 위치이동의 단계로 진화한다. 이는 서로가 지니고 있는 욕망의 교환이며 낯섦의 극복 과정이기도 하다. 자연의 욕망으로서 꽃을 우리의 은밀한 신체로 치환하여 표현한 작가는 그 치환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유기체로부터 자유로운 신체, 궁극으로 그 신체로부터도 자유로운 긍정의 욕망으로 이동하기를 권유한다. 신체와 신체의 결합을 향한 욕망. 그 절정의 깨달음. 직관적 상승으로의 업그레이드가 불가피하다.
이금희_자연의 해석-생성·소멸 Interpretation of Nature-Creation·Extinction_캔버스에 아크릴, 유채_91×116.7cm_2011

상승, 절정의 깨달음 ● 장자의 대붕은 바다에서부터 구 만리나 높은 하늘로 비상하기 위해 메추리의 비웃음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오랜 기간 폭풍우와 태풍을 견디며 큰 바람을 기다렸다. 마침내 힘찬 날개 짓과 함께 그 큰 바람을 타고 구 만리의 상공으로 오른다. 메추리는 불과 구치의 높이에서 스스로 움직이며 먹이를 찾는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용이하며 즉각적인지 따라서 그것이 얼마나 편안한 삶을 가져다 주는지를 역설한다. 그러나 대붕은 구 만리의 높이에서 그 이상의 거리를 횡단하며 내려다 보이는 모든 것들과 소통한다. 미세한 바람의 흐름을 쫓아 궁극적 삶의 귀결인 죽음에 안전하게 착지할 수 있도록 모든 촉각을 곤두세운다. 이금희의 소멸이 이와 같은 이치라면 그에 의해 해석된 자연은 우리가 찾아 헤매는 그 어떤 깨달음을 표현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금희는 신체를 꽃으로 치환하여 표현함으로써 타자와의 결합관계에 대한 욕망을 의식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우리는 그 결합관계의 구조에 대한 새로운 패턴을 다시 한번 들뢰즈로부터 빌려와야 할 듯 하다. 뿌리에서 줄기로, 줄기에서 가지로 이어지는 혈통관계의 패턴이 아니라 시작과 끝이 없고 모든 것이 하나이면서 각기 다른 개체가 되는 '리좀(Rhizome)'과 같은 결연관계의 패턴이 그것이다. 리좀은 일종의 뿌리줄기로서 다른 개체이면서 하나인,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에 대한 구별이 전혀 없는 결합 혹은 번식형태를 지닌다. 만약 우리가 서로의 욕망을 이해하고자 노력할 때 거기에는 '나는 ~이다'라는 절대 동사의 개입이 있을 수 없다. 단지 '~그리고 ~그리고'로 이어지는 접속사의 유연함과 열림으로 결합되어야 한다. 이러한 접속사의 조직은 충분히 동사의 결정적인 특성을 뒤 흔들 수 있는 힘을 지닌다. 그러한 결합을 인식하는 행위가 직관이다. 뿌리줄기로 이어지는 모든 개체들은 그 어떤 단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근원에 이어져 있다. 그 어떤 인식적 단계가 필요 없다. 무수히 많은 개체들은 곧 그것 자체이며 그 근원을 파악할 수 있는 단서들이다. 이는 직관적 대상 파악에 대한 가능성이 발견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금희의 신체가 그리고 욕망의 결연적 결합을 통한 절정의 깨달음이 바로 직관적 인식행위다. 즉, 인간은 유기적 자연과 우주의 일부분이며 그 자체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 직관이다. 떨림과 이동 그리고 상승으로 이어지는 직관의 단계적 깨달음은 사실 그 자체가 하나로 묶여 있어 동시에 진행되는 뿌리줄기와 같은 사고의 유형이다. 이금희의 작품 전체를 관망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또한, 욕망하는 자연의 이미지를 꽃으로 표현하고 이를 다시 신체로 치환하여 자연과 인간의 궁극적 결합을 상상할 수 있도록 구성된 것이 이금희의 조형언어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그리고 그 존재의 이유에 대해 질문하기를 종용한다. 과연 우리가 우주의 일부이며 그 자체라는 것을 직관할 수 있을까. ■ 임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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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풍경, The Holy Landscape


옥정호展 / OAKJUNGHO / 玉正鎬 / photography   2011_1208 ▶ 2011_1228 / 월요일 휴관


옥정호_머리로 서기 자세-사람바 시르아사나_사진, 디지털 프린트_145×174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61121f | 옥정호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1208_목요일_06:00pm

후원 / 서울문화재단_한국문화예술진흥원

관람시간 / 월요일 휴관

아트스페이스 풀 ART SPACE POOL 서울 종로구 구기동 56-13번지 Tel. +82.2.396.4805 www.altpool.org


거룩한 풍경의 이면 ● 1. 옥정호는 최근 갯벌에서 놀았다. 강화도 갯벌에서 요가를 하고 그것을 사진으로 찍었다. 옥정호가 뻘밭에서 한 요가는 놀이다. 그 놀이에는 의미가 없다. 풍자여도 좋고 아니어도 좋으며, 은유나 상징이어도 아니어도 그만이다.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지만 가장 그럴듯한 것은 문자 그대로 뻘밭, 그의 표현을 빌지만 진흙탕에서 노는 일이다. 그는 뻘밭에서 요가를 한 것도 어느 날 친구와 낮술을 먹다 갑자기 난 생각이었다고 말한다. 뻘밭은 단순한 진흙탕이 아니다. 느리게 빠져 들어가는 수렁과 같다. 뻘밭은 처음에는 단단한 듯 느껴지지만 시간이 지나면 점점 깊이 빠져들어간다. 나중에는 한 발을 빼내기 조차 힘들어진다. 물론 그것은 뻘과 물과 모래가 섞인 비율과 점도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그래서 아무도 뻘밭에서 요가를 하지 않는다. 체조도 하지 않는다. 그에 적합한 장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해병대와 같은 군인들이나, 연예 오락 프로그램, 병영체험을 제외하고서 말이다. 뻘밭은 놀이와 생산의 장소이다. 갯지렁이부터 꼬막에 이르는 수많은 해산물의 서식지이고, 칠면초와 퉁퉁마디가 사는 장소이며, 나처럼 서해 섬에서 태어난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놀이터이다. 바닷물에서 헤엄을 치고, 뻘에서 뒹굴고, 미끄럼타고, 성을 쌓고, 둑을 막고, 숭어새끼와 모시조개를 잡는 놀이 까지 할 수 있다. 옥정호의 요가는 「안양 무지개」 연작에서도 등장했었다. 그것은 일종의 언어, 상징적 기호였다. 그가 몸으로 쓴 그 기호들은 주위의 여러 가지 상황들을 비웃고, 냉소를 보내는 장치였다. 광화문이나, 안양천, 천안문 등의 장소에서 중국과 한국의 엄숙한 권력과 자본의 기호들 사이에 끼어 도드라지게 튀면서 그것들을 다시 보게 하는 역할을 했다. 옥정호의 이런 작업 스타일은 요가 이전에도 영어마을을 비롯한 우리 사회의 욕망이 예민하게 드러나는 곳에서 설치와 퍼포먼스, 사진 찍기 등을 통해 지속 되었다. 그가 뻘밭에서 한 요가는 이러한 퍼포먼스의 연장선에 있다. 그러면서도 다르다. 그 다름은 장소와 퍼포먼스의 성격에 있다.
옥정호_서서 활 자세-단다야마나 다누라사나_사진, 디지털 프린트_127×152cm_2011
옥정호_비둘기 자세-에카 파다 라자카포타사나_사진, 디지털 프린트_127×152cm_2011
옥정호_팔꿈치로 서기 자세–시르아사나_사진, 디지털 프린트_127×152cm_2011

2. 뻘밭이라는 장소는 이전까지 옥정호가 사진을 찍던 곳과는 성격이 아주 다르다. 뻘밭은 인간의 손이 가지 않는 천연의 장소, 권력과 자본의 기호에서 일단 벗어난 곳이다. 그곳은 자연이 그 원시적인 생산성과 힘을 동시에 보여주는 곳이다. 때문에 뻘밭은 인위적 기호로서의 역할보다는 그 원초성으로 인해 의미를 갖는다. 자연이 인간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한가, 즉 인간을 지배하려 하지도 않고 동시에 인간으로부터 침해받고 싶어 하지도 않는 자연의 본성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인간의 육체는 그곳에서 순수하게 무게와 부피를 가진 생물의 그것이 된다. 인간이라기보다는 한 마리의 생물처럼 옥정호는 뻘밭에서 요가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옥정호의 요가나 뻘빹이라는 장소가 즉자적 순수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뻘밭이 지금은 보호받아야 하는 지역으로 여겨진다는 것, 자연 그대로라고 인식 된다는 것 자체가 벌써 상징과 기호 안에 포함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옥정호 역시 이를 눈치 채고 사진 속에 익숙한 기호를 배치한다. 사진 배경에 버려진 듯이 세워진 수퍼마켓에서 쓰는 바퀴 달린 커다란 카트가 그것이다. 그 카트는 당연히 수퍼마켓, 소비, 자본, 신자유주의 등등의 일련의 의미 사이클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그 카트는 비어있고 뻘밭에서는 무용지물이기 때문에 코믹해진다. 단단한 땅에, 평평한 포장 도로위에서 잘 굴러가는 바퀴 달린 금속제 카트란 뻘밭에서는 짐일 뿐이다. 수사학적으로 보면 일종의 수미쌍관 법이다. 옥정호의 요가 또한 뻘밭에서는 무용지물, 인간의 육체는 그 곳에서 짐일 뿐이기 때문이다. 옥정호는 그의 이번 작업에서 최대한 의미를 털어내고 사진이 가진 재현성과 현장성에 집중하려 했다고 말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그는 아무 것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없었다고 한다. 기호적 상징성이 아닌 육체와 뻘밭이 가진, 혹은 뻘밭에서 자신의 몸이 남긴 흔적과 자세에 초점을 맞췄다는 말이다. 때문에 그의 요가는 언어적 기호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육체가 가지는 가장 순수한 형태 그 자체이기도 하다. 이 이율배반이 가능한 것은 요가라는 것 자체가 문화적 코드이자, 인간의 육체를 행위 자체에 집중하게 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짐작이긴 하지만 인도에서 요가가 발명된 까닭은 아마도 비일상적인 육체적 수련과 명상을 통해 인간 스스로 자신의 육체와 삶과 세계를 되돌아보게 하는데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장소로서 뻘밭은 사실 요가와 무척 잘 어울리는 곳이다. 옥정호가 차려 입은 양복과, 뻘밭이라는 장소와, 요가라는 신체 기호의 만남은 문자 그대로 이전투구 泥田鬪狗이니까.
옥정호_거룩한 풍경 4_사진, 디지털 프린트_148×180cm_2011
옥정호_거룩한 풍경 1_사진, 디지털 프린트_140×173cm_2011

3. 옥정호의 또 다른 사진인 풍경들 역시 그가 추구해오던 현실의 아이러니, 이해할 수 없는 일상적 기이함과 뒤틀림에 대한 진술이다. 진술 방법은 좀 더 객관적이 됐고 그럼으로써 설득력을 얻는다. 그가 선택한 현실의 프레임들은 현재 우리의 삶을 재현, 문자 그대로 리프리젠테이션 representation 한다. 나란히 놓인 낚시터 좌대와 야영장 텐트, 부두의 컨테이너와 크레인, 성벽과 교회 첨탑 등은 전혀 다른 내용을 가진 사물들이 이뤄낸 외견상의 상사를 보여준다. 그 상사를 가능케 하는 배후를 알아내는 것은 기호를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이 독해를 위해 옥정호는 이미지의 비교 혹은 자연스러운 대조라는 코드를 사용한다. 하나는 수평 방향이고 다른 한편은 수직 방향이다. 수평 방향은 원본 없는 반복으로서의 재현이고, 수직 방향은 높이에 따라 드러나는 세계의 위계적 구조를 보여준다.
2011.12.08 22:04:20 / Good : 455 + Good

za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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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화(化)된 신체 Landscape-alized Body






장양희展 / CHANGYANGHEE / 張樣熙 / printmaking.installation   2011_1208 ▶ 2011_1229 / 월요일, 12월 23일~25일 휴관




장양희_Anonymous Face_투명필름에 디지털 프린트, 가변설치_400×310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01227d | 장양희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1208_목요일_06:00pm

후원 / 서울문화재단_한국문화예술위원회_갤러리조선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요일, 12월 23일~25일 휴관

갤러리 조선 GALLERYCHOSUN 서울 종로구 소격동 125번지 Tel. +82.2.723.7133 www.gallerychosun.com




몸의 얼굴화 ● 장양희의 작품 속 얼굴들은 개인의 특성을 변별 화 할 수 있는 요소가 제거되어 있다.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들 모두가 소재가 되지만 익명성은 유지된다. 한 개인의 얼굴을 하나하나 잘 보이도록 라이트박스 안에 설치했음에도 불구하고, 눈 부분은 생략되어있고 그 나마의 형태도 다양한 패턴의 중첩에 의해 흐릿해져 있다. 이전 작품에서, 여러 개의 라이트 박스 안에 눈 없는 얼굴 넣어서 그리드 식으로 붙여 놓은 &Anonymous Face」(2007)나 같은 크기의 라이트 박스를 벽에 일정 간격으로 죽 배열한 &Anonymous Face」(2010)에서 어떠한 이에게도 특별한 방점이 찍혀 있지 않는 익명성이 발견된다. 이러한 구성에서 누구와 누구의 자리를 바꿔놓는다 한들, 누군가를 뺀다 한들, 그 변화를 알아채기 힘들 것이다. 요즘 작업에는 눈도 나오고, 얼굴을 넘어서 몸까지 등장하지만, 그러한 익명성이 약화된 것은 아니다.
장양희_Anonymous Face_인탈리오_240×180cm_2011

이번 전시에서 분리된 판 8개를 결합시킨 거대한 초상은 어느 작품보다도 원형에 충실한 짜 맞추기이며, 증명사진과 다를 바 없는 인덱스로서의 특징을 가지지만, CCTV에 찍힌 범죄자 사진 같은 흐릿함이 특징적이다. 자르고 다시 붙이는 과정 속에서 개별성은 휘발되어 버린다. 장양희의 작품에서 구성은 해체의, 해체는 구성의 이면이다. 얼굴을 세로로 쪼개 긴 라이트 박스 안에 담아서 간격을 두고 배치한 이전 작품 &Anonymous Face」(2010)나, 다른 크기의 라이트 박스 안에 얼굴 부분들을 담아 배치한 &Anonymous Face」(2007)에서, 박스와 박스 사이의 간극은 다른 부분들과의 교체 가능성을 내포한다. 그것들은 말 그대로 가변설치 작품이다. '풍경화 된 신체’라는 이 전시의 부제는 그녀의 작품 속에 관철되어 온 얼굴의 익명성을 몸까지 확장시킨다. 얼굴은 몸의 핵심이고, 몸은 얼굴의 연장이라면, 몸으로의 전환은 익명성을 더욱 강화시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몸은 얼굴 화 된다.
장양희_Anonymous Face_디지털 프린트, 석판화, LED_각 30×30×6cm_2010

에로틱한 관계를 익명적인 것으로 보는 레비나스가 말하듯이, 몸 전체가 얼굴로 표현될 수 있다. 이번 전시의 몸 풍경(bodyscape)과 이전 작품들의 초상들에는 익명성이라는 연결 고리가 여전히 존재한다. 시각 예술의 관습상, 작품 한가운데 나오는 형상은 대부분 인물을 암시하며, 그 출발은 자화상일 경우가 많다. 2005년 장양희의 첫 개인전 '나를 그리다’부터 초상과 라이트 박스의 결합이 시작 되었다. 그녀의 작업에서 나는 불특정 다수이며, 그 역 또한 성립된다. 얼굴 또는 몸의 익명성은 한명이 여러 부분으로, 또는 여러 명이 한 몸처럼 조합되는 설치의 가변성을 낳았다. 부분들 사이의 간극은 설치방식에 따라 다양하지만, 완전한 별개의 조각들로 흩어지지는 않는다. 장양희의 작품에서 몸은 여전히 작품의 응집력을 유지하는 기준이다. 작품 &Anonymous Face」(2010)에서 코와 입은 각각의 박스에 담겨있지만, 자연스럽게 코는 입 위에 설치된다. 뒤집혀 있는 경우도 없다. ● 라이트 박스가 동원된 3차원 화 된 이미지에서 수직, 수평의 차원 모두에서 일어나는 계열화는 대상의 명확성을 교란시킨다. 투명한 평면들의 중첩에서 신체의 일부가 아닌 추상적 형상들은, 대부분 사진에서 출발한 평면적 인물에 깊이의 환영을 만든다. 여기에서 유기물과 무기물 간의 질적 차이는 고려되지 않는다. 그것들을 화석처럼 켜켜이 쌓이면서 서로 구별될 수 없는 새로운 실체를 만들어간다. 또한 그 깊이는 외면에 반대되는 내면이 아니라, 가면 속의 가면처럼 무수한 외면들로 이루어진 깊이이다. 그것들은 '내재성의 장’을 이루지만, '자아의 내부에 있지 않을뿐더러, 비(非)자아에서 유래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자아를 인식하지 않는 절대적인 바깥’(들뢰즈와 가타리)이다. 중심과 주변과의 관계가 해체됨으로서, 개인을 개인답게 만드는 내면이라 할 만 한 것은 모두 표층으로 기어오른다. 때에 따라 어떤 것은 기층으로 내려앉는다. 고정된 라이트 박스에는 마치 어항 속의 부유물처럼 떠오름과 가라앉음이라는 잠재적인 운동감이 있다.
장양희_Anonymous Face_디지털 프린트_각 88.5×57.3cm_2011

인간의 평면성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아마도 그림자일 터인데, 분리된 3개가 한 쌍을 이루는 작품 &Anonymous Face」(2011)는 투명한 재료에 이미지를 출력한 후 검은 판에 붙여서 흐릿한 실루엣만 떠돌게 했다. 인간 형상은 뿌연 그림자처럼 보일락 말락 한다. 이 예외적인 작품에서 검은 판은 어떠한 빛도 빠져 나가지 못할 만큼 밀도가 높아 보인다. 빛과 결합된 색 입자들의 순간적인 조합이 익명의 얼굴/몸에 또 다른 표정과 서사를 만든다. 작품 &Anonymous Face」(2006, 2010)에서 왼쪽과 오른 쪽의 흑백 초상의 열은 성의 차이가 희미하게 가늠될 뿐이다. 조금씩 엇겨 배치된 이미지들은 반복 속의 차이 속에 정확한 재현을 교란시킨다. 아래에 푸른 LED 조명을 한 두루마리 형태의 초상에서 발견되는 많은 스크래치와 투명 필름 위에 새겨진 흐릿한 초상은 빈티지 사진 같은 분위기이다. 장양희의 작품은 디지털 프린트를 활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고풍스러움이 있다. 많은 작품에서 발견되는 나무틀 또한 아나로그 풍이다. ● 화석이나 오래된 물건 같은 무수한 층들을 부각시키는 것 또한 빛이라는 역설이 있다. 작품을 이루는 복합적인 층들은 수평으로만 중첩되지 않는다. 걸려 있는 작품의 경우 아래를 흩트려 놓기도 하고, 눕혀 놓은 작품의 경우 표면에 들쑥날쑥함을 부여하기도 한다. 대학원에서 전공한 판화는 작가가 좋아하는 방식인 중첩에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해 주었으며, 설치와 결합되어 공간적인 중첩으로 확장시킨다. 이번 전시에서 설치의 묘를 살린 것으로 투명 필름에 프린트된 군중 이미지를 둥글게 말아서 기둥처럼 세워 놓은 작품이 있다. 관객은 그 안에 들어가서 볼 수 있는데, 이 속이 텅 빈 군중들은 지하철 역사 같은 복잡한 곳에서 사람들을 헤치고 나가야 하는 경험을 일깨운다. 투명 인간화 된 모습에서 군중의 가상성 또한 연상된다. 실체감 없는 텅 빈 기둥으로서의 인간은 설사 얼굴이 나타났다 해도 익명적일 수밖에 없다. 그들은 그 누구와도 교체될 수 있는 대중들이다.
장양희_Anonymous Face_투명필름에 디지털 프린트, LED_73×73×16cm_2011

전시장 입구에 설치된 작품은 거리에서 몰래 촬영한 군중 사진을 가로로 잘라 블라인드처럼 쌓아놓았다. 기둥 형식이나 블라인드 형식의 설치는, 여러 장이 아닌 한 장의 투명 필름이 사용될 경우에도 많은 층위를 발견할 수 있다. 군상으로서의 인간은 분자적 이합집산의 산물이다. 몸에 얹힌 하나의 덩어리인 머리는 그 앞면에 백 개가 넘는 근육이 깔려 있는 가장 미묘한 표면을 가지고 있다. 복잡한 층들이 상호 작용하여 만들어지는 얼굴 표정은 개별적 특성과 직업, 성격이 가늠되며 타자로 하여금 느낌과 읽기의 대상이 된다. 장양희의 작품 역시 그 다층적 표면이 상호작용을 통해 어떤 효과를 낸다는 점에서, 얼굴이 가지는 해부학적, 심리적 과정을 반복한다. 가장 표현적인 부분인 눈이 없기에 표면들 간의 상호작용은 인간적 차원이 아니라, 원소적 차원까지 소급된다. 우리는 타인의 얼굴에서 폭죽처럼 터지는 웃음이나, 표현 되지 못한 채 서서히 가라앉는 침전 물 따위를 발견할 수 있다. ● 알폰소 링기스는 &낯선 육체」에서 얼굴은 원소의 표면이라고 말한다. 이 구멍들의 배열로 이루어진 얼굴, 짙은 암흑이 깃들인 텅 빈 구멍들은 타인의 열망과 갈망으로 채워진다. 알폰소 링기스는 타자들로 존재하는 자유로운 원소들의 응결물을 만지고 포옹하면서 체험하는 관능적인 본성들의 변성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개인들은 오로지 남성적이거나 여성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성전환자, 다성체, 무성체, 사이보그, 늑대인간, 동성애자이기도 하다. 그들은 유(類)를 가로지르는 자신들의 신체조직과 관능을 동물들, 식물들, 강들, 기계들, 영혼들, 죽음과 결합시키면서 특이한 기호학과 문화를 정교하게 발전시킨다. 알폰소 링기스는 우리와 대면하는 타자가 자신을 드러내 보일 때 그/그녀의 얼굴과 몸은 단지 우리가 해석하기 위한 지시적이고 유익한 기호들이 형태화되는 단순한 표면이 아니라고 말한다. 리비도는 육체의 일부들, 부분들, 쾌락들이 어우러지는 현장이다. 그곳에서 양성체, 성전환자, 샴쌍둥이의 체액들, 육체의 부분들, 표상들이 결합될 때 리비도의 갈망과 쾌락과 오르가슴의 해방이 이루어진다.
장양희_Anonymous Face_투명필름에 디지털 프린트, 아크릴판_107×36cm_2010

장양희의 작품에서 비(非)남성적 비(非)여성적인 육체의 소지자들은 개인들의 기호학 속에서 배열되지 않는다. 그것은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이라는 이분법적 개념에 따라 형성된 지배적인 기호학을 침묵시킨다. 다양한 색감과 형태, 밀도를 가지는 얼룩들은 희미한 해부학적 참조 대상과 어우러져 정신이라고도 물질이라고도 할 수 없는 미묘한 대상을 만듦으로서, 가장 익숙한 대상인 얼굴은 가장 낯설게 된다. 층과 층 사이의 빈 공간을 사이로 입자처럼 이합집산 하는 것들에 제한을 두는 것은 네모난 나무틀뿐이다. 또한 그 나무틀들의 배치는 전시 공간에 의해서만 한정될 뿐이다. 얼굴은 덩어리가 아니라, 계열화 된 원소들의 끝없는 연결과 분리의 과정 중에 있다. 그것은 얼굴과 몸, 마음에서 고정된 것은 없음을 보여준다. 눈이 제거되거나 희미한 익명적 초상은 의식 너머를 향한다. 인간은 생존과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 자신은 물론 타인의 얼굴과 몸에 대해 무의식적 차원까지 긴밀하게 반응하곤 한다. ● 바다 같은 변화무쌍함이 특징인 무의식의 세계에서 코드화된 얼굴은 흐릿해진다. 거기에서는 인종도, 성도, 계급도, 나이도 불확실해진다. 밀도에 따른 원소의 운동 같은 것들이 발견될 뿐이다. 들뢰즈과 가타리의 &천개의 고원」은 얼굴에 내재된 원소적 익명성을 길게 논한다. 저자들에 의하면 얼굴은 흰 벽-검은 구멍이라는 체계를 가진다. 얼굴은 말하고 생각하고 느끼는 자의 외부를 둘러싼 표피가 아니다. 본래 얼굴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다. 얼굴은 그 자체로 잉여이다. 거기에는 차원 없는 검은 구멍, 형식 없는 흰 벽이 있다. 구체적인 얼굴은 흰 벽 위에서 모호하게 그려지며, 검은 구멍 안에서 모호하게 나타난다. 구체적인 얼굴들은 얼굴성이라는 추상적인 기계로부터 태어났다. 그래서 얼굴에는 비인간적인 어떤 것마저 있다. 장양희의 작품 속 얼굴에도 인간 안의 비인간적인 것이 나타난다.
장양희_Anonymous Face_투명필름에 디지털 프린트, 가변설치_높이 300cm_2011

그것은 본래부터 생명 없는 백색 표면들, 빛나는 검은 구멍들, 공허와 권태를 지닌 거대한 판이다. 판으로서의 얼굴은 비인간적이며, 괴물적인 복면이다. 중첩되는 차원들이 순간적으로 조합되어 생성되는 얼굴은 조직화를 벗어난다. 이렇게 들뢰즈와 가타리는 인간이 비인간성들로부터만 만들어진다고 본다. 거기에는 얼굴 이전의, 그리고 얼굴 너머의 비인간성이 있다. 그것은 탈영토화의 선들이 절대적으로 긍정적이 되는 비인간성이다. 얼굴의 비인간성이 강조되는 장양희의 초상은 결코 선행하는 기표나 주체를 상정하지 않는다. 그 얼굴은 풍경을 지시한다. 얼굴은 어떤 그림을, 그림의 어떤 단편을 상기시킨다. 들뢰즈와 가타리에 의하면 통상적으로 얼굴은 강력한 조직체였다. 얼굴은 직사각형이나 동그라미 안에서 의미생성과 주체화에 이용할 얼굴성의 특징들을 취한다. 장양희의 작품은 이러한 얼굴의 조직화에서 벗어나려 한다. 기표의 벽을 관통해서 주체의 검은 구멍으로부터 빠져 나오면서 얼굴은 해체된다. ● 추상적인 기계는 진정한 탈얼굴화의 수행자로서, 자신의 행로에서 지층들을 해체한다. 그것은 탈영토화의 선들과 창조적인 도주선들 위로 흐름들을 인도한다. 얼굴에서 해방된 각각의 특징들은 리좀을 만든다. 그것은 부분 대상들의 모음이 아니라 살아있는 블록, 줄기들의 연결 접속이다. 이렇게 얼굴은 강렬한 탈영토화를 표상한다. 전선들로 어지럽게 연결된 장양희의 초상은 주체성이나 실체성이 아니라, 개체화된 배치물 전체이다. 그것은 개인도 전체도 아닌 진정한 익명성을 보여준다. 두 명 또는 세 명에 속하는 존재가 아니라, 무수한 의식들이 공존을 논하는 메를로 퐁티는, 이러한 사회에서 자아와 타아의 상호 공존성 또는 가치성, 즉 주체 없는 익명적 사고를 발견한다. 그는 &지각의 현상학」에서 타인은 세계에 대한 나의 조망에 갇혀 있지 않다고 본다. 조망은 한계를 가지지 않고 자발적으로 타인의 조망에 스며들며, 우리 모두가 지각의 익명적 주체들로서 참여하는 유일한 세계로 모아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현재의 두께에서 작가는 자유의 토대를 발견한다. ■ 이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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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을 가르다



노동식展 / ROHDONGSHIK / 盧東湜 / installation   2011_1213 ▶ 2012_0114 / 일요일, 공휴일 휴관



노동식_구름을 가르다_합성수지, 아크릴채색_가변크기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노동식 홈페이지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월~수요일_10:00am~07:00pm / 화요일_01:00pm~09:00pm 목요일_10:00am~09:00pm / 금~토요일_10:00am~06:00pm / 일요일, 공휴일 휴관

비앤빛 갤러리 B&VIIT GALLERY 서울 서초구 서초 4동 1317-23번지 GT 타워 B2 Tel. +82.2.590.2353 www.bnviitgallery.com



'솜'으로 빚은 따뜻하고 아름다운 판타지, 그 알고리즘algorism-작가 노동식 작품에 대한 소론1. 3D영상을 보는 냥 탄성을 자아내게 만드는 곡예비행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고, 한 줌의 쌀이 수백 배 커져 나타나는 신비한 뻥 튀기 기계가 제 입 한 가득 하얀 세상을 뿜어내며 현실 저 너머에 있던 향수를 자극한다. 이젠 옛 도구로 치부되는 연탄난로가 활활 타오르던 찬란한 시절을 뒤로한 채 연기를 뱉어내고, 들판에 휘날리던 민들레 꽃씨가 공간에 들어와 바쁜 일상으로 인해 잠시 잊어버렸던 기억들을 회상토록 한다. 이밖에도 움찔하도록 하는 거대한 토네이도의 위용, 큐브에 들어선 웅장한 폭포, 신(新) 무릉도원을 연상케 하는 운해는 그것이 실제가 아님을 인지함에도 불구하고 흡사 보이고 들리며 그곳을 거닐고 있는 것처럼 관람자들을 유도하는 감성의 촉매가 된다. 이처럼 작가 노동식이 '솜'을 이용해 만들어내는 그 순백의 세상 속에는 누군가에겐 아련한 추억과 기억을 상기시키는 흐름이 부유하고 당대 일어나는 수십 가지 현상과 사물에 관한 시류가 얽히고설켜있다. 번잡하고 빠르게만 흘러가는 초침을 벗 삼아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대인들의 잃어버린 감수성을 건드리는 내레이션이 물씬 배어있으며, 우리 모두 한번쯤 생각하고 경험해 보았으나 마음 한구석에 밀쳐놨음직한 미지의 여백들이 그가 창조하는 다양한 형상에 포박된 채 곳곳에 들어차 있다. 실제로 지금까지 약15년 간 제작된 그의 수많은 작품들은 세월의 지층을 뚫고 나와 무언가를 되새김질하도록 하는 것이었으며, 이것은 그의 작품이 지닌 여러 특징 중의 일부로 규정된다. 일단 '솜'이라는 독특한 재료를 이용한 노동식의 작품들은 스토리적 측면에서 다양한 상상력을 가능케 할 뿐만 아니라 익숙한 사물들은 시각적 즐거움까지 선사한다. 특히 언뜻 건실한 느낌을 주지만 만지면 이내 꺼져버릴 것 같은 솜의 특성은 막상 다가서면 쉽게 문을 열어주지 않을 것 같은 미지의 끝자락을 목도케 함으로써, 그의 작품이 이중적인 감정을 유발하는 것임을 발견토록 한다. 이는 분명 인상적인 흔적들이다. 물론 고정적이지 않은 물성을 조각이라는 분야로 접목시켜 효과적으로 치환하는 것 자체가 특별하고, 습기에 약한 솜으로 단단한 형상을 구축하는 그 재주 또한 흥미를 배가시키는 이유로 부족하지 않다. 그러나 무엇보다 솜을 통해 무한한 세상을 창조해 가는 노동식의 창작의지와 밝고 건강한 미적 세계를 구축(構築)하려는 뚜렷한 목표의식, 그것을 향한 무식하리만치 집요한 노동력이야말로 유의함의 알고리즘(algorism)이자, 그의 작품세계를 더욱 도드라지게 만드는 진정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동식_구름을 가르다_합성수지, 아크릴채색_가변크기_2011
노동식_구름을 가르다_합성수지, 아크릴채색_가변크기_2011

2. 하지만 반드시 짚어봐야 할 부분은 노동식 작업의 미적 가치를 형성하는 근간이 이미지로 대리되는 형식에 앞서 주제에 있다는 점이다. 이는 일상과 기억의 재생, 혹은 환기를 일컬음인데, 건조한 우리네 삶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긍정적인 현실을 지향하는 작가의 바람이 이입된 메시지가 어떠한지를 증거(證據) 하는 메신저가 된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솜틀집의 아들로 자라면서 보고 느꼈던, 솜을 하나의 놀이도구로 삼았던 회상, 가족과 얽힌 애정사를 배경으로 한다. 따라서 그가 주재료로 삼는 솜을 이용해 자신이 경험했던 이야기를 정겹게 풀어내는 과정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라 해도 그르지 않다. 노동식의 작품은 대략 두 가지 커다란 흐름 아래 전개된다. 첫 번째는 '동화 같은 세계로의 초대'인데, 깃털마냥 안락한 여운과 푸근한 감성을 전달하고 탈(脫)현실적인 동기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동화적 유추는 그의 작품이 지닌 장점의 하나로 꼽힌다. 일례로 노동식의 작품 「불면증」은 잠을 이루지 못할 때 양을 세던 구전(口傳)을 모티프로 한다. 어린 시절 잠자리에 들기 전 웅얼거리던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그렇게 하나 둘 머릿속에 그리면서 뒤척이던 양태를 작품으로 표현한 것 이 작품은 흡사 매직리얼리즘의 한 줄기를 따라 걷는 것처럼 각 마리마다 투영된 상상들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는 기분이나 그것을 뒷받침하는 염원을 느낄 수가 있다는 사실에서 흥미로움을 선사한다. 더불어 판타지하게 표현된 양은 실재 대상보다 더 귀엽고 재미있어 웃음마저 심어준다. 「불면증」 외에도 작가의 동화적인 상상력이 빚어낸 작품들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알라딘에 등장하는 요정이자 아랍권의 마신을 주인공으로 한 「램프의 요정 지니」, 일본 만화를 소재로 한 「아톰의 위기」, 그리고 판타지 영화 꼬마유령 캐스퍼의 주인공인 「캐스퍼」, 『삼국지연의』, 『수호지』, 『금병매』 등과 함께 중국의 사대기서(四大奇書) 중 하나인 명나라 때 소설 『서유기』의 말썽꾸러기를 힌트로 한 「손오공」과 같은 작품에서도 이어진다. 이들 전부 마술적인, 그러면서도 실제를 이탈한 공상 속 배우와 내용을 통해 현실에선 이루기 힘든 사랑과 정의, 희망과 소원 같은 유심적인 것들을 공통적으로 지정하고 있다. 중요한 건, 이 작품들은 (거의 대부분의 동화적 화법이 그러하듯) 상징과 은유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삶의 현실 안에서 교합하는 비밀스러운 본질과, 정해진 상황에서 맞교환되는 복잡하고 다양한 심리적 충돌, 그리고 사랑과 평화, 기억과 재생, 개별적이지만 공존의 방법 또한 함께 제안하고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나아가 구체적 현실과 관계없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 진리인 듯 믿고 따르는 동화의 교훈을 거부감 없이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유쾌한 공감을 연대할 수 있도록 만드는 도구로써 사용되고 있다는 점은 동일한 형식을 취하는 여타 동화적이라 불리는 작품들과의 변별력으로 손색이 없다.
노동식_구름을 가르다_합성수지, 아크릴채색_가변크기_2011
노동식_구름을 가르다_합성수지, 아크릴채색_가변크기_2011

3. 초현실주의적인 관점 아래 작품을 즐기도록 권유하고 작품에 한결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동화 같은 세계로의 초대'라면 '추억과 이상향'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작업의 연속성에 관한 필연적인 구동체이자 동시에 그의 작품을 포괄하는 또 하나의 경향이라고 볼 수 있다. 기실 추억과 이상에 대한 주제는 노동식 개인의 서사를 바탕으로 할 뿐만 아니라 앞서 기술한 시연동화 형식을 넘어 자기 색깔이 보다 진하고 명료하게 녹아 있어 주목할 필요성을 획득한다. 동네 귀퉁이나 재래시장에서 마주할 수 있었던 뻥튀기 장면을 묘사한 「뻥이요」를 비롯해, 지금처럼 가가호호 수도시설이 채 구비되지 못했던 시절 물을 미리 조금 넣어야 비로소 시원한 지하수를 퍼 올릴 수 있었던 펌프 식 수도를 형상화한 「1980년 여름」, 우리나라 시골 어디에서나 흔하게 피고 자라던 민들레홀씨를 꺾어 불며, 그 날아가는 모습에 즐거워했던 옛 기억을 담은 「민들레 홀씨 되어」, 마치 다정한 연인이 금방이라도 앉았다갈 것처럼 낭만적인 벤치와 자전거, 서구식 가로등이 놓여 있는 「첫 눈 오는 날」과 같은 작품들이 그 대표적이다. 이들 작품들은 대개가 작가의 기억을 뿌리삼아 의지하며 자라는 나무의 잎사귀이며, 또한 그를 대신하는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여름만 되면 마을마다 등장해 아이들로부터 '방구차'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썼으나, 하얀 소독약 연기를 쫒아 희희낙락했던 그 아이들의 인기 역시 가장 많이 받았던 소독차와 관련한 추억을 옮긴 「소독차」, 한겨울 땔감 냄새로 인해 연실 마른기침을 하면서도 각자 가져온 도시락과 온몸에 온기를 전해주던 교실 연탄난로를 형상화한 「콜록콜록」, 사내아이라면 유년시절 손에서 떼지 못했던 비행기를 주요 소재로 한 「떴다떴다 비행기」, 「곡예비행」 등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 가운데 「떴다떴다 비행기」, 「곡예비행」을 포함해 「에어쇼」나 「운해」, 그리고 근작인 「엔진」은 지난 시간에 관한 아련함을 지정하면서 이상적인 세계, 초현실적인 공간으로의 발돋움을 상징하고 있기에 유독 눈길을 끄는 작품으로 분류된다. 특히 작금 선보인 「엔진」은 그 폼과 동새로도 시선을 모으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특정 부품만을 이용해 속도감과 진행성을 단순하게 기호화 하고 있어 '추억과 이상향'을 대변하는 작품으로 아쉬움이 없다.
노동식_민들레 바람을 타고_혼합재료, 우레탄도장_가변크기_2011

4. 노동식 작가의 2011년 근작들은 지난날의 설치작업에 비해 더욱 조밀하게 삼투하는 흔적을 보여준다. 공간의 높이와 넓이를 최대한 활용하는 공간장악력에 대한 가중치가 높아졌다는 것도 변화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민들레를 들고 있는 소녀와 민들레를 바람처럼 타고 날아가는 소년이 등장하는 설치 작품의 경우 작가 특유의 동화적인 맥락과 이상성이 상징이라는 틀 안에서 한층 강화되어 진일보한 면모를 엿보도록 한다. 민들레의 크기가 사람 크기 이상이고 그것이 하나의 기구처럼 설정되어 있다는 것은 다분히 비실제적(판타지적)이지만 그러한 상징의 강조가 되레 꿈의 조타로 기능함을 증폭시키는 이유가 되는 셈이다. 본래의 내용을 떠나 타자의 관점에서도 이 두 작품은 누구나 체감하는 성장과정에서의 일정한 시기성을 재구성하도록 하거나 표출토록 하는 단초가 될 수 있다. 혹자에겐 그 자체로 꽤나 멋진 조각으로 다가오기에 부족하지 않다. 그 외에도 자신의 히스토리를 대입하는 장(場)이자, 각기 다른 이야기로 각색해 자신만의 세계로 무한하게 나아가도록 하는 동기로 해석해도 무리는 없다. 그만큼 이 두 아이들이 던지는 상상의 분동(分銅)은 자유롭고 역동적이며 친근함을 저울질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차원과는 달리 약100여개에 달하는 패러글라이더들이 낙하하는 작품은 모험과 도전정신,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비상하려는 모습을 나타낸다. 마치 작가의 현재 상황, 다시 말해 더 높은 곳에서 보다 자유롭게 작업하고 자신의 작품을 통해 메시지를 확장하려는 욕망이 엿보이기도 하는 이 작품은 세밀함과 규모의 웅장함에서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그의 대부분의 신작에서 명료하게 나타나며 공간을 상상과 지각, 관념으로 물들여 보는 이들의 눈과 마음속으로 침투한다는 수순을 따른다. 따라서 관람자들은 작가의 작품을 통해 동일하거나 훨씬 넓고 다양한 세계와 마주하게 되고, 이는 그의 작품에서 배어나오는 일종의 아우라(aura)의 영향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결국 노동식의 작품들은 '솜'으로 빚은 따뜻하고 아름다운 판타지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 평화롭고 마법 같은 세계로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그렇지만 직접적인 이미지자체에 몰입하게 하기 보단 은유와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 그의 작품이 지닌 백미이며, 일상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는 대상일지라도 바라보는 관찰자가 가진 환상이나 상상력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재구성되도록 만든다는 사실, 그리고 숨 가쁘게 흘러가는 세상을 고착된 형태화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란 인식성을 넘어선 암시적인 것임을 되묻고 있다는 것에 핵심이 있다. ■ 홍경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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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조망과 은거의 풍경

권인경展 / KWONINKYUNG / 權仁卿 / painting   2011_1214 ▶ 2011_1219


권인경_동시적 공간_한지에 고서꼴라쥬, 수묵채색_130.3×194cm_2011

초대일시 / 2011_1214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가나아트 스페이스 GANAART SPACE 서울 종로구 관훈동 119번지 1층 Tel. +82.2.734.1333 gana.insaartcenter.com


권인경- 친근하고 낯선 도시풍경 ● 도시는 자연으로부터 벗어나면서 비로소 가능해진 공간이다. 그곳은 자연과는 다른 생존의 공간이자 안식처다. 자연 속에서 삶을 영위했던 인간이 그 자연을 뒤로 하고 도시를 가설하면서부터 근대는 시작되었고 현대인이 탄생했다. 자연의 위협과 불안으로부터 벗어났지만 동시에 자연과의 친화적 관계를 상실한 도시인들은 고독과 불안, 부유하는 이의 심리적 상흔을 안게 되었다. 도시는 다시 자연을 그리워하고 해서 도시 공간에 자연을 관리하고 끌어들이기도 했다. 공원과 정원, 가로수와 화분 등은 그런 도시화된 자연풍경이다.
권인경_경계의 경험_한지에 고서꼴라쥬, 수묵채색_103×146cm_2011
권인경_개인의 방_한지에 고서꼴라쥬, 수묵채색_127×158cm_2011

권인경은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풍경을 그림에 담고 있다. 지극히 사적인 시선에서 본 풍경화다. 실내에서 내다보이는 도시의 경관은 파노마라처럼 흐른다. 도시를 조망하고 있는 산책자나 구경꾼의 시선이 두툼하게 느껴지는 그림이다. 도시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바라보는 구경꾼의 시선이다. 그림 하단에는 대부분 거실 풍경의 단면이 놓여져 있다. 소파나 의자의 윗부분이 보이고 창가에는 몇 개의 화분들이 늘어서있다. 그 화분 뒤로 복잡다단한 도시의 건물들이 가득하다. 비근한 일상의 장면들이다. 이런저런 가게들이 들어서있고 창문과 각종 간판을 장식하는 문자들이 바글거린다. 그 사이로 한자가 쓰여진 종이가 콜라주 되어 있다. 현대적 도시의 피부위에 한자/문자가 기생한다. 도시를 채우고 있는 각종 건물들은 가까이 다가오기도 하고 저 멀리 아득하게 펼쳐져있기도 하다. 굽어보는 시선과 멀리 내다보는 시선이 어지럽게 선회한다. 카페와 노래방, 부동산과 식당, 옥탑방 등이 손에 잡힐 듯 펼쳐져있는가 하면 저 멀리 남산 위의 타워와 높이 솟은 빌딩, 촘촘히 밀집한 연립주택과 아파트단지들이 물결치고 그 사이로 언뜻언뜻 녹색의 풀들이 숨 쉬고 있다. 여기저기 흩어진 작은 화분은 거대한 도시에 비해 왜소하고 보잘것없지만, 그러나 그 녹색의 풀만으로도 시멘트와 철골, 유리와 간판으로 뒤덮인 도시에 신선한 활력을 제공해준다. 모종의 신선한 구멍, 틈을 만들어 보여주는 것이다.
권인경_보이다, 보여지다_한지에 고서꼴라쥬, 수묵채색_60×91cm
권인경_정감화된 공간_한지에 고서꼴라쥬, 수묵채색_89×102cm_2011

이것은 실재하는, 구체적인 풍경이지만 한편으로는 다양한 시점에서 접한 도시가 한 화면에 공존되어 마구 엉켜지면서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원근법의 시선을 지우고 이동의 시선을 따라갔는데 그것이 바로 실존의 시선일 것이다. 고정된 주체 중심적인 시선이 아니라 몸의 시선이자 마음의 시선이다. 작가는 그렇게 창 너머로 보이는 도시풍경을 산책자의 시선으로 소요하고 부유한다. 작가는 도시 속에 살고 있으면서 그 도시를 낯선 이의 시선처럼 훑어나간다. 그래서 그림을 보고 있는 관자들 또한 작가의 시선을 따라 유동하며 도시를 체험한다. 이 그림은 보는 이의 신체와 시선을 자극해 끌고 다닌다. 도시 풍경을 단순히 재현하거나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도시를 산책하고 마음의 경로를 따라 이동하는 경험을 체감시키는 것이다. 작가가 보여주는 도시 풍경은 일어서고 가라앉고 기운다. 마치 지각변동이 일어나 해체되는 풍경 같기도 하고 풍경 속에 또 다른 풍경이 나타나는가 하면 실내와 실외의 풍경이 구분 없이 뒤섞이고 그려진 부분과 고서를 뜯어 붙인, 콜라주 조각들이 공존한다. 콜라주는 프레임을 만들고 그림 안에 또 다른 그림, 장면을 설정하는 역할도 한다. 그런가하면 입체적인 풍경을 평면화 시키면서 도시를 한권의 책처럼 보여주는 편이다. 사실 우리가 풍경을 본다는 것은 현재의 풍경뿐만 아니라 기억과 상상에 의해 떠오르는 여러 시간대의 풍경을 동시에 떠올리는 일이다.
권인경_정감화된 공간_한지에 고서꼴라쥬, 수묵채색_130×162cm_2010
권인경_조망과 은거의 풍경_한지에 고서꼴라쥬, 수묵채색_130×168cm_2011

권인경의 그림은 단순하고 삽화적으로 매만진 형태와 해학적인 묘사, 부드러운 채색으로 인해 친근하다. 또한 부분적으로 콜라주 된, 한자가 쓰여진 종이의 자연스러운 부착은 과거의 흔적들이 현재의 풍경 사이에서 떠오르는 듯한 상황을 암시한다. 2차원의 평면에 그리기와 콜라주(저부조)의 결합은 다층적인 공간감을 두텁게 형성해주는 한편 여러 시간의 멀미와 서로 다른 공간의 겹침을 뒤섞어 보여주는 이 그림은 도시를 보며 상상하는 행위를 보여준다. 사실 도시는 여러 시간이 동시다발적으로 공존한다. 무엇보다도 작가는 도시풍경을 소요하고 그 안으로 육박해 들어가거나 일정한 거리에서 관조하면서 그렸다. 자기 일상의 행동반경, 삶의 공간을 재현했는데 그것은 실제이자 상상력으로, 심상으로 길어 올린 풍경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권인경은 서울이란 도시,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풍경을 소재로 해서 그림을 그리지만 그것은 특정 도시의 재현이나 기록과는 조금 거리가 멀다. 분명 구체적인 도시 공간, 건물의 외관, 동네풍경이 사실적으로 다가오지만 작가의 주된 관심은 도시를 일정한 거리에서 조망하는 그 시선의 거리와 그로부터 연유하는 또 다른 꿈꾸기다. 그것은 도시를 산책하는 자의 시선이자 구경꾼으로 물러나 바라보는 어떤 심정적 거리 속에서 이루어지는 장면 같다. 그 시선과 마음은 한편으로는 도시의 현란한 외관과 복잡한 장면을 흥미롭게 바라보는 것이자 동시에 약간은 불안해하며 낯선 감정으로 긴장하는 마음의 상이기도 하다. 도시는 익숙하고 안정적이고 지극히 편리하면서도 동시에 불특정한 다수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곳이며 치열한 생존의 각축장이자 무수한 욕망들이 부딪치는 두렵고 공포스러운 공간이기도 하다. 도시를 멀리서 내다보았을 때 그 도시는 나와는 무관한 별개의 세계 같기도 하다. 익숙함과 낯설음을 동시에 안겨주고 보호해주는 안식처이자 비정하게 버려질 수도 있는 도시를 보는 양가적 감정이 공존하는 이 그림은 그래서 따스하고 친근하면서도 어딘지 불가해하고 낯선 풍경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 박영택


 

 

 


modified at 2011.12.12 16:18:08 by za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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