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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bel

  • 작성시각: 2011.10.02 21: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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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제목: 10월 전시 ver1.0

제7회 국민 아트갤러리 청년 작가 기획 공모


접수기간 / 2011_0928 ▶ 2011_1014



 
접수마감 / 2011_1014_금요일_05:00pm
주최 / 국민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 주관 / 국민대학교 대학원 미술이론전공
 
국민대학교 미술이론전공 청년작가 공모전팀 서울 성북구 정릉3동 861-1번지국민대학교 예술관 Tel. +82.2.910.4465

 
제7회 국민 아트갤러리 청년 작가 기획 공모요강 응모자격기준 : 만 40세 이하 (1971년 1월1일 이후 출생자) 누구나
공모부분 : 시각예술 전반
응모시제출서류 1. 공모신청서, 전시기획서 각각1부    공모신청서 다운로드 ▶    전시기획서 다운로드 ▶ 2. 포트폴리오 : 작품 10점 이상(출력물이나 CD, DVD 로 제출), 이전 전시의 결과물                       단, 제출된 포트폴리오는 반환되지 않습니다.
전시기간 : 2011년 11월 17일 - 2011년 11월 25일
전시 장소 : 국민대학교 예술관 내 국민아트갤러리
작가지원내용 1. 전시장 (약 80평) 2. 전시홍보 (서울아트가이드, 미술포털 네오룩) 3. 리플렛 및 전시현수막 4. 작품운송
접수 1. 접수방법 : 우편접수 및 방문접수 서울시 성북구 정릉3동 861-1 국민대학교 예술관 207호'청년 작가 기획공모'담당자 앞 - 우편접수 : 2011년 10월 14일 소인에 한함 - 방문접수 : 10:00am~ 05:00pm (토, 일, 공휴일 제외) - 접수마감 : 2011년 10월 14일 금요일 (05:00pm 도착분에 한함)
통보 - 2011년 10월17일 이후 전시 대상자 개별 통보 - 문의 : 김미교 jang0_0@hotmail.com Tel.010.3765.3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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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quid Drawing

신영호展 / SHINYOUNGHO / 申暎浩 / painting   2011_0928 ▶ 2011_1004


신영호_Liquid drawing 07_종이에 잉크_175×140cm_2011

 
초대일시 / 2011_0928_수요일_05:00pm
지원 / 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10:00am~06:30pm
 
공아트스페이스 Gong ART Space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8-31번지 Tel. +82.2.735.9938 www.gongartspace.com

 
이번 전시의 타이틀은 '리퀴드 드로잉Liquid Drawing'이다. 이 타이틀은 당연하게도 나의 수묵위주의 작품방식과 관계가 있다. 하지만 내가 더욱 강조하고 싶은 것은 재료의 물질성보다는 나의 사고를 더욱 확장하고 더욱 유연하게 하려는 본인의 의도에 있다. (Liquid의 사전적 의미 가운데에는 '액상의'라는 의미와 함께 '유동적인'이라는 의미가 있다) ● 일반적으로 드로잉은 페인팅과 상대적인 개념으로 인식되어 있다. 수묵은 이 두가지 개념 가운데에서 드로잉 영역에 더 근접해 있는 듯하다. 흑백이 주가 되는 색톤, 선 위주의 표현, 즉흥적이거나 속도감이 느껴지는 필치 등이 일반적인 드로잉의 표현과 공통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묵화를 드로잉에 속한다고 하지 않는다. 동양회화는 그런 개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다만 본인은 특별히 수묵을 전체 회화범주에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분석해 보려 한다. 동양의 미술개념과 비교하자면, 書나 畵는 드로잉이다. 아마도 페인팅에 가까운 개념을 찾는다면 丹靑쯤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략의 분류마저도 매우 불완전하다. ● 돌이켜 생각하건데, 나의 작업은 항상 나의 출발점을 찾고자 하는 의도로 진행되어 왔다. 그래서 나는 줄곧 출발점을 벗어난 적이 없다. 하지만 나의 지향점은 분명하다. 한마디로 하자면, 고도의 정신적인 경계, 즉 의경(意境)에 다다르는 것이다. 하지만 그 길은 멀고도 험하다. 나의 첫번째 과제는 바로 의경의 존재를 파악하고, 다다르는 구체적인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다.
 
신영호_Liquid drawing 19_종이에 잉크_350×160cm_2011

 
수묵은 이미 수천년의 역사를 지닌 표현방식이다. 각 시대마다 수묵이라는 물질을 정신으로 표현해 정의하고자 했다. 이러한 수묵의 정신성은 아직도 매우 습관적으로 언급된다. 정신은 과연 어디에 있으며 그 물질과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일까. 이 문제는 아마도 나의 첫번째 과제에 딸린 부과제쯤 될 것이다. 한국화는 중국화나 일본화와 그 성격이 다르다. 민족성이 다른 것도 물론이겠지만, 그 역사의 상이함으로 인해 그 영역의 범위가 다르다. 이를테면, 한국화에는 중국화나 일본화에 없는 '현대'라는 의미가 더 첨가되어 있다. 그래서 중국이나 일본에는 우리나라에서 비교적 흔한 '수묵추상'이 없다. 중국에서는 현대에 와서 다소 발생하기도 하고, 일본의 현대서예 '묵상'에서도 비슷한 유형이 보이지만, 한국화만큼 적극적으로 행해지지 않고 더군다나 그것을 연구하지 않는다.
 
신영호_Liquid drawing 12_종이에 잉크_165×103cm_2011
신영호_Liquid drawing 08_종이에 잉크_175×138cm_2011

 
한국에서 이미 매우 진부한 것으로 여겨지는 '수묵화'는 사실 대단히 독특한 전통을 형성하며 진행되고 있다. 이런 현상을 진화론으로 설명하면 적절할까? 매우 흥미롭고 진지하게 연구해 볼 만한 문제다. 누구든 스스로 그 자신이 위치한 지점을 명확하게 인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기에 많은 선배들은 우리미술이 설 좌표를 만드는데 많은 힘을 쏟았다. 하지만 오랜 동안 토론되어 왔던 '동양 혹은 서양'의 차이, 혹은 한국적 정체성의 거대화두는 이미 큰 흥미를 잃었다. 그러나 충분히 결론을 내리지 못했던 이러한 명제들은 뜻밖으로 나의 창작에 많은 단서를 준다. 나의 사고의 조각들은 울림으로 말한다. '나는 더 작고 깊고 소외된 곳으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 ■ 신영호
 
신영호_Liquid drawing 16_종이에 잉크_160×95cm_2011

 
신영호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2010년 북경중앙미술학원에서 박사를 졸업했다. 북경중앙미술학원에서는 '서예와 회화비교'방향으로 연구를 진행하여, 실기박사(實踐類博士)를 취득하였는데, 이는 한국인으로는 최초다. 그는 이번 전시와 동시에 번역서 '신神은 어디에 있는가(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출판기념회를 갖는다. 이 책의 원저자는 그의 스승이자, 중국의 권위 있는 서예가이자 인문학자인 치우전중(邱振中)선생이다. 이 책의 내용은 동양문화의 핵심인 서예를 어떻게 오늘의 시각으로 읽고 연구해 나가며 그 안에 담긴 정신을 읽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사고를 모은 것이다. ● 그의 서예에 대한 심화된 사고는 신영호의 창작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신영호는 물론 화가다. 하지만 그의 그림에서 상당부분 서예로부터 받은 영감의 흔적들을 볼 수 있다. 단순히 추상성, 시간성, 행위성등의 표면적인 개념이 아니다. 전통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실기를 겸비한 이론연구를 통해 얻은 내적 통찰력이다. 그는 그가 체험한 많은 내용들이 아마도 그의 작품 속에 녹아 있고, 관중들이 그것을 공감해 주기를 기다리는 듯 하다.
 
신영호Liquid drawing19_종이에 잉크_160×350cm_2011

 
그는 그의 작업노트에서 말하길 '항상 출발점에 서 있다'고 한다. 그 말은 아직 출발하지 않았다는 의미라기 보다는 끊임없이 자신을 부정하고 반성함으로써 자기자신이 서 있어야 할 대지를 찾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는 수묵을 이용해 창작을 하고 그의 그림은 한국화로 분류된다. 이것은 형식적인 분류에 불과하다. 그가 창작을 하는 태도는 왜? 어떻게? 라는 질문에 더욱 처절하게 사고한다. ● 하지만 그의 그림은 가볍다. 일반 관중이 관람하기에 큰 부담이 없다. 고호의 그림을 패러디하기도 하고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음식을 드로잉하기도 한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이런 시도들은 그 전에 이뤄지지 않았던 것들이 많다. 그의 그림은 추상적 요소가 있지만 추상화가 아니다. 구체적인 대상이 있고 그 안에 얘깃거리가 있다. 그것이 사람들에게는 가볍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작가로써 그가 작업을 대하는 태도는 그리 가볍지만은 않다. ● 그는 결코 시대적 유행에 뒤쳐진 사람이 아니다. 새로운 것에 대단히 민감하고 호기심이 많다. 그가 그리는 '수묵화'는 우리가 습관적으로 인식하는 그런 수묵화가 아니다. 뭔가 다르고 뭔가 새로운 수묵화이다. 하지만 그의 창작은 혁명을 위한 전위적 수묵이 아니다. 그의 창작은 그의 역사와 전통에 대한 진지한 사고에서 나온 것이고 수많은 시행착오와 반성을 통해 얻은 것이기에 우리가 공감하는데 전혀 무리가 없다. 그가 추구하는 더 작고 깊고 소외된 곳으로 여러분들을 초대하고 싶다. ■ 박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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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king in the forest


박경민展 / PARKKYOUNGMIN / 朴敬民 / painting   2011_0928 ▶ 2011_1004


박경민_숲을맴돌다_천에 혼합재료_120×524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박경민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0928_수요일
기획 / 화봉갤러리
관람시간 / 10:00am~07:00pm
 
화봉 갤러리 HWABONG GALLERY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7-28번지 백상빌딩 B1 Tel. +82.2.737.0057 gallery.hwabong.com

 
나의 풍경은 무수히 이어지는 자연의 연속과 인간의 흔적들, 잔상을 남기며 사그라지는 인공물의 세계를 드러낸다. 숲이라는 자연을 인간의 삶속에 투영하여 나의 사사로운 소망을 담는다. 순환하는 자연과 기억 속에 잠재된 장면들이 지나다 마주치는 풍경들과, 메스컴, 책, 주워들은 이야기들과 어우러져 화면 안에 공간을 이룬다.
 
박경민_도시정글_천에 혼합재료_130×162cm_2011
박경민_내안에너_천에 혼합재료_130×162cm_2011
박경민_내안에너2_천에 혼합재료_90×163cm_2011
박경민_숲을맴돌다2_천에 혼합재료_162×130cm_2011
박경민_도시정글2_천에 혼합재료_73×116cm_2011

 
현실의 모습을 재구성한 이러한 특정한 공간은 내 기억 속의 풍경을 연출한다. 이미 지나가 버린, 그러나 순환하는 자연에 깃든 영속적인 시간 속에서 기억의 잔상은 현실의 모습을 초월하려는 작가적 의식의 토대이다. 결국 이것은 내가 만들어 놓은 인위적인 기억인 동시에 결코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이 함께 상생하며 드러나는 동양적 감성의 풍경인 것이다. ■ 박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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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양(春陽)


안효정展 / AHNHYOJUNG / 安?貞 / photography   2011_0928 ▶ 2011_1004


안효정_춘양_잉크젯 프린트_96×120cm_2011

 
초대일시 / 2011_0928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룩스 GALLERY LUX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5번지 인덕빌딩 3층 Tel. +82.2.720.8488 www.gallerylux.net

 
춘양(春陽)을 기다리는 기억들 ● 사진은 분명 객관적 세계를 인증한다. 해서 사진은 오랫동안 현실 인식의 탁월한 수단으로 여겨졌다. 한편 발터 베냐민은 사진을 일종의 텍스트로 간주했다. 실재계를 찍은 사진 역시 상징계의 질서에 편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오늘날 사진은 현실에 대한 인식에 적합하다는 사실의 회의에 봉착해 상징계의 질서가 아닌 상상계로 들어가는 것 같다. 그리고 사진이 더 이상 객관적 실체를 증거 하는 수단이지도 않게 되었다. 오늘날 사진은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현실의 화학적 증거'가 아니다. 사진은 이제 실재와 가상 사이에 걸쳐있거나 그 둘이 경계 없이 뒤섞인다. 이른바 팩트와 픽션이 뒤섞인 '팩션' 사진이 대세라고들 한다. 최근 젊은 작가들은 보는 세계에 만족치 못하고 그 안에 환상이나 가상을 삽입한다. 보고 싶은 것을 드러내거나 현상 이면에 잠복한 알 수 없는 그 무엇을 부단히 유출하고자 한다. 따라서 적극적인 연출과 각색을 통해 풍경과 사물을 낯선 것으로 치환하는 것이다. 라캉은 상상계로 표상될 수도 없고 상징계로 의미될 수 없는 영역이 있다고 말한다. 이른바 그가 '실재계'라 부른 그것은 이미지로 표상하거나 텍스트로 의미하는 순간 더 이상 실재가 아니게 된다. 이미지든 텍스트든 자신을 가리키는 기호를 미끄러지게 하면서, 그리하여 상상계로도 상징계로도 편입되기를 거부하면서 끝까지 알 수 없는 영역으로 남는 것을 말한다. 그 실재계는 결코 사라지지 않고 때때로 트라우마가 되어 우리에게 상처를 준다. 모호하고 난해하며 도저히 알 수 없는 삶, 우리네 인생이 바로 그것일 것이다.
 
안효정_장미꽃이 지던 날_잉크젯 프린트_64×80cm_2011

 
안효정의 사진은 자신의 삶을 보여준다. 연출한다. 그 삶은 텍스트로도 이미지만으로도 재현되기 어렵다. 살아온 시간동안 누적되고 가라앉아 불현듯 떠오르고 현재의 시간을 잠식해 들어가는 그 알 수 없는 기억의 무게와 상흔들을 주어진 대상과 풍경 안에서 발견한다. 다시 본다. 그리고 그것을 찍고자 한다. 해서 그 대상에 개입해서 약간의 연출, 조작을 가한다. 예를 들면 하얀 침대 시트 위에 섬을 닮은 무거운 돌 하나를 눌려놓거나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동 입구에 인위적으로 가설한 붉은 색 커튼을 설치한다거나 미묘한 느낌을 동반하는, 흡사 무덤가를 연상시키는 숲에 붉은 색 실을 매달거나 늘어뜨려 놓는 식이다. 그런가하면 잔잔한 수면 위를 분할하듯, 한 가운데에 붉은 색 로프를 띄워놓거나 초록의 잔디밭 위에 붉은 색 천을 뒤집어 쓴 사람을 앉혀놓았다. 주어진 대상 안에 또 다른 사물을 개입하거나 장면을 설정하는 연출사진이다. 공통적으로 붉은 색 천, 실이 개입되어 있다. 이 강렬한 붉은 색의 실이나 끈은 물과 녹색의 숲, 흰 눈 속에 혈흔처럼, 상처처럼 흩뿌려진다. 그것은 작가의 여러 상념이나 감정, 기억과 고통, 지난 시간에서 현재로 수시로 귀환하는 모종의 정신적 증상들이다. 그런 오브제의 개입 없이 찍은 몇 장의 사진도 있다. 나로서는 그 무심하면서도 어딘지 초현실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거의 직관에 이끌려 찍은 풍경 사진이 더 좋다. 언어화할 수 없는 묘한 느낌이, 섬세한 감성적 시선이 감도는 사진이다.
 
안효정_돌_잉크젯 프린트_64×80cm_2011
안효정_벽초지_잉크젯 프린트_64×80cm_2011

 
주어진 풍경이나 일상의 사물을 본다는 것은 현재의 시간 속에서 포착되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지난 과거의 시간이 현재의 시간 위로 살아 움직이면서 간섭하고 개입한다. 과거화 된 현재의 시간이나 혹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시간이 현재 시간위로 압도되어 닥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시간에 대한 인식은 과거와 미래, 현재가 혼재되어 이루어진다. 대상을 본다는 것은 그 모든 시간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물어뜯는 일이다. 사진 역시 그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안효정은 바로 그 장면을 찍고자 하는 것 같다. 작가는 일단 '필'이 꽂히는 장면을 찾는다. 우리를 찌르는 촉각적 효과를 가리키는 푼크툼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롤랑 바르트에 의하면 사진은 기호가 아니라 코드의 바깥에서 우리를 찌르고, 마음을 흔들고, 전율하게 하는 사물이다. 대상은 우연히 다가온다. 사진은 뭔가를 재현하는 그림도 아니고 뭔가를 전달하는 문서도 아니며 그저 존재했던 어떤 것의 흔적일 뿐이다. 그것이 보는 이의 마음에 '흔적'을, 상흔을 남긴다. 작가는 그것만으로는 아쉬워 그 안에 또 다른 사물을 개입했다. 돌과 실과 커튼 등이다. 특정 대상을 가리거나 은폐하는 천은 일종의 억압을 상징한다. 붉은 색/끈은 잡념이나 헝클어진 기억, 사념을 의미하고 상처를 암시한다. ● 이 사진은 실재하면서도 부재하는 풍경이다. 어떤 경계에서 출현하는 풍경, 현실과 부재 사이에서 출몰하는 풍경이다. 또한 현재의 시간 위로 또 다른 시간의 출현을 보여주는 장치다. 의식 속에 깃든 무수한 기억의 자취와 사념들의 투영이다.
 
안효정_나비_잉크젯 프린트_80×64cm_2011
안효정_화분_잉크젯 프린트_64×80cm_2011

 
안효정의 사진은 자기 생의 지난 시간이 현재의 시간 위로 유령처럼 출현하고 있는 것의 목도를 보여준다. 그것은 안타까운 삶의 어쩔 수 없는 재림이다. 이 언캐니한 풍경은 '억압된 것의 회귀'(프로이트)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삶의 한복판에서 억압된 욕망을 연상시키는 대상이나 현상을 볼 때, 인간은 섬뜩함을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안효정은 사진을 통해 그 억압된 기억을 회귀시킨다. 과거 속에 잠겨있는 멈춤의 상태, 지난 시간의 기억이 현재로 수시로 출몰하는 아픔을 딛고 밝고 생동하는 현재의 시간으로 나가고 싶어 한다. 그래서 제목이 '춘양'(春陽)이다. 경북 봉화군 춘양면은 높고 험준한 산지로 이루어진 곳이다. 예로부터 건축재, 가구재로 쓰이던 춘양목이 자라는 곳으로 유명한데 지명이 춘양인 이유는 겨울이 너무 춥고 길어서 봄의 따스한 햇살을 간절히 기다리는 바람으로 인해서라고 한다. 작가 역시 자신의 무의식에 어둡고 서늘하게 자리한 기억과 상흔을 지우고 따스한 봄볕을 쪼이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새롭게 환생하고 싶은 것이다. 춘양으로! ■ 박영택
 
안효정_눈 오는 밤 Ⅰ_잉크젯 프린트_60×60cm_2010

 
Memories Awaiting Chunyang, the Spring Sunsh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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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ent Spring


임장환展 / LIMJANGHWAN / 林長煥 / painting   2011_0921 ▶ 2011_1004 / 일요일 휴관


임장환_Silent Spring(달을 베다)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임장환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0921_수요일
기획 / 갤러리 고도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고도 GALLERY GODO 서울 종로구 수송동 12번지 Tel. +82.2.720.2223 www.gallerygodo.com

 
본인은 "아이콘을 향한 욕망" 시리즈 그리고 최근의 "Silent Spring"시리즈를 통해서 인간의 욕망에 대해 고민해 왔다. 특히 이번 "Silent Spring"시리즈를 통해 한층 두터워진 유화와 달콤하고 비비드한 색감으로 인간이 파괴하는 환경을 달콤해 보이지만 달콤하지 않은 플라스틱 사탕처럼 표현하고자 노력 하였다. ● "Silent Spring"시리즈는 해양생물학자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의 저서 침묵의 봄(Silent Spring)에 영향을 받고 제목을 인용했다. 특히 "Silent Spring(public market)"작품은 화려한 색감과 그래픽적 느낌과 달리 사막배경과 폭력적 형상으로 화려함이 인간이 무엇을 파괴하는지 눈치채지 못하게 만든다는 갈등을 표현하였다. ● 본인이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욕망의 형상화이고 그로 인해 파괴되는 자연이다.
 
임장환_서로를 위한주문_캔버스에 유채_89.4×130.3cm_2011

 
인간의 욕망은 결핍에서 온다는 가정하에 인간은 결핍을 메우려고 환경을 소비하고 편의에 의해 인공적으로 새로운 물질(DDT,원자력)을 만들고 이런 모든 것들이 인간을 과거에 전설로 만들고 있다는 컨셉으로, 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말했듯 죽은 듯 고요한 봄이 올 것이라는 이야기를 본 전시를 통해 풀어 갈 것이다. ● 인간과 환경의 관계에서 인간의 이기적인 면과 환경이 주는 위로 그리고 결핍을 채우려는 인간욕망을 본인은 그림으로 표현하고 관찰자의 입장으로 문재를 이야기하려 한다. 관람자가 본인의 그림을 보고 문재를 문재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내 욕심으로 사라져가는 작은 것들부터 바라 보았으면 한다. ■ 임장환
 
임장환_화가의 손은 날개다_캔버스에 유채_97×97cm_2011
임장환_거울을 보다_캔버스에 유채_97×130.3cm_2011

 
손을 뻗어 만지고만 싶은 촉각적 감각을 자극하는 달콤한 빛깔의 색이 유희한다. 마치 도자기의 서늘하고 매끄러운 표면위를 미끄러질 때 그런 것처럼, 달콤한 사탕을 먹음직스럽게 바라보는 것이 그러하듯이, 우리 눈은 그림을 감촉하게 된다. 하지만 그의 작품에서 우리는 형태와 색채의 유희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조화를 관조만 하기에는 불편함을 느낀다. 그 실체 없는 형상은 바라보는 이들에게 충격을 준다. 그 지점에서 작품은 어떤 주제를 가지고, 왜 그려졌으며, 어떤 이야기 혹은 생각을 우리에게 일깨우는가 하는 감상자의 의식적 질문을 상기시킨다. 순간 매혹적 색채에 대한 감각적 향유는 휘발되고 감상자는 작가의 의식세계와 대면하게 되는 것이다. 달콤한 서정에 몸을 맡기고 싶어 하는 감상자는 그림을 관조적으로 수용하지 못하고, 이제 화려한 색채 속에 위치한 불편한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
 
임장환_Silent Spring(인간상)_캔버스에 유채_90.9×72.7cm_2011
임장환_Silent Spring(public market)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10

 
현대사회에서 인간은 전통문화가 해체되고 개성상실의 현상이 뚜렷해짐에 따라, 자아상실에서 오는 고립감으로 인하여 외부세계를 등지고 내면적 공간을 형성하게 된다. 또한 개인주의적 사고가 팽배하게 되는 것에 대해 작가 임장환의 관심은 외부세계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로 기운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은 개인적인 모습이며 고독한 모습이다. 그리고 그 모습은 고통스러운 과거와 현재 때문에 괴로워하며 슬퍼하는 모습이다. 즉 작가는 현실을 철저히 앓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작품 속에서 직면하게 한다. ● 제한된 공간 속에 놓인 인간의 '형상'이 보인다. 그것은 실체가 상실된 껍데기만 있지만 우리로 하여금 실체를 더 잘 드러나 보이게 만든다. 그것은 삶의 진실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려는 일종의 사실주의적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붓놀림에 의한 마티에르와 채색에 의해 유도된 실체없는 형상은 잘 가공되었으나 고독한 현실로 우리를 안내한다. 그는 작품에서 인체의 형상을 헬멧으로 가리거나 지워버리고 오로지 동세만이 그 형상을 대변하게 한다. 왜 얼굴을 가리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얼굴이 신체에서 특별한 지위를 차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예로부터 신체에서는 얼굴이, 얼굴에서는 눈이 '영혼의 거울'이라는 특권적 지위를 누렸다. 얼굴은 의미생성과 주체화의 바탕을 이루는 것이다. 따라서 얼굴을 가리는 것은 곧 주체의 해체, 유기체의 해체, 의미작용의 해체를 의미하게 된다.
 
임장환_Silent Spring(save the peak)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11

 
다소 무거워 보이는 헬멧으로 가려진 주체의 해체. 그러나 이는 모든 주체의 해체는 아니다. 자신을 "궁극적인 것"으로 여겼던 어느 독단적 주체의 죽음일 뿐이다. 외부를 부정하는 헬멧이나 얼굴 없는 형상은 닫힌 공간에서 외부세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이다. 개인의 외부와 차단된 공간속에 있음으로서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고, 무명화(無名化) 되고, 개체화되는 현대사회 속에서 소외의식을 느끼는 자신은 자기만의 닫힌 공간에서 자기 자신을 확인하고자 한다. 이 낡은 주체의 무덤에서 이제는 무거운 헬멧은 벗어버리고 새로운 주체가 걸어 나와야만 할 것 같다. 인간화를 거부하는 자연이라는 타자에 귀를 기울이고, 이성의 폭력성을 뒤로하고, 동일화의 강박을 벗고 개별자들의 존재를 수용하며, 합리적으로 관리되는 사회의 비합리성을 비판하는 탈근대적 주체, 타자가 아니라 자신을 지배하고, 그렇다고 자기 안의 자연을 억압하지 않고, 동일성 속에서 정체성을 유지하는 주체, 섣부른 희망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절망하지도 않고, 해성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을 포착할 감수성을 지닌 현대적 의미의 새로운 주체를 향한 색의 향연과 몸부림... ■ 천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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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 밤 inside n' nightside


박은하展 / PARKYUNA / 朴垠河 / painting   2011_0921 ▶ 2011_1030 / 월요일 휴관


박은하_밤의 황제 Emperor of Night_캔버스에 유채_182×227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박은하 블로그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자하미술관 ZAHA MUSEUM 서울 종로구 부암동 362-21번지 Tel. +82.2.395.3222 www.zahamuseum.com

 
대자연에 던져진 야생상태의 인류가 최초로 느낀 감정은 '두려움(懼)'이었다 한다. 어둠이 짙어지기 시작하면 생존본능에 의해 위험을 감지하고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동굴 따위의 피난처로 숨어들게 하는 스위치. 수백만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이 스위치는 건재하다. 아니, 오히려 두뇌의 용량에 비례하여 점진적인 진화를 이루었다고 해야 할까. 도시정글이라 명명하는 새로운 약육강식의 사회를 건립하고, 물리적인 빛으로 추방한 어둠과는 다른, 시스템의 구조적인 어둠에 지배 받기 시작했다. 진화된 공포에 의한 두려움은 물질적 풍요를 미끼로 하는 여가나 유흥 따위의 수단들을 통해 번복되는 무감각을 덥석 물게 한다. '안'에서 자신의 독립을 평화롭게 즐김에 따라, '밤'에 대항하는 스스로의 영향력은 축소되고 있음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 '안'과 '밤'이라는 공간적, 시간적 특정성을 바탕으로, 오늘날의 주변상황들을 몇 가지 내러티브로 형상화하였다.
 
박은하_발언 Speech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11
박은하_문화당서점 used bookstore_캔버스에 유채_137.5×183.5cm_2011
박은하_청년 youth_캔버스에 유채_137.5×183.5cm_2011
박은하_야경 night watch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11

 
해바라기 suntrap 야경(夜警) night watch 밤의 황제 emperor of night 발언 speech 문화당서점 used book store 유리(遊離) cage 청년(靑年) youth 밤눈 night snow
 
박은하_해바라기 suntrap_캔버스에 유채_97×130cm_2011
박은하_하늘 그림자 shadow of sky_캔버스에 유채, 벽에 아크릴채색_가변크기_2011

 
두려움은, 눈과 귀를 가리고 입 다문 채 고독하게 살아지는 생물학적 생존만을 위한 스위치가 아니다. 마취에서 달아나 '안'에서 일보 내딛기 위한 두려움이다. 그리고 '밤'은 직시되어진다. ■ 박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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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훈_이윤展   2011_0919 ▶ 2011_1106


박승훈_TEXTUS 017_디지털 C 프린트_100×125cm_2009

 
초대일시 / 2011_0929_목요일_12:00pm
주최 / 카이스트 경영대학 기획 / 이현서울갤러리 www.leehyungallery.com
관람시간 / 09:00am~10:00pm
 
카이스트_리서치 앤 아트 KAIST_Research & Art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 2동 207-43번지 KAIST 테크노 경영대학원 SUPEX Hall 2층 Tel. +82.2.958.3223 www.kaistgsm.ac.kr

 
박승훈·이윤 2인전-'매체를 대하는 유연한 태도(Flexible Attitude towards Medium)' ● 현대미술의 여러 특징들을 열거할 때 새로운 재료 그리고 형식의 탐구와 함께 전통 미술형식에 대한 실험적 변형을 들 수 있다. 특히 젊은 작가들이 갖고 있는 주제 및 형식에 대한 실험 정신과 새로운 아이디어는 작품을 보는 이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전해 준다. 이번 카이스트 2011년 여섯 번째 전시작가인 박승훈, 이윤 두 작가 역시 전통적 매체인 사진과 캔버스를 기존의 방식 그대로 사용하기 보다는 그들 자신이 갖고 있는 미학적 관점을 드러내기 위해 독창적으로 변형시켜 나간다. ● 박승훈은 2008년부터 16mm 영화용 필름을 사용한 '텍스투스(textus)' 시리즈를 통해 씨줄과 날줄이 엮인 독특한 이미지의 작품을 선보인다. 직물을 뜻하는 제목처럼 작가는 가로, 세로로 엮은 영화용 필름으로 사물을 조각나게 여러 번 촬영하고, 그것을 다시 잘라 엮는 오랜 작업과정을 거친다. 분할된 하나의 대상은 다시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여러 층의 시간과 공간의 흔적이 중첩된 결과물로 탄생한다. 기본적으로 사진이란 매체는 사각형의 틀에 포착된 정지된 이미지를 담는다. 그러나 박승훈은 이 전통적 방식에 머무르지 않고, 지각된 대상에 담겨진 많은 이야기들을 엮어내어 또 하나의 단단한 조직을 만들어 내고자 한다. 기억의 편린들이 합쳐져 하나의 대상에 대한 이미지가 남아 있듯이 모자이크처럼 작은 정사각형의 이미지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하나의 풍경과 대상들은 다시금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다층적이고 입체적으로 확장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 캔버스를 고정된 하나의 평면 매체로 이해하기보다 좀 더 유연한 사고를 통해 캔버스에 색을 입히고 잘라내어 그것을 다시 꿰매는 입체적 회화를 선보이는 이윤 역시 미술형식에 대한 실험적 자세를 견지한 작가다. 이윤의 작품을 언뜻 보면 미국의 대표적 추상표현주의자인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과 같은 즉흥적이면서 리드미컬한 움직임이 느껴진다. 그러나 실제로 이윤의 작업은 단기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바느질과 같은 오랜 시간의 수공예적인 노동력을 요구한다. 물감이 어떤 강한 힘에 의해 캔버스 위로 떨어진 것 같은 역동적 이미지들을 그대로 오려서 부피감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것들을 다른 캔버스 위에 새롭게 재구성한다. 작가는 이를 통해 대중에게 어떤 철학적이거나 개념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대신 시각적 결과물 그 자체를 대면한 대중들이 그들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각자의 이야기를 찾아가기를 희망한다. 색과 형태, 그리고 그들이 서로 화합하여 만들어내는 음악적 리듬, 상상의 내러티브는 일종의 숨은 그림 찾기처럼 대중을 기다린다. ● 철학자 아서 단토는 그의 저서 '예술의 종말 이후'(1984)에서 앤디 워홀 이후 예술은 더 이상 지각적 차원의 대상이 아닌 철학적 사유의 대상으로 변화하였음을 지적하며 예술사의 종말을 고한다. 그러나 여전히 예술은 작품 그 자체로 지각되고 논의되며, 작가들은 작품이 담고 있는 철학적 사유와 함께 예술형식에 대한 실험적 여정 역시 중단하지 않고 있다.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박승훈, 이윤 두 젊은 작가가 지닌 창의성과 실험정신은 동시대 미술이 지닌 여전한 미적 가능성을 예견하게 한다. ■ 카이스트_리서치 앤 아트
 
박승훈_TEXTUS 024_디지털 C 프린트_100×125cm_2009

 
TEXTUS (직물-woven fabrics) (2008~2011) ● 텍스투스는 text의 어원이 되는 textus(직물)를 이미지화한 것이다. 직물의 씨줄과 날줄이 합쳐져 옷감이 되듯 'TEXTUS'는 대상을 얇은 영화용 필름으로 조각나게 촬영하여 해체하고 이를 다시 물리적으로 필름을 엮어 재구성한다. 텍스투스는 직접 경험하거나 매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접해 온 기억의 대상을 찾아가 촬영하는 방식을 취한다. 기억 속 영화 장면이나 신화화 된 대상들은 16mm영화용 필름 에 여러 시공간으로 엮여 서로 간섭되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작품은 기억의 조각을 찾아가는 여행일지와 같은 방식을 취하기 때문에 과거에 대한 따뜻함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여정을 함께 공유하고픈 의지를 가지고 있다. ■ 박승훈 회화가 '첨벙!' 하고 떨어졌다. Splash! ■ 이윤
 
박승훈_TEXTUS 038-1_디지털 C 프린트_125×100cm_2010

 
'강박적 '자기 치유(self-healing)'의 즐거움' "우리는 자신이 어린아이였을 때, 즉 자신이 영원한 존재라고 믿던 때를 모두 잊은 것 같다." (에드거 앨렌 포) ● "아름다움은 발작적일 뿐만 아니라 강박적이며, 그렇지 않으면 아름다울 수 없다." (할 포스터) ● 니체는 정신의 세 가지 변신에 대하여 말한다. "나는 지금 너희들에게 처음 낙타가 되고, 낙타에서 사자, 마침내 사자에서 어린아이가 되는 정신의 변신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정신이 어떻게 낙타가 되고, 사자가 되고, 어린아이가 되는가? 특히 예술가는 정신이 어떻게 어린아이가 될 것인가에 주목하게 된다. ● 니체에 따르면, 어린아이는 천진난만이요,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 놀이, 스스로 굴러가는 수레바퀴이고, 최초의 운동이자 신성한 긍정이다. 어린아이는 자기 욕망에 충실하다. 도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도덕적 존재이기도 하다. 사자의 적수였던 용은 어린아이에게는 적수가 되지 못한다. 사자에게 힘든 전투였던 것이 아이에게는 재미있는 놀이가 된다. 물론 어린아이는 무기는 웃음일 것이다. 이것은 모든 사람을 무장해제 시키기 때문이다. 아이는 자신의 욕망에 따라 굴러가는 수레바퀴인데, 이 상태에 이르러서야 정신은 자신의 의지를 의욕하며, 세계를 상실한 자는 자신의 세계를 되찾는다. 이처럼 창조의 놀이에는 아이와 같은 신성한 긍정이 필요한 것이다. ● 여기 어린아이의 세계에 심취해 있는 젊은 작가 이윤의 작업이 있다. 이윤은 진정 니체가 말한 어린아이처럼 자기 욕망에 충실한 것일까? 아니면 퇴행으로 자기의 강박적 욕구를 재생산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어떤 방향으로 선회하고 진화할 것인가?
 
이윤_Splash!_Blu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혼합재료_162.5×261×11cm_2011

 
즉흥의 내적 차원: 퇴행과 승화 ● 이윤 작업의 기본 모티프는 드로잉, 추상적인 형상, 색채, 재단, 봉합, 배열과 조합 등이다. 먼저 작업은 두 가지 측면의 드로잉으로부터 시작한다. 첫째, 아무 생각 없이 즉흥적으로 마음 혹은 손이 가는대로, 점, 선, 면, 색채를 그려내는 방식이다. 두 번째, 어떠한 주제를 갖고 그것이 연상시키는 형태들을 즉흥적으로 그려내는 방식이다. 이 두 가지 방식 모두 '즉흥성'을 근간으로 한다. 하나는 어떤 지시도 없는 무의식의 자동기술적 드로잉이고, 다른 하나는 연상에 의한 자동기술적 드로잉이다. ● 즉흥성의 미학적 의미는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즉흥작업은 예술과 삶 사이의 인위적 장면을 무너뜨린다. 이 때 작가는 자유로움을 만끽하게 되는데, 그 자유는 유쾌하면서도 구체적이다. 더군다나 즉흥적으로 스케치를 하고 드로잉을 하는 시간만큼 창조에 몰입되는 순간은 없다. 어쩌면 모든 예술은 즉흥적이다. 즉흥은 창조의 열쇠인 것이다. 그렇다면 즉흥성의 심리학적, 정신분석적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어린아이로의 퇴행이 아닐까! 니체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예술가는 자신 안의 어린아이와 논다. 즉흥작업은 우리 내면의 어린아이의 마음, 원시의 심성을 다시 회복하게 하는 것이다. 이 회복을 가리켜 심리분석가들은 '에고가 작용하여 이루어지는 퇴행'이라고 부른다. 위대한 예술의 창조는 잘 훈련 받은 성인 예술가가 어린아이의 순수한 놀이의식으로 돌아갈 때 얻어진다. 이러한 놀이 의식이 안겨주는 독특한 느낌은 본능적으로 감지할 수 있다. ● 다음 단계는 이런 즉흥성과 자발성에 근간한 드로잉을 가지고 입체로 제작한다. 즉흥적인 드로잉이 지난한 과정의 자르기, 칠하기, 꿰매기를 거쳐 하나의 입체적 오브제로 탄생하게 되면, 다시 이것이 하나의 유니트가 되어 더 큰 캔버스 위에 배열과 조합을 거쳐 구성된다. 캔버스 위의 오브제들은 이차원의 드로잉이 삼차원의 입체로 바뀌는 까닭에 예기치 못했던 조형상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 불투명하고 예측할 수 없는 캔버스 위에서의 작업은 더 치밀한 계산과 구성이 요구된다. 무질서하게 보이나 질서가 있고, 비유기적으로 보이나 나름의 유기적 메커니즘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다. ● 이윤이 이러한 작업을 선호하고 천착하는 이유 중 하나는 미술사의 대가들의 영향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런 만남은 자신의 무의식의 취향과 대면하는 일이다. 언젠가 작가를 크게 감동시켰던 앙리 마티스, 프랭크 스텔라,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은 자신의 작업에 동기부여와 자극을 주었던 것이다. 특별히 작가는 후기 마티스와 후기 스텔라의 영향을 자신의 작품에 인용한다. 예컨대 천진난만하고 명쾌한 마티스의 '종이 자르기' 작업과,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보여준 스텔라의 다이나믹한 '모비딕 연작' 등이 그것이다. ● 무엇보다 이윤이 이런 입체작업을 선호하고 천착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은 예술의 공감각적인 측면을 노정하여 관자로 하여금 다른 상상력과 영감의 세계를 환기하기 위한 것이다. 말하자면 작가는 자신이 작품이 단순히 시각적이기만을 바라지 않는다. 그도 그럴것이 이윤의 작업은 일단 시선을 평면에 가두지 않는다. 우리의 시선은 들쑥날쑥 깊이와 넓이를 따라 유동하게 되며, 마치 눈으로 쓰다듬는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즉 메를로-퐁티 식의 '촉각하는 시선'이라는 눈의 메커니즘을 마음껏 활용하게 되는 것이다. 더불어 작가는 자신의 그림이 음악적이길 원한다. 그러니까 자신의 작품이 즉흥환상곡(혹은 교향곡)처럼 리듬과 운율을 느끼게 하는 장이기를 원하는 것이다. 눈으로 듣는 노래라고나 할까! 어디 그뿐이겠는가? 우리가 이윤의 작품에서 소리뿐만 아니라 향기까지 맛볼 수도 있게 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그다지 머지않은 일은 아닐까!
 
이윤_Splash!_Yellow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혼합재료_130.3×162.2×11cm_2011

 
봉합 그리고 반복강박 ● 예술은 강박관념을 현실화하는 것이다. 통상, 강박증은 존재하지 않는 실체에 대한 불안을 증폭시키는 것으로 본다. 역설적으로 무엇인가에 대한 불안이라기보다는 무엇인가에 대한 일종의 거부 혹은 반란일 수도 있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 반란은 궁극적으로 강박증자 자신을 향하여 의무-무엇인가를 지속적으로 해내지 않으면 안되는-라는 강제노역에 복무하게 한다. 정신분석학에서 강박증을 '의무의 감옥'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 이윤의 작업의 가장 큰 특징은 바느질 즉 봉합이다. 루이즈 부르주아는 무용했던 물건을 매우 유용한 것으로 변모시키고, 파괴된 것을 다시 이어 새로이 만들어주는 '바늘의 관용'을 매우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녀에게 바느질은 곧 치유의 행위를 뜻하고, 천 조각을 이어 붙여 만든 인물상들은 화해와 회복을 상징했던 것이다. 이윤 역시 부르주아처럼 카르마를 벗고 해탈을 꿈꾸는 것일까? 이윤은 왜 강박적으로 바느질에 천착하는가? 바느질이 주는 모종의 카타르시스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봉합의 심리적? 미학적 의미를 정교하게 들여다보는 일만이 그의 작업의 근간을 이해하는 일이 될 것이다. ● 먼저 바느질의 메커니즘을 보면, 그것은 잇기 위해 뚫는다는 이율배반적이며 모순적인 상황을 반복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상처를 내면서 상처를 감싸는 것이다. 심리학, 미학적 측면에서 본다면, 상처의 치유이고, 인내의 시간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디스틱한 행위가 스스로를 향해 있다는 측면에서 오토-마조히즘(auto-masochism)적이기도 하다. ● 봉합은 반복적으로 진행된다. 동일한 것의 반복을 강박이라고 부른다. 이런 강박적 행동은 어떻게 하여 생겨나는가? 다소 조심스러운 표현이지만, 모든 강박적 행동에는 일정 부분의 트라우마의 귀환과 관련되어 있다.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기억하고 싶지 않은 모든 기억이 트라우마라고 할 수 있다. 트라우마의 메커니즘에 따르면, 사후에 트라우마가 된 기억만이 억압된다. 그래서 트라우마는 억압된 것과 동일시되는 것이다. 이런 트라우마는 언제나 이미 일어난 일이지만, 그것은 반복될 때마다 불쾌하거나 충격으로 다가온다. 억압된 것으로써의 트라우마는 항상 강박적으로 반복하게 되어있다. 반복은 트라우마의 경험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을 억압하고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따라서 유년기의 상처들은 억압되어 있기 때문에 좀처럼 기억되지 못한 채 단지 환상이나 비합리적인 행동으로 반복되곤 한다. ● 주지하듯 바느질은 반복강박인데, 이때의 반복은 늘 동일한 것의 반복이다. 그러니 강박적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실, 반복되는 것은 내용이 아니라 반복 그 자체이다. 이윤이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물보다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런 반복강박을 '강박적인 반복충동(compulsion to repetitio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때의 충동은 일반적인 충동과는 달리, 좀 더 긍정적인 심리적 에너지로 작용하게 된다는 점에서 미학적 의미를 지닌다. 이렇게 이윤의 작업에서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봉합은 트라우마의 회귀를 대면하는 동시에 그것을 치유하는 일이다. 작가는 자신도 모르게 잠재된 고통스런 기억을 끄집어내 형상화함으로써, 마음의 평정을 얻고 삶의 통제력도 되찾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 또한 봉합은 보편적으로 몰입과 집중이라는 메커니즘을 반복하는 것이다. 어떤 대상에 빠져드는 몰입은 퇴행의 시간이다. 몰입은 집중하는 주체와 대상이 뒤섞이는 상태다. 몰입은 에너지를 응집하는 동시에 방출하는 것이며, 긴장인 동시에 이완인 것이다. 더불어 몰입은 자아를 완전하게 방기할 수 없다는 면에서 무의식적이기도 하고 의식적이기도 하다. 어쩌면 영원한 긴장 상태인 동시에 긴장 해소의 순간의 맞물림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몰입이 개입되는 봉합이야말로 놀이인 동시에 노동이 되는 것이다.
 
이윤_Drawing Show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00×800×15cm_2011

 
의식(ritual): 놀이와 노동의 경계? ● 강박적으로 되풀이 되는 반복적인 작업은 놀이와 노동 사이를 오간다. 노동과 놀이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 바로 상상력의 차이다. 상상할 때 정신은 노동을 하지 않고 놀이를 하게 된다. 상상력이 개입된 놀이 안에서 모든 규율과 정의는 길을 잃고, 도덕은 무의미하다. 따라서 아무리 힘든 노동이라도 즐기는 마음으로 하면 놀이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놀이에는 의식(ritual)의 진지함도 포함되어 있다. ● 작가에게 작업과정은 어느새 혼탁한 마음, 혼란스러운 상태를 잠재우는 의식과 같은 것이 되었다. 바느질뿐 만 아니라, 작가의 모든 작업의 과정은 자기를 비우고, 자기를 포기하게 하며, 자신의 불완전함을 잊게 해주는 의식이 된 것이다. 이 때 의식은 감각과 사고를 하나의 행동으로 집약시킨다. 이때만이 의식이 명상이 되며, 이 명상의 상태는 예술로 승화된다. 예술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바로 신성한 창조성의 순간, 즉 즐거움, 자기발견, 내적인지라는 능력이 부여되는 순간인 것이다. 이로써 사람은 사라지고 예술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 사실, 창조성은 발견된 결과보다 탐색과정에서 더 많이 존재한다. 이윤 역시 열정적인 반복, 연습에서 쾌락을 얻는다. 물론 이런 반복적 행위에도 나름의 목적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핵심은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이다. 놀이는 그 자체로 만족감을 주는 것이지 다른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조건이나 수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윤은 노동보다는 놀이의 주체가 되어 현실과는 다른 공간으로 지속적으로 이동하며, 그 공간의 신성한 지배자인 어린아이가 되었던 것이다. ● 어쩌면 작업이 놀이가 되고, 놀이가 곧 의식이 되는 경지라면, 이윤이라는 작가는 자신의 작품의 조력자일 뿐이다. 어떤 진정한 작품들은 자기가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되어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마 이윤 역시 그런 경지를 나름대로 즐기고 있었으니까, 일정부분 자신의 작품의 생명과 순리를 돕는 자가 되었을 것이다. 이로써 이윤은 자신의 작업 속에서 영적 공감의 시간, 즉 마법 같은 의식의 세계를 경험하게 되며, 자연스럽게 그곳의 여사제가 되었던 것은 아닐까! ● 예술이 드러나는 방식, 좀 더 낯설고 낯설기를! 예술이 드러나는 방식은 기본적으로 진리가 드러나는 방식과 일치한다. 적어도 나는 예술은 마치 진리가 드러나듯이 '드러내는 동시에 감추는 방식'으로 드러난다고 믿고 싶다. 바로 진리의 그리스어인 '알레테이아(aletheia)'의 원래 뜻이 '탈은폐' 혹은 '비은폐'라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예술이 이런 방식으로 드러날 때, 니체가 말한 '천개의 길, 천개의 눈'이라는 해석의 경지가 열리는 것이다. 예컨대 작품이 그 자체로 생명력이 있어, 볼 때 마다 새로운 작품으로 태어나는 경지 말이다. 물론 그런 상태는 모든 예술가들이 도달하고 싶어 하는 신의 경지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윤의 작업에 나타난 노동의 그림자를 보면서 대견스러움과 안타까움이라는 모순된 경험을 하게 된다. 노동집약적이고 성실함이 기본이 되는 작품을 보고 누가 감탄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러한 작품이 주는 가장 큰 결함은 작업이 주는 메시지와 철학이 간과되고, 그저 형식만이 노출되어 단순한 노작(勞作)으로만 치부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물론 수잔 손탁의 말처럼, 예술에서 의미를 찾지 말고, 예술을 그 자체로 경험해야 한다는 점은 절대적으로 수긍이 간다. 그러나 수잔 손탁의 아포리즘을 조형예술의 입장에서 해석하면, 예술에서 의미를 찾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예술의 형식 그 자체가 그대로 예술가의 철학과 메시지를 담보하고 있어야 한다는 총체적 측면을 강조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 더불어 이윤에게는 현대미술의 기본적인 '낯설게 만들기'라는 기법의 구사에도 좀 더 진화된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 그러니까 작가는 좀 더 내면의 억압된 것들을 마음대로 끄집어내고, 상처내고, 요리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럴 때만 작품은 좀 더 생생하게 날 것의 감각으로 관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그들과 공감을 형성할 수 있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과의 소통이 가장 절실하다. 자기가 자기와 맺는 관계, 자기에의 배려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이런 배려의 메커니즘 속에는 자신도 모르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의 발견이 행운처럼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 사실, 예술은 자신의 결여를 미학적으로 봉합하는 일이다. 이제 이윤은 낯익은 익숙한 것들을 버리고, 낯선 것들과 대면해 보는 시간, 자신의 감정을 정교하게 발산할 수 있는 좀 더 성숙한 시간을 가지게 될 것이다. 더불어 감각과 사유가 따로 놀지 않고, 경계에서 춤을 추듯 작품이 되어가는 단계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과 실험이 개진될 것으로 보인다. 이윤은 앞서 말한 예술이 드러나는 방식을 무의식적으로 감지하고 있는 진지하고 영리한 작가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의 진지한 열망은 이미 진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 유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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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ews after the News


댄 퍼잡스키展 / DAN PERJOVSCHI / drawing   2011_0929 ▶ 2011_1204 / 월요일 휴관


댄 퍼잡스키_무제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댄 퍼잡스키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0929_목요일_06:00pm
주최 / 토탈미술관_모그 인터렉티브 주관 / 토탈미술관_아이두 컴퍼니 전시자문 / 한스 D.크리스트(뷔어템베르기셔 큔스트페어라인 슈트트가르트 공동 디렉터)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료 / 성인_9,000원 / 청소년_7,000원
관람시간 / 화~일요일_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토탈미술관 TOTAL MUSEUM 서울 종로구 평창동 32길 8 Tel. +82.2.379.3994 www.totalmuseum.org

 
1999 년 제48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화제는 단연 루마니아 파빌리온의 댄 퍼잡스키였다. 전시장 벽면이 아닌 전시장 바닥, 일련의 작은 타일 위를 댄 퍼잡스키는 그만의 독특한 드로잉으로 가득 채웠다. 그리고 곧 세계가 그를 주목하게 되었다.
 
댄 퍼잡스키_art_artist_가변크기_2009

 
댄 퍼잡스키는 루마니아 출신이다. 10살 무렵, 그의 천재적인 재능을 알아본 루마니아 정부는 그를 발탁하여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술을 훈련시켰다. 그러나 댄 퍼잡스키는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그만의 새로운 예술 세계를 열어갔다. 아이들의 그림을 닮은 듯도 보이고, 길거리에서 흔히 보는 낙서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댄 퍼잡스키는 단순한 드로잉을 통해서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은 세상의 모습들을 들춰낸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드로잉은 사회비판적인 드로잉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그의 드로잉에 주목하는 이유는 단순히 사회비판적인 요소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드로잉에는 촌철살인같은 예리한 직관력이 포착하는 세상의 이면, 그리고 잔잔한 그림자를 곁들인 유머가 늘 함께하기 때문일 것이다.
 
댄 퍼잡스키_citizen-consumer_가변크기

 
자신의 드로잉은 일기라고 말하는 작가. 어디를 가던지 누구를 만나던지 사람과 세상을 만나는 순간마다 드로잉 북을 가지고 다니며 그림을 그리는 작가. 하지만 정작 전시장에서 관객들에게 선보이는 그림은 그리 많지 않다고 말하는 작가 댄 퍼잡스키에게 드로잉은 일종의 일기이고, 기록이다. 물론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기록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혹은 보지 못했던 것을 들춰내는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과 의견이 반영되어 있는 드로잉이다. 게다가 유머까지 덧붙여진 그의 드로잉은 여느 예술작품보다 쉽고 편안하게 다가서게 되지만, 그 여운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없다.
 
댄 퍼잡스키_city citizen_가변크기_2009

 
토탈미술관에서 개최되는 댄 퍼잡스키의 전시 『The News after the News』 는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이다. 1999 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주목 받고 난 후 세계적인 명성을 떨쳤으며 2006 년 테이트 모던, 2007 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의 전시 이후 손꼽히는 몇 안 되는 대규모 개인전이기도 하다. ● "나는 나의 그림이 영원히 남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작업은 공간에서 즉흥적으로 구현되는 면이 적지 않지요. 그것은 마치 재즈 연주와도 닮아 있습니다." (댄 퍼잡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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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bel

  • 작성시각: 2011.10.02 21:0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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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증(眩氣症)


주재환展 / JUJAEHWAN / 周在煥 / painting   2011_0930 ▶ 2011_1026


주재환_현기증#01_피그먼트 프린트_52×100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90921h | 주재환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0930_금요일_06:00pm

아티스트 토크 / 2011_1007_금요일_07: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트렁크갤러리 TRUNK GALLERY 서울 종로구 소격동 128-3번지 Tel. +82.2.3210.1233 www.trunkgallery.com


주재환 - "현기증 眩氣症"전 ● 2011년 트렁크갤러리 10월 전시는 9월 30일부터 시작, 10월26일까지 주재환의 "현기증/眩氣症/Dizziness"展으로 기획되어 있다. 주재환은 그간 다양한 미디어들을 넘나들었다. 자신주변에 널려있는 시각적 대상물로 이미지들을 재구성해 내는 그의 작업은 시대상 반영이 기본이었다. 그는 이미지와 결합해 의미가 증대될 수 있는 주재환 특유의 작업을 지속해 오고있다. 현실을 풍자하거나, 어떤 이데올로기를 비틀거나, 내면에 우글거리던 무엇인가를 토해내듯, 설치, 꼴라쥬, 종이오리기, 어눌하게 그리기 등으로 대중들의 심정을 건드리거나 이목을 끌어 모았다. 그 유머러스함은 결코 무겁지 않고 권위적이지도 않아 친근함으로 닦아온다.
주재환_현기증#02_피그먼트 프린트_52×100cm_2011
주재환_현기증#03_피그먼트 프린트_52×100cm_2011

모노크롬회화가 중심이던 80년대에 도전하듯 잡지인쇄물 등에서 채집한 이미지들이나 오브제들을 차용, 얽이설기 작업해 내던 아날로그적 주재환의 작업형식은 표현과 소통은 효과적이었으나 보존성문제는 많은 작품이 유실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트렁크갤러리는 이 작업형식이 갖는 문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사진디지털미디어를 권유했다. 1년여, 컴퓨터와 놀이하기, 사유하기를 지나 사이버그공간에 넘나들면서 이미지 채집을 즐기며, 재해석, 재조합, 재구성에 몰입, 작품이 제작되었다. ● 주재환은 우리사회가 아직도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흑백논리, 스펙터클한 물질문화의 폭주 등이 팽배해 있어, "현기증" 상태라고 말한다. ● 여러분들의 관심을 모을 주재환에 대한 글을 소개하려 한다. 8? 90년대 한국미술계 평론가로 대변되는 성완경의 글이다. '미술문화' 출간, '우리시대 예술가 시리즈 01', "이 유쾌한 씨를 보라"의 158p 를 발취 한글이다.
주재환_현기증#23_피그먼트 프린트_22×33cm_2011
주재환_현기증#28_피그먼트 프린트_30×44cm_2011

... 1979년 "현실과 발언" 그룹결성과 그 이듬해 창립 전 출품은 미술계 바깥에 머물던 그가 반 모더니즘과 현실풍자 적 시각의 새로운 미술운동에의 가담을 통하여 한국의 현대미술의 문제, 그리고 자기 자신에 있어서의 미술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사고하기 저시작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제까지 한국미술계에 고질이던 학연에 따른 막연한 미술그룹과 달리, 한국 현대미술의 상황과 자신의 예술적 지향문제에 대한 비교적 뚜렷한 의식의 공유점을 갖고 출발한 이 그룹의 창립전을 전후한 시기의 각종 토론모임과 예비 작품 발표회, 술자리, 화실방문 등에서, 주재환의 소위 '먹물' 먹은 사람들과는 다른 서민적 반골기질과 달관, 완전히 밑바닥과 상통하는 체질화된 '맨발'정신, 험난한 세상을 건너온 4?19세대 '출판지식인' 특유의 박람강기와 그 '격조'가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기존미술계의 그 어떤 인간유형이나 모럴과도 구별되는 이 인물의 '격조'와 역할로 인해 주재환은 그 이후 한국의 반 모더니즘적 미술조류 내지 민중미술과 떼어놓을 수 없는 이름이 되었다. ● ...1980년대 초 그의 작업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풍자적 발상과 표현형식의 기호학적 명료성이다... ■ 박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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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코뮨 TV Commune


2011_0929 ▶ 2012_0124 / 둘째,넷째주 월요일 휴관



심포지엄일시 / 2011_1007_금요일~1008_토요일

참여작가 마틴 아놀드 Martin Arnold_다라 번바움 Dara Birnbaum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David Cronenberg_앤트 팜 Ant Farm 하태범 Tae Bum Ha_임흥순 Heungsoon Im 정연두 Yeondoo Jung_가브리엘 레스터 Gabriel Lester 크리스텔 뢰르 Christelle Lheureux_백남준 Nam June Paik 박현기 Hyun Ki Park_박준범 June Bum Park Souvenirs From Earth_TVTV_웡 호이 청 Wong Hoy Cheong

주최 / 백남준아트센터 후원 / SBS 협찬 / 프랑스대사관_주한프랑스문화원

관람료 일반_4,000원 / 학생(초/중/고)_2,000원 학생 단체 (20인 이상)_1,000원 *1인 1일 입장료, 경기도민 50% 할인, 중복할인 불가

관람시간 / 10:00am~08:00pm / 주말_10:00am~10:00pm 둘째,넷째주 월요일 휴관

백남준아트센터 NJP Art Center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갈동 85번지 Tel. +82.31.201.8571 www.njpartcenter.kr


백남준은 1970년에 쓴 '글로벌 그루브와 비디오 공동시장'이라는 글에서 'TV로 하나가 된 지구촌 건설'이라는 희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글에서 백남준은 국가주의가 강조되는 공영방송이 서로를 이해하는데 벽과 편견을 만들고 그로 인해 다른 문화에 대한 무지가 세계평화를 위협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그리고 이러한 TV가 야기한 커뮤니케이션의 장벽은 오히려 TV가 지닌 전파를 전 세계로 확장했을 때 새로운 가능성을 가지게 될 것이라 예견한다. '춤과 음악'으로 구성된 타국의 프로그램이 공영 방송 전파를 타고 나라와 나라사이의 벽을 넘어 소통하게 되는 '비디오 공동시장'의 미래를 꿈꾸었던 백남준. 그는 특히 서구 사회의 아시아에 대한 무지와 그로 인해 야기된 소통의 단절과 전쟁이 텔레비전 방송프로그램의 교류를 통해 가능해 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그의 이상은 보스턴의 공영방송 WGBH의 전파를 타고 방송되는 자신의 비디오 아트 작품 안에 일본 공영 방송의 음악 프로그램을 통째로 삽입한 4시간짜리 「비디오 코뮨」(1970)이라는 작업으로 실현되었다. 미국의 시청자가 자신의 거실에서 아시아의 공영 프로그램을 보게 되는 경험. 위성 프로젝트가 불가능하던 시대에 비디오 작가만이 해낼 수 있는 도전적인 실험이라 아니할 수 없다.
백남준 외_비디오 변주곡_컬러, 사운드_00:57:53_1972 (WGBH 제작,백남준아트센터 비디오 아카이브 소장)
다라 번바움_기술변신 원더우먼_컬러, 사운드_00:05:50_1978~79
마틴 아놀드_그냥 해!_흑백, 사운드_00:12:00_1993
하태범_2011 노르웨이 폭탄테러_디지털 프린트_120×200cm_2011
정연두_공중 정원_컬러, 사운드_00:15:00_2009
가브리엘 레스터_거주 장면_설치_2000
임흥순_사적인 박물관 Ⅱ_커뮤니티 프로그램_2011
크리스텔 뢰르_빙고 쇼_컬러, 사운드_00:09:00_2003
박준범_전시와 정권, TV의 역사_비디오 설치_2009

기획전 『TV 코뮨』은 이렇게 TV를 통한 세계의 소통을 꿈꿨던 백남준의 야심찬 실험 「비디오 코뮨」의 실험정신과 미디어 환경에 대한 이해를 기억하고, 현재적 의미를 발견하고자 한다. 그를 위해 전시는 백남준과 미국의 공영방송국 WGBH, W-Net이 함께 벌였던 실험적인 프로젝트들에 대한 미술사적 고찰과 더불어 현대작가들의 텔레비전에 대한 예술적 개입과 발언을 포함한다. 전시는 백남준과 그의 동시대 작가인 앤트 팜, TVTV, 다라 번바움, 박현기,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역사적인 작품들과 가브리엘 레스터, 웡 호이 청, 마틴 아놀드, 정연두, 임흥순, 박준범, 크리스텔레 뢰르, 하태범 등 오늘을 살아가는 작가들의 생생한 시선을 함께 엮어 나간다. 또한 예술가들이 채널을 만들어 송출하는 새로운 방송의 플랫폼을 제시하는 프랑스의 비디오 아트 전문 케이블/웹채널 'Souvenirs from Earth'와 소속 작가들의 작품이 함께 전시된다. ● 『TV 코뮨』전은 이 작품들을 통해 텔레비전과 그 수용자 간의 상호작용(interaction), TV 컨텐츠와 시청자의 만남과 결합(interface), 그리고 미디어 환경에 대한 예술가의 개입(intervention)을 탐구하고자 한다. 그것은 텔레비전이라는 어마어마한 복제 미디어로 인해 무의식적으로 공간적, 정치적 공동체(코뮨)를 형성하는 현대 사회에 대한 예술적 보고서가 될 것이다. 또한 2012년 아날로그 텔레비전 송출 종료를 앞두고 텔레비전 환경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TV 매체가 우리 삶에 미친 영향을 되돌아보고,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백남준의 선물』 올해로 4회째를 맞는『백남준의 선물』국제심포지엄 시리즈는 언제나 학제적 토론의 장을 지향한다. 이틀에 걸쳐 진행될 이번『백남준의 선물』심포지엄에서도 미술사학, 미학, 방송학, 사회학 등 여러 분야의 저명한 학자들을 발제자와 토론자로 모셨다. 또한 본 심포지엄은 특별전 「TV 코뮨」과 함께 기획되어 전시와 이론의 유기적 결합을 시도하였다. 전시에 선보이는 백남준의 작품 「매체는 매체다」, 「비디오 변주곡」, 「비디오 코뮨」 등의 영상 일부를 심포지엄에서도 발제자의 강연과 함께 감상하고 토론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 텔레비전 기술을 통해 "보잘 것 없는 우리 삶에서 다른 사람과의 만남으로 얻을 수 있는 신비로움을 증폭"시키고자 했던 백남준을 이야기하며, '세상을 달리 보기', '서로를 접속하기', 그리고 '너머를 사유하기'에 대한 다채로운 논의의 자리가 될 이번 심포지엄에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 ■ 백남준아트센터
백남준의 선물

『백남준의 선물 4』텔레비전, 달리-, 서로-, 너머- 일시 / 2011_1007_금요일 ~ 2011_1008_토요일 장소 / SBS홀 (SBS 목동 사옥 13층) 지하철 5호선 오목교역 1번 또는 2번 출구,          일반버스(오목교역 하차) 6636, 6622, 6618 발제자 / 데이빗 조슬릿_디터 다니엘스_주형일_김상호_이현진_이본느 슈필만

□ 첫째 날_2011_1007_금요일 01:00pm   개회사: 박만우 (백남준아트센터 관장) 01:10pm   인사말: 권영빈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 01:20pm   세션소개: 김성은 (백남준아트센터 선임연구원) 01:30pm   이본느 슈필만 (웨스트스코틀랜드대학교 뉴미디어학 전공 교수)               " 미디어화, 재미디어화: 백남준과 다라 번바움의 전자적 실험" 02:20pm   주형일 (영남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               "텔레비전과 비디오: 해프닝에서 자기성찰로" 03:10pm   휴식 03:30pm   김상호 (대구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달 – 가장 오래된 TV, 지구촌 – TV로 이어진 인류: 백남준과 마셜 매클루언" 04:20pm   종합토론: 박만우 (백남준아트센터 관장), 유봉근 (순천향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연구교수)

□ 둘째 날_2011_1008_토요일 01:10pm   세션소개: 김성은 (백남준아트센터 선임연구원) 01:30pm   기조발제: 데이빗 조슬릿 (예일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               "백남준, 그리고 비디오의 세 시기" 02:20pm   이현진 (연세대학교 미디어아트 전공 교수)               "현대 영상 예술 속의 다층적 폐쇄회로들: 카메라–스크린 인터페이스를 중심으로" 03:10pm   휴식 03:30pm   디터 다니엘스 (라이프치히 HGB 미술사학/미디어이론과 교수)               "텔레비전을 만지다: 마셜 매클루언, 존 케이지, 백남준의 참여 매체" 04:20pm   종합토론: 심광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이론과 교수), 이원곤 (단국대학교 서양화과 교수)

Vol.20110912c | TV코뮨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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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소장작품 2010


서울시립미술관 新소장작품展 New Acquisitions 2010 : Seoul Museum of Art   2011_0929 ▶ 2011_1023 / 월요일,10월 4일 휴관


남관_잃어버린 흔적_캔버스에 유채_130.3×193.9cm_1989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유영국_김원_남관_하동철_김종학 장두건_이승조_김녕만_장재준 임영균_권순관_임송희_이기영 임태규_정종미_김정희_심부섭 최수앙_박현기_이이남 등

관람시간 10:00am~08:00pm / 주말,공휴일_10:00am~07:00pm 월요일,10월 4일 휴관

서울시립미술관 SEOUL MUSEUM OF ART 서울 중구 덕수궁길 61(서소문동 37번지) Tel. +82.2.2124.8800 www.seoulmoa.org


서울시립미술관(관장:유희영)은 9월 29일부터 10월 23일까지 23일간 『신소장작품 2010』展 을 개최한다. 『신소장작품』展은 미술관이 전년도에 수집한 신규 소장작품들을 공개하여 한해 간의 수확을 시민과 공유하고 이를 통해 현대미술의 경향을 소개하고자 하는 전시로, 이번 전시는 회화, 조각, 사진, 판화, 미디어아트 등 약 60여점의 작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하동철_Light 04-09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00×200cm_2004
유영국_WORK_캔버스에 유채_135×135cm_1979
이승조_핵 '77_캔버스에 유채_173.7×130.9cm_1968

서울시립미술관은 2010년 3차에 걸친 수집 활동을 통해 총278점의 작품을 수집하였다. 부문별로는 한국화 28점, 양화 109점, 판화 9점, 조각 28점, 공예 10점, 서예 57점, 사진 33점, 미디어아트 2점, 그리고 설치 2점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폭넓게 수집함으로써, 2010년까지 3,085점에 달하는 작품을 수집하였다.
이이남_고흐 자화상과 개미이야기_LED TV_00:06:23_2010
치메도르츠 샤그다르자우_Bless My Eternal Blue Sky_캔버스에 유채_80×280cm_2009

『신소장작품 2010』展에는 유영국, 남관, 김원 등 원로 작가의 작품들을 비롯하여, 김녕만, 장재준, 임영균, 권순관 등의 사진 작품, 김종학, 장두건, 고영훈, 이승조 등의 회화 작품, 임송희, 이기영, 임태규, 정종미 등의 한국화 작품, 김정희, 심부섭 등의 조각작품, 박현기, 이이남의 미디어아트 작품 등을 비롯한 각 부문의 작품들이 전시될 예정으로, 서울시립미술관의 수집방향과 함께 현대 미술의 경향 혹은 흐름을 조망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김종학_잡초_나무패널에 혼합재료_190×260cm_2002
정혜진_Bau 1_2_폴리우레탄 합성수지, 우레탄 채색_86×45×115cm×2_2009

2011년 9월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은 총 3,131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매년 2~3차에 걸친 활발한 수집활동을 계속할 예정이다. 한국 현대미술의 자취뿐만 아니라 역동적인 오늘날의 미술 경향을 대표할 수 있는 다양한 작품들을 꾸준히 수집함으로써 서울, 나아가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나갈 것이다. 이와 발 맞춰, 수집 활동의 결과를 끊임없이 사회에 환원·공유함으로써, 시민과의 소통에 힘쓰는 열린 미술관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 서울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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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지정(夢幻之庭)


김상희展 / KIMSANGHEE / 金相希 / painting   2011_1003 ▶ 2011_1106


김상희_몽유도(夢遊?)_캔버스에 디지털 프린트, 아크릴_162.2×97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50601d | 김상희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갤러리 진선 작가지원 프로젝트 진선북카페 아트 프로젝트 90

후원 / 갤러리 진선

관람시간 / 11:00am~11:00pm

진선북카페 JINSUN BOOK CAFE 서울 종로구 팔판동 161번지 2층 Tel. +82.2.723.5977,3340 www.jinsunart.com


꽃과 새, / 머물러 살아가는 존재와 날아야 살아있음을 깨닫는 피조물. // 꽃은 새를 움틔워 대신 날아오르라 하고 / 새는 그 꽃에 스스로를 옭아매다. // 꿈꾸는 자유, 환상에의 의지, 현실로부터의 비상... / 그러나 결국 매어 있는 자아를 깨닫지 못하다. // 살아간다는 것, / 바라만 보다 마음을 접어 버리기도 하고 / 이루어 내려다 넘어지기도 하는 것.. // 멈출 수도 돌아갈 수도 없는... / 밑이 보이지 않는 선로를 기적소리도 없이.. // 잘못 발을 들여 굴곡 안에 빠져 버리면 /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비틀어져 버리고 / 자신을 타인의 눈으로 바라보는 영혼의 일탈.
김상희_만개(滿開)_캔버스에 디지털 프린트, 아크릴_72.7×91cm_2011
김상희_화조도(花鳥圖)_캔버스에 디지털 프린트, 아크릴_각 105×55cm_2011
김상희_나르키소스(Narcissos)_캔버스에 디지털 프린트, 아크릴_100×65cm_2011
김상희_나르키소스(Narcissos)_캔버스에 디지털 프린트, 아크릴_100×65cm_2011

꿈꾸는 세상은 늘 아름다우나 / 그 화려함도 다채로움도 나의 것이 되기엔 늘 한 발이 모자라는, // 환상 속에서 비상을 꿈꾸며 마치 날아오르는 듯 / 돌아다보면 결국 구속의 끈에 묶여 허덕거리는, // 주변은 늘 피어 있는 환희의 정원 / 마치 나의 것인 양 퍼덕여 걸어가지만 / 눈 뜨면 어느새 잡을 수 없는 몽환의 정원 // 꿈속에 허상 속에 날아오르려 / 펴지지 않는 날개 짓으로 / 차오르는 숨을 억누르며 바닥을 차오르다 // 여전히 꿈을 마음에 담아 / 아름다운 상상의 날개 짓을 해본다. // 꽃 속에 마련된 욕망을 보며 이제 또 봄으로 간다. ■ 김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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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rculation


류예린展 / RUYERIN / 柳叡隣 / painting   2011_1004 ▶ 2011_1010


류예린_근원_장지에 채색_140×90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류예린 블로그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1004_화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팔레 드 서울 gallery palais de seoul 서울 종로구 통의동 6번지 Tel. +82.2.730.5162 www.palaisdeseoul.net


마리오네트, 그 두 번째 이야기 _ Circulation ● 신화 속의 시지프스(Sisyphus)는 산 꼭대기로 커다란 바위를 밀어올리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산 아래에서 바위를 밀어올리기 시작하는 순간, 그는 이것이 또다시 굴러떨어질 것을 알고 있다. 반복과 순환. 시지프스야 신을 기만한것에 대한 죗값을 받는다고 치자. 인간생활의 반복, 순환, 그리고 그 속에서 발생하는 부조리.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안에서 답을 찾는 것이 인간의 숙명은 아닐까. 긴 우주의 역사 가운데 아주 짧은 찰나를 존재하지만, 기억되어지는 값진 순간을 위하여.
류예린_나이테의 꿈_장지에 채색_130×130cm_2011
류예린_뿌리가 잉태한 것들-1_장지에 채색_121×163cm_2011

가느다란 몇 가닥 실에 의지한 채, 희미한 생명력으로 무대를 연극하고 그로테스크한 포즈를 취하며 무기력한 메시지를 전하던 마리오네트가 이번에는 생명의 태동을 안고 또 다른 무대를 선보인다. 지난 마리오네트에 비해 좀 더 긍정적인 셈이다. 인형에 실을 매달아 조종하며 한편의 극을 펼치는 형식의 마리오네트를 소재로 차용한 것은 같으나, 'Circulation'에서의 마리오네트는 자연의 생명력을 연극한다. 마리오네트는 그 스스로 설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다. 이러한 존재가 '품어짐으로서' 얻게 되는 생(生)의 기운은 그 실제와의 간극이 더해지며 더욱 커다란 생명력으로 다가온다.
류예린_뿌리가 잉태한 것들-2_장지에 채색_60×60cm×6_2011
류예린_공존_장지에 채색_191×90cm_2011

새로 등장한 재료는 '흙'이다. ● 모든 것이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사라져 버린다는 말에 공감하게 되면서 이를 통해 자연을 더욱 직접적으로 느끼고 싶었다. 모든 생물체는 흙이 되어 버리고 또 흙 위에 존재 한다. 마리오네트가 위치한 흙 속, 땅 속은 생명체의 삶과 죽음 그 모든 것을 포함한다. 흙이라는 것은 발을 딛게 해주는 땅이고 꽃을 피우게 해주는 양분이다. 심지어 물조차도 흙이 존재하기 때문에 눈앞에 드러난다. 세상의 모든 것은 죽어 버리는 동시에 원 위치, 즉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흙이 되어버리는 것은 흩어지고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니라 되돌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흙은 '순환'이라는 진리의 단적인 예다.
류예린_환원_장지에 채색_50×50cm×3_2011
류예린_뿌리가 깊은 나무_장지에 채색_70×60cm_2011

연극의 4대 요소는 희곡, 배우, 관객, 극장이다. 각색되지 않은 현실반영의 희곡과, 마리오네트라는 배우, 관조자들이 갖는 관객의 역할, 마지막으로 극장으로서의 화면. 본인의 마리오네트 시리즈는 이 모든 것을 정지한 화면으로 갖추고 있다. 실제 무대를 위한 연극의 희곡과는 다른 본인의 희곡은 차별화된 네러티브를 발생시키는데, 정지된 화면은 그 다음 장면의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점이 그것이다. 그래서 나의 작업은 현실의 고발도, 참여도 그 무엇도 아닌 그저 '들여다보기'다. ■ 류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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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zen Music


김라연_한주희_Anibal Catalan展   2011_1004 ▶ 2011_1016 / 월요일 휴관


김라연_CIRCUS_캔버스에 유채, 라텍스_가변설치_2011

초대일시 / 2011_1004_화요일_05:00pm

기획 / 스페이스 15번지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스페이스 15번지 SPACE 15th 서울 종로구 통의동 15번지 Tel. 070.7723.0584 space15th.org


『Frozen Music』展 김라연, 한주희, Anibal Catalan의 삼인전이다. 손발을 뻗을 때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동시에 경험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건축 공간이 인간의 감정 리듬을 반영할 수 있을 것 같으므로 "얼어붙은 음악"- 공간화된 시간-이라고 불렀다(이푸 투안 Yi-Fu Tuan, 『공간과 장소』) 이번 전시의 세 작가들은 자신들이 경험하는 공간의 감정을 자신들만의 언어로 보여준다. 김라연은 주변에서 보는 이미지와 텍스트 사이의 유사성이나 아이러니를 포착한다. 김라연의 회화에서 텍스트는 작품을 읽어내는 기호처럼 작용한다. 재개발로 인해 주택가 사람들의 흔적이 사라진 소유의 개념의 아파트 단지를 보여주기도 하고, 보도사진의 장면을 이용하여 사진 속의 상황과 그 상황을 희화화하는 텍스트를 그림 안에 남겨둔다. 한주희는 애니메이션 작품 「de-construction」에서 전쟁 혹은 자연 재해 후의 폐허를 보여준다. 우리가 진보/현대라고 하는 현재의 사회를 직접적인 방식으로 이야기 한다. 멕시코 작가 아니발 카탈란은 플라스틱을 사용하여 평면과 입체 공간에서의 건축적인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 얇고 가는 선에서 오는 긴장감과 그 선들이 만나 생기는 조화로 인해 그의 작품은 섬세한 건축 모형과도 같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드로잉을 선보인다. ■ 스페이스 15번지_박성연
김라연_We've, 캔버스에 유채_116.7×91cm_2009

「Circus」는, 영국 런던의 거리에서 벌어진 시위 장면을 찍은 사진 기사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날 수만 명의 사람들이 연합정부의 긴축정책을 반대하며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이후 최대 규모의 시위를 벌였다고 한다.(Dylan Martinez ⓒ로이터) 매일 수많은 사람들로 붐볐던 거리가 하루아침에 시위현장으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권위의 상징인 경찰은 하얀 페인트를 뒤집어쓰고 있고, 경찰관 뒤에는 CIRCUS LONDON이라는 표지판이 있다. 도시의 거리를 나타내는 지명이 이 상황과 절묘하게 어울려 런던에서 벌어지는 서커스를 상상하게 한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OXFORD CIRCUS"라는 본래의 지명을 지우고 서커스의 놀이와 유희라는 의미, 기사에 나타난 사회의 폭력과 시위 장면을 희화화하였다. ● 두 번째 작업 「We've」 작업은, 2009년 내가 살고 있던 동네가 재개발 지역으로 선정 되면서 변해가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빨간 벽돌집들도 이뤄졌던 동네가 며칠 사이에 사람이 거주했던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 이후 몇 달 만에 4, 5배의 높이로 세워진 "We've"라는 아파트를 보았다. 'We've'라는 단어와 사라진 주택가, 새로 지어져가는 아파트 사이의 관계의 미묘함에서 가지고 있다는 풍족함과 우리가 과연 소유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물음을 던지고 싶었다. 결국 새 아파트 건물도 언제가 허물어져 버린 주택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 김라연

한주희_DE-CONSTRUCTION_drawing No.091, No.132_비디오 스틸 이미지_2007
한주희_Dream-Drawing 전시전경_혼합재료, LED, 벽에 드로잉_130×148cm_2011

전쟁 혹은 자연재해가 휩쓸고 간 그 공간을 인간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아니, '어떻게'라는 선택의 여지없이 그것을 감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을 표현해 보고 싶었다. 그것이 전쟁이라는 인간의 물질적 물리적 산물이든, 쓰나미나 태풍, 지진 등의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든 결국 인간문명에 대한 회의적 결과로서의 폐허인 셈이다. ● 현시대를 살고 있는 내가 느끼는 문명에 대한 회의감은 그에 대한 죄책감, 어느 방식으로든 우리가 감수하고 언젠가는 감당해 내야한다는 불안감과 두려움, 혹은 우리가 미처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자연이 가지고 있는 무궁무진한 힘과 영향력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이라는 무의식을 내 안에 잠재시키게 되었다. 이렇게 현실세계에서 느끼는 비판적인 의식자체가 작품이 되기도 하고, 꿈이나 이상향의 고찰을 통한 잠재의식의 발견이 다시 현실세계에서 드로잉으로, 오브제로, 사진으로 옮겨져 새로운 판타지의 세계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de-construction」 애니메이션은 건설과 해체가 끝없이 반복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현시대에 믿고 있는 '발전된 문명'이라는 것에 대한 성찰을 동반시키고자 했다. 또한 꿈과 관련된 드로잉이나 설치 작업들, 핀홀카메라를 이용한 사진 작업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계나 마이크로적인, 혹은 무한의 어떠한 세계가 어디엔가 존재 할 것 같고 그곳에서 또 다른 이야기가 일어나고 있을 것 같다는 나의 판타지가 담긴 작업들이다. ■ 한주희

아니발 카탈란_Morpho Series 4_종이에 아크릴채색_70×100cm_2011
아니발 카탈란_Morpho Series 5_종이에 아크릴채색_70×100cm_2011

My work is based in the fusion of bidimensional and tridimensional mediums, from traditional painting to site specific installations. I use architecture as language that permits the dialogue of different forms of representation. The artworks come from traditional fundament in plastic compositions, adjusting to the limits of the support used, in this case, the architectonic space. ● Architecture becomes not only a merely form of rational and constructive process for the use of masses in a functional way. In my works Architecture becomes in something more than that, everything and every single thing in this world has an architecture it self, for me the real meaning in architecture is how is used, viewed and felt it in terms of a sensitive and formal production of visual forms. Improvisation its a basic principle in relation with every need that has to be solved, architecture in its most ancient and basic form its first improvised and then a functional in terms of services, in all ways making the aesthetics forms as a result and not as a perfectible goal. ● The principle of my sculptoric installations refers to the avantgard aesthetics, such as Russian constructivism as a model process. The use of pictoric and sculptoric elements stablish in one moment a resistance and a interaction dialogue with architecture in other, rendering a compositive structure that works in relation between tensión and suspense elements, where time and contemplation provokes a state of uncertainty, trough the improvisation of constructive forms used and displayed on real space as a form of experimental and domestic architecture. ■ Anibal Catalan (* Anibal Catalan's Project is Supported by Fondo Nacional para la Cultura y las Ar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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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있는 나무들


이담 서숙희展 / SEOSUKHUI / 徐淑姬 / painting   2011_1005 ▶ 2011_1011


이담 서숙희_뒷길의나무들_69×50cm

초대일시 / 2011_1005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목인갤러리 MOKIN GALLERY 서울 종로구 견지동 82번지 Tel. +82.2.722.5066 www.mokinmuseum.com


섬세한 선과 가라앉은 색으로 쓴 시 ●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기형도의 시, 「빈집」에서)
이담 서숙희_오래된숲-봄_66×125cm
이담 서숙희_오래된숲-여름_66×125cm
이담 서숙희_그 집 마당에 꽃이 핀다_70×70cm

압도적으로, 이담의 그림은 시(詩)다. 유난히 그의 그림들 앞에 오랜 시간 발길이 머무는 까닭은 그가 쓴 시를 읽고, 그 행간의 의미를 새겨야 하기 때문이다. 친절하게 시들을 화제로 옮겨주었던 이전의 그림들과는 달리 단 한 줄의 화제도 남기지 않은 채 오직 선과 색채로만 '써'놓은 이번 전시의 '시'들은 훨씬 더 오래도록 발길을 잡는다. 뒷길의 나무들, 오래된 숲, 나비가 날아와 앉았다, 담뱃가게 하던 집 마늘밭과 감자밭, 정선 가는 길, 푸른 가방과 선인장…… 나는 그의 그림과 그림 사이의 빈 공간에서 화판 앞에 웅크린 릴케와 김수영, 혹은 기형도의 검푸른 등을 본다.
이담 서숙희_담배가게 하던 집 마늘밭 감자밭_70×70cm
이담 서숙희_정선 가는 길_68×56cm
이담 서숙희_오래된 숲-가을_68×56cm

시의 이 압도적인 힘에서 풀려나기 시작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의 섬세한 선과 가라앉은 색채를 만난다. 그의 그림들은, 전시회가 열릴 때마다 적지 않은 변화들을 보여주었다. 조선의 문인산수화를 연상시키는 산수도와 작가의 일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질박한 정물화가 주축이었던 초기의 그림들에서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애틋함을 쓸쓸하면서도 애정 어린 눈길로 담아냈던 지난 전시회의 그림들 사이에 놓인 변화의 양상은 그의 다음 창작이 어디에 이르게 될는지 기대를 모으게 했었다. 그 기대가 집중된 이번 전시의 그림들은 변화보다는 심화의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더 깊어진 색감과 주목할 대상을 도드라지게 드러내는 기법, 배경의 생략과 단순화, 기호나 부호처럼 표현하는 것까지 – 그는 넓게 헤쳐 놓은 땅을 깊게 파고들어간다. ● 깊게 파들어간 땅이 다시금 넓게 헤쳐져 있을 다음 전시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
2011.10.02 21:05:44 / Good : 626 + Good

zabel

  • 작성시각: 2011.10.14 00: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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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FICIAL GARDEN

이진준展 / LEEJINJOON / 李進俊 / installation 2011_0915 ▶ 2011_1026 / 월요일 휴관


이진준_Artificial Garden _LED, Air conditioner & Fan sound, Temperature(18-20 centigrade), Grass, Soil, Spot light, Polycarbonates_Site generating installation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진준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0915_목요일_06:00pm

지원 / UNSANGDONG architects cooperation_auditorium 후원 / Art Council Korea_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_Philips

MEDIA PERFOMANCE: Four Seasons Spring_One day, when they leaved / 2011_0915_목요일_06:30pm Summer_They were always sad for a long time / 2011_1008_토요일_05:00pm Fall_They never come back here again / 2011_1015_토요일_05:00pm Winter_Finally they said to me / 2011_1022_토요일_05:00pm

*「풀받 위의 토크 with 아티스트」 10월22일(토) 5시에 있을 퍼포먼스 이후 작가와의 대화가 진행됩니다.

관람시간 / 11:00am~07:3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정미소 GALLERY JUNGMISO 서울 종로구 동숭동 199-17번지 객석빌딩 2층 Tel. +82.2.743.5378


인공정원새로움을 인식하는 두 개의 눈 오늘날 미디어로 둘러싸인 3차원 공간을 형성하는 다양한 시각장치들의 전개가 단연 새로움만을 부여하지 않는다. 이러한 양상을 설명하게 위해 볼프강벨슈(Wolfgang Welsch)의 상보성에 대한 논의가 타당성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가 새로운 지각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잣대를 비롯하여 새로움을 인식하는 두 개의 눈(새로운 전자매체와 비 전자매체)을 보호해야 한다는 벨슈의 논의는 우리가 오늘날의 매체예술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대한 지적이라고 본다.( Wolfgang Welsch, 『미학의 경계를 넘어(Grenzgange der Áshetik)』, 심혜련 옮김, 향연, 2005, pp. 328~330.)이러한 의미에서 이진준작품 『인공정원』의 중요한 구성요소인 LED빛과 LED를 구현하는 장치에서 파생되는 기계음은 전자매체에서 출현되는 요소이며, 이와 더불어 공간을 구성하는 바닥의 잔디의 흙 길은 비 전자매체의 세계에 근원이다. 이처럼 그의 작품 『인공정원』은 벨슈가 제시한 상보성의 논리에서 출발하여, 더 나아가 인간이 인식한 모든 세계는 인공성이 내재하고 있으며 모든 세계는 근본적으로 인공적인 세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인공성은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기에 이때 『인공정원』에서 구현되는 인공성은 자연성의 개념과 짝을 이루어 작용한다. 『인공정원』의 삼면을 이루고 있는 LED빛은 마치 관객이 산속의 길을 따가 걸어가면서 볼 수 있는 나무 사이사이에 비추는 빛의 모음들이다. 따라서 LED의 움직이는 속도는 사람이 숲 속을 거닐 때 느낄 수 있는 속도의 시간성이 매개된다. 바닥과 천장의 모든 장소적 특징이 중요하게 개입하게 되는 『인공정원』작품의 바닥에는 실제잔디가 깔려 있고, 흙으로 난 길이기 때문에 이곳에 놓인 관객은 잔디와 흙 냄새를 통해 실제로 산길을 걷고 있다는 상황을 경험한다. 즉, 이 작업을 이루고 있는 빛, 잔디, 흙, 온도, 소리, 냄새 그 모두가 전자매체의 세계와 비 전자매체 세계의 합일과 공존을 유발시키고 있으며, 그곳에 놓인 관객은 마치 두 세계의 구분 없이 새롭게 구축된 인공적 세계를 자연스럽게 거닐고 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경험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진준이 제시하는 이러한 인식의 총체에 대한 경험의 근본은 인공성이 전제되고 그 인공성은 과거와 미래도 아닌 현재의 미디어기술이 매개된 상황 그 자체이다. 이렇듯 마치 자연과 인공의 조합이 이루어져 또 다른 새로운 인공의 개념이 제시된 그의 작품『인공정원』에서 벨슈의 다음과 같은 논의가 포함된다. 벨슈는 자신의 논문 "인공낙원(Artificial Paradise)"에서 전자매체와 동시에 비 전자매체 세계에도 같은 정도의 관심을 가지고 그것의 중요성을 인식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다시 말해, 그는 전자매체 세계에 대해 무조건 열광하거나 아니면 무조건 비판하는 극단적인 태도를 경계하면서, 전자세계와 비 전자세계는 어떤 경우에 서로 대립되기도 하지만 전자매체의 발달은 역으로 비 전자매체의 세계를 재확인 할 수 있는 동기가 되어 서로 돕는 관계로 공존 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처럼 『인공정원』은 미디어 빛으로 둘러싸인 공간을 거닐게 함으로 우리가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체험하고 있는 도시의 빛과 세계, 즉 인공과 자연, 전자매체와 비 전자매체의 세계를 동시에 그려내고 있다. 그의 작에서 들려주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모습이 바로 인공정원인 것이다. 그렇기에 이곳을 거니는 관객은 한편으로 산속에서 느끼는 자연의 미와는 이질적인 감정을 느낄 것이며 이와 동시에 익숙한 것들의 조합을 통해 구성된 공간 속에서, 이곳에 있음에 대한 안도감을 느낀다.
이진준_Artificial Garden _LED, Air conditioner & Fan sound, Temperature(18-20 centigrade), Grass, Soil, Spot light, Polycarbonates_Site generating installation_2011

식물적 생명에서 생성되는 빛의 시적 이미지 ●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그 본연의 존재감을 여러 가지의 모습으로 드러낸다. 특히나 『인공정원』에서 벽면의 800개의 LED를 이용하여 커다란 규모로 설치된 잔디를 드러내는 방법 역시 「HERE AND THERE」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HERE AND THERE」는 식물의 생명의 움직임을 잡아낸 영상 작과 잔디로 구성된다. 이진준은 이 두 존재의 생명성과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인공의 빛을 사용한다. 모든 살아 있는 식물적 생명체에 존재감을 부여하기 위해 중요한 단서는 바로 전시장에 펼쳐져 있는 그의 작품들에서 일괄적으로 보여지는 요소, 바로 빛의 연출 때문이다. 나무의 생명이 빛을 향해 뻗어 있음으로 생명의 존재감을 부여 받았다면, 이진준은 나무와 잔디를 비롯해 식물적 생명이 있는 모든 요소들에 인공의 빛을 투사시킨다. 빔 프로젝트 매핑 작업 인「HRER AND THERE」는 하늘높이 뻗어있던 나뭇잎을 위로 올려보며 찍은 영상작품이다. 정적이고 고요한 화면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나뭇잎이 흔들리는 미세한 움직임들이 종종 포착되는데 이는 자연의 바람이 아닌, 나무에 외부충격을 가한 연출된 움직임이다. 즉 나무는 인공적인 바람에 의해 그 의미를 발현하고 있다. 또 그 위에 빔을 비롯한 다양한 조명으로 이루어진 인공의 빛을 사용하여 그 존재가 지닌 의미를 끌어 올린다.
이진준_Here and There_Beam projection mapping on the white door, 2 door handles, Grass, Single Channel Video_00:02:30, Variable installation_2011
이진준_S-HE_200 ball globes, Dimmer, Cable ties_2011

인공의 빛으로 존재하는 사람 ● 이진준의 작품에서 일관되게 연출되는 LED 빛과 조명은 모두 미디어기술이 매개되어 있다. 기계문명의 발달에 따라 사람이 사용하게 된 기술, 특히나 예술에서 적극적으로 개입되어 사용될 수 있는 미디어 장치들에 대한 이야기가 그의 작업을 이해하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즉 기술이 작품을 지배할 수 맥락보다는 기술 그 자체가 작품을 완성해 내는 중요한 단서로 기술과 인간의 체연 관계로 치환된다. 기술철학자 돈아이디(Don Ihde)는 어떠한 대상을 더 나아가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수단이 되는 기계를 통하여 '자아-경험'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밝힌다. 즉 "(인간-기계)→세계"라는 도식이 형성되는데, 이를 자세히 들여다보자면, 기계는 인간과 한 유형으로 분류되며 인간은 기계를 통해 구체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 기계적인 빛과 시선을 지속적으로 담아온 이진준의 작업의 맥락에서 빛으로 서 있는 「S-He」는 기존에 그가 미디어 빛을 통해 사람의 행적으로 드러내어 세상과 어떻게 만나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고민의 흔적들이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깊은 산을 등산한 뒤, 마을을 향해 내려오면서 발견한 집집마다의 빛을 보며 안도감을 갖는다. 사람들이 일구어낸 행적과 흔적으로 인해 갖게 되는 안도감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빛의 조감이 바로 「S-He」에서 드러나는 빛이다. ● 이진준은 자신의 작업에서 꾸준히 드러내고 있는 빛은 고도로 집약된 기술로 연출할 수 있는 화려한 빛이 아니다. 200개의 백열등으로 제작된 「S-He」에서의 빛에서 엿볼 수 있듯이 그 빛은 존재가 흩어지고 희미해져 가고 있는 사람을 드러낸다. 이처럼 그가 사용하는 기계, 인공의 빛은 존재를 드러내어 세상과 만나게 하는 통로인 것이다. 「S-He」가 빛으로 존재하는 사람을 형상화 하였다면 그의 사진작 「Where I am 0530_One day, When they leaved」는 사람이 만들어놓은 행적에 집중한다. 즉 이진준은「S-He」에서 깊은 밤, 산 위에서 바라본 마을 빛의 풍경의 풍경을 드러냈다면 「Where I am」에서는 거대한 자연과 혹은 사회에 인간의 흔적을 만들어가며 살아왔던 삶의 길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이와 더불어 빛으로 드러난 길은 다음에 걸어야 되는 사람의 방향과 미래를 제시한다. 이처럼 그가 자신의 작품에서 사용하는 빛은 사람이 살아왔던 과거의 흔적을 드러냄과 동시에 앞으로 살아가야 할 미래를 열고 있다.
이진준_Where I am_05:28_One day, when they leaved_A photo record of performance in mountain, 200 lighting sticks_2011

일상적 세계로 관계 맺는 인공정원에서의 해프닝(미디어와 공연의 결합) ● 미디어의 속성 그 자체가 공연성을 가지고 있는 것, 이진준은즉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매스미디어를 통해서 바라보는 공연의 모습을 미디어 그 자체가 뿜어내고 있다고 여긴다. 그렇기에 그는 관객에게 체험을 통해 작품을 경험하게끔 하는 상황을 연출한다. 따라서 이번 전시에서도 일관적으로 취하고 있는 그의 예술태도는 작품 하나하나의 개별성 보다는 그 개별성들이 집합적으로 모여 총체적으로 발현되는 것에 대한 연구이다. 앞서 언급한바 있듯이, 그렇기에 인공정원의 세계에서 출현하는 빛, 냄새, 온도, 소리, 잔디, 흙의 요소가 전체적인 전시공간과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지에 관해 집중한다. ● 그의 전시의 행적을 살펴볼 때, 그는 항상 미디어설치와 동시에 퍼포먼스를 연출하였다. 미디어의 공연적인 요소를 감각적으로 극대화 시키기 위해 그는 전시와 퍼포먼스를 동시에 진행시킨다. 지속적으로 움직이는 빛과 영상을 통해 3차원의 무대를 재현하는 그의 미디어 설치는 그 자체가 공연적 특성을 내재하고 있다. 그 때문에 이진준에게 공간 연출력은 작품의 완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이다. ● 미디어기술을 이용해 제작하는 그의 주된 작업관은 단연 정적인 이미지로 구현되었던 전통적 개념의 작업을 체험하는 경험과는 상이한 결론을 유추한다. 정적인 그림이미지는 많은 사람들이 그림 앞에서 고정된 시점을 가지고 그 작품을 읽기 위한 경험을 할 수도 있지만, 이진준의 미디어 설치 작업은 그림을 보는 방식과는 다르게 공연을 관람하는 방법을 취한다. ● 공연은 그림을 보는 것과는 다르게 시간의 연속선상 안에서 변하는 다양한 변수들이 존재한다. 즉 배우들의 움직임과 조명, 소리가 지속적으로 변하기에 정적인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감각이 요구된다. 실상 관객은 그림을 보는 것보다 공연과 연극을 관람할 때 흐르는 시간성 때문에 연출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들을 모두 인식하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은 그의 미디어 공연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가 제작한 영상과 LED빛 연출은 공연을 위한 무대장치가 되며, 그 무대 안에 서있는 배우와 관객을 비롯하여 공간을 이루고 있는 다양한 연극적인 요소들은 그의 작업을 구성하는 장치이다. ● 따라서 그의 공연에서는 항상 수없이 변하는 LED빛으로 연출된 실제 현장에서 녹화된 공연이 아닌 연극적 요소에서 파생되는 예술의 일시성, 즉흥성, 순간성들이 내재된다. 그렇기에 그의 미디어 퍼포먼스 배우인지, 관객인지, 이곳에 내부 인지, 외부인지를 비롯하여 정형화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그의 연출 무대에 가담하는 관객들은 스스로 다양한 체험을 하고, 또 자신이 상상하는 세계로 이동한다. 결국, 이진준은 그의 미디어와 공연의 결합을 통해 관객들에게 그들이 상상하고 경험할 수 있는 바탕으로 토대로 느낄 수 있도록 예술적 성취감을 돌려준다. ■ 이은주
이진준_ARTIFICIAL GARDEN展_갤러리 정미소_2011

Artificial Ga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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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선전 墨線展


2011_1005 ▶ 2011_1011


강민정_She_장지에 채색_80×110cm_2011

초대일시 / 2011_1005_수요일_06:00pm

참여작가 강민정_강훈정_곽수연_김지현 박정혜_백지혜_손창범_신영훈 이상희_이현호_정해진_하대준

관람시간 / 11:00am~07:00pm

성균갤러리 SUNGKYUN GALLERY 서울 종로구 명륜동 3가 53번지 성균관대학교 경영관 1층 Tel. +82.2.760.0575 www.skku.ac.kr


靑春禮讚! ● 사전적 언어로 '청춘이라는 가치를 높고 고귀하게 둔다는 뜻'이다. 올해로 벌써 5회째를 맞이하고 있는 『墨線』展에서는 바로 '청춘의 고귀한 힘'을 느낄 수 있는 묘한 원동력이 지층처럼 겹겹이 쌓여있다. 이번 『묵선』展에서는 12명의 젊은작가들의 활동상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강민정, 강훈정, 곽수연, 김지현, 박정혜, 백지혜, 손창범, 신영훈, 이상희, 이현호, 정해진, 하대준 등의 작가들의 각기 다른 작품에서 교집합을 찾는 것이 이번 전시의 의의라 할 수 있다.
강훈정_Tetris Block_장지에 혼합재료_130×70cm_2011
곽수연_무릉도원_장지에 채색_116.5×91cm_2010
김지현_The song of nature (fresh air)_천에 수묵채색_152×130cm_2003
박정혜_담배피는 사람들_캔버스에 유채_50×65cm_2011
백지혜_바람 불던 날_비단에 채색_51.5×109.5cm_2010
손창범_cloud_한지에 먹_100×100cm_2010

참여 작가들은 모두 '한국화'를 통하여 소통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한국화'에 주목하는가? 이에 다양한 이유들이 있을 수 있지만, 참여작가들은 각기 다른 표현방법과 주제를 통하여 현대에 봉착한 문화적 현상에 대하여 새롭게 발견해내고 있다. 바로 '한국화'라는 장에서 말이다.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한국화에 대한 새롭고 신선한 접근이 시도되고 또한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내고 있는 것은 바로 '청춘'의 힘이다. 젊은 한국화 작가들로 구성된 이번 참여작가들은 종이와 먹이라는 재료적 물성의 특징을 살리되 현대적인 소재들을 자유롭게 운용하거나, 산수나 민화와 같은 전통의 주제들을 가져오되 서양화의 재료로 새롭게 재구성하기도 한다. 또한 전통 채색화의 기법을 연구하고, 계승하되 그 주제 면에서 넓은 스펙트럼을 선보이기도 한다. 기존의 작품들을 패러디 하여 재탄생시키는 것은 또 하나의 영역으로서 주목을 끌고 있기도 하다. 사실, 이러한 다양한 형태들은 더 이상 한국화라는 용어로 규정짓기 보다는 현대회화의 다양한 실험성 안에서 좀 더 앞서가거나 이색적인 기법으로 이해되는 경우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것이 언젠가부터 현대 한국화에 불어오는 '청춘'의 힘이다. 청춘의 바람은 한국화 전공자들에게 신선한 환기성과 소통의 출구를 만들어주고 있다.
신영훈_MONSTER_화선지에 수묵_150×100cm_2011
이상희_숨결_장지에 먹_75×145cm_2007
이현호_untitled_ 한지에 채색_91×117cm_2011
정해진_The Goddess of CLIO_비단에 채색_98×140cm_2011
하대준_사람들_순지에 수묵아교_129.5×165.5cm_2010

이번 전시에서 또한 주목할 점은 재료의 선택일 것이다. 한국화의 재료와 표현성은 인간의 안락, 평안과 같은 정서와 밀접한 관련성을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묵선』展의 작품 다수는 우리 고유의 한지와 채색기법을 택하고 있다. 한지는 물성(物性)에서 다른 매체에 비하여 따뜻하고 고요한 감성을 내재하고 있다. 또한 팽창과 수축이라는 이완작용을 통해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는 과학성을 인정받고 있기도 하다. 근래의 화가들이 한지 재료에 다양한 실험을 시도하는 것은 이러한 한지가 가지고 있는 특수한 과학성과 감성에 감동받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한지나 비단과 같은 전통 재료는 뛰어난 발색능력을 갖고 있어, 캔버스의 감각적이고 즉물적인 발색과는 다른 스며듦과 겹침의 은근함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분채나 석채를 이용한 채색화들이 색의 신선한 변주를 연출한다는 경험적 인식과 보존성, 고운 색의 연출이라는 몇 가지의 장점은 한국채색화의 강점을 부각시키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또한 전통 산수화에서의 부감법(俯瞰法)이나 삼원법(三遠法)은 다양한 시각적 변주를 연출 할 수 있는데, 이는 현대 미디어 아트가 갖는 다시점(多視點)의 조합 화면과의 연관성을 유추할 수 있다. 이는 한 화면에 다양한 시점들을 조합하는 미디어 문화에 익숙한 젊은 작가들에게는 시선처리로서의 이상적인 회화의 방법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 분명, 근래의 작가들에게서 일고 있는 한국화의 이러한 새로운 바람은 한국화에서 새로운 가능성과 정신적 치유, 풍부한 감성적 정서를 깨닫게 된 것에서 기인한 듯하다. 한국화의 청춘들의 작업인 이번전시는 몇 년의 시간의 궤적만큼 두껍게 쌓여진 성과들을 정리하고 재정비하는 전시기획이 될 것이며, 이러한 묵묵한 지층들이 『묵선』展의 가장 큰 장점이 될 것이다. 또한 끊임없이 신진작가와의 소통을 통해 미래의 한국화를 대변하는 『묵선』展으로 성장해 나가는 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 강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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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t Surprise from Leipzig


UNC갤러리 이전 개관展 2011_1007 ▶ 2011_1031



초대일시 / 2011_1007_금요일_06:00pm

참여작가 하트비히 에벌스바흐 Hartwig Ebersbach_울프 푸더 Ulf Puder

관람시간 / 10:30am~07:00pm

유앤씨 갤러리 UNC gallery 서울 강남구 청담동 58-13번지 Tel. +82.2.733.2798 www.uncgallery.com


라이프치히 신드롬 ● 현재 전세계 컬렉터 및 미술관계자들은 독일 '라이프치히(Leipzig)' 미술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단적인 예로 2005년 아트 바젤(Art Basel)이나 아트 퀠른(Art Cologne)에서 "라이프치히 작품 있어요?" 라는 문의가 쇄도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런 현상은 90년대 후반부터 라이프치히 시각 예술 대학(Visual Art of Leipzig) 출신들의 회화 작품을 찾는 컬렉터들이 전세계적으로 증가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영국 컨템포러리 미술에 가려져 있던 독일 미술이 최근 세계미술시장의 수면위로 다시 급부상하면서 독일 미술 그 중에서도 라이프치히 출신 작가들의 약진이 도드라지고 있다. 영국의 컨템포러리 아트의 대명사인 yBa(Young British Artists)가 첼시 나 골드스미스 대학 출신들로 이루어져 있다면, 독일 컨템포러리 아트의 대명사는 yGa(Young German Artists)로 통하며 즉물주의와 형상회화의 역사적 전통을 이어온 유럽 내에서도 최고의 미술대학이라 평가 받고 있는 라이프치히 미술대학 출신들로 이루어져 있다. 라이프치히 화파(Leipziger Schule)라고 까지 불리우며, 세계미술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이들의 작품 배경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독일의 독특한 예술의 전통성과 국가적 이념과 개인의 주관적 표현 사이에서 발생하는 깊은 철학이 이들 작품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포스트 모더니즘의 여러 시도들에 대한 호평과 비평이 엇갈리는 가운데 새로운 회화에 대한 욕구가 치솟는 상황에서 오랜 시간 동안 베일에 가려져 서방세계에 알려지지 않았던 동독 출신 작가들이 고집해 온 회화의 전통성과 그들만의 독특한 예술적 표현 언어가 수 많은 컬렉터 및 미술 관계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90년 이후 세계미술시장에서 라이프치히 미술의 정체성의 해석과 가치에 대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하르트비히 에버스바흐_Brimborium III_캔버스에 유채_140×87cm_2010
하르트비히 에버스바흐_Brimborium II_캔버스에 유채_140×87cm_2010
하르트비히 에버스바흐_Kaspar Damenschuh IV_캔버스에 유채_140×87cm_2010
하르트비히 에버스바흐_WeiBer Elefant XI_캔버스에 유채_140×87cm_2003

라이프치히에서 온 두 작가 ● 1960년대 이후 서방세계에서 서서히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라이프치히 작가들은 공통적으로 DDR(구 독일민주공화국 Deutsche Demokratische Republik 의 약자)시대의 예술가들로 국가에서 제시하는 명확한 당 정책 및 문화 정책 관련 요구를 수용해야 했다. 비록 그들에겐 사회주의가 '기준'이자 '법'으로 적용되어야 했지만 자신만의 언어와 전통을 작품에 드러내고자 하는 뚜렷한 욕구가 있었다. 요구된 진부한 선전적 사실주의를 그리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추구한 결과로 두려움과 욕망을 드러내는 동시에 무력함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탄생하게 된다. ● 60년대 라이프치히 미술의 대표작가이며 '라이프치히 화파'의 중심 인물인 베른하르트 하이지히(Bernhard Heisig)의 제자였던 하트비히 에벌스바흐(Hartwig Ebersbach 1940년생) 와 울프 푸더(Ulf puder 1958년생)는 동독 컨템포러리 미술의 중심축인 라이프치히 시각 예술 대학을 나왔다. 작품의 이미지 표현방식을 보자면 하트비히 에벌스바흐의 작품은 자신과 외부 세계의 꿈과 신화적 상상으로부터 탄생되었다. 2000년 이후 작품에는 제목으로 자신의 친 형제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면서도 흡사 동물의 창자로 미래를 점 치는 행위를 연상 하게하는 이미지나 창공을 성큼성큼 걸어가는 동물과도 같아 보이는 형상을 강렬한 색채와 과감한 붓질로 나타내었다. 캔버스가 그대로 노출 되기도 하는 반면 두꺼운 물감의 질감이 대조적으로 격정을 뿜어낸다 ● 반면에 울프 푸더의 작품은 표면적으로 하트비히의 것처럼 요동하지 않을지라도 작품에서 뿜어지는 예술적 아우라가 예사롭지 않다. 정돈되어 있으며 드러나지 않는 붓질이 하트비히의 작품과는 완전한 대조를 이룬다. 이미지는 추상과 사실주의의 중간쯤. 과거와 미래의 가운데쯤에 있는 풍경처럼 보인다. 불안정해 보이는 간의, 또는 이동식 주택들은 익숙한 풍경이지만 온전해 보이지는 않으며 해체되어가는 과정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단순화되어 색색의 박스처럼 표현되었다. 또한 어딘가 초현실적으로 보인다. 외롭고 황량한 분위기는 사람에게 버려진 유령도시처럼 보이게 한다. 전반에 스며있는 초현실적인 분위기와 우울한 고요함은 매우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과거에 독특한 파스텔의 가라앉고 선명하지 않은 색감이 주를 이루었다면 최근작에서는 대조적인 강한 색감들이 두드러지게 보이고 있다. 이들의 철학적 깊이와 조형적 완성도는 많은 미술 관계자 및 컬렉터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하고 있다.
울프 푸더_Abendsequenz_캔버스에 유채_70×100cm_2011
울프 푸더_Poststation_캔버스에 유채_50×70cm_2011
울프 푸더_Aufkommendes Wetter_캔버스에 유채_50×60cm_2011

라이프치히 미술의 진수 ● 라이프치히 미술에 있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두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는 이번 『Great Surprise from Leipzig』展 은 현실적으로 요구되는 낯선 요소, 낙후된 경제와 여론 조종들에 대한 문제제기를 비밀스럽게 포함한 작품들로, 과거에는 통제로 인해 진부하게 여겨지기도 했던, 그러나 현재 잠재된 진가를 드러내고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작품들을 국내에서 확인해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본다. 라이프치히 미술의 진수와 역사의 맥을 이어온 작가 하트비히 에벌스바흐와 울프 푸더의 2인 전을 통해 전세계를 사로잡은 라이프치히 미술의 진수를 접하는 자리가 될 것이며 작품 15점 내외를 2011년10월7일~10월31일까지 공개한다. ■ UNC갤러리
울프 푸더_Rutschpartie_캔버스에 유채_45×50cm_2010

The Exhibition of Great Surprise from Leipz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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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주안展 / KWONJOOAHN / painting 2011_1008 ▶ 2011_1020


권주안_Voyage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30×93.3cm_2010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주말_10:00am~06:00pm

이브갤러리 EVE GALLERY 서울 강남구 삼성동 91-25번지 이브자리 코디센 빌딩 5층 Tel. +82.2.540.5695 www.evegallery.co.kr blog.naver.com/codisenss


공간이라는 소재로 작업을 시작한 것은 2차원인 캔버스 안에 3차원 이상의 공간감을 더 깊이 있게 표현 해 보고 싶어서였다. 3차원 이상의 공간감을 확장하기 위해서 어떤 요소가 더 필요한지 고민했고, 작품에 이상향 이라는 내용을 넣어 개념적인 공간의 확장을 가져오게 되었다. 그것은 그림을 보면서 느끼는 3차원의 시각적 공간감뿐만 아니라 우리가 느끼는 개념적인 공간의 확장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권주안_Voyage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30×93.3cm_2010
권주안_Voyage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30×93.3cm_2010
권주안_Voyage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30×93.3cm_2010

공간감을 표현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주재는 이상(理想)향 이었고, 우리가 꿈꾸는 이상향으로 통하는 입구를 만들게 되었다. 다양한 형태로 표현 된 구조물들은 이러한 통로를 갖고 있는 마법의 성처럼 느껴진다. 구조물들을 표현하기 위해 선택한 재료는 벽지였다. 나는 다양한 모습으로 형성된 작품 속의 벽면을 벽지로 도배하기 시작했다. 벽지를 오리고 붙이고 다시 채색을 한다. 이러한 과정은 그리는 것 이상(以上)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것은 이상을 꿈꾸며 다가가기 위한노력의 과정과도 같기 때문이다.
권주안_space&communication_캔버스에 벽지, 유채, 아크릴채색_194×130cm_2010
권주안_space&communication_캔버스에 벽지, 유채, 아크릴채색_194×130cm_2010

이렇게 표현된 그림 속의 구조물은 두 공간을 결합하고 있다. 즉 현실과 이상, 현재와 미래 등 서로 다른 두 공간을 연결하는 중계 영역인 것이다. 성 안에는 창문과 문이 있고, 그 너머로 보이는 하늘이 우리가 꿈꾸는 이상향을 상징한다. 그 중간에 놓인 계단은 물론 이상향으로 향하는 길이며 과정을 뜻한다. 따라서 변형되고 왜곡된 계단들은 이상향으로 가는 역경과 고난을 상징하며, 나뭇가지에 매 놓은 깃발은 이상으로 안내하는 이정표 역할을 한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얼룩말은 우리 자신이며, 양편을 잇는 수문장이자 안내자인 메신저이다. 그가 갖고 있는 무늬는 이상으로 안내를 하기 위한 주술처럼 느껴진다.
권주안_wonderland_캔버스에 벽지, 유채, 아크릴채색_162×130cm_2010

얼룩말은 항상 관객들이 그림 속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관객들은 다양한 관점으로 이상을 꿈 꿀 것이고 얼룩말은 그들의 이상향으로 함께할 준비가 되어있다. "abracadabra" 우리가 주문을 외무면 이상으로 연결된 문은 열릴 것이고, 우리가 들어가고자 한다면 언제나 안내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공간매개체인 ZEBRA에 의해서... ■ 권주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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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ries




김영배展 / KIMYOUNGBAE / 金榮培 / painting 2011_1006 ▶ 2011_1105 / 일,공휴일 휴관



김영배_Boat_캔버스에 유채_110×150cm_2011


초대일시 / 2011_1006_목요일_06:00pm

주최 / Gallery Absinthe 기획 / Hzone

관람시간 / 10:00am~07:00pm / 토_10:0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갤러리 압생트 gallery absinthe 서울 강남구 신사동 630-21번지 B1 Tel. +82.2.548.7662~3 www.galleryabsinthe.com



김영배 - 시간의 속도가 풍경을 만든다 ● 색은 평평하지 않고, 경계선은 정확하지 않으며, 사람의 흔적은 쉽게 발견하기 어렵고, 빛이 존재하나 그것이 비추고자 하는 형상이 무엇인지 뚜렷하지 않다. 또한 건축물과 풍경이 등장하지만 그 어떤 것도 작품의 주제처럼 보이지 않는다. 인간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공간, 사람이 떠나가 인간의 흔적이 사라진 공간, 그리고 그나마 등장하는 인물은 뒷모습만 노출하며 정체를 숨기는 김영배의 그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인간적이고 따뜻하다. 그가 그리고자 하는 대김영배_상이 단순히 빈 공간이나 풍경, 오브제가 아닌 그가 소중하게 생각했던 기억의 파편이고 그것들의 축적이기 때문이다. ● 그런 이유로 김영배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있어 시간개념은 중요한 출발점이다. 그러나 고정된 회화작품을 가지고 유동적인 시간개념을 이끌어 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분명한 것은 김영배의 시간개념이 과거의 순간을 그렸다고 해서, 기억을 더듬어서 재편집했다고 해서 설명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란 점이다. 몇 가지 시각적인 장치들과 그들이 어떻게 상호 기능하는지 우선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 예를 들어, 시간에도 상대적인 속도가 존재한다고 가정했을 때, 김영배의 그것은 무척이나 느린 리듬을 선택하고 있다. 그래서 더 빨리 더 많이 보기를 원하는 동시대의 열망을 반영하는데 는 실패한다. 대신 타르코프스키의 "봉인된 시간 (Sculpting in Time)"처럼 응축된 시간과 공간적 배경을 만들어 낸다. 한편의 시를 감상하는 것 처럼 시간과 감정이입을 요구한다. 그래서 비록 빠른 편집과 기교적인 미장센이 만들어내는 화려함을 찾아볼 수는 없지만, 화면을 지배하고 있는 고요함은 숨 고르기를 해야지만 감지할 수 있는 미묘한 잔상을 남기는데 성공한다. 관객이 김영배의 다소 느린 시간의 리듬에 속도를 맞추기 시작하면서 사소했던 장면과 풍경 속에 숨겨진 사건과 이야기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김영배_Consideration_캔버스에 유채_110×150cm_2011
김영배_Lemon Tent_캔버스에 유채_110×150cm_2011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시간개념의 또 다른 특징은 작품 속 시간이 특정 시기로 한정되는 것을 거부한다는 점이다. 이는 시간이 한정되면 그 안에 펼쳐질 수 있는 스토리 또한 한정적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전 작품 속 이미지를 다음 작품의 소재로 사용하는 방법 등을 동원하여 복합적인 시간대가 공존하는 공간을 완성해 나간다. 그 과정에 순서를 부여하면, 우선 대상을 그리고 그 대상에서 특정 시기를 읽어 낼 수 있는 사건을 지워버린다. 그 다음 기억의 종합을 통해 다양한 시간대를 하나의 공간 안에 구성해 낸다. 이렇게 얻어진 공간은 과거의 풍경 혹은 외부의 풍경 이라기 보다는 다가갈 수 없는 혹은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에 대한 작가의 열망이 투사된 내적 풍경에 가깝다. ● 풍경을 특정 이미지로 인식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프레임'은 한국인이면서 독일에서 23년 동안 작업해야 했던 김영배에게 있어 자신의 회화공간을 안과 밖에서 동시에 인식할 수 있게 만들고 있는 매우 중요한 구조적 틀이다. '프레임'의 안과 밖은 한국사회와 독일사회의 안과 밖처럼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심지어 자신의 아이덴터티를 해석하는 방식에게까지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 2003년 이후로 등장하기 시작한 인물의 "뒷모습" 역시 김영배의 공간 개념과 시간 개념을 확인할 수 있는 키워드이다. 뒷모습을 통해 익명성을 확보한 작가는 특정 인물로 인해 공간과 시간의 해석이 한정될 수 있는 여지를 처음부터 차단한다. 그리고 관객과 같은 방향으로 풍경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시선구조를 통해 풍경과 인물 그리고 관객 사이의 일정한 거리를 유지시킨다. 그런 의미에서 김영배의 풍경이란 일종의 연극무대와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고 할 수 있다. 막혀 있던 벽에 구멍을 내고, 떠났던 사람을 다시 풍경 속으로 끌어들이고, 물결을 통해 빛과 그림자의 경계를 지워버리고 있는 김영배의 풍경 즉 개인적인 기억의 축적은 연극무대처럼 누구든지 그 안에 스토리를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는 중립성의 공간으로 재탄생된다. ● 2003년 이후로 등장하기 시작한 인물의 "뒷모습" 역시 김영배의 공간 개념과 시간 개념을 확인할 수 있는 키워드이다. 뒷모습을 통해 익명성을 확보한 작가는 특정 인물로 인해 공간과 시간의 해석이 한정될 수 있는 여지를 처음부터 차단한다. 그리고 관객과 같은 방향으로 풍경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시선구조를 통해 풍경과 인물 그리고 관객 사이의 일정한 거리를 유지시킨다. 그런 의미에서 김영배의 풍경이란 일종의 연극무대와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고 할 수 있다. 막혀 있던 벽에 구멍을 내고, 떠났던 사람을 다시 풍경 속으로 끌어들이고, 물결을 통해 빛과 그림자의 경계를 지워버리고 있는 김영배의 풍경 즉 개인적인 기억의 축적은 연극무대처럼 누구든지 그 안에 스토리를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는 중립성의 공간으로 재탄생된다.
김영배_Her Conversation_캔버스에 유채_110×150cm_2010
김영배_Evening_캔버스에 유채_100×140cm_2011

그의 과거에 대한 집착은 다양한 시각효과를 만들어 내고 있는 그림자를 통해 구체화된다. 사물을 눈에 보이게 만들어내는 것이 빛이라면 그림자는 그 사물에 실재적인 무게감을 부여해주는 역할을 맡는다. 그래서 김영배의 그림을 구성하는 빛과 그림자를 음양의 조화 정도로 단순화시켜 이해해선 안 된다. 그에게 있어 그림자라는 것은 기억이고, 과거이고, 스토리의 시작이며 공상의 실체이다. 그래서 증발할 수 있는 기억의 파편들에게 무게감을 주고 견고하게 하나의 화면 속에 화석화 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수행한다. 단순히 일루전을 만들어내는 형식적인 보조제가 아닌 역사성과 개인의 기억까지도 층층히 담아낼 수 있는 상징적인 수단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 언뜻 보면 그의 최근 작품들이 이전 그림과 비교해 빛과 유토피아만을 지향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이 일관되게 가지고 있는 "따뜻한 인간 냄새"는 사람이 사라진 빈 공간, 빛을 찬란하게 만들어내는 그림자,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뒷모습, 주변을 두리번 거리지 않게 시선을 고정시키는 정적인 화면과 그것을 견고하게 만들어주는 프레임까지 세심하게 그려낸 결과이다. 김영배의 그림 속 사람이 빈 무대, 그러나 우리는 그 곳에서 우리자신의 옛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의 풍경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 어쩌면 우리 자신의 소중한 기억일지도... ■ 이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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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 포 나이트 day for night




서동욱展 / SUHDONGWOOK / 徐東郁 / mixed media 2011_1006 ▶ 2011_1106 / 월요일 휴관



서동욱_밤, 실내, 아이리스의 방_캔버스에 유채_50×65.1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90110d | 서동욱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1006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원앤제이 갤러리 ONE AND J. GALLERY 서울 종로구 가회동 130-1번지 Tel. +82.2.745.1644 www.oneandj.com



전시 제목으로 사용된 'day for night (데이 포 나이트)' 는 영화 촬영 기법 중에서 밤의장면을 낮에 촬영하되 밤의 효과를 얻도록 하는 방식을 뜻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이번 전시에서 회화로는 두 가지 카테고리로 나뉜다. 첫번째는 좁고 어두운 실내 공간에서 무언가/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누워있는 인물의 포트레이트이다. 어두운 실내에서 강렬한 조명으로 인물의 형태를 묘사한다. 두번째는 인공적인 조명으로 거리를 밝힌 도시의 밤 풍경이다. 한강의 공영주차장 관리실과 도로 포장을 하는 공사 차량 등, 우리가 밤거리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소재들이지만 이러한 풍경화들은 마치 '데이 포 나이트'로 활영된 어색한 흑백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작가의 이전 작업에서는 평면적이고 절제된 우수를 표현한 포트레이트를 볼 수 있었다면, 신작에서는 좀 더 드라마틱한 상황과 색채, 영화속에서 골라낸 한 장면처럼 구체적인 상황에 놓인 인물들의 갈등을 마주할 수 있을것이다.
서동욱_밤, 성북동 거리_캔버스에 유채_97×145.5cm_2011
서동욱_아침, 실내, 엄마의 방_캔버스에 유채_53×72.7cm_2011
서동욱_저녁, 실내, 거실_캔버스에 유채_50×65.1cm_2011
서동욱_저녁, 보형의 거실, 소파위_캔버스에 유채_53×72.7cm_2011
서동욱_쓰러진 머리_캔버스에 유채_50×65.1cm_2011
서동욱_Fumee_캔버스에 유채_53×72.7cm_2011

새로운 영상작품 「 Lights on the water 물위의 불빛들」은 경기도 안성의 저수지를 배경으로 한 세 개의 파편적인 씬들로 이루어져 있다. 세 개의 이야기는 각각이 영화 속에서 무작위로 골라낸 씬들처럼 분절되어 있지만 어렴풋한 플롯을 드러낸다. 영상의 배경이 되는 수상가옥의 형태인 낚시터, 작은 배, 저수지의 안의 작은 섬은 인간의 고독한 운명을 암시하는 듯하다. 서동욱의 작품들은 어두운 청색필터를 장착해서 정오에 촬영한 밤 풍경처럼 강렬하고 낯설다. ■ 원앤제이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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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o Drawing 16_깊이에의 강요




홍승희展 / HONGSEUNGHEE / 洪承希 / installation.photography 2011_1007 ▶ 2011_1023 / 월요일 휴관



홍승희_깊이에의 강요 Der Zwang zur Tiefe(Force to Depth)_가변크기_혼합재료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00410b | 홍승희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1006_목요일_05:00pm

소마드로잉센터 공모展

주최_KSPO(국민체육진흥공단) 주관_소마미술관

관람료 소마미술관 조각가의 드로잉展 관람 시 무료 소마미술관 조각가의 드로잉展 관람료 / 성인, 대학생_3,000원(단체 1,500원) 청소년(13-18세)_2,000원(단체 1,000원) / 어린이(12세 이하)_무료 * 단체 : 20인 이상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마감시간 1시간 전까지 입장 가능)

소마드로잉센터 SOMA DRAWING CENTER 서울 송파구 방이동 88-2번지 소마미술관 제6전시실 Tel. +82.2.425.1077 www.somadrawing.org



깊이에의 강요 ● 홍승희는 2007년부터 깊이에의 강요(Der Zwang zur Tiefe)라는 주제로 작업을 해왔는데, 이는 파트리크 쥐스킨트(Patrick Suskind, 1949-)의 단편소설(Drei Geschichten und eine Betrachtung)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다. 이 이야기는 한 젊은 여류화가가 어느 평론가로부터 "깊이가 없다"는 말에 상처 받고서, "깊이"가 무엇인지 구현하려다 좌절하여 결국 자살하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남을 평가하려드는 인간의 습성과 타인의 평가에 자유롭지 못한 세태를 비판적으로 그려낸 작품으로, 깊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한번쯤 생각하게 만든다. 스스로의 작품세계에 도취되어 있으면서도 타인의 평가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작가로서 이 소설을 모티브로 했다는 것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도 불구하고 삶이 거듭될수록 인생에 깊이가 있기를, 무게가 있기를 은연중에 강요당한다. ● 우리는 물리적인 깊이, 심리적인 깊이, 시각적인 깊이, 정신적인 깊이, 학문적인 깊이 등 다양한 범위의 깊이를 개념화하고 있다. 홍승희에게 있어 깊이란 "선택된 오브제들에 감정과 기억을 투사하여 연출되어진 어떤 공간 속에서 강제적이고 강요된 깊이(작가노트)"이다. 작가는 벽, 천장, 바닥 등 견고하고 평탄한 표면을 인위적으로 주름지고 늘어지게 만들어 시각적이고 심리적인 깊이를 연출한다. 주름은 팽팽하고 매끈한 표면에서는 생각하지 못한 또다른 층위를 만들어낸다. 또한 주름은 차가운 무기체를 부드러운 유기체로 탈바꿈시킨다. 작가는 작위적인 깊이를 만들어냄으로써 "삶의 무게"를 시각화하고 삶의 진정성에 대해 반문하고 있다. 홍승희의 작업을 보면서, 깊이란 그 주체가 무엇이든 간에 유연성과 포용성의 범위를 확장시킴으로써 보다 많은 것을 품을 수 있는 여지의 크기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 정나영
홍승희_깊이에의 강요 Der Zwang zur Tiefe(Force to Depth)_가변크기_혼합재료_2011
홍승희_깊이에의 강요 Der Zwang zur Tiefe(Force to Depth)_가변크기_혼합재료_2011
홍승희_깊이에의 강요 Der Zwang zur Tiefe(Force to Depth)_가변크기_혼합재료_2011

드로잉에 대하여 ● 오래된 가죽 소파에 앉아있다 일어나보면 무게에 의해 생긴 주름의 흔적이 슬며시 나타났다가 곧 시간이 흐르면서 사라지게 됩니다. 이렇듯 오브제가 지닌 형태에 의해 자연적으로 형성되는 주름을 보고 그 자체가 드로잉이라 생각했고 그 흔적을 쫓아 보이지 않는 주름을 상상하여 그리게 되었습니다. 「깊이에의 강요」는 일상에서 느낀 감정을 예를 들어, 마치 삶의 무게에 짓눌린 듯 천천히 바닥으로 침전해 들어가는 감정들을 일상의 오브제에 투영해 표현한 것입니다. 오브제에 투영된 감정은 보편적인 감정들로서 힘든 하루를 보내고 침대에 몸을 뉘였을 때 아래로 푹 꺼지는 느낌이나, 직장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 옷걸이에 옷을 걸었을 때 축 쳐지는 느낌 등 누구나 한번쯤 경험한 삶의 무게를 눈에 보이는 물질의 움직임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중력과 시간이 작용해 만든 오브제의 '깊이'는 그 오브제를 누른 힘, 즉 중압감과 같은 삶의 무게를 상상하게 합니다. 무기력하고 지친 일상과 생활 속을 표현할 수 있는 제목을 생각하던 중에 예전에 읽었던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쓴 단편소설이 생각이 났고, 그 제목을 모티브 했습니다. 당시에 그녀가 느낀 깊이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하게 만든 그런 작품이었으며, 소설에서는 예술과 현실의 관계, 삶과 예술의 문제를 질문하고 있습니다. 그 소설을 통해 삶의 본질을 보다 깊이 통찰할 수 있었습니다. 「깊이에의 강요」에서 깊이는 여러 가지 개념으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홍승희_깊이에의 강요 6 Der Zwang zur Tiefe(Force to Depth) 6_혼합재료, 설치, 사진_125×176cm_2008
홍승희_깊이에의 강요 8 Der Zwang zur Tiefe(Force to Depth) 8_혼합재료, 설치, 사진_160×186cm_2008
홍승희_깊이에의 강요 11 Der Zwang zur Tiefe(Force to Depth) 11_혼합재료, 설치, 사진_160×186cm_2009

공간개념의 깊이, 심리적 혹은 내적 개념의 깊이, 의미로서의 깊이, 시각적 깊이 등 광범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나에게 있어 깊이란, 선택된 오브제들에 감정과 기억을 투사하여 연출된 어떤 공간 속에서 강제적이고 강요된 깊이입니다. 오브제 주위에 벽이나 책상이 가진 딱딱한 고유의 물성을 강제적으로 빼앗음으로써 의도된 중력이 생겨납니다. 그것으로 인해 가라 앉혀진 모습과 오브제의 형태로 인해 생겨난 주름은 직접적이고 촉각적인 방식으로 "강요된 깊이"로 표현됩니다. ■ 홍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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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케이프(Interscape)




박정민展 / PARKJUNGMIN / 朴正旻 / photography 2011_1012 ▶ 2011_1018



박정민_여주, 준설토 적치장_잉크젯 프린트_80×100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박정민 블로그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1012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공휴일_11:00am~07:00pm / 마지막날_10:00am~12:00pm

갤러리 룩스 GALLERY LUX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5번지 인덕빌딩 3층 Tel. +82.2.720.8488 www.gallerylux.net



풍경사진의 새로운 안목 ● 풍경사진의 난해함은 거울 속의 자신을 마주하며 겪는 어려움으로 통한다. 그것은 풍경을 보고 해석하는 시각과 방법에 따라 다채로운 감상으로 이어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실적인 환영, 또는 사실과 환영의 사이, 혹은 사실 너머를 보게 하기 때문에 때론 불편하기도 하다. 게다가 풍경사진의 미덕이라 할 수 있는 로맨스에 비탄적 정서가 가미되면 속수무책이다. 초기 작업부터 현재까지 환경과 사회, 역사에 대한 사진의 앙가주망을 시도해온 박정민은 이번 『인터스케이프 Interscape』 전시에서 대상에 대한 자율적인 이해를 이미 확보한 듯하다. 전체적으로 풍경을 인지하는 시각이 넓어졌고, 현실에 대한 고민은 깊고, 형식적인 완성도도 높아졌다. 철학과 사진학을 전공하고 문화예술단체에서 축적된 경험치가 잘 녹아들었다. 흔히 '사진적'인 말로 대상을 향한 '객관적' 거리두기, '중립적'인 자세가 풍경사진에 대한 이해를 꾀하는데 중요한 형식이라고 생각했다면 박정민의 일련의 사진들을 따라가며 형식의 새로운 안목을 발견해보는 것도 좋겠다.
박정민_상주, 경천대 국민관광지_잉크젯 프린트_80×100cm_2010

박정민의 풍경 속, 눈 덮인 아름다운 설원과 무진霧津의 강가, 석양의 강은 고요히 아름답다!? 영산포를 향해 솟은 모래 산, 남한강에 가지런히 놓여진 벽돌은 장엄한 대지예술이다. 작가가 강을 따라 여여하게 걸어 당도한 곳마다 신록, 설국, 노을, 신새벽의 시간대로 잘 짜여진 드라마 같다. 이렇듯 작가의 은폐는 시간의 컬러로부터 시작된다. 컬러로 일단 풍경에 기대하는 관객의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진 뒤 사진 찍을 때처럼, 다시 여여하게 설명한다. '이곳은 공사가 중단된 곳이고, 폭우로 공사 도중 벽돌은 침수되었고, 겨울이 되어 현장은 눈 덮여 있었다'고. 그러고 보니 '야곱의 사다리'처럼 산으로 길게 뻗은 포크레인 캐터필러 자국도 선명하다. 포격장이었던 매향리는 짐짓 평화롭고, 물줄기를 새롭게 뚫은 경인운하의 노을은 주홍 립스틱이다. 이렇게 만들어지고, 변형되는 풍경 앞에서 '잭슨'의 문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풍경사진은 공간의 조직체계라는 차원에서 이해되어야만 한다. 그 공간을 누가 소유하고 있고, 누가 이용하고 있는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떻게 변형되었는지를 묻지 않으면 풍경사진의 의미를 알 수 없다."(J.B.잭슨)
박정민_나주, 앙암_잉크젯 프린트_73×110cm_2009

박정민의 사진을 더욱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지의 모성성을 그리워하는 촉촉한 감성의 울림을 들을 수 있다.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해 흘러야만 할 강물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샛강 바닥 썩은 물에' (정희승 시,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중.) ● 뜨는 달을 보고 돌아가야 하는 심정도 헤아려졌다. 적막함이 감도는 정지된 풍경 속에 촘촘히 각인된 숱한 삶의 애환들도 보여졌다. 그 순간 사진 위로 바람이 불어왔다가 불고 간다. 그만큼 정치精緻한 구성력으로 시간의 흔적은 선명하기만 하다. 그의 사진은 역사의 시선으로 이 땅의 풍경을 써낸 생태 보고서인 셈이다. 그러니 이 사진들 앞에서 작가의 미적 감수성과 역사적 의식, 생태적 통찰이 보일 수밖에. 박정민 풍경의 안목이 어디로 향할지 기대할 일이다. ■ 최연하
박정민_여주, 신륵사 앞_잉크젯 프린트_73×110cm_2011


강가, 어딘가쯤에 멈춰 앉아 낚싯대를 편다. 보통은 카메라라고 부르는 물건이지만 나는 낚시할 때 쓴다. 굳이 강이어야 해서 강가로 나온 건 아니다. 때로는 들이기도 하고 혹은 바다일 때도 있지만 걷다 보면 대개는 강인 이유는 내 많은 선조들의 뒤를 밟은 격일 게다. 문명의 탄생지라는 말은 곧 문명과 자연 간의 갈등과 충돌의 진원지라는 뜻이기도 할 터. 수만년 시간의 끄트머리 몇 년 남짓을 내 몫으로 챙기고 있다. ● 낚시를 드리운 다음엔 찌를 노려볼 차례다. 지리멸렬한 세상을 단박에 예의주시할 만한 광경으로 바꿔놓는 뷰파인더의 사지절단 마술에 환호부터 보내고 난 다음, 눌러앉아 한동안 뚫어져라 볼 일이다. 천천히, 물음표 비슷해보이는 흐릿한 어떤 것이 바늘 주변을 헤엄쳐다니기 시작한다.

박정민_부여, 금강_잉크젯 프린트_73×110cm_2009


환경이라는 아젠다 혹은 아포리아를 붙들고 씨름하기 시작한지는 조금 더 되었다. 갈수록 모든 것이 명확하지 않아만 가니 짐작컨대 후자일 것이다. 하필이면 또 카메라를 잡고서였으니 사정은 더욱 심각했다. 처음 너무도 굳건해보였던 그 많은 느낌표들은 시간이 갈수록 고개를 떨궈 물음표가 되어가는데, 카메라라는 물건은 이런 국면을 전환시키는 따위의 용도로는 아무런 보탬이 못됐다. 지팡이로 쓸까 싶어 짚어도 보고 창검으로 쓸까 휘둘러도 봤지만 마땅치가 않다. 짚자니 미끄러지고 겨누자니 빗맞기만 한다. ● 이번에도 누군가는 과학적으로 명석판명한 규명을 해낼 것이고 또 누군가는 정치적으로 호호탕탕한 주장을 실행에 옮길 것이다. 혹자는 기도하고 혹자는 개발할 것이며(신도시든 신기술이든) 좌우지간 환경문제의 통섭적 성격에 걸맞는 다종다양한 대처법을 선보이리라 믿는다. 대신에 나는 카메라라는 물건에 비로소 걸맞는 짓에 나서기로 했다.

박정민_단양, 남한강_잉크젯 프린트_80×100cm_2010


"근본적으로 바꾸려면 먼저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정확히 보아야 한다. 이것을 해낼 수 있게 되면 변화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한 스리랑카 스님이 쓴 위빠사나 책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러니까, 제일 먼저, 있는 그대로를, 언필칭 '여여하게' 보는 데서부터라는 말일 것이다. 사진이 가장 잘할 수 있어보이는 탓에 또한 가장 빈번히 그르치곤 해왔던 바로 그 일이다. ● 포크레인은 이젠 숫제 이 산천의 허수아비. 배웅이랍시고 내치는 저 굉음이 그러나 이 강가에서의 첫 소절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는 여기에서 적장의 목을 베었고, 들꽃은 그 위로 살아보자고 피어올랐을 것이며, 무역선이 떠나던 날 또 누군가는 그 꽃을 따 쌈지에 품기를 몇 번이었을까. 그 모두의 후렴이자 뒤이어지는 모두의 앞소절일 저 포크레인을 그저 그것만으로 있는 그대로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박정민_화성, 매향리_잉크젯 프린트_80×100cm_2010


그렇다면 어떻게? 풀 길 없는 타래뭉치를 들고 나와 강물 속에 드리워놓는다. 뚫어져라 보아가며 주문이라도 걸듯 되뇌인다. 견자여 견자여 무엇을 보느냐. 물음은 대치되지 않는다. 다만 낚아올려도 좋을 만큼 또렷해질 뿐이다. 나의 노래는 여기까지. 물어가며 본 것을 보여주며 물을 따름이다. 어쩌면 이거야말로 내 위에 드리운 바늘일지 모르지만, 그렇다 해도 낚고 낚임의 질긴 인드라망을 마다할 도리란 없는 것이다. ■ 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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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ion




김연展 / KIMYEON / 金連 / painting 2011_1012 ▶ 2011_1018



김연_illusion_한지에 분채_130×130cm_2011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09:30am~09:30pm / 일요일_09:30am~06:00pm

갤러리 아우라 Gallery AURA 서울 마포구 서교동 395-8번지 Tel. 070.8658.6750 www.galleryaura.com



인간이 태어나서 느끼는 감정들이 혹, 타인을 향해 새로운 관점으로 나아가야 할때 우리는 혼란속에 빠지곤 한다. 새롭게 만들어낸 생명들은 상황에 맞게 대처할 수 있게 만들어 내려 한다. 인간관계에서 원래가 느끼는 감정들을 이성과 감정으로 본인이 느끼는 새로운 생명으로 만들어 내 본인이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김연_illusion_한지에 분채_130×130cm_2011
김연_illusion_한지에 분채_80×80cm_2010

내면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나의 화면에 자연과 세계로 말한다. 순간적인 공간을 개인의 경험과 사고를 통해 시대성을 반영하고자 하며 그 시대성은 현대사회라는 커다란 테두리 안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이중구조이다. 과거에 길들여 왔던 자신의 현재를 깨닫는 순간 화면에서 좀 더 강하게 이성과 감성 속 이야기를 한다. 현재의 이성과 감성에 깊이 동요되어 마치 다른 공간에서 새로운 현재를 살고 있는 것, 현실의 공간을 형성하는 곳과 과거의 공간을 형성하는 곳을 만들어 내는 곳 좀더 자유로워질 수 있는 그 곳이 본인의 작업 속 공간이다. 그 공간속에 이성, 감성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소통할 수있는 과정이다. 그안에서 새롭게 만들어 냄 뭔가가 있다면 그것 역시 과거, 현재, 미래를 어느 한 공간에 몰아 넣어 감성에 바탕을 둔 표현을 한 화면에 보여주고 있다. 그 이중성은 감성과 이성의 대립을 의미히기도 하고 일상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의 감정을 현재 진행형의 형태들로 만들어 진다.
김연_illusion_한지에 분채_100×100cm_2011
김연_illusion_한지에 분채_90×60cm_2011

본인의 작업 형태들은 주로 생명체의 변형과정을 주 형태로 이룬다. 그 형체들은 본인이 만들어 가는 거친 형태들도 있고 착한형태들도 있다.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각가지 성향들과 감정을 이번전시에서는 더욱더 병적인 요소들을 나타내고자 한다. 지금까지는 비밀스럽게 숨겨왔다면 새로운 감정의 형체들을 드러내고자 한다. ■ 김연
김연_illusion_한지에 분채_100×100cm_2010
김연_illusion_한지에 분채_45×45cm_2011


W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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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재발견 Deutsche Dinge




독일 현대미술 3인展 2011_1005 ▶ 2011_1204



Anton Stankowski_Foot in plaster cast_사진_18×13cm_1930


초대일시 / 2011_1006_목요일_06:00pm

참여작가 / Tatjana Doll_Eberhard Havekost_Anton Stankowski

갤러리 화이트블럭 개관展

관람시간 / 10:30am~06:30pm

갤러리 화이트블럭 Gallery White Block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72 Tel. +82.31.992.4400 www.whiteblock.org



슈탄코프스키, 하베코스트와 돌의 미술 속의 "독일적인 것" ● 유리 벽 안쪽으로 흰색 공간이 비치는 건물의 외관에 맞는 이름을 가진 화랑, 화이트블럭이 세 명의 독일 미술가의 작품으로 개관전을 연다. 이들은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사진가인 안톤 슈탄코프스키(Anton Stankowski), 유화와 핸드오프셋 판화 작업을 하는 에버하르트 하베코스트(Eberhard Havekost)와 캔버스 위에 페인트(Lack)로 작업을 하는 타티아나 돌(Tatjana Doll)이다. ● 독일 미술사가인 클라우스 클렘프(Klaus Klemp)는 화이트블럭 전시를 위해서 이들을, 직역하면, "독일 것들(Deutsche Dinge)"이라고 불리는 제목으로 모았다. 기획자는 이 전시의 서문에서 이들의 작품을 통해서 독일을 설명하려 하지는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 전시를 위해 선택된 작가들과 작품들을 살펴보면 기획자가 이들을 통해서 독특한 방식으로 20세기 독일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 20세기 미술사 속의 "독일" 미술 ● 현대미술사에서 독일이 남긴 흔적은 세계 어떤 나라의 그것보다 극단적으로 양면적이다. 20세기 초 베를린과 뮌헨을 중심으로 태어난 미술인 표현주의는 당시 열강의 정치적 알력과 무관할 수 없던 미술사가들에 의해 독일적이라고 묘사되었으나 이 미술을 대표한 미술가들과 그것의 영향은 국제적이었다. 베를린은 표현주의와 그 후 다다를 통해서 발터 벤야민(Walther Benjamin)이 "19세기 세계의 수도"라고 부른 파리처럼 미술 중심지가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다다가 취리히, 베를린, 하노버, 쾰른, 파리와 뉴욕 등의 도시에서 진행될 때 베를린의 다다는 다른 도시들에서와는 달리 반 미학을 주장하기보다는 당대의 정치를 비판했다. 바이마르에서 설립된 후 정치적 탄압을 피해 뎃사우와 베를린으로 옮겼다가 폐교당한 바우하우스는 다양한 국적과 전공의 예술가들과 그들의 교육을 통해서 동(러시아)과 서(독일, 스위스, 네덜란드, 프랑스)의 미술을 연결하고 20세기 초의 아방가르드 미술을 제 2차 세계대전 후의 미술로 이어주는 역할을 했다. 신즉물성(Neue Sachlichkeit)으로 불린 다양한 입장의 사실주의적 미술은 양차 대전 사이 독일의 주류 미술이었으나 독일 밖의 20세기 미술사 기술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조명을 받았다. 1933년 집권한 나치당이 일으킨 전쟁과 1937년 전시를 통해 현대미술을 "퇴폐미술"로 낙인을 찍은 사건은 독일만이 아니라 유럽의 미술 토양의 황폐화를 가져왔다. ● 1955년 보데(Arnold Bode)와 하우프트만(Gerhard Hauptmann)이 처음 조직하여 5년마다 개최되는 카셀 도큐멘타가 전쟁 전 독일의 야만적 행위에 대한 속죄에서 시작된 사실이 시사하듯이 전후 분단된 독일 미술에게 있어 독일 현대사의 부담은 지대했다. 현대미술을 탄압한 나치의 관영미술과 옛 동독의 사회주의적 사실주의가 공통적으로 형상적인 미술이었고, 더 나아가서는 인간의 형상이 두 차례 전쟁, 특히 2차 대전을 일으킨 독일인을 연상시킴으로써 독일 현대사에 대한 언급이 터부시되었던 전후 서독에서 형상적 미술은 억압을 받았다. ● 바젤리츠(Georg Baselitz), 폴케(Sigmar Polke) 등, 1950년대 후반 이후 동독에서 서베를린이나 서독으로 넘어 온 미술가들은 추상미술의 패권에 도전하면서 표현주의 선배 미술가들의 전통을 1960-70년대의 사회비판적인 사회 분위기와 결합하여 동년배와 후배 미술가들과 함께 1970년대 말 이후 형상적 회화를 국제적인 미술로 만들었다. 스스로를 "사실주의자"나 "새로운 야수들"로 칭한 이들의 미술을 독일 밖의 미술사가들과 평론가들은 신표현주의로 불렀다. ● 보이스(Joseph Beuys)는 미술과 미술가가 지닌 사회 변혁(transformation)의 역할을 강조했다. 따라서 폴케, 임멘도르프(Jörg Immendorff), 키퍼(Anselm Kiefer), 단(Walter Dahn)이나 오브제 미술가 루텐벡(Reiner Ruthenbeck) 등, 1960년대와 70년대 전반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의 교수였던 그의 제자들에게서 정치적 사안은 주요한 주제가 되었다. 그러나 영미권의 미술평론에서는 그의 미술을 신비주의적인 측면에서 해석했다. 같은 미술학교에서 그가 떠난 후 교수가 된 사진가 베른트 베허(Bernd Becher)와 그의 부인 힐라(Hilla)는 무엇보다 1920년대 독일의 신즉물성 사진을 부활시켜 유형학적 사진으로 불리는 형식으로 지금은 모두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작가로 성장한 그의 제자들과 함께 소위 "베허 스쿨"을 이룩하면서 새 독일 미술전통 하나를 추가시켰다. ●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독일관은 하케(Hans Haacke)와 백남준을 소개했다. 당시 제도비판 미술가인 전자는 정치적 논쟁이 억압당하던 시기인 1965년 독일을 떠나 미국으로 가서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있었고, 전자가 떠난 시기 독일은 새로운 미술 형식을 탐구하던 후자에게는 최적의 인큐베이터를 제공하여, 후자는 비디오 아트를 '탄생'시켜 그것에 보답했다. 옛 동독, 엄밀하게는 라이프치히에서 경력을 시작한 포스트모던한 미술가들은 1989년 통일 후에는 "새로운 라이프치히학파"로 불리며 신자유주의 시대 글로벌 자본의 수혜를 가장 극적으로 받게 되었다.
Anton Stankowski_Man and Woman_사진_18×13cm_1930

슈탄코프스키, 하베코스트와 돌의 미술 속의 "독일적인 것들" ● 일반적으로 독일 미술을 논할 때 위와 같은 이슈들이 자주 거론된다. 이에 따라 독일 미술에서는 미적 향유나 미술 형식의 자율성 보다는 사회적 이슈의 재현을 발견하게 되고 객관적인 사실주의보다는 주관적인 표현주의 미술을 더 독일적인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클라우스 클렘프가 "독일 것들"로 소개하는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미술가의 주관성과 감정을 드러내는 표현주의적인 것이기보다는 객관성과 절제가 두드러진 것들이다. 작품의 대부분이 일상적인 사물과 산업 생산품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이 작품들에서 미술가들의 태도는 문명 비판적이기보다는 중립적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들에서는, 표현방식으로 보면 객관적인 것에서도, 1920년대 신즉물성 회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일상적 사물에 대한 개인적인 시각과 감성이 표현되어 있다. ● 이러한 특징들은 전시 기획자가 독일 역사에서 골라 낸 독일의 특성과 관계가 있다. 슈탄코프스키는, 1930년경에 촬영된 사진이 전시되지만, 1906년에 태어나 1998년에 사망해 거의 20세기 전체의 독일을 경험했다. 하베코스트는 1967년 옛 동독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성장한 반면 여자 작가인 돌은 1970년 옛 서독에서 태어났다. 이들의 상이한 출생 배경은 독일의 일상에 대한 서로 다른 세 개의 시선을 제공한다. 한편 전시 서문에서 기획자는 독일을 자연보다는 산업으로, 그리고 가톨릭보다는 종교개혁과 프로테스탄트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그의 개인적 성향과 연결된 것이기도 하겠지만 독일에 대한 편향된 견해들을 보완해 주기도 한다. 실제로 20세기의 독일은 흑림(Schwarz Wald)처럼 독일 낭만주의 미술이 연상되는 자연으로 유명하지만 벤츠 자동차, 라이카 카메라와 쌍둥이(Zwillinge)표 칼과 같은 산업생산품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하베코스트의 작품들 가운데 자동차와 거기에 비쳐진 자연 풍경은 독일의 산업과 자연을 함께 보여준다. 한편 클렘프가 언급한 칸트의 순수미술과 응용미술의 분류는 일차적으로는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을 무의미한 것으로 생각한 슈탄코프스키의 작품을 설명하는 것이겠지만 쓸모 있는 물건에서도 미적인 질을 강조한 바우하우스의 디자인 철학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Anton Stankowski_Tramps_사진_13×18cm_1930

이러한 맥락에서 안톤 슈탄코프스키의 경력과 그의 사진 작품은 19세기 말 이후 산업자본주의 강국으로서의 독일과 20세기 말 사진이 현대미술의 주류 장르에 편입될 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사진가들을 배출한 나라로서의 독일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화이트블럭에서는 그의 사진 65점이 전시된다. 그는 1998년 92세로 사망한 그는 독일의 대표적인 그래픽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한 예로 우리 눈에도 친숙한 도이체방크의 로고가 1974년에 그가 디자인한 것이다. 이것은 그가 디자인한 많은 다른 로고와 그래픽처럼 그가 그의 교수 막스 부르카르츠(Max Burchartz)을 통해 영향을 받은 구축주의의 특징을 지닌 "구축적 그래픽"이다. ● 1929년 취리히의 광고 스튜디오에서 일하기 시작할 때 슈탄코프스키는 사진스튜디오도 설치했다. 그러나 이때 그는, 당시 그와 교류한 한스 노이부르크(Hans Neuburg)에 따르면, 사진을 그래픽디자인의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사용했다. (Karl Duschek, "Einleitung", Stankowski-Stiftung(hrsg), Stankowski Photos, Hatje Cantz, Stuttgart, 2003, 4)1929년 그는 그의 교수의 도움으로 두 점의 포토몽타쥬를 전시하기도 했으나 1970년대까지도 사진에 대한 그의 견해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2003년 전시도록에 글을 쓴 귀도 마냐과노에 따르면 1979년에서야 그의 사진이 독립적인 장르로 전시될 수 있었다고 한다. (Guido Magnaguano, "Inventar der Gegenstände", 위의 책, 13)1983년 슈탄코프스키 재단이 그 자신에 의해 만들어져 포토아카이브에 현재 4만점 이상의 네가 필름을 소장하고 있다. 2002년에는 그의 고향에서 대규모 사진전이 열렸고, 2006년부터 2007년에는 취리히와 슈투트가르트, 베를린을 포함한 독일 여러 도시에서는 사진, 디자인, 조각, 회화 등, 그의 여러 분야의 작업을 분류하여 소개한 전시가 열렸다. ● 슈탄코프스키의 사진이 1980년 전후 시점에 작가 자신과 미술계로부터 독립적인 장르로 재조명되기 시작한 것은 앞서 언급한 베허 부부의 사진이 1970년대를 지나면서 독일에서 관심을 얻게 된 것을 포함하여 1960년대 이후 미술에서 독립적 장르로서의 사진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특히 잔더(August Sander)의 객관적 사진 전통을 이은 이 부부의 사진은 1960년대에 주관적 사진이 유행하던 독일에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70년 뉴욕의 "정보(Information)"전에 소개되어 그들의 사진에 대한 관심이 미국 개념미술가들로부터 생겨나자 독일 미술계로부터도 관심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사진과 슈탄코프스키의 사진은 대조적이다. 베허 부부는 스케일이 큰 산업 구조물의 전체를 정면에서 찍어 큰 사이즈로 인화했다. 그들은 같은 종류의 구조물을 반복해서 찍어 연작처럼 한꺼번에 전시했다. 그들의 사진에서 땅위에서 솟아오르는 것처럼 보이게 찍혔으며 그림자가 없는 거대한 구조물은 마치 유령처럼 관객을 압도한다. ● 반면 슈탄코프스키의 사진은 은밀한 느낌을 준다. 그것은 인화된 사진의 크기가 작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느낌은 일상적인 물건이나 장면과 같은 그의 소재와 카메라를 통해 피사체와 만나는 그의 독특한 방식에서 온다. 그는 대상을 연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리고 렌즈의 조작을 피하고 눈으로 본대로 사진으로 찍었다. 이에 따라 그의 사진은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며 무엇보다 피사체와 그의 눈 사이에 놓인 거리와 각도를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즉 그의 사진에서 가까이 놓인 사물은 짙은 그림자와 함께 문자 그대로 코앞에 있는 것처럼 보이고, 높이 있는 것은 쳐다 볼 때 작가의 목이 아팠을 것 같으며, 내려다 본 것에서는 현기증이 느껴진다. ● 이것은 그가 사진을 '작품'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주위에서 본 사물들이나 사람들을, 현실적으로는 자신의 그래픽 디자인을 위해서, 기록하려고 찍어서 나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그의 사진은 소재 상으로는 한 독일인의 눈으로 기록된 80여 년 전의 독일의 일상을, 사진 역사의 맥락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전후로 양분되었던 독일 사진의 두 경향을 모두 보여준다. 그의 사진은 연출이나 조작이 없이 피사체를 있는 그대로 찍은 것이라서 객관적 사진의 전통을 잇고 있으면서도 차갑지도 익명적이지도 않다. 사진가의 일기처럼 그의 일상 경험을 전달하는 그의 사진은 주관적 사진처럼 주변의 사물과 사람에 대해 그가 가진 시선을 전달하고 있다.
Eberhard Havekost_Auge, B11(Eye B11)_캔버스에 유채_45×80cm_2011
Eberhard Havekost_Grenze, DD (Border, DD)_Handoffset, 4colored_49.1×34.2cm_2006
Eberhard Havekost_Mantel, DD (Coat, DD)_handoffset, 4colored_36.1×25.1cm_2006

전후 세대인 하베코스트와 돌의 작품에서는 독일의 일상에 대한 각자의 해석이 발견된다. 슈탄코프스키에게서는 카메라가 눈을 닮았다면 하베코스트의 눈은 카메라를 닮았다. 후자는 소재의 일부분을 찍은 사진을 몇 가지 색깔을 사용하여 오프셋으로 제작했다. 대상을 스냅사진처럼 부분을 찍은 듯한 이미지로 표현하는 방식은 그의 유화작품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 전시의 네 번째 방에 7개로 구성된 작품 「우주」(2011)를 「눈」(2011)의 맞은 편 벽에 건 전시 방식은 위의 특징을 매우 직접적으로 보여 준다. "우주"는 평면 TV화면과 CD 플레이어, 풍경과 그 외 식별하기 어려운 이미지들이다. 공학이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세상을 매스 미디어를 통해 간접적으로, 그리고 카메라가, 즉 외눈이 찍은 부분만 인식한다. 「우주」의 맞은 편 벽에 이것을 바라보고 있는 듯이 걸린 "눈"은 카메라처럼 외눈이다. 이 "눈"의 오른 편 벽에 걸린 회색 캔버스는 「신문」이다. "신문"에는 글자가 없고 "눈"은 감각적인 핑크 빛으로 제목이 없이는 눈인지 알기 어렵게 희미하게 그려져 있다. 이 작품들은 이른바 영상시대에 우리가 세계를 문자가 아니라 이미지로, 직접적으로가 간접적으로, 전체가 아니라 부분으로 경험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 메르세데스 자동차, 초콜릿, "볼륨 있는" 여성의 몸, 건물 등, 하베코스트의 핸드오프셋 판화의 소재들은 인간 욕망의 대상들이다. 그러나 부분만이, 그것도 광택 때문에 주변이 비쳐져 실체 파악이 어렵게 표현된 메르세데스 자동차, 창틀에 의해 접근이 막힌 건설 장소, 뾰족한 이파리를 지닌 화초에 의해 시선이 차단된 건물, 등을 돌리거나 얼굴이 잘려 관객과의 교감이 차단된 인물 등, 이처럼 '욕망의 대상들'을 그는 낯설게하기(Verfremdung) 방식을 통해서 이것들을 소유할 수 없음, 즉 그 대상과의 거리를 표현하였다. 가라앉은 색조로 표현된 오브제들은 1960년대 미국의 팝아트 속의 물건이나 인물들과 달리 글래머러스하지 않다. 이것들에는 동독에서 서독으로 넘어 온 화가 폴케가 1960년대 팝아트적인 작품 속에서 유령(phantom)처럼 표현했던 가질 수 없는 사물과 인물처럼 살(flesh)이 없다. 이들에게서는, 사람이 없어 낯설게 느껴지는 그의 건물과 도시 장면에서처럼, 대상에 대한 욕망보다는 그것을 소유할 수 없어 겪게 되는 좌절이 느껴진다.
Eberhard Havekost_Mercedes 4-7_handoffset, 4colored_33×20.9cm_2004
Eberhard Havekost_Zeitung B09 ( Newspaper B09)_캔버스에 유채_280×140cm_2009

하베코스트의 작품에서 부의 상징이자 과시물인 벤츠 자동차의 표면에 선명하게 비친 자연 풍경은 부가 투사하는 자연 이미지다. 자동차는 소유 대상인 반면 자연은 그렇지 않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연도 소유 대상이다. 즉 도시에 사는 사람에게 자동차는 교외로의 접근을 용이함으로써 경제적, 시간적 여유와 함께 자연도 소유 대상으로 만든다. 자동차에 비친 자연은 보는 방향과 자동차 표면의 굴곡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이렇게 계속 변함으로써 자연은 관객에게는 소유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게 된다. 하베코스트의 작품, 「번쩍거림」이 구체적으로 보여주듯이 산업생산품이 지닌 광은 그것의 실체를 현혹시킨다. 물질주의의 상징물이 만든 그러한 번쩍거림 속에서 자연은 독일 낭만주의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 고급 자동차와 컨테이너 문짝은 자본주의를, 「서부전선 이상 없다」라는 제목으로 피카소의 「게르니카」(1937)를 차용한 작품과 총은 세계대전을, 커버 걸은 쾌락산업을, 그리고 "Pikt" 연작은 일상에서 사용되는 기호화된 일방적인 지시 체계인 픽토그램을 상기시키는 등, 돌이 그린 소재들에는 독일 현대사가 압축되어 있다.
Tatjana Doll_BRICK GUN 2 - H&K MP5 VS4_캔버스에 에나멜_50×70cm_2007
Tatjana Doll_CAR_PIG_PORSCHE_캔버스에 에나멜_400×200cm_2006
Tatjana Doll_Container-038_캔버스에 에나멜_190×160cm_2009

돌이 그린 4미터 길이의 캔버스 속의 독일제 고급 자동차 그림은 관객을 압도한다. 그녀는 그것을 실제의 자동차 보다는 소비주의 사회 속에서 도시 도처에서 발견되는 물신주의적인 광고 이미지와 유사하게 그렸다. 그녀는 실제 자동차보다 더 큰 그림을 거리에 전시하기도 하는데, 이를 통해서 그녀는 관객으로 하여금 그/그녀가 경험하는 광고 이미지가 실제 자동차와 얼마나 차이가 나는가를 인식하도록 한다. 동독 출신인 하베코스트는 자동차를 사진을 이용하여 포토리얼리즘적으로 표현했지만 자동차의 부분을 표현하면서 그것을 소유 대상으로보다는 욕망하지만 가질 수 없는 대상으로 보여준다. 반면 돌의 자동차 그림은 현대인에게 욕망을 갖도록 만드는 것이 실제 대상이 아니라 소비주의 사회가 생산한 이미지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그녀는 욕망을 제거하려는 듯이, 또는 그 대상이 실체가 아님을 확인하려는 듯이 자동차를 넓은 붓으로 스케치하듯이 그리면서 페인트 자국을 뿌리기도 하고 캔버스 위에 신발자국까지 만들어 냈다. ● 돌이 사용하는 재료는 현대인의 욕망이 이미지, 즉 시물라크룸을 통해서 구축된 것이라는 사실을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내 준다. 그녀의 작품 속의 자동차나 컨테이너의 광은 그려진 사물의 특징을 묘사한 결과가 아니라 사용된 페인트의 특성에서 나온 것이다. 그녀가 사용한 재료인 페인트의 독일어 동사형, lackieren이 속어로 속이다, 기만하다는 의미를 지닌 것이 시사하듯이 페인트는 그 아래에 있는 것을 가리고 더 나아가서는 모든 것을 동일한 재료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매스미디어는 모든 것을 미디어의 특성을 통해서 동질적인 것으로 만들어 소비하게 만들고, 광고는 광고 기제를 통해서 모든 것을 소비 대상으로 환원시킨다. 실제로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가치는 소비 대상이 가진 모든 종류의 차이를 무시하고 제거한다. 글로벌 자본은 국적의 차이를 없앤다. 이를 통해서 '소비자'는 소비 대상의 실체를 알지 못하게 된다. ● 아울러 페인트는 그것이 칠해진 것에 가해지는 외부의 영향을 차단하기도 한다. 소비주의 기제는 그것의 목적만을 위해 작동한다. 그것은 대상의 이미지를 생산하여 소비를 부추기기 위해 각 대상이 가진 차이를 무시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실제의 크기에 가깝게 그려졌으며 추상회화처럼 보이는 컨테이너 문은 실제 컨테이너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우리가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재현한다고 할 수 있다. 페인트로 그려진 "엠마" 연작에 서로 다른 부제가 부쳐진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Tatjana Doll_DUMMY_EMMA 9 (Traumfrau)(DUMMY_EMMA 9(Dream Girl))_ 캔버스에 에나멜_160×120cm_2010
Tatjana Doll_Im Westen nichts Neues I (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 I)_ 캔버스에 에나멜_300×100cm×7_2009

돌의 이러한 대상 인식 방식은 대상에 대한 무관심의 표현으로 이어진다. 이미지는 스페인의 잔혹한 민간 학살을 그린 「게르니카」를, 제목은 제1차 세계대전을 주제로 한 레마르크(Erich Remark)의 소설 제목을 차용한 「서부전선 이상 없다」나 레고로 만든 총을 그린 작품들은 모두 독일 현대사와 관계가 있으나 사건이나 사안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나 비판이 생략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진지하게 다루고 있지 않다. 이러한 작가의 태도는 일상에서 자주 만나는 약호인 픽토그램과 닮았으나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가진 이미지를 보여주는 "Pikt" 연작에서도 발견된다. ● 이 세 미술가들은 일상을 소재로 하여 사물에 대한 서로 다른 태도를 보여 주었다. 슈탄코프스키의 1930년대 사진에서 사물은 소유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거기에서는 작가와 대상과의 갈등이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전후 세대의 두 미술가에서 독일의 세련된 산업 생산품으로 재현된 일상은 인간이 물질과 갈등하는 현장이다. 하베코스트와 돌은 사물들을 통해서 물질로부터의 소외나 그것에 대한 욕망과의 투쟁을 표현하였다. 이들의 작품이 보여주는 것은 후기자본주의 시대의 독일에서 발견되는 현상이나, 동시에 전 지구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글로벌 자본과 매스미디어의 발달은, 돌이 사용한 페인트처럼, 전 세계인의 취향과 소비 대상을 동질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 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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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나라의 앨리스




박새롬_윤아미_최지선展 2011_1010 ▶ 2011_1019 / 일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1_1010_월요일_06:00pm

관람시간 / 09:30am~06:30pm / 토_09:30am~03: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보다 컨템포러리 GALLERY BODA CONTEMPORARY 서울 강남구 역삼로 북9길 47(역삼동 739-17번지) boda빌딩 Tel. 070.8798.6326 www.artcenterboda.com



?7월 오후,/ 햇빛이 빛나는 하늘을/ 배 한 척이 꿈을 꾸듯이 떠가네.// 옆에 앉은 세 아이들,/ 반짝이는 눈으로 귀를 쫑긋이 세우며,/ 소박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네.// 하늘에 빛나던 햇빛이 저문 지도 오래,/ 메아리는 사라지고 기억은 희미해지고,/ 가을 서리는 7월을 몰아내네.// 하늘 아래에서 움직이던/ 앨리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환영처럼 꿈 속에서 나타나네.// 아이들은 여전히 이야기를 기다리며,/ 반짝이는 눈으로 귀를 쫑긋 세우고,/ 다정히 다가앉는다네.// 세월이 흐르고,/ 여름이 스러져도,/ 이상한 나라에서 꿈을 꾸며 산다네./ 끝없이 흐르는 강물을 따라/ 금빛 햇살 속을 서성이며/ 인생은 한갓 꿈이 아니런가!
박새롬_인천송도_람다 프린트_80×100cm_2010

『거울나라의 앨리스(1871년)』는 영국의 아동 문학 작가 루이스 캐럴의『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의 속편이다. 작품은 배경과 주제와는 상반되는 거울 이미지를 보여준다. 전편은 따뜻한 5월, 야외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카드놀이의 이미지가 사용되었으나, 이 작품은 추운 11월에 실내에서 시작되며 시공간이 자주 바뀌고 체스의 이미지가 사용되었다. 주인공 앨리스는 전편에 등장한 고양이 다이나(Dinah)와 놀다가 거울 반대편의 세상에 들어가게 된다. 앨리스는 그곳에서 다양한 경험과 인물들을 만나게 되고, 체스게임에서 승리하여 이상한 나라의 여왕이 된다. 그 순간 잠에서 깨어난 앨리스는 모든 것이 꿈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위에 적힌 시는 책의 마지막에 실린 내용으로, 저자인 루이스 캐럴 자신의 삶을 은유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지만,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실제모델이기도 한 엘리스에 대한 연민과 아이들의 천진난만함 사랑한 그의 성격과 인품을 잘 드러내고 있다. ● 보다에서 기획한『거울나라의 앨리스』展에 참여한 박새롬, 윤아미, 최지선은 작가로서 오늘이란 시공간을 살아가고 있다. 그들이 꾸는 꿈은 이미지를 넘어선 시각언어로서 재현된다. 세 작가는 자신과 타자와의 만남으로 자신의 인식과 정체성에 대한 작업을 하고 있다. 거울은 앨리스가 꾸는 꿈, 즉 비현실공간, 이상이 존재하는 세계로 통화는 매개체로서 작가들의 작품을 지칭한다. 그들의 작품은 동화『거울나라의 앨리스』속의 현실과 가상현실을 넘나들게 하는 매개체인 거울과 닮은 꼴이다. ● 영혼이 자유로운 상태, 꿈꾸는 대로 이루어지는 세상, 뭔가 새로운 일이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 이런 것들이 어우러져 우리는 동화『거울나라의 앨리스』에 빠져들고, 실제로 우리는 현실세계에서도 이상한 나라만큼이나 신비로운 경험들을 한다. 나 아닌 남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것, 타인을 만나 그의 세계로 들어가 보는 것, 이 모든 것이 어쩌면 무모해 보이는 선택들에 따라 나오는 새롭고 이상한 나라들이다. 그런 나라로 들어가면 자신이 누구인지 묻게 된다. "정말 나는 누구일까?"
박새롬_The climbing Monkey #03_람다 프린트_100×100cm_2007

박새롬은 무의식적으로 계속 잊혀져 가는 기억들을 지금이라는 또렷하게 인지할 수 있는 순간에서 기록을 함으로써 '지금' 뒤에 놓일 기로를 후회 없이 선택하고 싶어 했다. 오랜 기간 고난으로 인해 흔들리지만 꿋꿋하게 살아남는 나무처럼, 잊혀 지려 인지의 끈을 놓는 과거를 현재라는 시간에 가두어 그것을 통해 미래를 다지는 기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즉, 'The climbing Monkey'는 연약하고 부드럽지만 강함을 내세우는 나무와 함께 삶을 조명하는 자화상이다. 세파에 시달려도 꺾이지 않고, 유연하게 대처하여 진정한 '나'를 만들어야 하는 일종의 사명. 그리고 쉽게 발설하지 못했던 각자의 비밀스런 이야기. 'The climbing Monkey '를 통해 이 모든 것들과 은밀하게 관계를 맺으려 한다.(작가 노트 중에서..)
윤아미_At night series_디지털 사진_130×170cm_2010
윤아미_At night series_디지털 사진_130×170cm_2010

윤아미는 현재 진행 중인 이 작업은 인간 내면의 타자성과 결핍과 충족 의 상관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기에 하나의 픽션을 가미 하여 이를 설명하고자 한다. 포커스에 대한 우리의, 나의 시선은 '다름' 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다. 이것으로 말미암은 소외감, 고독감, 고립감을 벌거벗은, 혹은 벌거벗긴 붉은 반점 투성이로 밤에만 숨어지내는 포커스의 캐릭터로 설명하고자 한다. 낡고 헤지고 버려진 폐허와 밤의 어두움은 우리의 이러한 시선, 편견, 내면을 상징 한다. 붉은 반점은 직접 현실과 부딪침에서 오는 물리적 표상물로서 내부로부터 외적 대상을 향한 심리적 거리감을 재현 시킨 것이다. 즉 현실적 삶으로부터 취해진 물리적 심리적 상호 관계를 가시화 한 것 이다. 또한 도트의 의미는 자기 순환적, 주체적 단위성, 등을 내포하고 있다. 다시 말해 내 안의 시선이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것을 말한다. 포커스와 나의 만남은 나와는 다른 객체적 대상과의 만남이며, 나의 내면에 있는 또 다른 타자성과의 만남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자신 안에 '내가 모르는 부분' 즉 타자, 이방인, 외계인을 두고 있다. 이는 무의식에 내재해 있다가 어떤 사건 상황을 통해 고개를 내밀거나, 본의 아니게 마주치게도 된다.
최지선_phobia02_피그먼트 프린트_100×100cm_2011
최지선_phobia03_피그먼트 프린트_60×100cm_2011

최지선의 작업은 공포와 방어기제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가지는 걱정과 불안은 사회와 인간관계 속에서 외면되거나 감추어진다. 너와 나 우리라는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억압된 다양한 심리는 여러 가지 형태로 우리의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관계 속에서 느끼는 두려움과 불안을 나만의 공간에서 홀로 마주해야 한다면 어떤 느낌일까, 그는 사진 속 세계를 통하여 외부로부터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연약한 방어기제를 나타낸다. 본인의 예민한 감성에서 비롯되었다는 그의 사진은 사방이 온통 하얗게 칠해져 있으며 또 숨 막힐 정도로 촘촘히 채워져 있다. 이러한 방법은 공포증에 대한 직접적인 연출을 통해 공포로부터의 갈등을 대리해소 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공포에 대한 이야기를 사진 속에 직접적으로 끌어들임으로써 공포를 치유하는 일종의 동종요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이러한 감정은 그 외부의 공포와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본능이며 작가는 이 원초적 경험을 사진으로 서사화 하고 있다. 또한 타자와의 관계에 대한 괴리로 인해 밖으로 표출되지 못했던 작가의 욕망을 직접적인 방식으로 드러낸다. ■ 박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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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ntry Road




문영미展 / MOONYOUNGMI / 文英美 / painting 2011_1013 ▶ 2011_1105 / 월요일 휴관



문영미_2층집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문영미 블로그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1013_목요일_06:00pm

기획 / 백곤 공동주관 / 갤러리 조선 후원 / 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조선 GALLERYCHOSUN 서울 종로구 소격동 125번지 Tel. +82.2.723.7133 www.gallerychosun.com



덧칠된 도시의 오래된 집 ● 「악의 꽃」, 「파리의 우울」로 대표되는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Charles-Pierre Baudelaire)는 파리라는 도시를 시적 상징으로 보았다. 19세기, 막 시작된 새로운 문명은 도시를 하나의 이념으로 상징화시켜 끊임없는 실험을 감행했다. 오래된 낡은 성벽을 무너뜨리고 큰 도로를 만들고 경계선을 확장하여 거대도시로 탈바꿈한 도시는 타자화된 인간을 낳았다. 소외된 인간이 머물 수 없는 대도시의 거리엔 수많은 산책자들이 모여들었고 풍경이 된 도시와 외로운 자신들을 바라보았다. 끝없이 펼쳐지는 콘크리트 바벨탑의 욕망은 인간을 우울한 현대화로 내몰았다. 보들레르의 시적 상징은 유배된 인간을 위한 서글프면서도 아름다운 도시의 속삭임이었다. 이러한 현대성을 드러내는 달콤한 산업화는 도시와 인간의 삶 전체를 변화시켰다. 마찬가지로 19세기 조선의 초가지붕 위로 불어닥친 개화의 물결은 망국의 역사를 뒤흔들었다. 한 세기가 지난 지금 그 땅 위에서 우리는 전혀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문영미_도레미사_캔버스에 유채_91×116.8cm_2011
문영미_문닫은 가게_캔버스에 유채_91×116.8cm_2011

초고층 빌딩 숲으로 둘러싸인 도시 한복판에 오래된 집 한 채가 있다. 사람들은 그 집을 허물어 화려한 빌딩을 짓자고 했고 재개발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그렇게 오래된 추(醜)한 집은 아름답고 선(善)한 집이 되었다. 현대화의 전략은 이런 선한 도시를 만드는 것에 있지 않은가? 그리하여 끊임없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콘크리트 집적물들을 세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다시 도시로 돌아가 보자. 거기엔 오래되고 낡은 집이 한 채 있다.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산 흔적들을 간직한 집, 우리들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소시민의 집이 있다. 그 집은 오랫동안 이 땅을 지켜왔다. 한국전쟁 이후 폐허가 된 이 땅에 세워진 집은 비와 바람을 피하기 위한 얇은 판자 집이었고, 이후 경제개발과 새마을 운동의 영향으로 점차 집의 형태를 갖추었다. 본격적인 도시화의 시대엔 그 집은 아파트로 대체되었고 현재는 아파트가 집의 상징이 되었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수많은 오래된 집이 있지만 아직도 역사의 기억을 모두 머금은 낡은 집들이 사람들의 키 높이로 내려와 조용하게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도시화의 시각에서 그 집은 단지 새롭게 개발되어야 할 추하고 더러운 집이다. 이 남루하고 오래된 집들이 우리들의 삶과 흔적들을 고스란히 기록하고 있는 가장 한국적이자 아름다운 집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오래되고 낡은 집, 그 집을 그리고자 하는 작가 문영미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문영미_사우나_캔버스에 유채_100×100cm_2011
문영미_삼청동_캔버스에 유채_45.5×53cm_2011

도시 한가운데 혹은 도시의 외곽엔 낡고 남루한 집들이 많이 있다. 그 집들은 재개발을 기다리는 추한 가옥이 아니라 낡았지만 사람들이 애정을 담아 고치고 또 고친 손길 가득한 건축물이다. 비록 한옥과 양옥, 지붕과 콘크리트 벽들이 뒤섞인 어떠한 양식도 드러내지 않고 있지만 나름의 스토리와 감성을 지니고 있는 집이다. 문영미는 이러한 집들에게 다가가 살며시 말을 건넨다. 그러나 그녀는 소곤소곤 따뜻한 이야기를 하지만 직접 그 사람들의 삶 속으론 들어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집 속엔 현대화를 꿈꾸는 사람들의 열망이 잠자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집이라는 것도 사회적인 산물임을 부정할 수 없다. 적정의 거리를 유지한다는 것은 어쩌면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과 흔적을 읽어내는 더없이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그녀는 그렇게 도시를 거닐며 소시민들의 집을 하나 둘씩 읽어내려고 노력한다. 그렇기에 오래된 집은 쓸쓸하지만 적막하진 않다. 왜냐하면 거기엔 적정의 조화가 있기 때문이다. 「호박잎」의 호박 덩굴조차 적절하게 자신이 뻗어나갈 정도를 지키며 집과 하나가 되었다. 오래된 집엔 과하지 않고 적당하게 다른 문화를 받아들인 선인들의 지혜가 드러난다. 그것은 도시를 욕망하는 사회적 집과 현실의 집 사이에서 선택되는 절충의 혜안과도 같다. 문영미는 도시의 낡은 집에서 이러한 포용의 미를 발견한다. 그것은 단지 지붕 하나 창문 하나 일일이 매만져 자신의 삶을 가꾸고자 한 사람들의 노력이 아니라, 삶을 유지하기 위해 용도를 변경하고 여러 자재를 덧붙여 모두 함께 살고자 한 삶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드러내는 미이다. 어쩌면 변변찮은 수입에 자녀교육과 결혼, 가족의 행복을 위해 몸 받친 아버지의 노고가 물들어 있는 집일 수도 있다. 그녀는 바로 이러한 삶의 얼굴을 집의 형상에서 읽어내고자 한다. 이 땅 위에 세워진 집과 그 집에서 고난과 사회적 변화를 함께 겪어온 우리 자신들의 얼굴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것이다. ● 우리들이 살아 온 역사의 자화상이 오래된 집이라고 한다면 우리들은 지금의 삶을 가능하게 한 가장 한국적인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기와지붕과 열려진 대문, 그리고 집밖을 향한 작은 흔적들이 소리치는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어쩌면 조악하고 초라해 보이는 솔직하고 숨김없는 우리 자신들의 모습 말이다. 작품 「사우나」를 살펴보자. 전면으로 드러나는 네모난 건물에 붉고 노란 타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그 모양이 패턴화 된 듯하지만 어떠한 통일감도 없이 이리저리 뒤섞여 있다. 그러나 전체가 조화를 이루며 편안하게 자신의 얼굴을 드러낸다. 그것도 현대적인 도시 한복판에서 말이다. 마찬가지 시선으로 「신영민박」이나 「성우치킨」을 살펴보자. 여기엔 다닥다닥 서로의 삶을 맞대고 살아가는 다가구주택의 얼굴이 드러난다. 없애야 할 재개발의 위협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자 하는 따뜻함과 편안함이 파스텔색의 부드러움으로 잘 표현되어 있다. 그것이 바로 낡고 오래되었지만 정감 있는 우리들의 집 풍경인 것이다.
문영미_제주도_캔버스에 유채_91×116.8cm_2011

도시를 '인간과 돌들로 이루어진 기괴한 집적물'로 바라본 보들레르의 시적 상징은 위협적이지만 매혹적인 풍경으로 다가온다. 삭막한 도시는 자연의 대치어가 아니라 그 속에서 목가적인 서정성의 가능태를 찾아낼 수 있음을, 지저분하고 가난한 빈민촌의 철거가 선(善)의 지향이 아님을, 도시의 삶은 우리들에게 직접 경험하라고 말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도시의 얼굴과 그 속에서 꾸준하게 삶을 이어가는 우리들의 모습은 단지 서로 만날 수 없는 우울함이 아니라 이미 집을 통해 상징화된 하나의 이미지로 드러난다. 그러나 그 집은 단순히 우리들의 얼굴을 재현하는 건축적 구조물로서가 아니라, 현실의 진솔함과 삶의 기억을 기록하기 위해 두터운 물감 층을 덧칠하는 낡은 집으로 표현된다. 그 집은 소외된 산책자를 받아들이는 따뜻하고 정감어린, 남루하지만 화려한 바로 우리 자신들의 삶의 집인 것이다. ■ 백곤
문영미_호박잎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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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조의 방식: Gray징(京)




신선주展 / SHINSUNJOO / 辛善珠 / painting 2011_1013 ▶ 2011_1106 / 월요일 휴관



신선주_hmmmmmm... 상상재설계_캔버스에 오일파스텔, 새김_각 150×200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90905e | 신선주展으로 갑니다.

작가와의 대화 / 2011_1014_금요일_05:00pm

오프닝 리셉션 / 2011_1014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현대_16번지 GALLERY HYUNDAI 16 BUNGEE 서울 종로구 사간동 16번지 Tel. +82.2.722.3503 www.16bungee.com



시각을 가능하게 하는 암흑지점들 ● 여러 나라 말이 조합된 전시부제 'Manière-noir: Gray징(京)'은 회화와 사진의 경계 위에서 여러 차원을 담으려는 작가의 의지가 느껴진다. 전시된 작품들은 부제 그대로 회색 톤의 베이징이다. 흰색/회색/검정색의 세 가지 톤으로 조율된 베이징 풍경은 자금성이나 고택같이 오래된 시간의 층들이 보존된 장소부터 공장이나 공장을 개조한 현대식 스튜디오처럼 기계적 즉물성이 두드러진 장소에 이른다. 어느 곳이건 단순하고 강렬한 느낌을 준다. 그것은 작가가 발견한 장소의 특수성도 있지만, 벨벳 같은 느낌을 주는 진한 블랙의 추상적인 색 면과 분석적으로 포착된 피사체의 각도에 힘입은 바 크다. 오일 파스텔로 칠해진 면을 니들로 긁어서 만든 섬세한 톤은 강한 구도와 색 면을 보충한다. 이번 전시는 2009년 열렸던 'Manière-noir: Beijing Photos' 전과 작품 자료를 공유하지만, 드로잉과 회화적 과정에 더 방점이 찍혀있다. 신선주는 국내외에서 회화와 사진을 모두 전공했다. 그러나 회화를 먼저 시작한 그녀에게 손끝 하나하나를 통해 만들어지는 회화는 도구나 매체의 역할을 할 뿐인 사진에 비해 더 애착이 간다.
신선주_The Ullens Center for Contemporary Art (UCCA)_캔버스에 오일파스텔, 새김_140×150cm_2010

장소성이 어느 정도 유지된 상태에서, 블랙과 화이트를 대조하는 회화적 게임은 작가에게 언제 끝날지 모르는 흥미진진한 과정이다. 인적이 없는 풍경들은 고요하고 적막하다. 흰색과 회색, 검정의 색 면으로 치환된 건물과 건물 사이에 흐르는 공기의 흐름만이 차분함 속에 잠재적 움직임을 부여할 뿐이다. 신선주의 작품은 장소성에 충실한 풍경으로부터 출발하지만, 기하학적 면 분할이 두드러진다. 장소를 찍을 때부터 구도는 세밀하게 조율된다. 서로 다른 톤의 두 건물이 맞물려 있는 작품 「2 chimneys」는 여러 가지 무채색이 적당한 비율로 배치된다. 작품 「MK2 art space」는 검정으로 무게 중심을 준 아랫부분, 흰 면으로 표시된 빛의 영역, 회색 하늘, 여러 회색 톤의 건물 배치가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이다. 화면의 추상적 균형을 위해 실제 장소는 변형되기도 한다. 공장처럼 군더더기 없는 기능적 장소가 정면으로 포착된 작품 「hmmmmmm...상상재설계」의 오른쪽 날개부분은 사진을 뒤집어 다른 장면의 어깨에 붙인 것이다. 고전적인 정면성에 충실한 신선주의 작품은 문처럼 대칭적인 구도를 가진 장면들이 많이 등장한다.
신선주_順貞門_캔버스에 오일파스텔, 새김_150×170cm_2011
신선주_hmmmmmm... 상상재설계_캔버스에 오일파스텔, 새김_150×200cm_2011

정면성이나 대칭성은 화면의 블랙과 함께 관객을 깊이 몰입시킨다. 작품 「順貞門」은 아치형 안에 건축물을 보여주는데, 건축적 구조가 하얀 하늘 부분을 감싸 안는다. 작품 「Old house in Beijing university」는 블랙으로 감싸인 문 안에 또 다른 문이 있다. 장소의 폐쇄성은 문을 에두른 블랙에 의해 강화된다. 출품되지는 않았지만 작품 「gap」이나 「HeiQiao-studio」처럼, 원근법적 구도를 가지는 경우에도, 화면은 육중한 자물쇠로 감겨있다는 느낌이다. 하늘은 블랙과 회색 톤의 인공적 구조물 사이에 놓인 하나의 틈일 뿐이다. 그러나 빛과 어둠 사이의 대화를 통해 작품을 진전시키는 과정 속에서, 닫힘은 열림을 위한 전제조건일 뿐이다. 신선주의 작품에서 두드러진 명암 대조는 풍경이라는 소재와 어우러져 빛과 어둠 사이에 펼쳐진 드라마를 낳는다. 인간의 상징적 우주에서 빛은 명백함을, 어둠은 혼돈의 영역을 차지한다. 그래서 빛은 진리나 계몽의 은유로 간주되었지만, 신선주의 작품에서 빛은 어둠을 강조하는 배경에 머문다. 사진이 빛을 인화지에 고정시킨 것이라면, 회화는 손으로 꼭꼭 눌러서 칠해지거나 긁어낸 무채색의 면이다. 투명한 형식이라기보다 불투명한 질료의 영역에 가까운 블랙은 끝없는 동굴이나 바닥모를 심연 같다. ● 이 영역은 블랙홀처럼 시선을 급속하게 빨아들이지만, 시선은 머무를 곳을 찾지 못한 채 방황한다. 여기에는 기계적 시점(=사진)의 순간성과 시간성을 담지 하는 육안의 운동이 공존한다. 블랙 영역에서 눈을 감는 것과 뜨는 것의 차이가 없다. 현전에 충실한 시각적 인식의 모델은 근저로부터 무너진다. 이 보이지 않는 영역은 플라톤이 말한 코라와 닮았다. 플라톤은 「티마에우스」에서 '볼 수도 없고 형식도 없는 어떤 것이면서도 모든 것을 담고서 영원한 본질들을 생성의 유희로 끌어들이는 그 그릇(=코라)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묻는다. 그에 대한 대답은 '그 대상들에 관한 우리의 시각은 우리가 보지 않는 것, 그리고 정확히 무엇을 볼 수 없는 것에 대한 시각으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즉 우리의 시각의 맹목이다. 혹은 맹점(盲點)이다. 존 맥컴버는 이러한 주제를 다룬 논문 「데리다의 시각폐쇄」에서 맹점 주변에 조직된 시각은 볼 수는 없지만, 우리 시계의 형태와 범위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우리가 볼 수 없는 어떤 것을 보여주는 신선주의 작품은 맹점 주변에 조직된 시각인 셈이다. 그것은 '진리의 은유로서의 빛' (한스 블루멘베르크)이라는 '형이상학을 낳는 시각의 폭력을 파열하는'(데리다) 또 다른 시각이다.
신선주_Old House in Beijing University_캔버스에 오일파스텔, 새김_100×120cm_2010

존 맥컴버에 의하면 플라톤이 말하는 맹점은 우리가 볼 수 없는 태양이다. 그리고 바로 이 사실로 인해 맹점은 형식 자체의 영역, 존재를 넘어선 그 어떤 것을 근원으로 하는 충만함을 구조화하는 것이다. 신선주의 작품에서 시각의 대상은 더 이상 현전이 아니다. 그것은 형식이라기보다는 '흔적'(데리다)이다. 자신의 맹점 주위에 조직되는 시각이란 흔적 그 자체를 향해 열린 시각이다. 안료의 진한 밀도로 뒤덮인 블랙은 역설적으로 공이나 허의 공간처럼 보인다. 맹점과 맹목으로부터 시각이 가능하듯이, 이 공과 허의 공간으로부터 실재가 가능해진다. 이 암흑의 지점(들)은 작품 속 현실 그 자체를 구조화하고, 실재적인 것에 내적 일관성을 부여하는 허구이다. 이 허구가 사라지면 나머지 현실도 힘을 잃는다. 그것은 미란 보조비치가 말한 '암흑지점'과 같다. 그는 「암흑지점」에서 근대 초기 제러미 벤섬이 고안한 원형 감옥, 즉 완전히 투명하며 빛으로 가득한 판옵티콘 우주 속에서 비가시성의 실체를 논한다. 그에 의하면 모든 죄수를 응시할 수 있는 암흑 지점이라는 하나의 허구(상상, 비존재)가 일망 감시체제를 작동시킨다. 조망적 시점이 많은 신선주의 작품--가령, 대칭적 풍경 중심이 블랙으로 채워져 있는(또는 뚫려있는) 「불향각」(2009)같은 이전 작품의 예--에서 이 모델은 발견된다.
신선주_Two Chimneys_캔버스에 오일파스텔, 새김_31.8×40.9cm_2011

판옵티콘은 근대사회의 정치경제학적 구조와 연결되지만, 동시에 결여를 통해 작동하는 힘(권력)의 기제를 알려준다는 점에서, 시각 예술에서도 의미 있는 모델이 된다. 감시하는 자의 응시는 가시적인 것의 한계를 넘어 비가시적인 것으로까지 확장된다. 감시자가 검은 실루엣으로만 드러나는 감시등실은 모든 것을 보는 응시의 재생을 위한 도구이다. 신선주의 작품 속 블랙은 투명한 거울이 아닌, 불투명한 그림자의 모델에 가깝다. 르네상스 이래로 주도적이었던 거울의 모델은 중심으로부터 뻗어 나오며 유기적인 질서로 조직되는 재현적 공간을 낳았다. 이에 부합되지 않는 무질서는 결여와 부재로만 정의된다. 그러나 신선주의 작품에서 짙은 그림자처럼 드리워진 블랙은 이 무질서의 영역을 활성화한다. 빅토르 스토이치타는 「그림자의 짧은 역사」에서 최초의 유사물이 만들어진 것은 그림자로부터였다는 사실, 즉 예술적 재현의 탄생이 음화(陰畵)에 있다는 것을 밝힌다. 그는 고대 플리니우스의 「박물지」에서 회화가 선으로 윤곽을 그린 인간의 그림자에서 최초로 태어났다고 말한다. 회화가 처음 나타났을 때 그것은 신체의 부재와 그 투영된 형상의 존재가 포함되어 있었다. ● 이 경우 실물에 대한 그림자의 유사성은 결정적이다. 사진 역시 대상과의 물리적 연관성을 가지는 지표(index)로 간주된다. 신선주의 작품에서 블랙은 도상적 유사물인 지표를 잠식한다. 그것은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처럼, 반(反)재현적 본성을 보여준다. 빅토르 스토이치타는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이 무대의 커튼으로 처음 착상되었다고 밝힌다. 커튼은 재현이 아니라 가리는 것이고 혹은 걸어놓음으로서 재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신선주의 작품 속 블랙 역시 사각형을 채운 블랙처럼 재현을 가능하게 하는 의미의 체계들을 불확실한 것으로 만든다. 또는 원근법과 통합된 그림자 투사로서 '그림자로 그리기'(스토이치타) 라는 방식이다. 현대에 와서 미메시스의 대표자가 된 사진은 그 정점에서 미메시스의 힘을 무장해제 시켜버린다. 신선주의 작품에서 고전적 균형을 이룬 신비한 고요 속 블랙은 '광학적 공간을 만드는 손가락이 아니라, 촉각적 공간을 만드는 손'(들뢰즈)을 복구하는 장이다. 그것은 기력이 쇠해진 회화에 잠재태들이 우글거리는 야생적 바탕을 복원시킨다. ■ 이선영
신선주_MK2 Art Space_캔버스에 오일파스텔, 새김_150×150cm_2010


Shin, Sun J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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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core! mist age




정효영展 / JUNGHYOYOUNG / 鄭孝永 / sculpture 2011_1014 ▶ 2011_1105 / 일요일 휴관



정효영_Encore! mist age_인조가죽에 손바느질, 실, 코튼, 와이어, 베어링, 장난감, 보드, 모터, 센서_160×130×310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정효영 블로그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1014_금요일_05:00pm

2011 Shinhan Young Artist Festa

런치토크 / 2011_1028_수요일_12:00pm 미술체험 / 2011_1029_목요일_03: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 휴관

신한갤러리 SHINHAN MUSEUM 서울 중구 태평로 1가 62-12번지 신한은행 광화문지점 4층 Tel. +82.2.722.8493 www.shinhanmuseum.co.kr



기억력으로 복원된 mist age ● 작가 정효영의 작업 앞에서 내린 결론. '기억력이 참 좋구나'. 그런데 개인적으로 알고 지낸 작가는 과거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난감하다. 기억을 중심으로 한 두 명제가 너무도 모순되지만 두 가지 다 옳은 것 같으니,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일반적으로 기억이란 과거의 경험이나 인상이 의식 속에 간직된 것으로, 기억력이 좋다는 것은 저장된 기억을 정확하게 펼쳐 보이는 능력이다. 게다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을 보는 등 대부분의 기억 활동이 머리에서 이루어진다고 여겨진다. 기억력의 향상은 곧 뇌 기능의 활성화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런데 작가의 작품들을 보면 인간의 기억을 두뇌활동만으로 규정지을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 사실 '기억'의 한자어 기(記)는 '스스로 생각한 바를 곧바로 찔러서 말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기(記)'는 말을 뜻하는 언(言)자에 몸 기(己)자가 붙어 있어, 말과 함께 그 행동(行動)이 함께 한다. '기(記)'란 온 몸의 언어로 행(行)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억(憶)'자는 본래 '생각하다'이다. 하지만 이 또한 단순히 머리로 헤아리는 것이 아니다. 뜻과 기억을 의미하는 '意'자에 마음 심(心)자가 붙어 있어,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는 것이다. 결국 기억이란 과거의 잔상만이 아니라, 지난 시간의 언행이 몸과 마음 깊이 새겨진 흔적임을 알 수 있다.
정효영_Supersensible clash_인조가죽에 손바느질, 실, 장난감, 나무, 와이어, hose, 테이블, 모터, 센서, LED light_110×170×65cm_2011
정효영_The really monument_인조가죽에 손바느질, 실, 코튼, 와이어, 베어링, 장난감, 나무, 모터, 센서_220×90×70cm_2011
정효영_Kyak!_인조가죽에 손바느질, 실, 코튼, 나무, 모터, 센서_120×50×80cm_2011

작가가 보여주고자 했던 기억이란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그 기억은 전시 제목 'mist age'에서 알 수 있듯 과거의 이미지만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감각, 습관적인 행동, 무의식적인 반응 등 몸 곳곳에 배어있는 기억의 흔적이란 것이 있다. 이러한 기억은 머리로 떠올린 과거가 아니라 온 몸으로 느끼고 체험해야만 알 수 있다. 가령 'wrinkled orbit mobile'은 개인적으로 어지러움을 느끼게 한 작품이었다. 물론 작품 자체가 어지럼증을 유발한 것은 아니다. 천정에 매달린 채 천천히 돌아가는 모빌을 보자 몸이 어떠한 심리적인 이유로 강한 어지러움을 느꼈을 뿐이다. 그 원인을 찾으려 습관적으로 과거의 필름부터 돌리려 했지만 바닥에 누워만 있던 영아기 때의 기억은 어디에도 없고 몸의 반응만 존재했다. 신기한 건 이 작품을 비롯한 7점의 작품이 단순히 작가 개인의 기억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 앞에 선 사람들의 몸이 간직하고 있는 기억을 건드리고 있다는 점이다. 'supersensible clash'작업도 그렇다. 이 작품 앞에만 서면 유치원 때 느꼈던 강한 불안감이 증폭된다. 그 당시의 장면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매우 엄격한 선생님의 감시 속에서 마음대로 뛰어 놀지 못했던 불만이 강한 불안으로 남았던 것 같다. 'supersensible clash'작업 앞에서 비로소 지금까지도 누군가의 고정된 시선을 느끼면 불안감에 몸이 경직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무 소리 없이 강박적으로 충돌만 반복하는 차량, 멋지게 꾸며진 배경을 소리 없이 비추는 빨간 불빛 등. 이 작업은 어린 시절 내 몸이 처했던 그 시공의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한 인간이 관통해온 무수한 시공의 기록이 다름 아닌 그의 몸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음을 이 작품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것이 작가의 의도이든 아니든, 작품과 보는 이의 몸에 간직된 기억을 동시에 일깨우는 것이 작가의 작품이 지니고 있는 또 다른 힘이다. 물론 작가가 만든 형상 앞에서 작가와 관객 모두 비슷한 감각만 공유할 뿐, 그것의 원인이나 실제 사건은 판이하게 다르다. 하지만 전혀 다른 기억임에도 불구하고 깊숙하게 각인되어 있는 몸의 기억을 일깨우면, 작품의 형상이 나타내는 기억의 한 단면과 자신의 것이 동일한 차원의 감각이나 느낌의 것임을 잘 알 수 있다. ● 여기서 모호한 기억의 실체를 찾기 위해 머리를 굴려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뚜렷하게 밝히려 할수록 끝없는 망각만을 드러낼 뿐이다. 그 기억 자체가 'mist age'이기 때문이다. 안개에 갇혔을 때를 생각해보자. 그 안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을 애써 찾아 헤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mist age'의 기억도 마찬가지다. 모호한 기억은 그 자체로 남아 있을 뿐, 그것은 더 정확하고 확실한 무언가를 가리고 있는 방해요소가 아니다. 그래서 작가는 보이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비로소 그 전체의 존재를 드러내는 안개처럼 흐릿한 기억의 흔적을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정효영_Collector_인조가죽에 손바느질, 실, 코튼, 와이어, 장난감, 모터, 센서_60×150×100cm_2011
정효영_Wrinkled orbit mobile_인조가죽에 손바느질, 실, 코튼, 와이어, 베어링, 장난감, 스프링, 호스, 모터, 센서_90×75×75cm_2011

작가는 한발 더 나아가 모호한 기억들을 바깥으로 꺼내는 작업을 시도했다. 워낙에 모호한 기억을 펼쳐놓았기 때문인지 처음에는 다소 애매모호하고 흐릿해 보였다. 하지만 그것들의 틀을 잡아주고 표피를 뒤집어씌우자 각자 신체의 한 부분들이 반복적으로 움직였다. 형상들이 표현한 쾌락, 기쁨, 고통, 바램 등의 움직임은 아주 먼 시간으로부터 지금까지 축적되어 온 다양한 몸의 언어이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망각의 덩어리들에 지나지 않지만, 몸이 반응하는 그대로 이해한다면, 그것들의 형체와 언어만큼 투명한 기억의 실체가 또 있을까 싶다. ● 이 글을 시작할 때 작가의 기억력이 좋다고 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과거의 잔상을 반복적으로 떠올리듯 우리의 몸 또한 매 순간 그 속에 각인된 과거를 나름의 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몸의 언어를 잘 이해하고 있으며, 그곳에 고여 있는 과거와 소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떠도는 기억을 가만히 방치하면 그저 망상이나 망각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들이 쌓이면 트라우마를 비롯한 마음의 병 등이 되어 그저 한 인간의 삶을 방해하는 잉여로만 작용할 수 있다. 물론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에게는 어차피 미래에 대한 희망과 꿈조차 과거를 기반으로 한 것에 불과하다는 건 인정한다. 다만 어떤 이들은 지나간 시간을 있는 그대로 체념하며 넘기고, 작가는 그러지 못할 뿐이다. ● 작가는 현재를 관통하는 힘으로서의 기억을 제시한다. 그에게 기억은 과거의 동일한 재생과 반복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기억력은 단순한 뇌의 능력 이상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때문에 작가는 과거를 떨쳐 버리거나 부정하라는 섣부른 메시지를 전하지도 않는다. 다만 자신의 몸 속을 떠도는 모호한 기억의 흔적을 찾아 그것이 어떻게 현재의 삶에 녹아 들게 만들었는지를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 ● 그 결과 안개처럼 흐릿하기만 했던 기억은 오랜 시간을 거친 손바느질로 그 실체가 드러났다. 처음에는 기억의 자리를 찾아 헤매다 드로잉 작업으로 그 실체를 밝혀나갔고, 이후 약 1년간의 손바느질 끝에 지금과 같은 형상으로 완성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처음에 작가는 각 형상들이 지니고 있는 촉수의 반복적인 움직임에 집중했다. 색색의 실이 돌돌 감겨 있는 형상들은 가는 와이어에 묶인 채 간신히 촉수만 움직이고 있다. 각각의 와이어들은 누군가가 만든 것이 아니다. 형상들의 삶 속에서 만들어진 무수한 관계, 규칙, 환경, 등을 상징한다. 복잡하게 얽힌 와이어는 그 출처나 기원을 알 수 없으며, 아무리 애써도 벗어나기 힘든 단단한 삶의 틀로 작용하고 있다.
정효영_Humming for beauty_인조가죽에 손바느질, 실, 코튼, 장난감, 반사지, 스티로폼 볼, 모터, 센서_70×80×80cm_2011

작가가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 하자 먼저 몸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몸 구석구석에서 그것들을 거부하고 도망치려는 지점이 발견된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몸에 각인된 기억을 상기하자마자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벗어나고자 격렬하게 몸부림 칠 때마다 자신이 만든 단단한 와이어들이 더욱 옥죄어 와서 나지막한 신음밖에 되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자칫 마음의 병까지 만들 뻔했던 과거의 흔적들을 그대로 놔둘 수도 없어 작가는 이를 직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조각들을 꺼내 하나의 형상으로 완성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워낙에 모호하고 파편화된 것들뿐이다 보니 단순히 그리고, 깎고, 붙이는 작업만으로는 불가능했다. ● 이에 작가는 단단한 와이어를 둘러싼 실 뭉치를 이용해 기억의 파편들을 하나하나 이어 붙여 나가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mist age'라는 시간에 'encore!'를 외쳐주기까지 약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7점의 거대한 형상들에 새겨진 손바느질의 흔적을 보면 작가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부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그렇게 지난 1년 이야말로 작가의 인생에 있어 가장 힘든 시간이었겠지만, 그 시간에 감히 'encore!'를 외칠 수 있어 가장 후회 없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 하루하루 예술작업을 하며 매 순간을 새롭게 살아야만 하는 게 작가의 삶이다. 작가 정효영 또한 예외가 아니다. 그렇기에 작가는 앞으로도 모호한 기억들로 인한 괴로움으로 삶을 낭비하고 감추는 대신, 그것들을 바깥으로 꺼내 현실의 재료로 적극 이용해야 한다. 지나온 시간이 예술작품으로서 현실에 발붙이고 살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작가의 역할이니까. 앞으로도 작가의 손바느질 작업은 다소 시간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뛰어난 '기억력'은 그처럼 힘겹게 작업하는 동안에만 제대로 발휘될 것이다. ■ 정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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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inting workers




이경하展 / LEEKYOUNGHA / 李京夏 / painting 2011_1014 ▶ 2011_1105 / 일,공휴일 휴관



이경하_A worker_캔버스에 유채, 목탄_130×130cm_2011


초대일시 / 2011_1014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월~금요일 09:30am~07:00pm / 토요일 09:3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표갤러리 사우스 PYO GALLERY SOUTH 서울 강남구 청담동 118-17번지 네이처포엠빌딩 B112호 Tel. +82.2.511.5295 www.pyogallery.com



절망과 불안을 잠식하는 그리기의 힘 ● 이경하가 이번에 개인전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이전 전시와는 다른 맥락을 보이고 있다. 여전히 배경은 흑백 목탄으로 그려지고 인물들은 컬러 유채로 그려지지만 배경과 인물과의 관계는 주도권에서 있어서 달라지고 있다. 그것은 배경과 마주한 인물들의 직업과 태도 변화에 기인한다. 소극적이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던 인물들은 자신이 어떤 일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드러내며 '그리기'란 노동을 통해 자신이 처한 막막하고 불안한 상황을 지워간다. 이로 인해 배경의 위상도 달라지는 것이다. 그들은 페인트 칠을 하며 검은 목탄 배경을 잠식해간다. 위용을 떨치며 화면 속 인물들을 엄습하는 것처럼 보이던 배경은 더 이상 화면에서 주도적이지 않다. 어쩌면 처음부터 위용이라는 것은 없었는지도 모른다. 원래 그냥 그렇게 있었을 뿐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물들의 확연한 변화는 배경의 존재마저도 다르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경하_Cover with blue_캔버스에 유채, 목탄_145×145cm_2011
이경하_painting_캔버스에 유채, 목탄_200×200cm_2011

이전 작업에서 검은 망망대해(茫茫大海)를 한 구석에서 내려다보던 사람들, 들판 위 침낭 속에 폭 파묻혀 자는 인물, 작은 우산으로 비바람을 막는 사람, 텐트 치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정복할 수 없는 산을 정복하기 위해 비장하게 걸어가는 등산복을 입은 인물들은 모두 수동적이거나 절망적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하여 그들이 바라보는 풍경은 먹먹하다 못해 막막하다. 그들은 그들이 원한 상황도 아닐뿐더러 그들의 현 상황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어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관광 홍보물을 보며 대리만족을 하거나 당하고 있을 수 밖에 없다. 몹시 추운 날씨이거나 비바람이 몰아치는 거친 날씨는 그들을 돕지 않는다. 그들이 기꺼이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은 그들을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마치 휴가를 나온 듯 수영복 차림이거나, 우비나 판초 차림으로 자신을 감춘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 인물들은 이제 더 이상 그러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이경하_A ladder work_캔버스에 유채, 목탄_145×145cm_2011

이들은 묵묵히 자신의 일을 수행한다. 자신이 완수해야 할 일을 회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무렇지 않은 듯 불안한 심리적 풍경이 되어 버린 배경을 뒤로 하고 열심히 전선 작업을 하거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색으로 덮어간다. 단 하나의 생명줄에 매달려 하나의 화면을 메워 가는 페인트 공들은 전혀 배경의 강한 어조에 주눅들지 않는다. 그들의 발 아래 펼쳐져 있는 먹구름이 가득하고 무슨 일이라도 금방 일어날 것 같은 악몽 속 스산한 풍경은 그들의 붓터치로 악몽에서 현실로 나오지 못한다. 불안해 보이는 사나운 목탄 숲도 힘을 잃어 버린다. 페인트를 칠하는 이들의 노동은 단순 노동이지만 암울, 불안, 절망을 담고 있는 배경을 무력하게 하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오히려 그들의 무심함과 근면함을 바탕으로 하는 노동이 답답한 일상을 탈출하는 유일한 방법이 되는 것이다. 오래된 과거를 담고 있는 배경을 어떤 색으로 새롭게 칠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그 과거를 지워가는 것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러한 동시에 발생하는 칠하기와 지우기란 노동행위는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하여 그가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동시에 아픈 기억에서 벗어나는 치유의 과정인지도 모른다.
이경하_painting worker_캔버스에 유채, 목탄_97×97cm_2011

칠하기와 지우기를 함축하고 있는 '그리기'는 노동이란 측면에서 작가에게도 다르지 않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 행위를 '아티스트적'인 어떤 것으로 격상시키기 보다는, 벽을 칠하거나 도로에 선을 긋는 도색공(塗色工)처럼 자신이 처한 상황을 거부하지 않고 묵묵히, 담담히, 그리고 다소 결연하게 받아들인다. 하루 종일 온 몸에 물감을 묻혀가며 묵묵히 밑 작업을 하는 자신의 노동을 통해서 말이다. 그렇기에 그가 그린 'painting worker' 연작 속 인물들은 작가의 분신과도 같아서 더 이상 휘몰아치는 비바람을 온 몸으로 막지도 않으며 자신의 눈 앞에 보이는 상황을 막막하게 바라보지도 않는 것이다. 끝을 알 수 없는 어두운 터널을 부단히 걸어가고 있는 현재인 것이다. 어디가 끝이고 언제 다 갈까 하는 막연함 때문에 걱정하기 보다는 자신이 현재 할 수 밖에 없는, 가장 잘 할 수 있는 '그리기'란 노동을 통해 현재를 견뎌내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노동은 막막한 현실에서 겪게 되는 절망감과 불안감을 잠식시켜 버린다. 이 부정적인 감정들은 작가를 정복할 수 없다. 마치 아이가 자신의 뒤 편에 자신을 삼켜버릴 것 같은 바다가 있음에도 열심히 어떤 곳을 향해 달려가기에 그 바다도 그를 덮칠 수 없듯이 말이다. ■ 유영아
이경하_map in the woods_캔버스에 유채, 목탄_130×130cm_2011
이경하_a lining worker_캔버스에 유채, 목탄_130×130cm_2011


The Power of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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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 Humanism




2011_1013 ▶ 2011_1109



장종완_The holiday_종이에 색연필_78×111cm_2010


초대일시 / 2011_1013_목요일_06:00pm

참여작가 게릭 크루즈 Geric CRUZ_박형지 Hyungji PARK 김진희 Jinhui KIM_장종완 Jongwan JANG 메이로 고이즈미 Meiro KOIZUMI 아울 시티 Owl City_유키 오흐로 Yuki OHRO

주최, 주관 / 대안공간 루프

관람시간 / 11:00am~08:00pm

대안공간 루프 ALTERNATIVE SPACE LOOP 서울 마포구 서교동 335-11번지 Tel. +82.2.3141.1377 www.galleryloop.com



식물과 동물이 탄생하던 진화의 거대한 들판, 나라는 것을 결정하던 의지는 어디에 있었던가. (허수경의 시) 이 세상에 하나의 생명으로 던져진 모든 자들은 하나의 생 동안 난민으로 떠돌다 찰나의 순간에 고요히 스러진다. 모든 자에게 유사한 운명이 주어졌음에도 그들 중 일부는 법과 규칙을 만들었고, 존귀하게 여겨야 할 대상과 그렇지 않은 대상을 구분하기 시작하였으며, 눈 앞에서 정확한 결과가 도출되는 수학과 과학에 의존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때는 집단무의식이 강하게 작용하여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신이라는 거대한 존재를 의심 없이 수용하였고, 그 위대한 이가 창조한 세계를 숭고라는 미학적 용어를 적용하며 일방적으로 사랑해왔다. 하지만 마치 태어날 때부터 머무르던 암흑의 동굴을 탈출이라도 하듯 언제부터인가 스스로 가치를 발견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으며,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신만큼이나 놀라운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터득하게 되었다. ● '첫 번째 휴머니즘'이 탄생하게 된 배경은 이와 같다. 우리는 이번 전시에서 '두 번째 휴머니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유키 오흐로_Pageant_단채널 비디오_00:03:20_2010
아울 시티_Fireflies_뮤직 비디오_00:03:54_2010
메이로 고이즈미_My Voice Would Reach You_단채널 비디오_00:16:45_2009

과거의 휴머니즘은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사상의 전환이 이뤄지는 것을 의미했다. 이는 수동적이고 객체적인 인간이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인간으로 변화하는 것을 의미하였으며, 인간 중심의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발전시키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하지만 이처럼 도래한 휴머니즘은 새로운 폐해를 낳았는데, 새로운 계급을 만들면서 인권을 유린했으며, 인간을 배제한 산업의 발전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 따라서 과학기술이 현저히 발달한 21세기에 새롭게 요청된 이념 중 하나가 '포스트 휴머니즘'이다. '휴머니즘 이후'를 말하는 각각의 사상 안에는 서로 다른 의도와 목적이 포함되는데, 거기에는 과학기술문명의 발달로 야기된 인격 유린 현상 앞에서 반성적 태도를 요구하는 '반-휴머니즘적 포스트 휴머니즘과 '과학 기술의 도움으로 우월한 능력을 지니게 된 인간을 새롭게 만물의 중심에 올려놓고자 하는 '트랜스 휴머니즘'이 있다.
게릭 크루즈_Where I End and You Begin_사진_30×91cm_2011
박형지_What Happened is Unknown_But ...is Crystal Clear 2_캔버스에 유채_77×102cm_2010
김진희_Access Point_혼합재료_90×40×29cm_2009

우리가 이 전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전자에 가깝다. 즉 '비인간적 요소 안에서 인간을 사유'하며, '인간 이외의 존재들과 공존하는 새로운 윤리적 지평'을 열어놓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이는 과거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전환된 사건을 기계 중심에서 인간 중심과 생명 중심으로 되돌려놓는 것으로, 그 표현 방식은 서정적이고 영적인 것이 될 것이다. ● 하지만 이러한 표현이 과거로 회귀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이 전시에 포함되는 작품들은 누구나 가슴에 품고 있는 아련하고 촉촉한 감성과 비-현실적이고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근원적 갈망을 담게 될 것이다. ■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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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화원대전




朝鮮畵員大展 2011_1013 ▶ 2012_0129 / 월요일 휴관



김득신 외 金得臣 外_화성능행도 8곡병 華城陵幸圖八曲屛_비단에 채색_각 147×62.3cm_1795년경_보물 1430호 Gim Deuk-sin et al_Royal Procession to the Ancestral Tomb in Hwaseoung_Colors on silk_147×62.3cm each_Joseon Dynasty, ca. 1795_Treasure No. 1430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조선화원대전_일반 7,000원 / 초중고생 4,000원 상설전_일반 10,000원 / 초중고생 6,000원 Day Pass(상설+기획전 패키지)_일반 13,000원 / 초중고생 8,000원 * 예약제 없이 편리하게 Leeum을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 20인 이상 단체 예약 필수(관람료 할인)

관람시간 / 10:30am~06:00pm / 월요일 휴관

삼성미술관 리움 기획전시실 Samsung Museum Of Art Leeum 서울 용산구 한남2동 747-18번지 Tel. +82.2.2014.6901 www.leeum.org



조선시대는 우리나라 역사상 회화가 가장 크게 발달했던 시대였다. 많은 작품이 남아있을 뿐만 아니라 그 수준도 매우 뛰어났으며, 각 시대를 대표할 만한 여러 화가들이 등장하여 화단을 풍미하였다. 그 가운데에'화원 (畵員)'이라 불리는 화가들이 있다. 이들은 도화서(圖畵署)에 소속되어 화원, 화사(畵師), 화사(畵士), 화사(畵史), 화공(畵工) 등으로 불렸으며, 뛰어난 필력을 가지고 국가의 회사(繪事, 그림을 그리는 작업)를 담당하였다. 또한 사적으로는 사대부나 후원자들의 청탁을 받아 감상화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화원은 신분적 한계와 기술직 천시 풍조 때문에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물론 안견(安堅), 김홍도(金弘道, 1745~1806년 이후), 장승업(張承業, 1843~1897) 등과 같이 대가로 인정받던 몇몇 화가들이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화원들의 작품은 기술만 뛰어나며 화격(畵格)은 낮은 것으로 평가되었다. 이러한 편견은 최근까지 이어져 화원들을 조명한 전시도 없었으며, 일부 유명한 화가나 제도, 활동상 등에 대한 지엽적인 연구 외에 화원 전체를 아우르는 종합적인 연구 성과도 많지 않은 실정이다. ● 『조선화원대전』은 뛰어난 필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와 공간에서 활동했던 화원화가들의 모습을 조명한 전시이다. 특히 연대기적 구성이나 특정 화가에 집중된 전시 방식을 지양하고, 화원화가들이 공사(公私)의 영역에 남긴 활동상을 왕실과 조선화단으로 나누어 살핌으로써 그들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고자 하였다. 따라서 '왕실회화'에서는 왕실의 행렬, 행사, 궁중 장식, 어진, 지도, 불화, 출판, 청화백자의 그림 장식 등 다종다양한 분야에 걸친 화원의 공적 업무를 다루고,'일반회화'에서는 화원들이 필력을 바탕으로 조선 화단에서 이루어낸 업적을 대표작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하였다. 또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대가들의 작품은 물론 필력을 바탕으로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었던 화원화가들의 활동상을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조선 최고의 예술가 집단이었던 화원화가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발휘했던 미의식과 작품세계를 살펴 보고자 한다.
김득신 외 金得臣 外_환어행렬도 還御行列圖_비단에 채색_156.5×65.3cm_1795년경 Gim Deuk-sin et al_Royal Procession Back to Seoul_Colors on silk_156.5×65.3cm_Joseon Dynasty, ca. 1795
작자미상 作者未詳_동가반차도 動駕班次圖_비단에 채색_31×996cm_19세기 후반_부분 Anonymous_Royal Palanquin Procession_Colors on silk_31×996cm_Joseon Dynasty, second half of 19th century
이명기 李命基_오재순 초상 吳載純肖像_비단에 채색_152×89.6cm_18세기 말~19세기 초_보물 1493호 Yi Myeong-gi_Portrait of O Jae-sun_Joseon Dynasty_Colors on silk_152×89.6cm_late 18th~early 19th century_Treasure No. 1493

왕실회화 - 화원의 붓, 왕실의 권위를 세우다 1) 화원, 황실 행렬을 따르다 ○ 대표작 : 「화성능행도 8곡병」(보물 1430호), 「동가반차도」, 「환어행렬도」 2) 화원, 궁중 행사를 그려 장식하다 ○ 대표작 : 「일월오악도」, 傳 김홍도 「금계도8곡병」 3) 화원, 조정을 기록하다 ○ 대표작 : 「오재순 초상」(보물 1493호),「강원도지도」(보물 1598호, 경희대학교 혜정박물관 소장) 화원들은 도화서에 소속되어 왕실과 조정의 각종 繪事를 도맡아 하였다. 이들은 일종의 시험인 취재(取才)를 통해 선발되었으며, 승진이나 녹(祿)도 시험을 통해 결정되었다. 화원제도는 대략 15세기 경 기본 틀이 잡혔다고 추정되며, 그 모습은 화원의 직제(職制)를 규정한『경국대전(經國大典)』의 내용에서 잘 나타난다. 한편 조선 중기 이후에는 화원 가문이 형성되어, 대대로 화업(畵業)의 전통을 계승하기도 하였다. ● 화원들이 왕실과 조정을 위하여 제작한 회화는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조정의 행사를 기록하는 기록화는 물론, 장식화, 어진(御眞)과 공신의 초상 등을 비롯하여 지도, 인쇄물의 밑그림, 도자기의 문양, 심지어 책에 줄을 치는 것까지 그림과 관련된 모든 일을 담당하였다.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어진 및 공신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일과 왕실의 행사를 기록하는 것이었다. 어진은 화원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사람만이 그릴 수 있었으므로, 어진도사(御眞圖寫)에 참여한 화원들은 당대 최고 화가의 명예도 얻을 수 있었다. 또한 기록화는 왕실의 주요 행사를 기록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이를 통해 왕실이 국가 통치의 주체로서 수행한 의식을 기념하고 전파하기 위한 목적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활동을 통하여 화원들은 국가의 정통성과 신성한 왕권의 모습을 시각화하였다. ● 화원들은 궁궐을 장식하기 위한 여러 주제의 그림을 그렸다. 장식화 역시 단순한 장식의 목적 외에 왕권을 상징하기 위한 요소로 사용되었다. 대표적으로 일월오악과 같은 주제는 왕권의 신성함을 표현한 『시경(詩經)』「천보(天保)」의 시를 도해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으며, 왕실 혼례에 자주 쓰였던 모란대병 역시 모란이 꽃 중의 왕을 상징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 외에도 화원들은 왕실과 조정에서 사용되었던 지도, 판화, 도자기의 장식에도 참여하여 여러 작품들을 남기기도 하였다. ● 화원들의 공적인 활동상은 기획전시장 내 블랙박스(B1층)에서 볼 수 있다. 전시는 크게 왕실의 행차도를 그린'왕실 행렬을 따르다'와 궁중 연회를 기록하고 장식했던 그림들을 모은'궁중행사를 그려 장식하다', 마지막으로 조정의 업무를 위한 각종 실용적 그림들을 보여 주는'조정을 기록 하다'로 나누었다. 이 기회를 통해 관람객들은 화원이 궁중에서 활동했던 양상을 체계적으로 살펴보게 될 것이다.
이인문 李寅文_강산무진도 江山無盡圖_비단에 수묵담채_43.8×856cm_18세기 후반_부분_국립중앙박물관 Yi In-mun_Mountains and Rivers without End_Ink and light colors on silk_43.8×856cm_Joseon Dynasty, second half of 18th century_National Museum of Korea
김득신 金得臣_사계풍속도 四季風俗圖_비단에 수묵담채_각 95.2×35.6cm_1815 Gim Deuk-sin_Genre Painting_Ink and light colors on silk_95.2×35.6cm each_Joseon Dynasty, dated 1815
김홍도 金弘道_삼공불환도 三公不換圖_비단에 수묵담채_133.7×418.4cm_1801년 Gim Hong-do_The Nature Better than the Official Ranks_Ink and light colors on silk_133.7×418.4cm_Joseon Dynasty, dated 1801
장승업 張承業_유묘도 遊猫圖_종이에 수묵담채, 136×52.8cm_19세기 후반_도쿄국립박물관 Jang Seung-eop_Playing Cats_Ink and light colors on paper_136×52.8cm_Joseon Dynasty, second half of 19th century_Tokyo National Museum

일반회화 - 화원의 붓, 조선을 그리다 1) 화원의 길 : 조선의 화원들 ○ 대표작 : 이인문 「강산무진도권」(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장승업 「영모도대련」, 장승업 「유묘도」(동경국립박물관 소장) 2) 붓으로 펼친 조선의 모습 ○ 대표작 : 김홍도 「삼공불환도」, 변상벽 「묘작도」(국립중앙박물관 소장) 3) 조선 화단을 빛낸 화원 ○ 대표작 : 김홍도 「군선도」(국보 139호),「팔인수묵산수도」 화원들은 단순히 왕실과 조정을 위해서만 일했던 것은 아니었다. 화원들은 공적인 업무와 별도로, 사가(私家)의 주문을 받아 감상화들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특히 이들은 당대 최고의 필력을 가진 사람들로 평가받았기에 이들에게 들어오는 그림 요청이 상당했다. 화원들은 그림을 주문하는 사람들의 기호에 맞추어 당대 유행하던 주제나 화풍의 그림을 그렸으나, 한편으로 자신들의 필력을 바탕으로 화단에 새로운 흐름을 창조하기도 하였다. ● 화원들이 창안한 업적은 18세기 후반 이후 조선인의 일상을 생생하게 묘사한 '풍속화'에서 나타난다. 풍속화는 조선 초기부터 궁중 세화(歲畵-새해를 축하하고 재앙을 막기 위해 그린 그림)로 제작된 무일도(無逸圖-주공이 성왕에게 임금은 안일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계한『서경(書經)』무일편의 내용을 표현한 풍속화), 빈풍도(???風圖-통치자에게 백성들의 생업의 어려움을 일깨워 바른 정치를 하도록 한『시경(詩經)』빈풍칠월편의 내용을 그린 그림), 경직도(耕織圖-백성들이 농작, 방직하는 장면을 통해 통치자가 근검절약하고 바른 정치를 하도록 일깨움)와 같이 감계적 의미를 지닌 그림들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18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도시 풍경과 사람들의 일상을 담은 그림들이 대거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그림에 뛰어났던 화가가 김홍도, 김득신(金得臣, 1754~1822) 등으로, 이들은 모두 화원으로 재직하는 동안 다양한 그림들을 그려 내었다. 이들의 작품을 통해 조선 후기 풍속화가 본격 등장하였으며 일반에 널리 유행하게 되었다. ● 채색화도 화원들의 업적에서 빼놓을 수 없다. 화원화가들은 당대 화단과 교류하면서 왕실의 여러 주제와 기법을 화단에 전파하는 역할을 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채색기법이다. 진채(眞彩-짙고 불투명한 채색)를 사용하여 그리는 채색화는 기본적으로 고식(古式)을 의미하여, 보통 궁중 회화에서 왕권의 유구함과 정통성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기법이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 민화의 발달과 더불어 채색화가 일반 화단에서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매개자 역할을 한 사람들이 화원들이었다. ● 한편 화원들 가운데는 한 분야에서 유난히 뛰어난 재주를 보이는 인물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조선 중기 활동했던 연담 김명국(金明國, 1600년경~1662년 이후)은, 인물화와 신선 그림이 특히 뛰어났으며, 허주 이징(李澄, 1581-1645년 이후)은 산수에 일가견이 있었다. 조선 후기에는 이러한 경향이 심화되어 각각의 분야에 뛰어난 대가가 많이 나타났다. 변상벽 (卞相璧)의 경우 변고양이[卞猫]라 불릴 정도로 고양이 그림이 뛰어났으며, 이명기(李命基)는 조선 최고의 초상화가로 이름을 날렸다. 또한 김홍도, 신윤복, 김득신의 풍속화, 장승업의 화조화(花鳥畵) 등도 당대 최고의 명성을 얻었다. 이들의 독특하고 매력적인 그림들이 조선의 회화를 풍요롭게 하였음은 물론 화단을 선두하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낸 선구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이같은 화원들의 사적인 활동에 대한 전시는 그라운드 갤러리(B2층)에서 볼 수 있다. 먼저 조선 대표 화원들과 그들의 대표작들을 살펴보는'화원의 길: 조선의 화원들'에서는 이들의 활동상과 남겨진 작품들의 양상을 조명하였다. 또한'붓으로 펼친 조선의 모습'에서는 화원들이 조선 화단에서 이룬 대표적인 업적인 풍속화와 채색화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마지막으로'조선화단을 빛낸 화원'에서는 화원화가들이 조선시대 화단과 교류하면서 이룬 예술적 성취에 대해 살펴보고자 하였다.
김두량, 김덕하 金斗樑, 金德夏_사계산수도 四季山水圖_비단에 수묵담채_8.4×184cm, 7.2×182.9cm_1744_부분_국립중앙박물관 Gim Du-ryang and Gim Deok-ha_Landscapes of the Four Seasons_Ink and light colors on silk_8.4×184cm, 7.2×182.9cm_Joseon Dynasty, dated 1744_National Museum of Korea

리움에서 6년 만의 고미술 기획전을 개최하면서 현대적인 미디어에 익숙한 관람객들이 전통회화를 쉽고 편안하게 감상하여 오늘에도 빛 바래지 않는 아름다움과 의미를 발견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디지털 장비 활용, 전시 개념에 맞는 개성있는 공간 연출, 그리고 역동적이고 입체감 있는 작품 배치 등 다양한 방법들을 시도하였다. ● 우선 왕실회화를 조명한 블랙박스는 화원이 공적으로 행한 업무들을 나타내는 행렬, 궁궐의 개념으로 작품을 구성하였다. 먼저 도입부에 나오는 「동가반차도」는 궁중의 긴 성곽을 따라 행차하는 개념으로 배치하였다. 관람객들은 이를 통해 왕의 행렬을 따라 성안으로 들어가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이 작품과 정조의 화성 행차를 그린 작품 중 하나인 「환어행렬도」에는 작품의 세부를 효과적으로 볼 수 있도록 갤럭시탭과 DID 고해상도 모니터를 활용한 인터랙티브 장비를 설치함으로써 관람객들에게 실제 행사에 참여하는 듯한 생생함을 주고자 하였다. 블랙박스 중앙에는 왕을 상징하는 「일월오악도 8곡병」을 중심에 두고, 주변의 넓은 공간에 각종 행사를 기록한 기록화와 장식화를 배치하여 관람객들이 왕실에서 벌어지는 행사를 보는 듯한 공간을 꾸몄다. 특히 전시장 한가운데에 「동궐도」 이미지를 전시장 바닥에 투사하여 관람객들이 그림 속의 장소를 찾아보며 직접 궁궐 안에서 행사에 참여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 한편 일반회화를 조명한 그라운드 갤러리에서는 조선 화단에서 활동한 화원들의 사적 활동을 조명하였다. 사가(私家)에서 감상되었던 작품들을 보여 주는 공간이므로, 공간을 모두 직사각형으로 분할하여 전통 한옥을 형상화하였다.'화원의 길: 조선의 화원들'에서는 장르와 상관없이 조선 시대 화원들과 그들의 작품을 조명하였는데, 길고 구불구불한 공간을 구획하여 마치 화원들의 작품에 둘러싸여 길을 거니는 것처럼 구성 하였다. 반면 화원들이 창안한 새로운 회화 세계를 보여 주는'붓으로 펼친 조선의 모습'에서는, 화원들의 명작을 쾌적한 환경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탁 트인 공간으로 구성하였다. 특히 전통 한옥과 정원 안에서 화원들의 작품을 감상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전통 정원과 정자를 형상화한 휴게 공간을 만들어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 또한 휴게 공간에는 전시 도록을 디지털화한 e-book과 조선 회화사의 권위자들이 조선 화원의 중요 개념을 설명하는 동영상을 상영하여 관람객들이 심도 깊게 전시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김홍도 金弘道_군선도 群仙圖_종이에 수묵담채_132.8×575.8cm_1776_국보 139호 Gim Hong-do_Immortals_Ink and light colors on paper_132.8×575.8cm_Joseon Dynasty, dated 1776_National Treasure No.139


삼성미술관 Leeum은 2011년 10월 13일부터 2012년 1월 29일까지 리움 개관 7주년 기념『조선화원대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2006년의 『조선말기회화전』이후 5년 만에 리움에서 열리는 고미술 기획전으로, 조선시대 회화사에서 문인화와 함께 중요한 한 축을 차지하는 화원화를 본격적으로 조명한 최초의 전시이다. ● '화원'은 국가에 소속된 전통시대의 직업화가를 일컫는다. 화원들은 궁중에 근무하며 왕실에서 쓰이는 각종 그림을 그리는 작업에 참여하여 왕실의 권위와 통치 이념을 시각화하는 한편, 당대의 여러 화가, 후원자들과 교류하며 가장 속된 그림부터 문인들의 전유물이라 여겼던 '관념산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제작하였다. 또한 18세기 후반에는 탁월한 필력을 바탕으로 조선의 일상을 생생하게 묘사한 '풍속화'와 같은 새로운 장르를 창안하여 발전시키기도 하였다. 그러나 화원들은 양반이 아니라는 이유로 몇몇 대가들을 제외하고는 문인화에 비해 제대로 조명되거나 평가받지 못했다. ● 이번 전시는 기존의 작가별, 연대기적 구성에서 벗어나 화원화가들의 업적을 집중 조명함으로써 조선 최고의 예술가 집단이었던 화원화가들의 정체성을 부각해 보고자 하였다. 특히 「화성능행도」(보물1430호), 김홍도의 「군선도」(국보139호), 장승업의 「영모도 대련」 등 국내외에 산재되어 있는 화원화가의 대표작 110여 점이 출품되어 화원의 예술적 성취를 한 눈에 살펴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 전시 연출에 있어서도 갤럭시탭 등 디지털 장비를 도입하고 역동적이고 입체감 있는 공간 구성을 시도하여, 자칫 지루하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전통회화에 관람객들이 한 걸음 다가가 그 속에 담긴 놀라움과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하였다. 특히 이번 전시에 최초로 공개되는 「동가반차도」는 조선 말기 왕실의 위용과 이를 효과적으로 시각화한 화원들의 필력을 동시에 느껴 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될 것이다. ● 또한 국내 조선회화사 권위자들이 대거 참여, 집필한 전시 도록을 비롯, 『도화서 체험』 프로그램, 청소년과 중고등학교 교사를 위한 『틴즈 워크북』과 『교사 초청행사』, 전시와 관련한 심화 주제를 강의하는 『기획강좌Ⅰ,Ⅱ』등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개설하여 다양한 각도에서 전시를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 ● 이번 전시가 조선 화원들의 예술혼과 업적을 재평가함과 동시에 화원의 붓에 투영된 조선의 모습을 새롭게 발견하는 흥미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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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Stage




이승현展 / LEESEUNGHYUN / 李升鉉 / drawing 2011_0923 ▶ 2011_1106



이승현_Over The Stage_페인트마카_250×555×542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승현 홈페이지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09:00am~06:00pm

인천아트플랫폼, 프로젝트룸 INCHEON ART PLATFORM, Project Room 인천시 중구 제물량로 218번길 3 Tel. +82.32.760.1005 www.inartplatform.kr



행위와 사라짐, 매혹적 경계에서 부유하다. ● 린다는 행위는 두 가지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주지하듯이 하나는 어떤 대상(원본)을 그대로 재현하는 행위와 결과라는 의미일 테고, 다른 하나는 그것에 기반을 두지 않는 새로운 차원의 형상을 만들어낸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전자를 이데아의 그늘 속에 숨어서 그 본질에 탐닉하는 미메시스(mimesis)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면, 후자는 목적 없는 대상의 목적 없는 창조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승현의 드로잉은 이 두 가지 의미의 경계점에 위치하여, 미메시스적인 선과 기법으로 새로운 변종의 생물체를 창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승현_Over The Stage_페인트마카_2011_부분
이승현_Over The Stage_페인트마카_2011_부분

그런데 그린다는 행위가 예술가에게는 두 함의의 성립 이전에 그것이 추구하는 행위의 본질로서의 '유희'라는 개념이 전제된다. 즉 굳이 행위의 결과로서의 작품이 유일무이성(originality)에 대해 집요하게 추구하지 않더라도, 혹은 영원성을 확보하지 않더라도, 행위를 하는 예술가에게는 그 자신이 문제 삼는 대상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느껴지는 쾌감이 동반되기 마련이다. 이승현이 그려내는 드로잉은 이 모든 것들을 포용하고 있는 듯 보이면서도 동시에 그 모두의 경계 어딘가에 조금씩 걸쳐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 일시적으로 그가 창조해낸 세계가 일정 기간 존재했다가 사라지고 말지라도, 결과로서의 작품 이전에 행위의 흔적이라는 속성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의미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즉 일정한 시간 동안 존재했다가 사라지는 것이 행위의 본질이라면, 그의 드로잉은 사라짐으로 해서 그 자신의 당위성을 입증해 보일 수가 있을 것이다.
이승현_Over The Stage_페인트마카_2011_부분

그의 드로잉에 대한 그 동안의 많은 논의대로 그가 만들어내는 화면은 스스로 증식하고 뻗어나가면서 마치 새로운 생명을 확보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그의 독특한 작업의 방식을 보면 적이 이해가 될 터인데, 무의식과 의식 중간을 떠올리게 하는 그만의 드로잉의 가운데에 음악이 개입되어 있는 걸 떠올리면 쉽게 이해가 될 듯하다. 드로잉과 음악이 과연 어떤 면에서 친연성을 가지는가. 두툼한 헤드폰을 통해 그 스스로도 순서와 장르를 미리 알지 못하는 음악이 끊이지 않고, 그는 그렇게 들리는 음악의 발자취를 따라가기도, 혹은 단속적(斷續的)으로 인식하기도 하며, 마침내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탈아(脫我)의 경지를 확인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는 그의 작품과 매우 유사한 구조를 지닌다. 그 스스로도 시작과 끝을 인식하지 않고, 어떠한 지향점도 상정하지 않는 그의 작업 방식은 예의 무작위적인 음악의 나열과 매우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이는 또 다시 멜로디와 리듬이라는 요소로 이루어진 음악이 그러하듯이 회화적 요소들이 일정한 체계를 가지고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형태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그가 창조해내는 이름 모를 생명체들은 필시 어디에서 본 듯한 생명체의 기관들을 떠올릴 수 있는 바, 그것이 지느러미이든 비늘이든 촉수이든 어떤 의미에서건 생명을 연상하게 하는 기본적이고 함축적인 상징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그의 의식에 뿌리 깊게 깔려 있는 생명체에 대한 일종의 재현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그것들을 단속적이고도 그럴 듯하게 조합하고 변형하여 새로운 생명으로 화(化)하게 한다. 이는 그가 재생하는 음악의 무작위성과 매우 비슷한 양상으로서, 유의미적인, 혹은 의식적인 차원과는 먼 지점에 서 있다. 그러므로 그의 화면에 등장하는 일단의 생명체들은 의식적 사유를 바탕으로 무의식의 세계를 부유(浮游)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승현_Over The Stage_페인트마카_2011_부분
이승현_Over The Stage_페인트마카_2011_부분

듣는 행위와 그리는 행위는 사실 그에게는 모두 놀이에 가깝다. 그에게 듣는 동시에 그리는 모든 행위는 원초적인 놀이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이승현의 드로잉을 바라보는 우리는 구태여 수고롭게 하나하나의 기관이 무엇을 상징하는가를 찾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 편이 좋다. 그저 그 속에 녹아 있는 소리와 동시에 존재하는 그의 행위를 느낄 일이다. 흥겹게 그가 펼쳐 보인 세계에 들어가 함께 떠다니며 느끼면 그만이다. ■ 박석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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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겨진 산수 유람기 Moved Landscape-Journey


임택展 / LIMTAEK / 林澤 / mixed media   2011_1001 ▶ 2011_1029


©임택_옮겨진 산수 유람기 071_C 프린트_84×74cm_200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90602a | 임택展 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주말_11:00am~06:30pm

한미사진미술관 The Museum of Photography, Seoul 서울 송파구 방이동 45번지 한미타워 20층 Tel. +82.2.418.1315 www.photomuseum.or.kr


한미사진미술관은 연속기획전으로 한미 사진미술관이 주목하는 작가 7명을 선정하여 SPECTRUM 으로 소개한다. SPECTRUM 의 첫 전시인 임 택의 옮겨진 산수 유람기는 동양화의 관념적 세계를 사진으로 구체화한 독특한 형식의 사진작업이다. 어색한듯한 동양화와 사진이 평면 안에서 어우러지고, 재료와 매체가 작가의 임의적인 배치로 조화되어 있는 작업들은 현대에 있어서 특정 장르나 형식이 파괴된 것은 진부하다라고 말 하는 듯 실제와 가상의 공간을 넘나들며 다양한 매체가 동원되는 현대미술의 전형을 보여준다. 특히, 2011년 한미사진미술관에 전시되는 작품은 동양화의 여백의 미를 살린 공간성에 주목하고 있으며, 사진에 의한 깊이 감과 산수형태가 간결하게 표현되고 있다.
©임택_옮겨진 산수 유람기 118_C 프린트_57×84cm_2011

시대를 거치면서 풍경은 여러 가지 형태로 변화하였다. 눈으로 보는 것만 그리는 풍경과 마음으로 보는 풍경을 그리는 것 등 시대에 따라 다양한 보는 방식을 가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한국의 풍경은 공간을 바탕으로 하고 인간이 자연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에 대한 개념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한다. 먹 냄새 풍기는 집안 분위기에 젖어 자연스럽게 동양화를 전공하고 2006년 조선시대의 산수화를 참고로 시작한 임 택의 옮겨진 산수 유람기는 눈으로 보고, 체험하고 만들어 설치한 자연이미지와 작가가 수집한 자연 이미지를 사진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입체를 평면으로, 과거의 전통의 요소를 현대로, 자연의 공간을 갤러리 내부로 옮긴다는 내용으로 명명된 옮겨진 산수 시리즈는 현실에 존재할 수도 있는 개념의 세계를 작가의 손으로 여러 매체를 활용하여 구현하는 것이다.
©임택_옮겨진 산수 유람기 1110-봄_C 프린트_130×60cm_2011 ©임택_옮겨진 산수 유람기 1111-여름_C 프린트_130×60cm_2011

세상에 널려있는 이미지의 파편을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수집해 오리고 자르는 작업을 통해 시간을 쌓고, 현대문명인 디지털 기법을 통해 구성된 새로운 풍경은 동양화의 평면을 넘어 새로운 입체로 그리고 다시 평면의 사진작업으로 변화의 과정을 갖게 된다. 이렇게 완성된 사진 이미지들은 보는 이의 경험과 체험의 수위에 따라 동양화로, 설치로, 사진으로 다양하게 느껴진다. 작가는 해체가 용이한 소금으로 산맥의 형상을 만들고 하늘에 솜으로 된 구름을 가득 채워서 재현한 입체적인 가상의 공간에 실제 촬영한 오브제와 만들어진 해와 달 그리고 먼 산 밑에서 자연을 올려다보는 사람을 설치하여 사진으로 기록 한다. 그의 사진 속에는 바다와 하늘이 닿은 곳에서 붉게 떠오르는 태양과 빙하처럼 보이는 하얀 산에는 과장된 현태의 초록 나무 한 그루가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린다. 노란 보름달이 떠 있고, 비행기와 새들이 날며, 등산하는 사람들이 사진 속에 담겨 있다. 유한한 존재감을 갖고 무언가 향해가는 작은 사람들의 모습에서 동양적 풍경의 깊이, 영원한 자연의 무한함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사람들의 헛된 움직임 등은 자연과 인간의 본질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은 동양화의 개념을 추구하지만 어렵거나 무겁지 않으며, 사진을 이용하기 때문에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는 밝고 환하다.
©임택_옮겨진 산수 유람기 1110-가을_C 프린트_130×60cm_2011 ©임택_옮겨진 산수 유람기 1111-겨울_C 프린트_130×60cm_2011

동양화 특유의 시점인 다시점은 사진을 통해서만 재구성이 가능해서, 이렇게 완성된 임 택의 작품들은 교묘하게 교차된 시점을 어색하지 않게 보여주며 제한된 공간 안에서 여러 시공간을 만들어낸다. 임 택의 산수들은 우리가 지금껏 쌓아온 지식으로 보면 어색한 세계, 불가능한 세계이다. 사진이라는 재현의 매체를 통해 기록된 공간과 시간 개념을 넘나드는 사진 속의 세계는 작가가 꿈꾸는 세계이기도 하며, 현실과 허구 사이를 간극을 자유롭게 유람하며 상상하는 작가의 모습이다. 아마도 그건 현대인들 간직하는 꿈의 세계 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의 옮겨진 산수 시리즈는 상상의 세계였던 작품 속 사진과 미니어쳐들이 실제 정원으로 옮겨져 움직일 때 비로소 완성 될 것이라고 임 택 은 이야기 한다. ■ 한미사진미술관
©임택_옮겨진산수유람기117_C 프린드_57×84cm_2011

산수화는 평면 위에 그려진 산수일 뿐 이지만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자연의 모습과 공간, 그리고 인간과의 관계성에 자유롭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곧 물리적인 평면의 공간 안에서 정신적인 공간으로 이동하여 상상의 자유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산수화는 화가와 그림, 그리고 감상자의 상상력이 상호작용하며 유기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그림이다. 화가가 자연에서 느낀 체험과 산수의 형태를 압축적으로 한 화면에 표현하고, 감상자는 그 압축된 그림 속에서 강을 건너고 암벽을 오르며 산을 넘는 여행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내 작업은 이러한 산수화의 개념적 해석과 조형적 특질을 다양한 방법으로 시각화 시킨다. 산수화에 나타나는 입체적 조형언어와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 사이에 작용하는 상상의 조응에 천착하면서 작업을 한다. 자연 속에서 얻어진 입체적(구체적)시각과 시간적 체험을 통한 결과물로써 표현된 산수화를 관찰하고 분석하면서 그 속에서 느껴지는 공간을 다시 실질적 공간에 설치의 형태로 풀어낸다. 이렇게 설치로 나타낸 산수 사이를 관람객이 거닐면서 생경한 자연, 또는 본 듯한 자연의 모습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실재 경험한 자연과 상상적 자연의 경계선상에 있는 또 다른 풍경이기 때문이다.나는 실재와 가상의 풍경을 넘나들며 즐긴다. 그 모습이 설치적 풍경으로, 또는 디지털 사진 이미지로 합성되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평면과 영상으로 옮겨질 것이며, 이러한 방법들이 산수를 유(遊)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 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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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NOCENT


김현수展 / KIMHYUNSOO / 金鉉洙 / sculpture   2011_1013 ▶ 2011_1110 / 월요일 휴관


김현수_INNOCENT展_두산갤러리 서울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90402h | 김현수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8:00pm / 주말, 공휴일_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두산갤러리 서울 DOOSAN Gallery Seoul 서울 종로구 연지동 270번지 두산아트센터 1층 Tel. +82.2.708.5050 www.doosangallery.com


김현수는 어린 시절의 기억과 꿈에 섬세한 감수성을 더한 극사실적 조각 작업을 지속해왔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두 점의 인물조각은 순수함을 간직한 어린 소년과 여러 현실적 문제로 인해 순수함을 잃어버린 인물의 모습이다. 하얀 피부의 소년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듯한 순수한 존재이다. 소년 앞에는 무거운 뿔을 양 손으로 받치고 있는 인물이 주저앉을 듯한 자세로 힘겹게 서있다. 그가 힘겹게 끌고 가는 뿔은 한 사람이 살아가면서 마주하게 되는 수많은 현실적 고민과 욕망을 나타내면서, 창백한 피부의 어린 아이 모습과 극명하게 대조를 이룬다.
김현수_Innocent_polyester resin, bronze, leather, wig, water and oil color_105×48×29cm_2011
김현수_Innocent_polyester resin, bronze, leather, wig, water and oil color_105×48×29cm_2011_부분

김현수는 서로 대립되는 두 인물에서 일반적인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 그는 어린 소년이 손에 든 화살로 가리키는 것처럼 사회적•현실적 제약으로 인해 어린 시절 꿈을 이루지 못하고 더 이상 순수할 수 만은 없는 작가 자신과 현대인의 모습에 대한 안타까움을 나타낸다. 하지만 김현수는 무거운 뿔을 지탱하면서 쓰러지지 않고 조금씩 나아가는 한 인물을 통해 삶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김현수_Antler_polyester resin, steel, leater, wig and acrylic_203×200×300cm_2011
김현수_Antler_polyester resin, steel, leater, wig and acrylic_203×200×300cm_2011

김현수(b.1976~)는 홍익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쳤다. 관훈갤러리(2005, 한국)와 갤러리현대(2009, 한국)에서 두 차례 개인전을 가졌으며, 두산갤러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갤러리현대, 울산박물관 등에서 그룹전에 참여하였다. ■ 두산갤러리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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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 ㅇㅏ 주ㅓ~


박재영展 / PARKJAEYOUNG / 朴宰潁 / sculpture   2011_1018 ▶ 2011_1025


박재영_playground stage no.1_혼합재료_40×30×40cm_2011

초대일시 / 2011_1018_화요일_06:30pm

관람시간 / 10:00am~10:00pm

산토리니 서울 SANTORINI SEOUL 서울 마포구 서교동 357-1번지 서교프라자 B2-01 갤러리 3관 Tel. +82.2.322.8177 www.santoriniseoul.com


유토피아를 꿈꾸는 내 안의 어른아이키덜트 이미지의 등장 아동과 어른의 구분은 근대기 이후에나 가능한 것이었다. 모더니즘 이전 시기에 단순히 '어린 어른'이었던 아동은 역사적 흐름에 따라 성인과 분명하게 구분되었고, 교육과 보호를 필요로 하는 미완성의 존재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아동을 독립적인 생애 주기로 인정하고, 이를 위한 놀이 및 교육이 등장한 것은 17세기 이후의 일이다. 아동과 어른에 대한 구별적 인식은 탈근대화 사회에 들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과거에 놀이와 문화, 소비의 영역에서 차이를 보이던 성인과 아동이 그 경계가 모호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해체적 분위기는 2000년대에 들어 확연하게 가시화 되고,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자리잡게 된다. 성인이면서도 아동의 것을 차용하고 소비하는 사람들이 등장한 것인데, 이러한 사회적 현상을 키덜트(kidult: kid+adult)문화라고 한다. ● 어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동의 감성을 추구하는 환상에 사로잡힌 키덜트족의 출현은 현대도시의 삶과는 무관하지 않다. 최첨단과 물량화로 무장한 스펙터클의 도시구조에 놓인 현대인들은 새롭게 변모하는 사회적 시스템에 적응하기 위해 강박증을 비롯한 다양한 신경증에 시달리곤 한다. 완벽을 요구하며 사회적 책임을 가중시키는 사회구조에서 성인이 된 어른은 심신의 안정과 심리적 위안을 위해 돌파구를 찾게 된다. 이때 어린 시절의 동화적 환상은 현실 속에서 꿈과 가상의 초현실적인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니까 키덜트문화는 현대사회에서 자아 정체성의 표출과 현실을 도피하려는 일탈적 행위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박재영_playground stage no.2_혼합재료_45×35×30cm_2011

키덜트 문화현상은 영화, 소설, 패션, 애니메이션, 광고 등의 대중문화뿐만 아니라 현대미술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고 있다. 키덜트 문화는 현실에 대한 치열한 경쟁보다는 어린이의 유머, 재미, 오락처럼 단순한 것을 지향하는데, 이것은 현대미술의 가볍고 유희적이며 일상성을 추구하는 네오팝(Neo pop)과 결합해 다양한 이미지를 생산해내고 있다. 유희적인 장소설정을 통해 왜곡된 어른아이의 신체를 보여주는 박재영의 조각작품은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해 볼 수 있겠다.
박재영_playground stage no.3_혼합재료_35×30×30cm_2011
박재영_playground stage no.4_혼합재료_40×30×30cm_2011
박재영_playground stage no.5_혼합재료_45×40×20cm_2011

왜곡된 신체와 연극적 상황 연출 ● 박재영 작가는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현실과 이상에서 오는 심리적 갈등을 작품으로 선보인다. 사회구성원으로 자란 작가는 한 개인이 감당하기에 벅찬 사회적 요구조건 앞에서 고민하는 자신의 모습을 작품 안에 투영시킨 것이다. 이러한 인체 조각작업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신체성을 강조하며 왜곡된 몸을 만드는 것이고, 나머지는 작품이 놓인 상황을 연극적으로 연출한다는 것이다. 인물상은 실제 비례와는 어긋난 것으로 약 50cm 크기의 아이 몸과 성인의 얼굴을 지닌 '어른아이'이다. 마르고 작은 아이의 몸에, 큰 손과 발, 주름투성이의 얼굴은 성인 것으로 서로가 이질적이면서도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두상은 얼굴에 비해 뇌부분이 축소되었는데, 근육이 메마른 소년의 몸은 그로테스크하기도 하고, 익살스러운 표정과 몸집으로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작가는 해부학적으로 성인의 얼굴에 두개골의 크기를 축소함으로써 기이한 머리와 몸체를 지닌 사람을 만든 것이다. 이때 두개골은 이성으로 상징되는데, 얼굴은 어른이지만 뇌는 발달하지 못한 어른아이를 은유한다. 또한 인물상은 손과 발의 크기를 신체에 비해 과도하게 확대했는데, 손과 발은 의사소통의 도구로써 말이나 얼굴표정으로 못다한 소통의 욕구를 몸의 언어를 빌어 표현하고자 한 작가의 의도를 짐작해볼 수 있다. ● 리얼리티가 강한 인체조각을 선보이는 박재영의 작품은 작가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작품은 자신의 유년기 한 장면으로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데, 대개가 놀이터와 같은 유희의 공간이다. 박재영은 유년시절의 감성을 상기시키는 물건이나, 판타지 등을 선호하는데, 이를 통해 일상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현실이탈을 염원한다. 개인의 사소한 역사를 작품에 담아 냄으로써, 유년시절의 지극히 사적이고 일회적일 수 있는 감각적인 감성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거나 철봉에 매달린 모습, 수화기를 들고 장난전화를 거는 상황, 혹은 선풍기를 손에 들고 즐거워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연극적인 상황 연출을 통해 과거를 향수하는 동시에, 현실에서 마주하는 고통의 문제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고자 한다. 다만 박재영 인체조각이 키덜트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여타의 작업과 구분되는 지점은 표면적으로 단순화된 아동이 아닌 리얼리티가 강하며, 성장하지 못한 '어른아이'의 이미지를 재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재영_playground stage no.6_혼합재료_50×40×35cm_2010
박재영_playground stage no.7_혼합재료_설치_2010

네오팝과 키덜트, 그리고 치유 ● 넓은 의미에서 동시대 이미지 생산자들은 거의가 팝(pop)을 다루고 있다. 특히나 네오팝 계열의 작가들은 1970년대 이후에 출생한 이들로, 어린 시절에 대중문화의 세례 속에서 성장한 세대이다. 어른이 된 이들의 작품에 유년기의 추억이나 대중문화의 것들이 나타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다. 급변하고 완벽을 요구하는 현대의 사회구조 안에 재빨리 적응하지 못하거나, 어른으로서의 의무나 책임에 직면했을 때 받는 스트레스는 크다. 이러한 심리적 보상으로 선택하는 아동기의 향수를 추구하는 키덜트 문화는 동시대의 필연적인 사회현상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근자의 젊은 작가들이 가볍고 일상적이며 유희적인 미를 추구하는 것은 키덜트 문화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박재영의 구상적인 인물조각은 키덜트적 요소와 팝적인 특징이 적절히 믹스되어, 이 두 사이의 관계를 연결시켜주는 고리로도 읽어낼 수 있다. ● 박재영의 작업은 현실의 고단함과 어른이 된다는 불안감에서 해방되기 위해 시작되었다. 개인의 욕망과 사회적 굴레 사이에서 지쳐가는 현대인의 고민을 담아내는 작업은 작가 스스로를 위한 치유의 수단이기도 하며, 온전한 성인으로 자라지 못한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인 셈이다. 이것이 작가 개인의 차원을 넘어 많은 이들에게 공감대를 선사해 주는 지점이다. 독창적인 이미지와 연극적 공간을 접목시킨 박재영의 인물조각은 예술을 통한 자기 치유적 힘을 다시 한번 환기시키는 동시에, 갈등이 없는 유토피아를 갈구하는 예술가의 염원을 보여준다. ■ 고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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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minute






박경진展 / PARKKYUNGJIN / 朴卿珍 / photography   2011_1019 ▶ 2011_1025




박경진_one minute1_잉크젯 프린트_67×120cm_2011



초대일시 / 2011_1019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갤러리 룩스 GALLERY LUX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5번지 인덕빌딩 3층 Tel. +82.2.720.8488 www.gallerylux.net




1 분이라는 시간 단위는 내 작업의 상징적 시간 단위다. 그것이 10 분이어도 또는 1 시간이어도 의미 상 변화는 없다. 흘러가는 물처럼 시간의 흐름에 대한 바라 봄의 한 단위 일 뿐이다. ● 모든 사진은 시간과 공간을 한 순간에 응결 시키는 것을 꿈꾼다. 선택된 공간 속에는 예리하게 벼려진 시간이 스며 있다.
박경진_one minute2_잉크젯 프린트_67×120cm_2011
박경진_one minute3_잉크젯 프린트_66×100cm_2011
박경진_one minute7_잉크젯 프린트_66×100cm_2011

그와 다르게 동영상은 마치 두루마리를 풀어가듯 길게 시간을 풀어 간다. 빠른 속도로 시간은 지나가고 옛 시간은 새로운 시간 속으로 스며들어 사라진다. ● 그러므로 사진과 동영상은 같은 자궁에서 나왔지만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마치 원심력과 구심력처럼.
박경진_one minute8_잉크젯 프린트_66×100cm_2011
박경진_one minute9_잉크젯 프린트_66×100cm_2011

내 작업은 이 지점을 탐색하는 것이다. 동영상처럼 이완되어 풀어지는 시간을 미분 된 사진의 시간으로 압축할 수는 없을까? 현재의 시간을 지나 간 시간 위에 누적시켜, 눈으로 보는 밖의 공간세계는 또 어떻게 변화되는 것인지 보고 싶었다.
박경진_one minute10_잉크젯 프린트_66×100cm_2011

나는 1분간의 시간 동안에 촬영된 동영상을 통해 흘러간 시간과 공간의 변화를 다시 하나로 묶어 매듭짓기 시작했다. 동영상은 1초에 24개의 프레임으로 만들어져 있다. 24개의 정지 사진이 1초 간의 움직이는 영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 짧은 시간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인간의 눈이 마치 정지를 하나의 움직임인 냥 착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1분간에 촬영된 사진의 존재성을 인정하고 하나로 묶어 보여 준다면 어떤 모습으로 드러날까? ● 1분의 촬영 후에 얻어진 1440장으로 구성 된 동영상은 나에 의해 다시 1 장의 사진으로 재조명된다. 그 1분의 기억은 숲, 나무, 바다, 흔들리는 마을버스 같은 공간적 대상들로 존재하면서 아침, 한낮, 저녁 무렵 같은 시간과 어깨를 건다. 그래 그것이다. 역사의 퇴적층을 살피는 지질학자처럼 짧은 시간과 공간의 퇴적층을 나의 작품 속에서 새롭게 견인하고 확인하는 것이다. ■ 박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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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푸마토 sfumato






박진명展 / PARKJINMYONG / 朴振明 / photography   2011_1019 ▶ 2011_1116




박진명_스푸마토(sfumato)_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_126×100cm



초대일시 / 2011_1019_수요일_06:3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갤러리 1839 GALLERY 1839 전남 순천시 중앙로 276 순천대 후두둑 B1 Tel. +82.61.742.1839/070.4210.1839 www.art1839.com




사물과 촬영자 사이의 격자, 그리고 그 격자 너머의 표백된 오브제의 형태들... 그 속에서 사물들은 이미지로 이전되어 모뉴먼트를 이룬다. 화가들은 사물을 사실로 보고 사실을 그리고 싶었다. 멀리 있는 것은 작게 보이고 가까이 있는 것은 크게 보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어떻게 하면 보여지는 대로 그릴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리고 그럴 즈음해서 카메라 옵스큐라가 발명되었고 비로소 사실을 사실대로 옮겨 놓을 수 있는 근거를 붙잡을 수 있었다. "사진은(회화가 이미지이듯) 이미지일 뿐만 아니라 현실의 해석이기도 하다"(수잔 손탁, On Photography)라고 했던 말 그대로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아무리 극한의 묘사력을 획득한 카메라의 광학적 성과를 향유할 수 있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렌즈 건너 펼쳐진 세계(현실)와 이미지는 동일할 것일 수 없다. 손탁이 했던 얘기처럼 사진은 데드마스크나 발자국 처럼 현실의 흔적에 가깝다.
박진명_스푸마토(sfumato)_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_126×100cm
박진명_스푸마토(sfumato)_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_126×100cm
박진명_스푸마토(sfumato)_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_126×100cm

오백년 전, 뒤러가 격자판을 이용해 편화작업을 하는 모습은 사뭇 엄숙하기까지 하다. 격자판을 통과한 사각형 공간속 형태들을 퍼즐처럼 맞춰가는 모습은 최대한 사실을 사실로서 옮기려 하는, 과학자의 모습 그것이다. 뒤러는 격자판 건너의 사물과 지적인 소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카메라의 능력은 이미 그것만으로도 격자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카메라의 기계적 시야는 언제나 사실로써 보여지도록 만들어진 까닭이다. 대형 뷰카메라의 뷰파인더에 그려진 격자눈금의 기능은 왜곡의 수정, 혹은 피사체의 스케일을 가늠하는데 필요한 보조적 기능으로 채택되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격자눈금은 사진이라는 결과물 속에 남겨지는 일은 없다. 파인더를 통해 세계를, 또는 사물을 본다는 것은 현실의 해석일 수밖에 없다. "사진은(회화가 이미지이듯) 이미지일 뿐만 아니라 현실의 해석이기도 하다"(수잔 손탁, On Photography)라고 했던 말 그대로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아무리 극한의 묘사력을 획득한 카메라의 광학적 성과를 향유할 수 있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렌즈 건너 펼쳐진 세계(현실)와 이미지는 동일할 것일 수 없다. 손탁이 했던 얘기처럼 사진은 데드마스크나 발자국 처럼 현실의 흔적에 가깝다.
박진명_스푸마토(sfumato)_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_126×100cm
박진명_스푸마토(sfumato)_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_126×100cm

무채색의 - 표백되어진 공간, 거기에 표백되어진 사물(오브제)들은 놓고 대형 카메라의 격자판 뒤쪽에서 바라본다. 현실이라는 의미의 사물(피사체)과 격자로 구획된 뷰파인더의 공간이 만나지며 서로가 서로를 반영하고 있다. 피사체(사물)는 현실이기에 변하지 않고 거기에 계속 존재하지만 이미지는 격자를 통해 변해간다. 촬영이라는 해석의 과정이 개입하는 까닭이다. 그리고, 어쩌면 사진의 이미지는 결코 현실적이지 않지만, 오리혀 현실은 카메라를 통해서 보게되는 이미지와 점점 닮아간다. "현실의 개념이 변하면 이미지의 개념도 변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수잔 손탁) 현대사회의 소비행태에서 비롯된 백색의 외양(표백되거나)을 한 소비자. 그것은 산업사회의 폐기물로서의 운명을 넘어 하나의 현실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것은 때때로 아름답기까지 하다. 사진은 광학적 과정에 의해 포착된 현실의 발자국 같은 것이지만, 현실과의 인과관계는 구체적인 사물(세계)과 긴밀하게 연결된 것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카메라의 격자는 프레임에 의해 제거된 현실의 부분들과 인과관계를 상상케 한다. 사진의 트리밍은 항상 현실의 연속 속에서 어떤 선택이며, 격자는 육안의 결핍을 보완하여 사물의 형태를 개념화시키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사물과 촬영자 사이의 격자, 그리고 그 격자 너머의 표백된 오브제의 형태들... 그 속에서 사물은 이미지로 이전되어 모뉴먼트를 이룬다. 현실은 해독되어야 할 일종의 글쓰기처럼 사진 이미지의 "쓰기(view)"를 시도하는 것이다. ■ 박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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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라이트 런칭 프로젝트 (DownLeit Launching Project)






다운라이트 일렉트로닉스展 / DownLiet Electronics / project.installation   2011_1020 ▶ 2011_1113 / 월요일 휴관




downleit memory maker m-01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자 박재영(아트디렉터)_고원석(기획 및 홍보)외 다수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브레인 팩토리 BRAIN FACTORY 서울 종로구 통의동 1-6번지 Tel. +82.2.725.9520 www.brainfactory.org




브레인 팩토리는 두뇌를 연구하고 조작하는 공장입니다. 오랜 시간 은밀하게 준비되어왔던 두뇌 조작 프로젝트가 드디어 2011년 10월 20일에 오픈합니다! ● 우리 모두의 두뇌에는 인지 가능한 의식의 영역과 인지하기 어려운 무의식의 영역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 동안 여러분들이 인지할 수 없었던 무의식의 영역, 즉 밤의 세계, 비가시의 세계, 비과학의 세계, 비논리의 세계에 '의식적'으로 개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운라이트 일렉트로닉스에서 제작한 '마인트 콘트롤러 메모리 메이커'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어 드립니다!
downleit old collections_기계 껍데기, 알루미늄캔, 나무, 톱니바퀴_2011

다운라이트 연구소 ● 다운라이트 일렉트로닉스는 다운라이트 연구소에서 개발된 기술을 기반으로 설립된 전문기업입니다. 다운라이트 연구소가 언제 어디에서 누구에 의해 설립되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없습니다. 그저 다운라이트 연구소에 관해 전설처럼 떠도는 무성한 소문('악마의 기계'를 만들었던 연구소)과 최근 발굴된 개연성 높은 자료들, 그리고 어렵게 전수되어왔던 원천기술을 통해 우리는 다운라이트 일렉트로닉스의 믿을 수 없는 기술력과 인류를 놀라게 할 실험들의 일면을 짐작할 수 있을 뿐입니다. ● 지금까지 전해지는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면 다운라이트 연구소는 모더니즘의 태동과 함께 '새로움의 충격'이 유럽을 강타하던 20세기 초반, 독일의 프란츠하임이라는 소도시에서 설립된 것으로 추측됩니다. (안타깝게도 이 도시는 완전히 멸실되어 과거의 존재여부 조차 확인할 수 없습니다.) 인류가 새로운 미래를 급진적으로 꿈꾸던 세기 초, 다운라이트 연구소는 정신착란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한 연구기관으로 설립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당시 유럽 일대에는 상당수의 정신질환자들이 존재했지만, 이들을 위한 변변한 치료법은 거의 없었습니다. 독일정부는 당시의 최첨단 과학기술력을 모두 동원하여 정신질환을 치료하고, 더 나아가 두뇌를 개조하는 프로젝트를 은밀히 지원했는데, 그것이 바로 다운라이트 연구소였다고 합니다. ● 당대의 최고급 브레인들이 모인 연구소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을 받아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획기적인 방법을 개발했는데, 그것은 바로 환자들의 두뇌에 특수한 전자파를 쏘이는 방법이었습니다. 머리 외피를 통과하여 두뇌로 전자파를 전달시키는 획기적인 기기를 개발한 연구소는 임상실험을 위해 유럽 각지에서 정신질환자들을 모았습니다. 모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른 의료기관에서 치료를 거부했던 중증 환자들이었습니다. 처음 몇 차례의 치료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효과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서 온 환자를 치료하던 담당 연구원이 레버 조작을 하던 중 실수를 하여 너무 오랜시간 전자파를 쏘여버리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환자는 정신을 잃고 혼수상태에 빠져버렸고, 실험은 즉각 중단되었습니다. 환자는 수일 후에 의식을 회복했지만 부작용으로 10세 이후의 기억을 모두 잃어버렸다고 합니다. 그는 큰 실의에 빠지고 정상적인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 연구진들은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그러나 인류 최고의 기술력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던 그들은 역발상을 하여 새로운 기억을 그의 머리속에 주입시킬 계획에 착수했습니다. 그들은 고대 집시들로부터 전해지는 최면술과 연금술로부터 첨단 과학기술까지, 필요한 모든 지식을 총 동원하여 기억을 조합하는 기계를 개발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마인드 컨트롤러의 원형입니다.
downliet memory maker m-01_부분

마인드 컨트롤러 메모리 메이커 ● 다운라이트 연구소에서 개발했던 마인트 컨트롤러 원형에 구체적으로 어떤 기술이 어디까지 응용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마인트 컨트롤러 직후 다운라이트 연구소는 폐쇄되고 연구 기록은 대부분 소각되었습니다. 인간의 의식에 관계한다는 기계를 '악마의 기계'라고 몰아붙인 종교계는 물론이고, 과학기술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던 보수주의자들 또한 처음부터 연구소를 없애기 위해 집요한 방해작전을 펼쳤습니다. 이후 연구소를 전폭 지지하던 정부 내 인사들은 급기야 전쟁을 일으킨 주동세력이 되었고, 결국 전쟁의 포화와 종전후 전범 처형의 와중에 연구소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고 합니다. ● 그러나 '악마의 기계'를 만들던 다운라이트 연구소의 기술은 일부 과학자들에 의해 밀교 의식처럼 은밀하게 전해져 왔습니다. 백여년의 시간이 지난 후, 신분을 밝히지 않는 익명의 사업가에 의해 다운라이트 연구소는 '다운라이트 일렉트로닉스(Downleit Electronics)'라는 기업으로 부활하게 되었습니다. 철저히 자신의 존재를 숨기는 이 사업가는 다운라이트를 살려내기 위해 국적과 직업을 초월하여 프로젝트 팀을 구성했습니다. 이 팀원들은 공히 다운라이트 일렉트로닉스의 공동 설립자로서, 여느 기업에서 찾아볼 수 없는 수평적 조직문화를 이루며 비밀리에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습니다. 이들은 서로가 누구인지도 잘 알지 못할 정도로 베일에 싸여진 인물들이었습니다. 드디어 프로젝트팀은 과거 다운라이트의 메커니즘을 오늘날의 첨단기술은 물론이고 심지어 과학의 대안으로 지목되고 있는 예술의 형식과 결합시켜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 냈습니다. 바로 마인트 컨트롤러 메모리 메이커 입니다. ● 이제 여러분들은 그 프로젝트의 최초 결과물인 마인트 컨트롤러 메모리 메이커를 세계 최초로 눈 앞에서 직접 보고 있는 것입니다! ■ 고원석
브레인 팩토리 설치계획

마인드 컨트롤러 메모리 메이커의 작동원리 ● 두뇌가 활동중일 때 신경세포는 전기적 변화를 보이는데, 이것을 외부에서 검출해 기록한 것이 뇌파다. 뇌파는 보통 0.5-30Hz의 주파수를 갖는다. 이는 다시 델타파(0.5-4Hz), 테타파(4-7Hz), 알파파(7-14Hz), 베타파(14-30Hz), 감마파(30Hz이상)등으로 나누어진다. ● 알파파 영역의 뇌파는 명상상태에서 자주 관찰된다. 일반적으로 알파파 상태는 창의력, 직감, 영감이 잘 떠오르고 암기력, 기억력이 활발한 상태로 여겨진다. 두뇌에 알파파의 자극을 계속 주면 암기력이나 기억력이 증가됐다는 보고가 있다. 요가나 명상을 수행한 사람들은 자신의 뇌파를 특정상태로 조절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일반인은 자신의 뇌파를 조절하는 것이 어렵다. 마인드 컨트롤러 메모리 메이커는 외부에서 인위적으로 뇌파가 유도되도록 자극해 줌으로써 특정 뇌파상태에 이르게 하는 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 본 기기는 뇌파를 유발하는 특정한 소리를 조음하고, 거기에 특수장치를 통해 마이크를 통해 주입된 사용자의 목소리를 합성하여 메시지를 전달하게 한다. 목소리가 뇌파 유발장치로 변화되는 과정은 목소리에 반응하는 기기의 빛의 깜빡거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일반인의 정보획득 체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시각적 자극 (광자극)을 보다 확장된 개념으로 확장시켜 시각적 역치 이상의 상태를 체험하게 하며, 또한 이 시각적 자극은 그 장치를 소유하고 있는 상대방의 언어에 집중하게 만드는 것이다. ■ 박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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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거닐다




롯데 에비뉴엘 아트쇼핑展   2011_1021 ▶ 2011_1030 / 백화점 휴무시 휴관





작가와의 대화 / 2011_1022_토요일_02:00pm

드로잉 기프트 / 2011_1022_토요일_03:00pm 작가가 현장에서 직접 엽서에 드로잉을 그려주는 행사로 선착순 100명에 한해 진행됩니다.

Future of 2030 Avenuel Art Shopping : Walking in the City展

참여작가 김은술_김현정_김형관_김희연_박상희_송성진 신지선_이미경_정영주_하이경_황정희_홍원석

주최 / 롯데 백화점 문화사업팀 기획/진행 / 스페이스 오뉴월

관람시간 / 10:30am~08:00pm / 백화점 휴무시 휴관

롯데백화점 본점 명품관 에비뉴엘 LOTTE DEPARTMENT STORE AVENUEL 서울 중구 남대문로2가 130번지 롯데백화점 에비뉴엘 3층 Tel. +82.2.726.4428 www.lotteshopping.com/depart/branch/gallery/main.jsp?branch_cd=001



백화점과 예술의 행복한 만남!-롯데 에비뉴엘에서 펼치는 유망 작가 12인의 현대 도시 풍경 ● 롯데 에비뉴엘에서 『제1회 롯데 에비뉴엘 아트쇼핑』展을 개최합니다. 활발한 전시 활동을 벌이며 키아프(KIAF) 및 각종 옥션에 참여해온 작가들의 엄선된 최신작을 합리적인 가격에 소장할 특별한 기회입니다. 이번 행사는 참신하고 개성 있는 표현 방식과 주제 의식으로 현대 도시의 다양한 면면을 그려온 김은술, 김현정, 김형관, 김희연, 박상희, 송성진, 신지선, 이미경, 정영주, 하이경, 황정희, 홍원석 12명의 작가가 참여합니다. 작가들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아티스트 토크 행사, 현장에서 직접 드로잉 작품을 선물해주는 드로잉 기프트 등 다채로운 이벤트도 함께 꾸며집니다. ● 캔버스에 녹아 든 현대 도시의 풍경 ●『제1회 롯데 에비뉴엘 아트쇼핑』 전에서 만나게 될 작품들은 각기 다른 시선으로 해석된 도시의 풍경을 보여줍니다. 사라져가는 구멍가게나 판자촌 풍경, 휘황한 간판 조명에 흔들리는 도시의 밤 풍경 등 다채롭게 변주되는 도시 공간의 면면들은 대도시적 삶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과 얻은 것을 차분히 돌이켜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2000년대 이후 도시적 감수성으로 무장한 새로운 세대의 작품 경향을 도시 공간이라는 키워드로 묶은 이번 전시는 향후 한국 미술의 주역이 될 작가들의 작품을 한눈에 감상할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김은술_소풍 Picnic_장지에 채색_60×72cm_2011

김은술, 환상적인 공간으로의 여행 ● 김은술 작가는 장지에 안료를 섬세하고 투명하게 채색하는 담채(淡彩) 기법을 통해 현대의 도시 풍경을 동화적으로 재배치한다. 빌딩, 아파트, 한옥, 고궁, 버스 등 친숙한 풍경 속에 어린 시절 꿈 꾸던 동물원, 수족관, 놀이동산, 동화 속 이야기 등을 뒤섞어 초현실주의적인 공간으로 재구성하 고 있다.
김현정_oo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_캔버스에 유채_65×90.9cm_2008

김현정, 일상이 빛으로 파열될 때 ● 김현정 작가는 현대 도시의 찰나적인 일상의 풍경에 주목한다. 특히 일상의 소소한 사물, 장소들 에내재한 감정이나 분위기 등 비물질적 요소를 드러내는 데 관심이 많다. 그의 신선한 시각은 타성에 가려 잊혀지기 쉬운, 대상과 자아가 만나는 파열의 순간에 천착하면서 일상의 숨은 의미를 번뜩이게 만든다.
김희연_막다른 문_린넨에 아크릴채색_72.7×60.6cm_2010

김희연, 우리가 갖지 못한 시점에 대하여 ● 낡은 도시 어느 한 구석, 사람들의 시선에서 비껴난 사물들은 방치되어 있을 뿐이다. 김희연 작가는 도시 곳곳의 버려진 장소에 주목한다. 그의 작품 속 도시 풍경은 디테일과 공간감이 사라지면서 평면화되고 기호화된다. 이러한 모호한 풍경은 보는 이로 하여금 독특한 불안감을 자아내지만 도시의 소외된 공간들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를 만들어낸다.
김형관_more than this#3_캔버스에 컬러 테이프_118×180×6.5cm_2009

김형관, 색테이프로 그리는 도시 풍경 ● 생생한 색감이 두드러지는 김형관 작가의 작품은 주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박스 테이프로 만들어진다. 투명한 O.P.P 테이프를 하나하나 붙여가며 색을 입힌 작품은 마치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듯 생생하다. 중첩된 테이프가 만들어내는 효과는 물감과는 다른 독특한 미감과 공간감을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만화경 같은 도시 생활의 허영과 과시욕을 효과적으로 풍자한다.
하이경_Night_캔버스에 유채, 혼합재료_60×120cm_2011

하이경, 현대 도시 풍경에서 접하는 자연물들 ● 하이경 작가는 우리가 늘 보아왔기에 존재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풍경을 포착한다. 무심히 혹은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법한 가로수, 화단의 식물들 그리고 벽을 가득 메운 익숙한 패턴들이 작가의 눈과 붓질을 통해 새롭게 제시된다. 세련되고 명징한 도회적 사물들은 작가 특유의 붓질을 통해 비현실적이면서도 몽상적인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일상의 세세한 부분에 주목하게 만들고, 삶의 또 다른 일면을 돌아보게 만든다.
박상희_창-요코하마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비닐 시트 컷팅_30×130cm_2009

박상희, 시트지로 만들어내는 간판 천국의 도시 ● 『밤의 풍경』 연작으로 대중적 인기를 누려온 박상희 작가는 간판 재료로 쓰이는 시트지 위에 아크릴 물감으로 형상을 그린 후 다시 표면에 부분적으로 칼집을 내 벗겨가며 수공적으로 화면을 구성한다. 촉각을 자극하는 미묘한 깊이와 굴곡으로 꿈틀대는 박상희의 '도시의 밤' 풍경은 우리 시대를 구성하는 다양한 욕망과 감정의 스펙트럼을 시적으로 변주해낸다.
신지선_La Mer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0×72.7cm_2010

신지선, 상상력이 만드는 유쾌한 풍경 ● 신지선 작가는 세운상가, 원서동 등 특정 지역의 '관광 지도'를 통해 사실과 허구를 오가는 유쾌한 작업으로 평단의 큰 관심을 끌어왔다. 작가는 실재하는 구체적 장소들, 혹은 일상적 사물의 사소한 관찰을 특정한 프로젝트로 진행하거나 있을 법한 이야기로 치환하여 그 장소와 사물을 새롭게 의미화한다. 도시 공간을 상상하고 조합함으로써 기존 풍경의 개념을 확장하는 실험적 시도가 돋보이는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이미경_충남상회_종이에 잉크펜_40×57cm_2010

이미경, 예술가의 몸으로 기억하는 향수 어린 풍경 ● 사라져가는 구멍가게를 그린 섬세한 펜화 작업으로 대중적 인기를 누려온 이미경 작가. 하나하나 그어 내린 펜 선은 자신의 손으로 풍경을 몸 속으로 담아내는 집요한 작가주의의 소산이다. 예술가의 그리는 행위는 한편으로 기억하기의 또 다른 방식이기도 하다. 마을 초입마다 자리하던 향수 어린 구멍가게는 이미경 작가의 몸에 각인된 예리한 선과 색으로 그 모습을 간직하고 이어간다.
정영주_도시-사라지는 풍경_캔버스에 한지 콜라주, 아크릴채색_97×146cm_2011

정영주, 한지가 만드는 깊이 있는 풍경 ● 도시의 한 켠에서 경사면을 따라 낡은 집들이 빽빽하게 어깨를 맞대고 있다. 재개발 딱지가 붙어 있을 법한 이 장소들은 도시에 쌓인 시간의 층위를 가장 정확하게 드러내주는 소재다. 이는 정영주 작가가 도시 한 켠의 구석진 풍경에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캔버스에 물감과 한지를 겹쳐가며 층층이 마티에르를 두드러지게 만든 작업은 시적인 아름다움을 뿜어낸다.
황정희_Allegory of the Moment - Lobby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60cm_2011

황정희, 흔적만이 남은 공간 ● 누군가가 앉아 있었을 의자와 테이블. 황정희의 덩그러니 빈 공간은 미스터리를 담은 듯 긴장해 있다. 화면을 순식간에 채웠을 빠른 붓질은 이러한 긴장을 강화해준다. 이렇듯 공간은 시선을 통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황정희는 누구보다 설득력 있게 증명해준다. 작가는 빈 공간의 사물을 기습적으로 제시하며 시각적 충격을 줌으로써 일상의 풍부함을 역설적으로 채워 넣는다.
송성진_문화주택 감천동-ed.3/5_디지털 프린트_38×150cm_2009

송성진, 도시 개발로 사라지는 공간들 ● '문화 주택'은 1960~70년대 도시 개발사업의 결과물로 만들어진 가옥 형태다. "판자촌을 비집고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여 우리네 세월과 삶의 자취를 담아냈으나, 이제는 떠나고 싶은 곳으로 인식되기도 하는 이 주택 지구는 급변하는 도시 구조 속에서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송성진 작가의 프레임 속에서 새롭게 구성된 판자촌 풍경은 이상적이고 문화적인 주거 공간에 대한 작가의 지속적인 관심을 드러낸다.
홍원석_21세기 소년_캔버스에 유채_50×160cm_2009

홍원석, 색이 가득한 밤의 드라이브 ● 홍원석 작가는 심야를 달리는 자동차와 그 주변 풍경을 통해 대도시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위트 있게 드러낸다. 서치라이트와 경찰차 등 비일상적인 소재와 독특한 형태의 구성은 어떤 사건이 벌어지고 있음을 암시하며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과감한 화면 구성과 주황, 빨강 등 독특한 색감을 통해 작가는 시각적 충격과 유쾌한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 스페이스 오뉴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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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의 재림




제2부 차가운 상상展   2011_1021 ▶ 2011_1127 / 월요일 휴관



박은하_Stairs_캔버스에 유채_145×112cm_2010


초대일시 / 2011_1021_금요일_05:00pm

참여작가 박은하_박창환_이소정_장재철_정윤경_허은경

주최,기획 / Art space LOO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아트스페이스 루 ART SPACE LOO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110번지 Park110 빌딩 Tel. +82.2.790.3888 www.artspaceloo.com



'동시대 미술에서 새로움이란 과연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은 과거와 현재로 이어지는 작가들의 끊이지 않는 고민이었을 것이다. 지난 세기, 다다와 초현실주의 아방가르드 작가들이 누렸을 풍부한 새로움은 21세기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를 거쳐오면서 이미 고갈되어 버린 듯하다. 거대담론(grand narrative)을 이끌었던 영웅과 봉우리는 소멸하고 로컬과 주변(peripherique)으로 확장된 소서사담론(micro narrative)들 사이의 융합과 혼성적 형식이 지난 세기의 '새로움'을 대체하는 양상을 보이며 21세기적 문화 징후들을 보여주고 있다. 문화 전반에 걸쳐 해체되고 혼합되며 경계를 허무는 컨버젼스와 하이브리드적 가능성들이 추상미술에서도 유효하다고 가정한다면 한국 미술에도 21세기적 추상의 특성들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특성들을 이끌고 있는 추상의 형식은 어떤 것이며, 그 새로운 가능성들을 탐구하는 한국의 추상 작가들은 누구인가? 그들이 발견한 새로운 상상력의 영토는 어떤 모습이며 그들은 이 경계의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을까? 이 질문들은 21세기 새로운 문화적 부흥기를 맞고 있는 한국 미술계가 내부에서 스스로 던져야 할, 그리고 "추상의 재림"전이 한국 미술계에 던지는 화두이기도 하다. ● 현대 미술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실험미술의 중요성을 굳이 나열하지 않더라도 예술은 지속적인 새로움에 대한 탐구를 그 생명력으로 하고 있기에 미술관을 중심으로 한 미술 기관들도 실험적 성향의 미술운동을 조망하는 전시들을 기획해 왔다. 1980,90년대의 그룹전 위주의 미술운동을 이끈 것도, 대안 공간들의 존재 이유가 되었던 것도 이 실험정신이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반면에 현재 한국미술계는 2000년대 두어 번의 호황기를 통해 시장의 양적 팽창을 겪으면서 1980,90년대의 미술관과 대안공간, 그리고 소규모 그룹들을 중심으로 한 미술 운동과는 비교되는 미술시장과 아트페어 중심의 움직임으로 재편되고 있다. 포토리얼리즘 기반 회화들과 팝아트로 대변되는 정체불명의 한국적(?) 미술형태가 기관을 포함한 화랑가를 점령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가들의 숫자와 갤러리, 미술시장의 규모가 늘어난 반면, 미디어 아트와 설치미술, 추상회화와 컨셉츄얼 아트의 비율이 현저히 축소된 현 미술계의 경향이 이를 증명하며, 미술계가 미술 소비 집단의 기호에 맞추어져 가고 있다는 일각의 우려에 설득력을 더한다.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미술이 시장의 요구를 반영하는 측면도 있겠지만 이러한 경향은 건강하고 다양한 미술운동의 축소에 대한 염려를 불러오기도 한다. 이런 현상을 음악으로 치환해 본다면 한국 미술계에는 온통 가사가 있는 팝음악들로 채워져 있는 셈으로 음악성 자체를 추구하는 실험적 음악이 소멸해버린 현상으로 이해될 수 있다. 추상미술 또한 지난 세기 한국 미술사의 큰 부분을 차지해 왔지만 2000년대 들어 원로급 작가들과 중진 작가들의 비중에 비해 신진 추상작가들의 움직임이 거의 포착되지 않고 있다. 세계 미술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고 한다 해도 이런 급격한 변화를 단지 추상미술이 그 새로움의 동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치부하기엔 석연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시장 논리의 미술 생태계가 추상미술의 생명력까지 집어 삼킬 것이라는 일각의 염려가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최근 10년간이 한국 미술의 양적 팽창이 이루어진 시기였다면 향후 10년은 미술의 근본에 대한 탐구와 질적 성장에 대한 모색도 함께 이루어지는 시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아트스페이스 루가 가을 기획전으로 선보이는 전시, "추상의 재림"은 이러한 한국 추상 미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고자 기획되었다. 하지만 이 전시는 '재림'의 찬양이라기 보다는 재림에 대한 갈구에 더 가까울 것이다. 두가지 주제로 구성된 전시는 뜨거움과 차가움으로 구분되어 있지만 전통적인 분류와는 차이가 있다. 『1부 - 뜨거운 상상』에서는 열정과 즉각적 감각의 유동성에 기반한 회화를 추구하는 작가들을 보여준다.(1부 참여작가 / 강임윤_김범석_임희성_정충일_제여란_한정욱) 『2부 - 차가운 상상』에서는 절제된 감각으로 계획적이거나 구상적인 접근법으로 추상성을 이끌어 가고 있는 작가들을 소개한다.(2부 참여작가 / 박은하_박창환_이소정_장재철_정윤경_허은경) 본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21세기 한국미술에 있어서 이러한 추상적 상상력이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추상의 상상력들을 새롭게 펼쳐가는 중진, 신진 작가들의 추상회화 세계를 들여다본다. ■
박은하 ● 박은하의 그림에서 우리의 평범한 일상은 한쪽 귀퉁이로부터 녹아 흘러내린다. 마치 플라스틱 소재의 사물들이 녹아 내린 듯, 안료가 번진 듯한 형상이다. 습관과 반복에 의해 차갑게 굳어버린 일상에 이상 열기를 만들어내는 비정형 패턴들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대상 세계의 경계를 넘나들며 출몰한다. 단단하게 외곽선을 보존하고 있는 대상들을 현실로 본다면, 경계선을 녹여 사물을 뒤섞는 뭉글뭉글한 패턴은 환상적이다. 그러나 박은하의 작품은 현실과 반대되는 허구, 또는 객관성과 무관한 내면의 몽상을 덧칠하는 작업이 아니라, 객관적 현실에 잠재되어 있는 잔여물이나 에너지를 이끌어내는 작업에 가깝다. 비정형 패턴은 대상으로부터 흘러나온 색상 요소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대상을 한정 짓는 견고한 외곽선을 무작정 잡아당기고 늘려 이리저리 접고 흐르게 한다. 작가는 단순한 대상에 수많은 겹과 울림을 부여하는 것이다. ■ 이선영
박창환_Floating_캔버스에 유채_200×160cm_2009

박창환 ● 나의 그림들은 내가 살아가는 사회의 한 단면에서 착안된 기호화된 이미지들이다. 작품의 바탕에 깔린 그것들은 광고나 매거진, 쇼윈도에 배열된 것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이 이미지들은 현대인들이 추구하는 욕망이 전이된 이야기적 구조이자, 민화의 현대적 해석처럼 받아들여진다. 과거 이 땅에서 살던 사람들의 삶에서 무병장수, 다산, 화목, 부귀영화의 단순하고 명쾌한 욕구 혹은 염원들은 지극히 욕망하는 것들에 대해 명쾌한 분류가 가능했었다. 그러나 현대인의 염원은 각각의 주체의 상황에 따라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복잡한 욕망들을 요구한다. 어쩌면 욕망을 요구한다는 의미보다 모든 것이 욕망화 된 생태에 있으면서 더 큰 포만과 자극을 원하는 것 일 수 있다. 이러한 복잡한 욕망의 이미지들은 지나간 전형적이면서 보편적 욕망 위에서 떠다니는 세포들의 분열처럼 우리의 시야각을 교란하고 사라진다. 대량으로 쏟아지는 욕망의 상징들은 사람들의 변덕적인 욕구만큼이나 쉽게 망각되고 새로운 변종으로 대체된다. 나의 작업은 이렇게 사라지고 새롭게 생성되는 현대인이 겪는 삶의 반경을 바탕으로 은유하고, 그 위에 부유하는 기호를 부양시켜 두 가지 층의 구조로 화면에 정착시킨다. 생겨났다 사라지고 다시 태어나는 삶의 순환처럼 우리의 욕망은 그 순환의 구조 속에서 존재를 드러낸다. 그 드러냄과 사라짐이 오버랩되고 흔들리는 역동성을 부정성으로만 인식하는 게 아닌 일종의 삶의 연속성의 일부라고 통찰하며, 민화의 현대적 의미를 조형성과 표현형식의 탐색을 통해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 박창환
이소정_Scion-46656_종이에 잉크_120×120cm_2011

이소정 ● '모체'에서 파생된 이미지들의 결합-이소정의 작품들은 원판 회화를 하나의 '모체'로 정하고 이 '모체'를 분해해 파생된 이미지들을 재결합하는 과정을 거쳐 탄생됐다. 이렇게 그의 작업은 하나의 '삽목'행위에 비유될 수 있다. 정사각형의 원판을 십자가 형태로 잘라 얻은 4개의 레이어와 세로와 가로 일부를 잘라 만든 두 개의 레이어를 포함 총 여섯 개의 레이어가 한 화면 안에서 중첩,배치되면서 특정한 형상을 이룬다. (중략) 이소정은 동양화 에서 불가피한 발묵의 우연적인 효과를 통제하는 것을 시작으로, '자동발생적'으로 무의식에 개입하는 요소를 소재로 하면서 동시에 이를 객관화하여 표현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이제 그는 보다 정교해진 형식 실험을 바탕으로 개개의 요소는 물론 화면상에 나타난 전체 이미지를 자유롭게 조율하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 Gallery2
장재철_Time-Space_캔버스 릴리프_110×85cm_2010

장재철 ● 장재철은 캔버스를 만든다. 캔버스 자체를 조형의 한 요소로 인식하고 있는 그의 태도는 캔버스를 이미지를 위한 지지대로 이해한 정통적인 회화 관념과 결별하고, 형식논리에 바탕을 둔 모더니즘의 환원주의 태도와 맞물린다. 일반적인 프레임에서와 같은 각목 대신 압축합판을 잘라 틀을 만드는데, 외관상 기하학적인 틀을 견지하면서도 곡선을 적극 도입한 형태로 인해 일종의 유기적 기하학이 그의 작업을 지배하는 논리가 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렇게 변형 틀을 만든 연후에, 화면을 가로지르는 보형물을 장착한다. 스테인리스스틸 판을 곡선으로 휘어 판에 고정시킨 후, 캔버스 천을 덧씌우는데, 이때 보형물과 캔버스 천이 서로 맞닿는 부분에다 천을 덧대어 보강한다. 그리고 그 표면에 단색조의 색채를 덧입혀 마감한다. 이렇게 드러난 형태는 일반적인 캔버스 틀이 휘어지거나 변형된 것처럼 보이고, 단색조의 심플한 색면으로 인해 색면화파나 미니멀리즘의 변주된 형식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가 하면 화면을 가로지르는 보형물이 화면 내에서 일종의 장력을 발생시킴으로써 팽팽한 긴장감마저 느껴진다 ■ 고충환
정윤경_untitled_섬유에 아크릴채색_20×20cm_2010

정윤경 ● 동전의 양면과 같이 공존하는 대립 에너지의 가시적 풍경은 자연과 인간의 이미지가 하나되어 얽힌 풍경인 정원술(gardening, topiary)과 미로(maze)의 조형성 그리고 현존하는 건축물에서 또한 찾을 수 있다. 자연을 인간의 영역으로 자연스레 흡수시키고 기호화 함으로써 상징적인 새로운 존재로써의 공생 채를 만들어가는 이는 인간의 자연 친화적 본능에 대한 실험적 공간으로, '경(景)'이라는 흥미로운 공간 재연을 위해 자연물을 패턴화 시키고 인공적 건축물이나 기하학 무늬 안에서 자라나게 함으로써 흔히 자연과 문화 그리고 인공물과 유기체로 불리는 상극의 에너지를 공생이라는 이미지적 해석을 통해 표현하고자 한다. ■ 정윤경
허은경_ space ship_한국 칠기_240×95cm_2011

허은경 ● 유전자 합성, 화학물 남용 환경오염...이 모든 사회적 문제들이 작품을 하게 된 동기이다. 증폭해가는 환경문제들이나 인류의 건강까지 위협하는 이런 환경 속에서 우리가 원하는 미래의 모습들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고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들이 뒤늦게 연구되고 있다. 내가 다루는 옻칠기법도 천연 재료로서 자연에 흡사한 도료라 할 수 있다. 이미 우리 선조들은 우리가 원하는 미래의 답을 알고 있었고 몸으로 실천하던 현명한 인류라 할 수 있다. 우리 것의 위대함에 매료되어 옻칠이란 재료를 선택했고 작품 속 이미지들은 원형에서 변형되었거나 조작되어 만들어진 가공 생명체의 모습을 하고 있다. 현미경 속인지 우주 밖인지 모를 기하학적인 형태들도 주로 표현되는 이미지들 중 하나이다.이는 선 불교에서 모든 것은 하나로 통한다는 거시적인 생각에 동화 되어 비롯되었고 작은 것 속에 큰 의미가 있고 또 큰 것 속에도 작은 것을 논할 수 있음이다. 보는 이로 하여금 그들이 보고자 하는 시점이 어디인지 스스로 결정하게 하고 생각의 유동적 흐름을 제시한다. 기형적 혹은 low technology로 만들어진 듯한 기계적 유기체들은 이미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모습이며 호불호를 떠나서 안고 가야 하는 우리의 현실이라 할 수 있다. ■ 허은경











Blue Report


권혁성展 / KWONHYOKSONG / 權赫星 / photography   2011_1021 ▶ 2011_1130 / 월요일 휴관


권혁성_Blue Report_시아노타입_67×100cm_2011

초대일시 / 2011_1021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30am~07: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온 GALLERY ON 서울 종로구 사간동 69번지 영정빌딩 B1 Tel. +82.2.733.8295 www.galleryon.co.kr


Blue Report ● 빌딩 숲. 분명 이 말의 기원, 처음은 나무 숲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자연의 숲이 빌딩 숲에 의해 침식당하고 있다. 푸르러야 할 그 공간이 회색의 벽으로 둘러 쌓이고, 흙 대신에 콘크리트와 아스팔트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심지어는 고층의 빌딩들이 자연의 능선을 흉내 낸 모양으로 지평선을 재창조한다. 푸른 수목들은 이제 조경의 역할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듯 하다. 진짜 숲은 힘을 잃고, 빌딩 숲은 득세한다. 「Blue Report」는 이러한 현실에 대한 보고서이자, 또한 다시 푸르른 숲을 보기를 원하는 나의 블루 판타지이다. ● 푸른색이 주는 느낌은 극적이다. 한없이 경쾌하다가도 또 한없이 우울하다. 나는 빌딩 숲들을 보면서 왜 거의 모든 건물들의 외관은 푸른색 유리로 도색되어지는지 궁금해 했다. 아마도 햇빛을 차단하기 위한 기능적인 이유였을 것이지만, '푸른색이 자연의 색이기 때문일 것이다'라는 나만의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정작 푸른색으로 장식된 빌딩들은 정말 "자연스럽지" 못하다. 자연의 경쾌함을 추구한 의도적 장식이었으나, 결과적으로는, 빌딩숲이라는 참담한 단어의 어감처럼, 우울한 블루를 만들어낸 것처럼만 보인다.
권혁성_Blue Report_시아노타입_67×100cm_2011
권혁성_Blue Report_시아노타입_67×100cm_2011
권혁성_Blue Report_시아노타입_67×100cm_2011

이러한 "숲 아닌 숲"에 자연을 더하고자 하였다. 이른바 빌딩 숲의 이미지에 나무숲의 이미지를 겹쳤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그들의 닮은 점보다는 뚜렷이 부각되는 다른 점들이었다. 빌딩들의 직선적인 형상과는 달리 자연의 숲은 추상적인 방향으로 그들의 나뭇가지를 뻗었다. 그들 각각의 추상성과 직선성이 만나 또 다른 세계를 창조하였다. 여기에 시아노타입(cyanotype ; blue print)을 통해 얻은 블루 톤의 이미지는 더욱 그 세계를 현실과 동떨어지게 만들어, 애초부터 없던, 아니 어쩌면 없어져 버린, 그리고 앞으로 오지 못할, 세계를 다시 그리고 있는 것이다. ● Blue Report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푸르름들에 대한 안타까운 현실과 새롭게 재창조되어 질 푸른 판타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기괴한 보고서이다. 또한 그것은 우울한 현실에 대한 도피처이자, 행복한 공상의결과물이기도하다. 그렇지만 나는 내심 그것이 공상으로만 그치지 않게 되길 기다리고, 또 기대한다. ■ 권혁성
권혁성_Blue Report_시아노타입_67×100cm_2011
권혁성_Blue Report_시아노타입_67×100cm_2011
권혁성_Blue Report_시아노타입_67×100cm_2011

Blue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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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진展 / KIMDUJIN / 金斗珍 / new media   2011_1022 ▶ 2011_1031


김두진_Biblis_3D 디지털 프린트_82×190cm_2011

초대일시 / 2011_1022_토요일_05:00pm

지원 / 서울시립미술관 2011SEMA

관람시간 / 10:30am~06:30pm

노암갤러리 NOAM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 133번지 Tel. +82.2.720.2235~6 www.noamgallery.com


깨어지기 쉬운 질서의 재배치-김두진의 작업에 관하여 ● 김두진은 회화와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이용해 자신의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표출해왔다. 그는 최근 게이로서의 정체성을 하위문화적 요소와 고전회화를 버무린 회화작업으로 드러내며 다양한 코드를 생산해왔다. 그가 만들어낸 코드는 기존의 관념으로 굳어진 코드를 교란시키며 재배치하는 것들이다. 곧 기존 코드를 해체하는 새로운 이미지를 생산해내며 타자로 치부되어 버린 동성애자로서의 입장을 은유적으로 표현해왔다. 작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유령처럼 느끼게 되고 만다고 말한바 있다. 「눈먼 미키마우스는 비자가 필요하다」에서 볼 수 있듯 화면에 뭔가 부족한 캐릭터와 비자를 병치시켜 이 땅에 발붙이며 살아가기에 힘든 현실을 유쾌하면서도 역설적인 그림으로 그려내는 식이다. ● 이 때문에 작가가 자신의 성적 정체성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발언해왔지만, 그의 작품은 정치적인 뉘앙스보다는 유머러스하고 역설적인 코드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정상적인 것이라고 주입되었던 상식을 살짝 뒤틀어 사회적 기준을 깨뜨리는 것이다.
김두진_Venus and cupid_3D 디지털 프린트_210×100cm_2009

작가는 회화 뿐 아니라 영상, 설치를 넘나들며 다양한 방식으로 작업해왔다. 이같은 회화와 영상은 서로 연결고리를 이루며, 하나의 모티브가 무한 증식되며 확장되어나간다. 「잔인한 장식장」과 「당신곁을 맴돕니다」와 같은 작품에서 보듯 절단된 신체, 신체의 파편화 작업은 지속적으로 회화와 영상 모두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벌레와 나무줄기 혹은 장기의 다발들처럼 보이는 유기체적인 이미지들은 반복해서 그의 회화 속에 등장하고 있다. 「도로시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와 「No Place like home」는 게이 아이콘으로 사랑받았던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이같이 서로 다른 작품 속에서 얽히고설킨 이미지들은 작품 간의 유기적인 관계를 심화시킬 뿐 아니라, '네버엔딩 스토리'처럼 끊임없이 다른 이야기들 속에 편입되어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 한편 동화와 애니메이션, 영화와 같은 하위문화적 요소들은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그것은 상투적인 대중문화 이미지가 성별을 전형화하고 현실의 모순은 삭제한 채 무작정 밝고 희망적인 인식만을 심어주는 아이콘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전형적인 이미지들을 조금씩 뒤틀어 굳건해진 사회적 질서와 규범에 균열을 가하는 것이 작가의 역할이 된다.
김두진_SpringTime_3D 디지털 프린트_230×145cm_2010

김두진은 이번에 선보이는 신작에서 좀 더 절제된 어법으로 회화와 미디어의 접점을 찾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영상과 회화작품은 형식은 다르나 소재나 내용상으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알레고리를 형성하는 것을 알 수 있다. ● 해골의 이미지는 초기회화작품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던 소재이다. 「당신곁을 맴돕니다」와 「도로시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2000년작)」 등 에서 배경에 파편화되어 등장했던 해골을, 이번에는 전면에 내세우며 전작에서 보여진 죽음의 그늘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이번 신작은 3D로 해부학적 비율에 맞추어 일일이 수작업을 한 것으로 작가의 치밀함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No place like home」에서도 일일이 영상을 이어 붙였던 수고스러움이 이번에는 3D 작업을 통해 이어졌다. 표면만을 모델링한 것이 아니라, 얇은 층들을 겹겹이 쌓아올려진 듯한 질감 표현이 미묘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은 무엇을 위해 사용된 것일까? 이번에는 가장 전통적인 방법과 표현에 충실한 신고전주의 작가 부게로의 작품을 차용하여, 살점은 모두 사라지고 부서질듯 영롱하게 빛나고 있는 뼈만 남겨놓았다. 그것을 3d로 만들어, 프린팅하였다. 전혀 다른 맥락과 느낌이 되어버린 작품은 모델의 포즈를 빼면 원작의 단서는 찾기 힘들다. 아름다운 여인과 큐피드 그림에서 살을 모두 걷어낸 해골 인물들에게서는 인종도 성별도 알 수 없다. 이는 어떤 편견이나 계급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각으로 보여진다. 차이를 지워낸 해골 초상 그림은 역설적으로 어딘지 우울하며 잡히지 않는 존재처럼 보인다.
김두진_The Youth for Bacchus_3D 디지털 프린트_140×300cm_2010~11

미묘한 골격의 차이를 빼고는 해골은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 차이가 삭제된 것이나 다름없다. 성별도, 인종도 알 수 없는 해골이미지는 타자로 치부되어왔던 '차이'들을 불식시키는 장치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작가는 회화에서 3D 모델링 방식으로 작업형식을 바꾸어 전혀 다른 이미지로 다가옴에도 불구하고, 해골이라는 모티브를 전면에 내세워 이전 회화에 존재했던 파편화된 이미지들을 연결시켜 새로운 알레고리를 구성하며 확장된 시도를 보여준다. 이렇게 살아있는 인간의 흔적이 지워진 그의 작업은 죽음의 그림자를 음울하게 드리우면서도, 기준으로 여겨진 정상적인 것들에 대한 뒤집기 한판을 시도하고 있다. 죽음이나, 공포, 불완전한 현실에 대한 두려움, 결핍된 것들에 대한 표현으로 나타났던 해골은 오히려 아름다운 대상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김두진_The charity_3D 디지털 프린트_203×120cm_2011

이쯤에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유령처럼 느껴졌다는 작가의 말이 다시 떠오른다. 허수아비, 양철 나무꾼, 겁쟁이 사자의 캐릭터들은 본질적으로 '남성적'인 특징들을 결여한 존재들로 '도로시의 친구들'이란 말은 게이를 칭하기도 했다. 눈먼 미키마우스, 허수아비, 양철나무꾼, 겁쟁이 사자, 기형의 해골들, 인형 파편, 살은 드러낸 채 남아있는 해골들. 김두진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이같은 이미지는 어딘가 불완전한 존재들이다. 어딘지 2프로 부족한 뒤틀린 캐릭터들은 이성애 코드에 대한 전치를 표상할 뿐 아니라, 사회에서 정상이 아닌 것으로 치부되는 모든 것들을 수수께끼 같은 이미지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이같은 김두진의 시선은 이번 신작에서 보편적인 이미지로서의 가능성으로 확장되고 있다. 보다 절제된 표현과 해골의 표현 이외에 어떤 요소도 배재한 신작은 더욱 깨어지기 쉬운 사회시스템으로서의 이상적인 미, 가족, 성별에 대해 허무함과 회의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 그가 겪고 느낀 여러 가지 복잡한 감성들이 이번 작품에서는 한층 더 두드러지며 개인적인 진술을 하고 있는 듯 보인다. 자신의 나이에 마주치게 되는 특수한 상황들에서 경험된 감성들을 세련된 화면에 담아낸 작가의 새로운 행보가 기대되는 대목이다. ■ 김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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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bel

  • 작성시각: 2011.10.25 19: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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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stopia

서영덕展 / SEOYOUNGDEOK / 徐永德 / sculpture 2011_1026 ▶ 2011_1031


서영덕展_인사아트센터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서영덕 블로그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1026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서영덕의 중독, 혹은 감염 ● 젊은 조각가 서영덕의 관심은 인체다. 인체에 대한 탄탄한 조형적 이해와 관심을 기본으로 세상이야기를 담아내고 풀어낸다. 연출을 통해 이야기를 설명적으로 전달하기보다는 조형화된 인물들의 동세와 표정을 통해 미루어 짐작케 한다. 사람 사는 세상이야기를 사람 형상을 통해 전하고 있는 것이다. 조각이든 세상이야기든 그에게는 사람이 기본이요, 중심이다. 작업을 관통하는 모티프 역시 사람이다. 다양한 이야기와 이런저런 표정의 사람이 만들어지는 서영덕의 산실(産室)에는 크고 작은 인체 형상이 가득하다. 두상, 입상, 흉상, 토르소 등 다양한 형식과 포즈의 남녀조각상들이 망라되어 있다. 서영덕의 인체에 대한 조형적 관심이 깊고도 넓음이다. 대부분이 누드 조각상인 이들은 모두 힘들다는, 이른바 용접술을 사용한 철조용접조각들이다. 사실 조각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엄밀히 말해 소조 과정을 거친 것들이다. 쇳덩어리를 주무르면서 인체를 성형한 것이 아니라, 쇠붙이를 하나하나 부분적으로 녹이고 이어 붙여나가면서 원하는 모양으로 완성한 것이다. 서영덕은 드로잉, 모델링, 캐스팅, 웰딩(welding) 등 시작에서부터 완성에 이르는 모든 과정은 전통/정통의 제작 과정을 충실히 따른다. 또 그 모두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마무리한다. ● 산고(産苦)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는 일련의 복잡하고 예민한 과정을 통해 태어난 그의 인체는 알 수 없는 뭔가에 중독, 혹은 감염된 듯 퀭한 모습이다. 전체적인 표정과 동세가, 세부적으로는 신체 각 부분, 특히 얼굴 부분의 표정이 그러하다. 한편 입을 굳게 다물고 눈을 지긋하게 감고 있는 얼굴 표정은 마치 구도자의 모습처럼 보인다. 실로 오랜 고행과 수행을 마친 수도자처럼 깡마른 표정들이다. 일체의 세속적 욕망과 욕정이 거세된, 조형적으로도 군더더기가 없는 절제된 표정과 표현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결코 편안한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젊은 남녀, 특히 청년의 표정에는 무섭도록 잔인한 무언가를 인내하고 있거나, 세상의 냉정하고 잔혹함에 대해 눈을 감아버리고 있음이 역력하다. 때론 잔인, 혹은 섬뜩하기도 하고 스스로 흉측하기도 하다. 일부 인체는 머리가 싹둑 잘려 있거나 신체가 부분적으로 뭉개져 있다. 실물보다 훨씬 큰 모습으로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청년 두상은 보는 편안함을 넘어 알 수 없는 공포나 두려운 무엇을 짐작케 한다. 동시대 일그러지고 위축된 청년들의 존재를 역설적으로 강조하고 부각시키려는 듯 엄청나게 커다란 크기로 제작한 것일까?
서영덕_감염-번뇌 Infection-Anguish_금속체인_170×55×40cm_2011

이와 같은 이런저런 표현이 가능한 것은 아마도 서영덕이 체인과 용접술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반 주물 작업으로는 작가 특유의 조형적 고민과 이야기를 오롯이 담아내지 못한다. 부분적으로 캐스팅해서, 이른바 앗상블라주 형식으로 조합할 수는 있지만 통으로 그가 전달하고자하는 이야기를 떠낼 수는 없다. 서영덕의 조각들은 바닥에 놓이거나 벽에 부착되거나 천정에 달린다. 또 다른 의미에서 대단히 입체적이고 실험적이다. 그들은 모두 체인으로 뒤 덮여 있다. 소위 철인들이다. 체인 단편들로 피부조직처럼 인체를 감싸 안으며 하나하나 땀을 뜨듯 직조했다. 그의 조각은 조각의 기본 형식에 충실한, 실로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대단히 정신적인 작업이다. 체인 단편들과 용접술의 만남으로 지금의 서영덕 조각은 가능했다. 그들은 얽히고설킨 복잡한 세상처럼 끊임없이 서로를 물고 물리며 온 몸을 휘감고 있다. 서영덕의 작업은 이른바 체인 리액션(chain reaction)이다. 원하던 원치 않던 특정 분면과 좌표 상에 위치할 수밖에 없는 인간관계와 사회 구성원으로서 가지는 시스템과의 역학 관계 등을 생각하게 한다. 어떤 사건이나 현상으로 인해 원치 않는 영향을 받게 되는, 보이지 않는 연쇄반응을 짐작케 한다. ● 미술을 전공하건 타 전공을 하건 먹고 사는 문제와 진로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산업 경제가 전반적으로 위축되고 상업 자본 중심으로 세상이 빠르게 재편되면서 기성은 물론 젊은 청년들의 사회 진출이 흡사 동맥경화 상태다. 심각한 사회문제인 청년실업이 그중 하나일 것이다. 서영덕은 일부 견고하게 사회 시스템 내에 붙어 있거나 한편으론 유리되기 시작하여 떨어져 나가버리는 사회 현실 풍경을 특유의 인체묘사를 통해 적나라하게 풍자하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 또 서로를 견디기 위해 맞물리면서 꿈틀거리는 현상과 현실을 표현하기 위해 찾은 재료가 체인이었다. 체인 단편들은 핀으로 박혀 있다. 다른 단편들과 하나의 핀을 공유하며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다. 빛을 받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반사율을 보이는 등 우리네 삶의 모습과 닮았다. 그의 조각은 빛에 따라서 밝기가 다르게 빛나는, 표정이 살아 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움직이는 조각이다. 물론 실제로 움직이지 않는 오브제지만,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다양한 변화를 보이는 움직이는 물체처럼 느껴진다. 많은 이해관계가 치밀하고 견고하게 교차하고 있어 벗어나려 해도 벗어나기 힘든 현실 풍경, 한계상황을 돌아보게 한다.
서영덕_감염-자아 Infection-Ego_금속체인_80×60×60cm_2011

서영덕의 작업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반복이다. 소재와 재료, 기법 등이 그것이다. 특히 절망과 고통의 반복, 가능성과 희망의 반복이 두드러진다. 반복과 집적으로 그러한 행위와 사고를 이어나간다. 그려나간다. 마치 희망의 별자리를 새겨 나가듯 인간 세상의 이런저런 기성 좌표를 침투해나간다. 조직적이기보다는 랜덤한 표정이지만, 한편으론 치밀한 조형적 탐색으로 보인다. 서영덕은 체인이라고하는 작은 단편 수 천 개를 용접봉으로 지지고 녹여 붙이며 지금의 형태를 만들어 냈다. 서영덕은 곪고 곪아 썩어 문드러진 불감의 세상, 인간을 지진다. 깨운다. 녹여 뭉뚱그린다. 수술하듯 봉합한다. 상처, 눈물, 아픔 등 잉여의 감정이 촛농처럼 뚝뚝 흘러내린다. 떨어뜨린다. 우리네 영혼을 잠식하는 기성의 볼썽없는 바이러스, 상업적 자본으로 대표되는 물질만능시대의 감염균과 치열하게 맞서고 있다. 싸우고 있다.
서영덕_감염-번뇌 Infection-Anguish_금속체인_70×75×50cm_2011

그의 인체는 대체로 견고하다. 그러나 무언가에 전염, 감염되어 속절없이 녹아 무너져 내리고 있다. 속이 꽉 들어찬 형상도 아니다. 일견 견고한 인체로 보이나 가까이 다가가면 성긴 모양으로 서 있다. 텅 비어 있다. 겉으로는 깔끔하게 마무리되어 있다. 이면을 들여다보면 용접술에 의해서 지져지고 뭉개지고 녹여져 있다. 기왕의 견고하게 연결된 체인과 체인을 한 번 더 달구고 지지고 녹였다. 잔뜩 성이나 있다. 흡사 부종(浮腫)처럼 불규칙한 용착상태를 보인다. 무언가에 의해 감염되고 그것의 전이가 빠르게 이루어져 온 몸이 썩고 있음이다. 겉으로는 담담한 표정이다. 속이 타들어가고 온 몸은 바이러스에 의해 감염되어 녹아들어가는 절대 절명의 한계 상황이다. 그러나 태연할 수밖에 없는, 불감의 단계를 연출한다.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있는 관골과 하악골이 분명하고 견고하게 드러난 깡마른 상태의 표정이다. 어쩔 수 없음을 용인하는 대단히 이성적인 포기, 불가항력적인 한계상황을 제시하고 있다.
서영덕_중독-묵상 Addiction-Meditation_금속체인_230×180×190cm_2011

서영덕의 실제 모델은 대한민국의 30대 남성이다. 불투명한, 절망적인 삶으로 몰아가는 비정한 현실 속 익명화된 청년 노동자의 이미지를 담으려 노력했다. 냉정하고 이성적인 양, 이를 악물고 눈을 감고 있는 표정이 대단히 역설적이다. 녹록치 않은 삶에 지친, 흐르는 침묵과 손을 쓰지 못하는 무기력한 한계상황이 감지된다. 서영덕의 청년들은 깊은 침묵 속에 잠들어 있다. 혹은 끊어질 듯 이어지며 아슬아슬하게 서로를 견디며 버티고 있다. 존재의 강한 깊은 침묵이다. 그의 인체는 모순되는 것들,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 세상의 모순되는 것들을 양립시키면서 각기 다른 방향과 질서를 보인다. 좌충우돌하며 부딪히기도 하고 따르기도 하면서 하나의 단단한 형태로 각자의 자리를 걷잡고 있다. 뼈와 속을 훤히 드러내고 일체의 감정을 철저하게 거세한 냉정한 표정, 감성을 제어한 깡마른 인물들의 얼굴 표정은 대한민국의 30대 후반 남성 노동자의 이미지로 지식/육체노동자를 포괄한다. 그들은 대단히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보인다. 냉랭한 기운이 흐른다. 시선은 눈을 감고 있다. 포기, 혹은 지친 표정일 수도 있다. 절대자에 대한 구원을 희구라도 하는 걸까. 노동과 노동 현실에, 노동을 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 대한 고민과 생각, 혹은 미래의 모습들도 투영된다. 작가의 심정이기도 할 것이다. 서영덕은 이를 위해 실제 깡마른 모델을 대상으로 했다. 전두골, 관골, 하악골이 발달되어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남자 나이 서른을 넘기면서 마흔을 바라보면서 지난 시절을 돌아보는, 이른바 '과거의 나', '현재의 나', '미래의 나'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하는 복잡한 표정이다. 그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면서 맞은 편 이미지와 여러 가지 조합을 보인다. 빛과 그림자가 빚어내는 다양한 표정이 흥미롭다. 그만큼 생각이 복잡하고 번민이 가득 차 있는 모습이다. 이들이 오버랩되며 수 많은 조합이 교차되는 그의 머릿속에는 그만큼 많은 세상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이다.
서영덕_중독-복수자아 Addiction-Siamese_금속체인_90×50×30cm_2010

서영덕의 이야기는 바닥에 덩그러니 놓인 대형 두상으로 함축된다. 마치 수도사와도 같은 깊은 침묵으로 일체의 불필요한 감정을 던져 버리고 감춘 채 견고하고 놓여 있다. 서영덕의 그것은 세상을 향해 열려 있고 사방으로 마음을 통하고 있다. 무언가 분명 회복할 수 없는, 완전히 상실된 것에 대한 그리움을 인내하고 있다. 사회의 견고함에 대한 주관적인 대응이 아닌, 객관적인 대응을 보이고 있다. 용접봉으로 하나하나 지져나가면서 울분을 반추하고 마음을 걷잡고 녹이고 삭이며 비로소 희망을 본다. 땀땀이 이어나간 서영덕의 젊은 집념에 박수를 보낸다. ■ 박천남
서영덕_중독-번뇌 Addiction-anguish_금속체인_180×110×90cm_2010

Addiction or Infection of Yeong-Deok 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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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연화展 / YANGYOUNHWA / 楊娟華 / drawing.animation 2011_1026 ▶ 2011_1101


양연화_무제_종이에 연필, 아크릴채색_37×27cm×3_2011

● 위 이미지를 클리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01006d | 양연화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1026_수요일_06:00pm

서울시립미술관 Sema 신진작가 전시지원 프로그램

관람시간 / 10:00am~06:00pm

덕원갤러리 DUKWON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 15번지 Tel. +82.2.723.7771~2 www.dukwongallery.co.kr


검은 그림자 환幻의 세속도시 - 장면에서 환幻으로 ●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한 양연화는 「만들어진 풍경」의 세계를 깊게 사유했다. 「만들어진 풍경」은 다섯 개의 연작으로 이뤄진 작품으로, 풍경은 명승 관광지와 같은 어떤 장소들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였다. 그 세계는 사회나 국가처럼 강력한 시스템이 작동했고, 그의 작품들은 이전의 작품들과 변별되었다. 「예술가의 작업실」(2006), 「예술가의 방」(2008)을 발표하며 집요하게 예술의 '탄생 공간'을 물었던 그는 문득 공간이 아닌 세계를 떠올렸다. 그가 물었던 공간이 생명을 포태하는 자궁으로서 원초적인 잉태의 공간을 상징했다면, 불현듯 출현한 세계풍경은 자궁 밖에서 맞닥뜨린 비루한 현실일 터. ● 수년 동안 사진과 회화를 섞어서 표현한 그의 '작업실/방'은 예술의 시원과 같아서 소생蘇生과 생성生成, 출산出産이 카오스모스chaosmos로 난무했다. 미의 캐논canon으로 각인되었던 미술사 속의 작품들이 혹은 유사 이미지들이 그 안에서 들끓었고, 끓어서 '예술'이 되려는 욕망이 생생했다. 그는 의도적으로 그런 장면을 연출하거나 스스로 분장했고, 거기에 풍자를 뒤섞었다. 작품은 화려한 듯 그로테스크했다. 원초적이고 관능적인 대상/사물의 표정과 폐쇄적일만큼 자기 유폐적인 작품 속 장면들은 그래서 빛과 그늘이 분리되지 않았다. ● 장면에서 풍경으로 전환 된 시점은 2010년이었다. '작업실/방'이 자궁 속 탄생 공간의 생성지였다면, 풍경은 그 생성지로부터 출산된 세계였다. 그는 그 세계를 「만들어진 풍경」이라 명명했다. 「만들어진 풍경」은 몸으로 그려진 기이하고 낯선 산수다. 흘깃 보면 벌거숭이산으로 송대의 관념 산수를 떠올리게 하고, 토템의 상징을 엿보이는 기암괴석을 닮기도 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세계는 산수도 괴석도 아닌 수천 수억의 사람들이다. 벗은 사람들이 엉겨 붙어서 맹목성의 욕망으로 치솟은 탑이다. 해원도 해망도 해탈도 없는 환幻의 탑신이다.
양연화_cycle_애니메이션_00:04:00

환幻 세계 : 환과 현실은 둘이면서 하나다. ● 환의 세계로서 「만들어진 풍경」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의 풍경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먼저 환의 세계가 무엇인지 엿보아야 한다. 환은 불교에서 현실에 빗대거나 현실의 덧없음을 비유하기 위해 사용된 개념인데, 서산대사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 "일체의 事象은 인연으로 얽혀 있을 뿐 모두 실체성이 없으며, 오직 幻의 가상으로 출현하므로 '幻想'이라고도 하며, 그 존재는 '幻有'라고 한다. 모든 존재?현상은 환술사가 요술로 化作해 놓았다고 하여 '幻化'라고도 한다."[청허휴정 지음, 박재양, ?배규범 옮김, 『선가귀감』, 예문서원, 2003. 원전은 『大智度論』, 卷6 「初品中十喩擇」임] ● 서산대사는 세계를 환술사가 화작해 놓은 환으로 보았다. 지금 여기가 환의 세계라면 현실과 환상은 따로 분리될 수 없다는 뜻이다. '환'과 '현실'은 둘이면서 하나다. 왜 둘이면서 하나일까? 불교는 깨달아 이르는 곳이 현실너머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현실너머에 다른 현실이 있다손 치더라도 너머의 현실이 여기 현실과 다르지 않다고 보았던 것이다. 너머에서나 여기에서나 현실은 이어져 있어서 '다름'의 실체를 가늠할 수 없고, 오직 환으로 밖에는 출현하지 않는다. ● 현실과 환을 구분하지 않는 모순의 구조에 틀어박혀 있는 것이 탐욕이요, 화냄이며 어리석음이다. 이 세 가지 번뇌로 우리는 현실을 현실로 보지 못하고 환을 환으로 보지 못한다. 바꿔 말하면, 현실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고 또한 환에 빠져 환을 깨우치지 못한다. 양연화의 「만들어진 풍경」은 현실이면서 환이고 환이면서 현실인 부조리의 세계다. 그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보라. 천둥벌거숭이들의 탐욕과 화냄과 어리석음이 만연하지 않은가. 그의 손으로 화작해 놓은 이 풍경의 세목에는 헤어 나오지 못하는 맹목盲目이 불길처럼 타오른다. 스스로를 완전히 해소하기 전에는 멈추지 않을 불길처럼. ● 활활 타오르는 탐욕의 화신들에서 '환상성fantasy'이 엿보이는 것은 낯설지 않다. 그리스어 파이네인phainein(보인다)과 라틴어 판타스마phantasma(환영)를 어원으로 하는 환상성은 "잠재의식의 표현이며, 잠재의식을 개입시켜 외부사실을 일그러뜨리거나 비합리적인 연상 작용을 자극하는 낱말, 심상, 운율의 사용, 병치 등"을 범주에 둔다. 흄K.Hume에 따르면 "환상성은 합의된 리얼리티로부터의 일탈을 꿈꾸는 것으로 놀이, 환영, 결핍된 것에 대한 갈망으로, 주어진 현실을 변화시키고 리얼리티를 바꾸려는 욕망"이다. ●「만들어진 풍경」을 대입해 본다면, 풍경은 짓눌린 잠재의식의 분출이며 일탈을 꿈꾸는 것이고, 결핍에 대한 갈망으로 현실의 변화를 추궁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방민호가 지적했듯이, 전경린의 소설에서처럼 여주인공을 제도와 지루한 논쟁을 벌이지 않게 하는 대신, "여주인공으로 하여금 비루한 현실을 훌쩍 뛰어넘어 몽夢과 환幻의 세계를 노닐어 모험하게 하고, 그 모험의 극단에 이르러 새로운 생 또는 죽음의 방식을 획득하도록" 하는 방식이다.[방민호, 『문명의 감각』, 향연, 2003, 96쪽] 양연화 또한 그의 주인공들로 하여금 환의 세계를 모험 들게 하고 그 모험의 극단에서 생사의 아수라장을 직조하지 않는가. 그리고 그 아수라장의 입체 풍경이 난지에서 제작한 두 개의 애니메이션이다. ● 난지에 입주한 그가 「만들어진 풍경」의 세계를 깊게 사유한 데에는, 그의 풍경이 회화로서 2차원을 초월하지 못하는 힘듦에 있었다. 그는 그의 환의 세계와 환상성을 좀 더 입체적이면서도 생물적인 동영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탐욕, 화냄, 어리석음의 단일한 장면성에서 현실을 재현하는 서사적 미메시스mimesis를 구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만들어진 풍경Ⅰ」은 애니메이션의 시스템이다. 시스템을 읽어 보자.
양연화_cycle를 위한 드로잉_종이에 연필_100×100cm_2011

장면1) : 만들어진 풍경Ⅰ ● 「만들어진 풍경Ⅰ」은 압정의 뒤를 풍경의 전경으로 형식화 한 대규모 군상작품이다. 세로 직사각형의 하얀 종이 화면에 연필로 드로잉한 이 작품은, 화면의 중앙부를 반원으로 돌리고 반원의 중심에서 상단 끝까지 치고 올라간 바늘기둥을 형상구조로 한다. 그러나 실상 그 구조는 바늘도 아니고 압정의 머리판도 아니다. 돋보기를 들고 판의 세계로 들어가면, 구조를 이루고 있는 검은 얼룩무늬 그림자는 모두 깨알만한 사람들이다. 벌거숭이 사람 떼다. 사람들은 떼로 몰려다니며 난무를 형성하고 아수라를 만들고 있다. 한쪽이 보병행렬로 뭉쳐서 시커멓고, 다른 쪽은 포병으로 날 뛰어서 떼 바람이다. 중세와 근세와 근대의 잔혹한 전쟁의 불길이 시공을 태우고 뭉친듯하고, 자본과 독재와 산업과 억압과 민주와 규율과 종교가 맨 몸으로 터진 듯하다. 긍정도 부정도 없이 뭉친 힘으로, 부풀어 터지듯 솟구친 것이 바늘기둥일 터이다. 너 죽이고 나만 살리는, 맹신과 맹목의 번뇌로 기어오르는 벌거숭이 기둥.
양연화_highs and lows_애니메이션_00:05:29

장면2) : cycle과 highs and lows ● 그는 「만들어진 풍경Ⅰ」의 서사를 뚝 떼어서 「cycle」과 「highs and lows」를 제작했다. 「cycle」은 바늘기둥에서 추락하는 사람들을 다룬다. 떼거지로 추락하는 사람들과 떼거지로 쌓여서 아우성대는 사람들이 참혹하다. 그 중 한 사람, 출구를 향해 걷다가 포클레인 삽날에 떠밀려 다시 추락한다. 그 추락의 하방세계도 아우성이다. 엉기고 섞여서 외침조차 되지 못하는 절규의 난망한 풍경이 원경으로 밀려나자 하방세계의 구조가 컵이었음을 알아차린다. 컵에 검은 물이 차고, 가득찬 물에서 웬 물고기 한 마리가 뛰노는 순간, 컵을 손에 쥔 뚱뚱한 민둥머리가 꿀꺽 먹어 치운다. 그리고 다시 포클레인이 민둥머리를 튕겨서 화면에 터트린다. 암전. 「highs and lows」는 벽을 기어오르는 사람 떼다. 한 사람, 다섯 사람, 수백 수천의 사람 떼가 벽을 기어오른다. 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사람, 밟고 오르는 사람, 견디지 못하고 떨어지는 사람, 다시 오르는 사람들로 절벽은 만원이다. 그 순간 파도가 밀려와 무리를 휩쓸어 버린다. 그러기를 두어 차례. 밀물과 썰물에 쓸린 사람들이 쌓여서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 사이, 한 사람이 오른다. 오르며 돌아본다. 끝없이 추락을 반복했던 순간들을 생각한다. 오직 그 만이 오르고 있는 지금의 현실을 깨닫는다. 경쟁이 상실된 길, 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 그는 문득 '만들어진 풍경Ⅰ'의 바늘기둥에서 숱하게 추락했던 옛 기억을 떠올린다. 화염과 한탄과 시기와 배신의 순간들. 그는 추락하는 이의 눈물에서 자신을 본 후 꼭 쥐었던 손을 놓는다.
양연화_highs and lows를 위한 드로잉

통역) : 환을 벗어 던져도 '나'로서 남는다 ● 양연화는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자들의 실체에 주목했다. 그런데 그 실체라는 것이 과연 지 금 여기의 진리인가의 문제는 화두일 수밖에 없다. 매트릭스의 가상현실과 매트릭스 밖의 현실처럼 우리의 삶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하기 어렵지 않은가. 장자의 호접몽도 꿈에선 꿈인 줄 모르고 깨고 나서야 꿈인 줄 알듯이. 나비가 장자인지 장자가 나비인지의 물음은 여전히 남지만 말이다. 흥미로운 점은 매트릭스에서 네오는 기억의 지배에 저항하지만, 장자는 피아彼我의 구별을 초월함으로써 환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라마나 마하리쉬의 『나는 누구인가』를 번역했던 지산이 지난 해 입적하며 마지막으로 남긴 글은 "삶은 꿈이다"로 시작되는데, 뒤이어 그는 "중생들의 삶이란 탐, 진, 치가 빚어내는 꿈이요 환"이라고 썼다. 마하리쉬의 어록에 만약 '나' 또한 하나의 환이라면 그 환을 벗어던지는 것은 누구인지를 묻는 장면이 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나'가 '나'라는 환을 벗어던지지만 그러면서도 '나'로서 남아있다. 이런 것이 참 나에 대한 깨달음의 역설이다. ● 지금 당신은 환의 세계에 있는가, 현실에 있는가. 당신의 꿈은 장자인가 나비인가. 당신은 한 마리의 물고기인가 민둥성이인가. 맹목으로 기어오르는 당신은 당신인가 아닌가. 양연화의 작품은 우리로 하여금 '경쟁이 상실된 길'에서 환을 벗어 던지라고 외친다. 현실을 벗어 던지라고 소리친다. 벗은 뒤에도 남는 것은 '나'이니 그 이후의 나를 찾아야 할 터! ■ 김종길
양연화_highs and lows를위한 드로잉_종이에 목탄_170×110cm_2011

Dark Shadows The Secular City of Illusion-From Scene to Ill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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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ke it mind


선호준展 / SUNHOJOON / 宣鎬準 / painting 2011_1026 ▶ 2011_1101


선호준_W2W11-#01_장지에 혼합재료_149×214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80803b | 선호준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1026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토포하우스 TOPOHAUS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4번지 B1 Tel. +82.2.734.7555/+82.2.722.9883 www.topohaus.com


현재 진행하고 있는 작업은 언어유희를 통한 1차적인 단어조합의 단계를 떠나 한 단계 더 진지한 자세로 다가가려 노력하고 있다. 내 작업은 전체적인 틀에서 봤을 때 고정관념에서 시작한 작업이기에 고정관념과 창의적인 생각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 호기심을 유발하는 요소보다 더 큰 명제로 다가온다. 고정관념은 스스로 정한다기 보다 학습되어서 몸에 익어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학습되어지기 전의 모습이 계속 보존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선과제인 것이다.
선호준_W2W11-#02_장지에 혼합재료_149×214cm_2011
선호준_W2W11-#03_장지에 혼합재료_162×130cm_2011

바퀴벌레란 무엇인가? 단순한 궁금증이다. 그냥 벌레일 뿐이고 본능에 의해 살아가는 것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살아가는 방법을 알았고 수 억년을 그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살아왔다. 그리고 어떤 환경의 변화도 대처 할 만큼 스스로를 단련했다. 경이롭지 아니한가? 나약한 인간의 존재와 비교했을 때 적어도 육체적으로 강인하다. 사실 정신적으론 더 강인하다. 생존과 번식 오직 그들이 살아가는 이유다.
선호준_W2W11-#04_혼합재료_가변설치_2011_부분
선호준_W2W11-#04_혼합재료_가변설치_2011_부분
선호준_W2W11-#05_장지에 혼합재료_214×149cm_2011

바퀴벌레들이 살아왔던 그 환경들의 변화를 그려보고 있다. 현재 바퀴벌레는 주인의 자리를 빼앗긴 그런 상황이다. 그들이 지구를 지배하던 시절이 있었고 또다시 그런 자리에 오를 날은 그 어떤 종보다도 높다. 그들만의 파라다이스, 낙원이 근간에 기획하고 있는 작업이다. 또한 '라우센버그'가 그의 작업에 사용한 '염소 와 타이어'도 단순한 단어 연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인간이 염소의 뿔을 달고 비장하게 바퀴를 들고 있는 상황도 연출된다. 인간과 염소, 바퀴와 바퀴벌레, 도시와 숲 자유와 철창 등은 조금씩 옮겨가고 있는 내 작업의 무게중심을 설명하고 있다. 자유롭고 싶은 바퀴벌레와 그렇지 못한 그들의 현실, 어두운 곳에 갇힌 철창신세처럼 살아가는 모습 속에서 인간의 모습이 투영된다. 과연 바퀴보다 우월할까? 많은 것들이 뒤섞여있지만 하나의 방향을 향해 나가는 작업을 진행함으로써 근본적인 물음에 스스로 대답하고 싶다. ■ 선호준

2011.10.25 19:04:14 / Good : 302 + Good

zabel

  • 작성시각: 2011.10.30 02:3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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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ut of Body"

 리처드 듀퐁
 Richard Dupont
Oct 7 ~ Nov 1, 2011

      인간존재에대한본질적인문제의식을조각작품에담아내는리처드듀퐁(Richard Dupont). 그의개인전이청담동에위치한 MC갤러리에서열린다. 리처드듀퐁은왜곡된 3D그래픽이미지의형태를지닌신체조각상을제작하는것으로유명하다.
      그는자신의신체를레이저스캔하여산출된데이터값을바탕으로인물의전신조각상을만든다. 이렇게제작된하나의모델은작가에의해여러형태로왜곡된다. 이렇게에디션으로만들어진전신조각작품들은작가의계산아래전시공간의이곳저곳에설치된다. 그는이러한작품설치방식과전시장연출을통해작품자체뿐만아니라전시공간과작품사이에깊이감을구성한다는호평을받고있기도하다.
      리처드듀퐁의작품은 ‘데이터, 수치화된신체’를통해디지털시대를살아가는인간의모습을표현한다. 왜곡된작품이미지에서볼수있듯이, 작가는기술과목적에의해왜곡되어진정한현대인의정체성이굴곡?이완된형상을띠고있거나, 인간이스스로를인지하는것이상의다른모습으로존재할수있다는점을피력한다. 작가스스로는이러한작품을 “반(反)자화상(Anti-Self Portrait)”이라고설명한다. 그의작품은정보화, 디지털화된세상속에서살아가는인간들의정체성에의문을던지면서현실에대한자각과그본질에대한반성을촉구한다.
      국내에처음으로소개되는조각가리차드듀퐁. 이번전시에는그의대표적인조각작품뿐만아니라, 드로잉과판화작품도선보인다. 현대인의정체성과인간존재의본질에대한그의진지한사유를살필수있는전시가될것이다.

프린스턴대학고고미술학(Art and Archeology) 전공 /
졸업후, 2005년 ‘아트바젤’에서전,
2008년레버하우스(Lever House, 뉴욕)의전,
2009년 ‘아모리쇼’의전,
2011년케롤리나니치프로젝트룸(Carolina Nitsch Project Room, 뉴욕)에서전등 10여회의개인전을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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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낯설은 세상




여승열展 / YEOSEUNGYEOL / 余承烈 / painting 1997_0903 ▶ 1997_0909



여승열_여관방Ⅱ_캔버스에 유채, 혼합재료_53×45.5cm_1995


초대일시 / 1997_0903_금요일_05:00pm

이십일세기화랑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2-21번지 Tel. +82.2.735.4805



여승열론-욕망의 피해자로서의 남성 ● 욕망과 권력 그리고 억압의 얼굴들 비가 오는 날이었다. 같이 가기로 한 큐레이터가 예비군 훈련을 받는다고 오지 않아 작가와 단촐하게 작업실로 향했다. 초면에 겸연쩍은 침묵을 쾌할한 듯한 수다로 떼우면서 지루한 교통체증을 헤쳐 도착한 곳은 김포 근처의 한적한 교외, 이층 작업실이었다. 작업실이라기에는 좀 썰렁한 곳에는 80년대 학번답게(?) 낯익은 책들이 책장에 꽂혀 있었고 작품들은 갓 이사온듯 포장지에 꼼꼼하게 싸여 있었다. ● 대개 어느 정도 개인전도 하고 경력이 있는 작가들은 참고할만한, 바르뜨식으로 말하면, "쓰여질 수 있는" 텍스트가 많다. 하지만 이번처럼 전혀 작가에 대해 누군가 글을 써놓거나 아니면 평소에 안면이 있는 것도 아닌 경우에는 약간 조심스럽기 마련이다. 작가와 평론가의 불안한 상호 의심의 벽을 사이에 두고 작가의 최근 괌심사에 대해 물어보았다. 작가의 의도가 곧바로 작품을 해석할 수 있는 모든 열쇠는 아니지만, 일종의 화두를 얻기 위함이었다. 그는 "일상생활 속에서 권력이 드러나는 방식 중 욕망, 성에 대한 억압"에 중심을 두고 "이러한 성적 억압과 권력의 다른 억압방식들을 연결" 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여승열_공간Ⅴ 캔버스에 유채, 혼합재료_53×59cm_1997

작가와 나눈 서너시간 동안의 이야기들 중에서 나에게는 한 가지 구절이 남아 계속 나를 미소짓게 하였는데, 그것은 "남자들, 특히 화가인 남자들은 여자못지 않게 일상생활 속에서 누구보다 억압을 많이 받는 존재" 라는 것이었다. 작가는 나의 집요한 질문에도 그 억압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시종일관 머뭇거렸다. 지독하게 내성적인 이 작가에게 그 억압이란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것이라기 보다는 스스로를 자발적으로 제어하는 기제에 대한 저항감 같았다. 「1994년 12월 24일-자화상」이라는 작품에서 그러한 기제는 초현실적인 섹시한 여체에 손가락 끝만 갖다대고 있는 호기심과 자제, 욕망과 욕망에 대한 통제 사이의 갈등과 긴장감으로 나타난다. 대중매체가 쏟아내는 일상의 공간에서 포화상태로 우리의 욕망을 강요하는 성적 이미지들은 자유롭지도 완벽하게 윤리적이지도 못한 어정쩡한 80년대 학번의 감수성에는 일종의 죽음과도 같은 가해도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러한 그에게 신세대는 일종의 애증의 대상이다. 그들의 자유분방함은 그에게 몸과 머리의 분리를 강요한다. 이러한 분리는 그에게 강박관념처럼 화면을 분할하도록 밀어붙이며 욕망의 문제는 쾌락보다는 죽음이나 불안과 쌍을 이루면서 병치된다. (「도시의 죽음-1994.12」, 「도시에서의 죽음-1994.12」) 이러한 병치를 강요하는 것은 다름아닌 80년대 말의 학생운동 경험과 그 경험의 완강한 저항이다. 쾌락을 쾌락만으로 보기에는 그 근저의 불길한 메카니즘에 대한 의심이 더 강하게 그를 옭아매고 있는 것이다.
여승열_공간Ⅶ 캔버스에 유채, 혼합재료_53×62cm_1997

그는 87학번이다. 잠시 기억을 돌이켜보면 87년은 79년'현발'로부터 시작된 민중운동이 87년을 정점으로 치달아 오른 학생운동, 노동운동의 열기 속에서 전성기를 향해, 더 정확하게는 곧 다가올 공황기를 향해 질주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그가 미술운동에 구체적으로 관심을 갖고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군대를 다녀온 후인 1992년도 부터이다. 이 시기의 자화상「화가-죽창붓」은 작가의 사회적 비판의식이 결연함으로 무장되어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그러나 결단의 시간은 그리 길지 못하였다. 작가의 결단보다 그 무거운 절대 권력의 추가 결박당한 수인의 시선을 화면 아래로 끌어 내리고(「수인」) 끝모를 나락으로 곤두박질시킨다.(「추락」) 회전의자로 상징되는 권력 아래에 웅크리고 있는 나신의 처절함(「고문」)은 90년대의 무기력과 좌절을, 황폐함을 나타내고 있다. ● 이 공백에 오기가 뛰쳐나온다. "에잇 쌍"하고 욕을 내뱉듯 똥덩어리가 또아리를 틀고 있는 「변기-1992」하나가 등장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연이지만, 그 우연은 그에게 일종의 계시같은 것이였다. 변비. 막혀서 풀리지 않는 배설에의 욕망을 변기가 대신한다. 배설에의 욕구는 '꽃변기'라는 역설로 기호화되면서 채울 수 없는 성적 욕망의 대명사로 그의 화면 곳곳에 등장하게 된다.(「욕망-1993.6」, 「신보수주의-1994.9」, 「도시에서의 죽음-1994.12」) ● 배설에 대한, 욕구의 충족에 대한 욕망이 커질 수록 사방이 막혀있는 자아의 답답함이 더 극명하게 의식된다. 출구가 없는 곳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절박함은 「공포-1993.3」로 표상되고 끊임없이 벗어나고자 달음박질치는 숨가쁜 질주는 계속 리와인드 된다. (「골목길-1993.11」) 골목길 한켠에는 달음박질치는 자신을 주시하는 또하나의 자신이 있다. 그는 애초부터 이 게임이 절망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충분히 고무된 욕망-1994.1.1」은 그것이 남성의 것이든 여성의 것이든 충족의 대상이 결여된 광기만을 남긴다. 이러한 충족불능의 광기는 이제 소외된 민족에서 출구 아닌 출구를 찾는다. 「자위-1995.1」를 하거나, 육체없는 빈 껍데기가 닫힌 공간 안에서 더 이상 벗어날 꿈도 상실한 채 맹목적으로 입을 벌린 자신의 욕망을 버거워하며 익명의 육체를 기다리고 있다. (「여관방-1993.8」, 「여관방-1995.1」) 이러한 육체는 돈으로 살 수있다.(「1만원권-1992」) ● 이러한 소외된 욕구충족의 메카니줌, 욕망을 초현실적으로 부풀리는 반면, 그것의 완전한 배설, 완전한 민족의 실현을 애초부터 불구로 만드는 욕망의 통제 메카니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억압의 주체는 명백하게 드러나있지 않다. 그가 억압의 주체라기 보다는 억압의 대리자들을 드러내 보인 작품으로 「무제」가 있다. 가장 남근적인 미사일과 완벽하게 섹시한 여체가 대비되어 있는 소재들을 우리의 일상사에서 볼 때는 초현실적인 대상들이다. 하지만 두가지 모두 파괴적인 힘이다. 하나는 물리적인 파괴의 힘이요, 다른 하나는 우리의 욕망을 조직함으로써 우리를 파괴하는 이미지로서의 힘이다. 양자는 현대문명이 낳은 이란성 쌍둥이다. 그러나 아직 미진하다 추상적이고 낱낱의 구체적인 면모가 드러나지 않는다. ● 그러나 작가의 상품미학에 대한 언급들은 그의 유보된 결론을 추정하게 해준다. 성적 이미지들을 채용함으로서 상품의 아우라를 만드는 상품미학적 광고, 시각이미지들은 우리의 욕망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증폭시키고 있으며, 다른 한편 관료사회의 꽉짜여진 일상사와 소시민적 생활규범은 우리의 과잉된 욕망을 발산할 틈을 주지 않는다고. 우리는 후자에 대한 시작적 증거를 「신한국인(가족사진)-1997.8」과 특히 「가족-1995.2」에서 찾을 수 있다. 이 행복한 소시민적 가족의 화목한 웃음은 좌우의 성으로 구획되고 있기는 하지만 언제든지 침해당할 수 있는 불안한 웃음이다. 이 불안한 끊임없이 화면을 분할함으로서 양자의 구체적인 고리를 이미지들의 충격으로 대치하고 있는 작가의 불안이기도 하다. 하지만 화면구성에서 그가 추구하는 병치에 의한 대비효과는 어떻게 보면 식상한 것일 수 있다. ● 구체성을 향하여 성적인 억압에 대한 접근방식은 탈구조주의적인 욕망이론에 의해 접근하는 방식과 패미니즘적 시각에서 접근하는 방식이 있다. 작가는 전사의 입장에 서서 상품미학적 분석들을 연걸시키려고 한다. 작가의 주된 주제는 과잉된 욕망을 조장하는 현대문명의 자극들과 그것을 관리할 수 없는 주체의 무능력 또는 사회의 구조적 통제 사이의 억압과 소외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가 궁극적으로 연걸짓고 싶어하는 성과 권력과 돈의 복잡한 메카니즘을 드러내는 고리들은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 이를 연걸하려고 시도한 작품들은 대부분 병치를 벗어나지 못하고 논리의 과정이 생략된 채 추상화되어 버린다. 이것은 이 작가의 딜레마이다. 그것은 80년대식 대안으로 나아갈 수도 없는 상태에서, 탈구조주의적 분석력이 구체적인 현실을 꿰뚫기에는 아직 미약한 상황임을 반증하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여승열_여관방Ⅲ_캔버스에, 혼합재료 유채_53×45.5cm_1995

나는 그의 한계지점이 대조어법이라 여긴다. 그에게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화면의 분할과 대조적 이미지의 병치는 변증법적이라기 보다는 도식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화면에 등장하는 주검이나 일하는 자의 이미지와 자극적인 여성 이미지의 충돌 효과는 추상적이고 공허해질 우려가 있다. ● 여승열은 머리가 앞서는 작가다. 그는 몸으로 느낀 문제로부터 그 해결을 위해 올라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설정한 문제로부터 아래로 내려가고 있는 중이다. 그가 바라보는 여성은 아직 광고이미지에 나타나는 여성이다. 그 여성들은 그와 동시대에서 일상적으로 부딪치는 여성이 아니라 대상화된 여성 이미지다. 나는 그가 욕망과 억압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이러한 이미지들에만 의존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에게 여성 이미지는 타자이자 억압의 매개일 뿐이다. 이러한 여성 이미지가 남성들 또한 피해자로 만들고 있다는 그의 판단은 옳다. 그리고 참신한 문제영역이다. 그러나 이렇게 여성이 상품화될 수 밖에 없고, 그 안에서 여성들의 욕망이 곡해되는 현실의 흐름을 건드리지 않고 남성을 피해자로 표현하는 것은 비록 그 진정성과 솔직함의 의의를 인정하면서도 매우 편향된 결론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염려한다. 그가 만약 욕망의 관리체제의 피해자로서의 남성을 구제하기 위해 여성 이미지의 해체를 시도하고자 한다면, 그는 여성의 상품화라는 메카니즘의 해체를 경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속에서 권력과 돈이 여성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구체적인 연관도 얻을 수 있다. 그가 아직 페미니즘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아직 그의 문제의식이 여기까지 도달하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그에게 필요한 것은 이러한 문제의식의 영역을 포괄하면서 육체의 끈끈한 무정형적 촉수로 땅바닥에 점착하여 일상의 갈피들로부터 즙을 빨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즙을 제공해주는 하나의 촉수가 페미니즘적인 분석일 수 있다. ■ 양현미
여승열_여관방Ⅳ_캔버스에 유채, 혼합재료_61×73cm_1997

아직도 낯설은 세상 ●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살만하다. 괜실이 기운이 빠지고 마른기침이 나온다 하더라도 말이다. 어느 하루라도 휑한 느낌을 지워버리기 힘든 1990년대 남한의 삶은 그래도 살만하다. 더구나 30대 남자로 남한의 수도 서울 한복판에 살고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축복이다. 길지 않았던 땀내음 나는 지난날들과 주변을 돌이켜 보건대 분명 지금은 행복하다. ● 힘들지도 않으면서 괜히 힘든 척하며 살던 때가 있었다. 피할 수 없었던 피해의식. 모든 행동을 조심해야 했던 시절. 삶을 사라보니 이제는 왜 그랬어야만 했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물론 아직도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는 것이 더 많다. 그리고 다들 그렇게 산다는 것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는 것이 무척 놀랍다. 어리지도 늙지도 않은 어정쩡한 나이로 겪고 있는 세상은 때로 화가 나고 슬프다. 하지만 솔직히 지금은 아무 생각이 없다. 그저 살아있음을 느끼고 있을 뿐. ● 도시의 시간 새벽. 검은 하늘이 퍼렇게 바뀌어가고 굉음을 내며 달려온 버스는 정류장에 급정차 했다. 아직 가시지 않은 어둠을 머금은 사람들이 하나 둘씩 차에 오른다. 새벽 4시 30분. 밤새 마신 술기운 때문인지 버스안은 더럽혀진 거리보다 더 초라하고 썰렁하다. 무거워 보이는 가방을 든 학생들 몇몇. 아직 잠이 들깬 것 같은 퉁퉁 부은 어린 얼굴에서는 이제 막 세수를 했는지 비누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첫 차인데도 빈 좌석이 얼마 없다. 흰머리에 주름이 패인 허름한 복장의 노인들이 좌석을 메우고 있다. 커다란 빌딩의 경비원, 청소부, 가판대 판매원, 배달부, 파출부, 일일잡부 등. 이들이 새보다 먼저 일어나 도시의 꼭두새벽을 달린다. 힘없이 졸고 있거나 창밖을 무심히 바라보는 이들의 뿌우연 눈에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 갑자기 답답함을 느낀다. 쓴 소주. 끝이 보이지 않는 감정 섞인 대화. 초점이 맞지 않는 눈. 따가운 담배연기. 지저분하게 흘린 찌개 국물. 가끔씩 울리는 호출기. 이리저리 모아 놓은 휴지. 으슥한 거리에 오줌을 누려다 몰래한 오바이트. 비틀거리는 방황. 새벽바람에 심호흡을 하고 나니 어느새 버스 정류장 앞에 앉아 있었다. 목에는 가래 섞인 신물이 가득하고 눈물과 땀으로 뒤범벅된 시컴헌 얼굴은 끕끕하기 그지없다. 굳어지는 몸을 이겨내며 겨우 올라탄 버스 안. 그 곳에는 얼마 되지 않는 것 같은 과거와 그리 멀다고 할 수 없는 미래가 함께 타고 있었다. 싫다. 창문을 열고 어두운 바람을 맞는다. 점점 커져만 가는 시커먼 빌딩들과 아직 빛을 잃지 않은 가로등 사이로 빠르게 도시의 청춘이 지나간다.
여승열_모래시계_캔버스에 유채, 혼합재료_116.8×91cm×2_1995

아무들의 죽음 아무들의 무덤 앞에서 눈물 흘리며 깡소주를 마신다. 단순히 죽었다는 것 때문에 눈물 흘리는 것은 아니다. 죽음. 누구나 죽는다. 그리고 그때는 아무나 죽을 수 있었다. 아무일 수 있었기에 아무도 냉대하지 않았다. 눈물이 흐르는 것은 혹시 그나마 살아있는 아무의 꿈마저 함께 앗아가 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 때문이다. 시대의 권력과 젊은 야망은 그렇게 서로 엃히며 지나갔다. ● 시끄러운 호프집 테이블에 앉아 죽음을 이야기한다. 이제는 아무도 예전처럼 거친 야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저 사람이 죽었다는 정보가 전해지고 살아있음을 즐기려 한다. 아픔도 슬픔도 이제는 귀찮다. 더 이상 누군가에게 기대를 건다던가 받을 이유도 여유도 없다. 옳다 그르다를 따질 필요는 더구나 없다. 이미 사람들은 너무 약삭빠르고 영리한 세상을 살고 있다. 야망과 권력의 죽음은 화려한 브라운관을 알록달록하게 밝히며 시청률을 올리고 있을 뿐이다. 이제 텔레비전 밖에 있는 세상은 진짜 세상이 아니다. ● 작은 방에서 과연 남자일까. 항상 의심이 간다. 사랑하는 소녀 앞에서 그냥 외면해 버렸던 날들. 그리고 세상은 생각처럼 아름답지 못했다. 결국 예기치 못한 일들은 연달아 일어나고 점점 의연해지는 감성은 오히려 나약한 몸을 더 고단하게 만든다. 아름답게 살겠다던 순진한 생각은 솔직하지 못한 세상에서 아픔만을 만들어낼 뿐. 커져야 될 것은 반대로 자꾸만 작아지고 있다. 그리고 말해지는 것과 겪는 것은 커다란 차이를 결과했다. 너무나 흔한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고 있다. ● 낯설은 공간. 낡은 가구와 빛바랜 텔레비전. 가지런히 놓여진 세면도구. 커다란 거울과 좁은 창. 두 개의 컵. 침묵이 흐르고 불이 꺼진다. 부딪힘을 느낀다. 그나마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나쁘지 않다. 가픈 숨을 지나 긴 한숨을 몰아 쉰다. 결국 다시 씁쓸하게 혼자 버려졌다. 어지럽다. 갑자기 초라한 작은 방이 커다랗게 다가온다. 공허함을 지울 수 없는 커다란 작은 방에서는 아직 죽지 않은 난폭한 야망과 역겨운 권력의 냄새가 난다. 따스한 체취가 느껴지지 않는 메마른 정사의 공간. 텔레비전을 켠다. 어쩌면 우리가 기계일지 몰라. 아직도 낯설은 그들의 세상에서. ■ 최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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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 carpet




송필展 / SONGFEEL / 松泌 / sculpture.installation 2011_1019 ▶ 2011_1102 / 월요일 휴관



송필展_공아트스페이스_2011


초대일시 / 2011_1019_수요일_05:00pm

주최 / 공아트 스페이스 주관 / 공아트 스페이스 협찬 / 공아트 스페이스 후원 / 공아트 스페이스

관람시간 / 09:00am~05:30pm / 월요일 휴관

공아트스페이스 Gong ART Space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8-31번지 Tel. +82.2.735.9938 www.gongartspace.com



'Blue carpet''스티브 잡스가 죽었다. 그래서,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작가노트 중에서 )
송필展_공아트스페이스_2011
송필_너희가 꿈꾸는 세상은,, 5_돌, 합성수지, 아크릴채색_81×60×27cm_2011

'Blue carpet' 은, 일반적으로 화려함, 명예와 관련이 있는 레드 카펫과는 상반되는 개념으로 보여지는 것이 다가 아니며 과연 진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블루 카펫은 동전처럼 상반된 우리의 가려진 허약함, 외면하고픈 진실에 가깝고, 인위적으로든, 자생적으로 택한 것이든 소외되고 학대 받는 또 다른 우리(사회) 의 모습이다. 이는 그 동안 지속적으로 작가가 고민해온 사회와 국가, 자본의 구조와 시스템, 이 만들어낸 부조리함 에 대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송필_너희가 꿈꾸는 세상은,,,1_돌, 합성수지, 아크릴채색_73×33×23cm_2011
송필展_공아트스페이스_2011

전시 작품 중, 실크로드는, 정해진 길이든 아니든 살아 내가야 하는 길을 따라가지만, 커다란 돌덩이와 혼연일체가 된 채로 마치 인생이라는 큰 짐을 지고 묵묵히 무리 지어 가는, 삶에 대한, 여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 길은 빛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깨진 유리를 밞고 가는 것인 만큼, 고스란히 상처가 남는데 그것은 등에 지원진 돌덩이의 하중에 따라 더 작거나 커진다. 결국 작가 송필은 , 커다란 사회를 이야기하지만, 동시에 당장 그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들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하고 있다. 인생이란, 진실이란, 삶에 있어서 더 가혹하다는 것, 너무 감상적이거나, 센티 멘털한 자기감상적 고백일지 모르나. 예술가로서 사회의 부조리와 만연해가는 허상에 대한 질타를 놓지 않는 작가로선, 그런 외침의 벽에 부딪쳐서 몸소 겪어낸 삶에 대한 이야기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다시 서두로 돌아가보자.
송필_실크로드10_돌, 합성수지, 아크릴채색_27×14×8.5cm_2011
송필_실크로드 8_돌, 합성수지, 아크릴채색_35×16×10cm_2011

스티브 잡스가 죽었다. 그래서 그게 ? 라고 되묻는 작가의 말은, 사회문제와 부조리에 대해 이야기해온 작가의 말답지 않다. 누구보다 그런 구조의 영향력을 알고 그에 문제제기를 해온 작가 아니던가. 이 말은 결국, 세상을 바꾸는 그런 일들을 잡스가 해냈다지만, 인생을 살아가는 개인들의 무게, 그 짐들은 줄지 않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당장 어느 한 쪽에선 생존의 문제가 중요하다는 걸, 삶을 살아가려고 처절히 발버둥쳐야만 하는 그런 존재에 대한 작가의 한마디인 것이다. ● 그래서인지 그 돌덩이와 일체가 된 그 동물들이 눈물날 정도로 가련하고, 애뜻하다. 어쩌면 이런 도시에서 야생으로의 탈출을 꿈꾸는 우리네들에겐 닮은 꼴인 이 작품에게서 위안을 받을 지도 모르겠다. ● 그래서 작가 송필이 보여주는 세상은 어둡거나 그늘진, 비판으로만 가득찬 세상이 아니라. 바로 옆, 가까이에 있는, 서로에게서 희망을 찾고 위안을 받는 바로 우리들의 진실된 세상일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된다. ■ S.h.


 

 
modified at 2011.11.02 23:35:26 by zabel

2011.10.30 02:38:01 / Good : 357 +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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