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랩소디 - 역사와 기억의 몽타주
2011_0317 ▶ 2011_0605 / 월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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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본창_어머니전상서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90×67cm_2010 / ©구본창
초대일시 / 2011_0312_토요일_04:00pm
참여작가 구본창_김기창_김수자_박생광_박수근_백기영_서용선 이인성_이종상_이중섭_장욱진_조덕현 등 66명
관람료 코리안 랩소디_일반 7,000원 / 초중고생 4,000원 상설전_일반 10,000원 / 초중고생 6,000원 Day Pass(상설+기획전 패키지)_일반 13,000원 / 초중고생 8,000원
관람시간 / 10:30am~06:00pm / 월요일 휴관
삼성미술관 리움 Samsung Museum Of Art Leeum 서울 용산구 한남2동 747-18번지 Tel. +82.2.2014.6901 www.leeum.org
삼성미술관 Leeum은 2011년 첫 전시로 3월 17일부터 6월 5일까지 『코리안 랩소디-역사와 기억의 몽타주(Korean Rhapsody-A Montage of History and Memory』展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급속 성장한 오늘날의 한국 사회를 있게 한 고난과 격동의 20세기가 시각 예술에 어떻게 반영되고 기억되고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현재 우리 삶의 모습들의 의미를 확인해 보고자 기획되었다. 이 전시는 한국 근현대사를 1부 '근대의 표상(1876~1945)', 2부 '낯선 희망(1945~2011)'로 나누어 미술사에 남겨진 역사적인 작품들과 현대작가들이 역사를 소환하고 기억을 재해석한 작품들의 만남을 적극적으로 주선한다. 또한 근현대 다큐멘터리 사진과 영상, 우국지사의 유묵(遺墨), 조선관련 일본의 우끼요에 등 다양한 시각문화 자료들을 병치시켜 비교와 충돌, 동일성과 차이, 연속과 불연속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를 새롭게 해석하고자 하였다. 이번 전시는 역사를 개념이 아닌 하나의 '이미지'로 읽어 내기 위한 시도로 '코리안 랩소디'라는 제목이 시사하듯이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우리 역사를 조명한다. 이 과정에서 민족의 애환과 근현대사의 급속한 변화와 역동성을 재구성해 봄으로써 역사와 기억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살펴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특히 미래의 주역인 청소년들이 한국 근현대의 역사와 문화를 전시를 통해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문화예술 전반과 친근해 질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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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자_떠도는도시들-2727km 보따리트럭, 11일간의 한반도 퍼포먼스 중에서_ 단채널 비디오 프로젝션_00:07:33_1997 / ©김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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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옥선_해피투게더_디지털 영상_가변크기_2002~4 / ©김옥선
역사는 과거이지만 동시에 현재의 일부분으로 우리 삶의 조건을 만들어 온 실체이기도 하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급속한 경제성장은 일제 강점기와 민족 간의 전쟁과 분단, 해방 이후에는 국가재건과 친일청산, 반공이데올로기, 유신독재와의 끊임없는 반목과 투쟁, 시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일구어 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국토 개발과 사회적, 경제적 역동성에 밀려 '기억의 터'가 사라지고, 역사교육은 점차 변방으로 밀려나고 있다. 『코리안 랩소디-역사와 기억의 몽타주』展은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를 기억을 통해 되살리면서 우리의 역사와 삶의 모습들을 되돌아보고 미래를 전망해 보고자 기획되었다. 이를 위해 지난 100여 년간 미술사에 남겨진 역사적인 작품들을 씨줄로 삼고 현대 작가들이 과거의 역사와 기억을 재해석한 작품들을 날실로 삼아 한국의 근현대사를 재구성하였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그리고 분단과 이산의 과정에서 미술사의 많은 부분이 공백으로 남아있지만 최근 미시사 연구를 통해 사진, 영화, 잡지, 도시와 건축 등 근대인의 삶과 일상문화에 대한 연구가 미술사의 결손 부분을 메워 주고 있다. 이번 전시에도 다큐멘터리 사진과 영상, 우국지사의 유묵(遺墨), 무용가와 시인, 일본의 우끼요에(다색목판화) 등 시각문화 자료들을 추가하여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입체적인 감상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작품의 설치 역시 연대기적인 연출을 지양하고 몽타주 방법론에 따라이미지를 병치, 대립하고 과거와 현재를 통시적으로 결합하여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고자 하였다. 이번 전시는 특히 비교와 충돌, 동일성과 차이, 연속과 불연속을 통해서 한국 근현대사를 새롭게 해석하고 연출하는 데 많은 의미를 부여하였다. 더불어 '랩소디'라는 음악적 용어가 시사하듯이 근현대사의 굴곡이나 민족적 애환, 한국사회의 급속한 변화와 역동성을 자유로운 서사적 형식으로 보여 주고자 한다. 사회가 발달하고 복잡해질수록 과거에 대한 관심과 대중적 욕구가 생겨나기 마련이어서 최근 드라마나 영화, 뮤지컬, 출판물 등을 통해서 과거가 활발히 재생산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역사와 기억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의 일부를 찾고자 한다. 마샬 맥루한의 지적처럼 예술가들은 '인류와 시대의 안테나'로서, 기억의 상실, 정체성의 위기의 징후를 포착하고 경고하고자 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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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용선_동학농민운동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00×350cm_2004 /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서용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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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도호_유니폼/들:자화상/들:나의39년인생_직물, 섬유유리 합성수지, 스테인리스 스틸, 옷걸이 바퀴_ 169×56×254cm_2006 / 개인 소장, © 레만 머핀 갤러리, 뉴욕
1부 : 근대의 표상(1876~1945) / 블랙박스 ● 개항 이후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를 다루는 1부에서는 당대에 제작된 작품들과 함께 이 시기를 재해석한 현대작가들의 작품들이 병치되어 연속과 불연속을 거듭하면서 관람객들에게 당시 역사와 사회에 대해 다양한 상상력을 일으킨다. 전시는 개화기 조선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기록한 휴버트 보스의 「서울풍경」(1899)과 국가를 잃은 설움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안중식의 「백악춘효」(1915)가 손장섭의 「조선총독부」(1984)와 함께 역사적 표상이자 민족정체성의 상징인 광화문과 경복궁을 반추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역사적 고증과 작가의 상상력이 결합된 박생광의 「명성황후」(1983)는 김은호의 「순종어진」(1923~1928사이)과, 망국의 한을 담은 채용신의 「유학자 초상」(20세기초)은 서용선의 「동학농민운동」(2004)과 함께 배치되어 암울한 시대 상황을 조명한다. 한편 이육사의 「의의란」(1944), 안중근의 「국가 안위노심초사」(1910)는 우국지사의 기개를 증언하고 있다. 이번에 새롭게 소개되는 일본 메이지시대(1868~1912)의 조선관련 우끼요에 6점과 사진 평론가 이경민이 기획, 편집한 일제강점기 다큐멘터리 사진 동영상인 「인물도감」, 「한성에서 경성으로-식민지 수도 경성의 변모」, 「황실의 초상」은 일제가 자신들의 조선 통치를 어떻게 정당화하고 있는지를 살펴 볼 기회를 제공한다. 조선황실의 비극적인 가족사를 다룬 이상현의 2시간 분량의 영상물 「조선의 낙조」(2006)는 구술사를 통해 미시사적 접근으로 한국 근현대사의 단면을 보여 주고 있다. 1910년대 이후 일본 유학을 통해 인상파와 후기인상파 등을 배우고 돌아온 화가들과 1922년 시작된 '조선미술전람회'의 영향 하에서 1930년대부터 신문화 수용양상이 본격적으로 결실을 맺기 시작한다. 김기창의 「가을」(1934), 이인성의 「경주의 산곡에서」(1934), 김중현의 「농악」(1941)은 식민지 정책과 부합하면서 지역적 색채를 보여 주고자 하는 양면성을 지닌 조선 향토색 경향을 대변한다. 또한 국내에서는 문화적 검열의 대상이 되었던 나체를 김관호, 나혜석, 오지호, 김인승 등이 아카데미 미술의 일환으로 시도하기도 하였다. 1930년대 이후 서구식 근대 자본주의 문화와 함께 들어온 대중문화는 우리의 식습관, 주거문화, 생활풍습 전반을 변화시킨다. 이 시기 야수파와 입체파, 추상미술에 대한 관심이 구본웅의 「인형이 있는 정물」(1937), 김환기의 「론도」(1938), 유영국의 작품에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한편 1920년대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던 안석주의 만평을 팝아트적으로 재현한 이동기의 「모던 걸」, 「모던 보이」(1998)는 당시의 무조건적인 외래문화 수용세태를 풍자하고, 1930년대 신여성과 당시의 모습으로 분장한 딸을 함께 묘사한 조덕현의 「리플렉션 리플렉션」(2011)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삶을 반추한다. 여기에 한국근현대미술연구소에서 제작한 모더니스트 이상과 당대를 풍미한 최승희의 영상물이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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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인성_경주의 산곡에서_캔버스에 유채_130×194.7cm_1934 /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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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쾌대_해방고지_캔버스에 유채_181×222.5cm_1948 / 이한우 소장, © 삼성미술관 리움
2부 : 낯선 희망(1945~2011) / 그라운드 갤러리 ●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근현대사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2부 또한 역사적 사실과 기억, 고증으로 제작된 작품들과 현대 한국사회를 증언하는 다양한 작품들을 병치하여 각기 다른 연상 작용을 통해 주제를 강화시키고자 하였다. 해방은 우리에게 건국의 꿈을 실현하는 계기를 마련하였지만, 혼란과 분열이 거듭되는 가운데 통일된 민족국가의 꿈은 멀어져 갔다. 이쾌대의 「해방고지」(1948년)와 강요배의 「한라산 자락 사람들」(1992)은 이러한 상황을 대비시켜 보여 준다. 한국전쟁과 민족분단의 비극, 이에 따른 반공이데올로기는 전쟁을 배경으로 한 기존의 작품과 전쟁의 트라우마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전후의 작품들, 그리고 한국전쟁을 주제로 한 현대작가의 작품들로 보여진다. 변영원의 「반공여혼」(1952)은 이중섭의 「투우」(1956), 전화황의 「전쟁의 낙오자」(1960)와, 구본창의 한국전쟁관련 신작들(2010)은 송영수의 「작품 59-2」 (1959)와 함께 연출된다. 그런가 하면 신세대 작가 조습의 「그 날이 오면」(2004)은 '태극기 휘날리며'의 영화음악을 차용하여 한국사회가 양산해 온 집단기억을 해체하며, 조동환/조해준 부자의 「1937년에서 1974년까지」(2002~2010)는 실제 경험을 재현한 드로잉 설치작업으로 기억과 구술을 통한 미시사적 접근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격변하는 시대에 미술이 당대의 삶과 풍속을 반영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장욱진의 나룻배」(1951), 박수근의 「시장」(1950년대), 박상옥의 「시장소견」(1957) 등 전쟁 이후 고단했던 서민들의 삶을 담아 낸 작품들과 기억을 통해 과거를 재구성한 윤석남의 「어머니Ⅱ-딸과 아들」(1993), 안창홍의 「봄날은 간다」(2005)를 함께 비교해 보면 흥미롭다. 정치적 인물들은 우리의 집단 기억 속에 생생하게 존재하며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제공한다. 김동유의 「이승만」(2006)은 이승만과 김구로 대변되는 민족의 분열상을 보여 주며 박영근의 「박정희의 무궁화/유지자사경성(有志者事竟成)」(2006)은 박정희 시대의 계몽주의 이데올로기와 체재의 어두운 그늘을 함께 연상시킨다.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은 국가 재건을 목표로 산업화를 적극 독려하는데 산업현장의 역동성을 재구성한 이종상의 「작업」(1962)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며, 그 옆에는 산업현장의 모습을 두루 촬영한 김철현의 1990년대 산업사진들이 거대한 스펙터클로 변모한 한국사회의 산업화 단면을 보여 주고 있다. ● 한편 2부에서도 새마을 운동과 유신, 산업화와 민주화와 관련한 사회적 변화 과정과 일상의 모습들을 보여 주는 사진 동영상이 「일상, 그 낯선 친숙함-태극기로 본 일상의 현대사」, 「테이프 커팅과 새마을 가꾸기-근대화/산업화풍경」, 「유신과 반공, 그리고 민주화」라는 제목으로 상영되어 한국 현대사의 기억들을 생생히 되살리고 있다. 1960~70년대의 미술계는 변화와 혁신, 그리고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정책과 맞물려 예술적 아방가르드가 미술제도 속에 자리잡기 시작한다. 예술가들이 사회현실에 반응하는 방식은 정치적 논의를 배제한 앵포르멜 미술 경향이나 행위예술, 단색주의 회화와 권진규, 전혁림, 백남준, 한운성, 육태진 등 자신만의 독자적인 색채를 보여 주는 작가들의 작품들을 통해 조망해 보고자 한다. 한국근현대미술연구소가 제작한 「1960~70년대 한국의 행위예술」 영상물도 이러한 이해를 도울 것이다. 1980년대 이후 우리의 일상 문화, 사회와 역사에 대한 관심이 미술계에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다. 미군부대 주변의 사진관에서 수집한 남녀 사진으로 1960~70년대 한국사회의 풍속도를 재구성한 김용태의 「DMZ」(1989)와 파독 광부와 간호사를 주제로 한 백기영의 「잃어버린 고향」(2002)은 미시사의 방식으로 역사를 재구성하고 있다. 오윤과 이종구의 1980년대 작업은 고도성장과 더불어 대두된 자본주의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적 모순을 풍자하고 있다. 한편 신학철의 「한국근대사-종합」(1982~1983)은 거대서사, 지배담론을 비판적으로 형상화하는 데 반해 서도호는 「유니폼/들:자화상/들:나의39년인생」(2006)에서 개인적 경험과 기억을 토대로 한국사회의 문화적 정체성을 요약적으로 함축한다. 50년 만에 평양에서 성사된 남북정상회담의 과정을 통해 분단 현실과 통일에 대한 불안정한 미래를 함축하고 있는 박찬경의 다큐멘터리 영상 「비행」(2000), 이사가 잦았던 자신의 과거와 세계를 오가며 유목민처럼 살고 있는 현재를 담고 있는 김수자의 「떠도는 도시들 2727km-보따리 트럭」(1997)은 기억을 통해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역사의 단면을 보여 준다. 현재,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일상에서 쉽게 만나는 아줌마의 전형을 적절히 포착한 오형근의 「아줌마」(1997)나 물질적 풍요와 다국적 자본주의의 실태를 고발한 김기라의 「코카킬러」(2010)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또한 급속히 변화하는 한국사회의 단면들이, 달동네 재개발 사업을 기록한 안세권의 「서울, 침묵의 풍경」(2011), 국적 불명의 놀이문화를 통해 전통과 현대, 어설픈 서양문물이 혼재된 한국사회의 진풍경을 표현한 구성수의 「마술적 리얼리티」(2005),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는 풍경을 국제결혼한 커플을 통해 기록한 김옥선의 「해피투게더」(2002-2004)에 담긴다. ■
삼성미술관 리움 -
- 안창홍_봄날은 간다_패널에 사진, 아교, 드로잉잉크, 아크릴채색_207×400cm_2005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 안창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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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근_박정희의 무궁화/유지자사경성(有志者事竟成)_캔버스에 유채_141.4×90.9cm_2006 이상원 미술관 소장, © 박영근
■ 전시 프로그램
□ 심포지움 : 20세기 한국의 시각문화 - 모더니티와 기억 한국 근대사의 근간을 이루는 시대 정신인 '모더니티'에 관하여 미술사, 미학, 문화연구 전문가들을 초청하여 심도 깊은발제와 토론을 통해 한국 사회를 시각문화중심으로 재해석해 보는 학술행사 - 일시 : 2011_0326_토요일_02:00pm~04:30pm - 장소 : 리움 강당 - 대상 : 미술 애호가 및 일반인 200명 - 신청방법: 3월 14일부터 홈페이지 www.leeum.org를 통해 선착순 접수(무료) - 세부 프로그램 14:00~14:10 심포지움 개최 의도 / 진행_이준 14:10~14:40 한국근대미술과 모더니티(가제) / 발제_심상용(미술사/평론) 14:40~15:10 현대, 해체된 기억의 풍경 / 발제_김진송(시각문화연구) 15:10~15:20 휴식 15:20~15:50 문자문화와 시각문화(가제) / 발제_천정환(문학비평) 15:50~16:30 질의 및 종합토론 / 진행_강수미(미학,미술평론) - 문의: Tel. 02.2014.6900
□ Teen's Workbook(청소년용 워크북) 및 교사용 지도서 입학사정관제의 도입으로 진로와 연계된 체험 활동이 강조되고 있는 흐름에 발맞추어 청소년들이 이번 전시를 통해 미술, 국어, 국사, 사회 교과를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한국근현대의 역사와 문화를 상상하면서 문화 예술 전반과 친근해 질 수 있는 기회 제공
□ 교사초청 행사 전시에 대한 큐레이터의 강의와 함께 워크북과 지도서에 대한 안내를 받을 수 있는 중등교사 대상의 초청행사 - 일시 : 2011_0319_토요일_02:00pm~04:00pm - 장소 : 리움 강당 - 대상 : 현직 중등교사 200명 - 신청방법: 홈페이지 www.leeum.org를 통해 선착순 접수(무료) - 문의: Tel. 02.2014.6900
□ 체험 프로그램 '시간 여행자(Time Traveler)' 장소성의 상실과 그 안에 담긴 기억의 정치학을 다루고 있는 전시의 주요 개념을 교차하는 과거와 현재의 착시 화면 사이로 관람객이 직접 공간을 이동하면서 기념비적 장소(광화문, 청계천)와 풍경(시장, 가족)의 시각적 변화를 체험하는 미디어 공간
□ 전시설명 프로그램(무료, 약 50분 소요) 한국어 : 화~일요일 오전 11시, 오후 1시, 3시 영어 : 토,일요일 오후 2시
□ 모바일 전시도록(무료) 안드로이드 기반 스마트폰 사용자用 모바일 전시 도록 T-스토어 內 삼성Apps에서 다운로드(무료, 도록 판매가 15,000원)
■ 기타 * 예약제 없이 편리하게 Leeum을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 20인 이상 단체는 예약 필수(관람료 할인)
동방의 요괴들 in the City
2011_0317 ▶ 2011_0423 / 월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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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동방의 요괴들 클럽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강상우_강숙진_고석민_김규리_김다혜_김대환_김민재 김보남_김웅현_김은주_김준영_김지영_김춘재_김타조 박민수_박민하_박상아_변상환_안예원_엄해조_염지희 유재연_윤석원_이슬기_최다찰_최현석_추수희_애나한
주최 / 충무아트홀 주관 / 월간 art in culture
관람시간 / 평일_1100am~08:00pm / 주말_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충무갤러리 CHUNGMU GALLERY 서울 중구 흥인동 387(131번지)충무아트홀 Tel. +82.2.2230.6629 www.cmah.or.kr
충무아트홀은 월간 art in culture와 함께 『동방의 요괴들 in the city』展을 기획하여 충무아트홀 갤러리 에서 전시한다. 이번 전시는 2010년에 이어 개최되는 2번째 전시로 2011년 ‘동방의 요괴들’ 공모 작 가 중 28명을 선정하여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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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환_ART Ruler / 김보남_Modified for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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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춘재_붕괴 / 박상아_The Animalbody Streamline -Fish 엄해조_Filled of emptyⅠ / 고석민_"ㅁ"
개인의 기억을 다양하게 형상화하는 강상우 강숙진 김타조 유재연 추수희, 시간과 공간의 의미를 현 대인의 감성으로 재해석하는 고석민 김준영 김춘재 박민수 변상환 이슬기 한소영, 객관적인 사물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하는 김대환 김보남 김은주 박민하 안예원 엄해조, 사회적 이슈들을 비판적 태도로 비트는 윤석원 최다찰 최현석, 사회와 인간, 그리고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에서 출발하는 김 규리 김다혜 김민재 김웅현 김지영 박상아 염지희가 참가한다. 도심 속에서 살아가는 젊은 작가들의 새롭고 신선한 관점을 담아낸 전시로 현대인의 심리와 감성을 대변한다. ■
동방의 요괴들 Story of BLACK
심승욱_이림展 2011_0317 ▶ 2011_0415 / 일,공휴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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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0317_목요일_05:00pm
기획 / art company H
관람시간 / 11:00am~07:00pm / 토_11:0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살롱 드 에이치 Salon de H 서울 강남구 청담동 31-2번지 신관 Tel. +82.2.546.0853 www.artcompanyh.com
Story of BLACK 스토리 오브 블랙 ● 심리적인 결핍이나 고립에 대한 경험은 어떤 사물이나 상황에 대한 집착으로 귀결된다. 전시는 검은색이라는 개념적이거나 시각적인 어둠에 대해 집착하는 두 작가의 이야기를 다룬다. 심승욱이 유학생활 동안 겪은 심리적 고립은 black의 어둠에 대해 친밀감을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러한 어둠은 작가의 작업에서 불완전하고 불확정적인 모순적 의미를 담기 위한 개념적 수단으로 이용된다. 어린 시절, 이림이 경험한 사람과의 관계 속 결핍은 트라우마로 남아 사람들간의 교감에 집착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를 표현하기 위한 인물의 정서적 교감은 Black의 어둠을 통해서 더욱 극명하게 연출되어 보여진다. 2011년 salon de H 첫 번째 기획전시로 심승욱, 이림 작가의 2인 전 『Story of BLACK』을 3월 17일(목)부터 4월 15일(금)까지 약 한 달간 진행된다. 이 전시에는 심승욱의 설치, 부조 작업 7여 점과 이림의 드로잉과 페인팅 작업 10여 점이 전시될 예정이다. 전시는 다른 듯하지만 닮아 있는 두 명의 젊은 작가의 작업이 Black이라는 시각적 혹은 개념적 어둠을 통해 어떤 형식으로 진화되고 있는지 알아보고 이를 통해 그들의 작업에 대해 재조명해보는 자리를 마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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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승욱_Black Gravity_접착제, 알루미늄_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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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승욱_Black Gravity_접착제, 알루미늄_2011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에서 검은색으로 뒤덮인 사각의 캔버스에서 인식 가능한 어떠한 대상이나 형체를 찾을 수 없다. 대상의 재현과 서사적 연출에서 벗어나 오직 직관에 의해서만 작품 바라보기를 유도하고 있는 말레비치의 작품은 심승욱의 「Black Gravity」시리즈를 연상시킨다. 우리는 예술을 바라볼 때 습관적으로 작가가 의도한 숨겨진 의미를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확정적 정의 내리고 싶어한다. 그러나 예술이 과연 확정적인 단어를 쓰기에 적합한 것일까. 심승욱의 작업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아닌 이것이 무엇인가라는 사물을 바라보는 가장 직관적 질문에서부터 시작된다.
심승욱은 2007년 기점으로부터 시각적으로 black에 한정된 작업을 선보인다. 유학시절 그가 겪게 되는 심리적 고립은 내면의 상상을 훈련시키고, 이는 어둡고 낯선 구조의 검은 덩어리를 생성해냈다. 검은색의 실리콘들이 집적되어 만들어내는 이 낯선 덩어리는 우리가 사물을 인지하는 기존의 인식체계를 마비시킨다. 이제껏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그 물체를 인식하는데 있어 논리적 접근을 위한 어떠한 실마리도 제공되지 않는다. 또한 검은색의 통일된 색감은 드러냄과 숨김의 중의성을 지닌 개념적 어두움으로 작업에서 불완전하고 불확정적인 모순적 의미를 더욱 증폭시킨다. 작가의 무의식이 만들어낸 생경한 검은 풍경은 끊임없이 낯선 형태로 증식하여 이제는 지시적 기호나 언어체계로 표현할 수 없는 영역에 자리잡게 되었다. 이렇게 의미가 파괴된 지점에 자리잡은 어둡고 낯선 덩어리는 우리에게 인식불능의 불쾌와 미지의 깨달음의 쾌를 동시에 경험하게 하는 '숭고'의 체험을 동반한다. 이 어둡고 낯선 숭고함은 '미'나 '추'로 구분될 수 없는, 미적 범주를 벗어난 정의내릴 수 없는 그 어떤 것으로 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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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림_confusion no.5 _캔버스에 유채_142×170cm_2010~11 / ⓒ 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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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림_confusion no.4_캔버스에 유채_194×112cm_2010~11 / ⓒ 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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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림_absence no.6_캔버스에 유채_194×130.3cm_2009 / ⓒ 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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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림_the surrealistic painting no.1_캔버스에 유채_162×130.3cm_2009~11 / ⓒ 이림
연극의 한 장면처럼 연출된 것 같은 화면 속, 애절한 표정과 몸짓을 하고 있는 인물이 있다. 배경이 사라진 화면 속에 흑백의 물감이 인물의 얼굴과 신체의 외면을 어지럽게 훼손시키고 있다. 사라진 배경과 훼손된 인물의 형상. 그대로의 재현을 방해하는 장치로 인해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의 서사적 연관이 파괴되었다. 이로 인해 인물은 소통이 단절되고 소외된 개체로 인식된다. 또한Black의 어둠은 형상의 고립을 더욱 극명적으로 드러낸다.
이림은 작업 속 인물을 통해 타자와 교감하고 소외된 자아를 치유하고자 한다. 어린 시절, 특정 인물과의 교감이 거부되어 생성된 결핍은 트라우마로 남아 사람간의 관계에 집착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러한 타자와의 관계성에 대한 집착은 그의 작업 안에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드러난다. 우선, 이림의 회화는 3가지 매체를 거치는 번거로운 노동의 방식을 택한다. 스스로의 몸에 페인트 칠을 하는 퍼포먼스를 한 뒤 그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사진을 통해 회화로 재현하게 된다. 이러한 매체의 확장을 통한 재현은 인물과 이미지 사이의 또 다른 관계를 보여준다. 하나의 이미지와 다른 이미지들이 연결되며 생기는 관계성이다. 실제의 인물이 담고 있는 감정의 순간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그 이미지는 다시 회화성을 띄며 찰나의 감정을 지속시키는 이미지 간의 관계는 교감을 위해 필요한 과정으로 인식된다. 최근, 신작에서 소통을 위해 배치되었던 인물의 형상이 캔버스에서 사라지며, 그는 또 다른 관계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작가의 시선은 익명의 사람과의 관계 속 교감에서 자신과 초현실주의 화가 막스 에른스트 Max Ernst와의 관계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에른스트 대표작 「신부의 의상 The Robing of the Bride」에서 붉은 부엉이 형상의 모피를 입은 여성은 작가와 동일화되어 The surrealistic시리즈에서 보여진다. 에른스트와 이미지 중첩을 시도한 작가는 더욱 친밀히 교감을 하게 되고 이러한 새로운 관계성의 확보는 제 존재를 다시금 확인하는 자기 치유의 방법이다. ● 검은색은 가장 이율배반적인 색감이다. 동양적 사유에서 검은색은 침묵, 고요함 등의 명상적인 정서를 담은,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 색으로 해석되어지지만 서구 문화권에서는 죽음, 어두움 등의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어진다. 색을 판단하는 시각은 매우 주관적이고, 절대적인 색감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한 가지 색을 정의할 때 다양한 관점이 존재한다. 『Story of Black』에서 두 명의 작가는 서로 다른 의미의 black을 제시하고 있다. 심승욱과 이림의 작업은 표면적으로 검은색을 포함하고 있지만 정작 그리고자 하는 것은 검은 "색"이 아닌, 검은 색을 통한 내면의 이야기이다. 그들의 story of black을 통해 검은색에 대한 관점의 확장을 기대해본다. ■
이유영 홍상현 사진전 ‘시간잉여공간’
갤러리 나우(02-725-2930)
2011-03-23 ~ 2011-04-05
2011-03-23 오후 6시
폐허의 시공간
―홍상현의 “시간잉여공간”에 부쳐―
공간은 단순히 눈앞에 보이는 대상들의 총합이 아니다. 따라서 공간은 그것들을 포괄하는 또 하나의 대상, 전체-대상도 아니며, 차라리 의식의 발효(發效) 이전에 주어지는, 주체가 사물들을 의식의 대상들로 포착하기 이전에 나타나는―전 의식적이고 전 반성적인―, 모든 경험의 조건이자 토양일 것이다. 공간의 그 비대상성(非對象性)을, 공간 자체가 주인(주체)이 되어 무엇보다 먼저 내 안에 스며든다는 사실이 증명한다. 그 스며듦의 작용이 남긴 표식 또는 징표를, 아마 마르틴 하이데거는 ‘감정(Gefühl)’ 또는 ‘기분(Stimmung)’이라 불렀을 것이다. 공간은 능동적 의식 작용에 따라 우리의 눈앞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세워지지 않으며, 우리 자신이 어쩔 수 없이, 우리를 수동성 속에 묶어두고 우리 안에서 퍼져 나가거나 울린다.
그 공간의 퍼져 나감, 공간이 시선이나 의식에 고정되지 않고 일종의 에너지처럼 우리 안에서 공명함, 그것이 보이는 공간이 남기는 보이지 않는 흔적, 즉 공간이 아니라 시간적인 어떤 것이다. 공간이 그렇게 시간의 자기 전개로, 시간적 울림(음악)으로 전환된다는 존재론적 사건에, 모든 사진 예술의 가능성(또는 불가능성)이 놓여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의심할 바 없이 공간을 재현(représentation, 또는 모방imitatio)하는 대표적인 예술인 사진 예술의 핵심은,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에게, “결정적 순간(instant décisif)”을 포착해야 하는―붙들 수 없는 시간을 붙들어야만 하는―움직임에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음악은 말할 것도 없고 회화에 비해 보아도 보이는 공간과 그 안에서 보이는 것에 더 붙박여 있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가장 재현적인 예술인 사진의 (불)가능성은, 가장 비재현적(비가시적)인 시간을 포착할 수 (없는) 있는 (불)가능성과 다르지 않게 된다. 가장 재현적(모방적)인 예술인 사진의 성패가 가장 비재현적인 것에 매달려 있으며, 이는 사진이 재현될 수 있는 것과의 대비(차이) 아래에서 그 비재현적인 것을, 시간의 현전을 효과적으로, 극적으로 드러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홍상현의, “시간잉여공간”이라는 표현으로 대변되는 일련의 작품들은, 사진 예술 자체가 근거하고 있는 존재론적 사건(공간의 시간으로의 전환, 공간이 시간으로 현전함, 공간이 시간으로 응결됨)에 대한 탐색의 결과이다. 이 작품들은 사진 예술의 가능성의 기본적 근거를 다시 묻고 있다.
거기에서 어떤 공간이 ‘말하고’―또는 ‘울리고’―있는가? 다시 묻는다면, 거기에서 어떤 시간이 ‘보이고’ 있는가?
그것은 폐허의 공간, 폐허의 시간, 보다 정확히, 폐허의 시공간이다. 물론 우리는 “시간잉여공간”에서, 이제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고 사람들이 찾지 않는 무너져 내린 공간들과, 과거에 멈추어버린 시간, 또는 죽은 과거만을 반복하고 있는 현재와 마주하게 된다. 세워진, 구성된 공간이 아니라 ‘주저앉은’ 공간, 흐르는 시간이 아니라 멈춰 선 시간, 폐허의 시공간, 그러나 그것은 이상하게도 폐허라기보다는 ‘살아 있는 자연’과 같은 어떤 것으로 나타난다. 말하자면 그것은 우리가 그 사용 가치를 극대화사키기에 골몰하고 있는 일상의 시공간(우리가 욕구들을 만족시키거나 즐거움을 얻기 위해 소비했던, 폐허 이전의 현실의 시공간)과 변증법적으로 대립하면서 폐허의 주관적 낭만성이나 비극성을 부각시키지 않으며, 차라리 무채색(‘무채색’, 그것은 “시간잉여공간”에서 보이는 것일뿐더러 보이지 않는 것이다)의 텅 빈 중심을, 이 도시에 내려앉은 잔잔한 어둠을, 그러나 체념이 아닌 비움과 내어맡김을 현시(現示)시킨다. 사실 그 흑백의 텅 빈 중심을 홍상현은 전작 “건축공간변주”에서 빌딩과 아파트 숲 중앙에, 사진 이미지들 한가운데 위치한 하늘의 흰 빛으로 형상화해냈었다. 그러나 이번 “시간잉여공간”에서 그 빈 중심은 이미지들 중앙에 놓여 있지 않고 곳곳에 산재해 있을 뿐이고, 보다 정확히 말해, 가시적 형상 안에 공간적으로 직접 드러나기보다는 다만―작품이 재현해내고 있는 과거 또는 폐허의 시간이 아니라―작품 자체의 시간으로서 우리에게 말하거나, 우리 안에서 울려 퍼진다. 작품 자체의 시간……, 그러나 그것은 작가가 마주했던, 마주하고 있는 시간일 뿐만 아니라, 바로 ‘우리’ 모두의 익명적 시간이, 무명씨들의 삶이 아니겠는가? 이 자본주의적 도시문명에 둘러싸여 있지만, 그 문명이 결코 침식해 들어갈 수 없는 (빈) 중심, 어떤 ‘자연’, 그 문명에 단순히 낭만적?비극적으로 대립하지 않으면서 다만 그로부터 단호히 돌아서서 침범할 수 없는 것으로 스스로를 드러내는 단단한 중핵……
박준상(숭실대 철학과 교수)
민병헌 사진전 `WATER FALL`
한미사진미술관(02-418-1315)
2011-03-13 ~ 2011-05-07
2011-03-12 오후 5시
민병헌의 작품을 마주하면‘희미함’이란 단어가 맨 처음 떠오르고, 흐르는 시간, 지금은 사라져 버린 잊혀졌던 감각들이 느껴진다. 그는 동양적이며 동시에 서구적 회화 전통에 기반을 둔 채‘자연’을 주제로 일련의 시리즈로 작업을 꾸려 나간다. 눈 덮인 산야, 안개 낀 도시와 들녘의 하늘, 갈대 숲, 어둠, 나신(裸身)등 실제 현실의 풍경은 그의‘순간 포착’으로 담겨지며, 이어서 섬세하고 덧없는 감동의 추상화로 발현된 독특한 이미지로 창조된다.
민병헌의 관심사는 자연의 변형, 그 변신으로서, 예를 들어 식물, 비, 바람, 폭풍, 눈, 피어나고 사라지는 안개 등에 대한 작가만의 재해석을 통해 작업에 이르는것이다.“ 자연이 거기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이 거기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이 사라지거나, 모습을 바꾸면, 우리는 그제서야 거기에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니까 오로지 결핍의 순간에만 다시 기억을 회복하는 것이다. 나는 어떤 대단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작은 것, 사소한 것, 자연스럽게 변하는 것들에 관심을 두고자 하며, 그것들을 정말 몸소 느낀다1).”이렇게 민병헌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소한 것들에 대해 음미하고 느끼며, 자연과 일체가 되는 자신만의 열정적인 방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민병헌은 오직 흑백으로 작업한다. 비단처럼 윤택하고 은은한 회색조와 부드러운 종이의 질감은 시적이고 세련된 그의 창작세계를 한층 더 강화시키며, 마치한 폭의 수채화나 서예 작품을 보는 듯 거의 동일한 미감을 뿜어낸다. 작가는 본인의 작품을“새벽녘 입안에 남은 전날 밤 꿈의 맛2)과 닮았다”고 표현한다. 모든 것이 그에겐 감각의 문제이다. 다시 말해 카메라 셔터를 누른 그 순간을 프린트 과정에서 다시 회복시키는 것이 관건이란 것이다. 그는 1998년 이래로 서울 집에서 양평군 서정면 문호리 작업실을 오가며 <안개> 시리즈를 구상했으며 마침내 완성했다. 일출과 일몰에 맞춰 강가에서 피어오른 물안개는 그의 길을뒤덮고, 식물과 가옥, 자욱하고 빽빽한 하얀 운무 속에 파묻힌 산봉우리를 연기처럼 채운다. 민병헌의 <안개> 시리즈 작품을 형식적인 측면에서 엄밀하게 말한다면, 구성의 단순함, 형태의 순수함, 미니멀리즘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색채와 관련해서, 흔히는 밝은 회색에서 순수한 백색, 그리고 드물게는 진한 단색조 회색을 추구하며 그 색조들의 단조로움을 지키기 위한, 일종의 원근법과 콘트라스트의 부재로 특징지을 수 있다. 물론 그의 <안개>는 그 크기에 상관없이, 온통 세밀한 것들로 넘쳐나며 나타났다가 바로 사라져 버리는, 우리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한 갖가지 감각의 세계로 감상자의 시선을 인도한다.
공학에 흥미를 잃고 사진을 익힌 민병헌은 그 무엇보다도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처럼“결정적 순간”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사진의 기록적 역량에 작업의 가치를 두고자 한다(1970년대 한국의 사진가들은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그러므로 그는 일단 처음 기록된 이미지에 손을 대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즉 그것은 실재를 훼손하기 때문에 이미지를 다시 조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민병헌은‘순수사진’의 신봉자로서 이미지에 대한 일종의 추상화를 지향하며, 한 작품에서 다른 작품으로, 한 시리즈에서 다른 시리즈로 나아가며 서로를 융합하려는 경향을 보이는데, 예를 들어 눈덮인 작은 골짜기는 여성의 나신을, 산 정상은 하늘을 향한 여인의 젖가슴을 연상케 한다. 그리고 눈보라는 숲을 덮으며, 운무는 나무 꼭대기에서 하얀 장막을 드리운다. 반면 민병헌은 최초의 음화 형태를 그대로 보존하지만, 현상 시에는 기꺼이 손을 대어 교정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가 사진을 찍었을 때 자신이 보았던 것, 느꼈던 감각, 그러나 이제는 사라져 버린 그 느낌을 생생히 재생시키고자 시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감각은 무한히 작은 것, 만질 수 없는 어떤 영역에 속하는 것들로, 작가는 자신이 어떤 것을 느끼는 찰나를 기다리고, 자신의 무의식이 명령하는 그 순간 마침내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다시 암실로 돌아와 현상과 인화작업을 거치며 그 찰나의 경험을 재차 반복하는 것이다. 민병헌은 프린트의 색조가 그의 첫 감동을 정확히 반영해 줄 그순간까지 초조하게 기다리는 것이다.
추상적 형태, 뒤엉켜 변형된 시각, 을씨년스런 풍경, 무의식의 역할 등은 우리에게, 우리 서구인들에게 초현실주의 이미지를 생각나게 한다. 그런데 민병헌은 유럽의 초현실주의(surréalisme)에 특별한 관심을 둔 적이 없다고 말한다. 특히 그의 <안개> 시리즈는 브라사이(Brassaï)의 <파리의 밤>의 모습을, 안개 속의 네이장군(le Maréchal Ney)상을떠올리게하는데, 브라사이는스스로가초현실주의자로비춰지는것을거부하며다음과같이말했다.“ 내작품에있어서 초현실주의란 시각에 의해 환상적으로 표현된 현실일 따름이다. 나는 사실을 표현하려고만 하였다. 왜냐하면 어떤 것도 그 이상 초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이다.3)”
특정 예술사조나 예술운동으로부터 거리를 두었던 민병헌 역시 이 문장에 공감할 것이다. 결국 민병헌의 작품은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듯, 시간의 밖에 놓여 있는 듯, 사적 은밀함 속에 격리된 듯, 오늘날 한국 동시대 미술의 일부가 된 대형 사이즈의‘조형적 칼라 프린트의 해일’주변에서 자신을 방어하며 키워나가고 있다. 극도의 섬세함으로 이뤄진 민병헌의 작품은 자연을 관찰하는 인간의 감성이 더해져 낭만적, 서정적 흔적을 간직한 집단적 무의식 속에서 메아리로 울리며, 살아 있거나 잊혀진 감성들을 다시 떠오르게 한다. 그리고 평화의 안식처로서 명상과 내적 성찰의 순간을 제공한다.
엠마누엘 드 레코테
나무, 숲 그리고 우리
임승천展 / LIMSEUNGCHUN / 林承千 / sculpture 2011_0316 ▶ 2011_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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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승천_유랑 Wandering_혼합재료, 가변크기_2011_부분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91119c | 임승천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0316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공간화랑 GALLERY SPACE 서울 종로구 원서 219 공간사옥 지하 Tel. +82.2.3670.3500 www.space-culture.com
임승천(1973~)은 가상의 시나리오를 집필하고 그 스토리 구조를 기반으로 드로잉부터 대형 설치에 이르는 다양한 형식의 작품들을 창작함으로써 내면의 개념을 시각화 시켜온 작가이다. 세상의 멸망 이후 존재하는 디스토피아의 암울한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분위기를 가진 임승천의 이야기들은 미래를 가정한 허구이지만 그 면면은 동시대의 현실적 맥락들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것들이다. ● 임승천의 스토리 구조는 각각의 스토리들이 연결되며 이어지는 서술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의 매 국면들은 그 동안의 개인전 등을 통해 단절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져왔던 것이다. 이번 공간화랑에서의 전시 또한 앞서 그가 발표했던 네 개의 스토리들에 이어지는 다섯 번 째 스토리에 기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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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승천_유랑 Wandering_혼합재료, 가변크기_2011_부분
임승천이 풀어내는 이야기의 서막은 대규모의 개발공사나 수몰 등으로 인해 삶의 터전이 소멸되어 정착이 불가능해진 사람들이 자신들의 재산을 모아 배를 장만하여 (드림쉽3호) 남태평양 해역 어딘가에 있는 무인도로 이주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긴 항해도중 폭풍을 만나 배가 파손되는데, 항해를 지속하고 목표지점에 도달하기 위해 가장 안전한 구조로 배를 개조하게 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격론 끝에 결국 뱃머리가 세 개로 만들어지게 되면서 어느 방향으로도 나아갈 수 없는, 스스로 초래한 고립의 상황이 연출된다(에피소드 1). 망망대해에 갇혀버린 사람들은 공포와 공황 상태에 빠져 분열과 대립을 반복하며 극한 상황에 치닫게 되고, 정신적 피로감 속에서 고립은 더 깊어져만 간다(에피소드 2). 공황상태에 빠진 이들은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들이 떠나온 사회와 비슷한 수직적 위계관계를 구축하고 기형적인 증식을 통해 스스로의 안전을 도모하게 된다. 그러나 외부와의 소통이 단절된 이들은 점차 비이성적인 논리에 함몰되고, 오해와 공포로 말미암아 전체가 자멸하는 결과로 치닫게 된다(에피소드 3). 이 드림쉽 3호에서 유일하게 살아 남은 '낙타'라는 소년은 희망과 좌절을 번갈아 경험하며 홀로 표류한다. 그는 표류중 우연히 북극에서 벌어지는 자원 전쟁의 참상을 경험하게 된다. 멀지 않은 미래, 북극의 얼음이 녹아내리며 새롭게 드러난 북극점 아래 매장된 엄청난 자원을 차지하려는 주변국들의 분쟁은 결국 '산타존'이라는 국가간 협의지대를 창설하는 것으로 이어진다(에피소드 4). ● 이렇게 전개되어온 그의 이야기들은 '낙타'의 '유랑'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새로운 국면으로 이동하는데 그 내용들이 이번 공간화랑 전시에서 발표된다. 작가 스스로 염두에 두고 있었던 다섯 번 째 이야기는 공간화랑이라는 전시 장소가 결정되면서 장소적 성격과 조우하는 새로운 작품들로 구체화된다. ● 표류를 거듭하며 피로에 지친 낙타는 어느 날 새로운 희망의 날개가 자신의 등에서 돋아난 것을 알게 되고 기쁨에 젖게 되지만, 잠시 잠든 사이 날개는 어떤 물고기가 먹어버리며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된다. 마지막 희망을 잃어 버린 낙타에게 세월의 흔적이 더해지며 변화된 모습은 공간화랑 중간층 한쪽에서 관객들을 맞게 된다. 또한 소년의 희망의 날개를 먹어버리고 비대해진 자신을 주체할 수 없게 된 거대한 물고기는 소극장 공간사랑 한쪽에서 가쁜 숨을 몰아 쉬는 키네틱 작품으로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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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승천_유랑 Wandering_혼합재료, 가변크기_2011_부분
무엇보다 이번 전시의 중심은 전시장 끝 부분의 무대 설치이다. 유랑을 상징하는 서커스 천막 형태의 무대에는 몇 명의 인물 군상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이 서 있는 판의 회전과 사이키 조명의 반복되는 암전으로 마치 인형들이 움직이며 춤을 추고 있는 듯 한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인류가 최초의 동영상을 만들기 위해 회전하는 장치를 고안해 내었던 수 세기 전의 상상력이 새로운 연극적 무대로 재현되고 있다. ● 임승천은 독특한 감수성과 특별한 형식미를 가진 작가이다. 그의 이야기들은 암울한 심리적 통로의 내부로 들어가는 여타의 작품들과는 달리 현상적인 차원을 초월하여 상상의 스토리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내는 것을 지향한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들은 본인이 발을 딛고 서 있는 현실 세계의 비루한 모습들과 부대끼는 것에서 시작한다. 손댈 수 없이 꼬여버린 탐욕과 갈등의 고리들은 현재의 암울한 모습들을 만들어 내고, 그러한 현실에 임승천의 상상력이 더해져서 그려진 미래의 모습들이 바로 그의 작품들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임승천의 작품세계가 갖는 중요한 미학적 특별함이다. ■
고원석 풍속의 지형도-나는 나의 두려움이 두렵다
김진展 / KIMJIN / 金眞 / painting 2011_0318 ▶ 2011_0331 / 월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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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_나는 나의 두려움이 두렵다 시리즈 중-최후의 심판이미지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7×130cm / 150×150cm_200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91125h | 김진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0318_금요일_05:3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쿤스트독 KUNSTDOC 서울 종로구 창성동 122-9번지 Tel. +82.2.722.8897 www.kunstdoc.com
개별화와 전체화의 이중구속 ● '풍속의 지형도'라 붙여진 김진(金眞)의 개인전은 권력이 편재적으로 작동하는 현실의 지형을 그려낸다. 그것은 현실이나 지도처럼 투명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의 한 단편이 굳어져 전승되는 풍속이란 때로는 부조리하기도 하며, 지금 여기를 다시금 출발점으로 삼아 더듬어 나갈 수 있을 뿐인 지형도란 전체를 아우르는 조망적 시점과는 거리가 있다. 풍속이든, 지형이든 모든 상황의 필요충분조건이 충족되었다고 가정되는 보편성과 그것에 근거하는 형식주의와 달리, 상황과 문맥이 문제시되는 것이다. 그것은 영원히 고정된 성좌 같은 것이 아니라, 새로 찍혀진 점에 의해 좌표계 자체가 재조정되거나 다시 출렁거리는 과정 중의 실체이다. 이 전시에는 1999년에서 시작하여 2011년까지 10년 이상 작업한 다양한 작품들이 재맥락화 된다. 그렇다고 그녀의 작품이 우연성을 절대화시킬 뿐인 상대주의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상황과 문맥을 강조하기 위해 보편이나 본질은 끊임없이 호출된다. 탈 중심화의 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중심이 포함되어져야 한다. 그것은 핵심을 외면한 채 주변만 맴돌면서, 중심이 아우르는 지배 권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는 전형적인 보수주의를 벗어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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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_나는 나의 두려움이 두렵다 시리즈 중-범죄 현장 이미지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7×260cm_2002
김진은 지배 사회를 성공적으로 유지하는데 동원되는 가장 기본적인 정서로 두려움을 지적한다. 「나는 나의 두려움이 두렵다」라는 큰제목 아래의 두려움 시리즈는 범죄나 테러, 생지옥, 망가진 신체 같은 이미지들이 등장한다. 제목을 'oo 이미지'라고 붙인 이유는 지배 이데올로기가 두려움에 대해 강한 동일화와 감정이입적인 전략을 사용하는 것과 구별하여, 그것을 이질화하고 거리를 두기를 위함이다.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없는 편파적인 풍요와 성장이 가능하기 위한 짝패는 공포와 두려움이다. 지배적 이데올로기는 막연한 두려움을 이용하여 권력에 대한 자발적인 동의를 이끌어내고, 체제의 안정을 도모한다. 두려움은 살아있는 현재와 불확정적인 미래를 저당 잡는다. 두려움은, 불타 무너지는 쌍둥이 빌딩을 그린 작품 「테러 이미지」(2002)나 묵시록을 연상시키는 작품 「최후의 심판 이미지」(2002-2011)처럼 거시적 차원부터, 「범죄 현장 이미지」(2002)나 「밤길 이미지」(2011)처럼 일상적인 차원, 더 나아가 「피부가 손상된 얼굴 이미지」(2002)나 「처진 가슴 이미지」(2009)처럼 내밀한 차원에 이른다. ● 그러나 김진의 작품에서 크고 작은 차원의 재앙이 가져다주는 두려움의 실체는 밑도 끝도 없는 실존적 문제나 자연적 운명이 아니라, 사회적 기원을 가지고 있다. 두려움은 무엇보다도 권력의 문제인 것이다. 정방형의 같은 크기로 제작된 「거인의 시선은 어디에나 있다」 시리즈는 얼굴이 없는 거인들이 관객을 주시하는 듯이 설치된다. 중세의 이콘화를 떠오르게 하는 이 방식은 머리와 표정을 없애버림으로서 편재하는 익명적 권력을 표현한다. 이에 대해 작가는 '이미 하나의 신앙처럼 되어버린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의인화를 시도하며, 자본의 욕망(자본가의 욕망이 아닌)과 자본주의 시스템에 얼굴을 부여하고자 한다'고 말한다. 작품 「거인의 시선은 어디에나 있다」(2009)는 얼굴 없는 양복 입은 남자의 몸통에서 나온 네 개의 손이 와인 잔, 황금 알, 거위, 하프 등을 각각 들고 있다. 그것은 이윤이나 쾌락 등 거대 자본의 포용력이나 포식성 등을 상징한다. 이 시리즈 중의 하나는 거만하게 꼬고 있는 손의 자세를 통해, 대상의 가치를 판가름 하는 배후의 실세를 표현하며, 또 하나는 몸통에서 나온 네 개의 손이 덫과 연결된 쇠사슬을 쥐고 있는 무시무시한 심판자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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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_나는 나의 두려움이 두렵다 시리즈 중-밤길 이미지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197cm_2011
김진의 작품에서 권력은 정장을 입은 모습에서 드러나듯이 합법적인 형태를 띄고 있으며, 그것이 그 법의 자의성과 폭력성을 감춘다. 법이 폭력과의 연결성을 보다 명확히 보여주는 실체는 국가이다. 그래서 국가는 '합법적 폭력 수단을 토대로 한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 관계'(베버)로 정의되곤 한다. 카프카의 「심판」에 나타나듯이, 현대예술 작품에서 법의 등장은 부조리한 양상을 띈다. 조르조 아감벤은 「호모 사케르」에서, '단순한 관계들의 이념'(칸트)으로 변모한 법, 그리고 의미는 없지만 유효한 법에 복종하는 삶을 묘사한다. 그에 의하면 카프카가 그려낸 것은 바로 그러한 유형의 삶으로, 거기에서 법은 내용이 없을수록 더욱 집요하다. 법의 순수한 형식이란 단지 관계의 공허한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법의 총아인 국가는 사회와 대립한다. 국가는 사회적 결합을 억제하며 개별화시킨다. 독점하고 가치를 매기고 심판하는 얼굴 없는 권력 앞에는 불가피하게 얼굴을 드러낸 희생자들이 있다. 촛불 시위의 현장에서 영감을 받은 최근작은 시위대들에게 쏘아지는 공격적인 강한 빛에 노출된 사람들이 등장한다. 거기에는 피사체를 향해 앞이 안보일 강한 빛을 쏘고, 그 뒤에 숨어서 잠재적이거나 명시적인 질서 교란자(범죄자)를 특정 하는 누군가가 숨어 있다. ● 해로운 화공 약품 같이 쏟아지는 강렬한 빛에 노출된 채, 얼굴을 가리거나 눈을 감거나 표정을 일그러뜨리는 사람들은 낱장의 그림으로 하나하나 개별화되어 있다. 폭력적인 강한 빛은 탈주자들을 감시하는 집단 수용소처럼 보이기도 하는 지옥도나 범죄현장 이미지 등에도 등장한다. 저항하는 작은 촛불들을 깔아뭉개는 이 센 빛을 쓰는 자는 누구인가. 거기에는 두 가지 빛으로 전환된 물리력이 대치하고 있다. 강한 빛이 발산되는 보이지 않는 중심에 해당되는 회화의 장치는 원근법상의 소실점이다. 「거인의 시선은 어디에나 있다」 시리즈 중의 한 작품은 모든 시선을 흡수하는 하나의 점과 같은 위치에 지구본이 있고, 이것을 손아귀에 넣은 거인이 형상화 되어 있다. 근대적 독점 자본주의를 넘어선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 권력은 분명히 분산되어 있지만, 권력이 익명화되어 있을 뿐 그것의 독점과 집중이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다. 거인 시리즈에 전제된 원근법은 이러한 시점에 내재된 권력관계를 강조한다. 장면을 바라보는 모든 이의 시선을 흡수하여 강한 빛으로 되 반사하는 이 자리는 누구의 자리인가? 거인은 이콘화의 전지전능한 신처럼, 때로는 마술사처럼 등장하는데, 그들은 모두 관객을 향해 열린 무대 위에 앉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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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_나는 나의 두려움이 두렵다 시리즈 중-테러 이미지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4×130cm_2002
안 쉬르제는 무대장치의 역사를 다룬 「서양 연극의 무대장식 기술」에서 모든 것을 한눈에 보게 해줄 수 있는 이상적인 위치, 즉 원근법의 중심을 차지하는 무한 소실점을 무한 초월과 연결시킨다. 허구적 무대에서 환영이 가장 잘 실현되는 소실점 맞은편 자리가 바로 무대를 만들어낸 왕의 자리이다. 즉 원근법적 무대는 왕의 시점이 구현되는 장소인 것이다. 안 쉬르제에 의하면 원근법으로 된 허구의 이상적 모델은 반영효과에 의해 왕에 의해 조직된 세상의 질서를 가리킨다. 그것은 왕의 세계를 조직하고 확대하는 것을 지향한다. 왕권 중앙 집중화의 표현인 동시에 그 도구 중의 하나인 이러한 무대는 왕의 눈이라는 기준점을 중심으로 하여 왕을 위해 창안되었는데, 여기에서 두 개의 질서(실제 세계와 재현된 세계)는 동형적으로 일치한다. 재현된 공간의 이상적 질서가 은연중에 현실에서의 질서를 가리키며, 재현된 무한대는 거울처럼 왕의 눈에 맞추어져
2011.03.17 15:11:26 / Good : 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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