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단점이라는 말은 장기적으론 퇴화되고 특징이라는 말로 수렴되지 않을까 싶다. 자신의 흉한 진피층이 드러난 처참한 상흔, 그 위에 점점이 맺힌 짓물이 마르길 기다리면서 겪었던 고통들. 아마도 가장 장엄한 재산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난독증 앓는 인간이 이미지에 편집적으로 집착할 때 어떤 효과가 도출될 것인가. 궁금하다..') + + +출처 : 구글검색
(44) 척 클로스(Chuck Close)
척 클로스 ⓒMarius Bugge |
현실을 초월한 추상적 픽셀의 미로일생동안 우리는 수많은 얼굴과 마주한다. 얼굴이란 타인과 나, 그리고 세계를 연결시켜주는 통로이자, 개인의 특성을 결정하는 제1의 수단이다. 작가 척 클로스는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사람의 얼굴을 그려 왔다. 당장이라도 말을 걸어올 것처럼 리얼한 초상화나 사각형의 추상적 픽셀들이 모자이크처럼 얼굴을 형성하는 작품들은 작가의 무궁한 인내심과 노력에 의한 귀중한 결과물이다. 작가의 피사체들은 자신의 가족들부터 시작해서 알렉스 카츠, 리처드 세라, 신디 셔먼, 세실리 브라운, 제임스 터렐 등 이름만 대도 알법한 저명한 미술계 인사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나 브레드 피트와 같은 할리우드 대스타까지, 각양각색의 인물들을 포함한다.
척 클로스(Chuck Close), <Self-Portrait/Five Part>, 자카드 태피스트리, 190.5 x 469.9cm, 2009, Photo by: Donald Farnsworth, Courtesy Magnolia Editions, Oakland, CA, Private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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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다양한 초상화들은 혀를 내두를 정도의 정교함을 자랑하면서도 인간적인 섬세함 또한 담고 있다. 포근한 뉴욕의 3월, 맨해튼 노호(Noho)의 척 클로스 스튜디오에서 직접 그를 만났다. 인터뷰를 시작하자 그는 현대미술계의 역사를 헤쳐 온 백전노장으로서의 위용을 뽐냈다.
척 클로스(Chuck Close), <Cindy>, 자카드 태피스트리, 261.6 x 200.7cm, 2006, Photo by: Donald Farnsworth, Courtesy Magnolia Editions, Oakland, 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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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많은 작가들이 존재하지만 척 클로스처럼 대중과 미술계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작가는 그리 많지 않다. 현대미술계를 대표하는 대가(大家) 중의 한사람인 그이지만 시작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작가는 1940년 워싱턴 주 먼로에서 피아노 연주자인 어머니와 공군 잡역부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유년 시절 갑작스럽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단 둘이 남게 된 그가 세상을 살아가기엔 경제적인 이유 말고도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척 클로스(Chuck Close), <Self-Portrait>, 캔버스에 유채, 182.9 x 152.4cm, 2008, Photo by: G. R. Christmas / Courtesy The Pace Gallery, Private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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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는 태어났을 때부터 난독증(難讀症)을 앓고 있었다. 시절이 시절이었으니 만큼 난독증이나 우울증을 그저 학습 장애나 심지어는 정신병으로 결론짓는 사회는 오직 무관심 뿐, 그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렇기에 언제나 고독했던 작가가 친구들이나 선생님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시작한 그림이 그를 대가의 반열에 오르게 할 것이라 그 누가 예측했을까.
척 클로스(Chuck Close), <Laurie>, 캔버스에 유채, 275.6 x 213.4cm, 2011, Photo by: Kerry Ryan McFate / Courtesy The Pace Gallery |
1960년대 초반, 실력을 인정받아 예일대 대학원까지 진학한 그는 추상표현주의에 심취했다. 그 당시 뉴욕 미술계를 뒤덮은 팝아트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지 않고, 관습적인 사고에 집중해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그가 추상표현주의를 벗어나 초상화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은, 미술 평론가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예술가가 하지 말아야할 유일한 것은 바로 초상화를 그리는 것”이란 말을 들었을 때이다. 척 클로스는 이에 대해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는 영역으로 처음 발을 내딛으면서 비로소 자신이 존경해왔지만 벗어날 수 없었던 대가들의 그늘에서 탈출했다”고 회상했다.
척 클로스(Chuck Close), <Zhang Huan I>, 캔버스에 유채, 257.8 x 213.4cm, 2008, Photo by: G. R. Christmas / Courtesy The Pace Gallery, Private collection |
그런데 그는 난독증 이외에도 안면인식장애 또한 앓고 있었다. 처음 만난 사람과 아무리 친근한 대화를 나누었다고 해도 뒤돌아보면 그 사람의 얼굴을 전혀 기억하지 못 할뿐 아니라 얼굴에 대한 인식 자체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유일하게 얼굴을 파악할 수 있는 수단은 바로 정지되어 있는 화면인 사진을 통해서이며, 작가는 인물을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을 통해서 얼굴을 면밀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이를 테면 작가의 그림은 한 사람의 얼굴을 완벽하게 인지하고 이해하기 위해 떠나는 긴 여정과도 같다. 이것이 그가 다른 작가들과는 달리 초기부터 지금까지 오로지 사진을 통해서만 작업을 하는 이유다.그의 초기작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1967년 작인 <Big Self Portrait>로 에어브러시로 그려진 흑백의 초상화다. 이 후 그는 유화물감을 묻힌 손가락을 종이에 일일이 찍어 눌러서 그린 <Fanny>와 같은 핑거 페인팅(finger-painting) 초상화 작품들을 발표하거나 파스텔화, 유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섭렵하였으며 그의 작품세계는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 나갔다.
척 클로스(Chuck Close), <Ellen>, 자카드 태피스트리, 261.6 x 200.7cm, 2009, Photo by: Donald Farnsworth, Courtesy Magnolia Editions, Oakland, CA |
처음 흑백의 강렬한 대비로 시작했던 그의 작품은 서서히 색채를 입기 시작했는데, 컬러사진을 CMYK로 나누어 마치 실크스크린이나 프린터로 망점을 찍듯 차례차례 색을 입혀나간 것이다. 엄청난 시간과 노동을 요하는 그의 작품은 세밀하고 정교해, 실제 사진과 한 치의 오차도 찾을 수 없을 정도다. 그렇게 초상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극사실주의(Photo-Realism)의 시대를 연 그이지만 정작 자신이 극사실주의자로 분류되는 데에는 부정적인 반응을 표했다. 그는 “추상표현주의자들도 팝 아티스트들도 자신들이 특정한 카테고리에 분류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솔직히 어느 예술가가 자신이 어떤 부류에 속하게 되는 것을 좋아하겠는가. 내가 극사실주의자(Photo Realist)로 분류되는 것에 별로 탐탁치 않아하는 것은 그런 이유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극사실주의라는 단어가 ‘리얼리즘’에만 치우쳐있기 때문이다. 나는 사실주의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사진) 모두를 골고루 포용 한다”고 피력했다.
척 클로스(Chuck Close), <Fanny/Finger painting>, 캔버스에 유채, 259.1 x 213.4cm, 1985, Photo by: John Back / Courtesy Pace Gallery ©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Gift of Lila Acheson Wallace |
거대한 초상화 작업들을 잇달아 발표하며 미술계에 큰 파란을 불러일으켰던 그에게 또 다른 시련이 닥친다. 1988년 척추동맥 파열로 쓰러진 후 사지(四肢)가 마비되고 말았던 것. 척 클로스는 그 ‘사건’이 있은 직후 약 1년 동안의 재활치료를 받고나서야 다시 작업에 복귀할 수 있었는데, 대단한 인내와 노력을 요하는 과정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작가에게 이런 시련은 작품을 위한 밑거름이 되었다. 1988년부터 지금까지 그의 작업세계를 점유하는 독특한 초상화 형식은 바로 이 시기에 정립된 형식이다. 남의 손이나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는 그는 어시스턴트에게 단지 캔버스와 사진에 격자무늬를 그려 넣게 하고 각각의 사각형 안에 사진에 해당하는 색채를 그려 넣는 식으로 초상화를 제작한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렇게 색을 채워 넣는 과정은 골프를 치는 것과 흡사하다. 각각의 사각형은 총 3번의 붓질로 완성되는데 일단 사진의 배경색에 해당하는 색으로 한 번, 그 다음엔 사진에 나타나는 피부색으로 두 번째의 붓질을, 마지막으로는 배경색과 피부색을 어우러지게 하는 중립적인 색이나 하이라이트로 홀인을 시키는 것이다. 완성된 작품은 멀리서 볼 때에는 아지랑이를 사이에 두고 사람을 바라보는 듯하나, 좀 더 가까이 다가가면 캔버스 표면에 끝없이 이어지는 추상적 픽셀들의 장막과 대면하게 된다.
척 클로스(Chuck Close), <Emma>, 캔버스에 유채, 182.9 x 152.4cm, 2000, Photo by: Ellen Page Wilson / Courtesy The Pace Gallery |
1988년 이후의 초상화들은 초기 작업들과 비교해서 작업 사이즈도 비교적 작아지고 예전의 섬세함도 떨어졌지만 추상의 모자이크로 현실을 조합해내는 경지에 도달했다. 휠체어에 앉아 생활하게 된 후 거동이 자유롭지 않았던 그는 손에 특별히 고안해낸 고정 장치로 붓을 고정시킨 후 캔버스를 자유자재로 돌릴 수 있는 작업대를 마주하고 작업에 임한다. 급작스럽게 닥친 위기도 그에게는 수련의 한 단계였던 것인지, 작가는 큰 힘을 요하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시도들을 할 수 있는 매체들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은판사진이나 태피스트리 작업, 그리고 판화가 그 한 예다. 근래에 새로 시도하는 작업으로는 약 7,500개에 달하는 자신의 붓 터치를 디지털화시켜 컴퓨터에 브러시 패턴의 한 종류로 입력한 뒤 일정한 알고리즘을 통해 초상화를 만드는 것이다. 이 붓 터치들은 모두 회색 톤으로 이루어져있으며 실제로 자신의 회화 작업에서 볼 수 있는 픽셀들과 유사한 형식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척 클로스(Chuck Close), <Kara>, 캔버스에 유채, 276.2 x 213.4cm, 2010, Photo by: Kerry Ryan McFate / Courtesy The Pace Gallery |
척 클로스의 초상화는 그가 작업해온 50년의 세월동안 숙성에 숙성을 거듭해왔다. 얼굴을 담은 이미지들은 작가의 손을 거쳐 이동한 2차원의 평면에서 새 생명을 부여받는다. 클로스의 그림은 똑같은 포즈와 표정, 형식의 사진을 바탕으로 만들어지지만 그 결과물은 언제나 판이하게 다르며, 관객들은 그가 구현한 시각적 미로를 넋을 잃고 바라본다. 캔버스에 실물을 담아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한층 더 나아가 추상으로 현실을 재구성하는 작가 척 클로스. 그는 늘 새로운 시도로 관객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하고 있다. 그가 1960년대를 시발점으로 21세기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폭 넓은 지지와 사랑을 받는 이유는 아마 이것일 테다. 글=진정윤 퍼블릭아트 기자사진=The Pace Gallery 제공 2012. 4. 23 ⓒArt Museum<글 ? 사진 무단전재, 복제, 재배포금지> <척 클로스 프로필>
척 클로스는 1940년생으로 미국 워싱턴 주의 먼로에서 태어났다. 1962년 워싱턴대학교에서 학사과정을 마치고, 1963년 예일 대학교에서 학사학위를, 그 이듬해인 1964년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수료하였다. 이후 1967년 뉴욕으로 거처를 옮겨 고희(古稀)의 나이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줄곧 뉴욕 노호(Noho)에 위치한 스튜디오에서 작품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1967년 매사추세츠대학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가진 것을 시작으로 2010 크레이그 F스타(Craig F. Starr) 갤러리, 2011년 미국 LA의 블럼엔포(Blum and Poe) 갤러리 등에서 다수의 기획전과 개인전을 가진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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