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말하고 당신이 들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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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bel

  • 작성시각: 2011.06.27 19:3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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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제목: [기사] 인터렉티브 미디어 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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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미디어 아트가 일정 너무 신선 혹은 복잡한 방식으로 관람객을 옮아맨단 의구심이 있으나, 작금 가장 발달되는 메소드임에는 부정할 수 없을 터.  간만에 읽을만한 기사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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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최두은의 미디어아트 다시보기
(2) 미디어아트, 내 몸과 통하다.












David Handford, <Sonic Chair - Something for the Girl Who Has Everything>, 2010
Photo by Charlie Gross(Science Gallery, Trinity College Dublin)



  테즈(TeZ)의 <옵토포니카 캡슐(Optofonica Capsule)>은 일종의 ‘촉각적 사운드’를 경험하게 하는 장치이다. 작은 무대 위에 올라가 키에 맞추어 높이를 조절해 주는 고둥 껍데기 모양의 장치를 쓰고 내가 원하는 동영상을 고른다. 사운드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쿠르트 헨트슐레거, 울프 랑하인리히, 허르만 콜겐 등의 오디오 비주얼(audio visual) 작품들이 들어 있다. 관객들은 머리에 쓴 장치 안의 화면을 보며 발판의 진동을 통해 사운드를 경험하게 된다.












TeZ, <Optofonica Capsule>, 2009
Photo by Charlie Gross(Science Gallery, Trinity College Dublin)


발뿐만 아니라 몸 전체로 소리를 느끼게 하는 <소리캡슐(Klangkapsel)>도 있다. 기다란 캡슐에 몸을 뉘이면 발끝부터 무릎, 허리, 어깨, 귓가에 이르기 까지 각기 다른 스피커에서 나오는 각기 다른 소리가 온 몸을 타고 흐른다. 작가 사토시 모리타(Satoshi Morita)는 귀가 아닌 몸이 듣는 소리를 위해서 실제로 자신의 몸의 각 위치에 마이크를 달고 녹음을 했다.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기록한 이 사운드들은 그의 몸이 기억하듯 고스란히 관객들의 몸의 특정 위치에 전달된다.











Satoshi Morita, <Klangkapsel>, 2008


  일상의 공간에서도 이러한 촉각적 사운드를 느낄 수 있다면 어떨까? 데이비드 핸드포드(David Handford)의 <소리 의자 - 모든 것을 가진 소녀를 위한 어떤 것(Sonic Chair - Something for the Girl Who Has Everything)>는 진동하는 소파이다. 소파에 앉아 내가 직접 디제이들이 믹서를 조정하듯 사운드를 조정하면, 그 사운드는 소파 전체를 타고 진동하며 우리의 몸에 전달된다. 카프 매튜(Kaffe Matthews)의 <소리 침대_마르파(Sonic Bed_Marfa)> 역시 진동하는 침대이다. 작가는 특정 지역에 가서 그곳에서 발견한 재료로 침대를 만들고 소리를 넣어 새로운 풍경을 담는다. ‘마르파’는 미니멀리즘 작가 도날드 저드(Donald Judd)로 유명한 텍사스의 한 예술 마을의 지명이고 여기서 <소리 침대_마르파>가 만들어졌다. 마르파의 태양과 바람 아래서 세월의 흔적을 담아낸 나무로 프레임 위에 기존의 침대들과 달리 빛이 나는 반투명 플렉시글라스(Plexiglas)가 덥힌 미니멀 침대가 탄생했다. 내부에는 <옐로우(Yellow)>라는 음악이 흐르고, 음악에 맞춘 노란색 시트와 베개가 놓여 져 있다. 침대에 들어가 몸을 눕히면 침대 가장자리와 매트리스 아래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관객들은 침대를 타고 흐르는 사운드가 만들어내는 진동을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먼저 느끼게 된다.












Kaffe Matthews, <Sonic Bed_Marfa>, 2008
Photo by Charlie Gross(Science Gallery, Trinity College Dublin)



  앞서 소개된 작품들은 아일랜드 더블린에 위치한 사이언스 갤러리(Science Gallery, Trinity College Dublin)에서 기획한 <바이오리듬: 음악과 몸(BIORHYTHM: MUSIC AND THE BODY)>를 통해 선보인 작품들이다. 현재 월드 사이언스 페스티벌(World Science Festival)의 일환으로 뉴욕의 아이빔 아트+테크놀로지 센터(Eyebeam Art+Technology Center)에서 전시 중이다. 몸과 사운드의 관계를 과학과 예술을 통해 탐구하는 이 전시처럼 미디어 아트는 온 몸의 감각들을 깨워 특별한 경험을 만들어 왔다.

  <소리 침대_마르파>처럼 ‘침대와 몸’ 하면 떠오르는 또 다른 작품이 있다. 1992년 폴 서먼(Paul Sermon)은 서로 떨어져 있는 몸을 네트워크를 통해 한 침대에서 만나도록 하는 <텔레마틱 드리밍 (Telematic Dreaming)>를 선보인 바 있다. 인터넷, 비디오 컨퍼런스 시스템, 크로마키 기법 등을 활용하여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두 장소의 사람들이 제3의 공간에서 만나고 네트워크로 연결된 가상의 촉각적 경험을 한다. 그는 1992년부터 진행해온 텔레마틱 리서치를 집대성하여 1999년에는 <<집과 같은 시뮬레이션은 없다(There's no simulation like home)>>를 지었다. 현관으로 들어가 거실, 침실, 식당을 거쳐 복도를 지나 화장실, 그리고 뒷문으로 나오기까지 가상과 현실의 경계에 있는 몸과 몸이 만난다. 침대에 누워 침대 위에 실시간으로 전송되어 투사되는 다른 곳에 누운 누군가와 만나고, 거실에서는 함께 앉아 마주보기도 하고, 식당 테이블 위에서 손을 잡아 보기도 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촉각적 커뮤니케이션을 경험하게 된다.










Paul Sermon, <Telematic Dreaming>, 1992~
Photo by Art Center Nabi



  폴 서먼의 작품이 상상 속의 촉각이었다면, 온 몸으로 물리적 촉각을 느낄 수 있는 <안아주기 셔츠(Hug Shirts)>가 있다. 큐트서킷(CuteCircuit)에 웨어러블 테크놀로지(wearable technology)를 적용하여 완성한 디자인 상품으로, 먼 거리에 있는 친구나 연인을 온전하게 물리적으로 껴안아 줄 수 있다. 내가 입고 있는 셔츠를 껴안으면 블루투스로 핸드폰에 내장된 허그미(Hugme) 소프트웨어를 통해 데이터가 상대방의 핸드폰으로 보내지고 바로 상대방이 입고 있는 셔츠에 심장 박동, 껴안는 압력, 시간, 체온 등이 전달된다. 더 나아가, 촉각을 넘어 후각까지 전달하고 싶다면 크리스타 소머로와 로렌트 미농노(Christa Sommerer & Laurent Mignonneau)의 <모바일 필링스 (Mobile Feelings I)>가 있다. 일반적으로 전화를 통해 전달하는 목소리나 이미지가 아니라, 낯선 사람들과 평소 나누지 않던 땀, 냄새, 체온 등 촉각과 함께 후각이 전달된다. 네트워크로 연결된 완전히 모르는 사람들은 이 모바일 인터페이스를 통해서 사적인 육체의 감각을 공유함으로써 비일상적이고 찰나적인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scenocosme, <Light Contact>, 2010
Photo by scenocosme



  또한, 내 몸이 직접 악기가 되기도 한다. 시노코스미(scenocosme)의 <빛 접촉(Light Contact)>은 내 몸의 [전]기가 접촉하는 다른 사람의 몸으로 [전]기를 통하며 음악을 연주하고 빛을 밝힌다. 테이블 가운데 있는 쇠구슬을 잡고 다른 사람의 몸과 닿으면 연주가 시작된다. 한 사람 한 사람 늘어날 때 마다, 어떻게 서로를 접촉하는 지에 따라 그 소리와 빛은 달라진다.











Javier Jaimovich, <Chains of Emotion>, 2010
Photo by Charlie Gross(Science Gallery, Trinity College Dublin)



  하비에르(Javier Jaimovich)의 <감성의 사슬(Chains of Emotion)> 역시 기둥처럼 공간에 늘어져 있는 쇠사슬과 쇠사슬 사이를 관객들이 손에 손을 잡고 연결하며 음악을 연주하는 작품이다. 샤자 헤르토크(Chaja Hertog)와 니르 나들러(Nir Nadler)의 <인스트루맨(InstruMen)>은 연주자 몸이 확장되어 악기가 되는 ‘입을 수 있는 악기’를 등장시킨다. 머리를 둘러싼 드럼, 머리카락이 확장된 현악기, 연주자의 몸통이 울림통인 듯 가슴 위로 뻗어 있는 더블베이스 등 특별한 ‘악기+인간’을 통해 더 이상 연주자와 악기는 둘이 아니라 하나가 된다. 우리 몸이 악기가 되어 음악을 연주하고 다시 그 음악을 몸이 듣기를 끊임없이 반복하며 공명한다.










Chaja Hertog and Nir Nadler, <InstruMen>, 2005
Photo by Chaja Hertog and Nir Nadler











Chaja Hertog and Nir Nadler, <InstruMen>, 2005
Photo by Charlie Gross(Science Gallery, Trinity College Dublin)



  이렇듯 미디어 아트에 있어서 몸은 더 이상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몸이 아니라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가 된다. 한편, 미디어 아티스트 스텔락(Stelarc)은 왼팔에 <제3의 귀(Extra Ear)>를 심었고, 에두아르도 칵(Eduardo Kac)은 자신의 유전자와 식물의 유전자를 결합한 새로운 꽃을 탄생시켰다. 다음 호에서는 이 시대의 다양한 과학 기술과 만나 새롭게 진화중인 또 다른 몸을 만나볼 예정이다.


뉴욕|글 ? 사진=최두은 아트센터나비 큐레이터
2011. 6. 27 ⓒArt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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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링크>
Science Gallery, Trinity College Dublin

http://www.sciencegallery.com

Eyebeam Art + Technology Center
http://www.eyebea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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