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당하거나 인구에 회자되는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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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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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시각: 2013.02.08 17: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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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과 시간_움직이는 조각


2013_0208 ▶ 2013_0331 / 월요일,설날 휴관



초대일시 / 2013_0207_목요일_05:00pm 참여작가 노해율_박종영_신성환_신정필_에브리웨어 왕지원_천민정_최선호_최종운_하광석_한진수 주최,주관 / 국민체육진흥공단_소마미술관 관람료 성인, 대학생_3,000원(단체 1,500원) 청소년(13-18세)_2,000원(단체 1,000원) 어린이(12세 이하)_1,000원(단체 500원) * 단체 : 20인 이상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설날 휴관 (마감시간 1시간 전까지 입장 가능) 소마미술관 SEOUL OLYMPIC MUSEUM OF ART 서울 송파구 방이동 88-2번지 Tel. +82.2.425.1077 www.somamuseum.org

'중력과 시간'은 움직임을 연상시킨다.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움직임은 중력을 벗어나 존재할 수 없다. 시간은 사물의 변화를 인식하기 위한 개념으로 우리는 움직임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게 된다. 중력과 시간에 대한 인식은 20세기 초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의 상대성 이론의 등장으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면서 이후 시대의 패러다임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다. 예술에 있어서도 특히 실제적 공간과 매스(mass)를 다루는 조각에 큰 변화를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공간예술에 속했던 조형예술에 시간이 개입하기 시작하였다. 독자는 '움직이는 조각'이라는 부제로부터 '키네틱 아트(Kinetic Art)'를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키네틱'은 물리학 용어로 '운동의' 또는 '활동적인, 동적인'이란 뜻을 가지며 키네틱 아트는 '움직이는 예술'이라 번역될 수 있다. 키네틱 아트는 1950년대 후반부터 활발해진 미술경향의 하나로 작품 그 자체가 움직이거나 작품 속에 움직임을 표현한 예술작품을 일컬으며 대부분 확장된 의미에서 조각의 형태로 나타난다. ● 전통적 조각은 부동적이며 중량감을 지닌 것으로 '3차원 공간에서의 매스'를 기본 개념으로 한다. 그러나 현대 조각은 '추상성'의 도입을 통해 중력과 매스라는 대전제에서 한걸음 벗어났으며, '키네틱'을 통해 전혀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교두보를 마련했다. 칼더(Alexander Calder)의 「모빌(Mobile)」은 키네틱 예술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 작품 중 하나이다. 이러한 조각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가까운 예로, 올림픽공원에 소장된 대부분의 조각들은 시대적 배경과 함께 야외 조각의 특성상 전통적 조각 개념에 충실한 작품이 많지만, 그 중에는 혁신적인 키네틱 조각도 다수 눈에 띈다. 소마미술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조지 리키(George Ricky)의 「비스듬히 세워진 두 개의 선들(Two Lines Oblique Up)」, 마크 에이드리안(Marc Adrian)의 「M5 모빌(M5 Mobile)」, 마르셀 반 티에넨(Marcel Van Thienen)의 「바람개비(Weather Cock)」, 이스트반 하라즈티(Istvan Haraszty)의 「플라밍고(Flamingo)」 등을 비롯하여 올림픽공원 내에 10여점의 키네틱 조각이 전시되어 있다. ● 이러한 키네틱 작품들은 여느 조각들보다 보는 이의 시선을 끈다. 움직이는 물체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거의 인간의 본능적인 반응이라 할 수 있다. 거기에 덧붙여 사람들에게 스스로 작품을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이나 어떤 변화를 야기시키는 현장에 참여할 기회를 준다면 비록 사소한 일이라 할지라도 분명 흥미로워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키네틱 아트는 참으로 매력적이다. 키네틱 아트는 실제 움직임을 포함하는 조형예술로써 그것이 작품 자체의 움직임이건 관객의 움직임이건 반드시 실제 운동이 있어야 하며, 실제 운동을 사용해서 변형과 환각을 만들어내고 허구의 공간을 연출한다. 현대 미술에서는 키네틱 아트가 추구한 움직임에 의한 공간의 가시화 및 시간성의 도입, 관객 참여에 의한 변화 수용, 전통적 매체를 벗어나 미술과 다양한 매체 특히 테크놀로지와의 결합 등이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잡았다. 따라서 비록 미술사적으로 키네틱 아트는 1970년대 이후 급격히 쇠락했다고 기술되어 있지만, 필자는 키네틱 아트가 현대의 광범위한 사고체계와 빠르게 변화하는 과학기술에 발맞추어 다양한 미디어 아트로 진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라이트 아트(Light Art), 비디오 아트(Video Art), 레이저 아트(Laser Art), 컴퓨터 아트(Computer Art) 등 매체에 따라 달리 명명되지만 큰 틀에서는 키네틱 아트를 계기로 확장된 미술의 영역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중력과 시간-움직이는 조각』전시는 운동의 개념을 미술에 끌어들여 획기적인 변화를 이끌어낸 키네틱 아트의 의미를 조명하고 1970년대 이후 다양한 미디어 아트로 확장되고 있는 키네틱 아트의 명맥을 되짚어보는 전시이다. 또한 작가의 예술적 의도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써 '미술'에 있어서 '움직임'의 기능과 역할에 주목하여 '움직임'이 작품에 부여하는 미학적 '의미'를 고찰하고, '움직임'과 다양한 '매체'를 통해 중력과 시간을 시각화 ․ 공간화 한 작품을 보여주고자 한다. 전시에 참여한 노해율, 박종영, 신성환, 신정필, 에브리웨어, 왕지원, 천민정, 최선호, 최종운, 하광석, 한진수 등 11명 작가들을 통해 초기 키네틱 아트에서부터 현대의 미디어 아트까지 다채로운 움직임의 예술을 만나보길 바란다. ■ 정나영
최선호_별처럼 2013-001 Like Stars 2013-001_플라스틱, 스틸, 대나무 모빌_350×400×200cm_2013
최선호(Sunho Choi)는 모빌을 통해 '움직임'에 대한 생각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각화 한다. 엄격한 균형과 기하학적 절제미가 요구되는 까다로운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모빌은 아주 작은 힘에도 흔들리며 시시각각 다른 조형을 만들어내는 특성을 지님으로 해서 굉장히 매력적인 대상이 된다. 작가는 이와 같은 모빌을 통해서 단순한 오브제의 움직임 보다는 시간의 움직임, 다시 말해 생명의 흐름을 통해 순환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플래닛(Planet)」은 색색가지 렌즈가 제목처럼 우주를 떠도는 행성을 연상시킨다. 이 렌즈들이 빛을 발하거나 때론 빛을 반사시키면서 스테인드글라스를 바라보는 경이로움을 자아낸다. 가느다란 철사에 의지해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렌즈들이 바람에 흔들리면서 경쾌한 색면의 춤을 춘다. 출품작 「별처럼(Like Stars)」은 대나무, 투명한 렌즈 등을 소재로 하여 독특한 조형미를 선사하며, 최선호의 모빌은 정지에서 운동으로 나아가는 움직임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한다.
박종영_마리오네트 11-정의의 여신 Marionette 11-Justitia_ 홍송, 미송, 스테인리스 스틸, 인형 눈, 전기모터, 낚시줄_가변설치_2013
박종영(Jongyoung Park)은 목각(木刻) 마리오네트(Marionette)를 통해 복합적인 키네틱 아트를 보여준다. 마리오네트란 원래 실을 이용하여 사람이 조정하여 인형을 움직이는 방식이다. 박종영은 인형에 줄을 연결하는 원래의 방식에 전기 동력을 이용하여 움직이게끔 설계하였다. 거기에 관객이 스위치를 조작해 움직임을 조정하게 함으로써 좀더 복잡한 메커니즘을 구사한다. 관객은 인형을 자기 마음껏 조정하면서 권력자로서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경험과 동시에, 지배자에 조정 당하는 인형에 자아와 현실을 이입시킴으로써 피지배자로서의 모습을 발견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대면하게 된다. "지배자 되어보기(Being Master)"라는 주제 아래 박종영의 마리오네트 시리즈는 사회로부터 지배당하고 통제당하며 자아를 상실해 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노해율_무브리스-화이트 필드 Moveless-White Field_철, 풍선, LED 조명_160×30×30cm×50_2013
노해율(Haeyul Noh)은 균형(balance)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움직임의 미학을 다룬다. 여느 키네틱 아트와 같이 기계적 움직임을 다루고 있지만, 노해율의 작품은 단지 기계 운동이나 메커니즘을 보여주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사회적인 현상과의 연상 작용을 통해 심미적 해석을 이끌어낸다. 그의 최근 작업 중 하나인 「균형」은 바로 서 있지 않고 비스듬히 기울어 있는 뿔형 오뚝이가 전기의 힘으로 끊임없이 회전하면서 균형이라는 이상(理想)의 상태를 추구하는 작품이다. 한편, 「무브리스(Moveless)」는 하부에 무거운 중심을 잡고서 서 있는 오뚝이의 형상이라는 점은 「균형」과 유사하나, 이 작품은 기계 동력이 아니라 사람들이 임의적으로 가하는 힘의 크기와 방향에 따라 다른 속도와 움직임을 표출하게 된다. 거기에 내부 조명이 반짝이면서 시각적 움직임을 더한다. 관객들은 스스로 발생시킨 운동 에너지를 보고 느끼면서 생의 활력을 얻게 되고, 시각적 경험은 더욱 드라마틱한 기억으로 그 공간과 시간을 저장하게 된다.
하광석_리얼리티-일루전 Reality-Ilusion_ 디지털 비디오 & 사운드, 빔 프로젝터, 돔 미러, 물_가변설치_2012
하광석(Kwangsuk Ha)은 '리얼리티(Reality)' 시리즈를 통해 실재와 허상의 간극(間隙)을 부각시킴으로써 실재의 의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물에 비친 달은 잔잔한 수면 위에서 더욱 아름다워 보이지만 그것은 실재가 아닌 허상이다. 뉴테크놀로지(new-technology)는 이러한 허상을 더욱 실재처럼 만들고 있는데, 예를 들어 「리얼리티-일루전(Reality-Illusion)」은 달과 나무가 어우러진 풍경을 담은 영상을 투명한 돔형 유리수조에 비추어 전시장 벽면과 천장에 투사시킴으로써 환상적인 공간을 연출한다. 움직이는 영상과 수조의 물이 일렁이면서 수시로 변화하는 푸른 빛 풍경은 어딘가에 있을 듯한,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으로 추억의 회로를 자극하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관조와 몰입을 유도한다. 작가는 이처럼 지극히 개념적인 주제에 대해서 유머와 위트, 추억과 향수와 같은 요소를 가미함으로써 관객이 공감하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신성환_존-공(存-空) Zone-Gong_비디오, 사운드, 오브제, 페인트_가변설치_2012
신성환(Sunghawn Shin)은 실재와 허상의 문제를 오브제와 영상을 매개로 하여 제시한다. 「존-공(存-空)」이란 작품을 살펴보면, 작가는 실제 자신이 사용하였던 물건들을 배치한 공간에 영상작업을 덧씌워 전혀 다른 환상의 공간을 연출한다. 의자와 책상, 책이 꽂혀 있는 책장, 벽에 걸린 시계, 나무 화분 등 물건들은 모두 백색으로 칠해져 평면적이고 박제된 풍경처럼 보인다. 백색 풍경을 배경 삼아 그 위에 영상을 통해 소리와 색, 형상을 부여하면서 생동감 있는 풍경으로 탈바꿈한다. 표면이 된 일상의 공간은 죽어 있고 허상의 이미지는 살아있게 된다. 무엇이 진짜인지 가상인지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빛으로 인해 발생하는 움직임은 비록 허상일지라도 보는 이에게 멈춰진 실재보다도 더 강력한 에너지를 전해준다. 이처럼 신성환은 소리와 색채, 형태, 움직임 등 다양한 요소들이 공존(共存)하는 공간을 제시함으로써 여러가지 감각을 일깨우며 살아있음을 강하게 환기시킨다.
왕지원_절제 02 Moderation 02_우레탄, 메탈 재료_가변설치_2013
왕지원(Ziwon Wang)의 작업은 인간복제, 사이보그 등 과학기술에 의해 위협 받고 있는 인간의 정신성과 육체, 다시 말해 인간 정체성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한다. 사실 '위협' 받고 있다는 표현은 아직 섣부른 판단일지도 모르지만, 작가는 우리가 과거의 인간과 다르게 변한다면 그것이 유토피아적 미래일지 디스토피아적 미래일지 알 수는 없어도 인간이라는 존재가 현재와는 확연이 다른 무언가로 바뀔 것이라고 확신한다. 「절제(Moderation)」 연작은 그동안 왕지원이 보여줬던 작업들과는 확연히 새로운 형식의 작품이다. 이전의 작품이 현란한 가시성과 운동성을 보여준 반면, 「절제」는 제목에서처럼 단순화되고 미니멀(Minimal)한 인체 표현과 모터에 의한 움직임이 아닌 우연적 대기의 흐름에 의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불교적 도상을 차용한 작품들에서 보여줬던 화려한 외관은 최소화 되고 명상적 부분만이 더욱 부각된 느낌이다. 왕지원의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 한 단계 더 진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천민정_춤추는 오바마 Dancing Obama_채널 비디오 설치, 스티로폼 조각_가변설치_2012
천민정(Mina Cheon)은 정치(Politics)와 팝아트(Pop Art)를 결합한 '폴리팝(Polipop)'이라는 신조어로 대변되는 다양한 작업을 보여준다. 폴리팝은 현대의 다양한 매체를 복합적으로 사용하면서 팝아트의 특징인 원색의 강렬한 이미지와 정치라는 무거운 주제를 가볍고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다. 「춤추는 오바마(Dancing Obama)」는 현대 국제사회의 정치와 팝문화의 대표 아이콘인 미국 대통령 오바마를 주제로 한 여러 작업 중 하나인데, 작가는 오바마를 폴리팝의 아이콘이자 핵심 주제로 채택하였다. 이 작품에서 실제 신장(height)에 맞춰 제작된 오바마 입상(立像)은 턴테이블 위에서 느리게 회전하고, 영상 속 오바마 캐릭터는 미국 드라마를 통해 유명해진 '우가차카 노래에 맞춰 추는 아기춤'을 추고 있다. 우스꽝스러운 캐릭터와 춤동작으로 표현된 오바마는 기념비적 조상(彫像)을 통한 정치적 우상화를 풍자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3개의 화면을 통해 중첩, 분열되는 캐릭터 애니메이션은 팝문화가 재생산, 일상화되는 모습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최종운_수직의 바다 Vertical Sea_ 사운드 시스템, 실커튼, 스프링, 스테인리스 스틸, 모터, 센서_1020×330×50cm_2010~2
최종운(Chongwoon Choi)은 자연적 현상을 소재로 "고요함과 긴장감이 동시에 공존하는 순간들을 찾아 형상화"하는 작업을 한다. 그의 작업은 일상의 아주 작은 움직임에서부터 자연의 거대한 움직임까지, 다양한 움직임을 통해 궁극적으로 인간이 느끼는 고독, 슬픔 그리고 공포를 표현하고자 한다. 「수직의 바다(Vertical Sea)」는 대자연의 신비를 형상화하면서 이를 대면한 인간의 욕망과 경외 등의 감정을 환기시킴으로써 인간과 자연의 관계성을 표현한 작품이다. 벽면에 길게 늘어진 은빛 실 커튼은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밤바다와 같이 적막하고 고요하다. 멀리서 바라보는 이와 같은 풍경은 자연의 경이로움을 대면한 듯 평온하면서도 알 수 없는 긴장감을 유발한다. 작품 앞으로 가까이 다가서면 잔잔히 들려오는 파도소리와 함께 파동이 일기 시작하다가 급기야 굉음을 동반하면서 실 커튼이 크게 요동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다시 잠잠해지면서 한바탕 쓰나미가 휩쓸고 간 후의 충격과도 같이 황폐함과 허무함이 밀려온다. 이처럼 최종운은 시각, 청각, 촉각 등 공감각적인 자극을 통해 감정을 극대화시키며, 관객은 짧은 순간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신정필_것들 Things_나무, 자석, 철_가변 크기_2012
신정필(Jungphil Shin)은 기성 제품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오로지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자신이 만들고 자신만이 그 사용법을 아는 유일한 물건'을 제안한다. '공수래에 물건담기', '부러진 시간접착제', '시간감각 연장', '외로움 증폭장치' 등과 같이 형상, 이름, 기능의 상관관계가 모호한 물건들은 사회 통념으로는 해석될 수 없는 엉뚱한 것들이다. 즉 작가는 사람들이 그것을 언어화하거나 기호화할 수도, 가치를 환산할 수도 없게 만듦으로써 타인이 소유할 수 없는 물건을 만들어낸다. 관객은 바닥에 놓인 그 '것들(things)'을 자신만이 규정한 방법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 거기에 어떠한 이름을 붙이는가 또한 자신 마음대로이다. 신정필의 「것들(Things)」은 관객의 참여를 통해 획일화되지 않은 무수한 물건들로 재생산되고 위치를 옮겨가기도 하면서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변화한다. 이와 같은 작업을 통해 작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의 생산과 소비를 통해 형성되는 지배관계, 그 관계에서 결정되는 사회적 계급과 권력의 문제에 대해 경계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에브리웨어_공중부양하다 Levitate_아크릴봉, 공, 센서 및 전자부_가변크기_2012
에브리웨어(Everyware)는 관객 참여를 유도하는 다양한 미디어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천으로 만든 스크린을 만지면 마치 천에 물감이 번져 염색이 되는 듯한 장면을 연출하는 「적시다(Soak)」, 역시 천으로 만든 스크린에 펼쳐지는 파란 하늘의 구름을 만지면 핑크빛 하늘로 변화하는 「핑크 구름(Cloud Pink)」, 관객이 웹 또는 스마트 앱을 통해 페인트 총알을 구입하면 전시장에 실제로 설치된 기계장치에 장착된 페인트 총알이 발사되면서 드로잉에 참여하게 되는 「크로우드로우(Crowdraw)」 등 흥미로운 인터렉티브 작업을 보여준다. 「공중부양하다(Levitate)」는 에브리웨어가 던지는 '중력'에 대한 뉴미디어적 농담이며, 작가는 중력을 벗어나 달을 탐험하는 시대에 지구에서의 '중력'은 인류의 마지막 굴레일지도 모른다고 피력한다. 작품에 쓰인 "당신의 마음이 공들을 공중에 띄울 수 있습니다(Your mind can levitate the balls)"라는 말은 믿거나 말거나 이지만, 자신의 움직임에 따라 공중부양하는 공들을 보면서 현실에서는 쉽게 인지할 수 없는 초능력의 존재를 떠올리거나 중력을 벗어난 미지의 세계를 상상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한진수_초록 몬스터의 악몽 Daydream of the Green Monster_혼합 재료_60×120×170cm_2013
한진수(Jinsu Han)는 시계처럼 정확하게 움직이는 기계의 메커니즘(mechanism) 가운데 우연성을 개입시킴으로써 기발한 긴장감을 연출한다. 이때 중력과 시간성은 그의 작업에 중요한 키워드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핑크빛 여행(Pink Voyage)」에서는 치밀하게 설계된 톱니바퀴 기계로 버블을 만들어 일정한 속도와 힘으로 허공에 발사한다. 여기까지 과정은 기계가 고장나지 않는 한 지루한 행위의 반복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허공에 발사된 버블은 공기의 흐름, 중력 등 우연한 요소에 의해 어디에 안착할 지 예상할 수 없게 된다. 이렇게 우연성에 실려 간 버블은 벽과 바닥에 핑크빛 색소를 입히며 또 다른 우연성의 산물인 한 점의 드로잉이 된다. 이번 출품작인 「초록 몬스터의 악몽(Daydream of Green Monster)」은 새의 머리를 들어올리는 기계의 힘과 들어올린 머리를 떨어뜨리는 중력의 힘이 맞물려 눈으로 보기에 어색하지 않은 매끄러운 연결동작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처럼 한진수의 작업은 정확성, 반복성으로 규정되는 기계적인 현대인의 삶에 한줄기 청량감을 선사하는 우연성의 효과를 시각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 소마미술관 ---

Neutrality


문왕진展 / MOONWANGJIN / 文王辰 / painting   2013_0207 ▶ 2013_0224 / 월요일 휴관


문왕진_중립적태도_캔버스에 유채_181.8×227.3cm_2013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스페이스 15번지 SPACE 15th 서울 종로구 통의동 25-13번지 #102 Tel. 070.7723.0584 www.space15th.blogspot.kr

스페이스15에서는 2013년 첫 기획전으로 2월 7일부터 2월 24일까지 문왕진의 개인전 『Neutrality』를 개최한다. 작가의 작업은 인위적인 이분법적인 분장이라는 방식을 통해 전과 후라는 시공간적 요소를 동시에 보여주는 방식을 통해 현대 사회의 이중적 태도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제시하고자 한다. ■ 스페이스 15번지
문왕진_역할1_캔버스에 유채_117×91cm_2013
정치적 혹은 인간적으로 수없이 갈라지는 사회에서 "중립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물음에서 작업은 시작되었다. 중립적 입장이란 완벽함과는 다르다. 단순한 관조적 입장이 될 수도 있고 어디에도 속하기 싫은 체계를 거부하는 형태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 속에 나는 태어나서부터 가지는 성(Gender)의 역할 및 이미지를 대비시켜 인위적으로 이분화 시킨다. 그것들은 실제가 아닌 만들어낸 중립적인물이다. 포즈, 남성복과 여성복, 화장과 맨얼굴 등의 소재를 가져와 관습의 경계를 묘사한다.
문왕진_역할2_캔버스에 유채_117×91cm_2013
문왕진_역할3_캔버스에 유채_117×91cm_2013
중립적 인간을 만들기 위한 인위적인 이분법적인 분장을 통해 전과 후라는 시공간적 요소도 포함한다. 이것은 자연스러움과 부자연스러움의 시작과 끝을 보여주는 시공간적인 재현이다. 이렇게 인조적으로 연출된 이미지는 중립이지만 사실상 완전한 중립은 아니며 관습에서 드러난 체계의 거부적 사고 형태의 저항을 말하고 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이것은 들뢰즈의 다수다양체의 부분이기도 하다.
문왕진_포즈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13
내 입장에서의 중립은 없다. 대립되는 두 항의 갈등을 반을 갈라놓아 한 화면에 놓는다고 하여 중립이 되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작품의 주인공인 나는 어느 한쪽의 입장에서 살짝 어긋났을 뿐인 인위적요소이다. 그렇다고 극단적인 다른 한쪽의 입장에서의 반대항 또한 아니다. A 혹은 B가 아닌 A와 B사이의 지정되지 않는 무한적인 다른 것들이다. 결국 보여진 이미지는 중립 자체가 아닌 중립의 욕망이다. 중립은 욕망으로는 존재할 뿐, 실제적으론 존재 할 수 없다.
문왕진_자화상_캔버스에 유채_100×65cm_2013
문왕진_유혹_캔버스에 유채_130.3×89.4cm_2013
이러한 일련의 작업과정을 통해 일상적 평등을 갈구하지만 그럴 수 없는, 한쪽으로 편향되어진, 겉치례만 중립뿐인 현대사회의 모습을 나타내기도 한다. ■ 문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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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작은 이야기


구나나展 / GUNANA / 具나나 / painting  2013_0212 ▶ 2013_0219


구나나_공백_장지, 채색_16×20cm_2012
 

초대일시 / 2013_0213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30am~06:00pm   갤러리 한옥 GALLERY HANOK 서울 종로구 가회동 30-10번지 Tel. +82.2.3673.3426 galleryhanok.blog.me   소소익선(少少益善)의 미학 ● 죽은 새 한 마리, 마른 멸치, 멸치 대가리, 시들어 가는 꽃, 물속에서 겨우 존재하는 수초, 다시 죽은 새 한 마리……. 도대체 이런 사물을, 그러니까 새가 아니라 죽은 새를, 탐스런 꽃이 아니라 시들어 가는 꽃을, 온전한 어류가 아니라 소용을 다한 멸치 대가리를 자신의 회화 소재로 (혹은 미적 기호로) 채택한 작가가 있었던가? 없다. 내 지식 안에 그런 작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 구나나의 회화 소재는 두 가지 점에서 문제적이다. 예외 없이 생명이 부재하거나 최소한 결핍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고, 하나같이 작고, 미약하고, 시시하고, 하찮거나 무가치하다고 여기는 사물이라는 점에서 또 그러하다. 그녀의 미적 소재는 하나의 기호이므로, 다시 말하면 본질이 아니라 형식이므로(한 예로, '의자'라는 낱말을 떠올려 보자. '의자'는 그 자체가 본질이 아니라 '앉음'이라는 본질을 지시하는 하나의 기호이자 형식임을 기억하자.) 우리가 시선을 돌려야 할 곳은 사실은 사물이 아니라 그 사물 안에 비밀스럽게 담아놓은 가치이고 의미이다. 그녀는 왜, 작가라면 대부분 꺼릴 법한 생명이 없는, 게다가 보통의 정서로는 여간해서 관심조차 주기 힘든 변변치 못한 사물을 거듭 작품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일까? 다시 구나나의 작품으로 눈을 돌려보자. 여기, 죽은 새 한 마리가 있다. 참새 같기도 하고, 노랑지빠귀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죽은 게 아니라 잠자는 것 같다. 표정이 한없이 편안하고 어찌 보면 부드러운 정념을 품고 있는 것 같다. 그뿐이 아니다. 한참을 보고 있으면 어린 성자처럼 경건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멸치도 마찬가지다. 통멸치도 인상적이지만 몸뚱이를 잃어버린 멸치 대가리는 처연하게 아름답다. 수초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물속으로 희미하게 스며드는 햇살에 의지해 전 생애를 걸고 존재하는 저 수초는 얼마나 안타깝게 숭고한가?  
구나나_마음_ 순지, 채색_69×116cm_2013
구나나_고요히 드러냄의 참 맛_장지, 채색_25×25cm_2012
  조금 다르게 말하면, 구나나는 식물의 불행과 새와 멸치의 생명 부재를 감추거나 축소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푸른 바다를 헤엄치는 은빛 멸치보다 더 아름답게 빛나는 마른 멸치를, 하늘을 나는 저 새보다 더 평온하고 자유로운 땅의 참새를 그리고 있다. 생명보다 더 아름다운 죽음을, 그리고 충일보다 더 숭고한 결핍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부재와 죽음을 은유하는 하나의 기호에 지나지 않는 사물들을 자신의 무대로 호출하여 유일하면서도 독립적인 존재로 새로 태어나게 하는 것이다.  
구나나_이러하기도 하고 저러하기도 한 날들을 통해 이루어진다._장지, 채색_25×25cm_2012
구나나_공백-1_옻지, 채색_20×30cm_2013
  구나나의 그림은 일종의 주문(呪文)이다. 멸치와 참새에게 선고된 죽음을 걷어내는 주문이고, 난꽃과 수초에게 드리워진 결핍을 긍정하는 작은 의식이다. 동시에 그것은 크고 높고 많고 화려한 것을 필사적으로 추구하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의 세상에게 조용히 제안하는 소소익선(少少益善)의 미학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미지, 즉 시각 언어는 잠재된 것의 현시이다. 이 말을 터 잡아 이야기를 확대하면, 멸치와 죽은 새와 시들어 가는 난꽃과 물속에서 겨우 존재하는 수초가 은유하는 것은 작가 자신일지 모른다. 동시에 그것은 슬프고 고단한 삶을 어렵게 이어가는, 성도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이 땅의 숱한 무명씨일 수도 있다. 구나나의 작업은 그러므로, 이 세상의 가볍고 시시하고 미약하고 부족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존재들에게 보내는 수줍지만 아름다운 헌시이다. ■ 유명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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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시의 시간 Time of The Gypsies


권인숙展 / KWONINSOOK / 權仁淑 / painting.miniature 2013_0213 ▶ 2013_0219


권인숙_집시의 시간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62cm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권인숙 블로그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주말,공휴일_10:00am~05:00pm 한전아트센터 갤러리 KEPCO ARTCENTER GALLERY 서울 서초구 쑥고개길 34 Tel. +82.2.2105.8190~2 www.kepco.co.kr/gallery

놀이에 대한 회상의 연작들에서, 나는 상자 속의 연출된 세계로 들어간다. 난 많은 아이들이 그렇듯 어린 시절엔 장롱 속이나 책상 밑에 들어가 놀기를 좋아했다. 소꿉놀이를 하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듯, 내게 상자 같은 좁은 공간은 최고의 휴식처이자 놀이터이다. 어른이 된 지금도 어찌보면 크게 달라진건 없는 것 같다.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처럼 새로운 세상을 알고 싶다가도 좁은 방안에 틀어박혀 나만의 세계에 갖혀있고 싶은 날이 연결된다. 구체적인 내삶과 일상이 또다른 세계와 꿈에 접목되어 내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지극히 정적이면서도, 세부적으로 동적이다. 기억으로서의 사물들과 추억으로서의 공간은 미로처럼 이어지며 그것은 팀버튼의 영화처럼 환타지하고 동화같은 작업으로 연결되길 소망해본다.
권인숙_집시의 시간 VI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62cm_2013
권인숙_집시의 시간 V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89×130cm_2013
신비스럽거나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데 조명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미니어쳐 작업에서는 자연 조명을 차단하고 최대한 자체 조명만을 설치해 놓는다. 이번 미니어쳐 작업은 그와는 달리 조명을 하지않고 황량함마저 감도는 분위기의 공간을 만들려고 했다. 사적이고 비밀스럽거나 은밀한 장소를 상자 속에 담아 역으로 노출시키는 방법으로 내 주변 공간을 새로운 무대 위에 올린다. 그 무대가 놓여지는 화면안에는 정체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모순적인 충동이 나타나는데 작고 안락하며 고독한 곳을 원하는 욕구 뿐 아니라 낯선 여행지나 술집에서의 상호작용을 원하는 욕구도 존재한다. 보헤미안의 샌프란시스코(원제: Writer's San Francisco)란 책에서는 이런 것을 다락방 욕구와 카페 욕구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욕구들이 충돌하면서 보는 이들을 천진스런 상상 속으로 데리고 가 그 곳에서 이런저런 꿈을 꾸어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나의 작은 무대는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닮은 환상이다.
권인숙_집시의 시간 III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130×162cm_2012
권인숙_집시의 시간 IV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90.5×72.5cm_2012
내게 특별한 장소가 미니어쳐로 제작되고 다시 그것이 평면에 펼쳐진 낯선 풍경속으로 들어가면서 서로 다른 공간과 공간 또 내가 그안에서 만나는 것이다. 또한 먼저 그려진 그림들이 뒤늦게 그려지는 작품 속에 언뜻언뜻 보이면서 시간의 흐름이 드러난다. 어제의 작업이 오늘 그림 속 배경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앙증맞게 드러나는 이전 작업들이 모든 작업에서 연결고리가 되어 끝없이 나타나고 있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시간이 교차하는 그 곳은 그저 바라보는 대상에서 벗어나 생각의 움직임을 유발하는 연극적 공간이다. 그곳이 낯익은 공간이든 낯선 공간이든 작은 무대가 되어 그 곳에서 벌어질 이야기들을 상상하게 한다. 사람이 없는 텅 빈 공간을 응시하다 보면 공간에 대한 상상력과 사고의 움직임이 생긴다. 그 안에서 지금 막 무슨 일이 일어났었고 또 앞으로 무슨 일이 생겨날지 추측해 볼 수도 있다. 자유를 갈망하는 어른이 된 내가 만들어내는 기억과 추억으로서의 세상. ■ 권인숙
권인숙_집시의 시간 II_혼합재료 미니어처_30×89.5×26cm_2012
권인숙_집시의 시간 II -1_혼합재료 미니어처_23×31×16cm_2011
In my series of reflection on play, ---

Illusion a.m 4:17


최수정展 / CHOISOOJUNG / 崔秀晶 / photography 2013_0213 ▶ 2013_0226


최수정_Illusion a.m. 5:13_디지털 사진 콜라주, UV 잉크젯 프린트_170×130cm_2012
초대일시 / 2013_0213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2월26일_10:00am~12:00pm 갤러리나우 GALLERYNOW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2-13번지 3층 Tel. +82.2.725.2930 www.gallery-now.com

보이지 않는 공간, 볼 수 없는 공간의 에너지 ●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닿을 수 없는 저 깊숙한 곳의 공간. 그 공간 속에 여타의 것을 의식하지 않고 있는 생명체가 있다. 어떠한 영향도, 어떠한 시선도 받지 않고 자란 또 하나의 생명체.. 자연, 우주, 우리는 그들을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들은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공간 속에서 끊임없는 생명력으로 피어나고 있다.
최수정_karmaⅣ_디지털 사진 콜라주, UV 잉크젯 프린트_175×138cm_2011
최수정_夢中夢_디지털 사진 콜라주, UV 잉크젯 프린트_138×264cm_2011
본인의 작업은 사진이라는 실제 이미지들의 새로운 조합을 통하여 현실 속 자연 그리고 우리의 의식 속 익숙한 공간을 또 다른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제3의 공간으로 재탄생시킨다. 그것은 비현실적이고 익숙지 않은 무질서 속에서 오히려 자연의 질서가 관찰되는 아이러니의 공간이다. 본인은 이렇게 환영과 현실의 간극을 열어두고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자유로운 상호작용과 해석의 가능성을 존중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미지들로 공간을 채움으로써 현실 속 관객들은 물리적 한계를 넘어 인식의 확장을 통하여 현실과 환영을 구분할 수 없는 체험을 하게 된다.
최수정_karma_디지털 사진 콜라주, UV 잉크젯 프린트_203×137cm_2012
사계 적시에 맞는 화려한 색을 입은 산과, 그 깊은 곳에서 고요히 뿌리내린 나무들, 저마다의 울림과 생명력을 가진 폭포수, 그리고 연약해 보이지만 아름다운 뿔과 깊고 반짝이는 눈을 가진 사슴들이 화면 안에 살고 있다. 어디인지 알 수 없으며, 존재하지 않는 듯 한 자연의 형상과 시공간을 넘나드는 오브제들을 한 화면 안에 구성함으로써 시공간을 확장시키고 나아가 현재의 정체성을 탐구해보고자 한다. 이때 본인은 가장 보편적이고 익숙한 시각적 이미지를 재현하는 사진이라는 매체를 사용하였다. 그런데 언뜻 보이지 않는 공간, 비현실적인 자연의 구조가 주된 이야기가 되는 작품에 사진이라는 매체의 선택은 모순적인 듯 보인다.
최수정_inner_디지털 사진 콜라주, UV 잉크젯 프린트_162×138cm_2011
대중들에게 친숙한 사진이라는 매체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그들 앞에 서게 되고, 그 모순과 역설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해석의 범위는 확장된다. 사진 이미지의 사실성에 대한 높은 신뢰도는 작품의 한 요소가 되어 작품 해석에 아이러니를 불러일으켜 역설적 표현의 자유로움을 극대화 할 수 있다. 결국 사진이 담고 있는 현실과, 사진이 표현하고 있는 제 3의 공간 사이의 간극은 본인의 표현의 도구이며 그 두 요소와 관객이 서로 마주했을 때 관계의 그물은 더욱 정의 될 수 없는 모습으로 공간을 채우게 된다. ■ 최수정 ---

Mixed


강이연展 / KANGYIYUN / 康利姸 / video.installation 2013_0213 ▶ 2013_0303 / 월요일 휴관


강이연_Scene09_애니메이션_00:05:00_2013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강이연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3_0213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_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공근혜갤러리 GALLERY K.O.N.G 서울 종로구 삼청동 157-78번지 Tel. +82.2.738.7776 www.gallerykong.com

이번 개인전『Mixed』에서 강이연은 지금까지 주로 다루어 오던 영상 설치와 함께 그간 작업해 오던 애니메이션 작업인「Scene」series를 함께 선보인다. 작가가 지속적으로 탐구해오던 현실과 가상, 일루전과 진실, 물질과 비물질 간의 경계에 대한 질문은 이번 전시에서도 이어진다. 작가에게 디지털은 형식이자 내용이고, 매체이자 질료이다. 이 필수불가결한 조건을 다루는 데 있어 작가가 특히 주목하고 있는 것은 기존의 이분법을 향한 의문이다. 비트의 조합들로 이루어진 데이터 덩어리는 작가의 작업에서 물질과 비물질 사이를 넘나들고,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서 긴장감을 유발하며, 관객의 지각을 자극한다. 이를 통해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단순한 이분법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다.
강이연_Scene12_애니메이션_00:05:20_2013
「Scene」series의 배경은 일견 친숙하다. 평범하다 할 수 있는 이 장소에서 어떠한 현상들이 벌어지고, 이내 사라진다. 이로 인하여 낯익은 공간과 사물은 더 이상 익숙하지 않게 느껴지고, 과장된 카메라의 시선과 움직임 등을 통해서 기이한 긴장감은 극대화 된다. 완전히 컴퓨터 렌더링을 통해 제작된 이 영상들은 디지털 지배적인 문화 속에서 우리는 이미 혼재(mixed)된 현실에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질문을 던진다.
강이연_At the Corner_영상설치_가변크기_2013
강이연_fragile03_디지털 프린트_70×120cm_2013
「Fragile」series는 대상의 부재상태가 주는 역설적인 존재감을 시각화한다. 기억의 편린처럼 조각조각 난 채로 가구 위에 흔적을 남긴 신체적 파편들은, 화석같이 단단해 보이지만 완전히 컴퓨터 안에서 만들어져 실체가 없다. 누구나 한 번쯤은 마음 속으로 그려보았을 법한 이 장면들은 물질적으로 데이터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염(念)이 만들어낸 대상들은 그 자체로 존재하며 부재하고, 단단해 보이지만, 실은 너무나도 부서지기 쉬운 모순을 내재한다. ●「At the Corner」는 영상설치 작업이다. 이 장소 특정적인 설치작업은 비디오 프로젝션을 통해 디지털 매체의 물질성을 끊임없이 탐구하는 작가의 작업의 연장선에 놓여있다. 프로젝션은 한 겹의 빛에 불과하지만, 작가는 그것이 공간과 결합되면서 생겨나는 지각적, 심리적 증폭에 초점을 맞춘다.
강이연_fragile05_디지털 프린트_70×120cm_2013
강이연_fragile01 : drawing_디지털 프린트_38×50cm_2013
강이연 작업의 특징은 컴퓨터와 디지털 프로세스의 기술적인 정교함에 회화적 섬세함을 더해, 차가운 느낌의 디지털 아트에서 볼 수 없었던 시적이고 서정적인 감수성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작가에게 디지털 매체는 단순한 표현의 수단이 아니라 기존의 프레임에 대한 재해석과 넘나듦을 위한 도구이다. ■ 강정원 ---

NeoForum 2013


기억의 겹 The Layers of Memory展 2013_0213 ▶ 2013_0324 / 월요일,설날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 신승연_정경희_진현미 주최,기획 / 성북문화재단_성북구립미술관 관람료 / 성인 1,000원 / 학생(초,중,고) 무료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설날 휴관 관람 종료시간 30분 전까지 입장 가능 성북구립미술관 SEONGBUK MUSEUM OF ART 서울 성북구 성북동 246번지(성북로 134) Tel. +82.2.6925.5011 sma.sbculture.or.kr

The Layers of Memory –기억의 겹 ● 기억의 한 단상을 재현해낸다. 잠자리 날개처럼 무수히 많은 생각의 맥이 펼쳐지거나 아련한 기억을 더듬어 풀어낸 상상의 산등성이를 현시(顯示)하거나 소소한 일상의 풍경으로부터 촉발되는 담담한 위로의 감정들을 꺼내 보인다. 자신이 기억하고 싶고, 또 생각하는 것들로 변형되어 공간에 형상화된다. 중요한 것은 그 풍경들을 완전히 재현해내는 기억의 복원이 아니라, 경험을 통한 강렬한 감동을 오롯이 자신의 시선으로 꺼내 보이고픈 욕구이다. 따라서 기억 속의 풍경들은 각기 다 다를 수밖에 없고 그 형태 또한 추상화된다. 가장 단순하고 본질적인 것만 남고 불필요한 것들은 사라진 존재들의 현현(顯現)이 기억 속에 켜켜이 쌓여 겹을 이루어낸다. ●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의 장편소설《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는 일인칭 화자인 '나'가 인생과 사랑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나가면서 경험하는 의식의 힘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들렌느 과자가 불러일으킨 환희는 무의식 속에 침전된 채 오랜 과거 속으로 사라져버린 '잃어버린 시간'을 소환하여 실재 시・공속에 풀어놓는다. 소설 속에 나타나듯, 기억들은 순차적이거나 논리적이지 않고 모순투성일 뿐만 아니라 제멋대로 겹쳐져 층위를 이룬다. 벨터 벤야민Walter Benjamin에 의하면 프루스트의 기억 작업은 실제로 존재한 삶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체험한 자의 기억을 그려낸 것으로, 망각이라는 기억의 저장고 속에서 불현듯 꺼내 오는 작업이다. (발터 벤야민, 『서사(敍事), 기억, 비평의 자리』, 최성만 역, 도서출판 길, 2012, p.236.) 따라서 기억이란 사실 여부라기보다 서로 어우러지면서 조합과 재편을 이루는 과정이고 또한 무수히 번식해나가는 상상력과 창조의 작업에 다름 아니다.
정경희_another memory_캔버스에 유채, 목탄, 연필_130×242cm_2008
정경희_dreaming_캔버스에 유채, 목탄, 연필_91×60.5cm_2012
정경희_기억이 자라다_캔버스에 유채, 목탄, 연필_162×130cm_2011
기억을 통해 상기되는 경험들은 대체로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상상력의 작용과 스토리의 개입을 허락함으로써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부여받는다. 정경희는 '사과', '물고기', '산양 뿔' 등이 지니는 관념적인 의미화에 대한 거부로 그림자 작업을 시작했다. 같은 이유로 그의 작품 대부분에는 표정을 식별할 수 있는 눈을 비롯하여 얼굴의 형상이 지워져 있다. ● 벤야민이 이야기했듯이 대부분의 기억들은 얼굴의 이미지들로 우리 앞에 나타나는데, 따라서 화면 속 대상은 특정 기억을 연상시키기보다는 상상과 인식의 가변성이라는 기억의 속성에 주목하게 한다. 목탄과 연필 등 기본적인 재료들은 그림자가 지닌 어둠 이면의 확장된 가능성을 표현하기 위한 매체로서, 작가는 목탄을 이용해 큰 형상을 그린 후 뿔이나 발끝에서 뻗어나가는 잠자리의 날개를 연필로 세밀하게 그려나간다. 섬세하고도 거친 재료인 목탄은 '손'의 자취를 캔버스 위에 남기고 천천히 쌓인 흔적들은 마치 기억처럼 순간에서 과거가 되어버린다. 잠자리의 날개를 표현하는 세밀한 연필 드로잉은 기억의 심원으로부터 기원하여 현재, 미래로 이어져나간다. 가냘프고 연약하지만 고도의 비행능력을 지닌 잠자리의 날개에서 예술 작업과의 유사성을 발견한 작가는 무수히 많은 선들이 집요하게 뻗어있는 맥(脈)들을 통해 기억과 상상력이 시간의 흐름 안에서 점차 뻗어나가고 확장되어가는 과정을 형상화한다.
진현미_겹-0103_투명 필름, 한지, 먹_400×320×300cm, 가변설치_2012_부분
진현미_겹-0103_투명 필름, 한지, 먹_400×320×300cm, 가변설치_2012
진현미_겹-0318, 겹-0319_아크릴, 한지, 먹_각 20×30×18cm_2012
진현미는 동양화의 주요 소재인 산수를 표현하지만 3차원의 실제 공간에 대한 관심과 그에 따른 시간성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전통의 현대적 해석을 실천하고 있다. 제주도 여행에서 검은 돌이 펼쳐진 풍경을 보고 깊이 감동 받았던 개인적 기억은 작업의 주요 모티브가 되어 검은색의 실루엣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산수로 재탄생했다. 그는 한지에 농묵을 우려내어 투명한 필름에 붙여낸 후 일정한 간격으로 이어 달아 반복적인 겹 구조를 이루며 입체 산수를 완성한다. 전통 수묵화의 특징인 먹의 농담 속 다양한 색과 무한한 표현의 가능성은 3차원의 공간 안에서 실제 공기를 사이에 두어 공기원근법을 표현하는 것으로 대체된다. 일루젼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실제 시·공의 경험에 따른 형상의 변화를 체험하게 하는 것이다. 크라우스Rosalind Krauss가 지적한 바와 같이 현대 조각이 공간예술에서 더 나아가 실제 시간의 지속을 중요한 축으로서 지향하게 되었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그의 설치 작품인 「The Layer」시리즈가 단순히 낱장의 겹으로 이루어진 산수의 재현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관람객들은 공간 속에 펼쳐진 겹의 사이사이를 직접 거닐면서 작가 개인의 기억을 자신의 것으로 포용함과 아울러 실제 공간에서의 체험을 통해 기억 속 경험을 다시 현재의 것으로 대체한다. 걸음의 속도와 시야의 각도, 빛의 위치에 따라 작품은 개별적으로 인지되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관람객들은 시각에만 의존해왔던 인식의 한계와 가변성에 대해 재고하게 된다.
신승연_cloud_깃털, 진동모터, 에나멜선, 마이크로컨트롤러, 파워서플라이_설치_2012_부분
신승연_cloud_깃털, 진동모터, 에나멜선, 마이크로컨트롤러, 파워서플라이_설치_2012
신승연_waving mirrors_ 슈퍼미러, stell, 알루미늄 스프링, 아크릴 패널, 모터 장치, 마이크로컨트롤러, 파워서플라이_설치_2012
신승연은 시카고 유학시절 미시간 호수의 잔잔한 물결을 보고 영감을 얻어, 기억 속 호수와 하늘, 구름의 섬세한 변화를 기계적 장치로 구현한다. 그의 작품은 가시적인 형상의 재현 대신 그 경험과 의미를 상기시키는 요소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호수와 구름뿐만 아니라 그 주위를 둘러싼 공기와 바람, 햇살, 그리고 그것을 감상하는 인간의 움직임 등 자연의 거대한 유기적 흐름을 일구어낸 무형의 상호 작용과 관계성의 의미에 주목하는 것이다. 흐르는 시간과 그에 따른 기억의 중첩으로 인해 재현된 공간 속 풍경들은 그가 경험했던 과거와도 다른, 새롭고 낯선 상상의 풍경을 연출한다. 「Waving Mirrors」(2012)에서 거울에 반사되는 무수히 많은 상들의 움직임은 가변적인 실루엣의 형상을 보여준다. 빛의 단위들을 통해 물결과 빛, 흔들리는 바람을 표현하며 관람객들로 하여금 유사한 감동을 체험토록 하는 것이다. 부유하는 상들은 따라서 불안정한 상태로 섞이는 것에 유연해지는 자연의 본질을 의미하는 동시에 자연과 인간, 관객과 작가 사이의 상호 관계성을 상기시킨다. 느리게 변화하는 자연의 움직임을 가시화하기 위해 테크놀로지와 온라인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역발상의 접근은 오히려 서정적이고 섬세한 감각을 증폭시키는 기제로 활용된다. ● 대형 설치작업을 비롯해 총 3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에는 앞서 본 세 명의 작가들이 직접 경험한 기억과 사색의 편린들이 담겨 있다. 매 순간 흘러버린 현재의 시간은 과거로 켜켜이 쌓여가고, 시간의 방 안에서 재구성되고 확장된 기억은 자신들만의 이야기로 탄생한다. 작가는 바로 그 기억이 새겨진 시간을 캔버스 화면 위로, 하얀 공간 속으로, 그리하여 우리의 눈앞으로 묵묵히 옮긴다. '기억'이라는 내밀한 주제에서 촉발된 상상력과 서사의 세계를 통해 관람객들이 마음의 위로와 감동을 경험하게 되길 기대한다. ■ 이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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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웃으면 안 되는데






맨씨어터 워크샵 공연 2013_0214 ▶ 2013_0217







공연일시 / 2013_0214 ▶ 2013_0217_08:00pm

출연 / 황영희_우현주_서정연 정수영_이창훈_이한수리_제정경 미디어 아트 / 이예승 음악 / 조동희

제작 / 맨씨어터

공연문의 / 02.3443.2327 010.6242.8817 최효정

살롱 드 에이치 Salon de H 서울 강남구 청담동 31-2번지 신관 1,2층 Tel. +82.2.546.0853 www.salondeh.com




배우란, 분장을 하고,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으며 작가가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을 연기하는 존재이다. 울고, 웃고, 수치심을 느끼거나, 분노하며, 옷을 벗기도 하지만 그 모든 것은 그 가상의 인물, 즉 캐릭터, 라는 안전 장치 속에서 이루어진다. 관객들은 그 모든 것이 허구임을 알면서도 배우의 연기에 몰입하며 감정 이입을 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좀 더 직접적으로, 맨 얼굴로 관객들을 만날 수는 없을까? ● 극단의 이름,「맨씨어터」는, 사람(Man)의 의미를 갖고 있기도 하지만, 순수 우리 말인 맨 얼굴, 맨 손의 그 "맨"이라는 뜻이다. 그렇게 "맨 얼굴로 관객들을, 배우들의 자전적 이야기를 가지고, 보다 직접적인 감정적 교류를 하고 싶다"는 의도로 이 워크샵 공연『처음』을 기획하게 되었다.
이예승_CAVE into the cave Episode 02_오르골, 스크린, 렌즈, 고철, 플라스틱용기, 미니어쳐, 인터랙티브 미디어 설치_가변설치_2013

작업의 과정은 이렇다. 우리가 살면서『처음』겪었던 일들- 쉽게 첫사랑, 첫 키스에서부터 처음으로 감행했던 배신, 처음으로 맞닥뜨린 병이나 죽음, 얼굴 한 번 본 적 없던 아버지를 그의 장례식에서 만나면서 알게 된 가정사, 처음 당한 사기와 그로 인한 도둑질... 그리고 배우로 살면서 겪을 수 밖에 없는 일들을 참여하는 구성원들이 모두 모여 기탄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서 시작했다. 그 과정이 제일 길었다. ● 이야기들을 모아 재 구성을 하고, 연기할 사람들을 정해서 옴니버스 스타일 연극의 모습을 갖추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이며, 배우들이 추구하는 연기도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이기를 바랬다. 마치 알코올 중독자 모임같이 서로 얘기를 공유하면서 함께 아파하고 웃으면서. 때로 수치심에 못 이긴 배우가 꼭 이 얘기까지 해야 하느냐, 는 질문을 던진 적도 있고, 어디까지가 힐링이고 어디까지가 스스로 고통에 빠뜨리는 일인지 혼란스러워 하기도 했다. 그러나 계속 가 보기로 했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안전장치 없이 직접적으로 던지고, 관객들에게도 직접적인 질문과 위안이 닿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예승_CAVE into the cave Episode 02_오르골, 스크린, 렌즈, 고철, 플라스틱용기, 미니어쳐, 인터랙티브 미디어 설치_가변설치_2013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관객들 앞에서 연기하게 될 이 워크샵이 실제 중독자 모임이나 토크쇼처럼 비쳐져서는 안 되고 하나의 예술적 틀 안에 있어야 한다. 음악적 부분은 가수 조동희의 노래로, 미술적 부분은 작가 이예승의 미디어 아트로 완성하려 한다. 보통 연극 안에서의 미술과 음악은 연극이라는 상위 장르를 보완하는 부분적 형태로 존재하지만, 이 작품 안에서는 독자적인 장르로서 존재하기 바란다. 다시 말해서, 비록 시간적으로는 연극의 분량이 많다고 해도, 아티스트 이예승이나 조동희의 미술과 음악의 일부분으로서 텍스트가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두 아티스트는 장르도 완전히 다르고 일면식도 없지만, 그들의 작품을 경험할 때 강렬한 노스탤지어를 발생시킨다는 공통점이 있다. 인생에 대한 따뜻한 시선도 마찬가지다. 이것이『처음』이라는 작품이 가고자 하는 방향이고, 궁극적으로 관객들이 극장(이번 경우는 갤러리지만)을 나설 때 가지고 돌아가길 바라는 정서이다. 그리고 배우들은 그 안에서, 맨 몸으로 광장에 서서 자기 이야기를 까발리는 듯한 불안감을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이예승_CAVE into the cave Episode 02_오르골, 스크린, 렌즈, 고철, 플라스틱용기, 미니어쳐, 인터랙티브 미디어 설치_가변설치_2013

이 모든 것이 새로운 시도였고, 때문에 많이 헤매기도 했다. 하지만 2월 14일부터 4일간의 공연이 종착점은 아니다. 새로운 시도, 새로운 콜라보레이션,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작품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과 관객들의 스펙트럼이 넓어지길 기대하며, 정식 공연으로 가는 중간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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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신새김






2013 Neo-Inscription展 2013_0214 ▶ 2013_0228 / 일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3_0214_목요일_05:00pm

아트스페이스 에이치 공모작가展

참여작가 김춘재_민송아_박국진_박명희_유진숙 음정수_이경하_이현희_최어령_하이경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요일 휴관

아트스페이스 에이치 ARTSPACE H 서울 종로구 원서동 157-1번지 Tel. +82.2.766.5000 www.artspaceh.com






작가육성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개최한 아트스페이스 에이치 공모전, 신새김 展 (Neo-Inscription) 총 10명의 작가들과 아트스페이스 에이치는 미술계의 고착화된 틀이나 관념에서 벗어나, 새롭고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자 한다. ■ 아트스페이스 에이치

김춘재_Coast_캔버스에 유채_87.5×350cm_2012

김춘재의 작업은 당대 현실에 대한 적극적 관심과 반응이고 표현이다. 더 이상 그는 상투적 주제와 표현의 전통에 머물지 못한다. 동양적 사유의 전통과 서구적 문명과 사회비평의 태도가 합류한다. 작가 역시 조형적 효과보다는 겉으로 드러난 현상의 이면에 존재하는 숨은 의미나 사실을 표현하고자 몽타주나 소격효과를 지향한다. 그러니 작가의 주제와 이미지들은 조형의 문제에서 출발하였으나 조형을 벗어나 사람이 살아가는 문제의 근원을 향한다. 생의 반성이나 사색이 곧 이미지들의 운동이 된다. 그리고 이미지들은 무한의 사물과 이미지들의 갈래를 거치면서 하나의 장소로 모여, 앞서 보아온 영혼의 황무지로서 도시와 도시적 삶의 길은 어디로 향하는지 묻고 있다. ■ 김춘재
민송아_Living / Snowy Owl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6×90.9cm_2012 박국진_Redball_혼합재료_100×73×85cm_2012

자연은 늘 우리와 함께하기에... 우리는 그 소중함을 때로는 잊을 때가 많다.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것, 사랑스러운 것, 긍정적인 것.... 이번 작업은 늘 불안하고 초조했던 내 자신을 위한 수양의 시간이기도 했다. 이번 작품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연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일반적으로 식재료라는 생각으로 대량 재배 유통해, 그 아름다움에 대해 특별히 생각해보지 않게 되는 "파", "배추", "무", "양파", "호박"....등을 작품의 주인공으로 내세워, 색채라는 새로운 옷을 입히며, 마치 평범한 여자를 신데렐라로 변신시키는 듯한 기분으로 작업하였다. 너무 흔해서 지나치게 되는 우리의 고귀한 자연물들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느껴볼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 민송아 일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와 '현상'들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그것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으로부터 형상은 시작되었다. 사실, 그러한 근원적인 문제들을 마주할 때마다 본질은 무엇인지, 무엇이 먼저인지 또는 순환의 고리라는 고루한 사고마저 형상화하는 것, 이러한 일련의 총체적인 '물음'에서 형상은 구체화 되었다. 구체적인 형상의 접근 방식은 디스토피아(dystopia)적인 세계관에서 바라보는 유토피아(utopia)적 세상을 발견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나의 근원적 사고에서 바라보는 디스토피아의 어두운 사회는 부정적 측면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유토피아의 세상, 즉 파라다이스를 꿈꾸는 완벽한 사회를 말하는 것 또한 아니며,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세상 혹은 이상한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 박국진
박명희_The story that has not finished_대리석_30×30×17cm_2012 유진숙_일단 살자_캔버스에 연탄재, 아크릴채색_91×116.8cm_2011

모든 생물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바로 그것이 이작업의 출발점이다. 인연이라는 고리와 고리 속에서 나아닌 다른 누군가와 소통하며 살아가는것, 그것은 우리가 살아감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함께 나눌수 있는 기쁨과 행복, 그리고 사소한 싸움과 단절. 어쩌면 이 모든것들은 더 나은 인연과 더 커다란 영향력을 주고 받기 위함이 아닐까? ■ 박명희 다 타서 재가 되어버린 연탄재가 아크릴 물감과 어우러지는 효과로 "사람의 이야기"를 그린다. 세상의 무의식과 오류들, 인간의 사랑, 욕망, 소외와 연민, 충만관 빈곤등의 목격은 희극같은 설정의 과정과 감정의 몰입의 과정을 거쳐 그림으로 그려지게 되었다. 다소 무겁고 어두운 내용의 그림들이 전반을 이루지만, 마치 다 타버린 연탄재가 여러 가지 이야기들과 의미들을 거쳐 작품으로 새 생명을 얻듯이, 절망 끝에서 희망을 갈망하고 소멸 뒤에도 재탄생의 꿈과 여지를 내어 주고픈게 제 그림 이야기속의 주된 관건이다. ■ 유진숙
음정수_Sailing_에폭시, ladol, model ship, 알루미늄_134×122×15cm_2012

pix-cell 이라는 육면체 큐브 안에는 복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주위와의 영향들을 담아내고 있는데 그 요소들은 스스로가 느끼는 지극히 감성적이고 주관적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육면체 큐브는 지독하리만큼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에 대한 반영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육면체 내부의 채움의 정도는 이성적 논리에 따라 숨막힐 듯한 감성의 호소라 볼 수 있다. 즉, 감성과 이성의 대립구조를 pix-cell 이라는 요소 안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면서 이들의 합으로 이루어지는 결과물을 통해 현재 이 순간을 살아가는 나와 우리는 각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를 생각해 본다. ■ 음정수
이경하_부표들_캔버스에 유채, 목탄_100×100cm_2012 이현희_가장의 공간_캔버스에 유채_130.3×193cm_2012

본인의 작품은 거대한 자연을 배경으로 하며 인물들의 꽤나 구체적인 행위를 하고 있기 때문에 서사적인 구조나 문학적 스토리를 만들어 넣기에 적절한 편이라고 생각하다. 작품 안에서 무채색의 자연 위에 원색적인 색채가 주는 대비와 인간과 자연의 크기에 대한 대비로 인해 인간의 태생적인 나약함이나 보잘것없음이 더욱 강조된다. 인간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겪는 이야기로 극을 만든 것을 희극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태생적인 '작음', '약함'을 보여주며 해학적인 요소를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지금의 본인의 작업계획이다. 우리의 일상이 수없이 이상과 현실이 맞아 떨어지지 않는 순간들의 연속이며, 태풍을 예보하는 뉴스를 보면서 다음날 출근길을 걱정하는 직장인의 그것처럼 블랙코메디이기 때문이다. ■ 이경하 어릴 적 이불을 가지고 만든 천막이 처음 획득한 나의 공간이었다. 이 비밀공간은 작은 손길에 바로 허물어질 정도로 부실했지만 천을 펼치기만 하면 견고한 성이 되기도 하고 미지의 동굴이 되기도 했다. 설치의 용이함과 이동의 편리함이 장점인 보물이었다. 성장과 동시에 펼치기 보다는 정리가 익숙해졌다. 정확히 말하면 익숙하기보다는 그래야 한다는 요구를 받게 되었다. "여자애 방이 이게 뭐니!"라는 핀잔과 함께 창조의 도구였던 천 조각들은 치부(恥部)가 되어버렸다. 내 작업은 감춰지고 내면화된 치부를 표출하며 출발한다. 활짝 걷혀진 장막과 열린 서랍, 옷장에서 흘러나온 천 조각들은 유년시절의 창조적인 비밀공간을 재현한다. 가장의 공간은 이상과 현실, 과거와 현재의 파편들로 어질러진 공간이다. 어린 시절 만들고 놀던 '아지트'인 천막에서 나와 마주한 다양한 감정을 소스로 내적 욕구를 드러내고 아이러니한 현실상황을 마주한다. 이러한 풍경은 일종의 성장통으로 끊임없이 재생산되며 변모한다. ■ 이현희
최어령_Peebles St._캔버스에 유채_30.5×61cm×2_2012

나의 그림은 일상적 오브제의 현상학적 해석으로부터 비롯된다. 사람들은 그들의 일상적 행동, 주변 공간, 물건들에 대해 의식적으로 인식하며 살아가지는 않는다. 그러나 짧은 여행이 아닌, 다른 곳에 속하게 되어버리는 이주와 같은 단조로운 일상의 변화, 혹은 그런 공간이동을 통한 시각적, 심리적 변화는 나에게 새로운 관심을 끌어내며, 익숙함을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일상의 반복으로 인해 무의식 속에서 당연하게 내제되어 있는 것들이 의식의 수면위로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낯설게 익숙해져 버린 대상들을 표현하기 위해, 그들의 시각적 요소뿐 아니라, 하루하루가 축적된 일상 속에서 그들과 함께하고 관찰하며, 그 경험을 토대로 그들의 존재감 혹은 물리적 에너지마저 심사 숙고하여 진솔하게 그림에 담아낸다. 그 대상을 손상시키지 않으려 노력하며, 그대로의 본질적 모습을 모든 감각, 심리적 감정을 통해 구체화 시키는 것이다. ■ 최어령
하이경_돌아가는 길(Way back)_캔버스에 유채_120×120cm_2012

하루면 서너 번은 보는 거리와 풍경, 낯익은 건물, 술 한 잔 건네는 오후의 선술집...모든 것이 분명하고 때론 맘이 아리도록 새롭다. 우연한 통로를 매개로 달이 한 개인 세상과 두 개인 세상을 동시에 오가게 된다는 소설의 가상 세계처럼...동일한 시간과 공간을 살면서도, 극과 극의 감정으로 살아 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같은 일이라도 마음먹기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내 자신이 지극한 낙천론자이거나 비관론자이거나... 그 어느 편도 아니다. 다만 세상을 좀 더 무심한 시선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믿는다. 일상 속에서 비쳐지는 이러한 낯익으나 새로운 전경들, 그 속에서 느끼는 심정을 이미지화 한다. 보여 지는 부분의 감흥은 보는 이의 몫이겠으나, 이미지화 하는 과정에서의 느낌과 경험은 온전한 나의 몫이다. 눈에 뜨이고-느끼고-추억하고-가정하고-상상하고-즐기고-아파하고-위로하는 과정을 통해 구체화 된 이미지는 올곧이 내가 선택한 결과물이다. 이미지는 관찰자의 그 것과 같이 무덤덤하게 서술하되, 그 이미지를 선택하게 된 과정과 의미에 집중한다. 간혹 의도치 않게 드러나는 감정의 편린들은 개의치 않는다. 이 부분은 보는 이의 몫이라 떠넘기면 그 뿐 이다. ■ 하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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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를 위한 무대




Turning the Stage Upside-Down展 2013_0215 ▶ 2013_0316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3_0215_금요일_05:00pm

참여작가 / 강민숙_유화수_이완

기획 / 김사랑_김태현_인사미술공간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인사미술공간 Insa Art Space of the Arts Council Korea 서울 종로구 창덕궁길 89(원서동 90번지) Tel. +82.2.760.4722 www.arkoartcenter.or.kr cafe.naver.com/insaartspace



『( )를 위한 무대』는 2012 아르코 신진기획자 워크숍에 참가자였던 김사랑과 김태현, 그리고 인사미술공간의 협업으로 마련되었다. 이번 전시의 두 기획자는 '전시기획'이라는 과정을 시작하면서, 한마디로 정의하기 까다로운 기획과 창작의 실체에 대한 의문, 바로 그 지점에서 이번 프로젝트의 출발점을 찾았다. 난해한 이론과 담론을 통한 판정보다 질문을 촉발하는 상황의 연속을 지향하고자 하였고, 이것을 실행하는 몇 가지 방법 중, 큐레이팅과 창작이 이루어지는(이루어진다고 여겨지는) 큐레이터의 사무공간과 전시장을 뒤섞고, 흔들어보는 것을 제안하였다. 즉,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장소인 인미공의 위층 사무실과 아래층 전시장의 사물과 역할을 뒤집어 보고 엎어보는 방식으로 단발적인 상황들을 연출하고 체험함으로써 전시기획의 실체를 찾아보기로 한 것이다. ● 여기에 소개하는 '( )'의 개념은 결국 쉽게 공언되기 어려운 창작 혹은 큐레이팅의 실체, 나아가 예술가의 직관적인 태도와 자유로운 주체적 움직임을 강조하여 열린 창작의 가능성을 시도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의 다름 아니다. 실험적 형식의 설치와 공간 연출, 의미 생산 등의 전 과정을 공유하고 만들어가는 이러한 수행적인 과정은 기획자와 작가의 직관적이고 즉흥적인 태도와 다양한 방식을 관객 각자가 수용하는 것에 의해 보충되고 덧씌워져 완성되어간다. 강민숙, 유화수, 이완에 의해 배우로 선택된 익숙한 오브제와 관계적 상황을 통해 드러나는 생경함과 불안정함, 창작물의 제작 과정에 대한 권한과 실행에 대한 돌아보기는 이번 프로젝트의 주요 요소이다. 창작의 실마리를 추적하는 각각의 과정들은 단지 하나의 잠재된 가능성일 뿐이며, 우리의 시도들은 하나의 보류된 단서들로 인미공에 남아있다.
( )를 위한 무대展_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인사미술공간_2013

우리는 우리의 전시가 기존 전시 서문에서 나타나는 일방적인 정의와 자기변호라는 혐의를 답습하지 않기를 바란다. 더불어 유동적이며 항구적인 진화를 거듭해 온 '창작'의 가치를 위해 내세운 ( )의 의미가 이번 프로젝트를 함께한 작가들의 손과 생각으로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관객이 직접 확인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열어 놓았으면 한다. 전시기획의 시작과 함께 지금까지도 의문으로 남아있는 아래의 몇 가지 사항들을 정리함으로써 본 전시의 서문을 대신한다. ● 인미공은 전시를 위한 공간일까? / 일은 사무실에서 해야 하는가? / 전시는 전시장에서 하는가? / '전시' 자체는 전시의 오브제가 될 수 있는가? / 작가A의 고민과 세트장 목수 김씨 아저씨의 그것은 다를까? / 작가는 작업의 결과로 말할 수 있을까? / 안정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전시가 이루어질까? / 큐레이터가 기획의 개념을 완성하는가? / 관객이 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작가 B에게 전시는 성공일까? / 전시를 위협하는 것은 작가의 즉흥적인 태도인가? / 작가C의 작업대상은 이번 전시기획의 틀 자체인가? / 이 전시는 관객을 위한 전시인가? / 동등한 협업 큐레이팅은 존재하는가? / 기획자는 소통의 문제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가? / 관객은 전시의 내막을 궁금해 할까? / ( )의 단서는 전시장에서 찾을 수 있을까?
강민숙_이름 붙일 수 없는 것-무기력한 덩어리_인미공 집기, 혼합재료_가변연출_2013

강민숙 KANG MIN-SOOK (인사미술공간 2층)"이름 붙일 수 없는 것-서로 다른 것들이 충돌하고 결합하며 공존하는 이 공간을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잠재된 하나의 무대로 가정하고자 한다. 이 공간에 놓인 오브제는 개별적인 의미와 결과보다는 서로 다른 듯 미끄러지며 과정이나 상태로써 공존하게 된다. 이에 관객은 '지금 여기'에서 직접적으로 경험되는 공감각적 체험이나 수행성을 통해 일시적이고 끊임없이 새로운 의미를 결합하고 해체하는 주체가 된다." (강민숙 작가 노트) ● 공감각적인 체험 그리고 그것을 환기시키는 관계적 상황에 주목하는 강민숙은 이번 전시에서 인사미술공간의 2층을 인미공 스텝과 관객이 만나는 무대로 상정한다. 작가의 직관적 감각에 의해 놓여진 인사미술공간 사무실의 집기와 가구, 그리고 스텝들은 각기 2층 전시장에 새로이 배치되고 맡은 바 역할(실제 업무)을 하며 무대 위의 배우(퍼포머)처럼 보여지게 된다. ● 연출된 무대를 구성하는 사물들은 기존의 환경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작가의 지시에 의해 사무실에서 전시장으로 내려오게 되고 또 다른 장면(Scene)을 만든다. 전시장에 연출된 사무실이라는 공간에 들어선 관람객들은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익숙한 일상의 사물들(선풍기, 커튼 등)이 드러낸 존재감과 생경함을 마주하게 되고, 자신도 지각할 수 없는 사이에 무대 위의 주체자로서 개입하며 마치 또 다른 배우와 같은 역할을 경험하게 된다. '주'와 '객', 대상과 관점의 애매한 사이에서의 공간 연출은 서로의 긴장을 유발한다.
유화수_그리하여, 곧고 준수하게_혼합재료_가변크기_2013

유화수 YOO HWA-SOO (인사미술공간 3층)"그리하여, 곧고 준수하게 / 도구와 노동 / 지속적이지 않으며, 동시에 목적성을 잃어버린 노동의 허무함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노동의 결과물이 한치에 오차도 없이 / 곧고 준수해야 하는 인간과 노동의 새로운 형식의 소외 / 그리고 그 불가분의 관계" (유화수 작가 노트) ● 유화수의「그리하여, 곧고 준수하게」프로젝트는 창작물의 제작 과정, 설치에 대한 권한과 실행은 작가에게 있는가에 대해,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되는 도구와 노동에 관한 해석을 작업의 과정으로 풀어내고 있다. 작가는 조악하고 일시적인 재료를 통해 최소한의 힘을 견딜 정도로만 제작되고 있는 드라마 세트장의 특수한 형식과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오되, 무대 제작업종에서 오랜 시간 체계적으로 노동을 해온 각 분야의 업자(쟁이) 들과 함께 작품 제작의 감리자로서 본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 창작물은 작가 자신의 도구와 노동에 의해 창조되어야 하는가, 창작을 대리하는 수행자의 고민과 작가의 고민은 어떻게 다른가에 대한 의문과 답을 찾아가는 전 과정은 작가의 손에 의한 정형화된 창작을 실질적인 논의의 장에서 이야기 하고자 한다. 본 프로젝트는 지금까지 줄곧 인미공의 업무를 위한 사무실로 쓰이며 전시장으로 한번도 기능한 적 없는 3층 공간에서 이루어지며, 전시 오픈 당일, 두 시간 동안 작품 설치 잔업을 완수하는 퍼포먼스로 진행된다. ● 전시의 시작과 함께 작품은 보름간 전시장에 유지되고 나머지 전시기간 동안 전문업자에 의해 철거된다. 인사미술공간에는 작품의 설치부터 철거까지의 모든 과정이 담긴 영상기록물이 남는다.
이완_절대적 기준에 대한 내면의 불가항력적 엔트로피_기준에 맞춰 기둥 쌓기_2013

이완 LEE WAN (인사미술공간 지하층)"절대적 기준에 대한 내면의 불가항력적 엔트로피 / 찰랑거리는 기준의 물결들이 / 턱 밑에 와 부딪친다. / 우리가 동의해온 모든 것들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을까. / 나는 한 모금의 물 덩어리 조차도 / 이해하지 못하지만 / 그것이 내 피가 되어 흐른다는 것을 / 부정할 수는 없다. / 깊고 깊은 밤의 물에 솟아오르는 / 태양같이 무한하고 영원에 가까운 / 거대함에 대하여 절대적 기준에 대한 내면의 불가항력적 엔트로피" (이완 작가노트) ● 인사미술공간의 지하층은 사무실에서 발견된 오브제의 탑이 오직 중력만으로 버틴 채 쌓여 있다. 이번 전시에 참여작가인 이완은 업무를 보조하거나, 전시를 위해 쓰여지면서 여러 해 동안 인사미술공간의 사무실에 축적되어 온 물건들을 작품의 소재로 이용한다. 도구나 보조 자료로서 존재하던 그것들은 작가에 의해 인미공의 가장 높은 곳인 3층에서 가장 낮은 지하층으로, 오르락 내리락 이동한다. 3층에서 지하층으로의 이동은 물리적인 전치인 동시에 새로운 기준으로의 분류이며, 이제 작품의 일부라는 맥락을 부여 받는다. 작가에 의해 선택된 사물들은 서로를 지지하며 인미공의 지하 전시장의 바닥에서부터 천정까지 재배열된 기둥으로 버티고 서 있다. ● 첫 번째 기둥은 인사미술공간의 핵심적 가치로 여겨지는 비물질적인 자료와 정보(컴퓨터), 공적인 문서들로 이루어져있으며 그것을 보조하는 도구로서의 사무기기가 올려진 것이 두 번째 기둥이다. 가치 없다고 여겨지는 사물들로 쌓여진 마지막 기둥까지 세 개의 기둥은 일률적으로 같아야 한다거나 혹은 다른 것들이 그 기준에 맞추기 위해 버텨야만 하는 불안정한 구조를 은유 한다. 안정과 불안정 사이에서 위태롭게 서 있는 사물들은 금방이라도 붕괴될 것 같은 모습으로 이 무대를 받치고 있다. ■ 인사미술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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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너스 VENUS


박연희展 / PARKYEONHEE / 朴軟姬 / photography 2013_0219 ▶ 2013_0227 / 월요일 휴관


박연희_untitled_C 프린트_110×180cm_2013

초대일시 / 2012_0219_화요일_06:00pm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175 Gallery 175 서울 종로구 안국동 175-87번지 안국빌딩 B1 Tel. +82.2.720.9282 blog.naver.com/175gallery


박연희는 그동안 유리로 제작한 여성의 토르소 등을 통해 매체의 고유한 물성을 전면으로 드러내는 작업을 해 왔다. 몰드 블로잉 기법을 이용하여 풍만하게 부풀어 오른 살들을 표현했던 그녀의 작업은 유리가 중력과 온도 등에 의하여 변하는 과정, 즉 재료의 물성 변화를 노출함으로써 촉각에 호소하고 있었다.
박연희_untitled_C 프린트_90×150cm_2013
박연희_untitled_C 프린트_75×100cm_2013

그러나 이번 작업은 그녀는 자신의 작품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360도의 자유로운 감상시점이 보장되는 자신의 조각을 두고 작가는 오히려 시점의 한계를 느꼈다고 하니 조금은 역설적이기도 하다. 그녀는 감상자의 시선에 따라 평면 작품이 3차원의 작품에서 보다 회화적인 인상을 도출해 낼 수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감상시점이 자유로우면 그만큼 빛과 그림자의 변화도 다양해진다. 작가는 시점을 제한하고 빛과 그림자를 자의적으로 설정하기 위하여 자신의 작품을 사진으로 찍어 보았다. 이를 통해 그녀는 우리가 조각 작품을 바라볼 때 작품 전체의 형태를 감상하느라 놓치게 되는 우연적 양태를 포착하고 있다. 그녀는 유리와 유리가 겹치는 부분, 블로잉 할 때 자연스럽게 유리 속에 생긴 공기 방울, 몰드에 닿아 생긴 작은 주름들을 사진으로 담아 회화적인 풍경을 제시한다. 전체의 테두리를 지워내면 선적인 요소들이 배제되기 마련이다. 여기서 뵐플린이 제기한 회화적 전환이 일어난다.
박연희_untitled_C 프린트_150×100cm_2013
박연희_untitled_C 프린트_40×150cm_2013

촉각치를 시각치로 전환시키는 그녀의 작품에서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중첩이다. 유리와 유리, 투명함과 투명함의 중첩은 다소 무의미해 보일 수 있으나 유리가 겹쳐졌을 때 생기는 빛과 그림자의 중첩을 통해 그녀의 작품은 그 어떤 불투명한 색상의 물감들보다 복잡하고 회화적인 느낌을 형성한다. 작가의 이러한 유희적 전환은 유리로 된 토르소에서 포착해내는 우연적인 산물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박연희_untitled_C 프린트_120×120cm_2013

따라서 박연희 에게 이번 전시는 단순히 이전의 작품들을 재해석하는 의미를 넘어서 낯선 매체와 새로운 접근방식에 도전하는 일종의 전환점이 될 것이다. 하지만 유리라는 매체의 본질에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선 듯 보인다. 속까지 숨김없이 맑게 비추어내는 투명함. 작가는 이 번 전시에서 그 투명함으로부터 길어 올린 빛나는 시각의 세계를 보여준다. ■ 양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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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uː


26.375 변이의 구조展 2013_0220 ▶ 2013_0226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강한비_김수민_김유민_김지혜 손은비_송유민_이하연_진주아

기획 / 이근범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가나아트 스페이스 GANA ART SPACE 서울 종로구 관훈동 119번지 Tel. +82.2.734.1333 www.ganaartspace.com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재, 우리의 이야기이다. 어떤 이는 이 시대의 사회상, 내가 속해있는 사회를 헤쳐 나가기 위한 틈을 찾을 수도 있고, 공간에 자신의 가치관을 담아 재해석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인간 속에 내제되어있는 정서나 감정을 솔 직하게 표현하여 불완전한 자아를 보여주기도 한다. 일반화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위치에 있는 우리는 이 시대에서 태어나 사회적 통념 속에 자라나고 길들여졌지만, 또한 이 사회의 통념에서 벗어나고 달라지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생겨난 변이의 시각을 통해 창작활동으로 나타내고, 타인과는 다른 변이된 존재로서의 주체성을 갖는다. 현대사회 속에서 스스로가 매개체가 되어 변이된 개체로서 존재하는 우리의 모습을 이번 전시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강한비_자아의 객관적 형태_캔버스에 유채_45.5×53cm_2013
김수민_toshab_캔버스에 유채_90×72.7cm_2012
김유민_miscellaneous3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연필_60.6×72.7cm_2013
김지혜_sink_캔버스에 유채_155×96cm_2013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한 것이 많았구나 (중략)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 詩「질투는 나의 힘」중에서)

손은비_뿌리_혼합재료_50×50×20cm_2013
송유민_혼재되다13-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9×72.7cm_2013
이하연-Perilous_캔버스에 유채_131×51cm_2013
진주아_Ksana(75분의 1초)_단채널 영상_00:03:06_2013

우리는 자아를 형성하는데 있어서 우리의 경험으로 이루어지는 현실로 결정짓게 된다. 경험 속에는 '어리석게도'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우려는 욕망이 개입된다. ● 『Fluː』展은 이제 대학을 졸업하는 학생들 위주로 이루어진 그룹전이다. 작품에서 제시되는 담론과 표현되는 이미지들이 신선하고, 다양하다. 이하연, 김유민, 강한비는 특징적 혹은 표현적 관계에 대하여 진주아, 김수민, 손은비, 김지혜는 존재의 실존에 대한 고민을 송유민은 합성과 분해의 메커니즘전달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이들의 욕구는 차고 넘쳐서 충족해줄 대상을 찾아 왔다. 이 전시에서 욕구(need)되는 것을 요구(demand)할 수 있을 지는 이들의 몫이다. 그림을 평생의 업으로 삼은 사람에게도 버거운 평가일 것이다. 그러나 대학의 문턱에서 벗어난 이들에게는 '욕망(desire)'이라는 절대무기가 있다. 결핍을 지닌 젊은이에게 욕망은 타고난 명약일 것이다.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고 다니는 열정이 있다면 각 개인의 의미와 효력은 유기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 이근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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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azing House


윤소연展 / YOONSOYEON / 尹素蓮 / painting 2013_0220 ▶ 2013_0226


윤소연_Open House_캔버스에 유채_130.3×97cm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10323a | 윤소연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3_0220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화봉 갤러리 HWABONG GALLERY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7-28번지 백상빌딩 B1 Tel. +82.2.737.0057,1159 gallery.hwabong.com


세상이 집안으로 들어와 또 다른 집을 만든다 ● 나의 집이 완성되고 있다. 불규칙한 생활들이 안정을 찾으면서 휴식을 위한 집뿐만 아니라 치유의 공간으로, 꿈을 찾는 시작점으로, 맘껏 공상하는 장소로 바뀌고 있다. 그래서인지 어느 때부터인가 안과 밖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윤소연_Welcome to my dream house_캔버스에 유채_162×112cm_2012
윤소연_과거로의 귀환 The return of the past_캔버스에 유채_89.4×130.3cm_2013
윤소연_나는 지금 파리에 있다 I was there in Paris now_캔버스에 유채_72.7×116.7cm_2012

나의 작업은 "일상"이란 큰 범주 안에서 일관된 주제를 가지고 작업이 이루어진다. 처음에는 지극히 사적이고 주관적인 일상을 보편적이고 객관적으로 표현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동질감이나 친밀감을 끌어내려 하였다 결국 몇 년간 계속 해온 것은 나의 일상을 열어 보여주고 공간을 나누고 다시 공간에 소소한 이야기와 꿈을 담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시공간을 넘나들면서 작가의 주관적인 공간이나 일상뿐 아니라 타인의 일상, 그리고 사물이나 상황, 실내가 아닌 바깥 풍경까지 상자나 종이가방을 이용하여 각각의 공간에 담는다. 이렇게 완성된 여러 개의 상자와 종이 가방들은 블록처럼 쌓거나 퍼즐처럼 맞추는 작업을 통해 좀 더 유니크(unique)한 공간으로 재구성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윤소연_놀이터 A playground_캔버스에 유채_80.3×116.7cm_2013
윤소연_이사 Move_캔버스에 유채_91×116.7cm_2012
윤소연_From Africa_캔버스에 유채_97×130.3cm_2012

세상이 집안으로 들어와 또 다른 집을 만든다. 나는 그 속에서 상상하고 꿈을 꾸고 웃고 울고 행복감을 느끼며 쉬기도 한다. (2013년 1월) ■ 윤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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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展 / Haru.K / painting 2013_0220 ▶ 2013_0226


하루_맛있는 산수2_장지에 수묵채색_30×30cm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00924h | 하루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갤러리 GMA GALLERY GMA 서울 종로구 율곡로 1(사간동 126-3번지) 2층 Tel. +82.2.725.0040 artmuse.gwangju.go.kr


Haru.K의 작업은 어떠한 형식이 없다. 2009년 우리 공간의 신진작가로 만남부터 현재의 작업까지 그의 작업은 해마다 변하여 왔다. 2010년 개인전에서 생동감 있던 나무를 수묵으로 보여줬던 작업이 2011년 수묵인물로 변하였고 2012년에는 산수로 바뀌었다. 작업에 일관성과 깊이가 요구되는 시대에 계속되는 작업의 변화는 확고하지 않은 작가로써 정체성을 의심케 한다. 이러한 우려에 대한 그의 답은 "네!!"였다. 너무 순순히 인정한 그에게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지금의 저는 성장의 단계에 있습니다. 만일 제가 어떠한 특정한 형식을 잡고 각인된다면 그 후에 내 머리 속에 나오는 생각들은 사장될 겁니다. 형식은 없지만 지금까지 추구하는 방향은 같습니다. 그건 동양회화의 특성을 바탕으로 서양회화와 혼합을 통해 현대적인 감성을 나타내는 겁니다."
하루_맛있는 산수1_장지에 수묵채색_85×54cm_2012
하루_맛있는 산수3_장지에 수묵채색_30×30cm_2012
하루_맛있는 산수4_장지에 수묵채색_30×30cm_2012

Haru.K의 작업은 동양회화와 서양회화를 비교하여 그 차이나 동일성을 한 화면에 나타내는 것이다. 그의 작업은 수묵이나 종이와 같은 전통 동양회화의 재료를 사용하지만 그려지는 방식은 서양회화를 사용한다. 장르의 구분이 없는 현대미술에서 그가 가지고 있는 주제와 생각은 진부하다. "처음 그림을 배울 때 편리를 이유로 크레파스를 손에 잡았습니다. 시간이 흐른 후 동양회화에 관심이 있어 처음 모필을 잡았을 때 그 어색함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마치 한복을 명절에 입었을 때 불편함처럼." 그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혼재된 자기 정체성을 이야기한다. 작업에서 나타나는 동양회화에 대한 탐구와 변화는 그가 정체성을 찾아가는 일련의 과정처럼 보인다.
하루_맛있는 산수5_장지에 수묵채색_30×30cm_2012
하루_맛있는 산수6_장지에 수묵채색_73×104cm_2012
하루_맛있는 산수7_장지에 수묵채색_118×158cm_2012

이번 전시는 크게 수묵인물연작과 산수연작으로 구성된다. 수묵인물연작은 화면 가득한 여인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수묵을 소묘처럼 이용한 표현법이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산수연작은 맛있는 음식이 담긴 그릇 위에 전통 동양화의 산수가 그려진 작품으로 음식의 표현과 산수의 표현법이 서로 다른 가운데 묘한 어울림을 나타낸다. ● 예술은 평범한 일상 속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기에 작가는 항상 새로워야 하며 창조적이어야 한다. 이러한 까닭에 계속 변화되는 Haru.K의 작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조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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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체 풍 경 - 비움과 채움 The scenery of the human body-The transmigration of emptiness and fullness


김철규展 / KIMCHEOLKYU / 金澈圭 / painting 2013_0220 ▶ 2013_0226


김철규_인체풍경-비움과 채움 (The scenery of the human body-The transmigration of emptiness and fullness)_2013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김철규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3_0220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갤러리 도스 GALLERY DOS 서울 종로구 팔판동 115-52번지 Tel. +82.2.737.4678 gallerydos.com


비우고 채우는 사유의 손짓 ● 예술에 있어서 인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여 가장 친숙한 표현 대상이다. 인체에 대한 끝없는 관심은 세계에 대한 인식의 주체가 바로 인간 스스로인 점에 기인한다. 우리는 몸을 통해 존재하고 몸을 통해 타인과 관계한다. 즉 몸은 세계 그 자체이자 우주의 한 부분이다. 또한 내면의 감정을 육체의 감각으로 전이하여 몸의 언어로 표현함으로써 기호로 존재하기도 한다. 김철규는 화면을 물질로 중첩하여 채우고 사포질로 비워내는 과정을 통해 인체 풍경을 만든다. 미세한 근육의 수축과 이완은 몸의 기호가 되어 현대인이 겪는 소외나 고뇌 그리고 소통의 문제를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이처럼 작가는 '비움과 채움'이라는 지난한 노동의 과정을 반복된 순환관계에 중독된 인간사에 빗대어 드러내고자 하며 동시에 '비움과 채움'이 가진 이중적인 행위와 공간에 대해 탐구하고자 한다.
김철규_인체풍경(The scenery of the human body)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사포로 긁어서 표현_91×72.5cm_2013
김철규_인체풍경(The scenery of the human body)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사포로 긁어서 표현_89.5×130.3cm_2012
김철규_인체풍경(The scenery of the human body)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사포로 긁어서 표현_145.5×112cm_2013
김철규_인체풍경(The scenery of the human body)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사포로 긁어서 표현_116.7×91cm_2012

비움은 채움이 있어야 존재한다. 비우지 않으면 채울 수 없고, 채우지 않으면 비울 수 없듯이 '비움과 채움'의 사이에는 순환적이며 반복되는 연속성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작가에게 현실의 공간은 이처럼 비우고 채우는 상호의존적인 관계의 장이다. 작품에 있어서 비움은 존재가 없기 때문에 허무하기보다는 오히려 많은 것을 드러낼 수 있으므로 적극성을 띈다. 채움과 비움 사이를 오가는 인간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물감으로 덮고 사포로 덜어내는 작가의 조형행위는 시간의 흔적이며 곧 삶에 있어서 반성의 과정이다. 고뇌의 심층적 깊이는 캔버스에 물감이 층층이 채우고 물감을 긁어내는 행위의 시간과 비례한다. 현대 문명의 발달에 따른 시공간의 압축을 비웃기라도 하듯 작가는 애써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것이다. 고요한 묵상의 느낌들은 마음의 손짓으로 화면을 어루만지듯 비워낸 결과물이다. 비워지는 동시에 채워진 실재를 파악해가는 작업 과정에서 남겨진 짙은 허공은 실체만큼이나 중요하다. 작가에게 공간은 고정된 실체라기보다는 '비움과 채움'의 순환 속에서 유기적으로 변화하는 대상이다. ● 절제된 색의 대비와 함께 화면을 압도하는 듯 가득 메운 인체가 풍경으로 자리 잡는다. 신체의 동작과 그에 따른 피부조직이 만들어내는 주름의 움직임으로 전해지는 감정은 언어보다 더 정밀한 기호로 작용한다. 또한 화면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근접한 시점으로 신체 일부를 확대함으로써 보는 이에게 긴장감을 유발하고 시선을 잡아둔다. 여기에 의복은 물론 일체의 배경도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극사실적인 인체가 더 부각된다. 인체 중에서도 다양한 손짓에 집중된 화면은 많은 이야깃거리를 담는다. 거칠면서 남성적인 손들의 결합 혹은 다른 신체와의 결합은 관계와 소통이라는 단어를 연상시킨다. 작가에게 손은 작업 행위의 주체이자 작품의 중심에 있다. 매개체 없이 손이 화면을 긁어내며 느껴지는 물성과 직관적 인식을 강조하고 있으며 과정에서의 처절한 노동은 작품의 본질로 수용된다. 이처럼 반복된 행위의 축적을 통한 표면의 밀도감과 더불어 채워지고 비워진 암흑의 여백은 절대적인 정적을 불러일으킨다. 화면을 지배하는 삶의 사유에 대한 묵언의 긴장감은 작가의 예술에 대한 진지함 만큼이나 무겁다.
김철규_인체풍경(The scenery of the human body)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사포로 긁어서 표현_145.5×112cm_2012
김철규_인체풍경(The scenery of the human body)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사포로 긁어서 표현_130×162cm_2013

김철규는 끊임없이 몸의 언어들을 채우고 또 비워낸다. 작가에게 '비움과 채움'은 결국 존재에 대한 물음을 찾는 과정이다. 예술을 통해 존재와 부재, 형상과 흔적, 침묵과 언어 사이의 관계를 넘나들며 끊임없이 탐구하고자 하는 철학적 접근은 우리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만져질 듯한 살결의 주름들은 작가의 진한 휴머니즘을 증명이라도 하듯 깊게 우리 마음을 파고든다. 여기에 더해진 채움을 비우는 사포질은 비움 속에 내재된 텅 빈 충만함을 느끼게 해 준다. 인체풍경에서 보여지는 '비움과 채움'의 과정은 작가에게는 쉼 없이 반복되는 노동이며 앞으로도 계속될 미완의 과정이다. ■ 김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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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one year


이현권展 / LEEHYUNKWON / 李賢權 / photography 2013_0220 ▶ 2013_0305


이현권_1월 24일_C 프린트_50×75cm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10119g | 이현권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3_0220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일요일_12:00pm~06:30pm

갤러리 그림손 GALLERY GRIMSON 서울 종로구 경운동 64-17번지 Tel. +82.2.733.1045~6 www.grimson.co.kr


내가 서 있는 곳 ● 이곳 작업의 시작은 먼저 계획된 무엇인가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반복된 나의 삶의 궤적 중에 나도 모르게 시선이 모여진 곳. 수년간 나는 같은 곳을 보고 있었지만 내가 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곳이었습니다. 어느 순간 그냥 지나쳤지만 관심이 집중되었던 이 장소를 아무 계획 없이 사진을 찍기 시작한 순간도 내가 왜 이곳을 바라보는지, 내가 이곳에 나의 시선과 관심, 또는 모아지는 감정의 우물과 같은 이곳에 대해 몰랐습니다. ● 이곳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지만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 곳입니다. 옆에 고속도로, 위에 국도가 있어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시선들에 보여지지만 전혀 기억할 수 없는 장소, 즉 이곳은 어떻게 보면 기억할 만한 의미가 없는 주위에 반복되고 흔한 장소였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인간에겐 소외되었지만 자연과는 끊임없이 대화를 합니다. 이곳을 바라보면 그 안에 풀의 움직임이 느껴집니다. 빛과 어둠이 만들어낸 또 다른 다양한 색을 만나게 됩니다. 그 안에 피는 꽃도 반갑고 긴긴 겨울을 견딘 땅의 힘을 가지고 피는 봄의 초록도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습니다. 화려한 가을의 색깔은 없지만 나름 낼 수 있는 최선의 색으로서 자신의 아름다움을 표현합니다. 그리고 삶의 끝에 순종하듯 모든 에너지를 털고 죽음의 색으로 견딥니다. ● 그들의 1년은 반복됩니다. 나는 1년을 계획으로 사진을 찍었지만 그 이후도 사진을 찍습니다. 그들은 1년 후에도 거의 변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어쩌면 1년을 기준으로 우울하게 삶을 반복하고 언제 변화가 될지 모르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자연이 주는 빛과 계절이 주는 색을 반복하여 지루해하지 않고 그 위치에서 주변의 흙과 이름 없는 풀, 잔 나무들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갑니다. 나는 여기에서 사회 속에 있는 군중의 시선으로의 나를 보았고 내가 바라보는 사회와 군중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흔적 없이 사라지지만 인간이란 큰 역사적 흐름 속에 면면히 이어져 오는 내 이웃들, 내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보았습니다. ● 나는 사진을 찍는 내내 우울했습니다. 그리고 그 우울감이 어디에서 왔는지 고민을 해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1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그 곳을 바라보고 사진을 찍으며 말할 수 있는 나의 이 우울감은 다름 아닌 이곳이 인간의 삶 아래 '내가 서있는 곳'이라는 것을 인정하기까지의 과정이 아닌가라는 느낌입니다. 나의 한계성과 중심성의 세계를 고통스럽게 깨는 과정 중의 감정, 즉 나의 나르시시즘의 틀에서 바라보는 감정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 그 껍데기를 힘겹게 걷어내어 내가 서 있는 곳과 그 주변을 보며 지루한 한계성과 반복은 작은 생명이 되고 공허한 무의미함이 조그만 의미가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2013년 1월) ■ 이현권

이현권_3월 19일_C 프린트_50×75cm
이현권_5월 14일_C 프린트_50×75cm

이현권-풍경의 애도 ● 이 풍경은 무심하고 무료하다. 기존에 우리가 품고 있는 풍경에 대한 관념과 사뭇 다르다. 대개 미술과 사진에서 다루는 풍경은 아름답고 숭고하며 장엄하다는 도식 속에서 다루어진다. 따라서 그 풍경사진들은 자꾸 강박적으로 무엇인가를 강요한다. 감정과 정서와 과잉된 낭만 혹은 학습된 미의 반복적 확인을 재촉한다. 그것은 이미 존재하는 아름다운 풍경을 되풀이 하여 재현하고 반복한다. 이른바 상투적이 된다. 그것은 실상 특정 풍경에 대하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는다. 굳이 그 풍경이어야 할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는다. ● 이현권이 찍은 풍경은 풍경이라고 부르기가 민망하다. 도로변에 위치한 흔한 야산이며 엇비슷하고 별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지 않은 그런 땅이기도 하다. 작가는 자신의 동선 속에서 발견한 그 장면을 찍기 시작했다. 그곳을 오간 세월이 수 년 인데 어느 날 그 풍경이 자신에게 온 것이다. 다시 보인 것이다. 직장 근처에 있는 그 장소를 홀리듯이 틈나는 대로 찾아가 바라보았다. 질주하는 차창 밖으로 흘낏 바라본 풍경을 천천히 걸어가서 다시 가 본 것이다. 도로변에 위치해있기에 아마도 엄청난 사람들이 지나며 보는 풍경이겠지만 그 누구도 그것을 의미 있는 존재로 바라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작가는 문득 그 산의 모습에서 자신을 바라보았다. 더불어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하는 익명의 존재들, 평범한 군중들, 지극히 무의미해 보이는 풍경, 하찮은 사물들도 떠올려 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그냥 그 자리에서 최선의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이다. 저 산 역시 매시간, 계절마다 최선을 다해 변화를 거듭하며 자리하고 있다. 자신의 숙명과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며 자기 역할을 힘껏 해내고 있다. "그렇게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저 산은 감동스럽다" 라고 작가는 생각한다.
이현권_8월 24일_C 프린트_50×75cm
이현권_11월 1일_C 프린트_50×75cm

본다는 것은 생각하는 일이다. 응시는 머리를 복잡하게 해준다. 우리가 무엇을 본다는 것은 그 대상에 대해 생각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시선은 늘 격발된 총과 같다. 작가는 바라본 풍경을 반복해서 찍었다. 1년이 넘는 시간동안 거의 매일, 동일한 장소를 촬영했다. 광선이나 각도, 톤의 조절 등은 무의미하다. 그저 보이는 대로 무심하게 담았다. 사각형의 인화지에 가득 들어찬 풍경은 중심도 주변도 없다. 전면적으로 균질하고 평평하며 전일적인 시선 아래 평등하고 납작하다. 깊이가 사라진 화면, 프레임에 가득 찬 풍경은 오로지 땅과 나무와 풀을 보여준다. 봄에서 겨울까지, 아침에서 오후의 시간까지, 그리고 햇살과 안개, 비와 눈이 그 위를 채우고 비워내기를 거듭한다. 갈색에서 녹색과 분홍과 노랑, 혹은 흰색으로 물들이기도 하고 메마르고 삭막한가 하면 풍성하고 눅눅하기도 하다. 그것은 단일한 얼굴을 지니지 않고 도저히 표현될 수 없는, 재현될 수 없는 다채로운 상황을 안겨줄 뿐이다. 그러니 도저히 저 산이 어떤 모습이라고 제한된 말로 규정할 수 없다. 그것은 그저 사라질 뿐이다. 사진은 사라지는 모습을 안타깝게 저장해둘 뿐이다. 이현권은 그렇게 사라지는 자연의 모습을 매일 찍어 두었다. 그 시간이 일 년을 훌쩍 넘겼다. 사계절이 지났고 다양한 기후의 지나감이 있었다. 고정되어 있거나 죽어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고 미친 듯이 지나가버리는 것이 시간이다. 누구도 결코 그 시간을 멈추거나 고정시킬 수 없다. 아마도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힘과 속도를 보여주는 것은 저 시간이 아닐까? 작가가 보여주는 시간은 걷잡을 수없이 빠르게 지나는 시간이 아니라 '쌓이는 시간'에 가깝다. 여러 시간대가 쌓이고 누적되어 두께를 지닌 것을 보여주는
2013.02.13 14:45:40 / Good : 504 + Good

za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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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의 공간_Part II. 환영과 실재, 그리고 반응   
    

            갤러리조선(02-723-7133)
            2013-02-13 ~ 2013-03-07
차이의 공간_Part II. 환영과 실재, 그리고 반응

우리를 안심시키는 진리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주관적 해석만 존재할 뿐이다. -니체

우리는 어떤 대상을 보고 언어를 통해 지시했을 때 그 지시하는 대상이 일치해야 올바른 명제가 성립됨을 확인하며 이렇게 특정한 대상을 지시하는 개념을 사용하여 세계를 판단한다.
그러나 현실이 복제물로 채워지고 모조의 세계가 연출되고 있는 오늘날, 원본보다 복제가 더 실재 같은 불확실한 시대에서의 진실을 판단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다만 우리 스스로가, 헤아릴 수 없는 의미의 심층으로부터 구현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다원화된 진리는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특정한 관점들을 취하게 되고, 관람자에게 복잡한 환영을 제공했던 예술영역에서의 예술매체에 대한 인식을 “아름다운 가상”이라는 개념으로부터 가져 온다. 이러한 인식은 현대미술에서 우연의 형식으로, 또는 무의미한 것으로, 혹은 일상(실재대상)과 구분 불가능한 것으로 작품 스스로를 드러내게 되면서, 한편으로는 실재와 환영 사이의 차이를 지양하거나, 다른 한편으로는 실재와 환영의 경계를 설정하고 형식들이 예술로서 지각되도록 물리적 표면, 물감, 공간적 배치 같은 재료들을 형성하는 매체를 통해 환영을 보여주는 동시에 부정해야 하는 이중적 틀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매체들이 모여 하나의 차이를 만들면 해석, 분석, 평가가 이뤄지고 하나의 형식이 된다. 그리고 필요에 의한 형식들의 출현은 다양한 방식으로의 지각에 의존한 채 소통을 생산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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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topia : Unfamiliar Landscape








최은정展 / CHOIEUNJEONG / 崔恩正 / painting 2013_0221 ▶ 2013_0228





최은정_Structural plants_캔버스에 유채_97×162cm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최은정 블로그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주말,공휴일_10:00am~05:00pm

한전아트센터 갤러리 KEPCO ARTCENTER GALLERY 서울 서초구 쑥고개길 34 Tel. +82.2.2105.8190~2 www.kepco.co.kr/gallery





Ecotopia : Unfamiliar Landscape ● 풍경'paysage'은 어원적으로 시각적 주체와 그의 시선을 전제하고 있듯이 주체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특정한 시점을 통해 지각되어지는 역사적인 구성물이다. 미술사적으로 볼 때 풍경은 15세기 중반 이후 원근법적 시각 양식이 성립되고 바라보는 주체가 구성되면서 재현된 이야기의 배경에서 독립적인 미적 대상으로 서서히 자리 잡게 되었고, 이와 동시에 풍경화라는 자율적인 장르가 태동하게 된다. 그러나 모더니즘 이후 데카르트적 원근법 체제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면서 시각체계에 대한 새로운 대안적 방법들이 모색되어 왔다. 탈근대 사회의 다양한 특징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주체의 해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주체는 자신을 주체로서 정립하도록 하는 타자의 존재를 필요로 했다. 즉 주체는 타자를 전제로 해서만 자기 동일성과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때 타자란 반드시 타인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며, 자연과 사물 등의 주체를 둘러싼 환경이나 풍경을 지칭하기도 한다. 이러한 영향으로 회화에서 풍경을 구성하는 방식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으며 이에 따른 주체의 내면적 공간의 구성 방식 역시 변화하게 된다.
최은정_Hetero-Structural plants_캔버스에 유채_162×130cm_2012

나의 작업에서 풍경은 무의식의 심리적 풍경처럼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공간이다. 일상적인 공간에서 무심코 어떤 풍경의 장면을 마주하게 되면 물질적 감각 속에서 자신을 망각하게 된다. 이때 잠재된 의식 속에서 과거의 기억과 잊혀진 감정을 환기시키는 형상과 이미지가 겹쳐지면서 내면에 숨겨진 미세한 풍경이 떠오르는 순간적인 경험을 한다. ● 나의 작업에서 풍경은 자연에 대한 환상적 욕망으로부터 시작하여 의식 속에서 고정관념화 된 풍경을 끊임없이 해체 시킨다. 이것은 나의 내면에서 재조합 되어진 보이지 않는 풍경의 이면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투영시키는 행위와 같은 것이다.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가 그의 저서들에서 하나의 물질이 풍경이기 이전에 한 영혼의 상태이고 그 내부의 풍경 속에서 정신적 성장이 이루어진다고 했듯이 풍경은 나 자신이 꿈꾸는 완벽한 이상적 공간으로 객관적 형태의 Landscape가 아닌 Mindscape로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사유적 공간인 것이다.
최은정_Fast growing trees_캔버스에 유채_130×130cm_2012

나의 작업에서 발견된 대부분의 자연풍경은 어떤 건축적인 구조를 취하고 있으며 자연과 인공의 모순된 양식을 이루고 있다. 또한 자신을 이루고 있는 주변의 일상과 기억의 편린들이 전혀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이것은 시간의 의미를 초월해 하나의 덩어리로써 시간에 놓여있는 고정된 공간이 아니라 어떠한 행위도 가능한 장소성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풍경은 서정적이면서도 생경한 느낌을 주는 상이함을 갖는데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실재 했는지 모호한 지점을 통해 낯설음과 생소함을 더 증폭시킨다. 결국 이러한 낯선 풍경으로부터 객관적 질서를 해체시키고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잠재된 욕망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이렇게 나의 내면에서 재조직화 된 풍경은 화폭에서 환상적 공간인 에코토피아가 되어 펼쳐진다. 에코토피아 'Ecotopia'는 생태주의를 뜻하는 그리스어 Ecological과 이상향을 뜻하는 Utopia의 합성어로 생태적 이상세계를 뜻한다. 그러나 나의 작업에서 에코토피아는 객관적으로 인식 가능한 공간이 아닌 계속 변화하고 움직이는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로써의 픽쳐레스크 'Picturesque'인 것이다. ■ 최은정
최은정_Interior landscape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12
최은정_Mycro paysage_캔버스에 유채_112×145cm_2013




Ecotopia : Unfamiliar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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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태-꽃들의 외출  
    

            신세계갤러리본점
            2013-01-23 ~ 2013-03-03

한국의 대표적인 포스트모더니즘 사진작가인 황규태(黃圭泰, 1938-)의 사진전을 개최합니다. 70년대 리얼리즘이 주류를 이루었던 한국사진계에 충격을 선사하며 등장한 황규태는 있는 그대로의 사진적 재현에서 벗어나, 이중노출, 포토몽타주, 때로는 필름을 태우는 등 실험적인 기법과 초현실적인 스타일로 한국현대사진에서 독자적인 자리매김을 하였습니다. 현재 그는 디지털기술을 작품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를 넘나드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실험적 행보와 메세지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황규태의 진보적인 작업스타일과 메세지는 과거보다 다양한 이미지의 세계에 살고 있는 현재의 우리에게 더 많은 이해와 공감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2004-2005년 사이 황규태작가가 아날로그 카메라와 그래픽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작업한 꽃 시리즈 사진 19점이 선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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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선展 / KIMPAILSUN / 金伯宣 / installation.video 2013_0222 ▶ 2013_0317 / 월요일 휴관




김백선_화풍 花風: 경복궁으로의 초대_단채널 영상_가변설치_2009



초대일시 / 2013_0222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학고재 Hakgojae 서울 종로구 소격동 70번지 Tel. +82.720.1524~6 hakgojae.com




김백선은 건축설계, 디자인, 아트디렉팅을 망라하는 다양한 장르에 대한 시도를 결국 모두 하나라고 보고 일상에 행복지수를 높일 수 있는 작업을 구상한다. 또한 공간의 가치를 자연을 모태로 하는 동양 미학 속 '사의성(寫意性, 사물의 외형 보다 그 안에 내재한 정신을 중시하는 것)'에 두고 근본에 대한 고민을 멈추지 않는다. 전시에 설치된 영상은 작가가 최근 몇 년간 진행했던 프로젝트를 담고 있다. 이 중 「화풍: 경복궁으로의 초대(2010)」, 「묵향-천년전주명품 '온'(2010)」 등은 전통의 가치가 단지 보존에 중점을 두고 현재와 동떨어져 머물 것이 아니라, 동시대인이 향유하고 소비해야 할 것임을 제안하는 작가의 태도가 담겨있다.
김백선_서울리빙디자인페어 서권기문자향 書卷氣 文字香 (천년전주명품 '온')_단채널 영상_가변설치_2009

일상의 행복지수를 높이는 디자인 ● 행하는 모든 작업에 '~답다'와 '행복'이라는 기준을 가장 중요시 여기는 김백선은 어떻게 일련의 작업들이 일상에서의 행복지수를 가치 있게 높일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한다. 전통문화에 있어서, 우리의 전통은 그저 지키고 보존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누리고 향유하며 그로부터 위로 받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친환경', '동물복지'와 같은 표현에 친숙해진 지 오래다. 이것은 행복에 대해 가치를 두는 오늘날 우리네 모습이다. 판매되는 농산물에도 생산자와 생산 과정이 상세하게 표기 되어 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러한 사람과 사물간의 가치 교감에 대한 인식이 우리의 행복지수를 더욱 높일 수 있다고 그는 생각한다.
김백선_대나무_C 프린트_96×157cm(with frame)_2012
김백선_안개(설악산)_단채널 영상_가변설치_2012

동양적 사유의 공간 ● 김백선은 학부에서 동양화를 전공하였고 수묵화, 사군자, 산수화, 화조도를 그리는 과정에서 자연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인식을 통해 바라본 자연은 동양 미학에 근본을 둔 심상적 사고를 할 수 있는 근간이 되었다. 동양 회화에서 사군자는 사물을 사물자체로 보는 것을 넘어, 의인화를 통해 철학적 가치를 갖는다. 이러한 방식은 작가가 사물을 바라보는 가장 중요한 시각이기도 하다. 그 점에서 김백선이 주로 쓰는 나무, 돌, 물 등의 자연적 소재는 그대로가 언어이다. 그가 가지고 있는 자연에 대한 생각은 '형상에 대한 무형상'이라 할 수 있다. 자연은 물리적으로 봤을 때 '멈춰 있다'고 규정되곤 하지만 생명을 가지고 있는 자연에는 기의 흐름, 자연의 흐름이 있다는 것이다. 그 흐름 속에 멈추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자연은 언제나 진행 중이다. 작가가 생각하는 공간이란 존재들 사이에 흐르고 있는 기의 표현이며, 그것은 자신이 생각하는 "심상적 사유를 통한 물성의 감성적 가치"에 대한 표현이다.
김백선_서울리빙디자인페어 묵향 墨香 (천년전주명품 '온')_단채널 영상_가변설치_2010

전통문화의 보존과 계승, 현대와의 접목 ● 한국 전통의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나는 목가구를 예를 들어, 전통 목가구에는 사용자의 인문학적 소양이 반영되어 있다. 선비의 공간에 대한 해석과 함께 소목장의 솜씨가 어우러져 만들어 낸 대표적인 한국의 미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전통적 가치와 원형에 대한 보존 및 복원에만 치중하여 전통 형태가 복제된 목가구는 현대인의 삶의 공간에 부합되지 않은 오브제로 표류하고 있어 안타깝다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다. 최근 문화재청은 무형문화재 진흥 사업 「천년전주명품 프로젝트 '온'」 등 전통문화를 단지 보존하는 데만 머물지 않고, 21세기 우리 삶의 공간 속에 소통 가능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제는 그 동안 우리가 지켜온 전통의 가치를 향유하며 소비할 수 있는 때가 되었다고 작가는 생각한다. 우리의 전통은 그저 지키고 보존하는 대상이 아니라 누리고 향유하며 그로부터 위로 받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것이다. ■ 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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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회 우성 김종영 조각상 수상작가 초대전






김서경展 / KIMSEOKYUNG / installation 2013_0222 ▶ 2013_0414 / 월요일 휴관




김서경_Shadow_동선_2010~13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80317d | 김서경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3_0222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김종영미술관 KIM CHONG YUNG SCULPTUER MUSEUM 서울 종로구 평창동 453-2번지 신관 사미루 1,2,3 전시실 Tel. +82.2.3217.6484 www.kimchongyung.com




1982년 타계하신 우성 김종영 선생은 해방 후 미술대학에서 교육자로서 평생을 헌신하셨으며 추상조각의 선구자로 20세기 한국조각사에 기념비적인 작품들을 남기셨습니다. 1989년 우성 김종영 선생의 유지를 기리고자 우성 김종영 기념사업회가 발족하였습니다. 1990년 김종영조각상을 제정하고 그해 제1회 김종영 조각상을 시상하였습니다. 김종영 조각상은 격년제로 시행되며 이번 전시회를 개최하는 김서경은 제11회 수상작가입니다. ● 김서경은 자신의 존재에 관한 성찰의 내용을 다양한 재료를 가지고 오랜 시간 작업해 왔습니다. 마치 인간의 마음속 응어리와 같은 나무의 옹이에 주목한 작업에서 출발하여 지금은 실처럼 가는 철사와 동선을 가지고 인간의 형상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 형상들 내부는 마치 꼬인 실타래와 같이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작품을 제작하는데 인고의 시간을 들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김서경은 이번 전시를 통해 삶의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성찰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서두름에 익숙해 있는 작금의 풍토에 반하여 그는 오로지 수작업에 의존해서 작업을 진행하고 있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아마도 작업 자체가 작가자신의 사유의 시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작가의 진지함과 더불어 이번 수상전이 새로운 지평을 확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 박춘호
김서경_Shadow_동선_2010~13
김서경_Shadow_동선_2010~13



이미지의 여행을 떠난다... 실처럼 가는 동선은 이미 엉켜버린 실타래처럼 그렇게 있다. 나는 또다시 무의식적 행위의 반복을 통해 이미 얽이고 설킨 동선을 엮고 풀고, 또다시 엮고 풀어간다. (중략) 어쩌면 이러한 모든 것은 정답이 없는 그저 선택의 문제 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를 어떤 것 이라 규정 내리기보다, 그 무엇도 무엇이라고 규정짓지 않고 관객 개개인의 감성과 선택의 문제로 작업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해, 어떤 선택의 문제로 그 여지를 남길 것이다. 관객들이 나의 작업 속에서 심연을 보았다면 혹은 반짝이는 빛을 혹은 몽환적 이미지를 혹은 Fantô̂me의 이미지를 혹은 어떤 슬픔을 읽었다면 혹은 공허한 메아리 였다면... 그 어떤 것이더라도, 아마도 그것은 그것이었을 것이다. 관객들은 그림자에 대한 실체 혹은 허상을 마주할 것이며, 나는 이를 이미지의 여행 이라고 명명한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그 무엇도 무엇이라 규정 내리지 않을 것이다. ■ 김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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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로잉을 위한 공간들






Spaces for Drawing展 2013_0222 ▶ 2013_0601 / 일,공휴일 휴관




고진영_비너스의 탄생 The Birth of Venus_디지털 C 프린트_90×120cm_2010 Courtesy of the artist.



초대일시 / 2013_0221_목요일_05:00pm

참여작가 고진영_남화연_정연두_히라키 사와_유현미_마이클 왕

주최 / 하이트문화재단 후원 / 하이트진로주식회사 기획 / 한금현_사무소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하이트컬렉션 HITE Collection 서울 강남구 청담동 132-12번지 하이트진로주식회사 내 B1~2층 Tel. +82.2.3219.0271 hitecollection.wordpress.com




드로잉을 위한 공간들: 상상의 첫 발현에서 실험적인 형식까지 ● 『드로잉을 위한 공간들』은 드로잉에 대해 다각적인 분석을 시도해보는 전시다. 일반적으로 드로잉은 삼차원 대상을 이차원 공간에 구성하여 실제를 묘사하는 행위다. 하지만 이 전시에서 드로잉은 예술적 장르라기보다 '그린다'는 행위 자체를 의미한다. 새로운 매체가 출현할 때마다 다양한 형태의 드로잉 방법이 등장했고 드로잉에 대한 미학적 정의도 시대에 따라 바뀌어왔다. 그리고 지금은 인간의 수고뿐만 아니라 도구와 기계에 힘입어, 그린다는 행위는 실제 공간을 넘어 가상 공간에까지 확장되고 있다. 이 전시는 다양한 형태의 드로잉을 탐구하고 매체 변화, 혹은 작가가 드로잉을 자신의 작업에 위치시키는 양상에 따라 확장되는 드로잉의 개념을 성찰해본다. 여기서 순수한 의미의 드로잉이 무엇인지는 문제되지 않는다. 드로잉이 예술적 장르로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탐구하는 전시도 아니다. 드로잉은 그 자체로 끊임없이 독자적으로 발전하고 있지만 또한 다른 매체와 결합해 불가분한 공생을 모색하기도 한다. 이 전시가 탐색하려는 지점은 작품과 콘셉트의 중간 어딘가에 위치하는 드로잉에 대한 고찰과 그에 대한 작가의 입장과 태도이다. 나아가 매체적인 구분이 의미가 없어진 동시대 미술에서 이 같은 드로잉에 대한 탐색은 작가가 개념을 초기화하는 과정을 더듬는 데서 시작해 작품으로 드러날 때까지, 그 중간 과정을 드러내는 시도이기도 하다. ● 일반적으로 드로잉은 선을 위주로 그리는 행위, 혹은 작업 전반을 위한 스케치, 도안, 초벌 그림 등의 의미를 지닌다. 한편 드로잉의 사전적인 의미에는 '그리다' 외에도 '끌어내다' '뽑아내다' '당기다' 등의 의미도 있다. 말하자면 드로잉은 어떠한 실체에서 정수를 뽑아내는 행위, 가장 중요한 부분을 최소한의 수단과 방법으로 나타낸 결과물을 말한다. 드로잉의 대상은 어느 무엇도 될 수 있고 어디에서든 가능하다. 실제로 드로잉은 인간이 자신의 주변을 묘사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시작되었고, 머릿속 추상적인 생각이 내 몸의 움직임을 통해 화면 위에 표현되는 최초의 기록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드로잉은 화면 위에 드러나는 흔적이며, 행위가 진행되는 동안의 시간성이 도면 위에 고착화된 하나의 형태이자, 바로 그 움직임을 포착하는 행위이다. ● 회화와 드로잉의 차이는 이제 명확하지 않다. 두 세기에 걸쳐 이 두 분야는 독자적으로 발전하고 각각의 영역이 확장되면서 경계가 불분명해졌다. 드로잉과 회화는 매체의 경계도, 장르의 구분도 희미해져 혼용되어 쓰이고 있다. 마찬가지로 기술이 발전하고 종류가 다양해졌다고 단순히 드로잉과 연계된 매체의 기술적인 차이를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드로잉 개념의 확장은 단지 예술 매체의 기술적 변화에 따른 드로잉의 변모에서 더 나아감을 말한다. 작업과 보는 이의 관계를 재조정하고, 작업의 위치와 개념을 달리 설정하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드로잉은 그리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보는 행위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드로잉은 화면 안에서 사물을 정지시키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드로잉의 선을 한눈에 볼 수 없고 화면을 아래위로, 그리고 가로지르며 보아야 하듯 우리의 시선은 몸과 눈의 움직임에 결부되어 드로잉 안에서 시간의 지속을 경험하게 한다. 드로잉에서 시간, 공간, 신체, 그리고 움직임은 근원적인 요소이며 이러한 개념이 매체에 따라 공간과 시간에 어떻게 삽입되고 변형되는지가 이 전시가 탐색하고자 하는 지점이다. ● 그렇다면 어떠한 개념이 드로잉에 펼쳐질 수 있는가? 어디에서 무엇이든 그릴 수 있는 드로잉의 개념에는 무엇이 가로지르고 있는가? 마치 비나 그림자, 혹은 메아리처럼, 기억 속에 남은 장면이나 무엇을 지시하는 행위처럼 드로잉은 현재 펼쳐지지는 않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겨져 있는 혹은 앞으로 펼쳐질 무언가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마치 의도적인 계획이나 디자인과 같이 구성적인 공간에 가로질러 있기도 하다. 문제는 작업을 형성하는 과정이 드로잉과 연결되는 중간에 다른 무언가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손과 몸을 써가면서 만드는 기존의 전통적인 매체가 어떻게 테크놀로지와 결합되어 동시대 미술까지 이어지며 새로운 감각을 제시하느냐 하는 문제에서 시작해, 드로잉의 사전적 의미가 상기시키듯, 대상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내는 행위와 결부된 상상력, 그리고 심리학적이고 현상학적인 관계 안의 어떤 긴장감 등으로 그 개념은 확장되어 간다. ● 'draw'는 '그리다'라는 동사이지만 'drawing'은 '그리다'는 행위가 현재형으로 진행되는 단어이다. 드로잉은 화면에 남겨진 행위의 흔적일 뿐 아니라 동작과 행위 자체를 모두 함축하고 있다. 그리하여 드로잉은 아이디어를 머릿속에서 끄집어내는 과정에서 시작해 '그리다'라는 신체의 동작과 더불어 일어나는 현상적인 상황 전체를 말한다. '그리다', '끌어내다', '이끌어내다' 등, 드로잉의 사전적인 의미는 인간의 상상력과 연관되어 있다. 또한 상상한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하나의 그림을 만든다'라는 의미다. 그러므로 드로잉과 상상력은 상호 순환적인 고리 안에 놓여 있다. 자신이 기억하는 것, 자신이 상상하는 것을 그리는 행위는 시선, 욕망, 그리고 인간의 주관적인 사고와 관련되어 있다. 여기에는 무의식적인 선택이 놓이게 된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드로잉에 대해(혹은 회화에 대해) '붓의 비'(the rain of the brush)라는 표현을 썼다. 몸의 움직임을 묘사하는 것은 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행위로 시작되나, 그리기의 과정 자체는 언어적인 구조를 넘어서는 무의식적인 행위라고 말한다. 실재의 존재에서 상상의 세계로 가는 첫걸음이 그리기 행위이다. 시선은 존재의 모든 양상이 어떤 교차점에서 만나는 것이고 드로잉은 상상적인 세계로 진입하는 중재의 공간 안에 있는 것이다. 라캉이 그리기를 '붓의 비'라고 말한 것은 시선이 놓이는 것에서 처음으로 하는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가 그림을 그리는 것은 무의식적인 행위여서 작가는 그의 붓에 대해 아무런 선택권이 없다. 그것은 마치 비와 같이 작가에게서 떨어져 나와 던져지는 것, 일격으로 가해지는 것이다. 마치 최면에 걸린 듯 무의식적으로 원격 조정되는 것이고, 다시 말해 붓에서부터 떨어지는 빗물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다른 무엇이 있다. 다른 것과 더불어 같이 일어나는 행위로 질서와 의미를 주도하는 상징적인 제도를 지나쳐서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더욱 교화적인 행위라는 점이다. 이러한 행위는 무언가의 흔적으로 남고, 자국 지어지고, 맵핑되는 것으로 어디서부터 우연하게 떨어지는 것이다. 이는 막연한 우연이 아니라 상징계에서 상상계로 넘어가는 그 무엇이며 드로잉은 이와 연관되어 있다. 그러므로 드로잉은 신체의 동작뿐 아니라 상상의 과정을 도출하는 행위이다. ● 한편 드로잉은 마치 건축에서 도면을 그리듯 철저히 계산되어 도출되는 그래픽이기도 하다. 드로잉은 작가의 아이디어를 최초로 대면할 수 있는 가장 근접한 매체이자 작업 실현의 첫 단계이다. 이러한 드로잉에 대한 개념은 연필과 같은 전통적인 매체뿐만 아니라 첨단의 컴퓨터로 구현된 그래픽일 경우도 마찬가지다. 혹은 건축 도면 같은 계획적인 드로잉도 역시 작업의 실현을 위한 구조로서 작용한다. 그러나 여기서 매체의 물리적인 변화는 부차적인 문제이고 작업의 일차적 실현을 위해 드로잉에 철학적, 문화적, 예술적 개념들이 덧씌워지는 과정, 그리고 그 개념이 어떤 맥락에서 받아들여지는가가 주요한 지점이다. ● 『드로잉을 위한 공간들』에 참여하는 고진영, 남화연, 정연두, 히라키 사와, 유현미, 마이클 왕 등 6명의 작가들은 각기 회화, 사진, 비디오, 컴퓨터 그래픽, 설치, 퍼포먼스 등의 다양한 매체와 더불어 드로잉의 새로운 개념화에 동참하고 있다. 참여 작가들은 드로잉과 다른 매체와의 관계, 그로 인한 담론의 확장, 드로잉에서 확장된 개념적 작업의 공공적 역할 등을 예술적인 관점뿐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철학적인 관점으로 들여다본다. 전시를 진행하면서 각기 다른 매체로 다양한 방식으로 작업을 실현하는 작가들에게 드로잉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듣게 된다. 이들은 실험적이고 복합된 형식의 작업(cross-disciplinary work), 혹은 협업적인(interdisciplinary) 접근 방식을 취하며 답하고 있다. 그리하여 드로잉은 공간, 시간을 가로지르며, 회화적이고 건축적이고 가상적으로 확장되며 공연, 무대, 문학, 음악, 무용 등의 다른 매체들과 더불어 공존하고 상호작용한다.
고진영_리플렉션 Reflection_디지털 C 프린트_178×240cm_2011 Courtesy of the artist.

고진영은 다양한 방식으로 사진을 이용한 드로잉을 선보인다. 빛, 구도, 조명, 인위적 무대 연출, 또는 기계적 이미지 변형 등의 고전적인 방법에서 사진적 조작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업에는 여러 방식의 사진적 그리기 도구가 접목되어 있다. 고진영은 이 도구를 의도적으로 비틀어 사용한다. 그가 대상으로 삼은 일상은 조명, 세트와 같은 사진적 도구로 말미암아 화면 안에서 초현실적으로 재구성되고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펙터클한 이미지는 제작 과정을 드러냄으로써 작품을 둘러싼 사회적 신화와 환상을 깨버린다. ● 「비너스의 탄생 (The Birth of Venus)」(2010)에서는 작가가 인위적으로 이미지 조작을 조작하여 한 장소에 엮인 각기 다른 시간대를 한 화면에 놓이게 한다. 화면은 솔기 없는 옷감처럼 이어져 있지만 그 안에 든 무수한 시간대는 사진의 초현실적 시간성을 드러내며 프레임 안에서 이미지와 함께 뒤섞여버린다. 작가는 사진을 자유롭고 능란하게 다루며, 있는 그대로 이미지를 투명하게 재현하기도 하고, 조명과 무대 세트 등 사진적 장치를 이용한 인위적 화면 구성을 도모하거나, 사진적 조작을 통한 시간과 공간의 재배치하는 등 적절하게 이용한다. 전혀 다른 문맥의 이미지를 파편적으로 나열하는 전시설치 방식 또한 얼핏 보면 순진해 보이지만 전략적이기도 하다. 실험실의 방울뱀, 인공과 자연의 대비가 뚜렷한 풍경 이미지, 상업적이면서도 문화적인 사립 박물관의 모습, 그리고 도시적 환상과 슈퍼 히어로의 파멸을 대비시키는 영화 세트와 같은 장면 등 시퀀스 없는 이미지를 나열함으로써 작가는 일상과 거리 두기를 하는 한편, 신화적인 사회 현상의 실체를 폭로하고 있다. 고진영의 사진은 풍경도, 정물도, 스냅샷도, 연출 사진도 아니다. 하지만 사진적 장치의 구조를 해체하고 더불어 자연, 인공, 죽음, 생명, 신화, 일상, 환상, 이동, 변환, 사실성과 조작 등 고정되지 않는 개념으로 보는 이의 사고를 무한 확장시킨다.
남화연_어 세트 오브 쓰리 a set of three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150×100cm_2011 Courtesy of the artist.
남화연_어 세트 오브 쓰리 a set of three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150×100cm_2011 Courtesy of the artist.

남화연에게 드로잉이란 단순한 그리기가 아니다. 드로잉의 요소는 가능한 물질의 입자, 가능한 사건의 알리바이 등 작업의 개념적 기본 구조를 도출해 낼 수 있는 공식과 같은 역할을 한다. 작가에 의하면 화학책은 인간의 사고의 과정과 분자, 원자 등 물질의 기본 요소들이 표면을 구성하는 과정이 비슷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이 드로잉으로 나타나면서 일종의 종이 위에서 펼쳐지는 퍼포먼스나 무용과 같다고 한다. 그리하여 남화연의 드로잉에 대한 관심은 점차적으로 움직임 혹은 일종의 코레오그래피(choreography)로까지 확장된다. 종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이들을 어떻게 배치하느냐가 중요하다. 종이는 마치 무대와 같고 각 요소들은 마치 퍼포머와 같다. 그리고 드로잉의 행위는 종이 위에서 하는 퍼포먼스와 같다. 또 여기에는 부재에 관한 감각이 있다. 작가의 머리 속에는 화학적 반응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지만, 여기에는 아무런 목적이 없기 때문이다. 퍼포머들도 존재하고 있기는 하지만 동시에 부재하고 있고, 아무런 목적 없이 움직이고 있는 것과 같다. 「세 개로 이루어진 조합 (A Set of Three)」(2012)는 이케아(IKEA)의 조립식 가구 매뉴얼을 그대로 인용해서 재배치한 드로잉 작업이다. 이케아는 생활의 방식을 규정짓고 있다. 이케아 제품에는 매뉴얼이 있어 그 매뉴얼에 따라야 하고 여기에는 반감이 따른다. 삶을 지배하고 있는 이케아는 한편으로는 민주적인 디자인을 갖고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전체주의적인 양상도 가지고 있어 이율배반적이다.
정연두_다큐멘터리 노스텔지아 시놉시스 드로잉_잉크젯 프린트_29×40cm_2007 Courtesy of the artist.
정연두_다큐멘터리 노스텔지아 시놉시스 드로잉_잉크젯 프린트_29×40cm_2007 Courtesy of the artist.
정연두_다큐멘터리 노스텔지아 시놉시스 드로잉_잉크젯 프린트_29×40cm_2007 Courtesy of the artist.
정연두_아돌레센스 Adolescence #8_Inkjet print on custom paper_152×205cm_2010 Courtesy of the artist.
정연두_아돌레센스 Adolescence #12_Inkjet print on custom paper_107×140cm_2011 Courtesy of the artist.

정연두는 일상의 소소한 경험에 작가적인 상상력이 동원된 사진, 영상, 퍼포먼스, 설치 등의 다양한 매체를 이용함으로써 실제와 환상의 경계를 탐색하는 작가이다. 「아돌레센스 (Adolescence)」 (2010)는 젊고 건강한 학생들의 캠핑 현장을 담은 생생한 사진 기록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산을 좋아하는 작가의 개인적인 취향과 젊음에 대한 향수가 뒤섞인 이미지의 재현이기도 하다. 그러나 작가는 현장의 생생함을 순간을 포착하는 사진으로 잡아내는 것이 아니라 화면의 구도를 정하고 빛을 조정하고 톤을 맞추어 마치 그림을 그리듯 정교하게 장면을 만들어낸다. 사진은 한 순간을 포착하는 스냅 사진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실상은 작가에 의해 정교하게 계산된 빛으로 그리는 그림과도 같다. 특히 정연두 사진에서의 빛은 단순한 조명이 아니라 대상과 배경에 어우러지는 유동하는 물질이며, 따뜻하고 완숙하며 자연스러운 것으로 화면 안의 모든 것들을 살아 움직이게 한다. 정연두는 카메라를 통해, 빛과 톤으로, 그리고 사진적 대상을 실시간 점검하면서 사진으로 하는 드로잉을 한다. ● 「아돌레센스」와 같이 전시되는 「다큐멘터리 노스탈지아 시놉시스 드로잉 (Documentary Nostalgia Synopsis Drawings)」(2007)은 정연두가 2007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었을 때 제작된 영상 작품인 「다큐멘터리 노스탈지아 (Documentary Nostalgia)」(2007, HD Projection, 85min)의 시놉시스를 위해 만들어진 36개의 드로잉이다. 작가의 어린 시절의 꿈과 환상을 영화로 제작한 「다큐멘터리 노스텔지아」는 작가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의 상상에 있는 세계이기도 하다. 여기서 드로잉은 작가의 상상력에 대한 스케치이며 타인과의 소통의 수단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본 작업은 보여주지 않고 작업을 위한 시놉시스 드로잉과 작품의 제작 광경을 담은 영상만이 설치된다.
히라키 사와_에어라이너 Airliner_video, silent, color_00:03:00_2003 Courtesy of the artist and Ota Fine Arts.
히라키 사와_사야를 위하여 For Saya_ 2 channel video on two LCD monitors in wooden box, silent. b&w_00:03:15_2011 Courtesy of the artist and Ota Fine Arts.

히라키 사와는 자신의 사적인 공간 안에서 만든 영상 작업으로 주목 받기 시작했다. 사와는 집안 내의 인테리어를 움직임을 위한 장치로 변형함으로써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 사건이 벌어지도록 환상적으로 바꾸어놓는다. 손으로 이용한 그림과 디지털 애니메이션의 중간에 위치한 그의 영상작업은 일상적이고 평범한 삶의 오브제들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히라키 사와의 「에어라이너 (Airliner)」(2001)는 텅 빈 책을 손으로 넘기며 그 속도감으로 비행기가 날아오르는 영상을 보여주는 작업이다. 이러한 행동은 마치 플립북을 연상시키지만 막상 이미지는 손으로 그려진 것이 아니라 디지털로 만들어진 영상이다. 비행기의 밀도감과 지속적인 움직임은 동시대의 글로벌한 전환과 암울한 혼잡을 상징한다. 동시에 사와의 상상력은 비행기의 에어쇼와 같은 즐거움과 놀이를 관객에게 제공한다. ● 「사야를 위하여 (For Saya)」(2010) 는 두 개의 비디오로 이루어진 영상으로 아주 작은 모니터를 나무 박스 안에 넣어 제작한 영상 설치작업이다. 이 작업은 히라키 사와의 최근의 작업인 「윤곽(Lineament)」의 전초적인 작업이라 할 수 있는데 여기서 작가는 "편차(off set)"라는 개념을 시각적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우리가 무언가를 기억하고 또 그것을 기억을 상실하는 과정은 흔히 경험하는 것인데 여기에는 언제나 편차가 있다. 히라키 사와는 이러한 편차적인 경험으로부터 우리가 어떻게 기억을 되살리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를 영상작업으로 시각화하고 있다.
유현미_네 번째 별 No.2(Composition Series)_C 프린트_163×150cm_2008 Courtesy of the artist.
유현미_보마와 석류 Boma Posed for 12 minutes(Portrait Series)_영상_00:12:00_2010 Courtesy of the artist.

유현미의 작업은 그린다는 행위와 그림을 보는 방식에 대한 환영을 실제로 관객에게 제공하는 시도를 한다. 일반적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삼차원의 공간을 이차원의 화면으로 옮기는 작업이고 여기에는 시각적인 환영이 뒷받침 된다. 유현미는 이차원의 공간에서 행하는 회화 작업의 요소들을 삼차원의 공간에서 행하고 있다. 공간에 사물을 배치하고 채색하고 배경을 덧칠한다. 실제의 빛을 무시하고 상상의 빛을 만들어 그에 맞는 그림자와 음영을 그려 넣는다. 원래의 거리감과 음영이 아닌 작가의 상상에 의한 회화가 삼차원의 공간에 그려진다. 마치 현실에서 대면한 비현실적인 경험을 유현미의 삼차원의 공간에서 하게 되며,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가 연극적 무대와 같이 몸이 개입되는 작업이면서 동시에 공간을 구성하는 행위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이 모든 작업의 완성은 사진으로 매듭지어진다. 이차원의 회화적 요소로 만든 삼차원의 공간은 다시 이차원의 사진으로 완성된다. 시각적 환영은 또 다른 환영을 낳는다. 유현미의 작업은 일차적으로는 사진인지 회화인지 모를 이미지의 매체의 혼동으로부터 시작하여 실제의 사물과 시각적 환영, 이차원과 삼차원, 인위적인 그리기와 자연스러운 사진적 재현 등의 경계에 서있는 작업을 통해 시각 이미지에 대한 기본적인 관념들을 뒤흔들어 놓고 있다. ● 2010년에서 시작하여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연작 「포트레이트 (Portrait)」(2010~)는 「정물 시리즈(Composition Series)」(2008~)와 같은 일루젼을 주며 얼핏 보면 회화인 것 같기도 하고 사진같이 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자세히 관찰하게 되면 이미지가 미세하게 움직이고 인물의 눈이 깜박이는 것을 보게 되면서 작업이 정지된 이미지가 아니라 움직이는 동영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회화와 사진의 이미지에는 시간이 정지되어 있다. 그러나 유현미의 동영상은 이러한 정지된 이차원의 이미지들이 놓치는 시간성이 폭로되는 순간을 잡아내고 있다. 시간이 개입되는 동영상에서의 움직임은 회화나 사진에서의 그리기 행위가 결국은 실제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일부만을 끄집어 내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결국 유현미에게 있어서 그리기(drawing)는 선택적으로 취하고 유연하게 진행되는 작업 과정의 일부이다.
마이클 왕_카본 카피 Carbon Copy(제프 쿤스 Jeff Koons, 다이아몬드 Diamond (Blue), 2005-06)_ -7.64 tons CO2, offset price: $76.40_2012 Collection of Lorenzo Rodriguez Jr. and Cristina Revert, New York. Courtesy of the artist and Foxy Production, New York.
마이클 왕_카본 카피 Carbon Copy_(아니쉬 카푸어 Anish Kapoor, 타라탄타라 Taratantara, 1999)_ -48.95 tons CO2. offset price: $489.50_2012 Collection of Lorenzo Rodriguez Jr. and Cristina Revert, New York. Courtesy of the artist and Foxy Production, New York.

마이클 왕의 관심사는 단지 드로잉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예술작업의 형식을 빌어 작업을 완성하는 것이 일종의 메커니즘을 구성한다는 사실에 있다. 다시 말하면 비예술적인 시스템을 받아들여 미적으로 인지하게 하거나 혹은 어느 정도 그 선상에 놓이기 위해서 전통적인 예술양식으로 제시한다. 어떤 프레임을 깨뜨리기 위해 전통적인 프레임에 있는 예술적인 관람 방식을 이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갤러리 가이드로 과학자를 고용한다던가, 탄소방출예방기금을 모금하기 위해 갤러리를 이용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마이클 왕은 드로잉에 관해서는 계획하는 도구, 혹은 뭔가를 추측하게 하는 작업이라는 측면과 더불어 무언가가 더 있다고 생각한다. 드로잉은 단지 그림을 그리는 행위 만으로 고정될 수 없다. 특히 건축가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많듯이 드로잉은 일종의 구조이다. 작가는 드로잉을 물질적인 매체로 본다기보다는 예상 가능한 실천에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하면 그리기는 하지만 절대 짓지는 못하는 건축가의 작업과 같은 것이라 생각하고 아이디어가 물질로 들어서는 첫 단계이라 한다. 「카본 카피스 (Carbon Copies)」(2012)는 어떤 현상을 예견한 프로젝트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물질적인 세계에의 개입이기도 하다. 작업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인 원작의 카피(Copies)를 파는 것은 지구의 대기를 실제로 변형하는 행위이다. 그의 작업은 예술작업의 가치기준에 대한 다른 시스템을 상상하게 하고, 다른 교환의 장치, 그리고 체계로서의 예술작품에 대한 다른 정의를 생각하게 한다. ● 「카본 카피스(Carbon Copies)」는 20개의 현대미술 작업 제작 시 생성된 탄소 발자국을 제공하고 있다. 탄소 발자국은 각각의 작업을 제작하기 위해 대기에 방출되었던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이다. 「카본 카피스」는 원작들을 작은 사이즈로 다시 제작한 모형으로 정육면체 형태로 이루어졌다. 원작들에 의해 방출되는 CO2의 양을 1:5,000,000의 비율로 축소한 볼륨의 정육면체가 각 모형의 사이즈가 되었다. 원작의 탄소 발자국을 상쇄할 수 있는 금액을 정확히 산출하여 「카본 카피스」의 가격으로 산정했으며, 탄소 방출 억제기금을 위한 증명서를 이 가격에 구매함으로써 탄소 발자국 상쇄가 가능하다. 각 「카본 카피스」의 판매로 조성된 기금은 탄소 방출 억제금으로 전환되며 원작의 탄소 발자국은 그제야 지워지게 된다. 탄소 방출 억제금을 위한 모금 프로젝트는 공기 중에서 CO2를 없애는 데 필요한 탄소 포집과 저장 기술 개발 등에 적극적으로 쓰이거나 대체 에너지 개발 등에 사용된다. 한 장에 10달러인 탄소 방출 억제기금 증명서로 대기 중 1톤의 CO2를 줄일 수 있다. ■ 한금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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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MAGINAIRE






리마지네르展 2013_0221 ▶ 2013_0328 / 일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3_0221_목요일_06:00pm

참여작가 권기범_권대훈_김채원_박성수 박제성_오용석1_오용석2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일요일 휴관

LIG 아트스페이스 LIG ARTSPACE 서울 마포구 합정동 471번지 LIG손해보험빌딩 1층 Tel. +82.2.331.0007~9 www.ligartspace.com




이미지와 상상력의 세계 ● 오늘날 우리는 세계 도처에서 이미지의 범람을 목격한다. 추상과 구상의 경계선이 사라지고, 매체에 대한 구분이 사라지고, 소재와 매체의 구분이 사라져 버린 지금, 다양한 이미지들이 끊임없이 생산되고 있다. 영화, 디자인, 광고, 예술 작품 등 광범위한 이미지의 활동들은 시각적 이미지에서 나아가 감각적, 정신적 이미지의 역할까지 수행하며, 이미지의 개념을 확대시키고 있다. 이렇게 우리의 삶 속에서 함께 호흡하고 있는 이미지의 힘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권기범_AMBIGUITY-Aoki-09-1_한지에 혼합재료_90×90cm_2009
권기범_AMBIGUITY-Collection-09-2_한지에 혼합재료_90×90cm_2009
권대훈_willowwacks.2_레진, 리넨에 아크릴채색_64.5×20×12.5cm_2012
권대훈_찰나-헤드폰을 쓴 남자 III Chalna-A Man & Headphone III_ 레진, 리넨에 아크릴채색_130×90cm_2013

일반적으로 이미지란 한마디로 정의 내릴 수 없는 인간의 특수한 정신 활동의 현상이라고 일컫는다. 이미지는 구체적인 현실도 막연한 개념도 아니다.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다른 의미와 개념을 가지는데 이는 이미지가 단순히 재현의 대상이 아닌 감각적 현상의 재현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미지는 객관적인 형상(形相)이 아닌 우리들의 정신적, 의식적인 현상으로 이해되며 주관적 가치를 가진다. 그리고 상상력이라는 개념이 이미지 안으로 들어오며, 이미지의 영역은 더욱 확대되기 시작하였다. 상상력은 인간의 감성과 이성의 교감의 매개체로 새로운 이미지의 현상을 형성한다.
김채원_우주쓰나미 그 이후:또 다른 세상3_판화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160×145cm_2011
김채원_아네모네_판화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100×80cm_2011

칸트는 '상상력'을 현전하는 대상이 없어도 직관 속에서 표상하는 능력이자, 다양함을 하나의 형태로 가져오는 능력으로 감성과 오성의 매개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였으며, 바슐라르는 '상상력'을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해내는 능력으로, 대상의 형태가 아닌 그 물질성을 들여다 보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이미지는 인간의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물이기에 시대와 문화를 초월한 보편성을 가지기도 하며, 역사에 따라 변화하기도 한다. 우리에게 현실의 세계와 이상의 세계를 연결 하는 것은 우리의 정신과 감성이며, 이 세계는 우리가 막연하게 짐작해 왔던 것보다 구체적으로 인간의 삶에 있어서 결정적인 작용을 한다. 질베르 뒤랑은 이 감성의 세계를 이미지와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로 보고 '상상계(l'imaginaire)'라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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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며든 풍경






권소영展 / KWONSOYOUNG / 權素暎 / painting   2013_0226 ▶ 2013_0311




권소영_landscape_화선지에 채색_130×70cm_2013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스칼라티움 아트 스페이스 SCALATIUM ART SPACE 서울 강남구 역삼동 828-10번지 Tel. +82.2.501.6016 www.scalatium.com




자연은 삶을 영위하는 곳으로, 일상에서 결핍 된 평온함과 안정감을 제공해 주지만 때때로 낯섦을 발견하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명승 고적을 담은 그림을 감상하며 정경을 더듬어가는 와유의 대상으로써의 자연에서 벗어나, 권소영은 자연을 사뭇 다른 관점으로 마주하며 기억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 권소영은 일상의 풍경 중 특정 요소를 반복하거나 과감한 구도를 구사하며 평범하지만 색다른 풍경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2009년 이후 '자연'이라는 광범위한 주제를 'landscape'이라는 일관된 제목의 회화 연작으로 다루어온 그녀는 자연의 일반화된 이미지와 거리를 두는 유연함을 보여주었으며, 일상의 풍경에 과거의 경험과 기억을 반추하는 요소들을 집약적으로 묘사하였다. 권소영의 풍경화는 자연이 주는 평온함을 그리기 위해 시작되었지만, 그녀의 본격적인 회화는 자연의 익숙함이라는 평범한 사고에 대한 의문에서부터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여행 혹은 사생을 통해 직접 접하는 산의 일부를 그리는 권소영은 일상에서 기억하고 싶거나 현실에서 오묘함이 강하게 느껴지는 생경한 풍경을 카메라에 담거나 드로잉을 한다. 이후 촬영한 사진 중 일부를 골라 작업의 소재로 사용하는데, 여러 사진에서 갖가지 나무들을 추출한 뒤 화면에 한데 모아 실제 전경에 기반을 둔 가상의 공간을 만들어 낸다. 그녀가 묘사하는 가상의 공간은 기억의 단편들이 조합된 곳이다. 산을 오를 때 느꼈던 감흥을 떠올리며 자연의 이미지들을 조합하지만, 자연에 대한 경건함과 평온함 같은 이전의 느낌을 순수하게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자연에 대한 감흥은 회상하는 시점에 따라 처음과는 사뭇 다른 이미지로 펼쳐지기에, 자연의 이미지들은 시간의 순차 혹은 공간의 연속성 없이 landscape 안에서 뒤섞이게 된다.
권소영_landscape_화선지에 채색_120×65cm_2013

『스며든 풍경』이라는 제목의 이번 개인전에서는 권소영의「landscape」연작 중, 산자락의 모습을 롱 샷(long shot)으로 담은 풍경, 이국적인 주택이 보이는 풍경, 나무와 풀들이 군집을 이루며 산을 뒤덮는 풍경의 회화 작품을 선보인다.「landscape」(2010)은 언덕 위에 있는 집 주위로 갖가지 나무들이 서식하고 있는 목가적인 장면을 원경으로 묘사한 것이다. 화선지 위로 물감이 번짐에 따라 언덕과 풀밭, 호수의 경계선이 희미해지며 세 개의 공간은 유려하게 이어진다. 경계의 모호함은 화면에 넓은 여백을 만들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화면의 중앙, 호수 가장자리에 횡단으로 이어지는 풀밭 위로 사람들이 지나가는데, 풀밭은 자연과 인간의 영역 사이에 위치하는 곳으로 현실과 가상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보인다. 자연에서 불변하는 대상을 발견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자연에 대한 기억 역시 고정되어 지속되지 않듯, 화면의 여백은 자연에 대한 여러 감흥들의 교차를 위한 텅 빈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다.
권소영_landscape_화선지에 채색_115×50cm_2012

나무와 수풀의 묘사에 있어 권소영은 집요함을 보여왔다. landscape 연작은 사생으로 소나무 숲을 그린「林」(2009)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초기에 그녀는 소나무의 건조한 질감과 솔잎의 날카로움을 집약적으로 묘사하였는데, 자신의 경험을 회화로 옮길 때 가감되는 여러 감흥들에 따라 익숙한 풍경들이 이국적이고 낯설게 다가오는 것에 주목하게 된다. 이후 대상의 외형을 오롯이 재현하기 보다는 자연물에서 일정하게 나타나는 패턴들을 발견하고, 이를 반복하여 나타내거나 점묘법을 사용하며 다양한 기법으로 풍경화를 그리게 되었다. 채도 높은 주황색과 녹색의 나뭇잎들이 산의 앞뒤로 빽빽하게 펼쳐진「landscape」(2012)은 보색 계열의 색들이 한치의 물러섬 없이 골고루 화면을 덮고 있어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붓을 날카롭게 세워 수 많은 점들을 찍어 수풀을 집요하게 묘사하였는데, 원경과 근경의 구분이 모호해져 평평한 화면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 작품은 지인이 해외에서 촬영한 사진을 우연히 접한 뒤 이를 회화로 옮긴 것인데, 그녀는 자신의 관심 주제인 자연을 담은 사진에서 묘한 끌림을 느꼈으며, 타인의 생소한 경험에서 낯익음을 발견하게 된다. 사진이 한시적인 특징의 기록물임을 고려할 때, 사진을 회화로 옮긴 권소영의 풍경화는 일시적인 순간을 연장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으며, 이는 과거와 현재, 타인이 회상하는 산과 권소영의 감정이 투과된 산이 조우하는 공간으로 볼 수 있다. ● 최근「landscape」연작에서 권소영은 기존의 안정적인 구도에서 비껴나서 동적인 구도로 변화를 시도한다.「landscape」(2013)은 수풀과 동그랗게 굽은 나무가 만들어낸 구멍 사이로 호수 너머의 들판이 보이는 독특한 구조의 풍경화이다. 자연물이 만든 구멍을 통해 무언가를 바라보는 것은 관음의 행위를 상기시키는 동시에 마주할 수 없는 과거의 기억을 회상하고자 하는 욕망, 도달할 수 없는 대상을 패티쉬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원경에 있는 들판은 근경에 있는 나무와 풀밭보다 더욱 선명하게 묘사되며 역원근법의 특징을 보인다. 원근법이라는 회화의 통념으로부터 자유로운 모습을 보이는 권소영의 풍경화는 자연과 이를 바라보는 사람 즉, 대상과 관람자라는 이분법적 관계까지 모호하게 만든다. 자연을 바라보는 관람자는 대상을 바라보는 주체인 동시에 역으로 자연으로부터 바라봄의 대상이 되는데, 이처럼 자연은 우리에게로 우리는 자연에게로 서서히 교차하며 스며들어 간다.
권소영_landscape_화선지에 채색_62×100cm_2013
권소영_landscape_화선지에 채색_76.5×173cm_2010

「landscape」(2012)은 자연과 이국적인 주택의 모습을 담은 풍경화이다. 마을 초입에 명판을 세로로 길게 걸어놓은 듯 거친 흑색의 바위가 화면 양 끝으로 기다랗게 자리하고 있는 흥미로운 구도이다. 바위는 화면의 프레임 역할을 하는데, 시선은 이내 바위를 가볍게 스치며 화면 가운데의 붉은 지붕들이 모여 있는 마을로 향하게 된다. 바위와 덤불, 나무는 다소 투박하고 거칠게 표현된 데 비해 건물들은 규칙적이고 잘 정돈된 외관을 갖추고 있다. 특히, 건물의 지붕과 창문은 일정한 길이의 선과 동일한 크기의 사각형이 촘촘하게 들어선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자연물의 유기적인 형태는 세련되고 정갈하게 표현된 건물과 대비를 이룬다. 짙은 색의 수목과 흰 집, 주황색 수풀로 이루어진「landscape」(2013)은 주황색의 덩어리가 화면을 점유하는 듯한 모습이다. 사람들이 입은 등산복, 건물의 지붕 등 자연물 이외의 것을 묘사하는 데에 사용되었던 주황색이 여기서는 자연의 색감으로 나타나고 있다. 붉은색의 부드러운 덩어리는 초현실적인 느낌을 자아내며, 평범한 풍경을 인식의 너머에 있는 비가시적인 공간, 부유하는 공간으로 변하게 한다. ● 권소영은 일상의 풍경을 단순히 조합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 풍경에 기억을 환기시키는 색감을 입힌다. 4년간 진행해온 풍경화 연작은 landscape이라는 하나의 제목을 가지고 있지만, 그녀는 같은 단어임에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른 어감의 landscape을 만들어 간다. (2013.02) ■ 이세연
권소영_landscape_화선지에 채색_70×130cm_2012
권소영_landscape_화선지에 채색_120×85cm_2012



나는 익숙하고 편안한 풍경을 찾아다니던 중 낯설거나 이국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의 오묘한 풍경에 어느 순간 매력을 느끼게 된다. 그 풍경을 바라보며 떠오르는 색감을 작품의 전반적인 색으로 결정한다. 보랏빛, 주홍빛, 푸른빛의 나무와 집이 있는 풍경, 풍경 속에서 바라본 또 다른 풍경 등 나에게 스며든 자연은 나의 경험과 느낌을 토대로 새로운 풍경으로 재탄생된다. (2013) ●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도시의 편리함에 모여들어 살고 있지만 도시의 오랜 생활은 금세 지치고 사람들은 자연으로의 여행을 꿈꾼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산에 오르고 아름다운 경치를 찾으러 다니곤 한다. 나 또한 서울이라는 도시의 바쁜 일상 속에서 새로운 안식처를 갈망하다가 산에 오르고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다니게 되었고, 그 곳에서 사생을 하며 현장에서 느꼈던 느낌을 토대로 풍경을 그린다. 풍경을 그리면서 갈증을 해소하고 그 속에서 쉬는 상상을 하였고 나의 그림을 보는 감상자들이 그림을 보는 순간 편안하고 기분 좋게 쉬었다 갈 수 있기를 바란다. (2012) ● 나의 작업은 직접 산에 올라가고 체험하고 느낀 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산 속에서는 인공적 가감의 흔적이 없는 수많은 존재들, 바람에 이리저리 움직이는 풀과 나무들, 말 그대로 자연 그 자체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들과 마주한다. 나는 내가 직접 체험하며 만났던 자연의 존재들로부터 느꼈던 감정을 담아 화면에 재현해 낸다. (2011) ■ 권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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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꽃을 꽂아줄께 Let me be sure to wear some flowers in your mind.




홍지윤展 / HONGJIYOON / 洪志侖 / painting.mixed media 2013_0213 ▶ 2013_0430 / 백화점 휴점일 휴관



홍지윤_너에게 꽃을 꽃아줄께 인생은 Let me be sure to wear some flowers in your mind Life is_ 병풍, 장지에 수묵채색_250×325cm_2013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홍지윤 홈페이지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30am~08:00pm / 백화점 휴점일 휴관

2013_0213 ▶ 2013_0430

롯데백화점 본점 명품관 에비뉴엘 LOTTE DEPARTMENT STORE AVENUEL 서울 중구 남대문로2가 130번지 롯데백화점 에비뉴엘 B1~4층 Tel. +82.2.726.4456 store.lotteshopping.com

2013_0301 ▶ 2013_0331

롯데갤러리 일산점 LOTTE GALLERY ILSAN STORE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장항동 784번지 롯데백화점 B1 Tel. +82.31.909.2688 www.lotteshopping.com blog.naver.com/lotte_ilsan



롯데백화점 명품관 AVENUEL에서는 새봄을 맞아 퓨전 동양화의 대표주자 홍지윤 작가의 꽃그림 16점을 선보인다. 작가 홍지윤은 특유의 경쾌하고 사랑스러우며 풍성한 에너지를 담아 붓을 놀린다. 그녀는 작품 속에 밝고 화사한 색, 흐드러지는 글씨와 함께 주로 꽃과 새, 그리고 여인이 일관되게 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뿐만 아니라 화선지(동양화종이)에 수묵채색으로 그리는 것이 특징인 동양화의 형식적 한계를 넘어 점차 캔버스 위에 아크릴, 형광물감의 과감한 사용, 영상 미디어, 퍼포먼스 등, 동양 회화정신을 현대회화 형식으로 확장, 성공적으로 발전시킨 퓨전 동양화의 일세대 이기도 하다. 그녀의 작품을 설명할 때, 굳이 동양화가 언급되는 이유도 작품에 흐르는 일필휘지의 표현법이나 문학과 그림이 공존하는 동양 특유의 기운, 강렬한 예술적 몰입이 내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홍지윤 작가에게 꽃은 '아름다움'과 '여성', '생에 대한 환희'를 의미한다. 또한 역사와 질곡의 삶에 예고 없이 찾아오는 기쁨의 순간과 생명체의 치열함을 역설한다. '꽃'이 갖는 역사적, 사회적 의미를 통찰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본능적으로 '꽃'을 안다. 세상에 많은 말과 설(說)에도 불구하고 도처에 존재하는 꽃처럼 작가는 꽃을 통해 삶의 안과 밖, 갈등과 화해, 현실과 사유를 넘나들고 있는 것이다. ● 홍지윤 작가에게 색은 '기운'(energy)이다. 주로 형광색을 사용하는데, 이는 전통적 색채인 오방색의 현대적 변용으로 해석된다. 작가는 이 밝고 화사한 색을 통해 기운을 얻고 시적(詩的) 영감을 받는다고 고백한다. 즉 형광오방색이 주는 강렬함은 작가 스스로에게는 강렬한 예술적 몰입을 경험하게 했고 이는 거꾸로 작품을 통해 자유로움, 에너지, 생명력, 열정, 삶에 대한 긍정의 의지가 뿜어져 나오는 듯 하다.
홍지윤_너에게 꽃을 꽂아줄께 1,2,3,4 Let me be sure to wear some flowers in your mind 1,2,3,4_ 장지에 수묵채색_117×80cm×4_2013

에비뉴엘 지하1층부터 4층까지 전 층에서 선보이는 홍지윤 작가의 작품은 2008년부터 2013년최근 작까지 대표적 꽃 그림을 모았다. 가장 상업적인 장소에서 낯설지만 친숙하게 마주하게 될 거대한 꽃 병풍을 비롯한 15점의 작품들을 통해 꽃이 피어 화려한 봄, 화려하지만은 않을 당신의 마음에 풍성하면서도 울림 있는 꽃으로 꽂아지기를 바란다. ■ 성윤진
홍지윤_내 마음에 내리는 꽃비 Flower rain drops falling on my mind_우산에 디지털 프린트, 설치_2013

어릴 때부터 붓을 쥔 홍지윤에게 시서화는 하나이고, 그 자신과도 하나가 되어 있는 듯하다. 그것은 진정 하나였기에 여럿도 될 수 있었다. 거리와 무대, 화폭과 다양한 인터페이스를 망라하는 홍지윤의 자유분방한 작품은 '퓨전 동양화'라고도 불리는데, 무슨 이국적인 메뉴판 같은 이러한 꼬리표는 그녀의 작업(=삶)이 곧 '퓨전'이라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한문으로 씌여진 추상적 화론으로 첩첩이 쌓여있는 심오한 동양화의 세계에서, 시를 짓듯이 노래하듯이 온몸으로 풀어내는 홍지윤의 작업은 아마도 작품을 발표하는 매순간들이 금기를 위반하는 장이었으리라. 그러나 홍지윤은 동질성에 역행하는 이러한 이질성에 대한 반감이나 저항을 또 다른 반감과 저항으로 맞대응하는 여성 투사 같은 심각한 부류는 아니다. 작품에 분명하게 보이듯이, 그녀에게는 태양과도 같은 강한 긍정과 낙관의 힘이 있다. 현실의 제도 속에서 살아가는 한 인간에게 가해지는 압박에 순응하기보다는, 자신의 본능에 충실했음에 후회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완전히 충실했다면 후회할 일도 없는 것이다. ● 칼리그래피 스타일의 디자인이 유행하기 훨씬 전부터, 홍지윤은 편안한 듯 솜씨 있는 아름다운 한글 서체로 시를 써왔다. 시는 작업의 출발이고, 작품 곳곳에 이런 저런 형태로 착상한다. 작품의 소재이자 주제는 '구름이 꽃으로, 꽃이 새로, 새가 사람으로, 사람이 사랑으로, 사랑이 꿈으로...'라는 작가의 말에 잘 드러나 있다. 여기에서는 모든 것이 고정됨 없이 흘러간다. 꽃과 새, 사랑과 꿈같은 이미지를 물들이는 색의 범위는 전통색인 오방색과 무지개빛 총천연색을 넘어 형광 빛 인공광원까지 이른다. 특히 최근작에 등장하는 색동 꽃과 색동 새는 전래의 소재 및 색감과 팝(Pop)의 그것을 종합한다. 색동 바탕에 거대한 꽃이 둥 떠 있는 작품「Life is colorful」(2010) 연작에 나타나듯, 물감을 듬뿍 묻혀서 쓱쓱 그어진 직선과 곡선, 그리고 한순간도 멈추지 않는 폭발적인 색채 에너지가 있다. 형태로부터 자유로운 몇 개의 획이 꽃의 형상을 취하며, 수직 또는 수평으로 그어진 몇 개의 선이 바탕을 만든다. 형상과 바탕은 꽃잎과 새의 날개처럼 그 국면만 다른 동일한 계열을 이룬다. ● 작품은 대개 여러 개의 패널들이 느슨하게 붙어있는데, 다채롭지만 혼란스럽지 않고 자신의 작품 어떤 단편과 만나도 어울릴 듯 호환성이 있다. ...중략... 홍지윤은 예술이 '학문이나 기법이기 보다는 영혼, 눈빛, 별빛, 달빛이 미래의 언어'라고 확신한다. 오랫동안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의, 결코 손쉽게 내려진 것만은 않은 이러한 결론은 정전주의에 내재된 가부장적 어법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함의 발로라고 보여진다. 그것은 깊이에 대한 표면의 대응인데, 마침 실체와 본질의 기나긴 시대를 넘어, 표면(들)로 이루어진 시대가 도래 했다. ...중략... 오랜 시간 지필묵을 체화했던 몸은 바로 여성의 몸이다. 그리고 그 여성은 사랑과 사랑이 야기하는 역설적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중략...
홍지윤_너는 내 모든 것 너는 내 영혼 You are my everything You are my soul_나무 차에 아크릴채색_2012
홍지윤_낭만 Romance_퍼포먼스_2012

이러한 주제와 형식에서 매춘과 사랑과 예술의 동일성을 확인했던 근대의 공감각주의자 보들레르가 떠오르지 않는 바도 아니다. 장지에 수묵채색으로 그려진, 검은 바탕에 가득 핀 꽃은 화려하면서도 죽음의 그림자가가 짙다. 어둠이 곧 삼켜버릴 듯한 색은 순간적으로 빛이 된다. 선이자 획이자 꽃잎은 순간적인 응집력을 가질 뿐이다. 또는 우주로 산산이 흩어지려는 해체의 순간 같기도 하다. 그것은 어디에도 뿌리를 내리지 않고 붕 떠 있다. 만발한 꽃과 새의 날개 짓에 내재된 사랑의 은유에 종이꽃이나 검은색으로 상징되는 죽음의 은유가 겹쳐진다. 신부의 꽃가마나 장지로 떠나는 상여를 꾸미는 꽃의 이미지에는 사랑과 죽음의 상징적 우주가 공유된다. 홍지윤의 작품에서 여자와 남자의 만남은 사랑과 죽음의 만남처럼 치명적이다. 편지지, 그림, LCD 화면, 이불 위의 자수 등으로 나타나는 아름다운 서체의 글자들은 사랑 또는 죽음의 담론들로 채워진다. 이 조합이 동서고금의 시와 노래를 대부분 채워왔던 그 보편적인 주제이다. ...중략... '그녀, 아름다운 꽃'이라는 자작시 제목처럼, 꽃은 홍지윤에게도 여성이다. 그녀에게 '꽃은 아름다움과 여성, 생에 대한 환희'를 통칭한다. 또한 '역사와 질곡의 삶에 예고 없이 찾아오는 기쁨의 순간과 생명체의 치열함을 역설'한다. 홍지윤의 작품의 대표 이미지가 된 꽃은 인간의 희로애락부터 우주와 생명의 생멸까지 포괄하는 주제이지만, 여성이자 작가인 홍지윤에게 꽃은 보다 특화된 이미지로 다가온다. 화려한 색과 에너지로 가득한 꽃의 우주와 조응하는 것은 사랑의 담론이다. 그것은 단지 꽃이나 시로 이러저러한 사랑의 경험과 사연을 재현하거나 표현하는 문제가 아니다. ...중략... 작품은 사랑의 강렬함을 나타내는 기호로 가득하지만, 기호가 향하는 것은 특정한 대상이 아니다. 이 여성-작가에게 예술작품은 그자체가 사랑의 담론인 것이다.
홍지윤_어진바다_찬란한 물결 An Ocean Of Mother Nature each_장지에 수묵채색_210×150cm×5_2013

줄리아 크리스테바는『사랑의 역사』에서 한 여성에게 사랑한다는 것은 글쓰기와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사랑에 빠진 여자들이 글을 쓴다. 무엇인가를 글로 쓴다는 것은 사랑을 글로 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담론의 한 시련이다. 작업이란 사랑처럼 시련이자 도전이며, 절망이자 희열이다. 사랑의 언어는 직설적이지 않고 은유적이다. 사랑은 언어가 당면한 의사소통 능력이 시험에 붙여지는 시련과 같다. 홍지윤에게도 사랑은 말해진 그 무엇이다. 그래서 그녀는 틈만 나면 그토록 여기저기에 글을 써댄다. 사랑의 환몽이 실현되는 장인 작품 속, 이런 저런 형식으로 빼곡히 씌여진 글은 히스테리 환자의 지나친 다변처럼 실어증의 또 다른 증후이다. 어떤 시기에 특정한 수신자를 가졌을지도 모를 사랑의 담론들은 일반 관객에게도 읽혀진다. 그러나 그것들은 시자체가 그렇듯이 불확실하고 은유적 압축의 상태로 보여진다. 크리스테바에 의하면 은유는 융합이다. 왜냐하면 두 가지 용어가 온전하게 지속되는 비교와는 달리, 은유는 두 부분 중 어느 것도 배제하지 않으면서 이원성을 확인하기 때문이다. 은유는 변신 또는 공감각이 되고, 은유가 만들어내는 무한화 된 의미는 독특하게 육감적이고 관능적인 향락으로 전환한다.
홍지윤_화려한 경계 Gorgeous Boder_영상_00:06:00_2012

흩뿌려진 자아는 오로지 은유로써만 중심이 잡히고 글로 쓰일 수 있다. 홍지윤에게 꽃은 고정된 상징이기보다는 은유이다. 그것은 주체적이고 담화적인 쇄신과 위기의 역학으로서의 사랑의 체험, 그리고 그 언어학적 상관요소인 은유성을 내포한다. 은유로서의 꽃과 시는 표상 불가능한 요소이며, 이 표상 불가능한 것들이 기호들(signes)의 기반이 된다. 홍지윤의 공감각적인 작품은 기호들 사이에 있다. 크리스테바에 의하면 사랑하는 상태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글쓰기의 상태의 하부 구조는 공감각이다. 이러한 교환은 또한 하나의 전염이자 압축이다. 공감각이란 불안정 상태에 있는 언어, 아직은 존재하지 않고 이미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언어 속의 은유이다. 홍지윤의 작품에서 중요한 요소인 여성성 역시 사랑의 은유처럼 표상 불가능한 이타성을 지닌다. 여성은 에로스만큼이나 죽음인 리비도로 활기차다. 상상적인 면에서 여성의 욕망은 죽음에 더 가까이 탯줄로 연결되어있다고 간주된다. 그것은 생명의 모태적 원천이 생명을 파괴할 수 있는 힘을 얼마나 지니고 있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홍지윤의 작품에서 생명과 여성의 순환 고리에는 사랑과 죽음이라는 연결 고리가 포함되어 있다. (『홍지윤, 공감각적인 사랑의 담론』中 발췌) ■ 이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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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보다 (관찰, 관조)




윤승연展 / YOONSEUNGYEON / 尹升延 / mixed media 2013_0227 ▶ 2013_0305



윤승연_신경전_혼합재료_24×26×4cm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21209c | 윤승연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Korea Craft & Design Foundation 서울 종로구 인사동 11길 8 Tel. +82.2.398.7900 www.kcdf.kr



타인과 거주하며 존재하는 우리는, 항상 자신이 속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어떤 누구 또는 어떤 무엇에게 말을 걸며 살아간다. 상상력의 대화 또는 일방적인 개입으로 이루어진 이것은 익명의 타인이기에 가능한 관계 맺음들이다. 지하철이나 버스 안, 공원 어디든 초점 없이 앉아있거나 어딘지 모르게 이끌려 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누군가를 바라보며, 관조의 시각으로 그 와의 상상의 공간을 만들곤 하였다.
윤승연_속닥속닥_혼합재료_37×30×4cm_2012
윤승연_시간은 거꾸로 간다_혼합재료_26×21×4cm_2012
윤승연_표정이 있는 집_혼합재료_26×36×4cm_2012
윤승연_물속을 걷다_혼합재료_52×920×10cm_2012
윤승연_Timing_혼합재료_26×38×3cm_2012

이런 관찰들이 나와 대상 사이에 제3의 공간으로 생성되어 모든 사유를 가능하게 하는 흥미로운 경계가 이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술가들은 그 누구보다도 이 경계에 민감하며 이곳에서의 의외성을 유연하게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일상을 바라보는 다른 관점에서 보이지 않는 삶의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는 일상에서의 즐거움을 포착함으로써 삶과 예술이 어우러져 더욱 풍요로워진 나와 너를 발견하게 된다. ■ 윤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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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아! 춤을 추어라 Dance Flowers!




전현숙展 / JEONHYUNSOOK / 錢炫淑 / painting 2013_0227 ▶ 2013_0312



전현숙_비는 그쳤고 눈부신 별들이 가득 했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194cm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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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3_0227_수요일_05:00pm

광주시립미술관 '갤러리 GMA' 기획초대展

관람시간 / 10:00am~06:30pm

갤러리 GMA GALLERY GMA 서울 종로구 율곡로 1(사간동 126-3번지) 2층 Tel. +82.2.725.0040 artmuse.gwangju.go.kr



시대를 거슬러 조선후기 혜원의 작품을 통해 미묘한 남녀 간의 심리를 읽을 수 있었다면, 오늘 마주하는 전현숙의 작품에서는 작가 개인의 훨씬 복잡다단한 내면의 감정들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다양한 감정들이 결코 작가 개인의 감정만이 아님을 발견하게 된다. 자신의 외형뿐만 아니라 비밀스럽게 간직하고 있는 속마음을 누군가에게 들춰내 보인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 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현숙은 두려움, 설렘, 억압, 자유, 욕망, 행복 등 마음 깊이 내재되어 있는 자신의 감정들을 오래전부터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그녀는 왜 서랍 깊은 곳에 보관해야 할 자신의 일기장과도 같은 속마음을 드러내 놓았을까? 아마도 자신의 감정을 드러냄으로써 마음의 위안을 얻고, 마음 깊이 잠재되어 있는 불안의 감정들을 극복해보고자 함이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전현숙_응석받이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60.6cm_2013
전현숙_니가 행복했으면해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33×77cm_2013
전현숙_오빠만 믿어봐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162.4cm_2008

전현숙에게 있어 작품은 대화의 窓이자 자신의 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거울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가 표현하는 모든 것들은 작가의 진실한 독백이며, 그 독백은 작가를 자아성찰의 길로 이끈다. 전현숙의 작품을 오래 지켜본 사람이라면 그녀의 작품이 형식적으로 얼마나 큰 변화가 있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분할 된 화면구성, 단순하고 거친 이미지, 강렬한 붓 터치가 10여년 전 그녀의 작품 경향이었다면 정제된 화면구성, 섬세한 장식표현, 정형화된 인물묘사 등은 최근 그녀의 변화된 작품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화면상에 나타나는 이러한 뚜렷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일관되게 사람을 그린다. 그리고 그 사람을 통해 우리는 작가가 느끼는 동일한 감정을 공유하게 된다. 이제 우리는 그녀가 마치 자기 자신에게 "꽃들아! 춤을 추어라" 라고 외치는 것처럼 보다 자유롭고 희망적인 삶을 함께 꿈꾸어 보자. ■ 임종영
전현숙_이슬을 털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116.7cm_2012
전현숙_꽃들아! 춤을 추어라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130.3cm_2012
전현숙_꽃들아! 춤을 추어라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194cm_2008


Wh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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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d - 점의 기록




유기종展 / YOOGIJONG / 劉基鍾 / photography 2013_0227 ▶ 2013_0331



유기종_seed - 언어1_디지털 프린트_100×150cm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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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3_0227_수요일_06:00pm_인사아트센터

2013_0227 ▶ 2013_0305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B1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2013_0311 ▶ 2013_0331 관람시간 / 10:00am~07:00pm

사진공간 목화 space photo 전주시 완산구 경원동 1가 Tel. +82.63.283.7478



감각의 지점 너머에 있는 어떤 상태. 결정의 이전이라고도 미결정의 세계라고도 말할 수 있는... 점의 시간, 씨앗 혹은 종자의 시간이란 그런 것이겠다. 싹이 움트고 여린 줄기에 잔 근육이 그어지더라도 절정의 순간은 아련한 예감뿐으로 존재하는 그것. 오랫동안 눈여겨 지켜보아야 비로소 드러나는 저 아름다운 것들의 실체.
유기종_seed - 마음_디지털 프린트, 가변설치_180×120cm_2012

기록한다는 것은, 지켜본다는 것은 결국 같은 말. 같은 태도. 포개 놓을 만한 관계동사. ● 상식 아닌 상식적인 원리 하나. 햇살의 달콤함이 제 아무리 황홀하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한 알의 사과는 결실하지 않는다. 사선으로 그어지는 빗물의 잔치와 바람의 소요가 제 몫을 다할 때, 이를테면 저마다 각자 일을 미루지 않고 시간의 궤적을 따라 때때로 우연과 필연을 반복하며 나아갈 때, 한 알의 과실은 그제야 제 존재를 드러낼 수 있다. 어느 날, 씨앗이 품고 있는 미지의 시간을 곰곰이 들여다본다. 시간이라는 결과 무늬는 제각각이지만 목적은 동일하게 관찰된다.
유기종_seed - 피다01_디지털 프린트_150×100cm_2013
유기종_seed - 이름4_디지털 프린트_150×100cm_2013

점과 점 사이의 거리는 심연처럼 멀고 허공처럼 아스라하지만 관계를 이루겠다는 신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점과 점들은 어느 순간 돌연 길고 단단한 선을 잇고야 만다. 그랬다. 점과 점들이 이어져 선을 이루고 선과 선이 포개져, 이윽고 어떤 세계가 비로소 완성되는 것. 그것은,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오롯한 존재로의 개화! ● 이 경탄의 시간을 작가는 미학적으로 표현하려 잠을 설치고, 이는 또한 근원에서 출발해 과정을 지나 마침내 분명하고 확실한 결실에 이르는 뭇 생명들의 지난한 존재의 완성을 미술적, 실존적으로 탐색하려는 긴 여정이라 말하련다.
유기종_seed - 대화_디지털 프린트_38×100cm_2013

그래서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원래의 형태로 촬영과 인화 또는 채색하는 것에서 벗어나 배태의 순간부터 개화와 결실까지 작가의 손끝으로 빚어낸 창작의 영역 안에 둔 까닭이 앞서 말한 이유이며 스스로 던진 질문에 대한 지금/현재의 대답이라 여기련다.
유기종_seed - 선_디지털 프린트_100×150cm_2013

언젠가부터 세계는 겉으로 드러난 결과만을 두고 논하는 간편한 논리에 감염된 지 오래다. 결과론에 발목 잡힌 세계에서 근원과 과정에 관한 탐구란 비효율의 구태로 오해되기 쉽다. 물질적 가치라는 일방적 신념을 통해 세상을 판단하는 한 인간은 영원히 발화하지 못하는 화석 안에 갇힌 한 점 씨앗과도 같지 않을까? ● 그러나 희망의 근거는 언제나 그렇듯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온유한 바람이 먼데서 온 손님처럼 불현듯 찾아온 봄날 아침, 창공에는 깨알보다 더 작고 작은 씨앗들이, (작지만) 우주만 한 무게를 지니고 흩날리고 있겠다. (이를테면) 닫혀있던 천 개의 창문이 열리는 풍경이다. 스스럼없이 마중 나가자. 어쩌면 천국보다 낯선 세계를 만날 수도 있을 테니. 그러나 우리 지상으로 가자. 씨앗의 시간이란 결국 삶의 시간이겠으니... ■ 유기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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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rnal light 영원한 빛




한호展 / HANHO / ?? / installation 2013_0228 ▶ 2013_0317



한호_Seoul Art Center Muesum, Eternal Light_LED_900×300×300cm_2011


초대일시 / 2013_0228_목요일_04: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이브갤러리 EVE GALLERY 서울 강남구 삼성동 91-25번지 이브자리 코디센 빌딩 5층 Tel. +82.2.540.5695 www.evegallery.co.kr blog.naver.com/codisenss



한호 작가는 자신의 유년 시절 체험을 토대로 인간의 본질과 사유 그리고 그 속에서 보여지는 갈등과 희망들을 작품 속에 표현했다. 또한 영원한 빛이란 테마를 자신의 작업에 끌어들임으로써 삶과 죽음 그리고 남겨진 여운과 희망에 대한 심상적 표현들을 대형 설치와 퍼포먼스로 표현했다.
한호_Eternal Light_outside rain pen, drowing, Neon, 블랙라이트 black light_260×600×200cm_2012
한호_Eternal Light_canvas on acrylic, LED_110×110cm_2012

천장 위에 설치된 우주선 모형을 한 대형 설치 조형은 한지 한겹 한겹이 겹쳐져 수많은 겹을 이루어 한 모형체로 표현된다. 이 모형체에서 우주의 신비한 빛이 뿜어져 나오는데 이는 우주로 떠나는 배의 형상화인 것이다. 작가는 이 대형 설치 조형을 통해 과거의 모습들과 현실의 모든 현상들을 표현하였으며, 이는 마치 영원속으로 들어가는 인간들에게 8차원의 공간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공중에 부양된 모함체는 모호한 두려움의 빛이며 그 빛은 희망이자 두려움의 괴적을 수반한다. 인간들의 사유에 내재된 모든 잔재들의 몸부림은 미적조형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그 은유가 조합되어 하나의 먼 여행을 떠나는 이름모를 존재들이 탄 배의 형상을 이루게 된 것이다. 현실 사회의 혼돈과 부패, 타락 또한 이 배에 탑재된다. 하지만 무언가 희망의 빛을 꿈꾸는 몽상가들은 아직도 자신의 모습을 저울질하고 있다.
한호_Tenri Gallery NY, Eternal Light_rice Paper, LED_500×1500×200cm_2011
한호_Sofia Biennale national Gallery, Eternal Light_rice paper, LED lampe 157×393×393cm_2011

한호 작가의 작품은 그 커다란 규모와 구성을 보면 작가의 진중성과 가치관을 전통 재료인 한지를 현대 미술에 의거하여 재구성함으로써 미니말 적인 요소를 동양의 전통과 잘 배합하였다. 한지를 보면 떠오르는 한국의 전통이 아닌 전통 재료의 재구성에 의한 새로운 문화 창출이라는 점에 주목해 볼만 하다. (뉴욕 텐리 갤러리 디렉터 서문 中) ■ 탈리아 바타후스
한호_Eternal light 영원한 빛展_이브갤러리_2013
한호_Eternal light 영원한 빛展_이브갤러리_2013


Eternal light-영원한 빛 이란 주제로 뉴욕, 파리, 베이징, 독일 등의 세계적인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한호 작가의 미디어 회화 평면, 영상작업이 따스한 봄 삼성동 이브갤러리에서 2월 28일에서 3월 17일 까지 전시된다. ● 이번 전시의 큰 특징은 그 작가 꾸준히 연구하고 있던 Eternal light-영원한 빛 시리즈 중 관객의 참여까지 유도 하고 있은 LED평면 설치 회화이다. 한호작가의 대표작인 미디어 회화 평면 작품과 영상 작업은 인간 내면의 자아 의식을 빛으로 절묘하게 표현 함으로써 실상과 허상의 경계를 넘어 빛의 세계를 통해 인간의 두 가지 면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새로운 뉴 미디어의 페러 다임의 전시인 것이다. ● 국내외 국제 비엔날레와 국제 페스티발을 통해 대형 설치 조형과 영상 그리고 퍼포먼스까지의 새로운 세계를 끝임 없이 모색하는 한호 작가의 작품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경계를 넘어 빛의 영역을 통해 표현해 내는 대형 설치 조형과 그 작위 적이지 않은 그만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으며 설치의 빛을 회화적 영역으로 끌어 들이고 키테틱의 영역과 움직이는 퍼포먼스의 전위성 까지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 작품 속 인물들은 우리가 역사 적으로나 사전적으로 익히 알고 있던 인물들이다. 그 인물들에게 다가가면 작품 속 인물에 작가가 관조적으로 수행하듯 타공한 여러 빛의 구멍들이 보이고 이 빛은 관람객의 움직임에 따라 다른 색을 발한다. 작품 속 인물들의 서사시 적인 이야기들과 삶의 시간들 속에 접근하고 그 인물들을 다시 새로운 환영이 사전적 의미의 고찰이 아닌 예술가의 재 해석으로 재 조명되어 관람객들이 지금껏 알아 왔던 사전적 실체를 넘어 다른 의미를 생각하고 빛이라는 특별한 매체를 작품을 통해 경험 하게 된다 ● 전시되는 작품 중 마리 앙또아네뜨와 물고기 별자리의 비유는 역사 속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다면을 넘어 인물의 새로운 유희와 이상의 염원을 대변한다. 회화의 영역에서 미디어의 영역으로 인터렉티브와 된 영원한 빛의 작업을 한호작가가 표현하려는 인간의 두 가지 설정과 해석에 대한 새로운 시도 인 것이다 ● 한호 작가는 국립파리 8대학에서 조형예술학 학사, 석사, 박사준비 과정을 수료하였고 13 년 동안 파리와 뉴욕 베이징에 거주 하면서 작품활동을 해왔다 주요 전시는 파리 팔레 드 도쿄 미술관 기획전과 불가리아 소피아 국제 비엔날레 소피아 내셔널뮤지엄, 핑야오 국제 페스티발 뒤셀도르프 라쿠아 구조 박물관 기획전에 참여 한바 있고 국내로는 금강 국제자연미술비엔날레와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해외작가 초대전 초대 되었다. ■ 이브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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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SCAPE : 세상을 향한 눈




PHOTOSCAPE : Eye for the Ordinary Miracle展 2013_0228 ▶ 2013_0321 / 일,공휴일 휴관





초대일시 / 2013_0228_목요일_05:30pm

참여작가 주명덕_민병헌_김중만_김대수_김아타 안세권_천경우_구성수_김시연_권오상

관람시간 / 09:3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인터알리아 아트컴퍼니 INTERALIA ART COMPANY 서울 강남구 삼성동 147-17번지 레베쌍트빌딩 B1 Tel. +82.2.3479.0114 www.interalia.co.kr



포토스케이프, 세상을 향한 눈 그리고 통해 본다는 것의 의미 ● 『PHOTOSCAPE: 세상을 향한 눈(PHTOSCAPE: EYE for the Ordinary Miracle)』은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통해 한 인격이 펼쳐내는 세계와 그가 지닌 고유의 시각과 시선의 문제 의식에서 출발한다. 완성작품으로써의 결과물인 사진, 그 전 과정에 녹아있는 매체의 고유한 진정성이'어떻게 펼쳐지는지', 그'펼침'에 주목하고자 한다. ● 본 전시에서 사진(Photo)과 경치(Scape)를 합친 포토스케이프(photoscape)는 단순히 풍경 사진 또는 카메라를 통해 담아내는 넒은 의미의 풍경의 다양성을 지칭하고자 하지 않는다. 카메라를 통해 사진이 본질적으로 지닌 매체로써의 고유성을 유지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보다 고유하고 진정적인 것을 드려내려는 작가의 눈에 담겨 세상 모든 것들을 이야기데 의미를 두고 바라보고자 한다. 작가와 필수 불가결한 카메라와의 관계 사이에서 발생하는 시각과 세상을 향한 작가의 철학적, 인문적 의식과 바라봄의 문제, 그리고 접근된 세상에 대한 정체성과 진정성에 관한 다양한 사유를 다룬다. 그러기에 사진 안에서 대상의 문제에 대한 직접적 접근법이 아닌,'바람봄'과'인식'의 문제에 대한 질문과 접근에 바탕을 둔다고 볼 수 있다. ● 그 의도는 포괄적으로 심리적, 심상적 풍경과 시각에 집중해서 세상을 향한 의식의 전환을 작가 안으로부터 찾고 발견해가는 과정으로써의 풍경이라 일컬을 수 있다. 결국, 우리 모든 일상으로부터 시작된 하나의 기적(the ordinary miracle)인 사진은 그 출발점에서 카메라를 통해 확장되는 일종의 꿈이 실현되고 자아가 확장된 세계라고 볼 수 있으며, 그것은 개인과 세상을 향한 가치관이 녹아 든 바탕이자 결과이다. 또한, 이것은 시각을 통하지만 인간 본연의 촉을 건드리며 접근하는 감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 의도할 수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감상자의 시선에 의해 다시 바라보고 해석할 수 있는 '존재적 사유의 여백'이 깃든 사진, 그 안에 포토스케이트의 향방이 있다고 본다. 그 바탕에 녹아 정제된 고유의 정체성과 개성이 만들어낸 풍경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관조의 시간을 시작하고자 한다.
주명덕_Abstract photography_Seoul_잉크젯 프린트_2012

주명덕 ● 빌바오와 바로셀로나란 타이틀을 달고 있는「사진에서의 추상Abstract in Photography」시리즈 작품을 본다. 그 안에서 느껴지는 것은 먼저 공간이고, 그리고 그 공간이 닿고 머물러 있는 시간이다. 공간과 시간. 공간은 서서히 그리고끝없이 넓어지거나 끝없이 깊어진다. 시간은 머물러 있다. 감상자는 그 안으로 차분히 빨려 들어갈 것이고 마주한 세계를 자신의 머리 속에서 확장할 것이다. 그곳에 대한 어떤기억이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기억대로, 가지고 있지 않은 이는 어떤 새로운 낯설음으로 말이다. 추상이란 타이틀이 붙은 작품 앞에서 공간의 면, 색 그리고 그 피어나는듯한 번짐을 통해 오히려 초현실적인 공간과 시간을 느낀다면 어떨까. 상(像)이 있으나 상이 스멀스멀 해체되면서 자아가 확장되는 순간의경험을 주명덕의 추상 시리즈 작업에서 만난다.
민병헌_MG248 BHM2010_젤라틴 실버 프린트

민병헌 ● 그의 풍경에선 모두 살내음이 난다. ...자세히 깊이 들여다본다면 우리는 다르게 만날 것이다. 뿌옇고 희미해 막연한 그 풍경 안의 것들은 제각기 모두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 꿈틀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고요하고, 잔잔하게 그리고 민감하게 말이다. 흰 눈이 가득 쌓인 허연 풍경 안에서, 잔가지와 이파리가 무수한 나무와 숲 속에서, 그리고 가까이에서 맡듯 사람의 살내음이 날 것 같은 벌거벗은 인체를 통해서, 느껴지는 것은 모든 것들이 지니는 떨리는 그 고유의 '결'이다. 그의 정적인 풍경은 누군가에게 굉장히 역동적으로 보일 수 있지 않을까. 그는 많은 것들을 감춤으로써 풍경 안에서 예민하지만 섬세하게 살아 떨리는 그 결을 드러나게 한다. 작고 긴 호흡으로 느낀다.
김중만_THE PART OF ME. GYEONGSANGBUKDO. DOK DO. KOREA_ 디지털 실버 프린트_160×122cm_2010

김중만 ● 묵직한 우리 땅의 감각이 숨쉰다. 아름다움은 발견하는 자의 몫이라는 걸 새삼 느낄 때 중요한 것이 사유와 시선이다. 우리 땅에 존재하는 무수한 것들의 아름다움을 묵직하게 담아내는 김중만의 한국의 미(美) 작업은 간결하면서 진중하고 또한 여전히 감각적이다. 그의 작업에서 길고 긴 세월 그 자리에 있던 바위를 보자. 거칠지 않다. 생명으로 치자면 어리고, 젊고, 늙은 삼색의 모습을 그 표면에 다 가지고 있는 것처럼 읽힌다. 물이 품고 있는 바위나 바위가 담겨있는 물은 고정되어 있으나 고정된 것이 아닌 둘 사이의 관계에서 하나의 유지적 조화를 이루어낸다. 이 땅의 시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말없이 침묵하는 바위에서 진지한 시선은 아름다움을 살려낸다.
김대수_bmb2008018(Snow Flakes)_젤라틴 실버 프린트_120×160cm

김대수 ● 고요히 흔들리는 텅 빈 대나무에서 바람의 흔적을 가슴에 남긴다. 한국화에서 검은 먹을 통해 꼿꼿한 대나무의 절개(節槪)를 상징적으로 그렸다면, 카메라를 든 김대수는 흑과 백 사이의 빛을 통해 대나무를 살려낸다. 공간의 여백이 없이 화면 가득 채워진 수직의 대숲은 먹과 종이의 조화가 이루어내는 죽(竹)과는 완전히 다르다. 대(竹) 의 검음과 그 사이 사이에 들어찬 빛의 백은 먹과 종이를 대신한 사진이 지닐 수 있는 다른 여백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 자연 안의 흑과백의 조화를 땅과 하늘의 어울림처럼 대나무를 통해 살려내는 그의 대숲을 바람이 한번 흔들어 놓는다. 마치 가슴에 바람이 불어 마음이 흔들리듯이 말이다. 날카로운 이파리 가득한 숲을 몽글몽글 떨어지는 눈송이가 안아준다. 멀리서 바라본 대숲은 뭉글뭉글 꿈틀대며 곧고 곧은 대의 상징을 살며시 감추며 세상의 바람을 감싸 안으며 고요를 전달한다.
김아타_ON-AIR Project 110-7 from the series of "New York", 8 hours_ 크로머제닉 프린트_188×248cm_2005

김아타 ● 그의 작업 시리즈들을 통합하는 간결한 메시지는 '모든 사물은 존재의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결국 사라진다.'는 것이다. 인간에 의해 긴 역사를 통해 구축해 놓은 다양한 도시를 비워내며 인간이 부재한 텅 빈 풍경인 온에어 프로젝트(ON-AIR Project)는 존재(being)와 의미(meaning) 사이의 관계를 되새겨 보게 한다. '사라진다'는 것은 덧없음을 의미할 수도 있겠지만, 사라진다는 결국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을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의미를 지닌 모든 존재는 사라짐으로 결국 돌아간다의 정도도 포함하지 않을까 싶다. 내 시선이 머무는 존재 앞에서 항상 할 것만을 보지 않으며, 시간을 통해 존재의 사라짐 앞에서 눈앞의 부재만을 바라볼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것은 역설의 프로세스를 담아내며 존재와 부재를 관통해 사유의 제시하는 고독한 물음이다.
안세권_부산 파노라마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83×300cm_2008

안세권 ● 그의 작업은 조금 더 직설적이고 구체적이다. 그는 자신의 기록적 도시 풍경을'존재했다 사라지는 풍경화'라고 말한다. 공간이 품었던 시간의 기억을 기록한 서울 청계천, 뉴타운 시리즈는 오랜 시간을 기록을 통해서만 남겨진 침묵의 풍경(a landscape of silence)이다. 함께 숨쉬는 풍경은 역사 속으로 시간과 함께 온전히 사라졌다. 빛나던 낮과 밤의 인위(人爲)의 풍경은 화려한 불빛의 강한 기억의 파편으로 꽂힌 채 물러갔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기록된 기억과 기억의 파편들을 남기고 풍경은 그 스스로 침묵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침묵의 풍경에 말을 건내며 기억을 통해 다시 소통한다.
천경우_BreaThings #10_C 프린트_70×93.5cm_2009

천경우 ● 그의 인물 작업은 존재의 고정된 순간을 포착해 명확히 드러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호흡하는 존재(人)가 드러나는 방식을 달리 바라보았을 때 나타나는 숨쉬는 생명의 고요하고도 울림이 있는 들숨과 날숨, 그 숨의 결에 주목한다. 존재의 드러나는 방식을 그의 사진에서는 흔들리듯 떨리는 미묘한 움직임의 과정 속에서 카메라의 긴 노출을 통해 축적시킨다.「BreaThings」시리즈에서 흔들리는 비정형의 인물과 사물은 함께 하나의 긴 호흡으로 수렴되고 있다. 그의 작업에서 존재를 바라본다는 것은 순간이 아닌 시간을 함께 하며 관계를 확장시켜가는 것이다. 결코 직설적이지 않으며 서서히 천천히 시간을 녹여 호흡이 서로 오고 가는 것을 그의 작업의 떨림이 담아내고 있다.
구성수_Photogenic Drawing Series-03-097 Leaves_C 프린트_75×55cm×4_2010

구성수 ● 식물시리즈_포토제닉 드로잉(Photogenic Drawings)은 주변에서 보아왔던 익숙한 식물들이 마치 채집된 식물표본의 형태로 등장시킨다. 이 작업은 사진사의 초기 사진술의 개념에서 응용하며 발전시킨 작업개념을 담고 있으며, 사진 매체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가의 지적인 유희가 적극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회화, 조각, 사진이 결합된 독특한 사진드로잉 작업으로 과정을 들여다보면, 온전한 식물을 그대로 눌러 음각하고 패인 곳에 석고를 부어 양각화하는 조각적 과정을 먼저 거친다. 그 후 양각된 식물의 형태를 따라 드로잉하고 채색하는 회화적 과정이 수반되고 결과는 사진으로 완성된다. 사진이 뷰파인더를 통해 세상을 간접적으로 담아내고 기록하는 작업이고 결국 어느 시점에서 한계에 부딪히는 필연이 있다면, 구성수의 사진드로잉은 모든 과정에 적극적으로 작가가 개입되어 창작된 새로운 형태의 사진작업을 시도함으로써 과정으로서의 매체실험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 기술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닌, 다양한 영역을 매체에 결합시키고 실험하는 새로운 형식의 도전이 그의 포토제닉 드로잉 시리즈에 담겨있다.
김시연_Yellowish_디지털 프린트_70×103cm_2012

김시연 ● 노르스름한 색은 가볍고 여리고 작은 무언가들에게 어울리는 빛깔이다. 김시연의「노르스름한(yellowish)」시리즈는 일상과 사소함이 도전해낸 섬세한 풍경을 보여준다. 섬세하고 바스러질 것 같은 투명함이 유리의 느낌이라면, 그의 작업은 포장되지 않은 일상의 보잘 것 없는 사물들-주로 주방을 중심으로-이 만들어내는 유리 같이 깨질 듯 아스라함이 깃들어 있는 풍경이다. 테이들의 가장자리에는 샛노란 레몬 위에 벽을 기대 올려진 포크, 테이블 끄트머리에 놓인 접시에서도 가장 끝에 놓인 타다만 작은 촛대, 미끈한 버터를 담은 숟가락이 놓이고, 불편하게 세워진 책 위에 놓은 주방의 것들이 그의 작 업의 등장 소재들이다. 무뎌진 우리 감정 주변에 일상적 물건들이 주는 불안한듯 섬세하지만 톡하고 건드려보고픈 심리를 발동시킨다. 김시연은 일상의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는 상상력의 섬세한 느낌표를 찍어주고 있다.
권오상_a(15)_라이트젯 프린트, 우드프레임_217.6×172cm_2010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and Arario Gallery

권오상 ● 그는 1990년대 말부터 조각과 사진을 결합시킨 독특하고 창의적인 작업들로 큰 주목을 받아왔다. 삼차원(조각, 입체)과 이차원(사진,평면)적 매체가 결합과 소통을 통해 장르의 통합과 도전을 해온 그의 사진조각작업은 완벽한 혼성을 이뤄낸 현대미술의 창작물이다.「더 플랫The Flat」은 한 호의 월간지 안에 다양한 이미지들를 뽑아내서 짜맞추며 새로운 조형미를 갖춘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시킨다. 결과물은 평면이지만 그 과정 안에서 다른 시리즈들 마찬가지로 입체과정과 평면과정으로 복합시켜 진행시킨다는 점에서도 다른 시리즈와의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 동시대 이슈를 다루는 잡지에서 채택된 이미지들은 이 도시 시대의 삶을 그만의 양식과 기법으로 표현하며 시대의 현상과 비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여지를 담고 있다. ■ 조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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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vading Nature














박형렬展 / BAKHYONGRYOL / 朴亨烈 / photography 2013_0228 ▶ 2013_0410 / 일,공휴일 휴관








박형렬_The captured nature-sea #2_잉크젯 프린트_120×150cm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박형렬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3_0228_목요일_06:00pm

송은 아트큐브는 젊고 유능한 작가들의 전시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재)송은문화재단에서 설립한 비영리 전시공간입니다.

관람시간 / 09:00am~06:30pm / 토요일_01:00pm~06:00pm / 일,공휴일 휴관

송은 아트큐브 SongEun ArtCube 서울 강남구 대치동 947-7번지 삼탄빌딩 1층 Tel. +82.2.3448.0100 www.songeunartspace.org










자연을 점유하기 ● 박형렬은 사진매체를 통해 주체와 사회간의 관계를 탐구한 「Working People 1」(2006), 「Working People 2」(2007)와 「Well Being People」(2009)를 선보인 바 있다. 작가는 「Working People 1」 에서 각계 각층 종사자들의 초상사진을 근무현장에서 찍되, 인물을 근무 배경과 격리시켜 주체 본연의 모습을 현장에서 담아내고자 했으며 「Working People 2」에서는 직업 및 사회적 지위에 따라 희석되어 가는 개인의 정체성을 상정하고자 자신의 영정사진을 든 인물의 초상사진을 보여주었다. 이후 「Well Being People」은 보다 나은 질의 삶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빗대는 상황들을 제시하였다.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이후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고찰로 이어지는데, 이 역시 이미지 촬영을 너머 작품 안에서 인물의 적극적인 개입과 이들의 과장된 행위 및 연출을 통해 자연을 소유하기 위한 인간의 다양한 면모들을 조명한 것이었다.
박형렬_The captured nature-earth #6-1_잉크젯 프린트_144×180cm_2012
박형렬_The captured nature-earth #11_잉크젯 프린트_120×150cm_2012
박형렬_The captured nature-earth #8_잉크젯 프린트_120×150cm_2012

2010년부터 진행되어 온 박형렬의 사진 작업 "The Captured Nature"는 자연을 단순히 채취하는 것 이상의 적극적인 의미를 내포하며 "자연을 포획"하는 다양한 행위들을 보여준다. 작품에서 비닐봉지에 공기를 불어넣거나 바위를 망치로 깨뜨리는 일련의 모습들은 인간이 결코 완전히 소유할 수 없는 자연에 대해 집착하고 지배하려는 모순된 상황을 등장 인물의 행위를 통해 두드러지게 보여준다. 본 전시에 포함된 "The Captured Nature"의 초기작 「The Captured Nature_Snow #1」(2010)에서는 드넓은 평야에 하얗게 덮인 눈을 균일하게 포획해 나아가는 행위를 보여주며 「The Captured Nature_Stone#3」(2011)에서는 하나의 상품이 판매되어 누군가의 소유가 되었음을 암시하는 적색의 스티커가 바위에 강박적으로 반복 부착됨으로써 붉은 이끼와 같이 보여지는 반면, 행위의 주체자인 듯한 인물이 돌 위에 정복자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박형렬의 작품에 있어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이러한 포획 행위들은 그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키며 우리 현실로부터 괴리된 양상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들의 포획 행태가 비현실적인 것만큼이나 인간이 자연을 소유하려는 욕망과 일련의 움직임 전반이 본질적으로 타당하지 않음을 비유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작품을 통해 보여지는 모순된 상황과 같이 자연을 규제하는 우리의 사회와 현실 모습 또한 억지스러운 상황과 구조 속에 있음을 투영한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2012년도 신작들은 자연의 포획에 있어 행위 자체보다는 자연을 구획하고 측량하는 인간의 이성적인 활동 전반에 대한 접근을 보여준다. 「The Captured Nature_Earth」(2012) 시리즈는 자연, 특히 토지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측량법을 나타낸 것으로, 땅의 가치를 매기는 가장 일반적인 잣대인 1평 즉, 3.3m²(약 1.8mx1.8m)의 크기에 의거하여 각기 4평, 1평, 1/4평의 크기로 토지를 구획함으로써 인간에 의해 자연이 규정되고 소유되어 권리가 이전되는 다양한 양태를 제시한다. 모란미술관 야외 미술 프로젝트 "nature"(2012)의 일환으로 실현된 「The Captured Nature_Earth #9」 역시, 0 부터 9까지의 숫자를 각각 1평이라는 동일한 면적으로 구획한 것으로, 작가는 숫자의 크고 작음의 가치만큼이나 땅에 대한 가치 또한 인간의 상용화 목적, 더 나아가 문명의 이기에 따라 일방적으로 기준이 정해지고 이 또한 고정불변의 속성이 될 수 없음을 주지한다. 「The Captured Nature_Tree」(2012) 역시, 작가는 획일화된 도심의 가로수와 화단의 정렬과 배치와 같이 한 그루의 나무가 일련의 정해진 연산에 의해 포획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박형렬_The captured nature-earth #10_잉크젯 프린트_120×150cm_2012
박형렬_The captured nature-snow #2_잉크젯 프린트_120×150cm_2012

자연의 포획을 다룬 박형렬의 사진 작업은 실제로 장시간에 걸쳐 땅을 파고 흙을 쌓아 올리거나 거대한 천으로 땅을 덮는 등 고된 노동의 결과로 이루어진다. 작가는 인간의 이기에 의해 본연의 모습과 멀어져 가는 자연의 모습들을 찾아 있는 그대로 담아내기 보다 비현실적인 자연의 포획 설정을 제시함으로써 그 격차를 통해 자연을 뚜렷이 관조하고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에 대해 돌아볼 것을 제시한다. ■ 채영옥
박형렬_The captured nature-tree #4_잉크젯 프린트_144×180cm_2011











Occupying N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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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세계 (le monde du silence) #1




















김주현展 / KIMJUHYUN / 金周賢 / painting 2013_0302 ▶ 2013_0317 / 월요일 휴관











김주현_Key maker – The Cave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13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김주현 블로그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3_0302_토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골목 Gallery GOLMOK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34-23번지 1층 5호 Tel. +82.2.792.2960 www.gallery-golmok.com











『침묵의 세계』는 흔히 인터넷이나 여러 매체들에서 볼 수 있는 자연과 동물의 이미지를 차용하여 작업의 배경으로 다루고 있다. 복제 된 가상의 이미지 속에는 마치 그 속이 현실인 양 믿고 지배하려하는 탐험가이자 모험가가 서 있다. 우스꽝스러운 가짜 소품들을 착용한 채 진지한 포즈를 취하는 인물은 자본주의의 지배 아래 위치한 현실적 판단능력이 흐려진 사람들의 살아가는 실제 모습과 어느 정도 일치할 것이라 생각된다.
김주현_Rocinante_캔버스에 유채_90.9×72.7cm_2012
김주현_Bungee jumping – Niagara falls_캔버스에 유채_90.9×72.7cm_2012
김주현_Under the Sea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162.2cm_2012

『침묵의 세계』는 보편화된 일상생활을 연출된 시각으로 보여준다. 이는 마치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품은 찰리 채플린의 표현 방식을 연상시킨다. 투사되는 가상의 이미지와 일상적 공간의 조합은 일획적인 대량 복제물 속에서 살아가는 현실을 반영한다. 달리 말해 익숙해진 생활은 자본사회의 부산물로 가득히 침투되어버린 현실이며 그 속에서 우리는 지배당한 사유를 가진 채 살아가고 있다. 화면 속 인물과 사물들의 연출의 효과는 우리의 모습이 어떠한지에 대하여 의구심 없이 지내는 상황을 보여준다는 점에 있다.
김주현_The Buffalo Hunt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12
김주현_Hawaiian Foot Bath_캔버스에 유채_91×116.8cm_2012

인류사의 문명화를 돌아보면 『침묵의 세계』에서 핵심적 키워드인 진보적 사상, 즉 계몽의 목표는 인간으로부터 공포를 제거하고 인간으로 하여금 지배자가 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인류의 진보는 자연과의 동일화에서 벗어난 지배욕으로부터 생겨났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시점에서 남기는 곳 없이 계몽된 지표를 보면 참과 거짓의 경계가 모호해짐은 물론 그 안에 살아가는 인간의 판단 또한 붕괴되어버린다. ■ 김주현
김주현_To the Moon_캔버스에 유채_90.9×72.7cm_2012










The World of Silence(le monde du sil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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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랭과 강남친구들
NANCY LANG & GANGNAM FRIENDS
Nancy Lang
TV12 2013.3.14 - 4.6
Vernissage: 2013. 3.14_ 6PM

 
Michael Jackson_oil on canvas_168x135cm_2013














‘파격적이다’라고 불릴 만큼 독특한 퍼포먼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팝아티스트 낸시랭이 “낸시랭과 강남친구들” 전시로 돌아왔다. 작품은 총 12점의 회화작업으로 오는 3월 14일 청담동 TV12갤러리(문의 02-3143-1210)에서 대중들에게 공개된다. 지난 전시 ‘내정간섭’이 이명박 대통령을 포함한 차기 대선후보들을 등장시켜 국내의 정치적인 문제를 다루었다면, 이번 “낸시랭과 강남친구들”은 거기서 좀 더 나아가 법, 규정, 관습, 종교를 넘나들며 사회에 큰 영향력을 끼치는 세계적인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낸시랭은 그녀의 어깨 위에서 9년째 동고동락 중인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고양이 인형 ‘코코샤넬’을 세계적인 인물들의 어깨에 배치함으로 다소 심각하고 진중한 주제들을 자기만의 목소리로 유쾌하게 풍자한다.
낸시랭 작품 속 ‘친구’들은 이건희 회장, 마이클 잭슨, 버락 오바마, 워렌 버핏, 스티브 잡스, 후진타오, 빈라덴, 예수, 부처 등 세계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 거물들이다. 그들이 행복하게 살았건, 비극적으로 살았건,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올랐고, 구설수에 이르게 된 인물들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의 사회가 알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과연 진짜 그들의 모습일까? 사회가 이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든 낸시랭에게 이들은 그저 한 명의 인간일 뿐이며, 친구들이다. ‘자유로운 영혼의 종결자’인 그녀에게 사회의 규범 따위는 문제 되지 않는다. 또한 사회 속에 억압 된 대중들은 오히려 그녀의 아트를, 그녀의 삶 자체를 보며 대리만족을 경험한다.
사회 안에서 자유롭지 못한 영혼들에게 자유영혼종결자인 그녀가 자신의 분신 코코사넬을 건네며 말한다.
“나랑 강남에서 신나게 놀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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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象): Image and Reality
















권기수_김동유 2인展 2013_0305 ▶ 2013_0531 / 주말 휴관









권기수_Dreaming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27×364×6.5cm_2010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5:00pm / 주말 휴관

신도리코 문화공간 서울 성동구 성수2가 277-22번지 Tel. +82.2.460.1247 www.sindoh.com









이번 전시에서는 유명인의 얼굴을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또 다른 인물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김동유 작가의 작업과 동구리 캐릭터를 사용한 작업을 하는 권기수 작가의 Reflection 시리즈를 선보인다. ● 작가 김동유의 작업에 등장하는 이미지는 한 시대를 풍미하였던 인물의 상이다. 캔버스 위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인물의 이미지와 이들이 모여 그려내는 또 다른 인물의 이미지는 우리 마음 속 그들이 존재하던 시대의 이미지를 그려내고자 한다. 예를 들어 마릴린 먼로와 존 에프 케네디의 조합은 우리에게 60년대 강대국으로써의 미국의 이미지, 이를 동경의 눈길로 바라보던 우리 사회의 분위기, 그리고 이 둘 사이에 있었음 직한 야릇한 관계까지도 상상하게 만든다.
권기수_나를 보는 눈들-빨강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30×6.5cm_2010

권기수 작가의 작업에 등장하는 동구리는 작가 자신 모습을 대변한다. 그림을 그려야 하는 작가로써, 가장으로써, 그리고 아버지로써 작가는 경제적인 어려움에 직면하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소외감과 괴로움을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의 작업 속 동구리는 언제나 웃고 있다. 언제나 웃음을 띄고 있는 동구리의 모습은 비록 현실은 힘들고 어렵더라도 언젠가는 다가올 희망을 기다리는 작가의 마음의 반영인 것이다. ● 우리는 사회 속에서 타인과 소통하고 관계를 만들며 살아간다. 그리고 이 관계 속에서 사람들은 이미지로써 우리의 모습을 기억한다. 하지만 과연 이 이미지들이 진정한 우리의 모습인가. 아니면 타인의 눈에 의해 외도된 이미지인가. 그렇다면 과연 진실된 우리의 모습은 무엇인가.
김동유_Audrey Hepburn(Gregory Peck)_캔버스에 유채_227.3×181.8cm_2009
김동유_Marilyn Monroe (John F. Kennedy)_캔버스에 유채_146×116cm_2012

작가 김동유는 1965년 공주 출생으로 목원대학교 회화과와 동 대학원 서양화과를 졸업하였다. 작가의 대표적 시리즈인 '이중 얼굴 시리즈'는 한 시대를 풍미한 대중적인 스타와 유명인의 얼굴을 캔버스 위에 담아낸 작업이다. 커다란 캔버스 위에 마릴린 먼로와 오드리 햅번과 같은 유명인의 얼굴을 화면 가득 일일이 직접 그려냄으로써 전체적으로는 존 에프 케네디 등과 같은 새로운 이미지를 제시한다. 작가는 현재 대전의 작업실에서 작업에 매진함과 동시에 모교에서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 작가 권기수는 전통 동양화의 소재인 사군자나 고사관수도, 죽림칠현 이야기 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 한 작업들로 대중에게 널리 사랑 받고 있는 현대미술작가이다. 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속세를 떠나 현실을 도피하여 유유자적한 삶을 동경하거나, 물에 반사된 자신을 보며 반성과 자기수양을 하는 동양사상이다. 이러한 깊고 진지한 내용 위에 밝은 색채와 단순한 형태를 이용해 그린 그의 회화는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동시에, 가볍지만 가볍지 않은 작품의 깊이를 느끼게 해 준다. 2011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전 『Future Pass-from Asia to the World』에 참가하는 등 아시아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 신도리코의 성수동 본사의 재탄생과 함께 개관한 신도리코 문화공간은 다양한 현대미술의 전시들을 선보이며 산업과 문화의 새로운 만남의 장입니다. 2012년 6월부터는 매년 SINAP 선정 작가들의 전시를 각 3개월 동안 선보이며, 기존의 사내 갤러리에서 이제는 대중에게 열린 전시공간으로 다가갑니다. ■ 신도리코 문화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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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구본창의 <행복한 기억>展. 3월 5일부터 류가헌

    사진위주 류가헌(02-720-2010)
    2013-03-06 ~ 2013-03-17
    2013-03-07 오후 18시

강운구의 <마을 삼부작>시리즈 중 하나인 수분리 풍경 사진 옆에 세계적인 패션사진가 사라 문의 사진이 나란하고, 한정식의 1969년 빈티지 사진 옆에 사진조각가로 불리는 고명근의 입방체 사진이 함께 전시돼 있다. 어떤 주제로 묶였기에, 이리도 다채롭고 분방한가.

이 사진들 사이에는 언뜻 아무런 개연성도 없어 보이지만, 찬찬히 보다보면 전 작품들을 통해 일관되게 흐르는 정서 혹은 서정을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한 사람에 의해 컬렉팅 된 사진들이기 때문이다. 바로, 우리 시대 세련된 미의식을 가진 사람 중의 하나로 꼽히는 사진가 구본창의 사진 컬렉션들이다.

구본창은 한국 현대사진의 상징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다양한 사진작업을 통해 대중들에게도 인지도가 높은 사진가다. 그가 올 봄의 초입에 선보이는 이번 전시 ‘사진가 구본창의 <행복한 기억>展’은 구본창의 사진전이지만 구본창이 찍은 결과물은 하나도 없는 전시다. 즉 구본창이 찍은 사진이 아니라 그가 수집한 다른 사진가의 사진들이 전시되는 것이다. 위에 열거한 국내외 유명 사진가들의 사진 이외에도, 그와 한 시절들을 함께했던 여러 제자, 현재 활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젊은 후배 사진가들의 사진도 함께 전시된다.

사진 전시작 이외에도 눈길을 끄는 것은, 작가가 공부했던 독일의 스승이 매년 연말에 보내오는 사진엽서, 한정식 홍순태 등 사진계의 인사들과 주고받았던 오래된 편지들이다. 살아오는 동안 인연을 맺었던 여러 사람들과 오고 간, 삶의 이런저런 사연들이 담긴 서한들이 함께 선보여지는 것이다.

<행복한 기억>展은 사진가 구본창이 사진을 찍게 된 맥락과 사진가가 되기까지의 과정, 지금까지 그의 삶과 작가로서의 시선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확인할 수 있는 컬렉션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데 그 의의가 크다. 구본창 작가는 “이들 사진과 편지들로 이어진 인연들이 나로 하여금 사진을 계속하고 사진가로서의 삶을 지탱하게 했다.”라고 고백한다.

그러한 솔직한 심경을 담아 작가가 정한 전시 제목이 <행복한 기억>이다. 소년 같은 감성과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올해 3월로 회갑을 맞은 ‘스승’ 구본창의 생의 그 특별한 때를 축하하기 위해 제자들이 아이디어를 낸 전시이니, 전시 자체가 <행복한 기억>이 될 것이다.

전시는 3월 5일부터 17일까지 통의동의 갤러리 류가헌에서 열린다. 2010년 12월 사진가 강운구 선생의 칠순을 맞아 후학과 동료, 지인들에 의해 열렸던 <강운구를 핑계삼다>전에 이어 또 한 번의 사진계 잔치가 류가헌 마당에서 벌여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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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갤러리 이마주(02-557-1950)
            2013-02-22 ~ 2013-02-22

갤러리 이마주에서는 2013년 3월 4일(월)부터 3월 23일(토)까지 프랑스 사진작가 울라 레이머 (Ulla Reimer)의 사진전< 2013 Ulla Reimer : Wings of Fantasy _ Highway to Eden >을 마련하였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 한국에서의 두 번째 개인전을 갖는 울라 레이머의 이번 전시에서는 세계적인 초현실주의의 거장 막스 에른스트(Max Ernst) 작품들과 함께 독일, 일본 등에서 공동으로 전시된바 있는 ‘Wings of Fantasy’ (1995)시리즈와 2000년 발병한 암과의 오랜 투병생활을 이겨내며 9년이라는 공백을 깨고 다시 예술가로 돌아온 그녀의 ‘Highway to Eden’(2009) 시리즈를 함께 선보입니다. 할리우드 배우들의 초상만을 주제로 작업하던 시절의 초기작과 작가의 대표적 시리즈를 통해 한국에 첫 선을 보였던 지난 해와 달리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가 일찍이 탐구해온 미지의 세계에 대한 고찰과 초현실주의로부터 영감을 얻어 탄생한 ‘Wings of Fantasy‘와 ‘Highway to Eden’이라는 두 시리즈를 함께 집중 조명하고자 합니다.

초현실주의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기존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과 부정으로 나타난 전위 예술 운동으로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함으로써 직관적이고 영감에 의해서 형성된 작품들로 나타났으며, 오늘날 전위 예술사진의 거장인 만 레이(Man Ray)는 다다 운동을 추진하다가 1924년 이후 파리 초현실주의 운동에 참여하며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는 기존의 기록적인 행위에서 벗어나 사진의 기계적 특성을 활용하여 고유한 이미지가 갖고 있는 본래의 의미를 넘어 새로운 이미지로 창조해 냄으로써 시각적으로 구체화 할 수 없는 초현실적 세계를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이처럼 새로운 이념, 새로운 것의 창조는 기존의 것을 부정하며, 그 틀을 깨고자 하는 시도 끝에 비로소 나타나는데, 16년 동안 미키루크, 소피아 로렌 등 유명 영화배우의 초상만을 렌즈에 담아오던 울라 레이머가 순수 창작 사진가로의 전 환을 시도한 것도 바로 이러한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울라 레이머는 막스 에른스트, 조르 조 데 키리코, 달리 등 초현실주의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으며 끊임없이 존재와 미지의 세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그것을 사진으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루프트한자(Luhthanza)의 후원을 받아 작업 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초현실주의의 거장 막스 에른스트 작품들과도 함께 전시되었던 ‘Wings of Fantasy’(1995)시리즈는 이러한 작가의 초현실적 영혼과 영감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어떠한 피사체를 대상으로 하는 작품이 아닌 시각적으로 구체화 할 수 없는 초현실적인 이미지와 함께 시공 간을 초월한 세계에 대한 표현인 것입니다. 2000년 발병한 암과의 오랜 투병생활을 이겨내며 그 공백을 깨고 새롭게 발표한 ‘Highway to Eden’(2009) 시리즈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새로운 시 선으로 즉, 사실적인 풍경을 담고 있지만 초현실적 영감으로 향하는 시적인 조형성을 표현하고 있습니 다. 이번 전시는 대상 그대로를 재현했던 기존 작업의 틀에서 벗어나 작가 자신의 무의식과 내적인 영 감에 따라 그것을 시각화하여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 가고자 하는 울라 레이머의 작업 세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전시라 할 수 있습니다. 각각 제작 시기가 다른 두 시리즈(‘Wings of Fantasy`(1995), ‘Highway to Eden’(2009))의 14년이라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 그리고 죽음의 문턱까지 경험했던 작가의 다양한 상황과 환경을 뛰어 넘어 비로소 하나로 승화한 울라 레이머의 작품 세계를 만나 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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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roup Exhibition of "The Hiding Pulse"

Able gallery seoul
Date & Venue
Date : March 27 - April 9, 2013

Opening Reception: March 27 , 2013
at 5:00 - 7:00pm

SEOUL














































Yongsung Heo

"Marmotte Twins"

27.6" x 27.6"

Painting on Korean Paper

2012























































Miseon Yoon

"Face 13 - 9"

20.9" x 17.9"

Mixed Media on canvas

2013




























































Rim Lee

"The Surrealistic Painting
(robbing of bride) no.10"

63.8" x 51.3"
Oil on Canvas

2012



















































Gyeonghwan Noh

"Mona lisa 21c"

35.8" x 24"
Mixed Media on Paper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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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노동 나쁜 미술






김홍석展 / GIMHONGSOK / 金泓錫 / installation 2013_0307 ▶ 2013_0526 / 월요일 휴관




김홍석_개같은 형태 Canine Construction_브론즈_162×88×235cm_2009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10330g | 김홍석展으로 갑니다.

퍼포먼스 / 「좋은 비평 이상한 비평 나쁜 비평」 * 당일 전시 입장권 소지자 선착순 참석 강연 / 2013_0322_금요일_04:00pm 대담 / 2013_0511_토요일_04:00pm 작가 강연회 / 2013_0426_금요일_04:00pm

관람료 일반 3,000원(단체 2,000원) / 학생(초/중/고) 2,000원(단체 1,000원) * 20인 이상 단체 관람료 적용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입장마감_05:30pm / 월요일 휴관

삼성미술관 플라토 PLATEAU 서울 중구 태평로 2가 150번지 삼성생명빌딩 1층 Tel. 1577.7595 www.plateau.or.kr




김홍석의 작품들은 대체로 재미있지만 인식 정도에 따라 무의미하게 느껴지거나 불편하다. 작품들이 제각각 재미있거나 불편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재미있는 작품이 갑자기 의심스럽고 불쾌하다가 다시 곱씹어 보면 재미있어지는 식이다. 일반적으로 현대미술은 동시대의 미술계 시스템이나 사회 구조를 비평하는 일에 몰두하는데, 김홍석의 비평방식은 게임이고 그 게임의 규칙은 관객에 대한 배려 따위는 고려하지 않은 유희의 촌철살인이다. '트릭스터'의 전형적인 후예라 할 그의 작업은 주로 우스꽝스런 거짓말로 구성되는데, 다른 사람의 노동이나 업적을 전용하거나 타인의 어려운 처지를 작품이라는 게임을 위해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이용하는 냉정함을 보인다. 그의 농담들은 때때로 윤리적인 경계도 무시한 채 오직 게임에만 몰두한 것으로 치부되어 '비윤리적' 또는 '초윤리적'이란 비판에 직면한다. 그러나 김홍석의 작업은 실제로 매우 현실적이고 정치적이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재미와 웃음으로 관객을 무장해제시킨 그의 작업의 목표가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미술에서의 윤리성'에 조준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의 농담 사이에는 현실이 교묘하게 직조되어 있어서 허구적인 이야기들 틈으로 현실을 힐끗 바라보게 된 관객들은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 사이 슬그머니 연루된 현실의 비윤리와 냉엄함에 당혹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 비윤리적인 행위와 윤리성에의 천착이라는 두 층위 간에는 공유된 공간, 어떠한 공통 언어 기반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변증법적인 종합으로 화해점을 찾기란 어렵다. 둘은 뫼비우스 띠의 상반된 양면처럼 존재하는데 이 교착상태는 내재적인 분열을 외재화하는 방식으로, 주체의 자기분열을 가시화하는 방식으로 해결점이 모색된다. 김홍석의 작품에 등장하는 수많은 타자 혹은 매개자들은 보편적인 주체, 즉 작품을 구상하는 것에서부터 완성하기까지 전 과정을 전담하는 신화적인 존재로서의 작가를 대신하는 분열된 주체들이다. 작가는 자기비판적인 조소를 더해 스스로를 평가절하는 방식으로 작가의 신화적 기반을 과감히 소각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작가라는 존재는 분열되어 끝내 봉합되지 않은 열린 주체, 미완결의 주체로 남겨진다.
김홍석_개같은 형태 Canine Construction_브론즈_162×88×235cm_2009
김홍석_기울고 과장된 형태에 대한 연구-LOVE A Study on Slanted and Hyperbolic Constitution-LOVE_합성수지_150×90×348cm_2011
김홍석_미스터 킴 Mr. Kim_합성수지, 바지, 운동화_177×125×46cm_2012

비윤리의 코스프레, 그 이면의 윤리적 정치성 ● 장의 적합성 여부는 규범을 숙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변별적인 기호에 의해 인증되며, 특히 예술에서는 개성 혹은 독자성의 명분으로 차이가 필연적으로 추구된다. 변별성을 확보한 예술작품은 오리지널리티의 견고한 신화를 만드는데, 개별의 신화는 무수한 절차와 보조자들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분절되지 않은 하나의 전체상으로 드러난다. 미술계가 중시하는 차이란 전체상으로서의 작품의 개별성이며, 그 개별의 기호를 존중하는 것이 미술계의 윤리이다. 반면 김홍석은 이 기호들의 차이를 반복적인 인용과 표절의 방식으로 뭉뚱그림으로써 미술계의 윤리를 의도적으로 침해한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차별화된 신화의 표면이 아니라 미분화된 작품 신화의 이면, 즉 '예술적 방법론'이란 이름으로 통합된 작업 과정과 보조적인 사람들의 존재이다. 시선의 이동은 마치 아코디언을 움직이는 것처럼, 분절되었다고 여겨지는 개별작품의 표면적 차이를 쭈그러뜨리는 대신, 분열을 통해 통합된 것의 틈을 벌려 자리를 갖지 못한 이면의 존재들에게 공간을 내어 주는 행위를 펼친다. 작가로서 스스로도 자유스러울 수 없는 작품제작의 제반 문제를 조명함으로써 김홍석은 미술계가 침묵하고 있는 '윤리의 공백'을 들여다 보고자 한다. ● 미술계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자본주의 문화가 세계화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문화의 분산, 혹은 전달과 수용과정으로 비유된다. 그것은 근대화 과정에서 오랜 기간 동안 문화의 주변국이었다가 이제는 K팝 문화를 앞세워 또 다른 누군가의 문화선진국이 되어가는 우리의 상황을 반영하는데, 특히 독일 유학시절 한국적인 문화정체성의 차이를 요구 받았던 작가가 자신에게 이미 내재한 문화혼성의 양상을 확인하고 이를 우화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문화는 고정되지 않고 유동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타자에 대한 욕망이 투영된 것으로, 원본으로부터 미묘한 변화를 겪어 새로운 생성의 차원에 도달하는 것이다. 흔히 '번역' 또는 '차용'의 개념으로 정당화되는 이 문화현상에서 변화는 섬세하고 세련될수록, 오리지널리티는 최대한 존중될수록 윤리적이라고 평가된다. 그러나 김홍석은 모방(표절)과 왜곡, 허구의 창안(기만)을 노골화하고 과장함으로써 문화전이의 매끄러운 규약을 의도적으로 오염시킨다. 황당무게한 과장법으로 점철된 옛날이야기나 연속적인 번역으로 의미의 변질을 노출하는 텍스트들은 출발점에 놓인 원본을 보존하기 위해 전이의 경계를 최소화하기보다, 그 간극을 극대화해서 차이의 공간을 가시화하는데 목표를 둔다. ● 차용이 전략이 되는 오늘날에도 '모방'은 오리지널의 기호를 훔치는 비윤리적인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 2005년에 발표한「READ」는 프란시스 알뤼스나 마우리찌오 카텔란, 데미안 허스트와 같은 동시대 유명작가들의 작품을 사진과 회화로 가감 없이 베낌으로써 이 같은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비록 원작이 아니라 카탈로그 이미지를 옮기고, 본래 퍼포먼스나 비디오, 조각 작품이었던 것을 사진이나 회화로 매체 변환을 시도했으며, 정확히 출처를 명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들은 원작의 독자성을 도발한 것, 혹은 얄팍한 베끼기로 폄하될 위험에 처해졌다. 그러나 이 작품의 쟁점은 선택한 작품이나 복제된 결과물에 있기 보다는 김성원의 지적대로 '카피는 오리지널을 위협하는가, 이미지의 카피와 그 저작권의 관계는 무엇인가 그리고 카피는 오늘날 피할 수 없는 소통의 방식인가'와 같은 보다 복합적인 문제를 야기한다. 그는 스스로 자초한 불편한 상황 속에서 카피라이트를 사유화하는 소통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제기와 더불어, 재현의 전통에 개입된 수많은 생산 주체에 대해 관심을 촉구한다. 원작가로부터 김홍석 자신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작업의 발생과정에 연루된 모든 사람들, 사진가와 출판사, 그리고 돈을 받고 그림을 대신 그려 준 익명의 화가까지, 윤리적 정당성을 가진 모든 존재들은 논의의 중심으로 소환한다. ● '거짓말'은 닮음을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이다. 모방을 뛰어 넘는 허구의 창안은 '사실'의 대척점에 놓이는 가짜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을 진실에 다가서게 만드는 가정인 것이다. '권위'라고 불리는 어둠의 장막을 겨냥한 발칙한 상상력은 절묘하게 현실과 교차되며 사실보다 더 진짜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작가는 거짓말 구성을 통해 진실의 양면성을 드러내는 게임을 제안한다. 1974년 마오 쩌둥과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극비회담을 다룬 이야기 「마오는 닉슨을 만났다」(2004)나, 프랑스 혁명가 마라의 피가 보관되었다는 「마라의 적(赤)」(2004), 김영삼 정부 시절의 총기소지와 이념논쟁을 다룬 「와일드 코리아」(2005) 등과 함께 「기록 A4 P3」(2005)는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치르기 위해 도시 정화사업에 몰두한 전두환 정부의 정책을 희화화하는데 목적을 둔다. 권력기관에 의해 추진된 인위적인 도시구획은 각 지역 간의 계급적 서열을 가시화하고 이 때문에 사람들의 속물근성이 드러났다는 이야기는 권력자를 향한 인신공격을 감행함으로써 불온한 웃음을 촉발한다. ● 진실과 거짓을 교묘하게 뒤섞는 게임에서 이야기의 주제가 미술사나 역사로부터 현실로 전이될 때 관객의 현실인식은 큰 혼란에 빠진다. 더구나 서사의 중심축에 인물이 배치되고 그 인물이 권력자가 아닌 사회적 소수자일 때, 농담은 더욱 큰 윤리적인 문제를 야기한다. 인형 옷을 입고 전시장에 배치된 인물이 알고 보니 시간당 5달러를 주고 작가가 고용한 불법체류자라거나(「나는 토끼입니다」(2008)), 동티모르 이주노동자가 한국에서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토로하는 인터뷰를 했는데 사실 그것이 배우의 엉터리 외국어 연기였다는 식의 이야기(「토크」(2004))는 사회적 약자의 현실을 동정하기 보다 게임의 상황으로 이용했다는 혐의를 받기에 충분하다. 또한 전시장에서 관객 속에 있는 창녀를 찾으면 현상금을 주겠다는 제안으로 전시장의 모든 여성 관객을 잠재적인 창녀로 만든 뒤, 서로가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되는 치킨게임을 통해 실제로 지정된 대상을 찾게 만든 「post-1945」(2008)는 실제적인 비난에 직면하기도 했다. 이 모든 상황은 관객을 속이기 위해 연기자를 동원한 거짓설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너무도 닮은 현실과 허구를 구분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정서적인 혼란에 빠져 든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위험천만의 작품들을 통해 사회적 약자를 작품에 이용한 비윤리의 혐의를 스스로 뒤집어 썼다. 김홍석의 게임은 현실의 부조리를 드러내는 위악적인 장치로 보이지만, 실제로 어느 누구의 인격도 침해하지 않는다는 점을 우리는 눈 여겨 보아야 할 것이다. 거짓말과 가짜 연기로 비윤리를 위장하면서 윤리적 정치성을 반어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그의 방법이다.
김홍석_사람 건설적 People Constructive_삼성미술관 플라토_2012
김홍석_좋은 비평 나쁜 비평 이상한 비평 Good Critique Bad Critique Strange Critique_삼성미술관 플라토_2013

사람 건설적 ● 김홍석의 작업은 현대미술가들이 개념을 작품이란 결과물로 외연화하는 행위가 어떻게 미술로 맥락화되는지에 대한 다양한 사례를 흥미롭게 제시한다. 더불어 창작 과정에 매개된 사람들의 노동이 금전적 보상될 때, 그들의 윤리적 정당성마저도 확보된 것인지에 대해 자문한다. 그의 작업에는 여러 매개자들이 개입되고 이들은 합당한 자율성을 부여받으며 역할의 비중에 따라 작가를 대신하는 중심인물이 되기도 한다. 작업의 매체 또한 '특정성' 이라는 새로운 조건을 부여받는다. 그는 차용과 참조의 전략에 따라 자신의 작업 「공공의 공백」과 타인의 작업을 차용, 복제한 본인의 작업 「READ」를 「카메라 특정적-공공의 공백」(2010)과 「카메라 특정적-가짜 그 이상의」(2010)를 재구성한다. 이전 작업을 인용하고 확장하는 이 작업에서 작가는 스크립트 제공자로서의 역할만을 할 뿐, 해설자와 촬영자의 자의적인 해석이 덧입혀져 작품은 새로운 차원을 맞이한다. 일반적으로 퍼포먼스의 부차적인 기록물로 존재하는 비디오가 특정 장소와 인물의 현존과 유리되어 있으면서도 원작을 대체해야만 하는 불합리한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이 작품들은 비디오를 중심매체로 오직 카메라만을 위한 '카메라 특정적' 퍼포먼스를 구성함으로써 비디오 결과물의 보다 윤리적인 차원을 확보한다. 이 두 작업이 완결된 비디오로 존재하면서 일종의 고립된 퍼포먼스의 단계에 머무르는 것과는 달리 「사람 객관적- 평범한 예술에 대하여」(2011)」와 「사람 객관적- 나쁜 해석」(2012)은 작품의 해설자가 관객과 직접 대면할 때 야기되는 수많은 변수를 포함한 열린 결말 형식으로 존재한다. '사람이 객관적'이라는 의미는 작품의 대상이자 목표가 바로 '사람'이라는 사실을 뜻한다. 「사람 객관적- 평범한 예술에 대하여」에서 물질로서의 작품은 전혀 제시되지 않으며 오직 텅 빈 전시실에서 작품을 설명하는 다섯 명의 사람들만이 작품의 수행자로서 등장한다. 숙련된 연기자들로 구성된 이들은 일반적으로 미술가가 작품 제작을 하기 이전에 갖게 되는 여러 고민들을 관객들과 소통하는 작업을 하는데, 그 내용은 각각 '도구', '순수한 물질', '형태화될 수 없는 물질', '윤리적 태도', '표현' 등과 같은 본질적인 고민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설명이 궁극적으로는 현재 설명자 자신이 행하고 있는 종류의 개념적인 미술작업을 지시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정교하게 쓰여진 작가의 지시문이 관객에게 전달될 때, 암기한 대본에 의해서가 아니라 배우들 자신의 자발적인 이해가 자연스럽게 스며든 설명이 기대되며, 과정에서 새로운 서사구조가 발생할 때, 이 작업은 한 단계 높은 수행적 차원에 도달할 수 있다. 반면 「사람 객관적- 나쁜 해석」(2012)은 같은 종류의 조각작품들이 '노동', '은유', '태도'라고 이름 붙여진 세 개의 방에 다른 모습으로 배치된 상황을 미술관 도슨트들이 관객에게 설명하는 것으로 진행된다. 작가가 제공한 설명문은 허구로 구성되는데 그 허구는 전달자의 기질에 따라 과장되거나 생략되어 허구의 가능성을 한층 더 심화한다. 주제에 따라 이야기를 달리하는 세 개의 방을 경험하면서 관객은 눈에 보이는 사건 모두를 의심하는 단계에 이르고, 그 결과 설명자와 관람객 상호 간에는 설득하는 자와 거부하는 자 사이의 보다 복합적인 수행성이 형성된다. ● 신작 「좋은 비평, 나쁜 비평, 이상한 비평」(2013)은 작가의 작품에 소극적으로 개입할 수 밖에 없었던 연기자나 도슨트들을 대신하여 세 명의 미술전문가들이 작가의 작품 두 점에 대해 논의하는 것으로 진행된다. 세르지오 레오네와 김지운 감독의 인간분류법을 차용한 작품 제목은 정작 좋거나 나쁘거나 이상한 비평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규정하지 않으며 그들이 작성한 평문과 대중강연, 그리고 강연을 기록한 비디오 기록물을 작업의 일부로 포섭하여 전시한다. 비평의 대상이 된 김홍석의 작품은 종이상자와 스티로폼, 슬리퍼 등 허접한 재료의 덩어리가 레진 조형물로 거듭난 「자소상」과 두 명의 일용직 노동자가 하루치 일당을 받고 캔버스를 걸레질로 닦아냈다는 「걸레질-121107」이란 회화작품이다. 이에 대해 비평가 유진상은 원본대신 향상본으로 제시된 「자소상」이 사회적 관행과 인정제도, 편의성에 편승해 논쟁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는 진지한 진단을 내리고, 작가 강석호는 '매너'라는 동일한 단어로 김홍석이 재료를 다루는 '방법'과 그에 대한 '태도' 사이의 연관관계를 드러내고자 시도한다. 반면 평론가 서현석은 타인의 노동(대학원생의 리포트)을 자신의 평론으로 대체하여 작가의 작업방식을 그대로 전유할 뿐만 아니라, 김홍석이 대가를 지불하여 확보한 지적소유권을 평론가 자신은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대신 포기함으로써 윤리성마저도 확보했다는 주장을 펼친다. ● 김홍석의 작업에서 중요한 점은 일반적으로 퍼포먼스 작업이 추구하는 수행성의 성립이나 작업의 비물질성, 관객의 참여처럼 작업의 외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작품 생산의 내부, 즉 분화된 생산 주체들 사이의 윤리적인 관계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는 작업을 위임한 참여자들에게 언제나 작업기준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여 정당하게 대우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데, 이때 금전적인 보상이 노동의 정당성까지도 말소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의문을 풀지 못한다. 작가는 인형 옷을 입은 불법 이민자들, 현대무용가로 알려진 미스터 킴, 캔버스에 물감을 대신 칠해 준 잡역부, 그리고 작업실 주변의 검은 비닐 봉지와 각목, 스티로폼을 브론즈와 스틸 조각으로 전환해 준 공장주에게 대가를 지불함으로써 독점적인 저작권을 확보했다고 단언한다. 그런데 위법성과는 무관하지만 여전히 의문스러운 이 상황은 사실 그가 꾸며낸 허구이며 그는 기만적인 이야기 속의 악역을 자처하면서 기술과 노동, 자본과 권리의 합법적인 교환시스템에 내재한 윤리적 취약성을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이다. 이 불편한 진실은 스펙터클한 작품생산을 위해 거대한 시스템의 기획자로 변모하고 있는 오늘날의 모든 예술가들에게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이 된다. ● 「사람 건설적」(2012)이란 제목의 일련의 조각들은 이율배반적으로 작가 스스로 자본의 논리 속으로 뛰어든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조각의 원재료는 일상 어느 곳에서나 쉽게 발견되는 쓰다 남은 각목, 버려진 택배상자, 판자들인데 이를 브론즈나 스텐레스스틸 같은 고급 재료로 전환함으로써 윤리적인 정치성과 심미성이 만나는 모호한 지점을 생성한다. 이와 같은 행위는 일시적인 재료들을 존속시키기 위한 보존적인 문제와 작품을 다루는 여러 사람들의 노고를 경감시키는 윤리적인 문제, 가치를 향상시키는 실리적인 문제 등을 두루 해결하면서도 재료 본연의 반예술적 정치성을 유지한다고 주장될 수 있는 반면, 유진상의 지적대로 사회적 관행과 인정제도, 보수적 취향에 영합한 변형으로서 문제시될 수도 있다. 작가는 자본의 모순과 미덕 앞에 스스로를 던지며 끝나지 않을 윤리 게임에 몰두한다. 그는 좋거나 나쁘거나 이상한, 또는 그 모든 평가가 가능한 미술가다. ■
김홍석_공공의 공백_삼성미술관 플라토_2013



1. 전시 프로그램 퍼포먼스 - 좋은 비평 나쁜 비평 이상한 비평 * 당일 전시 입장권 소지자 선착순 참석 강연 퍼포먼스 일시 : 3월 22일(金) 오후 4시 주제 : 김홍석의 작품 비평 | '자소상'과 '걸레질-120512'에 대하여 강연자 : 강석호 (미술가, 전시기획자) 서현석 (미디어비평, 미디어아티스트, 연세대 대학원 교수) 유진상 (미술비평, 전시기획, 계원예술대학교 교수) 대담 퍼포먼스 일시 : 5월 11일(土) 오후 4시 주제 : 미술가들의 착한 노동과 착한 태도 대담자 : 강석호 (미술가, 전시기획자) 김홍석 (미술가, 상명대학교 교수) 서현석 (미디어비평, 미디어아티스트, 연세대 대학원 교수) 유진상 (미술비평, 전시기획, 계원예술대학교 교수) 김홍석 작가 강연회 일시 : 4월 26일(金) 오후 4시 대상 : 전시 관람객 100명 신청방법 : 홈페이지(www.plateau.or.kr)에서 접수, 문의: 1577-7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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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아우라] 지영展��March 06,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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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풍경 (Certain.. Landscape)






안우동展 / AHNWOODONG / 安佑東 / photography 2013_0307 ▶ 2013_0316 / 월요일 휴관




안우동_#drive-in theater_C 프린트_80×80cm_2009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안우동 블로그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30am~07: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온 GALLERY ON 서울 종로구 사간동 69번지 영정빌딩 B1 Tel. +82.2.733.8295 www.galleryon.co.kr




사회가 발달하면 할수록 인간들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보다 유희적이고 편리하게 개선시킨다. 동시에 탐미적이고 쾌락적인 영위를 위해 자연을 자신의 목적에 맞게 개발하기도 한다. 때문에 인간은 다양한 시설과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서 유토피아적인 환경을 즐기면서 자신의 의도대로 공간을 구성한다. 하지만 그러한 공간들은 인간에 의해 개조된 인위적인 공간이며, 부조화가 얽힌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안우동_#after festival_젤라틴 실버 프린트_40×40cm_2010
안우동_#tour bus_C 프린트_80×80cm_2009
안우동_#fountain_젤라틴 실버 프린트_36×45cm_2011

본인은 그러한 풍경을 보고 난 후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인위적인 접근 때문에 공간 자체가 모호해지는 장소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을 이어나가 '낮의 자동차 극장'과 '겨울의 야외 수영장', '여름의 스키장'..등의 모습을 통해 시간과 계절에 따라 자연이 인간의 목적에 의해 활용되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이와 더불어 '정체되어 있는 신도시'와 '광고가 없는 광고판'의 모습들을 통해서는 인간에 의해 창조된 인공물에서 목적과 시간이 어긋나는 지점을 포착하였다.
안우동_#park-eiffel tower_젤라틴 실버 프린트_40×40cm_2010
안우동_#an outdoor billboard_젤라틴 실버 프린트_40×40cm_2010

즉, 유희적 목적과 삶의 쾌락적인 영위를 위해 개발되었던 환경은 풍경(Landscape)이 되어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휴식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그 이면의 모습은 목적에 부합하기 위해 많은 공간들이 가공된 모습으로 탈바꿈되고, 기존의 풍경이 시간과 자연의 흐름에 어긋나며 부조화를 이루게 된다.
안우동_#outdoor swimming pool_C 프린트_80×80cm_2009

여기서 본인이 주목하고 관심을 가진 부분은 자연-인공 사이의 조화로움이 붕괴되는 시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공통된 속성을 갖는 풍경을 반성적 시각으로 전시를 통해 보여 주고자 한다. ■ 안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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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展 / LEEJIHYUN / 李智玹 / painting 2013_0307 ▶ 2013_0404 / 월요일 휴관



이지현_Composition_audience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183×198cm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21011h | 이지현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3_0307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30am~08:00pm / 주말_10:30am~07:00pm / 월요일 휴관

두산갤러리 서울 DOOSAN Gallery Seoul 서울 종로구 연지동 270번지 두산아트센터 1층 Tel. +82.2.708.5050 www.doosangallery.com



두산갤러리 서울에서는 2013년 3월 7일부터 4월 4일까지 이지현의 개인전『Threshold』를 개최한다. 2012년 하반기 두산 레지던시 뉴욕 입주작가였던 이지현의 이번 전시는 2008년 이후 서울에서 개최하는 첫 개인전으로 레지던시 입주기간 동안 완성된 신작이 포함된 회화 10점과 작은 크기의 회화 30여점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지현_Structure study_mirror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228.6×213.5cm_2012
이지현_Knitting sandy beach_캔버스에 유채_127×173cm_2012
이지현_Fantasma 연작_부분
이지현_Fantasma 연작_부분
이지현_Fantasma 연작_부분

이지현의 작품은 그의 무의식 속에 파편적으로 부유하는 기억들이 현실에서 경험하는 공간들과 만나면서 보다 다층적인 이야기의 구조를 보여준다. 즉, 공간에 대한 시지각의 경험이 개인의 기억과 만나면서 중첩되고 편집되어 비가시적인 제3의 공감각적 풍경으로 구현된다. 이번 전시의 제목인 'threshold'는 건축에서 실제로는 존재하지만 도면 상에는 나타나지 않는 공간을 뜻한다. 이는 이지현의 작품에서 무의식 속 어딘가에 존재하는 공간들을 연결시키는 상징적 고리로 작용한다. 기존 작품에서 유명한 미술관이나 성당과 같은 대중적인 공간과 작가의 방, 서재, 물건들이 역동적으로 뒤섞여 초현실적인 풍경을 보여 주었다면, 신작에서는 이지현의 일상적 공간 속에서 파편화된 기억이나 생각의 연상작용으로 만들어지는 연속적 이미지들이 패턴화되어 그물 형태나 벌집구조, 혹은 모래사장의 발자국 등으로 연결되어 형상화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사유의 흔적을 구조화하여 이미지로 확장시킨 대형 신작 회화들과 더불어 현재까지 사유 과정과 고민을 집약하여 보여주는 작은 크기의 회화그룹「Fantasma」(Fantasma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대형 회화 작업을 하면서 메모하듯이 옆에 두고 그리는 작은 크기의 회화 작업들에게 작가가 붙인 제목이다. 이 작품들은 보다 생생하게 작가의 생각을 전달하는 일종의 이미지 에세이로 볼 수 있다.) 연작도 같이 선보이게 된다. ■ 두산갤러리 서울
이지현_Memory_soap bar block_카드보드 책 상자에 아크릴채색, 콜라주_19×13.5×6cm_2013 이지현_Frame #03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콜라주_지름 20cm_2013


DOOSAN Gallery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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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cguffin Desire




권여현展 / KWONYEOHYUN / 權汝鉉 / painting 2013_0307 ▶ 2013_0428 / 월요일 휴관



권여현_권여현_코나투스의 숲 Conatus forest_캔버스에 유채_194×259cm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80203d | 권여현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3_0307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pm~06:00pm / 월요일 휴관

OCI 미술관 OCI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수송동 46-15번지 Tel. +82.2.734.0440 www.ocimuseum.org



혼성의 숲, 이성과 욕망 사이로 틈입하기 ● 권여현은 전방위의 작가이다. 1980년대 작가로 데뷔한 이래 그는 회화, 사진, 드로잉, 입체, 설치, 퍼포먼스, 영상을 넘나들며 엄청난 작품을 쏟아내었다. 그의 거침없는 생산력은 국내외에서 가진 30여 차례에 이르는 개인전을 통해 이미 입증되었다. 그의 이 왕성한 생산성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농담처럼 그의 특이한 습관에서 그 이유를 찾기도 했다. 말하자면 눈으로는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모니터를 보고 한 손으로는 휴대전화를 받으며 다른 손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식이다. 이 말은 그의 모든 감각기관이 외부세계로 향해 열려있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한마디로 그는 눈, 코, 입, 귀는 물론 혀, 손과 발, 피부 등 모든 신체를 동원해 현상과 본질, 자아와 타자를 보고 듣고 느끼고 분석하고, 해석한다. 이런 점은 그가 욕심이 아주 많은 작가임을 밝히는 증거이기도 하다. 언젠가 나는 그의 회화를 보며 '이미지의 공화국'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지금 다시 그의 작품을 보니 그가 작품 속에서 운영하는 세계는 공화국이 아니라 연방이란 생각이 든다. 그것도 이미지는 물론 철학, 심리학, 사회학 등의 인문학이 서로의 입과 꼬리를 물고 있는 거대한 조합으로서의 연방 말이다. 그 근거로서 그의 작품에서 다양성과 혼종성이 특히 두드러진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풍부하면서 다면적이고, 또한 다변(多辯)이기도 한 그의 작품을 구성하는 것은 혼성의 병렬이자 중첩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모더니즘 미술을 지배했던 순혈주의의 입장에서 보면 이단이지만 잡종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관점으로는 해방지대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말해 그의 그림은 과잉되고 복잡하며 열정적이면서도 냉정하다.
권여현_Rhizome waterfall_캔버스에 유채_194×259cm_2012

최근에 완성한「코나투스의 숲」이란 작품을 예로 들어 보자. 배경은 장소가 불특정한 숲이다. 이 숲에 거주하는 존재는 우로보로스(ουροβóρος)라 불리는 뱀이다. 이 뱀은 마치 신수(神樹)처럼 화면의 중심을 수직으로 가르며 분할하고 있는 나무를 칭칭 감고 있다. 타원형으로 똬리를 튼 뱀의 영역 속에 인간이 있다. 머리카락이 뱀으로 이루어진 메두사의 머리를 한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헤르마프로디테의 모습을 한 스피노자(Baruch Spinoza)가 이 비밀의 숲에서 에덴동산의 최초의 인간처럼 벌거벗은 채 서로 마주보고 있다. 그 옆에서 뱀이 아가리로 집어삼키려고 하는 인물은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이다. 그 아래에서 데리다(Jacques Derrida)가 얼굴만 슬쩍 내밀고 있고 국보83호 금동보살반가사유상이 느닷없이 출몰하고 있다. 화면의 오른쪽에는 매혹적인 춤을 추고 있는 인도의 무희가 등장하고 아래에 당나귀의 네 발에서 뿌리가 자라고 있다. 이미지 자체로는 초현실주의적이고 초자연적이며 신비롭고 환상적이다. 그러나 화면 아래 부분의 문자는 이 꿈같은 이미지가 엮고 있는 구조에 대한 냉정하고 지적인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우로보로스란 뱀을 받치고 있는 것은 롤랑 바르트가 1967년에 출간한『모드의 체계(SYSTÈME DE LA MODE)』이란 책이다. 그 아래에는 라틴어로 '코나투스', 그리스어로 '우로보로스'라고 적힌 책이 놓여 있다. 이 지경이라면 이 그림은 이제 더 이상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 되고 만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이미지로 쓴 철학전서(哲學典書)와도 같은 것이라고 할까. 게다가 끊어지지 않고 순환하는 구조를 상징하는 기호까지 등장하고 있으니 난감하기 그지없다. 회화는 해석되는 것이지 설명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마법처럼 이 난해한 이 이미지의 연방을 구성하고 있는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 그가 동원하고 있는 개념들을 하나하나 짚어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직 기술하지 않은 하나의 이미지가 이 그림의 의미를 해석하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물에 포획 당한 채 누워있는 저 젊은 여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게다가 그녀는 벌거벗은 채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아니면 최면에 걸린 것인가.
권여현_신화의 신전 The shrine of Myth_사진에 유채_98×154.2cm_2013

권여현은 최근에 제작한 작품을 관류하는 키워드로 코나투스(conatus), 영원회귀, 모나드(monad), 나선형 순환구조, 양가성, 거울상 단계, 응시, 실재계의 찡그림, -맥거핀(macguffin), 욕망, 이데올로기가 아닌 헤게모니 등을 제시하고 있다. 위에 언급한 작품의 제목과도 연관되는 코나투스는 물론 스피노자가 말했던 '자아를 보존, 발전, 완성하려는 욕구이자 의지'이다. 따라서 제목이 지시하는 의미 그대로 따라간다면「코나투스의 숲」은 생이 지속되는 세계이다. 그런데 스피노자는 정치체제를 통해 최고의 코나투스를 발휘할 수 있는 있다고 했으므로 이 숲은 흑암과 혼돈의 세계가 아니라 조화로운 관계로 이루어진 세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화면은 혼란스럽고 거친 붓질의 흔적이 두드러지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결코 인간이 아니다. 그들은 모두 우로보로스와 나무에서 흘러나오는 줄기에 감겨 있다. 아가리로 꼬리를 물고 커다란 원을 그리고 있는 우로보로스는 시작이 곧 끝이고 끝은 다시 시작과 연결된다는 의미에서 윤회사상 또는 영원성을 상징한다. ● 사실 고대 사회에서 자연현상과 그 지역의 기후조건에 따라 이런 종류의 신화는 많은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탐무즈(Tammuz)와 이슈타르(Ishtar) 여신에 얽힌 신화는 건기와 우기란 계절에 낳은 순환구조에 대한 은유라고 할 수 있다. 해가 서쪽으로 지는 현상, 달이 차면 기우는 현상을 관찰하며 탄생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 상상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가뭄과 홍수가 반복되는 현상을 보며 자연의 순환원리에 대해 인식했던 인간은 마침내 불변하는 영원성의 문제까지 상상했던 것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이것을 상형으로 표현했다. 예컨대 고대 이집트의 태양신 라(Ra)는 호루스처럼 사람의 몸에 매의 머리를 한 상상의 동물이자 신으로서 머리 위에 이고 있는 붉은 태양의 테두리를 뱀이 감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그리스인들은 뱀의 탈피를 관찰하며 그것에서 낡은 육체를 버리고 새로운 육체를 얻는다고 생각하여 탄생과 죽음의 결합을 계속 순환하는 부활을 상징하는 우로보로스를 만들어냈다. 시간의 항구성에 대한 은유는 초기 그리스도교파의 하나인 그노시스파에게도 계승되었다. 그들은 아가리로 꼬리를 물고 있는 우로보로스를 세계가 모두 하나라는 관념을 표현하는데 활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예수의 부활을 상징하는 것으로 활용했다. 중세 연금술에서는 우로보로스를 처음과 끝을 동시에 지닌 존재로 파악하여 형이상학적 기호인 'O'으로 표현된 '현자의 돌'을 나타내는 상징물로 여겼다. 이렇게 볼 때 우로보로스는 창조, 영원, 무한, 불사, 완전성은 물론 변화를 의미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다면「코나투스의 숲」은 영원히 반복되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권여현_Ophelia and Net hunte_캔버스에 UV 프린트_89.4×130.3cm_2012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서 성장을 위해 알의 껍데기를 깨고 천사이자 악마로서 아브락사스(Abraxas)란 이름을 지닌 신을 향해 날아가야 한다고 했지만 유한한 존재인 인간은 결코 우로보로스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즉 죽음이 비영속적인 삶으로부터 영속적인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금 반복의 구조 속으로 회귀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 권여현은 화면 속에 둥근 원을 그리며 똬리를 틀고 있는 뱀은 물론 니체와 스피노자를 호출하고 있다. 그것은 또한 권여현이 제시한 키워드의 하나인 '영원회귀'와 만날 수 있는 접점이기도 하다. 니체가 말하는 영원회귀야말로 디오니소스적 탄생의 순간을 의미하지 않는가. 독실한 그리스도교 집안에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신을 죽여 버린 그는 자기의지를 지닌 완전한 존재인 초인을 맞이하여 선악의 피안을 넘어서고자 했다.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영원회귀는 디오니소스적 상태에서 자아를 잊어버리고 초개인적이고 창조적인 인간으로 탄생하는 그 '순간'이다. 그 순간에 형이상학적 예술도 태어난다. 그렇다면 권여현이 그려놓은 코나투스의 숲은 영원하고 안정된 지상낙원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활성공간이다. 순간들이 요동치고 있으므로 드라마가 발생하며 유지의 욕구인 코나투스 또한 활성화된다. 그러나 운명의 사슬인 우로보로스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다. 니체와 스피노자의 우연하고도 이상한 만남 또한 그물 속에서나 가능하다. 그물은 정신이나 육체를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연결하는 장치이다. 따라서 그물은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緣起)이거나 인타라망(因陀羅網)으로 볼 수도 있다. 연기는 태어나고 죽는 인간의 실존을 불교적 개념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비스듬하게 누운 채 잠들어있는 여성의 신체를 감고 있는 그물, 요염한 춤을 추고 있는 무희 압살라를 휘감고 있는 그물이 원인과 결과의 상징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그러나 그의 작품을 논리적인 구조로 해석하려고 할 경우 그가 걸어놓은 덫에 걸려들고 만다. 왜냐하면 이 그물은 단순히 이미지를 포획하는 도구가 아니라 일종의 미끼이기 때문이다. 미끼라! 그러고 보니 그가 제시한 키워드 중의 하나가 바로 속임수, 미끼를 의미하는 맥거핀이지 않는가. 공포영화의 거장인 히치콕 감독이 사용한 영화기법이기도 한 맥거핀은 작품 줄거리에는 영향을 주지 않지만, 관객의 시선을 의도적으로 묶어 둠으로써 공포감이나 의문을 자아내게 만드는 영화 구성상의 속임수를 의미한다. 그래서 니체, 스피노자, 쇼펜하우어, 데리다, 금동반가사유상과 압살라가 한 공간에 존재하는 것은 초현실주의자들이 사용한 '낯설게 하기', 즉 데페이즈망(depaysement)과도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작품 속의 이미지를 독해하기 위해 철학책을 뒤적거려야 했던 우리는 그가 만들어놓은 코나투스의 숲이란 혼성의 연방에서 조난당한 꼴이다. ● 이런 눈속임은 많은 작품에 나타난다.「잔 다르크의 숲」에서 잔 다르크는 더 이상 영웅이 아니다. 그녀는 메두사이거나 환호하는 원더우먼에게 보란 듯이 오스카 트로피를 높이 들고 우쭐대는 배우이기도 하다. 그녀의 어깨에 올빼미가 앉아있다고 해서 미네르바와 동일시하면 우리는 권여현이 걸어놓은 맥거핀의 포로가 되고 만다. 앙리 루소의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상상의 숲을 연상시키는 남방의 풍경 속에 느닷없이 소나무가 나타나고 있는 것도, 잔 다르크의 충복처럼 등장하고 있는 개만큼이나 이상하다. 이 개는 뒤러(Albrecht Dürer)의 판화에서 죽음과 악마의 유혹을 받으면서도 씩씩하게 진군하고 있는 기사를 따르고 있는 개를 연상시키지만 잔 다르크와 논리적으로 연결된 것은 아니다. 잔 다르크의 왼손을 떠받치고 있는 마장가제트란 로봇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그의 작품에서 중심은 주변에 의해 미끄러지고 있으며, 은유는 본질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권여현_Young Ophelia_캔버스에 UV 프린트_60.6×72.7cm_2012

그렇다면 그는 이 혼란의 숲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태어난 모든 것은 필연적으로 죽는다는 결론은 너무 소박하고 일차원적인 결론이다. 내가 보기에 그는 이 혼성의 이미지를 통해 존재란 명증한 논리로 규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양가성은 그것을 해명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존재와 부재, 주체와 객체, 이데아와 현상, 선과 악과 같은 이분법적인 구분으로 접근할수록 그의 작품은 우리의 이성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그가 불가지론의 심연을 헤엄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늘 그랬듯이 그는 작품을 통해 항상 뭔가 주장해왔다. 특이하게도 권여현은 항상 자기논리 또는 원칙을 세우고 작품을 발표해 왔다. 그런 점에서 권여현은 아주 지적인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초기에 그를 사로잡았던 것은 실존철학이었다. 그것을 회화로 구현하기 위해 그가 제시한 여섯 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견고한 배경과 얇게 그려진 인간 / 둘째, 부분적 추상과 전체적 구상 / 셋째, 단계적인 제작과정 / 넷째, 각 부분의 다른 양식들 / 다섯째, 드로잉의 원리 -과감한 두고, 날카로운 직선, 강렬한 광선, 전혀 다른 공간의 조합 / 여섯째, 전면 이질적인 추상적 형식은 색채와 내용에 의해 통합된다. (1987년 개인전『실존공간-n』과『Form and Content-n』) 물론 위의 원칙은 자신이 추구하던 실존철학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방법론이지만 그 행간에서 그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것이 바로 손이다. 손으로 그리기는 그가 한 때 다양한 계층과 부류의 인간으로 분장, 연기한 모습을 촬영한 사진작업을 제외한다면 항상 작업의 중심을 차지하여 왔다. 자신의 손에 대한 지극한 애착과 믿음은 그의 빼어나게 잘생긴 외모와 그에 대응하는 외모 콤플렉스(이게 무언인지 그를 알고 있는 사람은 금방 눈치 챌 것이다)가 나르시시즘의 원천이었듯이 그의 작품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그가「구도자」란 영상을 제작하며 했던 퍼포먼스의 부산물로서 멋진 사진작업이 하나 탄생했다. 바닥에 캔버스를 깔아놓고 온 몸으로 화면 위의 물감을 휘젓는 퍼포먼스를 하면서 그의 손은 마구 뒤섞인 물감이 주름마다 스며들어 '우연하게도' 고원의 자외선에 노출된 채 성지를 향해 오체투지를 하며 나아가고 있는 순례자의 거칠고 때가 낀 손과 같은 것으로 나타났다. 만약 영상을 보지 않고 이 깍지 낀 손만 본다면 그것이 권여현의 손인지, 구도자의 손인지, 아니면 평생 땅을 일궈온 농부의 주름진 손을 촬영한 것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이다. 나는 이 사진작업을 볼 때마다 문득문득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을 떠올리게 된다.「구도자」에서든 그가 최근에 제작한「맥거핀 욕망 혹은 네트 헌터」란 영상에서 그가 바닥에 깔아놓은 캔버스 위에 온 몸을 던져 허우적거리는 강렬한 퍼포먼스를 했기 때문에 폴록을 떠올린 것은 아니다. 우리는 폴록이 물감을 뿌려놓은 거대한 캔버스만 본다. 그러나 그가 작업실 바닥에 캔버스를 깔아놓고 안료를 흠뻑 적신 막대기와도 같은 붓을 휘두르고 있는 사진 속의 그 손에 대해서는 별로 주목하지 않는다. 물감을 뿌리고 있는 폴록의 손은 그리기란 오래된 원칙에 대한 반란이자 해방을 보여준다. 권여현은 아예 화폭 속으로 온 몸을 던졌다. 그러나 그는 격렬한 행위의 결과인 화폭과 함께 물감으로 얼룩진 주름진 손도 버젓이 전시했다. 여기에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어쩌면 권여현은 폴록보다 훨씬 더 자신의 손을 예찬하고 심지어 숭배하려고 한 것은 아닐까. 회화에서도 그의 손에 의해 물감의 물질성은 고양되고 화면은 기운생동한다. 사전에 계획되고 연출된 화면구성은 이 순간 비등하는 에너지에 의해 돌멩이가 던져진 수면처럼 출렁거리며, 그의 붓질은 마치 접신상태의 샤먼처럼 '신들린 광기'를 드러낸다. 그러나 그의 트랜스(trance) 상태는 실제로 아주 짧다. 그러기에 그의 머리는 너무 복잡하고 참조해야 할 것도 너무 많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것이 이성과 무의식을 버무리는 것, 이른바 '미장아빔(mise en abyme)'이란 기법이다. 회화의 맥락에서 이미지 속에 다른 이미지를 섞어 넣는 이 기법은 고도의 연출을 필요로 한다. 그 결과는 그의 작품이 보여주는 것처럼 혼성의 연속이자 반복이지만 그것도 겉으로 드러난 이미지만 볼 때 그렇다.
권여현_Macguffin Desire_캔버스에 UV 프린트_89.4×130.3cm_2012

그는 화가이기도 하지만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이기도 하다. 위장술은 그의 회화에서도 잘 발휘된다. 우리는 그의 작품에서 미술사의 잘 알려진 명작들이 잘려나간 채 차용되고 있음을 본다. 미술사는 그에게 많은 소재를 제공하는 보물창고이자 원천이다. 신화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것이 미끼임을, 그가 걸어놓은 맥거핀의 함정임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정작 그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미술사적 정보나 신화체계에 대한 지식과 해석이 아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이 원작에 대한 패러디라고 규정하는 것도 만족스러운 결론은 아니다. 내용을 인식할 수 있는 원작이 그의 작품 속에서 화자로서 말을 걸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화자의 부재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그래서 오리무중이고 미궁인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생기는 간격이 그의 작품이 지닌 특이성이다. 그의 작품은 켜켜이 중첩되고, 또 한편으로 수평적으로 병렬된 이미지와 이미지, 화포와 물감 사이에 놓여있다. 결론을 예측할 수 있는 복선을 기대하지 말라. 그것조차 해체하는 것이 그의 작품이 추구하는 것이니까.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베이컨(Francis Bacon)의 그림에서 벨라스케스가 그린 교황의 초상과 에이젠시타인(Sergei M. Eisenstein)의「전함포템킨」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물론 원작은 베이컨의 회화를 위해 중요하다. 그러나 베이컨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이미지의 원형을 연상시키는 형태가 아니라 피나 땀과도 같은 분비물이었고 격렬한 붓질로 드러나는 욕망이었다. 베이컨은 작업의 모티브를 찾기 위해 수집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이미지들을 수집했다. 대부분은 시사잡지에 게재된 사진이었지만 말이다. 권여현은 모티브를 미술사에서 찾는다. 그리고 그 위에 철학의 담론을 덧씌운다. 그가 참조하고 있는 철학자는 자크 라캉과 같은 정신분석학자, 질 들뢰즈나 데리다와 같은 후기구조주의자는 물론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니체 등에 이르기까지 다채롭고 풍부하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봐야 할지, 그의 작품에서 철학사를 읽어야 할지 헷갈릴 지경이다. 하여튼 그의 작품을 구성하는 모티브들은 모든 곳으로부터 온다. 철학적 담론, 신화, 종교, 과학에 이르기까지. 그것은 그의 현학취향을 반영한다. 내가 그의 작품을 봐야 하는지 것인지 읽어야 하는지 난감해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신화든 철학이든 다 같이 존재의 문제를 표현하기 위해 동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거룩한 말씀도 존재를 해명하기 위한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실존의 문제로부터 출발하여 1990년대의 직설적 감성과 직설적 화법을 통해 병약하여 신열을 앓고 있으면서도 주체할 수 없는 욕망에 의해 작동되는 자아를 천착하던 그는 2000년대 초반에 이르러 마침내 자기존재를 부유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그의 작품을 관류해왔던 주제가 존재, 특히 자아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지 않는가. 이러한 일관성을 주목해 볼 때 그가 어떤 미끼를 던지고 이미지의 덫을 놓든 그 저변에 사회적 존재, 역사 속의 존재, 주체로서의 존재문제에 천착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에게 중요한 것은 코기토(Cogito) 이전의 상태, 즉 의심하는 자아이다. 즉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의심하기 때문에 존재한다. 그렇다. 의심도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 의심은 당연히 우리가 진리라고 믿고 있는, 또는 진리라고 강변된 것에 대한 질문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어쩌면 회의주의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책상 위에 턱을 괴고 앉아 그것이 과연 그럴까 라고 사색만 한 것은 아니다.
권여현_rhizome forest_캔버스에 유채_194×259cm_2012

다중인격에 대한 열렬한 집착이 결국에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에서 나온 것이듯이 그는 이 회의를 통해 이미 오래 전부터 추구해왔던 혼성의 정당성에 대해 더 깊은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고 존재의 사슬이자 욕망의 사슬이기도 한 우로보로스를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도 수미일관하고 논리적인 구조로서가 아니라 그가 또 하나의 키워드로 제시한 앵프라맹스(inframince)처럼 미세한 틈, 그 사이를 넘나들고 있는 것이다. 앵프로맹스에서 이성과 감성, 무의식과 욕망, 자아와 타자는 서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겹쳐져 있다. 권여현의 작품에서도 인간이 동물이나 식물이 되고, 식물이 기계와 공존하며 자아는 잔혹한 지배자이자 그물에 걸린 가련한 먹이로 등장한다. 이들을 연결하는 것은 거대하고 복잡한 뿌리, 그것이 리좀이든 인트라망이었든 무엇이었든 간에, 서로를 성장시키고 구속하는 구조이다. 이것이 매트릭스일까. 아니면 그것조차 맥거핀일까. ● 그가 만든 영화『맥거핀 욕망 혹은 네트 헌터』는 암시적이다. 과연 오필리아는 사랑하는 햄릿에게 버림받은 처참함 때문에 죽은 것일까. 혹은 실수로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햄릿에게 복수하기 위해 죽음을 위장한 것일까. 이 영상의 결말 부분은 다소 의아하지만 헌터 마스터(hunter master)로 분장한 작가 자신이 오필리아에게 살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스산한 바람이 부는 들판(이 장면에서 나는 에마뉘엘 안티유(Emanuelle Antille)의「천사의 캠프(Angel's Camp)를 떠올렸다)으로부터 헌터 마스터의 목을 자르는 장면(여기서 나는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의「유디트」를 연상할 수밖에 없었다)에 이르기까지 잘 짜인 각본과 레제(Fernand Léeger)의「기계적 발레(Le Ballet Mécanique)」에서 활용한 몽타주의 반복과도 같은 효과를 도입한 것은「구도자」와 비교하지만 진일보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도입부로부터 마지막 장면의 노래나 계속 화면을 어지럽히는 자막, 그것도 작가 자신의 철학적 언술을 적어놓은 글은 생경하고 설명적이다. 그러나 오필리아가 죽인 헌터 마스터가 가족임이 드러나고 물려받은 상자가 맥거핀임이 밝혀짐으로써 이 모든 서사가 인간이 지닌 콤플렉스에 대한 암시로 가득 찬 것임을 알 수 있다. 오필리아는 죽지 않았다. 그녀가 죽이고자 했던 것은 자신이 아니라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운명의 그물이었다. 어쩌면 그녀도 햄릿처럼 이러지도 못하고 저리지도 못한 상태로 죽음의 순간을 지연시켰을 수도 있다. 물에 떠 있는 그 순간 그녀가 본 것은 죽음이 아니라 죽음을 욕망하는 대타자이다. 죽음의 순간에 도달하는 주이상스를 느낄수록 실제의 죽음은 지연된다. 목이 잘려 살해당한 헌터 마스터는 부활해 헌터들에게 칼을 건넨다. 이것은 한 바탕 꿈인가. 아니면 이성과 욕망 사이에 난 균열의 틈으로 슬쩍 본, 그래서 응시가 활성화된 장면인가. 이 모든 것이 맥거핀임이 드러난 순간 영상은 가족사진으로 급속하게 되돌려진다. 다시 거친 바람이 부는 언덕에서 이야기는 반복을 암시한다. 그렇듯 그의 현란하면서 복잡한 이야기도 그림을 통해, 퍼포먼스를 통해, 영상을 통해 계속 될 것이다. ■ 최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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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미술 300년




Art Across America展 2013_0205 ▶ 2013_0901 / 월요일,2월12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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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3_0204_월요일_04:00pm_국립중앙박물관

참여작가 윈슬로우 호머_토머스 에이킨스_메리 카사트 조지아 오키프_잭슨 폴록_앤디 워홀 외

대여기관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필라델피아미술관 Philadelphia Museum of Art 휴스턴미술관 Museum of Fine Arts Houston 테라 미국미술재단 Terra Foundation for American Art

주최 / 국립중앙박물관_KBS한국방송_대전시립미술관 주관 / KBS 미디어_ena 후원 / 문화체육관광부_주한미국대사관_국립중앙박물관회 특별후원 / 테라미국미술재단

전시문의 / 1661.2440

관람료 성인 12,000원 / 중·고생 10,000원 / 초등학생 8,000원 유아(48개월 이상) 5,000원 / 65세이상 6,000원 48개월 미만_단체 인솔자 (교원 1인)_국가보훈대상자_기초생활수급자 장애인(1급~3급) 본인(및 동반1인)_국립중앙박물관회 회원증 소지자 무료입장

관람시간 화,목,금_09:00am~06:00pm / 수,토_09:00am~09:00pm 일,공휴일,2월11일_09:00am~07:00pm / 월요일,2월12일 휴관

2013_0205 ▶ 2013_0519

국립중앙박물관 NATIONAL MUSEUM OF KOREA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번지 기획전시실 Tel. +82.2.2077.9000 www.museum.go.kr

2013_0618 ▶ 2013_0901

대전시립미술관 DAEJEON MUSEUM OF ART 대전시 서구 둔산대로 155 1,2,3,4전시실 Tel. +82.42.602.3200 www.dma.go.kr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하는『미국미술 300년, Art Across America』은 18세기 미국의 식민지 시기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미국미술의 역사적 흐름을 조망하는 첫 대규모 전시이다. 168점의 대표적인 미국 회화, 공예품들이 소개될 이번 전시는 지난 300년 동안 미국미술이 이룩한 예술적 성취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잭슨 폴록, 앤디 워홀 등의 현대미술의 대표적 작가들 뿐만 아니라 존 싱글턴 코플리, 찰스 윌슨 필, 토마스 콜, 윈슬로우 호머, 토마스 에이킨스, 메리 카사트, 찰스 데무스, 조지아 오키프 등 미국미술사의 주요 화가들의 작품이 한국에 선보인다. ● 이번 전시는 아메리카의 사람들, 동부에서 서부로, 삶과 일상의 이미지, 세계로 향한 미국, 미국의 근대, 1945년 이후의 미국미술 등 6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었다. 각 섹션은 미국 역사의 주요 흐름을 관통하고 미국 미술의 각 시대적 특징을 담았다. 또한 6개 테마로 구성된 공예 작품들은 미국의 장인들과 디자이너들의 높은 예술적 수준을 보여주면서 미국미술의 시대와 지역적 특색을 제시한다. 미국미술 300년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미국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미국미술이 지녔던 역할을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1부 - 아메리카의 사람들 American People ● 미국은 유럽에서 온 탐험가, 개척자, 망명자들이 경제적 기회와 종교의 자유를 찾아온 신세계였다. 그러나 그 땅은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 노예들, 수천 년 동안 살고 있었던 원주민들에게는 전혀 새로운 곳이 아니었다. 이민자들은 각국의 예술 양식을 들여왔지만 이는 곧 새로운 환경에 맞추어 변화하였다. 17~18세기 미국 화단의 대표적인 장르였던 초상화에는 초기 미국의 다양한 인간 군상이 담겨있다. 유럽의 식민지에서 하나의 국가로 변모하고, 서부로 확장해 나가면서, 초상화는 다양한 집단을 구별하고 정의하는 중요한 표현수단이었다.
찰스 윌슨 필_캐드왈라더 가족 초상_1772_PMA 소장 존 싱글턴 코플리_푸른 드레스를 입은 여인의 초상_1763_TFAA 소장 photo ⓒ Terra Foundation for American Art, Chicago
토마스 애플렉_카드 테이블_18세기 미국의 응접실_1770~1_PMA 소장

2부 - 동부에서 서부로 American Landscape : East to West ● 무한한 가능성과 발전은 암시했던 미국의 자연은 곧 국가 정체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19세기 초반 동부의 '허드슨강 화파'를 이끌던 일군의 화가들은 눈부신 빛과 포근한 대기를 화폭에 담아 미국인들이 바라던 신의 축복을 표현하였다. 한편, 서부 개척 사업은 무한한 영토의 확장을 상징하는 것으로 가장 특징적인 미국 문화의 요소가 되었다. 19세기 중반에 이르면 대규모 토목 공사가 이루어져 새로운 영토에 정착민들이 늘어났다. 그러나 동시에 그 땅의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터전을 점차 잃게 되었다.
토마스 콜_인물이 있는 풍경 :「모히칸 족의 최후」의 한 장면_1826_TFAA 소장 photo ⓒ Terra Foundation for American Art, Chicago
프레데릭 레밍턴_목동_1905_MFAH 소장
주니족_계단모양과 대각선이 장식된 토기_미국 원주민 미술_20세기 초_MFAH 소장

3부 - 삶과 일상의 이미지 Daily Life in Art ● 19세기 미국인들에게 미술은 일상을 그리는 것이었다. 일상의 도구들을 정교하고 세밀하게 묘사한 정물화는 사람들의 취향과 습관을 드러내기도 했다. 초상화와 풍경화가 결합된 풍속화에는 삶의 극적인 순간이나 사건들이 중심 소재로 다루어졌다. 남녀 간의 애정에서부터 활기에 찬 떠돌이 행상, 지루한 일상에서부터 흥겨운 축제와 유희의 장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일상의 모습이 폭넓게 그려졌다.
윈슬로 호머_건전한 만남_1874_PMA 소장
에드워드 힉스_원주민과 맺은 펜의 협정_1830~40_MFAH 소장
J. H 벨터 컴퍼니_소파_19세기 미국의 응접실_1855_MFAH 소장

4부 - 세계로 향한 미국 Cosmopolitan America ● 서부 개척 이후 미국은 대호황시대를 누렸다. 미국인들은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고 집안을 호화롭게 장식하는데 관심을 모았다. 대서양 너머 유럽을 향한 미국인들의 열렬한 관심과 함께 점차 미국은 국제적인 예술과 문화의 장으로 성장하였다. 세계 예술의 중심지 파리는 미국의 화가들이 성공하는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메리 카사트를 비롯한 많은 화가들이 유럽에서의 인상주의를 특히 추종하였다.
메리 카사트_조는 아이를 씻기는 어머니_1880_LACMA 소장 photo ⓒ 2012 Museum Associates/ LACMA 존 브래드스트리트_컴퍼니_연꽃 문양 탁자_1905년경_MFAH 소장
차일드 하삼_소나기–보나파르트 거리 (마차 정류장–파리의 보나파르트 거리)_1887_TFAA 소장 photo ⓒ Terra Foundation for American Art, Chicago

5부 - 모던 아메리카 Modern America ● 20세기 초 미국은 빠르게 도시화되었다. 도시 거주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고 유럽, 아시아 등의 여러 국가의 이주민들이 새로운 기회를 찾아 대도시로 몰려왔다. 이 시기 많은 화가들은 이방인들이 느꼈던 고립감들을 표현하였다. 사실주의자들은 도시의 삶을 자신들이 관찰한 대로 화폭에 담아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모더니스트들은 추상과 입체주의의 방식으로 미국적인 주제를 다루면서 당대 유럽미술과의 차별을 이루었다.
조지아 오키프_분홍 장미가 있는 말의 두개골_1931_LACMA 소장 로버트 헨라이_에드나_1915_LACMA 소장 photo ⓒ2012 Museum Associates/ LACMA
루벤 카디쉬_무제 (기생충 박사)_1935_LACMA 소장 photo ⓒ2012 Museum Associates/ LACMA

6부 - 1945년 이후의 미국미술 American Art After 1945 ● 2차 세계대전 이후, 뉴욕을 거점으로 미국미술은 빠르게 성장하였다. 당시 미술가들은 구상적인 형태를 버리고 자유로운 몸짓을 통해 회화의 혁신을 이루어냈다. 이 시대의 또 다른 주요 미술가들은 색을 중심으로 화면을 구성하여 색채의 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하기도 하였다. 1950년대 말부터 미국미술은 물질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여 급진적인 화면구성을 이루어내면서 두 번째 혁신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다양성과 개방성을 기반으로 미국미술은 이후 세계미술의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  
잭슨 폴록_넘버 22_1950_PMA 소장 ⓒJackson Pollock / ARS, New York - SACK, Seoul, 2
찰스 & 레이 임스_LCW (나무라운지 의자)_1950년경_LACMA 소장 photo ⓒ2012 Museum Associates/ LACMA


『미국미술 300년, Art Across America』은 국립중앙박물관과 미국의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 필라델피아미술관, 휴스턴미술관, 테라 미국미술재단이 공동으로 기획하였다. 테라 미국미술재단은 이번 전시에 주요한 후원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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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한강 PARK, HANGANG




이득영展 / LEEDUEGYOUNG / 李得榮 / photography 2013_0308 ▶ 2013_0428 / 월요일 휴관



이득영_37°17'52.24"N 127°10'50.86"E_플렉시글라스에 마운트, 피그먼트 프린트_76×115cm_2013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01030c | 이득영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3_0307_목요일_05:00pm

후원 / 서울문화재단_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협찬 / 한국엡손_니콘이미징코리아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일민미술관 ILMIN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세종로 139번지 제1,2전시실 Tel. +82.2.2020.2060 www.ilmin.org



멀어서 가깝다 ● 일민미술관은 서울이라는 도시의 시각적 특수성을 수집해 온 작업에 주목하며 『이득영 사진전: 공원, 한강』전을 마련한다. 아울러 한국 시각문화연구를 위한 기초적 이미지자료집 '일민시각문화 7'을 발행한다. ● 이득영 작가는 2006년에 한강변의 69개의 간이매점들을 찍어 한 데 모은 '한강 프로젝트1'을 발표했고, 이어 25개의 한강 다리들을 헬기에서 내려다보며 찍은 '한강 프로젝트2'와 서울 강남 테헤란로 일대를 상공에서 조감한 'Teheran'작업을 선보였다. 2010년에는 김포부터 잠실까지 배를 타고 강의 북쪽과 남쪽을 긴 시선으로 담은 '두 얼굴' 연작을 발표했다.
이득영_37°17'37.07"N 127°12'6.63"E_플렉시글라스에 마운트, 피그먼트 프린트_230×100cm×4_2013
이득영_Paradise 002_플렉시글라스에 마운트, 피그먼트 프린트_95×240cm_2013

이번 일민미술관의 전시에는 '두 얼굴'의 밤 버전(night version)이 중심이 된다. 그의 작업들은 단편적인 기억에서 벗어나 좀더 높은 곳에서 좀더 먼 곳에서 좀더 넓은 시각으로, 그래서 마치 영화 속 카메라의 시선으로 풍경을 읽어 가듯이 긴 호흡으로 이야기를 이끌게 한다. 군집된 이미지들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 즉 시대적 아이콘을 조망하게 해준다.
이득영_강북North_피그먼트 프린트_94×14400cm_2013_부분
이득영_강북North_피그먼트 프린트_94×14400cm_2013_부분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작업은 에버랜드(과거 용인자연농원)를 찍은 '공원' 연작이다. 애초에 작가는 인위적으로 조성한 공원들에 대해 낙원(paradise)라는 개념으로 접근하고자 했다. 우리의 공원 역사는 어린이대공원, 용인자연농원, 서울공원을 거쳐 롯데월드, 올림픽공원, 일산호수공원, 월드컵공원, 선유도공원, 그리고 최근의 4대강 개발 등으로 진행되어 왔다. 공원의 변모하는 모습들이 우리 시대 상징에 대한 또 다른 접근이 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헬기를 띄우는 허가문제를 비롯해 여러 가지 여건의 제약으로 이번 공원 작업은 에버랜드로만 만족해야 했다.
이득영_강북North_피그먼트 프린트_94×14400cm_2013_부분
이득영_강남South_피그먼트 프린트_94×14400cm_2013_부분

4차례 시도된 비행의 마지막 순간은 힘든 과정을 충분히 보상해 주는 듯하다. 2012년 10월 30일, 단풍이 한창인 에버랜드 전경은 영원(ever) 혹은 파라다이스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한다. '낙원'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마치 한 송이 꽃 마냥 바로 닿을 듯한 내 손 안에 있다. 한강변의 거대한 다리나 빛나는 불빛도 멀리에 있지만, 그래서 가깝다. ● 이득영의 사진작업들은 장시간의 승선이나 난관의 비행, 좌표검색과 같은 데이터 분석에 의한 촬영, 연속성을 담아내기 위한 출력작업, 기타 허가문제나 비용 등 여의치 않은 과정을 거친다. 극복된 어려움은 시대의 모습을 폭넓은 시각으로 조감하며 미학적 기록으로 남겨져 익숙하지만 낯선 경험을 선사한다. 그리고 시각문화 연구자들에게는 활발한 담론의 이슈를 제공한다. 이는 곧 '일민시각문화'의 새로운 모색이기도 하다. ■ 김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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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ep!


2013 송원아트센터 신진작가 지원展   2013_0307 ▶ 2013_0405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3_0307_목요일_06:00pm

참여작가 권용철_김영수_김영은_안성석_양혜령 유영진_임유리_조민호_허용성_홍종우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송원아트센터 SONG WON ART CENTER 서울 종로구 윤보선길 75(화동 106-5번지) Tel. +82.2.735.9277


이 전시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에게는 '젊은', '신진' 등의 수식어가 붙는다. 그러한 수식어들이 지닌 어떤 강렬한 덩어리는 시대를 불문하고 어느 분야에서든 이목을 끌어왔다. 가치가 드러나지 않거나 적게 드러난 것일수록 그것이 발견될 수 있는 가능성은 더 높다. 그렇기에 새롭고 신선한 것에 대한 기대는 그들이 가져올 '더 나은 무언가'를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대개 불확실하고 막연한 기대를 두고 공허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시간이나 권위에 의해 검증되고 인정받은 대상과 동행하며 안위(安慰)를 얻기도 한다. 하지만 인류에게 역사라는 개념이 존재하는 한 그 행위들은 더 이상 공허하지 않다.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해 과거를 기억하며 현재를 직시한다. 그렇게 함으로서 다가올 시간에 대한 예상 시나리오를 꾸며줄 키워드들을 수집한다. 이 수많은 키워드들은 양이 너무 방대해 넘쳐흘러 무용해지는 부분도 생겨난다. 하지만 넘치도록 부어야 그릇은 어느 때보다도 가득 차오른다. 이러한 역사의 모습을 본다면, 새로운 것이 가져올 '더 나은 무언가'는 어떤 종착점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지금도 계속 쓰여지고 있을 시나리오에 신선한 키워드를 제안하는 행위 그 자체일 것이다. 장담컨대, 새로운 것에 거는 기대는 비록 불확실한 것일지는 몰라도 적어도 막연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전시 역시 그 행위 안에 포함될 수많은 시도들 중의 하나가 되기 위해 기획되었다. 또한 드러난 부분보다 드러나지 않은 부분이 더 많은 젊은 작가들의 작업으로 공간과 이야기를 구성하였으며, 이를 통한 새로운 예술 트렌드 포착을 가장 앞에 두었다. Peep!에 참여하는 20-30대의 젊은 작가 10인은 이전 세대들이 종종 언급하는 '좋은 시대'에 태어나고 성장한 작가들이다. 20세기 동•서양간의 문화 불균형에서 벗어난 풍요로운 시대를 살며 누구보다도 독립적인 가치관을 형성한 이 세대는 그만큼 어떠한 이데올로기나 제도를 마주함에 있어 자유롭다. 이들에게 있어 서구의 문화는 예전처럼 무작정 따라가야 할 '좋은 것'이 아니다. 자본이 문화를 조성하고, 경제적 강자가 그 흐름을 주도하던 시대에 관한 이야기 역시 그저 들어서 알고 있을 뿐이다. 이들은 오직 스스로가 제시하는 기준에 따라 외부환경을 해석하여 다양하게 노출시킨다. 앞서 말한 그들의 자유로움은 대상이 지닌 경계로부터의 회피나 탈출의 의미가 아니다. 대상을 독립적인 주체성이라는 기준으로 파악하고 그 본질을 각자가 제시한다는 의미이다.
권용철_The Movement Series-Study Switch_스틸, 모터, 기어, 체인_50×120×120cm_2012

권용철은 서로 연계된 금속 장치들을 이용하여 개인 간의 관계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나의 장치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어떤 특정한 시점에서 다른 장치에게 신호를 보내게 되고, 그 신호에 의해 다른 장치가 움직이거나 소리를 낸다. 앞에 선 관객은 장치들이 보여주는 각각의 모습에 자연스럽게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전체의 움직임을 감상하며 단순한 유희를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유심히 보아야 할 것은—그러한 자연스러운 집중이나 단순한 유희 때문에 놓치게 되는—그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방식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맺는 수많은 관계들을 과연 얼마나 놓치지 않고 인식할 수 있을까?
김영수_For a 4-Person Family_종이에 연필_100×240cm_2011

김영수는 자기 주변의 현실과 사건들을 마주함에 있어 객관적 시선을 차치(且置)하려 한다. 자신의 주관은 물론, 현실을 이루는 타인의 주관에 집중하여 그들이 지니는 감정선에 우선적으로 접근하려는 것이다. 작가는 현실이나 사건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집중하며 각자의 주관들을 수집하여 재구성한다. 거기에 마지막으로 그의 주관이 더해져 내러티브가 생성되고 실재를 향한 새로운 요청이 시도된다. 그러한 방법으로 작가는 현실에서 자신이 처한 위치를 가늠하고자 한다. 또한 감상자가 그의 세계로 들어와 하나의 주체가 되어, 현실과 사건에 동참하며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고 치유하길 바라는 것처럼 보인다.
김영은_The Units of the World According to ; Semicolon_단채널 비디오_00:25:48_2011

김영은은 세미콜론; 이 본 세계의 단위들 에서 소리와 기호의 언약으로 이루어진 언어 개념을 이야기한다. 이 이야기 속에는 콜론, 하이픈, 말 줄임표, 괄호, 따옴표 같은, 명칭이나 형태를 가진 문장 부호들이 등장한다. 우리는 텍스트를 읽으면서 문장부호에 어떠한 음성도 부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부호들은 각자의 의미와 성격을 가진다. 영상 안에서 이 부호들은 자신들의 음성을 갖고 스스로 표현하기까지 한다. 이 음성들이 문장부호의 성격과 부합하는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문장부호는 그 형태가 고정되어 있지만, 포함된 문맥에 따라 그 의미가 자유로워지기 때문이다.
안성석_Spouting and Children Get Wet with the Water while Adults are Looking at Them All Day_ 혼합재료_150×150×150cm_2012

안성석의 작업 안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뒤섞여 흐른다. 우리는 역사를 이야기 할 때 과거를 가져와 해석하며 정의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해석이라는 행위는 어디까지나 지금이라는 기준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지금도 광화문 앞에는 조선시대 복장을 한 서울시청 소속 직원들이 창이나 깃대를 들고 서있다. 14세기 말 태조 휘하에서 일하던 군인들도 같은 모습으로 서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현재가 말하는 과거란 현재가 스스로를 존재시키기 위해 구성해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광화문이라는 역사적 아이콘을 갤러리 안으로 가져다 놓았다. 현판도 있고, 분수대도 있으며 심지어는 현장의 소리까지 난다. 진짜 광화문이다.
양혜령_On the Journey_캔버스에 색연필, 유채_80×116.8cm_2011

양혜령은 경험에서 얻은 인상의 파편을 저장한다. 그리고 그 파편을 다시 꺼내어 재구성한다. 이성과 감성에 의해 해석되어 소중하게 보관된 감각의 조각들은 언젠가 다시 기억된다. 작가는 그러한 것들을 하나의 평면 위에 기하학적으로 배치한다. 이로써 실재를 소재로 하지만, 실재하지 않는 아이러니한 공간이 생겨난다. 이렇게 뒤집힌 공간을 제시함과 동시에 그 감각의 파편들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물질성을 지닌 파편들을 병치시킨다. 그러면 공간은 다시 한번 더 뒤집힌다. 이 순간 이 공간은 실재와 허상의 사이에서 부유하게 되며, 관객은 그림 앞에 놓인 작은 파편들과 함께 그 안으로 유입된다.
유영진_Absent place #2_잉크젯 프린트_70×100cm_2012

유영진의 사진 작업은 사적인 장소를 탐색하려는 시도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공간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 나만의 장소를 가지기 위해 세상 어느 곳을 뒤져보아도 그곳은 누군가와 공유되고 있거나 공유하게 될 곳이다. 작가는 고정시킨 카메라를 이용하여 특정한 장소를 시간대별로 촬영한다. 그리고 이 여러 장의 기록물들을 겹쳐서 하나의 회화적 분위기의 장면을 연출한다. 사진은 현실을 그대로 담아내는 매체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디지털 합성이라는 기법을 통과하여, 실재하는 장소에 비현실성을 부여하는 재료가 되었다. 작가는 이러한 방식으로 실재하는 공적인 장소를 자신만의 사적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임유리_Origami Q_HD 비디오_00:21:08_2011

임유리는 자신의 사소한 경험의 단편들로부터 작업의 소재를 이끌어낸다. Origami Q는 가상의 인물이 종이 접는 방법을 설명하다가 그 대상에 심취해 가는 장면을 보여준다. 종이 접기의 결과물은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담을 듯 다양하다. 하지만 그 모습에 부여되는 의미는 다소 억지스럽다. 우리가 살면서 시각화 된 기표들에게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는 어쩌면 이렇듯 억지스럽게 심취해가는 과정이 아닐까 한다. 다른 작업 그리운 금강산은 작가가 유학시절 겪었던 타지의 생경함에서 비롯되었다. 작가는 독일의 한 도시의 탑 위에 있는 종이 15분 간격을 두고 엄청나게 큰 소리로 울리는 것에 공포를 느꼈다. 그러나 현지인들은 너무나도 익숙하여 그저 흘러 넘길 뿐이었다. 그래서 한국의 가곡을 종소리에 맞춰 그들에게 들려주기로 했다. 현지인들에게 이 낯선 노래는 아마 그 큰 종소리보다 더 크게 들렸을 것이다.
조민호_The man with his blossom_단채널 비디오_00:08:37_2008

조민호는 Specter Project 라는 주제 아래 2008년 숭례문 방화사건을 다루는 작업을 해 왔다. 사건 직후부터 현재까지 숭례문 일대를 관찰하며 기록한 영상이나 사진 작업을 통해 사건의 단면과 내막, 현상과 본질, 역사성과 현장성에 대한 논점들을 제시한다. 출품작 꽃을 멘 남자 는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써 숭례문 방화범과 물질적 욕망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가는 직접 자전거를 타고 고양 시내를 달린다. 이곳은 재개발 공사로 인해 민과 관의 갈등이 심화된 곳이기도 하며, 그로 인해 방화범이 범행을 계획하게 된 근원지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화환 로켓을 타고 반복되는 현실에서 탈주하고자 하나 곧 추락하여 원점으로 되돌아오고야 만다. 이 추락은 숭례문 방화범을 비롯하여, 자본과 인간 사이의 괴리감으로 인해 소외되고 도태되는 개체를 표현한 것처럼 보인다. 숭례문의 복원 완공을 코앞에 둔 지금, 이 대단한 프로젝트는 앞으로 어떤 재치 넘치는 명제를 더 제시할 수 있을까.
허용성_White woman_한지에 먹_100×80.5cm_2011

허용성이 그려낸 초상은 마치 내면의 모든 것을 그대로 드러내려는 듯 순백의 얼굴로 관객을 응시한다. 이 앞에 선 감상자에게는 테크네적 압도에 이어 공허와 불안이 찾아온다. 젊은 얼굴들은 그 수식어가 무색하게도 극도로 정적이다. 젊은 혈기(血氣)같은 것은 없다. 기성세대의 사회조직 울타리 밖으로 밀려난 이들은 아무리 진실을 말하려 하지만 누구에게도 전달되지 않는다. 공허한 외침이 되어 허망하게 사라지거나 왜곡되어 변질될 뿐이다. 이 젊은 초상들은 진실이 통하지 않는 세상을 인정하며 체념한 듯 마냥 하얗기만 하다.
홍종우_Uncut-jisu_라이트 박스에 프린트_80×130cm_2012

홍종우의 사진은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Uncut Version, 영화를 제작함에 있어 어떤 규제나 선택 때문에 삭제되거나 변경되는 부분 없이 제작되는 버전을 말한다. 작가는 각 인물들 개개인이 자신의 삶에서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부분들을 직접 인터뷰하여 가져온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을 영화의 한 장면을 캡쳐해 내듯 표
2013.03.07 18:13:09 / Good : 351 + Good

za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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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cal Review 2013-부산發












2013_0301 ▶ 2013_0428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3_0228_목요일_05:00pm

참여작가 / 김성연_류회민_방정아_심점환_심준섭

관람료 / 성인_3,000원 / 청소년_2,000원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 하절기(4~9월) 매주 목요일은 08:00pm까지 연장개관 * 종료시간 30분 전까지 입장

성곡미술관 SUNGKOK ART MUSEUM 서울 종로구 신문로 2가 1-101번지 1관 Tel. +82.2.737.7650 www.sungkokmuseum.com blog.naver.com/sungkok33







서울에서 만나는 부산 그리고 삶의 풍경 ● 1980년대 후반 지역미술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던 이후 국내지역미술문화에 대한 미술관 차원의 실천적 관심이 드문 요즘이다. 몇몇 국내지역작가들과 아시아, 또는 영미권 특정 국가들의 미술과 작가를 교차 소개하는 교류형식의 프로그램과 전시는 종종 있어 왔으나, 국내 이런저런 지역의 작가들을 꼼꼼하게 리뷰하는 프로그램은 좀처럼 접할 기회가 없었다. 전지구화시대, 그야말로 전국 일일생활권시대를 살고 있다. 로컬의 상대적 특수성, 로컬 작가들이 풀어내는 삶의 풍경과 지역의 현실이슈에 대한 예술적 고민은 이제 의미가 없는 것일까? ● 성곡미술관은 국내지역미술에 대한 미술관 차원의 관심을 제고하고자 특정 지역의 당대미술을 소개하는 로컬 리뷰전을 마련하였다. 연례전으로 진행될 이번 프로그램은, 관성적으로, 혹은 대도시 중심으로 진행되었던 기존 관심과 소개방식으로부터 벗어나 크고 작은 중소 시, 군 등으로 그 영역을 확장하며 이어갈 것이다. 지역작가들을 기존 관행대로, 지명도 중심으로, 가능한 많은 작가들을 모둠 형식으로 소개하는 방식으로부터 벗어나 미술은 물론, 사회적, 정치적, 역사적 현실/과거 이슈 중심으로 그 축을 옮겨가며 진행할 것이다. 이는 성곡미술관이 지난 4년 동안 주목해온 중견중진작가 집중조명프로그램, 원로작가, 작고작가 등 잊혀진 작가 재조명 프로그램 등과 궤를 같이 하는 전시프로그램으로 당대미술이 놓치고 있는 현상과 흐름, 이슈를 주목하고자 하는 미술관 차원의 노력이다. ● 부산은 국내 타지역에 비해 대안공간의 역할과 움직임이 시립미술관 등 제도권의 기능을 부분적으로 대체하며 지역미술문화를 활성화시켜온 실질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독특한 내부 지형을 가진 곳이다. 외형상 시립미술관, 비엔날레 등 대형 공간과 프로그램이 기능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지역의 미술을 균형 있게 견인하는 동력은 이들 대안공간과 지역의 몇몇 중견중진작가들이다. 이들의 헌신적인 노력은 오늘날의 부산미술이 건강하게 기능하고 지역 출향작가들이 국내는 물론 세계를 무대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부산을 첫 지역으로 택한 이유다. 이들 대안공간을 중심으로의 내일을 모색하며 또 대안의 활동을 가능하도록 응원하고 물심양면에서 지원해온 작가들, 기성과 주류의 대안으로서 든든하게 대안공간과 청년작가들을 응원, 견인해 온 중견중진의 작가들을 소개한다. 공간의 제약으로 이중 다섯 작가를 엄선했다.
심점환_성곡미술관 1전시실_2013 ⓒ Sungkok Art Museum
심점환_성곡미술관 1전시실_2013 ⓒ Sungkok Art Museum
심점환_성곡미술관 1전시실_2013 ⓒ Sungkok Art Museum

심점환은 대표적인 부산미술의 허리세대 작가다. 부산 젊은 작가들의 작업적 고민과 미술현실의 모순현안을 나누고 풀어나가는 실질적인 맏형 역할을 묵묵히 담당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미술과 삶을 향한 공허하고 불안한 현실을 인형을 통해 담아내는 등 풍부한 감성으로 실재와 실제의 인식차를 오간다. 멀리 떨어져 바라보면 아름다운 꽃무리로 보이는 붉은 개고기 그림 「Lie on the Sea」(2004)과 생선 그림 「Process IV」(2004)은 썩은 사회와 그 구성원들을 적나라하게 까발리고 벌거벗긴 것으로 '(인간)존재가 (썩은)물질로 변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신작, 「시(詩)의 조건」은 시인 백석(白石)의 시를 특유의 회화술로 옮긴 것으로 대부분의 작업이 그러하듯 문학적인 기운을 강하게 풍긴다. 스스로를 부패 권력화시키고 왜곡된 미술문화정치를 펼치는 소인배, 이권(利權)과 자리를 따라 움직이는 좀비 같은 철새정치인들과 달리 어느 동인(同人)이나 유파에도 속하지 않고 자신만의 시작(詩作)활동을 독자적으로 펼쳤던 시인의 운신에 대한 개인적 오마주로 이해된다.
김성연_성곡미술관 2전시실_2013 ⓒ Sungkok Art Museum
김성연_성곡미술관 2전시실_2013 ⓒ Sungkok Art Museum

김성연은 대안공간 '섬'으로부터 '반디'로 이어오며 부산의 젊은 작가들을 실질적으로 세상에 펌프(pump)하고 양성하고 알리고 지원해온 살아 있는 전설이다. 영상불모지 부산에 부산비디오페스티벌을 창설, 10년 동안 이끌고 있는 영상작가이기도 하다. 반디가 사라진 지금, 바다가 보이는 기장군 조용한 해안가에 작은 작업실을 마련하고 전업 작가의 삶으로 돌아가 작업에 전념하고 있다. 작업 대부분의 시간을 섬을 바라보며 섬을 모티프로 작업한다. 스스로 택한, 곤궁했지만 무엇보다 보람찼던 대안공간 활동과 혼신의 힘을 다한 섬과 반디의 지난 시절이 주마등처럼 빠르게 지나간다. 고(故) 이동석 큐레이터. 지금은 하늘나라에 먼저 가 있는, 동고동락했던 그리운 친구가 중첩된다. 섬(島), 혹은 섬(pause). 그에게 섬은 이 모두를 추억하고 반추하는 기제, 또는 또다른 도약과 움직임을 위한 여울목이다. 또한 그리움이자 운명이다. 김성연은 이번 전시를 위해 섬을 소재로 한 사진, 영상, 입체작업을 새로이 제작, 출품했다. 현실을 그럴싸하게 가공해내는 '포장(包裝)'이라는 위장개념과 '섬'의 조형적 현전(現前)을 통해 모호한 현실을 모호하게 풀어낸, 모호한 풍경을 선보인다.
류회민_성곡미술관 2전시실_2013 ⓒ Sungkok Art Museum
류회민_성곡미술관 2전시실_2013 ⓒ Sungkok Art Museum
류회민_성곡미술관 2전시실_2013 ⓒ Sungkok Art Museum

미술동네가 크게 관심 가져주지 않는 그림, 이른바 한국화를 그리는 류회민. 지필묵을 붙잡고 오늘도 일상처럼 산에 오른다. 흔히 바다의 도시로 알려진 부산은 사실 산의 도시다. 도시 권역 내에 이처럼 많은 산을 품은 도시는 없다. 여기저기 터널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꼬불꼬불 길의 모양도 재미나다. 감천동 태극길을 가보라.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 골목과 사람, 마을표정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제아무리 잘난 해운대 신도시도 예외일 수 없다. '산복도로', 흔히 '산복판에 난 도로'라고 부르는 말처럼 이처럼 부산에는 독특한 지형과 명칭 등이 여럿 남아 있다. 산꼭대기마다 툭툭 올려놓은 송신탑과 대형 전신주, 목욕탕 마다 남아 있는 높이 솟은 굴뚝은 낯선 부산도시이방인들에게 이정표 역할을 톡톡히 수행한다. 부산이 늘 부산함은 이 때문일까. ● 부산의 조형적 특성은, 흔히 바다의 수평선으로부터 떠올리는 수평개념이 아닌, 하늘 향해 솟은 빳빳한 수직개념이 지배적인 조형모티프로 작동하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오늘도 지치지 않고 올라가는 해운대 신도시의 주상복합 고층빌딩은 이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이들 모두를 류회민은 묵묵히 담고 있다. 「산보다 높아지는 집을 보면 슬퍼진다」(2007)라는 작품명제는 류회민이 변화하는 부산에 대해 가지는 소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산에서 내려다보는 단단한 부산. 산을 밟으며 만나는 유연한 부산. 그는 산과 바위를 연성의 물그림이 아닌 칼칼한 먹그림으로, 제법 단단한 바위와 질감으로 올린다. 약하디약한 한지 위에 카메라의 경조(硬調)술과도 같은 강력한 흑백대비의 시각적 질감으로 떠내고 있다. 전체적으로 류회민의 넉넉한 균형감각이 빛나고 있음이다. 허심포산(虛心抱山). 그의 작업과 일상을 일컫는 적절한 말일게다.
방정아_성곡미술관 2전시실_2013 ⓒ Sungkok Art Museum
방정아_성곡미술관 2전시실_2013 ⓒ Sungkok Art Museum
방정아_성곡미술관 2전시실_2013 ⓒ Sungkok Art Museum

정밀묘사하듯 찍어낸 그림을 도처에서 만나는 요즘 현실에서 방정아는 보석 같은 존재다. 그는 작가이자 전형적인 부산 아지매다. 과거 전통적으로 부산이 그러했듯 방정아는 세상현실에 대한 무서우리만큼 칼 같은 현실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의 그림에는 아지매로서, 작가로서 가지는 그러한 현실인식이 특유의 구상표현적 표현과 구성방식으로 날카롭게 배어 있다. 여성으로서, 아지매로서, 엄마로서, 사람으로서, 작가로서 살며 경험하는 세상사를 전지적 작가시점에서 풀어 놓고 있다. 사실 그것은 다름 아닌 작가의 사회적 자화상이다. 최근 그의 냉철한 현실인식과 제작충동은 화면의 구성과 질감에 있어 다소 파격적인 변화를 부여하며 움직이고 있다. 사회와 스스로에 대한 누차의 공격적 말 걸기에 지쳤을까. 세상을 비웃고 비꼬는 특유의 표현질감은 다소 무속적이고 주술적인 화면구성과 함께 시각적으로 강렬한 애니메이션적인 효과로 대체되고 있다. 대답 없는 메아리. 무력감. 혼자 싸워야 하는 고독한 현실. 내던져진 듯한 단절감과 고립된 자아. 더 크게, 세게 나아가야 함일까. 애니메이션과 영화 쪽으로 옮겨가고 있는 듯한 그의 또다른 현실적 관심을 어찌하면 캔버스 평면에 더 오래 잡아둘 수 있을까. 다만 방정아의 끊임없는 지적 호기심을 애정을 가지고 지켜 볼 따름이다.
심준섭_기관의 순환1_철파이프, 사운드시스템, 센서, 스피커_가변크기_2013 ⓒ Sungkok Art Museum
심준섭_기관의 순환1_2013_부분 ⓒ Sungkok Art Museum

파이프 작가로 잘 알려진 심준섭. 이를테면 그는 보기 드문 바른 생활의 작가다. 그의 평소 언행과 생활도 그러하지만 작업에 임하는 그의 모습은 흔히 구도자와도 같다. 타인과의 진정한 소통을 세상의 그 무엇보다 우선시하는 심준섭에게 있어 작업은 소통 그 자체다. 빛과 어둠이 다투는 냉엄한 현실 속에 그의 희망과 소통에의 의지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깊은 호흡소리와 심장의 박동소리가 천천히 교차한다. 명멸하는 삶의 기운이 때론 지친 듯, 혹은 강력한 생명의 기운으로 되살아나며 함께 호흡한다. 빛과 어둠을 따르거나 거스르며 두 원초적 생명력이 다투지 않고 유기적으로 길항한다. 비쩍 마른 사람의 형상으로 조립되어 있는 파이프상(像)은 인간적 온기와 소통에의 의지가 시나브로 사라지고 단절되어가는 세상에 보내는 전조의 메시지이자 부활에의 의지다. 다소 제의적이고 주술적인 느낌을 던져주는 그의 파이프 작업은 생명과 소통이 결국 하나임을 보는 이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 성곡미술관은 로컬 리뷰전에 참여한 작가중 한명을 차기년도의 중견중진집중조명작가로 선정하여 개인전의 기회를 부여할 예정이다. 작가선정은 로컬 리뷰 전시기간 중 관객의 반응과 전문가 반응을 참고하여 결정할 것이다. 앞으로도 성곡미술관은 로컬 리뷰전을 통해 해당 지역의 중견중진작가를 다른 지역으로 중개하며 한국화, 조각, 판화 등과 같은 소외(?)장르, 트렌디하지 않은 미술형식 등을 응원해 나갈 것이다. 세상이 애써 간과하고 있는 그들의 힘과 존재,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 로컬 리뷰는 부산을 시작으로 강화, 제주, 광주, 안산, 인천, 창원 등 국내지역은 물론, 베를린, 샌프란시스코, 파리, 베이징, 히로시마, 하노이, 프놈펜 등 국외지역에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교차 소개해나갈 것이다. 당대 국내외 로컬미술문화에 대한 관심 제고와 반성적 고찰을 통해 지역미술의 상대적 특성과 동질성, 지역작가들의 현실고민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로컬 리뷰가 관습적으로 반복되지 않도록 많은 관심과 지적, 성원을 바란다. 2014년은 강화발이다. ■ 박천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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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The Moon












구현모展 / KOOHYUNMO / 具玄謀 / installation   2013_0305 ▶ 2013_0401







구현모_달 The Moon_혼합재료_260×460×177cm_2013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구현모 홈페이지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09:00am~12:00am

갤러리 현대_윈도우 갤러리 GALLERY HYUNDAI WINDOW GALLERY 서울 종로구 사간동 80번지 Tel. +82.2.2287.3500 www.galleryhyundai.com







구현모 작가의 작업에는 안과 밖, 실재와 허구 혹은 공상이라는 이분법적 개념들이 존재하지만, 그 구분은 오히려 모호하거나 서로 섞여 존재한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피부라는 경계를 통해 '나'의 존재는 안과 밖으로 나누어지지만 어디가 나의 '안'이고 나의 '밖'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이 개념은 우리의 생활을 위한 건축물에까지 확장된다. 예를 들어, 방 안에 나 혼자 오롯이 존재한다면, 이 방을 가득 채운 공기와 그 분위기는 나에 의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무색 무취하던 방은 나의 색채를 닮은 나만의 세계로 변화한다.
구현모_달 The Moon_혼합재료_260×460×177cm_2013
구현모_달 The Moon_혼합재료_260×460×177cm_2013

이번 갤러리현대의 윈도우 작품「달 (The Moon)」의 '달'은 윈도우 갤러리 안에 존재한다. 달은 지구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존재하며 태양계의 행성이며 어두운 밤하늘을 밝히는 우리와 매우 밀접한 자연의 존재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느끼는' 달은 무엇일까? 달빛이 갖는 처연함과 애틋함 때문인지 아니면 달을 보면 설레는 마음 때문에서인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작가에게 달은 매우 갖고 싶은 존재이자 그가 있는 공간 속에서 소유하고 싶은 대상인 듯 하다.
구현모_달 The Moon_혼합재료_260×460×177cm_2013
구현모_달집_종이에 연필_30×20cm_2010

이 공간, 즉 구현모 작가가 만든 윈도우 갤러리, 속 달은 완연히 그 실체를 드러내며, 시간이 흘러 어둠이 내린 후에는 조명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한다. 아마도 작가는 그가 만든 공간 속에 달이라는 존재를 소유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빛에 의해 그 모습을 달리하는 달을 보고 있자면 과연 이 공간이 달을 소유하고 있는 것인지 혹은 달의 존재가 이 공간을 소유하고 변화시키는 것인지 그 경계의 판단이 모호해진다. ■ 갤러리 현대_윈도우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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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 The seasons












칼 오마슨展 / Karl Omarsson / mixed media   2013_0313 ▶ 2013_0404 / 월요일 휴관







칼 오마슨_No title_사진에 잉크 드로잉_2012






오프닝 퍼포먼스 / 2013_0313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조선 GALLERYCHOSUN 서울 종로구 소격동 125번지 Tel. +82.2.723.7133~4 www.gallerychosun.com







칼 오마슨은 조용히 앉아 있다가 입을 열었다. 아이슬란드에서 커피는 집에 손님이 찾아왔을 때 내놓는 첫번째 음료로 보편적인 접대 문화에 속한다. 여성 보다는 남성에게 더 익숙한 음료다. 처음 아이슬란드의 거리에서 퍼포먼스를 펼쳤을 때 그는 자신이 공사현장에서 일했던 경험을 되살렸다. 인부들이 휴식을 취하는 시간, 주위에 있던 페트병이나 직접 만든 컵에 마시곤 했던 커피를 기억해내고, 어느 가을날, 그들과 함께 했던 경험을 길거리의 사람들과 나누기로 결심했다. 칼 오마슨이 아이슬란드에서 행했던 첫번째 커피 퍼포먼스「We're both imagining things(2009)」가 시사하는 바는 명료하다. 사회적 위치나 부에 상관없이 우리는 일상의 소소한 일이나 미래의 어떤 것을 상상한다. 칼 오마슨은 우리가 상상하는 순간을 단순한 휴식,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자신이 직접 다듬은 페트병이나 통조림 캔으로 만든 컵에 커피를 담고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며 함께 하는 퍼포먼스는 정체성을 바꾸는 것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사회라는 하나의 공동체 조직 안에서 예술가이면서 버스 운전자로, 혹은 누군가를 가르치는 교사나 인부로 살아가는 것은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커피가 담긴 컵이 까페에서 사용되는 머그나 회사의 종이컵, 빈 통조림 캔이어도 그 안에 담긴 커피는 다를 바 없는 것 처럼 말이다. ● 아이러니하게도 칼이 한국에 도착했던 2010년은 커피가 까페 중심의 문화로 대중화되어, 커피를 즐기는 이들이 보다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었고 커피 문화가 추구하는 스타일이 유행에 민감했다. 아이슬란드 보다 가격도 꽤 비싼 상태였다. 그것은 칼에게 일종의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왔다. 칼 오마슨은 잠시 말을 멈추고 건네받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따라서 이번에 한국에서 행해질「We're both imagining things」퍼포먼스는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이라며 살짝 웃었다.
칼 오마슨_Duration of My Chemical_터키색 모눈종이에 수채, 사진 시리즈_2009

전시될 작품을 결정하는 데 고민했던 작품은 예상과 달리 가장 처음 만들어진「Roots(2005)」였다. Roots는 아무도 본 적이 없었던 칼의 첫번째 퍼포먼스였다. 칼 오마슨은 누군가에게 잘못 배달된 편지를 한동안 받게 되었는데 주소와 이름이 다른 편지들이 쌓여가는 것을 지켜보던 어느 날, 칼은 봉투 위에 씌여진 주소로 직접 찾아가보기로 마음 먹었다. 늦은 겨울의 날씨는 스산했고 마침 폭풍우도 몰아칠 기세여서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가방엔 간단한 필기도구와 카메라, 잘못 배달된 편지 만을 넣고 한번도 가보지 않은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칼은 주소지 근처에 도착해 그 곳에서 하룻밤 게스트 하우스에 머물렀다. 그는 완전한 이방인 이었다. 목적을 가지고 한 장소에 도착했으나 그 목적은 처음부터 칼에게 주어진 과제는 아니었다. 잘못 배달된 편지는 그에게 짧은 여행의 기회를 제공해 주었을 뿐이다. 하룻밤 묵었던 숙소, 기차역의 차디찬 습기와 폭풍우. 그리고 낯선 이들과의 만남은 의도된 바 없이 하나의 생각만으로 만들어진 경험이었고 칼은 온전히 그것을 받아들였다. 게스트 하우스에 묵는 동안 기록했던 짧은 노트와 무의식적으로 찍은 사진들은 그 이후 칼 오마슨이 가진 퍼포먼스 성격의 작업 형식을 결정짓는 가장 기본적인 작품이 되었다.
칼 오마슨_Duration of My Chemical_터키색 모눈종이에 수채, 사진 시리즈_2009

앞서 제시한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퍼포먼스들에 반해「Yellow(2013)」는 비교적 오래 전 부터 아이디어로만 존재했던 작품이었다. 투명한 색상의 아크릴 판과 바퀴가 달린 구조로 이루어진 이 작품을 구상했던 때는 커피 퍼포먼스가 행해지기 이전인 2008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칼 오마슨은 그의 핏줄인 새로운 생명의 탄생과 할아버지의 죽음을 동시에 마주하게 된다. 할아버지가 입원한 병동으로 찾아간 그는 문득 병원 안으로 들어온 눈부신 햇살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고 이야기하며 삶과 죽음이 교차했던 우연한 경험을 잠시 떠올렸다. 병실의 창문으로 들어온 햇빛은 창백한 병원 안을 비추고 있었는 데 무채색인 가구들이나 벽과는 달리 커텐은 유난히 따뜻한 주황색이었다. 그 뒤로 옐로우라는 설치작품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담담히 털어놓았다. 병원 안의 모든 가구들은 이동하기 용이하도록 바퀴가 달려있다. 옐로우 작업에도 역시 바퀴가 달려있다. 커피와 편지를 비롯해 일상을 구성하는 이러한 세세한 정보는 칼에게 좋은 재료가 되는 것 처럼 보였다. 병실 커텐의 주황색이 인상깊었다면 왜 노란색이었냐는 질문에 햇빛은 노란색에 가깝다고 간단히 대답했다. 여름의 아이슬란드는 백야다. 칼은 백야의 어슴프레한 햇빛은 차가운 회색과도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가 문득 시선이 멈추었던 병실의 주황색 커텐은 어쩌면 그가 보고 싶었던 햇빛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는 동안 그는 종이와 연필을 꺼내 백야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칼 오마슨_We are Both Imagining Things_레디메이드, 커피, 사람_퍼포먼스_2009~13

사각거리는 연필소리와 함께 지구, 태양, 그리고 대기권에 관한 그림을 완성한 칼은 종이를 내밀었다. 칼이 그린 지구는 2009년 이른 봄, 독일에서 이루어진「Duration of My Chemical(2009)」시리즈의 창틀 앞에 놓였던 동그랗게 오린 종이를 연상케 했다.「Duration of My Chemical」은 3주의 짧은 레지던시 프로그램 안에서 행해진 작업이다. 레지던시 측으로 부터 갑작스러운 통보를 받고 떠나게 된 터라 화구를 챙길만한 여유가 없었다고 칼은 이야기 했다. 가장 기본적인 것들만 챙기고, 나머지 재료는 현지에서 구했는 데 작은 마켓 밖에 없는 시골 동네라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종이와 약간의 수채물감 뿐이었다. 그 중 'Flesh Pink(살색)'을 선택해서 종이를 칠하고 마르도록 놔두니 얇은 종이는 이내 주름이 가고 살짝 형태가 변형되었다. 종이 위에 칠한 색은 거의 투명하게 변해 있었다. 종이를 원형으로 잘랐던 건 특별한 의도는 없었다. 반 쯤 남은 커피를 들여다보다가 칼은 나직하게 이야기했다. 늘 그랬듯이 무의식적으로 움직였고 수채물감으로 칠한 원형의 가벼운 종이를 레지던시 중 머물렀던 고성의 곳곳에 놓고 사진으로 기록했다. 칼은 의도치 않은 곳에서 오는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작업에 반영했다. ● 한 사람의 삶과 작업은 사계절의 자연스러운 변화가 찾아오듯 소멸과 생성을 거치며 그 길을 함께 간다. 네덜란드에 잠시 머물렀던 2005년 부터 2013년의 최근 작업들을 통해 칼 오마슨은 자신 만의 사계절을 지나왔다. 올 해도 어김없이 새로운 계절이 시작되고 있다. 칼 오마슨이 어느 계절을 향해 가는 지 천천히 지켜보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 정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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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인아트스페이스 4기 오픈스튜디오










2013_0314 ▶ 2013_0316











초대일시 / 2013_0314_목요일_03:00pm

참여작가 / 경환_박지현_박진아_이윤진

기획 / 홍미경(몽인아트스페이스 대표)

관람시간 / 12:00pm~06:00pm

몽인아트스페이스 MONGIN ART SPACE 서울 중구 신당동 432-1692번지 Tel. +82.2.736.1447~8 www.mongin.org










2007년 3월 제 1기 작가 「박기원, 박화영, 홍정표」의 입주를 시작으로, 2008년 9월, 2기 작가 「김윤호, 안두진, 이호인, 정승운」 2010년 3월, 3기 작가 「김수영, 노충현, 문성식, 옥정호」에 이어 2011년 9월 입주한 4기작가 「권경환, 박지현, 박진아, 이윤진」의 오픈스튜디오를 진행합니다. ● 몽인아트스페이스는 1970년 타계하신 애경그룹의 창업주 채몽인 선생의 고택(故宅)이었던 곳으로, 고인의 뜻을 기리는 후손들이 힘을 모아 의욕적인 작가들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고자 마련한 공간입니다. 이곳은 전시 위주의 미술 생산 시스템에서 종종 간과되거나 가려져 드러나지 않는 창작의 과정에 주목하고, 이를 지원하여 의미 있는 결과물을 생성해내는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운영되고 있습니다.






오픈스튜디오는 18개월의 입주기간을 정리하고 작업을 위한 고뇌와 노력, 휴식을 함께 한 스튜디오와 작가들이 그간의 활동을 보고하는 행사입니다. 한시적인 기간이지만 몽인아트스페이스를 함께 했던 작가들과 앞으로 함께 할 작가들, 그리고 입주와 관계 없이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모든 분들에게 창작의 보금자리로 기억되고자 합니다. 입주기간 동안 창작에 전념하며 창작의 고민과 열정을 나누었던 작가들에게 감사드리며, 몽인아트스페이스 곳곳에 스며든 그들의 정신과 추억이 다음 작가들에게도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 홍미경_양찬제

권경환

지금까지 미디어가 생산하는 스펙터클한 이미지를 수동적으로 수용해 세계를 봤다면, 이제는 이미지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있는 그대로 보고자 한다. 전쟁, 테러, 자살, 사고 등 죽임 이미지를 수집한 권경환은 모형 자 형태를 지닌 「Standard of death」(2009)를 통해 단순한 선의 형태로 죽음 이미지를 규격화한다. 다양한 사건과 사연을 가지고 죽음에 이르지만, 정작 우리에게 다가온 죽음 이미지는 그 내부와 상관없이 작가가 규격화한 몇 가지 범주 안에서 변형할 뿐이다. 권경환은 이렇게 규격화된 이미지 형태를 반복하거나 조합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만든다. 이것은 미디어가 우리에게 스펙타클한 죽음의 이미지를 제시했던 방식과 같은 방법이다. ■ 이대범
박진아_굿바이 Good-bye_캔버스에 유채_154×154cm_2012

박진아가 일상의 장면을 여러 차례 반복해서 그리는 것은 만년의 마네가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조금씩 다른 표정의 루엥 성당을 수 십 차례에 걸쳐 그리거나, 게르하르트 리히터가 늦둥이 모리츠의 얼굴을 어루만지듯 여러 번 화면에 담는 것과 같은 주제나 대상에 대한 집착(파라노이아)의 누적에서 오는 고전적 의도보다는 오히려 정 반대의 확산과 증식을 지향하는 분열증적이고 발산적인 동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여러 장의 화면을 메워가는 무심한 그리기의 반복을 통해 작가는 동일 인물을 여러 번 그리는 행위에 익숙해져 갔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녀의 관심은 화면 내의 사건들에서 격리되어 점차로 외부로 향한 결과 회화와 외부의 경계로서의 틀에 의문을 던지게 된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이 틀에서 저 틀, 이 그림과 저 그림의 경계는 어떻게 설정되는 것이며 그 주체는 누가 되는 것인가. 실제 상황을 바라보는 시선, 찍혀진 사진, 그려진 화면, 또는 작품의 편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각과 범위가 교차한다. ■ 정신영
박지현_그해 그의 확고한 견인 의지_ acrylic and burned soon ji on canvas_193.9×259.1cm_2013

박지현 작가는 짧은 시간 일정한 효력을 발산하고 사라지는 향이 '약하면서도 강한 목소리를 내는 재료'라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고 말한다. 향을 태우는 행위는 늘 어떤 '염원'을 전제로 하고 있고, 그러한 '염원'들이 대부분 어떤 '욕망'에서 기인한다는 점에 흥미를 느낀 작가에게 향이라는 재료가 스스로 동경을 품어 왔고 실존적 삶을 살아내고 있던 '뉴욕'이라는 곳을 상징적으로 암시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은 것이다. 그는 향을 질료로 하여 오브제를 만들어 내고, 그것을 작품이 품고 있는 개념적 측면과 연결시키는 독특한 설치 형식의 작품들을 선보였다. 이러한 형식과 함께 타고 있는 향으로 한지 위에 이미지를 구성한 새로운 형식의 평면 작업들이 그가 이번 개인전에서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중략) ● 그의 평면 작업들은 데칼코마니 기법과 같이 반전된 형식의 두 개의 이미지들로 구성되어 있다. 형상을 가진 두 개의 면이 만나서 처음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이미지로 수렴된다. 이러한 조형 질서는 그의 평면 작품들을 읽어 내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Tunnel'은 조밀하게 들어선 뭉게구름 같은 형상이 양면으로 배치되면서 화면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거나 화면 밖으로 튀어 나올 것 같은 환시적 느낌을 준다. 형상의 평면적 속성이 운동 에너지의 방향성과 입체성으로 전환되었다. ■ 고원석 평문 중 발췌
이윤진

이윤진의 사진은 독일사진의 고전적인 어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뒤셀도르프 미술대학에서 그를 가르친 베른트 베혀(Bernd Becher)나 토마스 루프(Thomas Ruff)의 사진전통은 그의 사진에 잘 나타나고 있는데, 그것은 건축물을 짓듯이 사진을 구축한다는 점이다. 그녀의 사진이 매우 튼튼해 보이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런데 사진을 건축물의 형태로 만든다는 것은 자칫 권위적이고 권력적으로 보일 위험이 있다. 실제로 많은 사진가들이 자신의 사진에 건축적인 구성미를 부여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힘이 들어간 사진을 만든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 그들은 위대한 사진가로 성공했지만 그들의 사진은 보는 이에게 위압감을 주고 숨 쉴 틈을 주지 않는다. 반면 이윤진은 그런 위험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 마치 렘 쿨하스(Rem Koolhaas)의 건축물처럼 자신의 사진적 구축물에 묘하게 비틀린 면들을 집어넣! 는다. 때로는 그 면이란 사진 속에 등장하는 건축적 요소들―아이러니하게도 그것들은 실제의 건축물이 아니라 방 안에 있는 탁자나 선반 등을 건축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을 독특한 앵글로 짜 맞춘 것이기도 하고, 아니면 다소 은유적으로, 일반적인 생활공간을 자신만의 앵글로 본 것이기도 하다. ■ 이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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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요정 다시 만나다...










신선미展 / SHINSUNMI / 申善美 / painting   2013_0314 ▶ 2013_0407 / 월요일 휴관






신선미_Welcome4_장지에 채색_119×188.5cm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00913h | 신선미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3_0314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30pm / 일요일_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선컨템포러리 GALLERY SUN CONTEMPORARY 서울 종로구 소격동 66번지 Tel. +82.2.720.5789, 5728~9 www.suncontemporary.com






갤러리 선 컨템포러리는 오는 3월 14일부터 4월 7일까지 동양화 기법으로 과거와 현재, 현실과 가상이 절묘하게 결합된 장면을 연출하는 작가 신선미의 개인전 『개미요정 다시 만나다』를 선보인다. 2010년 이후 처음으로 공개되는 그녀의 신작들은 더욱 다양하고 흥미로운 구도와 이야기들로 채워져 예전보다 풍성해진 모습이다. 전통 기법을 구사하는 작가는 작품에 현대적 주제를 다룸으로써 동양화의 통속성을 극복, 시대의 확장을 이뤄냈다. 더불어 그녀는 단순히 현실을 드러내는 데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상상력을 더하여 소재의 폭 또한 넓혀가고 있다.
신선미_그들만의 사정4_장지에 채색_70×162cm_2012

생동감 있는 묘사로 상반된 요소의 융합에도 괴리감이 느껴지지 않는 그녀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유독 인물을 강조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현실의 장면이 화면으로 옮겨오면서 배경이 증발하였고, 이로 인해 그림 속 계절, 시대, 장소에 대한 결정은 관객의 몫으로 남겨졌다. 깨끗한 무의 공간 위에 인물들은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재료이다. 핸드폰 조작에 빠져있는 한복을 입은 여인들과 아이, 그 주변을 맴도는 개미요정들의 모습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현 시대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그러면서도 신선미가 묘사하는 전통과 새로운 문명이 어우러진 풍경은 현대사회에서 정치적, 사회적으로 나타나는 신구의 대립과는 대조적이다. 작가는 이렇듯 그림 속 인물들을 통해 동시대의 사회상을 보여주고자 한다.
신선미_다시 만나다_장지에 채색_109.5×162cm_2013
신선미_당신이 잠든 사이13_장지에 채색_109.5×162cm_2013

과거와 현대의 결합으로 이뤄낸 시대적 확장을 보여주는 작품에 작가는 개미요정이라는 가상의 인물 집단을 투입시켜 시공간의 확장을 꾀한다. 인간과는 다른 원자 단위를 가진 손바닥만한 개미요정들의 세계는 그림 안에서 인간세계와 만나 결합한다. 그녀가 가진 확장적 본능은 이렇듯 작품 전체에서 엿볼 수 있으며 전작부터 꾸준히 등장하는 남자아이에서도 나타난다. 일상을 주제로 한 작품에 작가가 실제 삶에서 체험하고 있는 육아는 빠질 수 없는 소재이다.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위대한 확장인 출산으로 얻은 아이는 작가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반영한다. 또한 순수한 마음을 가진 어린 아이만이 개미요정을 볼 수 있다는 설정은 그림 속 아이가 인간과 개미요정, 즉, 현실과 가상을 이어주는 매개체임을 말해준다.
신선미_talk1_장지에 채색_78.5×191cm_2012
신선미_강남스타일_장지에 채색_62×92.5cm_2013

신선미는 아이를 주요 소재로 활용할 뿐 아니라 아이들이 가진 특성인 장난스러움을 작품에 숨겨놓았다. 아이 또는 여인이 잠든 사이 개미요정들은 몰래 일을 꾸미듯 바쁘게 움직이고, 그 모든 상황을 아는 사람은 관객뿐이다. 작품의 또 다른 재미 요소인 개미요정과 관객간의 이러한 비밀 공유는 늘 연극적 구도로 정면에 상황이 제시되었기에 가능했다. 이번 신작 「문양이야기」 시리즈에서 신선미는 지금까지 고수했던 정면보다 더욱 긴장감 있는, 위에서 밑을 내려다보는 구도를 선보인다. 이 구도 역시 인물들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고개를 돌려봐야만 알 수 있는 반면 관객은 위에서 모든 정황을 한눈에 살필 수 있다. 또한 그림 속 인물들이 전통문양 속에 숨어 있는 듯이 표현되어 한층 더 비밀스럽고 흥미로운 느낌을 자아낸다. 한국 전통 미의 정갈함과 현대의 디자인 개념이 결합으로 보여지는 이러한 기호학적 접근은 구도와 표현방식에 대한 작가의 오랜 고찰에서 비롯되었다.
신선미_문양이야기4_장지에 채색_50×50cm_2013

전시 『개미요정 다시 만나다』의 작품들은 새롭게 시도된 구도와 함께 이야기에서도 변화된 양상을 띤다. 전작에서 개미요정들과 유희를 즐기던 아이가 신작에서는 이따금 그들을 외면한다. 요정들은 관심 받길 원하지만 아이는 영수증에 나열된 숫자나 휴대 기기의 화면에 시선이 빼앗겨 있다. 문명에 젖은 어른을 모방하고 있는 이 광경은 작가 스스로 바라본 요즘 아이들의 행동양식을 투영한 결과이다. 순수성을 잃어가는 시대에 대한 아쉬움의 표현으로 작가는 개미요정을 바라보는 어른의 모습 또한 작품에 등장시켰다. 본래 어른들은 인지할 수 없었던 개미요정들을 보게 함으로써 그들 또한 어린 시절로 돌아가 동심의 대상과 재회하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을 담았다. 인터넷, 핸드폰 등의 사용으로 더욱 손쉽게 연결됨에도 서로간의 직접적인 소통은 줄어듦과 같이 발전된 사회에 존재하는 이면들을 조명하는 작품들을 통해 현 사회의 세태를 되돌아보며 잊혀져 가는 순수성을 회복하기를 작가는 권유한다. ■ 갤러리 선컨템포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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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Actually










2013_0314 ▶ 2013_0616 / 월요일 휴관











강연회 / 2013_0413_토요일_02:00pm

참여작가 고명근_고상우_구성연_구현모_김성진_김택상 데미안 허스트_로버트 인디애나_마크 퀸_문혜정 박승훈_살바도르 달리_손정은_오정선_윤가림 윤성지_이림_이상선_이이남_이호련_임정은 장지아_정보영_정세라_천경자_최욱경_홍승혜

협찬 / 삼진제약_환인제약_신한은행_하나은행_국민은행

관람료 / 일반_10,000원 / 초·중·고 학생, 경로우대 등_7,000원 / 유아_5,000원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서울미술관 SEOUL MUSEUM 서울 종로구 부암동 201번지 제1전시실 Tel. +82.2.395.0100 www.seoulmuseum.org






일상적으로 일어나기 힘든 드라마틱한 상황을 마주하게 될 때 우리는 흔히 '영화 같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영화가 갖는 허구적인 속성과 현실에서의 극적인 우연이 교차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특히 남녀 간의 만남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사랑에 빠진 연인의 현실은 영화 속 세상처럼 온전히 주인공들을 중심으로 돌아가며, 그것이 해피엔딩(Happy-Ending)이든 새드엔딩(Sad-Ending)이든 아름답고 극적으로 경험되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겪어 보았을 이러한 사랑의 비일상적인 특별함, 그리고 그에 대한 열망이 어쩌면 우리가 로맨스 영화에 관심을 갖고 몰입하는 이유일 것이다. ●『Love Actually』는 이러한 로맨스 영화에서 사랑의 다양한 형태를 찾고 미술작품을 통해 이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독특한 관점을 제시한다. 전시는 내러티브적 구성에 따라 '사랑해도 될까요?', '소년, 소녀를 만나다', '그대와 영원히', '유혹의 소나타', '미친 사랑의 노래', '사랑, 그 후...' 등 6가지 섹션으로 이뤄져 있다. 테마별 타이틀은 다소 추상적일 수 있는 사랑의 관념을 구체화시키고 모두가 함께 공감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익숙한 대중가요에서 제목을 빌려왔다.『Love Actually』에서 만나게 되는 사랑의 다양한 모습을 통해 사랑에 대한 감각과 감성을 충전해보자. 봄날 움트는 꽃잎처럼 내안에서 피어나는 사랑의 향기와 그리움을 음미해 보자.
로버트 인디애나 Robert Indiana_LOVE (Red Blue)_폴리크롬 알루미늄_91.4×91.4×46cm_1966~2000

Prologue ● 사전적인 의미에서 '사랑'은 '상대의 매력에 끌려 열렬히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이다. 그러나 이러한 한 줄의 설명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의 깊이와 다양한 스펙트럼을 모두 형용할 수는 없다. 어떠한 부연도 화려한 미사여구도 사랑한다라는 한 마디의 말을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로버트 인디애나의「LOVE (Red Blue)」와 함께『Love Actually』가 들려주는 영화 같은 사랑의 장면들 속으로 관객 여러분을 초대한다.
◁ 오정선_Another Way of Seeing II_여러 도수의 안경알, 투명 끈_가변크기_2013 가운데△ 윤성지_The truth that seems to be a lie_혼합재료_247×360×360cm_2009 가운데▽ 구현모_Love_비디오_00:08:29_2011 ▷ 윤가림_Boot and Saddle_화이트 애쉬, 월넛, 스테인리스_높이 100cm_2009

Section 1. 사랑해도 될까요? ● '사랑해도 될까요?'는 남녀가 서로에게 이끌려 사랑하게 되기까지의 이야기이다. 하나의 몸짓에 불과했던 타인의 이름이 나의 삶에서 잊히지 않는 의미로 개화하는 순간이 여기 있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유쾌하고 격양된 경험으로서 사랑의 시작에 대한 단편들을 통해 심연에 이는 핑크빛 파장을 느껴보자.
위◁ 구성연_사탕시리즈 c.03_라이트젯 C 프린트_160×200cm_2009 위▷ 문혜정_진달래숲_캔버스에 유채_162×386cm_2012 아래◁ 이상선_야!-날으는 들꽃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30cm_2007 아래▷ 로버트 인디애나 Robert Indiana_One through Zero_ 폴리크롬 알루미늄_85.7×83.8×43.2cm×3_1987~2003

Section 2. 소년, 소녀를 만나다 ● 소년과 소녀의 가슴에 처음으로 분홍빛이 스쳐 지나간다. 그때를 우리 모두는 기억한다. 사랑에 대한 순수한 감정만으로 자신의 세계를 가득 채울 수 있었던 그 눈부신 시절. '소년, 소녀를 만나다'를 통해 내 안의 소년과 소녀를 다시 한 번 만나본다.
◁ 천경자_팬지_종이에 채색_33×29cm_1973 가운데△ 김택상_숨빛 Breath's hue-orange breez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7×82cm_2011 가운데▽ 임정은_Alice in Wonderland_♥2007Nov_혼합재료_가변크기_2005~7 ▷ 고상우_태초에 사랑이 있었다_아카이벌 디지털프린트 디아섹_96×96cm_2010

Section 3. 그대와 영원히 ● 이 세상에서 '끝'이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일까? 생명일까? 권력일까? 돈일까? 끝이 가장 두려운 것은 '사랑'이 아닐까? 영원한 사랑은 모든 사랑의 꿈이요 로망이다. '그대와 영원히'는 사랑이 어떻게 찾아 와서, 어떻게 무늬를 남기고, 어떻게 영혼 속에서 영원이 되는가를 보여준다.
◁ 장지아_Sitting Young Girl_디지털프린트_170×150cm_2009 가운데△ 손정은_The Easter Boys_혼합재료_가변크기_2011 가운데▽ 이이남_신 키스_LED TV_00:03:45_2009 ▷ 이호련_Overlapping Image S90310S_캔버스에 유채_260.6×162.2cm_2009

Section 4. 유혹의 소나타 ● 남녀의 육체적인 결합은 우리에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신이 허락한 최고의 쾌락을 준다. 그것은 사랑을 한 단계 더 심화시키기도 하고 파멸에 이르게도 한다. 둘만의 비밀인 까닭에 가장 아름답고 가장 상처 받기 쉽다. '유혹의 소나타'는 육체의 사랑 속에서 사랑의 진실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몸부림을 담고 있다.
위◁ 고명근_Stone Body 34_필름, 플라스틱_130×168×55cm_2005 가운데△ 최욱경_무제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97cm_1983 위▷ 이림_confusion no.4_캔버스에 유채_112×194cm_2010~1 아래◁ 마크 퀸 Marc Quinn_Island Ozone Chemistry_캔버스에 유채_169.8×240.5cm_2007 아래▷ 김성진_relax_캔버스에 유채_116.8×72.7cm_2010

Section 5. 미친 사랑의 노래 ● 사람은 누구나 지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까지나 나만의 것이기를 바란다. 그러나 소유와 집착으로 점철된 사랑은 대개 파멸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미친 사랑의 노래'는 그러한 파멸의 추억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노래다. 사랑이 서툴고 두렵고, 그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이 부르는 사랑의 노래다.
◁ 정세라_외부없는 집_캔버스에 유채_194×130.3cm_2010 가운데△ 박승훈_TEXTUS 089_디지털 프린트_60×125cm_2012 가운데◁ 정보영_Lie one upon another_캔버스에 유채_162×227.3cm_2012 가운데▷ 홍승혜_Organic Geometry_the sentimental 1_플래시 애니메이션_00:03:11_2002 ▷ 데미안 허스트 Damien Hirst_Untitled_캔버스에 나비, 하우스홀드 글로스_216×213cm_2000

Section 6. 사랑, 그 후... ● 시간의 힘으로 모든 사랑이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떠난 이후에도 지워지지 않는 이름이 있다. 바람처럼 지나간 사랑은 상처의 흔적으로, 아쉬운 미련으로, 아련한 추억으로 가슴 깊이 오롯이 남는다. '사랑, 그 후...'는 사랑 후에 남은, 아직 끝나지 않은, 여전히 지속되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살바도르 달리 Salvador Dalí_Mae West Lips Sofa_혼합재료_81.5×183×86.5cm_1937

Epilogue ● 신체 부위에 따라 키스의 의미는 다양하다. 손등에 하는 키스는 존경과 아쉬움, 볼에 하는 키스는 호의와 친절, 이마에 하는 키스는 믿음과 신뢰를 나타낸다. 그러나 입술에 하는 키스는 보다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서로에 대한 직접적인 사랑의 표현이다.『Love Actually』의 에필로그를 장식하는 'Kiss Zone'에는 살바도르 달리의「Mae West lips sofa」가 설치되어 있다. 달리의 입술 소파는 달콤하고 관능적인 사랑의 추억을 되새기게 한다.




초청강연회「예술과 영화, 사랑에 빠지다」 일시 : 2013. 4. 13(토), 14:00 ~ 16:30 장소 : 매트릭스 홀 대상(인원) : 학생 및 일반인 참가비 : 없음 강연자 / 유경희(미술평론가, 유경희예술처방연구소장)              심영섭(영화평론가, 대구사이버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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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에 150주년 기념




'물 만난 아티스트展' 공모전 공모기간 / 2013_0311 ▶ 2013_0419





공모마감 / 2013_0419_금요일

페리에 Société Perrier Korea 서울 중구 순화동 5-2번지 순화빌딩 1501호 www.facebook.com/societeperrierkorea www.societeperrier.com www.perrier.com



전세계에서 가장 사랑 받는 탄산수 페리에는 2013년 150주년을 맞아, 오는 5월 『물 만난 아티스트 展』을 진행, 전시에 함께 할 미래 작가들의 작품을 공모합니다. 지난 150년 동안, 페리에의 세련된 녹색 병은 전설적인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Andy Warhol), 포스터 일러스트레이터 빌모트(Villemot), 사비냑(Savignac) 등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콜라보레이션을 꾸준히 진행하여 세련된 음료 문화를 지향하는 페리에의 예술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대중에게 보여왔습니다. 그리고 올해 150주년을 맞은 지금, 페리에는 국내의 젊은 미술대학 학부 또는 석사과정의 학생들과 협업하여 아래와 같이 작품을 제작, 전시하여 국내 작가들의 신선한 아이디어와 창의력으로 재탄생한 페리에의 예술적인 면모를 대중에게 선보이고, 동시에 국내 젊은 미래 작가들의 꿈을 후원하고자 하오니, 많은 참여 바랍니다.

공모요강

공모 대상 : 각 미술 대학 학부 또는 석사과정 재학생

주제 : 페리에 150주년 관련 자유 주제

공모기간 : 2013년 3월 11(월) – 4월 19일(금)

공모분야 : 회화, 설치, 일러스트, 미디어(2~3분 내외) 등 시각예술 전 부문 - 작품 크기 제한 : 넓이 3m, 높이 3m 미만 - 출품료 : 없음 - 수상자 : 작품 심사를 거쳐 10명 선발 예정 - 심사기준 : 회사 내부 및 외부 심사위원 심사를 통해 페리에의 예술적 면모를 신선하게 표현한 작품 선발

수상혜택 : 물만난 아티스트 전'에 작품 전시 상금 150만원

전시 일정 : 2013년 5월 2일 – 5월 10일 (향후 2~3회 추가 전시 예정) 전시 장소 : 가로수길 갤러리카페 'Jazzy Mas'

제출 서류 : 페리에 150주년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작품 1점 JPEG 해상도 300dpi 이상 작품 공모지원 신청서 (* 웹하드에서 다운받아 제출) (제출된 서류는 반환하지 않습니다)

접수방법 : 웹하드에 게재 www.webhard.co.kr ID : cucperrier / PW : guest (게스트폴더→올리기전용→물만난아티스트전 폴더→작가명 폴더생성 후 올려주세요) 결과통보 : 담당자가 작가에게 직접 연락.

문의 : 이메일로 만 받습니다. (cucperri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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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rench Haunted House : 프랑스 젊은 작가전










France in SongEun展   2013_0315 ▶ 2013_0608 / 일,공휴일 휴관






테오 메르시에 Théo Mercier_La famille invisible (투명 가족)_합성수지_190×140×70cm_2012





초대일시 / 2013_0315_금요일_06:00pm

아티스트 토크 / 2013_0315_금요일_03:00pm

참여작가 네일 벨루파_줄리 베나_죠나탕 비네_다미엥 카디오 기욤 콩스탕탱_엠마누엘 라갸리그_플로랑스 뤼카_테오 메르시에 엘자 사알_엘레오노르 쌩타냥_줄리앙 살로_스테판 비니

주최 / 재단법인 송은문화재단 기획 / (주)로렌스 제프리스 후원 / 프랑스 해외문화진흥원_주한 프랑스 문화원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일,공휴일 휴관

송은 아트스페이스 SONGEUN ARTSPACE 서울 강남구 청담동 118-2번지 Tel. +82.2.3448.0100 www.songeunartspace.org






송은 아트스페이스는 2013년 국가 프로젝트 France in SongEun, 『The French Haunted House : 프랑스 젊은 작가』展을 선보입니다. 2012년부터 시작된 본 프로젝트는 매해 한 국가와 연계 진행되며 국내에 소개된 바 없는 각국의 젊은 현대미술작가들을 소개하는 한편, 이들에게도 한국미술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상호 시각미술과 문화 전반을 보다 심도 있게 이해하고 교류하고자 기획된 프로그램입니다. 2012년 『Reflections from Nature : 스위스 젊은 작가』展에 이어 두 번째로 선정된 국가는 프랑스로, 이번 전시는 근•현대미술 거장들을 배출한 문화강대국 프랑스의 예술 전통과 역량을 계승한 오늘날 프랑스 젊은 작가들의 도전과 실험을 조명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네일 벨루파 Neïl Beloufa_Tectonic-L.A. (L.A.지질 구조)_ Beamer, speakers, wood, plexiglas, paper, video_가변크기_2009

네일 벨루파 (Neïl Beloufa, 1985-) ● 네일 벨루파는 단편영화 및 비디오 영상과 관련된 다수의 페스티벌에서 수상한 바 있는 작가로 이미지의 거장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다양한 매체로 복합적인 형태의 설치 영상작품을 선보여왔는데 이미지와 재료, 오브제 및 구조물들로 가득 찬 공간에 영상작품을 배치함으로써 특정 범주로 치우치지 않는 자유로운 표현방식을 구사한다. 본 전시에서는 '특수 효과'와 '현존성'이라는 서로 다른 층위에 기반을 둔 음향 및 시각 작업 「Tectonic–L.A」를 선보인다.
줄리 베나 Julie Béna _Monuments (기념물)_Photography_60×70cm_2010

줄리 베나 (Julie Béna, 1982-) 줄리 베나는 비디오, 사진, 설치, 퍼포먼스, 사운드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작업에 임하는 작가로, 연극에서 영감을 받는 베나의 작업은 이중적인 속성을 보여준다. 일상의 크리넥스 휴지가 유명인사와 같이 위엄을 갖춘 형상으로 서 있는 모습을 촬영한 출품작 「Monuments 기념물들」시리즈는 공간 비례와 그 가치의 전복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죠나탕 비네 Jonathan Binet_Le plus loin possible (가능한 한 멀리)_가변크기_2012

죠나탕 비네 (Jonathan Binet, 1984-) ● 죠나탕 비네는 신체와 캔버스 그리고 이들을 내포하는 공간과의 관계에 있어서 존재하는 모든 물성(物性)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무수한 가능성들에 대하여 탐구하는 작가이다. 비네는 자신의 대표적인 매체인 에어로졸 스프레이 외에도 작업실 혹은 전시 설치 중에 손에 닿는 모든 것들을 재료로 활용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전시 공간에 대해 묘사한 텍스트와 서류들만으로 이루어진 작품을 선보이는데, 자신의 요구 사항에 따라 서울 현지에 있는 어시스턴트가 작업을 이행하고 해석하게 된다.
다미엥 카디오 Damien Cadio_Untergang (침몰)_캔버스에 유채_24×30cm_2012

다미엥 카디오 (Damien Cadio, 1975-) ● 다미엥 카디오는 주로 캔버스나 나무에 오일페인팅을 하는 작가로 회화의 전통적인 맥락을 계승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마치 영화 이미지들이 연상되며 대부분 당혹스러운 장면들을 담고 있다. 그러나 각 장면은 매혹적인 면모들을 함축하고 있는 동시에 거북하고 불편한 감정을 야기시킨다. 실제로 각 작품의 이미지들은 한 편의 이야기 구성에 있어 마치 한 조각이 누락된 채 파편화 된 것처럼 보여지는데, 작가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각자 자신만의 기억과 두려움의 감정들을 투사하여 작품의 이미지를 완성시키고 의미를 발견하도록 유도한다.
기욤 콩스탕탱 Guillaume Constantin_Everyday Ghosts (일상의 유령들), since_ Digital slideshow (110 images)_2008

기욤 콩스탕탱 (Guillaume Constantin, 1974-) ● 기욤 콩스탕탱의 작업은 비유와 시대착오에 기반하여 이루어진다. 콩스탕탱은 재료의 선택이나 형태, 이미지 촬영, 구성 및 배치 등 작업 전반에 있어 오브제의 물성(物性)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본 전시에는 「일상의 유령들(Everyday Ghosts)」(2008)을 선보이는데, 이는 인터넷이나 작가가 촬영한 사진 이미지를 비롯한 다양한 데이터 소스로부터 발견한 괴기스러운 "유령" 이미지 모음이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배경화면, 벽지 혹은 스크린 세이버와 같이 비개성적인 이미지가 무미건조하게 공간을 채우듯 텔레비전 스크린이나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슬라이드 쇼로 화면에 투사된다.
엠마누엘 라갸리그 Emmanuel Lagarrigue_WH_Sound installation_250×200×150cm, 가변크기_2011

엠마누엘 라갸리그 (Emmanuel Lagarrigue, 1972-) ● 엠마누엘 라갸리그는 언어, 기억, 경험을 통해 작업하는 작가로 소리, 녹음된 대화, 조명, 다양한 천연 재료나 산업 재료를 가지고 관람객들을 감싸는 공간을 만들어낸다. 이 공간을 통해 관람객들은 이야기, 텍스트, 서술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어 그 세계를 마치 실재처럼 경험하게 된다. 본 전시에서 엠마누엘 라갸리그는 서울에서 찾은 다양한 음향 및 시각적 재료들로 제작하는 장소 특정적인 작품을 선보인다.
플로랑스 뤼카 Florence Lucas_Untitled (무제)_Layout Schoellershammer 75g_A4 (21×29.7cm)_2012

플로랑스 뤼카 (Florence Lucas, 1975-) ● 플로랑스 뤼카는 서울에서 태어난 프랑스 국적의 일러스트레이터이다. 뤼카의 작품세계는 자신이 인터넷, 잡지, 영화 등에서 수집한 무수한 이미지 모음에 기반을 두는데, 이러한 이미지들은 작가의 드로잉에서 서로 적절히 혼용되거나 혹은 상충되는 등 다채로운 양상을 보여준다. 그녀의 작품에서 에로티시즘, 폭력성, 성(性), 구속, 꿈, 악몽 등은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주제들로, 이는 매우 작은 요소들이 결국 긴장의 원인이 되고 등장 인물들이 무의식적인 영역에서 배회하는 촌극 즉, 매우 짧은 단편적인 연극과 같은 기능을 한다. 테오 메르시에(Théo Mercier, 1984-) ● 사진 작가이자 조각가인 테오 메르시에는 좋은 취향 그리고 특히 나쁜 취향에 대한 고정관념을 블랙 유머로 비틀어 거침없이 표현하는 작가이다. 메르시에 특유의 불경스럽고도 독자적인 작품세계에는 가죽이 벗겨진 동물, 해골, 죽은 짐승, 기형적인 괴물 등의 모습들이 넘쳐난다. 본 전시에 선보이는 「투명 가족」은 네 명의 단란한 유령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실제 사람 크기에 달하는 규모에 각각 몸 전체를 덮는 흰 천을 덮어쓴 채 선글라스를 그 위에 끼고 있다. 이 허공에 떠 있는 유령 가족은 우리가 흔히 보는 가족 사진의 유형을 희화화하고 있다.
엘자 사알 Elsa Sahal_Autel II (제단 2)_Glazed ceramic_75×35×60cm_2012

엘자 사알 (Elsa Sahal, 1975-) ● 엘자 사알은 데생과 도예를 주로 다루는 작가로, 에릭 디에트만(Erik Dietman), 필립 거스턴(Philip Guston), 엘마 트렌크발더(Elmar Trenkwalder) 등의 작가들에게 영향을 받아왔다. 사알은 데생과 도예와 같은 전통적인 미술 매체 및 기법에 시적인 영감을 불어 넣거나 에로티즘과 유머를 채움으로써 자신만의 참신함을 더하고자 노력해왔다. 작가의 이번 출품작은 사람 형상의 산호초와 바닷속 식물군 사이의 중간과 같이 기이한 변이 과정 중에 있는 형상으로 모호함을 띄며 규정할 수 없는 형태로 인해 관람객으로 하여금 다양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엘레오노르 쌩타냥 Eléonore Saintagnan_Le cercle (서클)_Video DV_00:10:00_2009

레오노르 쌩타냥 (Eléonore Saintagnan, 1979-) ● 엘레오노르 쌩타냥은 비디오 아티스트로 본 전시 출품작 「서클」은 프랑스 북부에 있는 중학생들과 진행했던 워크샵의 일환으로 촬영한 작품 「서클」을 이번 전시에 선보인다. 유령의 집으로 소문난 장소를 영상 배경으로 하여 카메라 렌즈 앞에 아무 말도 없이 서 있는 학생들은 방향감각을 잃고 혼란스러워 하며 의혹에 사로잡힌 모습들을 보인다. 쌩타냥은 본 작품에서 유년기와 성인의 과도기에 있는 특정 시기를 주목함으로써 청소년기에서 극도로 방황하는 순간의 한 정점을 포착하여 보여준다.
줄리앙 살로 Julien Salaud_Guerrier traversière 4 (chevrette et faisans _암노루와 꿩)_Taxidermy_110×65×47cm_2013

줄리앙 살로 (Julien Salaud, 1977-) ● 조각가이자 디자이너인 줄리앙 살로는 동물, 곤충, 인체의 형상을 다루며 현실 세계와 샤머니즘 사이의 경계를 오간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박제 동물들이 주요 재료이며 실, 못, 진주, 신비한 제례의식을 상기시키는 다양한 소품 등으로 동물을 감싼다. 본 전시에서는 세 종류의 동물이 혼합된 하이브리드 형태를 선보이는데 꿩, 멧돼지, 노루 가죽 혹은 자고새의 깃털이 함께 만나 조합된 것이다. 이러한 몽환적인 혼합체는 박제된 사냥 기념품처럼 걸려 전시되며 환상의 세계에서부터 빠져 나와 일상의 범주로 일탈한 기괴함을 불러일으킨다. 스테판 비니 (Stéphane Vigny, 1977-) ● 스테판 비니는 조각가로서 다양한 오브제들에 관심을 가지고 혼합하여 작업한다. 작가는 하나의 조형 작품 안에 다양한 재료를 서로 다른 관점에서 조합하여 표현해낸다.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롭게 제작하여 선보이는 작품은 작가가 발명한 무인 연주 장치를 장착한 피아노 작품으로 전시기간 동안 연주되는 음악이 전시장 전체를 감싸며 전시의 배경음악 역할을 하게 된다. ■ 송은 아트스페이스




전시 부대 프로그램

Artists Talk『The French Haunted House : 프랑스 젊은 작가전』 일시 : 2013년 3월 15일 토요일 오후 3시 (무료입장) 장소 : 송은 아트스페이스 지하2층 S.Atrium 강연자 : 큐레이터 - 가엘 샤르보 Gaël Charbau             아티스트 - 네일 벨루파 Neïl Beloufa, 엠마누엘 라갸리그 Emmanuel Lagarrigue,             스테판 비니 Stéphane Vigny, 플로랑스 뤼카 Florence Lucas

French Film Screening 내용 : 프랑스 고전 단편 영화 상영과 전시 참여작가 플로랑스 뤼카 Florence Lucas의 설명         프랑스 문화원에서 선정한 영화 "The Others" 상영 일시 : 2013월 3월 16일 토요일 오후 3시 (약 3시간 소요예정) 장소 : 송은 아트스페이스 지하2층 S.Atrium

* 프로그램 신청예약 및 문의 참 가 비: 무료 참가방법: 좌석이 한정되어 조기마감 될 수 있으니, 온라인 사전 신청을 권장합니다.               하단의 이메일로 접수 받으며 프로그램명, 참석자 이름, 연락처, 동반 인원수를               반드시 기재하여 주십시오.               (프로그램 시작 30분 전부터 선착순으로 입장합니다.)               E. info@songeunartspac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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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하는 나의 자아 Pieces of Me








김현주展 / KIMHYUNJU / 金鉉珠 / installation 2013_0316 ▶ 2013_0328 / 월요일 휴관





김현주_Pieces of Me II_투명필름, 실, 천_가변설치_2013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00927h | 김현주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3_0316_토요일_05:00pm

쿤스트독 갤러리 전시작가 공모 당선 작가展 문화예술위원회 다원예술지원사업 공모 당선展

퍼포먼스 2013_0316_토요일_05:30pm 2013_0317_일요일_04:00pm 작가와의 대화 / 2013_0317_일요일_04:30pm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_KGIT Ex-Media Studio_KAIST CT대학원_쿤스트독 갤러리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쿤스트독 갤러리 KunstDoc Gallery 서울 종로구 창성동 122-9번지 Tel. +82.2.722.8897 www.kunstdoc.com





오늘의 삶과 문화는 사이버 세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인들은 실생활보다도 가상의 세계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모든 생활의 필요를 충족하고 있다. 더불어 사이버 공간을 활용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삶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자리 잡으며 그 곳에서 현실보다 더 강력한 자신의 행동공간을 만들어 가고 있다. ● 인간은 스스로가 구축한 사이버 공간에서 자신의 신체(몸) 한계를 벗어나 또 다른 존재를 꿈꾸기도 하고, 현실세계에서의 관계 고립을 디지털을 통한 상호관계와 접속을 이용한 만남을 통해 얼굴없는 타인과의 관계로 대체한다. 그러나 소셜 네트워킹을 통한 '친구맺기'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관계는 존재하나 진정한 소통과 교감은 결여된, 고립된 섬들 사이의 반쪽짜리 관계로만 남을 뿐이다. 결국, 이러한 현상은 현대인의 인간관계를 위협하고 자아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야기하게 된다. 현대사회의 사이버 공간 속에서 자아는 부유하고 '낯익은 타인'들이 자신을 대신하는 오늘날, '현대인의 진정한 정체성'이란 무엇인지 사유하는 시간을 본 전시를 통해 갖고자한다. ● 김현주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오늘의 전자세계 환경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스마트 커뮤니케이션과 네트워크화 된 가상공간에서의 현대인의 삶과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또한, 사이버 공간에서 접속(to be connected)을 통한 감성나누기(좋아요, 리트윗)가 야기한 분산된 우리의 몸과 감성, 그리고 그 곳에서 뒤섞이며 형성된 공동의 집단 감성과 실존의 공허함을 작품에 담았다. ● 본 전시에서는 관객과의 현장친화적인 소통을 위해 시노그래퍼(scenographer), 사운드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통한 미디어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이들은 갤러리라는 물리적 공간을 가상의 공간으로 설정하고 그 속에서 신체가 분산, 분열 그리고 해체되는 과정을 작가가 제작한 TweetBot(테크놀로지의 역설적 기조로써 제작한 기계)와 퍼포머 사이의 인터랙션을 통해 보여준다. 그리고 관객의 SNS를 통한 참여의 결과물이 더해져 작가가 느끼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 인간의 감정과 실존의 문제를 감성적으로 접근한다. 작가가 제안하는 미디어 아트는 단순한 시각적 디지털 이미지로서가 아닌 확장된 매체의 감각적 방법으로 관람자와의 감성적인 교감과 소통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작가가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은 아마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나는 네트워크의 불편한 풍요로움에 대한 재고와 그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깊숙한 공허함에 대한 문제제기일 것이다. 또한, 테크놀로지 중심의 디지털 환경에서 변형되고 진화하고 있는 인간의 신체성에 대한 고찰과 뉴미디어 아트를 통한 관람자와의 아날로그적 감수성의 인터랙션일 것이다. ● 전시의 전반적인 형식은 전형적인 스크린 인터렉션 기반의 미디어 아트에서 벗어나 물리적으로 조형화된 키네틱 조각과 로보틱 아트, 그리고 웨어러블 컴퓨팅 의상과 퍼포먼스가 만나 예술의 경계 허물기를 시도한다. 퍼포먼스의 상황은 전시적 형식과 라이브성이 함께 가면서 퍼포먼스의 기록물과 전시는 경계없이 함께 진행된다. 또한, 전시와 퍼포먼스가 행해지는 동안 관람자는 작품, 퍼포머들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전시에 참여할 수 있다. 상호작용을 통해 완성되는 작품은 관람자와 예술가, 그리고 현실과 사이버 공간을 가로지르는 매개체가 될 것이다. ■ 이지성
김현주_Pieces of Me II_투명필름, 실, 천_가변설치_2013




나는 접속되고 기다린다. 그들이 나의 존재의 조각들을 읽어내고 찾아 올 수 있도록 나는 인내하고 기다릴 것이다. 나의 몸은 작고 작은 비트가 되어 광활한 사이버네틱 공간에 흩뿌려지고, 다른 몸들과 뒤섞이고 연결된다. 그것이 나와 우리의 몸이다. 나와 그와 그들의 기쁨과 슬픔과 외로움과 분노의 모든 감정과 역사와 기억이 이곳에서 해체되고 다시 구성된다. 우리는 이제 집단감성체인가...그러나 나는 더 공허하다. 나는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이루어낸 미학적,사회 문화적 변화들에 관심을 가지면서, 디지털 테크놀러지의 비물질성과 인간이 테크놀로지와 상호 작용함으로써 변화된 일상, 이에서 작가가 느낀 편치 않음과 불안, 더 나아가 포스트 휴먼적인 현상들을 개인적이고 관조적인 톤으로 풀어내고자 노력해 왔었다. 최근의 작품들을 통해서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경계에서 조각, 설치, 프린트 등의 기존의 예술 매체에 뉴미디어와 혼성을 통해 디지털테크놀로지를 이용한 작품이 가지는 비물질적 현상을 극복하고, 물리적이고 촉감적으로 관객과의 상호작용이 가능한 인터액티브 오브제적 요소를 가진 확장매체예술을 지향한다. 디지털이라는 것이 가지는 공허함을 직접 만지고, 체험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촉감적인 매체와 함께 사용하며, 매체와 감각, 나아가 차원(dimension)의 혼성이라는 실험을 해본다. ■ 김현주

김현주_Pieces of Me I_커스텀 소프트웨어, 마이크로컨트롤러, 센서, 모터_가변설치_2013

미디어 아트 속에 생성하는 감수성: 김현주의 '유영하는 자아' ● 쿤스트 독에 설치된 김현주의 '유영하는 나의 자아'는 테크놀로지를 자유자재로 다뤄온 미디어아티스트가 테크놀로지의 유저(user)로서 그동안 느껴온 진솔한 모놀로그를 보여준다. 작가는 그동안 미디어 아티스트로 소셜 네트워크(Social Network)를 기반으로 한 미디어 아트 작업과 미디어 파사드 작업을 다양하게 실험해왔으며, 융·복합 프로젝트를 통해 상이한 관심을 가진 미술가들과 기술적인 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작가는 한빛 미디어 갤러리와 서울 스퀘어, 상암 DMC를 잇는 트라이앵글 미디어 파사드를 실험하며 실시간 SNS를 통해 새로운 소통방식을 시도하였다. ● 그동안의 작업을 바탕으로 이번 전시는 디지털 스마트 사회에서 정보와 이미지의 관계 속에서 현대인이 느끼는 감성과 소외, 그리고 실존의 문제를 주로 다룬다. 특히, 쿤스트 독에서의 작업은 테크놀로지를 둘러싼 다양한 시도보다는 디지털 매체가 우리의 일상 속으로 더욱 더 외연을 확장해가면서 미디어 아티스트가 직면하는 일종의 심리적인 리얼리티와 갈등과 타협을 시각화한다. 포스트미디어의 시대, 디지털 시대에 작가뿐 아니라 스마트 폰과 소셜 네트워크에 노출되어 온 사람이면 누구나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영역에서 부유하고 유영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는 가상과 현실이라는 혼성적 공간에서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정체성과 신체성의 다양한 변화를 보여준다. 미디어아트는 다양한 기술과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매체와 유저간의 '인터랙티브'한 경험을 더욱 강조해왔지만, 매체 기술은 인간 상호간의 감성적 측면을 더욱 단일화, 단순화시키면서 감성적으로 서로를 소외시켜왔다. 아이러니하게도 SNS는 가장 많은 소통창구로 활용되고 있지만, 서로를 가장 소외시키는 혼성적 공간이기도 하다. ● 인터넷을 통해, 그리고 소셜 네트워킹을 통해 정보시대가 열리면서 새로운 소통방식이 제시되었고, 이러한 기술적인 변화는 우리의 일상을 변화시키며 디지털 매체의 혁명을 가능하게 하였다. 1988년 제프리 쇼(Jeffrey Shaw)가 제작한「읽을 수 있는 도시(The Legible City)」(1988-1991)와 같은 디지털 매체 작업이나, 토마스 루프(Thomas Ruff)가 디지털 사진 이미지들을 끊임없이 조작하고 합성하여 픽셀을 변형시켰던「Jpegs 연작(Jpegs series)」은 디지털 기술 없이는 불가능한 작품들이다. 보들리야르의 '시뮬라크르'의 개념을 넘어 이미지는 정보처럼 데이터화되는 변화를 초래했다. 소셜 네트워크의 공간에서 익명의 누군가가 생산, 제작한 이미지는 또 다른 사람에 의해 소비되고 변형되어, 재생산된다. ● 비디오, 영상은 컴퓨터와 설치와 함께 다뤄지면서 새로운 매체 실험이 시작되었고, 모더니스트들의 화이트 큐브는 마치 블랙박스(black box)와 같은 어두운 공간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비토 아콘치, 브루스 나우먼 등과 같은 초기비디오 미술가들이 폐쇄회로(CCTV)를 이용하여 그야말로 감시용 TV와 같은 작은 스크린을 이용하였다면, 블랙박스를 필요로 하는 뉴미디어 미술가들은 대형 스크린으로 '몰입'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변해왔다. 여기서 일어난 변화는 이제 미술이란 오브제(object)도, 미니멀리스트들이 구사하던 '사물(thing)'이나 '사물성(objecthood)' 개념도 아닌, '이미지'로 천착하고 있다는 점이다. (Alexander Alberro, "Questionnaire Alberro," October (Fall 2009), p. 58; 이미지로의 변화를 지적하며 이 점 때문에 '시각문화'가 연구되었다고 본다; Susan Buck-Morss, "Visual Studies and Global Imagination," Papers on Surrealism 2 (Summer 2004), pp. 1-29.)
김현주_Pieces of Me III-Falsebody_플렉시글라스_가변설치_2013
김현주_Pieces of Me III-Falsebody_플렉시글라스_가변설치_2013
김현주_Pieces of Me III-Falsebody_플렉시글라스_80×50cm_2013

특히,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이미지로의 전환은 작가들이 과거에 비해 더욱 용이하게 '편집'할 수 있는 환경을 부여했으며, 허구와 상상에 의존한 픽션의 세계와 리얼리티를 보여주는 논픽션의 이미지가 서로 혼용되어 등장하기 시작했다. 전통미술에서 '생산/제작'이라는 개념이 변화하지 않는 부동의 상태였다면, 뉴미디어의 등장은 이러한 카테고리가 고착화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게 하였다. ● 작가 김현주는 리얼리티보다 더 실재적인 소셜 네크워크의 가상공간에서 현대인들이 느끼는 감성의 분열과 실존의 문제를 제기하는데, 가상의 공간에서는 연속적인 시간성이 깨지는 이시성(異時性, heterochrony)이 더욱 중요하게 다뤄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이버 공간에서는 선적인 시간의 흐름이 깨지면서, 과거와 현재, 미래는 끝없이 서로 뒤섞이며 혼용되어 있다. 이 공간에는 자연스러운 것과 인위적인 것, 아날로그적인 것과 디지털적인 것, 감성적인 것과 이성적인 것, 거친 것(편집되지 않은 것)과 다듬어진 것(편집된 것)이 서로 반대의 지점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경계를 오가며 우리의 감각을 확장시키고 때로는 서로를 소외시킨다. ● 김현주는 "나의 몸은 작고 작은 비트가 되어 광활한 사이버네틱 공간에 흩뿌려지고, 다른 몸들과 뒤섞이고 연결된다. 그것이 나와 우리의 몸이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작가는 인간과 기계의 감각이 서로 결합되어 있는 포스트휴먼적 현상 속에서 기계적인 피드백을 통한 즉각적인 인터랙티브를 구현하기보다는 이러한 사이버 공간에서 상호간에 감성적 교감이 가능한지를 되묻는다. ●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우리는 서로 접속되어 있고 연결되어 있어 있지만, 한편으로는 서로 소외되어 있고 분절되어 있는 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누구든지 쉽게 대화를 할 수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서로가 서로를 고립시키는 익명성과 단절을 꿈꾼다. 테크놀로지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작가는 쿤스트독의 1층과 2층 공간을 이용해 이러한 사이버 공간에서 우리가 느끼는 외로움과 공허함을 '심리적' 인터랙티브 형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그는 인간적인 감수성과 가상공간 속에서 분열된 인간의 주체성을 그려내기 위해 쿤스트 독의 공간을 미장센(mise en scéne)으로 변화시켰다. ● 김현주는 '모빌 작업'을 새로운 신작으로 제작하였으며 쿤스트 독의 1층 갤러리 공간의 장소성을 살렸다. 그는 트위트 상에서 받은 감성적 표현과 연관된 글들을 받아서 이를 프린트하거나 모빌화 시키는데, 밀집되어 있는 글들은 조각적 설치 작품으로 존재한다. 트위트 공간은 빠르게 업데이트되고 변화하는 공간으로 그 어느 것도 고정되어 있는 것이 없다. 트위트 사용자들은 지속적으로 바뀌며, 사람들이 간단하게 남긴 문장들에 대한 코멘트와 코멘트의 코멘트 등은 소셜 네트워크 공간을 일시적이며 덧없고, 편집되지 않은 거친 공간으로 만든다. 슈퍼 모더니티의 세계라고 부를 수 있는 트위트의 공간은 가벼우며, 소비되는 인스턴트 공간이다. 이곳은 네트워크 상에서 존재하는 나라는 자아가 분산되고 분열되는 곳이며, 나의 몸과 정체성이 비트화되고 파편화되는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느낌은 김현주 혼자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소셜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비슷한 느낌을 경험하기 때문에 이러한 감성적 표현들은 집단화된다. '유영하는 자아'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감성적 측면들을 물리적 설치로 풀어내며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우리의 자화상을 표현한다. 디지털 매체는 우리의 감각과 신체성을 확장시켰지만, 심리적인 위안을 주지는 못했다.
김현주+김이경_유영하는 나의 자아_미디어 퍼포먼스, 프린트_가변크기_2013

쿤스트 독에 설치된 김현주의 작업은 2013년 봄 사비나 미술관이 기획한 『소셜아트@예술, 소통 방식의 변화/ Social Art』에 작가가 설치한 작품과 개념적으로 연장선상에 있다. 당시, 작가는 전시「TweetBot v1.0, 2012』를 제작하였는데, 이번에 전시되는 45 센티미터 크기의 '트윗봇'은 작가가 트위트에서 '외로운,' 'lonely,' '고독,' '홀로,' 'waiting alone'등 인간적인 감성을 표현하는 단어들을 검색하여 이를 관객에게 보여주는 방식을 택했다. '트윗봇'은 트위트 로봇으로 트위트에서 존재하는 단어들을 포착해내는 기계적 장치이다. 또한 트윗봇은 SNS로 연결되어 있는 가상의 공간과 작품이 설치된 실질적, 물리적 공간을 매개해준다. 고독과 같은 단어는 소셜 네트워크 속에서 느끼는 외로움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가상의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외롭다'는 단어나 그와 유사한 감성적 단어는 현실에서 실제로 느끼는 심리적 상태를 간단한 문장으로 표현한 것들이다. ● 쿤스트 독의 갤러리 2층에는「Piecese of Me III - Falsebody」를 설치하였다. 잘못된 신체, 오류의 신체라고 불리는 이 작업은 레이저 에칭이 된 플렉시글래스 패널과 디지털 애니메이션을 이용한 작업이다. 디지털화된 몸을 통해 작가는 비물질적인 측면을 보여준다. 관객들은 봉투에 담겨져 있는 일부 피스(piece)들을 가져갈 수 있으며, 관람객들은 원한다면 다시 갤러리에 자신이 가져간 봉투들을 사진으로 찍어 전송할 수 있다. ● 소셜 네트워크는 이전에는 가능하지 않던 실시간 업데이트가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가상공간이자 현실적 공간이다. 스마트 폰 상에서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정보와 더불어 트위트로 볼 수 있는 모든 정보들은 부유하고 안착되지 못하는 일종의 조각상태(pieces)들이기도 하다. 가상 공간은 현실 공간과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애매하게 만들었고, 소셜 네트워크 공간은 인간의 감각을 확장시키며 수많은 정보력으로 편이를 제공해왔다. 매체는 인간의 감각을 확장시켰을 뿐 아니라,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Krauss)의 말대로 기술적인 지지체(technical support)로 인간의 기억과 경험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지지체 역할을 해왔다. ● 김현주는 테크놀로지가 예술적 매체뿐 아니라 일상적 영역으로 확장되면서 작가이자 유저로서 그동안 느껴온 심리적 불편함을 이번 전시에서 표현하고 있다. 테크놀로지는 현대인들을 포스트휴먼적인 정체성으로 변형시켜왔고 물리적인 인터페이스는 관객들에게는 새로운 차원의 인터랙티브성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오고 있다. 작가는 미디어 아티스트로서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기술들을 이해하고 이를 예술적인 차원에서 끌어들이고 있지만 예술의 탈물질성을 강조해온 미디어아트가 예술 오브제와 관람객들과 다시 조우하고 물리적으로 만나면서 확장된 장으로 변화해나갈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는 물리적인 인터랙티브성을 강조하던 미디어아트에서 인간의 감수성을 아우르는 차원으로 '인간적인' 미디어 아트를 재해석하고 있다. ■ 정연심



퍼포먼스 일시 / 2013년 3월 16일( 오후 5시 30분), 17일(오후 4시) 참여 예술인 / 김이경(시노그래퍼), 이지선(퍼포먼스), 박순영(사운드 아티스트) 작가와 함께 협업을 진행한 예술인들이 전시와 연계하여 웨어러블컴퓨팅이 결합된 미디어퍼포먼스를 선보입니다.

작가와의 대화 일시 / 2013년 3월 17일(일) 오후 4시 30분 – 오후 6시 토론 참여자 / 김현주(작가), 정연심(비평가), 김이경(시노그래퍼), 이지성(참여 큐레이터) 분산된 몸, 접속된 공허 - 디지털기술과 소셜미디어 속 예술 형식의 진화와 신체 및 감성 표현의 문제를 주제로 작가와 비평가 및 협업예술인이 함께 관객들과 담화를 가지는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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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의 천국 Paradise of Kimbab








구혜영展 / KUHYEYOUNG / 具慧英 / performance 2013_0316 ▶ 2013_0331 / 월요일 휴관





구혜영_Paradise of Kimbab_퍼포먼스_2013




초대일시 / 2013_0316_토요일_04: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복합문화공간 에무 Multipurpose Art Hall EMU 서울 종로구 신문로 2가 1-181번지 B2 +82.2.730.5604 www.emuspace.co.kr





독창적인 사고와 실험정신을 가진 예술가를 지원하고 우리사회의 목소리를 다양한 예술활동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복합문화공간 에무에서는 2013년 첫 전시로 2013년 전시공모에 선정된 퍼포먼스 작가 구혜영의 개인전을 개최한다.「김밥의 천국 Paradise of Kimbab」은 영국 골드스미스에서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국내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자리로, BLT샌드위치를 주제로 영국에서 진행했던「Funeral Practice」(2009)의 한국버전이다. ● 유머를 기반으로 죽음이라는 주제를 가볍지만 진지한 눈으로 바라보는 구혜영은 샌드위치 모양의 관을 짜서 본인의 장례식을 연습한다거나(「Funeral Practice」,2009), 정자들의 찰나같은 삶(「두 번 다시 속지 않겠다.」, 2005 /「R.I.P Sperms 19.4.2012」, 2005 /「The Remnants」, 2009)을 추모한다. ● 산자를 위한 것인지 죽은자를 위한 것인지 위로의 주체가 애매모호한 장례식이라는 현실에서 작가는 패션과 음악이 주는 화려함, 음식이나 정자 등 죽음과 상반되는 사물의 추모라는 아리러니와 부조리, 불합리함 등이 주는 여러 연극적 상황을 통해 진실과 연극 사이의 경계에서 관객이 반응하는 임의의 행동 발현을 의도한다.
구혜영_Music Video 잘 놀고 간다_2013
구혜영_Paradise of Kimbab_퍼포먼스_2013

이번 퍼포먼스「김밥의 천국」은 일상속 도처에 드리워져 있는 죽음의 그림자를 주변에 널려있고, 구하기 쉬우며 사람들이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일상에서 간과되는 사물, 김밥을 통하여 해학적으로 표현한다. ● 앞서 영국에서 BLT샌드위치의 장례식「Funeral Practice」을 연출한 작가는 일상적 삶 속 도처에 죽음의 그림자를 주변에 널려 있고 빨리 쓰이며, 빨리 버려지는 것, 그리고 그것이 관으로 쓰였을 때 아주 이상해지는 것, 그런 것들을 생각하다가 영국에서 흔해 빠진 샌드위치 박스를 선택했다. 김밥을 이번 퍼포먼스의 주제로 선택한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 왜 하고 많은 흔한 것들 중에 김밥인가하는 문제에 대하여 작가는 "먹는 것은 삶을 의미한다. 먹어야 사니까. 하지만 그 먹거리가 죽었다. 먹거리의 장례를 치루어야한다라는 상황에 놓였을 때, 아주 묘한 느낌이 연출된다."라고 말한다.
구혜영_Music video Sonho Meu_2013
구혜영_Escola Alegria-Paradise of Kimbab_퍼포먼스_2013

'먹는다'라는 행위는 삶의 가장 기본적인 행위이다. 우리는 음식을 먹고, 소화하여 영양소를 생성하고, 신체의 대사를 활성화한다. 그러므로 삶을 의미하는 가장 당연한 사물은 음식이다. 그중에서도 참여자들은 어디에서나 볼수있고, 포장조차 간편한 김밥이라는 흔하디 흔한 음식의 장례식를 통하여 삶을 살아가게 하는 매개체(음식)와 그것의 죽음 사이에서 발생하는 묘한 상황적 아이러니를 발견하게 된다. 작가는 우리가 장례식을 통하여 죽은자를 기리고, 남아있는 이들을 위로하며 삶의 희망을 북돋아주는 것처럼 삶의 도처에 숨어있는 죽음의 요소를 가장 흔한 음식을 통하여 부각하고 그것의 죽음을 추모하면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생각을 유도한다. ● 김밥의 장례식을 통하여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구혜영의 이번 전시는 서울 신문로 복합문화공간 에무에서 3월 16일에서 31일까지 열리며, 김밥의 장례식 퍼포먼스는 3월 16일 오후 4시부터 펼쳐진다. ■ 복합문화공간 에무



퍼포먼스「김밥의 천국」/ 2013.3.16.토요일 오후4시, 복합문화공간 에무 4:00 / 전시장 문이 열림 4:10 / 관객 전시장으로 입장(늦게 오면 줄 서서 입장), 준비된 음료와 김밥을 먹으며 전시 관람 4:30 / 사회자가 퍼포먼스 시작을 알리는 멘트, 추도문 낭독 4:40 / 첫번째 뮤직비디오 상영 4:45 / 작가의 친모가 준비한 추도문 낭독 4:50 / 두번째 뮤직비디오 상영과 함께 쌈바 밴드의 연주 5:00 / 관이 운구됨, 전시장 밖으로 추도행렬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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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내숭?






김현정展 / KIMHYUNJUNG / 金炫廷 / painting 2013_0320 ▶ 2013_0330




김현정_내숭 : 세니띠스 Feign : Xenitis_한지에 수묵담채, 콜라주_128×188cm_2013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김현정 블로그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3_0324_일요일_02:00pm

2012 한국 미술대학원생 우수작가 초대 개인展

주관 / 한국미술경영연구소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주말_10:30am~05:00pm

갤러리 우림 GALLERY WOOLIM 서울 종로구 관훈동 30-27번지 Tel. +82.2.733.3788~9 www.artwoolim.com




최근 한국 현대 미술이 세계를 무대로 큰 활약을 보이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심심치 않게 접하게 됩니다. 하지만 국내 미술기반의 현실은 아직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이는 미술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나면서 미술애호가 층은 점차 늘어난 반면 그 무대의 주인공이 되어야 할 미술가를 제대로 육성·지원하는 체계가 아직 미흡한 것에서 비롯됐다고 여겨집니다. ● 저희 우림화랑과 한국미술경영연구소가 함께 지난해 10월 개최한『2012 한국 미술대학원생 신예유망작가 기획초대전』역시, 한국 현대미술의 미래를 짊어질 국내 미술대학원 재학생을 대상으로 젊은 신예작가를 발굴·지원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마련한 것이었습니다. 옛 선인들이 거듭 강조했듯, 한 나라의 미래는 그 시대를 이끌어갈 젊은이의 역동성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김현정_아차 我差 Oops_한지에 수묵담채, 콜라주_145×117cm_2013
김현정_내숭 : 낯선 혹은 익숙함. Feign : Unfamiliar or familiar_한지에 수묵담채, 콜라주_85×155cm_2013
김현정_내숭 : 몰입 Feign : Immersion_한지에 수묵담채, 콜라주_160×119cm_2011

그런 의미에서 지난 기획전에 초대된 19개 대학교 94명(한국화 46명, 서양화 48명)의 작가들은, 각 학교 대학원의 재학생 중에 지도 교수님의 추천을 받아 추천되었다는 데에 남다른 의미가 있겠습니다. 특히 각기 다양하고 독창적인 조형언어를 구비하여 참신한 작품세계를 선보인 신예작가들의 작품에서 무궁무진한 열정의 에너지와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 또한 전시 기간 중에 현장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해 장르별로 1명씩 선정하여『우림화랑 초대개인전』을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심의결과 서양화 부문에 임장환, 한국화 부문에 김현정이 최종 우수작가로 선정되었습니다.
김현정_아차 我差 Oops_한지에 수묵담채, 콜라주_160×110cm_2013
김현정_내숭 : 나르시스 Feign : Narcissus_한지에 수묵담채, 콜라주_72×90cm_2011

젊음은 많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젊음에서 희망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무쪼록 이번『2012 한국 미술대학원생 신예유망작가 기획초대전』의 우수작가로 선정되어 기획초대 개인전을 갖게 된 임장환, 김현정 작가가 장차 한국 현대미술의 또 다른 희망을 만들어가는 주인공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격려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2013. 3) ■ 임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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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id




우민정展 / WOOMINJUNG / 禹旼廷 / photography 2013_0308 ▶ 2013_0321 / 월요일 휴관



우민정_Grid_디지털 프린트_80×120cm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21127j | 우민정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3_0308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스페이스 매스 Space MASS 서울 동작구 상도4동 214-394번지 Tel. +82.2.813.9369 www.mass.or.kr



Grid ● 우리는 인간이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끊임없이 움직이고 상태가 바뀌는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에 비해 사진은, 특정 순간에 장소를 재현하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 없이는 개연성 있는 종합을 이루어 내지 못한다. 파악되는 공간과 시간은 질서의 다른 이름들이다. 현실의 파편화 된 시공간을 나만의 시선과 해석으로 자신의 시공간으로, 질서-"그리드(grid)"라는 이름으로 통합하고자 한다. 이번 작업에서 나는 우리 자신의 기억 속에 내장된 시공간의 순간들을 결합, 도시라는 거대한 공간을 그리드화 하여 각기 다른 공간들을 패턴화 시켰다. Space Mass의 이번 전시에서, 작품들간에 보이는 유사성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우민정_Grid_Now and Here_디지털 프린트_60×240cm_2012
우민정_Grid_Jamais Vu_디지털 프린트_68×240cm_2012
우민정_Grid_Stranger than Paradise_디지털 프린트_55×55cm_2013

사진에 재현된 현실은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프레임에 의해 맥락이 바뀌고 낯설게 변한 현실의 한 단면이 된다. 결국 사진은 프레임에 의해 그 자체가 하나의 맥락이 되며, 현실의 공간과는 다른 사진적 공간을 형성하게 된다. ■ 우민정
우민정_Grid_디지털 프린트_95×120cm_2013
우민정_Grid_디지털 프린트_29.7×42cm_2012


People know that human being is the presence constantly moving and changing mentally or physically. In contrast, as photographs reproduce and represent places and space in a specific moment, it could not create probability of a comprehensive without a high level of concentration. The order is another name of space and time understood. I would integrate fragmented space and time of reality as my own space and time with my own viewpoint and interpret, which is called the order, that is to say, "Grid". In this work, I built in the memory of my own moment of space and time. I also found and formed patterns and grids in each different space in cities. It is thought that viewers can see the similarity between works in this exhibition in Space Mass. ● The represented reality in photographs, rather than reality itself, is the cross section of the reality that is unfamiliarly changed. Framing alters a context in a photograph or between works. ■ Minjung 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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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서유라_임수식 2인展 2013_0320 ▶ 2013_0426 / 주말,공휴일 휴관



서유라_여행의 기술_캔버스에 유채_130×130cm_2012


초대일시 / 2013_0320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주말,공휴일 휴관

리나갤러리 LINA GALLERY 서울 강남구 논현동 229-26번지 해광빌딩 1층 Tel. +82.2.544.0286 www.linaart.co.kr



책은 일정한 목적, 내용, 체제에 맞추어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하여 우리에게 많은 정보와 지식을 주는 매개체이다. 정보를 알려주는 서적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자서전까지 많은 종류의 책들을 보며 우리는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을 간접 경험할 수 있다. 여러 종류의, 여러 분야의 책을 자기만의 스타일로 표현하는 두 작가가 있다. 책의 겉표지를 그리기도 하고, 책의 내용을 작가가 느끼는 감정에 의해 표현하기도 한다. 서유라, 임수식 작가는 책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 걸까? 리나갤러리에서 기획한『STORY』展을 통해 이 궁금증을 함께 풀어나가는 시간을 갖기를 기대해본다. ■ 리나갤러리
서유라_Art Book-Blue_캔버스에 유채_100×100cm_2012
서유라_Art book-Grand Odalisque_캔버스에 유채_60.6×90cm_2012


"오늘도 책을 읽다가 무심코 던져둔다. 그리고 수많은 책들을 포개어 상하좌우로 쌓는다. 저마다 다른 얼굴과 생각이 담긴 책들 사이로 파편화된 이미지를 심는다. 수수께끼나 숨은그림찾기처럼 어떤 의미를 풀어나가는 과정인 셈이다. 세상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책은 기억의 편린이기도 하고, 인간의 삶 그 자체이다. 퇴적층처럼 깊이 쌓인 삶의 지층 같은 것..." (서유라)

서유라_Annes House of Dreams_캔버스에 유채_60.6×90.9cm_2012
서유라_Little Prince_캔버스에 유채_45.5×45.5cm_2012

오늘날 젊은 여성작가의 책에 투사된 이미지들이 사회에서 소비하거나 욕망하는 것들이라 하여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대중적 서적과 잡지는 근대성의 특징이며, 현대에 들어 대중적 책자는 구성원들의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거나 부추겨 자본주의에 통합시키는 역할을 해오고 있으니. 화면에서 책들은, 블록쌓기처럼 마음대로 별이나 하트도 되고 화사한 색과 노골적인 텍스트가 놀이처럼 즐겁게 나타난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마음의 상태처럼 처음 생겨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 모습 그대로인 견고한 책들이 유연하게 부유하고 있다. (2011 개인전 전시평 중) ■ 조은정
임수식_책가도102_한지에 안료, 손바느질_137×80cm_2010


18세기 후반 널리 유행한 책가도는 현학에 정진하고 글 공부를 적극 권장했던 당시의 생활을 보여주는 작품들로 서가 모양의 격자 구획 안에 문방구를 비롯하여 선비의 여가와 관련된 사물들을 역원근법으로 표현한 작품들이다. ● 책은 고금을 막론하고 동경과 욕망의 대상이었고 양식이어서, 끼니를 걸러가며 책을 구입하고 책장에 쌓여가는 책들을 바라보며 마음의 양식도 쌓여감을 자찬하며 희열을 느끼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책가도를 만들어 방의 한 구석을 채웠으니.. 본인 또한 책들이 가득한 책장을 만나게 되면 어김없이 숨막힘을 느낀다. 형형색색의 책들이 주인 나름의 질서대로 줄을 선 모습이라니,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임수식_책가도149_한지에 안료, 손바느질_78×101cm_2012
임수식_책가도161_한지에 안료, 손바느질_118×100cm_2012


책가도는 본인의 책에 대한 욕망의 표현이다. 책가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반차도 작업을 진행하면서 조선 후기 회화의 표현 양식에 매력을 느껴서인데, 본인의 책에 대한 욕망과 책가도의 미적 아름다움이 맞물려 이번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책가도의 형태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책과 문방구 등을 서가 모양의 격자 구획 안에 배치한 것과 덩어리로 모아놓은 것이 그것이다. 본인이 책가도 작업을 진행하면서 처음 관심을 가진 것은 그 첫 번째 것으로 여러 책장들을 촬영하는 것이다. 책장은 생김새는 비슷하나 그 주인의 취향과 직업에 따라 그 속에 책들은 너무나 달라서 배열되어있는 책들만으로도 훌륭한 시각적 요소를 제공한다. 그리고 위의 작업으로 수집된 책장 속의 책과 문방구 등의 이미지들을 채집하여 재구성 함으로써 책장만으로 표현되어 자칫 단조로워 보일 수 있는 작품들에 변화를 줄 것이다.

임수식_책가도175_한지에 안료, 손바느질_53×53cm_2012
임수식_책가도144_한지에 안료, 손바느질_44×73cm_2011


책가도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특유의 원근법인데 이는 한번의 촬영으로는 만들 수 없는 이미지이다. 이에 본인은 책장을 부분 촬영하고 이것을 한지에 잉크젯으로 부분 프린트 한 다음 바느질로 이어줌으로 마무리 할 것이다. 이미지의 원근법적인 문제만의 해결을 원한다면 부분촬영에 이은 포토샵과 같은 디지털의 이기를 활용하여 극복 할 수 있지만, 본인은 그보다 구획 촬영된 이미지를 각각 프린팅하여 이를 바느질을 이용하여 엮는 방법을 선택하였는데, 이는 조각보의 아름다움을 책가도 작업에 활용한 것이다. 조각조각 모아져서 만들어지는 조각보가 한권한권 모여 책장을 가득 채운 책가도와 통하는 구석이 있다고 생각하여 이를 표현방법으로 이용했다. 이 때문에 작품들은 각각 유일본의 형태를 띄게 되었다. ■ 임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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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 TO THE PRESENT




변순철展 / BYUNSOONCHOEL / 邊淳哲 / photography 2013_0321 ▶ 2013_0507 / 월요일 휴관



변순철_짝-패_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_127×101cm_2002


초대일시 / 2013_0321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30am~07:00pm / 월요일 휴관

그리고 갤러리 GRIGO GALLERY 서울 종로구 원서동 75번지 Tel. 070.7570.3760 www.grigogallery.com



그리고GRIGO 갤러리에서는 3월 21일부터 5월 7일까지 변 순철 개인전 『1996 TO THE PRESENT』 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초기작부터 인간의 내면과 그 이면에 포착된 욕망을 통해서 존재의 의미에 천착했던 작가의 대표적 작업 중 미공개 작품을 중심으로 전시된다. 그 동안 변 순철의 작업은 사적 공간에서 공적 공간으로, 개인의 존재에서 사회적 존재의 의미를 묻는 작업으로 확장되고 재현되면서 그 스펙트럼을 넓혀왔다.
변순철_짝-패_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_127×101cm_2002
변순철_Desire1_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_127×101cm_2003

변 순철은 대상이 갖고 있는 독특한 자의식을 남다른 시각과 언어로 풀어 내어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해왔다. 대부분의 초상 작업이 대상을 유형화하고 그 대상에게 문화적 사회적 형질을 부여하는 작업을 하는 반면 변 순철은 대상의 근원과 욕망에 더 집요하게 파고 들어 드러나 있지 않은 자의식, 그 표피 안까지 들어간다. 이를 위해 그는 오래 전 초상 화가처럼 작품 속 대상의 공간으로 찾아간다. 그 곳은 은밀한 사적 공간 혹은 공개된 공적 공간이다. 변 순철은 사회적 거리와 사적 거리의 미묘한 경계에서 절제된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본다. 그 동안 작가는 수 많은 장소에서, 시간의 터널을 지나온 대상을 통해 무엇이 존재를 경계 짓는가 하는 작가적 철학을 부단히 추구해왔다. 대형 사이즈로 제작된 변 순철 사진의 대상에게서 느껴지는 존재감은 이러한 그의 자아, 정체성, 사회적- 문화적 인격체에 대한 집요한 질문의 결과물이다.
변순철_Conceptual Form.Locker_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_101×127cm_2011
변순철_Conceptual Form.Advertising_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_170×150cm_2012

이번 전시에서 작가가 각 프로젝트에서 선별한 작업들이 어떤 유기적인 연관성을 지니고 있는지 관찰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 이다. 또한 그의 작품집 발간을 기념하는 이번 전시는 그 동안의 프로젝트 작업과 그의 작품집을 한번에 만날 수 있는 좋은 경험을 제공해줄 것이다. ■ 그리고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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住宅 주택 - Korean Houses painting


잉고 바움가르텐展 / Ingo Baumgarten / painting   2013_0322 ▶ 2013_0419 / 일요일 휴관


잉고 바움가르텐_Untitled (Jutaek gable, door, Seogyodong, Seoul)_캔버스에 유채_80×100cm_2011

초대일시 / 2013_0322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요일 휴관

유진갤러리 EUGEAN GALLERY 서울 강남구 청담동 116-7번지 Tel. +82.2.54

2013.03.14 15:01:08 / Good : 320 + Good

za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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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관찰




김도플展 / KIM DOPPEL / mixed media 2013_0324 ▶ 2013_0419 / 월요일 휴관



김도플_GENTLE CITY_패널에 아크릴채색_60.6×72.7cm_2012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2013 (재)한원미술관 신진작가 초대展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한원미술관 HANWON MUSEUM OF ART 서울 서초구 서초동 1449-12번지 Tel. +82.2.588.5642 www.미술관.org



(재)한원미술관은 한국미술문화의 발전에 밑거름이 되고자 신진작가들의 발굴과 후원에 적극적인 지원의 장을 마련해오고 있다. 이번 상반기 기획 초대전에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상충하는 기억 속 이미지들을 자동기술적으로 완성하는 김도플 작가의 환상적인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자리가 되고자 한다. 아울러 회화, 드로잉, 설치, 영상 등 다양한 작품형식을 통해 신진작가의 열정적인 무대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김도플_GENTLE MONSTER_디지털 페인팅_182×132cm_2012

김도플 작가의 그림은 알록달록하고 빽빽하고 치밀하며 환상적이다. 놀랍게도 그의 그림들은 모두 밑그림 없이 그의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들며 캔버스 전면을 채운 것이다. 그의 이미지 저장고에서 쏟아져 나온 이 신선한 재료들은 재가공의 과정 없이 캔버스에 차곡차곡 쌓여진다. 마치 녹아내린 아이스크림이나 사탕, 바람 빠진 풍선이나 얽힌 실타래를 연상시키는 흐물흐물한 개체들과, 한편으로 조립식 장난감 부품이나 블록을 연상케하는 이들 이미지들은 다시 무질서하고 반복적으로 축적되면서 전체적으로 하나의 유기체를 재생산한다. 완성된 그 형태들은 벌레나 해골, 몬스터와 같은 변신괴물을 연상케 하는데, 이들 몬스터들은 흩어졌다 다시 뭉쳐서 또 다른 형태로 곧 변신 가능한 '젠틀(gentle)'한 녀석들이다.
김도플_GENTLE MAN_캔버스에 디지털 페인팅_181.9×131.9cm_2012

마치 세포의 무한증식과 분열과정과 같은 이 '이미지 세포'들은 모두 작가의 기억을 담은 부품들이다. "사랑스러운 기억이나 고통스러운 기억, 질투의 기억, 분노의 기억 등을 각각 하나의 부품으로 변환시키고 도시의 모습으로 나열함으로써 나를 이루는 또 다른 모습을 시각화하였다"라고 작가가 밝혔듯이, 그 이미지 세포들은 실제 경험 속에서의 감정을 담고 있거나, 데자뷰 현상에서 비롯된 무의식 세계의 떠도는 이미지들이다. 그래서 그가 조립 완성한 개체들은 '또 하나의 자신' 즉 '도플 갱어(double goer)'인 것이다.
김도플_GENTLE MAN_패널에 아크릴채색_162.2×130.3cm_2012


"데자뷰 현상이 인간의 오류라는 점에서 인간이 기계보다 더 기계적이라고 느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억이나 감정, 생각들이 어쩌면 필요충분조건에 의해서 반응하는 부품처럼 어떤 상황에 맞춰진 시스템이 아닐까 하는 의문에서 시작하였다." (김도플)

김도플_GENTLE CITY_패널에 아크릴채색_60.6×72.7cm_2012
김도플_GENTLE CITY_캔버스에 디지털 페인팅_81.6×192.2cm_2012

일반인 김기범(본명)의 몸에서 형성된 기억은 작가 '김도플'의 캔버스 위에서 '또 하나의 자신'으로 마주한 채 '관찰'의 대상이 되고 있다. 기억은 경험한 그 장소의 모든 사건과 주변상황을 기록하지 못하므로, 단지 그 시점의 감정을 다른 형태를 빌어 사실적 기억으로 둔갑하거나, 대상이나 광경은 기록되어도 그 사건의 흐름을 그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그것은 역으로, "경험은 '기억(Erinnerung)'속에서 엄격히 고정되어 있는 개별적인 사실들에 의해 형성되는 산물이 아니라 종종 의식조차 되지 않는 자료들이 축적되어 하나로 합쳐지는 '종합적 기억(Gedächtnis)의 산물'"이므로 기억의 영역 속에서 개인의 과거는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의 과거와 결부되어 있다(발터 벤야민)고 생각해 볼 때, 기억에서 산출된 이미지는 그만의 감정과 이야기가 아니라 어딘가에 있었던,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를 우리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김도플_젠틀보이_패널에 아크릴채색_22.7×15.8cm×4_2013

이번 전시에는「gentle city」,「gentle boy」,「gentle monster」시리즈를 선보인다.「gentle city」시리즈에서는 완성된 기억의 이미지들이 하나의 도시를 구축하는데, 마치『찰리의 초콜릿 공장』에서처럼 달콤한 환상공간을 연출하면서도 공간을 여백 없이 채움으로써 편집증적인 강박관념을 비추기도 한다.「gentle boy」,「gentle monster」시리즈에서는 이미지 부품들이 보다 느슨한 구성을 보이는데, 전체적으로 또 다른 형태로 변형되면서 애니메이션의 캐릭터와 같은 성격을 보여준다. '기억의 부품'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조립하고 쌓아나감으로써 상상의 도시를 세우고 몬스터와 같은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김도플 작가의 이번 전시는 회화 뿐 아니라 드로잉 소품과 영상, 설치를 통해 보다 다양하게 만날 수 있다. ■ 김미금

Vol.20130324a | 김도플展 / KIM DOPPEL / mixed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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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FLASH




김형준_이선행_최미연展 2013_0325 ▶ 2013_0403





초대일시 / 2013_0325_월요일_05:00pm

주최 / 서울시립대학교 환경조각학과 기획 / 2012년 3차년도 ACE사업 전공스페셜프로그램

관람시간 / 09:00am~06:00pm

서울시립대학교 갤러리 빨간벽돌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90번지 Tel. +82.2.2210.2250



이불은 편안한 공간이다. 잠을 청하는 사적 공간이며 어떠한 불순물도 섞이지 않고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는 그 곳 주인의 모습만을 담고 있기에 가장 편안한 것이다. 하지만 나에겐 그렇지 못한 공간이 이불이다. 나만의 고유 공간이어야 하고 편안해야할 이불 속에서 왜 불편해하고 괴로워하며 결국 수면장애를 겪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에서 이번 작업이 시작되었다. 이번전시는 잠을 잃고 편안함이 존재하지 않는 나의 잠자리로 초대한다. 초대된 나와 모두들은 기승전결의 구조를 갖춘 이불속 이야기들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 이선행
이선행_Non-rapid eye movement sleep_비닐, 천, 이명 sound_가변크기_2012
이선행_Self_혼합재료_300×90×90cm_2012
이선행_A place to rest_의류수거이불, 혼합재료_365×200×230cm_2012
김형준_Seven Podori_합성수지, LED 라이트_각 79×42cm_2013
김형준_Jimmy Choo_합성수지_98×203cm_2013
김형준_Chair_합성수지_70×15cm_2013

'정조를 빼앗다'를 속된 말로 '따먹다'라곤 하는데, 현대에 와서 생겨난 단어 같지만 이는 조선시대의 월인천강지곡(1447)에 수록된 단어로서 역사 깊은 용어다. 정확한 사전에 수록된 의미로는 '(속되게)여자의 정조를 빼앗다' 이다.
최미연_땅따먹기Play_vital plex30, ABS, MDF, 흙_111.5×134×49cm_2012
최미연_땅따먹기Earth_천, 에어주입장치, 동력모터장치_185×350×85cm_2013
최미연_땅따먹기Video_영상_2013

'땅'이란 단어는 음양에서 여성을 뜻하는 음에 속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대지의 여신 가이아도 땅의 여신이었듯, 땅이 내포한 이미지들은 대부분 여성, 어머니와 연결되곤 한다. 나아가 그 이상을 포괄하는 따뜻한 존재에 '따먹는다'는 단어를 결합하면 땅을 대상으로 정조를 빼앗는 행위가 된다. 제목과 작품의 결합을 통해 대표적 이미지를 도출 했고, 이 이미지는 관객들 개개인의 개성과 경험의 바탕에 의해 달리 해석된다. 같은 말, 다른 의미인 단어가 가지는 아이러니 속에 성과 사랑, 사회의 흐름을 담아내고자 했기에 다양한 감상이 가능하지만 결국엔 다시 똑같은 주제로 돌아오는 것이 『땅따먹기』展이다. ■ 최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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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사라지지 않는..




김시연_정규리_함연주展 2013_0320 ▶ 2013_0410 / 월요일 휴관



정규리_1+1_우레탄 도색, 우드컷팅_98×69cm_2013


초대일시 / 2013_0320_수요일

관람시간 / 10:30am~07: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JJ GALLERY JJ 서울 마포구 합정동 360-17번지 2층 Tel. +82.2.322.3979 www.galleryjj.org



이번 갤러리JJ의 첫 번째 프로젝트에서는 '숨'의 순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아무런 장애를 받지 않고 열리는 길을 통과하는 날숨과 들숨의 사이, 그 찰나의 순간에 우리는 살고 소멸한다. 그렇게 의미하는 일상의 순간들에 천착하는 세 명의 작가 김시연, 정규리, 함연주 작가의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한다. 이들은 각각 작품의 재료나 내용에 있어서 지극히 사적인 일상의 흔한 소재와 공간으로 접근하는데, 여성이기에 자칫 페미니즘으로 보일 수 있는 의미까지도 아우르며 확장된 메타적 의미를 산출한다. 이렇게 사라질 수 있는 소소한 것들은 생명을 얻고 우리와 함께 살아간다. 사진, 회화, 혼합매체의 다양한 장르로 구성된 이번 전시에서는 특별히 작가들의 최신작을 만날 수 있다. ■ 강주연_김정혜
정규리_1+1_우레탄 도색, 우드컷팅_50×53cm_2013
정규리_Life is in your hands_아크릴채색_89.5×130cm_2012
정규리_A time tree_아크릴채색_60×60cm_2012
정규리_The air tree_아크릴채색_90×90cm_2012
정규리_A Blessed Disaster_아크릴채색_130×90cm_2009


사람들은 그저 해야 하는 이유가 궁금한 적도 없었을 뿐더러,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마치 해가 지고 해가 뜨는 것을 매일 보는 것처럼 당연히 그렇게 그것에 몰두했다. ■ 김시연

김시연_Barricade_ed. 1 of 5_디지털 프린트_50×50cm_2008
김시연_Hello?_ed. 1 of 5_디지털 프린트_50×50cm_2005
김시연_Thread_ed. 1 of 5디지털 프린트_100×100cm_2011
김시연_Thread_ed. 1 of 5_디지털 프린트_40×40cm_2011


닫혀진 공간 안에서 맴돌듯 떠 있는 사람들에게 통로를 열어주고 싶었다. 이 그림에서 액자는 '지금, 여기'로부터 다른 세계로의 통로이자, 맥락을 갖지 않고 전혀 다른 세계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 정규리

함연주_Blooming_혼합재료_70×70cm_2008
함연주_Blooming_혼합재료_지름 50cm_2013
함연주_Cube_MDF에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탈_70×70cm_2004
함연주_Cube_MDF에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탈_70×70cm_2004


햇살에 반짝이는 눈, 무지개, 초록빛의 바람, 나뭇가지 사이에 숨어있는 별. 작은 요정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아 나를 설레게 한다. 살금살금 다가가 보지만 이내 어디론가 숨어버린다. ■ 함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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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광 스님, 삶의 흔적> 展
(~4월9일 한국미술관)












‘중광 스님, 삶의 흔적’ 전시장 전경



  자유롭고 거침없는 행보로 이목을 모았던 중광스님(1935~2002)의 예술세계를 회고하는 「중광 스님, 삶의 흔적」展이 오는 4월9일까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한국미술관 본관 전시실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서화, 시, 책 등 50여 점이 전시된다. (사진)

  중광스님은 사실 작품 세계보다 기인으로 더 유명하다. 그는 파계승이었고 화단에서는 이단아로 통했다. 그가 발표한 자작시 ‘나는 걸레’ 이후로는 중광스님보다는 ‘걸레스님’으로 불렸으며 묵화, 유화, 판화, 벽화, 퍼포먼스 등 장르를 넘나든 자유로운 작업 방식을 두고  당시 화단에서는 고유한 조형 방식이 없다며 평가절하 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통섭과 융합, 하이브리드가 중요해진 오늘날에 중광 스님의 예술적 업적을 돌아보자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이번 전시에서는 중광 스님의 그림 24점을 비롯해 관련 자료집도 전시된다. <사진제공 한국미술관> (031)283-6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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