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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은 좋다. 다만 게으름이란 사적 감흥까지-심지어 난 고결하다고 생각하는- 작가들이 털어먹는 작금의 시대는 입맛이 좀 쓰다고 할까. 저렇게 앉아 있는 자세까지 기업총수 같은 분이 "...아홉 번의 전시를 했지만, 전 계속 게을렀어요." 란 언사를 날리는 건 좀 많이 별로다. 암튼 상업작가로서는 괜찮은 샘플임..') + + +출처 : 구글검색_무단전제 어쩌구 해서 클릭해야 볼 수 있도록 했;;; 지나가다 보신 분은 무시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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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작가
(49) 코지마 폰 보닌(Cosima Von Bonin)
 코지마 폰 보닌(Cosima von Bonin). Photo: Mary Scherpe |
나태한 토끼는 무죄
검은 토끼가 전시장 바닥에 무기력하게 늘어져 있다. 만사가 권태로운 듯 보이는 그의 앞에는 초등학교 학예회 영상 따위가 흐르고 귀에 낀 헤드폰에서는 테크노 음악이 새 나오고 있다. 이것들에 기운을 뺏긴 걸까? 그만 대(大)자로 뻗어버린 토끼의 발바닥에는 ‘나태(Sloth)’란 단어가 쓰여 있다. 그의 주위에는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넋을 놓아버린 조개 인형, 중대한 발표를 앞두고 있는 듯 여러 개의 마이크 앞에서 얼어버린 집게고둥, 피 흘리며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는 뚱보 새 등 어떤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인형들이 토끼에게 질세라 자리하고 있다. 작가 코지마 폰 보닌의 전시에 주로 등장하는 이 귀여운 녀석들은, 어떤 연유로 이렇게 멜랑콜리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을까.
 <THE BONIN / OSWALD EMPIRE’S NOTHING # 01(CVB’S VOMITING CHICK & MVO’S VOMIT!)>, 201,0 MOHAIR, POLYFILL, ARNE JACOBSEN FORM & STOOL DIMENSIONS AND MATERIALS VARIABLE Photo: Markus Tretter ⓒKunsthaus Bregenz, Cosima von Bon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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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게으른 상태가 좋아요. 마음만 먹으면 한 없이 게을러질 수 있지요. 능숙하게요.” 최근에 선보인 ‘Lazy Susan’ 시리즈의 제작 동기를 설명하는 폰 보닌의 말이다. 이 시리즈는 작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 잘 반영되어 있다. 레이지 수잔(식탁 중앙에 접시를 올려놓고 돌리게 되어 있는 원형 회전판) 위에 무기력한 인형들은 온갖 부수적인 오브제들과 함께 하염없이 빙글빙글 돌아간다. 어지러워 짜증이 날 법도 하건만, 토끼는 꼼짝도 하지 않고 늘어져 있다. 게으름, 혹은 나태가 예술행위의 근거가 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작가들은 굉장히 부지런하다. 새벽같이 일어나 정해진 시간에 작업한다. 게을러서는 작가가 될 수 없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 그는 어떻게 작가가 된 것일까.
 <THE BONIN / OSWALD EMPIRE’S NOTHING #04(CVB’S PURPLE KIKOY SLOTH RABBIT ON PINK TABLE & MVO’S KIKOY SONG)>, 2010. Photo: Markus Tretter ⓒ Kunsthaus Bregenz, Cosima von Bon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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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 코지마 폰 보닌은 ‘직물회화’ 작업을 들고 등장해 뉴욕미술계의 이목을 끌었다. 직물 기법 탓인지 초기 작품에는 페미니즘적 경향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냐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Rock Stars>(2003)와 같은 직물회화 작품은 목판에 여러 직물을 콜라주 하여 엮어 제작하는데, 작가는 이 위에 다시 수를 놓아 디즈니 애니메이션 캐릭터나 특정 인물의 초상화, 기이한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 동물 형상을 넣는다. 이 작품들은 다소 쉽게 제작된 듯하지만, 직물 안에 들어간 그의 바느질은 꽤나 정교하고 깔끔하다.
이후 폰 보닌은 조각, 사진, 텍스타일, 퍼포먼스, 비디오 영상, 심지어 사운드 등 다양한 매체로 작품을 선보이며, 굵직한 작가로 성장해 간다. 뿐만 아니라 전시마다 시그마 폴케, 로즈마리 트로켈 등의 작가와 적극적으로 협업한 작품을 발표하여 그가 작품에 담고자 했던 의미를 세분화시키고, 때론 넘어서며 입지를 다져 간다.
 <THE BONIN / OSWALD EMPIRE’S NOTHING # 03(CVB’S FATIGUE RAFT & MVO’S WHITE RABBIT SONG)>, 2010. ⓒKunsthaus Bregenz, Cosima von Bon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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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니 뭐니 해도 그를 대표할 만한 작품은 귀엽고, 다른 한편 어딘지 멜랑콜리해 보이는 인형작업이다. 1990년대 후반에 접어들며 그의 직물회화 기법은 인형 제작으로 발전하는데, 주로 조그마한 봉제 인형이나 사람 키만큼 큰 인형을 제작한다. 이 작업들은 그가 말하는 ‘게으름’과 ‘나태’를 극명히 드러낸다. 그 전에 이 녀석들은 누가 봐도 귀엽다. 때문에 어린이들도 폰 보닌의 전시장을 즐겨 찾는다.
그의 작품에 대해서 미니멀리즘이나 형식주의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어린이들에게 인형 더미들로 가득한 전시장은 그저 커다란 놀이방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인형 작품이 마치 요시모토 나라의 강아지 캐릭터에서 볼 수 있는 귀여운 이목구비와 파스텔 톤의 색상이 빠지고, 대신에 허망한 눈동자(혹은 눈이 아예 없거나, 애꾸눈이거나)를 하고 칙칙한 잿빛을 띠고 있긴 하지만.
 쿤스트하우스 브레겐츠 전시장 전경. Photo: Markus Tretter ⓒKunsthaus Bregenz, Cosima von Bon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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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인형 작업이 인기를 얻어갔지만 직물회화를 그만두지 않았다. 2007년 카셀 도큐멘타 12와 MOCA에서 선보인 <Roger and Out>(2007)은 과거 직물회화와 인형 작업이 어우러진 작품이다. 전시장 바닥에는 원색의 직물을 몸뚱이에 덕지덕지 붙인 화려한 문어 인형이 있고, 벽면에는 ‘PRIVATO’(이태리어, Privacy)라 적혀 있으며, 그 옆으로 예의 디즈니 캐릭터나 귀여운 강아지를 수놓은 직물회화 작품이 걸려 있다.
 <IDLER, LEZZER, TOSSPIECE(THE WDW SWING NOSE & SCALLOP VERSION)>, Steel, glass fiber, aluminium, styrofoam, rope, wood, velour, velvet, satin, felt, sand, paint, 2010. Courtesy Friedrich Petzel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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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개인전이라 할지라도 협업작업을 적극적으로 선보이는 게 폰 보닌의 특징이다. 2009년 쾰른 루트비히박물관에서 열린 <Cut, Cut, Cut> 展에는 그의 동료인 작가 2명이 참여해 퍼포먼스를 선보였는데, 모리츠 폰 오스왈드(Moritz von Oswald, 테크노 뮤지션)는 그의 곡을 폰 보닌의 설치작품에 함께 넣었으며, 세르게이 얀센(Sergej Jensen, 작가)과 함께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영화감독이 촬영 중에 내지르는 이 전시제목처럼, 폰 보닌은 두 명의 협업 작가와 함께 하나의 괜찮은 씬, 즉 여럿이 모여 만드는 짜임새 있는 전시를 연출했다.
 <UNTITLED(THE GREY BULLDOG WITH BOX & APRONS)>, 127 x 91.6 x 121.6cm, 2006. Courtesy Friedrich Petzel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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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만 아홉 번의 전시를 했지만, 전 계속 게을렀어요.” 웬 너스레인가. 작가가 한 번의 전시를 위해 투자해야 되는 시간은 대중없지만, 분명한 건 적어도 단 몇 개월에 그치지는 않는다. 또 섬세하고 견고한 자수를 다루거나 다른 작가와의 긴밀한 협업 등의 방식을 두고 봤을 때, 폰 보닌이 말하는 게으름은 우리가 아는 게으름의 의미와 다른가보다. 게으르다는 건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
2010년 쿤스트하우스 브레겐츠(Kunsthaus Bregenz)에서 열린 개인전 <The Fatigued Empire>에는, 나태와 피로라는 개념을 간결한 유머로 표현한 작품들이 전시됐다. 이 전시에서 작가는 휠체어에 토끼를 실어 나르며 간병하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토끼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앉아 있는데, 이 광경은 계속해서 ‘웃기다’나 ‘귀엽다’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LACANCAN>, MOHAIR, POLYFILL, COTTON, SPRUCE, LACQUER, STEEL, ALUMINUM, 180 x 190 x 320cm, 2010. Photo: Markus Tretter ⓒKunsthaus Bregenz, Cosima von Bon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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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전시작들 또한 마찬가지다. <Vomiting Chick>은 피, 인지 케첩인지 알 수 없는 토사물을 가슴팍에 쏟아낸 뚱뚱한 새, <The Bonin / Oswald Empire Nothing #5>는 마사지 침대 위에 누워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라고 외칠 것처럼 팔다리, 촉수를 축 늘어뜨리고 있는 집게 인형 작품이다. 폰 보닌 만의 유머와 재치가 잘 나타나 있다.
유머가 유머로 그치고 만다면, 어쩌면 세상은 진정 권태롭고 허무할지도 모른다. 작가는 단지 개인적 경험, 즉 자신의 게으름이나 권태로움을 반성적으로, 비꼬듯 작품화하려 했던 게 아니다. 그는 사회적 맥락, 대중문화의 여러 콘텍스트를 복잡하게 작품에 심어 놓는다. 작품에서 설핏 조악해 보이는 냉소적 장치들, 이를 테면 인형을 둘러싼 여러 대의 허술한 카메라와 마이크 조형물은 인형의 비참한 상태가 더욱 심화되도록 한층 거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레이지 수잔 위의 녀석들은 난도질당해 언제 식탁 위에 올라갈지 불분명한데(혹은 올라와 있는 상태이거나), 그런 그들을 누군가가 지켜보고 싶어 하며, 또 그들의 말을 듣고 싶어 한다. 그렇기에 녀석들은 우울하다.
이 전시의 기획자 니콜라우스 샤프하우젠(Nicolaus Schafhausen)은 폰 보닌의 작품의 의미를 “가게 진열대 위의 ‘짜가’를 향한 페티쉬”라거나, “형식주의와 팝아트, 그리고 진지함과 재미 사이의 왕복운동”이라고 설명한다. 무엇보다 샤프하우젠은 “반성”이라는 개념을 든다. 오늘날 반성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 한 집단사회의 반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작가의 작품은 무력한 세태 속에서 자연히 무력해진 작가 자신(또는 사회구성원)을 향한 자조와 위로를 보낸다. 거꾸로 말하면 우울하기 짝이 없는 물질사회에 대한 반성의 촉구, 즉 비판인 셈이다.
 쿤스트하우스 브레겐츠 전시장 전경. Photo: Markus Tretter ⓒKunsthaus Bregenz, Cosima von Bon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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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빈 광장에 설치되기도 했던 작품 <TAGEDIEB>(2010)은 높다란 의자 위에 턱을 괴고 앉은 피노키오의 ‘시간 죽이기’를 나타내고 있다. 피노키오의 길어진 코에 매달린 거미는, 그가 거짓말을 하고도 얼마나 오랫동안 죄를 뉘우치고 있지 않고 있나 설명하는 것 같다. 또 구부정하게 앉은 태도로 보아 별로 뉘우치고 싶지도 않은 듯 보인다.
한때는 무기력, 게으름, 나태, 혹은 우울함은 ‘죄’로 여겨지곤 했다. 성경은 말할 것도 없고, 인격화된 동물과 사물이 등장하는 우화들만 보아도 그러하다. 여전히 우울증과 무기력증은 정신질환(병)의 일부로 받아들여지지만 현대사회에서 나태와 우울은 죄가 아니다. 빙글빙글 멈추지 않고 돌아가는 현대사회의 구성원들 가운데 이 같은 경험을 해보지 않은 이 없으리라. 코지마 폰 보닌의 토끼가, 집게고둥이, 뚱보 새가 그저 귀엽게만 볼 수 없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적어도 작가에겐 사회의 무기력과 우울은 유머다. 나태와 우울함이 깊어지면 현대사회에선 유머가 되는 것이다.
글=이정헌 퍼블릭아트 기자
사진=Friedrich Petzel Gallery, Kunsthaus Bregenz 제공
2012. 9. 24 ⓒArt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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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지마 폰 보닌 프로필>
코지마 폰 보닌은 1962년 케냐 몸바사에서 태어나 독일 쾰른에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다. 프리드리히펫젤갤러리, 쿤스트하우스 브레겐츠, 로스앤잴레스 현대미술관(MOCA) 등지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카셀도큐멘타 12(2007), <Eyes Wide Open>(암스테르담미술관, 2008), <Rhinegold : Art of Colone>전(테이트리버풀) 등에 참여한 바 있다. MoMA, MOCA, ZKM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으며, 함부르크예술대학에서 객원교수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