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당하거나 인구에 회자되는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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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bel

  • 작성시각: 2011.11.02 23:3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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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제목: 11월 전시




I see,



임형태展 / LIMHYOUNGTAE / 林炯兌 / photography 2011_1101 ▶ 2011_1110



임형태_I see, 001_C프린트_120×150cm_2010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80520h | 임형태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1101_화요일_05:00pm 서울 시립미술관 신진작가 전시지원 프로그램 관람시간 / 11:00am~06:00pm CSP111 ArtSpace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188-55번지 현빌딩 3층 Tel. +82.2.3143.0121 blog.naver.com/biz_analyst


내 남은 날들을 위한 뜨거운 찬가 ●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에 대해 얼마나 진지한가. 더 이상 남은 날이 없게 되었을 때 덤덤히 웃으며 아름다운 나날이었노라 말할 수 있을까. 사진작가 임형태는 결국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숙명과 죽음 앞에 당당할 수 있는 삶의 태도에 대해 차분히 성찰해 나가는 일련의 시리즈물을 제시하고 있다. ● 임형태는 그간 소박하고도 긍정적인 삶의 가치로움을 조명해왔고, 또한 모순된 시대의 정체성을 고발하고, 인간의 가식적 행위로 인한 진정성의 표류에 대해 고민해왔다. 그러한 행보의 도움닫기로 이제 그는 삶과 죽음의 평등함이라는 보다 숭고하고도 대의적인 화두를 좇으며 참된 삶의 모습에 보다 적극적으로 다가가고자 한다. ● "죽음은 삶의 완성이다"라고 했던 니체의 말처럼 임형태는 죽음이 삶의 연장선상에 있고 죽음을 준비하는 자세에서 삶을 아름답게 완성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는 작가 자신의 경험과 진지한 철학적 관조로부터 형성된 주제이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 쉽게 간과할 수 있는 종착지의 존재에 대한 환기와 경고의 메시지에 다름 아닐 것이다. 이는 메시아니즘의 차원이 아니라 '브라보 마이 라이프'나 '인생은 즐거워'와 같은 일상의 기쁨과 보람, 행복을 위한 주술적 주문에 보다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 그는 이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심리학자이자 호스피스였던 미국의 정신과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sabeth Kubler-Ross)의 죽음에 대한 심리학적 반응의 계통연구 사례를 자신의 작업에 접목시키고 있다. 로스는 죽음을 맞는 환자의 심리적 변화를 5단계로 나누고 각각의 단계에 맞는 정신의학적 요법을 적용하고자 했다. 즉, 죽음에 대한 판정 이후 이들은 1단계 부정(denial), 2단계 분노(anger), 3단계 교섭(bargaining), 4단계 억울(depression), 5단계 수용(acceptance)의 과정을 겪으며 삶의 마지막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다. 각각의 단계는 정확히 구분될 수도 있고 여러 가지의 감정 상태가 혼합되어 나타날 수도 있다는데 작가는 그 감정변이의 과정을 테마로 한 다단계의 연작을 지속적으로 보여줄 계획이다.
임형태_I see, 002_C프린트_120×150cm_2010

이번 전시 『I see』는 연작 중 첫 번째의 것으로, 1단계에 해당하는 부정의 내러티브를 시각화하고 있다. 인간에게 있어 시한부 선고는 가장 큰 시련이자 고통일 것이다. 결코 믿을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충격과 당혹감,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동요와 폭발, 현실에 살면서도 현실과 동화될 수 없는 슬픔과 비애감. 작가는 이 비이성적이고 통제하기 힘든 감정 표출의 단계를, 그러나 지극히 절제되고 고요한 양상으로 풀어나간다. 이는 부정의 상황을 다루고자 하면서도 그 의미와 전혀 반대되는 긍정의 의미를 타이틀로 삼은 점에서도 반어적 제스츄어임을 짐작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주제마저도 부정함으로써 오히려 주제 자체를 올곧게 드러내려는 예술적 행위의 밑그림이라고도 여겨진다. ● 작품의 배경은 모두 자연이다. 숲속이나 강가, 사막과 같은 청정의 풍광이 무대처럼 펼쳐지고 거기에 전혀 이질적인 존재처럼 작가 자신이 등장한다. 지나치리만치 생뚱맞은 배합이라 배경과 인물이 몽타주기법으로 합성된 것인지 순간 들여다보게 된다. 예를 들면, 바닷가와 모래사장의 절경에 넋을 놓을 태세인데도 어느새 시선은 망연자실 쓰러져 있는 작가와 상호연관 관계를 짐작하기 어려운 케이크, 흩어져있는 장미꽃잎으로 옮겨가 버리고 만다. 그런가 하면, 우거진 수풀 안에 난데없이 과일이 가득 담긴 새장이 자리하기도 하고, 마천루 속에나 어울릴 법한 잘 차려 입은 비즈니스맨이 수풀 속을 배회하기도 한다. 그뿐인가, 실외 골프 코스 위에 실내용 러닝머신이, 수심 얕은 폭포 밑에 스쿠버 다이버가, 원시적인 동굴 속에 캐리어를 든 도시의 여행자가 버젓이 등장한다. 무엇인가가 조금씩 뒤틀려있고 어색함이 확연하다. ● 작가는 우리에게 익숙한 대자연의 공간 속에 서로 뒤섞일 수 없는 이질적인 요소들, 즉 -적어도 작가의 의도에 따르면 - 작가 자신과 작가에게 소속되어 있음직한 그 조화롭지 못한 오브제들을 화면 속에 극단적으로 배치함으로써 자연의 아름다운 질서에 동화되지 못하는 존재의 불편한 심리와 익숙함, 순리를 부정하고자 하는 어두운 심상의 표정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 지극히 연극적인 미장센의 의도와 효과를 보여주는 임형태의 사진 작업은 모두 작가 자신이 겪었던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한때 건강상의 문제로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던 그는 인간의 생과 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서게 되었고, 결국 인간 모두에게 공유되는 유한의 삶에 대한 리마인드와 스토리텔링을 예술의 언어로 말하게 되었다고 한다. ● 그가 구지 대자연을 무대로 삼은 것은 인간의 삶과 죽음이 자연의 그것과 닮아 있고, 자연 그 자체이기도 하다는 데에 연원을 둔다. 또한 등장인물이 작가 자신뿐인 것도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들이기 때문에 셀프 포트레이트(self-portrait) 형식을 취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그의 작품 속 조형 요소들은 상상과 은유의 코드일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오히려 직접화법에 가까운 설정임이 드러난다. 이는 '부정'의 의도를 보다 극명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일 것이다. ● 여기서 죽음에 대한 환기를 주제로 하는 작가의 진중한 관점과 태도를 들여다보게 된다. 오직 인간만이 죽음을 의식하고 그것을 문화 예술 속에서 수용해 온 역사를 돌이켜볼 때, 각 시대마다 각종 의례, 신화적 설명, 종교적 행위 속에서 인간은 항상 죽음의 기원과 그 대처법에 대해 갈구해 왔다. 근대기 이전에는 주로 죽음 이후의 영혼, 의식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했다면, 근?현대기에는 물질문명의 발달로 인해 죽음 이전의 육체, 육체가 사는 현실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하겠다. 임형태는 이러한 현대적 관점을 시사하는 로스의 시각에 입각하여 연작을 진행하고 있지만, 죽음에 대한 의식적 반성을 통해 삶을 돌아보는 중세적 관점을 더욱 의식하고 있는 듯하다. 주제를 5단계로 명확히 나누고 그 내러티브와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하고 있으며 영혼과 육체, 삶과 죽음에 대한 숭고함을 재해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종교화의 성격과 많이 닮아 있다고 하겠다. ● 죽음을 맞는 이들의 공포와 두려움을 조밀하게 펼쳐 내고자 하는 임형태의 여정은 단순히 경험론자의 피상적인 선택은 아닐 것이다. 죽음을 완강히 부정함으로써 삶을 온전히 긍정하고자 하는 욕망의 발현일 것이며, 남은 날들에 깃든 희망과 기쁨을 뜨겁게 노래하고자 함일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연작이 위안처럼 지속되기를 고대하는 것이다. ■ 최정주
임형태_I see, 003_C프린트_120×150cm_2010
임형태_I see, 004_C프린트_120×150cm_2010

여섯 번째 손가락 ● 인간이 죽기 위해서는 왼쪽 여섯 번째 손가락이 필요하다. 검지와 중지 사이에 자라는 이 여섯 번째 손가락으로 벨을 눌러야만 인간의 영혼을 태우러 배인지 카누인지 요트인지 하는 탈 것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여섯 번째 손가락은 대체로 검버섯이 피면서 서서히 자라기 시작하는데 개중에는 벽에 똥칠을 하는데도 자라지 않는 사람이 있고 날 때부터 한 마디나 자란 손가락을 달고 나오는 아기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손가락이 자라는 속도여서 사람들은 대부분 이 손가락이 서서히, 천천히 자라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것은 지극히 평범한 K 또한 마찬가지였다. ● K는 어느 날 아침 왼쪽 여섯 번째 손가락을 발견한다. 세수를 하는 참이었는데 손가락 하나가 자꾸만 콧구멍을 쑤셔서 왼쪽 손을 보니 여섯 번째 손가락이 벌써 두 마디까지 자라나 있는 것이다. K는 엄청난 불안감에 휩싸인다. K의 나이 이제 고작 서른일곱. ● 죽을 징조인데 죽지는 않을 거야. 의사가 K의 여섯 번째 손가락을 보며 히죽거린다. 젊으니까 쑥쑥 자라는고만. 의사가 히죽거리며 말한다. 손가락은 맹렬한 기세로 마지막 마디를 밀어내려 하는 중이다. 흔적도 없이 잘라낼 수 있겠죠? 목소리가 마구 떨렸지만 K는 부끄러워할 겨를도 없었다. 마지막 마디마저 자라나면 벨이 울리고 돛단배인지 뗏목인지 빌어먹을 탈 것이 온다지 않는가. 이쁘게 잘라 줄게 내가. 의사는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손짓으로 다음 환자를 부른다. 그런데 왜 저한테 벌써. K가 다음 환자에게 엉거주춤 자리를 내주며 묻는다. 의사는 그런 K를 흘낏 보더니, 난들 아나, 라고 대답한다. K가 조금 전까지 앉아있던 자리에 여섯 개의 손가락을 가진 할아버지가 앉는다. 아이고 할아버지, 이제 유람선 타실 때가 되셨다니까요. 할아버지의 왼손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K를 향해 의사가 히죽, 웃는다. ● 수술은 순식간에 끝났다. K가 잠에서 깨어나자 의사가 여섯 개에서 다섯 개로 돌아온 왼쪽 손가락을 K의 눈앞에 들이대며 어때, 감쪽같지, 이제 배 타려면 멀었다고, 라며 거들먹거린다. 의사의 말대로 K의 왼쪽 손은 여섯 번째 손가락이 댕강 잘려 나가고 없었다. ● 퇴원해 집으로 온 K는 이제 여섯 번째 손가락 따위는 잊겠어, 라고 결심한다. 동시에 K에게는 왼손 검지와 중지 사이의 물갈퀴 같이 얇은 피부를 만지작거리는 습관이 생긴다. 나는 아직 여섯 번째 손가락이 돋아나기에 적당하지 않은 나이야, 라고 생각하며 K는 두려움을 떨쳐내려 한다. 하지만 이제 슬슬 배 타러 갈 준비를 해야지 라고 생각하게 될 때가 있을까 생각하면 K는 그만 자신이 없어진다. 가야할 때를 알고 떠나는 자의 뒷모습이 아름다운 것은 두려움을 이겨냈기 때문이다. ● K는 오늘 아침에도 눈을 뜨자마자 손가락부터 떠올렸다. 손가락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아침을 경험한 이상 그렇지 않은 아침으로는 영영 돌아갈 수 없다. 오늘의 손가락은 몇 개일까. K는 이불 속에 있는 왼쪽 손을 천천히 꺼낸다. 잠이 덜 깨 반쯤 감긴 K의 눈에 들어온 것은… ■ 이지영
임형태_I see, 005_C프린트_120×150cm_2010
임형태_I see, 006_C프린트_120×150cm_2010

여기 리필이요. 주방장 아저씨는 다섯 번째 참치 접시를 가져다주며 치켜뜬 눈과 굳어진 입술을 숨기지 않는다. 치킨에 피자 콜. 먹고 마시는 사이 해가 뜨고 살이 오르기를 여러 날. 그땐 배고픈 만큼 먹으면 먹는 만큼 움직이는 줄 알았다. 살이 찌는 건 먹어서 그런 게 아니라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믿었다. 살 쪄서 스트레스 받고 스트레스 받아 살찌는 동안 계절은 돌고 세상도 돌고 나도 돌았다. ● 돌고 돌면 결국 제자리로 오는 법임을 당신은 알고 있는가. 이것은 돌아서 돌아오는 이야기, 그러니까 몸무게가 두 자리에서 세 자리를 돌아 두 자리로 돌아온 이야기 혹은 벨트 구멍이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거나 턱이 두 개에서 하나로 돌아오는 여정의 기록이며 나에게서 시작해 당신을 돌아 나에게로 돌아올 이야기이기도 하다. 시작도 끝도 알 수 없으나 지금 이 순간... ■ 임형태
임형태_I see, 007_C프린트_120×150cm_2010

The Passionate Eulogy for My Residual Days     -------------------------------------------

이국화展 / LEEKUGHWA / painting  2011_1102 ▶ 2011_1108
이국화_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나_장지에 채색_169×390.9cm_2011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가나아트 스페이스 GANAART SPACE 서울 종로구 관훈동 119번지 Tel. +82.2.734.1333 gana.insaartcenter.com

  본 전시는 "畵中有詩적 人物 情景"이다. 문학과 회화의 결합은 한(漢)대에 이미 있었다. 이때의 결합형식은 문학이 회화와 협력하여 초상화의 찬(贊)을 짓거나 또는 회화가 문학작품에서 소재를 취하는 것이었다. 비록 결합되기는 하였지만 각각 독립성을 가지고 있었다. 고대의 시화(詩畵)는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사적 고사를 인용하여 그림의 가치와 이해를 돕고 있는 반면에 시대가 내려올수록 작품이 지닌 가치 중 작가가 의도한 의미를 시각 표현이라는 입장에서 설명하기도 한다. 동양에서 회화와 시는 서로 뗄 수 없는 깊은 관계 속에서 예술적 성취를 함께 하며 인간의 정신성을 고취시켜 왔다.  
이국화_오늘도 난1_장지에 채색_100×100cm_2011
이국화_오늘도 난2_장지에 채색_100×100cm_2011
  이러한 정신적 의취의 세계는 회화와 시가 동일하게 이상으로 삼는 심미적 세계로써, 회화는 공간예술이고 시는 시간예술이라는 엄연한 구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는 화중유시 · 시중유화라는 개념을 기반으로 회화와 시가 소통과 융합을 이루며 동양회화의 특색으로서 자리 잡게 되었다. ● 소식(蘇軾)이 왕유(王維)의 시와 회화에 대해 품평어로 사용했던 시중유화, 화중유시는 회화와 시의 상호 관련성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명제이다. ● "화중유시"라는 말은 말 그대로 -그림 속에 시가 있다-는 뜻이고, "시중유화"라는 말은, -시 속에 그림이 있다-는 뜻이다. 이 두 문장에 의하면 그림과 시는 같다는 말로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기 전의 화가의 마음과 붓을 들어 시를 쓰기 전의 시인의 마음의 근원에 있어서 같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예술을 표현하는 방법은 다르나 함축되어 있는 의미를 읽어내는 것은 같다는 말로 표현될 수도 있다. 즉, 시와 그림의 결합이다.  
이국화_그 여자 이야기_장지에 채색_122×242cm_2011
이국화_어쩌면 좋지_장지에 채색_162×130.3cm_2011
이국화_그리움의 향기_장지에 채색_45.5×53cm_2011
  본 전시에서는 시서화의 근원적 동질성을 현대적으로 끌어내어 회화속의 시적(詩的) 정경의 형성과정인 시적표현 요소에 의해 창조되는 상징을 인물형상과 배경의 묘사로 표현해 보고자 했다. ■ 이국화 ----------------

I AM HAPPY


김석展 / KIMSUK / 金錫 / sculpture   2011_1102 ▶ 2011_1108


김석_I AM HAPPY 2_철판(a car bonnet), 폴리에스터 조각, 페인팅_150×130×40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김석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1102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30am~06:30pm   갤러리 그림손 GALLERY GRIMSON 서울 종로구 경운동 64-17번지 Tel. +82.2.733.1045 www.grimson.co.kr

  행복한 얼굴 ? ● 김석은 조각에 과감한 색채를 덧씌웠고 평면, 표면에 고부조를 활용해 일루젼을 극대화하는 한편 균질한 붓질을 통해 굴곡이 심한 요철의 피부에 기술적으로 정교하게 구사된 색 면, 선을 그려 넣었다. 조각적 효과와 회화적 효과가 가파르게 부딪쳐서 이룬 작업이다. ● 사실적이면서도 어딘지 추상적인 분위기로 감싸인 조각, 키치적이고 인공의 내음이 강렬한 오브제와 유사한 조각, 평면을 밀고 융기하듯 올라와 형성된 부드러운 굴절로 이루어진 조각, 그러니까 표면에 일련의 파동을 일으키는 조각, 동시대 소비사회의 강한 시각적 스펙터클과 색채감각을 연상시키면서 그 위력에 눌린 얼굴 하나를 기념비적으로 각인하고 있는 그런 조각이다.  
김석_I AM HAPPY 3_철판(a car bonnet), 폴리에스터 조각, 페인팅_155×135×35cm_2011
김석_I AM HAPPY 4_철판(a car bonnet), 폴리에스터 조각, 페인팅_160×150×58cm_2011
김석_I AM HAPPY 11_철판, 폴리에스터, 페인팅_135×135×25cm_2011
  그 안에 있는 얼굴은 대중매체를 통해 익숙해진 누군가의 얼굴이자 소비사회의 캐릭터이고 스마일이자 익명의 존재들이다. 정면의 얼굴상뿐만 아니라 측면이기에 관자로 하여금 온전한 얼굴상을 확보하게 위해 필요한 시점을 스스로 찾아 이동하고 배회하게 한다.  
김석_I AM HAPPY 12_철판, 폴리에스터 조각, 페인팅_155×140×24cm_2011
김석_I AM HAPPY 6_철판, 폴리에스터 조각, 페인팅_105×125×20cm_2011
  화려하고 강한 색채들은 소비사회의 유혹적인 색채를 연상시키는 한편 인공의 상품 디자인, 화장 등의 색채에서 추출한 것들이다. 일정한 패턴이나 줄무늬(컬러바)가 얼굴 전체를 가면처럼 혹은 분장처럼 잠식해나갔다. 그로인해 얼굴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나 표정은 가려지는 편이다. 익숙하고 친근한 캐릭터들이지만 그 위로 겹쳐지는 색채와 줄무늬로 인해 흡사 눌리거나 억압되는 듯한 느낌도 든다. ● 이 역설은 화려하게 번쩍이는 소비사회의 색채기호들이 행복과 위안을 약속하지만 실상은 웃음 짓는 얼굴을 모호하고 이상한 표정으로 만들어놓는 편이다. 자동차 본네트(후드)위에 그려진 배트맨과 차두리, 여러 스타들의 얼굴 그리고 캐머플라쥐 문양위에 그려진 스마일 형상 등은 그런 역설을 짐작케 한다. ■ 박영택  
김석_I AM HAPPY 1_철판, 폴리에스터 조각, 페인팅_90×90×10cm_2011
  HAPPY FACE     -----------------    

분열의 질주


여승열展 / YEOSEUNGYEOL / 余承烈 / painting   2011_1102 ▶ 2011_1108


여승열_어느날 거리에서2_캔버스에 유채, 혼합재료_112.1×206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19970903a | 여승열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1102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6:30pm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5번지 4층 Tel. +82.2.722.7760

  현실, 분열, 파편그러나 어느날 우연히 1. 여승열이 전시를 한다. 14년 만이다. 홍대 앞에 있는 그의 작업실 찾아간다. 그림들, 캔버스들이 늘어서 있다. 그림 속의 이미지는 낯익고도 낯설다. 오래전에 그리던 그림의 연장선에 있다는 점은 낯익고, 이미지들 자체에 집중하면서 회화 혹은 그린다는 문제에 다가서려 한다는 점에서는 낯설다. 여승열의 그림들이 가지는 기본적인 구성은 변화하지 않았다. 화면의 일부분은 인쇄된 포장지들을 붙이고 나머지는 페인팅으로 채워져 있다. 화면은 분할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분열되어 있다. 한 세계는 이미 만들어져 있는 빤한 패턴으로 이루어진 곳이고, 다른 세계는 작가의 관점에서 재현 되어 있다. 재현된 것들은 풍경과 이미지의 파편들이다. 풍경은 도시와 농촌 사이의 어디엔가 걸쳐 있는 장소처럼 보인다. 엄밀히 말하면 풍경이라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다. 그 안에 사람들이 움직인다. 달리고 걷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리고 아이콘과 비슷한 닭이나 새, 조류임에 분명한 생물들은 분열된 공간에 놓여있다.  
여승열_골목길1_캔버스에 유채, 혼합재료_162.2×112.1cm_2011
  2. 이것들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초현실적 분위기이지만 정확히 그런 것은 아니다. 이미지들은 라깡이 말한 상상계의 일부처럼 해석 되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캔버스는 하나의 거울이고 거울에 비치는 이미지들은 사실 작가 자신이다. 단지 작가의 몸이 아니라 생각과 느낌이 이미지화 되어 비친다. 그 거울은 그러나 온전히 그의 것이 아니다. 절반 이상은 패턴화 된 무늬들로 채워진다. 그건 작가도 어쩔 수 없다. 그 무늬들은 시시하고 일상적이다. 루이 뷔똥도 애플도 삼성의 로고도 아닌 빤한 꽃과 나무의 이미지들이다. 너무 평범하므로 오히려 의미 있는, 이 제어할 수 없는 이미지들의 틈새에 페인팅이 있다. 그것이 작가가 자신 또는 세계를 보는 시선이다. 마치 라깡이 말한 상상계의 이미지들이 아기가 보는 전체가 아니라 일부에 지나지 않고, 자신의 모습 역시 파편을 재구성해서 보는 것과도 같이. 하나의 거울로서의 캔버스는 변주되지만 결국 자신을 비춘다. 그리고 그 얼굴은 작가를 넘어서 점점 사회로 확대된다. 확대는 작가의 의도 밖에 있다. 그가 그린 과거의 그림들과 그 점에서 다르다.  
여승열_골목길2_캔버스에 유채, 혼합재료_116.8×91cm_2011
  3. 요즘과 같은 시대에 우리가 겪는 분열증, 피해망상, 관계망상 따위는 일종의 필수 품목이다.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하루에도 정신과 감정이 몇 번씩 오락가락 한다.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마찬가지이다. 아노미라든가 위험 사회라는 말 자체가 우리가 몸담고 있는 시스템이 얼마나 불안한가를 말해준다. 이는 근래에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대규모 정전 사태와 최근의 월가를 중심으로한 반자유주의 시위를 보아도 명백하다. 윤리적 가치, 도덕적 지향점이 없어서 일어나는 아노미는 무수한 착각과 겹친다. 일종의 도덕적 마비에 빠져 사람들은 착각한다. 자신의 삶이 과정이 어떻든 결과만 괜찮으면 그만이라고. 이는 범죄나 죄악의 문제를 넘어서 존재 자체를 규정짓는다. 그리고 그러한 착각은 공공적 영역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확대된다. 근래의 모든 이상한 사태의 배후에는 바로 이런 점들이 있다.  
여승열_코스모스_캔버스에 유채, 혼합재료_162.2×190.5cm_2011
  4. 물론 여승열의 그림이 이러한 것을 직접 언급하고 있거나 지시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그의 그림들이 불러오는 연상에 가깝다. 패턴화된 싸구려 포장지의 세계와 손으로 그려진 이미지의 세계는 서로 충돌한다. 그리고 인간은 그 충돌 속에서 망연자실하게 서 있다. 그 망연자실함이 그의 그림을 초현실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그러나 여승열은 이를 '초현실적이라고 느껴지는 실재의 현실'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그가 느끼는 우리 사회의 모순, 분열과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우리와 자신이 바로 초현실인 것이다. 그 초현실은 우리를 분열적인 상태로 몰아넣고 그렇지 않다고 설득한다. 때문에 우리의 일상적 삶은 모순도 분열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래야만 살아남는다. 이런 종류의 상태를 진단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예술이다. 물론 제정신을 가진 경우에 말이다. 김수영식 표현을 빌면 제정신을 가진 예술은 우리가 분열과 모순 속에 있다는 것을 일러준다. 그리고 그것은 고통스럽다. 요즘 같은 시대에 예술이 가치가 있다면 그러한 경우 뿐이다. 여승열의 그림은 바로 이 지점에 서 있다. 물론 그의 인식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여승열_공간2011_캔버스에 유채, 혼합재료_53.3×53.3cm_2011
  5. 여승열의 그림 속에는 풍경이 있다. 그 풍경은 완결된 풍경이라기보다는 풍경의 파편이고 무대 장치이다. 여승열의 그림은 일종의 액자 소설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 걸쳐 있는 공간 속에 벽지들로 이루어진 유사 원근법적 장소가 있다. 벽지들은 분홍색과 무채색 계열들로 밝지만 별 의미 없는 무늬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안에 타오르는 불과 떠오르는 풍선, 달리거나 서 있는 사람, 어슬렁거리는 개, 날아가다 벽에 부딪힌 것 같은 닭을 닮은 조류들이 있다. 이것들 간에 특별한 연관 관계는 없다. 그렇다고 그 이미지들이 상징인 것도 아니다. 이것들은 일종의 알레고리일까? 그럴지도 모르지만 작가의 말에 따르자면 특별한 의미를 지닌 상징은 아니고 그림을 보았을 때 느끼는 어떤 분위기와 감정의 환기를 위한 장치라고 말한다. 그가 의도한 분위기란 무엇일까?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그가 의도한 것은 제정신을 가지고 살 수 없게 하는 세계의 폭력이다. 그 폭력은 일상적이고 부드러워 보여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를 옥죈다. 즉 생활이라는 이름의 폭력이다. 때문에 그것은 폭력으로 보이지 않는다. 일상은 평온하고 대단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다. 벽지 무늬의 벽에 가로수의 그림자가 비치고, 길바닥에 별로 위험하지 않아 보이는 불길이 일고, 하늘은 푸르고 사람들은 저 멀리 걸어가거나 서있다.  
여승열_유기견_캔버스에 유채, 혼합재료_53.3×53.3cm_2011
  6. 이 범상한 풍경들이 환기하는 감정은 기이한 막막함이다. 뭔가 잘못되었는데 아무것도 이상한 것이 없는 세계. 즉 오래전에 이성복이 쓴 시의 표현을 빌면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의 세계이다. 잠시 그의 시 '어느 날 갑자기'와 '그러나 어느 날 우연히'의 일부를 연결 시켜 읽어 보자. ● 어느날 갑자기 망치는 못을 박지 못하고 어느날 갑자기 벼는 잠들지 못 한다 어느날 갑자기 재벌의 아들과 高官의 딸이 결혼하고 내 아버지는 예고 없이 해고된다 어느날 갑자기... 어느날 갑자기 미루나무는 뿌리째 뽑히고 선생은 생선이 되고 아이들은 발랑까지고 어떤 노래는 금지되고 어떤 사람은 수상해지고 고양이 새끼는 이빨을 드러낸다 어느날 갑자기 꽃잎은 발톱으로 변하고 처녀는 養老院으로 가고 엽기 살인범은 불심 검문에서 체포되고 어느날 갑자기 괘종시계는 멎고 내 아버지는 오른팔을 못 쓰고 수도꼭지는 헛돈다... ● 숟가락은 밥상 위에 잘 놓여 있고 발가락은 발 끝에 얌전히 달려 있고 담뱃재는 재떨이 속에서 미소 짓고 기차는 기차답게 기적을 울리고 개는 이따금 개처럼 짖어 개임을 알리고 나는 요를 깔고 드러 눕는다 완벽한 허위 완전 범죄 축축한 공포,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 두 편을 연결 시켜 읽어봐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이성복이 삼십년 전쯤에 쓴 이 시들의 세계는 여승열의 그림과 묘하게 맞닿아 있다. 그 세계는 얼른 보기에 초현실의 세계로 보이지만 사실은 평범한 현실이다. 그러나 그 현실들을 나열하면 초현실적 이미지들이 된다. 어느 날 갑자기 분홍 벽지는 벽이 되고, 어느 날 갑자기 아들은 불쑥 자라고, 어느 날 갑자기 원근법은 뒤집히고, 어느 날 갑자기 길바닥에 불이 타오르는...이 아이러니. 이성복이 80년대에 쓴 시와 여승열의 그림이 만나는 지점은 우리가 사는 세계이지만 우리 것이 아니었으면 싶은 세계이다. 끔찍하게도 세계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은 것이다. ● 7. 여승열은 최근 자신의 작업이 메시지보다는 회화 자체에 경도 되고 있다고 말한다. 확실히 그의 이전 작업들이 보여주던 다소 직설적이던 언어의 구사는 중화 되었다. 그리고 페인팅 혹은 그리기의 즐거움에 대한 추구는 더 강해졌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림을 그리거나 그런 일을 경험한 자에게 회화는 기괴할 정도의 마력을 발휘한다. 그 마력은 수렁과도 같아서 한번 빠지면 평생 헤어 나오지 못한다. 실제로 그림을 그리지 않을지라도 마음 속에는 늘 캔버스가 펼쳐져 있는 것이다. 아직 여승열이 추구하는 그림 혹은 회화에 관해 방법적으로 이렇다거나 혹은 지향하는 바에 대해 말하는 것은 아직 이를 수도 있다. 그는 13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중이고 앞으로 어떻게 변모할지 전혀 짐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상하게도 그림을 그리는 것은 물길과도 같아서 중단 된 곳에서 반드시 다시 시작하게 된다. 물론 그 이후의 물살은 빨라 대개 한꺼번에 그리지 않은 시간들을 보상이라도 하듯이 극복하지만 시작은 같은 지점이다. 어쨌든 누군가 말했듯이'오늘날의 그림은 더 이상 현실을 재현하지 않는다. 오히려 재현이 현실을 구성한다.'더 심하게 말하면 이제 재현을 벗어난 현실은 없다. 여승열이 그림을 그리건, 다른 종류의 이미지를 만들건 아마도 이점은 변화 없을 것이고, 늘 염두에 두어야 할 것도 이 점이 아닐까. 물론 이 글을 쓴 나도 마찬가지이고. ■ 강홍구 --------------------------------

유리방 Yuribang


김선호展 / KIMSUNHO / 金宣浩 / photography   2011_1102 ▶ 2011_1110 / 월요일 휴관


김선호_유리방_디지털 C프린트_76.2×76.2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김선호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1102_수요일_02:00pm 관람시간 / 10:30am~07: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온 GALLERY ON 서울 종로구 사간동 69번지 영정빌딩 B1 Tel. +82.2.733.8295 www.galleryon.co.kr

  유리방 ● 유리를 통해 비추어진 세상은 사물의 실제 모습이 반영된 이미지이다. 유리창에 반영된 이미지는 중첩되어 보여진다. 유리 속에 녹아 있는 이미지는 내가 다다를 수 없는 무엇과 실제 세상이 변별될 수 없는 중간 지점의 모습으로 서리어 있었다. ● 그것은 유리라는 매개의 또 다른 가능성의 세계로서 내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해주었다. 그것은 나에게 나타나지 않았던 무엇이었다.  
김선호_유리방_디지털 C프린트_50.8×50.8cm_2011
김선호_유리방_디지털 C프린트_76.2×76.2cm_2011
  유리를 통해 보는 행위가 현실의 대상을 단순히 바라보는 것과는 다른 무엇이 있음을 알게 되면서 그 매개물을 통해서 나의 속뜰을 보여주는 대상들을 찾는 작업 중 유리방이란 곳을 알게 되었다. 전국의 유리방을 찾았고 버려져 비어있는 그곳의 흔적들을 촬영하기 시작하였다. ● 촬영을 너그러이 허락해줄 상황이 아니었기에 나는 작업 기간 내내 긴장감으로 항상 마음을 졸여야만 했다. 긴장감은 계속되었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더 이상 유리방은 어둡고 우울하기만한 모습이 아니었다. 유리창 속으로 투과되는 빛 속에서 창 때가 보였고, 거미줄이 보였으며, 머리핀도 있었고, 인어공주도 보였다. 그리고 그 안에 내가 보였다. 유리라는 매개를 통해 파편으로 남아있는 사물들과 나 사이에 이어져 있는 나의 삶과 세계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김선호_유리방_디지털 C프린트_50.8×50.8cm_2011
김선호_유리방_디지털 C프린트_50.8×50.8cm_2011
  나의 세상과 그곳의 세상은 유리에 함께 스며들어 있었다. ● 계속해서 작업이 진행될수록 그것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사라져갈 흔적이 아닌, 지금 이곳의 구체적인 시간으로 다가왔다. 모든 것이 사라지겠지만, 나의 작업 여정은 과거도 현재도 아닌 무엇이라 말할 수 없는 공간을 찾고 싶었다. 그것은 내게 유리를 통해서만 볼 수 있는 무엇 이었다. ● 나는 이것이 그저 기억을 엿보는 유리가 아니길 소원한다.김선호(www.sunhokim.com)  
김선호_유리방_디지털 C프린트_50.8×50.8cm_2011
김선호_유리방_디지털 C프린트_76.2×76.2cm_2011
  Yuribang     -------------------    

끈에 매달려 현실 밖으로 올라가다


유희선展 / YOOHISUN / 兪熙善 / painting   2011_1102 ▶ 2011_1112 / 일요일 휴관


유희선_떠있는 편안하고 부드러운 실크 의자_캔버스에 유채_53×65.1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91128e | 유희선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1102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09:30am~06:30pm / 일요일 휴관   웅 갤러리 WOONG GALLERY 서울 강남구 논현동 96-4번지 삼경빌딩 B1 Tel. +82.2.546.2710 www.woonggallery.com

  어릴 적 가슴 졸이며 들었던 옛날 동화 가운데 하나는 할머니를 잡아 먹은 호랑이에게 쫓기던 남매가 허공에서 내려 온 동아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달님, 해님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동아줄은 현실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구원의 손길이었지만 다시는 현실로 돌아오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말았다. 달님, 해님의 세계는 결국 이 땅의 세계가 아닌 천상의 세계이자 죽음 이후의 세계이다. 아마도 이것이 불완전한 인간 존재가 갖는 영원한 이율배반일 것이다. 오늘날 많은 이들은 고된 일상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 하지만 궁극의 벗어남은 불가능하다. 단지 동화에서나 가능하다. 혹은 그림에서나 가능할지 모르겠다.  
유희선_분리_캔버스에 유채_116.8×91cm_2011
  유희선 그림에 늘 상 등장하는 끈이 앞 이야기의 동아줄이다. 유희선의 동아줄은 끌어 올려지는 대상과 같이 연결되어 붉은 노끈, 신발끈, 링겔튜브, 기름호스 등으로 변화하지만 그 끈의 역할과 목적은 모두 같다. 그것은 대상을 하늘로 끌어 올리는 것이다. 그런데 유희선 그림에는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 이점이 초현실주의 그림의 상징과도 같은 르네 마그리트 그림과 차이나는 부분이다. 눈밝은 감상자라면 유희선 그림에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푸른 하늘과 흰 뭉게구름이 마그리트 그림의 중요 배경이었다는 것을 알 것이다. 화가의 그림 소재인 빵, 자동차, 의자, 탁자, 옷, 신발 등은 사람을 은유법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것들은 일상에서 누구나 매일 사용하는 것들이니 현실의 가장 충실한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소재들은 사실기법으로 묘사해서 사진 같은 느낌이 난다. 그래서 초현실주의지만 현실감, 실재감이 느껴지는 것이 유희선 그림의 묘미이다. 또한 네 다리가 잘린 의자, 하반신만 남은 몸뚱이, 곰팡이 핀 식빵, 뼈대를 훤히 드러낸 차체 등 현실의 고통에 대한 은유 또한 생생해서 그것을 바라보는 것은 결코 유쾌하지 않다. 그래서 끈은 구원의 필요성을 더 정당화시켜주는 대비로 작용한다.  
유희선_Fly_캔버스에 유채_91×116.8cm_2011
  2년 전 유희선의 첫 번째 전시를 보면 화가는 허공에 뜬 자신만의 섬에 갖혀 낚시 줄 이라는 또 다른 끈으로 수 많은 물건들을 낚아 올리는, 역시 초현실의 그림을 그렸다. 그러던 것이 이번에는 땅으로 내려왔으며 사물들이 끈에 의해 하늘로 올라가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질문은 저 끈은 과연 누가 끌어올리는가 일 것이다. 이것은 그림 안에 답이 암시되어 있다. 커다란 두 개의 발끝부분이 허공에 매달려 있다. 이것은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의 발을 형상화한 것으로 해석 될 수 있다. 즉 화가는 신의 은총과 구원과 같은 의미로 끈을 제시한 것이다. 물론 유희선 그림의 끈은 보는 이에 따라 여러 의미로 읽을 수 있다. 꼭 신이 아니어도 막연한 미래에 대한 희망, 소망일 수 있다. 이것은 동화 속의 동아줄이 남매의 염원이었던 것과 같은 것이다.  
유희선_rapture_캔버스에 유채_72.7×53cm_2011
유희선_때로는 잠시 떠있고 싶다._캔버스에 유채_72.7×60.6cm_2011
  그런데 신에 의한 구원이든 희망에 의한 상승이든 유희선 그림이 담고 있는 의미는 현실에서 탈출하여 벗어나는 것이다. 이 땅에 발을 딛고 서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을 떠나는 염세성향이 강하다. 화가는 현실에서 벗어나 위안을 삼으려는 마음으로 그림에 임하였고 작가에게 그림은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탈출하는 비상구였다. 그래서 화가의 그림은 초현실이자 탈 현실이다. 하지만 화가의 그림처럼 우리는 하늘의 동아줄을 잡고 올라 갈 수 없다. 이곳을 떠나서, 여기를 떠나서의 극락의 존재는 매우 동 떨어져있다. 그래서 옛 성현은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딛고 일어서라"라고 말 하였던 것이다.  
유희선_Untitled_캔버스에 유채_65.2×90.9cm_2011
  어쨌든 유희선은 두 번째 전시회에서 첫 번째 보다는 훨씬 성숙한 화풍을 이루었다. 이전에는 섬에 갖혀 온갖 물건들에 파묻혀 절망에 빠져 있던 상태에서 구원의 희망을 갖게 된 것은 큰 진전이며 그림 구성에 있어서도 화면을 빼곡히 채웠던 잡다한 물건들이 하나로 수렴, 정리되었으며 덕분에 사물묘사가 질감까지 느껴질 정도로 사실성을 이루었다. 결국 화가의 초현실, 탈 현실주의 화풍이 다음에는 어디로 흘러 갈지가 궁금하다. 그것은 화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장차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라는 질문과 같다. 나아가서는 초현실, 탈 현실이 아니라 다시 현실, 재 현실을 찾아야 할 때가 아닐까. 아무리 삶이 고달퍼도 낙천성을 잃지 않았던 우리 민족의 깊은 뿌리를 안다면 현실을 껴안고 그 안에서 재미와 의미를 찾는 작업을 화가들이 먼저 해야 하지 않을까. 백남준이 말하지 않았는가."인생은 싱거운 것입니다. 재미있고 짭잘하게 만들려고 예술을 합니다." 혹시 모르겠다. 유희선의 다음 전시 제목이 "굿바이, 마그리트"가 될지. ■ 탁현규 ---------------

Dreamtime_꿈의 시대


윤지영展 / YUNJIYOUNG / 尹智英 / sculpture   2011_1102 ▶ 2011_1123


윤지영_명품아기_부분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00907i | 윤지영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1102_수요일_06:00pm_갤러리 도올 2011_1102 ▶ 2011_1113 갤러리 도올 기획 초대展 관람시간 / 월~토요일_10:30am~06:30pm / 일,공휴일_11:30am~06:30pm 갤러리 도올 GALLERY DOLL 서울 종로구 삼청로 87 Tel. +83.2.739.1405 www.gallerydoll.com   2011_1115 ▶ 2011_1123 산토리니서울 공모작가 릴레이展 관람시간 / 10:00am~10:00pm 산토리니 서울 SANTORINI SEOUL 서울 마포구 서교동 357-1번지 서교프라자 B2-01 갤러리 2관 Tel. +82.2.322.8177 www.santoriniseoul.com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윤지영의 조각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한 가지 불편한 진실과 마주한다. 인간의 욕망이 지나쳐 나의 본래 모습은 뒤로하고 타인에게 끊임없이 나를 확인시키는 자신과 마주할 때 무엇을 느끼느냐고! 그래서일까? 전시명인 Dreamtime(꿈의 시대)는 아름답고 낭만적으로 들리나, 그녀의 작품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윤지영_명품아기-Gucci_실리콘외 혼합재료_53×23×20cm_2011
  창백한 피부와 허공을 쳐다보는 눈빛, 그리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하고 있는 형상은 윤지영의 조각에서 대부분 찾아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모습을 하고 있기에 작품은 하나같이 직설적이고 조금은 그로테스크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무표정함과 어딘지 불편한 자세의 조각들은 우리의 감수성을 자극하며 어떤 진실에 호소한다. 그것은 아마도 현대사회의 사람들이 힘겨운 삶을 살기에 조금은 퇴폐적이고 강한 욕망을 드러내더라도 솔직하고 당당하게 살라고 말하고 있다. 인간은 꿈을 갖고 살아가는 존재임을 인지하기에, 불가능한 이상을 꿈꾸는 인간의 욕망을 풍자하면서도 연민의 시선을 담고 있다. ● 그런데 작가의 신작은 전자의 내용과는 조금 다르다. 고단한 현실에 맞서 열심히 살아가자는 얘기는 잠시 뒤로하고 이대로 좋은지 되묻는다. 꿈을 이루기 위한 욕망이 지나쳐 정작 무엇이 소중한 것인지 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누구를 위한 삶인가?"묻고 있다. 자신 본래 모습은 사라지고 타인의 시선에 의해 나를 결정짓는 그런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윤지영_명품아기-Louis Vuitton_실리콘외 혼합재료_52×23×20cm_2011
  알랭드 보통(Alain de Botton)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이 다양한 불안에 시달린다고 말한다. 이유는 능력에 따라 인간이 평가 받으며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타인으로부터 존중 받으며 관심에 대상이 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자칫 사회에서 낙오자로 도태되기 쉽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지위를 유지하려는 노력으로 인한 불안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 그렇다. 우리는 이런 현실에 살고 있기에 나의 본래 모습은 뒤로하고 타인에게 끝없이 자신을 확인시키고 있다.  
윤지영_명품아기-Chanel_실리콘외 혼합재료_22×20×52cm_2011
윤지영_Spam mail_실리콘, 네온외 혼합재료_가변설치_2011
윤지영_Dreamtime_실리콘외 혼합재료_150×130×58cm_2011_부분
  그래서일까? 윤지영의 작품'명품아기'시리즈를 보고 있으면 이런 불편한 진실이 우리의 감성 안으로 들어온다. 명품 가방의 이미지로 제작된 이 작품들은 무표정한 아이의 얼굴 위로 명품 로고가 선명하다. ●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자본주의의 대량생산물 속에서 그것들로 겉모습을 치장하고 본래의 모습을 감추며 다른 이에게 끊임없이 자신을 포장한다. 그러한 모습을 마주할 때 마다 불편하지만 그것이 꿈을 쫒는 대한민국의 현재이며, 우리는 그래서 꿈꾸는 시대에 그렇게 살고 있다고 윤지영은 작품으로 말한다. ■ 신희원 ------------

유니콘을 보다-순환, 치유 Seeing the unicorn-cycle, healing


이유성展 / LEEYUSUNG / 李有星 / installation.printing   2011_1103 ▶ 2011_1115 / 월요일 휴관


이유성_유니콘을보다 -순환, 치유_혼합재료, 호스, 모터펌프, 가변설치_ 유니콘 150×180cm / 물틀 300×180cm
  초대일시 / 2011_1103_목요일_05:3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_10:00am~05:00pm / 월요일 휴관   아트스페이스 에이치 ARTSPACE H 서울 종로구 원서동 157-1번지 Tel. +82.2.766.5000 www.artspaceh.com

  유니콘을 보다 - 순환, 치유 ● 나는 특히 저녁 하늘을 보며 별자리 찾는 것과 하늘이 비치는 강을 바라 보는 것을 좋아하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상상하고 작품 구상도 물빛에 그 려본다. ● 물과 흐름을 소재로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소통을 자주 표현해 왔는 데 이번 전시를 기획하며 유니콘, 물(강가) 그리고 물이 순환되는 펌프를 이용해서 전설속의 동물이 전해줄 꿈같은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했다. 인종과 종교가 다르고 서로 추구하는 이상이 달라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 올리는 유니콘은 아름답고 상상 속에서나 그려지는 신비로움을 지니고 있 다는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유니콘의 상징성은 그의 뿔인데 그 뿔이 물에 닿으면 독이 있던 물도 정화되어 깨끗 해지고 순수해진다고 한다. 그렇게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에서 일어나는 무서운 일을 야기하는 사람들 과, 생각들에 유니콘의 뿔이 닿아 정화된 물이 흘러 순수해 질수 있다 면... ● 유니콘을 아름답게 만드든 동안, 텅빈 큰 틀에 강을 채우고 길고 긴 호스 에 물과 색를 넣고 순환 시키며 작업실의 진한 안료 냄새들 속에 뭍혀 산 몇 달 동안 세상의 한가운데서 갈등하고 지쳐있던 나는 순수한 꿈을 꿀 수 있었다. ■ 이유성  
이유성_유니콘을보다 -순환, 치유_혼합재료, 호스, 모터펌프, 가변설치_ 유니콘 150×180cm / 물틀 300×180cm
이유성_유니콘을보다 -순환, 치유_혼합재료, 호스, 모터펌프, 가변설치_ 유니콘 150×180cm / 물틀 300×180cm
이유성_유니콘을보다 -순환, 치유_판화, 채색, 실크스크린_84×61cm_2011
이유성_유니콘을보다 -순환, 치유_판화, 채색, 실크스크린_84×61cm_2011
이유성_유니콘을보다 -순환, 치유_에칭_10×15cm_2011
이유성_유니콘을보다 -순환, 치유_에칭_40×30cm_2011
  Seeing the unicorn – cycle, healing    

modified at 2011.11.02 23:37:40 by za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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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bel

  • 작성시각: 2011.11.28 18: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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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선의 `No Direction Home`    
              
 한미사진미술관 20층(02-418-1315)
            2011-12-10 ~ 2012-01-07
            2011-12-10 오후 5시
확대(키보드"+"버튼)----축소(키보드"-"버튼)
한미사진미술관의 7인 연속기획전 SPECTRUM의 세 번째 전시는 김옥선의 가장 최근 작업인『No direction home』을 선보인다. 『No direction home』은 그 동안 작가가 일련의 작업을 통해 다뤄온 여성의 몸, 국제결혼 남녀의 일상, 동성애 커플, 제주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삶 등 동시대의 이슈이지만 주류에서 비켜선 문제들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시리즈이다. 더불어 이전작품들보다 한층 집중도 있고 적나라한 방식으로 주제에 접근했다. 작업 속 인물들은 카메라에 시선을 응시하고 있지만, 결코 사진을 위해 의상, 배경 등에 연출을 가미하지 않고 일상의 속살을 조심스레 내보인다. 정지된 사진들은 제각각 ‘빛나는 순간’들로 빛을 발하며, 일상의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스러움과 평범함을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풀어낸다

본 전시의 제목이자 작업 시리즈명이기도 한『No direction home』은 작가가 지금까지의 작업을 통해 부단히 고민해 온 작가적 물음이기도 하다. 인간 삶의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에서부터 가족구성, 직업에 이르기까지 많은 부분들이 개인의 선택 문제로 귀속되는 이 시대에 작가는 선택을 기반으로 한 어떤 이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이들의 삶이 ‘표류되지 않는 꿈’으로서 갖는 가치에 대해, 그리고 다양한 색깔과 형태를 지닌 이들의 삶이 가진 사적인 공간에 대해 담담히 이야기한다. 여기서 김옥선이 시선을 주는 ‘어떤 이’들은 각자의 표류되지 않는 꿈을 위해 자신들의 고향을 떠나 한국 남단의 섬 제주도에 일시적 삶의 터전을 마련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350여 년 전 제주도에 상륙한 네덜란드인 핸드릭 하멜(Hendrick Hamel, 1630-1692)처럼 고국의 문화를 품고 한국에서 낯설고도 이질적인 삶을 향유하고 있다. 사진은 그들이 담고 있는 아직 발현되지 않은 ‘이상과 꿈’이 무엇인지, 그 실현에 대한 믿음과 의지를 가지고 지금 현재도 부지런히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이들의 일상에 대해 풀어냈다. 작가의 시선을 쫓아 우리의 시선은 이내 이질감을 느끼게 하는 그들의 겉모습을 넘어 그들 속에 담긴 자유와 의지, 믿음, 그리고 한시적일 것만 같은 그 일상의 편린들에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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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페리아드 개인전 `Deja Vu`  
    

            트렁크갤러리(02-3210-1233)
            2011-11-25 ~ 2011-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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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페리아드Eric Perriard는 지금 한국에서 산다. 한국을 경험하고 있다. 그는 한국을 타국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대부분 입양되었던 많은 친구들이 각양각색의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 내 관심을 끈다.

에릭은 6세에 프랑스로 입양되었다고 한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한국을 찾아 온 그는 이곳에서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고 또 그것들과 대화하면서 자기 내면의 반응에 귀 기울인다. 그에게 있어 ‘작업하기’란 자기 본능의 지시에 따르는 것이어서, 그 본능을 신뢰하며 ‘침묵의 언어’로 반추하는 것이다.

그의 작업들이 그렇다. 어느 넓은 공원에 홀로 우두커니 서있는 한 남자의 뒷모습이 그렇고, 빌딩 옥상에서 한 여성이 자신의 발밑 그림자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는 그 아찔한 정적의 연속이, 그리고 첩첩의 교각 밑에 갈 길 잃은 듯 멍하니 서 있는 한 존재가 그렇다. 그런가 하면 너무 미미해서 보이지도 않을 법한 시각적 요소가 예리하게 시선을 끈다든지, 어떤 사선이 코너로 모이면서 이루어 내는 지점에 두드러져 보이는 색깔의 한 실체가 만드는 느낌들. 이것들이 작가의 기억세계를 강타하면서 번개 같은 속도로 그에게 잠재해 있는 이야기 끈을 풀어내고 있다. 나는 미미한 것들로부터 무한한 상상력과 질문들로 펼쳐지는 그 비현실감, 작가의 내부가 발현된 그것들을 ‘Deja Vu’ 현상이라 명명하고 싶다.

그는 ‘엄마의 뱃속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다. 자기 인식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심연 속에 가라앉아 있는 소리를 듣는 것과 같은 뱃속경험의 기억이 사진을 통해 떠오른 것은 아닐까. 그가 한국이라는 알지 못하던 미지에서 삶을 일궈내는 것을 통하여 정신적으로 인식하고 몸으로 호흡한 실재계의 경험들을 지금 만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 삶이 결코 낯설지 않다 한다. 언젠가 와 본 듯하고, 익숙하며, 왠지 포근하고 따뜻하여, 그를 ‘매혹시킨다.’ 그는 “내가 이곳의 풍경과 색채에 친밀감을 느낀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고 거듭 말한다. 그 친밀감이 어디로 부터 오는지 그는 모르지만, 카메라와 함께 본능의 지시에 의해 이루어지는 그의 창조활동은 구체적인 자기성찰과 명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무형적인 것들이 그에게 ‘미지로의 문을 열어주었다’는 고백은 그의 작업 배경을 엿볼 수 있게 한다.

타국인인 그가 한국을 경험하며 이국적이라고 느낌과 동시에 다정하다고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프랑스에서 경험하지 못한 것들로부터 받은 상반된 느낌들이 친밀감, 진실함, 순수함과 같이 시적이고 감성적인 것이어서 결코 식상하지 않았다는 그의 말, 어디를 보아도 말쑥하지 않아 자신을 혼란으로 떨어트리건만 오히려 편안하다고 생각된다는 이 경험들. 그가 한국생활을 해 보지 않고는 결코 만날 수 없었던 이 ‘Deja vu’적 경험들은 프랑스에서는 찾아 볼 수 없었던 풍경들이었을 것이다.


트렁크갤러리 대표 박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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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철 개인전` Paradise In My Mind 3`   
    

            Gallery On(02-733-8295)
            2011-12-03 ~ 2011-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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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의 편리함을 위해 숲을 없애고 자동차의 배기가스와 공장에서 나오는 연기, 각종 매연들과 같은 이산화탄소의 증가로 지구온난화가 급속도로 빨라지는 현재,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우리의 후손들에게 남겨져야 할 지구는 점점 황폐해져 가고 있다.
이번 전시는 여러 기상이변과 환경재앙으로 어수선한 시기에, 자연의 소중함과 고향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전시이다. 우리 주변에서 보여지는 자연풍경의 소소함의 가치에 집중하여 작가의 어린 시절 창호 문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 기억을 표현한 전시로 아름답고 순수했던 시각을 마주할 수 있다. 창호 문에 어리는 은은한 자연 빛의 느낌, 그 빛 너머로 보이는 문밖의 풍경은 유년의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창호 문을 통해 기억된 잔잔하고 아름다운 영상이 하루하루 바쁘고 정신 없는 일상에 한 자락의 여유와 넉넉함을 준다. 작가는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지는 삶의 터전을 담백하게 기록하고자 하였고,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져가는, 쉽게 간과하거나 혹 다시는 보지 못할 풍경들을 작가만의 사진과 설치를 통해 이번 전시에서 제시하고자 한다.

이 희 복(갤러리 온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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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데만트 (Thomas Demand) 개인전    
    

            피케이엠갤러리(02-515-9496)
            2011-11-23 ~ 2012-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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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M TRINITY GALLERY는 2011년 11월 24일부터 2012년 1월 10일까지 세계적 명성의 현대미술가 토마스 데만트 작품전을 개최한다. 이번 작품전은 작가의 첫번째 국내 개인전으로 이번 전시에는 2009년 이후 제작된 작가의 대형 사진작품 10여점이 선보인다.

독일 뒤셀도르프 아카데미에서 원래 조각을 전공한 토마스 데만트(1964- ) 는 실재와 허구에 대한 탐구의 언어로서 사진작품을 발표하며 커다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90년대 이후 뒤셀도르프 아카데미 출신의 사진작가들이 세계 미술시장에서 큰 각광을 받으며 토마스 데만트는 세계적 작가 대열에 합류하였다. 그 후 까르띠에 파운데이션 개인전 (2000), 뉴욕 MoMA 개인전 (2005)을 비롯,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 (2006), 프라다 파운데이션 (2007), 베를린 신 국립미술관 (2009) 등 다수의 세계 정상급 미술관에서 이미 이른 나이에 초대 개인전을 가졌으며, 뉴욕 PS1 (1998), 베니스 비에날레 (2003, 2010), 파리 퐁피두 센터 (2007), 광주 비에날레 (2008), LA 현대미술관 (2009),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2010) 등지에서 주요 그룹전에 참여하였다.

토마스 데만트는 현대 미술의 범주화된 장르의 틀을 넘어 실재와 허구에 대한 개념을 자신의 특유의 세련된 언어로 드러내는 작가로서, 사진, 영상, 설치 등의 서로 다른 장르들이 작가의 치밀하고도 정교한 작업을 통해 각 장르의 속성은 그대로 드러난 채 해체되거나 통합되는 고유성을 보인다.

토마스 데만트의 작업은 역사적인 사건이나 개인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어떤 공간적인 장면을 종이라는 내구성 없는 재료를 사용하여 실제크기의 모형으로 재현하고 사진을 찍은 후 그 모형을 파기하는 과정을 통해 완성된다. 작가에 의해 재현된 장면 속의 공간은 사람 또는 텍스트가 부재하며 동일한 질감의 사물들로 이루어진 까닭에 무엇인가 사라진듯한 서늘하고 낯선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리고 작가가 모형을 만들어 촬영하고 그 모형을 부수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현실은 조작되고 재구성된다. 즉 작가에게 있어서 가시적으로 세상에 남는 것은 사진작품이지만 그 이전의 모형 제작 행위, 촬영 이후의 모형 파괴 행위의 과정 모두가 작업 내용에 포괄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작가는 사진의 전통적 특성인 ‘현실의 충실한 재현’을 전복하고, 나아가 사진의 교묘한 조작과 허구성을 예리하게 폭로한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개념적 접근 방식은 동세대 젊은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재현의 문제를 다룸에 있어 가상과 현실, 평면과 입체, 공간과 시간, 진실과 거짓의 문제 등을 다각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토마스 데만트의 작품들은 현대미술의 개념적 다양성과 작업의 명료함이 작품 내에서 성취되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011.11.28 18:01:23 / Good : 259 + Good

zabel

  • 작성시각: 2011.11.28 18: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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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선의 `No Direction Home`    
              
 한미사진미술관 20층(02-418-1315)
            2011-12-10 ~ 2012-01-07
            2011-12-10 오후 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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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사진미술관의 7인 연속기획전 SPECTRUM의 세 번째 전시는 김옥선의 가장 최근 작업인『No direction home』을 선보인다. 『No direction home』은 그 동안 작가가 일련의 작업을 통해 다뤄온 여성의 몸, 국제결혼 남녀의 일상, 동성애 커플, 제주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삶 등 동시대의 이슈이지만 주류에서 비켜선 문제들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시리즈이다. 더불어 이전작품들보다 한층 집중도 있고 적나라한 방식으로 주제에 접근했다. 작업 속 인물들은 카메라에 시선을 응시하고 있지만, 결코 사진을 위해 의상, 배경 등에 연출을 가미하지 않고 일상의 속살을 조심스레 내보인다. 정지된 사진들은 제각각 ‘빛나는 순간’들로 빛을 발하며, 일상의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스러움과 평범함을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풀어낸다

본 전시의 제목이자 작업 시리즈명이기도 한『No direction home』은 작가가 지금까지의 작업을 통해 부단히 고민해 온 작가적 물음이기도 하다. 인간 삶의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에서부터 가족구성, 직업에 이르기까지 많은 부분들이 개인의 선택 문제로 귀속되는 이 시대에 작가는 선택을 기반으로 한 어떤 이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이들의 삶이 ‘표류되지 않는 꿈’으로서 갖는 가치에 대해, 그리고 다양한 색깔과 형태를 지닌 이들의 삶이 가진 사적인 공간에 대해 담담히 이야기한다. 여기서 김옥선이 시선을 주는 ‘어떤 이’들은 각자의 표류되지 않는 꿈을 위해 자신들의 고향을 떠나 한국 남단의 섬 제주도에 일시적 삶의 터전을 마련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350여 년 전 제주도에 상륙한 네덜란드인 핸드릭 하멜(Hendrick Hamel, 1630-1692)처럼 고국의 문화를 품고 한국에서 낯설고도 이질적인 삶을 향유하고 있다. 사진은 그들이 담고 있는 아직 발현되지 않은 ‘이상과 꿈’이 무엇인지, 그 실현에 대한 믿음과 의지를 가지고 지금 현재도 부지런히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이들의 일상에 대해 풀어냈다. 작가의 시선을 쫓아 우리의 시선은 이내 이질감을 느끼게 하는 그들의 겉모습을 넘어 그들 속에 담긴 자유와 의지, 믿음, 그리고 한시적일 것만 같은 그 일상의 편린들에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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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페리아드 개인전 `Deja Vu`  
    

            트렁크갤러리(02-3210-1233)
            2011-11-25 ~ 2011-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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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페리아드Eric Perriard는 지금 한국에서 산다. 한국을 경험하고 있다. 그는 한국을 타국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대부분 입양되었던 많은 친구들이 각양각색의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 내 관심을 끈다.

에릭은 6세에 프랑스로 입양되었다고 한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한국을 찾아 온 그는 이곳에서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고 또 그것들과 대화하면서 자기 내면의 반응에 귀 기울인다. 그에게 있어 ‘작업하기’란 자기 본능의 지시에 따르는 것이어서, 그 본능을 신뢰하며 ‘침묵의 언어’로 반추하는 것이다.

그의 작업들이 그렇다. 어느 넓은 공원에 홀로 우두커니 서있는 한 남자의 뒷모습이 그렇고, 빌딩 옥상에서 한 여성이 자신의 발밑 그림자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는 그 아찔한 정적의 연속이, 그리고 첩첩의 교각 밑에 갈 길 잃은 듯 멍하니 서 있는 한 존재가 그렇다. 그런가 하면 너무 미미해서 보이지도 않을 법한 시각적 요소가 예리하게 시선을 끈다든지, 어떤 사선이 코너로 모이면서 이루어 내는 지점에 두드러져 보이는 색깔의 한 실체가 만드는 느낌들. 이것들이 작가의 기억세계를 강타하면서 번개 같은 속도로 그에게 잠재해 있는 이야기 끈을 풀어내고 있다. 나는 미미한 것들로부터 무한한 상상력과 질문들로 펼쳐지는 그 비현실감, 작가의 내부가 발현된 그것들을 ‘Deja Vu’ 현상이라 명명하고 싶다.

그는 ‘엄마의 뱃속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다. 자기 인식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심연 속에 가라앉아 있는 소리를 듣는 것과 같은 뱃속경험의 기억이 사진을 통해 떠오른 것은 아닐까. 그가 한국이라는 알지 못하던 미지에서 삶을 일궈내는 것을 통하여 정신적으로 인식하고 몸으로 호흡한 실재계의 경험들을 지금 만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 삶이 결코 낯설지 않다 한다. 언젠가 와 본 듯하고, 익숙하며, 왠지 포근하고 따뜻하여, 그를 ‘매혹시킨다.’ 그는 “내가 이곳의 풍경과 색채에 친밀감을 느낀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고 거듭 말한다. 그 친밀감이 어디로 부터 오는지 그는 모르지만, 카메라와 함께 본능의 지시에 의해 이루어지는 그의 창조활동은 구체적인 자기성찰과 명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무형적인 것들이 그에게 ‘미지로의 문을 열어주었다’는 고백은 그의 작업 배경을 엿볼 수 있게 한다.

타국인인 그가 한국을 경험하며 이국적이라고 느낌과 동시에 다정하다고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프랑스에서 경험하지 못한 것들로부터 받은 상반된 느낌들이 친밀감, 진실함, 순수함과 같이 시적이고 감성적인 것이어서 결코 식상하지 않았다는 그의 말, 어디를 보아도 말쑥하지 않아 자신을 혼란으로 떨어트리건만 오히려 편안하다고 생각된다는 이 경험들. 그가 한국생활을 해 보지 않고는 결코 만날 수 없었던 이 ‘Deja vu’적 경험들은 프랑스에서는 찾아 볼 수 없었던 풍경들이었을 것이다.


트렁크갤러리 대표 박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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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철 개인전` Paradise In My Mind 3`   
    

            Gallery On(02-733-8295)
            2011-12-03 ~ 2011-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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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의 편리함을 위해 숲을 없애고 자동차의 배기가스와 공장에서 나오는 연기, 각종 매연들과 같은 이산화탄소의 증가로 지구온난화가 급속도로 빨라지는 현재,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우리의 후손들에게 남겨져야 할 지구는 점점 황폐해져 가고 있다.
이번 전시는 여러 기상이변과 환경재앙으로 어수선한 시기에, 자연의 소중함과 고향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전시이다. 우리 주변에서 보여지는 자연풍경의 소소함의 가치에 집중하여 작가의 어린 시절 창호 문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 기억을 표현한 전시로 아름답고 순수했던 시각을 마주할 수 있다. 창호 문에 어리는 은은한 자연 빛의 느낌, 그 빛 너머로 보이는 문밖의 풍경은 유년의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창호 문을 통해 기억된 잔잔하고 아름다운 영상이 하루하루 바쁘고 정신 없는 일상에 한 자락의 여유와 넉넉함을 준다. 작가는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지는 삶의 터전을 담백하게 기록하고자 하였고,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져가는, 쉽게 간과하거나 혹 다시는 보지 못할 풍경들을 작가만의 사진과 설치를 통해 이번 전시에서 제시하고자 한다.

이 희 복(갤러리 온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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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데만트 (Thomas Demand) 개인전    
    

            피케이엠갤러리(02-515-9496)
            2011-11-23 ~ 2012-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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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M TRINITY GALLERY는 2011년 11월 24일부터 2012년 1월 10일까지 세계적 명성의 현대미술가 토마스 데만트 작품전을 개최한다. 이번 작품전은 작가의 첫번째 국내 개인전으로 이번 전시에는 2009년 이후 제작된 작가의 대형 사진작품 10여점이 선보인다.

독일 뒤셀도르프 아카데미에서 원래 조각을 전공한 토마스 데만트(1964- ) 는 실재와 허구에 대한 탐구의 언어로서 사진작품을 발표하며 커다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90년대 이후 뒤셀도르프 아카데미 출신의 사진작가들이 세계 미술시장에서 큰 각광을 받으며 토마스 데만트는 세계적 작가 대열에 합류하였다. 그 후 까르띠에 파운데이션 개인전 (2000), 뉴욕 MoMA 개인전 (2005)을 비롯,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 (2006), 프라다 파운데이션 (2007), 베를린 신 국립미술관 (2009) 등 다수의 세계 정상급 미술관에서 이미 이른 나이에 초대 개인전을 가졌으며, 뉴욕 PS1 (1998), 베니스 비에날레 (2003, 2010), 파리 퐁피두 센터 (2007), 광주 비에날레 (2008), LA 현대미술관 (2009),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2010) 등지에서 주요 그룹전에 참여하였다.

토마스 데만트는 현대 미술의 범주화된 장르의 틀을 넘어 실재와 허구에 대한 개념을 자신의 특유의 세련된 언어로 드러내는 작가로서, 사진, 영상, 설치 등의 서로 다른 장르들이 작가의 치밀하고도 정교한 작업을 통해 각 장르의 속성은 그대로 드러난 채 해체되거나 통합되는 고유성을 보인다.

토마스 데만트의 작업은 역사적인 사건이나 개인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어떤 공간적인 장면을 종이라는 내구성 없는 재료를 사용하여 실제크기의 모형으로 재현하고 사진을 찍은 후 그 모형을 파기하는 과정을 통해 완성된다. 작가에 의해 재현된 장면 속의 공간은 사람 또는 텍스트가 부재하며 동일한 질감의 사물들로 이루어진 까닭에 무엇인가 사라진듯한 서늘하고 낯선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리고 작가가 모형을 만들어 촬영하고 그 모형을 부수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현실은 조작되고 재구성된다. 즉 작가에게 있어서 가시적으로 세상에 남는 것은 사진작품이지만 그 이전의 모형 제작 행위, 촬영 이후의 모형 파괴 행위의 과정 모두가 작업 내용에 포괄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작가는 사진의 전통적 특성인 ‘현실의 충실한 재현’을 전복하고, 나아가 사진의 교묘한 조작과 허구성을 예리하게 폭로한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개념적 접근 방식은 동세대 젊은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재현의 문제를 다룸에 있어 가상과 현실, 평면과 입체, 공간과 시간, 진실과 거짓의 문제 등을 다각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토마스 데만트의 작품들은 현대미술의 개념적 다양성과 작업의 명료함이 작품 내에서 성취되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011.11.28 18:01:49 / Good : 224 +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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