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당하거나 인구에 회자되는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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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bel

  • 작성시각: 2011.05.09 14:2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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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安肖像 Portraying Anxiety

오형근展 / OHHEINKUHN / 吳亨根 / photography   2011_0504 ▶ 2011_0531 / 일요일 휴관


오형근_Portraying Anxiety #11_C 프린트_82×110cm
  초대일시 / 2011_0504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요일 휴관   트렁크갤러리 TRUNK GALLERY 서울 종로구 소격동 128-3번지 Tel. +82.2.3210.1233 www.trunkgallery.com

  소년과 아버지 ● 1991년, 나는 아직도 뉴 올리언스(New Orleans)에서 마주 쳤던 한 소년의 시선을 잊지 못한다. 단순히 슬픈 눈매였다고 하기에는 알 수 없는 애처러움이 서려 있었는데, 한동안 그의 시선에 마주친 나는 엉뚱하게도 그의 아버지를 떠올렸었다. 그리고 더욱더 이상한 것은 소년이 슬픈 눈을 가지게 된 이유가 그의 아버지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그 짧은 순간에도 많은 생각을 하며 그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는데, 소년은 나에게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2년 후, 한 게이 화가가 유난히 이 소년의 사진에 관심을 보여서 'TV Party' 라는 그의 그림과 교환 하였다. 그런데 당시 그의 화실에서 프리다 칼로(Frida Kahlo)의 화집을 넘겨 보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칼로의 그림 중에 너무도 유사한 눈매를 가진 초상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아직도 왜 내가 그 소년의 눈매에서 유난히 그의 아버지를 느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여전히 그 슬픔에는 아버지가 직접적인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형근_Portraying Anxiety #08_C 프린트_81×209cm
오형근_Portraying Anxiety #3/4_C 프린트_95×130cm
  타인의 불안태생적으로 나는 타인의 불안을 바라보는데 익숙하다. 과거의 풍경들이 솟아 올라 하나, 둘 섬을 만든다. (최 영미 시인) ● 나는 사람의 얼굴이 항상 아주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고 여겨 왔다. 그래서 초상을 만들면 마치 항해 지도를 보듯이 얼굴이라는 풍경 속에 담긴 작은 섬들을 찾아내곤 한다. 물론 뉴 올리언즈에서 만난 소년처럼 '아버지'라는 아주 막연한 상상력이 들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선명하게 그의 전력이나 사연이 얼굴에 각인 되어 있다고 느낀다. ● Portraying Anxiety 시리즈는 지난 10년 동안 아줌마와 소녀 그리고 여고생과 아저씨 등 수많은 인물들을 접하면서 그들의 인상 위에 서려있는 불안감들을 초상화 한 작업이다. 영혼을 잠식 해 갈만큼 거대한 불안은 아니지만, 마치 나른한 봄날에 겪는 미열처럼, 하루 종일 성가시고 신경 쓰이는 일상적인 불안감을 담아 내려고 했다. 하지만 이런 불안감들은 대부분 내 안에서 비롯됐기에 막연하고 모호할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중년 아저씨의 번뜩거리는 가죽 잠바가, 혹은 화장 짙은 소녀의 구겨진 바지가 나를 불안하게 한다. 아니 소녀와 동행했던 말 많고 성가신 삼촌이 떠오르며 내가 상상했던 그들의 구겨진 관계가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내게 있어서 불안은 냄새와 같아, 상상을 하면 끊임없이 퍼져 나가는 것 같다.  
오형근_Portraying Anxiety #49/50_C 프린트_82×110cm
오형근_Portraying Anxiety #12_C 프린트_82×151cm
  불안과 그 은유 Anxiety and Its Metaphor ● 언제부턴가 사진을 읽기 시작했다. 물론 이전부터 사진이라는 이미지 안에 담긴 기표와 기의, 그리고 기호들의 의미를 염두에 두긴 했었지만, 그것보다는 아주 개인적으로 사진을 읽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이러한 변화는 나의 사진 만들기에도 영향을 끼쳐서 더 이상 감상자와 의미를 공유하지 않는 경향이 생겨났다. 때문에 여기서 불안은 은유되지 않는다. 만약에 인물이 불안을 내재하고 있다면 나는 그것을 담아내고 초상으로 전달 할 뿐이다. 초상에서 추상으로… ■ 트렁크갤러리  
오형근_Ye-jin Si, Age 17, 17. 07. 2007_C 프린트_92×116cm
오형근_가죽 잠바를 입은 아저씨, 2008. 01. 25_C 프린트_125×96cm
  Boy and Fa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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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ill survive



난 살아남을거야展   2011_0505 ▶ 2011_0529 / 월요일 휴관

 






이진아_ Formless Monster 2_캔버스에 유채_162×130cm_2010

 






초대일시 / 2011_0504_수요일_06:00pm 참여작가 김규리_김대환_김인수_김혜란_김효숙_노경민_박은정_송아리 신지현_엄민희_이국현_이주리_이진아_전에스더_최다찰 주관/주최_서울시_서울문화재단_서교예술실험센터 관람시간 / 11:00am~08:00pm / 월요일 휴관 서울문화재단 서울시창작공간 서교예술실험센터 SEOUL ART SPACE SEOGYO 서울 마포구 서교동 369-8번지 Tel. +82.2.333.0246 cafe.naver.com/seoulartspace www.seoulartspace.or.kr




서울시창작공간 서교예술실험센터가 2011년 처음 개최하는 『I will survive』전은 한국현대미술의 신진작가들을 소개하는 전시다. 30세 이하 총 15명의 작가가 참여하는 이번 전시는 한국 현대 미술 현장의 평론가, 전문지 편집장, 큐레이터, 그리고 센터가 엄정하게 선정한 작가들로 최종 구성되었다. ● 본 전시의 타이틀인 『I will survive』는 대학 졸업 후 작가의 길을 선택하고 자신만의 작업 활동을 시작하려는 신진 (혹은 젊은) 작가들의 의지를 반영하는 의미에서 이름 붙였다. 살아남다 'survive'는 단순하게 살아있는 그 자체의 의미보다 경쟁을 통해 극적으로 위기의 순간을 극복하고 위험한 상황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아있는 생명력을 의미한다. 이번 전시에서 'survive'는 단순하게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약육강식의 의미보다는 미술계에서 앞으로 계속 '살아있는 작가'가 될 것을 다짐하는 의미로 타이틀의 표제를 붙였다. ● 현재 국내 미술계에서 '신진' 혹은 '젊은'으로 통용되는 작가 스펙트럼은 광범위하다. 굳이 나이로 정리하자면 미대를 막 졸업한 20대 중반부터 만 45세 이하 정도가 아닐까? 나이 기준 외에도 개인전의 횟수, 뒤늦게 미술을 공부하기 시작한 작가들까지 포함한다면 신진(혹은 젊은)작가 범주에 포함되는 이들은 상당할 것이다. 혹은 처음 신진작가 그룹전에 참여하였다가 또 다른 기관에서 주최하는 젊은 작가 전시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며 신진작가의 꼬리표를 떼지 못하는 작가도 꽤 있을 것이다. 이번 『I will survive』전에는 미대는 졸업했지만 졸업전시 외에 전시 참여를 해보지 않았거나 혹은 한 번 정도의 전시 경력을 지닌 말 그대로의 신진작가들과 전시를 만들어보고자 30세 이하라는 나이제한을 두었다. 이번 참여 작가들은 미술계로 이제 진입하는 자리 잡지 못한 약한(fragile) 존재들일지 모르나, 3년 혹은 5년 후 폭풍 성장할지 누가 알까?
엄민희_ 약하고 허연 존재들_캔버스에 유채_145.5×112.1cm_2010

1. 자아로부터의 출발, 기억과 죽음 ● 테너시 윌리엄스(Tennessee Williams)의 극 「The Glass Menagerie 유리동물원」의 여주인공 로라(Laura)는 약한 (fragile) 성격의 소유자이다. 그녀는 신체적인 결함이 있을 뿐 아니라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괴리되어 자신만의 환상에 갇혀 산다. 로라 인생의 메타포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유리로 만들어진 동물 조각상들이다. "아, 조심하세요. 숨만 쉬어도 부서져요." 라고 로라가 얘기하며 다른 이에게 그것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마치 로라의 인생처럼 떨어지면 깨질 듯 약하고 불안하다. 로라의 분신과 다름없는 유리동물원의 조각상들은 엄민희의 「약하고 허연 존재들」 작업에 등장하는 자신의 어릴 적 약하고 허연 모습들을 연상하게 한다. 엄민희 작품은 시종일관 현실이 아닌 과거에 사로잡혀있다. 그녀의 작업은 주로 어린 시절 학예회 때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나 간호사, 추장과 같은 복장을 한 모습이 찍힌 과거의 사실적인 그 순간 자체에 몰두한다. 신지현은 과거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부터 출발하지만, 엄민희의 작품과 달리 평범한 일상적 상황 혹은 꿈같은 환상의 모습들을 담아낸다. 반면 이진아의 「Formless Monster」 시리즈에서 과거의 '기억'은 또 다른 모습으로 희화된다. 작품은 기억 속 친숙하고 익숙한 존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부재함으로 인해 낯설게 느껴지는 공포, 두려움의 감정으로 되돌아오는 언캐니한 상황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김혜란의 작업에서는 두려움의 대상으로서 죽음을 주목한다.
이국현_ Package-2213_캔버스에 유채_91×116.7cm_2011
송아리_지각장_레진_120×60×50cm_2009

2. 무의식의 표출, 욕망 그리고 섹슈얼리티 ● 노경민은 포르노그래피에 등장하는 오르가즘 상태의 여성 성행위 장면을 캔버스 화면 가득 메운다. 「時」 연작 시리즈에서 작가는 남성의 성적 노예가 되어버린 여성의 순간적인 이미지를 직설적으로 재현함으로 인해 여성에 대한 연민과 남성의 폭력적인 시각을 고발한다. 반면 이국현은 여성을 광고이미지 속 아름답고 성적인 욕망의 대상으로 포장하여 완벽한 하나의 상품이미지로 만들어버린다. 박은정은 자연 속에서 살덩이가 엉키며 하나의 덩어리 그 자체가 되는 교미의 모습을 그려 서로를 침투하고 스며드는 감각과 에너지에 집중하였다. 송아리의 신체조각 「지각장」은 몸 안에 있는 지각과 바깥에 있는 세계가 만나는 접합 장소로서의 인체를 보여준다.
김효숙_ 실마리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194×260cm_2010
최다찰_ 2010년 10월 17일 대연우 암마을 가는 길_복합매체_가변설치_2010
김대환_ ART Ruler_아크릴 패널, 프린트, 볼트, 너트_100×76×15cm_2010

3. 사회와 자연 ● 작가가 살고 있는 현대 도시 풍경에 집중한 이주리는 「공사장-심리적 풍경」에서 건물이 완성되지 못한 미완의 공간에 관한 작가의 심리적인 무의식을 펼쳤다. 김효숙 역시 「실마리」에서 도시와 신축 공사현장에서 볼 수 있는 어지러운 자재들과 건축 기계들의 모습을 현대인의 삶을 투영하였다. 최다찰의 작업은 특정 사회적인 이슈와 상황에 자신을 비추어 평면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단편적인 이미지를 거부하고 인스톨레이션을 통한 다각적인 접근방식을 택한다. 작가는 재개발 지역관련 신문기사 이미지를 차용하여 오브제로 「2010년 10월 17일 대연우 암마을 가는 길」을 재구성하였다. 김규리는 회화와 애니메이션, 그리고 비디오라는 세 개의 매체에 주목하여 애니메이션 연작「Restriction」을 통해 화석화된 사각의 프레임 캔버스 안에서 탈출하려는 인물 '제재'를 드러낸다. 획일적이고 계량화된 현 사회를 아크릴, A4용지, 자 등의 일반 사무용품 도구를 이용한 김대환은 그의 작업 「Art Ruler」를 통해 풀어낸다. 전에스더는 거짓과 허구의 모습으로 살아가 어떠한 감정과 사상도 드러나지 않는 현대인에게 얼굴은 쓸모없는 대가리에 불과함을 「無頭自畵像」 연작을 통해 한 폭의 동양화를 보듯 섬세한 필선으로 묘사한다. 김인수는 나무 조각형상을 통해 자연의 한 부분을 규격화하여 현대인들의 소통의 단절을 드러낸다. ● 이번 『I will survive』전 15명의 참여 작가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출발해 때론 과거의 기억과 대면하고 꿈틀 대는 내면의 욕망과 마주하여 끊임없이 보는 이로 하여금 충격과 감동을 전달한다. 윌리엄스의 극 「유리동물원」의 주인공 로라가 소중히 여기던 유리동물들은 극의 마지막에 모두 산산조각난다. 그것은 로라가 현실과 마주하게 되는 또 다른 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번 전시 참여 작가들은 졸업을 지나 이제 현실과 맞닥뜨려지는 순간, 자신 안에 갇혀있거나 닫혔던 사고들이 이번 전시를 통해 깨어지고 살아남을 수 있는 새로운 시작의 전시가 된다면 그 자체로 의미 있지 않을까? ■ 조예인




Future lyricism 미래서정 未來抒情



 






김학제展 / KIMHAKJ / 金學濟 / sculpture.photography   2011_0506 ▶ 2011_0603


 






김학제_Future lyricism 2011es1_스테인리스 스틸_220×100×95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김학제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0506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갤러리 비케이 Gallery BK 서울 용산구 한남동 657-155 1층 Tel. +82.2.790.7079 gallerybk.co.kr




과거와 미래에서 건너온 사이보그 전사들 ●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로댕의 청동시대, 앵그르의 샘과 오달리스크, 피카소가 아들 클로드의 장난감 자동차와 주전자 손잡이 그리고 항아리 등 오브제를 조합해 만든 새끼를 안고 있는 원숭이, 인도 힌두교의 춤추는 시바, 제주도의 돌하르방,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로봇 안드로이드. ● 이것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 혹은 이것들이 한자리에 있게 만든 근거는 무엇인가. 필연인가, 아니면 우연인가. 이것들을 분류 내지는 항목으로 부를 수가 있을까. 그렇다면 어떤 분류며 항목인가. 미셀 푸코는 상식으로 통하는 분류와 항목이 사실은 임의적이며 이데올로기의 결과라고 했다. 한 틀이 다른 틀을 억압하고 살아남은 승리의 전리품이라고 했다. 피에르 부르디외의 논법으로 말하자면 상징투쟁의 소산이며, 앙드레 말로 식으론 상상의 미술관이다. 김학제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미의 규준이며 준칙들이다.
김학제_Future lyricism 2011es2_합성수지, 우레탄, 페인팅_220×100×95cm_2011

그렇다면 작가의 머릿속에서 지금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가. 미의 규준이며 준칙들이 어떻게 호출되고 세팅되는가. 이 항목이며 분류 속엔 서양미술사와 동양미술사가 들어있고, 선사시대와 고전주의, 현대와 미래를 아우르는 시간의 단층이 포함돼 있다. 그리고 미술사와 종교와 민속이 탑재돼 있다. 얼핏 보면 이것들을 연결하고 연속시켜주는 개연성이 오리무중이지만, 뜯어보면 그 개연성이 보인다. 혼성이고 잡종이며, 하이브리드고 퓨전이며, 크로스오버다. 요샛말로 치자면 통섭이고 깔때기의 논리다. 온갖 이질적인 형식적이고 의미론적인 지점들이 합류되는 장소이며, 상식이 탈맥락되고 재맥락되는 장소이며, 세계가 재편되고 재구조화되는 장소이다. ● 예술가의 머릿속은 세계가 수리되고 정비되는 상상력의 공장이다. 언어는 그 자체 자족적인 구조와 생리를 가지고 있는 닫힌 체계라고 했다. 언어가 닫힌 체계라고 하는 것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도 발생시키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사전은 다만 죽은 언어들의 집에 지나지가 않는다. 그 의미가 생성되고 픽스되는 것은 말의 용법과 글의 용법 속에서이다. 그 언어가 실제로 사용되는 상황과 전제, 문맥과 맥락과의 관계 속에서이다. 그 상황과 전제, 문맥과 맥락의 네트워크인 작가의 머릿속에서이며, 구조적으로 머리에 흡사한 생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 하이브리드스페이스며 월드와이드웹이며 인터넷이다. ● 인터넷은 흡사 머리의 유비적 표현을 보는 것 같다. 인터넷은 세계를 작가의 의식의 눈앞에 불러모아준다. 정보의 바다는 의식의 바다에 흡사하다. 그것은 바다답게 무한정 열려있다. 무수한 길들이 있지만, 그 길들은 언제든 지워질 수가 있고, 새로이 생성될 수가 있다. 무수한 관계들이 있지만, 그 관계들은 언제든 고쳐 잡을 수가 있다. 결정적인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 의미가 결정되는 것은 의식 속에서이다. 그리고 의식과 더불어 픽스된 의미 또한 언제든 지워질 수가 있고, 새로이 생성될 수가 있고, 고쳐질 수가 있다. 바다가 그런 것처럼.
김학제_Future lyricism 2011s1_스테인리스 스틸_68×47×30cm_2011

김학제는 자신의 의식이 가닿는 이질적인 지점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다. 그리고 그것들이 원래 속해져 있던 맥락으로부터 일탈시켜 새로운 범주체계로 재편한다. 얼핏 임의적이고 자의적으로 보이는 그 재편은 그러나 사실은 통섭과 깔때기로 나타난 동시대 이미지의 존재방식을, 그리고 의식이 구조화되는 방식을 증언하기 위해서 호출된 것이다. 인터넷 환경 이후에 탄력을 받고 있는 것이지만, 동시대 창작주체의 생리는 이미지의 생산보다는 소비에 경도돼 있다. 전에 없던 이미지를 생산하기보다는 기왕의 이미지를 사용하는 독특한 방식이 창작에 등치되는 것이다. 서핑과 맵핑 곧 정보의 바다며 이미지의 바다를 헤엄치다가 붙잡힌 이미지를 질료 삼아 자기 식의 인식 지도를 그리는 행위로 나타난 동시대 이미지의 작용방식에 대한 공감이 김학제의 작업의 저변에 면면히 흐른다. ● 그리고 그 흐름의 핵심이 차용이다. 더 이상 오리지널리티는 없다. 다만 시뮬라크라 곧 실제로는 없는데 있는 양 하는 것들, 은연중에 혹은 공공연하게 실제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들, 두르러져 보이거나 미소한 차이를 만들어내면서 그 의미가 끊임없이 미끄러지거나 그 정체를 끝내 붙잡을 수 없는 것들, 재현적인 척 하면서 사실은 재현을 배반하는 것들, 차이의 놀이로 정체성의 논리에, 유목의 놀이로 정박의 논리에 반하는 것들이 있을 뿐이다. 그 놀이의 생리는 기생적이다. 즉 차용이 원본에 기생하는 이유는 다만 원본을 숙주로서 취할 뿐, 궁극적으론 자신의 자족적인 존재를 획득하기 위한 것이며, 그 자체가 새로운 오리지널리티로 등극하기 위한 것이다.
김학제_Future lyricism 2011s2_스테인리스 스틸_68×37×17cm_2011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김학제는 서양미술사를 차용하고, 종교적 아이콘을 차용하고, 민속적 오브제를 차용하고, 대중문화의 이미지를 차용한다. 그렇게 차용된 이미지를 토대로 점토소성 과정을 거쳐 정교한 형상으로 빚어낸다. 그리고 그 형상을 이용해 주형을 만든 후, 최종적으로 스테인리스스틸 소재의 번쩍번쩍 빛나는 금속성 질감이 나는 형상을 떠낸다. 이 일련의 과정을 거쳐서 원본은 판이한 사본으로 재생된다. 컴퓨터에서 뜯어낸 부속을 비롯해 그 출처도 아리송한 온갖 기계 부품들을 조합해 몸체를 대신한다. 그 몸체는 비록 한 덩어리로 떠내진 탓에 실제로는 그럴 일이 없겠지만, 여차하면 붕하는 기계음을 내며 움직일 것만 같다. 이로써 원본의 캐릭터들 모두가 일종의 사이보그들로 재생된다. ● 사이보그는 미래에서 온 전사들이다. 그래서 마치 미래(아직 오지도 않은 시대, 그래서 없는 시대)에서 온 전사들이 역사시대에 개입하면서 역사시대는 졸지에 낯설어지고, 물적 토대에 바탕을 둔 감각적 현실이 생경해진다. 이를테면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는 다산과 풍요를 상징한다. 유난히 가슴과 엉덩이가 강조된 것은 바로 다산과 풍요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며, 생명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이에 비해 작가의 사이보그 비너스는 오히려 모계사회의 권력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이고, 따라서 미술사를 재고하려는 페미니즘의 기획으로 읽는다면 지나친 해석일까(기계 젖에선 젖 대신 윤활유가 흘러내릴 것만 같다). 앵그르의 샘을 패러디한 사이보그 여 전사 역시 유혹하면서 처벌하는 팜므파탈의 원형 내지는 전형 내지는 전범으로 읽을 수가 있고, 그 경우가 다르겠지만 다른 경우들 역시 원본과 다르게 읽힐 수 있는 여지가 많고, 나아가 그 개연성은 아예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열려져 있기조차 하다(이로써 일종의 하이퍼텍스트가 실현되고 있는 것). 가상이 현실에 개입하면서 현실이 붕 떠버린다고나 할까. 이처럼 역사시대에 출현한 사이보그 전사들로 인해 불현듯 현실이 낯설어지고, 가상과 현실이 전복되고, 가상이 현실에 비해 오히려 더 감각적인 현실감을 얻는다.
김학제_Future lyricism 2011s4_스테인리스 스틸_66×27×20cm_2011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 이야기는 신인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현생인류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이보그는 미래에서 온 전사들이 아니라 현생인류들이다. 다만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 모두는 사이보그들이다. 마샬 맥루한은 미디어가 인체기관이 확장되고 연장된 것으로 본다. 나는 클릭 한번으로 원고를 보낼 수가 있고, 전화 한통으로 세상 끝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소식을 전해들을 수가 있고, 골방에 틀어박힌 채 천리 밖을 볼 수가 있다. 익명 뒤에 숨어 아무런 개념 없이 아무개를 해코지할 수도 있고, 관음을 위해 세상의 모든 여자들과 남자들을 호출할 수도 있다(당연히 당사자는 호출된 줄도 모른 채). 이쯤 되면 현생인류는 이미 이전의 인류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삶을 산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는 이미 현대(혹은 현재)가 아닌 미래를 살고 있는 것이다. 미래를 미리 살고 있는 것이므로 그에게 미래는 없다. ● 미래를 테마로 한 소설이나 영화들이 거의 예외 없이 암울한 색채로 그려지는 것은 다만 인간의 무분별한 욕망이나 브레이크가 고장 난 문명의 드라이브 때문만은 아니다. 현생인류는 너무 오래 살았다. 세상 끝을 다 봐버린 만큼 그의 호기심은 시들해졌고, 미래를 앞당겨 산 만큼 그의 육신은 노후해졌다. 피곤하고 또 피곤하다. 어쩌면 몸과 의식을 분리시킬 수 있는 것에서부터 인간의 비극은 예비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 의식의 눈으로 세상 끝을 봤고, 그 의식의 귀로 세상 끝을 들었다. 미디어는 아마도 세상을 광속으로 변하게 할 것이고, 미디어에 의해 개발된 인간의 의식은 광속보다 빠르게 세상을 먼저 보고 들을 것이다. 빠른 것은 정지된 것처럼 보인다. 혹, 그렇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지도 모를 일이다.
김학제_Future lyricism 2009p4_디지털 프린트_100×162cm_2009
김학제_Future lyricism 2009p2_디지털 프린트_100×145cm_2009

돌아가는 것은 다만 세상의 껍데기일 뿐, 정작 그 속은 세상이 핑핑 돌아가는 줄도 모른 채 정박보다 더 깊은 잠을 자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여하튼 분명한 것은 미래의 비전이 대개는 어둡게 채색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김학제는 자연을 대질시킨다. 우리는 오랫동안 자연을 잊고 있었다. 우리보다 더 먼저 살았고, 인류가 한갓 전설이 된 이후에까지 더 오래 살아갈, 그리고 모더니즘 이후로만 쳐도 수백 년에 걸쳐 문명이 파괴한 것을 일순간에 복구할 자연의 존재를 망각하고 있었다. 우리는 진즉에 그 끈질긴 생명력에 마땅한 경외감을 거둬들였고, 그 무한한 스케일에 마땅한 두려움을 우습게 여겼다. 하지만 한때 자연에서 신을 발견한 파스칼 같은 사람이 있던, 그런 시절도 있었다. 그 무한한 스케일이 곧 신이며 숭고다. 자연 속에 숨은 신이 숭고다. ● 작가는 그 숭고의 흔적을 찾아서 세상 끝으로 간다. 이번에는 다만 의식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갔다. 가서, 수천수만 장의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편집을 하는데, 편집을 하는 이유는 풍경이 더 그럴 듯하게 보이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숭고가 더 잘 드러나 보이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 위에 조각을 이미지로 중첩시킨다. 처음엔 디오라마 식으로, 이를테면 배경그림 앞에 조각을 포치하는 식을 거쳐, 나중에는 아예 조각을 이미지로 만들어 배경그림에 합성한다. 그래서 그렇게 합성된 사진 속에 무한한 자연과 사이보그로 진화한(?) 인간이 담겨진다. 번쩍번쩍 빛나는 금속성의 옷을 입은 그는 무심한 자연에 난데없이 끼어든 이방인처럼 보이고, 숭고한 자연에 내팽겨진 고철더미처럼 보인다. ● 작가는 이 일련의 작업들을 미래서정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무슨 종말에 대한 알레고리 같다. 적어도 현재 상황으로 유추해보건대 사이보그는 인류가 갈(진화할) 수 있는 끝이다. 인간은 이처럼 그 끝에서 기껏해야 금속덩어리나 고철더미에 지나지가 않는데, 자연은 너무나 아름답고, 숭고하고, 무한하고, 무심하다. 인류 마지막 날(지구가 끝장나는 날 같은 날은 없다. 다만 인류가 끝장나는 날이 있을 뿐), 금세 자기를 복원하고 복구한 자연을 쳐다보는 사이보그 인간이 슬프다. 아름답고 숭고한 자연과 대비되면서 감미롭게 슬프다. ■ 김만석






말과 글: 자전거 타는 사람-그림으로 그림을 그리다


 


 


유선태展 / YOOSUNTAI / 柳善太 / painting   2011_0503 ▶ 2011_0529


 


 


유선태_말과 글-봄이 오는 소리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81.8×227.3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90611c | 유선태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0503_화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가나아트 스페이스 GANAART SPACE 서울 종로구 관훈동 119번지 전관 Tel. +82.2.734.1333 gana.insaartcenter.com



사유의 시간과 초현실적인 공간의 이미지를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구현해 온 유선태 작가의 2011년 개인전『말과 글 - 자전거 타는 사람: 그림으로 그림을 그리다』 ● 가나아트는 특유의 초현실적인 명상의 이미지를 통해 사유의 풍경을 표현해 온 유선태의 개인전『말과 글 – 자전거 타는 사람: 그림으로 그림을 그리다』를 개최한다. 파리에서 오랜 유학생활을 보내면서도 동양화에 심취해 있던 유선태(1957-)는 장르와 시공간을 넘어 작가 특유의 감성을 녹여낸 초현실적 이미지로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았다. 사과, 책, 액자, 사다리, 거울 등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소재를 재해석하여 회화와 입체의 차원을 왕복하고 서로의 접경을 탐색하는 작업들은, 초현실적인 무대적 상황 속에서 자유로운 융합을 시도한다. 이번전시에는일상속가까이있는사물의존재에대한의식을새롭게일깨우고잃어버린것들에대한향수를불러일으키는50여 점의 회화와 10여 점의 조각을 선보인다. 오브제와 풍경의 연작을 통해 일시적인 순간과 본질에 대한 작가의 조형언어를 엿볼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유선태_말과 글-아뜰리에 풍경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162.2cm_2010
유선태_말과 글-오브제의 숲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18.2×290.9cm_2010

동서양의 요소가 절충하는 '말과 글' 시리즈의 일상적인 삶과 사물을 향한 새로운 시각 ● 유선태는 캔버스 위에 '말'과 '글'이라는 단어를 그리듯이 써 내려가는 방식을 동양적이기도, 서양적이기도 한 작품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준법으로 사용한다고 설명한다. 오래된오브제혹은직접만든오브제위에쓴'말'과 '글'이라는 단어로 대상을 묘사함으로써 작가가 오랜 외국생활에서 경험한 문화의 차이, 미술의 경우 표현하는 방법과 세계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관점의 차이 등 문제의 해결점을 찾은 것이다. 그 동안의 '말과 글' 시리즈가 동양적인 정서를 가지고 서양화의 기법을 사용하는 정체성을 찾기 위한 과정이었다면, 근작은일상적인풍경, 체화된 그림 속에서 사물의 의미와 개념을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구현한 작품들이다. 이를 통해 회화와 설치, 동양과 서양, 일상과 예술의 서로 다른 질서들 사이에서, 상상의 세계를 여행하는 작가 자신의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유선태는 형식적으로인지하고스쳐가는사물과세계, 풍경의 이면, 그 너머의 직감적이고 본능적으로 어우러진 감성의 이미지를 담아내는 작품을선보이며, 보는 이에게 개별적 사유와 명상의 풍경으로 인도한다.
유선태_말과 글-풍경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18.2×290.9cm_2011
유선태_말과 글-온고이지신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2×130.3cm_2011

작가 자신이기도 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유람하는 예술이라는 숲으로의 여정 ● 예술에 대한 그의 시선은 옛 것을 배우고, 새 것을 아는데 어느 한 쪽에만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는 '온고이지신 (溫故而知新)'과 작품에 명화를 차용하여 재해석한 '예술의 숲'을 통해 드러난다. 예술을 큰 의미에서 하나의 숲으로 생각하는 작가는 파블로 피카소, 르네 마그리트, 살바도르 달리 등 서양의 명화와 강희안, 신사임당, 정선 등 동양 고전 명화의 이미지를 차용한 작품들 속에서 자전거 타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이차원의이미지세계를유람하듯자유롭게등장하는자전거타는사람은, 바퀴를 굴리지 않으면 나가지 않는 자전거로 상징되는 노동집약적 예술활동을 통해 자유롭게 시공간을 넘나들고자 하는 작가의 자아를 반영한다. 좋은 작가들이 만든 예술이라는 숲을 돌아 다니면서 느낀 것들을 재구성하고 예술로써 조화를 이루는 것, 이는 유목(遊牧)의 정신 즉 자유분방한 예술가의 상상력으로 인류의 소산인 예술이라는 큰 숲을 여행하는 작가의 심상 풍경에 대한 은유이다.
유선태_말과 글-예술의 숲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2×130.3cm_2010
유선태_말과 글-편지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162.2cm_2010

과거와 현재를 가로지르는 윤회의 과정: 그림으로 그림을 그리다 ●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소재인 사과, 포르테 기호, 이젤, 저울, 액자, 나무, 사다리 등 유선태의 작품 속 소재들은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사과의 경우, 인간이 행한 저항의 의미를 지닌 아담과 이브의 사과로 서 인간적인 정서와 감성을 이야기 하기도 하지만, 삶과 죽음의 경계를 상징하는 윌리엄 텔의 사과, 중력의 법칙을 보여준 사과 등 작품 안에서 다양한 의미를 가진 주요 소재가 되어 왔다. 이렇게 소재의다의적인상징성을차용하고추상적인배경안에서물질과비물질사이의묘한균형점을찾는작업은화면속부유하는시간과공간에예술적상상력을더하며계속되는순 환을보여준다. 또한 작가에게 중요한 영감이며 상상력의 원천이 되어온 오브제는 삶과 죽음 사이를 가로지르는 윤회의 과정을 이야기하는 상징물이다. 근작의'말과 글' 시리즈에서 오브제와 지나온 작업들이 풍경 속에서 반복되어 등장하는데, 이는 현재의 작업 속에 지나온 것들이 순화되고 재구성된 결과이다. 체화된 예술을 통한 내적 경험을 다시 오브제와 화폭에 담아내는『말과 글 - 자전거 타는 사람: 그림으로 그림을 그리다』를 통해 예술을 통한 감성의 환기를 경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가나아트




WALK


 


 


김승영展 / KIMSEUNGYOUNG / 金承永 / installation   2011_0504 ▶ 2011_0603 / 월요일 휴관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미지 속닥속닥 Vol.20090202c | 김승영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기획 / 사비나미술관 학예연구실 관람료 / 성인 2,000원 / 학생 1,000원 관람시간 / 10:00am~06:30 / 월요일 휴관 사비나미술관 Savina Museum of Contemporary Art 서울 종로구 안국동 159번지 Tel. +82.2.736.4371 www.savinamuseum.com



시공(時空)을 초월해 소통을 꿈꾸는 「기억의 단편들」김승영의 작업세계 작가 김승영 은 「소통(communication)」과 「기억(memory)」이라는 테마를 인스털레이션이나 사이트 스페시픽작업(site specific work)으로 연출해왔다. 숲에서 거두어 온 무수한 낙엽들로 전시장을 메우고 그 한가운데에 일정한 속도로 떨어지는 물방울이 연출하는 전시공간. 작가개인의 삶을 공유하거나 스쳐간 인명들이 자막으로 흘러가는 영상... ● 그의 작품은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찰라적 만남과 기다림, 망각과 기억 속에 위치한 살아있는 존재들의 의미를 생생하게 연출한다. 과거와 현재, 물질과 영혼, 인간과 자연 사이의 고정 관념화 된 경계를 허물고 時ㆍ空間의 접점과 미끄러짐 사이에서 눈과 귀와 촉각과 후각의 감응기재가 온전히 작동하여 세계와 만나게 되는 희열을 관객에게 제공한다. 그의 작품에 초대받은 관객은 물질과 물질의 찰라적 만남과 기다림, 미끄러짐 사이의 여백과 여운에서 존재들의 내밀하고 근원적 가치들과 대화하게 된다. 그것은 단순히 어떻게 세계를 바라볼 것인가를 제시하는 미술의 지표를 넘어 어떻게 하나의 사물이 일상의 문맥에서 벗어나 art의 차원으로 진입하는 지, 또 그 art가 우리의 삶에 있어 어떠한 기능과 가치로 작동하는 지를 자명하게 드러내 준다. ● 일상의 상품이나 사물을 미술담론(discourse)의 장(field)에 들여와 본래의 문맥을 비틀거나 잘라내어, 현대미술의 계보를 형성해 온 것은 다다이스트와 쉬르리얼리스트, 팝아티스트 들 사이에서 흔하게 채용되어 온 기법이다. 그들의 작업에 관류되고 있는 수법은 일상의 관용화 된 산물들-당대의 신지식과 신기술에 의한 산업사회의 레디메이드-을 담론의 미디어로 차용하여 죠크나 냉소적 패러디를 부가하는 지극히 인위적인 충격효과를 발신하는데 목표를 맞추고 있다. 그것은 서구의 이성 중심적 가치관에 기초한 미술담론의 장에서 형성된 진보주의 미술사관의 성과들이었다. ● 그러나 김 승영 의 일상으로부터의 변용과 새로운 차원의 연출효과는 그것들과 부분적으로는 세계를 공유하면서도 근원적으로는 지평을 달리한다. 그의 작업은 소비 산업자본주의 산물을 차용하더라도 그 산업사회의 일상적 표피나 관용구만을 빌려오는 것이 아니다. 그의 작업에서 차용된 일상은 도시생활에서의 일상을 빌려오기도 하지만, 일상에서 일탈하고자 찾아 간 고즈넉한 산사에서나 문득 발견하게 되는 생명의 비의(秘意)와 문화적 자취들을 불러들인다. ● 바위틈새에서 자라나고 있는 이름 모를 초목들이나 풀벌레들의 존재에서 발견하는 신선한 생명의 존엄성과 존재의 불가사의, 유적들의 잔허(殘墟)가 환기 시켜주는 인간 삶의 자취나 문화적 기억들의 무게와 의미들을 소생시켜 주는 것이다. 풀잎에 맺힌 이슬의 명징함과 처마 끝 풍경을 스치는 바람소리를 들려준다. 거기에는 도시의 바쁜 일상과 기계소음 속에 잊혀 지고 소모되고 희미해져 가는 우리의 지각기재들- 우리의 눈과, 귀와 촉각과 후각을 다시 건강하게 소생시켜주는 마술이 펼쳐지고 있다. 그것은 시각적 진실이나 미술이란 존재의 물질적 규명에만 몰두하던 근대미술담론이나, 온전한 감각기재의 균형을 되살려줄 것으로 기대했던 마샬ㆍ맥루언 식의 전자기술시대에 안이하게 편승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 김승영 의 작품세계에는 문명과 자연, 이성과 감성, 이지와 지각세계가 분별되기 이전의 근원적인 존재의 이법과 지혜에 눈뜨게 하는 현자의 메타포가 빛나고 있다. ■ 김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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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 Study

삼성미술관 플라토 개관展   2011_0505 ▶ 2011_0710 / 월요일 휴관


김도균_w.pl-41_C 프린트, 플렉시 글라스에 마운트, 우드프레임_78×700cm_2011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구동회_김도균_김무준_김민애_김인숙_노재운_김수자 박준범_안규철_이불_장성은_정소영_정재호_Sasa[44] 작가와의 만남 1차 / 2011_0514_토요일_02:00pm / 김인숙_Sasa[44] 2차 / 2011_0528_토요일_02:00pm / 안규철_장성은 3차 / 2011_0618_토요일_02:00pm / 노재운_정소영 10-minute talks 인근 직장인을 위한 핵심 전시설명 일시 / 매주 수요일 12:40pm 전시설명 평일 14:00, 16:00 / 토,일,공휴일 11:00, 14:00, 16:00 관람료 일반 3,000원(단체 2,000원) 초중고생 2,000원(단체 1,000원) ※ 20인 이상 단체 관람료 적용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삼성미술관 플라토 PLATEAU 서울 중구 태평로2가 1550번지 삼성생명빌딩 1층 Tel. +82.2.720.8409 www.plateau.or.kr

  1999년 개관 이후 10년 간 서울 도심에서 문화 오아시스의 역할을 했던 로댕갤러리가 'PLATEAU(플라토)'라는 이름으로 재개관한다. '플라토'는 과거의 예술적 성과들과 현재와 미래의 예술적 실험들이 한 곳에서 만나 재해석되는 퇴적층(堆積層)으로서의 의미와, 예술가와 애호가 모두가 다가서기를 원하는 예술적 고지(高地)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개관 후 첫 전시로 5월 5일(목)부터 7월 10일(일)까지 개최되는 『Space Study(스페이스 스터디)』展은 김수자, 이불, 안규철 등 우리 나라의 대표적 현대 작가들과 Sasa[44], 노재운, 구동희 등의 중진, 신진 작가들이 다양하게 참여하여 과거 로댕갤러리였던 이 공간의 역사, 장소성, 의미에 대해 다양한 재해석을 시도한다. 관람객들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전시 공간이 설치, 조각, 사진, 비디오 등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새롭고 낯선 공간으로 재탄생 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이번 전시는 플라토의 전시공간 자체를 탐색의 대상으로 삼아 재개관의 의미를 확장할 뿐만 아니라, 공간에 대한 포괄적인 탐색을 통해 이미지와 스펙터클이 주도하는 현대미술의 빈 공백을 재탐사하고자 한다. 또한 끊임없이 재구성되고 있는 현실 사회에서의 공간의 재편현상을 반영하여 동시대의 삶의 조건을 되돌아 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장성은_플라토 One_라이트젯 프린트_93×140cm_2011
  플라토(PLATEAU) 의미 ● 1999년 오귀스트 로댕의 「지옥의 문」과 「깔레의 시민」을 상설 전시하면서 '로댕갤러리'란 명칭으로 출범한 서울 태평로의 전시공간이 '플라토'란 이름으로 새롭게 재개관한다. '堆積層' 혹은 '高原'을 의미하는 #039;플라토(plateau)'는 지질학에서 차용된 용어이지만, 전시 공간의 새로운 이름이 됨으로써 그 의미를 확장해 나간다. '퇴적층'의 의미란 질 들뢰즈와 가타리의 지적처럼 과거의 결과물이 쌓인 고정된 곳이 아니라 끊임없이 재탐사되어야 할 곳으로, 시작이나 끝에 있지 않은 중간지점으로서 늘 스스로 진동하는 장소를 말한다. 즉 이제까지 쌓아 온 거장들의 성과는 물론이고 앞으로도 우리 미술계가 축적해 갈 예술적 성과물이 늘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되고 실험되는 장소가 될 것이다. 또한 '高原'을 의미하는 '플라토'는 아티스트들이 한 번쯤 오르고 싶은 高地로서의 전시 장소로, 아티스트들만이 아니라 미술을 사랑하는 관람객 모두가 고양된 예술적 감흥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 되고자 한다. '플라토'는 로댕 작품의 상설전시는 물론, 보다 폭넓게 국내외 현대미술의 현장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동시대 국내외 미술의 변화를 바로 이 곳, 플라토'에서 경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정재호_메타모포시스_벽에 디지털 프린트 콜라쥬_780×1100cm_2011
  '공간'과 '장소'의 경계에서 ● 낯설고 추상적이며 경계가 불분명한 '공간'은 시간과 더불어 삶의 조건으로서 철학적 사유의 대상이 되어 왔다. 우리는 지식과 경험을 통해 공간을 길들이고 조직화함으로써 의미있는 '장소'로 만들어 나간다. '로댕갤러리'로 알려졌지만 한 동안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곳, 이제 '플라토'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자리 매김하려는 이곳은 과연 우리에게 익숙한 장소일까, 아니면 낯선 공간일까. 기시감과 생경함이 교차하는 플라토의 개관은 『Space Study』전을 구상하는 사유의 출발점이 되었다. 근대 철학에서 정체를 가져오는 반동적인 것, 신체와 결부된 것으로 인식 되었던 '공간'은 다양한 경험, 사건, 욕망에 의해 분열되고 있다. 실존하는 코드와 영토는 의문시되며 공간의 안과 밖 사이의 경계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내외부의 전위 현상이 주목되고 있다. 즉 내부에 유사-외부를 포괄하는 것, 친근함의 영역인 '장소'가 언캐니(*uncanny-낯설고도 친숙한)의 '공간'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 아티스트들은 새로운 코드를 창안하여, 폐쇄와 동일화를 방해하고 탈주선을 따라 자유롭게 움직이는 여행자 집단, 즉 노마드이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최초의 물리적 환경인 전시공간을 그대로 수용하기보다 새롭게 체험하고 일시적으로 소유하고 그로부터 특이성의 공간을 생산해낸다. 하나의 장소이기를 끊임없이 거부하며 낯설게 하기의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공간에 개입해 흔적을 남기고 자신들의 방법으로 공간을 길들임으로써 전시공간의 탈영토화와 재영토화의 동시성을 실천한다. 14명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의 참여작가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공간과 장소의 경계에 대해 사유한다. 김도균, 장성은, 정재호가 플라토의 공간을 세밀하게 탐색하고 측정함으로써 미지의 전시공간과 마주했을 때 느낄 법한 일종의 '공간공포'를 극복해낸다면, 김수자와 김민애, Sasa[44]는 플라토의 공간이 함의한 역사, 장소성, 기능의 의미를 재해석하고 확장한다. 안규철과 박준범, 김무준과 정소영은 플라토의 공간을 보편적인 미술관 공간으로 일반화하여 현실공간과 유리된 화이트큐브의 아우라를 해체하고, 김인숙, 구동희, 이불, 노재운은 플라토에서 촉발된 공간과 장소에 대한 관심을 근대역사, 현대사회, 증강현실의 공간 로까지 확장하는 식이다.  
김수자_연꽃: 제로지대_연등 384개, 6개 스피커, 티벳, 그레고리안, 이슬람 챈트_2011
  1. 관찰, 측정, 구성 : 공간을 길들이는 법 ● 건축물의 외관에서부터 실내까지 도시적 건축공간에 관심을 가져온 김도균은 플라토의 구석구석을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탐색했다. 그의 작업방식 중 「F」시리즈가 정면(facade)과 색(farbe)에 중점을 둔 건축의 이미지에 관한 작업이라면 벽(wall), 각(winkel), 흰색(white)을 포괄하는 「W」시리즈는 보다 직접적으로 공간을 언급하는 작업이다. 그의 사진은 전시장 구조의 전반적인 조망이 아니라 선과 면이 맞닿아 만들어 내는 공간의 가장자리를 시각화함으로써 공간의 물리적 특성을 확인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프레임에 포착된 공간은 더 이상 삼차원이 아니라 수직과 수평으로 정제된 평면이며 미학적 차원으로 전이된 감상의 대상이 된다. 장성은의 공간 지각방식은 사람의 몸을 이용한 실존적 측정행위에서 비롯된다. 몸과 의식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고 몸의 행동이 항상 지각을 전제로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볼 때, 짐짓 유머러스해 보이는 그의 행위는 미지의 영역인 공간을 파악하는데 가장 실제적인 방법이 된다. 프랑스 유학시절, 파리의 비스콘티 골목을 친구들 19명이 포개어 설 수 있는 곳으로 규정함으로써 자신에게 낯선 지형을 몸으로 탐사하기 시작한 작가는 공간의 고유한 특성을 찾아내고 측정하여 공간의 법칙을 만들어 낸다. 전시장인 플라토에서 그의 관심을 집중시킨 부분은 작품의 크기를 제한하는 출입구였고 그 크기를 다소 과장되고 우스꽝스런 방식으로 측정함으로써 전시공간에 대한 심리적 방어를 표출했다. 공간에 대한 적극적이고 반성적인 인식과 감각적 체험을 통해 공간은 장소로서 구체적인 현실성을 얻는다. 기억 속에 잠재해 있던 공간에 대한 굴절된 이미지들을 재조합하는데 관심을 가져온 정재호는 플라토의 외부 전경과 내부 이미지가 서로 충돌하는 대규모 벽화를 제시한다. '가시성'의 측면에서, 어떤 광경을 전체적으로 보는 것이 어차피 불가능하다는 현실에 작가는 주목한다. 다소 불규칙한 플라토의 공간을 분절적으로 밖에 기억할 수 없는 것은 디지털적 사유에 의해 파편화된 정보를 습득하는데 익숙해진 현대인들의 태도와도 일치한다. 꼴라주 기법에 의해 건물의 내부와 외부가 맞닿아 뒤틀린 공간은 닫힌 구조를 개방하여 분열적 다양성을 실현하며 관객은 전시관람 중에 무심코 지나온 공간을 다시 기억하고 스스로 재구성하는 체험을 하게 된다.  
김민애_대_철, 나무, 캐스터_350×300×707cm_2011
  2. 의미화된 장소의 재구성 ● 우리가 알고 있는 장소는 그 곳만이 가진 특유의 역사로 인해 의미화된 공간이다. 그러나 오래된 코드를 전유하여 새로운 도덕적, 미학적, 정치적 코드를 창안하는데 관심을 두는 작가들에게 과거 로댕갤러리가 가졌던 아우라는 새로운 창조의 출발점이 된다. 로댕의 「지옥의 문」을 위해 건축된 글래스 파빌리온은 기도하는 두 손을 형상화한 로댕의 「대성당」에서 착안한 것으로, 현대적 건축물로는 흔치 않게 유기적 원형구조가 특징이다. 김수자는 장소의 특수성과 '바늘여인'으로서 자신이 추구했던 이상향을 대면시킴으로써 제 3의 지대를 창안한다. 인간 존재의 종말을 보여 주는 「지옥의 문」은 존재의 제로지대, 즉 공간을 점유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것을 포괄하고 시간적으로 영원한 연꽃환을 만나 존재의 시원으로 환원된다. 더불어 티베트 승려들의 만다라 독송과 그레고리안 성가, 그리고 이슬람 성가가 한 공간 내에서 중첩되는 경험을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는 물론, 종교라는 이데올로기가 무의미해져서 마침내 바늘의 끝과 같이 경계가 사라진 지점을 완성한다. 반면, 철저한 자료수집가이면서 능란한 자료 활용가이기도 한 Sasa[44]는 과거 로댕갤러리의 특정 역사로부터 동시대사의 보편성과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의 특수성을 확보한다. 그에게 주어진 길이 15미터의 벽면은 통상 전시의 도입부로 활용되는 공간인데, 전시의 시작지점은 즉각적으로 로댕갤러리의 원년인 1999년을 소환한다. 작가는 금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자 세 번째 밀레니엄을 앞둔 세기 말의 해에 세계 각지에서 일어난 사건사고 107건과 4개의 신조어를 선택한다. 암호문처럼 숫자로만 기록된 이 역사는 「지옥의 문」에 호응하듯 주로 죽음에 관한 기록들이다. 또 다른 전략은 그가 선택한 짙은 하늘색의 색면에 있는데, 로댕갤러리 역사상 가장 관객이 많았던 오노 요코의 전시를 기억하며(그녀 역시 살인사건의 간접적 희생자라는 사실은 간과될 수 없다.) 그는 자신의 애장품인 오노 요코의 앨범 재킷의 컬러를 차용한 것이다. 공적 기억은 무수하게 가지치기를 한 사적 기억들에 의해 증식된다. 김민애는 세상과 대면하면서 종종 겪게 되는 소통의 불능을 예민한 관찰로 가시화해온 작가다. 사회를 구성하는 토대이면서 드러나지 않는 시스템들의 모순과 부조리는 그의 전작들에서 읽을 수 없는 텍스트나 내다볼 수 없는 창문, 들어갈 수 없는 문처럼 기능이 탈각된 공간으로 표현됐다. 플라토의 전시공간도 작가의 물음 앞에서는 예외가 아니어서 그는 특이한 조합의 전시공간을 눈여겨보며 의문부호를 덧댄다. 전시공간의 철골구조를 반복하는 수직의 구조물을 세우고 미려한 난간을 만들어 공간의 전시적 기능을 재현하면서도 견고해야할 구조물 바닥에 바퀴를 달아 그 노력의 진지함을 무력화시키는 식이다. 세 개의 전시장 사이에 존재하는 옥외의 잉여공간을 다시 주목함으로써 작가는 개방과 접근금지의 모순이 감춰진 견고한 시스템의 이면을 들춰낸다.  
박준범_들어가보지 못한 방_3채널 컬러 HD영상, 사운드_00:06:30, 00:02:07, 00:06:30_2011
  3. 화이트 큐브의 변용 ● 모더니즘의 산물인 화이트 큐브는 흰색의 벽들과 인공광원으로 구성된 가장 정제된 공간의 대명사다. 현대미술의 조형요소가 가장 돋보일 수 있도록 삶의 맥락을 단절한 채 진공상태와 같은 중립성을 유지하는 전시공간은 포스트모던의 수많은 도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시공간의 대세로 군림한다. 정소영은 2mx2mx2m 크기의 실제 화이트 큐브를 해체하는 급진적인 행위를 통해 규정된 전시공간의 의미를 확장하고자 한다. 파괴된 벽체는 바닥을 따라 펼쳐지면서 자연의 풍경과도 같은 잠재된 공간을 만들어 내는데 그것은 파괴의 끝자락이 소멸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의 시작임을 알린다. 건축가 양성구는 해체된 화이트 큐브를 단서로 우리의 삶 속에 깃든 생성과 소멸의 싸이클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건축공간을 제안한다.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도시가 생산 공간이 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로 하는 쓰레기 소각장이다. 정소영과 양성구의 작품은 수직과 수평으로 서로 조우하면서 인공과 자연의 공간이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역설한다. 안규철의 작품세계에서 '방'은 현실 밖의 공간으로, 예술가이자 지식인이지만 결코 소시민의 틀을 벗어날 수 없는 한 인간이 현실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으로 등장해 왔다. 이전의 작업을 개념적으로 발전시킨 「식물의 시간」은 현실과는 다른 시간이 지배하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미술관이라는 특수 영역에 대한 사유로서 제시되었다. 낙원(식물원)이자 작가의 꿈이 실현되는 공간이지만, 내부로 진입할 수 없이 오직 뒷모습만 보여 주는 공간은 사회와 유리되고 시간이 거의 흐르지 않는 화이트 큐브의 현실 속 위상이라 할 수 있다. 레지던시를 전전하는 젊은 작가에게 미술관처럼 크고 넓은 공간이 주어진다면? 전시공간에 한시적으로 천막교회를 만들어 우리 사회의 종교적 강박을 표현하기도 했던 박준범은 플라토를 자신의 불안정한 주거환경 속에서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정리정돈의 공간으로 변모시켰다. 생활 속에서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진 질서와 달리 그의 정돈 방식은 마치 컴퓨터의 기억장치처럼 철저한 계획에 의해 체계화된다. 기억과 경험, 소유물들을 모두 나열하여 목록화한 뒤, 저장 구조와 설계도를 만들고, 기억의 선명도나 비밀스러움의 정도에 따라 5개의 세부단계를 만들어 총 26개의 방에 배치한다. 전체 공간 대비 포장상자의 규모는 평균수명 79세를 기준으로 30대 중반의 본인의 나이만큼, 즉 총 공간의 2/5 내지 3/7을 점유하는 수준이다. 이 모든 행위는 작가 특유의 전능한 손에 의해 수행된다. 작품의 보고인 미술관과 작가의 기억 창고는 일시적으로 동일화된다. 미술관의 전시작품보다 그 외관을 감상하는 일에 더 흥미를 가진다는 김무준에게 세계적인 미술관 건물은 신화이자 욕망의 대상이다. 자신의 관심과 동경에도 불구하고 여행이라는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직접 대면할 수 없는 것은 물론, 그것을 소유하는 것은 더욱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건축재료에 근접하는 재료로 가장 간단한 형태의 미술관 이미지를 만드는 행위는 기호를 물질화하여 소유, 소통, 이동의 자유를 획득하는 하나의 방법이 된다.  
노재운_더블 플라워드_혼합재료_2011
  4. 공간의 사회학적 전망 ● 공간에 대한 질문은 필연적으로 그 범주를 상대적 공간의 개념으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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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상 개인전,`Sculpture`       
        

                        두산갤러리(02-08-5015)
                        2011-05-06 ~ 2011-06-02
                        2011-05-06 오후 6시
두산갤러리 서울에서는 5월 6일부터 6월 2일까지 권오상 작가의 개인전 ‘Sculpture’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권오상의 The Flat 연작 중 10점의 새로운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권오상은 수 천장의 사진을 오려 붙여 인물상을 만드는 Deodorant Type과 함께, The Flat, The Sculpture
연작을 통해 동시대 조각의 모습에 대하여 독자적인 방법과 시각으로 접근해 왔다. 그는 ‘가벼움’, ‘편리함’과
같은 현대사회의 속성을 바탕으로 전통적인 조각과는 다른 새로운 현대 조각의 모습을 제시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일 The Flat 연작은 잡지에서 오려낸 다양한 이미지를 얇은 철사로 일으켜 세워 2차원의
평면을 3차원의 조각적 사물로 전환시킨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종이 조각들을 모아 다시 사진으로
촬영해 보여준다.
The Flat 연작은 이처럼 현대 사회의 모습을 여실히 담고 있는 사물의 사진을 가장 간단하고 편리한 방식으로
조각화한다는 점에서 ‘현대(적)’ 조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권오상의 조각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살펴보면서, 그가 보여주는 평면(사진)이 단순한 사진이 아니라 조각이 보여줄 수 있는 또 다른 방식임을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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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혜원 사진전, `都深 The Urban Depth`   
        

                        일민미술관 1,2전시실(02-2020-2060)
                        2011-03-18 ~ 2011-05-08
‘변화’ 혹은 ‘지나가는 것’은 일정한 시간에 많은 장면을 생산한다. 특히 도시의 삶은 더욱 그러하여 대다수의
사람들은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매일 매 순간 변화하는 장면들을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다. 기억 속에
누적된 장면은 개인의 삶에서 하나의 결과물로 드러나기도 하고, 무의식 속에서 끊임없는 영향력을 미치기도
한다.
동양화를 전공한 금혜원은 변화하는 현재를 기록하기에 적합한 매체에 대해 고민하다가 사진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작가는 도심(都深), 즉 도시의 깊은 곳 어디에선가 벌어지고 있는 움직임을 순발력 있게 화면에 담고
싶었다고 한다. 따라서 금혜원의 사진작업은 기록적 측면을 회화적으로 풀어나간 점이 특색으로 돋보인다.
이번 사진전은 크게 3가지 주제로 나뉜다. 쓰레기 매립지였던 난지도를 배경으로 하는 Green Curtain 시리즈,
재개발 현장을 담은 Blue Territory 시리즈, 그리고 근래에 관심 갖고 작업 하고 있는 지하 쓰레기 처리시설인
Urban Depth 시리즈이다. 금혜원은 지상과 지하에서 일어나는 끊임없는 움직임을 관찰하고 기록한다.
그 과정에서 포착해낸 시각적 미감은 단순히 색에 대한 묘사, 화면에 펼쳐진 거대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현장에 대한 고민과 앞으로 더해질 결과 이후의 장면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도시의 드러난 것과 숨겨진 것의 관계망은 개인의 경험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익숙한 것에 대한 낯선
시선은 새로운 깨달음이 될 수 있음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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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랩소디 - 역사와 기억의 몽타주










2011_0317 ▶ 2011_0605 / 월요일 휴관







구본창_어머니전상서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90×67cm_2010 / ©구본창






초대일시 / 2011_0312_토요일_04:00pm

참여작가 구본창_김기창_김수자_박생광_박수근_백기영_서용선 이인성_이종상_이중섭_장욱진_조덕현 등 66명

관람료 코리안 랩소디_일반 7,000원 / 초중고생 4,000원 상설전_일반 10,000원 / 초중고생 6,000원 Day Pass(상설+기획전 패키지)_일반 13,000원 / 초중고생 8,000원

관람시간 / 10:30am~06:00pm / 월요일 휴관

삼성미술관 리움 Samsung Museum Of Art Leeum 서울 용산구 한남2동 747-18번지 Tel. +82.2.2014.6901 www.leeum.org






삼성미술관 Leeum은 2011년 첫 전시로 3월 17일부터 6월 5일까지 『코리안 랩소디-역사와 기억의 몽타주(Korean Rhapsody-A Montage of History and Memory』展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급속 성장한 오늘날의 한국 사회를 있게 한 고난과 격동의 20세기가 시각 예술에 어떻게 반영되고 기억되고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현재 우리 삶의 모습들의 의미를 확인해 보고자 기획되었다. 이 전시는 한국 근현대사를 1부 '근대의 표상(1876~1945)', 2부 '낯선 희망(1945~2011)'로 나누어 미술사에 남겨진 역사적인 작품들과 현대작가들이 역사를 소환하고 기억을 재해석한 작품들의 만남을 적극적으로 주선한다. 또한 근현대 다큐멘터리 사진과 영상, 우국지사의 유묵(遺墨), 조선관련 일본의 우끼요에 등 다양한 시각문화 자료들을 병치시켜 비교와 충돌, 동일성과 차이, 연속과 불연속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를 새롭게 해석하고자 하였다. 이번 전시는 역사를 개념이 아닌 하나의 '이미지'로 읽어 내기 위한 시도로 '코리안 랩소디'라는 제목이 시사하듯이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우리 역사를 조명한다. 이 과정에서 민족의 애환과 근현대사의 급속한 변화와 역동성을 재구성해 봄으로써 역사와 기억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살펴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특히 미래의 주역인 청소년들이 한국 근현대의 역사와 문화를 전시를 통해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문화예술 전반과 친근해 질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김수자_떠도는도시들-2727km 보따리트럭, 11일간의 한반도 퍼포먼스 중에서_ 단채널 비디오 프로젝션_00:07:33_1997 / ©김수자
김옥선_해피투게더_디지털 영상_가변크기_2002~4 / ©김옥선

역사는 과거이지만 동시에 현재의 일부분으로 우리 삶의 조건을 만들어 온 실체이기도 하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급속한 경제성장은 일제 강점기와 민족 간의 전쟁과 분단, 해방 이후에는 국가재건과 친일청산, 반공이데올로기, 유신독재와의 끊임없는 반목과 투쟁, 시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일구어 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국토 개발과 사회적, 경제적 역동성에 밀려 '기억의 터'가 사라지고, 역사교육은 점차 변방으로 밀려나고 있다. 『코리안 랩소디-역사와 기억의 몽타주』展은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를 기억을 통해 되살리면서 우리의 역사와 삶의 모습들을 되돌아보고 미래를 전망해 보고자 기획되었다. 이를 위해 지난 100여 년간 미술사에 남겨진 역사적인 작품들을 씨줄로 삼고 현대 작가들이 과거의 역사와 기억을 재해석한 작품들을 날실로 삼아 한국의 근현대사를 재구성하였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그리고 분단과 이산의 과정에서 미술사의 많은 부분이 공백으로 남아있지만 최근 미시사 연구를 통해 사진, 영화, 잡지, 도시와 건축 등 근대인의 삶과 일상문화에 대한 연구가 미술사의 결손 부분을 메워 주고 있다. 이번 전시에도 다큐멘터리 사진과 영상, 우국지사의 유묵(遺墨), 무용가와 시인, 일본의 우끼요에(다색목판화) 등 시각문화 자료들을 추가하여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입체적인 감상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작품의 설치 역시 연대기적인 연출을 지양하고 몽타주 방법론에 따라이미지를 병치, 대립하고 과거와 현재를 통시적으로 결합하여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고자 하였다. 이번 전시는 특히 비교와 충돌, 동일성과 차이, 연속과 불연속을 통해서 한국 근현대사를 새롭게 해석하고 연출하는 데 많은 의미를 부여하였다. 더불어 '랩소디'라는 음악적 용어가 시사하듯이 근현대사의 굴곡이나 민족적 애환, 한국사회의 급속한 변화와 역동성을 자유로운 서사적 형식으로 보여 주고자 한다. 사회가 발달하고 복잡해질수록 과거에 대한 관심과 대중적 욕구가 생겨나기 마련이어서 최근 드라마나 영화, 뮤지컬, 출판물 등을 통해서 과거가 활발히 재생산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역사와 기억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의 일부를 찾고자 한다. 마샬 맥루한의 지적처럼 예술가들은 '인류와 시대의 안테나'로서, 기억의 상실, 정체성의 위기의 징후를 포착하고 경고하고자 존재하기 때문이다.
서용선_동학농민운동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00×350cm_2004 /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서용선
서도호_유니폼/들:자화상/들:나의39년인생_직물, 섬유유리 합성수지, 스테인리스 스틸, 옷걸이 바퀴_ 169×56×254cm_2006 / 개인 소장, © 레만 머핀 갤러리, 뉴욕

1부 : 근대의 표상(1876~1945) / 블랙박스 ● 개항 이후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를 다루는 1부에서는 당대에 제작된 작품들과 함께 이 시기를 재해석한 현대작가들의 작품들이 병치되어 연속과 불연속을 거듭하면서 관람객들에게 당시 역사와 사회에 대해 다양한 상상력을 일으킨다. 전시는 개화기 조선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기록한 휴버트 보스의 「서울풍경」(1899)과 국가를 잃은 설움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안중식의 「백악춘효」(1915)가 손장섭의 「조선총독부」(1984)와 함께 역사적 표상이자 민족정체성의 상징인 광화문과 경복궁을 반추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역사적 고증과 작가의 상상력이 결합된 박생광의 「명성황후」(1983)는 김은호의 「순종어진」(1923~1928사이)과, 망국의 한을 담은 채용신의 「유학자 초상」(20세기초)은 서용선의 「동학농민운동」(2004)과 함께 배치되어 암울한 시대 상황을 조명한다. 한편 이육사의 「의의란」(1944), 안중근의 「국가 안위노심초사」(1910)는 우국지사의 기개를 증언하고 있다. 이번에 새롭게 소개되는 일본 메이지시대(1868~1912)의 조선관련 우끼요에 6점과 사진 평론가 이경민이 기획, 편집한 일제강점기 다큐멘터리 사진 동영상인 「인물도감」, 「한성에서 경성으로-식민지 수도 경성의 변모」, 「황실의 초상」은 일제가 자신들의 조선 통치를 어떻게 정당화하고 있는지를 살펴 볼 기회를 제공한다. 조선황실의 비극적인 가족사를 다룬 이상현의 2시간 분량의 영상물 「조선의 낙조」(2006)는 구술사를 통해 미시사적 접근으로 한국 근현대사의 단면을 보여 주고 있다. 1910년대 이후 일본 유학을 통해 인상파와 후기인상파 등을 배우고 돌아온 화가들과 1922년 시작된 '조선미술전람회'의 영향 하에서 1930년대부터 신문화 수용양상이 본격적으로 결실을 맺기 시작한다. 김기창의 「가을」(1934), 이인성의 「경주의 산곡에서」(1934), 김중현의 「농악」(1941)은 식민지 정책과 부합하면서 지역적 색채를 보여 주고자 하는 양면성을 지닌 조선 향토색 경향을 대변한다. 또한 국내에서는 문화적 검열의 대상이 되었던 나체를 김관호, 나혜석, 오지호, 김인승 등이 아카데미 미술의 일환으로 시도하기도 하였다. 1930년대 이후 서구식 근대 자본주의 문화와 함께 들어온 대중문화는 우리의 식습관, 주거문화, 생활풍습 전반을 변화시킨다. 이 시기 야수파와 입체파, 추상미술에 대한 관심이 구본웅의 「인형이 있는 정물」(1937), 김환기의 「론도」(1938), 유영국의 작품에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한편 1920년대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던 안석주의 만평을 팝아트적으로 재현한 이동기의 「모던 걸」, 「모던 보이」(1998)는 당시의 무조건적인 외래문화 수용세태를 풍자하고, 1930년대 신여성과 당시의 모습으로 분장한 딸을 함께 묘사한 조덕현의 「리플렉션 리플렉션」(2011)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삶을 반추한다. 여기에 한국근현대미술연구소에서 제작한 모더니스트 이상과 당대를 풍미한 최승희의 영상물이 전시된다.
이인성_경주의 산곡에서_캔버스에 유채_130×194.7cm_1934 /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이쾌대_해방고지_캔버스에 유채_181×222.5cm_1948 / 이한우 소장, © 삼성미술관 리움

2부 : 낯선 희망(1945~2011) / 그라운드 갤러리 ●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근현대사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2부 또한 역사적 사실과 기억, 고증으로 제작된 작품들과 현대 한국사회를 증언하는 다양한 작품들을 병치하여 각기 다른 연상 작용을 통해 주제를 강화시키고자 하였다. 해방은 우리에게 건국의 꿈을 실현하는 계기를 마련하였지만, 혼란과 분열이 거듭되는 가운데 통일된 민족국가의 꿈은 멀어져 갔다. 이쾌대의 「해방고지」(1948년)와 강요배의 「한라산 자락 사람들」(1992)은 이러한 상황을 대비시켜 보여 준다. 한국전쟁과 민족분단의 비극, 이에 따른 반공이데올로기는 전쟁을 배경으로 한 기존의 작품과 전쟁의 트라우마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전후의 작품들, 그리고 한국전쟁을 주제로 한 현대작가의 작품들로 보여진다. 변영원의 「반공여혼」(1952)은 이중섭의 「투우」(1956), 전화황의 「전쟁의 낙오자」(1960)와, 구본창의 한국전쟁관련 신작들(2010)은 송영수의 「작품 59-2」 (1959)와 함께 연출된다. 그런가 하면 신세대 작가 조습의 「그 날이 오면」(2004)은 '태극기 휘날리며'의 영화음악을 차용하여 한국사회가 양산해 온 집단기억을 해체하며, 조동환/조해준 부자의 「1937년에서 1974년까지」(2002~2010)는 실제 경험을 재현한 드로잉 설치작업으로 기억과 구술을 통한 미시사적 접근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격변하는 시대에 미술이 당대의 삶과 풍속을 반영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장욱진의 나룻배」(1951), 박수근의 「시장」(1950년대), 박상옥의 「시장소견」(1957) 등 전쟁 이후 고단했던 서민들의 삶을 담아 낸 작품들과 기억을 통해 과거를 재구성한 윤석남의 「어머니Ⅱ-딸과 아들」(1993), 안창홍의 「봄날은 간다」(2005)를 함께 비교해 보면 흥미롭다. 정치적 인물들은 우리의 집단 기억 속에 생생하게 존재하며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제공한다. 김동유의 「이승만」(2006)은 이승만과 김구로 대변되는 민족의 분열상을 보여 주며 박영근의 「박정희의 무궁화/유지자사경성(有志者事竟成)」(2006)은 박정희 시대의 계몽주의 이데올로기와 체재의 어두운 그늘을 함께 연상시킨다.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은 국가 재건을 목표로 산업화를 적극 독려하는데 산업현장의 역동성을 재구성한 이종상의 「작업」(1962)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며, 그 옆에는 산업현장의 모습을 두루 촬영한 김철현의 1990년대 산업사진들이 거대한 스펙터클로 변모한 한국사회의 산업화 단면을 보여 주고 있다. ● 한편 2부에서도 새마을 운동과 유신, 산업화와 민주화와 관련한 사회적 변화 과정과 일상의 모습들을 보여 주는 사진 동영상이 「일상, 그 낯선 친숙함-태극기로 본 일상의 현대사」, 「테이프 커팅과 새마을 가꾸기-근대화/산업화풍경」, 「유신과 반공, 그리고 민주화」라는 제목으로 상영되어 한국 현대사의 기억들을 생생히 되살리고 있다. 1960~70년대의 미술계는 변화와 혁신, 그리고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정책과 맞물려 예술적 아방가르드가 미술제도 속에 자리잡기 시작한다. 예술가들이 사회현실에 반응하는 방식은 정치적 논의를 배제한 앵포르멜 미술 경향이나 행위예술, 단색주의 회화와 권진규, 전혁림, 백남준, 한운성, 육태진 등 자신만의 독자적인 색채를 보여 주는 작가들의 작품들을 통해 조망해 보고자 한다. 한국근현대미술연구소가 제작한 「1960~70년대 한국의 행위예술」 영상물도 이러한 이해를 도울 것이다. 1980년대 이후 우리의 일상 문화, 사회와 역사에 대한 관심이 미술계에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다. 미군부대 주변의 사진관에서 수집한 남녀 사진으로 1960~70년대 한국사회의 풍속도를 재구성한 김용태의 「DMZ」(1989)와 파독 광부와 간호사를 주제로 한 백기영의 「잃어버린 고향」(2002)은 미시사의 방식으로 역사를 재구성하고 있다. 오윤과 이종구의 1980년대 작업은 고도성장과 더불어 대두된 자본주의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적 모순을 풍자하고 있다. 한편 신학철의 「한국근대사-종합」(1982~1983)은 거대서사, 지배담론을 비판적으로 형상화하는 데 반해 서도호는 「유니폼/들:자화상/들:나의39년인생」(2006)에서 개인적 경험과 기억을 토대로 한국사회의 문화적 정체성을 요약적으로 함축한다. 50년 만에 평양에서 성사된 남북정상회담의 과정을 통해 분단 현실과 통일에 대한 불안정한 미래를 함축하고 있는 박찬경의 다큐멘터리 영상 「비행」(2000), 이사가 잦았던 자신의 과거와 세계를 오가며 유목민처럼 살고 있는 현재를 담고 있는 김수자의 「떠도는 도시들 2727km-보따리 트럭」(1997)은 기억을 통해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역사의 단면을 보여 준다. 현재,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일상에서 쉽게 만나는 아줌마의 전형을 적절히 포착한 오형근의 「아줌마」(1997)나 물질적 풍요와 다국적 자본주의의 실태를 고발한 김기라의 「코카킬러」(2010)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또한 급속히 변화하는 한국사회의 단면들이, 달동네 재개발 사업을 기록한 안세권의 「서울, 침묵의 풍경」(2011), 국적 불명의 놀이문화를 통해 전통과 현대, 어설픈 서양문물이 혼재된 한국사회의 진풍경을 표현한 구성수의 「마술적 리얼리티」(2005),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는 풍경을 국제결혼한 커플을 통해 기록한 김옥선의 「해피투게더」(2002-2004)에 담긴다. ■ 삼성미술관 리움
안창홍_봄날은 간다_패널에 사진, 아교, 드로잉잉크, 아크릴채색_207×400cm_2005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 안창홍
박영근_박정희의 무궁화/유지자사경성(有志者事竟成)_캔버스에 유채_141.4×90.9cm_2006 이상원 미술관 소장, © 박영근





전시 프로그램

□ 심포지움 : 20세기 한국의 시각문화 - 모더니티와 기억 한국 근대사의 근간을 이루는 시대 정신인 '모더니티'에 관하여 미술사, 미학, 문화연구 전문가들을 초청하여 심도 깊은발제와 토론을 통해 한국 사회를 시각문화중심으로 재해석해 보는 학술행사 - 일시 : 2011_0326_토요일_02:00pm~04:30pm - 장소 : 리움 강당 - 대상 : 미술 애호가 및 일반인 200명 - 신청방법: 3월 14일부터 홈페이지 www.leeum.org를 통해 선착순 접수(무료) - 세부 프로그램   14:00~14:10   심포지움 개최 의도 / 진행_이준   14:10~14:40   한국근대미술과 모더니티(가제) / 발제_심상용(미술사/평론)   14:40~15:10   현대, 해체된 기억의 풍경 / 발제_김진송(시각문화연구)   15:10~15:20   휴식   15:20~15:50   문자문화와 시각문화(가제) / 발제_천정환(문학비평)   15:50~16:30   질의 및 종합토론 / 진행_강수미(미학,미술평론) - 문의: Tel. 02.2014.6900

□ Teen's Workbook(청소년용 워크북) 및 교사용 지도서 입 학사정관제의 도입으로 진로와 연계된 체험 활동이 강조되고 있는 흐름에 발맞추어 청소년들이 이번 전시를 통해 미술, 국어, 국사, 사회 교과를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한국근현대의 역사와 문화를 상상하면서 문화 예술 전반과 친근해 질 수 있는 기회 제공

□ 교사초청 행사 전시에 대한 큐레이터의 강의와 함께 워크북과 지도서에 대한 안내를 받을 수 있는 중등교사 대상의 초청행사 - 일시 : 2011_0319_토요일_02:00pm~04:00pm - 장소 : 리움 강당 - 대상 : 현직 중등교사 200명 - 신청방법: 홈페이지 www.leeum.org를 통해 선착순 접수(무료) - 문의: Tel. 02.2014.6900

□ 체험 프로그램 '시간 여행자(Time Traveler)' 장 소성의 상실과 그 안에 담긴 기억의 정치학을 다루고 있는 전시의 주요 개념을 교차하는 과거와 현재의 착시 화면 사이로 관람객이 직접 공간을 이동하면서 기념비적 장소(광화문, 청계천)와 풍경(시장, 가족)의 시각적 변화를 체험하는 미디어 공간

□ 전시설명 프로그램(무료, 약 50분 소요) 한국어 : 화~일요일 오전 11시, 오후 1시, 3시 영어 : 토,일요일 오후 2시

□ 모바일 전시도록(무료) 안드로이드 기반 스마트폰 사용자用 모바일 전시 도록 T-스토어 內 삼성Apps에서 다운로드(무료, 도록 판매가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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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디 최(Cody Choi) 개인전: 2nd Chapter of Post-colonialism


PKM Trinity Gallery는 4월 14일부터 5월 14일까지 작가 코디 최(Cody Choi, b. 1961)의 개인전 ‘2nd Chapter of Post-colonialism(후기식민주의의 두 번째 장)’展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코디 최가 지난 20여 년간 천착해온 미국사회 속 동양계 이방인의 정체성 찾기라는 작업 주제의 연장선에서, 오랜 타국생활로 인해 이제는 고국에서도 이방인이 되어버린 작가가 이중 이방인의 시각을 통해 본 오늘의 한국인과 한국문화를 주제로 다루고 있다. 이번 전시 작품들은 작가가 경험한 한국문화의 이중중첩(Double Overlapping) 현상에 관한 작업들로, 작가 자신이 부딪치고 갈등했던 문제들을 ‘선물’, ‘무화된 의식’, ‘극동의 왜곡’등 세가지 개념화된 작품 시리즈로 보여주고 있다.

‘선 물(The Gift)’ 시리즈는 금발이 강조된 백인 여성의 미인도 회화 작품으로 나이키 로고를 싸인펜으로 그려 넣은 아동용 실내화 위에 놓여있다. 이 작품은 잡지나 영화 등 매체를 통해 만났던 이상화된 서양의 이미지와 작가가 경험한 실제 서양 이미지 사이의 괴리를 표현하며, 서구문화에 대한 우리의 환상은 오늘도 진화하며 지속되고 있다는 이중중첩 현상을 말하고 있다. 작가는 서구 문화에 대한 환상과 그로 인해 서구화된 우리의 미적 기준을 서구로부터 받은 ‘선물(The Gift)’이라고 비틀어 표현하면서, 어린이들에게까지 뿌리깊게 자리한 서구화된 미(美)는 싸인펜으로 그려 넣은 나이키 로고처럼 결국 모방문화(counterfeit culture)임을 강조한다.

‘무화된 의식(Zero-Consciousness)’ 시리즈는 여러 서양잡지에서 무작위로 잘라낸 이미지들을 일그러진 하트 모양으로 콜라주한 작품이다. 작가는 근거 없는 이미지들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하트를 통해, 자아의식 없이 타인( 주변이나 나아가 크게는 서양 또는 여러 조합이 만들어내는 ‘가짜의식’)의 해석에만 의존하는 이 시대 한국인의 ‘마음(heart)’을 표현한다. 즉 자아가 사라지고 타인의 평가에만 집착해 자신과 관계없는 조합에서 만들어지는 ‘가짜의식’을 자아라고 믿는 ‘무화된 의식’ 상태에 살고 있는 것이 오늘의 우리 모습이라 주장한다. 그리고 작가는 이를 지금까지 항상 있어왔던 세기 말과 세기 초의 ‘무형식과 온갖 맛내기 현상이 극대화’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Anything goes tastes all you needs. Working without rules in order to find out the rules of what you have done”.






신단수(神檀樹)-홀씨 The Holy Trees -Beginning





박서령展 / PARKSEORYONG / 朴曙伶 / painting   2011_0511 ▶ 2011_0516





박서령_신단수(神檀樹)-홀씨Ⅰ(The Holy Tree -Beginning I)_지본수묵채색_193.5×520cm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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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0511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6층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신단수(神檀樹)-홀씨 The Holy Tree - Beginning ● 하늘은 땅이 들어나도록 빛을 던진다. 흑(黑)빛으로 혹은 흰(白)빛으로... ● 나는 신에게 염원한다. 나의염원은 시작과 탄생, 긍정과 희망이다 ● 나는 백색 공간에 신단수를 세운다. 신단수는 정신적 에너지(Spiritual Energy)가 되어 선(線)들은 신수(神樹)가 되고 점(點)들은 홀씨(Beginning) 가 되어 숲을 이루고, 생명이 되어 빛(明)이 된다. ■ 박서령

박서령_신단수(神檀樹)-홀씨Ⅱ(The Holy Tree - Beginning II)_지본수묵채색_193.5×130cm_2011

박서령의 '철학이 있는 맑은 그림' : 신단수(神檀樹) - 홀씨 ● "나는 철학을 그리고 싶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장식도 아니고 치장도 아니다. 나의 내면을 고스란히 표현하는 것이다." ● 박서령 작가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나에게 도발적으로 한 말이다. 내가 도발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가벼움을 추구하는 이 시대에 무거움의 상징인 철학을 담아낸다니 말이다. ● 중국회화사를 큰 틀에서 보자. 송대의 문인화는 성리학(性理學)의 이취(理趣)나 상리(常理)를 담은 철리(哲理)적 문인화풍이, 양명학(陽明學)이 유행하는 명대에 이르면 점차 천취(天趣)나 성령(性靈)를 담아내라는 사의(寫意)적 문인화풍이 더욱 강조된다. 하지만 오늘날의 문인화풍의 그림에서 진정성을 가지고 철학을 강조하고 심령(心靈)을 담아내고자 하는 작가는 거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 기교는 뛰어나지만 작품에 철학이 담겨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즉 과거와 같은 전통적인 문인의식을 가지고 작업을 하는 작가가 과연 얼마나 되나 하는 회의감에서 나온 말이다. ● 전통적으로 중국회화는 그림의 품격에 따라 일품(逸品)?신품(神品)?묘품(妙品)?능품(能品) 등으로 등급을 나누면서 철학을 담은 그림, 자신의 심령을 표현한 그림을 좋은 그림으로 평가하였다. 제한된 색과 형상을 통해 나를 담아내고자 하는 어려운 작업을 시도한 작가는 이번 전시회도 여전히 담(淡)과 빛의 미학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천인합일(天人合一)적 예술정신을 표현해 내고자 한다. '신단수와 홀씨'라는 무거운 주제를 신독(愼獨)의 자세와 주일무적(主一無適)의 경(敬)의 마음, 무자기(無自欺)의 맑은 심성을 유지하면서 가벼운 붓놀림으로 기발하게 그려내고 있다.
박서령_신수(神樹)- 빛(明)(The Holy Tree -Light)_지본수묵_193.5×130cm_2011

우리주변에는 흔히 단군신화에서 말하는 환웅(桓雄)과 관련된 신성한 나무를 비롯하여 삼한시대 각 읍락(邑落)의 소도(蘇塗) 안의 솟대, 경주(慶州)의 계림(鷄林) 등과 같이 크고 작은 신단수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다. 나는 신단수에 대한 이런 통상적인 의미를 이 글에서 확인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왜 이 시대에 신단수와 홀씨를 거론하는가?' 하는 점이다. ● 자신의 그림을 심상(心象)의 예술로 규정한 작가는 여전히 수도승 같은 자세를 견지하면서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된 '몽롱(朦朧)풍의 문인화', '황홀(恍惚)풍의 문인화'를 다시금 선보인다. 이전과 다른 점은 '신단수와 홀씨'라는 구체적인 주제를 택해 작품 제작에 임하는 것이다. 생명력, 풍요, 창조, 관용, 영속성, 강인함 등으로 상징되는 나무의 의미에다 하늘과 대지를 연결해주는 의미를 더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작가가 궁극적으로 담아내고자 하는 것은 담과 빛의 미학을 통해 그 자신이 하늘의 신성함 및 생명성과 교감(交感)하고 감응(感應)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천인합일을 추구하는 마음이다. ● 동양에서 좋은 그림이란 전통적으로 종병(宗炳)이 말한 '작가의 정신으로써 도를 본받는 것(以神法道)'과 '그려진 형상을 통해 도를 아름답게 표현한다(以形媚道)'는 것을 화폭에 표현한 그림이었다. 작가는 자신의 맑은 심성을 통해 도를 체득하고, 아울러 '신단수와 홀씨'라는 구체적인 형상을 통해 도를 아름답게 표현고자 한다. 도의 체득을 통해 자신의 뿌리가 되는 시원으로서의 신성한 공간과 그 공간으로의 복귀를 담이란 화두를 통해 표현하고자 한다. ● 전통적으로 담은 문인화에서 표현하기 가장 어려운 것이면서 아울러 문인들이 지향한 가장 이상적인 미적 범주였다. 철학과 윤리는 물론 시(詩)?서(書)?화(畵)?금(琴)?인(印) 그 어떤 문인예술 장르에서도 담은 기본적으로 요구되었다. 성리학의 '존천리, 거인욕(存天理, 去人欲)'의 금욕주의적 사유는 그것을 단적으로 말한다. 노장은 도의 맛으로서 무미(無味)함, 즉 담을 말하는데, 그것은 무지무욕(無知無欲)의 허정지심(虛靜之心)이다. 이런 맑고 고요한 마음은 도를 체득하게 한다. 동양예술을 인품론이라 규정하는 것도 알고 보면 바로 이 담 때문이다.
박서령_신수(神樹)- 미소(微笑)(The Holy Tree - Smile)_지본수묵_193.5×130cm_2011

작가는 여전히 심상의 공간으로서의 넉넉한 여백과 소(疏)와 밀(密)이 적절하게 조화가 이루어진 형상의 농밀함 속에 담백함을 지향하고자 한다. 작품의 큰 틀에서는 허(虛)와 실(實)의 상생(相生)을 꾀한다. 작가는 그것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이번 전시회에서도 원대 예찬(倪瓚)이 즐겨 사용한 방식인 화면 가운데 텅 빈 여백이 주는 정적이면서도 담백한 맛을 담고 있는 삼단구도를 즐겨 응용한다. ● 예찬은 중국회화사에서 가장 정적인 맛을 잘 담아낸 화가인데, 일기(逸氣)를 통해 문인화가 지향할 것을 규정한 화가로 유명하다. 그는 움직임이 거의 없는 화면을 통해 자신의 은일(隱逸)적 삶이 지향하는 맑은 심성을 담아내는데 최고의 경지에 오른 화가였다. 일기를 강조하면서 자신이 그린 마음속의 대나무를 삼이나 갈대로 여긴들 어찌할 수 없다고 말해 신사(神似)를 중히 여기고 형사(形似)를 가볍게 여긴 것으로 말해지는 예찬이 사실은 형과 신을 가장 잘 겸비한 화가로 평가됨을 기억하자. 작가는 이제 형과 신을 함께 갖춘 예찬의 일기를 담아내고자 한다. ● 화면 중간의 드넓은 여백이 자칫하면 무의미한 텅빈 공간이 될 수 있음에도 작가는 소산간원(蕭散簡遠)함과 소조담박(蕭條淡泊)한 맛을 듬뿍 담고 있는 심상의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구체적인 형적(形迹)은 삼원법(三遠法), 홍운탁월법(烘雲托月法)과 같은 전통적인 기법을 자유자재로 운용하여 자연스럽게 산을 그리고 아울러 시원으로서의 신성한 공간을 창출한다. 간혹 망원(望遠) 기법을 통해 우주에 퍼져가는 신단수의 기운을 표현한 것에서는 숭고미를 느끼게 한다. 작가의 역량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 화면 중간을 이처럼 넉넉한 여백으로 처리하면서 화면의 상단부에 속하는 산과 나무를 그릴 때는 밀(密)과 소(疏)의 절묘한 조화를 통하여 하늘과 땅의 교감 및 하늘로 향하는 기(氣)의 움직임을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려진 형상에서는 농밀함을 응용하되 담묵(淡墨)을 통해 그 농밀함이 가져다 줄 수 있는 부정적인 면을 탈색시킨다.
박서령_길(道)(Road)_지본수묵_114×106cm_2011

나무와 산의 경계가 모호하지만 그것의 지향점은 현색(玄色)으로 이루어진 혼돈(混沌)의 하늘이다. 하늘과 맞닿은 산이면서 또 하늘가와 그 경계선이 모호하다. 물결치는 듯한 나무들의 형상과 중층적으로 이어진 나무 형상을 통해 하늘과 대지의 간극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부유하는 듯한 수많은 나무를 통해 산과 계곡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궁극에는 신성한 공간이 만들어진다. ● '신단수와 홀씨'를 통해 혼돈의 황홀한 세계로 이끌어 간다. 천지에 가득 찬 인온(絪縕)한 기를 통해 존재하는 모든 것은 유기적 관계망을 이룬다. 시원으로서의 신성한 공간으로 우리를 이끌어가는 기의 흐름은 표일(飄逸)한 맛을 드러낸다. 기의 확산은 번잡하지도 어지럽지도 않다. 왜냐하면 궁극의 지향점은 현색의 하늘로 또 다시 전체적으로 응집되기 때문이다. ● 전체적으로 허와 실, 소와 밀, 동과 정을 적절하게 묘합시킨 구도와 형적은 감상자로 하여금 황홀경에 빠져들게 한다. 몽롱한 가운데 자연스레 감상자의 정신을 우주에 퍼지는 거대한 기의 흐름에 동참하게 한다. 천인합일을 추구하고자 하는 바램은 작가 자신도 신단수의 홀씨 되어 우주로 퍼져가고 하늘로 상승한다. 홀씨는 다시 대지에 뿌리내려 우주적 질서에 참여하고 생명의 연속성을 이어간다. 대지에서는 고무(鼓舞)함으로써 진신(盡神)된 뭇 여인들을 통해 도를 체득한 열락과 황홀경을 드러낸다. 작가가 지향하는 마음이다. ● 이처럼 하늘과 대지를 연결해주는 우주목(宇宙木)으로서 신성한 나무와 생명의 응집체인 홀씨에는 담의 미학과 함께 빛의 미학이 담겨 있다. 이런 담은 흔히 형식적 차원의 넉넉한 여백이나 담묵을 통해 담아낼 수는 있다. 하지만 심상의 예술에서 더 중요한 것은 마음속의 담이다. 작가는 마음속의 담을 우주로 확장시키고자 한다. 더 나아가 신단수와 홀씨를 통하여 현대인이 잠시 잊고 있었던, 아니 이제는 잃어버린 삶의 시원으로서의 신성한 공간에로의 체득과 복귀를 요구한다. 작가가 지향하는 마음이다. 그런데 삶의 시원으로서 신성한 공간, 도를 체득한 황홀한 세계는 자신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작가가 신단수를 통해 그리고자 한 천인합일(天人合一)적 공간은 궁극적으로는 자신이 사는 삶의 영역, 마음속에 있다. 도는 인간의 삶과 멀리 있지 않다는 '도불원인(道不遠人)'의 사유를 담고 있는 셈이다.
박서령_신수(神樹)- 풍요(豊饒)(The Holy Tree - Bountifulness)_지본수묵_193.5×130cm_2011
박서령_신수(神樹)-기원(祈願)(The Holy Tree - Prayer)_지본수묵채색_130×193.5cm_2011

어느 시대건 전통적 기법이나 소재를 그 시대에 맞게 어떻게 창신적으로 운용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특히 동양예서는 법고(法古)로서의 '고(古)'와 창신(創新)으로서의 '금(今)'에 관한 논쟁은 항상 있어왔다. 작가는 '신단수와 홀씨'라는 쉽지 않은 주제를 빛, 나무, 여백, 기의 응집과 그 확산 등 다양한 요소를 전통적 기법을 응용하여 묘합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즉 작가는 문인화의 전통적 기법과 정신세계를 오늘날 자신만의 감수성에 담아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흔히 말하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 전통적으로 그림에서 철학을 강조하다보면 형사(形似)보다는 신사(神似)를 강조하는 경향성을 보인다. 하지만 황홀하면서도 천취와 신운(神韻)이 감도는 듯한 작가의 작품에는 형(形)과 신(神)이 겸비되어 있다. 극공(極工) 이후의 사의(寫意)적 풍모와 불사지사(不似之似)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 이제 작가는 생(生)-숙(熟)-생(生)의 삼단계 과정에서 숙의 경지를 넘어 자신의 색깔을 담아내는 '창신적 생'의 첫 단계에 접어들었다. 작가가 '철학을 그리겠다'고 하는 지난한 예술의 진정한 시작은 이제부터이다. 다음 전시회가 기대되는 이유이다. ■ 조민환


 


 


마음혁명 Mind Revolution


 

정동석展 / CHUNGDONGSUK / 鄭東錫 / photography   2011_0511 ▶ 2011_0524


 

Mind Revolution 210-1616_디지털 프린트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00910a | 정동석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5번지 4층 Tel. +82.2.722.7760



정동석의 근작인 「마음혁명」연작은 피사체와 작가 사이에서, 그 둘을 아우르는 또 다른 무언가를 발현시킨다. 「마음혁명」에서 정동석은 숨을 쉬고 움직이며 카메라셔터를 눌렀다. 카메라를 흔들며 촬영한 서울의 밤 불빛 풍경은 그 형상을 넘어서며 새로운 이미지로 변주된 것들이다. 영성靈性의 느낌까지 불러일으키는 화면은 존재와 인식의 경계를 넘나드는 불교의 무애无涯와 무외無畏의 경지, 기독교의 금욕적인 절제, 또는 노·장의 역설적 사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 그렇지만 핵심은 이런 종교적 차원을 포함하면서도 일상의 욕망까지 함께 포괄한 통찰에 있다. 정동석은 도시인들의 구체적 현실 한가운데를 관통하며, 삶에 대한 의지와 희망을 미학적 자각으로 연결시켰다. 삶/희망, 주체/타자, 사진/회화, 내용/형식, 시각/인식, 재현/표현, 실체/일류젼 등의 이분법적 틀과 고정관념을 넘어서는 자세로 접근한 그만의 유기적인 생성문법으로 말이다. ● 눈으로 본 것을 넘어선 이 이미지들은 정동석의 마음의 결이자, 이성적 사유와 희구가 최소 단위로 환원된 결정체다. 도시의 욕망을 능동적으로 수용하며 정동석은 거기에 대한 이성적 사유를 극한까지 밀어 붙여 마침내 하나의 세계, 혹은 깨우침으로 주체와 대상이 서로 교차하며 합일하는 풍경을 형상화한 것이다. 도시의 밤을 의미소意味素로 하여, 사진고유의 원근법적 재현을 거부한 평면적 조형성, 카메라 흔들어 찍기로 도출한 동적인 내면의 이미지가 그것이다. 그 결과 피사체의 사실적인 재현에서 벗어나면서 작가의 마음을 반영하는 또 다른 움직이는 형상이 나타난 것이다. ● 작가의 액션으로 인해 움직이는 점과 선이 유동하며 만들어낸 비정형의 형상은 삶의 꽃을 피우기 위해 꽃씨나 포자가 날아다니는 것과 같은 유연한 생동감, 폭포처럼 쏟아지는 불빛의 다이나믹한 파장, 혹은 디지털 영상처럼 부드럽게 반복하며 유영하는 알록달록한 색채와 선의 무브먼트로 나타난다. 번다하고 잡다한 이전투구의 생존방식들과 욕망들이 교집된 도시의 밤, 그 빛과 어둠을 경건한 생명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그곳에는 삶과 희망을 향한 생성의 과정과 에너지가, 흙탕물속의 연꽃처럼 작가 내면을 반영하며 아름답게 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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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이후, 정동석은 서울의 밤을 통해서 사람들의 욕망과 희망을 간결한 불빛의 아름다움으로 은유해 왔지만, 사진의 원초적인 기능인 대상의 재현에서 완전히 일탈하면서 오히려 대상을 다른 형상으로 치환한 것은 이번 「마음혁명」연작이 처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혁명」에서는 피사체인 밤 불빛은 소멸되지 않고 형상의 인자로 화면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주제의식과 사진 찍기의 새로운 방식에 의해 의미소가 된 도시의 밤은, 작가와 피사체의 중간지대에서, 보는 주체와 보이는 객체의 관계를 상호 무장해제 시켰다. 그리고 정동석의 시선에 의해 독특한 이미지와 개념을 발생시킨다. 피사체에 대한 표현이나 해석이라는 기존의 사진적 접근방식에서 이탈해서, 정동석은 자신과 대상과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기원과 현상을 궁극적으로 집약시키는 내면적 서사를 창출한 것이다. ●「마음 혁명」은 작가의 몸동작과 카메라가 움직이는 속도로 인해, 구작인 「밤의 꿈」과 「가득 빈」연작의 정지된 상태와는 다르게 밤의 정태성에서 벗어나는 숨 쉬는 공간을 도출한다. 피사체인 불빛에 의해 작가의 호흡과 동작이 역설적으로 드러나는 그 화면은 역동적이면서도 한편으론 여유롭고 편안하다. 가득 빈 어둠을 부유하는 도시인들의 삶과, 작가의 마음상태를 수용한 화면엔 자연스레 리듬감이 나타나고, 불빛은 춤을 춘다.「밤의 꿈」에서의 감성적 서정성이 「가득 빈」연작의 이성적 사유의 절대성을 거쳐, 마침내 「마음혁명」연작에 이르러 이 둘을 견인하면서도 자연발생적인 생태공간을 연출한 것이다. 비유하자면 「가득 빈」이 종교적 영성과 같은 정신의 절대공간인 "바람도 없는 공중"의 긴장이라면, 「마음혁명」은 그곳을 툭 건드려서 "수직의 파문"을 일으키며 파적의 공간을 만드는 진동의 상태라 하겠다. 그 진동으로 인해 마음이 움직이는 틈이 열리고, 그 틈 사이에서 정동석 자신과 사진에 대한 깊은 사유가 숨 쉬고 있다. ● 정동석의 사진은 대상의 재현과 작가의 주관적 표현을 넘어서는 묘한 이미지로 이루어진다. 대상의 현실적 상태에 대한 접근이자 궁극적으로 정동석의 마음을 시각적으로 진술한 은유다. 깨우침, 해탈, 카메라의 해방과 사진으로부터의 자유, 프레임의 안과 밖 중심과 주변이 무화되는 '올 오버'의 화면은 형상뿐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작가의 태도와 인식까지도 증폭되게 만든다. 정동석의 작품에서 대상에 대한 묘사를 무화시키며 생성되는 형상의 생동감과 사진형식과 개념에 대한 성찰은 차라리 자기갱신의 표지로 보인다. 기록·재현·표현의 영역에 있던 사진을 새로운 차원으로 이끌어 낸 것이다. ● 그것은 대상과 주체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미학적·존재론적 인식이 열려 있어서다. 주체의 시선에 의해 수동적이던 피사체를 작가와 카메라가 움직이며 주체와 동등하게 만들어낸 결과이다. 그 풍경의 현장 너머에서 설명이 불가해한 추상처럼 변한 형상은, 굳이 언제라는 시간성도, 어디라는 장소성도, 거기에서의 삶의 구체성도 어둠에 묻어버렸다. 그리곤 어떤 설명도 없이 밤의 불빛과 작가와 카메라가 움직인 궤적으로 인해, 사실적인 풍경과는 또 다르게 스스로 생장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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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했듯이 정동석은 카메라를 흔들면서 대상을 포착하고, 동시에 그의 마음을 오버랩 했다. 작가가 카메라를 흔들며 촬영하는 것은 기존의 사진개념을 뒤집으려는 역설과 실험의 태도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사진 찍는 방법의 단순한 변화로 볼 수도 있지만, 정동석에게 있어서는 능동적인 주체의 시선과 수동적인 피사체간의 고착된 관계를 거부하며, 사진의 전통적인 장르적 정체성·구조·체계를 흔드는 존재론적·미학적 성찰의 결과다. 그것은 주체의 시선에 대한 습관적이고 닫힌 인식구조에서 이탈하려는 정동석의 반성적 태도이자, 보는 행위에 대한 그의 본능적 감각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 그러나 정동석이 이런 혁신적인 방식으로 사진을 찍더라도 대상인 풍경은 결코 흔들리지 않을 터, 라깡Jacques Lacan에 기준 한다면, 대상에 투사된 자신(바라보는 주체)의 시선을 흔드는 것이 곧 대상을 움직이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주체만을 중심에 두는 원근법적 투시에 고정되어 있는 카메라의 기계적 메카니즘에서 벗어나기에 이는 유효한 방식이다. 보는 주체만을 중심으로 상정하는 관습화된 시선의 독재는 보이는 대상에 대한 폭력으로 존재할 수도 있다. 그럴 때 대상은 주체에 의해 수동적으로 선택되어서 주체의 표현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뿐, 이미 대상 그 자체가 아니기에 그렇다. 거기에서는 어떤 수평적인 교감도 일어나기가 힘들다. 일방적인 응시주체의 판단과 표현만이 남을 뿐, 주체의 시선에 흡수된 대상은 이미 그 성격을 박탈당하기 때문이다. 정동석의 카메라 흔들기는 바로 이 피사체에 가하는 주체의 시각적 강제성을 해체하는 행위이자, 피사체에 드리워진 주체의 시선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기도 하다. 즉 주체의 시선이 가진 권력으로부터 피사체를 해방시키면서 있는 그대로의 피사체와 만나는 것이다. 그 결과, 정동석과 밤의 불빛 풍경은 주체와 피사체라는 관계를 떠나 스스로를 내려놓으며 조우하는 과정에서, 예측하지 못한 즉물적인 날것의 생동하는 이미지를 발화시킨 것이다. ● 눈과 눈 사이에도 거리가 있듯이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간극, 즉 시차視差에 의해 같은 대상도 다르게 보이게 된다. 카메라를 흔드는 것은 곡 시차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바라보는 주체의 초점의 위치에 따라 대상이 다르게 인지됨으로 대상에 공고하게 각인된 주체의 시선이 흔들릴 때, 마음속에서 새롭게 생성되는 현상을 정동석은 카메라로 포착한 것이다. '카메라 드로잉'이라 명명할 수도 있는 그것은, 정동석과 삶의 현장인 도시의 밤 풍경 사이에서 발생하는 제3의 현상에 대한 진술이다. 사진이자 그림이고 그림이자 사진이면서, 주체와 피사체간의 수평적 만남으로 시선을 넘어서는 이미지가 발아하는 과정의 기록이기도 하다. ● 세계를 마주하는 정동석의 이런 작가적 태도에 데리다Derrida, Jacques의 다음 문구는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카메라 셔터가 감겼다 떠지며 사진이 찍히는 특성상 우리는 대상을 보고 우리가 본 것을 찍는다고 생각하지만, 카메라 셔터가 터지는 순간 우리는 우리가 보지 못한 그 순간을 찍는 것"이라는…. 여기서 "보지 못한 순간"은 대상을 찍으려는 사진가의 욕망이, 그대로 피사체에 담기고 드러나는 권력적 시선의 작동방식을 해체시키는 그 시간이 아닐까. 돌이켜 보면 그동안 정동석의 작업들 대부분이 이런 시선작동 방식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진행되었음을 느낄 수 있다. 습관화된 시선이 닿는 곳이 아닌 그 이면의 소외된 장소, 그 곳에서 드러나지 않거나 은폐된 현상에 대한 문제였음을 상기해 보면 정동석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의 마음이 향하는 지점의 "보지 못한 순간"을 셔터에 담아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마음혁명」은 바로 이 "보지 못한 순간"을 우리에게 정교하게 제시해주는 작업이라 생각된다.
Mind Revolution 210-3432_디지털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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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 정동석은 사진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끊임없이 갱신하며 지금의「마음혁명」연작에 이르렀다. 지각된 형상에 대한 주체의 응시라는 시각체계를 극복하며, 대상과 자신과의 사이에서 주객의 구분을 넘는 시각적 문맥을 찾고자 해왔다. 이는 사진과 회화, 대상과 나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그 사이에 있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 의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마음혁명」에서는 소재인 밤 불빛도, 작가인 정동석도, 사진에 대한 관습적 논리나 정체성 등으로 구분된 틀의 해체와 더불어 생동하는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 정동석의 카메라를 흔드는 행위는 외부의 사물을 보기만 하는 주체의 입장에서 벗어나서, 역으로 주체자신의 내면을 대상화하는 것이다. 피사체의 묘사를 넘는 서사가 주체와 피사체란 분별을 넘어 서로 해방되면서 진화하는 사진이미지는 그래서 싱싱하다. 카메라를 흔들며 정동석이 다다른 곳은 자기 호흡으로 만난, 그리고 자기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대상과 숨을 나누는 지점이다. '주체의 시선'이라는 사진의 독점적 메카니즘으로부터 벗어나서, 피사체인 도시인들의 삶의 의지와 작가의 마음을 담은 열린 공간의 창출이기도 하다. ● 그곳은 정동석이란 개인이 사진을 찍는 행위를 통해서 도달한 곳이지만, 관객인 우리도 거기에 다다르면 '주체와 대상'이란 이분법에 함몰된 독선을 버리게 된다. 그때 내 몸의 모든 감각과 내 마음의 모든 문을 열고, 타인과 사물을 보고 만나게 되는 시각의 즐거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작가와 그의 앞에 있는 사물과 사람과 풍경을 넘나들며 열린 세계를 함께 나누는 것.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인위가 만든 온갖 경계와 제도와 틀과 분별을 넘어서는 자유를 얻는 것. 그것이 정동석의 작품과, 세계에 대한 인문학적 사유와, 카메라 흔들기라는 형식과, 최종적인 이미지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는 「마음혁명」이다. 리얼하게 현실과 대면하면서도 꿈과 희망이란 상상을 뜨개질하듯 엮어내는 진실하고 완벽한 내면의 혁명 말이다. ■ 김진하




framing effect


 

김병진展 / KIMBYUNGJIN / 金炳眞 / sculpture.installation   2011_0511 ▶ 2011_0529 / 월요일 휴관


 

김병진_Tacit Group_스틸_300×250×8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김병진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0511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일,공휴일_12:00pm~07: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진선 GALLERY JINSUN 서울 종로구 팔판동 161번지 Tel. +82.2.723.3340 www.jinsunart.com



김병진의 4번째 개인전은 그림자 이야기이다. ●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하얀색 조각과 그림자만으로 경계와 환영을 통해 실재를 허구로 허구를 실재로 만드는 플레밍 효과를 표현하였다. ● Framing effec ● frame은 고정된 것이라는 의미를 지니지만 framing은 움직임, 즉 매우 잠정적인 것으로 항상 달라질 수 있는 유동적인 사항을 연출하게 하는 개념이다. ● Framing effec 프레밍효과 는 그림자가 잠정적인 특징을 지닌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므로 그림자는 그것을 지각하는 사람들, 그 위치에 따라 다양한 옷을 입을 수 있다. 모더니즘의 상징체인 화이트 큐브에서 흰 색을 띄는 작품들과 그 그림자를 대면할 때, 우리는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주체의 판단을 중지해 놓고 즉각적으로 사물을 인지해볼 수 있다. 이로 인해 투명한 예술을 만날시 발생하는 고정된 의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시각적 유희에 의해 매 순간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달라지는 공간 속에서 프레임이 프레이밍에 의해 재해석되는 것처럼 그림자 프레이밍은 보는 이로 하여금 어떠한 답을 내리고 있지도 않는다. ● 그림자는 회화나 조각과는 달리 비물질적인 유동성을 갖는 환영(幻影, illusion)으로 빛과 조응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며 더 나아가 우리에게 허상과 실상의 문제를 보여주며 그림자와 실재의 구분이 과연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하나의 상(象)으로 고정되지 않고 하나의 언어로 정의되지 않는 그림자의 매력을 느끼게 될 것 이다. ■ 갤러리 진선







modified at 2011.05.08 01:59:27 by za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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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에리 푀즈 개인전      


                        조현화랑(02-3443-6364)
                        2011-05-19 ~ 2011-06-19
확대(키보드"+"버튼)----축소(키보드"-"버튼)


조현화랑 서울에서 티에리 푀즈의 개인전을 선보인다.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유럽을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 중인 작가는 자연의 모습을 구상과 추상을 넘나드는

형태, 화려한 색채, 그리고 과학적 상상력을 통해 캔버스에 담아낸다. 빛으로 가득한 캔버스 안 풍경이 불꽃처럼
솟아오르는 만개한 꽃송이들인지, 미세 현미경을 통해 바라보는 미생물의 세계인지, 혹은 이름을 알 수 없는
별들로 가득한 은하계의 모습인지 작가는 분명히 정의하지 않는다. 다만, 캔버스 위 색채의 향연을 통해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미지의 세계를 경험하는 듯한 시각적 유희를 안겨준다. 티에리 푀즈의 자유롭고 유동적인
패턴과 색채가 주는 표현력은 그리기보다는 캔버스 위에 페인트를 뿌리는 듯한 작업방식에서 비롯된다.

그는 캔버스를 테이블 위에 눕힌 상태에서 바탕색을 완성한 후, 채 마르지 않은 아크릴 물감 위에 다른

2011.05.09 14:26:53 / Good : 639 + Good

zabel

  • 작성시각: 2011.05.09 21:3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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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현대사진전, `방관자의 공연` 



            예술의 전당 갤러리 세븐(010-3929-1107)
            2011-05-04 ~ 2011-05-23
확대(키보드"+"버튼)----축소(키보드"-"버튼)
<방관자의 공연>-한중일 현대사진전

글/ 오영민(중국중앙미술학원 교수, fineart1107@hotmail.com)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일상생활은 귀납 종합할 수 없는 미세한 조각들의 시리즈가 아닌 강한 힘을 가진
권력체계의 창조물이다. 전설, 서적, 방송, 신문, 잡지, TV, 영화와 인터넷등 각종각양의 대중매체는 우리 앞에
거대하고 복잡 미묘하게 엮긴 정보망을 펼쳐 보인다. 이런 정보망은 무척 친절하고 리얼하여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 그들이 우리에게 제공한 것, 우리주위의 세계 그 자체를 믿게 만든다. 이런 환각
중 우린 조금의 의심할 여지없이 이 세계의 창조자이자 참여자라고 여긴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각종의 매체를 통해 본 것들이 우리의 생활 혹은 세계본질이라고 인식할 수는 없을
것이며, 선택되어진, 피동의 혹은 다시 재편성된 생활과 세계일뿐인 것이다. 이런 모든 매체는 문자와 영상의
배열 조합을 통해 우리를 대신하여 현재 진행 중인 이 세계를 인정하고 이해하며, 심지어 이 세계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정서를 제조하고 생산해 낸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는 근본적으로 어떠한 세계의 창조자도
참여자도 아니며 쇼파에 방치된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혹은 감정을 몰입하고 있는 방관자일 뿐이다.


그러나 어떠한 이들은 매체에 의해 문자화 영상화된 세계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하고 쇼파에서 일어나 다시
새롭게 응시하고 완전히 다른 세계를 발현한다. 그들은 우리들에 의해 ‘예술가’라고 불리는 이들이다. 그들과
우리는 동일한 이 세계의 방관자이다. 하지만 그들은 의심, 반성과 발현의 안목을 가지고 있다. 이런 안목은
그들을 이 세계에서 방관자 중의 공연자가 될 수 있게 만든다.


이번 전시는 이런 방관자 중 공연자의 무대이다. 전시되는 이 작품들은 방관자 중 공연자의 연출이라 보면
될 것이다. 한, 중, 일에서 온 예술가들은 시각화된 언어를 통해 우리들에게 이 세계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또
다른 각도와 루트를 제공한다. 동시에 우리에게 동아시아 문화권에 속한 특유한 생활경험과 정신상태를
보여준다. 이런 시각세계는 아마도 우리의 일상경험과 차별화 되어 있지만 지역문화의 특수 표정으로써 보다
더 진실되고 솔직한 그림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2000년 이후의 한국사진은 현대미술, 미학, 문화와 디지털 테크놀로지로부터 강력한 영향을 받으며
미술로서의 사진이 등장한다. 일본사진 역시 현대문명의 산물인 애니메이션, 만화, 게임의 영향으로 특유한
표현방식을 이용해 제작한 현대사진이 등장하게 된다. 중국의 경우 행위예술을 기록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진을 채택하면서 현대사진이 등장하고 행위예술 기록에 있어 시각적 효과를 더욱 강조하기도 하며
인위적으로 설정한 시 공간적 요소를 삽입하여 새로운 현실로 재창조 한 후 사진이란 매개체로 그들을
담고 있다. 이런 각색의 경험과 영향아래 삼국의 예술가들은 방관자 중의 공연자로써 사회, 역사, 문화등
세계를 이해하고 재해석하며, 우린 그들의 이런 다양한 모습을 통해 새로운 시각과 메시지를 전달받는다.



▣ 초청작가:
? 중국(12명)
왕칭송(Wang QingSong), 장지엔(Jiang Jian), 장이밍(Jiang YiMing), 리강(li Gang), 장야신(Zhang YaXin). 웨이비(Wei Bi). 리난(Li Nan). 친원(Qin Wen). 지앙리앙(Jiang Liang), 다이샤오빈(Dai XiaoBin), 왕통(Wang Tong), 샤오쿤(Shao Kun) & Ruggero Rosfer

? 일본(10명)
아라오 요코기(Alao Yokogi), 카티아 레딩(katia-reading), 무카이야마미즈키(Mizuki Mukaiyama), 스즈카야스(Yasu Suzuka), 키요타카 모로오카(Kiyotaka Morooka), 고이치로 쿠리타(Koichiro Kurita), 사나이 마사후미(Masafumi Sanai), 세이케 토미오(Seike Tomio), 타이시 히로카와(Taishi Hirokawa), 유키노리 토코로(Yukinori Tokoro)

? 한국(7명)
김아타(Kim Atta), 박형근(Park HyungGeun), 변순철(Byun SoonChoel), 손준호(Son JunHo), 안성석(Ahn SungSeok), 이명호(Lee MyoungHo), 이혁준(Lee HyukJun)





2011년 제4회 플랫폼 문화비평상 공모




접수기간 / 2011_0325 ▶ 2011_083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플랫폼 홈페이지로 갑니다.

접수마감 / 2011_0831_수요일(마감일 소인 유효)

인천문화재단 INCHEON FOUNDATION FOR ARTS & CULTURE 인천시 중구 제물량로 218번길 3 Tel. +82.32.455.7100 www.ifac.or.kr



인천문화재단이 발간하고 있는 격월간 아시아문화비평지 『플랫폼』은 침체된 문화비평계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지난 2008년부터 플랫폼 문화비평상을 제정, 매년 우리 문화계에 신선한 가능성을 선사할 신진비평가들을 발굴하고 있습니다. 자유로운 탈(脫)중심의 문화비평을 지향하는 플랫폼 문화비평상은 미술, 음악, 공연, 미디어 등 총 네 분야로 나뉘어져 있으며, 인천문화재단은 향후 당선자들의 비평활동을 적극 지원할 예정입니다. 보다 새로운 방향의 관점을 제시해줄, 해당분야 비평에 관심 있는 많은 분들의 참여를 바랍니다. ■ 인천문화재단

플랫폼 미술비평상 상금 300만원 응모분량_해당분야 평론 1편(200자 원고지 50~60매 내외)

플랫폼 음악비평상(대중음악) 상금 300만원 응모분량_해당분야 평론 1편(200자 원고지 50~60매 내외)

플랫폼 공연비평상(연극, 뮤지컬, 무용 등) 상금 300만원 응모분량_해당분야 평론 1편(200자 원고지 50~60매 내외)

플랫폼 미디어비평상(TV, 인터넷문화 등) 상금 300만원 응모분량_해당분야 평론 1편(200자 원고지 50~60매 내외)

마감_2011년 8월 31일(수)(마감일 소인 유효) 발표_개별통보 및 인천문화재단 홈페이지 (www.ifac.or.kr), 플랫폼 홈페이지 (platform.ifac.or.kr) 공지            (당선작은 『플랫폼』 2012년 1/2월호에 게재됩니다.) 시상식_별도공지 보낼 곳_400-021 인천광역시 중구 제물량로 218번길 3 (재)인천문화재단 기획홍보팀                (보내실 때 겉봉투에 '플랫폼 문화비평상 응모작'임을 명기해주십시오.)

응모 시 유의사항 1. 응모작은 온·오프라인 상에 발표되지 않은 순수 창작물이어야 합니다.     발표가 확인되거나 혹은 같은 원고를 다른 매체에 중복투고한 경우에도 심사에서 제외됩니다. 2. 비평대상은 작품, 인물 등의 소재뿐만 아니라 해당분야의 시의성 있는     문화현상을 다루는 것이라면 모두 가능합니다. 3. 응모 시 원고 겉장을 별도로 마련하여 응모분야, 원고제목, 성명, 주소, 개인연락처, 이메일주소 등을     반드시 명기해주십시오. 4. 원고는 A4용지에 출력하여 보내주십시오. 응모한 원고는 반환하지 않습니다. 5. 출신지, 학력, 나이 등 응모자격의 제한요소는 두지 않으나     향후 활동을 계속 이어나갈 순수 신인을 우대합니다. 6. 우편접수만 받습니다.

문의처 (재)인천문화재단 기획홍보팀 전화 032-455-7133 / 이메일 malmanson@ifac.or.kr / 홈페이지 platform.ifac.or.kr





Stage of Mind


이지영展 / LEEJEEYOUNG / 李知盈 / photography   2011_0512 ▶ 2011_0529 / 월요일 휴관


이지영_broken heart_잉크젯 프린트_96×120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미지 속닥속닥 Vol.20090422c | 이지영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0512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브레인 팩토리 BRAIN FACTORY 서울 종로구 통의동 1-6번지 Tel. +82.2.725.9520 www.brainfactory.org


구성된 현실: 이지영의 포토그래픽 픽션 ● 이지영의 프로젝트『Stage of Mind』는 작가가 2007년 말부터 꾸준히 작업해온 작품들로서 가장 최근의 7점의 사진 작업을 이 전시에 소개한다. 전통적인 사진 작업 방법인 보여지는 사물, 인물, 풍경, 즉 존재하는 세계를 보이는 그대로 "찍는다"라는 개념을 떠나, 이지영 작가는 자신의 카메라 앞에 이미지를 찍기 위한 장면을 "구성한다." 장면들의 무대가 되는 공간은 서울의 한 작업실 공간 이다. 360× 410 × 240cm(구 작업실 크기는 340 × 370 ×240cm)의 일정한 공간 안에 작가는 허구의 공간을 변화 무쌍하게 연출 시킨다. 『Stage of Mind』 (마음의 무대)란 프로젝트의 제목이 암시하듯이 이지영은 자신의 내밀한 심리적 상황이나,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세계를 규격화된 공간 안에 수시간의 수작업을 통해 자유로운 무대처럼 표현한다.
이지영_I'll be back_잉크젯 프린트_96×120cm_2010

작업의 동기는 자아탐구에서 비롯되었다. 각각의 스토리의 세트 안에 대체로 화면 깊숙한 안쪽에 등장한 인물은 작가 자신이 대부분이며, 뒷모습, 신체의 일부, 엎드린 자세 등을 통해 화면을 지배하기 보다는 파묻히는 이야기의 일부분으로 겸손하고, 신비로운 존재로 표현된다. 이번 새로운 작품들은 과감한 소재와 패턴, 화려한 색채의 사용과 주제의 선택에 있어서, 성숙하고, 일관되며 세련된 단계의 작가의 결정을 드러낸다. 동양과 서양의 전설, 한국 속담, 어린 시절 경험, 직면한 현실 등을 소재로 표현했다. ● 이 중, 「I'll be back」은 일월설화 (日月說話)에 등장하는 호랑이가 잡았던 썩은 동아줄의 이야기의 절망적 상황을 수백 개의 부채로 물살을 재현하고, 팔 하나가 밧줄을 잡으려는 긴박한 상황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의지로 역경을 이길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지영_last supper_잉크젯 프린트_96×120cm_2011

「Broken Heart」는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시각화한 작품으로 불가능한 상황에 대한 부질없는 도전, 「Last Supper」에서 치즈가 놓여있는 테이블을 향해 돌진하는 수많은 쥐들은 한정된 음식을 놓고 경쟁해야 하는 치열함을 표현했다. 이는 또한 죽음을 임박한 예수의 운명을 예고하는 마지막 식사인 기독교적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결국 역경을 디딘 인간은 재탄생 할 수 있다는 희망적 의미를 부여한「Resurrection」에서는 심청전과 오필리아 전설을 통해 죽음과 부활을 수작업으로 채색된 연꽃과 연 잎에서 생명이 싱그럽게 피어나도록 연출했다. 드라이 아이스를 써서 더욱 신비한 느낌이 나도록 했다.
이지영_panic room_잉크젯 프린트_144×180cm_2010

전설, 문학에서 영감을 얻은 도덕적인 주제가 강한 작품들과는 달리「Panic Room」과 「Treasure Hunt」과 같은 작품들은 아찔하게 현기증을 주는 방과, 빼곡한 풀밭을 각각 반복적인 패턴의 사용과 3개월간에 걸친 수작업 (공예용 철사를 이용한 풀밭 재현)을 통해 보는 이로 하여금 아연하게 만든다. 「Monsoon Season」은 지난 여름 홍수에 반 잠겨버린 작업실에서의 물난리 경험을 수많은 말미잘의 유혹을 뿌리치고 항해하는 위태한 모습을 연출했다.
이지영_resurrection_잉크젯 프린트_96×120cm_2011

이지영의 사진을 위한 "디렉토리얼 모드"적인 허구적 실현 구성은 1980년에 접어들면서 포스트 모던 사진 작가들이—보이는 세계의 현실에 입각한 진실성을 추구하던 모더니스트 사진 작가들의 사진 작업 방식에—반대하여 소재, 주제, 이에 따른 진실성까지 제조 될 수 있다는 포토그래픽 픽션의 창조의 방법론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결과물인 사진을 위해 작가 이지영이 만든 세트는 이른바 구성사진 (Constructed Image Photography)을 위한 것으로서 완성된 life-size모델 세트를 사진 작업이 끝나면 부수고 다시 만든다는 점에서 독일 조각가 및 사진작가 토마스 디멘드 (Thomas Demand)의 작업 방식과 비교 될 수 있으며, 이지영의 칼라 감각과 인물 사용의 초현실주의적인 Tableau× Vivants식의 연출 사진 (Staged Photography)은 미국 설치 사진 작가, 샌디 스코들랜드 (Sandy Skoglund)와 충분히 비교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일련의 작가들과 비교해, 이지영의 소재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한국적 문화와 정서를 반영하며, 엄청난 상상력을 동원하여, 한 장면을 위해 몇 개월의 수작업이 요구되는 장면을 만든다. 작가는 똑같은 한 공간을 수십 번씩 뒤 밖이게, 밀실 폐쇄의 공간이 팽창했다, 수축했다 하는 세심한 연출 능력이 있다. 또한 항상 하나의 인물이 각각의 화면을 조용하나 힘있게 조율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지영은 사진작가임과 동시에 무대 시각 연출가, 퍼포먼스 예술가, 설치 미술가, 조각가, 화가의 역할까지 섭렵한다. ■ 이혜원
이지영_treasure hunt_잉크젯 프린트_96×120cm_2010

Constructed Realities




Blind Spot


이문호_한경우展   2011_0513 ▶ 2011_0610 / 일,공휴일 휴관



초대일시 / 2011_0513_금요일_06:00pm

기획 / art company H

관람시간 / 11:00am~07:00pm / 토_11:0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살롱 드 에이치 Salon de H 서울 강남구 청담동 31-2번지 신관 Tel. +82.2.546.0853 www.artcompanyh.com


소셜 네트워크의 발달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이나 여행 사진을 웹에 올리고 자신의 이미지를 재구성한다. 해외여행 중 뉴욕의 타임스퀘어와 파리의 에펠탑 앞에서 찍은 사진을 일종의 전리품처럼 블로그나 페이스북에 올려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도구로 전락한다. 찍힌 이미지들은 소유자의 기호에 의해 선택된 다음, 웹 상에서 노출되어진다. 이러한 선택된 이미지를 통해 우리는 그 사람의 생활방식이나 환경 혹은 더 나아가서 성격까지 판단하게 된다. 그렇다면, 보는 이의 관점을 제한한 사진과 영상을 통해 인식되는 그 사람의 이미지는 과연 실재일까 아님 조작된 이미지일까. 브루스 나우먼의 「Corridor」설치작업에서 길고 좁은 복도 끝에 설치된 모니터를 바라보며 걷다 보면, 관람객은 모니터 속 화면에 주목하게 된다. 화면 속, 사람의 뒷모습은 모니터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멀어지고 있다. 잠시 뒤, 모니터 속 인물은 바로 자신의 시야에서 볼 수 없는 자신의 뒷모습임을 자각하게 된다. 여기서 관람자는 사람의 시점에서 바라볼 수 없는 자신의 뒷모습을 모니터를 통해 바라보며 자아를 인식하게 된다. 보편적인 시점에서 인지하지 못하는 면을 들쳐내는 순간, 우리는 본질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과연 올바르게 보고 있는 것인가? 사진과 영상을 통해 바라보는 관객의 시각은 사각 프레임 안에 한정되어, 평면 프레임 속의 이미지는 단일한 시점만을 제시해준다. 이로 인해 우리의 사고는 의도적으로 제한되고, 보여지는 이미지 그대로를 실재로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시각에서 보이지 않는 면을 들쳐내는 순간, 우리는 시지각의 사각지대Blind Spot를 깨닫게 된다. BLIND SPOT은 2명의 작가가 설정한 시점의 트릭 속에 관람자를 참여시킨다. 이로 인해 인간의 시각과 그것을 인식하는 사고에 치명적인 오류와 편견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 비틀기를 시도하게 된다.
이문호_Distortion(Studio)_람다 프린트_100×130cm_2007
이문호_Distortion(Toilet)_람다 프린트_100×125cm_2007

이문호의 작업은 이미지 인식에 있어 쉽게 범하게 되는 오류적 사고에 주목하고 있다. 볼록렌즈에 의해 왜곡된 공간 이미지가 사진으로 보여진다. 관람객은 사진이 보는 순간, 일차적으로 인물이 사라진 모노톤의 공간을 통해 조작된 이미지라는 것을 쉽게 인식하게 된다. 하지만 사진을 통해 습득되는 우리의 인식은 거기까지다. 실제모형을 보기 전까지는 렌즈의 굴곡에 의해 나타난 듯한 이미지가 정교하게 만들어진 미니어쳐 모형의 그대로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진 못한다. 이와 같이 관람자는 사진이라는 평면적 구조 속에서만 공간을 바라보는 순간, 작가가 설정한 속임수에 빠져들게 된다. 이문호의 영상작업 「The space of catharsis」는 카메라의 시선으로 미로 형식의 공간을 탐색한다. 미로의 공간은 가로막힌 벽들에 의해 제한된 시선의 이동을 유도한다. 벽에 가로막힌 좁은 시각은 그 미로의 구조에 대한 어떠한 판단 근거를 제시해주지 않는다. 공간 외부의 시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모형을 제시해 준 다음에야 우리는 미로의 구조를 인지하게 된다. 제한된 시점만으로 실재를 인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렇듯 우드락으로 재현된 조작된 공간은 사진이나 영상에 의해 단일한 시점으로 찍혀지고, 이 이미지는 인식의 왜곡으로 이어진다.
이문호_Space of catharsis_스틸컷_2010
이문호_Space of catharsis_시뮬레이션 모델_2010

사진과 영상을 바라볼 때, 자연스레 선험적 경험이나 지식에 기대어 그 속의 인물이나 사물을 판단하게 된다. 이러한 고정관념으로 습관적 사물읽기를 반복하는 사람들의 인식에서 한경우의 Blind Spot 이 드러난다. 한경우의 영상 속, 몬드리안의 차가운 추상과 텔레비전의 정지화면 등의 익숙한 이미지는 선험적 경험으로 인해 정확하게 읽혀진다. 하지만 사각의 화면을 통해 보여지는 완벽한 영상에 대한 불신은 관람자의 개입으로 인해 시작된다. 이미지들의 경계에서 움직이는 인물이 등장하면서 우리는 조작된 환경을 인식하게 된다. 캐비닛, 책, 박스 들로 구성된 완벽한 이미지는, 사실 감시카메라의 한정된 시선으로 바라본 사물들로 조합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본 전시에서 선보이는 한경우의 신작 「성조기」설치작업은 이전 작업과는 약간은 다른 선상에서 읽혀진다. 미국 국기인 성조기는 숫자나 언어처럼 사회적 약속이나 관습에 의해 인식되는 아이콘이다. 워싱턴 백악관에 걸려있는 국기와 어린이가 도화지에 크레파스로 그린 국기, 둘을 비교하면서 어느 것이 진짜라는 논의는 무의미하다. 따라서 성조기의 실재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제스퍼 존스의 「Flag」작품에서 착안한 이 작업은 시점을 제한한 완벽한 영상 이미지뿐만 아니라 사물들로 이루어진 조합 그 자체도 성조기의 실재가 되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여기서 어떤 것이 절대적이냐는 물음의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경우_Green House_가구, 와이어, 페인트_비디오설치_2009
한경우_Tableau with Objects_실시간 영상설치_혼합재료_2008
한경우_Tableau with Objects_실시간 영상설치_혼합재료_2008
한경우_Triangle,Circle,Square_실시간 영상설치_혼합재료_2008

인상주의 이후, 예술가들은 르네상스 시대의 산물인 원근법을 거부하고 보이지 않는 시각성에 주목하기 시작하였다. BLIND SPOT은 시각성에서 보이지 않는 면을 드러내기 보단 인식의 사각지대를 통해 이미지를 인지하는 과정의 오류를 짚어보고자 한다. 이문호와 한경우는 어떤 이미지나 공간을 보편적인 시각성에 기준하여 인식하는 것에 대해 물음을 제기하고 있다. 따라서 사진과 영상의 단일화 된 시점을 통해 다양한 이미지 조작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관람자들에게 인식의 재설정을 유도하고 있다. 단일화된 사고는 인식의 오류를 야기시키고 우리는 이제 본다는 행위 자체에 의문을 품게 되었다. 이제는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이 그 이미지의 실재인지 확인해 볼 차례다. ■ 이유영




유기적 공간 Organic Space

박은선展 / PARKEUNSUN / 朴恩鮮 / painting.installation.video   2011_0501 ▶ 2011_0614


박은선_Organic Space 유기적 공간_공간설치, 245×889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박은선 홈페이지로 갑니다.

작가와의 대화 / 2011_0509_월요일_12:00pm

주최 / 카이스트 경영대학 기획 / 이현서울갤러리 www.leehyungallery.com

관람시간 / 10:00am~06:00pm

카이스트_리서치 앤 아트 KAIST_Art & Research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 2동 207-43번지 KAIST 테크노 경영대학원 SUPEX Hall 2층 Tel. +82.2.958.3223 www.kaistgsm.ac.kr


KAIST Research & Art GalleryMay 1 - Jun 14, 2011 시간과 공간의 역학적 구조에 몰두하는 박은선 작가의 작품 세계를 읽어내는 데 있어 '기억'은 중심 키워드가 될 수 있다. 작가는 먼저 개인적인 기억과 경험들을 공간으로 전환시킨다. 그것은 우리의 과거 기억들 중 많은 부분이 공간에 대한 기억의 형태로 남아있기 때문인데, 일종의 추상적인 비물질적 기억은 구상적인 물질적 공간으로 전환된다. 그리고 이 전환은 다시 개념적인 비물질적 공간으로의 전환을 시도한다. 시간의 흐름 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기억들은 작가가 만들어내는 환영적 공간 또는 구체화된 실질적 공간 속, 다시 말해 2차원과 3차원 공간 모두에서 구현되고, 그럼으로써 비로소 하나의 현상으로 존재하게 된다. 공간에 대한 비선형적 기억들은 여러 겹들이 서로 중첩되고 한편으로는 현실의 공간과도 뒤섞이면서 한정된 물리적 공간을 입방체 너머로 확장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실제로 우리의 기억과 경험들은 시간 순으로 정렬해 있거나 일정한 같은 크기로 남아있지 않다. 이번 전시의 제목인 『유기적 공간』처럼, 작가는 기억과 경험의 요소들을 던져주고 그것들이 한 공간 안에서 각기 유기적으로 결합되거나 해체되면서 자율적 공간을 새롭게 창출하도록 한다. 여기서 관람자의 개인적 기억과 현장에서의 실제적 경험은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데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이처럼 작가는 물리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기억들을 구현해내기 위해 단순히 재현적 회화를 택하는 대신에 환영적 공간이라는 의도된 장치를 사용한다. 라인테이프, 거울, 홀로그램 같은 재료의 사용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이다.
박은선_Chairs_244×244×52cm_2002
박은선_Castle_거울, 라인테이프,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10×255cm_2010
박은선_Castle_캔버스에 LED 라이팅_25.8×30cm_2010

그의 작품에 더욱 주목하게 하는 것은 그 환영적 공간이 현실적 형태를 근간으로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며, 그 점에서 전통적 미술, 눈속임 회화(트롱프뢰유)가 갖는 환영과 다른 지점에 놓이게 된다. 오랜 미술의 역사 속에서 예술가들은 환영에 매혹되는 동시에 그것에 구속되어왔다고 할 수 있다. 수 세기 동안 3차원적 현실 세계를 2차원적 평면에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예술가들의 숙원이었으며, 매체적 속성에 주목하면서 환영적 공간을 배제시켰던 모더니즘시기를 건너 뛰어 다시금 환영의 문제는 예술가들의 필연적 주제로 되돌아 온다. 전시가 되고 있는 KAIST 건물 Supex홀의 한쪽 흰 벽면을 검은색 라인테이프로 채운 '유기적 공간'(2011)은 우리 눈에도 익숙한 서구식 건축물의 내부와 외부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것이 실제의 3차원적 건축 구조로는 불가능한 선들의 연결로 이루어진 허구적 이미지임을 알게 되고 관람자들은 일종의 낯설음을 경험하게 된다.
박은선_Castle-Same Time, Same Space_같은 시간, 같은 공간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3×91cm_2008
박은선_Castle_비디오_00:04:29_2010

이 점에서 박은선의 작품은 네덜란드 작가인 애셔(M.C. Escher)의 작품을 떠올리게 만든다. 우리들 세계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어지러운 영역 속으로 관람자들을 끌어들였던 그의 판화와 드로잉들은 평면과 3차원을 넘나들면서 이율배반적인 공간을 제시한다. 그의 작업이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공간의 창출은 세상이 단순히 우리가 보는 방식대로가 아님을 말해준다. 박은선의 작품 역시 원근법을 상실한 채, 한 건축물의 기둥은 동시에 다른 건축물의 천장이 되고, 계단은 또 다시 지붕이 되는 식이다. 이것은 다른 작품들, 'Castle'(2010) 그리고 'Chairs'(2002)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의자의 등받이는 동시에 다른 의자의 다리가 된다. 다만 애셔가 보여준 기묘한 공간이 평면을 바탕으로 하는 방식에 머물러 있다면 박은선의 작품은 실제의 3차원 공간을 활용하면서 더욱 입체적인 세계를 만들어 나간다는 것이다. 평면과 입체의 유기적 관계는 2차원 화면을 뚫고 나와 관람자가 발을 디디고 있는 실제 공간에서 더욱 유기적으로 조합, 해체를 반복한다. 이렇게 작가가 만들어낸 환영적 공간은 현실의 모습이 아닌 가상적 형태로 존재하면서 보는 이들의 감각적 지각을 더 극단적으로 확장시킨다. 이제 더 이상 실재와 환영, 현실과 가상은 구분되지 않은 상태로 유기적 상호소통을 활발하게 하게 된다. 그러한 움직임 속에서 만들어지는 지각의 확대는 관람자에게 새로운 미적 경험을 제공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유기적 공간'과 같은 라인테이프에 의한 작업들에서 보여지듯, 작가가 만들어내는 공간은 쉽게 사라질 수 있는 태생적 허약함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작가는 우리의 기억 또는 경험만큼이나 우리가 구축한 물질적 존재들 역시 하나의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리고 마는 비본질적인 것일 수 있음을 환기시킨다. 가느다란 선에 의해 생겨나는 공간처럼 물질적 공간, 그리고 현실은 허망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개념으로 존재하는 것들은 본질적인 것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박은선의 작품은 확장된 공간을 통한 새로운 지각의 확대와 더불어 존재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넓힌다는 데서 작품의 뚜렷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 정소라
박은선_Castle with Two Red Trees 두 그루의 붉은 나무가 있는 성_97×193.9cm_2009

우리가 살고 있는 실재의 공간과 우리 자신은 늘 부피로 존재한다. 벽의 표면에 가상의 공간이란 부피를 입히면, 나는 현실 속에 있으면서 동시에 가상의 공간에도 존재하게 된다. 벽이 평면이라면 벽 위, 가상의 공간 속 거울이 반추한 나 역시 가상의 공간 속에서 평면으로 존재한다. 작품 속 공간은 집이나 자연, 실제공간과 달리 현실적으로 존재 불가능한 일루전의 공간이다. 일루전의 공간은 작품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의 삶 또한 한 편의 일루전일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실제가 아니듯 일루전은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실제이며, 나와 나의 일상에서 연장된 또 다른 의미의 현실이다. 현실과 환영, 2차원과 3차원의 경계가 벽을 통해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며 그 둘 간의 경계는 무의미하다. 벽은 그 자체 평면이면서도 입체 공간을 구성하는 일부분으로서 입체적 성격을 지닌다. 일상의 공간에 전혀 다른 공간을 그려 넣음으로써 기존의 공간을 색다른 느낌의 공간으로 변모시켜 현실 속에 머물러 있는 우리의 시점과 감성을 확장시킨다. 내 자신이 적극적으로 시점을 이동하지 않으면 세상은 늘 똑같은 모습으로 보일 뿐이다. ■ 박은선




이랜드 스페이스 2기 작가 공모


접수기간 / 2011_0511 ▶ 2011_0530



접수기간 / 2011_0511 ▶ 2011_0530

기획/주최_재단법인 이랜드문화재단

이랜드 문화재단 서울 금천구 가산동 371-12번지 이랜드빌딩 Tel. +82.2.2029.9885


이랜드 스페이스 2기 작가 공모   공모부문   시각예술관련 평면분야   응모자격   국적, 나이, 경력 제한 없음   접수기간   2011_0511(수) ▶ 2011_0530(월)   지원내용 - 전시준비 지원금 100만원 - 2012년 이랜드 스페이스 초대 개인전 (1개월) - 전시회 리플릿 제작, 온·오프라인 홍보 - 전시회 서문, 작품운송 지원   제출자료 양식 - 공모지원서 : 소정양식은 웹하드에서 다운받아 작성 - 작품자료 : 이미지파일은 1MB 이상, JPG파일로 10컷 이내 - 이미지파일은 [작가, 작품제목, 재료, 크기, 년도] 순으로 표기   접수방법   웹하드, 우편접수 - 웹하드 아이디 elandart / 패스워드 1234 - 주소 : (우:153-803) 서울 금천구 가산동 371-12번지 이랜드문화재단   심사절차 - 1차 : 이랜드문화재단 내부 심사 - 2차 :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의 포트폴리오 심사   심사결과발표   2011년 6월 15일 이전 개별 통보, 서울아트가이드 7월호에 광고   문의   고경옥 큐레이터 Tel. 02.2029.9885 E-mail : ko_kyongok@eland.co.kr




사물의 편에서 보다


박용선_임선영_황혜선展   2011_0511 ▶ 2011_0610 / 일요일 휴관


박용선_Pen_Knitting_한지에 펜_100×100cm_2011

초대일시 / 2011_0511_수요일_05:00pm

참여작가 / 박용선_임선영_황혜선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요일 휴관

대안공간 충정각 ALTERNATIVE SPACE CHUNGJEONGGAK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3가 360-22번지 Tel. +82.2.363.2093 www.chungjeonggak.com


『사물의 편에서 보다』展은 사소한 사물을 통해 작가들의 단상을 담은 작품을 만나보는 대안공간 충정각 기획전입니다.
박용선_Pen_Knitting_한지에 펜_120×100cm_2011
박용선_Pen_Knitting_한지에 펜_120×100cm_2011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수많은 사물들과 함께합니다. 대개의 것들이 무심코 놓여있거나 때로는 그것이 거기에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는 경우들이 허다하지만 그 모든 것은 과거 어떠한 사정에 의해 누군가의 손을 거쳐 그 장소에 놓여 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잠자코 앉아 어떤 이의 삶에 개입된 크고 작은 사건들과 함께 했을 것입니다.
임선영_홍콩에서 가지고 온 그의 옷장_디지털 C 프린트_84×106cm_2008
임선영_Untitled 4_디지털 C 프린트_84×106cm_2008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물은 필요한 것, 편리한 것, 아름다운 것으로 인지될 뿐 우리와 교감을 이루는 것으로 인식되지는 않습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것과 연동되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물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물은 누군가의 역사와 시간을 반영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이를 연결시켜주는 장치가 되기도 하며 발상의 시작이 되기도 합니다.
황혜선_Drawing-Sculpture_알루미늄_67×46cm, 98×40cm_2010
황혜선_Drawing-Sculpture_알루미늄_98×81cm_2010

박용선, 임선영, 황혜선 세 작가는 우리가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 사물들에 얽힌 작은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있습니다. 뚜벅이며 누군가의 여정을 함께 걸어왔을 낡은 구두와 아직도 따듯한 체온이 남아있는 털 스웨터, 그의 가슴과 같이 깊고 포근한 침대처럼 그들의 이야기는 사적이고 작은 서사에서부터 시작되어 관객들의 감각을 간지럽힙니다. 본 전시는 주위의 모든 사물을 다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주고, 나아가 자신의 삶을 관조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 대안공간 충정각




판단의 보류 Deferred Judgement

백승우展 / BACKSEUNGWOO / 白承祐 / photography   2011_0513 ▶ 2011_0731 / 월요일 휴관


백승우_archive project-#009_디지털 프린트_2011

초대일시 / 2011_0512_목요일_06:00pm

기획 / samuso: 주최 / 아트선재센터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_매일유업㈜

아티스트 토크 / 2011_0527_금요일_07:00pm_아트선재센터 3층 참여방법_선착순 70명 이메일 신청 press@samuso.org (이름, 연락처, 소속 기재)

아트선재센터 교육 프로그램 단체전시관람_유치원~청소년 대상, 전시기간 중 사전예약 문의 및 접수_samuso: Tel. 02.739.7098 / artsonje_edu@hanmail.net

관람료 / 성인_3,000원 / 학생_1,500원

관람시간 / 11:00pm~07:00pm / 월요일 휴관

아트선재센터 ARTSONJE CENTER 서울 종로구 감고당길 43(소격동 144-2번지) Tel. +82.2.733.8945 www.artsonje.org


백승우는 현실과 가상의 공간을 대비시킴으로써 사진 매체의 속성을 탐구하고, 사진 영역의 틀을 넓히는 작업을 선보여 왔다. 백승우의 사진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변형과 재구축을 통해 '실재(real)'와 '실재가 아닌 것(unreal)', '보이는 것(visible)'과 '보이지 않는 것(invisible)' 사이에 숨겨져 왔던 세계의 틈새들을 포착한다.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이번 개인전은 백승우의 작업세계를 보다 진척시킨 신작들을 소개하는 자리이다. 전시 제목인 『판단의 보류(Deferred Judgement)』는 사진 이미지의 객관성, 직접성, 보편성 등에 의문을 제기하고, 프레임 안팎으로 감춰져 보여지지 않은 이야기들에 주목하고자 하는 백승우 작가의 주제의식을 나타낸다. 백승우의 사진 작업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이미지들이 가지고 있는, 우리가 의심의 여지 없이 사실 혹은 진실이라고 믿어 왔던 이야기들에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관람객들로 하여금 시각이미지를 해석하는 방식과 더불어 사진이라는 매체의 속성에 대해 재고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2층 전시장의 「Seven Days」(2010-2011)는 「Monday Morning」, 「Monday Afternoon」, 「Monday Night」, ···, 「Sunday Night」로 이루어진 21점의 사진 연작이다. 월요일부터 일요일의 하루를 각각 오전, 오후, 밤으로 나누어 작품 제목을 먼저 정한 후, 이와는 무관하게 작가가 정한 규칙에 따라 일본 동경에서 촬영된 「Seven Days」는 관람객이 제목에서 기대하는 사진의 내용을 의도적으로 전복시킨다. 이 외에도, 이미지를 13개 조각으로 나누어 13개 국가로 각각 보내 출력 및 재조합하는 실험적인 제작방식을 선보이는 「Utopia-#032」(2011)와 이전 작업들의 제목인 "Real World", "Blow Up", "Utopia"를 철재 구조물에 네온 사인으로 설치하여 촬영한 「Signboard」(2011)가 함께 소개된다.
백승우_Seven Days-Monday Morning_디지털 프린트_150×183cm_2011
백승우_Seven Days-Monday Afternoon_디지털 프린트_125×152cm_2011
백승우_Seven Days-Monday Night_디지털 프린트_150×183cm_2011
백승우_Utopia-#032_디지털 프린트_220×527 cm_2011

3층 전시장에서 선보이는 「Archive Project」(2011)와 「Memento」(2011)는 작가의 아카이브 자료를 활용한 신작이다. 「Archive Project」는 작동이 멈춘 공장 안의 기계 설비 혹은 재건축 중인 건물의 광경을 담고 있다. 작가가 직접 촬영한 사진과 아카이브에서 가져온 시간, 공간, 용도가 각기 다른 이미지들을 교묘히 조합하여 마치 실재하는 하나의 장면을 담은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어진 「Archive Project」는 이미지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오류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Memento」는 작가가 미국의 벼룩시장에서 구매한 5만 여 점의 사진에서 1차 선별한 2천 7백여 점을 대상으로 작가가 초대한 8명이 각각 8장씩을 선택하여 각자가 떠오르는 대로, 임의의 제목을 기입한 작품이다. 관람객은 선택된 사진의 출처와는 전혀 관계없이 재맥락화된 사진들을 감상하게 되는데, 작가는 이를 통해 사진으로 기록되는 일상의 기억이 얼마나 제한적이며 왜곡되기 쉬운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백승우_Archive Project-#001_디지털 프린트_150×193cm_2011
백승우_Archive Project-#008_디지털 프린트_150×185cm_2011

전시와 함께 백승우 작가의 모노그래프 『아무도 사진을 읽지 않는다(Nobody Reads Pictures)』가 출간된다. 모노그래프는 시리즈별 작품 이미지와 작품 설명, 에세이, 그리고 작가와의 인터뷰로 이루어진다. ■ 아트선재센터




널 위한 자리

모준석展 / MOJUNSEOK / 牟埈奭 / sculpture   2011_0513 ▶ 2011_0605 / 월요일 휴관


모준석_작은 속삭임_동선, 스테인드글라스_165×105×76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모준석 블로그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0513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화~토_10:00am~06:30pm / 일_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선컨템포러리 GALLERY SUN CONTEMPORARY 서울 종로구 소격동 66번지 Tel. +82.2.720.5789, 5728 www.suncontemporary.com


모준석의 조각 - 타자에게로 열린 집, 관계를 복원하는 집 ● 현대인의 인간관계를 엿볼 수 있는 말 중에 관리한다, 혹은 관리 들어간다는 말이 있다. 무심결에 보고 듣는 이 말은 삭막한데, 이 말이 인간을 사물화하기 때문이다. 마음에 들면 친구로 등재했다가도 별 이득이 없으면 용도 폐기된 사물을 버리듯 삭제하면 그 뿐이다. 그리고 내 소셜 네트워크는 유명 인사들과 영향력 있는 사람들로 세팅된다. 그리고 그 사람들도 머잖아 무명해지거나 영향력을 잃는 순간 다른 유력 후보들로 교체될 것이다. 개개인이 인력풀을 관리하는 시대정신에 걸맞게 나의 인간관리 파일은 항상 깔깔이 새 부속들로 채워진다. 그리고 헌 부품은 즉각적으로 처리된다. 그것도 단 한 차례 삭제 커서를 누르는 것만으로 이 모든 일들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이 놀라운 신세계는 얼마나 멋진 것인가.
모준석_저녁 만찬_동선, 스테인드글라스_86×38×27cm_2011

인터넷은 소셜 네트워크를 열었다. 그래서 나는 골방에 틀어박힌 채 세상 끝에 있는 친구를 만들 수 있고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그 친구는 익명적이고 추상적인 기호일 뿐, 실감이 없다. 구닥다리 아날로그 시대의 유산인 교제가 없고 교감이 없다. 그래서 나는 알짜배기 정보에 버금가는 친구들이 있지만, 사실은 친구가 없다. 너무 많은 정보는 오히려 정보에 둔감해지게 하고, 너무 많은 이미지는 이미지에 무뎌지게 만든다. 정보 불감증이고 이미지 불감증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론 그 정보와 이미지에 탑재된 리얼리티에 대한 감각을 떨어지게 만든다(아직도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보와 이미지가 리얼리티를 담보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인터넷 불감증이다. 쇼셜 네트워크는 타자를 향해 열린 길 같지만, 사실은 막힌 길이다. 소통은 단순히 정보가 교환되는 차원이 아니다. 교감이 없는 소통은 소통이 아니다. 그렇다면 교감도 없고 소통도 없는 이 시대에 소통은 어떻게 가능해지는가.
모준석_잠못이루는밤_동선, 스테인드글라스_101×73×55cm_2011

집을 소재로 한 모준석의 조각은 사실은 이 문제를 건드린다. 네트워크 곧 관계와 소통이, 그리고 그 단자인 주체와 타자와의 관계가 핵심이다. 불통의 시대에 소통의 계기를 트는 일이며, 그 계기를 매개로 한갓 사물관계로 전락한 주체와 타자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 관건이다. ● 작가는 유년시절에 유난히 이사가 잦은 편이었다. 그리고 성인이 된 이후에는 수년간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툭하면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옮겨 다녀야 했다. 아마도 매 학기가 바뀔 때마다 그랬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집에는 가족이 살고, 방에는 동료들이 산다. 같이 더불어 살아야 하는 만큼 매번 자기변신이 필요했고(자기변신은 주체가 타자로 변신하는 경험 곧 타자가 돼보는 경험이란 점에서 일종의 역할극과도 통한다), 그 변신이 집에 주목하게 했다. 그러므로 그에게 집은 처음부터 가변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주지하다시피 집은 정체성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집이 가변적이라는 것은 곧 정체성 또한 가변적이라는 말과도 같다. 그러나 상식적으론 집도 정체성도 결정적이다. 그러므로 집도 정체성도 비결정적인 것이라고 보는 것은 사실은 작가의 입장이며, 그 결정적인 논리에 내재된 억압의 계기를 트고 열어 놓으려는 작가의 의지의 소산으로 보인다. ● 보통 집은 막혀있다. 그렇게 막혀있는 집은 타자에 대해서 배타적이다. 그 배타적인 논리가 정체성의 논리와 통하고 자기동일성의 논리와 통한다. 거칠게 말해 정체를 밝히라고 요구해오는 것이 정체성의 논리며, 그렇게 밝혀진 정체를 결정적인 것으로 보는 태도가 자기동일성의 논리다. 거기에 타자가 들어설 여지는 없다. 이것(혹은 주체)이면서 동시에 저것(혹은 타자)이기도 한 양가성의 논리를 위한 자리는 없다.
모준석_하나가 되어주셔요_동선, 스테인드글라스_21×57×58cm_2009

그러나 따지고 보면 주체는 이미 처음부터 잠재적인 타자였다. 아기가 생전 처음 거울에서 본 것도 타자였고, 나르시스가 물거울에서 발견한 것도 타자였다. 그래서 랭보는 자신이 곧 신이며 악마며 타자라고 했다. 내 속엔 잠재적인 네가 살고 있고, 네 속엔 잠재적인 내가 살고 있다. 나는 너로 인해 비로소 정의되는 만큼 네가 없으면 나도 없다. 내가 보고 들은 것이 나를 만들고, 그렇게 나를 만들어준 것이 모두 타자가 아닌가. 그러므로 어쩌면 주체보다 타자가 더 또렷할지도 모른다. 타자로부터 나에게 건너온 비동일성의 영역과 범주가 더 실감날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체는 타자라는 하부구조 위에 축조된 상부일지도 모른다. 이처럼 주체는 타자에 긴밀하게 연동된 탓에 타자가 흔들리면 같이 흔들리고, 타자가 부대끼면 같이 부대낀다.
모준석_내 마음이 머물렀던 자리_동선, 스테인드글라스_78×60×60cm_2011

이런 차원을 작가는 기독교적 윤리를 빌려 케노시스 곧 자기 비움이라고 했다(예수는 신을 비울 수 있었기에 인간을 품을 수가 있었다). 무슨 도 닦는 소리 같기도 한 이 자기 비움의 경지는 사실은 이처럼 주체와 타자의 연동성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연동성을 레비나스는 윤리적 공감으로 해석한다. 이를테면 걸인을 보면 그냥 모른 척 지나칠 수가 없다. 걸인의 얼굴에 신의 얼굴이 포개져 있고, 그 신의 얼굴이 윤리적 공감을 호소해오기 때문이다. 이때의 신의 얼굴이 타자며 트라우마다. 신의 얼굴은 말하자면 트라우마를 통해서 온다. 타자 곧 세상의 모든 트라우마 속에 신의 얼굴이 편재해 있다(숨은 신과 편재하는 신). 신은 세상의 모든 고통 위로 내려앉는다. 고통으로 각인된 타자의 얼굴이 곧 환원 불가능한 비동일자의 얼굴이며, 절대자의 얼굴이며, 신의 얼굴이다. 그리고 윤리적 공감은 요샛말로 윤리적 연대가 되며, 연동과 연대는 곧 존재론적(혹은 형이상학적?) 거울을 위한 매개에 해당한다. 이렇게 주체와 타자는, 그리고 나와 너는 서로에게 거울이 된다. 윤리적 공감과 윤리적 연대, 이 삭막한 시대에 도무지 씨알이 먹힐 것 같지가 않은 이 말에 작가는 다시 빛을 쪼이고 싶어 한다. 그리고 타자를 향해 열린 집을 그 상징적 좌표로 삼는다.
모준석_서로에게 속한 사람들_동선, 스테인드글라스_56×102×50cm_2010

여러 경우로 집을 소재로 한 작가들은 많다. 그 집들은 대개 막혀있거나 닫혀있어서 이미 결정적인 의미 밖에 담아낼 수가 없다. 그런데 작가의 집은 한눈에도 다르다. 그리고 그 다른 집들은 결정적인 의미와 함께 비결정적인 의미들에 대해서도 열려있다. 가녀린 동선을 일일이 망치로 두드려 질감을 만든 연후에, 그 선들을 용접으로 연이어 붙여나가는 방법으로 집을 짓는다. 그리고 집에 다른 집을 중첩시켜 집 속에 집을 짓고, 집 위에 집을 짓는다. 이렇게 집에 집들이 어우러져 하나로 연속된 속이 빈 덩어리를 만드는데(작가의 조각에는 매스가 없다), 그 덩어리가 때로는 마을 같고, 더러는 사람 같고, 이따금씩은 달 같다. 사람 사는 동네며 사회며 세상을 형상화한 것이고, 타자들이 어우러져 주체를 만들어준 사람의 형상을 유비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달동네의 꿈꾸는 풍경을 시적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 그 덩어리에서 단연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선이다(작가의 조각은 일종의 드로잉 조각으로 범주화할 수가 있을 것). 선에 선이 연이어지면서 집을 만들고 마을을 만들고 사람을 만들고 달을 만든다. 그래서 그 선은 집과 마을, 사람과 달을 만들어주는 매개 같고, 관계의 은유적 표현 같다. 타자에게로 열려진 길 같고, 비동일자에게로 연이어진 관계의 망 같고, 네트워크 같다. 안과 밖이 따로 없는 이 통 구조 형태의 커뮤니티에서 주체와 타자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나아가 아예 그 의미를 상실하고 만다. 주체는 타자에 의해서 정의되고, 타자 또한 주체를 버팀목 삼아 설 수 있게 된다.
모준석_5월의 신부_동선, 스테인드글라스_69×62×61cm_2011

그리고 정면에서 보면 선들이 두드러져 보이는 탓에 무슨 평면적인 그림 같다. 그리고 그 그림은 선들이 만들어내는 그림자와 어우러져 더 복잡해지고 심도가 깊어진다. 그런가하면 평면과 입체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이 모두를 아우르는 집들 사이사이로 이따금씩 스테인드글라스로 처리해 창을 내기도 한다. 꽤나 아날로그적이고 따뜻한 감성이 전해져오는 그 창은 아마도 마음의 창일 것이다. 그 창이 불현듯 세상 끝을 보게 해주는 월드와이드웹이며 윈도라는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작가는 그 창을 통해서 주체와 타자와의 꽉 막힌(차라리 왜곡된?) 관계가 복원되기를, 그래서 윈도와 네트에 걸맞게 진정한 소통이 가능해지기를 꿈꾸는지도 모른다. ■ 고충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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分/神



김태연展 / KIMTAEYEON / 金泰延 / painting   2011_0511 ▶ 2011_0516



김태연_12支生圖-寅_단청기법 비단에 채색, 실크스크린_203×94cm_2009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김태연 홈페이지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2층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分/神 – 전통적 神의 해체와 재생산 ● 전세계적으로 근대 이전까지의 소위 "전통" 예술을 지배해 온 것은 종교, 다른 말로 하면 神이었다. 특히 미술은 당시 문맹률이 높았던 현실을 반영하여 글을 대신하여 종교의 교리를 전달하고, 神의 위엄을 칭송하기 위한 중요한 매체였다. 그러나 이렇게 절대적이었던 종교/神의 지위는 이성과 과학을 중시하는 근대에 와서 설 자리를 잃게 되고, 그 영향은 예술에까지 미치게 된다. 예술의 가치가 "숭배가치"에서 "전시가치"로 변화할 것임을 예언했던 발터 벤야민의 말대로, 현대 미술에서 전통적인 종교/神의 가치를 찾기는 쉽지 않게 되었다. ● 특히 일제 강점기와 뒤이은 한국전쟁을 겪고 폐허에서 삶을 일구어 내야 했던 한국의 미술은 좀 더 급박하게 변화해 왔다. 서구식의 성장에 몰두하느라 한국 특유의 종교/神과 같은 전통적 주제와 기법은 등한시되었다. 그러나 서서히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자각이 이루어 졌으며, 전반적 문화 속에서 전통의 의미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 김태연의 작품 전반을 관통하고 있는 고민 또한 한국 미술, 나아가 한국 사회에서 전통의 의미에 대한 질문이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라는 광고 문구로 대변되는 전통을 통한 세계화를 꿈꾸었던 시대가 그가 성장한 시대이다. 쉴틈없이 밀어닥치는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동양화 (혹은 한국화) 작업을 하는 그가 결코 놓을 수 없던 화두가 전통이었다. 급변한 한국 사회에서 전통은 이미 사라진 것이라고 흔히 생각하지만, 김태연이 바라본 한국 사회에는 전통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으로 다만 해체와 변용을 반복하며 변화해왔을 뿐이다. 특히 전통 문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종교/神은 외형적으로는 옛 모습을 알아보기 어려우나 해체되고 재생산된 모습으로 현시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는 이 점에 주목하여 한국 특유의 전통적 神이 현재 어떻게 해체되고 재생산되고 있는지를 자신의 작품을 통해 탐구하였다.
김태연_12支生圖-卯_단청기법 비단에 채색, 실크스크린_203×94cm_2011
김태연_12支生圖-未_203×94cm_2011


전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그 중 첫 번째는 「십이지생도」이다. 삼국시대부터 그 연원을 찾아볼 수 있는 소재인 "십이지신도"를 차용하여 현재 존재하는 각종 직업군의 모습을 한 동물들을 전통적인 비단 초상화 기법과 단청(丹靑) 기법을 사용하여 표현한 작품이다. 과거의 "십이지신"은 액귀나 침입자 등이 무덤 주인의 안식을 방해하는 것을 막기 위해 무덤의 벽화에 그려지거나 조각상으로 만들어져 무덤의 수호신 역할을 하였다. 사람들은 무덤을 지키는 "십이지신"에게 그만큼 영험한 힘이 있다고 여겼고, 그들의 존재 자체에서 심적 안정감과 위안을 느끼게 되었다. ● 김태연은 이러한 "십이지신"을 다양한 인간군상으로 대체하여 표현하며 과거에 종교/신의 기능이었던 심적 위안이 사회 내부의 인간관계로 이동하였음을 시사한다. 상상속에서 존재하였던 수호신적인 대상이 현재의 인간들 속에서는 험난한 세상 속에서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능력 즉 자신의 직업이나 권력, 재력의 의미로 다가 온다. 살아있는 현시대의 십이지생도인 것이다. 결국 김태연의 십이지생도는 전통적으로 神이 수행했던 심적 위안이라는 역할이 현대의 살아 숨쉬는 인간관계에서 재생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태연_新神分圖-최씨_단청기법 비단에 채색, 실크스크린_210×74cm_2011
김태연_新神分圖- C씨_단청기법 비단에 채색, 실크스크린_210×74cm_2011


두 번째로는 「新神分圖」가 있다. 조각보로 만들어진 족자 안에 다양한 성별과 연령, 국적의 지금 생존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그려진 작품이다. 구도나 채색 기법이 전통적인 초상화를 연상시키지만, 작품을 자세히 살펴보면 초상화와 비단 사이의 신분증 같이 보이는 조각보 부분의 띠에 실크 스크린으로 인쇄된 작은 얼굴(들)이 인쇄되어 있다. 이는 단순한 초상화라기 보다는 전통적인 기법을 빌려 표현한 현대의 신분에 대한 작가의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 사실 전통적으로 초상화는 존경 받는 신분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었기에 초상화의 존재만으로 사회적 신분이나 생전의 공적을 나타내는 의미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살아있는 인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주로 고인의 자손이 조상에 경의를 표하고 나아가 숭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이었다. 반면에 현대의 신분증은 과거와는 달리 살아있는 사람을 위한 것으로 종류도 대단히 다양해졌고 여러 가지 신분증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 김태연은 전통적 초상화에서 현대의 신분증으로 이어지는 흐름에서 숭배의 대상이 사후에서 생전으로, 즉 (조상)신에서 인간으로 변경되었음을 포착해냈다. 동시에 신에 대한 전통적 숭배 자체는 해체되었지만, 이는 인간의 삶을 향한 숭배로 재생산되었음을 전통적 초상화이자 신분증 모두가 적용 가능한 형태의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 마지막 작품은 「지름신 팔폭병풍도」이다. "지름신"이란 요즘 새롭게 등장한 神의 이름으로, 과소비를 조장하는 충동적 욕구에 신격을 부여한 것이다. 현대인의 소비 욕망은 이제 신격까지 부여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람들은 "지름신"에 "귀의"하여 상품을 소비하는 과정에서 이전에 종교/神에서 찾을 수 있던 위안을 찾고 있는 것이다. ●「지름신 팔폭병풍도」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개는 이와 같은 "지름신"의 소산으로 같은 호피무늬 상의를 소유하고 있다. 성별과 연령이 서로 전혀 다르고 심지어 종족의 차이도 존재하지만, 같은 상품을 소유하는 것만으로 그들은 같은 신을 믿는 것이 된다. "지름신"을 믿는 그들의 표정은 모두 경건하게 경직되기보다는 상당히 가볍고 즐거워 보인다. "지름신"이 신이기는 하지만 그는 전통적인 신처럼 멀리서 경배 받는 존재가 아니라 생활 가까이에서 그를 믿는 자에게 즐거움을 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지름신"이란 신의 이름을 지녔지만 과거와는 다른 전혀 새로운 신이다. 김태연은 이와 같이 과거의 종교/神의 의미가 해체되어 전혀 새로운 神으로 재생산되고 있음을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김태연_지름신 병풍도_설치_2011


김태연의 이번 전시를 관람하면서 작품의 주제 못지 않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그가 이 모든 작업을 철저하게 전통적 제작 기법의 복원을 바탕으로 진행했다는 것이다. 「십이지생도」의 단청 작업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작품들이 견화(絹畵)인데, 비단에 오리나무로 염색을 진행하는 것부터 안료의 사용, 배채(背彩, 또는 복채)법까지 전통적인 초상화 제작 기법에 바탕을 두었다. 단청기법 또한 재료적 기법연구와 더불어 쌍자등무늬 등 전통 문양에 대한 연구가 반영되었다. ● 이와 함께 그는 작품의 주제가 지닌 동시대성을 표현하기 위해서라면 현대적인 기법 또한 적절하게 적용하였다. 「新神分圖」와 「지름신 팔폭병풍도」에서 공통적으로 실크스크린 기법을 사용한 것이 그것이다. 실크스크린은 지극히 서구적이고 현대적인 인쇄 기법으로 일견 동양화 (혹은 한국화) 작품과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 작품에서 실크스크린 인쇄와 비단은 훌륭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 그밖에 「新神分圖」와 「지름신 팔폭병풍도」이 공통적으로 지닌 다른 특징은 표구(表具)에 대한 해체의 시도이다. 기존의 견화에서는 그림의 뒤를 배접함으로서 전면에서만 배채의 효과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김태연은 배채를 그대로 노출 시키거나, 전채와 배채를 두 개의 평면으로 분리하여 분리된 전채와 배채의 거리가 만들어내는 깊이 감으로 3차원에 가까운 표현을 실험하였다. 최대한 전통적인 기법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기존의 동양화가 지닌 2차원적 평면성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이다. ● 김태연은 전통적 神의 개념과 속성이 현대에 어떻게 변화하여 존재하고 있는지를 다양한 시각적 시도를 통해 전달하여, 전통은 현재와 단절되어 존재하고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니라 해체와 재생산을 거듭하며 끊임없이 현재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이야기하려 한다. 그의 이번 전시가 보여주는 주제 의식과 제작 기법 모두가 일관되게 "살아있는" 전통을 보여주려 노력하고 있다. 지극히 전통적인 방식으로 이 시대를 탐구하는 이 젊은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 조현경




Good Luck


유현미展 / YOOHYUNMI / 柳賢美 / photography.video   2011_0512 ▶ 2011_0601 / 월요일 휴관



유현미_십장생 No.1_C 프린트_148×157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00927i | 유현미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0512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인 GALLERY IHN 서울 종로구 팔판동 141번지 Tel. +82.2.732.4677~8 www.galleryihn.com


갤러리 인은 오는 5월 12일부터6월 1일까『Good Luck』이란 제목으로 유현미 작가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유현미는 서울대 미대 조소과, 미국 뉴욕대학에서 수학했으며 1997년 귀국 후 금호미술관, 아트선재센터, 몽인아트센터 개인전등 주요 미술관 전시를 통해 역량을 인정 받은 작가이다. 이번 전시에서 유현미는 '길몽'에 등장하는 개체를 화면에 담아 현실과 가상의 연결고리로 활용한다.
유현미_십장생 No.4_C 프린트_126×190cm_2011


유현미의 작업과 마주쳤을 때, 관람자들의 일반적인 첫인상은 '하이퍼 리얼리즘 회화 같지만 묘하게 이질적인 공간을 촬영한 사진' 이라는 점에 이의가 없을 것이다. 이는 실제로 작가가 회화적 공간을 사진으로 촬영하였기 때문인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당히 수고스러운 과정이 포함되어있다. 작가는 우선 작업실 내의 일정 공간을 설정하고 공간 전체를 2차원의 캔버스에서의 배경으로 삼는다. 그리고 작가가 선정한 사물들이 배치된 이후에는 공간과 사물의 표면에 석고나 젯소 등의 서페이서로 회칠을 한다. 이는 극도로 플랫한 최종 작업물인 사진 속에서 마치 회화에서의 마티에르와도 같은 효과를 보여준다. 이후 화면에 등장할 영역에 색을 입히는데, 사물과 배경의 그림자까지 페인팅으로 대치된다. 이런 표현 방식은 작가가 직조한 환상적 공간의 면모를 부각시키는데 크게 작용 한다.
유현미_십장생 No.5_C 프린트_100×146cm_2011


여러 미술적 방식이 동원되어 완성된 사진에는 실상 건축, 조각, 회화, 사진, 그리고 그 외에도 무수히 많은 표현으로서의 행위들이 누적 되어있다. 단순히 환영을 표현하기 위해, 혹은 일종의 관람자를 향한 트릭을 염두 해둔 행위라고 하기에는 자못 지나치게 고된 작업방식을 선택한 것은 아닐까? 유현미의 작업이 그토록 고집스럽게 말하는 '환상적 순간'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환영이 실제와 어떤 방식으로 독립된 상태로 관계 지어지며 또한 서로의 존재가치와 영역을 견고히 하고 있는지, 그리고 언뜻 불합리한 두 차원이 어떤 방식으로 연관되어 공존하는지를 매체간의 변주를 통해 보여주기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실제 공간 내 오브제들은 수 차례의 매체 변형을 통해 통상적 기표가 일그러진다. 그 중 공간이 가장 큰 차원적 변화를 맞게 되며 환영의 지위를 획득한다. 이와 더불어 주어진 표현 공간내의 장면이 지니고 있는 일반적이거나 토착적인 기의 마저도 무중력, 부조화, 불가능한 상황설정 등을 통해 우리가 일반적으로 메타포를 대하는 관점으로서는 독해 불가능한 상태로 변형되는데 이는 우리가 꿈을 해석 하는 방식과도 상당히 유사하다.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그동안의 작품에서와 본인 외에도 주변에 실제로 있었던 꿈 혹은 길몽의 몇몇 메타포를 동원해 소주제 형식으로 재구성한 작품들이다. 환영적 불가해함을 말하던 작가가 느닷없이 현실적 소 얘깃거리로 천작하는지 의구심이 생겨날 법도 하나 '현실에 근거한 비현실이 더 환상적이다' 라는 작가의 주장과 사회적으로 '길몽'을 상징하는 은유적 정의는 동양에 유한하지 않은가라는 단순하지만 흥미로운 의문과 맞물려 작가 특유의 화면구성을 빌어 다채롭게 펼쳐진다.
유현미_십장생 No.10_C 프린트_100×150cm_2011
유현미_테이블 위의 석류 No.2_C 프린트_100×150cm_2011


특정좌표로 정의 되지 않는, 혹은 정의 되어진다 하더라도 상대적인, 수없이 주름 잡힌 무수한 관념적 차이의 계단을 오르내리는 작가의 최근 작업을 통해 명멸하는 개인적 환영의 지표를 확인하는 좋은 기회가 되길 바란다. ■ 방윤호




얼음 꽃 Frozen flowers


홍주영展 / HONGJUYOUNG / 洪珠英 / photography   2011_0514 ▶ 2011_0528



홍주영_frozen_flowers-0719_C프린트_150×100cm_200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미지 속닥속닥 Vol.20061115b | 홍주영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11_0514_토요일_04:00pm
한원미술관 초대展
관람시간 / 10:00am~06:00pm
한원미술관 HANWON MUSEUM OF ART 서울 서초구 서초동 1449-12번지 Tel. +82.2.588.5642 www.hanwon.org


홍주영 사진전 "얼음 꽃" 에 부쳐 ● 꽃은 형태에서 오는 조형과 향기, 화려하게 피었다 처절하도록 시들어가는 문학적인 본성으로 인해, 인간과 자연의 은유이자 상징물로 자리매김해 왔다. 그렇기에 꽃은 보편적인 아름다움의 가시물로써, 인류 문명이 쌓인 시간만큼이나 깊고 다양한 의미들을 형성하고 있다. 꽃의 언어학적 파장은 강인한 생명력과 순수하도록 오롯한 생애의 절망이 묘하게 겹쳐 있다. 그래서 꽃을 부르는 것 자체로 우리는 기억할 수도 없는 오래된 신화의 궤적을 밟거나 가슴이 움찔한 피어나는 감정의 울림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신화와 역사와 삶, 이 모든 것이 꽃으로부터, 꽃에 이르기까지, 꽃을 위한 찬가와 향연은 그래서 계속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꽃은 밤과 죽음의 대척점에 위치한다. 그리고 검은 빛 옷자락을 휘날리는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사자에 화려하게 맞선다. 꽃은 그 유한의 죽음에 맞서 빛나는 조롱으로 삶을 찬미한다. 홍주영의 사진으로 찍어내는 얼음 꽃 또한 꽃의 무한한 생명력을 얼음이라는 순간성으로 역설한다. 그리고 사진이라는 찰나의 예술로 영원히 기록하고 있다. 이 감동적인 순간으로 빚어진 생(生)의 환희, 터져 나오는 미(美)의 절정! 우주의, 자연의 보이지 않는 형언할 수 없는 생명의 웅혼한 기상이 카메라의 시선에, 그 성역의 비밀을 남김없이 벗어버리고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이다.
홍주영_frozen_flowers-0933_P프린트_67×100cm_2009
홍주영_frozen_flowers-0713_C프린트_150×100cm_2009
홍주영_frozen_flowers-0721_C프린트_180×120cm_2007


얼음 속의 꽃은 꽃이라는 이름으로 한정된 형태를 초월하고, 강화된 색의 변주와 신비하고 풍부한 꽃의 표정들을 드러낸다. 그 꽃은 추상화된 꽃이며 꽃의 뉘앙스를 담은 세계와 생명의 표상으로 변환된다. 우리는 그 앞에서 마치 유한한 시간 앞에 맞닥뜨린 존재의 서늘함처럼, 고요한 성찰 속에서 부서지듯 번지는 영원과 신화에 관한 그리움 앓기가 시작된다.
홍주영_frozen_flowers-0722_C프린트_67×100cm_2007
홍주영_frozen_flowers-0931_P프린트_225×150cm_2009


이처럼 한원미술관이 준비한 홍주영의 사진전은 생명의 아름다움과 그 안에서 존재론적으로 던지는 유한성에 관한 성찰의 물음들을 던진다. 물감으로 그려놓고, 색으로 물들여 버린, 그림 같은 홍주영의 사진은 카메라의 시선을 넘어서는 감동이 물결처럼 요동친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가까이 할 수 없는 얼려진 꽃이며 과거의 신화이며 저 먼 세계의 이상(理想)이기도 하다. 이는 홍주영이 감동받고 있는 꽃의 세계에 관한 단상들의 깊고 넓은 층위들의 결과이며, 또한 우리에게 보내는 꽃으로 은유한 세계에 관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 박옥생




Irony of Individual


김효숙_최수인展   2011_0514 ▶ 2011_0529 / 월요일 휴관



김효숙_재현된 무대Ⅱ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181×223cm_2010


초대일시 / 2011_0514_토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30am~07:00pm / 월요일 휴관
유앤씨 갤러리 UNC gallery 서울 종로구 사간동 126-1번지 Tel. +82.2.733.2798 www.uncgallery.com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개인주의와 자본주의가 인간의 자유를 보장하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었지만 인간을 단절시키고 소외시켰으며 고독하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즉 개인주의는 인간의 자유와 주체성을 강조하지만 한편으로는 인간과 인간을 서로 분리시키고, 부와 물질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역시 끊임없는 소유를 추구하는 인간의 이기심에 그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소통에 장애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김효숙_ My Floating CityⅠ2009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194×130.3cm_2009


단절된 소통과 소외, 고독.. ● 우리는 그것들을 철저히 두려워한다. 그래서 거짓과 허세, 왜곡과 과장으로 나를 속이고 타인을 속이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자신의 모순 앞에서 가슴 한구석이 뻥 뚫린듯한 허무함과 공허함의 몸서리 침을 감내해야만 한다. 철저히 개인화된 인간 관계로 인한 사회적 소통의 단절로부터 겪게 되는 부조화들을『Irony of Individual』전을 통해 작가들만의 각기 다른 언어로 호소하고 있다.
김효숙_My Floating CityⅡ2009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194×130.3cm_2009


김효숙은 신자본주의 부산물이라 할 수 있는 개발 현장을 통해 현대 사회 속의 개개인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 어지럽게 펼쳐진 개발 현장을 인간의 복잡한 내면으로, 건물을 구분 짓는 벽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벽으로, 건물의 단면과 진행 중에 잘려진 도로와 구조물은 현대 사회 속에서 가려진 개개인의 본성이 왜곡되고 소외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한편 해체되고 만들어지는 중간 과정을 담아냄으로써 정체되어 보일 수 있는 화면에 역동적인 에너지를 부여하여 개인사와는 상관없이 흐르는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고 있는 듯하다. 특히 모자 속 깊숙이 숨겨진 얼굴과 뒷 모습들은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모순된 우리의 모습과 개인이 주체가 되지 못하는 현 사회를 말하는 것 같다. 또 그들의 방관적이거나 무기력한 자세는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동시에 그 곳에 속하지 못하는 왜곡된 우리의 모습을 담고 있는 듯 보인다. ● 김효숙이 외부와의 단절을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회의 현상들을 빗대어 자신의 목소리를 표현해 내고 있다면, 최수인은 같은 주제를 내면의 세계로 끌어들여 그 안에서 형상화된 풍경을 표출 시키고 있다.
최수인_단잠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11
최수인_연인_캔버스에 유채_112×145cm_2009
최수인_high and dry_캔버스에 유채_97×145cm_2011
최수인_Taste in men_캔버스에 유채_80×117cm_2011


최수인은 개인주의 낳은 병폐로 인한 현대인의 방어기제를 미묘한 심리극의 한 장면처럼 형상화하고 이것을 자연 속에 섞이게 함으로써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구현해 내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 넌지시 우리의 실상과 그 허위의 삶이 만들어내는 부조리한 상황을 그려 보이고 있다. 방어기제는 자아와 외부조건 사이에서 겪게 되는 갈등에 적응하도록 감정적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무의식적인 행위이다. 하지만 작가의 그림 안에서는 갈등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속이고 관점만을 바꿈으로써 상대를 가해자로 만들고 자신을 스스로 외부와 단절시키고 소외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듯 하다. ● 즉 우리는 본 모습이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불안해하고 꺼려하기 때문에 극단적인 인간 관계의 단절과 대인 관계에서 주기적 단절이라는 과정을 만들지만 동시에 외로움을 느끼는 것.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존재와 이를 받아들이고 싶지만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과 아픈 감정 때문에 내부에서 그 존재를 거부하고 오히려 그 존재를 가해자로 보고 제거 하려는 내면이 그것이다. 격리, 회피와 왜곡이라는 세 가지 방어기제를 이용함으로써 우리 스스로의 자아를 보호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 관계에서 끊임없이 되풀이 되고 있는 아이러니이다. ● 이처럼 그녀들은 작품 안에서 개인주의가 낳은 물신주의가 가져온 욕망과 의사소통의 단절 혹은 자아와 사회 조건 사이에서 자신의 거짓과 모순을 합리화하고 있는 왜곡된 우리들의 모습을 투영하여 보여주고 있다. ■ unc gallery
 



미디어극장 2부 Welcome to Media space


갤러리 정미소 기획展   2011_0514 ▶ 2011_0615 / 월요일 휴관



김창겸_Still life_단채널 비디오_00:06:00_2009


Special Day 김창겸 / 2011년 5월 14일(토), 15일(일) 김해민 / 2011년 5월 17일(화), 18일(수) 심철웅 / 2011년 5월 19(목), 20일(금) 함양아 / 2011년 5월 21일(토), 22일(일) 유비호 / 2011년 5월 23일(월), 24(화) 김세진 / 2011년 5월 25일(수), 26일(목) 한계륜 / 2011년 5월 27일(금), 28일(토) 신기운 / 2011년 5월 29일(일), 30일(월) 이진준 / 2011년 5월 31일(화), 6월 1일(수) 안세권 / 2011년 6월 2일(목), 3일(금) 오용석 / 2011년 6월 4일(토), 5일(일) 박준범 / 2011년 6월 7일(화), 8일(수) 이배경 / 2011년 6월 9일(목), 10일(금) 박제성 / 2011년 6월 11일(토), 12일(일)
참여작가 김창겸_김해민_심철웅_함양아_김세진_유비호_한계륜 신기운_이진준_안세권_오용석_박준범_이배경_박제성
주최,주관 / 갤러리 정미소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_파라다이스 문화재단 협찬 / 운생동건축사사무소㈜_월간 객석
관람시간 / 11:00am~07:3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정미소 GALLERY JUNGMISO 서울 종로구 동숭동 199-17번지 객석빌딩 2층 Tel. +82.2.743.5378 www.space-act.net


미디어극장전 2부에서는 1부의 영상설치 작업을 선보였던 방식과는 다르게 극장 개념을 전격 이용하여 미디어작가들의 영상작업을 마치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방식으로 싱글채널 작업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 더 나아가 아트스페이스 갤러리 정미소를 찾는 관객은 특정적인 날에 어떠한 특정작가의 영상작업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한번 전시장을 찾은 관객들은 상영되는 작가의 작업 10편이상을 한번에 감상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무엇보다 한국의 미디어아트의 중심에 서 있는 14인의 작가와 한국의 비디오, 미디어아트 10년 이상의 역사를 그들의 작업을 통해 드러날 수 있도록 기획된다. 이번 참여 하는 김창겸, 김해민, 함양아, 심철웅, 김세진, 유비호, 한계륜, 신기운, 이진준, 안세권, 오용석, 박준범, 이배경, 박제성의 작가군은 80년대 중 후반부터 작업을 시작해온 비디오아트 1세대를 포함하여 디지털 매체에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한 젊은 작가군들까지 포함한다. 컴퓨터 기술을 통해 예술을 제작하기 이전의 아날로그 세대와 디지털세대에서 오는 작업의 접점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될 뿐 아니라, 한국의 미디어아트의 흐름을 특정 작가군들로 인해 메핑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5월 14일 김창겸 작가를 시작으로 각 참여작가의 영상작업이 이틀 동안 한 장소에서 한꺼번에 상영되어 이는 무엇보다 90년대 중 후반부터, 2000년대 초, 중반에 많은 싱글채널 작업들이 소개되었다는 단초를 설명할 수도 있으며, 또한 그 시기의 작품들을 최근의 작품들과 함께 동시에 상영하여 그간 작가 작품의 사유와 사회적 환경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기록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 이은주
미디어극장 2부 상영작 리스트
김창겸 Kim Chang Kyum 1. 대화, Single Channel Video, 24min, 1999 2. Letter, Video Installation (exhibition view), 6min, 2000 3. 창문 너머 Over the window, Single Channel Video, 5min, 2001 4. The prayer for those that remain, Single Cannel Vdeo, 0min 40sec. 2003 5. Looking for dabang, Single Channel Video, 18min, 2003 6. 섬, Single Channel Video, 11min 30sec, 2004 7. 안양천, Single Channel Video, 20min 11sec, 2004 8. Converse1, Single Channel Video 10min. 30sec. 2008 9. Converse2 Single Channel Video 10min. 30sec. 2008 10. Still life, Single Channel Video, 6min, 2009 11. Stilled life, Single Channel Video, 5min. 2010
김해민_Unorderable Connections_단채널 비디오_00:06:00_2006


김해민 Kim Hae Min 1. 삼촌과 이모, 5min 30sec, 2011 2. 접촉불량. 6min, 2006 3. 초봄에 우울해지다, 8min 15sec, 2007 4. 조상에 관하여, 3min 20sec, 2001 5. 자화상, 50sec, 2006 6. 24번의 호흡, 9min 20sec, 2000 7. Image Section. 5min, 1988~1989 8. Image Section 2, 5min, 1990 9. Double Face, 4min 30sec, 1991 10. 봄의 제전, 15min, 1998 11. 서정, 6min 30sec, 2005
심철웅_Bridge to the sky02_단채널 비디오 프로젝션_00:07:30_2010~11 함양아_Land, Home, City_단채널 비디오_00:35:00_2006


심철웅 Sim Cheol Woong 1. Bubble Multiplication, 3D Animation, 2min 11sec, 1996 2. Text-Sign-Life: Fetus's dream, Single Channel Video, 1min 32sec, 1996 3. Text-Sign-Life: Illusion of a Polygon Head, Single Channel Video, 3D Animation, 1min 31sec, 1996 4. Text images for Historical deconstruction, Video Installation, Single Channel Video, 4min 57sec, 2000 5. Han River in Red, Two Channel Video, 11min, 2001 6. Memory of the old house, Single Channel Video, 8min 9sec, 2001 7. A Sea with Two Names, Single Channel Video Projection, 30min, 2002 8. Stare, Single Channel Video, 3min 31sec, 2002 9. Living in the Chasm, Single Channel Video, 3min 36sec, 2002 10. A memory of a woman, Single Channel Video, 8min 56sec, 2003 11. A Sea with Two Names02, Single Channel Video, 19min 11sec, 2006 12. Letters to Permanent Address, Code Generated Images, Edited to Single Channel Video, 2009 13. The Recordings: THE seoul, Single Channel Video, 2010
함양아 Ham Yang Ah 1. More real than this world, Single Channel Video, 2min 25sec, 2002-3 2. FiCtionaRy, Single Channel Video, 3min 30sec, 2002-3 3. Dream...in Life, Single Channel Video, 13min 15sec, 2004 4. Venus in jeju island, Single Channel Video, 6min 34sec, 2004 5. Tourism in communism, Single Channel Video, 6min 41sec, 2005 6. One day escaping, Single Channel Video, 5min 34sec, 2004 7. Land, Home, City, Single Channel Video, 35min 30sec, 2006 8. Adjective Life - Out of frame, Single Channel Video, 7min 9sec, 2007 9. Invisible Clothes, Single Channel Video, 13min 32sec, 2008 10. Bird's eye, Single Channel Video, 10min 4sec, 2008
유비호_That's alright_00:08:40_2002 김세진_Night Watch_3채널 비디오_00:03:20_2006


유비호 Ryu Bi Ho 1. Euphoric Drive, 5min (loop), 2008 2. Black Scud, 4min 9sec, 2000 3. Mass Calisthenics, 7min, 2000 4. In Silence, 8min 45sec, 2001 5. That's alright, 8min 40sec, 2002 6. Record, 10min, 2003 7. Invisible City, 7min 25sec, 2006 8. Extreme Private Practice 1(bat), 24min 13sec, 2010 9. Extreme Private Practice 2(golf), 13min 36sec, 2010
김세진 Kim Se Jin 1. 되돌려진 시간 Reverse, 6 Channel Video, Looped, 1998 2. 진혼곡 Requiem, Single Channel Video, 4min 40sec, 1999 3. 꿈속에서 In dreams, Single Channel Video, 6 min 2sec, 1999 4. 10 to 10, 16mm Film, B/W, Stereo sound, 19min 20sec, 2001 5. 욕망의 바다 Sea of desire, Single Channel Video, 3min 40sec, 2002 6. 기념사진 Take a picture, Single Channel Video, 15min, 2002 7. Kid, 35mm Film on DVD, Colour, 5.1CH, 15min, 2003~2004 8. 연선 채에 관하여 About YS, Chae, Flexible Channel Video, 41min 46sec, 2005~2006 9. 그들의 쉐라톤 Their Sheraton, Single Channel Video, 3min 8sec, 2006 10. Night Watch, 3 Channel Video, 3min 20sec, 2006 11. 이방인으로부터의 문장 Sentence from the stranger, 2 Channel Video, 6min 6sec, 2007 12. 빅토리아 파크 Victoria Park, 2 Channel Video, 3min 56sec, 2008 13. 야간근로자 Night Worker, 2 Channel HD Video, 6min 58sec, 2009 14. 하나 세트 Hana-set, Drawing Animation, Looped, 2011
한계륜_누드의 민망함에 관한 연구-그녀는 그것때문에 불안해 하고 있었다_영상설치_2011 신기운_Reality Test(take 2-3), Full-HD 비디오_00:02:22_2010


한계륜 Han Ke Ryoon 1. Mahl, Single Channel Video, 1min 47sec, 1997 2. Promenade, 24 Channel Video, Installation, 2001 3. City Diary, 24 Channel Video, Installation, 2002 4. Malhada, HD Video, 8min 33sec, 2004 5. Jaja, 2 Channel HD Video, 3min 17sec, 2008 6. A study on the Embarrassment of nudity-Professor and female student, Art education about Framing, Video Installation, 2007 7. A study on the Embarrassment of nudity-Professor and female student, Practical Teaching, Video Installation, 2007 8. A study on the Embarrassment of nudity-Professor and female student, Confusing Answer for the Question, Video Installation, 2008 9. A study on the Embarrassment of nudity-away from the spouse 4, Video Installation, 2007 10. A study on the Embarrassment of nudity-Professor and female student, Darkroom in My Room, Video Installation, 2008 11. A study on the Embarrassment of nudity-Prof. Han's Dissertation Supervising, Video Installation, 2007 12. A study on the Embarrassment of nudity-She felt nervous for that reason, Video Installation, 2011
신기운 Shin Ki Woun 1. Approach the Truth (Alarm Clock), Full-HD Video installation with a music (ost from 'Old Boy'), 4min 12sec, 2006 2. Approach the Truth (Astro Boy), Full-HD Video installation with a music( 'What a wonderful world' by Louis Armstrong), 2min 12sec, 2006 3. Dis-illusion (Coin_Face), Full-HD Video installation with a music (opera 'Cavalleria Rusticana' -Intermezzo), 3min 13sec, 2007 4. Dis-illusion (Coin_Living thing), Full-HD Video installation with a music (Scene-ballet 'Swan lake' by Tchaikovsky), 2min 52sec, 2007 5. Evaporation (Missing time never exist), Full-HD Video installation with a music (Piano by Goh heean), 4min 11sec, 2008 6. Evaporation (News becomes Entertainment), Full-HD Video installation with a music (Blue Danube by J. Strauss), 6min 44sec, 2008 7. Reality Test (take 2-3), Full-HD Video, 2min 22sec, 2010 8. Reality Test (take 2-5), Full-HD Video, 2min 9sec, 2010 9. Reality Test (take 2-8), Full-HD Video, 2min, 2010 10. Reality Test (take 2-9), Full-HD Video, 1min 55sec, 2010
이진준_INSOMNIA, Single Channel & Video & Sound Installation with Project_2006


이진준 Lee Jin Joon 1. INSOMNIA, Single Channel & Video & Sound Installation with Project, 2006 2. FLAGFLOWERS, 2007 3. METRO IN SEOUL, Single Channel Video Installation, 16min 56sec, 2007 4. ATOZ, Single Channel Video Installation, 16min 17sec, 2007 5. EYES IN MIND, One Channel Documentary, 1min 15sec, 2007 6. SEOUL 2007 AND SUMMER Part2 Monodrama Recorded by video, 35min, 2007 7. MY MOTHER'S HANDS CURE ALL Monodrama Recorded by video, 35min, 2007 8. A HALF WATER & HALF FISH, Interdisciplinary Performance Recorded by video, 60min, 2007 9. SI LOIN SI PROCHE, Single Channel Video Installation, 5min 12sec, 2008 10. RED DOOR-How can see each other in deathbed, 2 Channel Video Installation 2008 11. YOUR STAGE, Single Channel Video 2008~2009 12. THEY, Single Channel Video, 2010
안세권_DreamⅢ, Speed Single Channel Video, DV6mm, Sound_00:06:00_2003


안세권 Ahn Se kwon 1. 살구나무 집_Single Channel Video, 16mm film, 14min, 1995 2. In China, Single Channel Video, Hi8mm Video, Sound, 4min, 1996 3. 재 너머, Silngle Channel Video, DV6mm Video, Sound, 9min, 1987~2001 4. 살구나무 집, Single Channel Video, 6mm Video, Sound, 8min, 1996~2001 5. Dream 내부순환로에서 청계고가로, DV6mm Video, 19min, sound, 2001 6. DreamII, Single Channel Video, DV6mm, Sound, 14min, 2003 7. DreamⅢ, Speed Single Channel Video, DV6mm, Sound, 6min, 2003 8. 다음 휴게소는, Single Channel Video, DV6mm video, Sound, 4min, 2002~2004 9. 청계 Scape1, Panorama Video, DV6mm Video, Sound, 19min, 2001~2004 10. 청계 ScapeⅡ~Ⅴ, Video, DV6min, Sound, 19min, 2001~2004
오용석_Classic No. 1915, Single Channel Video, Still and Moving Image, 2010


오용석 Oh Yong Seok 1. Cross, Single Channel Video, 5min, 2002 2. Drama No.3, Two Channel Video, 6min 40sec, 2004-2005 3. Drama No.5, Two Channel Video, 4min 33sec, 2006 4. Drama Variation, Single Channel Video, 4min, 2008 5. Memory of the future, Single Channel Video, 2min 10sec, 2009 6. Classic No. 1978, Single Channel Video, Still and Moving Image, 2009 7. Classic No. 1915, Single Channel Video, Still and Moving Image, 2010 8. Duet, Single Channel Video, Still and Moving Image, 2 Variations 9. Siamese montage, Two channel video, Siamese scope, Divx player, 1min 54sec, 2010 11. Siamese montage No.2, Two channel video, Siamese scope, Divx player, 3min 31sec, 2008 13. Siamese montage No.3, Two channel video, Siamese scope, Divx player, 2min, 2010
이배경_The Advertisement 2, single channel, HD, 00:08:20_NTSC, SILENT, COLOR_2009 박준범_City, man, wind, 인터렉티브 비디오 설치, 가변설치_영상 8×4m_2007


이배경 Lee Bei kyoung 1. DungdungDang, Single channel, 5min 11sec, 1997 2. Selftime (Interactive Video Installation), Video Camera, Computer, Beam Projector, AMP, speaker, 2003 3. Insel(Island),Interactive Video Installation, Video Camera, Microphone, Computer, Beam Projector, AMP, speaker, 2004 4. Intersection (Interactive Video Installation), Video Camera, Computer, PDP 50 inch, Speaker, Installation, 2006 5. City, man, wind, Interactive Video Installation, Installation (8x4m), 2007 6. Relationship, Interactive Video Installation, Video Camera, Computer, Beam Projector, speaker, Installation, 2007 7. Episode #2(Interactive Video Installation), PC Camera, Computer, Beam Projector, Speaker, Installation, 2009 8. Mirror of mind (Interactive Video & Sound Installation), PC Camera, Computer, Data Projector, Speaker, Installation, 2009
박준범 Park June Bum 1. 창문 5 window, Single Channel, DV, 1min 51sec, NTSC, Silent, Color, 2002 2. 24 정박 24 anchorage, Single Channel, DV, 1min 50sec, NTSC, Sound, Color, 2003 3. 25 고소공포증 02 25 acrophobia 02 (slow-fast), Single Channel, DV, 1min, NTSC, Sound, Color, 2003 4. 작은 트럭과 공 pickup truck and ball, Single Channel, DV, 1min, NTSC, Sound, Color, 2004 5. 가는귀 먹다 Be a little deaf, Single Channel, DV, 3min, NTSC, Sound, Color, 2005 6. 비에 젖다 01 Get wet with rain 01, Single Channel, DV, 2min, NTSC, Sound, Color, 2005 7. 맹렬한 포화 A heavy Fire, Single Channel, HDV, 5min 40sec, NTSC, Sound, Color, 2007 8 기독교 교회 Christian Church, Single Channel, DV, 4min 20sec, NTSC, Sound, Color, 2007 9. 스텔스 전략의 핵심 기술 Core Technology of Stealth Strategy 02, Single Channel, HDV, 5min, NTSC, Sound, Color, 2008 10. 인질극 Hostage Drama, Single Channel, HD, 6min 20sec, NTSC, Sound, Color, 2008 11. 600cc, Single Channel, DV, 1min 50sec, NTSC, Sound, Color, 2008 12. 광고 2 The Advertisement 2, single channel, HD, 8min 20sec, NTSC, Silent, Color, 2009 13. 그네 Swing, single channel, HD, 11min 5sec, NTSC, Sound, Color, 2009 14. 선물시리즈 _ SGH C-120 Gift _ SGH C-120, single channel HD, 3min 31sec, NTSC, Sound, Color, 2010 15. 메시지 Message, 2 single channel, HD, 14min 50sec, 1min 52sec, NTSC, Silent, Color, 2010
박제성_The Structure of, 1,2,3,4, Multi Channel LCD Monitor Installation, about 00:09:00 (Looped)_2010


박제성 Je Baak 1. A Towel, Single Channel DVD Projection, 2min 24sec, 2008 2. Free Falling, Single Channel DVD Projection, 4min 5sec (Looped), 2008 3. Gong 1, Single Channel DVD Projection, 4min 3sec (Looped), 2009 4. Gong 2, Single Channel DVD Projection, 2min 24sec (Looped), 2010 5. His Silence 1, 2, 3, 3 Monitors on 3 plinths, about 1min 10 sec each (Looped), 2010 6. The Structure of, 1,2,3,4, Multi Channel LCD Monitor Installation, about 9min (Looped), 2010




딜레마의 표상 The Representation of a Dilemma


김민규展 / KIMMINKYU / 金玟奎 / painting   2011_0518 ▶ 2011_0523


김민규_딜레마 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금박_162×130cm_2011
초대일시 / 2011_0518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2층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어진(御眞), 딜레마의 표상 ● 작가 김민규는 동양의 전통적인 왕의 초상인 어진(御眞)의 형태에 기발한 색채와 새로운 회화기법, 현대적 주제의식을 결합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창조해낸다. 그는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자유와 권위, 중심과 주변 등의 대립적 주제를 차용하고, 다양하고 독특한 회화 기법과 구성을 통하여, 현대인이 당면한 모순적이고 이중적 요소들의 공존을 모색하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현대의 이중적 딜레마는 매우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나, 이는 작가가 창조한 상징적이고 개념화된 구도와 형태, 색체의 해석을 통해서만이 드러나게 된다. 그의 작품이 보여주는 형식의 상징성과 주제의 구체성은 현대적 주제의식과 함께 미학적 아름다움을 완성시키고자 하는 작가의 치열한 고뇌의 결과이다.
김민규_딜레마 3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금박_162×130cm_2011
김민규_여룡갑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금박_162×130cm_2011
어진(御眞)의 형태를 차용한 그의 작품에서는 정적이고 안정적이며, 대칭적 구도를 취하고 있는 왕의 초상이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왕의 초상화 안에는 역동적이고 자유로운 용무늬의 움직임과, 방향성 없이 뻗어나가는 비규칙적 형태의 대나무 등의 세밀한 묘사가 대조를 이루고 있다. 특히 작가는 거의 모든 용무늬에 실제 금박을 붙이는 방식을 이용하여, 평면적 왕의 그림과 대비되는, 삼차원적인 입체성과 역동적 움직임을 지닌 문양을 완성시킨다. 이러한 그의 경향은 그의 소박함과 화려함이 공존하는 풍경화에서도 엿보인다. 작가는 소박한 정경을 담고 있는 자연 풍경 외부에 인위적으로 단일한 선을 그려 넣음으로써 내부를 구성하는 자연의 정경을 인공적으로 고정시킨다. 그러나 이러한 인공적인 구조 내에 존재하는 나무와 구름 등의 자연의 사물들은 외부적 틀이 부여한 규칙적이고 단일화된 움직임을 거부하면서 다양하고 예측할 수 없는 움직임의 형태를 따르고 있다.
김민규_에스더와 하만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금박_117×91cm_2010
김민규_고귀하지만 슬픔을 아는 공주4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금박_65×52.5cm_2011
김민규_딜레마 2_종이에 수채, 금박_33.2×24.2cm_2010
닫힌 구조 속에서 그 구조를 파괴하고자하는 정교한 움직임들은 모더니즘적 완전성을 추구하면서도, 절제성과 단일화가 야기한 억압성을 전복시키고자하는 작가의 포스트모더니즘적 욕구를 보여준다. 이것은 어진(御眞)의 형태가 가지는 절대적 권위와, 탈권위를 상징하는 어린아이와 여성과의 대립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작가는 사회의 주변인으로 인식되어온 어린아이와 여성을 절대적 권위의 상징인 어진(御眞)의 주인공으로 차용함으로써 주변인을 중심부의 핵심권좌에 앉힌다. 작가는 권위를 포기하는 대신,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권위를 대신할 수 있는 순수하고 연약한 권위를 탄생시킨 것이다. 특이한 점은 규칙적이고 안정적 구조 안에 묘사된 불규칙적 장식들이나, 탈권위적 주변인에게 부여된 권위의 이중적 틀 들이 불편함 없이 공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진(御眞)과 어린 여성을 함께 차용하는 등, 그의 발상과 소재는 충격적이나, 그의 작품에는 흔히 포스트모더니즘에서 보여 지는'경계 허물기'로 인한 충격적 불편함은 없다. 즉 그의 작품은 모더니즘, 혹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추상적 담론으로부터도 자유롭다. 그의 작품 속에는 안정성과 불안정성을 함께 욕망하고, 권위와 자유를 동시에 갈망하는 현대인의 가장 현실적이고 정직한 딜레마가 표현되어 있을 뿐이다. 서구화된 환경 속에서 현대인이 당면한 고뇌와 이중적 딜레마를 과거 동양적 어진(御眞)의 형태를 빌려 조화롭게 공존시킨 김민규의 작품은, 따라서 매우 특이하고 흥미롭다. ■ 김혜연




바다에 대한 사유


박신혜展 / PARKSHINHYE / 朴信惠 / painting   2011_0518 ▶ 2011_0523


박신혜_About "in Itself"_캔버스에 유채_100×100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91021h | 박신혜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0518_수요일_05:00pm
박신혜 블로그 blog.daum.net/shinhyepark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B1 제3특별관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썰물과 밀물 "부동적인 것 같아 보이지만 부단히 유동적인… " ● 한국인 화가 박신혜의 전시는 단연 감명적 (명쾌하고 역동적)이다 라고 밖에 표현 할 수 없다. 바다의 조수가 해안의 모래사장과 부드럽게 맞닿는 (어루만지는) 풍경을 신중하게 포착해 작품들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주제나, 스타일, 그리고 큐레이터의 관점 모두에서 선(禪, Zen)적 감수성을 반영한다. 바다, 파도, 그리고 인적 없는 해안에 온전히 몰입한 듯한 그의 작품들은 슬로 모션으로 정지된 화면의 연속을 통해 시간의 변화를 강력하게 표출하고 있어 작가의 전시를 둘러 보는 것은 마치 해안에서 산책을 하는 것과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작가는 자연은 존재의 의미를 깨닫기 위한 출발점이라 믿고 있으며, 때문에 그가 자연의 母體를 이루는 근본적인 요소인 땅과 바다에 끌리는 것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 모래빛의 백색, 폭풍 전야의 회색, 그리고 소금기 서린 남청 색으로 이루어진 화가의 최소한의 색조 역시 그의 작품적 주제에 대한 집요함을 말해준다. ● 결과적으로 미니멀리스트 (minimalist) 적인 작가의 접근 방식은 상징주의적이며 추상적인 경향을 제시하며, 따라서 그를 포토리얼리스트 (photorealist) 나 단순한 풍경 화가라고 분류하는 것은 틀림없는 실수이다. 그의 간결하지만 명백히 정교한 작품들을 통해서, 작가는 정신적인 숭고함, 즉, 명상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神 또는 그 이상의 높은 존재와의 영적인 교감의 깨달음에 도달한다. 티베트 (Tibet) 수도사들이 오랜 시간 동안 만다라 (曼陀羅)의 한 점에 온 정신을 집중하듯이, 작가는 흔히 스쳐 지나치는 바다 자락의 한 부분에 초점을 둔다. 물, 모래, 그리고 하늘의 요소들이 자못 정지되어 있는 듯 하나, 실제로 그것들은 부단히 유동적이다. 찰싹거리는 파도가 해안을 쓸어내고, 조수로 인한 주변의 자연 색과 모양의 바뀜을 표현함으로써 작가는 그 대상의 刹那 에 대한 포착을 시도한다.
박신혜_About "in Itself"_캔버스에 유채_40×40cm_2008
박신혜_About "in Itself"_캔버스에 유채_40×40cm_2011
박신혜의 전시는 기획자의 탁월한 감각 아래 진행 되었으며, 작품들 또한 그 미묘한 효과를 부각 시킬 수 있도록 설치되었다. 셋 또는 네 작품으로 그룹 지어져 걸린 각각의 캔버스들은 주위의 다른 작품들과 공명함과 동시에 내적 직감력이 어떻게 외적으로 표현될 수 있는가 하는 명상의 일부로서의 기능을 가진다. 궁극적으로, 작가가 표현하고자 열망하는 것은 바로 "평형(Equilibrium)"의 상태이며, 그는 내적 평화와 고요함의 균형을 "초월적 상태(Divine state)"에 도달하는 것과 동일시 한다. 작가의 현실주의적 그림들이 보는 이의 눈 앞에서 색과 형의 섬세한 변이와 함께 이미지 그 자체로 지각될 뿐 아니라 고독과 명상적 관조를 일으키는 추상적인 개념으로 전환하는 사실은, 곧 신성함을 캔버스 위에 포착하는 작가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NY Arts Magazine 2008, 9/10 Review) ■ 질 스미스
박신혜_About "in Itself"_캔버스에 유채_40×40cm_2011
박신혜_About "in Itself"_캔버스에 유채_40×40cm_2007
박신혜는 바다를 그린다. 바다를 그리되 될 수 있는 한 최소의 개입으로 간결하게 그려낸다. 작가의 바다는 드라마틱하지도 않고 사실적인 것과도 거리가 있다. 바다를 그리는 데 있어 바다의 모양새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바다의 물결이나 파도가 밀려오는 백사장의 일부, 최소한의 색감, 부족한 듯 마무리한 붓터치등은 우리의 시선이 바다의 외형에 머무르는 것을 경계하는 몸짓이다. 다만 바다를 통해 자연의 본질을 들여다 보고자 한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파도의 생성과 변화, 소멸은 곧 자연의 순리를 표상한다. 인간은 단지 자연의 일부로서 이러한 질서에 순응할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일깨운다. 바다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물이다. 시냇물도 강물도 다 흘러 흘러서 바다로 귀결될 수 있는 것은 바다가 모두를 수용할 수 있는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노자는 바다가 모든 강의 으뜸이 될 수 있는 까닭은 자신을 더 낮추기 때문이라고 했다. 뒤돌아볼 겨를도 없이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그저 나 잘났다고 외치느라 바쁜 우리에게 바다는 겸허한 자세를 보여주고 자연과의 교감을 이끌어내는 사색의 장으로 펼쳐진다. ■ 한희진
박신혜_About "in Itself"_캔버스에 유채_40×40cm_2011
박신혜_About "in Itself"_캔버스에 유채_40×40cm_2011
"Though seemingly unchanging, the elements of water, sand, and sky are actually in a constant state of flux."



2011.05.15 19:12:47 / Good : 582 + Good

zabel

  • 작성시각: 2011.05.18 16:4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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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sh Blood







고영준_정석우_진효선展   2011_0511 ▶ 2011_0603 / 주말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기획 / 샘표식품주식회사

관람시간 / 09:00am~05:30pm / 주말 휴관

샘표스페이스 SEMPIO SPACE 경기도 이천시 호법면 매곡리 231번지 Tel. +82.31.644.5080 www.sempio.com





VOID WALKER ● 유령처럼 떠도는 사건들이 있다. 오로지 사건. 사건 뿐. 거기에 서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이것은 축제요, 하나의 거룩한 희생제다.
고영준_그래도난하지않았다_캔버스에 유채_97×163cm_2010
고영준_drawingforWitches_Sabbath(마녀집회를위한드로잉)_종이에 먹, 아크릴채색_104.5×68cm_2010
고영준_drawingforeventhorizen_종이에 먹, 아크릴채색_68×104.5cm_2010

오늘도 어제도, 아마 내일도 그러할 희생제를 지낸다. 우리는. 먹고, 살고, 숨쉬는, 와중에 잉여적 실존의 허망함을 지우고, '있음'의 스스로에 대한 오롯함을 가지려하는지, 인간은 사회적동물이라는 교과서적 금언에 충실히 부응코자 하는지. 매일을 하루 같이 희생제로 밤낮을 지운다. 이 희생제는 우리 모두에 대한 서로의 부딪힘이고, 서로에 대한 관계맺음이며, 'dog eat dog'의 나선에 갇힌 끊을 수 없는 서로에 대한 모두의 카니발리즘이다. '잉여함'의 허망함을 지우는 목적을 지닌 하나의 행위, 둘의 상태로, 서로의 존재를, 아니 어쩌면 존재에 묻은 먼지들까지 먹어치우고, 다시금 찾아올 허망함과 또 한번의 축제를 기다리게 된다. ● 보이지 않는 선혈이 낭자하고 의식의 상처가 짓무르고 덧나는 끊임 없는 전쟁과 같은 축제의 날들. 얼굴 같지 않은 것들을 지고 다니며 서로에 대해 구토를 유발하게 하는 여기엔, 이미 아무도 없다. ■ 고영준
정석우_Fresh Blood展_2011
정석우_볼천지_캔버스에 유채_260.6×581.7cm_2010
정석우_헬베티카 사람들_캔버스에 유채_193.9×336.6cm_2010

내면의 풍경 ● 우주의 모든 것은 근본적으로 어떠한 목적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목적을 향한 에너지의 움직임은 강렬하고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거대한 규칙에 의해 조율된다. 인간이 삶의 원동력인 꿈, 목표를 갖고자 하는 것도 이러한 규칙에 의한 것일 것이다. 본인의 작업은 목적을 향해가는 에너지의 분출 자체며 일상과 현대사회의 이미지화와 개인적 사건 및 공상이 만들어내는 비뚤어진 이데아, 현실의 부조화를 시각화 해내는 과정이다. ● 에너지의 '흐름'은 강렬한 터치와 색의 대비를 통해 그림의 밑바탕을 이루며 빠르게 돌아가는 현대사회를 투영한다. 빠르고 거친 물감의 발림은 에너지의 원천이 되기도 하는 사람들의 '꿈'들의 집합이다. 이러한 흐름이 화면에 모여 도시의 건축물처럼 거대한 구조물이나 공간을 이루고 또는 사라지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 살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곳 역시 도시이다. 도시의 풍경은 개발과 발전에 의해 빠르게 바뀌어 간다. 편리와 효율의 극대화로 이루어진 인위적 공간인 도시 안에서 사람들은 빨라진 현대문명에 자신도 잊은 채 자아는 고립되고 내면은 공허해 지고 있다. 나의 작업은 창 밖의 빌딩과 가로수의 풍경이 아닌 현대인의 내면을 시각화하는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 정석우
진효선_아마도 서울랜드_캔버스에 유채_90.9×72.7cm_2011
진효선_1st birthday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11
진효선_I'm your father_캔버스에 유채_90.9×72.7cm_2010

어느 날, 캔디가 나에게 말했다. 나이를 한두 살 먹다 보니 어느 집에 가든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가장 크게 인화되어 걸려있는 가족사진이 자신의 집에만 없다고, 아마도 이는 사람들이 보편적인 가족 구성원으로써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아버지의 부재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노라고.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녀는 약간 풀이 죽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까짓 가족사진 아버지가 없어서 못 찍는 거라면 아버지가 될 만한 누군가를 찾아 나서자며 그녀의 어깨를 다독였다. ● 나의 작업에서 사탕은 무수히 복제되어져 그 실재의 존재 유무를 알 수 없으며 인공적인 무언가를 상징한다. 그러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사탕의 개체들은 각각 이른바 '스펙'을 위해 살아가는 우리 시대의 사람들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좋은 부모 밑에서 자라 좋은 학교에 다니고, 좋은 직장에 다니는 스펙 좋은 사람이 '잘 사는 사람'의 표본이 된지 오래다. 캔디와 캔디의 어머니는 흔히 남들이 말하는 '잘 살고 있는 사람'이 되어 자신들의 가족사적 결함을 감추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고, 애비 없는 후레자식 이라던가 서방 없는 년 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는 대신에 공장에서 만들어진 사탕처럼 되어버렸다. ■ 진효선





















































Unfamiliar landscape



원성원_이경하_이나리展   2011_0519 ▶ 2011_0606 / 일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1_0519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일요일 휴관

빛갤러리 VIT GALLERY 서울 종로구 소격동 76번지 인곡빌딩 B1 Tel. +82.2.720.2250 Vitgallery.com



비트겐슈타인의 말에 따르면 타자란 '나와 삶의 규칙이 다른 존재'이다. 이런 타자와의 만남은 우리에게 낯선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타자는 나와 다르기에 불편한 존재이며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필요한 존재이다. 내가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고, 내가 인지할 수 없는 것을 인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과 다른 방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타자와의 마주침을 통해 세계를 인지하는 또 하나의 시선을 갖게 된다. 여기 우리를 낯선 장면, 낯선 느낌으로 이끄는 세 작가가 있다. 이 낯섦은 타자를 만났을 때와 비슷하다. 우리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그들의 작품에는 다른 공간, 다른 시간들이 공존하고 있다. 이 시공간의 섞임은 낯선 느낌을 주며 색다른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타자를 만나고 그것을 통해 기존에 만들어진 틀에서 해방되려 하고 있다. 그것은 스스로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시도임과 동시에 보는 이의 상상력을 끌어내는 과정이다.
원성원_일곱살-엄마의 고향 바다_C 프린트_125×195cm_2010
원성원_일곱살-갈매기와 배꽃나무_C 프린트_125×195cm_2010
원성원_일곱살-오줌싸개의 빨래_C 프린트_155×123cm_2010

원성원의 풍경은 자신의 7살 어린 시절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녀는 당시의 기억을 자신이 찍은 여러 사진들을 통해 재구성해낸다. 「일곱살-오줌싸개의 빨래」, 「일곱살-가벼운 가출」 같은 제목을 통해 우리는 그녀의 사진이 실재하는 공간이 아닌 그때의 이야기를 형상화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녀가 만들어낸 새로운 이미지는 우리에게 익숙함과 동시에 낯선 느낌을 준다. 주위의 익숙한 공간들이 그녀의 기억이라는 타자를 만나 낯선 느낌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첫 눈에 낯설었던 그 공간은 점차 익숙한 곳으로 변화된다. 작품 속 이미지가 하나의 이야기로써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작가의 어린 시절이며 동시의 우리의 어린 시절인 까닭이다. 즉, 원성원의 작업은 자신의 기억을 이미지로 형상화하여 우리의 기억을 끌어내는 과정이다.
이경하_painting workers_캔버스에 목탄, 유채_130×130cm_2010
이경하_painting workers_캔버스에 목탄, 유채_130×130cm_2010
이경하_an end of the road_캔버스에 목탄, 유채_130×97cm_2010

이경하의 풍경엔 극명하게 다른 두 세계가 공존한다. 하나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 혹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페인트를 칠하는 사람, 벤치 위에서 자고 있는 사람, 건물, 도로 등 다양하다. 그런 익숙한 것들이 그들이 가진 본래의 색을 입고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런데 그것의 배경은 우리가 본적 없는 실재하지 않는 공간이다. 목탄으로 그려져 검고 어두운 그곳은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다. 그렇게 무한한 공간 위에 놓여져 있는 원색의 대상들은 상대적으로 더욱 유한해 보인다. 그녀는 익숙한 대상에 낯선 배경을 끌어들임으로써 그 자체를 도드라지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새로운 배치 속에서 대상은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즉, 이경하의 작업은 실재적 대상과 비 실재적 공간을 함께 놓음으로써 서로를 강하게 드러냄과 동시에 섞이게 하는 과정이다.
이나리_LOST_memories3_혼합재료_97×162.2cm_2011
이나리_Lost_memories2_혼합재료_98.4×145.5cm_2010
이나리_LOST_memories4_혼합재료_97×162.2cm_2011

이나리의 풍경은 하나의 도시이다. 그녀의 작업은 특정 장소의 사진을 찍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곳은 그녀에 의해 선택된 곳으로 역사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공간의 현재는 사진을 통해 그리고 그것의 과거와 미래는 붓을 통해 드러난다. 공간의 미래는 과거와 현재를 통해 추상되고, 현재의 공간은 작가가 창조한 미래와의 만남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다. 캔버스 안에서 한 장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다양한 시간이 공존한다. 이렇게 공존할 수 없는 시간대가 함께 놓임으로써 이 도시풍경은 우리가 알고 있는 장소이지만 동시에 알지 못하는 곳이 된다. 즉, 이나리의 작업은 실재도시의 복원임과 동시에 새로운 도시의 창조이다. ■ 추선정

According




몰입의 순간



유승호_차영석_허윤희展   2011_0519 ▶ 2011_0613 / 월요일 휴관



유승호_콩심고 팥심고 Plant a soybean, Plant a red bean_종이에 펜_182×226.5cm_2005)


초대일시 / 2011_0519_목요일_06:00pm

주최 / 파이낸셜 뉴스_fnart space

관람시간 / 화~토 10:00am~06:00pm / 일 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에프앤아트 스페이스 fnart space 서울 종로구 삼청동 157-78번지 2층 Tel. +82.2.725.7114 www.fnart.co.kr



몰입의 순간 ● 무엇에 신경을 뺏겨 온전히 집중하게 되는 시간은 하루에 과연 몇 분이나 될까? '몰입'이란 간절한 무언가를 얻기 위해 자신의 잠재적인 에너지를 쏟아 붇는 시간이며 그 순간 주위를 둘러싼 공간, 시간 그리고 나 자신마저도 잊게 되는, 고도의 집중력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예술행위 자체가 이러한 몰입의 행위이며 순수한 행위 그 자체만으로 충만한 최적의 상태를 말한다. 드로잉은 생동하는 사유와 몰입의 행위가 만나는 가장 원초적인 시간이고 관념의 형태가 시각화되는 태초의 순간이다. 이에 현대예술에서 드로잉은 보다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개념으로 주목 받고 있는 것이다. ● 1976년 뉴욕 근대미술관 드로잉 집의 본문을 집필한 바니즈 로즈(Bernice Rose)는 드로잉의 기능에 대해 "드로잉의 기능과 역할, 표현 방법은 시대와 역사에 따라 조금씩 달라져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로잉은 대체로 두 가지 개념, 즉 화가의 사고가 가장 지성적인 매체로 회화, 조각, 건축의 기초적인 통제를 한다는 개념과 작가의 아이디어와 형상이 직접적이고 자연스럽게 그래픽적인 형태로 드러나는 가장 개인적인 매체라는 개념에 근거하고 있다."라고 강조한다. 드로잉에서 몰입의 순간은 개인의 관념이 형상화되는 사건의 탄생이고 불완전한 표면의 무한한 세계이기에 물리적 행위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 드로잉에서 또한 재료가 가지는 물성은 인간의 총체적 감각에 관여한다. 만지는 순간 지각되는 촉각, 표면과의 마찰에서 생성되는 질감, 그려지는 과정에서의 시각적 자극, 작품의 텍스트를 통한 청각, 그리고 후각을 자극하는 본연의 향 등은 온전히 물성과 행위자만이 영위하게 되는 독립적이고 절대적인 영역을 만들어 낸다. 몰입의 행위는 이러한 절대적인 영역 안에서 극대화된다. 『몰입의 순간』의 참여작가 유승호, 차영석, 허윤희 모두 재료가 가지는 매체적 특성과 물성의 본질을 끈질기게 탐구한다. 이들이 다루는 재료는 잉크나 흑연 혹은 목탄 등이다. 유승호의 잉크는 날카롭고 차가운 성질이 종이와 흡수되어 번지거나 마르면서 서로 반응하는 '착색'의 과정을 수반한다. 차영석의 작업에서 흑연은 형상을 구체화하기도 하고 의미를 해체시키는 매체로서 작용하는데 차고 정직한 성격을 드러내며 정신적인 중립을 재현하는 적절한 재료가 되었다. 허윤희의 작업에서 나타나는 목탄의 성질은 투박한 질감, 부드러운 표면의 풍부한 표현능력을 드러내며 무질서적인 긴장감을 담고 있기에 매력을 더한다. 이들은 서로가 다른 소재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재료가 가지는 물성에 대해서는 가시적인 세계와 비가시적인 세계를 연결해 주는 정신적인 매체로 이해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 유승호, 차영석, 허윤희는 모두 반복적인 제스처를 통해 재료의 물성을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극대화 시키고 있는데 특히 노동집약적이고 밀도 있는 화면 구성이 몰입성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유치한 언어유희를 이용해 고정된 시지각을 세련되고 위트 있게 비트는 유승호, 사적으로 수집한 일상의 사물들에 대해 사회의 그물망 안에서 지각되는 의미를 해체하는 차영석 그리고 개인의 내면을 형상의 메타포로 풀어내는 허윤희의 작업에서 표현요소와 사유의 확장을 몰입의 행위 안에서 구현해 내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와 작품 사이에서 영유되었던 사적이고 독립된 영역을 관람의 태도에서 공유해 보고자 하며 진정한 내적 통찰이 이루어 질 때 주체와 대상의 경계가 사라진 진정한 몰입의 순간을 만끽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김소희
유승호_Joorooroorook_종이에 펜_183×228cm_2005
유승호_shooo-_종이에 잉크_122×75cm_2007

● 「쉬-」, 「우수수수」, 「으-씨」등은 유승호 작가의 작품제목이다. 입에서 가볍게 발음되는 짧은 의성어는 화면 안에서 점처럼 찍히고 무수히 반복되어 풍경이나 수묵화의 전경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무심코 바라보던 수묵의 풍경은 가까이서 보면 언어의 놀이로 이루어진 허상의 이미지이다. 우리는 언어로 세상을 말하려 하고 이미지로 세상을 재현하려 하지만 언어와 이미지의 재현이 만들어내는 세상이 과연 진실일까? 작가는 보편적 전달 매체로서의 '언어'와 재현으로서의 '이미지'를 끊임없이 충돌시켜 고정된 시지각의 틀을 위트 있게 비틀면서 과연 '본다는 것'과 '재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반문하고 있다. 작품을 이루는 발성의 기호들은 작가의 반복적 제스처를 통해 청각적 전달과 시각적 전달을 더욱 극대화하였다.
차영석_Well Still Life_종이에 연필_130×280cm_2007~2008
차영석_Well Still Life_종이에 연필, 볼펜_56×35.5cm_2010
차영석_Well Still Life_종이에 연필, 볼펜_63×75cm_2010

● 차영석이 그려내는 정물들은 우리 삶 깊숙이 그리고 너무나 친숙히 뿌리 박힌, 흔해 빠진 사물들이다. 치밀하고 세밀한 연필작업을 통해 재현되는 이러한 사물들을 그는 '건강한 정물'이라 부른다. 작가 개인의 취향에서 수집된 사물들은 사회의 그물망 안에서 각기 다른 사회성을 투영하고 있으며 작가는 치밀하고 수공적인 세밀화 작업을 거쳐 철저히 이를 해체시키고 있다. 아주 작은 점으로 찍히는 흑연의 검은 심은 형상을 구체화하는 최소한의 단위로 무수한 반복의 제스처를 통해 사물을 파편화하는 동시에 물성을 극대화 시킨다. 한 화면 안에서 산발적으로 무질서하게 하지만 정적으로 배열된 사물들은 이러한 집요한 행위를 거치며 질서 있게 파편화 되었다.
허윤희_날개 Wings_70×50cm_2007
허윤희_봄 오는 소리 Sound of Spring_종이에 목탄_79×110cm_2008
허윤희_섬 Island_종이에 목탄_79×110cm_2008

● 허윤희는 개인의 내면과 일상의 감정을 응축된 화면 안에서 재현한다. 소소하고 깊은 감정의 바다에서 출렁이는 개인의 내면의 이야기는 목탄의 거친 질감과 투박한 표면 위에 날것의 감각 그대로 투영된다. 장면의 레이어(layer)를 만들 듯 한번 그어진 목탄의 무게감은 그리고, 지우고, 덧바르는 과정 속에서 겹겹이 그 흔적을 쌓는다. 이렇게 기억은 끊임없이 과거와 현재의 경계에 머무른다. 거친 목탄의 물성과 극적인 내면의 감성이 충돌하며 그녀의 작업은 완성된다. ■


 



꿈의 사계 The seasons of Dreams

이상윤展 / LEESANGYOUN / 李尙胤 / photography   2011_0520 ▶ 2011_0526


이상윤_December Dream_100×67cm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미지 속닥속닥 Vol.20090526a | 이상윤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0520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01:00pm~07:00pm

다원예술공간 도어 OPEN SAPCE DOOR 서울 마포구 동교동 177-22번지 B1 2관 Tel. 070.7590.9335 www.thedoor.co.kr


렌즈 속 빛을 통한 꿈과 무의식의 세계 ● 다 보여 지지 않는 꿈 그 꿈속에서 느끼는 건 숨소리 바로 그 숨소리에서 작가의 작품은 시작된다. 첫 번째 전시는 버려진 것들의 생명과 그리고 생활의 흔적들을 작가의 마음에 담고 두 번째인 이번 전시는 꿈의 내면적 심상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시작하는 작품들을 만나게 된다.
이상윤_December Dream Ⅰ_100×67cm
이상윤_December Dream Ⅱ_100×67cm
이상윤_December Dream Ⅳ_67×100cm

꿈의 해석이란 꿈 속에 숨어 있는 욕망이나 불안을 자유연상(自由聯想)에 의해 찾아내는 일을 말한다. 이러한 꿈의해석은 수면 중에는 깨어 있을 때의 자아활동이 저하됨으로써 억압 된 욕망이나 불안이 변형된 의식으로 떠오르는 것이라고 상정(想定)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프로이드는 먼저 여러 학자들의 문헌을 통해 이전의 꿈 해석 및 인식 방법을 검토한 뒤 자신의 독특한 꿈의 이론을 제시하고, 나아가 '꿈 문제에 관한 학문적 문헌', '꿈 해석의 방법:꿈 사례분석' 등의 내용을 통해 꿈이 정신분석 이론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상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꿈 속에 나타나는 상징, 꿈과 의식 및 무의식의 연관성을 캐고 있는 프로이트는 꿈이 인간의 무의식적인 정신생활을 이해하는 지름길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상윤_The memory of Autumn Ⅴ_100×67cm
이상윤_The memory of AutumnⅠ_67×100cm

프로이드에 이어 융(Jung,1964)도 인간에게는 자신의 내면적 심상인 상징과 꿈을 통하여, 일상적 의식의 세계가 아닌 다른 깊은 곳에 성장의 의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하였다. 작가는 위의 심리분석 이론과 그 실제 적용에 대한 기본적 특징들, 예컨대 꿈의 성적(性的) 특성, 소원충족 이론, 상징적, 암호화, 억압이론, 자아와 무의식으로 분열된 심리, 등의 이론과 실제 증세들, 의식화의 방법 등을 사진 속에서 제시하고 있다.
이상윤_The memory of AutumnⅥ_100×67cm

전시회의 제목(The Seasons of Dreams) 에서도 알 수 있게 내면의 심상인 꿈을 계절 (가을과 겨울)로 형상화하려고 했다. The memory of Autumn 시리즈를 통해서는 사진에 빛을 직접 담거나 주된 피사체에 부분만을 밝게 촬영하여 무의식 속에 있는 현재의 문제, 갈등의 해소를 원하고 있는 마음의 상태를, 또한 유년시절의 보고 자라났던 추억과 꿈에 대한 기억을 내포 하고 있다. ● Deceber Dream 시리즈는 내리는 눈을 통하여 차가운 현실에 맞서는 따스한 마음의 표현과 신의 절대적인 사랑의 손길을 통하여 구도자의 갈등을 해소 하고 싶은 상태를 표현하고 있다. ● 작품을 통하여 느끼는 것은 삶이 곧 꿈이고, 꿈이 곧 미래라는 것, 현실의 무의식이 자동생성(La genèse automatique)의 언어로, 상징적으로 표현 된 피사체는 보는 이의 또 다른 내면의 세계로 이끌고 간다. ● 이 상 윤의 이번 전시에서 카타르시적 분출과 예술을 도구로 한 꿈과 무의식의 승화와 꿈을 통한 자기의 관점, 사회통합의 관점 등을 시험적 시도로 보고 있다. 렌즈 속 즉 꿈 속의 빛과 함께 작가가 표현하고자 했던 내적 치유와 온전함을 추구해가는 일련의 과정을 꿈과 무의식을 통해 카타르시스, 인식 승화, 자기수용에 이르게 하고 강제적인 해석이 아닌 관객들로 하여금 자신의 에고(Ego)와 소통하여 사랑의 메시지를 공감하고 신뢰형성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이 두 번째 전시를 통해서 작가는 무의식적 꿈과 희망이 바야흐로 사회적 소통을 매개하는 통섭(通涉)의 언어로 진일보(進一步)한 시점에 도달해 있다. ■ 이주영




CLOSER & CLOSING

국립현대미술관 창작스튜디오 국제교류프로그램   2011_0520 ▶ 2011_0530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아시아퍼시픽 프로그램 / 지그나샤 오자 Jignasha Ojha, India (창동) 아몬텝 재이드 Amornthep Jaidee, Thailand (고양) 맥딜런 웡 Chung Yun Magdalen Wong, Hong Kong (고양) 미쿠니 야나이하라 Mikuni Yanaihara, Japan (고양) 유네스코-아쉬버그 장학연수 프로그램 / 아담 톰슨 Adam Thompson, U.K. (창동)

관람시간 / 10:00am~06:00pm

국립현대미술관 고양창작스튜디오 Goyang Art Studio National Museum of Contemporary Art, Korea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관산동 656번지 Tel. +82.31.962.0070 www.artstudio.or.kr


국립현대미술관(관장 배순훈)에서 운영하고 있는 창작스튜디오(고양, 창동)는 2011년 상반기 국제교류프로그램의 결과보고 전시,『CLOSER & CLOSING』을 오는 5월20일(금)부터 5월30일(월)까지 고양창작스튜디오에서 11일간 개최한다. 창작스튜디오는 국내 대표창작지원기관으로서 그동안 국내작가 창작활동 지원 외에 아시아, 유럽 등지의 유능한 작가들에게도 공간지원과 활발한 문화교류를 추진하여 다양한 국적의 예술가들이 서로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는 장으로써 역할을 해왔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지원하고 있는 다양한 국제교류프로그램 참여를 통해 한층 성장한 다국적(인도, 태국, 홍콩, 일본, 영국 출신) 5인의 참여작가들은 지난 5개월여 기간동안 한국에서 겪었던 경험과 기억 등을 작품화하여 새로운 장소와 문화를 바탕으로 신체, 성 정체성, 일상 오브제, 개인의 기억, 형상과 지각 등의 이해관계를 다양하게 표출하고 있다. 본 전시는 평면, 조각, 사진, 영상, 설치 등 여러 매체를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문화의 일면으로 더 넓은 세계를 이해하거나, 반대로 개인의 정체성과 장소 특수성의 문제를 다시금 생각하도록 이끈다. 또한 이번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의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각자의 작품과 창작스튜디오 입주 경험 등을 국내작가와 공유하는 시간도 갖을 계획이다. 이번 전시는『CLOSER & CLOSING』 라는 전시 제목처럼, 국외 작가들과 더욱 친밀하게 예술 교류를 도모하고 입주기간 종료 시점에서 창작 성과물들을 선보이기 위해 기획되었다. 아울러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국외 작가들이 국내에 소개되고, 국가 간 예술 네트워크를 넓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보다 자세한 정보는 국립현대미술관 창작스튜디오 홈페이지 www.artstudio.or.kr를 통해 얻을 수 있다. ■

지그나샤 오자_Untitled_종이에 수채_56.6×38cm_2011

지그나샤 오자 ● (1978년 생 / 인도 / 회화) 인도 출신의 작가 지그나샤 오자는 인도의 미니어쳐 회화에서 영감을 받은 수채화 작품에서 시공간을 넘나드는 환상적인 이미지를 보여준다. 작가에게 회화는 기억 속에 머물러 있는 과거의 사건과 경험을 현재에 위치시키는 매개체의 역할을 한다. 과거와 현재, 나와 타자, 현실과 꿈, 육체와 정신, 다른 문화 등 상반되는 이미지가 조합되면서 하나의 드라마가 연출되고, 그 안에서 작가는 자신이 현존하는 시공간을 탐구한다. 오자는 사적인 이미지를 그림의 배경으로 주로 차용하지만, 때로는 현대적인 실내 풍경을 전통적인 미니어쳐 회화의 양식으로 변모시켜 이색적인 특징을 부여한다. 이미 사람들에게 익숙한 이미지 속에 소인들을 배치시켜 관객들로 하여금 마치 숨바꼭질을 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또한 전통적인 인도 문양이 마치 작품의 액자처럼 둘러싸는 구성을 통해, 작품을 보는 이들이 관객과 제 3자의 역할로 사건과 이미지에 대한 기억을 구성하게끔 한다. 회화의 내용뿐 아니라 이와 같이 시각적인 효과에서도 시공간을 넘나드는 이미지를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표현한다. 오자의 작업은 서로 다른 문화 혹은 과거와 현재에 대한 상호 작용에 대한 탐구라 할 수 있으며, 기억과 현재의 경험이 공존하여 꿈을 현실로 실현시키는 타임머신과 같은 역할을 한다.
아몬텝 재이드_Untitled_렌티큘러 프린트_100×100cm_2011

아몬텝 재이드 ● (1982년 생 / 태국 / 설치) 아몬텝 재이드는 섹슈얼리티(sexuality)와 성(gender) 정체성에 대한 사회적인 구조를 탐구하는 태국 작가이다. 사회에서는 이미 '평범한'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각각 규정되어 있다. 작가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혼합될 때에는, 상승효과를 내기 보다는 사회적으로 '부적합'한 특징으로 인식된다는 것을 깨닫고, 사람들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동성애에 관한 편견과 오해를 폭로하고자 한다. 캐나다에서 오랜 기간 작업을 하며 서양 문화를 접했던 재이드는 한국의 고양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하면서 다시 아시아로 시선을 돌리는 기회를 마련했다. 그는 한국의 성 정체성에 대한 인식을 탐구하기 위해 서울에 사는 여러 동성애자들을 만났다. 작가는 한국에서 동성애는 서구 문화에 대한 수용과 관련이 있으며, 한국의 동성애자들은 성 정체성과 지역적 정체성의 이중적인 상황에 놓여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동성/이성과 서양/동양에 관한 구조가 교차하면서 아시아의 동성애자들의 정체성이 어떻게 형성되어 가는지에 대해 고민하였다. 세계가 점점 글로벌화됨에 따라, '정상적인' 인식에서 소외된 동성애자들의 진정한 개개인의 정체성은 가려지고 숨겨진다. 재이드는 이번 전시에서 설치 작품을 통해 사회적인 압력 때문에 가려질 수밖에 없는 동성애자들의 정체성을 '옷장'이라는 은유를 통해 표현한다. 관객들은 성 정체성에 대해 속삭이는 사운드와 어두운 실내에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거울을 통해, 사회적인 역할과 의무에 충실하기 위해 억눌려왔던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재고해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재이드는 설치, 조각, 평면을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다양한 방법으로 전달하며, 관객 스스로 자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맥딜런 웡_Unidentified Fountains_디지털 사진 콜라주_가변크기_2011

맥딜런 웡 ● (1981년 생 / 홍콩 / 영상, 사진, 설치) 홍콩 출신의 작가 맥딜런 웡은 우리의 일상생활을 가득 채우는 이미지와 제조품들에 관한 현대 물질문화에 관심을 가진다. 일상생활에 축적된 이미지와 오브제들은 거의 모든 물품들을 손 쉽게 이용할 수 있는 현 세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강박적인 행동이 되기도 한다. 웡에게 서울은 아시아의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소비가 중독처럼 이루어지는 시각적이고 물질적인 포격에 피해에 노출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웡의 작품은 사람들의 일상적인 소비가 일어나는 시장, 가게를 답사하거나, 그러한 대량 소비재들을 유심히 관찰하는 데에서 비롯한다. 한국에서의 웡의 작업 역시 현대의 사회적 행동과 문화적인 관습을 드러내는 일상적인 물품들을 사용한다. 그 중 『Found Landscape, Korea』(2011)은 한국에서 생산되는 제과류의 포장물에서 착안한 작품이다. 작가는 여러 포장물들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몇몇 포장재들이 소비자들에게 건강한 삶을 부여한다는 거짓된 믿음을 심기 위해 자연 풍경의 이미지를 삽입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작가는 이러한 포장재들을 드로잉 작품으로 그리면서,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강요되고 의도된 의미 체계를 드러내며 이를 현대 사회의 한 부분으로 이해한다. 웡은 우리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사물에서 이미지와 의미를 분리시키는 작업을 통해 더욱 의미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을 의도한다.
미쿠니 야나이하라_End and Start_영상_2011

미쿠니 야나이하라 ● (1970년 생 / 일본 / 영상, 사진, 퍼포먼스) 미쿠니 야나이하라는 춤, 영상, 조각, 소설, 퍼포먼스와 같이 다양한 표현 방식으로 신체, 특히 신체와 공간의 관계를 탐구해 온 일본 작가이다. 작가는 사람들의 신체를 통해 사회와 외부 세계를 인식한다. 사람들은 보통 공적인 장소와 사적인 공간에서 다르게 행동한다. 무엇이 이들의 행동을 다르게 만드는가? 그리고 다른 유년 시절의 환경, 문화, 국가가 사람들의 행동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작가는 물리적으로 다른 공간, 장소에 의해서 야기되는 개인의 현존을 고찰하고, 그러한 주제를 인간 행동 속에 일어나는 커뮤니케이션으로 발전시키고자 한다. 야나이하라는 공공의 장소에서 개인은 크나큰 실수를 저질러 왔고, 개인주의가 팽창하면서 전쟁과 테러를 일으켰다고 말한다. 작가는 한국의 입주 경험을 통해, 국가와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를 넘어선 인간의 불확실성을 탐구하며 인간 행동에서 드러나는 동일한 관점이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야나이하라는 이번 입주 기간 동안 역사와 공간을 넘어 한 사람으로서 개개인이 자신의 삶과 마주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고, 이에 대한 주제를 『End and Start』(2011)에 담아냈다. 사람의 생명이라는 것은 유일하지만, 그 생명에는 누구나 끝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생명도 반드시 탄생한다는 작가의 깨달음이 영상 작품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아담 톰슨_Untitled_가변크기_2011

아담 톰슨 ● (1980년 생 / 영국 / 설치) 영국 출신의 작가 아담 톰슨은 일상생활에서 찾아낸 이미지와 사물을 재료로 활용하여 공간과 형상에 대한 자각을 일깨우는 작품을 선보인다. 작가는 도시의 거리에 버려진 각종 쓰레기와 폐기물들을 면밀히 조사한 후, 이들을 수집하고 본래의 의미를 비워내며 전시장에 설치하는 과정을 거친다. 작가는 직접 무엇을 만드는 과정 없이 그리고 발견한 오브제에 미리 결정된 논리나 개념을 부여하지 않고 단순히 작품의 재료가 될 대상들을 수집할 뿐이다. 이러한 과정을 두고 톰슨은 자신의 역할을 고고학자에 비유한다. 소유가 아닌 수집, 재구성하는 자신의 작업은 더 넓은 의미에서 가치, 창조에 대해 이야기한다. 창동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한 톰슨에게 서울은 오브제들을 수집할 수 있는 무한한 작업 공간이었다. 재료를 수집하는 2개월여의 기간 동안 서울이라는 도시 공간에서 에너지를 느꼈고, 새로운 작업 재료들을 통해 예술적인 실험과 새로운 가능성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톰슨의 작품이 된 오브제들은 변형 없이 그대로의 상태로 전시장 공간에 놓여진다. 그 오브제에는 산업시대의 과잉에 관한 현존의 의미 외에는 아무것도 더해지지 않았지만, 그 자체로 완전성을 지닌다. 버려진 오브제들이 작품으로 전시되면서 지니게 된 불완전한 미적 가치는 각각의 작품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톰슨의 장소특정적 설치 작품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물질과 공간, 시간과 존재, 소비와 창조에 대해 고찰하게 될 것이다. ■ 창동고양창작스튜디오




목림림 木林林 The Simple Logic

이기훈展 / LEEKIHOON / 李基勳 / painting   2011_0520 ▶ 2011_0603 / 월요일 휴관


이기훈_Tree Jesus_한지에 먹, 연필_지름 60cm_2011

초대일시 / 2011_0520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가회동60 GAHOEDONG60 서울 종로구 가회동 60번지 Tel. +82.2.3673.0585 www.gahoedong60.com


심각한가요, 복잡한가요? 특별한 것 없습니다. 지난 몇 년간 이기훈은 나무에 집착해 왔다. 그의 그림은 치밀하게 묘사한 나무들로 빽빽하게 채워졌다. 하지만 그런 나무 모습과 달리 형상 주변은 하얗게 비워왔다. 그가 지난 전시까지 먹을 이용하여 풍경 산수를 그렸다. 먹 자체, 한국화적 재료가 가진 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했던 것이 과거 작품이었다면, 이번에는 보다 내용과 소재에 있어 자유로워 보인다. 나무, 숲이라는 풍경과 함께 작품 안에 도입된 사물들은 관람객들이 보다 확장된 의미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얼핏 보기에 외향적으로 달라진 듯 보이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든 형태들은 나무가 모여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나비 모양을 그린 작품은 마치 곤충 표본 액자 모습 같다. 하지만 실제로는 잎이 무성한 나무 형태를 이리저리 맞추어 놓은 것이다. 새롭게 시도한 「더 심플 로직-레드 메일 밴(The Simple Logic-Red Mail Van)」(2011) 에서 중앙에 배치한 자동차 모양을 만들어 내는 것도 이 나무들이 엉긴 군집에 따른다.
이기훈_The Simple Logic_한지에 먹, 연필_각 22×26cm_2011
이기훈_The Simple Logic_한지에 먹, 연필_40×40cm_2011

이 그림을 바닥에 두고 우리가 개미처럼 작은 존재가 되어 그림 위로 걸어간다고 상상해 보자. 우리는 먼저 숲을 볼 것이다. 그 숲을 지나면 갑자기 나무들 사이 펼쳐진 넓은 공간을 만날 것이고, 곧 다른 숲들이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 하지만 넓은 땅이 어떤 모양인가를 알게 되는 것은 우리가 위에서 볼 때 가능하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기훈의 작품을 볼 때 이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그림을 처음 볼 때 겉에 드러난 형상만을 인식한다. 하지만 들여다 볼 수로 화면에서 새로운 공간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기훈_The Simple Logic_한지에 먹, 연필_40×100cm_2011
이기훈_The Simple Logic_한지에 먹, 연필_40×100cm_2011

작가는 그림에서 사람들이 1차적으로 느끼는 어떤 생각이 배제되기를 희망한 듯하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복잡하게 묘사된 것 같지만 멀리서 보면 간단하고, 심오한 작가적 생각이 있냐고 물었을 때 아무 의미 없다고 하는 것 말이다. 얼굴과 나무를 엮어 원형으로 그린 「더 심플 로직(The Simple Logic)」(2011)에서도 보면 각각 여덟 개 형상들을 그렸다. 이미지를 치밀하게 묘사하고 숫자가 상징하는 의미를 생각할 때 이것은 틀림없이 작가가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동양에서는 전통적으로 '4'를 완벽함을 나타내는 숫자로 인식했다. 예를 들어 모든 방향을 나타내는 '사방팔방'은 4에 4를 더한 8을 나타내는데, 이때 4는 사각형, 완전함 등을 의미한다. )동양에서는 전통적으로 '4'를 완벽함을 나타내는 숫자로 인식했다. 예를 들어 모든 방향을 나타내는 '사방팔방'은 4에 4를 더한 8을 나타내는데, 이때 4는 사각형, 완전함 등을 의미한다. 그래서 작가에게 혹시 완전함을 상징하는 숫자 4, 혹은 8을 염두에 둔 것이냐고 물었지만 그는 '심플'하게 아니라고 대답했다. 작가가 원하는 것은 이러한 위트가 있는 반전이다. 심각함을 가볍게 풀어내고 그 가벼움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간단함 말이다. 「더 심플 로직-예수(The Simple Logic-Tree Jesus)」(2011)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종교적인 예수라는 인물을 삽입했기 때문에 내적으로 깊은 내용이 있을 것이라 여겨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의외로 이기훈은 작업실에 걸려 있는 주변 사물 들 중 하나를 묘사한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관람자는 그 간단한 대답 속에 무의식적 어린 시절, 혹은 마음 한곳의 기억을 표현한 것임을 눈치 챌 수 있다. 작가는 바로 이렇게 사람 생각에서 반전을 거듭하는 모양을 화면에 담아냈다. 사실 세상살이가 생각하기 나름 아니겠는가? 생각을 바꾸어 보면 우리에게 심각함이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의문스런 그의 그림은 재미있게도, 심각하게도 읽을 수 있다. 이러한 양면성을 보여주고 의미를 선택하는 것은 우리의 몫일 것이다. ■ 박서우





spacing

자비에 베이앙展 / Xavier Veilhan / sculpture.installation   2011_0520 ▶ 2011_0818 / 월,공휴일 휴관


자비에 베이앙_Richard Rogers_알루미늄_176.6×56.3×35.7cm_2011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 / 일주학술문화재단_선화예술문화재단 후원 / 태광그룹_흥국금융가족_티브로드

관람시간 / 11:00am~06:30pm / 월,공휴일 휴관

일주&선화 갤러리 ILJU&SEONHWA GALLERY 서울 종로구 신문로 1가 226번지 흥국생명빌딩 3층 Tel. +82.2.2002.7777 www.iljufoundation.org www.seonhwafoundation.org


베이앙의 작품에는 '직선과 기하학적 도형, 단순한 면, 기계적 제작방식' 등 대량생산, 기능주의, 미니멀리즘(최소한의 표현으로 사물의 근본 즉 본질만을 표현한 예술, 문화적 흐름)의 요소가 포함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특징은 작품 표면에 드러난 형식적인 부분으로 작가가 말하고자 한 것은 '존재에 대한 본질', '인간의 실존'입니다.
자비에 베이앙_Claude Parent_알루미늄, 폴리우레탄 페인트_167.6×125.8×103cm_2009

작가는 사물이나 표현할 주제에서 '불필요한 것'을 지우고 최후에 남은 것을 작품으로 보여줍니다. 즉 더 이상 지울 수 없는 것이 대상이 가진 '본질', '실존'이라고 설명합니다. 그의 작품은 최후에 남은 것이 '물질', '물성'인 미니멀리즘과 달리 '실존', '본질', '인간' 등 정신적인 것을 선보임으로써 미니멀리즘의 한계에서 벗어납니다. 형태보다는 '개념의 단순화'를 통해 본질과 실존에 접근하기 때문에 미니멀과 구상, 조형과 설치, 모빌, 영상 등 다양한 표현방식을 넘나듭니다.
자비에 베이앙_Norman Foster_알루미늄, 폴리우레탄 페인트_212×58.5×50.2cm_2009

현대 건축가를 모델로 한 인물 조형에는 인간임을 알 수 있도록 최소한의 면만 남긴 작품 「Richard Rogers」부터 얼굴 표정까지 읽을 수 있는 작품「Norman Foster」까지 하나의 주제임에도 다양한 표현방식이 공존합니다. 모델로 등장하는 Richard Rogers, Norman Foster, Ando Tadao 등 건축가들은 '건축의 외형이 아닌, 그 안의 인간과 삶에 먼저 초점을 맞춘 인물'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비에 베이앙_Stabile n°2_스틸, 스테인리스 스틸, 에폭시 페인트_220×40×170cm_2010

모던함, 단순함 등 형태적 공통점을 보이는 건축가들은 많지만 베이앙의 작품으로 표현된 건축가들처럼 '인간', '존재', '정신'에 대해 고민한 인물은 드뭅니다. 이런 차이점으로 작품 속 건축가들은 한 발 앞선 미래를 제시한 선구자로 평가 받고 있는 것입니다.
자비에 베이앙_Stabile n°7 B_스틸, 스테인리스 스틸, 에폭시 페인트_201×40×20cm_2010

정지된 형태의 조형작품 「Stabile」과 움직이는 조형작품 「Mobile」에서도 표현방식과 형태에 얽매이지 않는 작가의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모빌작품은 설치 특성상 공간에 맞춰 사이즈와 위치 등을 구성하지만, 퐁피두센터에 전시된 베이앙의 작품 「The Big Mobile」은 공간보다 큰 형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은 '공간', '우주', '흐름' 등 형태에서 느껴지는 보편적인 개념 외에 "이곳을 찾은 관람객의 생각을 말 풍선처럼 표현하고자 했다"는 작가의 생각이 공간보다 큰 모빌 작품으로 시각화 된 것입니다.
자비에 베이앙_Drumball_8"30' 무성 영화, 스틸, 에폭시 페인트, 디스플레이 모니터, 멀티미디어 장치_80×110×60cm_2003/2011

선, 면이라는 2차원과 구, 입체라는 3차원의 조형요소들로 이뤄진 「Stabile」은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는 조형작품으로 조용하고 평면적이며 명상적입니다. 이 작품은 기하학적 도형 위에 단순화 된 인물(건축가)상을 세워 놓은 「Figure」와 함께 '보이는 세상(물질)과 보이지 않는 세상(개념)'을 보여주며 베이앙의 작품이 이 두 세계를 연결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작가는 고층 빌딩의 도심에서 인간의 실존과 고독 등을 함께 고민하고 공감하고자 합니다.
자비에 베이앙_Le Carosse_스틸에 채색_170×900×110cm_2011

이와 같은 자비에 베이앙의 다양한 작품을 'spacing'展을 통해 소개합니다. spacing은 '자간 또는 일과 일 사이의 간격'을 뜻하는 사전적 의미와 '일정한 공간을 점유하는 활동'이라는 개념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보이는 세상과 보이지 않는 세상'을 작품으로 연결하고자 하는 작가의 생각과 어느 특정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공간을 점유하는 활동'이라는 큰 의미로 표현되는 작품의 특성을 'spacing'으로 선보이고자 합니다. ■ 일주&선화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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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츠 앤 레이어스 Parts and Layer





니키 리展 / Nikki S. Lee / photography   2011_0519 ▶ 2011_0619 / 월요일 휴관




니키 리_PART 6_디지털 C프린트_71.8×51cm_2002



초대일시 / 2011_0519_목요일_06:00pm

주죄 / 원앤제이갤러리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원앤제이 갤러리 ONE AND J. GALLERY 서울 종로구 가회동 130-1번지 Tel. +82.2.745.1644 www.oneandj.com




천녀유혼 ● 사진이 부여하는 기만의 미몽에서 내가 깨어난 것은 다분히 니키리(Nikki Lee)의 히스패닉 프로젝트에서 기인한다. 1999년 초여름, 엔와이유(NYU) 대학원을 갓 졸업한 니키리가 히스패닉 프로젝트를 마치고, 그 결과물을 일반 스냅 사진처럼 보여줬는데, 나는 그 사진 속의 라티노 여성이 니키리라는 것을 전혀 상상 조차 못했다. 그냥 히스패닉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그들의 삶의 단면을 찍어 온 그저 그런 사진으로 보고 재미난 사진이라고 심드렁하게 말했었다. 니키리와 그때 그녀를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어주었던 친구가 매우 기뻐하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내가 보기 좋게 속아 넘어갔기 때문이었다. 당시 정체성의 정치(identity politics)와 멀티컬처럴리즘(multiculturalism)에 "열공"하고 있던 나로서는 굉장히 놀라운 일이었다. 내가 철학이나 사회과학적 이론으로 힘겹게 배우고 있던 세계가 눈 앞에 산뜻한 비주얼로 딱 나타났으니, 내가 얼마나 놀라고 흥분했겠는가. 아티스트가 찍는 사진이 아니라 찍히는 사진을 보면서 사진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 바탕이었던 "그 시간,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성에 대한 믿음이 송두리째 뒤흔들렸던 것이다. 신디 셔만(Cindy Sherman)도 낸 골딘(Nan Goldin)도, 쳉광치(Tseng Kwong Chi)도 에이드리언 파이퍼(Adrian Piper)도 니키리를 경유해서 이해하게 되었고, 사진이 왜 예술이 되는지도 그때부터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 그 후 니키리는 그녀가 전속된 레슬리 통크나우 갤러리(Leslie Tonkonow Artworks + Projects)에서 이 프로젝트 시리즈로 개인전을 열면서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화려하게 뉴욕 미술계에 데뷔를 하였다. 그 이후 "파트(Part)" 시리즈와 "일명 니키리(A.K.A. Nikki S. Lee)"라는 가짜 다큐멘터리 디지털 영화를 만들어서 사진과 영화의 다큐멘터리적 속성을 전복 시키면서 우리가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 대한 새로운 모습들을 감각적으로 보여주었다. 뉴욕 미술계에서 확고하게 입지를 굳힌 니키리는 시케마 젠킨스 갤러리(Sikkema Jenkins & Co.) 로 이적하면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새로운 작품시리즈인 "레어어스(Layers)"를 발표하였다. 이전의 작품들이 사진의 형식으로 구성은 되었지만, 그 예술적인 아우라가 사진 속에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찍히는 방식, 즉 니키리가 사진에 찍힐 사람들과 관계하는 방식, 퍼포먼스에 놓여 있는데 반해, 레이어스 시리즈에서는 무명의 초상화가들이 그린 그녀의 초상화 세 점을 겹쳐 놓으면서 사진을 찍어서 포개진 초상화의 차이를 예술적 효과로서 제시하는 것이었다.
니키 리_Part 27_디지털 C프린트_222.3×195.5cm_2007

프로젝트에서부터 레이어스에 이르기까지 지난 12년간 니키리가 보여준 예술적 궤적에는 아이덴티티의 복잡 미묘함과 그 가상성의 문제가 언제나 핵심에 놓여있었다. 프로젝트 시리즈에서 보여주었던 감수성과 문제 의식이 이후 작업에도 지속적으로 깔려있는 것이다. 프로젝트 시리즈에서 니키리는 펑크, 레즈비언, 라티노, 노인, 화이트 트레쉬, 스트립 댄서, 여피 등 카멜레온처럼 다양한 사람으로 변신하여 나타난다. 혼자가 아니라 그 집단들의 일원으로 그 집단의 구성원으로 사진 속에 나타나는 것이다. 우선 찍고 싶은 사회 하위 집단을 정한 후, 그 집단의 일원처럼 자신의 외모뿐만 아니라 몸짓이나 분위기까지 완벽하게 컨트롤하여서 포즈를 잡고, 자신이 찍히는 지점을 스스로 결정한다. 그리고는 전문 포토그래퍼가 아닌 비전문가인 친구나 지나던 행인에게 부탁을 하여 사진을 찍는다. 사진기도 관광객들이 주로 들고 다니는 일명 "똑딱이"라고 하는 단순한 카메라로 찍게 하여 그 사진을 찍은 날짜까지 프린트가 되게 하고, 그 찍힌 결과도 역시 아마추어가 찍은 사진답게 구성이 허술하게 나온다. ● 사회 내 특정한 집단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실제적인 시간과 장소가 구체적이며 그 정확한 순간이 증거로 찍혀 있는 사진, 누가 봐도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생활 속에서 그들의 생활의 단면이나 특정한 사건이나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찍은 평범한 사진으로 보이는 "내가 그때 거기에 있었다"는 현장성을 기록하고 기념하는 소위 "인증샷" 이외의 다른 목적이 배제된, 즉 사진을 찍는 사람의 구체적 의도는 배제되고 사진이 가진 기계적 속성에서 비롯되는 비결정성과 찍히는 사람들에게서 비롯되는 불확정성이 겹쳐져 사진은 더욱 날것처럼, 아마추어적인 것처럼, 비예술적인 것처럼 보인다. 낸 골딘이나 래리 클락(Larry Clark)처럼 주제가 날 것인 것이 아니라 예술적으로 보이지 않게끔 해서 관객으로 하여금 더욱 진짜처럼 생생하게 느끼게 하려는 의미에서의 날 것인 것이다. 아마도 내가 처음 그 사진들을 보고 속았던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내 앞에서 나와 이야기 하고 함께 커피도 마시는 니키리와 함께 그 사진을 다시 보았을 때, 나는 매우 팽팽한 긴장감과 해방감을 동시에 느꼈다. 매우 즉흥적인 스냅 사진의 외양 속에 엄밀하게 연출된 구성으로 인하여 의미는 아이러니로 중첩되어 깔려 있고, 그 속에서 과잉으로 드러나는 현실감은 오히려 꿈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니키 리_Project 3-Hispanic 16, 디지털 C프린트_54×71.8cm_2002

여피(yuppie) 프로젝트를 제외한 대부분의 프로젝트들은 문화적으로 하위문화 집단, 사회적으로는 비주류 집단들이다. 뉴요커로 표상되는 이미지로부터 배제되거나, 희화화되거나 문제시 되는 사림들인 것이다. 기껏해야 섹스 앤 더 시티나 프렌즈 같은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들러리 혹은 배경이 되는 정도의 사회 구성원들이다. 그런 하위 집단에 매우 이질적인 외부인인 니키리가 꼬리가 일곱 개나 달린 여우처럼 둔갑을 하여 그 구성원들의 일상 속에서 천연덕스럽고 생생하게 포즈를 잡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타자의 개입이 주는 긴장으로 인해 사진 속의 사람들은 돌연 생기를 띠면서 생생하게 빛을 발하게 되고, 급기야 이 배제된 사회 집단 자체가 스스로 사회일반으로부터 독립하여 그 자체가 하나의 당당한 세계로 제시되는 것이다. 니키리의 개입으로 인해 메인 컬처와 서브 컬처가, 주류 사회와 비주류사회가 등치 되고, 멀티컬처럴한 사회가 다원적 세계로 변해버린 것이다. 한편 이와는 대조적으로 여피 프로젝트는 다른 프로젝트와 반대의 지점에서 스스로를 일반 사회로부터 고립 시켜서 독립한, 실제로 뉴욕을 표상하는 사회 집단으로서 백인 여피가 하나의 서브 컬처고 비주류 사회라는 것을 니키리의 개입을 통해 드러낸다. 스스로 자신들을 특권화하고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지배 집단 속에서 니키리가 제아무리 완벽하게 변신을 해도, 흑인이나 라티노로 변신한 것과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아시아 여성으로서 그녀의 인종적 정체성은 명확하게 부각되고, 그와 같이 명확하게 구별되는 그녀의 절망적 변신 때문에 백인 여피 집단이 얼마나 배타적으로 구성되었는지를 알게 해주면서 백인 사회를 지탱하는 백인성(whiteness)이 하나의 사회적 구성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즉 메인 컬처나 주류 사회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배타적인 사회적 구성이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주류/비주류 간의 구분 자체를 해체해 버리는 것이다. 시각적으로 중첩되고 지적으로 엄밀한 그녀의 작품이 매우 통쾌한 감각을 제공하는 핵심이 바로 이 지점인 것이다. ● 프로젝트 시리즈에 비해서 파트 시리즈는 내용에서는 더욱 내밀하고 형식에서는 매우 파격적이다. 작품의 대상이 사회 집단에서 남과 여의 관계로 이동하였고, 사진의 일부를 칼로 잘라내는 파격을 감행한 것이다. 그녀와 관계를 맺고 있는 남자들과 일상적으로 찍은 사진에서 남자의 손이나 몸의 일정 부분을 제외하고 칼로 남자가 찍힌 부분을 잘라내어 버린 것이다. 흔히 신문이나 잡지에서 보이는 치정 살인 사건을 보도할 때 개제하는 "단란한 한 때"를 보여주는 것 같은 사진에서 남자는 잘려나가고, 관객들은 그 제거된 남자의 이미지를 니키리의 외모나 표정, 제스처, 나아가 그 사진이 찍힌 현장을 바탕으로 상상하게 만든다. 얼핏 보면 변심하거나 헤어진 남자 친구를 저주하며 잘라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주도 면밀하게 남자를 잘라내면서 그 남자에 대한 관심을 강화시키고 상상력을 자극시킨다. 잘려나간 남자를 사진에 남아있는 여자와 그 배경을 바탕으로 추적하고, 그 남자의 이미지를 복원하는 가운데 그 남녀의 관계를 구체적 내용으로 느끼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려진 사진은 어떤 관계이든 시간 속에서 끝이 있다는 냉엄한 사실을 감상적으로 환기시킨다. 프로젝트 시리즈와 비교하면 훨씬 노골적인 지적 쾌감을 주면서 그 쾌감을 감상적으로 몰고 간다. 다른 세계로 뛰어 드는 모험성과 그에 수반되는 활력이 보다 내면적이고 감상적인 지성으로 대체된 결과인 것이다.
니키 리_Part 13_디지털 C프린트_76.2×69.2cm_2003

파트 시리즈에서 보여준 니키리의 내밀하고 지적인 퍼포먼스를 미루어 볼 때, 그 다음 프로젝트를 영화로 진행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수순인 것이다. 현전(presence)을 부재(absence)를 통해 나타내고, 아이덴티티를 집단이나 관계를 통해 드러나게 하는 방식을 카메라를 미디움으로 수행하던 그녀가 보다 역동적인 매체인 영화를 가지고 천착한 대상은 바로 그녀 자신이다. 영화, "일명 니키리"에서 그녀는 자신을 대상으로 하여 관객들에게 누가 진짜 니키리인지 맞추어 보라는 도발을 감행한다. 피상적이고 감각적이며 유행에 민감하고 노는 것 좋아하는 외향적 니키리를 지적이고 사색적이며 성숙한 니키리가 다큐멘터리를 찍는다는 가짜 다큐멘터리를 "진짜" 니키리가 프로젝트로 진행하는 영상 작업이다. 일종의 "가짜 아티스트에 대한 진짜 다큐멘터리"이면서 동시에 "진짜 아티스트에 대한 가짜 다큐멘터리"를 보여주면서 영화 속의 두 니키리가 다 진짜 니키리가 아니면서 동시에 둘 다 니키리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손오공의 머리털과 같은 두 개의 분신 니키리들을 내려다 보는 초월적 니키리가 심각하게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이다. 니콜라이 하트만(Nicolai Hartmann)이 말하는 것처럼 "모든 것이 장난과 동시에 진지함이고, 모든 것이 마음 밑바닥부터 숨김없이 드러나 있음과 동시에 깊숙이 숨겨지지 않으면 안되는" 아이러니로 니키리는 일체의 피한정성을 넘어서서 초월적인 자신의 아이덴티티, 예술가로서의 아이덴티티를 은밀한 방식으로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 이러한 경향성은 레이얼즈 시리즈에서 더 강화된다. 세계 여러 도시를 여행하면서 그 도시의 거리에서 암약하고 있는 초상화가 세 명에게 각자 자신의 초상화를 빛이 투과되는 종이 위에 그리게 한 다음, 그 세 장의 초상화를 라이팅 박스 위에 겹쳐서 올려 놓고 사진을 찍었다. 그 결과 각기 다른 초상화가가 그린 니키리 초상의 윤곽선들이 겹쳐지면서 본래 얼굴의 윤곽이 허물어지고 다양한 형상의 니키리가 겹쳐서 드러난다. 게다가 뉴욕에서 살고 있던 니키리의 얼굴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파리에서 그려진 초상화에는 파리 여성처럼, 마드리드의 초상화에서는 스페인 여성처럼,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의 초상화에서는 아르헨티나 여성의 분위기로 묻어나오면서 각 도시의 지역성이 뉴욕에 살고 있는 니키리의 지역성을 대체하면서 니키리는 의도하지 않게 초상화가들이 살고 있는 세계 속에 흡수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세계화가 전지구화로 되고 온라인망이 온 몸의 신경망 마냥 촘촘하게 연결된 후기 산업사회 속에서 니키리는 빛의 속도로 가는 세계 각 도시마다 존재하지 않는 자신을 존재하게 만든다. 폴 비릴리오(Paul Virilio)식으로 말하자면 "동시편재적 부재"를 드러내는 셈인데, 이런 부재의 감각은 우리로 하여금 깊은 고뇌감을 느끼게 하여 순간의 시간성에 대한 각성으로 이끌어 간다. 그 속도 덕분에 사물을 느끼고 체험하는 속에서 발생하는 감각이 마비되면서 추상화되고 전혀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전혀 상관이 없는 다른 사물을 느끼고 체험하는 감각과 접속되면서 인격의 본질 자체가 요동치는 것이다. ● 요컨대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의 아이덴티티가 아이덴티티로서 형성되고 확보되기가 버거운 것이다. 이렇게 프로젝트에서 출발한 니키리의 아이덴티티에 대한 탐구가 레이얼스로 일단락되면서 니키리의 작품 세계의 전모를 이해할 기회가 생겨난다.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했던 그녀는 사진이 가지는 리얼리티에 대한 믿음이 해체되고, 그 사실성 자체가 사진 속에서 은폐되어 있다는 자각 속에서 부재를 증명하는 알리바이로서 사진이라는 미디움을 능숙하게 사용해 왔다. 즉 니키리는 사진을 버림으로써 사진이 가지는 본질을 스스로의 퍼포먼스를 통해 구현해 온 것이다. 거기에 없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부재로서의 존재를 그녀는 사진을 찍히는 자리에서 역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빈틈이 없도록 철저하게 리얼리티를 부여한듯한 외관을 통해 자기 스스로가 허구가 되어서 사진이 가진 외관상의 진실성을 그 성격에 반대되게 이용한 것이다. 자의식적으로 구성되고 조직되고 허구화된 방식으로 니키리는 어디에나 편재하지만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야말로 섹시한 여자귀신이 사방세계를 떠돌고 있는 것이다. ■ 신지웅




2011 리트머스 플랫폼 쇼케이스





Litmus Platform 2011: Showcase展   2011_0521 ▶ 2011_0527 / 일,월요일 휴관







초대일시_2011_0521_토요일_03:00pm

참여작가 / 박윤주_송지은_오세인_민성진_정인교_정철규_신하정

주최/주관 /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기획/진행 / 곽소연(디렉터)_추명지(큐레이터)

관람시간 / 01:00pm~06:00pm / 일,월요일 휴관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 LITMUS COMMUNITY SPACE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 786번지 B1 Tel. +82.31.494.4595 www.litmus.cc




『2011 리트머스 플랫폼: 쇼케이스』전시는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의 신진작가지원 프로그램『2011 리트머스 플랫폼』의 첫 번째 전시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7명 작가들의 최근 작업과 신작을 소개한다. 본 전시는 11월까지 진행될 프로그램의 출발선 상에서 신진작가들의 기존 작업을 전시를 통해 재조명함으로써 작가들의 작업과 관심사, 예술적 실천 방식을 이해, 공유하고 이를 바탕으로 작가들의 향후 활동 가능성을 모색해 보고자 기획되었다. ● 2011 리트머스 플랫폼은 2010년도에 신설된 리트머스 신진작가지원 프로그램의 후속 프로그램으로 시각 예술을 중심으로 장르 간의 크로스 오버를 지향하고 실험적인 창작 활동을 지향하는 작가, 아티스트 콜렉티브나 예술가 그룹을 선정하여 지원하는 작가들의 연대 지원 프로그램이다. 본 프로그램은 리트머스가 위치한 원곡동의 지역적 맥락을 직접적으로 창작으로 연결시키거나 상이한 문화와 주체들이 접촉하고 충돌하면서 형성되는 동시대 사회문화적 현상들에 주목하면서 다양한 작업방식과 매체, 장르 간의 크로스 오버와 협업을 통해 예술 실천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려는 작가들을 연대하고 지원하고자 한다. 또한 완성된 결과물을 보다는 참여 작가들이 프로그램 기간 동안 개별적으로 혹은 공동으로 작업/프로젝트를 기획하고 발전시키는 리서치와 프로덕션의 과정을 중요시하며, 작업을 소개하고 프레젠테이션 하는 다양한 방식을 실험하게 될 것이다. 프로덕션 과정에 병행되는 사회문화 이론과 동시대 예술에 대한 다양한 세미나와 워크숍은 기획팀과 참여 작가들의 자율적이고 자발적인 제안을 통해 기획되고 운영될 것이다. ● 송지은은 공간과 공간을 구성하는 일상의 사물들을 주관적인 경험과 기억을 통해 여과시키고 재인식하여 평면 드로잉에 해체시키고 다시 재조합한다. 작가에게 드로잉은 일상의 공간과 사물을 새롭게 인식하고 해석하여 기록하는 과정이며 드로잉에 표현된 공간과 사물을 관객과 연결시키는 매개체로써 기능한다. 이번 전시에서 송지은은 건물 입구에서 리트머스 전시장으로 연결되는 계단 공간을 작가의 고유한 방식으로 바라보고 이 공간의 특성과 미세한 흔적들을 반영한 현장 벽면 드로잉 작업과 기존의 공간 드로잉 작업들 그리고 일상의 사물들이 본래의 기능과 가치를 상실하며 변환되는 과정을 매뉴얼의 형태로 제시하는 「D.I.Y.A」 연작 드로잉 작업 중 일부를 소개한다. ● 건축을 전공했고 현재 건축과 시각예술의 접점을 모색하며 활동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정인교는 이번 전시에서 「+0.3」이라는 설치작업을 선보인다. 유년시절 작가에게 일상적인 공간과는 다른 차원의 내밀하고 사적인 공간을 제공했던 책상 밑 공간에 착안하여 제작된 책상은 일반적인 책상보다 다소 높아 책상 아래에 성인이 앉을 만한 공간적 여유를 갖추고 있다. 이 작업은 일상적 오브제와 공간 활용의 유동성과 잠재적 가능성을 제시하며 비(非)공간에서 감성적이고 상상적인 공간으로의 통로를 창출한다. ● 사운드 작업을 통해 현실과 일상에 접근하며 이미지와 사운드의 관계를 연구하는 아티스트 듀오 오세인과 민성진은 이번 전시에서 사운드 설치작업 "The traces"를 리트머스 전시공간과 창고를 연결하여 새롭게 연출한다. 마치 벽면을 따라 복잡하게 자라난 담쟁이덩굴과 같은 형태로 구성된 수십 개의 이어폰에서는 뉴스, 라디오, 음악, 대화 등의 일상의 소리들이 들리고, 이어폰들 사이사이에 장착된 핀 마이크를 통해 전시장과 관객의 소리들이 녹음되고 동시에 재생된다. 과거와 일상의 다양한 소리들과 전시장 현장의 소리들이 혼재되고 중첩되면서 다수의 시간과 공간의 층위들이 소리를 매개로 공존하게 된다. ● 2011 리트머스 플랫폼에 프로젝트 그룹으로 참여하고 있는 정철규와 신하정은 각각 페인팅을 주요 매체로 작업하고 있고, 신하정은 페인팅 작업과 병행하여 가리봉동이나 마석, 성산동 임대아파트에서 지역 커뮤니티에 기반을 둔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다. 잊혀지지 않는 장소와 시간, 사건과 내면적 상황, 기억의 순간들을 볼록거울 형태의 캔퍼스에 기록하는 정철규는 볼록거울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가 아닌, 왜곡된 형태로 비추어 보여주듯이 자신의 특정한 기억의 순간들을 캔퍼스에 재구성하여 이야기한다. 이제 볼록거울 연작은 작가의 기억의 순간을 시각적으로 왜곡된 형태로 기록하는 차원을 넘어서 작가의 무한한 상상적 내러티브를 비추는 창이 되었다. 신하정은 견(silk)과 먹, 석탄가루, 목탄 등을 재료로 광업도시에서 관광레저도시로 변모하는 자신의 고향인 태백이라는 도시의 풍경과 그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회화작업과 어두움이 시작되는 시간 속 풍경의 이미지를 담은 「검은 풍경 (Dark scenery)」 연작을 그려왔다. 신하정의 회화는 캔버스로 사용된 견이 두, 세 겹 중첩되어 형성한 다층의 레이어로 인해 단면 회화가 표현할 수 없는 미세한 움직임과 풍부하고 독특한 공간감을 창출한다. ● 설치, 퍼포먼스, 사운드, 사진, 오브제, 영상 등의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는 박윤주는 "샤워론"이라는 작가만의 실험적 소통방식을 통해 샤워와 물에 연계된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과 행위, 감각을 특정 장소와 지역 그리고 사회적 현상에 대한 연구와 결합시킨다. 박윤주는 가리봉동, 와야리, 서울의 한 노인복지회관 등에서 지역을 리서치하고 기록한 작업과 관객참여 형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 곽소연
박윤주_샤워론_혼합재료_가변크기_2011



박윤주 ● 현재 작가는 '샤워론'이라는 작가 나름의 소통방식으로 실험을 진행하면서, 그 안에 매우 개인적인 역사와 매우 객관적인 사실을 가지고, 담백한 시각현상을 설치하여 그것을 노출시킵니다. 지상과 지하의 수도시스템으로 연결된 (샤워의) 물줄기가 관통하는 경로와 여정, 그리고 각각 개인이 받아들이는 그 물의 감각, 그것이 미치는 사회적 현상, 그 현상이 주는 이미지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송지은_Bell foundry at whitechapell_종이에 펜_154.22×182.22cm_2007
송지은_D.I.Y.A_종이에 펜_58×75cm_2009



송지은 ● 길을 걷는다. 도로 반대편의 사람들이 움직인다. 내 엄지손가락 보다 작다. 그들 위로 높은 빌딩은 해를 가리고, 다닥다닥 붙은 간판들은 화려하다. 반대편에선 내가 보이기나 할까. 길거리 떡볶이 집 안 튀김들은 메말라 보이고, 자동차들은 버스와 뒤엉켜 답답하게 서있는데 가끔 오토바이라도 지나가면 왜 그리 아슬아슬해 보이는지. 규칙적으로 서있는 나무들. 바람이라도 불면 사라락하고 낙엽들이 소리 낸다. 푸르지오 아파트 사무실 곁엔 조그마한 풍력 발전기와 태양열 판이 있던데 왜 그리 안 어울리는지. 오늘도 길을 걸어가며 변함없이 느낀다. 수많은 물체들로 이루어진 이 공간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그들은 보이면서 잊혀 진다. 마치 조각의 파편처럼 맴돌다가 사라져 버리는, 아름답지도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지만 주위에 존재하는 물체들. 나는 오늘도 길가를 걸으며 생각한다. 어떤 물체들이 나의 아니면 그들의 주변을 서성였는지.

민성진,오세인_The Traces earphone_mp3player, MIC_가변설치



민성진/오세인 ● The traces」는 개개인의 귀속에서 속삭여야 할 이어폰들이 모여 덩굴을 만들어 낸다. 수 많은 가지를 뻗으며 벽을 타고 올라가는 이어폰들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가까이서 하나하나 귀 기울이면, 그 내용을 들을 수 있다. 반면에 조금만 떨어지면 수많은 소리의 웅성거림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이러한 덩굴 사이에는 작은 마이크가 섞여 있다. 이것은 전시장 그 현장의 소리를 담고 있으며, 작품 앞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 관객은 자신의 목소리가 다른 어떤 이어폰에서 소리가 나는지 모른다. 심지어 그곳에 마이크가 있는지 모르고 지나치기가 쉽다. 익숙한 음악소리, 뉴스, 라디오, 친구와의 시시콜콜한 대화들의 뒤섞임과 엉켜있는 이어폰들의 모습은 작은 이어폰들의 뭉치일 뿐이지만 그 속에서 나 자신의 모습을 보게 만든다.

정인교_+0.3_합판_1×1.9×1m_2011



정인교 - +0.3 ● 책상의 높이 0.7m, 앉은 키 0.9m 유년시절 책상 밑은 내 방 속 또 하나의 공간이었다. 0.7 + 0.3 」 0.9

정철규_lingering moment-볼 수 없다_캔버스에 유채_지름 200cm_2010
정철규_lingering moment-모른다. 어디로, 어떻게_캔버스에 유채_지름 70cm_2009



정철규 ● 볼록거울에 다다가 나를 보여준다. 볼록거울은 친근해지다가 어느 순간 불편한 존재가 되어 어느새 나는 내 자신도 모르게 내가 아닌 다른 모습으로 보이기 위해 노력한다. 그 모습은 살아있는 사람이라 할 수 없는 내가 겪은 혹은 내가 만들어낸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하찮은 사물'이 되어 버린다. 그것은 바람에 날려 언제든지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는 아슬아슬한 곳에 놓인 화분이고, 철조망에 매달아 놓은 사라진 검은 풍선이고, 축제는 시작됐지만 네트에 모가지가 걸려 죽어가는 검은 새이고, 찢겨져 어디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낙하산이고, 심지어 이제는 내가 볼록거울이 되어 버렸다.

신하정_가리소 너머_견에 채색, 석탄, 자연염색_95×130cm×2_2009



신하정 - 개와 늑대사이의 시간 ● 제 작년 여행의 테마였다. 어디선가 본 듯한 길이다. 낯설지만 낯설지 않던 풍경의 이야기이다. 해가 사라진 뒤 나를 에워싼 공기는 시각적인 이유만이 아닌 심리적으로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어쩌면 빛에 의해 가려진 풍경 속 소소한 개체들(바람, 풀, 나무, 나무뿌리)은 검은 풍경 속에서 선명해진다. 그리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드문드문 서 있는 가로등의 익숙한 고향 길에서 검은 산과 나무가 날 쫒아오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처럼... 거친 터치의 먹과 석탄의 드로잉은 하늘거리는 견의 재료에서 도드라져서 오히려 무서운 덩어리를 극대화 시켰다. 한번쯤은 그렇게 선을 긋고 싶었다. 익숙한 듯한 내 손끝의 터치들은 익숙하지 않은 드로잉으로 나에게 새로운 낯섦을 선사하고 있다. 또한 기계음으로 시끌시끌했던 연탄공장 인근의 거대한 석탄언덕은 오히려 정적이고 모던한 석탄가루 산이 되었다.

부대행사 프레젠테이션 + 아티스트 토크 장소: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 시간: 2011년 5월 21일, 토요일, 오후 3시






still life?



임선미展 / LIMSUNMI / 任善美 / painting.video   2011_0524 ▶ 2011_0531



임선미_still life_비디오_00:05:09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90524e | 임선미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0524_화요일_07:00pm

관람시간 / 01:00pm~11:00pm

까페 더 플레인 CAFE THE PLAIN 서울 마포구 서교동 334-23번지 B1



작가의 임의대로 선택된 개체들은 테이블 위에서 스토리를 가지게 된다. 이런 개체들은 작품 속에서 마치 연극 무대의 배우처럼 연기를 하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의인화 된 개체는 사회라는 공동체 안에 속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공동체 안에 속한 인간은 외부적 환경이나, 타인으로 인해 내적인 갈등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때론 억압된 감정을 분노로 표출하거나, 자기고립상태로 빠지기도 한다. 그 과정 속에서 익숙한 사회 공동체가 낯설게 느껴지는 낯익은 것의 소외를 느끼게 된다. 이런 인간의 심리를 정물화 속 사과를 통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임선미_still life_비디오_00:05:09_2011
임선미_still life_유채_45.5cm×53cm_2011
임선미_still life_유채_22cm×27.3cm_2011
임선미_still life_유채_22cm×27.3cm_2011
임선미_still life_유채_22cm×27.3cm_2011

작은 크기의 작품은 명화에나 쓰일법한 금색 액자를 끼고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 안에 사과들은 정물화 속에 움직이지(죽은) 않는 사과가 아닌 생명력을 가진 다양한 역할로 표현되고 있다. 그래서 작품 속에 사과는 더 이상 우리에게 익숙한 과일에 한 종류인 사과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또 다른 상징적 이미지로 인간의 불안한 심리를 표현하는 매개체가 되어 있다. ● 고요한 정물들이 적막을 깨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회화라는 장르를 통해 극적인 찰나를 표현하였다면 영상이라는 매체를 사용하여 화면 속 정물들이 사라지고 드러나는 모습을 통해 이야기의 전개를 보여주고 있다. 인간이 사회라는 공동체 속에 종속되기 보다는 주체로써 살아가는 모습을 정물을 의인화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까페라는 공간에서 보여 지는 이번 전시를 통해 정물화 속에 개체들이 테이블위에서 스토리를 만들어 가듯 까페에서 사람들이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장소성과 연결고리를 찾아본다. ■ 임선미




비정형의 얼룩으로부터 파생된 이상향, 유사낙원



송태화展 / SONGTAEHWA / 宋泰華 / painting   2011_0525 ▶ 2011_0530



송태화_꿈꾸는 섬_종이에 혼합재료_89.4×145.5cm_2011


초대일시 / 2011_0525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4층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비정형의 얼룩으로부터 파생된 이상향, 유사낙원 ● 송태화는 전작에서 동물 형상을 소재로 하여 인간 내면의 감정 상태를 유비적으로 표현했었다. 동물 형상이라고는 했지만, 그것은 반드시 어떤 특정의 동물을 지칭하는 결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설핏 동물 형상을 닮아 있을 뿐, 사실은 알 수 없는 비정형의 얼룩이나 그저 유기적인 덩어리로 환원된 몬스터에 가까운 것이었다. 동물 형상과 몬스터는 다르다. 동물은 그 정해진 형태가 있지만, 몬스터는 정해진 형태가 따로 없다. 몬스터는 말하자면 현실 속 동물이 아니라, 상상력이 만들어낸 감정상태의 이미지이다. 감정 상태를 유비적으로 표현한 것. 몬스터가 정해진 형태가 따로 없듯 감정 역시 그렇다. 그 형태가 비결정적이고 우연적이고 임의적이고 열려져 있는 것. 그러면서도 그저 막연하게 감정 상태를 지칭한다기보다는 일종의 욕망을 표현하고 있는 것. 작가의 그림에서 몬스터는 말하자면 욕망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다. 무의식을 떠올리게 하는 비정형의 유기적인 덩어리나, 심연에서 부유하듯 어둠 속에서 부각되는 알 수 없는 형상이 이렇듯 욕망의 화신으로서의 몬스터를 효과적으로 표출시키고 있는 것이다. ● 그리고 근작에서 작가는 전작에 나타난 요소들의 상당 부분을 계승하고 변주한다. 이를테면 비정형의 얼룩이나 암시적인 형태와, 우연적이고 임의적인 형태, 그리고 동물 형상과 상상속의 동물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어우러진 무의식의 풍경, 내면 풍경 내지는 심리적인 풍경으로 지칭할 만한 지평을 열어놓고 있는 것이다.
송태화_꿈꾸는 섬_종이에 혼합재료_89.4×145.5cm_2011
송태화_꿈꾸는 섬_종이에 혼합재료_72.8×116.7cm_2011

비정형의 얼룩으로부터 파생된 세계. 그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작가는 먼저 캔버스나 종이 그리고 때로 합판 등의 화면에다 비정형의 얼룩을 조성한다. 얼룩은 짙게 칠해진 부분이 있는가 하면, 소지의 질감이 드러나 보일 만큼 엷은 부분도 있어서, 짙은 부분과 엷은 부분이 유기적으로 어우러진 비정형의 덩어리를 이룬다. 여기에 더러 수묵의 선염(번짐 효과)을 연상시키는 질감이 가세된다. 그 얼룩을 보고 있노라면 머릿속에 이러저러한 형상들이 떠오른다. 일종의 연상 작용에 힘입어 때로 엷은 얼룩 위에다, 그리고 더러는 얼룩과 얼룩 사이의 빈 여백 부분에다 그렇게 머리에 떠오른 형상들을 덧그린다. 이 일련의 과정을 거쳐 비정형의 얼룩과 얼룩 사이에 무슨 세밀화를 연상시키듯 정치하게 묘사된 형상이 어우러지고, 얼룩과 형상을 외곽에서 싸안고 있는 가장자리 화면의 여백이 대비되는 그림이 만들어진다. ● 이 일련의 그림들에서 작가는 그리기와 찍어내기, 회화와 판화의 프로세스를 하나의 화면에다 중첩시킨다. 주로 종이를 소지로 한 그림에선 판화의 프로세스가, 그리고 캔버스 작업에선 드로잉의 회화 과정이 두드러져 보인다. 판법으로는 그림의 성격에 따라서 여러 기법이 동원되는 편인데, 동판화에서의 부식기법과 아쿼틴트, 콜라그래프, 그리고 단독 그림을 위해서 목판화 기법이 차용된다. 부식기법과 아쿼틴트 기법은 섬세하면서도 부드러운 질감의 음영이 감도는 얼룩을 효과적으로 조성하게 해준다. 그 얼룩이며 질감 그대로 펜 드로잉에 의해 정치하게 묘사된 형상과 유기적으로 어우러진다. 그리고 콜라그래프 기법은 일상적인 오브제를 직접 차용하는 형식으로서, 오브제 고유의 질감 그대로를 찍어낼 수가 있다. 이렇게 얻어진 질감이 비정형의 얼룩의 일부로서 포섭되고, 그려진 부분과 대비되거나 조화를 이루면서 화면에 풍부한 질감을 연출한다. 작가는 나아가 콜라주 기법을 부분적으로 차용하기도 하는데, 콜라그래프 기법이 보다 적극적으로 확대 적용된 경우라 하겠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콜라그래프 기법이 오브제의 질감을 얻기 위해서, 그리고 콜라주 기법이 오브제의 이미지를 얻기 위한 점이 다르다. 이 일련의 판법과 화법이 서로 스미고 이끌면서 그 질감이나 표정이 풍부한 회화적 지평을 열어놓고 있다. ● 상대적이긴 하지만, 그 과정은 기계적이기보다는 유기적이고, 의식적이기보다는 무의식적이고, 계획적이기보다는 우연적이다(계획적인 우연성?). 얼룩 자체가 이미 비결정적인 형상이며 비정형적인 형상, 열려진 형상이며 암시적인 형상을 일정정도 예시해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실 이런 얼룩의 비정형적인 형상성은 이미 전작에서 일정부분 예견된 것이기도 하다. 이런 얼룩의 비정형성과 무의식의 비정형성이 서로 연동되고 있는 것. 그래서 작가의 그림에는 얼룩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형상에서 마저 이 비정형성이 암시적인 형태로 확대 적용된다. 알만한 형상이 낯선 형상으로 변형되고 있는 것. 그 이면에는 일종의 우연성과 자동기술법과 자유연상기법이 작동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서 상호간 이질적인 계기들이 유기적으로 연동된 세계, 이를테면 판법과 화법이, 비정형의 얼룩과 세밀화가 유기적으로 어우러진 세계, 유동적인 세계, 흐르는 세계의 비전을 열어놓고 있는 것. 정리를 하자면 작가의 그림은 비정형의 얼룩으로부터 파생된 무의식의 세계를, 그 비전을 열어놓고 있는 것이다.
송태화_꿈꾸는 섬_종이에 혼합재료_130×130cm_2011
송태화_꿈꾸는 섬_종이에 혼합재료_130×130cm_2011

민화의 차용과 변용. 작가의 그림은 비정형의 얼룩이 조성된 부분과 그 얼룩을 외곽에서 감싸고 있는 여백이 대비되는 형식을 띤다. 자연스레 모티브는 얼룩 부분에 집중되는데, 그 얼룩이 흡사 수묵화로 그린 산수풍경을 떠올리게 한다(나중에 살피겠지만, 작가는 여백 한 가운데 부유하듯 떠 있는 그 풍경을 일종의 섬으로 가정한다). 작가는 그 얼룩 위에다, 그리고 더러는 얼룩 사이에다 그림을 그려 넣는데, 때로는 붓으로 그리고 더러는 펜 드로잉으로 그림을 그려 넣는다. 붓으로 그린 그림이 얼룩과 유기적으로 연장되고 있다면, 일종의 세밀화의 방식을 따른 펜 드로잉은 얼룩과 대비되면서 일정한 장식성과 함께 그림을 읽는 맛을 더한다. ● 그 풍경은 흔히 산세가 중첩되면서 전개되는 형태를 띠는데(엄밀하게는 작가의 상상력이 얼룩으로부터 찾아낸 형태), 작가는 대개 봉우리에 해당하는 부분에다 굽이진 노송과 함께 정자를 포치하고, 하늘에는 학이나 봉황 그리고 까치와 같은 새를 부양시킨다. 그리고 뭍에는 뭍 동물들을, 바다에는 물고기나 거북 같은 수생동물들을 위치시킨다. 그 동물들 중에는 알만한 것들도 있고, 용이나 봉황 같은 신화적인 동물들도 있다. 특이한 것은 이 동물들과 식물 모티브들(이를테면 죽순과 연밥)은 물론이거니와 노송과 정자 역시, 그리고 나아가 이 모티브들을 배열하는 방법마저 한눈에도 전통적인 민화의 작화방식을 떠올려준다는 점이다. ● 정리를 하자면, 작가는 민화의 전형적인 모티브들을 광범위하게 차용해 와 그림 속에다 적절하게 배치하고 있다. 단순한 이미지의 차용을 넘어 서사마저도 차용되는데, 이렇게 차용되고 변용된 모티브와 서사를 마치 숨은그림찾기라도 하듯 그림 속에다 숨겨놓고 있다. 이를테면 까치와 호랑이의 해학과 풍자, 관재를 상징하는 잉어, 하늘로 승천하는 용, 부귀를 상징하는 봉황, 그리고 장수를 상징하는 모티브들이다. 전통적인 모티브들을 현대적인 문법 혹은 자기 식의 문법에 맞춰 재해석한 것이다. 민화 그대로 그림 속에 들어와 있다기보다는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서 각색되고 개작된 형태로 변형된 경우란 점에서, 그리고 일정정도 무의식이 이끄는 대로 그려진 그림이란 점에서 일종의 초현실주의의 변주가 읽혀진다. 그리고 주지하다시피 민화는 그 이면에 민초들의 소망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작가는 어쩌면 현대인의 무의식적 욕망을 반영한 일종의 신민화도를 그리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송태화_꿈꾸는 섬_캔버스에 혼합재료_60.6×72.8cm_2010
송태화_꿈꾸는 섬_종이에 혼합재료_31.8×41cm_2010

꿈꾸는 섬. 작가가 자신의 근작에 부친 주제다. 그림에서 화면의 가장자리를 점유하고 있는 허허로운 여백은 그대로 내면의 바다 혹은 무의식의 바다를 형용하는 것 같고, 화면의 가운데 조성된 얼룩은 그 바다 위에 점점이 떠 있는 섬 같다. 작가의 그림은 말하자면 의식의 수면 위로 건져 올린 무의식의 편린들이며, 일종의 내면풍경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그 섬이 꿈을 꾼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마음속에 섬 하나쯤 간직하고 있다. 현실로부터의 일탈을 감행하게 해주는, 현실로부터 받은 상처를 위로받고 치유해 줄 것 같은 섬. 그 섬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회귀하고, 자기반성적인 과정으로 귀결되고, 자기연민에 감싸이게 한다. 섬은 곧 저마다의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섬의 본질은 고립이고 고독이며 자기폐쇄성이다. 그 섬에다 작가는 민화의 이상향이며 유사낙원을 이식해놓고 있다. ■ 고충환








바람잎새에게서 FROM A WIND LEAF


김미경展 / KIMIKYUNG / 金美京 / painting   2011_0525 ▶_2011_0531


김미경_바람잎새에게서 II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45.5×97cm×2_2011

초대일시 /_2011_0525_수요일_05:30pm

관람시간 / 10:30am~06:30pm

노암갤러리 NOAM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 133번지 Tel. +82.2.720.2235~6 www.noamgallery.com


"모든 것이 일상적인 반복이었으며 반복으로 반응했으며 결과물도 반복적이다. 반복은 삶의 구조이고 나는 반복에 새로움이 아닌 반복으로 반응했고 나의 작업은 모두 반복을 반복한다. 일상적 반복, 저항으로서의 반복, 작품으로서의 반복, 나는 반복안에서 움직인다. 나는 반복의 집요함, 고통을 반복을 통해 넘어서려 한다." (2010년 논문중에서)
김미경_바람잎새에게서 II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45.5×97cm×2_2011

그래서: "모든 것이 일상적인 반복이 아니었으며 반복으로 반응했으나 결과물은 비반복적이다. 반복이 삶의 구조인 그만큼 비반복이 삶의 구조이며 나는 내가 반복에 반복이 아닌 새로움으로 반응하는 줄 눈치 채지 못했으며 나의 작업은 모두 반복을 비반복한다. 일상적 비반복, 저항으로서의 비반복, 작품으로서의 비반복, 나는 비반복안에서 움직인다. 나는 비반복의 집요함, 고통을 비반복을 통해 넘어서려 한다."
김미경_풍경_201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22×55cm
김미경_선물_201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9×72.7cm
김미경_항해_201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9×72.7cm

낙엽에 눈이 가닿았다. 반복의 회귀는 아직 벌써 끝나있다. 반복의 하나의 회귀에 머문다. 그곳에서 반복의 집요함과 같은 말인 허술함, 고통과 같은 말인 희열, 희망과 같은 말인 절망을 느끼게 된다. 이번 전시 『바람잎새에게서』에서 반복은 없었으며 회귀도 없었다. 반복하려는 의지는 유한성에 대한 집착이다. 자연과 명명되어진 것들과 나는 이미 둘이 아니었다. 나는 부는 바람이고, 텅 빈 틀이며, 잎새다. 나는 나부끼는 깃발이 되고 '싶다'. 나는 무수히 떨어지고, 사라지고, 그대로이고 새로워지고 '싶다'. (비)반복함으로써 사랑을 배우고 '싶다'. ■ 김미경




너의 정원

이호영展 / LEEHOYOUNG / 李昊英 / photography   2011_0525 ▶ 2011_0531


이호영_너의 정원 #001_C 프린트_110×80cm_2010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80917h | 이호영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0526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5:00pm

관훈갤러리 KWANHOON gallery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1층 Tel. +82.2.733.6469 www.kwanhoongallery.com


"또 다른 너의 존재" 두 번째 움직임, "너의 정원" ● 나는 사진가로서의 최종 목표는 우리가 보고 느낄 수 있는 진정한 자연을 담는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내가 볼 수 있는 그냥 정지 되어 있는 자연으로만 보여 지는 자연, 즉 우리 눈으로 보면 즉시 알 수 있는 자연이 아니라, 긴 시간동안 변화와 작용으로 변해가는 자연의 모습이다 그것은 너의 모습을 말하며, 우리들 모든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 아직은 내가 생각하는 자연을 찍을 수 없다. 또한 자연은 내가 보여주려는 모습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페인트를 담는다. 페인트를 자연현상처럼 충돌을 시키면 물적(物的) 현상처럼 서로 대립적인 모습을 형성 한다. 그리고 담는다. 즉 혼돈 속에 생성되며 소멸되는 자연현상의 움직임을 담는 작업이다. ● 변화와 작용의 모습, 즉 동 시간에 생성과 소멸은 끊임없는 반복 순환적이며 새로운 생을 위한 준비이며 모습이다. 생을 위한 자연현상은 혼돈 속에 허우적거리지만 생성을 위한 공존의 또 다른 모습이다. 우리의 사회 속에서도 서로를 허용하는 내적인 모습이나 외적인 모습을 가릴 것 없이 멈추지 않고 우리는 지속적인 변화와 작용이라는 근원적인 자연원칙에 갇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쉬지 않고 움직이는 것이다. ● 특히 나의작업은 대상에 대한 본질을 담으려 했으며 정적인 대상보다는 동적인 대상에서 세상의 존재로서 사실적의미를 찾고, 사실적 존재를 부여한 움직임에 대한 진정한 존재의 모습을 찾으려 했다. 나의 사진에서 보여 지는 움직임은 대상의 존재에 대한 해석이지만 사유적인 행위는 작가가 동시간의 움직임에 대한 연관성을 확장하는 것에 중요한 의미가 존재한다. 이번전시인 "너의 정원"은 우리들의 생성과 소멸에 대한 모습이 숨겨져 있지만 숨겨지지 않는 모습으로 그대로 드러내려 한 것이다. ■ 이호영
이호영_너의 정원 #005_C 프린트_110×80cm_2010
이호영_너의 정원 #008, 009, 010_C 프린트_각 110×80cm_2010

이호영 - 진정한 자연의 시공간 ● 이호영의 사진은 흡사 물감의 질료와 붓질의 흔적만으로 이루어진, 비대상적인 추상회화를 보는 듯하다. 외형만 봐서는 그대로 그림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진이다. 그는 추상회화의 표면을 촬영했나? 아니다. 그는 추상회화를 떠올려주는 물질의 표면을 찍었다. 사진은 이미 존재하는 대상을 찍는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찍을 수는 없다. 사진은 레디메이드이미지다. 그런데 이 작가는 이미 존재하는 것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스스로 그런 물질의 표면을 연출하고 이를 사진으로 담았다. 물질과 함께 퍼포먼스를 한 과정, 그 결과의 어느 한 순간을 기록했다. 그렇게 해서 출현한 이미지는 물질들이 서로 섞이면서 자아내는 격렬한 혼돈의 상태이자 자연법칙에 의해, 물질의 속성에 의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자취의 기록이다. 그는 일정한 틀에 특정한 색채를 지닌 페인트를 쏟아 부었다. 그 페인트가 흘러내리고 뒤섞이면서 페인트 자체가 지닌 성질과 자연의 보이지 않는 여러 힘(시간과 중력 등)이 작용하고 충돌하는 과정이 멈춰진 어느 한 순간이 고정되었다. 페인트를 자연현상처럼 충돌시켜서 이른바 서로 대립적인 모습, 즉 혼돈 속에 생성되며 소멸되는 자연현상의 움직임을 보기 위해 이런 연출이 필요했던 것 같다. 사진 속에 담긴 장면은 어떤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장면이다. 그것은 구체적인 대상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여러 상황을 상상하게 해주는 한편 팽창과 분열, 터짐과 확산, 생장과 소멸 등등을 어렵지 않게 유추시키는 이미지다. 흡사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생명체 같기도 하고 우리 몸의 내부를 떠올리는 그런 이미지다.
이호영_너의 정원 #013_C 프린트_80×110cm_2010
이호영_너의 정원 #015_C 프린트_80×110cm_2010

작가는 "우리가 보고 느낄 수 있는 진정한 자연의 시공간을 보여주는 것"이 작업의 목표라고 말한다. 자연은 정지되어 있는 상태가 아니라 생생불식 하는 존재다. 그것은 생성적이고 수시로 변화를 거듭하며 결코 멈추지 않는다. 고정된 찰나를 건져 올리는 사진으로는 그 변화를 거듭하는 자연의 속성과 이치를 보여주기 어렵다고 본 그는 긴 시간 동안 변해가는 자연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페인트를 가지고 연출하고 이를 사진으로 담은 것이다. 그렇게 해서 혼돈 속에 생성되며 소멸되는 자연현상의 한 모습이 얼추 사진 안으로 호명되었다. 따라서 이호영이 연출해 찍은 사진은 자신이 생각하는 자연(자연관)을 물질의 힘을 빌어 시뮬레이션 한 것이다. 페인트라는 물질은 쉽게 보이지 않는 자연의 속성을 가시화하면서 서서히 흐르고 퍼지고 합쳐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물론 페인트가 뒤섞이는 과정이 자연의 속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더구나 그러한 물리적 과정을 보편적인 자연현상과 그대로 접목시킬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자연의 비가시적 속성과 힘을 연상시키는 데는 효과적이라고 보았기에 작가는 이 장면/사건을 촬영했다. 근작에서는 나비이미지를 합성해서 페인트가 짓는, 물리적 현상이 짓는 이미지와 마주보게 했다. 그러는 순간 그 둘이 서로 대화를 나누거나 조응하는 듯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어쩌면 페인트는 물활론적으로 생명체가 되고 자연이 되어, 온갖 존재가 되어 출현한다.
이호영_너의 정원 #020_C 프린트_80×110cm_2010
이호영_너의 정원 #023_C 프린트_80×110cm_2010

모든 사건들이 생겨나는 궁극적인 이유를 부유(富有), 일신(日新), 생생(生生)으로 해석하 는 것이 유가이고 망발(妄發)로 해석하는 것이 불교이다. 도가는 이를 자연으로 해석한다. 이호영은 그 도가적 해석인 자연에 동의한다. 반면 필자는 불교의 망발에 더 기운다. 그러나 '자연'으로 해석하거나 '망발'로 해석하거나 모두 아무런 원인 없이 저절로 그러하다는 뜻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자연은 그런 존재다.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사건 역시 그렇다. '나'라는 생각은 분별하여 아는 능력에 기인하고, '나'의 인식은 그 자체가 바로 분별이며, 이 분별이 '나'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만물은 원래 '나'와 같은 뿌리에서 나왔고, 감각이나 인식작용이 있는 모든 생명들은 각자의 기능으로 자신들의 세계를 구성하며 모두 '나'와 동류이지만, 지금 '나'의 눈에 '나'이외의 사물들이 '나'와 다른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나'의 인식은 전도된 것이고, 참된 모습은 아니며, 마음이 만들어낸 것일 뿐이다. 중국철학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나의 사상이나 행위가 어떻게 나의 생명과 완전히 융합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나의 생명과 우주가 어떻게 융합하여 하나가 될 수 있겠는가?"일 것이다. ● 동양미술은 언제나 인간과 자연, 인위와 무위, 법칙과 혼돈 사이에서 유동했다. 생성적이고 변화무쌍한 외계를 고스란히 정지시켜 재현하고자 하는 욕망도 없었고 서구미니멀리즘 처럼 사물 그 자체가 미술이 되어본 적도 없었다. 예술은 항상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거나 줄타기를 하거나 틈에서 살아가는 존재였다. 그림 역시 자연처럼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고 유동적이며 시간의 힘과 자연법칙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면서 그것과 부단히 일체를 꿈꾸거나 조화로운 어떤 상황을 갈망해왔다고 본다. 또한 그렇게 사는 것이 인간의 삶이었을 것이다. 나이 생명과 우주가 어떻게 융합하느냐가 미술/예술의 문제이기도 했을 것이다. ● 이호영은 사진을 통해 우리가 보고 느낄 수 있는 진정한 자연의 시공간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 자연은 고정되고 눈으로 보면 알 수 있는 그런 자연이 아니라 긴 시간 동안 변화와 작용으로 수시로 변해가는 모습을 지닌 존재다. 자연은 사실 혼돈 덩어리다. 자연과 그 속에 갇힌 인간 역시 지속적인 변화와 작용이라는 근원적인 자연현상과 법칙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고 유동하는 것이 자연이고 생명이다. 결국 작가는 대상에 대한 본질을 담고자 하며 따라서 정적인 대상보다 동적인 대상에서 세상의 존재로서 사실적 의미를 찾고 있다. 그의 사진은 그런 과정에서 출현한 것이다. ■ 박영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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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아! 춤을 추어라

전현숙展 / JEONHYUNSOOK / 錢炫淑 / painting   2011_0526 ▶ 2011_0604


전현숙_잠시 슬프다 I am sad for a whil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7×81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미지 속닥속닥 Vol.20100625e | 전현숙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0526_목요일_06:00pm

광주신세계미술제 수상작가 초대전

관람시간 / 월~목 10:30am~08:00pm / 금~일 10:30am~08:30pm

광주신세계갤러리 GWANGJU SHINSEGAE GALLERY 광주광역시 서구 광천동 49-1번지 신세계백화점 1층 Tel. +82.62.360.1630~1 department.shinsegae.com


혹한(酷寒) 속에서 피어난 꽃이 더욱 아름답고 값진 이유... ● 모든 사람에게는 스스로 선택했든 운명적으로 주어졌든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삶의 무게가 존재한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신께서는 감당해 낼 만큼의 무게로 인간에게 짐을 지워주셨고, 인간은 각자의 몫을 견뎌내며 살아간다. ● 아프리카의 어느 마을에 강이 하나 있다. 수심이 그다지 깊지는 않지만 물살이 무척 세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강을 건널 때 거친 물살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돌을 짊어지고 건넌다고 한다. 무겁기만 하고 쓸모가 없어 보이는 돌이 인간을 지탱해주는 버팀목이 되는 것처럼 고단한 삶의 무게는 인간을 더욱 성숙하게 하고, 삶의 참 의미를 깨닫게 한다. ● 전현숙 또한 그 누구 못지않게 고단하고 외로운 삶을 살아왔다. 그 때문인지 자신의 삶을 반영이라도 하듯 그녀의 그림은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는 자화상이고, 자기 고백적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하지만 그녀의 그림에는 고단한 삶에 대한 반어적 표현인지 타고난 낙천적 성향 때문인지 어둡고 우울하기보다는 유머와 희망이 담겨있다. 녹록치 않았던 그녀의 삶을 지탱해준 건 그림과 사랑이었다. 그림과 사랑에 대한 갈망은 위태롭기만 한 외줄타기 인생에서 긴 장대와 같은 버팀목이자 상처받은 영혼의 위안이었다.
전현숙_내 안의 '아이' 'Kid' in m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0×80cm_2011
전현숙_꽃들아! 춤을 추어라 Flowers! Do Danc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80cm_2010

기존의 작품들에는 자화상과 그녀의 연인이 함께 등장하며 아기자기하게 때로는 에로틱한 표현으로 다소 비현실적인 이상향에 대한 갈구를 드러냈다. 지난 2008년 광주시립미술관 금남로 분관에서 개최되었던 '모놀로그'전 에세이에서 전현숙의 작품에 대해 필자는 다음과 같이 기술한 바 있다. "전현숙은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솔직하지만 살짝 수줍음을 간직한 몸짓으로 풀어낸다. 그림 속 주인공인 '그 여자'는 자화상으로서 자신이 겪어온 사랑과 상처, 꿈과 욕망....등 생의 깊은 속살에 관한 내밀한 독백을 통해 세상 밖과 은밀한 소통을 시도한다.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물건들과 부귀영화의 상징인 모란꽃을 배 한편에 싣고 사랑하는 사람과 떠나는 여행 혹은 물놀이 그림에는 인생의 풍파를 겪은 후 터득한 중년여성의 삶에 대한 관조와 유연성이 엿보인다." ● 그로부터 3년여의 시간이 지나고 생활면에서나 작가로서나 안정과 성장기를 맞고 있는 지금, 그녀의 작품에는 오히려 현실의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일종의 두려움이 내재되어 있다. 이러한 두려움은 과거 중년여인의 모습, 즉 현재의 자화상이 아닌 어린아이로 대치(代置)되어 표현된다. 이는 불완전하고 여리지만 아직 인생의 행로가 결정되기 이전 상태인 어린아이 시절로 돌아가 인생을 리셋(reset)하여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은 욕망의 표출이다. ● 이번 전시 출품작들에는 어김없이 각시 탈과 양반탈이 등장한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작가 자신과 연인을 비유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각시 탈은 열일곱 살에 시집와서 시집오던 그 해에 남편과 사별하여 혼자 살다 죽은 여인의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옛날에 각시(새색시)는 혹독한 시집살이를 하며 고행과도 같은 삶을 살았던 존재로서 각시 탈은 엄숙하고 굳은 표정이다. 꾹 담은 입은 시집살이의 서러움을 속으로 삭여야 함을, 수줍은 듯 내리깐 눈은 장님처럼 살아야 함을, 콧구멍도 없는 코는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만큼 숨 막히는 삶을 나타낸 것이다. 각시탈의 상징적 의미가 작가의 힘들었던 지난 삶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만 같다.
전현숙_다시 춤추면 돼 Dancing again will do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4×81.2cm_2011
전현숙_가슴앓이 Heartbreak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0.9×31.8cm_2011

토끼모자가 달린 피에로 복장에 각시 탈을 들고 서있는 어린아이 그림을 보자. 피에로 복장을 한 어린아이는 곧 스스로 자유롭지 못하고 사회적 윤리적 규범에 의해 조정당하고 구속당하는 성인을 상징한다. 그리고 토끼 모자를 쓰고 있는 것으로 보아 토끼띠인 작가 자신을 암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그림은 어린 시절 길을 잃었을 때의 당황스러움과 두려움을 표현한 작품으로 전업 작가 생활을 한지 10여년이 되는 시점에서 느끼는 창작의 무게감과 최근 연인과의 결합이라는 인생의 새로운 출발선 상에서 느끼는 두려움, 즉 지금의 행복을 지키고 싶은 강박관념에서 기인한 불안감이 내재되어 있다. 하지만 주목할 점은 아슬아슬한 외줄 위에서의 불안한 몸짓 대신 이제 땅 위에 서서 스스로 줄을 잡고 각시 탈을 조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각시 탈을 쥐고 있는 어린아이를 통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고 진정한 자아를 찾고자 하는 의지를 담고 있다. 또한 부귀영화와 복을 상징하는 모란꽃과 박쥐문양을 피에로의 옷에 가득 채워 그려 넣음으로써 앞으로 펼쳐질 장밋빛 인생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낸다. ● 기존 작품과 다르게 최근 작품에서는 등장인물이 각각 개별적으로 하나의 화면에 등장하는 점 또한 변화이기도 한데, 이번에는 슈퍼맨 복장을 하고 있는 중년남성의 그림을 보자. 중년남성의 상징인 탈모와 불룩 나온 배를 한 남자의 어깨에는 용 문신이 그려져 있다. 나이에 걸맞지 않은 용문신은 나름 아직 한창인 나이에 명예퇴직을 당하고 사회적으로 지위를 잃어버렸지만 아직도 스스로 건재함을 과시하고 싶은 중년남성의 슬픈 비애를 나타낸다. 그리고 손에 쥐고 있는 여의주는 그래도 아직 희망과 꿈을 잃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전현숙은 그림 속에 위트(wit) 넘치는 소품과 소재들을 숨겨놓음으로써 우울한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는 이를 머리 무겁게 하지 않는 매력이 있다.
전현숙_그 남자 That ma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112cm_2011
전현숙_월야밀회 月夜密會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24cm_2011

이번 전시의 주제 '꽃들아 춤을 추어라'는 아프고 외로웠던 지난 세월, 삶의 무게에서 벗어나 꽃처럼 아름답게 자유롭게 향기롭게 피어나고 싶은 자아의 반영이다. 지난 삶이 운명처럼 처해진 상황에 휩쓸려 살아왔다면 이제는 자신의 의지로 좀 더 자유롭고 열정적으로 살아가고 싶은 욕구이자 좀 더 나은 미래를 향한 다짐이다. 혹한(酷寒) 속에서 인고의 시간을 견디며 피어난 꽃이 더욱 아름답고 값지듯이 그녀가 감당해 온 삶의 무게는 그녀에게 인생의 깊은 의미를 깨닫게 해 주었을 것이다. 전현숙에게 사람은 꽃과 같은 존재이고, 때론 힘들지만 인생은 아름답고, 사랑하며 산다는 것은 더욱 감사한 일이다. 그녀의 기대처럼 이제 활짝 피어나는 꽃과 같이 자기 색과 향기를 발산하며 자유롭게 춤추며 살아가길 바란다. ■ 김희랑




앞집화가

2011 NANJI ART SHOW Ⅲ展   2011_0526 ▶ 2011_0612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1_0526_목요일_05:00pm

참여작가 / 강민영_박기일_박병일_이은희

주최 / 서울시립미술관

관람시간 / 0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난지갤러리 NANJI GALLERY 서울 마포구 하늘공원로 108-1번지 Tel. +82.2.308.1071 nanjistudio.seoul.go.kr


앞집작가를 만나면 ● 물어본다. '당신은 사람이요, 아니면 귀신이요?' 그러면'귀신이 온다'는 일본영화가 떠오르거나 최근 제작되었던 독립영화 '이웃집 좀비'가 떠오른다. 스토리는 상관없이 그 제목이 주는 메타포가 연상되며 짜릿한 인상을 준다. 작가의 일반적인 생활패턴을 떠올려보면 좀비나 유령의 생태와 별반 다르지 않은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으니 이렇게 화두를 던지는 방식이 아주 실없는 소리는 아니다.
강민영_폭풍의 전조_종이에 연필_79×109cm_2011

현대미술은 특별한 사람들의 아주 특별한 문화에서 어느새 일상적이며 당신도 나도 마음만 서면 뛰어들 수 있는 이웃의 문화가 되었다. 그러니 대충 주위를 둘러만 봐도 현대 미술가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그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고 물어보기도 수월해 졌다. '당신의 예술은 무엇을 의미하나요?'라거나 조금은 무례하지만 '도대체 예술가는 무얼 먹고 삽니까?' 같은 질문도 던져볼 수 있다. 좀 더 독하게 '그것도 예술이요!' 자극해보는 것도 괜찮다.
박기일_uli geller01, 0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각 194×130cm_2011

어째든 이웃으로 작가 한 명쯤 사귀어 보는 것도 매우 흔해졌지만 고상한 취미일 수 있다. 작가들은 생각보다 소심하고 동시에 친절해서 종종 마음이 열려 있는 사람으로 쉽게 오해받곤 한다. 그러나 실제로 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나름 마음의 준비는 물론 그 작가의 전공분야에 대한 기본적인 교양을 요구한다.
박병일_breath_화선지에 수묵_280×400cm_2010

살아있으나 쉽게 느낄 수 없고, 죽었으나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것. 이웃의 작가들은 그런 식으로 자기 스스로 또는 주어진 조건에 따라서 가상적으로 존재한다. 그러기에 매우 섬세한 매뉴얼을 개발해야하고 또 기왕에 개발된 매뉴얼을 반복학습 해야 한다. 의사소통의 길은 사실 이웃집 초인종을 누르는 수고를 전제로 한다. 초인종이 고장났다면 주먹을 쥐고 두드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이웃의 작가에게도 해당하는 수고로움이고 그것이 소통의 미덕이다. 세상에 공짜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적용된다. 소통은 노동이며 집중이고 실천이다. 정치이고 배려이고 윤리이다. 또 표현이자 수용이다.
이은희_아이방_캔버스에 유채_155×180cm_2010 이은희_잠수부의 숲_캔버스에 유채_200×150cm_2007

만일 당신이 '이런, 생각해보니 나도 작가였네!'라는 식의 단기기억상실증을 앓는 경우라면 작가와 작가의 만남이 될 터이니 좀 더 심오하거나 정교한 대화도 시도할 수 있다. 그것이 비록 허위이거나 자기만족의 유희일 뿐일지라도 나름의 성과가 남기 마련이다. 만일 앞집에 작가가 산다면, 당신은 무엇을 물어볼 것인가? 김노암

* 서울시립미술관의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에서 5기 입주작가 기획전시 『2011 NANJI ART SHOW』를 개최합니다. 전시는 현재 입주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들에 의해 기획되었으며, 오는 4월 7일 『人spiration』전을 시작으로 입주기간이 끝나는 10월말까지 10회에 걸쳐 지속적으로 진행됩니다. ■ 난지창작스튜디오




소라게 살이 Hermit Crab-ism


김지은展 / KIMJIEUN / 金智殷 / painting.installation   2011_0526 ▶ 2011_0625


김지은_Planned Obsolescence_캔버스에 유채, 라텍스 페인트, 상자, 골판지와 나무조각_152×178cm_2009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00930j | 김지은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0526_목요일_06:00pm

주최 / 대안공간 루프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1:00am~08:00pm

대안공간 루프 ALTERNATIVE SPACE LOOP 서울 마포구 서교동 335-11번지 Tel. +82.2.3141.1377 www.galleryloop.com


소라게 살이 Hermit Crab-ism ● 2009년 Skowhegan School of Painting and Sculpture에서의 Summer 레지던시를 시작으로 작가 김지은의 '소라게 살이'는 시작되었다. 근 1년 반 동안 미국 각 지역의 레지던시에서 한 달에서 길어야 두 달 가량 머물며, 연속으로 6번 집을 옮기면서 작업한 것이다. 이방인으로서 이 곳 저 곳 떠돌며 사는 삶과 계속 바뀌는 낯선 환경이 그에게는 작업의 소재이자 생존의 수단이었다.
김지은_Dream House_캔버스에 유채와 그라우트_152×203cm_2009
김지은_Developer's House 2009_타이벡, OSB, 카모플라쥬 OSB, 나무, 무늬목 시트지와 쓰레기 봉투_360×600cm_2009

거주하는 지역의 특성을 반영하는 김지은의 작업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풍경이 도시관리 규범에 의해 제재된 결과라는 인식을 하게 된 것을 기점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서울에서 미국 디트로이트의 교외지역인 블룸필드 힐스(Bloomfield Hills)로의 이동은 각종 규제에 의해 관리되는 서울과는 상반되는, 대도시 외곽지역의 개발이 극심화되는 현상인 교외화(suburbanization)로 관심을 확장시켰다. 화려한 모터시티(motor city)가 연상되는 디트로이트는 상징적인 이미지 일뿐, 막상 그 도시를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는 슬럼(slum)화 된 현실을 알기 어렵다. 이로써 그의 작업에서 현재 거주하는 곳의 주거조건을 체험하고, 이와 같은 조건이 형성되게 된 이유를 찾는 것은 더욱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환경이라는 큰 틀은 사람의 생활방식과 사고에까지 영향을 미치지만, 현대의 환경이란 결국 사람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고 조성되는 것이다. ● 한 지역에 오래 머물다 보면 주변 풍경은 마치 오랫동안 걸려져 있던 그림의 배경처럼 단조롭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기 마련이다. 새삼 주위를 환기시켜 새롭다는 느낌을 받거나 그 장소가 가진 고유의 이미지 배후에 가려진 역사와 제도에 의문을 가지기란 힘들어진다. '낯섦'은 김지은에게 작업의 시작을 의미한다. 그 지역에 처음 발 들여놓는 타인이기에 가능하고, 또한 살아가기 위해 자신이 처해진 곳에 적응하는 고된 과정을 작업에 연결시켜 일종의 유희로 풀어내는 작가의 태도가 있기에 가능한 작업인 것이다. 경험을 통한 체험과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이론적 습득을 거쳐 탄생하는 김지은의 작품은 매번 바뀌는 집처럼 모양새는 달라질지언정 작업의 근저에 있는 환경을 읽으려 하는 방식은 유지하며 정체성을 정립한다. 한 사회에 편입된 방랑자는 그 사회에 완전히 속할 수도, 그렇다고 제3자로서 완전히 분리되어 살 수도 없는 애매한 존재이다. 하지만 작가 김지은이 택한 삶의 방식은 제3자로서의 시선으로 인식한 이미지를 단기간 내에 그 사회에 속한 사람보다 더 깊이 연구함으로써 유쾌한 하루살이를 마치고 다음 집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이 부유하는 존재감은 마치 우리 사회가 부여한 '작가' 로서의 영역의 모호함과도 일맥상통한다. 소속이 증명되어야만 작가 활동을 유지할 수 있었기에, 새로운 환경에서 창작의 단서를 찾는 작업 방식은 사회 안에서 작가로서의 외로운 떠돌이 삶을 반증하고 있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뚜렷한 업무를 분담하지 않은, 이 사회에서의 작가의 위치와 역할 찾기에 대한 고민은 일견 단순한 주변에 대한 재인식으로 해소된다.
김지은_The Stadium of Corn_창문에 무늬목 시트지와 마스킹테이프_223×793cm_2010
김지은_San Miguel Church Choir Loft_무늬목 시트지와 라인테이프_488×732cm_2010

인간은 사회적 환경과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 밀접한 상호관계를 맺고 있기에, 개개인의 삶은 온전히 선택으로만 이루어질 수 없다. 다만, 주어진 환경과 구조 안에 이미 적절히 분배된 역할 중 하나를 찾아 선택한 것임에 불과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우리의 존재를 깨닫게 해주는 환경에의 '재인식'의 과정으로서 김지은의 '소라게 살이' 여정을 따라가 볼 수 있을 것이다. ■ 문정민

Hermit Crab-ism




전조 Z予兆街


신페이 오카와展 / Shinpei Okawa / painting   2011_0525 ▶ 2011_0607


신페이 오카와_T-ku No2 under apartment house_캔버스에 유채_145.5×112cm_2010

초대일시 / 2011_0525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갤러리 고도 GALLERY GODO 서울 종로구 수송동 12번지 Tel. +82.2.720.2223 www.gallerygodo.com


일본을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거의 완벽해 보이는 이 사회의 모던함과 안정, 질서, 청결함, 편안함에 놀랄 것이다. 신페이 오카와(Shinpei Okawa)는 올 봄의 일본대지진을 예견이나 한 듯 근 몇 년간 붕괴의 조짐을 그려왔다. 내시경으로 혹은 엑스레이로 투시하듯 이 사회의 불안한 이면을 드러낸다. 통일되고 독자적으로 보이는 건물(구조물) 내부는 작은 방들로 구성된다. 작은 방들은 환상과 희망, 고독, 슬픔, 기쁨, 열정, 소외, 결핍, 불안이 있는 방들인데 각각 독립된 공간으로 서로 간에 연결통로는 보이지 않는다. 건물 내부와 외부는 전통적인 일본의 생활용품과 주술을 담은 고목 그리고 낙서와 소도구가 때로는 뒹굴고 때로는 정리되어 놓여있다. 인간은 이 공간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인과응보, 합리성, 질서 외에도 굴곡과 모순, 불합리. 우연이 동시에 개인의 삶에 작용함을 진지하게 보여 준다 그리고 이 사회의 모습 또한 그렇듯이. 대중의 기호에 따라 제작되는 화장기 진한 작품이 아닌 이 사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담은 이런 젊은 작가들이 있기에 일본이 그리고 일본 미술계가 건강하다. ■ 김순협
신페이 오카와_Coming home_캔버스에 유채_72.7×91cm_2011
신페이 오카와_Blank letter of attorney_캔버스에 유채_80.3×100cm_ 2011
신페이 오카와_Visual child_캔버스에 유채_80.3×100cm_2011
신페이 오카와_Iroha house_캔버스에 유채_72.7×91cm_2011
신페이 오카와_Triangle place_ 버스에 유채_80.3×100cm_2011
신페이 오카와_Vacant lot A_캔버스에 유채_72.7×91cm_2010

이미지는 현실에 삼켜져 일상이라는 말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과거 맥 풀린 나날들은 백일몽이었다. 이미지는 현실과 단절되어 있지 않으면 안된다. 붕괴의 전조는 안정 이후 밖에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흔들리는 지면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우리는 다시 꿈을 꾸려고 필사적으로 눈을 감는다. 하지만 미술가는 눈을 뜨지 않으면 안된다. 전조를 그리는 것은 끝났다. 현실을 그리자 ■ 신페이 오카와





BAE ZOO TOY


배주展 / BAEZOO / 裴周 / painting   2011_0526 ▶ 2011_0612


배주_난장판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 유채_181.8×259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80522c | 배주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11_0526_목요일_05:00pm

기획 / 가나 컨템포러리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가나 컨템포러리 GANA CONTEMPORARY 서울 종로구 평창동 98번지 Tel. +82.2.720.1020 www.ganaart.com


배주의 회화 - 천진한 웃음 뒤에 숨은 서늘한 농담 ● 배주영과 배주, 작가는 이렇게 이름이 둘이다. 배주영은 페르소나 즉 사회적 주체 혹은 제도적 주체를 부를 때 사용하는 이름이고, 배주는 그 페르소나의 가면을 벗겨냈을 때의 자기를 호명하는 이름이다. 그림을 그릴 때도 물론 배주라는 이름을 사용하는데, 가면이 벗겨진 자기 내면의 욕망을, 그 욕망의 일그러진 초상을 보여주는데 적나라하고 거침이 없다. 작가는 이렇게 두 개의 이름을 빌려 인간의 존재론적인 한계를 드러내는데, 그 인식 그대로 작가의 자의식이 되고 그림의 주제가 되고 형식이 된다. ● 이를테면 이처럼 이름이 둘인 것은 작가가 공공연히 자신을 이중분리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이중인격을 인정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다만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런 이중분리와 이중인격은 인간 일반의 존재론적 조건이기도 하다. 야누스의 두 얼굴 이래로 물거울에서 타자를 발견한 나르시스나, 역시 거울에서 대면한 불완전한 자기 곧 타자를 자신과 동일시하는 아기, 그리고 지킬 박사와 하이드(하이드는 숨겨진, 잠재된, 억압된 인격을 암시한다), 도플갱어가 모두 내 속에 타자가 살고 있음을 증언해주는 상징적 좌표들이다. ● 그렇다면 인간은 왜 이처럼 자기를 이중분리하고, 그렇게 분리된 인격의 반쪽에게 페르소나의 가면을 씌워 자기를 대리하게 하는가. 프로이트는 인간을 욕망의 동물이라고 했다. 욕망을 실현하려는 유기적 기계 혹은 생물학적 기계란 말이다. 그리고 제도는 개별주체가 자기의 욕망을 실현하도록 내버려둘 수가 없다. 그래서 욕망을 실현하려는 개별주체와 그 욕망을 통어하려는 제도의 기획은 처음부터 충돌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충돌된 욕망이 억압되면서 무의식의 지층 아래로 숨어든다. 이처럼 인격의 실체는 숨긴 채 인격의 허물에 가면을 씌워 제도에 내어주고 사회 밖으로 내보낸다. ● 그래서 어쩌면 페르소나는 개별주체가 제도를 속이고 사회를 기만하기 위해서 고안해낸 심리적 장치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외적으로 볼 때 사회의 통념이 요구하는 삶,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삶, 합리적이고 지각 있는 삶을 사는 페르소나의 삶 역시 알고 보면 대리하고 대역하는 삶이며, 척하는 삶이며, 좀비 혹은 허깨비의 삶일지도 모른다(흔히 인생을 연극에다 비유하질 않는가). 그리고 그렇게 페르소나가 대리하는 삶을 사는 동안, 나의 또 다른 그늘에선 억압이 차곡차곡 쟁여진다. 그래서 나는 억압된 욕망을 내재화한 잠재적인 시한폭탄이 된다. 상황을 과장하거나 극화한 점이 없지 않지만, 배주는 이처럼 이중분리 혹은 이중인격으로 나타난 인간 일반의 보편적인 존재론적 조건을 주제화하고 있고, 두 개의 다른 이름을 빌려 그 주제의식을 뒷받침하게 함으로써 공감을 얻고 있다. ● 더불어 배주라는 이름에는 또 다른 꽤나 심각한 의미마저 탑재돼 있다. 즉 배주를 영어로 쓰면 Bae Zoo 곧 배(작가)의 동물원이 된다. 작가는 자신을 포함한 이 사회며 세상 그대로를 거대한 동물원이라고 본다. 제도에 의해 양육되고 길들여진 동물들이며, 그렇게 길들여지면서 점차 본성을 잃어가는 동물들이며, 그 본성을 억압된 욕망으로 전이시키는 동물들이며, 합법의 이름 아래 약육강식과 정글의 법칙을 몸에 익힌 동물들이 서로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쏘아 보내는 살벌한 우리라고 본다. 이중분리와 이중인격도 그렇지만, 이처럼 세상을 동물원과 동일시하는 것에서도 엿볼 수 있듯 작가는 인간을 시니컬한 시선으로 쳐다보고 있고, 그 시선은 때로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한바탕 피바람을 몰고 오기도 한다. 억압된 욕망이 귀환한 그 피바람에는 가학과 피학이 혼재된 카타르시스와 함께 인간에 대한 공격에 뒤따른 어떤 씁쓸함이 묻어난다.
배주_어떤 나라_캔버스에 유채_194×259cm_2011
배주_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_캔버스에 유채_162×259cm_2011
배주_Deep, Deep, Deep_캔버스에 유채_150×150cm_2010

그 공격이 전작에선 비교적 뚜렷한 편이었고, 더욱이 그 공격의 칼날이 자기 내면의 억압된 욕망을 향하고 있어서 더 극적으로 표출된 감이 있다. 성적 욕망과 폭력 욕망이 공모하면서 상대를 페티시화하고 사물화하는 극적 상황을 연출한 것인데, 더욱이 그 상황이 적어도 외관상 보기에 귀엽고 깜찍한, 최소한 무표정하거나 무감한 레고 인형들에 의해서 대리 자행된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생각해보면 이처럼 무표정하고 무감한, 무심한 행위이기에 오히려 더 살벌하게 와 닿을 수도 있겠다 싶다. ● 근작에서는 이처럼 자기 내부를 향하던 욕망이 자기 외부로 옮아가면서 자연스레 사람과 사람, 주체와 타자, 혹은 개별주체와 제도와의 관계와 같은 사회학적 층위로까지 확장되는 것이 확인된다. 이런 와중에서도 전작과 근작을 이어주는 매개 역할을 하는 것이 「deep, deep, deep」이다. 성적 욕망을 다룬 것인데, 속된 말로 여자를 상징하는 조개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남자 레고 인형을 보여준다. 플라스틱 소재의 사물화된 인격체와 조개의 유기적 속살이, 발기한 남근처럼 단단한 물체와 물컹거리는 물질이 만나면서 성적 욕망을 표상했던 전작에서의 테마를 재확인시켜준다. ● 이 그림을 제외한 다른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작가는 개별주체와 사회가 만나지는 접점에 서 있는 주체 곧 사회적 혹은 제도적 주체를 다루는데, 작가가 소재로 한 레고인형이 그 주체를 더 효과적으로 부각하게 해준다. 말하자면 레고블록도 그렇지만 레고인형은 몇 안 되는 전형적인 포맷을 따르고 있고, 더욱이 그 생김새가 구조적인 모습을 하고 있어서, 그 구조나 형태가 제도적인 사회의 그것을 닮아있다. 실제로 레고를 소재로 한 형태 만들기 놀이를 보면 일종의 사회 구조학 내지는 사회공학을 위한 형식실험을 연상시킨다. ● 그 형식실험에서 결정적인 개념이 관계이다. 작가는 그 관계를 비교적 사사로운 측면에서, 그리고 보다 공적인 측면에서 다루고 있다. 먼저 사적인 측면을 보면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에서 작가는 서로 손을 맞잡고 있는 연인이 동시에 다른 손으로 또 다른 연인의 손을 잡고 있는 레고인형들을 보여준다. 어쩌면 사랑은 실재하는 것이기보다는 부재하는 것이며, 환상의 기술일지도 모른다. 실재를 보상받기 위해서 환상을 일궈내고, 그렇게 부풀려진 환상 속으로 숨는 기술일 것이며, 그렇지가 않다면 착각의 기술일 수도 있겠다. ● 그리고 「어떤 나라」에서 작가는 제도와 개별주체가 만나지는 보다 공적인 관계를 형상화하고 있는데, 한눈에도 성좌에 앉은 권력주체와 그를 알현하는 개별주체가 일종의 하이어라키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여실하다. 장난감 놀이가 그렇듯 개념이 선명하게 오는 편인데, 중심성이 강한 구도와 엄격한 좌우대칭이 중심에 있는 권력주체에 시선을 집중시키는 감이 있고, 그대로 아우라를 강조하기 위한 종교적인 이콘화의 전형적인 포맷을 재현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사실상 종교를 상실한 시대에 이처럼 사회에 만연한 하이어라키가 새로운 신생종교(이를테면 물신주의)로 등극한 것으로 봐도 무방할 듯싶다. 재밌는 것은 권력주체를 중심으로 각각 청군과 적군이 양쪽으로 배열해 있는데, 이데올로기가 개별주체를 호명하는 과정을 통해서 자기 정체성을 부여해준다는(이를테면 진보 대 보수) 루이 알튀세의 전언을 떠올리게 한다.
배주_Permeate_캔버스에 유채_145.5×112.1cm_2011
배주_ Pop,Pop,Pop_캔버스에 목탄, 유채_227.3×181.8cm_2011
배주_Wild Toy_캔버스에 유채_150×150cm_2011

이렇게 사적인 관계와 공적인 관계에 주목한 작가는 또 다른 사회 문제를 짚는다. 이를테면 「Recycling」에서 작가는 담뱃재와 함께 버려진 레고인형을 보여주는데, 그의 가슴에 재활용 마크가 선명하다. 용도 폐기돼 버려진 인간이 인간에 대한 작가의 시니컬한 시선을 재확인시켜준다. 프로이트는 거세불안(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주체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있다. 현대인은 끊임없이 거세불안에 시달린다. 죽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대리되는 지점들, 이를테면 제도와 권력, 법률과 권위의 눈 밖에 날지도 모른다고 하는 불안감, 지금으로선 자본의 콜을 받지 못해 부지불식간에 쪽박을 찰지도 모른다고 하는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인간을 사물화하는 페티시즘의 극단적인 경우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 그리고 그 대안으로서 위장(Permeate)을 제안한다. 정상적이고 상식적인(사실은 틀에 박힌) 삶을 요구해오는 제도적인 사회 속에서 거세되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위장 말고는 방법이 없다. 척하는 삶만이 바람직한 삶이며 잘사는 삶이다. 그 삶에 진정성을 위한 자리는 없다. 인격을 사물화하는 천민자본주의 시대에 진정성은 지나치게 나약하거나 심지어 위험하기조차 한 정신적 사치에 지나지 않는다. 척하면 척할수록 더 잘 사는 삶이며, 절대 진정성을 들켜서는 안 된다. 그래서 위장에 몰입한 나머지 도대체 진정성이 무언지, 혹은 그런 것이 있었는지조차 망각할 정도가 되면 비로소 도통한 것으로 봐도 된다. ● 그리고 작가의 시니컬한 시선은 미술사 역시 비켜가지 않는다. 「난장판」에서 잭슨 폴록의 드리핑 회화를 패러디한 것인데, 전작에서의 색면회화를 패러디한 「색면회화 싫어」와도 통한다. 공교롭게도 둘 다 가장 미국적인 회화이며, 미국 현대회화의 보증수표에 해당하는 전형이며, 미국식 모더니즘의 전범으로 여겨지는 경우들이다.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 이 일련의 그림들은 흔히 패러디에 따라붙는 원작에 대한 오마주와는 거리가 멀다. 원작을 숙주 삼아 그 권위를 논평하는(이를테면 드리핑 회화의 자동기술법과 색면회화의 형식주의 논리) 일종의 비평적이고 메타적인 의미기능을 수행하는 경우로 볼 수 있겠다. 그리고 대중문화 스타인 마릴린 몬로의 초상을 패러디한 「pop, pop, pop」에서 작가는 몬로의 초상을 찢고 그 틈을 비집고 나오는 레고인형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아마도 팝의 이름으로 너무 많이 차용되고 있는 이미지, 그래서 전형으로 굳어진 이미지에 대한 비판적 코멘트로 볼 수도 있겠다. 더불어 종이를 찢고 나올 때 나는 소리를 연상시키는 제목도 재미있다. 팝적인 방법으로 팝의 전형적인 아이콘을 차용하면서 비트는 재치가 느껴진다. ● 이 일련의 의미기능들을 레고인형이 수행한다. 레고인형은 말하자면 작가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로서, 페르소나의 가면을 벗어던진 작가의(그리고 우리 모두의) 일그러진 욕망을 대리하고, 물신화된 사회구조 속에서 왜곡된 인간관계를 보여준다. 그 인형들에는 표정이 없다. 하나같이 웃음으로 결정화된 표정이, 기계적인 표정이, 한결같으므로 표정으로 부를 수조차 없는 표정이, 그래서 사실은 무표정이 있을 뿐. 베르그송은 웃음의 존재이유를 사회조절기능에서 찾는다. 즉 웃음은 서로 서먹하고 어색한 관계를 부드럽게 조절해준다. 말이 조절이지, 그 말을 뒤집어보면 가식이라는 말이다. 이 가식적 장치가 아니라면 사회는 결코 융화되지가 않는다. 어쩌면 페르소나는 웃도록 운명 지워진 것인지도 모른다. 작가의 레고인형들은 슬플 때도 웃고, 심지어는 분노할 때마저 웃음을 보여줘야 하는 우리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대리하고 있고, 그 웃음 뒤에 숨은 우리 모두의 이중분열과 이중인격에 직면케 한다. ■ 고충환





 
 
최승호 개인전
2011년 6월1일(수) ~ 6월6일(월)
인사아트센타 1F
www.insaartcenter.com
Opening: 2011년 6월1일(수) 오후6시






공간을 그리다

송현주展 / SONGHYUNJOO / 宋賢珠 / drawing   2011_0520 ▶ 2011_0606


송현주_무위자연_종이에 펜_86×206cm_2010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송현주 블로그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0520_금요일_05:00pm

산토리니 서울 서울 마포구 서교동 357-1번지 서교프라자 B2-01 Tel. +82.2.334.1999 www.santoriniseoul.com/


공간을 조각하는 세공 화가 - 송현주송현주 Drawing = SONGSDRAWING ● 나의 작품은 세세하게 조각된 드로잉 세공품이다. 생각을 조각마다 담아낸 추상적이면서 미니멀한 초현실 작품이다. 하나가 모여서 둘이 이루어지고 둘이 모여서 셋이 이루어지는 구조이다. 외면적으로는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 나오지만 그것을 이루고 있는 것은 작가가 창조한 상상의 산물들이다. songsdrawing은 매우 예민하고 섬세해서 선의 무게와 넓이, 간격, 힘 등의 사소한 차이에 따라 느낌이 크게 다르다. 가령 면을 봤을 때 그 면이 주위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먼저 생각한다. 그 뒤에 서로 영향을 줄 수 있는 관계인지 판단한 후 만약 그렇다면 리듬, 무게, 면적부터 시작해서 사이좋게 조화와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조율해 준다. 같은 면이라도 다른 느낌으로 표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같은 블랙 펜에서 나온 선들이지만 이들은 그냥 블랙이 아니다. 블랙 한 가지의 색에서도 선의 강약, 세기, 면적, 간격, 결합, 모양에 따라 여러 가지 색이 나온다. 무엇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결합시키느냐가 핵심인 것이다. 거기에 더하기, 빼기, 나누기, 곱하기를 통해 부피와 질량 무게를 조율하여 조화를 맞추면 이것이 컬러를 쓰지 않고도 다양하게 표현 가능한 songsdrawing 만의 방법이다. ● 자극을 가슴으로 느끼기 때문에 말로써 문자화 된 철학 보다는 실제 그림에서 오는 느낌이 나의 철학이라 하겠다. 가슴에 바로 닿아 그린 것과 머릿속에서 한번 더 걸러진 작업은 느낌 자체가 틀리다.
송현주_어흥_종이에 펜_109.5×78.5cm_2009
송현주_이카루스_종이에 펜_61×106cm_2010
송현주_마트로시카_종이에 펜_41×40cm_2011

잉어에 대해서 (2010~현재) ● 종이의 바탕 부분은 물(액체).몸은 고체, 꼬리는 기체 느낌을 갖고 있다. 전체적인 형태는 잉어지만 그 속에 무수히 그려진 그림들은 송현주만의 생각과 상상을 그려 넣은 일기장이다. 그것이 모여 이루어진 작품은 잉어의 몸을 빌린 작가만의 세계가 된다. 산다는 것은 어쩌면 도전일지도 모른다. 기쁨이라는 열매를 얻기 위해 엄청난 고통과 인내와 슬픔을 감수해야 한다. 잠깐의 열매를 위해 절반 이상을 키우고 가꾸는데 일생을 쏟는 나무처럼. 끝이라 생각했던 목적지였으나 그것이 종착점이 아니라 지나가는 역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모든 것은 허무해진다. 이것이 작가가 생각하는 산다는 것의 의미이다. 말은 자아 표현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찌꺼기가 남는다.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말에는 그림자처럼 찌꺼기가 있다. 이것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불어나 있다. 자아 표현의 수단이라면 꼭 말을 사용하지 않고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장점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난 단점을 없애는 것에 더 의미를 두고자 한다. 유연하게 행동하는 것. 자연이라는 밥상에 피자 반찬을 떡 하니 올려놓는 것이 아닌 숟가락만 살포시 올려놓는 삶 물의 흐름에 몸을 내어 놓고 그 속에서 자신을 일구는 삶 속에 찌꺼기를 쌓아 놓는 삶이 아닌 조화에서 오는 삶. 하지만 현대에는 이러한 삶이 이상으로만 존재하고 있다. 먹고 살기 힘들어 그런 삶은 경쟁 사회에서 뒤떨어진 세상 물정 모르는 얘기로 치부해버린다. 다수의 삶이 정상적으로 보이고 소수의 삶은 비정상적인 삶으로 보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각자의 소중한 인생이 한 묶음이 된지도 모르고. 소수의 삶을 낱개 취급하는 것이 슬프다. 작가는 이러한 상황에서 다시 돌아 볼 수 있는 반성의 시간을 갖게 하고자 한다. 지금 당신의 모습을 한번 봐요. 이때까지 이상적이라 여겨왔던 현실 속에 서 있는 당신의 모습을 보세요. 행복한가요? 그 모습이 진정으로 당신이 원하던 삶인가요? 자신을 닮은 잉어는 이야기 할 것이다. '나는 조용히 헤엄치고 있을 뿐입니다.' 그림 속 잉어는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다. 고귀하고 아름답지만 고독과 슬픔이 담겨 있고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현대인의 삶을 투영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삶이 녹아 날수 있는 그런 존재 말이다. 세상의 풍파 속 어머니와 어린 자식의 아련한 마음,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가지만 애처로움을 표현한 작품 역시 삶을 돌아보기 위한 작가의 노력이다 한 사람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자 라는 캠페인적 발상이 아니라 깨닫게 해주는 것. 그것이 송현주 잉어가 당신에게 건네는 무언의 한 마디이다.
송현주_저승사자 물고기_종이에 펜_45×45cm_2010
송현주_파라다이스_C 프린트_30×30cm_2009
송현주_마를린먼로_종이에 펜_78.5×109.5cm_2010

연상 + 상상 = 2상 : 걸리버가 되자 ● 나의 그림을 설명하라면 연상과 상상이 합쳐진 2상이다. 꼬리에 꼬리를 물어 연상되는 이야기와 나눠보고 합쳐보고 재창조 해나가는 상상의 작업을 거쳐 이를 조화롭게 비벼내면 이것이 2상, 즉 작품이 완성되는 공식이다. ● 주변을 둘러보면 사람 외에 재미난 것들이 참으로 많다. 개미, 매미, 새, 귀뚜라미, 등등 저마다의 세상에서 주어진 일과 질서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곁에서 쭈그려 앉아 저들의 삶에 내가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 지구보다 더 큰 별에서 나를 지켜보며 누군가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다른 이의 새로운 삶에 무단침입을 해보는 것은 나름대로 스릴 있다. 열심히 과자부스러기를 옮기는 개미들의 질서 정연한 줄에 끼어 같이 옮겨보고 나무에 껌처럼 달라붙어 있는 매미의 어부바도 해보고 그들 언어로 대화도 나눠보고 등등 그들의 입장에서 세상을 이해하고 바라보자! 사람의 입장이 아닌 사람이 아닌 것을 중심으로 사고해보자! 그렇게 된다면 비로소 고정관념의 탈피와 함께 사고의 자유가 허락되는 기념비적인 사건을 일으키게 되는 셈이다. 비록 그들보다 몸집이 크고 다른 생김새와 언어차이 등등 공통점보다 다른 점 찾기가 더 쉽다는 이유 때문에 직접적인 대화는 하지 못하지만 간접적인 방법으로 눈이라는 돋보기를 통해 뇌가 아닌 마음으로 투영된 창으로 펜의 선으로 종이에 그려본다. 동반자가 될 수 없는 슬픈 이방인의 눈으로... ● 제작과정 및 기법 우선 무엇을 그리는 것보다 그 사물의 근본부터 읽어 들어가고자 한다. 사물이 무언의 방식으로 자신을 말해주면 그 정보를 해석하는 해석자로 역할을 시작으로 이야기가 시작되고 풀어가기 때문에 제작방식 역시 매우 유동적이다. 제작방식은 크게 세단계로 나뉘는데 첫 번째가 정신적 자유이다. 무엇을 하기 전에 정신적 자유를 준다는 것은 낯선 길을 찾게 도와준다. 즉 뇌가 탱탱볼처럼 뛰어놀 수 있도록 자유를 먼저 주는 방식은 현실의 고정관념적인 사고가 아니라 꿈속에서나 가능한 풀어헤친 사고를 도와주는 표지판 역할을 해준다. 두 번째 과정은 펜 작업이다. 매우 까다로운 작업단계면서 작품의 완성도가 결정되는 단계라 절대 소홀히 할 수 없는 과정이다. 펜으로 하나하나씩 즉석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며 디테일한 부분과 큰 부분사이의 연관성을 이어나가는 동시에 기술적인 선의 강약을 손의 감각으로 조절하면서 리듬이 있는 선을 그리고자 한다. 그림패턴마다 다 담겨있는 의미가 숨어 있는데 그림을 그려가며 즉석으로 지어낸 이야기들이라 시간이 지나면 하나하나 기억을 다 하지는 못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순간만큼은 수백 가지의 이야기들이 머리 속을 장악하고 있다. ● 문양에 대해서 작품 속에 보이는 문양이라고 표현되는 것은 적게는 몇 가지에서 많게는 수백 가지의 세포들로 이루어진 개체들이다. 문양이라기보다는 사람으로 치면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가 되는 셈이다. 일차적인 하나의 이야기에서 덧붙이고 재구성하다보니 그것이 독특한 문양으로 재창조되어 보이는 효과를 갖게 되었다. ■ 송현주




이화창립 125주년 기념 미디어아트 국제전

2011_0527 ▶ 2011_0530


한휘건_설레임_캔버스에 유채_73×91cm_2010

초대일시 / 2011_0527_금요일_07:30pm_진선미관 광장

참여작가 트린 티 민하_이은우_양혜규_이주요_박보나_송지연_임민욱 김영은_박지은_조은지_남화연_이지아_송상희 이재이_문경원_강소영릴릴_조현진_함경아_박성연 손혜민_김영글_윤주경_조혜정_김해민_심철웅 아피차퐁 위라세타쿤_송 동_양푸동_호쯔얀_히라키사와_세미컨덕터

주최 / 이화여자대학 조형예술대학 주관 / 이화여자대학교 후원 / 삼성생명_월간미술_대안공간루프_숨프로젝트_아트클럽1563          한국문화예술위원회_사)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

장소 이화여자대학교 ECC_ECC정원_진선미관 광장_중강당/정원 본관주변 정원(우천시 ECC 내부/대강당/중강당)

관람시간 / 08:00pm~10:30pm

이화여자대학교 EHWA WOMANS UNIVERSITY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대현동 11-1번지


이마프(EMAP: Ewha International Media Art Presentation)는 움직이는 이미지 moving images 와 뉴미디어의 형식을 주요한 예술언어로 채택하는 작품들을 이화여대 교정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상영하는 미디어 아트 전시입니다. 이마프는 2001년에 시작되어 2006년까지 매년 개최되면서 점차 국제적인 전시회로 진화하였으며 독특한 전시형태로 교내외의 관객에게 깊이 각인된 바 있습니다. 약 4년여의 공백기를 깨고 다시 기획된 이번 이마프는 변함없이 이화여대 캠퍼스와 봄밤의 서정적 감성을 상영환경으로 적극 수용하는 동시에 '풍경'이라는 주제에 대한 다층적 해석을 통하여 예리한 사회/정치적 영상언어를 내용적으로 살피는 국제적인 작가들을 대거 초대하였습니다. 또한 올해는 이화여대가 창립125주년을 맞이하는 뜻 깊은 해 입니다. 국내 최초/최고의 여성고등 교육기관인 이화의 탄생과 함께 시작된 여성의 사회적 위상의 변화, 혹은 세계를 향한 여성의 시선과 예술적 재현들 또한 이번 이마프를 통해 진지하게 짚어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정은영
트린 티 민하_밤의 여로 Night Passage_01:38:00_2004
임민욱_휴대용 지킴이 Portable Keeper_00:12:53_2009
송상희_세계인들이 평화롭기를 Peace to all people in the world_00:12:32_2011
함경아_One Day Before Exhibition_2010
◁ 김해민_삼촌과 이모 HE and SHE_단채널 비디오_00:05:22_2011 ▷ 김해민_접촉불량 Unorderable Connections_단채널 비디오_00:06:05_2006
◁△ 심철웅_A Sea with Two Names02_단채널 비디오_00:18:00_2006 ◁▽ 심철웅_Bridge to the sky_단채널 비디오_00:04:00_2010비디오_00:06:05_2006 ▷ 심철웅_Bubble Multiplication_3D 애니메이션_00:02:11_1996
△ 아피차퐁 위라세타쿤_A Letter to Uncle Boonmee_00:18:00_2009 ◁▽ 송 동_Eating Landscape_00:07:07_2005 ▷▽ 양푸동_The Half Hitching Post_00:07:19_2005
히라키사와_WITHIN_단채널 비디오_00:07:30_2010
세미컨덕터_Heliocentric_3 스크린 설치 HD_00:15:00_2010

■ 참여작품 □ 트린 티 민하_그녀 이름은 베트남 Surname Viet, Given Name Nam_01:48:00_1989 □ 트린 티 민하_밤의 여로 Night Passage_01:38:00_2004   □ 이은우_300,000,000 KRW, Korea, 2010_면적, 실거래가, 준공년도를 기준으로 /     파랑=서울, 빨강=경기, 초록=기타 광역시, 노랑=기타 도시 300,000,000 KRW, Korea, 2010     _Sorted by Area, Transaction Price, Year Built /     B=Seoul, R=Cities in Gyeonggi, G=Other Metropolitan Cities, Y=Other Cities_00:03:44_2011 □ 양혜규_펼쳐지는 장소 Unfolding Places_00:18:00_2004 □ 이주요_한강에 누워 Lie On the Han River_00:10:00_2003~2006 □ 박보나_차이니즈 멜랑콜리 Chinese Melancholy_00:00:54_2010   □ 임민욱_휴대용 지킴이 Portable Keeper_00:12:53_2009 □ 김영은_구술지대 Oral Ground_00:05:30_2009 □ 박지은_과잉과 결핍 크리닉 Dr.Too Much nbsp; Lack Clinic_00:06:00_2007 □ 조은지_엑소더스-진흙 시 Exodus-Mud Poem_00:02:30_2011 □ 남화연_너에게 나의 칼을 주었어 I give you my knife_00:06:20_2008   □ 이지아_이어도 Ieodo_00:03:26_2010 □ 송상희_세계인들이 평화롭기를 Peace to all people in the world_00:12:32_2011 □ 이재이_Mediterranean_00:07:50_2009 □ 문경원_박제 Superposition_00:13:51_2007   □ 강소영릴릴_포탄위에 핀 꽃_00:05:00_2011 □ 조현진_Meet the Artist_00:10:00_2010 □ 함경아_One Day Before Exhibition_2010 □ 박성연_Her Own Birthday, 22 October 1941_00:03:48_2008   □ 손혜민_나의깃발 My Flag_00:05:48_2007 □ 김영글_Invisible_00:13:02_2011 □ 윤주경_경례 Salute_00:08:00_2010 □ 조혜정_향항 Scented Port_00:15:00_2008   □ 뮤직비디오 상영   □ 애니충격 상영   □ 김해민     삼촌과 이모 HE and SHE_단채널 비디오_00:05:22_2011     접촉불량 Unorderable Connections_단채널 비디오_00:06:05_2006     초봄에 우울해지다 Feeling blue in early spring_단채널 비디오_00:08:23_2007     비디오 퍼포먼스 Image Section: Video Performance_단채널 비디오_00:05:19_1989   □ 심철웅     A Sea with Two Names02_단채널 비디오_00:18:00_2006     Bridge to the sky_단채널 비디오_00:04:00_2010     Bubble Multiplication_3D 애니메이션_00:02:11_1996     Text-Sign-Life: Fetus's dream_단채널 비디오_00:01:32_1996   □ 아피차퐁 위라세타쿤_A Letter to Uncle Boonmee_00:18:00_2009 □ 송 동_Eating Landscape_00:07:07_2005 □ 양푸동_The Half Hitching Post_00:07:19_2005 □ 호쯔얀_Reflections_00:13:37_2007   □ 히라키사와_WITHIN_단채널 비디오_00:07:30_2010     Collection of Hyundai Card Company, Seoul, Korea     A special commission for the Hyundai Card Air Lounge, Incheon, Korea   □ 세미컨덕터_Heliocentric_3 스크린 설치 HD_00:15:00_2010





Syncopation-인생의 변주

김민주展 / KIMMEANZOO / 金玟注 / video   2011_0528 ▶ 2011_0603


김민주_balance & tension_단채널 비디오_02:04:03_2010

초대일시 / 2011_0528_토요일_06:00pm

후원/협찬/주최/기획_다원예술공간 도어

관람시간 / 01:00pm~07:00pm

다원예술공간 도어 OPEN SAPCE DOOR 서울 마포구 동교동 177-22번지 B1 2관 Tel. 070.7590.9335 www.thedoor.co.kr


'예술은 원래 시간, 공간, 욕망을 전유專有(appropriation)하기'였다고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는 지적한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사회에 대해서, 자연에 대해서, 권력에 대해서, 혹은 인간의 욕망에 대해서 생각하고 그것들을 자신들의 작업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작업의 영역 안에서 이 세계의 많은 테제들을 전유하고자 한다. 다소 거창하게 보일 수 있는 이러한 작업들은 그러나 사실 기본적으로 작가 자기 자신에게 천착되어 있다. 르페브르 식으로 말하면, 작가 스스로 자연이나 사회에 의해 강제되지 않고 전유하는 인간으로 살아가기, 즉 세상을 살아가는 '적극적인 존재'가 되기를 갈망하는 지점에 예술의 시작점이 있다. 최근에 한국사회에서 생산되는 많은 시각예술 작품들에서 나는 '자기 고백적' 특성을 보았다. 이들은 거시담론을 언급하는 대신 사회를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의 자기성찰에 초점을 맞춘다. 예컨대 이들은 사회구조가 지닌 모순이 변증법적으로 해결되고자 하는 바람에서 시작된 폭로나 언급이 아닌, 자기 자신과 자기 이외의 영역으로 규정되는 사회 사이에 발생하는 갈등을 해소하고자 하는 변증법적 수단으로 예술을 선택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기 고백적 작업은 출발점이 작가 자신에게 있다는 점에서 '지적(知的) 자위행위'로 그칠 공산이 크다. 이러한 작업들이 예술에서의 유효성을 입증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자신으로부터 출발한 이야기가 개인의 일기로 그치지 않는 다수의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강제'되지 않고 '전유'하는 인간으로 살아가는 방법론에 대한 언급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김민주_balance & tension_단채널 비디오_01:17:17_2010

김민주의 작업은 개인사적인 정보를 드러내지 않고 있지만 작업에서 상정하고 있는 타자성이 불특정 다수가 아닌 일 대 일의 대응성을 지닌다는 점, 장소적 지시성이 배제된 심리적 공간 안에서 인물의 동선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자기고백적 특성을 지닌다. 예를 들어 「balance & tension」이라는 작품에서 흔들의자에 앉아 있는 인물과 공간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인물이 '실'이라는 매개체로 균형과 긴장을 유지하고 있는 장면은 개인 대 개인으로서 마주하는 갈등과 감정, 권력의 문제를 연상하게 한다. 다시 말해 김민주가 작업을 통해 드러내는 자기고백적 특성은 마치 표류하는 섬 위의 유한존재로서의 한 개인, 또는 개인 대 개인의 마주함과 같은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구체적으로 당김음, 엇박자라고도 불리는 영문으로는 다소 생소한 단어가 본 전시를 명명(命名)하는 전시어(展示語)이
2011.05.26 19:41:23 / Good : 335 + Good

zabel

  • 작성시각: 2011.05.29 01:03:04
  • 총 작성한 글타래: 56 개
  • 총 작성한 댓글수: 141 개
  • 가입일: 1970/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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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weet dream VACCINCE







이강준展 / LEEJANGJUNE / 李康準 / mixed media   2011_0601 ▶ 2011_0607





이강준_a cover-up thing (not yet)_혼합재료, RGB LED_220×70×55cm_부분




초대일시 / 2011_0601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토포하우스 TOPOHAUS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4번지 Tel. +82.2.734.7555/+82.2.722.9883 www.topohaus.com





the Sweet Dream Vaccine ● 이강준의 이번 작업들은 어린 시절의 단편적인 기억들에서 시작한다. 작가는 어린 아이, 거리 산보자, 꿈꾸는 자, 여행하는 자로서의 경험과 관찰들을 종합하여 달콤하게 도취된 초현실자의 시선으로 보여주고 있다. 각각의 작품들은 일상적이고 하찮고 평범하고 낡고 우연적인 사물과 사건들을 통해 새로운 깨달음의 계기를 드러낸다. 어린 시절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심리적인 경험들은 무의식적으로 편집된 이미지들의 파편으로 드러남으로써 사회적 역사적 발전의 징후를 알리는 현상으로 읽혀진다. 작가는 산보하는 자로서 어린 시절 살던 동네의 거리를 거닐면서 여러 공간들의 열림과 닫힘, 멀어짐과 가까워짐,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모습들을 의식적으로 상기시키고 중첩시킨다. 이런 행위는 '지나간 과거를 개인사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우연의 소산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필연적인 것'(벤야민)으로 보고자 한 것이다.
이강준_a cover-up thing (not yet)_혼합재료, RGB LED_220×70×55cm
이강준_a cover-up thing_혼합재료, RGB LED_198×35×35cm

그는 20년 만에 돌아온 고향, 동부이촌동 아파트 단지를 어린아이의 감수성과 성인이 된 현재의 감정을 오가면서 배회한다. 과거의 시간 흔적과 현재의 시간은 사물들에 중첩되어 동시적 관계를 이루고, 연속적인 것과 일시적인 것 사이의 동시적 관계를 보여주는 사유이미지로 보여진다. 특히 「edited memory」 시리즈는 '인식 가능한 지금'으로서 역사적 현재를 잘 보여주고 있다. 먼저 「edited memory no.1」은 놀이터의 회전 그네의 움직임의 잔상과 그 뒤에 배경처럼 보이는 산뜻한 아파트 모습들은 영화로웠던 과거를 떠올리게 하지만 텅 비어 있는 놀이터의 반복된 이미지는 이전과 지금의 시간 사이에서 사라진 것들이 유령처럼 떠돈다.
이강준_edited memory no.1_렌테큘러 프린트_각 26×43cm
이강준_edited memory no.2_렌테큘러 프린트_각 29×48cm

「edited memory no.2」는 보다 적극적으로 현재의 시간을 보여주고 있는데, 흔들리는 그네와 '철거'와 '이주'가 어지럽게 쓰여 진 허물어지기 직전의 아파트의 모습은 쇠락한 대도시 거주민들의 고된 삶의 시간을 보여준다. 이들 사물들은 두 시간 사이에서, 연속적이고 일시적인 움직임 사이에서 근대적 가치, 산업사회의 몰락을 보여주고 있다.
이강준_edited memory no.3_HD 비디오,「edited」 HD 비디오_00:02:10, 00:03:45
이강준_the lost thing_HD 비디오_00:03:45

특히 렌티큘러로 제작된 작품들은 렌티큘러의 무빙효과에 의해 사진의 정지된 이미지의 단점을 보완한다. 관객들은 여러 장의 렌티큘러 사진들을 따라 걸으면, 자신이 지나가는 시간과 거리만큼 사진의 사물들이 움직이고 멈추면서, 일시적이고 덧없는 이미지가 드러나는 것을 본다. 여러 장의 반복되고 흔들리는 이미지는 마치 꿈 이미지처럼 낡은 유물이 된 삶의 터전들과 시간들을 역사적으로 구성해낸다. 마치 두 시간들이 중첩될 때, 갑작스런 섬광처럼 일시적이고 불연속적으로 만들어지는 사유이미지는 공허한 시간, 존재하지 않은 시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시대, 특정한 삶을 보여준다. 이 순간적이고 동시적인 경험은 근대화와 산업화라는 한국의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 현재의 이미지로, 한국의 근현대 역사를 구체적으로 해독하게 한다. 그럼으로써 도시의 일상적인 모습과 공간들은 대도시 거주자의 경험과 그들의 특징적인 불안감, 현재의 역사를 이미지로 드러낸다. 마치 축소된 역사처럼 말이다. 이강준은 이번 전시에서 거리 산보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초현실주의자의 일상적 경험을 작품으로 보여주는데, 이는 사물의 파노라마, 이미지의 스펙타클, 집단적 꿈의 이미지, 환상으로 드러난다. 우리는 그의 작품들 사이를 걸으면서 하나의 도시, 축소된 하나의 세계, 축소된 역사를 다시금 인식하게 된다. 세심한 관찰자로서 우리는 구불구불한 선들의 매혹을 놓치고 싶지 않다. 깨지기 쉬운 달콤한 꿈이지만 반복해서 꿈꾸는 그의 작품은 과거라는 시간 속에 봉인될 수 없는 역사적 현실의 시대와 삶, 그리고 그 가운데에 반복해서 되살아나는 희망을 보여준다. ■ 박수진




목격의 시선







염지현展 / YEUMJIHYUN / 廉智賢 / painting   2011_0601 ▶ 2011_0607





염지현_해빙기_순지에 혼합재료_130×162cm_2011




초대일시 / 2011_0601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관훈갤러리 KWANHOON gallery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Tel. +82.2.733.6469 www.kwanhoongallery.com





목격의 시선 ● 나의 작업은 일상 속에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장면의 주시로 이루어진다. 멈춘 듯한 화면 안에는 연관성이 없는 인물들이 포착되거나 어떠한 일들의 징후가 우연히 감지된다. 빛과 대기의 상태 또한 그 순간의 장면을 원래의 상태에서 분열 시키는 역할을 하고, 전후의 설명을 하지 않고서는 실제의 상태를 추측만 해야 하는 독립된 장면으로 탄생한다. 이렇게 선택되어진 작업은 언어적 설명이 부족한 화면으로 재창조되고 관람자마다 가지는 지각의 부분에 의해 다양하게 해석되는 여지를 가지게 된다.
염지현_L의 조우_순지에 혼합재료_130×185cm_2011
염지현_국경지역_순지에 혼합재료_130×162cm_2011

발견을 한다는 것은 미처 찾아내지 못하였거나 아직 알려지지 아니한 사물이나 현상, 사실 따위를 찾아내는 것으로 이미 잘 알고 있던 생활 속의 어떤 부분이나 항상 익숙했던 거리처럼 무의미하게 스쳐갔던 장면을 선택하는 것은 발견의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발견하는 행위는 그 순간 속의 인물과 사건에 대해 집중하는 것으로 이어지게 된다.
염지현_비명_순지에 혼합재료_130×162cm_2011
염지현_상관관계_순지에 혼합재료_112×162cm_2011

시간이 흐르고 있는 도중 멈춘 듯한 장면을 연출한 본인의 작업은 단순히 바라보는 것이 아닌 목격의 시선을 내포한다. 목격은 직접 자기의 눈으로 보는 행위를 말하지만 직접적으로 보는 행위를 포함해서 흔히 쓰이는 어감은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장면을 직접 본 상황, 즉 사건의 발발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러한 전제는 사건을 의식하는 입장을 취하게 되고 한 장면을 보더라도 의구심이 생기는 인식체계를 만든다. 또한 화면을 가로지르는 길이나 곁눈의 시야에 확보되는 벽은 소재와 관람자의 거리를 설정하여 목격의 시선을 구체화 시킨다. 작품과 관람자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확실하게 보이지 않는 상황은 의구감을 가지게 하며, 미세하지만 확실한 움직임, 우연히 포착된 인물의 몸짓 등으로 작품의 이야기가 구성된다. 보는 이는 이런 요소의 발견으로 하여금 화면 속 상황을 자신의 경험의 형태로 지각하게 된다. 이러한 지각의 여러 형상과 판단들은 작품을 유동적이게 만드는 힘이기도 하다.
염지현_발설_순지에 혼합재료_154×104cm_2010
염지현_발발_장지에 혼합재료_97.5×130.4cm_2010

일상 속에서 느끼는 수많은 감정과 경험은 개인을 변화시킨다. 그 변화는 개인이 느끼는 상대적인 시간까지도 변용시키는데 이를테면 하루의 길이에 대한 의견차이가 존재함으로써 개인마다 느끼는 시간의 속도가 상이하고, 그로인해 현실계에는 서로 다른 속도의 하루가 동시에 일어날 수 있다. 이러한 동시성을 가지는 감각적 지각의 차이는 개인이 가진 경험의 밀도 차에 의해 발생하고 이것은 같은 장면, 같은 시간을 경험한다고 해도 개인마다 그 상황판단이 다른 이유가 된다. 본인은 시퀀스(Sequence)를 표현하는 것이 어려운 회화의 한계를 이러한 인식의 다양성으로 극복하고자 의도했다. ■ 염지현







전환된 이미지 V (IMAGE TRANSIT V)





갤러리룩스 기획展   2011_0601 ▶ 2011_0614




김동유_Diana(Queen Elizabeth II)_캔버스에 유채_145.5×116.6cm_2008



초대일시 / 2011_0601_수요일_06:00pm

참여작가 김동유_김영길_변남석_윤종석 윤지선_이승희_전상용_전흥수_최원진

오프닝 퍼포먼스 / 변남석

책임기획 / 최원진

관람시간 / 10:00am~07:00pm / 공휴일_11:00am~07:00pm

갤러리 룩스 GALLERY LUX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5번지 인덕빌딩 3층 Tel. +82.2.720.8488 www.gallerylux.net




『전환된 이미지Ⅴ』展을 열며 ● 현재 많은 작가들이 매체의 구분 없이 다양한 장르를 혼합하고, 또 그 경계를 무너뜨리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이제 예술에서 더 이상 장르의 경계를 구분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는 물음으로 보인다. ● 사진 예술에서 이미지 전환에 대한 가능성을 실험하기 위해 기획되어 온 『전환된 이미지Ⅴ』展 은 2001년 첫 전시를 시작으로 2011년 다섯 번째를 맞으며 매체의 경계를 뛰어넘어 예술적 표현에서의 이미지 전환에 대한 가능성을 확장하고 다양화하려는 의도로 기획되었다. 이번 전시에는 사진, 회화, 입체, 설치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보이고 있는 김동유, 김영길, 변남석, 윤종석, 윤지선, 이승희, 전상용, 전흥수, 최원진 9명의 작가들을 초대하였다. 이들은 기계를 통한 기록적 성격과 현실세계에 대한 재현 이라는 사진이 가지는 본질을 뛰어넘어 각자의 표현방식으로 특유의 예술적 감성을 표현해낸다. 현대사회는 사물이 기호로 대체되고 현실의 모사나 이미지, 즉 시뮬라크르가 지배하고 있는 세상이다. 이미지의 재현과 실재의 관계는 전환되며 더 이상 모사할 대상이 없어진 시뮬라크르들이 현실을 지배한다. 현실과 이미지의 실재가 모호한 시뮬라크르의 시대에서 9명의 작가들이 표현한 이미지의 힘이 실재를 부정하고 있는지, 아니면 실재를 반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아니면 이미지 너머에 우리가 알 수 없는 또 다른 실재가 존재할지도 모르겠다. 관객들이 작가의 이미지와 대면할 때 시뮬라시옹의 질서에 의한 무한반복적인 사고의 순환이 아닌 그 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어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기를 기대해본다. ● 사진보다 더 사진적인 회화 작업을 하고 있는 김동유는 독특한 대형 초상화로 주목받아 온 작가이다. 대형초상화를 이루는 작은 이미지를 세밀하게 하나씩 그려내고, 그 작은 이미지가 모두 모여서 하나의 또 다른 판타지적 초상이 탄생하게 된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자면, 어릴 적 보던 입체 사진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주로 고인이 된 저명인사들을 주제로 작업했던 그의 작품에는 세상을 사는 모습은 모두 다르지만, 죽음 앞에서는 모두 동일하다는 작가의 철학이 담겨있는 듯하다.
김영길_By Hanji_디에틸렌글리콜 프린트_80×110cm_2009
변남석_Balancing_디지털 프린트_50×75cm_2011

김영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거친 입자와 선명하지 않은 뿌연 풍경들은 실재 풍경이 아닌 한지를 촬영한 것이다. 그의 작업은 한지로부터 펼쳐지는 이미지로 순수한 종이라는 대상을 형상화한 작업이다. ● 변남석은 돌을 쌓아 작품을 만든다. 단순하게 쌓는 것이 아니라 작은 돌 위에 큰 돌을 세로로 세우는 독특하고 기묘한 방식으로 돌을 쌓아올린다. 그의 손을 거치면, 모양도, 크기도 달랐던 의미 없는 돌들에서 하나의 생명력이 느껴지고 하찮다고 느껴졌던 돌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어떤 특별한 것으로 변모한다.특히 이번 작업은 이전의 자연적 배경에서 벗어나 광화문과 국회의사당 인근에서 작업한 것들인데, 도심을 배경으로 위태롭게 쌓아올려진 돌들의 기이한 형태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보는 듯 한 착각이 들게한다.
윤종석_또 다른 나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130cm_2010
윤지선_누더기 얼굴 003_사진에 재봉질_154×108cm_2010~2011

윤종석은 옷이 무엇을 말하는지 관찰하여, 옷이 말하는 내용들을 형태화 한다. 접고 만지작 거려 동물의 머리, 총, 별 등을 만든다. 그리고 주사기로 한 방울씩 촘촘히 점을 찍어 그려내는 고된 노동의 행위를 반복한다. 미세한 점에서 시작하는 그의 작업 방식은 사진이 작은 입자로 이루어지진 것과 매우 닮아있다. 하루 종일 점 찍기를 반복한다는 작가는 경탄할 만한 작가의 끈기와 노력 그리고 세밀한 표현능력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유발시킨다. ● '누더기 얼굴' 이라는 제목이 붙여진 윤지선의 작업은 다소 그로테스크해 보인다. 이 작업은 사진 이미지를 천 대어 재봉질 한 것이다. 그녀는 사진 이미지를 훼손하고, 다시 직조하는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가면 뒤에 숨겨진 작가 개인의 상흔과 고통, 억압된 심상들을 과감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승희_달항아리_백토에 유약_66×56cm_2011
전상용_코뿔소의 황혼(Rhinocrépuscule)_목탄+샤프펜슬_63.4×48.3cm_1992

이승희는 입체적인 도자기의 고정관념을 탈피해 새로운 관점을 보여준다. 도자기의 일상적인 기능성에서 벗어나 조선백자를 부조상태로 만들어 평면화하는 작업을 통해 현대적인 평면 도자를 탄생시켰다. 이것은 마치 실제로 존재하는 도자기를 찍어낸 듯한 전환된 생생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 목탄으로 그린 코뿔소의 뿔 아래에 샤프펜슬로 그린 사진같은 프레임이 동시에 존재한다. 전상용의 사진같은 그림은 실제로 사진을 보고 정교하게 그린 그림이다. 그림의 시선은 코뿔소의 뿔을 따라 내려와 그림 내부의 또 다른 그림으로 이동하게 되며 자연스레 그곳에 머물게 된다. 뿔과 전봇대와 그림자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마치 가상공간에 존재하는 코뿔소가 현실속의 소녀와 조우하고 싶어하는 느낌이다.
전흥수_다중인격-1 (남)_사진, 디지털 처리 이미지, 디지털 프린트_77×52cm_2010
최원진_Vegetables_디지털 프린트_100×67cm_2006

디지털이미지로 전환된 인공의 산(山)을 담은 이전의 사진작업에 이어 전흥수는 변형된 인물이미지를 선보인다. 다중인격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번 작업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내면의 다양한 인간성의 모습을 표현했으며 디지털 이미지의 레이어를 겹치는 방법을 통해 표현된다. 또한 그는 사진, 드로잉, 판화 등 다양하고 실험적인 기법들을 이용하여 의도적으로 리얼리즘과 비리얼리즘의 관계를 이탈함으로써 초현실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 시각적으로 느껴지는 생명의 신비를 주제로 작업하고 있는 최원진은 우리 식탁에 오르는 야채에서 강인함과 생동감을 느끼게 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는 소소한 식물들에게서 우주적 질서를 발견하여 새롭게 창조된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오브제의 외부적 요소를 제거하고, 일부만을 확대해서 우리가 친숙하게 느꼈던 것들에 대해 낯설고 새로운 감정을 느끼게 한다. ● 여러 매체를 혼합하고 그 경계를 무너뜨리는 작업들로 이루어진 이번 전시는 작가들의 다양한 시선이 어떻게 대상과 마주하고 또 이를 어떠한 표현방법으로 구체화 하고 있는지 살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번 전시를 통해 보여지는 사진과 미술, 미술과 사진이 서로를 닮아가려 하는 이러한 묘한 양상은 매우 흥미롭게 느껴질 것이다. ■ 박혜림




On. Plan. Make.





김병주_왕지원_이대철展   2011_0601 ▶ 2011_0615




왕지원_Kwanon_Z_Urethane, Metallic Material, Machinery, Electronic Device (CPU Board, Motor)_40×40×28cm_2010



초대일시 / 2011_0601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2:00pm~08:00pm

텔레비전12갤러리 TELEVISION 12 GALLERY 서울 마포구 서교동 360-12번지 2층 Tel. +82.2.3143.1210 www.television12.co.kr




컴퓨터가 현대문명의 거울이 되는 시발점은 1970년 이후 부터이다. 컴퓨터의 소형화, 경량화, 고성능화는 사용자 운영체제와 소프트웨어 응용분야 등 혁신적 발전의 발판을 마련하여 PC의 대중화, 즉 개인용 컴퓨터의 시대로의 서막을 알렸다. 이 같은 컴퓨터 시대로서의 도약은 이전에 상상할 수 없는 많은 일을 가능하게 하였다. 정보처리 능력의 증대는 복잡하고 섬세하게, 또 신속하게 계산되어야 하는 산업 분야에 사무자동화, 공장자동화를 통해 사회에 막대한 생산성과 수익성을 가져오는 블루오션을 가져다주었고 그에 관련된 많은 기술적 융합들은 다양한 매체간의 통합적인 교류가 가능한 디지털 사회를 생성해 냈다. 그 여파는 건축, 산업 등에만 국한되지 않고 시각예술 분야에도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 텔레비전12 갤러리에서 소개하는 김병주, 왕지원, 이대철 이 3인의 작가들은 모두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통해 작품을 설계하고 계산하여 작품을 생산한다. 다양한 재료들이 실험되고 언제나 새로운 것을 갈망하는 현대미술에서 컴퓨터 기술을 예술에 접목하여 생성되는 새로운 예술적 시도들은 오늘 같은 기계문명시대에 당연한 흐름이 아닐까? 예술도구는 역사와 함께 발전을 거듭해 왔다. 과거에서는 생각하지 못한 도구가 재해석 되는 경우도 있고, 과거 쓰이던 재료들이 질적으로 향상되어 대체되는 경우도 있으며,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비디오, 미디어, 컴퓨터 같은 새로운 도구의 출현도 있다. 김병주, 왕지원, 이대철, 이 세 조소 작가들은 모두 80년대 초반 컴퓨터의 보급화와 맞물려 성장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감성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날로그와 디지털 그 모호한 경계 속에서 선택권을 가질 수 있다. 새로운 조형미의 패러다임, 그 중심에 있는 것이다. ● 김병주 작가는 공간의 경계에 대해 이야기 한다. 시멘트로 벽이 쌓아 올라진, Interior와 Exterior가 통념적으로 구분되어지는 건축물을 해체시켜 면으로 차단되는 공간을 오직 선과 점으로 연결시킴으로서 안 과 밖의 경계를 재구성 하는 작업을 한다. 안 과 밖으로 구분되지 않는 공간들은 서로 충돌하고 중첩되어 건물의 구조를 쉽게 알 수 없게 되고, 이런 벽들이 빛에 투영됨으로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낸다. 작업에는 수백 개의 철제가 복잡하게, 또 정확히 계산되어야 하는데 그가 사용하는 컴퓨터 소프트웨어(CAD-Computer Aided Design)는 이러한 작업을 가상의 공간에서 재현시켜 작업물이 좀 더 빠른 시간 안에, 정확히 구현시킬 수 있게 도와준다. ● 왕지원 작가는 기계문명에 살고 있는 현시대의 인간 정체성을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접근한다. 작가는 컴퓨터 소프트웨어 (Inventor, CAD-Computer Aided Design)로 구현된 가상의 공간에서 자신을 닮은 사이보그 인형을 빚고 행동지침을 부여하는데 작가의 상상력, 즉 無에서 부터 생성된 이 기계적 신체는 흡사 부처의 모습을 한 神같은, 혹은 완벽한 聖人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센서와 모터와 같은 기계제어장치에 의해 마치 인간과 같이 살아 움직이며 행동하지만 마치 해탈을 한 사람처럼 그 모습은 매우 동적이며 거룩하기까지 하다. 살아 움직이는 이 디지털 시대의 마리오네트(marionette)인형을 통해 작가는 미래의 인간문명, 혹은 기계문명시대의 인간의 존재성에 대해 질문한다. ● 이대철 작가는 소리를 작품의 소재로 채택하고 조형화시킨다. 컴퓨터 소프트웨어 (Pro-Tool, CAD-Computer Aided Design)를 통한 가상의 공간에서 형태를 지니지 못한, 청각적 정보를 시각화시키는데 이 과정에서 무형적 성질을 지닌 그 소리는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또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해 물체화 되고 구체화 된다. 청각적인 정보만을 가지고 있는 소리는 본래의 그 성질이 배제되고 조형화되어 관객들에게 시각적, 촉감적인 정보로만 전해지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존재하는 소리나 사물은 인간이 인지하는 언어로, 그 본질성이 필터링되고 본연의 존재성을 잃게 된다. 글자조각은 그러한 소리마저 정형화된 이미지화 시켜버린 것에 대한 반문이며 언어-특히 의성어, 의태어- 를 소재로 함은 말이라는 소리에 의해 변형되는 이미지를 그린 것이다.(이대철 작가노트 中)"인간의 기호는 두고 있는 모든 것이 그렇듯이 현대의 언어도 그 본래의 목적으로 부터 이탈함으로서 타락했다."(루소의 언어기원론 中) ● 이 세 작가들은 누구보다도 더 진보한 기술들을 차용하고 있지만 세대를 대표하는, 컴퓨터 기술을 통한 새로운 미술의 장을 개척하는 선두적 역할을 담당할 생각은 없다. 단지 기술이 지닌 본질적인 특징을 예술의 영역에 채용한다는 방향에서 현 미술시대의 흐름을 대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디지털시대로의 혁명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삶 자체로 디지털감성이 예술의 실현의 하나이자 그 미학적 가치와 시각적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On. Plan. Make.'는 이 세 작가들의 컴퓨터를 통한 생각의 구상 및 작업 프로세스를 암시하는 단어의 조합으로 텔레비전12 갤러리에서 개최하는 이번 전시를 통해 대중은 현대미술이란 커다란 변화의 바다 속에서 살아가며 실험하는 역량 있는 3인의 작가들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 텔레비전12 갤러리
김병주_Urbanscape_스틸, Power Coated_110×390×14cm_2011
김병주_Cube-type2_스테인레스 스틸, 혼합재료_각 80×80×15cm_2011



닫혀있는 공간, 사물함이나 닫힌 문 뒤, 막혀있는 벽 뒤에 무엇이 있을까? 궁금증이 생길 때가 많이 있다. 그래서 공간을 들어내 보이는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공간의 경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특히 건물이라는 '드러나지 않음'의 속성을 가진 대상에 주목하여 작업한다. 건물을 짓는다. 벽을 만들며 공간을 형성한다. 그 벽들은 유리처럼 투명하진 않지만 벽 뒤 공간을 들여다 볼 수 있다. 하지만 유리벽처럼 확실하게 안 과 밖을 구분 짓지 못하고 모호한 경계를 형성한다. 이런 모호한 벽들이 만들어낸 안 과 밖으로 구분되지 않는 또 다른 공간들이 서로 충돌하고 중첩되어 건물의 구조를 쉽게 알 수 없게 한다. 이런 벽들에 빛이 투영됨 으로 공간의 그림자를 만들어 낸다. 그림자가 다른 건물에 맺히고 서로 다른 건물의 그림자들이 뒤섞여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낸다. 마치 격자의 모눈종이에 그려진 평면도가 고층빌딩의 거대하고 복잡한 공간을 종이 한 장에 담고 있듯이 전시장 안의 모든 공간들은 경계가 허물어져 그림자로 응축 되어 벽면에 그려진다. ■ 김병주

왕지원_Kwanon_Z_Urethane, Metallic Material, Machinery, Electronic Device (CPU Board, Motor)_40×40×28cm_2010



인간의 유기적인 몸은 인간을 인간으로서 존재하게 하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사이보그 기술을 통해 우리가 우리의 몸의 상태를 많이 바꾼다면 우리는 인간이라는 생물 종이 아니라 당연히 다른 종으로 변하지 않겠냐고 질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인간을 무엇이라 정의 내리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그리고 우리가 인간과 다르게 변한다면 그것이 유토피아적 미래일지 혹은 수많은 매체에서 다루어지듯 디스토피아적 미래로 진행될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사이보그 기술을 통한 인간이라는 존재가 현재의 인간이 아닌 유한한 육체를 초월한 그 무언가로 바뀔 것이라는 것이다. 아직은 몇 년을 기다려야 이런 첨단기술이 대중에게 보급될 것인데 그럼 점에서 바로 지금이 이런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해 봐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 왕지원

이대철_WOW_나무에 채색_90×210×15cm_2010
이대철_싹둑_스테인레스 스틸_25×40×20cm_2010



하나의 이미지는 다양한 정보로서 상대에게 제공되기 마련인데 70%정도의 정보가 시각을 통해서 전달이 되어 지고 나머지 정보는 소리와 같은 나머지 감각 등에 의해서 결정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시각화된 정보에 의존하기 시작하고 그 이미지만을 믿어버리는 풍토가 조성되었다. 보이는 이미지만을 중시하는 현대사회에서 그 이미지가 가지고 있는 소리를 표현함으로써 이미지가 가지고 있는 나머지 정보를 보여준다. 그러한 과정은 보이는 이미지만이 아닌 실제의 이미지를 찾아가고 그 과정에서 알지 못했던 새로운 이미지가 창조되기도 한다. 소리를 통한 미디어 작업은 보이는 이미지를 소리로서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시각을 청각화 한 작업이며 듣는 행위만으로 공간과 감성에 대해 다양한 이미지를 재탄생 시킨다. 글자조각은 그러한 소리마저 정형화된 이미지화 시켜버린 것에 대한 반문이며 언어-특히 의성어, 의태어- 를 소재로 함은 말이라는 소리에 의해 변형되는 이미지를 그린 것이다. 결국 내 모든 작업(조각, 미디어, 사진)은 시각적인 이미지를 제외한 채 소리만을 들려주고 보여주어 볼 수 없었던 또 다른 이미지를 탄생시킨다. 소리만으로 진정한 이미지를 찾기는 힘들지만 모든 이미지는 그 나름대로의 소리와 리듬이 있기에 그것을 표현하는 것은 보이는 이미지와는 또 다른 실제의 이미지를 생각해 낼 수 있게 한다. ■ 이대철




사과 vs. 바나나




정서영展 / CHUNGSEOYOUNG / 鄭栖英 / mixed media   2011_0601 ▶ 2011_0630




정서영_수족관 Aquarium_PVC, 아크릴, 스텐레스 못_70×35×67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91027i | 정서영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0531_화요일_06:00pm

주최 / 킴킴 갤러리 후원 / 현대 종합상사

부대행사 ○ Kim Kim Salon 1. 강수미,〈아이스테시스〉사용법 2. 모노드라마 일시 / 2011_0608_수요일_07:00pm 장소 / 현대문화센터 1층 웨딩홀

관람시간 6월 1, 2, 3, 7, 15, 20, 27, 28, 29, 30일 / 12:00pm~03:00pm 6월 8, 10, 13, 14, 16, 17, 21, 22, 23, 24일 / 12:00pm~05:00pm 6월 9일 / 12:00pm~10:00pm

킴킴 갤러리 Kim Kim Gallery 서울 종로구 계동 140-2번지 현대문화센터 B1 www.kimkimgallery.com




킴킴 갤러리의 4번째 전시, 『사과 vs. 바나나』 정서영 개인전이 2011년 6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 계동 현대문화센터에서 열린다. ● 킴킴 갤러리는 2008년 듀오 작가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가 창립한 갤러리이자 미술작업이다. 킴킴 갤러리는 일정한 공간 없이 기획의도에 따라 예측불허의 장소와 전시형식을 시도하며, 이를 통해 현대미술의 구조에 개입한다. 오늘날 미술과 사회의 관계변화에 대한 실용주의적인 접근으로, 기존의 전시 방법과 미술의 경제 구조에 질문을 던지고 "비정규 마켓팅 Unconventional Marketing" 전략으로 그 해결점을 찾고자 하며, 이에 따른 독립성과 효율성을 지향한다. 킴킴 갤러리는 2008년 글라스고의 마켓 갤러리에서 갤러리 개관전, 2009년 베를린의 패션 브랜드인 Rob-ert 쇼룸과 대구의 신라 갤러리에서 게릴라 전시를 하였고, 『사과 vs. 바나나』는 킴킴 갤러리의 서울 데뷰전이다.
정서영_싱크대 Sink_나무, 돌, 페인트_162×143×78cm_2011
정서영_청코너 홍코너 Blue Corner Red Corner_종이에 수채화_27.7×36.7cm_2011

작가 정서영(1964년생)은 2000년 아트선재센터의 개인전 이후,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2007년 아뜰리에 에르메스 개인전 및 2008년 광주 비엔날레 참가 등 국내외 주요 전시에서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주자로 활동해 왔다. ● 북촌과 비원 사이에 위치한 현대문화센터는 예식장과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지하에는 아파트 모델하우스 두채 (24평과 33평)가 남아있다. 킴킴 갤러리는 한 기업의 개척정신과 아파트 신화에 대한 시대적 로망이 남아있는 특수한 공간에서 정서영 개인전을 유치함으로서, 장소성과 작품 사이의 색다른 시너지를 유발하고자 한다. 킴킴 갤러리, 작가 정서영 그리고 현대문화센터는 개별적으로 구축된 역사 위에 서로 다른 필요와 소통 방법을 가지는데, 이는 전시안에서 편리공생하는 관계가 된다.
정서영_파고다(카페트) Pagoda(Carpet)_카페트, 나무, 거울_170×80×90cm_2011
정서영_코너 스톤 Corner Stone_시멘트 모르타르_45×45×60cm_2011

『사과 vs. 바나나』라는 제목은 식이요법의 통상적인 표현에서 기인한다. 식이섬유 또는 탄수화물 중에 무엇을 선택할것인가 라는 문제를 제기하는데, 이는 현대사회식의 우스꽝스러운 선택인 한편 인생의 중요한 질문이기도 하다. 일상이 마치 권투 경기처럼 치열한 오늘날, 우리는 사과 또는 바나나 중에 무엇이 더 우수한가라는 식의 대결에 불씨를 당기는데, 답은 물론 둘다 최고이다. (어떤 치약이 좋냐고 물어본다면 모두 같다가 답: 이를 닦는다는 것이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또한 사과와 바나나는 서로 대립하고 있는듯 하지만, 양자 모두가 소비가능하다는 실용적이고 유머스런 해결방법을 찾을 수도 있다. ● 『사과 vs. 바나나』에서는 less than more (더는것이 더하는 것이라는)를 지향하는 작가의 관찰력에서 시작된, 사물의 디테일을 뭉뚱그린 소박하고 순수한 작품 세계를 선보인다. 세부사항이 제거된 산업적 아파트의 모델하우스 내부에, 작가는 테이블, 싱크대, 수족관, 세월의 흔적을 남긴 얼룩 그리고 눈덩이와 같은 중립적이고 수공예적인 오브제들을 설치한다. 이 각각의 사물들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아파트 모델하우스라는 생경한 공간에서 그들은 스스로의 논리로 생존방식을 터득하고 있는데, 이 지점이 작가의 공간에 대한 관찰력과 사물에 대한 응집력이 만나는 곳이다. ■ 킴킴 갤러리
정서영_호랑이 Tiger_종이에 수채화_27.7×36.7cm_2011






































2011공간프로젝트


















은 공간의 내ㆍ외부 소통을 강조하며 설계, 독특한 유기적 구조의 전시 공간을 가진 ‘환기미술관’을 이용한 공간프로젝트이다. 이번 전시는 다양한 예술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역동적인 행보를 보이며 성장하고 있는 남궁환, 김오안, 배정완 작가와 함께 한다. 자신만의 독특한 회화 세계를 구축하면서 이를 공간 구조물에 적극적으로 개입, 확장시켜 온 남궁환 작가는 환묵桓墨과 거대한 그림의 집이라고 할 수 있는 ‘환궁桓宮_Fort Intérieur’ 그리고 이들의 파생체인 ‘F.I,Intermedia’와 ‘EX-’들을 미술관 곳곳에 설치한다. 뮤지션이자 사진작가로서 현실의 면면을 심화된 철학으로 풀어내는 김오안 작가는 사진과 영상을 이용해 공간을 연출하다. 건축가이자 설치미술가인 배정완 작가는 영상, 설치, 음향 등을 접목한 복합적 공간 해석과 연출을 시도한다. 이들 작가들은 환기미술관 공간 속에서 발견되어지는 감흥을 토대로 각자의 예술 언어를 이용하여 조형적 서사가 담긴 제 3의 공간인 ‘Site WHANKI’ 그리고 그 안에서의 ‘낮’과 ‘밤’을 창조하게 된다.

전시기간 : 2011-03-18 ~ 2011-06-19
전시작품 : 김오안 (사진, 영상 설치) 남궁환 (회화, 설치) 배정완 (설치, 영상 설치)
관련도록 :













































 

 
















남궁환, 내면으로의 여정
환기미술관 중앙홀에 위치한 남궁 환 작가의 ‘환궁桓宮_Fort Intérieur’은 평면에서 출발한 작업이 조형적 숙고를 거쳐 무한의 시공간을 함축하는 하나의 구조체로 개념화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남궁 환 작가의 ‘환궁桓宮_Fort Intérieur’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조물이 구축되는 형식적인 면과 그 구조물 내부에서 담고자 하는 내용적인 측면을 복합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우선 피라미드를 연상시키는 다면체 구조의 ‘환궁桓宮_Fort Intérieur’는 내부에 가로, 세로, 높이 3m의 입방체를 품고 있다. 이 입방체의 여섯 면은 3차원 세상의 모든 방향인 동서남북상하를 지칭하는 상징으로, 일정 시간을 간격으로 축광蓄光과 발광發光을 반복하는 원형 그림들을 건너보게 하는 창구窓口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각기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보라를 기조 색으로 하는 원형의 작품, ‘Fort Intérieur’는 환궁 안에서의 시간 흐름을 시각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작가가 작품 활동을 통해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Transmigration(에너지의 순환을 의미하는)’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렇다면 환궁 안에서의 ‘Fort Intérieur’는 어떠한 시간성으로 자신의 ‘우주-환궁’을 운영하고 있는가. 환궁의 시간은 크게 태초의 시간을 지칭하는 ‘환기桓期’와 분열의 시간의 지칭하는 ‘분기分期’ 그리고 화합의 시간을 지칭하는 ‘통기統期’로 나누어져 있다. 그리고 각각의 시간은 모두 하루 180초를 기준삼아 춘하추동春夏秋冬에 따른 낮과 밤을 반복한다. 즉, 춘분점에 해당하는 첫째 날의 낮과 밤의 비율이 90:90초라면 둘째 날의 낮과 밤은 91:89초, 셋째 날의 낮과 밤은 92:88초……식의 주기로 점차 낮 시간을 늘리며 미세한 계절의 변화를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낮 시간이 가장 긴 하절기에 이르러서는 낮과 밤의 비율이 119:61초로 정점을 이루다가 다시 낮 시간이 짧아지면서 90:90초의 추분점을 지나 61:119초로 밤 시간이 가장 긴 동절기에 접어들게 된다. 이렇게 동서남북상하에 위치한 원형의 그림, ‘Fort Intérieur’는 1초 단위로 축광과 발광의 비율을 미세하게 조절하면서 총 116일에 해당하는 1년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러한 최초의 주기를 남궁 환 작가는 ‘환기’로 간주한다. 이후 여섯 면의 원형 그림들은 ‘환기’에 해당하는 시간을 반복하되 각각 약 5초의 시간차를 두고 순환함으로써 돌림 형식의 ‘분기’를 갖고, ‘통기’에 이르러서는 보색으로 마주보게 배치된 그림들이 짝을 이루어 다시 한 번 환궁 안에서의 주기를 반복하게 된다. 이로써 원형의 그림, ‘Fort Intérieur’는 180초의 하루가 춘하추동의 절기를 거쳐 1년의 시간을 보내고, 각자 혹은 짝을 이루어 ‘분기’와 ‘통기’로 통용되는 2, 3년의 시간을 지나 다시 ‘환기’로 돌아가 반복하는 시간의 미궁美宮을 창조하기에 이른다. 환기미술관 중앙홀에 자리 잡은 남궁 환 작가의 ‘환궁桓宮_Fort Intérieur’는 마치 공간이 알을 품고 있는 듯한 부동不動의 표정으로 자리하고 있지만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전재하는 시간-여명과 발랄한 한 낮 그리고 노곤한 일몰을 거쳐 한 밤에 이르는 온전한 하루와 계절의 변화마저도 오롯이 담고 있어, 실상은 공간에 맞물린 거대한 물질감이 아닌 시공간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유영체遊泳體임을 자처한다.

김오안, 내 삶의 1초
환기미술관 1층의 좁고 높은 공간(타피스트리 방)과 2층 전시장을 아우르는 김오안 작가의 작업은 삶의 본질에 대한 물음과 이에 대한 작가 나름의 답변 방식으로서의 사진 및 영상 설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김오안 작가의 작업은 그가 사진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삶에 대한 감성과 이를 표현하기 위해 사진을 둘 혹은 세 장면으로 매칭하여 완성하는 과정을 이해해야 한다. 우선 김오안 작가가 삶을 바라보는 방식은 특정한 의식이나 거대 담론을 지향하기 보다는 우리가 거의 인식하기 힘든 순간들-일을 하고 돈을 벌면서 커리어를 쌓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기도 하는 소소한 일상 중에서도 무의식적으로 스쳐 보내는 순간들의 나열이다. 사람들은 간혹 의식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억에도 남지 않은 순간들을 떠올리면서 묘한 감정을 느끼게 마련이다. 김오안 작가가 사람들의 움직임이나 나무, 집 혹은 비정형적인 형태를 추구하는 이유는 이러한 감정들-과거의 사진들을 보면서 실제로 내가 이 장소에서 이 같은 시간을 보냈던가... 하는 묘한 느낌, 김오안 작가의 말대로 딱히 설명하기 어려운 존재의 무딘 느낌들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또한 김오안 작가는 사진의 한 장면보다는 전체적인 작품의 인상을 중요시 한다. 이 점은 김오안 작가가 촬영한 사진들을 오랜 관찰과 숙고 끝에 배열하고 명제를 달아주는 행위로 이어진다. 이는 마치 단순히 흘러가는 시간,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지 않은 크로노스(Chronos)의 시간을 작가가 전지全知적인 입장에서 순간들을 배치하여 의미 있는 카이로스(Kairos)의 시간으로 만드는 작업과 같다. 특히나 사진 밑에 사물의 이름이나 행위을 명기한 단어들은 독립적으로 혹은 연결된 문장으로서 사진과 함께 해석하거나 분리되어 읽을 수 있다. 그의 사진이 의미가 크지 않는 장면들을 나열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삶의 모습 전반을 연상시키는 것은 이 점에서 기인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크로노스의 시간 안에 존재하지만 여러 가지 방편, 그것이 종교가 되었건 정치가 되었건 간에 카이로스의 시간을 담보받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여기, 김오안 작가는 자신이 지나쳐온 단조로운 장소와 시간들을 엮어 우리가 이 공간 안에서 작가의 기억을 상상하게 만들고 더불어 우리의 의견이 아무렇지 않게 개입하여도 무방한, 사진 속 긴장되지 않는 시각들에서 오는 소박한 안도감을 선사하고 있다.

배정완, Life on Loop
사람은 누구나 주어진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살아가며 나와 다른 존재, 다른 대상들과 일정한 관계를 맺으며 삶의 喜怒哀樂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살아간다. 2층 전시장 일부를 시작으로 3층으로 이어지는 배정완 작가의 작업은 비디오 영상과 영상을 공간 속으로 녹여내기 위한 설치작업으로 구성된다. 배정완 작가의 비디오는 여섯 개 영상, 세 개의 주제로 내용이 전개된다고 할 수 있다. 그 중 첫 번째는 올드 맨과 올드 우먼에 관한 내용이다. 수영장을 오가는 노인은 휴양지에서 모두가 쉬고 있는 와중에 혼자서 걷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 작가는 이 인물의 캐릭터를 상상하는데, 평생 동안 주어진 상황을-가정이 되었건 직장이 되었건 간에-충실히 통제해 가며 살아온 이 노인은 은퇴할 나이가 되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쉰다는 것이 낯 설기만하다. 수영장을 오가는 강박적인 행동과 이를 자극하는 심장의 고동소리 그리고 ‘절대 NO 라는 말을 들어본 적 없는 사람’이라는 멘트는 관람자로 하여금 이 노인의 위태로운 심리 상태로의 동화를 부추긴다. 그리고 또 한 명의 노인이 있다. 이 올드 우먼은 지하철에 몸을 맡기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일정 간격을 두고 움찍거리는 노인은 자신의 틱적인 행동을 인식하지 못한 채 흘러가는 시간에 넋을 놓고 있다. 그리고 ‘록스타가 되고 싶어요’라는 어린 세대의 선망이 담긴 노래가 나오며 이 노인들의 노쇠한 인생과 대조를 이룬다. 그리고 화면은 이내 인파 속으로 향하면서 두 번째 이야기를 시작한다. ‘기다리는 것이 걷는 것보다 낫다’는 음성과 함께 또 다시 들리는 심장의 고동 소리는 앞선 화면들과는 다른 국면으로의 전개를 시사한다. 그리고 트램블런을 타고 있는 남자와 인파를 내려다보는 화면으로 넘어가면서 새로운 세대의 도약과 하지만 인파들의 기계적인 움직임에서 연상되는 한계(정지)성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배정완 작가가 마지막으로 제시하는 영상은 수영복을 입고 춤을 추는 여인이다. 배정완 작가의 작업은 한 편의 영화와 같다. 그리고 이 영화적 영상은 팽팽한 줄 위에 아슬아슬하게 삶을 유지하는 우리네의 심상을 반영하는 듯하다. 설치미술가이자 건축가이기도 한 배정완 작가는 영상 작업을 할 때면 ‘비디오 페인팅’을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이들 영상이 공간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세심한 설치를 기획한다. 빛을 산란시키기 위한 스트링과 비닐 그리고 전시 공간에 수면水面을 들여와 영상과 음향 그리고 우리의 심상이 극대화되도록 세심하게 공간을 연출하는 것은 그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한 차원 넘는 공간 운영의 미美학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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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비디오 아티스트 '아이작 줄리안의 전시가 4월 29일부터 7월 7일까지 아틀리에 에르메스에서 전시. '마주'라는 바다의 여신이 날아다니면서 우리사회의 이면을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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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진의 향연 - 지구상상展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02-710-0747)
                        2011-06-02 ~ 2011-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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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작품 : 사진, 영상, 영화 등 170여 점
● 참여작가 : 닉 브랜트(Nick Brandt), 조이스 테네슨(Joyce Tenneson), 루드 반 엠펠(Ruud van Empel),
데이비드 마이셀(David Maisel), 아르노 라파엘 밍킨넨(Arno Rafael Minkkinen), 메리 매팅리(Mary
Mattingly), 지아코모 코스타(Giacomo Costa), 데이비드 트라우트리마스(David Trautrimas), 피포 누옌
-두이(Pipo Nguyen-duy), 존 고토(John Goto) 등 총 10명 외
로이터(REUTERS) 통신의 사진 30점.
현대사진의 향연 - 지구상상展
사귄 지 오래된 친구인 ‘지구地球’와의 관계를 ‘지구地久’ 하기 위한 사진전 ‘지구地球상상’
‘사진의 중심’ 한겨레가 기획한 차원이 다른 사진전, <현대사진의 향연 - 지구사상>展(이하 ‘지구상상’展)이 개
최된다. 지구상상展은 동시대 대중에게 가장 친숙한 매체인 ‘사진’을 통해 지구촌의 자연과 환경을 담아냈다.
그동안 환경을 주제로 한 사진전시가 이데올로기의 도구나 비판적 리얼리즘에 치우쳤다면, 이번 전시는 현대
사진의 최고의 자리에 위치한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지구 환경과 자연의 소중함을 묵시적으로 보여줄 예정이다.
현대사진은 다양한 표현방법과 함께 작가의 개념을 중요시해왔다. 급속도로 변화하는 지구촌의 환경과 더불어
사진은 필름(아날로그)에서 비디오, 컴퓨터(디지털) 등 뉴미디어로 확대되며 많은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사진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사진을 향한 열망이 어느 때보다 높은 시대가 되었다. 거기에 발맞춰 대중의 사진에 대한 미
의식도 점차 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제는 작가의 시각을 뚜렷하게 파악할 수 있는 사진, 즉 메시지가 강
한 사진작품에 대한 대중의 선호가 분명해지고 있다.
2008년부터 사진전시를 집중적으로 개최하고 있는 한겨레는 많은 대중들의 요구에 부응하여 지구상상전의 작품
들을 특별히 신선한 콘셉트와 화려한 사진기술,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는 사진(작가)으로 선별
하였다. 특히 이 작가들은 공통적으로 지구의 현재와 미래의 풍경을 주제로 풀어냈다. 거기에 이상향으로서의 자
연을 향한 엘레지도 읊조린다. 누구나 생각하지만 실천하기엔 불편한, 누구나 공감하지만 당장 내가 해결해야
할 일이 아닌 ‘환경’이슈가 가진 모순. 지구촌이 환경문제로 들끓어 오른 2011년, 현대사진 작가들이 사랑한 자연
과 인간, 그리고 지구의 모습은 어떻게 그려졌을까?
전쟁으로부터 야기된 후세대의 고통, 오염으로 죽어가는 호수와 홍수로 범람하는 강, 인간 없는 세상을 그린
작가의 작업부터 그래도 꽃처럼 아름다운 사람과 우리가 보호해야 할 동물의 모습까지, 이번 전시는 저마다
개성 넘치는 개념과 이야기가 탑재된 사진들로 관객들에게 놀라운 재미를 선사할 것이다.




박형근 개인전 `금단의 숲 - Forbidden Forest`    
        

                        인사아트센터 3전시실(02-554-7332)
                        2011-06-08 ~ 2011-06-13
                        2011-06-08 오후 6시
확대(키보드"+"버튼)----축소(키보드"-"버튼)
2011년 6월 8일부터 인사아트센터 전시장에서는 2010년 제9회 다음작가상 수상자로 선정된 박형근 작가가
일년 동안의 작업성과를 선보인다.
9회 수상자인 박형근의 시선은 숲이라는 태고의 공간에 머무르고 있다. 그가 2003년부터 현재까지 Untitled,
Tenseless 그리고 A Voyage라는 타이틀로 꾸준히 보여준 그곳의 이야기들은 고도화된 도시 사회에서 멀어
져 있는 자연에 대한 색다른 감성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이번 다음작가 전시을 통해 첫 선을 보이는 ‘금단의
숲 Forbidden Forest’에서 작가는 전설과 신화의 이미지를 부활시키고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숲은 오랜 경외의 대상이었다. 생명의 기운이 깃든 공간이면서도 동시에 불안과 공포를 품
고 있기에 숲에는 항상 탄생과 죽음이라는 인류의 영원한 숙제가 함께 해왔다. 때문에 숲은 많은 문화권의 전설
속에서 신과 영웅들이 존재하는 믿음과 주술의 신령한 공간이거나 혹은 알 수 없는 적들의 영역으로 등장한다.
이제는 다른 자연 공간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보호하고 유지해야하는 대상이 되었지만, 오랜 인류 역사를 통해
남아있는 뿌리 깊은 향수는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 남아있다.
제주도가 고향인 작가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땅에서 오래 전 사람들이 마주했을 경외와 공포, 신비로움을
담아낸 이 작품들은 정교한 화면 구성과 색상이라는 사진적 요소를 통해 깊이 있는 양면적 혼란을 드러낸다. 과
하리만큼 안정감 있는 프레임은 중첩된 시간의 무게를, 정교하게 조절되어 겹겹이 쌓인 청록은 생명과 죽음, 신
비감과 불안감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리고 작가의 섬세한 직관을 통해 발현된 틈새의 긴장감은 박형근의 숲을 완
성시키고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숲이라는 공간에서 오랜 기간 이어져온 시작도 끝도 없는 혼돈의 방황과 집착
이 빚어낸 이 태고로의 회귀는 자연과 인간이라는 오랜 예술의 태제를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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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9 01:03:04 / Good : 386 +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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