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당하거나 인구에 회자되는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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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bel

  • 작성시각: 2011.04.30 19:4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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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제목: 5월은 푸를런지


미디어극장Welcome to Media space 갤러리 정미소 기획展 미디어 극장 1부 / 2011_0414 ▶ 2011_0512 첫 번째 전시 2011_0414 ▶ 2011_0427 참여작가 /손유미_김창겸_김해민_올리버그림 오프닝공연_Harp meets Live Electronic 이기화(하피스트), 윤제호(라이브 일렉트로닉 퍼포먼스) 두번째 전시 2011_0429 ▶ 2011_0512 참여작가 / 김병호_한승구 오프닝 퍼포먼스_White Interfaces 백색접점, Artist: 김병호, Sound Artist: 조은희 ][ 미디어 극장 2부 / 2011_0514 ▶ 2011_0615 참여작가 / 김창겸_김해민_함양아_심철웅_김세진_유비호 한계륜_신기운_이진준_안세권_오용석_박준범_이배경_박제성 정제된 풍경 권인경_이미경展   2011_0413 ▶ 2011_0513 리나갤러리 LINA GALLERY 서울 강남구 논현동 229-26




Convergence·융합·Fusion

2011_0420 ▶ 2011_0518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1_0420_수요일_05:00pm 참여작가 권여현_김남표_박성환_박지훈_신기운_신미경_오용석_정연두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OCI 미술관 OCI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수송동 46-15번지 Tel. +82.2.734.0440 www.songamfoundation.org


  '융합', '통섭', '퓨전'을 다시 생각한다.현대미술, 그 이전 그리고 그 이후 본 전시의 제목으로서 『Convergence · 융합 · Fusion』이라 이름 붙인 기획의도를 먼저 명확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 1980년대 후반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용어가 유행했듯이, 요즈음 '융합', '통섭', '퓨전'과 같은 용어들이 사회의 모든 분야에 봄바람의 산불처럼 번지고 있다. 생물학을 전공한 것으로 아는 어느 유명교수는 아예 '통섭원(Hall of Consilience)'을 발족했는가 하면, 어느 대학에서는 '통섭포럼'을 개최하고, 필자가 몸담고 있는 대학에서는 '융합과학기술대학원'이 생기고, 교수들 간의 학제적 융합연구를 촉진하기 위하여 30억 규모의 '브레인 퓨전(brain fusion)' 프로그램을 가동시켰다. 사회적으로 '융합 커뮤니티'가 생기고, 경제적으로 IT산업을 위시한 첨단기술의 융합현상은 이제 새로울 것도 없다. ● 미술이 이러한 사회적 현상을 비껴갈 리 없다. 이미 1980년대 후반부터 미술내부에서부터의 융합의 징조는 있어 와서 새삼스럽게 '장르의 해체'니 '경계 허물기'니 하는 이야기들을 할 것도 없다. 특히, 사진, 비디오, 컴퓨터 등 새로운―적어도 우리의 현실로서는―매체의 활성화와 함께 현대미술 역시 급격한 속도로 변화하여 기존의 형식주의적인 분화로는 도저히 이야기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 여기 모인 여덟 작가―권여현, 김남표, 박성환, 박지훈, 신기운, 신미경, 오용석, 정연두―는 모두 이러한 경향성의 세례를 받은 작가들로서, '매체의 확장'이니, '경계 허물기'니, '혼성'이니, '퓨전'이니 하는 개념과 용어들에 익히 젖어온, 그리고 이러한 경향성으로 이미 미술계에서 나름대로의 창의적 역량을 쌓아온 30~40대의 작가들이다. 형식적으로 이들은 기존의 사진, 회화, 조각, 공예, 설치, 영상 등 모든 매체와 장르의 경계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그들의 태도와 아이디어에 따라 평면과 입체, 시간과 공간, 현실과 이상, 상징과 개념 등을 넘나들며, 즉 사유와 형식의 고유한 틀을 벗어난 상태에서의 '창의성'이 그들의 작품에 기본으로 깔려있다. ● 이들의 창의적 역량과 그 결과를 새삼스레 '융합'이니 '퓨전'이니 하며 함께 묶어 놓는 것 자체가 흠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적어도 우리 사회의 통념상 '융합', '통섭', '퓨전' 등의 개념과 성격이 이미 하나의 굳어버린 틀로서 고착화되어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우리나라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이 그랬듯이, '융합'과 '통섭'이 유행처럼 담론화 되는 것을 매우 경계한다. 바꾸어 말하면, 지식의 서사성과 유연성이 담보되었을 때만 그 지식이 제 노릇을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 필자는 이들 여덟 작가의 작품에서 이러한 지식의 서사성과 유연성을 만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융합'과 '퓨전'이라 굳이 이름을 붙이지 않더라도 그것은 결국 '창의성(creativity)'의 극대화를 꾀하고자 하는, 또는 창의적인(creative) 현상과 결과를 다른 측면으로 조명하고자 하는 하나의 전략이다. 이 전략의 서사성과 유연성이 살아 숨을 쉴 때에, 어쩌면 지금(now), 여기(here), 우리(we)의 난제(難題)들을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전시는 독자들에게 시지각(視知覺)을 통해 이러한 문제의식을 환기시켜주는, 질문 같은 화두(話頭)의 전시다.  
권여현_디오니소스의 숲_캔버스에 유채_227×181cm_2010
  II. '융합'과 '통섭'의 관점에서 지난 20세기의 서구미술을 돌이켜보면 '장르의 해체'나 '경계 허물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 예로, 피카소의 1912년 작품 「기타(Guitar)」는 회화와 조각을 넘나든 그야말로 '융합'의 소산으로 그의 꼴라쥬(collage)와 함께 현대미술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경전 같은 것이었다. 아니,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더욱 거슬러 올라가서 서구 르네상스야말로 진정 '통섭'의 시대였다. 언제 미술이 자연과 과학, 기술, 종교, 인문, 정치, 사회 등과 동떨어져 존재했던 적이 있었는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미술은 태생적으로 '통섭적'이었고, '융합' 지향적이었다. 수학과 기하학, 철학과 수사학, 음악과 미술 등의 통섭으로 이상(理想)을 이성(理性)으로 추구했던 고대 그리스인들의 지혜는 '융합적'이지 않았던가? 부루넬레스키(Burnelleschi)와 알베르티(Alberti) 그리고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야말로 회화, 조각, 건축을 넘나든 '통섭인'들이었다. 그들이 고안한 '선원근법(linear perspective)'이야말로 모든 분야의 융합과 통섭을 가능하게 한 '재현(representation)'의 핵심으로 미술과 자연과학, 그리고 인문학의 융합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발견이었다. 동양의 회화도 마찬가지다. 과학이라 말을 하지 않았을 뿐, 관념과 형이상학으로서의 자연과학과 '서화일체(書畵一體)'의 정신은 미술과 문학의 융합으로, 이 셋의 관계 또한 대단히 '통섭적'이다. 그러니, 이러한 지식의 서사성을 먼저 인식하고, 그에 따른 지식의 축적을 염두에 두고,시대의 변화와 함께 어떻게 '융합'과 '통섭'을 읽을 것인지 생각할 일이다. 우리는 지식과 학문을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또는 경제적으로 풀어가려는 경향이 있다. 무조건 합친다고, 기관을 만든다고 '융합'과 '통섭'의 창의성이 저절로 나오겠는가? 물론, 서구 모더니즘을 답습하면서 우리의 지식과 학문체계도 지나치게 세분화되어 각각의 전공들이, 영역들이 서로 간의 소통을 차단하고 있다는 우리의 현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전공은 뒤로하고 남의 전공이나 기웃거리면 이 또한 큰 일 아닌가? 자신의 전공으로 일생을 파도 지식으로서의 새로운 축적이 될까 말까 하는 판국에 '융합'과 '퓨전', '통섭'이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을지 걱정스럽다. 세상에는 보편적인 지식을 두루 섭렵하여 그 해박함의 경지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 우물을 깊게 파 그 심연의 새로움을 발견해주는 사람도 필요하다. 조금은 다른 비유일 수도 있겠는데, '융합', '퓨전', '통섭'의 사회현상을 우리나리의 '길'의 문화와 비교해보자. 우리나라는 과히 '길'의 천국이다. 고속도로, 국도, 지방도로, 순환도로, 민자 유치 도로 등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도로가 뚫리고 개통된다. 거기에 최근 제주도의 '올레길'과 지리산의 '둘레길'을 시작으로 하여 전국의 지자체들이 다투어 '무슨 무슨 길'을 만드느라 난리법석이다. 녹색성장을 외치면서 녹색은 점차 사라져가는 이윹배반이 도처에 즐비하다. 우리의 '융합'도 이런 식이다. 길의 본질이 '녹색'과 관련하는 것과 같이 융합의 본질은 '창의성'과 관련한다. 그러나 이 둘의 본질을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풀어가다 보니 이제, 본질은 퇴색하고 유행처럼 껍데기만 부유하는 그런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김남표_instant landscape-circle 4_캔버스에 유채_지름 181cm_2011
  III. '융합'과 관련한 위와 같은 사회현상을 미술이 어쩔 수는 없다. 다만, 융합과 상관없이 '창의성'에 관한 본질적인 문제가 상대적으로 미술 분야에서는 그나마 정치, 경제적으로 덜 휘둘렸다고나 할까? 또한, '창의성'의 화두는 언제, 어디에서나 미술의 역사만큼 작품과 붙어 다녔으므로 설령, 매체와 형식, 개념과 태도가 변화하더라도 그렇게 휘둘릴 성질의 것은 아니다. 여기 참여한 여덟 작가는 각자의 '창의성'에 관한 스스로의 화두를 내려놓지 않으면서, 나름대로의 매체와 형식, 그리고 개념과 태도를 유지하며, 국내외의 미술계와 조응하고 있다. 권여현과 김남표는 형상성의 회화 작품으로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실력파다. 그 둘은 무엇보다도 데생의 기본이 탄탄한 화가들이다. 그 탄탄함을 깔고 있기에 이미 반은 먹고 들어간다. 권여현이 자신의 의도를 표출하기 위해 드러내놓고 연출성을 강조하는 반면에, 김남표는 보다 감각적이다. "자유로운 이성"을 표방하는 권여현의 작품이 연출의 효과를 극대화 하는 쪽으로 과감하다면, 김남표의 작품은 매우 회화적(painterly)이며 감성적이다. 여러 가지의 측면으로 동서양의 문명과 정서를 넘나드는 두 작가의 주제의식과 시대정신이 '융합'과 어울린다.  
박성환_펼쳐진_혼합재료_가변설치_2010
박지훈_관 같은 크기 안에 정연하게 배열된 여섯 개의 공들_혼합재료_180×50×50cm_2011
  박성환과 박지훈은 보다 개념적이다. 두 작가 모두 설치작품을 선호하여 전자가 회화적 설치 쪽에 가깝다면, 후자는 조각적이다. 박성환은 지도와 경로 등을 통해 지역과 경계의 이동에 따른 현대문명의 노마디즘(nomadism)을 부각시킨다. 금속성의 차가움이 개념과 어울리는 박지훈의 작품은 다분히 물리학적이다. 대학 산악부 출신답게 캐러비너와 프랜드 등의 암벽장비를 사용한 것이 돋보인다. 긴장과 갈등이 충만한 현대인의 심리적 균형상태를 설치로 치환한 보편성과, 상태는 다르지만 역시 긴장과 갈등의 '암벽타기'를 연상할 수 있는 보다 개인적인 특수성의 두 경험을 융합한 것 같다.  
신미경_Weathering Project_비누, 향수_2009~10
정연두_Adolescence-8_판화지에 잉크젯_152×200cm_2010
  신미경과 정연두는 국제적으로도 어느 정도의 발판을 굳힌 괄목의 작가들이다. 조소과 출신답게 신미경은 동서양의 고대조각이나 도자기를 비누로 매우 정교하게 재현해낸다. '융합'과 관련한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는데, 가령 밖에서 비바람을 맞힌 「쿠로스(Kuros)」와 너무 얇아 깨질 것만 같은 투명한 도자기 등에서 '유물'에 관한, 또는 그것을 바라보는 여러 관념들을 느낌으로 만날 수 있다. 정연두는 솔직히 어디로 튈지 몰라 내심 어떤 작품을 내놓을지 궁금했다. 다행히 사진작품이라 전시는 간단했지만 그 사진의 '융합적'인 연출의 묘미와 사춘기(adolescence)를 떠올리는 기억의 편린들을 이미 독자들은 간파했을 것이다.  
오용석_미래의 기억_단채널 비디오_00:02:08_2009
신기운_Reality Test Take 3_HD 3D Video, 4 screen as a multi-set_2011
  오용석과 신기운은 비디오 작업으로 시공간의 융합을 꾀한다. 과거에서 미래를 보고, 미래에서 과거를 보는 오용석의 싱글채널 비디오 작품에는 짙은 페이소스(pathos)의 허무주의가 깔려있다. 신기운은 유리잔과 장난감 자동차의 '충돌'을 통해 복합적인 상징구조를 구성했다. 결국, 작가의 궁극적인 질문은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현대인이 겪는 '시뮬라크르(simulacre)'의 문제를 상기시켜 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우리에게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실재하는가" 하는 질문을 방법은 다르나 두 작가 모두 같은 화두를 가지고 있다. ● 각각의 작가들이 시각으로, 조형으로 던지는 이러한 질문들이 단순한 미술만의 문제가 아님을 독자들은 알아차렸을 것이다. 이미 '융합'과 '퓨전', '통섭'의 개연성은 현재에도, 그 이전에도 열려있었고, 또한 그 이후에도 열려 있을 것이니, 그렇게 요란 떨지 말고 새마을 운동하듯이 '융합'하지 말자. ■ 정영목




빛을 보다 (Seeing the Light)



김영빈展 / KIMYOUNGBIN / 金永彬 / installation   2011_0427 ▶ 2011_0502



김영빈_이름없는(nameless)_노란, 파란, 빨간 빛, 그림자, 쇠막대_가변크기_2006

초대일시 / 2011_0427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일요일_12:00pm~06:30pm
갤러리 그림손 GALLERY GRIMSON 서울 종로구 경운동 64-17번지 Tel. +82.2.733.1045~6 www.grimson.co.kr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소장품에는 Caspar David Friedrich가 그린 Two Men Contemplating The Moon( 달을 바라보는 두 남자)라는 훌륭하고 아름다운 그림이 있다. 사람들은 이 그림에서 저무는 달을 바라보는 듯한 두 남자의 뒷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두 남자는 정체는 작가 본인과 그의 친구인 한 젊은 예술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림 속 풍경은 장대한 빛이 번지고 있으며, 신성한 달은 두 남자를 비추고 있다. (동시에, 가장 가까이 있는 별의 빛을 반사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 장대한 하늘과 그들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하는 그림 속 두 남자와 동화되고, 그들을 통해 그림을 이해하며, 그림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 필자는 이 그림과의 특별한 인연을 느낀다. 난 메트로폴리탄 미술 박물관에서 이 그림에 대한 강연을 하는 영광을 가진 적이 있다. 또한, 빛을 반사하도록 설계된 옥외용 조각 작업 제작을 한적도 있다. 그리고, Pratt (프렛) 에서 나의 제자였던, 이제는 나의 젊은 친구가 된 김영빈군과 함께 텅 빈 공간을 함께 말없이 바라본적이 있다. ● 한국에서 주로 구상작업을 해왔던 영빈군은, pratt 에서 빛을 이용한 작업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그는 손쉽게 구할 수 있고 비싸지 않은 재료들을 이용해, 간단하고 소박한 방법으로 시각을 현혹시키고 정신적 즐거움을 주는 조명효과와 착시현상을 마술처럼 만들어 냈다. 재료들을 대하는 그의 상상력과 지혜로움에는 끝이 없으나, 그의 작업의 요소들은 무형적이며 일시적이다. 이런 점에서 그의 작업은 "존재"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의식 속 깊은 곳에 말을 건넨다.
김영빈_선(a line)_빛, 그림자, 쇠막대_가변크기_2007
김영빈_직사각형(a rectangle)_빛, 그림자, 쇠막대_가변크기_2008

그의 작업은 금새 개선되어져 갔고, 그만의 원숙한 시각을 갖게 됐다. 난 그의 새로운 작업을 보기 위한 그의 작업실 방문을 늘 고대하곤 했다. 그리고 곧 그의 작업의 진정한 빛은 그로부터 나오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그 빛을 보았다. ● 우리는 많은 것에 대해 대화를 나누곤 했다. 작업의 과정, 사용재료, 재료의 출처, 작업의 원리 등과 같은 그의 작업에 관한 토론은 물론이며, 미술 세계, 미술 역사, 과학 그리고 철학에 관한 이야기도 나눴다. 그러나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서로가 마음을 열고 대화를 했으며, 이를 통해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같은 인생의 경로를 가고 있다. 그리고 그 예술이라는 것이 무형의 무엇인가를 평생 탐구하는 것이라는 것을 그는 이해하고 있다. ● Friedrich의 그림 속 젊은이처럼, 영빈군은 빛의 경외심안에 서 있다. 그는 빛을 반영하고 빛을 생각한다. 그는 빛을 다루고, 빛과 시간을 보내며, 빛에 대한 인식을 고조시키는 작업을 한다. 세상이 그 숭고함과 만나길 바라며, 영빈군은 심오한 무형의 세계를 창조한다. ■ 하워드 로젠탈
김영빈_하나(one)_빛, 폼보드_가변크기_2008

There





Invisible Anxiety - paradoxical expectation

김형진展 / KIMHYUNGJIN / 金亨振 / painting   2011_0427 ▶ 2011_0502



김형진_A man playing guitar_한지, 목탄, 칼라, 캔버스에 커피_73×73cm_2010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김형진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0427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제2전시관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파편화된 현대인의 실존 ● 김형진의 회화는 선과 면이 화면을 분할하며 인물의 형상을 생성해내는 특징을 가진다. 다양한 형상의 도형들이 서로 군집된 인물은, 주로 일상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개개인의 모습을 담고 있다. 지하철에 앉아 신문을 보거나, 카페에서 홀로 커피를 마시고, 무심코 화장을 고치는 모습 등 인물들을 둘러보다보면 공통적인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 홀로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으나 인물이 주는 정감은 고독하고 적막하다. 더욱이 이들의 시선은 화면 너머 혹은 화면 속 어딘가로 향하며, 개인에게 내제된 고립된 심상을 더한다. ● 누구도 시선을 마주칠 수 없이 프레임 속 나만의 공간에 놓인 인물의 모습은 군중 속에서 개별화된 현대인의 인상과도 닮아있다. 점점 더 스펙터클해지는 현대 사회 속에서 개인은 거대화된 공간 속에 있으면서도 각기 단절과 소외를 경험하며, 이를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군중 속 타자들 사이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개인의 소외감은 복잡한 현대 사회 속에 내성화된 보편적 소외의 순간들이다.
김형진_Untitled_한지, 목탄, 칼라, 나무블럭에 커피_25×35cm_2011

작가의 작업에서 개인의 존재, 세계 내 존재로서의 실존감은 스토리에 초점을 두기 보다는 회화의 조형적 측면을 통해 전개되어 나간다. 무수한 조각들이 인물의 형상을 이루며 화면을 분할해나가는 조형적 특징은 그의 작업에서 특히나 두드러지는 면이다. 기하학적인 구성으로 인체를 분절하여 다루는 방식은 미술사적 맥락에서 익숙한 어떠한 스타일 혹은 경향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소재로 취하는 일상의 사람들처럼 현실의 삶, 즉 실존적 상황을 바탕으로 해 본다면 형식적인 특징이 은유하며 심화시키고 있는 작가만의 방향을 짚어볼 수 있다. ● 형식이 은유하는 바를 살펴보기 전에, 이에 기반 하는 요소로서 앞서 살펴본 작업의 소재와 더불어 재료를 살펴보겠다. 브라운 톤의 색감은 조각난 도형 각각을 개별적으로 드러내면서 통일감 있게 화면을 아우른다. 종이의 질감을 머금듯 스며든 본 재료는, 독특하게도 인스턴트커피이다. 목탄과 커피의 농담을 조절하여 얻어진 색감은 은은하고 섬세한 인상부터 거칠고 깊은 인상까지 다양하게 구사된다. 색감이 주는 감성적 묘미와 더불어 흥미로운 점은, 인스턴트커피가 내포하는 현대적 정감이다. ● 바쁜 일상의 현대인에게 인스턴트커피는 나라는 존재를 각성시킴과 동시에 내면의 여유를 선사하는 모순적 속성을 지닌다. 개인의 불안하고도 강박적 심리를 자극하면서도 다른 한편 이를 어루만지는 것이다. 그의 화면에서 인스턴트커피가 주는 색감은 인물이 내포한 심리에 접근하게 하며, 화면을 향한 시선을 내면의 풍경으로 이끈다.
김형진_A man in an office_한지, 목탄, 칼라, 캔버스에 커피_170×170cm_2010

현대인이 겪는 심리적 정황은 작가가 취하는 소재, 재료와 더불어 조형적 어법을 통하여 보다 극명하게 드러난다. 기하학적 도형을 근간으로 하여 인물의 형상을 분할하는 방식은 첫 개인전『Illogical Tangram』(2009)에서 본격화된 것으로, 중국에서 전통적으로 해오던 '칠교놀이(tangram)'의 구조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7개의 조각이 한 세트인 본 놀이는, 본 조각만을 사용해서 현재 1600여개의 도안을 구성할 수 있는 다양성을 지니며, 그 이상의 새로운 도안도 가능하다. ● 작가는 칠교놀이가 가지는 형식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한정된 규약을 가로지르며 다양한 형태로 변주가 가능한 속성에 주목하여, 현대인에게 주어진 여러 경계들을 형식화하고 이를 재구성할 계기를 자신의 화폭에 마련하게 된다. 이러한 형식적 측면은 한 개인이자 사회 구성원으로서 현 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의 자기 각성에 대한 반영물이라 할 수 있다. 개인에게 갑옷처럼 입혀진 고정관념과 규제들은 그의 화폭에서 여러 조각들로 분화되어 형상을 규제하는 동시에 분열시키는 요소가 된 것이다. ● 사각형의 프레임 안에 선과 면으로 구분된 수많은 프레임과 모서리는 이 세계의 편견이나 고정관념들, 그리고 개인의 행동을 규제하는 타자화된 시선 및 규제범위와 관계된다. 이러한 구속력으로부터 고정된 형태를 해체하여 무수한 도형들이 조합되듯 탄생한 인물은 현대인의 불안정한 심리를 반영하며, 내면에 감추어진 실존적 고뇌를 드러낸다.
김형진_A hungry man_한지, 목탄, 칼라, 캔버스에 커피_73×73cm_2011

기존 맥락의 연장선에 있는 두 번째 개인전 'Invisible Anxiety'는 첫 개인전에서 시도된 조형적 어법으로부터 실존의 본질에 중점을 두어 이를 심화시키고 있다. 작가는 본 전시의 주제목인 '보이지 않는 불안'과 더불어 '역설적 기대감'을 부재로 달고 있는데, 이는 한계 상황 속의 인간이라는 실존적 상황을 보다 심층화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진다. ● 작가는 개인의 실존적 불안에도 불구하고 소통을 갈구하는 이중적 상태를 '역설적 기대감'이라 부가적으로 설명하며, 이러한 인간의 모순된 상황을 일종의 '공포'라 칭하고 있다. 삶에 대한 막연한 불안함에 복종하면서도 기대를 품고 살아가는 인간의 내면에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공포심이 존재한다. ● 실존에 대한 모순적 상황은 근작의 형식적 변화에서도 감지된다. 선과 선이 면을 생성하며 인물을 분할하던 전작에 비해, 근작은 명확한 형태로 구분된 도형들이 인물을 수많은 조각들로 분할시키고 있다. 파편들의 거대한 덩어리로 재구축된 인물은 마치 퍼즐처럼 흩어져나가 언제라도 해체가 가능한 모습이다. 분열과 생성 사이에서 형성된 인물의 심상은 불안함과 기대감을 동시에 함의하며 긴장감을 더하고 있다.
김형진_A woman reading_한지, 목탄, 칼라, 캔버스에 커피_170×170cm_2010

본 전시에서는 이러한 실존적 상황에 대한 배경으로 작용하는 타자 및 사회적 관계에 대한 내러티브도 시도되고 있다. 전시 작품 중 유일하게 두 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Giant Deal'은 이러한 변화점을 시사해 준다. 두 명의 비즈니스맨이 대척하고 있는 구도의 본 작품은, 서로 거래를 위해 악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심리전을 긴장감 있게 보여주고 있다. 두 인물이 악수하는 결정적 순간을 파편화하여 서로를 관계시키는 것으로, 타자와의 관계망 속에서 생성되는 공존과 대립 그 모순된 속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 두 인물로부터 구축된 파편들은 관계 사이에 작용하는 구속력과 같이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시각화하고 있다. 화면에 건축적 모서리를 둠으로써 드러나는 심리적 공간은, 본 전시의 연극적인 연출 방식을 통해 극화(Dramatization)된다.
김형진_A man reading a newspaper_한지, 목탄, 칼라, 캔버스에 커피_73×73cm_2011

캔버스의 프레임에 맞춰 정확한 규격으로 작품을 비추고 있는 조명은, 화면 속 인물을 실제의 공간으로부터 고립시키며 개인이 처한 실존적 괴리감을 극적으로 연출해낸다. 규약된 인공의 빛을 통해 과도하게 조명된 인물은 어둠 속 침묵을 깨고 갈구하듯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모습이다. 어둠이 감싼 철저한 고독과 불안하게 요동치는 파편들 그리고 발광하며 드러난 인물은 실존에 대한 극단의 공포를 상기시킨다. 이를 통해 혹자는 부조리극과 같이 인간성의 허무에서 오는 공포를 직면하고, 이로부터 화면 속 조각난 인물들처럼 반향 할 것이다. ■ 심소미
김형진_A man playing guitar_한지, 목탄, 칼라, 캔버스에 커피_73×73cm_2010

F









바람결에







조인호展 / CHOINHO / 趙寅浩 / painting   2011_0405 ▶ 2011_0508 / 월,공휴일 휴관






조인호_바람결에_복합문화공간 크링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미지 속닥속닥 Vol.20110114d | 조인호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화~토_10:00am~07:00pm / 일_10:00am~06:00pm / 월,공휴일 휴관 복합문화공간 크링 CREATIVE CULTURE SPACE KRING 서울 강남구 대치동 968-3번지 Tel. +82.2.557.8898 www.kring.co.kr





전통의 현대적 혹은 동시대적 해석과 변용은 많은 예술가들에게 과제이다. 특히 동양화(혹은 한국화)를 바탕으로 하는 젊은 작가들에게 동양화의 현대화는 늘 과제인 동시에 또한 기회이기도 하다. 그들은 이전 세대와는 차별화되는 동양화의 기법과 소재, 혹은 설치 방식에 이르기까지 현대적 해석을 시도한다. 특히 최근 주목받고 있는 젊은 동양화 작가들의 경우 대부분 동양화의 매체적인 특징은 기본으로 하나, 소재는 전통의 그것과는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 도심의 풍경이나 팝적인 캐릭터의 차용 등을 통해서 그들이 익숙하게 흡수할 수 있는 이미지들을 그 대상으로 삼고 있다.
조인호_천황사입구에서 바라본 월출산_견에 수묵_2010
조인호_見性-구정봉_견에 수묵_2010
조인호_월출산 속으로_견에 수묵_2010

동양화의 가장 기본이 되는 고전적인 소재와 수묵화의 기법을 유지하되, 화면을 구성하는 시점과 설치 방식 등에 있어서 변용을 시도하는 조인호는 이러한 이유에서 주목받는 작가이다. 그는 전통 산수의 정신과 기법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시점과 화면의 구성, 설치 방식 등에서 전통 회화의 양식과는 다른 현대 미술의 장치를 꾸준히 실험한다.
조인호_見性-구정봉_견에 수묵_2010_부분
조인호_見性-구정봉_견에 수묵_2010_부분

작가는 도심의 전시 공간에다 그가 본 산수 혹은 다양한 풍경의 흐름을 그대로 옮겨온다. 한 폭의 화면에다 (때로는 병풍처럼 열폭 남짓한 화폭으로 나뉘긴 하지만) 작가는 자신이 본 풍경 덩어리를 그대로 담는다. 그것이 때로는 수락산이나 관악산과 같은 서울과 인근의 산의 풍경일 수도 있고, 때로는 그의 아이들을 만나러 가기 위한 제주행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우리 국토 전체의 풍경일 수도 있다. 따라서 그의 그림은 때로는 그의 산행기이며 때로는 반복되는 일상의 한 순간이다. 작가는 그가 경험한 광대한 풍경의 흐름과 감흥을 그림을 보는 관객이 고스란히 가져갈 수 있기를 바란다. 화면의 전개부터 전시장 설치 방식과 동선까지 고려함으로써 작가는 자신이 경험한 풍경을 관객이 효과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틀을 제시한다.
조인호_見性-나를 만나다_돌_2010

이러한 관객의 시선에 대한 배려는 조인호 그림이 전통적인 산수화의 틀을 자연스럽게 벗어나면서도 독특한 화면 구성을 가지게 한다. 그의 풍경은 우선 서양화의 원근법과는 당연히 거리가 있으며, 전통적인 산수화의 시점이나 화론 혹은 공간 구성과도 차이가 있다. 작가는 그가 본 풍경 중 인상적인 특정한 풍경이 아닌 시간이 소요되면서 경험하게 되는 풍경 전체를 담으려한다. 조인호의 그림에서 풍경의 덩어리들은 수평의 구도로 이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소용돌이 형태의 파노라마처럼 이어진다. 그래서 그의 그림 한 폭이 사선으로 나뉘면서 한 쪽에서는 산을 올라가며 바라보게 되는 풍경들이 다른 한쪽에서는 산을 내려오면서 바라본 풍경들이 함께 구성되기도 한다. 마치 그의 아티스트 스테이트먼트 "길은 항상 그곳에 그렇게 있으되 올라가는 사람에겐 오르는 길이 되고 내려가는 사람에겐 내려가는 길이 된다." 와 같이 하나의 풍경이 그림을 보는 주체의 의지와 시점에 따른 차이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며, 작가는 이러한 아이러니를 유머러스하게 화폭에 담고 있다. 따라서 그의 풍경은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경직되고 근엄한 전통적인 산수화의 이미지가 아닌 마치 춤을 추는 듯한 풍경이 될 수밖에 없다. ● 조인호의 이번 크링 전시는 공간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면서도 관객의 시선을 철저하게 계산하는 그의 설치 형식으로 인해, 정적인 수묵산수의 한계를 벗어나 관객에게는 특별한 감성을 전달한다. 특히 한 폭의 길이가 3m가 넘는 12폭의 산수를 전시장 전면에 마치 병풍처럼 설치한 대형 작업은 그 스케일에서 실제 풍경과 같은 광대함을 느끼게 한다. 또한 「구정봉」 작업의 경우는 11폭의 그림이 라운드의 형태로 설치되어 관객은 마치 실제 풍경 속에서 이동하는 듯 혹은 작가와 함께 산을 오르듯 그림을 감상하게 된다. ■ 김윤옥




김혜연_임만혁展 / painting   2011_0428 ▶ 2011_0510 / 월요일 휴관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김혜연 블로그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_12:00pm~05:00pm / 월요일 휴관 심여화랑 Simyo Gallery 서울 종로구 사간동 37-1번지 Tel. +82.2.739.7517 www.simyogallery.com





임만혁, 김혜연은 인물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공통된 시각을 견지하는 작가들이다. 물론 그 전에 이 두 사람은 부부이다. 이들은 한집에서 먹고 자며 같은 공간에서 작업을 한다. 휴일이면 같이 시골장을 걷고 같은 영화를 본다. 그리고 일상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거의 24시간 떨어져 본적이 없다. 이러길 벌써 3년. 이런 두 사람의 공통된 관심사는 인간이며 가족이고 일상이다. 그러나 그 표현방법과 주제, 그리고 결론은 각각 다르다.
김혜연_생명의 여신_요철지에 채색_100×144cm_2011
김혜연_쇼파에 앉은 여자_요철지에 채색_102×145.5cm_2011
김혜연_소년,여행을 떠나다_요철지에 채색_53×42cm_2008

김혜연은 따뜻한 시선으로 사람들을 들여다본다. 그녀가 사용하는 두툼한 요철지는 그녀의 심성만큼 푸근하고 그녀의 인물 또한 넉넉하고 여유롭다. 그녀의 그림에 등장하는 할머니, 손녀, 여자들은 행복한 삶의 예찬자로 표현되며 고단하고 팍팍한 현실은 동화적 환상과 초현실적인 풍속으로 변모한다. 아이들은 새와 구별되지 않으며 여인들은 우아한 여신으로 탈바꿈한다. 작가는 천국의 이미지를 멀리서 찾지 않고 우리일상 어디엔가 그런 천국이 숨어있음을 암시한다.
임만혁_꿈08-1_한지에 목탄, 채색_167×137cm_2008
임만혁_꿈08-2_한지에 목탄, 채색_167×137cm_2008
임만혁_바다풍경07-5_한지에 목탄, 채색_148×104cm_2007

임만혁은 또한 사람과 가족, 동물들을 그린다. 그러나 그 표현방법은 사뭇 다르다. 그의 인물화는 시니컬하고 해학적이고 동물들은 그들의 욕망을 은근히 드러낸다. 그의 가족그림은 행복과 동시에 긴장감과 거리감 혹은 약간의 불편함을 심리적 뉘앙스로 표현해낸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다소 쓸쓸하다. 작가는 이런 현대인의 감수성 표현을 위해 형태를 날카롭고 가늘게 묘사하고 갈색 톤의 색조를 즐겨 사용한다. ● 한국화를 전공한 두 작가는 분채를 사용하는 전통적인 채색법에 충실하나 화면위에 펼쳐지는 자유분방한 구도와 동서양을 넘나드는 풍부한 색감은 각각의 뚜렷한 특징을 나타낸다. 한 인물을 바라보고 느끼고 관찰하며 상반된 이야기로 풀어가는 부부작가의 사고를 느낄 수 있는 뜻 깊은 전시에 될 것이다. ■ 임만혁_김혜연







한국.호주 교류전: 호주_디지털 도시초상





서울시립미술관 한국호주 수교 50주년 기념 교류展   2011_0426 ▶ 2011_0626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1_0425_월요일_04:30pm 참여작가 PART 1 / 다니엘 크룩스_스텔락_레이첼 스캇_미셸 바커 & 안나 먼스터 존 톤킨_아담 내쉬 & 마미 야마나카_데이빗 로젯츠키 안젤리카 메시티_에밀 고_안나 다비 & 제이슨 지_데니스 보보와 PART 2 / 호주건축가협회_존 골링스 관람시간 / 화~금_10:00am~09:00pm / 주말,공휴일_10:00am~08:00pm / 월요일 휴관 서울시립미술관 SEOUL MUSEUM OF ART 서울 중구 미술관길 30(서소문동 37번지) 본관1층 Tel. +82.2.2124.8800 www.seoulmoa.org




한국과 호주의 수교 5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들이 올해를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기획되고 주목받고 있다. (올해를 기준으로 2010년에 경기도미술관의 한국-호주국제 교류전 『트릭스터 : 도깨비방망이』(2010년 9월 7일-12월 5일), 갤러리 팩토리 『네이버링 이팩트 프로젝트(Neighbouring Effect Project)』 전시(2011년 2월 23일 – 3월 20일), 서울시립미술관 『한국호주 교류전: 호주_디지털 도시초상』(2011년 4월 26일-6월 26일), 국립현대미술관의 『Tell Me Tell Me : 한국-호주 현대 미술 1976-2011』(2011년 8월 27–9월 24일), 『2011 한호 수교50주년 기념, 호주작가 초청 전시회』(2011년 4월 28일 – 5월 17일), 한미사진미술관 『호주 포토미디아(Australian Photomedia Exhibition 『New Worlds』)』 전시(9월), 고양아람누리 『한국-호주 비디오아트 교류전(Australia-Korea video art exchange exhibition 『Selectively Revealed』)』(10월), 시드니 대학 – 숙명여자대학교 교류전 『호주현대미술』(11월), 아트선재『Really Small Community Really Huge City (가제)』(2011년 11월 12일~2012년 2월 5일) 등이 기획되었다.) ●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서울시립미술관은 한국?호주 수교 50주년 기념교류전의 일환으로 양국의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호주에서 상상하고 그려내는 현재와 미래 도시 이미지와 인물을 보여주는『한국?호주 교류전: 호주_디지털 도시초상(Korea?Australia Exchange Exhibition: Australia_Digital Urban Portraits)』展을 마련하였다. ● 서울시립미술관이 호주의 아시아링크(Asialink), 디/룩스/미디어아트(d/Lux/MediaArts), 그리고 호주건축가협회(Australian Institute of Architects)와 공동으로 주최한 이번 전시는 호주정부와 주한 호주대사관의 후원을 바탕으로 2011년 4월 26일부터 6월 26일 서울시립미술관 본관 1층 전시실에서 열린다. 총 22개의 미디어 작품으로 디지털 프린트(Digital prints), 상호작용 설치물(interactive installation), 비디오 작업(single channel digital video), 그리고 입체 3D 영상물 등 호주의 미디어 아트를 선보일 예정이다. 전시는 파트1(Part I) '얼굴과 얼굴 디지털 시대의 초상화(FACE TO FACE Portraiture in digital age)'와 파트2(Part II) '지금 그리고 언제 호주의 도시주의(NOW and WHEN Austalian Urbanism)'로 이루어진다.
Daniel Crook_FACE TO FACE-portrait #2(Chris)_디지털 프린트_101×101cm_2007

파트1 '얼굴과 얼굴 디지털 시대의 초상화'는 새로운 미디어와 디지털 기술이 어떻게 현재 시대의 초상, 얼굴, 더 나아가 정체성에 대한 이해와 사고방식을 변화시키고 있는지 묻고 있다. 'Face to Face'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또는 '직면한, 대면한' 이라는 의미로 파트1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디지털 시대에 그들이 마주한 상황들에 대한 그들의 시각을 작품에 담고 있다. 이미 호주를 비롯하여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에서 같은 제목으로 순회 전시를 한 파트1의 작품들은 호주와 아시아 국가 간의 예술문화 교류를 해온 아시아링크와 호주에서 영화와 디지털 미디어 문화를 지원하는 디/룩스/미디어아트의 후원을 받아 캐시 클리랜드(Kathy Cleland) 큐레이터의 기획에 의해 구성되었으며, 아시아링크의 아트 프로그램 코디네이터인 엘라이자 로버츠(Eliza Roberts)가 소개되고 있다. 주요 작들을 잠시 소개하면, 다니엘 크룩(Daniel Crook, 1973-)은「초상 #1(자신)(Portrait #1(Self))」(2007, 그림1)이나「초상 #1(크리스)(Portrait #2(Chris))」(2007)에서 자신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인물들을 가로로 잘라 인물 초상을 그려내고 있다. ● 이 초상들은 특정적인 하나의 시간대에서 포착한 인물의 조각난 모습이 아닌 다른 시간대에서 다르게 보이는 동일 인물의 다른 모습들이 가로로 잘려져 서로 엮어져 나타난다. 그리고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달리하여 동일한 인물을 촬영하기 때문에 한 인물의 파편적인 여러 다른 모습들이 보이는 것과는 달리 배경은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이때 정지화면과 움직이는 이미지 사이의 경계는 잘 보이지 않게 처리된다. 이러한 시각적 효과에 대해 다니엘 크룩은 "시공간을 재현할 수 있는 새로운 탈 카메라 모델을 생각하였다"고 말한다. 시공간에 대한 크룩의 시도는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가「칸바일러의 초상(Portrait of Daniel-Henry Kahnweiler)」(1910)에서 칸바일러의 모습을 하나의 화면에 여러 시점을 담아내고자 했던 실험적인 태도에 닿아있다. 또한 데이빗 호크니(David Hockney, 1937-)가「나의 어머니 1(My Mother I)」(1985)에서 포토 꼴라주로 다른 시각(time)과 공간에서 대상의 여러 모습을 하나의 이미지로 표현한 시도에도 닿아있다. 즉 파인더를 통해 포착한 대상의 한 모습을 하나의 사진에 그대로 재현하려는 고전적인 사진의 개념에서 벗어나려고 하였던 시도를 잇고 있다.
David Rosetzky_Without You_단채널 디지털 영상_00:10:40_2003~04

인물 초상과 관련하여 데이빗 로젯츠키(David Rosetzky, 1970)의「당신없이(Without You)」(2003/2004, 그림2)는 10분 40초짜리 비디오 작업이다. 얼핏 보면 인물의 포즈는 고전적이다. 전통적인 회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전형적인 자세이다. 하지만 좀 더 살펴보면 얼굴의 피부가 초상의 대상인 인물의 피부가 아닌 부분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그가 한 인물의 정체성이 다른 인물들 사이의 관계에 의해 영향 받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실제 그는 작업에 있어서도 디지털 비디오 장면들로부터 정지 이미지들을 만들고 그것들을 메스를 가지고 잘라내고 꼴라주한 뒤 초당 2프레임으로 다시 찍어서 한 명의 인물 초상화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초상 표현 방법은 피부가 매끈하게 보이지 않고 잘라낸 부위가 드러나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지게 한다. 마치 영화 「양들의 침묵(Silence of The Lambs)」(1991)이나「페이스오프(Face/Off)」(1997)에서 피부가 극중 인물들이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보여주기 위해 사용되는 것과 유사한다. 다만 완전히 다른 인물로 변신되는 것이 아니라「당신없이」의 인물의 피부나 옷, 머리 등 일부분은 다른 인물의 부분들과 교체되어 꼴라주되어 초상 인물의 혼합된 정체성을 보여준다. 즉 이 초상을 통해 데이빗 로젯츠키는 한 인간의 정체성과 다른 사람들 사이의 관계성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John Tonkin_time and space motion study_interactive installation_2006

위의 두 작품이 전형적인 인물 포즈를 통해 초상화를 그려내고 있다면 존 톤킨(John Tonkin, 1963-)은「시간과 동작 연구(time and motion study)」(2006, 그림3)에서 시간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하는 동적인 초상화를 보여준다. 즉 시시각각 변하는 인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작품 앞에 서있는 관람객의 동작과 이미지 정보를 받아들여 실시간 3차원 영상으로 보여준다. 이것은 마치 조그 셔틀을 이용하여 필름을 앞과 뒤로 빠르게 돌릴 때처럼 관람객들의 모습은 연속적인 이미지들로 바로 나타난다. 이러한 방식은 1850년대 초기부터 1880년대에 인간이나 말의 동작을 분석하여 보여주었던 사진가 에드워드 마이브리지(Eadweard J. Muybridge 1830-1904)의 사진 작업과도 유사하다. 1872년에 마이브리지는 24대의 카메라를 사용하여 '움직이는 말(The Horse in Motion)'을 찍었는데 그는 1880년에는 영사기인 '주프락시스코프(Zoopraxiscope)를 발명하여 움직이는 사진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보았을 때 존 톤킨이 3차원으로 만들어내는 시간과 동작에 대한 연구는 마이브리지의 동작 연구에서 나아간 것이다. 디지털 기술을 적용함으로써 연속적인 동작뿐만 아니라 시간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John Gollings_NOW-Melbourne, Victoria, Australia_2010

파트1에서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는, 그리고 가까운 미래의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인물들의 정체성과 관계들, 시간과 공간에 대한 아날로그 시대와는 다른 표현들이 다루어지고 있다면, 파트2 「지금 그리고 언제 호주의 도시주의(NOW AND WHEN Australian Urbanism)」는 그러한 인간들이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한 현재와 미래에 대한 시각적 고찰이 담겨있다. 3D 입체영상인 이 작품은 2010년 제12회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의 호주관에서 선보였던 동일한 제목의 전시 작품으로 2005년부터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Venice Architecture Biennale)에서 주목받아 온 호주건축가협회와 공동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사진작가 존 골링스(John Gollings)에 의해 이루어졌다. 총 15분 길이의 이 입체영상은 '지금(Now)'(6분)과 '언제(When)'(9분)로 구성되어 있다. ● '지금'의 경우 호주의 도시와 자연 지역들 중 관심을 끌고 있는 5개의 지역을 선정하여 현재 호주의 모습을 담고 있다. 특히 존 골링스가 헬리콥터에서 내려다 본 시점으로 호주의 시드니(Sydney), 멜버른(Melbourne), 서퍼스 파라다이스(Surfers Paradise) 등 현재 호주의 대표적인 도시를 비롯하여 도시가 아닌 지역의 풍경과 건축적인 상징들을 찍은 영상들을 담고 있다. '지금(Now)'이 현재의 호주라면 '언제(When)'는 2050년의 호주의 미래 도시풍경을 그리고 있다. 이때 도시는 단순히 사람들이 모여 사는 주거지의 개념이 아닌 하나의 유기체(organism)처럼 숨쉬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언제'에서 상상되는 도시는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천공에 떠있는 도시를 연상시키는 이미지부터 기존의 도시 지역 위에 생태 도시를 올려 만든 이미지로 나타난다. 호주건축가협회의 이 도시주의(Urbanism)는 근래에 들어 환경에 대한 중요성, 공공미술에 대한 관심과 맞물리면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미 서울 등 여러 지역의 도시문화에 대한 연구와 논의가 진행되고 있어 호주에서 제안하는 도시주의는 단지 호주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우리나라에도 유효할 것이다.
Steve Whitford, James Brearley_Now and When-Symbiotic City, Foodslicer
WHEN_John Wardle Architects, Stefano Boscutti, Multiplicity, FloodSlicer_2010

한국과 호주는 1961년 수교를 맺기 이전부터 꾸준하게 민간교류가 있어왔으며 1889년 10월 2일 부산항에 호주 선교사 조셉 헨리 데이비스(Joseph H. Davies)와 그의 누이 메리(Mary)가 멜보른((Melbourne)에서 시드니(Sydney)를 거쳐 도착한 이래부터 한국과 호주의 예술문화 교류는 보다 활발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한국?호주 교류전: 호주_디지털 도시초상』展은 양국의 우호를 증진시키고자 하며, 호주의 대표적인 미디어 아트 작품들을 통해 우리 시대의 자화상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또한 앞으로의 도시 문화를 어떻게 이루어 나갈 수 있을지 고민을 공유하고, 기술의 발달에 따른 디지털 시대에 변화를 겪고 있는 이들에게 자신들의 정체성과 현재 살고 있는 도시와 환경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고자 한다. ■ 서울시립미술관




즐거운 나의집 Home sweet home





추효정展 / CHOOHYOJUNG / 秋效廷 / painting.installation   2011_0429 ▶ 2011_0512 / 월요일 휴관





추효정_설치_2011



초대일시_2011_0429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쿤스트독 KUNSTDOC 서울 종로구 창성동 122-9번지 Tel. +82.2.722.8897 www.kunstdoc.com




욕망과 권력의 체계_공사는 계속되어야만 하는가 ● 이제는 끝날 것 같은 건물 건축 공사 행렬은 끝나지 않는다. 거대한 생명체처럼 증식을 거듭하는 인간의 개발행태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해만 간다.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이유로 낡아졌다는 이유로 개발의 논리는 더욱 공고해지며 우리의 일상을 파고든다. 더 이상 건물을 세울 수 있는 땅이 남아있을지 의심스러운 상황에서도 도시의 구석구석까지 침투하며 공사는 계속되고 있다. 이같은 도시의 풍경과 이를 둘러싼 문제는 많은 작가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된다.
추효정_Still life_캔버스에 안료, 유채_79.5×145cm_2010
추효정_ Still life_캔버스에 안료, 유채_130.3×194cm_2011

추효정은 도시의 풍경을 건조한 시선으로 그리되, 공사현장의 이미지를 포착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공사 현장이나 건축물, 재개발 현장을 기록하는 사진작가들과는 또 다른 이야기를 풀어내며 단지 기록이 아니라 재구성된 풍경을 통해 회화적인 질감을 살려낸다. 특히 작가는 중단되어 방치된 공사 현장에 주목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중단되어 흉물로 변해버린 현장은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작가는 흉물로 변해가는 공사현장을 어두운 색채와 시점에 따른 구성을 통해 재생해낸다. 푸른 빛깔의 타포린이 둘러싸고 있으며, 그 가운데에는 땅이 파여진 채 흙속에 세워진 철골 구조물이 있는 풍경들이 그것이다. 작가는 먼저 중심부에 땅을 파고 세워져 있는 철골 구조물들을 배치시키고, 그를 둘러싼 흙더미들과 여러 가지 공사 잔해를 덮고 있는 방수포를 위치시킨다. 이같은 구도는 단순히 장소를 묘사했다가 보다 공사장의 체계와 위계를 그대로 드러내는 구조를 형성한다.
추효정_ Still life_캔버스에 안료, 유채_112×194cm_2011
추효정_ Still life_캔버스에 안료, 유채_72.7×91cm_2010

작가는 전체적인 현장을 조망하듯 위에서 내려다 본 것처럼 한눈에 파악되는 구도를 이용한다. 한편으로 지상에서 드러나는 부분 밑에, 땅 속에 파내려간 기초가 되는 땅과 그 땅속에 세워진 철골조 부분을 그리기도 한다. 전체의 조감도와 같이 한눈에 들어오는 공사의 현장과 그 현장의 지하 속에 들어간 듯 부분적으로 보이는 부분까지도 포착해낸다. 여기에서 어두운 색의 바탕화면과 그 위에 덧칠된 듯 얹힌 푸른색 천막천은 묘한 대비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기본 구조가 되는 바닥의 주춧돌에서부터 쌓아올려지는 건물들의 공사현장을 어두운 색감과 푸른 색감을 대비시켜 그리는 것이 작품의 특징이다. 이는 흉물스러운 현장의 이미지를 강화할 뿐 아니라, 그같은 흉물의 은폐를 돕는 천막천과 그 사이로 드러나는 공사의 잔해물을 극적으로 보이게 한다. 한편으로는 천막아래, 혹은 천막의 바로 위 등의 부분을 그리기도 한다. 은폐된 풍경 밑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부산물을 그대로 드러내되, 매우 비밀스러운 장소처럼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건축물의 공사 현장을 그리지만, 객관적인 사진처럼 사실적인 방식으로 그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공간의 분위기과 음울함을 연출하기 위해 화면의 색채와 질감, 구도를 연출하여 자본주의 사회 이면의 은폐된 구조적 모순을 회화적인 화면으로 재현해낸다.
추효정_ Still life_캔버스에 안료, 유채_112×194cm_2011
추효정_ Still life_캔버스에 안료, 유채_112×162cm_2011

흥미로운 점은 푸른색 타포린의 표현방식인데, 마치 어두운 바탕의 이미지를 지우거나 덮어버리듯이 붓터치를 그대로 남기며 물감이 흘러내리는 느낌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또한 어두운 배경과 대비되는 선명한 푸른색 천은 폐허같은 풍경의 익명성과 어두운 현실을 더욱 강화시키는 장치가 되며 흙이나 부산물을 흘러내리지 않도록 덮어두고 고정시키는 타포린 천막의 용도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 이같은 공간과 이미지가 형성된 근저에는 인간의 욕망에 관한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인간의 자본을 소유하고 증식시키려는 욕망과 공간, 도시가 얽혀서 이뤄지는 자본주의 사회의 맥락을 직조하는 것이다. 파편화되어 분절적으로 나타나 증식하는 도시의 표면은 자본주의의 욕망과 동거하며 계속해서 세포 분열해 나간다. 하지만 그같은 욕망은 중단되며, 버려진 공사현장으로 방치되기도 한다. 작가는 이같은 현실에 주목하여 흙더미와 공사현장을 뒤덮은 두껍게 덧칠되어 흘러내리는 푸른색 타포린의 표현을 통해 덧칠된 욕망, 그것을 덮으려는 욕망이 혼재된 도시풍경을 적절하게 드러내고 있다. 공사현장은 인간의 개발 욕망과 공간의 구성에 있어 권력화된 체계를 드러내고, 작가는 그것을 단순히 묘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같은 '체계' 자체를 구도와 색채, 질감으로 드러냄으로써, 개발과 공사를 둘러싼 맥락을 생각해보도록 한다. 인간의 욕망과 권력의 수단이 되어온 '개발'과 '공사'가 과연 계속되어야 하는지를 말이다. ■ 김우임




죽을 준비가 되어있는 Ready to die





송상희展 / SONGSANGHEE / ??? / photography   2011_0429 ▶ 2011_0604





송상희_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 Ready to die_Electric chair, light, motors_가변설치_2006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미지 속닥속닥 Vol.20011024a | 송상희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0429_금요일_07:00pm 비하이브 BEㆍHIVE 서울 강남구 청담동 78-5번지 Tel. +82.2.3446.3713 artbehive.com




우리는 우리의 죽음에 준비가 되어있을까? 누군가에게 당연한 죽음이 존재할까? 송상희의 설치작업 「죽을 준비가 되어있는」(2006)은 자신의 영정을 직접 바라봄으로써 죽음을 직면하고 있다. 죽을 준비가 되었다는 이 여인은 아직 움직이고 있으나 온전하지 않은 형태의 다리와 머리, 그 위에 반짝이는 원형의 띠를 가지고, 이미 죽은 후의 상태인 지, 혹은 그 사이 어디쯤인지 혼동되는 선에 서있다. 처음부터 기계였던 하이브리드 신체는 살았었다고도, 살았다고도, 이미 죽었다고도 말할 수 없는 어느 지점에 존재한다. 송상희는 이번 전시에서 이런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 혹은 되어있지 않은 자들에게 말을 걸고 있다. ● 이번 전시에서는 일본 오소레산에서 촬영한 「세계인들이 평화롭기를 Peace to all people in the world」(2010)도 출품된다. 일본의 전설에 따르면 오소레 산은 지옥으로 가는 문, 혹은 영산으로 알려져 있다. 유황 냄새와 화산활동의 잔해로 황량한 기운이 가득한 이 산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아이들의 영혼이 모여 있다고 여겨졌다.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아이들의 넋을 위로하고자 돌탑을 쌓고 그 앞에 사탕이나 여자아이 머리핀, 우유, 바람개
modified at 2011.04.30 19:48:41 by moder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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