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별 사진을 클릭하면 이미지를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피플 고은사진미술관에서 <사람의 집-프로세믹스 부산> 展 열고 있는 강홍구 작가
사람 냄새 나는 부산의 산동네 연작 선보이는 강홍구 작가 “내 사진이 내가 상상도 못한 말을 하고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되는 즐거움이 사진을 하는 매력!” 강홍구 작가가 부산 해운대구에 위치한 고은사진미술관에서 부산의 산동네 사진을 통해 사람냄새 나는 부산의 모습을 선보이는 사진전 <사람의 집-프로세믹스 부산> 展(2013년 3월2일~5월9일)을 열고 있다. 고은사진미술관이 향후 10년 동안 1년에 한명씩 한국의 중견 사진가를 선정해 부산의 모습을 작업으로 담도록 하는 연례 기획 ‘부산 참견록’(錄)의 신호탄 격 전시다. 강 작가가 담아낸 사진에는 부산 산동네 특유의 에너지 넘치는 삶의 터전이 담겨있다. 지금까지 재개발 지역의 건축물을 중심으로 작업을 펼쳐온 강 작가는 지난 1년 6개월 동안 부산의 산복도로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산동네 집들에 카메라 렌즈를 가져다 댔다.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구불구불 처마를 마주 댄 집들과 사람 사는 흔적들이 고스란히 엿보이는 사진들이다. 그리스 산토리니에 못지않은 풍광에 “여기가 부산 맞아?”라는 질문을 하게 만든다.
전시 제목인 ‘사람의 집’은 개미가 살기 위해 개미집을 만들 듯, 사람이 살기 위해 만든 집이라는 의미다. 그런 뜻에서 집이라는 단어는 건물이나 빌딩과는 다른 감성을 전해준다. 이어지는 ‘프로세믹스’(Proxemics)라는 낯선 용어는 사람이나 동물이 사람과 사람, 공간의 거리를 어떻게 인식하는가를 지칭한다. 강 작가는 프로세믹스가 부산에서 어떻게 사용되는가를 이야기하기 위해 이 용어를 선택했다.
“부산에서 서동이라는 동네에 가보고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재개발지역을 찍어왔기에 산동네에 익숙한 편인데 서동은 내 상상을 뛰어넘었다. 부산의 산동네는 재개발을 기다리거나 혹은 재개발에서 밀려난 산동네와 달리 활력이 있었다. 우리가 사는 집이라는 인식이 느껴지는 동네였다. 그게 부산 산동네와 집들을 찍게 된 동기다.” 지금까지 재개발 지역을 중점적으로 기록해온 강 작가는 뉴타운 작업을 서서히 마무리하려고 하는 중이다. 앞으로는 사람이 살아가고 있는 동네를 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중 ‘부산참견록’ 전시 제안을 받고 기쁘게 작업을 했다. <사람의 집-프로세믹스 부산> 展에서 선보인 사진들은 고은사진미술관 전시 후 오는 5월 말부터 6월까지 청주 우인아트센터를 거쳐 오는 7월에는 서울의 한 갤러리에서 순회 전시될 예정이다.
서양화를 전공한 강 작가가 재개발 지역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사진을 시작한 것은 어떤 문화적 충격 때문이었다. 작업실 인근의 마을이 재개발로 인해 통째로 사라지는 폭력적 광경을 목격한 후 이를 기록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카메라를 들었다. “김포공항 때문에 마을 하나가 통째로 없어지는 걸 보고 은평구로 작업실을 옮겼더니 또 재개발되는 걸 봤다. 멀쩡한 집이 뜯겨나가고 폐허가 되고 아파트가 들어서는 과정이 충격이었는데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해서 그게 더 충격이었다. 그래서 이를 찍어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사진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사진이라는 장르가 페인팅 보다 역사가 짧기 때문에 뛰어넘어야 할 산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도 마음에 들었다. “30대 중반에 페인팅으로 개인전을 한번 열었다. 그때 창조적이고 주목받는 작업을 하고 싶은 의욕과 욕망은 충만한데 정작 결과는 그렇지 않은데서 오는 괴리감이 있었다. 1만5000년 페인팅 역사에서 좋은 작업이 주는 굉장한 압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페인팅보다 역사가 짧고 몸이 더 가벼운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컴퓨터를 구입해 사진을 출력하고 이미지를 만드는 작업을 하다가 점점 디지털 사진 쪽에 빠지게 됐다.” 사진작가의 가장 큰 장점으로 강 작가는 아무 생각 없이 어슬렁거릴 수 있다는 점을 꼽는다. “사진작업의 가장 큰 매력은 현장성이다. 내가 직접 가서 눈으로 보고 냄새도 맡고 움직이면서 즉각적으로 이미지를 만드는 즐거움이 있다. 나처럼 게으른 사람에게는 비장함 없이 어슬렁거리면서 찍고 그걸 이미지로 만들어 잘하면 밥벌이도 된다는 게 매력적”이라는 설명이다.
이어 찍을 때는 몰랐는데 작가가 상상하지도 못한 말들을 사진이 하고 있다는 걸 발견하는 재미가 크다고 고백했다. 강 작가는 “내 사진 속에 내가 예상하지 못한 것들이 담겨있고, 내 사진이 내가 상상도 못한 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는 즐거움이 사진작업을 하는 두 번째 보람”이라고 말했다. 강 작가가 사진 작업을 통해 말하고 싶은 핵심은 인식에 대한 환기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엉망이다. 그러니 단 몇 초 만이라도 들여다봐라. 그리고 생각을 좀 해봐라. 그래야 하지 않을까. 그게 내가 말하고 싶은 주제다. 더 이상 거창한 얘기는 못하겠다.”
‘시시한 것들의 아름다움’이라는 문화비평서를 집필하기도 한 강 작가는 ‘예술이란, 그게 무엇일까 끝없이 질문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예술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말로 정의할 수 있으면 예술을 하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예술은 예술이 뭔지 끝없이 질문하는 것이다. 예술이 과거와 같은 위상은 이미 없어졌다. 예술은 이제 문화시스템의 일부가 됐다. 그걸 인정해야 한다. 자본과 권력의 발언권이 너무 크다. 개인이 뭐라고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개별 작가는 개인적 발언을 세계에 대해 공식적으로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고 희미한 통로다. 그렇다고 예술이 없어져야 한다든가 시시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예술은 살아남을만 하니까 살아남는다.”
대학에 출강해 미술사와 사진, 서양화 등을 가르치고 있는 강 작가는 대학생들에게 ‘예술을 하지 말고 비예술적인 것을 농담처럼 찍으라.’고 강조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 억압을 받아서 문제제기를 잘 못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답이 없어도 좋으니 문제를 제기하라고 요구한다. 진짜 핵심은 문제를 잘 만드는 사람이다. 답은 없어도 된다. 20대 초반에는 자신이 천재일까, 의심하기 쉽지만 대부분 바보이기 때문에 의심하지 말고 열심히 하라고 말해준다.” 앞으로도 ‘예술이 무엇일까’를 질문하면서 지금까지와 비슷하게 작업을 해나가겠다는 강 작가는 앞으로 부산의 산동네를 보다 생동감 있게 담아낼 수 있는 동영상 작업과 고향인 신안군에 관한 작업을 시도하기 위해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그리하여 올 해에도 무엇인가 발견되는 순간의 희열을 만끽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어슬렁거리다가, 남들은 시시하다고 여기는 사소하고 하찮은 것들에 파인더를 들이밀고 있을 테다. 글 ‧ 사진=김효원 스포츠서울 기자 hwk@artmuseums.kr 동영상 촬영=전정연 기자 funny-movie@hanmail.net 작품사진=고은사진미술관 제공 2013. 4. 22 ©Art Museu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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